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카라] Happily Ever After -2-
* 2편 들고 왔습니다! 늦어버렸네요...ㅎㅎ;;
* 오소카라지만 이번 화에서 오소마츠 출연은 없습니다ㅎ
카라마츠가 아프지 않습니다.
* 기승전결에서 '기'부분에 해당하는 화라 조금 지루할 수 있습니다ㅠ
* 공미포 12,316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전쟁을 위해 왕자 오소마츠가 성을 떠난 후, 별궁에는 공주가 홀로 남게 되었다.
소수의 선별된 시녀와 시종만이 오가는 별궁에는 사실상 공주와 공주의 시종 외엔 그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았고, 탑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공주 카라마츠는 마음 편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때때로 카라마츠가 홀로 외로워하지 않을까,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한 제 2왕비 마츠요가 별궁에 들렀다.
차를 즐기는 푸른 왕국 출신답게 다양한 나라에서 수입된 고급 차를 가지고 온 마츠요는 공주 카라마츠와 함께 소소한 다도회를 열어 즐겼다.
아들을 키우며 겪었던 고충이나 붉은 왕국에 적응하면서 느꼈던 문화 차이 등 여러 이야기를 즐겁게 풀어나가는 마츠요를 보며 카라마츠는 잔잔한 미소와 함께 차를 입에 머금었다.
좁고 답답한 공간, 습기찬 벽, 제대로 빛이 들어오지 않은 어두운 방 안.
공주인 자신의 성별이 남자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탑에 갇혀 지낸 세월은 너무나 힘들었다.
불만이 절로 튀어나오는 탑 안 생활에도 카라마츠는 작디 작은 한숨 한 번 내지 않았다.
자신의 입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붉은 왕국와 푸른 왕국은 오랫동안 교류하였고, 동의 제국의 침략에 함께 싸우는 동맹을 맺었다.
자원이 많고 기계공업이 발달한 붉은 왕국과 농업과 상업 중심의 푸른 왕국은 서로의 이득을 위해서 서로가 필요했다.
하지만 아무리 동맹 국가 사이라해도 국력의 차이는 존재하는 법.
평지가 많아 농업이 발달하고 그를 바탕으로 여러 나라에 수출하는 상업이 발달한 푸른 왕국에게 대국인 붉은 왕국은 필수 불가결한 존재였다.
가장 많은 곡식을 수입하고 또 발달한 농기구를 수입할 수 있는 중요하고 중요한 거래 상대.
그것이 붉은 왕국이었고, 순수하게 국력을 따지더라고 푸른 왕국은 붉은 왕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
상하관계를 따지자면 붉은 왕국이 위, 푸른 왕국이 아래에 있었고, 그러한 입장 차이가 카라마츠를 인내하게 만들었다.
엘린이라는 왕자가, 카라마츠의 약혼자가 카라마츠를 단 한 번 보고 탑에 가두어놔도 카라마츠는 저항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감수한 탑 안의 생활에서 겨우 벗어나나 했더니, 새로 머물게 된 오소마츠의 별궁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쾌적했다.
카라마츠 자신이 때때로 놀랄 정도로.
낯설었던 별궁에서 지낸지 한 달.
별궁에 일하는 시녀 및 시종은 카라마츠의 눈에 띄지 않게 쥐가 곡식창고를 드나들듯 별궁을 왕래했다.
카라마츠가 넌지시 마츠요에게 물었을 때, 모두 오소마츠의 명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오소마츠 또한 자신의 성에 가족 외 타인을 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그렇게 중얼거리는 마츠요의 얼굴은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별궁에 오는 이는 마츠요뿐, 시녀나 시종들의 눈도 없는 이곳에서 카라마츠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했다.
토도마츠나 쥬시마츠는 보는 사람도 없으니 (남자 옷을 입고) 편하게 지내라며 재촉했지만, 카라마츠는 그 모든 제안에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이곳에 ‘공주’로서 와 있는 거니까.”
그렇게 말하는 카라마츠에게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도 더는 카라마츠의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았다.
전쟁 중이라는 것이 믿기 힘들 정도로 별궁에서 지극히 평화로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와중에, 다과회를 위해 별궁에 들린 마츠요가 새로운 소식을 전해왔다.
“...이치마츠, 왕자님 말인가요?”
“그래! 아, 정식 이름은 '올리버'야.”
후후후-, 하고 작은 미소를 흘린 마츠요가 섬세한 손길로 찻잔을 들어올렸다.
하얀 바탕에 금색 장미가 그려진 조그만 찻잔은 ‘딸깍’ 하는 소음을 흘리는 일 없이 마츠요의 손에 자리했다.
마츠요가 ‘이치마츠’라 부른 왕자는 오소마츠의 두번째 동생.
임시 휴전 당시 전장을 지키느라 레드 버로우에 오지 못한 동생이었다.
카라마츠는 아직 만나지 못한 오소마츠의 동생이 레드 버로우에 온다는 마츠요에 말에 저도 모르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달각-, 소리를 내며 카라마츠의 손을 떠난 찻잔이 컵반침에 떨어졌다.
