[장형마츠] Red tear -2-
* 2화 입니다. 주말에 할 일이 많아 평일에 조금씩 써서 오늘 올려요ㅎ
* 2화 쓰다가 위회감이 들어 확인해보니 '센티넬' 이 맞네요... 1화에 '센티널'이나 '센트럴'이라고 썼었...
* 공미포 14,432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이걸로 등록은 끝났어.”
“응…. 고마워.”
토토코가 내민 등록증에는 작은 글씨들이 빼곡히 써져 있었다.
등급이니, 능력의 활용이니 쓸데없이 복잡하고 지루한 글의 향연에 한숨을 내쉬며 종이를 받아 들었다.
멍청히 의자에 앉아 뻣뻣한 종이를 들고 있는 나를 토토코가 가만히 응시했다.
“오소마츠 군의 담당 감시관은 난데, 괜찮지?”
“응. 오히려 고맙지.”
평생 자신이 센티넬인 것을 숨기고 살아가려 했던 나는 「관리국」이나 등록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등록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내게 토토코는 황당해하면서도 친절하게 「관리국」의 시스템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관리국」에 등록된 센티넬에겐 담당 감시관이 배정되며, 「관리국」의 요청에 따라 범죄자 체포나 재해 구조 등에 동원된다고 한다.
‘감시관’이라는 것은 관리국 국원들로 한 명단 2~3명의 센티넬을 담당하게 되며, 센티넬의 전반적인 관리와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감시한다.
「관리국」에 등록된 센티넬은 국가 공무원과 같은 입장이기에 등록된 센티넬이 폭주를 일으키거나 범죄를 저지른다면 그것은 「관리국」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감시관’이 담당 센티넬의 생활 전반을 관리하고 감시한다는 특이한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는 것이다.
토토코의 설명을 듣고, 내 일상이 24시간 타인의 감시 하에 놓인다는 것에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다행히 토토코가 내 담당 감시관을 자원해주었다. 생판 모르는 타인의 감시를 받느니, 어릴 적부터 함께 지냈던 토토코가 내 감시관이 되는 것이 낫다.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한 후,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꼭 생선 가시가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토토코가 「관리국」 국원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내 목에 걸린 질문이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바싹 마른 입술을 핥고, 납처럼 무거운 입을 열었다.
“저기, 토토코. 하나 물어볼 게 있어.”
“응.”
“‘팔콘’에 ‘그 자식’이 있어?”
최대한 침착하게 덤덤한 어조로 물으려 했지만,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지난 기억에 절로 목소리가 낮아졌다.
자신이 들어도 심한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분노로 떨리는 입술을 깨물고 필사적으로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내게 토토코의 기분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토토코는 한참을 침묵하고서야 겨우 대답을 내주었다.
“…‘팔콘’의 수장은, 토고야.”
“…그래.”
‘화륵-’ 하고 쥐고 있던 증명서가 불타 재로 변했다.
얇은 종이는 순식간에 불타올라 까만 잿가루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멍청히 바닥에 가라앉은 재를 바라보는 시야는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쓴 것처럼 뿌얬다.
카라마츠와 대치했을 때, 언뜻 들었던 그 목소리가 자신의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하고 의심했던 최악의 상황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와 발목을 꽉 붙잡고 나를 비웃었다.
잊고만 싶었던 그 자의 이름에 잔혹한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2.
처음엔 그저 사람 좋은 하숙생이라 생각했다.
여섯 명의 아이를 키우느라 빠듯한 집안 살림을 조금이나마 해결해보고자 받은 첫 번째 하숙생이 그였다.
낯선 사람이 우리 집에 머문다는 것이 그저 신기했던 우리는 시간만 나면 그의 방에 가 무례할 수도 있는 질문을 던졌고, 그는 미소 띤 얼굴로 친절히 우리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해주었다.
‘사람 좋은 아저씨’.
그것이 그에 대한 우리의 인상이었다.
그가 우리 집에 머물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그가 은근히 나를 따로 부르기 시작했다.
맛있는 것 사먹으라며 그가 쥐어준 용돈에 마냥 행복했던 나는 혼자만 특별 취급 당하는 것이 기뻤다.
주변에서도, 부모님도 우리를 평등하고 동등하게 대했다.
그것에 불만은 없었지만, 그가 특별히 나만 챙겨주는 것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색달랐다.
같은 얼굴에, 내가 너고 너가 나였던 우리 중에서 나에게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종종 용돈도 쥐어주는 그가 좋았다.
그는 나와 함께 있다가도 누가 오면 꼭 손가락을 입가에 대고 “이 모든 건 비밀이다.” 하고 말했다.
둘 만의 비밀.
개인공간조차 없었던 우리는 당연히 비밀도 없었다.
처음 느끼는 ‘비밀’이라는 단어는 내게 마법과도 같았다.
그와 점점 가까워질수록 비밀도 늘어났고, 부모님과 녀석들은 나와 그가 얼마나 친한지 알지 못했다.
그의 태도가 돌변한 것은 하숙 생활 한 달을 막 넘겼을 때였다.
완전히 그를 신뢰하게 된 나는 그와 밤 중에 몰래 집을 빠져 나와 거리를 구경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내가 그를 믿게 되기를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던 그는 곧바로 태도를 바꾸었다.
구석진 골목길, 아무도 없는 공터에서 나는 호되게 맞았다.
반복되는 구타에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만약 그 누구에게라도 이 일을 말하면 네 부모님을 죽여버리겠단 그의 말은 부모님의 호통보다 무섭고 두려웠다.
끝없이 이어지는 그의 폭력에 단 한 번, 용기를 낸 적이 있었다.
회사에 가려는 아빠를 배웅하려고 모인 어느 날, 그는 늦잠을 잤다.
