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에 했던 설문조사에서 두번째로 요청이 많았던 단편입니다!
* 단편 「너를 지킨다」 후편입니다.
* 캐붕 있습니다. 카라마츠가 아픈 발언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벤츠남입니다ㅎㅎ
* 본편보다 더 길어졌다...?
* 주의) 폭력적인 표현이나 비속어가 나옵니다.
* 공미포 22,081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뭔가 말이야~”
책상에 턱을 붙이고 토도마츠가 고개를 흔들었다.
버릇 나쁜 모습은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는 쵸로마츠가 “얀마.” 하고 가볍게 토도마츠를 꾸짖었다.
파일에서 시선을 올려 토도마츠를 바라보는 쵸로마츠를 맑은 눈으로 올려다보던 토도마츠가 살짝 눈을 내리깔고 작게 말했다.
“용케 견뎠네. 저 ‘오소마츠’ 라는 사람은.”
“…그러네.”
오소마츠와 토고에 관련된 사건을 정리한 파일을 덮으며 쵸로마츠가 맞장구쳤다.
책상에서 턱을 떼고 허리를 곧게 세운 토도마츠가 자신이 가져온 파일들을 툭툭 두드렸다.
어림짐작으로도 30장이 넘는 서류 안엔 경찰 마크가 찍힌 사건 보고서도 섞여 있었다.
“이 서류들을 정리해보자면 말이야~”
애써 쵸로마츠가 정리한 서류를 뒤적거린 토도마츠가 서류 한 장 한 장을 쵸로마츠의 눈 앞에 내밀었다.
“어릴 때는 친어머니에 의해 육아 방치에 재혼한 양부의 가정폭력으로도 모자라서-, 친모가 아이를 버리고 야반도주. 어쩌다 빈집에 침입한 강도 ‘토고’에게 발견되어 그대로 납치되고…. 그 후로 토고에게 실컷 이용 당하면서….”
토도마츠는 자신이 말하는 사건에 관련된 서류를 하나씩 책상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용케 제정신으로 있나 싶어…”
절로 나오는 한숨과 함께 안타까워하는 얼굴을 한 토도마츠가 서류를 쭉 눈으로 훑었다.
쵸로마츠는 책상에 널려진 서류를 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계속 닫아두고 있던 파일 하나를 펼쳤다.
“거기서 끝이 아니야.”
“에?! 더 있어?”
쵸로마츠의 한숨 섞인 말에 놀란 토도마츠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쵸로마츠가 침착한 어조로 파일에 적힌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애를 아주 제대로 이용해 먹었더라고. 어린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 사람들의 의심이 옅어지니까 사기를 칠 때마다 데리고 다니고, 아직 뒷세계에 풀리지 않은 마약을 아이에게 시험해 보고 돈을 받고, 게다가 가끔은 성접대까지 하게 만들었네. 게다가 발견 했을 때의 그 쇠사슬하며, 발목에 일부러 상처를 내서 제대로 못 걷게 만들었어. 도망 못 치도록….”
쵸로마츠가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토도마츠의 얼굴이 굳어갔다.
쵸로마츠의 말이 끝난 후에는 토도마츠가 머리를 감싸 안으며 외쳤다.
“뭐야!? 그게!? 어떻게 그런 인생을 살 수가 있어!? 가능하기나 해!?”
어느새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토도마츠의 외침에 쵸로마츠가 쓴웃음을 흘렸다.
“그러게. 가능한가 보네.”
토도마츠가 가져온 경찰 쪽 파일과 쵸로마츠의 정보원이 조사한 파일의 내용에 쵸로마츠는 이로 말할 수 없는 마음의 무게를 느꼈다.
이런 삶이 존재해서는 안 되었다.
토도마츠의 눈가를 살며시 닦아주는 쵸로마츠도 가슴을 짓누르는 죄책감과 함께 오소마츠를 향한 깊은 연민을 느꼈다.
작은 아이가 짊어지고 있었던 묵직한 진실과 속사정을 전부 알고 나서야, 오소마츠를 애지중지하며 손대면 날라갈까 만지면 깨질까 안절부절 못하는 카라마츠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토도마츠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자신이 느끼는 꺼림칙한 죄악감에 얼굴을 찌푸렸다.
쵸로마츠도 표정에 드러내지는 않아도 토도마츠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무겁게 내려앉은 어색한 침묵을 참지 못한 토도마츠가 슬며시 쵸로마츠에게 물었다.
“그런데 쵸로마츠 형.”
“아?”
“이거, 카라마츠 형한테 보고 할 꺼야?”
불안한 얼굴로 쵸로마츠를 바라보는 토도마츠를 향해 쵸로마츠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할 리가 있냐? 이거 보고했다간 지금 감옥에 들어가 있는 토고를 죽이려 들걸….”
쵸로마츠의 말에 토도마츠가 강하게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눈빛을 교환한 토도마츠와 쵸로마츠는 책상에 널린 서류를 정리하며 동시에 외쳤다.
““이건 평생 봉인.””
2.
고요한 방 안을 울리는 규칙적인 숨소리.
색- 색-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있는 오소마츠를 지그시 바라본 카라마츠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눈을 가리고 있는 긴 앞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올리자 방을 비추는 달빛에 뽀얀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카라마츠보다 훨씬 작은 몸집, 햇빛 한 번 쬔 적 없는 하얀 피부, 가는 팔과 다리을 뒤덮은 울긋불긋한 멍을 보고 있자면 가슴이 꽉 조여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괴롭게 눈썹을 찌푸린 카라마츠가 손을 돌려 오소마츠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단 전체적으로 영양실조가 제일 심각하네요.”
낮에 다녀간 가문의 주치의가 무심하게 내뱉은 말에, 카라마츠는 스스로를 강하게 자책하지 않고는 도저히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었다.
잠든 오소마츠를 찬찬히 살핀 주치의는 바로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며 몇 가지 약을 남기고 돌아갔다.
환자의 안정이 최우선이라며 주의사항을 늘어놓는 주치의의 냉정한 눈이, 꼭 왜 이렇게 되도록 놔뒀냐 책망하는 것 같이 느껴져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왜 더 빨리 구하지 않았을까….
카라마츠는 참을 수 없는 죄책감에 입술을 씹었다.
자신이 좀 더 빨리 오소마츠를 구해주었다면, 오소마츠를 잊지 않았다면, 이런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차마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힘겨운 세월을 견뎌왔을 오소마츠를 생각하면 카라마츠의 가슴이 터질 것 같이 아프고 갈기갈기 찢겨지는 것 같았다.
“우, 응―?”
파르르 떨린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을 슥- 비빈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려 침대에 걸터앉은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카라마츠?”
“…응, 오소마츠.”
갈라진 목소리로 애처롭게 자신을 부르는 오소마츠를 보며 가슴을 저미는 고통에 카라마츠가 숨을 삼켰다.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하자 오소마츠가 고개를 살며시 기울였다.
“나…, 또 꿈 꾸고 있는 건가?”
팔로 몸을 지탱하고 힘겹게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가만히 살폈다.
“정말로, 카라마츠…, 야?”
“…응, 정말로 나야. 오소마츠.”
조심스럽게 묻는 오소마츠의 눈에 작은 빛이 서렸다.
푸른 달빛에 비친 오소마츠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커다란 자신의 손을 들어 상냥하게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검은 머리칼을 손가락에 감고 천천히,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내려 오소마츠의 뺨에 손을 올렸다.
혹여 깨지기라도 할까 신중하게 볼을 쓰다듬는 카라마츠의 손길에 오소마츠가 눈을 깜빡였다.
“…꿈이, 아니야?”
“그래.”
“정말로, 카라마츠야?”
“그래.”
“정말로? 꿈이 아니고? 정말로, 정말로 카라마츠?”
“…그래. 오소마츠.”
오소마츠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카라마츠가 담겼다.
제 목소리가 마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부름에 답했다.
망설이며 뻗은 오소마츠의 손을 맞잡은 순간, 오소마츠가 몸을 날렸다.
넓은 카라마츠의 품에 제 몸을 내던진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목에 팔을 감고 있는 힘껏 껴안았다.
“카라마츠, 카라마츠, 카라마츠!!”
울음 섞인 목소리에 카라마츠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를 악물고 차오르는 눈물을 억누른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몸을 꽉 껴안았다.
파들파들 떨리는 애잔한 몸을 절대 놓지 않겠다 다짐하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귓가에 속삭였다.