향긋한 차를 만끽하고 슬쩍 시선을 올린 마츠요가 카라마츠를 보며 훗-, 하고 가늘게 뜬 눈으로 웃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굉장히 상냥한 아이야. 겉으로 드러내진 않아도 속도 깊고....”
마츠요의 말에 카라마츠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마츠요의 말이니 다정하다는 것은 거짓이 아닐테지만, 카라마츠에겐 첫만남이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약혼녀가, 푸른 왕국의 공주가 남자라는 건..., 좋아할 수 없겠지.’
쓴웃음을 속으로 삼키로 타는 갈증을 차로 달래는 카라마츠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츠요는 다과회 내내 미소 띤 얼굴을 지우지 않았다.
2.
“진짜냐....”
카라마츠를 마주하자마자 이치마츠의 입에서 나온 혼잣말에 카라마츠는 사형수의 앞에 선 것 처럼 등골이 서늘해졌다.
‘역시나 좋아하지 않는다아~!!’
걱정하지 말라며 웃던 마츠요의 얼굴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속을 읽을 수 없는 이치마츠의 눈길에 카라마츠는 입술이 말라가는 것을 느꼈다.
이치마츠가 카라마츠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은 극명했지만, 카라마츠와 함께 이치마츠를 맞이한 마츠요는 그녀 특유의 자애로운 미소를 흩뜨리지 않고 오랜만에 보는 아들과의 재회를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왕에게 전장의 상황을 보고하고 추가로 징집된 신병들을 이끌고 가야 한다는 이치마츠는 단 3일을 별궁에서 머문다고 했지만, 카라마츠는 그 3일이 지옥처럼 길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째서 좋지 않은 예감은 딱 드러맞는 것일까.
마츠요의 환대가 끝나고 카라마츠와 토도마츠, 쥬시마츠와 간단한 인사를 나눈 이치마츠는 그대로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저녁 식사 시간에 잠깐 얼굴을 내비친 이치마츠에게 카라마츠는 그가 자랑하는 환한 미소를 피우고 조심스럽게 이치마츠에게 말을 걸었다.
“식사 준비는 우리가 했다만, 특별히 꺼리는 음식은 없나...?”
“...없어.”
카라마츠의 질문에 무심히 대답하며 이치마츠는 얉은 접시에 담긴 수프를 들이켰다.
여섯이 앉으면 가득찰 정도의 작은 식탁에서 최대한 카라마츠와 멀리 떨어져 앉은 이치마츠의 대답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쉽게 놓쳐버릴 정도로 그 음량이 작았다.
카라마츠에겐 시선도 주지 않는 이치마츠의 태도에 토도마츠가 눈살을 찌푸렸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다음 질문 후보를 고르고 고른 카라마츠가 다시 이치마츠를 향해 목소리를 냈다.
“그럼 먹고 싶은 음식은..., 말만 해준다면 준비해서 내일 당장,”
“없어.”
“그, 런가.... 그, 그럼, 전장은 어떤가? 잘, 하고 있나? 오소마츠는,”
“밥, 먹고 싶은데.”
“아, 그..., 그렇군. 미안.”
슬쩍 고개를 들어 잔뜩 찡그린 눈매로 카라마츠를 응시하는 이치마츠의 대답에 카라마츠는 몸을 뒤로 빼고 어깨를 움츠렸다.
카라마츠가 입을 닫자, 쇳덩어리보다도 무거운 침묵이 어깨를 진득이 눌러내렸다.
넓은 식당엔 식기가 부딪며 내는 간헐적인 소음만이 울려퍼졌고, 답답하다는 듯이 작게 한숨을 내쉰 토도마츠가 평소보다 빠르게 식사를 마무리할 디저트를 가져올 때까지 카라마츠와 이치마츠 사이에 내려앉은 정적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소마츠의 방에 뚫린 창문을 통해 이치마츠가 본성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한 토도마츠가 커다란 한숨과 함께 몸을 돌렸다.
아침 단장을 마치고 장식 없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카라마츠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는 쥬시마츠를 보며 토도마츠가 입을 열었다.
“너무 어두워.”
“응? 무엇이?”
토도마츠가 툭 던지듯 내뱉은 말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토도마츠는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흔들며 말을 이었다.
“저 ‘이치마츠’라는 왕자 말이야. 소통 장애라도 걸린 건지.... 어제 저녁 식사 시간에 얼마나 답답했는데!”
볼을 살짝 부풀리고 툴툴대는 토도마츠의 투정에 카라마츠가 작게 웃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동생의 불평에 카라마츠는 부드럽게 웃으며 토도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싫다고는 하지 않았다.”
어제 보여준 이치마츠의 태도를 회상하며 카라마츠가 눈썹을 늘어뜨렸다.
좋아해줄 리 없다는 것은 각오하고 있던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 경멸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다.
이치마츠가 보여준 태도는 과연 호의적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최악의 수도 아니었다.