세상 모르고 골아 떨어진 그의 모습을 확인하고, 막 현관을 나서려는 아빠의 양복을 붙잡아 늘였다. 필사적으로 그가 내게 한 폭력들과 협박을 아빠와 엄마에게 울부짖었다.
눈물까지 흘려가며 외치는 내 말을 부모님은 그냥 넘기지 않았고, 내 몸에 남은 피멍을 확인한 아빠는 시뻘개진 얼굴로 그의 방으로 향했다.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세게 그의 방문을 열어젖힌 아빠는 그의 멱살을 붙잡고 외쳤다. 경찰에 가자!, 고.
나는 당연히 그가 혼비백산해 도망치거나, 그대로 아빠의 손에 이끌려 경찰에 잡혀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내 생각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엄마 뒤에 숨어있던 나를 보고 씩- 비열한 웃음을 흘린 그가 무미건조한 말투로 태연스레 말했다.
내가 예뻐서 같이 놀아준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순간, 귀신에 홀린 것처럼 아빠가 그의 멱살을 놓고, 그의 말을 되풀이했다.
예뻐서 놀아준 것, 하고 그의 말을 되뇌는 아빠의 눈은 죽은 생선 같이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빠의 말에 빙긋- 웃은 그가 엄마를 향해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엄마도 아빠처럼 초점 잃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너무나 허무하게 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는 저 멀리 날아갔다.
아빠는 다시 출근 준비를 하고 현관을 나갔다. 엄마도 덤덤하게 “다녀오세요.” 하며 아빠를 배웅했다.
아직 어렸던 나조차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 후로, 그의 행동은 더욱 치밀해졌다.
매일 나를 데리고 나가 협박을 일삼았다.
폭력은 멈췄지만, 내 정신은 서서히 죽어갔다.
마침내 그가 하는 말에 반항할 기력조차 잃은 나는 그에게 끌려 집을 떠났다.
집에서 멀리, 절대 아이 혼자 돌아갈 수 없는 먼 도시로 나를 끌고 간 그는 한 번 더 내게 악마처럼 속삭였다.
“네가 도망치면, 네 부모와 동생들을 죽여주마.”
그의 더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두려움에 잠식된 뇌는 바로 눈앞에 보고 싶지 않았던 광경을 비췄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부모님, 싸늘하게 식은 동생들의 몸, 영원히 두 번 다시 동생들의 얼굴도, 목소리도, 부모님의 따뜻한 손길도 볼 수 없다는 두려움에 나는 정신을 잃었다.
새하얗게 변한 시야 속으로 그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를 붙잡고 있던 그의 손이 풀리자마자 나는 쏜살같이 인파 속으로 달려갔다.
달리고 또 달려서 간신히 작은 파출소 하나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토고는 잡혔다.
얼굴의 절반에 심한 화상을 입을 채 발견된 그는 경찰에 붙잡혀 실형을 선고 받았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그는 나를 노려보았다.
감옥에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매서운 눈빛은 내게서 떠나지 않았다.
모처럼 받은 하숙생이 범죄자였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겪고, 부모님은 하숙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토고에 관련된 모든 일은 녀석들에게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다.
부모님은 세뇌되고, 나는 납치될 뻔했다는 흉흉한 일을 녀석들에게 알려줄 필요 없다는 것이 부모님의 판단이었다.
토고가 잡히고 곧 우리 집은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왔다.
간혹 토고에 대해 물어보려 온 기자나 관리국 사람이 찾아오긴 했지만, 부모님은 그들 모두를 현관에 들이지도 않고 매정하게 쫓아 보냈다.
나도 녀석들에게 토고에 대한 것과 나에 대한 일을 철저히 숨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들 사이에서 나는 빠르게 일상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날은, 엄마가 내게 심부름을 시킨 날이었다.
드물게 학교에서 바로 집으로 돌아온 내게 엄마는 간장을 사오라며 자신의 지갑에서 천엔을 꺼냈다.
다른 녀석들은 해질녘이 되어서야 돌아올 것이고, 엄마는 모처럼 회사에서 일찍 퇴근한 아빠를 위해 안주를 만들고 있던 중이었다.
엄마는 투덜대는 내게 거스름돈으로 원하는 것을 사먹어도 좋다고 달래며 나를 현관 밖으로 밀었다.
할 수 없이 지폐 한 장을 손에 들고 집을 나왔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슈퍼를 향해 걷는 길목엔 우리가 자주 노는 공터가 있었다.
공터를 지나치려던 나는 공터에서 놀고 있던 이치마츠와 토도마츠를 불렀다.
흙투성이가 된 채, 내게 달려온 녀석들에게 나는 자랑스럽게 지폐를 내밀고 말했다.
“엄마가 간장 사고 남은 돈으로 먹고 싶은 거 사 먹으래! 같이 갈 사~람?”
“나!!”
“나도, 나도 갈래!”
팔랑거리는 지폐에서 눈을 떼지 않은 두 녀석이 번쩍 손을 들었다.
‘혼자’가 싫었던 나는 두 녀석의 시원스러운 대답에 만족스럽게 웃으며 다시 슈퍼를 향해 걸었다.
양옆에 선 두 녀석과 시시한 잡담을 나누며 슈퍼에 도착해 간장과 불량 식품을 잔뜩 사 집으로 돌아갔다.
슈퍼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한 덕분에 우리가 집에 돌아갈 땐 이미 해가 산 너머로 얼굴을 숨기고 눈만 빼꼼 내밀고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을 올려다보고서야 너무 늦어졌다는 것을 깨달은 우리는, 엄마의 야단을 피하기 위해 집으로 전력질주했다.