“오소마츠, 미안. 미안하다. 좀 더, 일찍 너를 기억해냈다면…!!”
“으으응, 사과 안 해도 괜찮아! 카라마츠, 카라마츠!! 흐윽-, 보고 싶었어! 카라마츠우~!!”
“오소마츠!!”
애끓는 마음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팔 안에 가둔 작은 몸이 서서히 떨림을 멈추고 살며시 떨어졌다.
달빛에 반짝이는 젖은 눈망울이 카라마츠를 보며 부드럽게 휘었다.
“우헤헤-, 진짜 카라마츠다아~”
“오소마츠, 이제 그 자식은 없다. 더는 너를 해치지 못해. 너는, 자유다.”
부드럽게 오소마츠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카라마츠가 단언했다.
동그랗게 뜬 눈이 카라마츠의 외침에 뜨거운 눈물 속에 잠겼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옷자락을 쥐고 잔잔히 웃었다.
“응, 고마워. 카라마츠. 고마워….”
“오소마츠, 그러니 내 곁에 있어.”
자유를 주고 다시 빼앗는 자신에게 대체 무슨 염치가 있을까.
카라마츠는 스스로를 최악이라고 평하며 오소마츠의 손을 마주 잡았다.
떨어진 몸을 다시 품에 넣고 강하게 끌어안았다.
잔혹한 덫에 걸려있던 작은 새를 다시 자신의 손으로 좁은 새장 속에 집어 넣고 있다는 자각은 있었다.
오소마츠에겐 넓은 저 푸른 하늘이 어울린다는 것도 카라마츠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카라마츠는 이 작은 새를, 겨우 손에 넣은 파랑새를 날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죄책감과 죄악감에 짓눌려 턱턱 막히는 호흡을 간신히 이어가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간절히 불렀다.
“오소마츠, 내 옆에 있어줘….”
“…그, 래도 돼?”
예상치 못한 질문에 카라마츠가 놀라며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커다란 눈물이 맺힌 맑은 눈동자가 카라마츠를 마주보았다.
카라마츠는 당연하단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오소마츠를 놓아준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오소마츠.”
차가운 밤공기를 울리는 낮은 목소리에 담긴 진심이 오소마츠에게 살포시 닿았다.
가슴을 따뜻하게 달구는 한 마디에 오소마츠가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입술을 꾹 다물고 흐느낌을 삼키며 커다란 눈물만 뚝뚝 흘리는 오소마츠를 본 카라마츠는 다시 팔을 뻗었다.
오소마츠를 부둥켜안은 카라마츠가 과거를 떠올리며 말했다.
“오소마츠, 마음껏 울어라. ‘울보’라고 놀리지 않을 테니.”
“쿠, 히힛…. 히, 으읏,”
어린 시절 당당히 외쳤던 말을 되풀이하는 카라마츠의 품에서 오소마츠가 울음 섞인 웃음을 흘렸다.
축축이 젖어 드는 어깨의 감촉과 함께 오소마츠가 작게 속삭였다.
“지금은, 이거로 충분해.”
오소마츠는 흐느끼는 소리 없이 카라마츠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마음껏 울어도 괜찮은데도,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데도 울부짖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애처로운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가 눈물지었다.
― 왜 더 빨리 구하지 않았을까.
그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 작은 온기가 겪어야 했던 고통스러운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시켜줄 수 있었을 텐데.
괴로운 기억을 없앨 수 있었을 텐데….
끝이 없는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 기분에 한없이 슬퍼져 절로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지금 자신에게 오소마츠를 지킬 자격이나 있을까 자조하며 숨을 들이마신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가 시선을 맞췄다.
“왜 네가 울어~”
상냥하게 웃으며 작은 손을 들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는 오소마츠 역시 촉촉하게 젖은 눈을 하고 있었다.
눈물을 닦아준 손은 얼굴을 타고 올라가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카라마츠는 여전히 울보네~”
배시시 웃으며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가슴이 아파서 카라마츠는 다시 오소마츠를 힘껏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
겨우 되찾은, 이 사랑스러운 존재를 두 번 다시 잃지 않겠다 다짐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오소마츠를 지킬 것이라 몇 번이고 맹세했다.
3.
“아, 카라마츠.”
방문을 열자 오소마츠가 방긋 웃으며 카라마츠를 맞이했다.
침대에 앉아 있던 오소마츠가 발을 바닥에 내리고 걸어오려 하자 카라마츠가 재빨리 오소마츠에게 달려가 오소마츠를 들어올려 다시 침대에 눕혔다.
“우왓!”
“오소마츠, 아직 다 낫지 않았잖아. 굳이 걸으려 하지 않아도 괜찮다.”
훌쩍 공중에 뜬 부유감에 놀란 오소마츠에게 카라마츠가 다정하게 속삭였다.
오소마츠가 도망치지 못하게 발목을 죄고 있던 쇠사슬은 오소마츠에게 작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마찰로 벗겨진 살갗에 쇳독이 올라 오소마츠를 발견했을 때는 발목이 곪아가고 있었다.
걷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정도로 심하게 다친 발목은 다행히 주치의의 치료로 많이 나아가고 있었지만, 카라마츠는 아직 오소마츠를 한 걸음도 걷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오소마츠는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리고 “이제 괜찮은데….” 하고 불평했다.
귀여운 투덜거림에 가볍게 웃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옆에 앉았다.
팔과 다리를 물들였던 반점은 모두 옅어졌지만, 아직 남은 발목의 상처에 카라마츠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찬찬히 몸을 살피며 시선을 위로 올리자 카라마츠를 빤히 쳐다보던 오소마츠가 눈이 마주쳤다.
뭔가 말하고 싶어하는 눈에 온화한 미소를 피우고 “응?” 하고 묻자 오소마츠가 “으으응―”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다시 자신을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눈 밑에 생긴 검은 기미에 카라마츠가 눈썹을 찌푸리고 손가락으로 살며시 오소마츠의 얼굴을 매만졌다.
“아직도 제대로 못 자는 건가?”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지만, 오소마츠는 항상 카라마츠보다 먼저 일어났다.
새벽같이 이른 시간에 일어나 혼자 침대에서 꾸물대고 있는 것을 알아채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토고에게서 오소마츠를 구하고 벌써 3주가 흘렀건만, 오소마츠는 착실하게 나아가는 신체와 반대로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은 불안을 버리지 못했다.
카라마츠의 질문에 오소마츠가 쓴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숙였다.
“오소마츠.” 하고 재촉하듯 부르는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슬쩍 눈을 올렸다.
“풋, 커다란 강아지 같아.”
곤란한 듯이 웃으며 카라마츠의 손을 맞잡은 오소마츠가 눈썹을 늘어뜨렸다.
카라마츠의 큰 손을 쥐고 가만히 응시하며 오소마츠가 하나씩 아직도 자신 안에 남은 불안을 털어놓았다.
“실은 자는 게 무서워.”
“무서워?”
“…아저씨랑 있을 때는 자다가 언제 맞을지 모르니까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잤었고, 얕은 잠만 잤는데…. 카라마츠랑 있으면 푹- 자버리니까….”
“….”
“그러다가 눈을 뜨면 이 모든 게 내 망상일까봐, 꿈일까봐 무서워…. 눈을 뜨면 너는 없고, 다시 그 창고 안에 남겨질 것 같아서….”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는 감히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오소마츠가 느끼는 모든 것이 전부 자신 때문인 것 같아, 가슴을 찔러 휘젓는 죄책감에 입술을 깨물고 밀려드는 슬픔을 참아냈다.
뻣뻣하게 굳은 카라마츠의 얼굴을 본 오소마츠가 “훗-” 하고 가볍게 웃었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의 손을 더 강하게 맞잡고 힘겹게 입을 뗐다.
“오소마츠, 이 모든 건 현실이다. 꿈 따위가 아니야. …조금씩 익숙해질 거다. 내가 네 곁에 있을 것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야.”
“응….”
부드럽게 자신을 쓰다듬는 카라마츠의 손길에 두 눈을 감고 연약한 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똑-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에게 대체 어떤 위로를 건네야하나 고민하고 있을 무렵,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퍼졌다.
카라마츠의 개인 방에 접근할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아쉬운 듯이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들어와라.” 하고 문을 향해 외쳤다.
“카라마츠 형, 아버지 전화야.”
“아버지가?”
“어.”