카라마츠에겐 최악을 피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 할만한 일, 카라마츠는 제 말에도 부풀린 볼을 터뜨리지 않는 두 살 아래 어린 동생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럼 오늘 간식은 토도마츠가 좋아하는 메뉴로 할까.”
“어?”
“과카몰리. 좋아하지?”
“응!”
마침 어제 마츠요가 가져다 준 크래커가 남아있었다.
좀 넉넉하게 만들어 오늘 있을 다과회에도 내놓자, 고개를 작게 끄덕인 카라마츠가 단숨에 얼굴을 활짝 피운 토도마츠를 보며 생긋- 웃고 쥬시마츠를 불렀다.
“쥬시마츠, 식료창고에 아보카도가 있는지 봐주고 오겠나?”
“아이아이!”
힘차게 대답하고 투다닥- 발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계단을 내려가는 쥬시마츠를 배웅한 카라마츠의 곁엔 어느새 다가온 토도마츠가 “샐러드도 만들어 줘!” 하고 조르기 시작했다.
마냥 어린 동생의 응석에 카라마츠의 입가에 온유한 미소가 깃들었다.
식료 창고에서 짙은 초록빛의 열매가 있는 것을 확인한 쥬시마츠는 카라마츠의 음식 앞에서 행복한 미소를 띄울 동생을 떠올리고 방그레 웃었다.
재료가 있다는 소식에 기뻐할 동생의 얼굴이 보고싶어 다시 후다닥 창고를 떠난 쥬시마츠의 귀에 얇고 작은 울음소리가 닿았다.
“으응~?!”
발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다보는 쥬시마츠의 귀에 다시 한번 그 작은 울음 소리가 걸렸을 때, 멈췄던 발이 망설이지 않고 별궁의 앞마당으로 향했다.
별궁 주변에 듬성듬성 심어진 커다란 나무들.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사방으로 뻗어나간 가지가 필요이상으로 나무를 커다랗게 만들었다.
나무 아래에 서서 고개를 들어올리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찬 푸른 나뭇잎 사이로 쥬시마츠를 불러들인 작은 울음이 새어나왔다.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하얀 줄기 사이를 찬찬히 살핀 쥬시마츠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짧은 탄성이 튀어 나왔다.
“아!”
“냐아-.”
가는 줄기 사이에 몸뚱이를 끼운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쥬시마츠를 보며 애처롭게 울었다.
줄기에 발톱이 끼였는지 우는 와중에도 고양이는 제 앞발을 들어올리려 애를 쓰고 있었다.
나무에 걸린 발을 들어 힘껏 흔드는 고양이는 가는 줄기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것이 무척 위태로워 보였다.
고양이의 움직임에 따라 잎이 부딪치는 소리가 서늘히 울려 퍼지고 가는 줄기도 함께 휘청거렸다.
떨어질지도 모른다, 생각한 순간 쥬시마츠의 몸이 머리보다 먼저 움직였다.
단단한 줄기를 붙잡고 양발다닥을 줄기에 빈틈없이 붙여 훌쩍 나무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눈에 담고 “괜찮아!” 하고 위로하며 마침내 고양이를 품에 안았을 때, 저 아래서 칼칼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거, 거기서 뭐하고 있어!? 위험하잖아!!”
야옹야옹 우는 고양이를 매만지며 달래주던 쥬시마츠가 시선을 아래로 내린 순간, 아찔한 높이에 현기증이 일었다.
슬쩍, 휘청거리는 중심을 다시 붙잡고 줄기에 몸을 기댄 쥬시마츠를 보며 이치마츠가 경악한 얼굴로 턱을 내렸다.
왕에게 보고를 마치고 친구가 걱정되어 돌아왔더니 나무 위에 친구와 메이드(남자)가 앉아있는 광경에 이치마츠는 금방이라도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이치마츠의 목소리가 반가운지 쥬시마츠 품에 얌전히 안겨있떤 고양이가 발버둥치며 이치마츠를 불렀다.
고양이의 몸짓 하나하나에, 그리고 그에 맞춰 흔들리는 쥬시마츠의 몸에 이치마츠의 비명이 뒤따랐다.
목이 꺾일 정도로 고개를 위로 치켜 들어야 끝을 볼 수 있는 나무는 7m가 넘게 높이 솟아 있었다.
“조, 조심해!! 거긴 왜 올라가서!!”
쥬시마츠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어쩔 줄 몰라 손을 뻗는 이치마츠의 모습에 “아핫-!” 하고 히쭉 웃은 쥬시마츠는 거세게 고개를 흔들어 현기증을 털어냈다.
고양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옷과 앞치마 사이 틈에 고양이를 넣은 쥬시마츠는 천천히, 작은 가지를 타고 높은 나무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하고 쥬시마츠를 따라 시선을 내리며 덜덜 떨던 이치마츠는 쥬시마츠의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뛰어나가 쥬시마츠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아!”