간장이 든 비닐봉지를 흔들며 집으로 뛰어간 우리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벌써 집에 돌아와 있어야 할 쵸로마츠, 카라마츠, 쥬시마츠의 목소리도 없고, 우리의 요란한 발소리에 현관으로 나와 고래고래 호통칠 엄마도 없었다.
고요한 집 안의 공기에 우리는 집 안으로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쭈뼛거리며 현관에 우두커니 섰다.
“어, 엄마~?”
울상이 된 얼굴로 용기를 낸 토도마츠가 엄마를 불렀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지독할 정도의 적막에 이치마츠와 토도마츠가 훌쩍이기 시작했다.
“오소마츠….”
토도마츠의 매달리는 목소리에 끔찍한 환상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가빠진 호흡에 덜덜 떨며 들고 있던 봉지를 이치마츠에게 내밀고 “여기서 기다려.” 하고 말했다.
두려워하는 토도마츠를 옆구리에 끼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치마츠를 뒤로 하고 복도에 올랐다.
오래된 복도에 끼익- 하고 나무 판자가 비틀리는 소리가 울렸다.
매일 지겹도록 듣던 소리인데도 소름 끼치도록 괴기스럽게 들렸다. 마른 침을 삼키고 주방으로 향했다.
“엄마…?” 하고 주방으로 들어섰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후우….” 하고 안도와 불안이 섞인 숨을 내뱉고 천천히 발을 옮겨 거실 문 앞에 섰다.
내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두 녀석에게 돌아서 있으라 말하고, 거실 문을 살짝 열었다.
간신히 거실 안을 볼 수 있을 정도의 좁은 틈에 눈을 댔다.
“…!!”
“오소마츠?”
“…오, 오소마츠? 왜 그래…?”
“오지 마! 보면 안 돼!!!”
““…에?””
뒤돌아있으라는 내 말을 무시하고 나를 빤히 바라보던 이치마츠와 토도마츠가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쾅! 하는 소리를 내며 거칠게 거실 문을 닫은 내가 외쳤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두 녀석을 앞에 두고 호흡도 잊은 채, 주저앉았다.
―빨간색, 피, 넘어진 TV, 뒤집어진 밥상, …쓰러져있는 부모님.
내뱉는 숨이 뜨거워 기도가 타는 것 같았다.
그렁그렁 매달린 눈물에 뿌얘진 시야 사이로 이치마츠와 토도마츠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들어가지 마.” 라는 말을 반복하며 흐느끼는 내 앞에 선 두 녀석의 얼굴도 어느새 엉망이 되어 있었다.
태어나 처음 느끼는 거대한 공포에 덜덜 떠는 두 녀석을 껴안고 숨을 삼켰다.
집 안 어디에도 카라마츠와 쵸로마츠, 쥬시마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3.
‘A급 센티넬’이라 쓰여진 인식표를 목에 건 오소마츠가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손에 쥔 스포츠 타올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거칠어진 숨을 다듬으며, 벽에 기댄 오소마츠가 목에 매달린 채, 은빛으로 빛나는 인식표를 손바닥에 올렸다.
「관리국」에 등록을 마친 오소마츠는 「관리국」 본사 안에 있는 기숙사에서 지내게 되었다.
등록 후 3일간, 오소마츠는 면밀한 검사와 체력 테스트, 그리고 능력의 한계를 측정하기 위한 훈련을 받았다.
많은 검사와 테스트를 통해, 오소마츠가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조절하고 있는 능력은 정확한 수치로 표현되어 데이터가 되었다.
그리고 바로 어젯밤, 모든 검사를 마친 오소마츠는 정식으로 「관리국」에 등록되어 ‘A급’이라는 등급을 받았다.
센티넬 중에서도 드문 ‘A급’.
「관리국」에 등록된 수 많은 센티넬 중 A급으로 분류된 센티넬은 100명이 채 안 될 정도로 드문 등급이었다.
―OSOMATSU MATSUNO, A급 센티넬, 6001.
인식표에 쓰여진 글자를 본 오소마츠가 헛웃음을 흘렸다.
자신이 아무리 희귀한 ‘A급’이라도 오소마츠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자신이 거친 모든 검사와 테스트는 오소마츠에겐 소용없는 일이었다.
오소마츠는 자신이 센티넬이 아니길 바랐다.
그저 평범한 일반인으로서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오소마츠에게 ‘센티넬’이나 ‘A급’이라는 단어는 족쇄와도 같았다.
무엇보다 자신이 센티넬이 아니었다면, 토고에게 동생들을 빼앗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쯤 단란한 마츠노가에서 부모님의 등골이나 빨아먹으며 느긋한 백수 생활을 만끽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후-”
고된 훈련으로 뜨거워진 몸이 서서히 식어갔다.
온 몸에 납덩이처럼 매달려있던 피로란 녀석도 빠른 센티넬의 회복력에 거의 떨어져나갔다.
한쪽 발을 들어올려 한결 가벼워진 몸을 확인한 오소마츠가 기대고 있던 벽에서 몸을 떼어냈다.
방으로 돌아가 씻을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긴 순간, 관리국 내에 커다란 사이렌이 울렸다.
다다다다다-
발소리를 울리며 「관리국」 국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하이힐을 신고 서류 더미를 흩뿌리며 뛰어가는 국원의 모습에 본 오소마츠가 재빨리 주변을 살피며 토토코를 찾았다.
마침 자신 쪽으로 달려오던 토토코를 본 오소마츠가 뛰어갔다.
“토토코! '팔콘'이지!!”
확신을 담아 외치자, 토토코가 걸음을 멈추고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뚫어지게 토토코를 보는 오소마츠에게 토토코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나도 갈게.”
“안 돼! 이제 막 등급 받았으면서!”
“카라마츠가 있을 지도 모르잖아!!”