전화기를 들고 들어온 쵸로마츠가 카라마츠에게 ‘통화 중’ 이라고 떠 있는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전화 저편의 상대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게 혀를 찬 카라마츠가 전화기를 받아 들고 방을 나섰다.
오소마츠에게 “잠깐 기다려 줘.” 하고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는 카라마츠를 쵸로마츠가 기이한 생물을 바라보듯 응시했다.
딸깍- 하고 문이 닫히고 방 안에는 쵸로마츠와 오소마츠만이 남았다.
쵸로마츠가 시선을 내리자 오소마츠의 발목에 감긴 하얀 붕대가 눈에 들어왔다.
“다리는 좀 어때?”
“아…, 응. 괜찮아. 안 아파.”
“그래. 다행이네.”
인사치레가 아닌 진심을 담아 안도하듯 내뱉는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빙긋이 미소 지었다.
오소마츠의 미소가 사라지자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빨리 카라마츠가 돌아오기를 바라며 얕은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의 옷자락을 오소마츠가 쭉 잡아당겼다.
“어?”
소매가 당겨져 고개를 돌린 쵸로마츠를 오소마츠가 빤히 쳐다보았다.
망설이듯 입을 열었다 닫은 오소마츠가 용기를 내어 쵸로마츠를 불렀다.
“있지-. 카라마츠는 언제 결혼해?”
“하?”
너무나 뜬금없이 튀어나온 질문에 쵸로마츠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대체 어디서 나온 말이냐, 하는 표정으로 되묻는 쵸로마츠에게 오소마츠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게, 카라마츠는 중요한 사람이잖아? 그럼 곧 결혼도 하는 거지?”
‘너를 놔두고 결혼할 리 없잖아.’ 하는 말은 목구멍 아래로 삼켰다.
우두머리의 자리에 오를 때 이미 부모에게 결혼하지 않겠다 선언한 카라마츠지만, 부모는 은근슬쩍 기회를 노려 카라마츠에게 여러 여자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카라마츠의 각오를 잘 알고 있는 쵸로마츠였지만, 부모의 성화에 정말로 그 선언이 실현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쵸로마츠는 이어질 말을 기다리며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쵸로마츠의 무언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오소마츠가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려 해실 웃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일을 줬으면 좋겠어.”
“일?”
“응. 지금은 이렇지만, 나 엄청 빨리 달리니까. 심부름꾼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야.”
“…그래서?”
“일…, 할 수 있으면 나 여기에 있어도 괜찮지? …카라마츠가 결혼해도 방해 안 되지?”
마치 어린아이가 사랑해달라고 조르듯이, 애처롭게 자신을 올려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허락을 구하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쵸로마츠는 말문이 막혔다.
아련하게 웃는 얼굴에 가슴이 찡- 하고 울렸다.
쵸로마츠는 조금 전 오소마츠를 시험해보려 했던 자신을 비난하며 무릎을 굽혀 침대에 앉은 오소마츠와 눈을 맞췄다.
“카라마츠 형은 결혼 안 할거야. 그리고 만약 한다고 해도 너한테 그런 걸 바라지도 않을 거고.”
“….”
허리를 숙인 쵸로마츠를 따라 시선을 내린 오소마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쵸로마츠의 얼굴에는 일말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의 표정을 잘 살폈던 오소마츠가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쵸로마츠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하지만,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진심’이 곧 ‘진실’ 인 것은 아니었다.
사람이 무언가를 강하게 믿고 확언한다고 해도 그것이 바로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소마츠는 눈을 깜빡이며 쵸로마츠를 응시하더니 이내 애틋한 미소를 가득 피우고 쵸로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위로해주는 거야~? 착하네-, 쵸로마츠는~”
장난기 섞인 어투와 대조적으로 쵸로마츠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은 지극히 부드럽고 상냥했다.
생각도 못한 손길에 쵸로마츠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당황스러움과 함께 마치 알몸을 보인 것 같은 부끄러움이 해일처럼 몰아닥쳤다.
기억을 잃은 후의 카라마츠와 전혀 다른 자상한 쓰다듬과 오소마츠가 보여준 ‘형’의로서의 일면에 쵸로마츠는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고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쵸로마츠가 보여주는 반응에 오소마츠도 놀라 멍청히 입을 벌리고 쵸로마츠를 응시했다.
“내 말을 못 믿겠으면 당, 당사자한테 직접 들엇!!”
벌개진 얼굴을 숨기고 삑사리까지 내며 언성을 높인 쵸로마츠가 벌컥-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서 있던 카라마츠가 쵸로마츠를 보고 놀라 눈을 깜빡였다.
“자!”
화를 내듯이 거칠게 카라마츠를 방 안으로 밀어 넣은 쵸로마츠가 쾅! 소리가 나도록 세게 문을 닫았다.
밀폐된 공간에 묘한 침묵이 내려 앉았다.
오소마츠는 조심스럽게 카라마츠의 안색을 살피며 불안한 목소리로 카라마츠를 불렀다.
“카라마츠. 화…, 났어?”
고개를 살며시 기울이고 물어오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하아~” 하고 커다란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 곁에 다가가 앉았다.
“오소마츠, 나는 평생 결혼하지 않는다.”
“…왜? 아직 좋아하는 사람을 못 만나서?”
순수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오소마츠의 맑은 눈동자에 카라마츠가 눈썹을 늘어뜨리고 슬프게 웃었다.
“아니, 좋아하는 사람은 이미 만났다.”
“그럼, 그 사람하고 결혼 안 해?”
“…글쎄. 현재 일본법(法) 상으론 결혼은 무리인 것 같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카라마츠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어렸다.
천진난만하게 아무것도 모르고 다가온 작은 손을 놓치지 않도록 손 안에 숨긴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마주 보았다.
“오소마츠다.”
“응?”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오소마츠다.”
“…어?!”
“그러니까 오소마츠, 나는 평생 결혼하지 않아. 오소마츠가 내 곁에 있어준다면…,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다. 딱히 도움이 될 필요 없어. 내가 죽는 날까지, 내 곁에 있어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카라마츠의 말을 세심히 듣던 오소마츠의 청아한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다.
눈물이 일렁이며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카라마츠를 응시한 오소마츠가 덜덜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정말로 그거로 돼?”
“아.”
“…응…. 카라마츠 곁에 있을게.”
“…아, 고마워. 오소마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오소마츠의 눈가에 매달린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치며 미소를 지은 카라마츠가 부드럽게 속삭였다.
마주잡은 두 손이 유난히 뜨겁다고, 오소마츠가 작게 중얼거렸다.
4.
마츠노가의 우두머리는 바쁘다.
아카츠카구를 장악하고 있다는 명성은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카라마츠는 책상 위에 쌓인 일감에 한숨을 내쉬며 건너편에 서 있는 쵸로마츠에게 눈짓했다.
말로 전하지 않아도 카라마츠의 의도를 알아차린 쵸로마츠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사무실을 나왔다.
간단한 간식거리를 챙긴 쵸로마츠가 오소마츠가 있는 카라마츠의 방으로 향했다.
“쵸로마츠~, 쵸로마츠는 카라마츠의 …알고 있었어?”
“뭐?”
“그러니까아~ 카라마츠가 나, 를…, 조, 좋아하는 거…. 알고 있었냐구….”
간식으로 들고 온 센베를 한입 베어먹으로 오소마츠가 작게 중얼거렸다.
붕대도 풀고 완전히 나은 오소마츠의 발목을 살피던 쵸로마츠가 고개를 들고 눈썹을 찌푸렸다.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지 않은가.
당사자들은 어떨지 몰라도 제 3자가 보기엔 확 티가 나는 카라마츠의 행태를 떠올린 쵸로마츠가 “알고 있었어.” 하고 대답했다.
오소마츠가 “그래….” 하고 수긍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조금 흉터는 남았지만, 완전히 새살이 돋아난 발목에 안도하며 몸을 일으킨 쵸로마츠가 “그게 왜?” 하고 오소마츠에게 물었다.
“너는 어떤데?”
“…‘너’ 아냐.”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팩- 고개를 돌리고 토라진 표정으로 말했다.
“하?” 하고 반문하는 쵸로마츠에게 오소마츠가 답답하다는 듯이 볼을 부풀리고 말했다.
“오소마츠 형!!”
“하??”
“카라마츠가 내 동생이니까, 쵸로마츠도 내 동생이야!! 그러니까 오소마츠 형!”
“…뭐어?”