아직 땅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쥬시마츠는 이치마츠가 내밀어준 손을 기꺼이 잡고 씩씩하고 경쾌하게 팔짝 튀어올라 안정적으로 땅에 착지했다.
품에 안전히 넣어두었던 고양이를 꺼내 이치마츠에게 내밀자, 온몸을 감싸고 있던 긴장이 풀린 이치마츠가 흐물흐물하게 녹아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쥬시마츠를 잡아주었던 손이 땀으로 흥건히 젖을 정도로 이치마츠는 온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긴장하고 있었다.
털썩 주저앉은 이치마츠를 걱정하듯 고양이가 다가가 이치마츠의 손을 핥았다.
그에 응답해 이치마츠가 힘없이 손을 들어올려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을 때, 마당에서 들려오는 소동에 카라마츠와 토도마츠가 별궁 밖으로 뛰어 나왔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녹초가 된 이치마츠와 그 앞에 서 있는 쥬시마츠를 본 카라마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슨 일이 있었냐 묻자, 이치마츠에게 시선을 맞춘 쥬시마츠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휙휙 휘저었다.
“별 일 아니었슴닷!!”
쾌활한 쥬시마츠의 대답에 어이없는 한숨을 내쉰 것은 고양이를 쓰다듬던 이치마츠였다.
고양이를 안고 함께 별궁의 거실로 자리를 옮긴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말을 잃었다.
별궁 근처에 심어진 나무는 특히 높이 자라는 종류로 성 안에 있는 나무들 모두 10m 가까이 자란 나무들뿐이었다.
그 높은 나무에 쥬시마츠가 맨몸으로 올랐단 사실을 들은 카라마츠는 즉시 쥬시마츠에게 주의를 주었다.
“발톱이 걸렸던 건가...?”
“응, 그랬던 것 같아.”
저도 놀랐을 고양이를 소중히 무릎에 앉혀 쓰다듬어주는 이치마츠에게 카라마츠가 묻자, 이치마츠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던 이치마츠의 손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 고양이의 발톱을 확인했을 때, 카라마츠와 토도마츠 모두 그 날카롭고 긴 발톱에 놀라 눈을 깜빡였다.
“이러니까 걸릴 수 밖에....”
발톱을 보고 푹- 한숨을 내쉰 이치마츠를 본 카라마츠가 조용히 빙그레 웃고 방에 올라가 손톱 깎기와 파일(네일아트용 사포)를 가지고 내려왔다.
이치마츠에게 안겨있는 고양이가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다가가 세심하게 발톱을 잘라주고, 발톱이 걸리지 않게 파일로 다듬는 카라마츠를 이치마츠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사각사각-, 발톱을 가는 와중에도 고양이는 얌전히 카라마츠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다 끝났다!”
앞발, 뒷발 모두 발톱 손질을 마친 카라마츠가 “휴-.” 하고 숨을 내쉬며 이마를 적신 땀을 닦아냈을 때, 가만히 고양이를 쓰다듬던 이치마츠가 고개를 들어 카라마츠와 시선을 마주했다.
“...고마워.”
“벼, 별 말씀을....”
솔직한 감사 인사에 카라마츠가 놀라 말을 더듬었다.
이치마츠는 아주아주 옅은 미소를 살짝 걸고 고양이를 안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아직 어머니가 말해주지 않을 것 같은데....”
“어?”
“...장례식 끝나고 상복 입는 기간은 한달로 충분하니까....”
“아....”
“별로, 여기 드나드는 녀석은 우리 외에 없으니까 괜찮지만..., 이제 평복 입어도 돼.”
“아, 아아-. 알려줘서 고맙다.”
“...응.”
카라마츠를 스쳐 지나가려다 멈춘 이치마츠의 말에 카라마츠는 고개 숙여 자신이 입고 있는 검은 드레스를 응시했다.
전 약혼자의 장례식 이후로, 이 별궁에 옮겨서도 카라마츠는 줄곧 검은 드레스나 어두운 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함께 다과회를 즐기는 마츠요가 별말 없었기에 카라마츠도 쭉 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치마츠의 조언에 카라마츠는 살포시 미소를 피웠다.
감사 인사에 대답을 하는둥 마는둥, 도망치듯 방으로 돌아가는 이치마츠의 등을 보는 카라마츠의 가슴에 작은 따뜻함이 은근하게 퍼졌다.
3.
탁탁, 먼지 털이를 손에 들고 벽에 걸린 액자를 털던 토도마츠가 창문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토도마츠?”
“카라마츠 형, 저기-.”
청소를 멈춘 토도마츠를 부르자, 토도마츠가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손짓해 나를 불렀다.
밖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토도마츠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바라보았을 때, 이치마츠의 둥근 머리가 보였다.
오늘도 본성에 갔던 이치마츠가 돌아오는 길인 것 같았지만, 이치마츠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치마츠보다 더 작은 체구의 남자들이 둘. 이치마츠보다 화려한 옷차림을 한 것이 귀족의 자제 같았다.
“저거, 괴롭히는 거지?”