“….”
“토토코…, 부탁할게. 나도 데려가줘….”
“…알겠어.”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토토코를 응시하는 적갈색의 눈동자에 토토코의 얼굴이 비쳤다.
망연히 오소마츠의 얼굴을 쳐다본 토토코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대신 조심하겠다고 약속해.”
“응. 약속할게.”
4.
오소마츠가 토토코와 함께 도달한 곳은 도시 외곽에 있는 군사 시설이었다.
군사 시설 내 무기고를 습격한 팔콘과 군인들이 대치하고 있는 긴급한 상황, 팽팽한 긴장감이 땅을 뒤덮고 있었다.
탕!
누가 쏜 것인지 모를 총성 하나가 하늘에 울렸다.
실수일지도 모를 총성 한 발을 신호로 팔콘 쪽의 센티널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그에 대항해 군인들도 총격을 시작했다.
수많은 총성이 하나로 뭉쳐 고막을 뒤집었다.
빗발치는 총알 속에서 검은 후드를 입은 쥬시마츠가 나타나 땅을 들어올렸다.
콘크리트가 깔린 바닥을 들어올려 방패처럼 앞에 세운 쥬시마츠와 그 옆에 있던 팔콘 센티널이 투명한 배리어를 만들어 쥬시마츠와 동료들을 감쌌다.
팔콘을 향해 총구를 떠난 총알은 쥬시마츠가 만든 방패에 박히거나, 배리어에 막혀 땅으로 떨어졌다.
완전한 방어 속에서 팔콘은 무기고의 무기들을 군용 트럭에 옮기기 시작했다.
토토코를 비롯한 관리국원들과 「관리국」에 등록된 센티널들은 군인들이 팔콘에게 정면공격을 하는 동안, 뒤로 돌아갔다.
무기고에서 무기를 나르는 팔콘의 뒤쪽으로 몰래 잠입한 「관리국」은 센티널과 함께 뒤에서 팔콘을 습격할 생각이었다.
오소마츠도 토토코를 따라 팔콘의 뒤쪽으로 이동했다.
처음 듣는 커다란 총성과 눈앞에 펼쳐진 영화 같은 전투에 얼이 빠졌다.
서로 수신호를 통해 작전을 전달한 토토코와 관리국원들 사이에서 오소마츠가 숨을 죽였다.
억지를 써 자신도 따라오긴 했지만, 처음 보는 전투에-싸움이라 하기엔 너무나 처참한 광경이었다- 오소마츠가 감히 나설 수 없었다.
손으로 카운트 다운을 하며 습격할 타이밍을 맞추던 그 때, 오소마츠의 시야에 카라마츠가 잡혔다.
순간, 총알이 빗발치건, 팔콘이건, 센트럴간의 싸움이건, 아무런 상관이 없어졌다.
수신호에 맞춰 팔콘을 향해 달려나가는 센트럴들과 함께 오소마츠도 뛰어나갔다.
뒤에서 토토코가 “오소마츠 군!!!”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나아갔다.
카라마츠가, 동생이 바로 저기에 있었다.
「관리국」 센티넬들의 습격을 팔콘도 예상하고 있었는지, 무기를 옮기던 팔콘들이 바로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군인들과 대치하고 있는 센티넬보다 더 월등한 능력을 가진 A급의 센티넬들이 서로 충돌했다.
일반인이라면 상상도 못한 커다란 힘의 충돌에 지반이 흔들렸다.
A급 센티넬의 힘은 거의 준 자연재해에 가까웠다.
오소마츠를 비롯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센티넬들의 예민한 감각이 충격을 감지했다.
흔들리는 땅 위에서 중심을 잡으려 틈을 보인 센티넬에게로 군인들이 돌진했다.
군대에 속해 있던 센티넬들과 「관리국」의 센티넬들이 협공해 팔콘을 공격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전장에서 오소마츠는 오직 한 명의 기운을 쫓아 센티넬들 사이를 헤집으며 뛰었다.
허공에 띄운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어린 군인에게로 날아갔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향해 전속력으로 뛰어 군인을 향해 날아가는 얼음에 불덩이를 쏘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은 어린 군인의 몸을 꿰뚫기 직전에 녹아 내렸다.
어린 군인을 등지고 선 오소마츠가 정면에 선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카라마츠.”
“….”
“카라마츠, 나는, 널 버린 적 없어!”
“….”
“마찬가지로 쵸로마츠랑 쥬시마츠도 버린 적 없어!! 내가 너희를 버릴 리 없잖아!! 바-보야!”
“…하아, 뭘 말하나 했더니 또 변명인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카라마츠가 손을 들었다.
뭉글뭉글 피어 오른 물방울이 공중에 뭉쳐 커다란 물덩이를 이루었다.
출렁이며 원형을 유지하는 물은 곧 오소마츠를 덮칠 것 같은 위압감을 만들어냈다.
“변명 아니야!! 너희는 토고 자식한테 납치된 거라고!! 그러니까 돌아와!”
“시끄럽다.”
물덩이에서 한 컵 정도의 물이 떨어져 나와 얼음으로 변했다.
날카로운 창처럼 길게 뻗은 얼음 송곳이 망설임 없이 오소마츠에게 날아들었다.
제 말을 듣지 않는 동생에게 답답함을 느끼며 인상을 찌푸린 오소마츠가 커다란 불덩이를 만들어 장벽을 만들자, 날아온 얼음 송곳은 곧 불에 녹아 사라졌다.
“정말이야! 토고가 무슨 거짓말을 했는지 몰라도, 정말로 나는!! 너희를 버린 적 없어! 너희를 잃고 싶지 않았어!!”
“….”