인상을 찌푸리고 빤히 자신을 응시하는 오소마츠의 눈빛에 쵸로마츠가 헛웃음을 흘렸다.
벅벅 머리를 긁고 녹색의 넥타이에 손가락을 걸어 느슨하게 풀어 헤친 쵸로마츠가 한숨과 함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소마츠, 혀…, 형.”
“응!!”
파앗! 하는 효과음이 날 정도로 활짝 웃는 오소마츠의 미소에 일순 현기증을 느낀 쵸로마츠가 이마를 짚었다.
이런 식으로 카라마츠의 마음을 알고 싶지 않았다 독백하며 쵸로마츠가 간신히 정신을 다잡고 다시 본론을 끌고 와 물었다.
“오소마츠 형은 어떤데? 카라마츠 형을 좋아해?”
“…잘 모르겠어.”
고개를 숙인 오소마츠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조금 전에 보여주었던 해맑은 미소를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망설임이 똬리를 트고 들어앉았다.
풀이 죽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오소마츠의 모습에 쵸로마츠가 숨을 내쉬고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단축키를 눌렀다.
『쵸로마츠? 오소마츠에게 무슨 일 있나?!』
“카라마츠 형, 잠깐 오소마츠 형 좀 데리고 나갔다가 와도 될까?”
『안 돼.』
“아니아니아니, 내가 제대로 붙어 있을 테니까! 위험한 데 안 데리고 가니까!”
『안 된다.』
“왜?!”
『…아무튼 안 돼』
쯧, 하고 혀를 찬 쵸로마츠가 통화하는 내내 자신을 의아한 눈으로 보고 있는 오소마츠와 눈을 맞췄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카라마츠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가만히 자신을 응시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일순 험악한 표정으로 전화 저편의 형을 향해 외쳤다.
“네 놈의 돌발 고백 덕분에 고민하고 있으니까, 생각할 시간 정도는 주라고! 이 망할 개똥마츠 형!!”
『….』
쵸로마츠의 호통에 놀랐는지 카라마츠가 말을 멈췄다.
소름 돋을 정도로 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이내 한숨 소리와 함께 카라마츠의 낮은 목소리가 전화기 안에서 울렸다.
『…집 근처 공원이라면…, 가도 좋다.』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이 바사삭- 하고 소음을 냈다.
시야를 가득 채운 청록에 오소마츠가 한결 편안해진 숨을 내쉬었다.
좁은 방 안에 남겨진 채 수십 번을 생각해보아도, 벽에 둘러 쌓인 마음은 답을 내어주지 않았다.
확 트인 공간에 나와서야 겨우 답답한 마음을 벗어 던지고 편히 호흡할 수 있었다.
두리번거리며 공원 안을 실컷 돌아다닌 오소마츠가 공원의 구석에 놓인 벤치를 발견했다.
인적이 드문 깊숙한 공원 한 곳에 일부러 숨겨놓은 것처럼 놓인 작은 벤치.
어쩐지 눈에 익은 모습에 오소마츠가 작게 한탄했다.
“…여기, 구나.”
“여기?”
오소마츠에게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바로 뒤에서 쫓아오던 쵸로마츠가 묻자, 오소마츠의 입가에 그리움을 담은 은은한 미소가 넘실거렸다.
“여기, 카라마츠를 처음 만난 곳.”
“아….”
오소마츠의 말에 쵸로마츠는 어릴 적 매일같이 공원으로 뛰어나가던 카라마츠를 떠올렸다.
동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매일 공원을 나갔던 이유가 오소마츠라는 것을 깨달은 쵸로마츠가 벤치에 털썩 엉덩이를 내린 오소마츠의 곁에 다가갔다.
“카라마츠가 처음이었어. 나한테 ‘호의’를 보여준 녀석은.”
“….”
“그 때는 맨날 더러운 옷을 입고, 매일 맞았으니까…. 나한테 가까이 오는 녀석 따위 없었고.”
그리운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벤치를 어루만지는 오소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입을 떼었다.
“카라마츠 형도, 매일 이 공원에 나갔어. 오소마츠 형을 보려고.”
“….”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다시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이마를 간질이는 바람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들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르고 넓은 하늘은 저 산 너머로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쵸로마츠, 나 카라마츠한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냥 오소마츠 형이 느낀 그대로 말해 주면 돼.”
“내가, 느낀 그대로?”
“응….”
쵸로마츠의 말을 오소마츠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바보 같은 자신보다는 똑똑한 쵸로마츠의 말을 따르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개를 살며시 끄덕인 오소마츠가 “해 볼게….” 하고 각오를 다졌다.
“어서 와. 오소마츠.”
쵸로마츠와 함께 집에 도착하자마자 현관에서 둘을 기다리고 있던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향해 웃었다.
예상치 못한 카라마츠의 등장에 몸을 움찔거리며 놀란 것은 오소마츠뿐만이 아니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놀라 벌렁거리는 심장을 누른 쵸로마츠가 카라마츠를 지그시 응시하더니 곧 한숨과 함께 자리를 피했다.
멀어지는 쵸로마츠의 등에 당혹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게 된 오소마츠가 차마 카라마츠와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오소마츠, 일단 방으로 돌아가자.”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큰 심호흡과 함께 각오를 다진 오소마츠가 침대에 걸터앉아 카라마츠를 불렀다.
자신보다 더 긴장한 표정으로 오소마츠 옆에 다가간 카라마츠의 손을 꽉- 붙잡은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카라마츠, 정말로 내가 좋아?”
“아아.”
“나, 남자에 가슴도 없는데?”
“상관없다.”
“애기도 못 낳는데?”
“상관없다.”
나직이 속삭이듯 대답하는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오소마츠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우물거리는 작은 입술이 곧 달콤한 목소리를 뱉어냈다.
“…나, 한번도…. 좋아해본 적 없으니까….”
“….”
“모르겠어…. ‘좋아’한다는 게 뭔지.”
“….”
“근데…, 카라마츠를 보고 있으면 막 심장이 세게 뛰고, 꼭 귀 옆에 심장이 붙은 것 같이 두근거리고, 카라마츠랑 이렇게, 손…, 잡고 있으면 가슴이 간질간질해. 카라마츠랑 같이 있으면 행복하고, 계속 계속 쭉― 같이 있고 싶은데, 카라마츠랑 떨어지게 될까봐 무서워.”
“….”
“카라마츠, 이게…. ‘좋아’한다는 거야?”
조심스럽게 묻는 질문에 카라마츠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걸렸다.
오소마츠의 말을 들으며 저도 모르게 기어 나온 눈물이 웃는 얼굴에 또르르- 흘러 내렸다.
온 가슴을 가득 채우는 기쁨에 카라마츠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좋아’한다는 거다, 오소마츠. 나도, 너와 똑같다.”
“…그래, 그런가―. 이게, 그거구나. 후응…. 카라마츠도 나랑, 똑같, 구나….”
카라마츠를 따라 살며시 미소를 띄운 오소마츠가 가늘게 눈을 뜨고 몸을 이완했다.
붉게 물든 얼굴은 완전히 새빨개져서 뜨거운 열을 내뿜고 있었다.
마주 잡은 카라마츠의 손을 들어 가슴에 품은 오소마츠가 “헤헤헤-” 하고 곤란한 듯이 웃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
― 두근, 두근, 두근, 두근
힘찬 심장 박동이 사랑스럽게 울렸다.
카라마츠는 뜨거운 한숨을 내쉬며 오소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나도, 터질 것 같다…. 오소마츠.”
카라마츠의 낮은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어올린 오소마츠가 행복한 미소를 보냈다.
머리칼을 간질이던 손을 슬쩍 내려 뺨을 감싸면 오소마츠가 그에 맞춰 살포시 눈을 감았다.
나비가 꽃에 내려앉듯 살포시 맞댄 입술에서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감정이 흘러 넘쳤다.
맞닿은 입술은 곧 아쉬움을 남기고 떨어졌지만, 가슴 속을 가득 채운 환희에 제대로 숨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오소마츠, 쭉- 내 옆에 있어.”
“응, 있을게. 카라마츠는 내가 없으면 울어버리는 울보니까!”
“헤헤” 하고 짧게 웃은 오소마츠가 손을 뻗어 어느새 카라마츠의 눈가에 애처롭게 매달려있던 눈물을 닦아냈다.
5.