토도마츠의 말에 “에?” 하고 반문하며 이치마츠를 자세히 살폈다.
두 어린 남자들은 이치마츠에게 점점 가까이 걸어가는데 반해, 이치마츠는 몸을 움츠리고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며 뒷걸음질 쳐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치마츠와 이곳의 거리가 너무 멀어 무슨 대화를 하는지 들리지 않았지만, 세 명의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괴롭히는 거 같은데-.”
확신을 담아 중얼거린 토도마츠가 “어휴-.” 하고 숨을 내쉬곤 바닥에 내려놓았던 쓰레받기를 들고 자리를 옮겼다.
조금 전까지 이치마츠를 보고 있떤 창문보다 더 이치마츠와 가까운 곳에 있는 창문으로 옮긴 토도마츠가 창문을 활짝 열고는 쓰레받기에 있는 먼지를 힘껏 밖으로 던졌다.
“토, 토도마츠으?!”
회색 먼지가 눈처럼 창문가에서 멀리 퍼졌다.
작은 먼지는 그대로 바람에 실려 훌렁 날아가고 남은 먼지가 잿가루처럼 아래로 유유히 추락했다.
창가에서 조금 떨어진 이치마츠와 두 명의 어린 남성에게 닿을 정도로.
“....”
“갔다 올게. 카라마츠 형.”
“어, 아, 으응....”
말을 잃은 내게 토도마츠는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대체 어딜 가는지 물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청히 대답하자, 곧 이치마츠에게 걸어가는 토도마츠가 창문 너머로 보였다.
토도마츠가 열어둔 창문으로 아주 희미하지만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죄송합니다! 쓰레받기를 놓치는 바람에 그만!! 죄송합니다아!”
놓쳤다는 쓰레받기는 태연히 네 손에 있다만, 토도마츠....
태연하게 연기하며 허리를 깊이 숙이는 토도마츠에게 두 어린 남성은 분노해 호통쳤다.
그칠 줄 모르는 남자들의 역정에 토도마츠는 깊이 숙인 허리를 피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에 사죄로 일관하는 토도마츠에게 남자들이 그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토도마츠는 푸른 왕국의 공주인 나의 시종이고 동시에 오소마츠의 별궁에 속해있다.
남자들이 직접적으로 토도마츠에게 벌을 줄 수는 없다.
아마 토도마츠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이런 짓을 한 것이겠지만....
두 남자는 한참 동안 화를 내고 먼지 투성이의 옷을 대충 털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제서야 허리를 핀 토도마츠는 통통, 제 허리를 가볍게 두드리고 이치마츠의 손을 잡아 끌고 별궁으로 들어왔다.
“이치마츠, 괜찮나? 바로 목욕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었다.”
토도마츠가 이치마츠를 끌고 오는 것을 보자마자 쥬시마츠를 불러 목욕 준비를 부탁했다.
토도마츠는 이치마츠의 어깨와 등에 붙은 먼지를 툭툭 대충 털어주고는 제 할 일을 마쳤다는 듯이 휙- 하니 청소하던 구역으로 돌아갔다.
얼떨떨한 표정의 이치마츠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자, 이치마츠는 “아, 응.... 목욕, 할게.” 하고 대답하고는 욕실을 향해 하느작하느작 걸어갔다.
저녁 식사 시간, 목욕을 마친 이치마츠는 다행히 아무일 없다는 듯이 행동했다.
식사 전 토도마츠가 이치마츠에게 먼지를 뿌린 것을 사과하자 이치마츠는 “괜찮아.” 하고 대답하곤 토도마츠를 빤히 보며 “...고마워.” 하고 작게 인사를 건넸다.
서둘러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한 이치마츠를 보는 토도마츠의 얼굴에 씩- 자랑스러운 미소가 걸린 것을 이치마츠는 보지 못했다.
식사가 끝나고 거실에 모여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고 있을 때, 고양이를 안아 들고 매만지던 이치마츠가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
첫만남 이후 처음으로 이치마츠가 먼저 나를 불러주어 적잖은 감동이 느껴져 서둘려 이치마츠의 부름에 답했다.
“뭔가?”
“나, 내일 나가니까....”
“아, 그렇군....”
“응....”
“부디, 조심해라.”
“응.”
이치마츠는, 마츠요님의 말대로 상냥하고 속이 깊었다.
이치마츠처럼 다정한 사람도 피가 튀기는 전장에 나가야한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진심을 다해 이치마츠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었다.
휴식 시간이 끝나고 취침 전, 이치마츠가 내일 출발 준비를 마치자마자 하늘이 커다란 노성을 내지렀다.
하늘이 깨져 무너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커다란 소리에 쥬시마츠도 움찔 놀라며 눈을 굴렸다.
곧 엄청난 천둥 소리와 함께 폭우가 쏟아졌다. 굵은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고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에 이치마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오소마츠 형 하고 쵸로마츠 형, 괜찮으려나....”