“카라마츠! 토고가 한 말은 전부 거짓말이야. 나는,”
오소마츠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전부 거짓이라고, 돌아오라고 카라마츠를 설득하려 했지만 미련한 자신의 머리는 그럴듯한 문장 하나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의 이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눈앞에 카라마츠가 있는데도 멍청한 자신은 제대로 말조차 할 수 없는 현실에 오소마츠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피가 안 통할 정도로 꽉 쥔 주먹이 안타까움에 부들부들 떨렸다.
“카라마츠…! 카라마츠, 카라마츠!!”
오소마츠는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예전처럼 같이 살고 싶었다.
함께 웃고 떠들며, 시시한 장난을 쳐가며 즐겁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말로는 그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그저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시끄러운데다, 방해다.”
마음을 담은 외침은 싸늘한 카라마츠의 눈빛 앞에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냉담한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허탈한 표정으로 주먹을 풀었다.
왈칵- 눈물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고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카라마츠는 그 어떤 감정의 조각도 실리지 않은 무기질 같은 눈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공중에 떠 있던 물덩이는 작게 나누어져 얼음송곳으로 변했다.
카라마츠의 손짓으로 일제히 자신에게 달려드는 얼음송곳을 보며 입술을 깨문 오소마츠가 다시 커다란 불덩이를 만들었다.
수십 개의 얼음송곳이 불에 닿아 기화했다.
뿌옇게 시야를 가린 수증기를 뚫고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돌진했다.
손에 피운 화염으로 수증기를 뚫고 뻗은 주먹의 끝에 카라마츠의 얼굴이 보였다.
“오소마츠, 이거 같이 먹자!”
“!!”
카라마츠에게 가까이 다가간 순간, 어릴 적 카라마츠의 얼굴이 떠올랐다.
앳된 얼굴로 순수하게 웃는 카라마츠는 제 몫의 간식도 나누어주던 상냥한 아이였다.
항상 쵸로마츠와 함께 행동했던 오소마츠를 혹여 놓칠 새라 끈질기게 따라오던 귀여운 동생.
줄곧 그리워했던 동생의 얼굴이 눈앞에 서 있는 카라마츠의 얼굴에 겹쳤다.
“크읏!!”
내지른 주먹은 무리하게 꺾어져 카라마츠의 옆을 스쳤다.
직진하는 힘을 돌리기 위해선 배의 힘이 필요했고, 자연스레 오소마츠의 몸은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바닥에 곤두박질쳐 두세 번 구르고 나서야 멈춘 오소마츠가 힘겹게 발을 딛고 일어났다.
얼굴과 손 여기저기에 생긴 자잘한 생채기가 쓰라렸다.
카라마츠는 가만히 오소마츠를 보며 제 볼을 쓸었다.
오소마츠의 화염이 스치며 가벼운 화상을 입은 볼은 붉은 빛을 띄고 있었다.
“카라마츠, 제발 내 말을 들어줘.”
공격 태세를 완전히 지우고 오소마츠가 한 발 한 발 카라마츠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간신히 짜내어 말했다.
간절히 카라마츠를 쳐다보는 오소마츠에게 카라마츠는 차가운 눈빛으로 답했다.
오소마츠가 한 걸음씩 카라마츠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카라마츠의 눈이 가늘어졌다.
-첨벙.
“읏!?”
카라마츠를 보던 시선을 내리자, 식물의 촉수처럼 땅에서 뻗어 나온 물줄기가 오소마츠의 발목을 붙잡았다.
당황함을 감추지 못한 오소마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카라,”
“위험해요!!!”
다시 카라마츠에게로 눈을 올린 순간, 어린 군인이 외쳤다.
냉혹한 눈으로 오소마츠를 내려다보는 카라마츠 주변에 수 많은 얼음송곳이 떠올랐다.
오소마츠의 눈길에 체념이 어린 순간, 얼음은 무자비하게 오소마츠를 향해 날아갔다.
미처 화염을 일으킬 틈도 없이, 얼음은 오소마츠에게 날아와 박혔다.
한번도 경험한 적 없었던 고통이 온몸을 관통했다.
차가운 얼음에 뚫린 부위가 뜨거웠다. 새빨간 피를 뿜어내는 자신의 몸이 꼭 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아팠다. 그저, 아픔만이 모든 신경을 지배했다.
“후퇴다!”
누구의 외침인지 모를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몸을 돌렸다.
순간 끔찍한 고통도 잊은 채, 오소마츠가 손을 뻗었다.
간신히 카라마츠의 바지 자락을 붙잡은 오소마츠가 고통으로 일그러진 입가를 올렸다.
“…카, 라마츠…!”
“….”
대량의 출혈로 눈 앞이 흐려졌다.
마치 영화의 페이드아웃처럼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어둠으로 침식당하는 시야에 카라마츠가 보였다.
피로 물든 손을 가볍게 쳐낸 카라마츠는 팔콘의 센티넬들과 함께 준비된 군용 트럭에 올라탔다.
멀어지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결국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은 바닥에 고인 오소마츠의 붉은 피 속으로 사라졌다.
5.
긴급한 의사들의 외침 속에서 이동 침대가 수술실로 들어갔다.
침대 아래에 깔린 푸른 천은 이미 피에 물들어 검붉게 변해 있었다.
곧 끊어질 것 같은 얕은 호흡을 인공 호흡기로 간신히 이어가고 있는 오소마츠는 불투명한 수술실 문 너머로 모습을 감췄다.
망연히 푸른 수술실 문을 바라보던 이치마츠가 몸을 돌려 토토코의 멱살을 잡았다.
어린 시절 형제들의 영원한 아이돌이었던 토토코를 붙잡은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야!?”
“이, 이치마츠 형!! 진정해!!”
“진정할 수 있겠냐!!! 이거 놔! 토도마츠!!”