이리저리 서류를 넘기며 의논하는 카라마츠와 쵸로마츠가 똑, 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네-” 하고 쵸로마츠가 대답하자 열린 문 사이로 빼꼼- 오소마츠가 얼굴을 내밀었다.
“카라마츠! 쵸로마츠! 오늘 점심 뭐가 좋아?”
생글생글 웃으며 묻는 오소마츠에게 자상한 미소로 화답한 카라마츠가 “아무거나. 오소마츠가 만든 것이라면 뭐든 좋다.” 하고 대답했다.
오소마츠는 “음―” 하고 고민하더니 순식간에 환한 미소를 가득 피우고 “그럼 야키소바!!” 하고 외쳤다.
카라마츠가 “알겠다.” 하고 웃자, 오소마츠도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닫았다.
통통통- 하고 가벼운 발걸음이 멀어졌다.
“야마모토 씨를 너무 귀찮게 하는 건 아니겠지?”
마츠노 가의 가사 전반을 담당하고 있는 야마모토 씨를 떠올리며 쵸로마츠가 살짝 얼굴을 구겼다.
몸도 완전히 나아 마츠노 가를 이리저리 활보하며 뾸뾸 돌아다니는 오소마츠는 최근 요리에 빠졌다.
야마모토 씨가 주방에 있으면 꼭 끼어들어 이것저것 물어보고, 돕기도 하면서 어느새 일취월장한 요리 실력으로 이젠 직접 카라마츠의 점심까지 차려주는 경지에 이르렀다.
쵸로마츠의 걱정 어린 한마디에 카라마츠가 피식- 미소를 흘리며 “걱정 마라.” 하고 대답했다.
밝은 성격에 어린아이 같은 순진함을 그대로 간직한 오소마츠는 타고난 재능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뛰어난 친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카라마츠의 방에서 나와 집 안을 돌아다니며 만난 모든 사람들은 전부 오소마츠를 좋아했다.
처음엔 자신도 오소마츠를 못마땅해 했다는 것을 돌이켜 생각한 쵸로마츠가 가볍게 한숨 쉬며 말했다.
“뭐, 그렇네. 오소마츠 형의 친화력이라면 문제 없나.”
“응―? 꽤나 잘 아는 구나? 쵸로마츠.”
쵸로마츠의 작은 중얼거림을 놓치지 않고 카라마츠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마치 적을 바라보는 맹수와 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카라마츠에게 황당한 헛웃음을 내뱉은 쵸로마츠가 툭 던지듯 말했다.
“손 안대거든!? 그런 감정 먼지만큼도 없으니까!! 그렇게 노려보지 말라고! 형제한테까지 질투하는 거 안 피곤해!?”
“오소마츠는 귀여우니까.”
쵸로마츠의 애원 아닌 애원에 날카로운 눈길을 접은 카라마츠가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이며 혼잣말했다.
눈에 콩깍지가 쓰여도 제대로 쓰였다고, 커다란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치밀어 오르는 황당함을 삼켰다.
긴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니 잠깐 들리라는 쵸로마츠의 연락에 이치마츠가 오랜만에 본가에 발을 들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본가에 머무는 커다란 얼룩무늬 고양이가 현관 앞까지 뛰어와 이치마츠를 반겼다.
조금 늦으니 먼저 응접실에 가 있으라는 문자는 이미 받았다.
이치마츠는 자신을 보며 반갑게 “야옹~” 하고 우는 고양이를 한 번 쓰다듬고 신발을 벗었다.
타박타박 발을 끌며 발소리를 울리는 이치마츠를 따라 종종 걸어오는 고양이가 다시 “야옹~” 하고 울었다.
곤란한 표정으로 눈썹을 찡그린 이치마츠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았지만, 역시나 멸치는 들어있지 않았다.
이치마츠를 올려다보며 아예 자리를 잡고 주저앉은 고양이에게 무릎을 굽힌 이치마츠가 양손을 쫙 펼쳐 보여주었다.
“미안, 오늘은 간식 안 가져왔어.”
내민 두 손에 코를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은 고양이가 이치마츠를 응시하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고양이가 보여주는 애정 표현에 이치마츠도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바닥에 벌렁 누워 배를 보인 고양이에게 미소를 띠운 이치마츠가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었다.
상냥한 이치마츠의 손길에 고양이가 눈을 감고 골골골 낮게 울었다.
통통통-
마루 저편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이치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쵸로마츠 형인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에 이치마츠가 고양이를 쓰다듬던 손을 멈췄다.
발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어쩐지 쵸로마츠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빤히 복도 저편을 응시했다.
마침내 발소리가 이치마츠의 앞에서 멈췄을 때, 눈앞에 서 있는 뜻밖의 인물에 이치마츠가 숨을 멈췄다.
“어? 카라마츠 동생??”
“…아, 어….”
“아!! 고양이!! 어떻게 잡았어? 내가 부르면 꼭 도망갔는데!!”
이치마츠의 발치에 벌러덩 누운 고양이를 보자마자 오소마츠가 눈을 크게 뜨고 몸을 숙였다.
오소마츠가 떠들거나 말거나 눈을 감고 누운 고양이의 모습에 오소마츠의 얼굴에 미소가 넘실거렸다.
“만져봐도 돼?”
휙- 고개를 돌려 이치마츠를 정면으로 마주보며 묻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핫! 하고 정신을 차린 이치마츠가 작은 목소리로 “마음대로….” 하고 대답했다.
오소마츠는 이 이상 더 활짝 웃을 수 없을 것처럼 밝은 미소를 가득 피우고 고양이에게 손을 뻗었다.
낯을 가리는 고양이가 혹시나 할퀴진 않을까 걱정했던 이치마츠를 비웃듯 고양이는 오소마츠의 손길에 다시 골골골 울며 몸을 돌렸다.
“와아~~, 냥냥이~! 맨날 못 만지게 했으면서~”
“귀 뒤쪽이랑 턱, 만져주면 좋아해.”
“아, 진짜? 여기?? 아!! 좋아한다!! 이거 좋아하는 거지?”
“응….”
“와아~~, 냥냥아~~”
이치마츠의 손을 따라 조심스럽게 고양이를 어루만지는 오소마츠가 주변을 환히 밝힐 정도로 해맑게 웃었다.
성인답지 않은 천진난만한 미소와 주체할 수 없이 뿜어 나오고 있는 귀여움에 이치마츠가 사색이 되어 ‘요정이냐!!’ 하고 되도 않는 외침을 부르짖는 동안, 오소마츠는 고양이에 푹 빠져 있었다.
“우왓! 거기서 뭐하고 있어?”
복도 한 가운데를 떡 하니 막아서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놀란 쵸로마츠가 물었다.
아예 반쯤 넋을 놓고 있던 이치마츠가 쵸로마츠를 보자마자 쵸로마츠는 모든 상황을 이해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오소마츠 형.”
“응~?”
“카라마츠 형이 찾아.”
“어~, 이 고양이 데리고 가도 돼?”
“물론.”
“가자! 냥냥아!!”
쵸로마츠의 대답에 배시시 웃은 오소마츠가 고양이를 잡고 품에 안았다.
통통통 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총총 뛰어가는 오소마츠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이치마츠가 쵸로마츠에게 물었다.
“저게 오소마츠?”
“어. ‘형’ 붙여라.”
“오소마츠 형?”
“응.”
의아한 얼굴로 되묻는 이치마츠에게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형’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했다.
“헤-”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쵸로마츠의 말을 경청한 이치마츠가 오소마츠가 사라진 복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좋네. 채찍으로 나 좀 때려줬으면….”
“그딴 짓 했다간 카라마츠 형이 널 가만 안 둘걸?”
이치마츠의 중얼거림에 순식간에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쵸로마츠가 싸늘히 내뱉었다.
“히히히-” 하고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린 이치마츠가 앞서 걸어가는 쵸로마츠를 따라가며 “아픈 건 좋지만, 벌써 죽고 싶진 않아.” 하고 눈을 굴렸다.
별다른 연락도 없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토도마츠의 등장에 마침 현관 앞을 지나던 쵸로마츠가 놀라 물었다.
“무슨 일이야?”
쵸로마츠의 질문에 무표정한 얼굴로 토도마츠가 서류 몇 가지를 내밀었다.
“토고.”
“그 새끼가 또 뭘 어쨌는데?”
토도마츠가 건넨 서류를 찬찬히 훑어보며 쵸로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구두를 벗고 실내화로 갈아 신은 토도마츠가 과장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지막 발악인지, ‘오소마츠’가 동업자라고 증언해서…. 재판에 데려가야 할 판이야, 지금.”