쏟아지는 빗줄기에 전장에 있는 형제들을 걱정하며 중얼거리는 이치마츠의 목소리가 실렸다.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에 놀란 이치마츠가 곧바로 입을 꽉 틀어막았지만, 이미 토도마츠와 쥬시마츠의 귀에 이치마츠의 목소리가 닿은 뒤였다.
“그거! 그거 달면 됨닷!!”
“쥬시마츠 형, ‘그거’가 아니라 ‘테루테루보즈’-!”
타닷-, 뛰어 흰 천을 휘저으며 외친 쥬시마츠의 말을 정정한 토도마츠가 쥬시마츠가 건넨 천을 능숙하게 매만져 하얀 천 인형 하나를 만들어냈다.
“뭐야? ...그거.”
“‘테루테루보즈’. 날이 맑기를 기원할 때 창문에 매다는 인형이다. 우리 나라의 풍습이다.”
“헤-.”
토도마츠가 만든 테루테루보즈를 창가에 매다는 쥬시마츠를 응시하며 이치마츠가 건조한 감탄사를 냈다.
이치마츠에게는 테루테루보즈가 신기한 것 같아 “이치마츠의 침실에도 매달아 놓을까?” 하고 권하자, 바로 “아니, 괜찮아.”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침실 가득 울려퍼지는 울음 소리와 번쩍이는 빛에 눈을 떴다.
부드러운 비단 이불에서 몸을 일으켜 침대 옆 작은 탁상에 놓인 등에 불을 붙였다.
아직 한밤 중. 모두 잠든 궁 안은 어둠만큼이나 고요했다.
따끈하게 데워진 이불에서 몸을 빼자 섬뜻한 밤공기가 피부를 매만졌다.
온기를 빼앗기는 감각에 몸을 부르르 떨고 허리를 타고 올라오는 요의에 등을 들고 실내용 슬리퍼에 발을 끼웠다.
슬리퍼를 끌고 침실을 나와 복도에 섰을 때, 어두운 복도에 낮고 작은 음산한 울음 소리가 깔렸다.
나 이외에 소리를 낼 만한 사람은 없는데도 복도에 넓게 퍼지는 소리에 숨을 삼키고 몸을 움츠렸다.
무섭다.
아니, 무서운 건 아니지만 화장실은 가야하니까....
침을 꿀꺽 삼키고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복도를 걸었다.
낮보다 길게 느껴지는 복도를 올라 목적지가 코앞에 있을 때, 등 뒤에서 “흐으-.” 하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히익...!!”
꽉 다문 이 사이로 새어나온 비명을 떨리는 숨과 함께 삼키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왔던 길을 되집어 돌아가자 복도를 걸으며 지나친 방문 너머에서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분명, 이 방은 이치마츠의 침실....
어디가 아픈 것인가!?
불현듯 몰려오는 걱정에 노크를 했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답도 못할 정도로 아픈건가!?
걱정은 불안이 되고 다른 이를 깨울지도 모르는데도 문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쾅, 쾅, 복도에 크게 울리는 노크 소리에도 이치마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등불을 들고 있는 손에 힘을 주고, 깊은 숨을 내쉬며 문고리로 손을 옮겼다.
달그락-, 하고 가볍게 열린 문은 다행히 잠겨있지 않았다.
“...이치, 마츠...?”
“흣,”
어둠 속에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번쩍이는 빛.
그 빛에 비친 실루엣은 침대에 누워있었다.
망설이면서도 걸음을 옮겨 이치마츠의 침대 앞으로 걸어가자, 침대에 둥글게 몸을 말고 잠든 이치마츠가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치마츠.” 하고 작게 불러도 깊이 잠든 이치마츠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눈가에 맺힌 눈물은 멈추지 않고 흘러 베개를 차갑게 적시고 있었다.
“이치마츠, 이치마츠.”
“으, 으-...?”
가볍게 어깨를 흔들며 부르자, 겨우 눈을 뜬 이치마츠가 눈을 깜빡였다.
“괜찮은가? 자면서 울고 있었다.”
젖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자, 이치마츠가 “아....” 하고 한탄하며 작게 웅크리고 있던 몸을 피고 침대에 똑바로 누웠다.
“...놔둬. 자주 있는 일이니까.”
여전히 거세게 내리고 있는 창밖의 빗발을 응시하며 작게 말하는 이치마츠를 이대로 놔두고 나갈 수는 없었다.
근처에 있던 의자를 끌어 침대 옆에 놓고 앉자 이치마츠가 눈썹을 찌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뭐, 해?”
“이치마츠가 잠들 때까지 있어 주겠다. 아, 자장가 불러줄까?”
“...하? 아니, 필요 없고.”
“그럼 옆에 있겠다.”
“아니, 필요 없대도.”
“이치마츠가 잠들 때까지!”
“말 좀 들어, 망할 고릴라 공주.”
“망!?”
이치마츠는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 끝까지 덮고는 말이 없었다.
하늘이 으르렁대는 소리는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3초. 이치마츠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변한 것을 확인하고 침실을 나왔다.