사색이 된 얼굴로 토도마츠가 이치마츠의 팔을 붙잡았다.
몸을 비틀며 토도마츠의 손을 뿌리치려는 이치마츠의 비통한 외침이 병원 복도에 울렸다.
흐트러진 정장을 정돈할 생각도 없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토토코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펠론’과, 카라마츠 군과 싸우다가…. 내가 부주의한 탓이야. …미안해.”
““!!!””
커다란 눈망울을 적시고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매달고 토토코가 덤덤히 말했다.
말을 마치자마자 꾹 다문 입술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고 있는 토토코의 모습과 토토코의 입에서 나온 형제의 이름에 이치마츠와 토토마츠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수술실로 시선을 돌렸다.
6.
삐-, 삐-
규칙적으로 울리는 고음에 눈을 떴다. 하얀 시야 사이로 둥근 머리 2개가 보였다.
몇 번 눈을 깜빡이자 시야가 선명해졌다.
처음 보는 기계들과 새하얀 방을 둘러보고 자신이 병원에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후- 하고 내뱉는 한숨에 맞춰 입에 걸린 인공 호흡기에 뿌옇게 김이 서렸다.
머리와 가슴에 연결된 기계에선 심장 박동과 함께 위아래로 쉴 새 없이 요동치는 이상한 그래프가 비치고 있었다.
“끙-“ 하고 신음하며, 몸을 일으키자 안 아픈 곳이 없었다.1
특히 복부를 찌르고 올라오는 날카로운 격통에 숨을 들이마시고 호흡을 멈췄다.
겨우 상체를 일으키고 나서 멈췄던 숨을 몰아 내쉬었다.
울다 잠들었는지 눈가가 빨간 동생들에게 붙잡힌 손은 움직일 수 없었다.
붉게 부은 눈가에 쓴웃음을 짓고, 귀여운 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 위해 슬며시 손을 빼냈다.
침대 양 옆에 엎드려 자고 있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자, 몸을 움찔대더니 곧 편안히 호흡하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쓸데없는 걱정을 끼친 것에 미안함을 담아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미안해.
―미안해, 이치마츠. 토도마츠.
―카라마츠를, 데려오지 못해서 미안해….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거칠게 소매로 눈을 비비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 정신이 들었구나.”
한숨이 끝나자마자 타이밍 좋게 문을 열고 들어온 토토코가 쓰게 웃었다.
침대 곁으로 다가온 토토코가 내 옆에 놓인 기계 신호를 확인하고 물었다.
“몸은 좀 어때?”
“응, 괜찮아.”
“완치될 때까지는 절대 안정이야. 이 침대 밖으로 나올 생각하지 마.”
“에~”
가벼운 장남을 담아 불평 어린 신음을 내자, 토토코가 피식- 웃음을 흘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정말로, 오소마츠 군의 특별히 뛰어난 재생 능력 덕분에 살았으니까….”
“…응.”
“…그리고, 이제 카라마츠 군에 대한 건,”
“싫어.”
눈을 내리고 말하는 토토코의 말을 잘라냈다.
아무리 바보인 나라도 분위기상 어떤 말이 이어질 지는 눈치채고 있다.
단숨에 단호히 대답하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토토코가 눈을 감았다.
“오소마츠 군, 담당 감시관으로서 명령이야. 이제 ‘팔콘’을 쫓는 것은 허락할 수 없어.”
“내 동생을 되찾는 일이야. 그 누구의 허락이나 명령도 필요 없어.”
“오소마츠 군!”
“싫어. 토토코.”
“….”
굳은 의지를 담아서 토토코를 응시했다.
눈썹을 찌푸리고 입술을 깨문 토토코가 낮게 읊조렸다.
“나는 허락 못 해.”
“토토코!”
“…응-, 어? 오소마츠, 형?”
“오소마츠 형!”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외침에 다친 부위가 욱신거렸다.
생각보다 컸던 내 목소리에 이치마츠와 토도마츠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나를 보자마자 다시 눈물을 글썽이며 달려든 녀석들의 머리를 상냥히 쓰다듬었다.
항상 심드렁한 얼굴에 무표정으로 지내던 이치마츠까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울먹이는 모습에 픽- 웃음을 흘렸다.
이제 다치지 말라느니, 걱정하게 만들지 말라느니, 왁왁 떠들어대는 녀석들의 말에 적당히 대답을 흘렸다.
““오소마츠 형! 제대로 들어!!””
대충대충인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토도마츠와 이치마츠가 동시에 외쳤다.
나를 걱정해 잔뜩 눈썹을 찌푸리고 노려보는 얼굴이 퍽 귀여워 입가에 미소가 퍼졌다.
할 수 없다는 얼굴로 알겠다고 대답하려 입을 연 순간, 문이 열리고 처음 보는 중년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마에다 국장님.”
“토토코 양, 오소마츠 군에겐 잘 설명했나요?”
“그게….”
둘의 대화에 가만히 귀 기울이다 토토코의 말이 멈춘 때를 맞춰 끼어들어 말했다.
“절대 거부합니다. 저는 동생을 되찾기 위해 「관리국」에 들어왔어요. ‘팔콘’에게서 동생을 되찾기 전까진 절대 그만둘 생각 없습니다.”
“하아~, 상식적으로 생각해봐요, 오소마츠 군.”
토토코에게 ‘마에다’라 불린 남자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내 앞으로 걸어왔다.
중년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정장에 가려진 몸은 한 눈에 봐도 탄탄했다.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슬슬 문지르며 눈가 주름을 잡고 나를 응시하며 남자가 말을 이었다.