“…그 새끼가 진짜….”
형제들 중에서 가장 성질이 나쁘다고 할 수 있는 쵸로마츠가 낮게 씹으며 얼굴을 구겼다.
과거에 한창 날뛰었던 시절의 쵸로마츠가 슬쩍 나온 것을 본 토도마츠가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했다.
쵸로마츠는 서류를 옆구리에 끼고 토도마츠를 불렀다.
“가자, 카라마츠 형한테도 말해야지.”
“으, 으응.”
다시 평소의 상태로 돌아온 쵸로마츠에게 대답하며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쉰 토도마츠가 쵸로마츠를 뒤따랐다.
복도를 따라 걸으며 스쳐 지나간 거실에 TV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 그러고보니….”
말을 흘린 쵸로마츠가 거실 문을 열었다.
“카라마츠 형.”
“응? 쵸로마츠? 무슨 일 있나?”
TV 정면에 놓인 소파에 앉아있던 카라마츠가 쵸로마츠를 향해 물었다.
쵸로마츠는 눈짓으로 옆에 서 있던 토도마츠를 가리켰다.
“토도마츠?”
“오랜만이야. 카라마츠 형.”
“무슨 일 있나?”
“그게….”
카라마츠의 질문에 막 대답을 하려던 토도마츠가 눈을 깜빡이며 카라마츠 옆에 앉은 인영에 시선을 고정했다.
붉은 후드를 입은 남자가 카라마츠 옆에서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
“아, 토도마츠와는 처음 만나나? 오소마츠, 저 녀석은 막내 토도마츠.”
“오! 안녕!! 오소마츠 횽아입니당~!”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드는 오소마츠에게 이끌려 토도마츠도 얼떨결에 손을 흔들었다.
“토, 토도마츠 입니다.” 하고 인사를 끝내자 카라마츠가 다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토도마츠는 머리를 강타한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한 채로 멍청히 카라마츠의 질문에 대답했다.
“토고가 일을 쳐서….”
토도마츠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이름에 카라마츠가 순식간에 얼굴을 굳히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입을 꾹- 다물고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오소마츠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소마츠, 사무실로 간식 좀 가져다 주지 않겠나?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다.”
“아…. 응!”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온화한 미소를 띠고 대답했다.
오소마츠에게 피식- 미소를 지어준 카라마츠가 고개를 돌려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를 바라보았다.
손바닥 뒤집듯이 조금 전의 미소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싸늘한 무표정이 카라마츠의 얼굴에 단단히 자리잡았다.
성큼성큼 걸어 먼저 거실을 나온 카라마츠가 “따라와.” 하고 강압적인 어투로 말했다.
“하아~~” 하고 푹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아직도 얼이 빠져있는 토도마츠의 어깨를 툭 쳤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빙글 몸을 돌린 카라마츠가 토도마츠를 가볍게 쏘아보며 말했다.
“토도마츠, 오소마츠 앞에선 그 이름을 꺼내지 마.”
“하아?”
토도마츠의 어처구니 없다는 외침도 무시하고 털썩 소파에 엉덩이를 내린 카라마츠가 무심히 토도마츠를 바라보았다.
“일단 앉아라.”
카라마츠의 말에 쵸로마츠가 맞은편 소파에 앉아 토도마츠가 건네주었던 서류를 카라마츠에게 내밀었다.
서류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카라마츠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진짜로 사람 하나 잡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흉악해진 표정으로 카라마츠가 서류를 커피 테이블에 던졌다.
“교도소에 우리 쪽 사람이 있던가?”
“없어! 있다고 해도 우리가 손을 대면 안 되는 거 뻔히 알잖아!?”
카라마츠의 말에 쵸로마츠가 경악하며 외쳤다.
붕붕- 바람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개를 거세게 저으며 절대 반대를 외치는 쵸로마츠를 보며 혀를 찬 카라마츠가 토도마츠에게 말했다.
“토도마츠, 너랑 이치마츠 선에서 정리해. 오소마츠가 재판에 서는 일이 없도록.”
“어, 어어….”
고요히 분노하고 있는 카라마츠가 뿜어내는 날카로운 분위기에 압도된 토도마츠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 올린 카라마츠가 소파 등받이에 기대 고개를 젖혔다.
필사적으로 치솟는 분노를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몸짓에 토도마츠와 쵸로마츠가 전신의 근육을 긴장했다.
어릴 때는 텅 빈 마츠(카랏뽀마츠)라고 불렸을 때도 있었지만, 성장하면서 카라마츠는 우두머리의 기질을 강하게 드러냈다.
학창시절 날뛰었던 쵸로마츠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카라마츠의 분노는 흉악하고, 섬뜩하고, 두려운, 공포 그 자체였다.
손을 주무르며 안절부절 못하는 토도마츠가 입을 연 순간, 카라마츠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흠칫 놀라 숨을 집어삼킨 토도마츠가 떨리는 눈으로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스마트폰의 알람을 확인한 카라마츠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는 아키구치와 약속이 있으니까 먼저 일어나지.”
“아, 전의 그 건?”
“아아.”
“알겠어.”
쵸로마츠가 기억해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토도마츠는 어딘가 익숙한 이름에 머리를 맹렬히 굴리기 시작했다.
‘아, 아키구치!! 경찰 총장인가!! 이번에 시의원에 출마하는….’
경부보인 토도마츠보다 훨씬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카라마츠는 아무렇지도 않게 부르고 있었다.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아키구치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은 토도마츠가 카라마츠의 부름에 크게 어깨를 튀었다.
“으, 응?”
“맡긴 일 잘 부탁한다.”
“아, 응!!”
고개를 심하게 끄덕이자 카라마츠가 피식- 웃으며 토도마츠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카라마츠가 사무실을 나가자마자 토도마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온몸의 긴장을 풀로 소파에 드러눕다시피 주저앉았다.
“으하아아아아~, 카라마츠 형 무서워….”
“저 정도로 화내는 건 오랜만이네.”
“아니, 그것보다!! 뭐야 조금 전에 그 귀여운 생물은?!!?”
“오소마츠 형?”
“오소마츠 ‘혀엉’~?!?!?”
“뭐 어때, 형이라 부르면.”
“하아~~!?”
자연스럽게 낸 호칭에 토도마츠가 경악했다.
카라마츠나 토도마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가냘픈 몸을 가진 남자에게 ‘형’이라 부르는 쵸로마츠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며 토도마츠가 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뭔데, 저 애지중지는!!! 막내인 나도 그런 대접 못 받아봤는데!! 당연히 막내인 내가 제일 귀여워야 하는 거 아냐!?”
“…낮술 쳐마셨냐? 그리고 너 안 귀여워.”
쵸로마츠의 어깨를 붙잡고 짤짤 흔들며 울부짖는 토도마츠를 귀찮다는 듯이 보며 쵸로마츠가 혀를 찼다.
체념한 얼굴로 토도마츠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쵸로마츠에게 토도마츠가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항상 귀엽거든?!”
“아, 그러십니까….”
“귀엽다구우우우!!”
토도마츠의 절규는 허망하게 방 안에 퍼졌다.
쯧, 하고 혀를 차며 귀를 후빈 쵸로마츠가 노크 소리에 “네-” 하고 대답했다.
“쵸로~! 주스랑 과자 가져왔어!”
“고마워. 오소마츠 형.”
얼굴을 삐죽 내밀고 배시시 웃은 오소마츠가 쟁반을 들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커피 테이블에 주스를 내려놓고 제 몫의 주스를 쪽- 빨대로 빨아먹으며 오소마츠가 울상이 된 토도마츠를 응시했다.
“토도마츠, 왜 그래? 어디 아파?”
“자기가 귀엽다고 헛소리를 하길래.”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의 물음에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오소마츠가 가져온 센베를 입에 물었다.
바각- 하고 건조한 센베가 깨지는 소리에 토도마츠가 쵸로마츠에게 눈을 흘겼다.
오소마츠는 놀란 것처럼 눈을 깜빡이더니 주스를 내려놓고 토도마츠에게 다가갔다.
“쵸로마츠 왜 안 귀엽다고 했어? 토도마츠, 무-지 귀여운데~? 횽아가 쵸로 혼내줄까아~?”
싱글싱글 웃으며 자신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는 오소마츠를 보며 토도마츠가 별안간 얼굴을 붉혔다.