테루테루보즈 덕분인지, 날이 밝자 폭우가 깔끔하게 멈췄다.
출발 준비를 하고 마츠요 님께 인사를 마친 이치마츠는 나와 토도마츠, 쥬시마츠에게 시선을 주고 작게 “그럼, 다녀올게.” 하고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새초롬히 다녀오라 인사하는 토도마츠도, 팔이 떨어지라 손을 흔드는 쥬시마츠도 이치마츠의 인사에 답하며 이치마츠를 배웅했다.
4.
창문을 때리는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거실에 놓인 벽난로는 밤낮 가리지 않고 불을 피워 온기를 퍼뜨렸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온의 하락에 토도마츠가 “흐으-.” 신음하며 팔을 감쌌다.
카라마츠와 마츠요가 여는 다과회도 별궁 마당에서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카라마츠가 마츠요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는 바삐 움직여 방 청소를 마무리하고 저녁 식사 준비를 했다.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야만 서늘해진 공기에 온기를 뺏기지 않을 수 있었다.
열린 거실문 너머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토도마츠와 쥬시마츠의 모습에 신경을 뺏긴 카라마츠의 손에 들린 찻잔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소중한 온기를 멀리 날리고 있었다.
찻잔을 손에 쥐고 시선은 거실문 너머로 고정한 카라마츠를 본 마츠요가 “훗.” 하고 다정하게 웃었다.
“이제 겨울이 코앞에 왔구나.”
“아, 아아-. 네. 그렇네요.”
“다과회가 끝나면 깜짝 선물로 주려고 했는데....”
“네?”
“짠-!”
찻잔을 내려놓고 활짝 웃는 마츠요는 오소마츠의 장난스러운 미소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몸을 숙여 발치에 놓아둔 상자를 집어드는 마츠요를 따라 시선을 아래에서 위로 옮긴 카라마츠가 마츠요가 들어올린 드레스에 눈을 깜빡였다.
“재봉은 전문가에게 맞겼지만, 디자인은 내가 마음대로 봐꿔봤어. 토도마츠하고 쥬시마츠 것도.”
검은 기모 재질의 천이 목을 감싸는 하이넥과 긴 세트 인 슬리브, 허리에 하늘색 리본을 가지런하게 두른 푸른 드레스가 마츠요의 손에 걸린채 하늘하늘 흔들렸다.
가벼워 보이면서도 따뜻할 것 같은 드레스에 놀란 카라마츠가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마츠요의 추가 설명이 이어졌다.
“이 드레스는 이 숄과 같이 써도 좋아!”
카라마츠에게 드레스를 안겨주고 꺼낸 군청색의 숄은 끝에 부드러워 보이는 털장식이 달려 있었다.
넉넉한 크기는 숄로도, 케이브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숄까지 카라마츠에게 안겨준 마츠요가 이어서 쥬시마츠에게 줄 겨울용 메이드복과 토도마츠에게 줄 겨울용 시종옷을 꺼냈다.
“동복으로 쓸 옷이 없을 것 같아서. 우리 나라 겨울은 유난히 추우니까....”
카라마츠의 드레스와 어울러 군청색으로 디자인된 시종복과 메이드복까지 카라마츠의 품에 안긴 마츠요가 잠시 말을 멈추고 가만히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너무 했으려, 나...?”
“아, 아니요! 감사합니다.”
혼자 들떠 카라마츠에게 불필요한 선물을 준 것이 아닐까, 걱정하는 마츠요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을 눈치챈 카라마츠가 고개를 휘저었다.
품에 안긴 드레스와 옷 모두 너무나 가볍고, 따뜻해보였다.
탑에서 지내는 시절엔 추위를 이길 수 있는 적당한 옷이 없어 하루 종일 이불을 돌돌 두르고 다녔던 것을 떠올린 카라마츠가 살며시 옷을 껴안고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지었다.
“감사합니다....”
“실은, 하나 더 있어.”
후후후, 하고 묘한 웃음을 흘린 마츠요가 마지막으로 상자에서 옷 한 벌을 꺼냈다.
검은색 바지와 검은 조끼에 짙은 파랑의 재킷이 딸린 옷은, 남성용 슈트였다.
“엣. 그건....”
“오소마츠가 준비해주라고 해서. 적어도 별궁에 있을 동안엔 편히 지내라는 의미로.”
남성의 슈트까지 카라마츠에게 안긴 마츠요는 복도에서 두 사람을 관찰하고 있던 토도마츠와 쥬시마츠에게 손짓했다.
쥬시마츠에게 메이드복을 토도마츠에게 시종 정장을 보여준 마츠요에게 둘은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보냈고, 인사를 받는 마츠요의 입가엔 기쁜 미소가 넘실댔다.
“후후후, 정말-. 아들이 늘어난 것 같아.”
옷을 이리저리 살피며 몸에 대보는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마츠요가 슬쩍 흘린 말에 카라마츠는 드레스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입술을 꾹 다물고 쓴웃음을 숨긴 카라마츠는 울컥 가슴에 퍼지는 아픔에 눈을 감고 더운 숨을 내쉬었다.