“형제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겁니다. 당신의 형제가 있는 ‘팔콘’은 매우 위험한 테러 단체에요.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고, 당연히 민간인이 휘말려들 수도 있습니다. 인명이 달린 위급한 상황에서 당신은 똑바로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나요? 적이 형제이기에 감정에 휘말려 판단력은 흐려질 것이고, 한 순간의 판단 미스는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 때문에 목숨을 잃을 사람들에게 대체 뭐라고 사과할 생각인가요? 오소마츠 군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러니 「관리국」을 믿고 맡기세요. 「관리국」의 유능한 센티넬들이 반드시 당신의 형제를 되찾아 줄 겁니다. 오소마츠 군은 ‘팔콘’과 너무 깊이 연관되어 있어요. 당신은 이 일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
심장을 후벼 파는 아픈 진실을 하나하나 까발리며 말을 마친 남자가 어디 반박해 보라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반박,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전부 맞는 말이다.
나 때문에 애먼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감정에 치우쳐 카라마츠를 놓치고 자신도 이렇게 심한 부상을 입고 말았다.
자신의 한심함에 “하-….” 하고 한탄하며 인공 호흡기를 떼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 오소마츠 형?!”
“뭐 하는 거야!? 일어나지 마!! 상처가!!”
“…오소, 마츠 군….”
아프다. 진짜로 아프다.
카라마츠한테 공격 당했을 때가 차라리 낫다.
그 때는 뭐가 뭔지 혼란스러워 그렇게 아프지 않았는데, 지금은 장난 아니다.
뼈 마디마디가 비명을 지르고 복부는 아예 불덩이를 하나 올려놓을 것 같다.
우와, 진짜 아파. 아프지만….
나를 도로 침대에 눕히려는 녀석들의 손을 물리치고, 바닥에 발을 내디뎠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의 냉기와 함께 신경을 타고 올라오는 찌를 듯한 감각에 이를 악물었다.
심호흡을 하며 몸에 힘을 주고 일어서자, 툭- 하고 뭔가가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바보!! 상처가!!” 하고 외치는 이치마츠의 머리를 잠깐 쓰다듬어주고, 한 걸음씩 남자에게 다가갔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남자가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빙긋- 웃으며 남자 앞에 다가가 망설이지 않고 무릎을 꿇었다.
“이렇게, 부탁 드립니다. 녀석들을, 동생들을 되찾고 싶습니다. 부탁, 부탁드립니다.”
바닥에 손을 짚고 머리를 깊이 숙였다.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리며 부탁했다.
고개를 숙이면 어느새 환자복을 적시고 새어 나온 핏물이 뚝뚝 바닥에 떨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는 자신의 모습에 허탈한 속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땅에 박았다.
“부탁, 드립니다!!”
“오소마츠 형!! 제발 일어나아! 상처, 상처가아!!”
“바보, 멍청이, 개쓰레기 장남아 일어나! 피 나고 있다고!!”
투다닥- 정신 없는 발소리를 내며 내 옆에 주저앉은 토도마츠와 이치마츠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억지로 나를 일으키려는 두 녀석에게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형아니까.
부드럽게 미소 지어주고 다시 고개를 숙이자, 머리 위에서 토토코의 낭랑한 목소리가 내려왔다.
“마에다 국장님,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오소마츠 군을 작전에 넣어주세요. 저도 부탁드립니다.”
“…하아―…. 알겠다. 일단 이 녀석 일으켜서 치료 먼저 해.”
“네! 감사합니다!!”
토토코의 말에 고개를 들자, 중후한 남자의 눈과 마주쳤다.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는 남자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감, 감사합니…ㄷ.”
제대로 감사를 다 전하기도 전에 의식이 멀어졌다.
시끄럽게 귓가에 울리는 이치마츠와 토도마츠의 다급한 외침을 뒤로하고 무거운 눈꺼풀을 내렸다.
7.
응급 조치를 끝낸 오소마츠 형의 팔에 수혈 링거가 꽂혔다.
땀에 젖은 앞머리를 정리해주고 손을 거두었다.
색색-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든 오소마츠 형의 얼굴은 피를 많이 흘린 탓에 창백했다.
오소마츠 형을 보고 고개를 들자, 이치마츠 형과 눈이 마주쳤다.
이치마츠 형도 나와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각오는 이미 되어 있었다.
오소마츠 형은 좋아하지 않겠지만,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었다.
“진심이야?”
오소마츠 형의 병실을 나와 토토코에게 말하자, 토토코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이치마츠 형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랑 토도마츠는 ‘가이드’니까…. 그러니까, 오소마츠 형에게 배정해줘. 우리도 작전에 넣어줘.”
“부탁할게, 토토코.”
이치마츠 형의 말을 이어 간절히 바랐다.
토토코는 우리가 가이드라는 사실에 조금 놀랐는지, 눈을 감고 잠시 생각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 정적 속에 잠겼다. 천천히 눈을 뜬 토토코는 우리 둘을 보며 말했다.
“위험할 수도 있어. 오소마츠 군이 다쳤던 것처럼 크게 다칠 수도 있고. 여차하면 죽을 수도….”
“괜찮아.”
“상관없어!”
토토코의 말에 즉각 대답했다.
자신의 경고에도 뜻을 굽히지 않는 우리를 보며 푹- 한숨을 내쉰 토토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우리는 왜 카라마츠 형과 쥬시마츠 형, 쵸로마츠 형이 ‘팔콘’에 속해 있는지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한다.
나와 이치마츠 형이 아는 것은 어릴 적 세 사람이 어떤 이에게 납치되었고, 부모님은 살해되었다는 것뿐이다.
모든 진실은 오소마츠 형이 홀로 끌어안고 있었다.
모든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오소마츠 형은 우리가 ‘가이드’라는 것을 두려워했다.