푸시시- 하고 연기를 내며 달아오른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숨긴 토도마츠가 몸을 떨며 작게 중얼거렸다.
“뭐야, 이 귀여운 소동물….”
토도마츠의 중얼거림에 주스를 마시던 쵸로마츠가 ‘그럴 줄 알았다’ 하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이걸로 우리 형제 전원 함락인가….’
오소마츠와 만난 이후로 오소마츠를 보러 자주 본가에 들리는 이치마츠를 떠올리며 쵸로마츠가 독백했다.
형제 중 카라마츠와 가장 가까웠던 토도마츠까지 오소마츠에게 완전히 넘어가고 말았으니, 오소마츠는 타고난 친화력과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움으로 멋지게 마츠노 가 오둥이를 깔끔하게 해치운 것이다.
참고로 쥬시마츠는 부인과 함께 본가에 찾아왔을 때, 오소마츠를 보자마자 그 동물적인 감각으로 모든 것을 깨닫고 “카라마츠 형아를 잘 부탁함닷!! 오소마츠 형아!!!” 하고 외쳤다.
6.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는 마츠노 가의 전대 우두머리 마츠노 마츠조와 그의 아내 마츠요를 보며 쵸로마츠가 속으로 혀를 찼다.
‘대체 누구야, 그딴 보고를 한 새끼는….’
마츠노 가에 외부인이 머물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마츠조는 단숨에 마츠요와 요양하고 있던 시골 마을에서 도쿄의 본가로 올라왔다.
대체 외부인이 누구냐고 호통치며 화를 내는 마츠조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오소마츠에게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당부한 뒤, 쵸로마츠가 서둘러 점심을 준비했다.
카라마츠는 일이 있어 외출한 상태이니 기다리는 동안 식사나 하시라고 필사적으로 설득한 결과가 바로 지금 이 상황이다.
쵸로마츠는 불편한 분위기에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텁텁한 입맛을 다셨다.
그새 오소마츠의 맛에 길들여졌는지 야마모토 씨가 만든 음식은 전혀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쵸로마츠는 식탁 위를 쭉 둘러보며 그나마 오소마츠가 만들어 놓았던 반찬을 수색해 그것만 집어먹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부하 하나가 조용히 들어와 카라마츠가 돌아왔음을 알렸다.
쵸로마츠가 고개를 끄덕이고 부하에게 마츠조와 마츠요를 응접실로 안내하라고 말한 뒤, 서둘러 현관으로 달려갔다.
“카라마츠 형, 연락 받았지?”
“아아…. 아버지와 어머니가 오신 거지?”
“응…. 어떻게 아셨는지 오소마츠 형에 대해 물으셨어.”
“하아…. 그런가. 일단 알겠다. 아버지는 응접실인가?”
“응.”
쵸로마츠를 따라 깊은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응접실로 향했다.
산 넘어 산이라고, 동생들에게 오소마츠의 존재를 허락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몰아 닥친 부모의 등장에 카라마츠는 복잡한 심경을 숨길 수 없었다.
쵸로마츠에게 기다리라고 말한 뒤, 홀로 응접실에 들어가자 소파에 앉아있던 마츠조가 카라마츠를 맞이했다.
“오랜만입니다. 아버지.”
“그래, 오랜만이구나.”
“…그래서, 무슨 일로…”
“외부인이 이 마츠노 가에 머물고 있다는 게 사실이냐.”
카라마츠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직구로 물어오는 마츠조를 보며 카라마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푹- 한숨을 내쉬고 “네.” 하고 대답하자 마츠조의 이마에 힘줄이 내돋쳤다.
누가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아니랄까봐 카라마츠처럼 고요히 분노를 삭힌 마츠조가 걸걸한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데려와라. 지금 당장.”
“…쵸로마츠.”
“알겠어.”
카라마츠가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쵸로마츠를 부르자, 쵸로마츠가 바로 대답하고 오소마츠가 있는 카라마츠 방으로 달려갔다.
5분도 지나지 않아 카라마츠 옆에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앉았다.
눈을 어디에 둘 줄 모르고 이리저리 돌리며 당황해 하는 오소마츠를 본 마츠조가 핏발 선 눈을 번뜩이며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이 녀석은 대체 뭐냐.”
“소중한 사람입니다.”
일 초의 망설임도 없는 카라마츠의 대답에 마츠조가 벌떡 일어났다.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던 이유가 이 놈 때문이냐!?”
“그렇습니다.”
“웃기지도 않는구나!! 어디서 굴러먹던 말뼈다귀를!!”
“아무리 아버지라도 오소마츠를 상처 준다면 용서하지 않습니다.”
노성을 내지르는 마츠조에 맞서 몸을 일으킨 카라마츠가 형형하게 눈을 빛내며 나직이 말했다.
서슬 퍼런 눈빛과 강압적인 낮은 목소리에 마츠조가 말을 잃고 어이없이 숨을 내뱉었다.
한번도 반항한 적 없는 아들이었던 카라마츠가 아버지인 자신을 죽일 것처럼 노려보고 있는 상황이 마츠조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말해봐라. 뭐라고?!”
“아버지라해도 용서하지 않겠다 말했습니다.”
날카롭게 선 공기가 찌릿찌릿하게 피부를 찔렀다.
처음 겪는 상황에 쵸로마츠는 감히 끼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오소마츠도 일촉즉발의 분위기에 당황해 하며 살며시 카라마츠의 소매를 손가락으로 집어 끌어당겼다.
소매를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카라마츠를 슬그머니 말리며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지만, 쵸로마츠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눈썹을 늘어뜨리고 고개를 젓는 쵸로마츠를 본 오소마츠가 다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마츠조와 눈을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소매를 붙잡는 오소마츠의 손길에 카라마츠가 손을 펼쳐 오소마츠의 손을 강하게 잡았다.
“대체…!!”
짝!!
기가 찬 마츠조가 역정을 내려 입을 연 순간, 커다란 손뼉 소리가 응접실에 울렸다.
소리가 난 근원지로 시선을 옮기면 단호한 표정의 마츠요가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자, 일단 앉아요. 둘 다!”
낭랑하지만 힘이 담긴 목소리에 마츠조와 카라마츠가 소파에 앉았다.
마츠요에게 항의하려는 마츠조를 막아선 마츠요가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카라마츠, 네 평생을 바칠 정도의 아이니?’
“네.”
마츠요의 질문에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 카라마츠에게 빙긋- 미소를 지은 마츠요가 눈을 돌려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아가.”
“네, 넷!!”
“너는 어떻니?”
“…카, 카라마츠 옆에 있고 싶어요….”
마츠요의 부름에 흠칫 떨며 대답한 오소마츠가 슬쩍 카라마츠에게 눈길을 주고 심호흡을 한 뒤 대답했다.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음을 마츠요도 알 수 있었다.
오소마츠가 껴안고 있는 간절함을 눈치챈 마츠요가 빙그레- 미소 띤 얼굴로 오소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요리는 할 줄 아니?”
“…조금요.”
“어머니가 먹은 점심 반찬 대부분 오소마츠가 만든 겁니다.”
오소마츠의 겸손한 대답에 보다 못한 카라마츠가 끼어들었다.
마츠요는 “어머, 그러니?” 하고 놀라며 오소마츠에게 시선을 주고 온화한 미소를 보냈다.
“그럼 다음에 카라마츠가 좋아하는 음식 레시피를 알려주마. 엄마는 요리 잘하는 며느리가 좋아.”
마츠요의 미소에 오소마츠도 긴장을 풀고 수줍게 웃었다.
“네.” 하고 대답하는 오소마츠를 바라보는 마츠요의 다정한 눈빛에 카라마츠도 가슴에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며느리라니!! 그 녀석은 남자닷!”
마츠요와 오소마츠를 듣고 있던 마츠조가 쾅! 하고 테이블을 내리쳤다.
오소마츠가 몸을 움찔거리자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어깨를 잡아 끌어당겼다.
소중히 오소마츠를 품에 안은 카라마츠를 본 마츠요가 자애로운 미소를 피우고 마츠조를 보며 단호히 말했다.
“입 다무세요! 내가 좋다면 좋은 거에요!”
마츠조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압력에 마츠조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혀를 찼다.
그 후, 마츠조의 침묵 속에서 오소마츠와 마츠요의 정다운 대화가 오갔고, 마츠요는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마츠조를 끌고 시골로 내려갔다.