다과회가 끝나고 겨울옷을 모두 전해준 마츠요는 본성으로 돌아갔다.
별궁 앞까지 마츠요의 배웅을 나갔던 카라마츠가 거실로 돌아와 아직 치우지 못한 찻잔을 응시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푹신한 소파에 걸친 겨울옷은 옷감부터 디자인까지, 하나하나 마츠요의 정성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는 것이 괴로울 정도로 잘 알 수 있었다.
슥- 드레스에 잡힌 주름을 따라 손가락을 내리면 보들보들한 천이 따뜻하게 손가락을 감쌌다.
“...정말, 상냥한 사람들이다.”
등받이에 올려져 있던 드레스를 들어올리고 소파에 앉아 소중하게 드레스를 무릎에 올린 카라마츠가 중얼거렸다.
고개 숙여 그늘진 얼굴은 어떻게 보면 슬퍼보였고, 또 어떻게 보면 기뻐보였다.
묵묵히 드레스를 쓸어올리는 카라마츠를 쥬시마츠와 토도마츠가 가만히 지켜보았다.
카라마츠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둘은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가지고 있는 마음 속 짐도 카라마츠와 다르지 않았다.
후-, 하고 깊은숨을 내쉰 카라마츠에게 토도마츠가 주머니 깊숙이 넣어놓았던 편지를 건넸다.
발신인의 이름이 없는 하얀 봉투에 카라마츠는 마른침을 삼키고 봉투를 뜯었다.
하얀 백지에 쓰여진 글귀는 단 한 마디, “지금 이대로만 할 것”. 편지를 접어 구기고 벽난로에 훌쩍 던진 카라마츠가 다시 커다란 한숨과 함께 소파에 늘어져 팔로 눈을 가렸다.
울 것 같은 기분을 입술을 물어 억누르고 똑바로 자세를 고쳐 앉은 카라마츠가 토도마츠를 응시했다.
말없는 눈빛에 담긴 뜻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토도마츠가 고개를 끄덕이고 재킷 안주머니에 들어있던 작은 수첩을 꺼내 펼쳤다.
“이 나라의 제 1왕비는 그레이스 디 쥬드. 이 나라 귀족들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쥬드 공작의 영애야. 그 아래 전사했던 엘린 왕자, 오닐 왕자, 제임스 왕자가 있어. 제 2왕비는 마츠요 님. 푸른 왕국 출신으로 정략 결혼을 통해 붉은 왕국에 왔어. 아들은 에드윈, 알렉스, 올리버 왕자로 세쌍둥이야. 대외적인 행사는 모두 제 1왕비인 그레이스가 담당하고 있고.”
“...그래. 전쟁 소식은?”
“당분간 전쟁이 끝나진 않을 것 같다는 게 중론이야. 계속 신병 모집하고 있고.... 하지만 귀족들 사이에서 슬슬 징집을 피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엘린 왕자 전사를 계기로 귀족들은 전쟁을 이어가자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알겠다. 미안, 토도마츠. 내가 움직일 수 없는 탓에 네게 이런 일을 맡기게 되어서.”
“괜찮아. 카라마츠 형이 시녀들 비위 맞춰주는 일을 할 수 있을 리 없고. 이 정도 정보는 조금만 돌아다니면 얻을 수 있으니까.”
“...그래. 정말 고맙다.”
“응.”
싱긋-, 하고 토도마츠를 향한 완온한 미소에 지친 기색이 얕게 깔렸다.
토도마츠의 보고에 뻐근한 눈을 눈꺼풀 아래로 감춘 카라마츠는 눈동자 뒤쪽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저 아래 바닥에서 부터 스멀스멀 올라온 열은 머리끝까지 올라와 지끈거리는 두통을 선사했다.
“빨리, 이 모든 게 끝나면 좋겠네....”
그렇게 중얼거리는 카라마츠의 말에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눈썹을 늘어뜨리고 눈을 낮게 깔았다.
5.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이어졌다.
카라마츠가 별궁으로 거처를 옮기고 한달, 그리고 또 한달....
가을의 문턱을 밟고 별궁에 들어섰는데,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 곧 추운 겨울이 코앞에서 서릿발을 만들어냈다.
나무를 떠난 낙엽은 매일 수북히 별궁 앞에 쌓였고, 앙상한 가지가 남아 하얀 하늘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쓱, 쓱- 경쾌하게 리듬을 타며 좌우로 크게 빗자루를 쓸어 낙엽을 한 곳으로 모으는 쥬시마츠의 콧잔등에 하얀 눈송이가 떨어졌을 때, 붉은 왕국의 악명 높은 겨울이 왔다.
그리고 이어 전장에서 잃었던 전선을 다시 회복했다는 승전보가 날아왔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동의 제국에 사신을 보냈다.
춥고 혹독한 긴 겨울, 전장에 일시적 평화를 가져올 ‘겨울 휴전’이 성립되었다.
* 여기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