항상 어디를 가든 우리의 곁에 있었다. 과보호라고 나는 불평했지만, 지금 상황에선 과보호가 아닐 거라는 생각까지 든다.
이유는 알지 못해도, 납치된 세 형들이 ‘팔콘’이라는 범죄 조직에 이용되고 있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세 사람을 되찾는 짐을 오소마츠 형에게만 지울 수는 없다.
그 세 사람은 내게도, 이치마츠 형에게도 소중한 형제이다.
어릴 적 함께 자라고, 함께 뛰놀았던 사랑스러운 형제들이다.
반드시, 오소마츠 형과 함께 그 세 사람을 되찾고 말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8.
부드럽게 병실의 미닫이 문을 열자, 마침 눈을 뜬 오소마츠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빙그레 미소 띤 오소마츠의 얼굴을 본 순간, 이치마츠와 토도마츠가 눈물을 흘리며 달려갔다.
오소마츠의 팔에 매달려, 다시는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말라고 흐느끼는 동생들의 모습에 오소마츠가 쓰게 웃었다.
고통으로 팔 하나 들어올리는 것도 힘겨웠지만 오소마츠는 두 팔을 들어 부드럽게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물, 콧물을 다 흘려가며 훌쩍이는 동생들의 얼굴에 “크힛-” 하고 웃음을 흘린 오소마츠 눈에 은색 팔찌가 들어왔다.
그 팔찌는 「관리국」에서 등록된 ‘가이드’들에게 지급하는 것이었다.
‘가이드 납치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GPS가 내장된 은색 팔찌는 오소마츠가 매고 있는 인식표처럼 이름과 등록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너네….”
토도마츠와 이치마츠의 팔에 감긴 은색 팔찌는 꼭 수갑처럼 보였다.
고개를 들어올린 오소마츠가 눈썹을 찌푸리고 둘을 빤히 응시했다.
무언 속에 담긴 추궁에 토도마츠가 고개를 숙였다.
“우리 「관리국」에 등록했어. ‘가이드’로.”
별 것 아니라는 투로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에게 말했다.
이치마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소마츠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갈라진 목소리가 울렸다.
“무슨 생각으로!? 위험하다고 했잖아! 나도 이렇게 다친 걸 봤으면서 왜 등록 한거야!”
“나도! 카라마츠 형을 되찾고 싶다고!!!”
“….”
높아진 오소마츠의 언성을 따라 토도마츠도 고개를 들고 버럭 외쳤다.
막내의 대답에 놀랐는지 오소마츠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다물었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토도마츠가 외쳤다.
“나도! 다시 되찾고 싶다고…. 카라마츠 형은 내 파트너야! 내 파트너를 되찾는데 오소마츠 형에게 모든 걸 맡기고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만 빨 수는 없잖아!!”
“….”
“나도, 쥬시마츠를 되찾고 싶어. 그리고, 오소마츠 형의 힘이 되고 싶어.”
“…이치마츠….”
토도마츠의 울분에 이어 이치마츠도 조용히 말했다.
오소마츠를 똑바로 마주보는 두 동생의 눈동자에 담긴 결의를 오소마츠가 읽지 못할 리 없었다.
이미 각오를 다진 동생들은 무슨 말을 해도 의지를 굽히지 않을 것이다.
자신만큼이나 고집이 쎈 두 동생을 보며 오소마츠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진짜, 바보야…. 너네.”
““…응.””
슬픔이 담긴 애매한 미소를 피운 오소마츠가 다시 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하단 얼굴을 하고서도 동생들은 절대 ‘가이드’로 등록한 것을 후회한단 말은 하지 않았다.
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뒤로 돌려, 둘의 얼굴을 가까이로 당겼다.
마주본 세 사람의 얼굴이 한 곳에 모였다.
서로의 얼굴이 시야 가득 찰 정도로 가까이에서 오소마츠가 온화하게 웃었다.
“함께, 싸우자. 꼭 녀석들을 되찾자.”
““응!!””
나긋한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두 동생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마에다 국장님의 허가 받았어. 오소마츠 군과 이치마츠 군, 토도마츠 군은 한 팀으로 배정되었고.”
“고마워, 토토코.”
오소마츠의 병실에 들어온 토토코가 관련 서류를 내밀었다.
아직 팔을 잘 움직일 수 없는 오소마츠를 대신해 이치마츠가 서명을 마쳤다.
서류를 돌려받고, 오소마츠의 침대 위에 옹기종기 앉아있는 세 명의 형제를 응시한 토토코가 싱긋 웃었다.
“이렇게나 편의를 봐줬으니까,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내라고?”
“하핫, 응, 물론이야.”
장난스러운 대화를 건네며 웃는 오소마츠는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세 동생을 돌려받을 것이라고.
동생들을 되찾기 위해, 눈앞에 있는 그 어떤 장애물이라도 쳐부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9.
관리국 보고서 #2
이름 : 마츠노 이치마츠
등록번호 : 6004
등급 : 가이드 A급
담당 센티넬 : 마츠노 오소마츠 (등록번호 : 6001)
* 특이사항 : 마츠노 오소마츠에 한해 '각인' 이상의 가이딩 효과를 보임.
: 이는 육쌍둥이라는 혈연적 특징 외에 깊은 정신적 유대로 인한 것으로 추정.
담당 감시관 : 요와이 토토코
이름 : 마츠노 토도마츠
등록번호 : 6006
등급 : 가이드 B급
담당 센티넬 : 마츠노 오소마츠 (등록번호 : 6001)
* 특이사항 : 마츠노 오소마츠에 한해 '각인' 이상의 가이딩 효과를 보임.
: 이는 육쌍둥이라는 혈연적 특징 외에 깊은 정신적 유대로 인한 것으로 추정.
담당 감시관 : 요와이 토토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