“오소 아가~”
카라마츠와 함께 밥을 먹고 있는 식당에 홀연히 나타난 마츠조가 완전히 풀린 표정으로 오소마츠를 불렀다.
밥을 먹던 젓가락을 멈춘 오소마츠가 활짝 웃으며 “아빠!” 하고 외쳤다.
행복하단 미소를 만면에 피운 마츠조가 유명 과자점의 화과자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아가 주려고 사왔다.”
“와아~!”
인사를 건네는 카라마츠는 싹 무시하고 오소마츠 옆에 앉은 마츠조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화과자를 먹는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제 손자를 보는 듯한 다정한 눈빛에 얼마 전까지 오소마츠를 극렬하게 반대했던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멈췄던 식사를 재개하며 카라마츠가 헛웃음을 흘렸다.
식사를 다 마친 오소마츠가 거실 소파에 앉은 마츠조의 어깨를 주물렀다.
꾹꾹- 야무지게 어깨를 주무르는 작은 손에 마츠조가 감탄하며 눈을 감았다.
“하아~, 아빠는 계속 이런 딸을 가지고 싶었다~”
어이없단 눈빛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쵸로마츠와 카라마츠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한 마츠조가 쵸로마츠를 보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너도 오소마츠 같은 며느리 데려와라.”
“…하아….”
비현실적인 광경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쵸로마츠가 작게 신음했다.
힘겨워하는 동생의 등을 두드려주며 카라마츠가 마츠조에게 물었다.
“어머니는요?”
“아직 밭일이 남아서…. 먼저 올라왔다. 근데, 카라마츠.”
“네?”
“너 호적엔 언제 올릴 거냐?”
힐끗 오소마츠에게 눈길을 주며 묻는 마츠조에게 훈훈한 미소를 피운 카라마츠가 대답했다.
“곧 할 계획입니다.”
7.
‘마츠노 오소마츠’ 라고 쓰인 등본과 케이크.
가족이 모두 모인 거실에서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불렀다.
쥬시마츠와 그녀의 아들과 놀고 있던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오소마츠.”
“웅? 왜애~”
배시시- 이를 드러내고 무방비하게 웃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쵸로마츠를 비롯한 마츠노 일가는 숨을 삼키고 오소마츠의 귀여움에 몸부림 쳤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끌어 당겨 소파에 앉히고 케이크를 앞으로 내밀었다.
“오늘부터 마츠노 오소마츠가 된 걸 축하해.”
카라마츠의 뒤에서 쵸로마츠와 이치마츠, 토도마츠, 쥬시마츠 부부와 마츠요와 마츠조까지 모두 웃는 얼굴로 축하한다며 손뼉을 쳤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투명한 눈으로 카라마츠를 올려다 본 오소마츠가 행복하게 웃으며 외쳤다.
“응, 고마워.. 카라마츠!!!”
떠들썩한 거실에서 슬며시 나온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이끌었다.
오소마츠와 함께 지내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 오소마츠를 침대에 앉힌 카라마츠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오소마츠.”
“응?”
“평생, 내 곁에 있겠다고 약속해 주겠나.”
카라마츠가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열었다.
반짝이는 붉은 보석이 박힌 은색의 얇은 반지가 반짝였다.
숨을 들이마신 오소마츠가 눈을 크게 뜨고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카라마츠의 애정 어린 눈빛에 오소마츠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스쳤다.
“응! 있을게! 평생!!”
오소마츠의 대답에 만족스럽게 웃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약지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오소마츠도 같은 디자인에 푸른 보석이 박힌 반지를 카라마츠의 약지에 끼웠다.
어느새 눈가에 그렁그렁 매달린 눈물을 닦아준 카라마츠가 깜빡 했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더 있었다.”
“응?”
“이건 가족들이 주는 선물이다.”
침대 옆에 놓인 사이드테이블의 서랍에서 여러 권을 책을 꺼낸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에게 내밀었다.
자격증이니 검정고시라고 쓰여진 책을 내려다보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뭐야?”
“오소마츠, 모두 오소마츠의 이야기를 듣고 오소마츠의 꿈을 이뤄주고 싶다고 말했다.”
“내, …꿈?”
“오소마츠는 분명히 훌륭한 선생님이 될 거라고. 내가 말했잖아?”
“아…!!”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의 눈이 한층 더 젖어 들었다.
토고와 함께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던 어린 날, 자신과 같은 아이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몰래 품었던 꿈.
카라마츠에게만 털어놓았던 꿈, 살아남기 위해 잊어야만 했던 꿈이 손 안에 담겼다.
“….”
무릎에 쌓인 책을 하나씩 확인했다. 검정고시라고 쓰여진 책 아래 ‘보육사 자격증’ 이라고 쓰여진 책에 오소마츠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흐, 우아아아아― 카라마츠!! 카라마츠으~!!”
울며 안기는 오소마츠를 카라마츠를 소중히 품에 안았다.
일정한 속도로 오소마츠의 등을 두드리며 달래는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오소마츠, 행복해지는 거다. 내 옆에서, 함께. 과거가 무색해질 정도로,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나와 함께 행복해지자.”
“응! 응!! 카라마츠랑 같이, 행복해질래!!!”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온몸을 떨며 그 동안 쌓인 설움을 쏟아내는 작은 몸을 카라마츠가 강하게 끌어안았다.
“체력 차를 생각해!!”
“미안하다.”
잔뜩 화난 목소리로 외치는 쵸로마츠에게 카라마츠가 사과를 건넸다.
축- 어깨를 늘어뜨리고 잔뜩 풀이 죽은 카라마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을 조르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그만 이성이 날아간 카라마츠는 그 후 오소마츠가 “제발….” 이라고 애원해도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다음날 일어날수도 없게 된 오소마츠는 현재 이불에 꽁꽁 싸여 몸 속에 남은 열에 달궈진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었다.
주치의를 배웅하고 돌아온 쵸로마츠에게 잔소리를 듣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절차였다.
눈을 번뜩이며 카라마츠를 혼내는 쵸로마츠와 기죽어 쵸로마츠의 말을 얌전히 듣고 있는 카라마츠를 침대 위에 누워 응시하는 오소마츠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미소를 활짝 피웠다.
8.
정기적으로 있는 가게 검사 날. 가게의 점장이 넘겨준 장부를 확인하고 있는 사이 몰려든 호스티스들이 내 주위를 감쌌다.
“뭐야?”
“오너-, 요즘 사장님은 안 와요~?”
“요즘 한 번도 얼굴 안 비추는데~”
스리슬쩍 내 어깨에 팔을 올리고 애교 섞인 어조로 묻는 호스티스들에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 녀석 이제 안 와.”
“어?! 왜요!!”
내 대답에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가식적인 목소리를 전부 내다버린 호스티스들이 외쳤다.
귀를 울리는 고음에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결혼 했으니까.”
“에에에에!!”
‘결혼’ 이라는 단어에 카라마츠 형을 노리고 있던 호스티스들이 일제히 경악했다.
이제야 좀 조용해지려나 싶어 장부를 들추니 곧 충격에서 벗어난 호스티스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내게 매달렸다.
“어느 년이랑요??”
“어느 가게 애에요?”
“요즘에 누가 쉰다고는 못 들었는데!?”
“누군데요?!”
조금 전보다 더 끈질기게 달라붙어 물어오는 질문 공세에 혀를 찼다.
점장에게 손짓해 호스티스들을 모두 물리치고 나서야 자리에 앉아 장부를 살필 수 있었다.
분명 지금쯤 집에서는 우리가 선물해준 문제집을 떠안고 끙끙대며 씨름하는 오소마츠 형과 그 옆에 앉은 카라마츠 형이 내 귀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제 요리는 완전히 오소마츠 형이 맡아, 오늘도 원하는 메뉴를 물어왔으니까.
장부를 전부 확인하고 집에 돌아가면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오소마츠 형과 그 옆에서 제 손가락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오소마츠를 지켜보고 있는 카라마츠 형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빨리 결혼하고 싶어진다.
분명 ‘행복’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형태라면 그 모습이야말로 ‘행복’이 아닐까.
실현 불가능할 것을 알면서도, 나도 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상대를 만나길 바라고 만다.
적어도 두 사람이 보여주는 ‘행복’을 끝까지 이 눈에 담고 싶다. 장부의 마지막 장을 확인하고 점장에게 장부를 건네준 뒤, 발걸음을 재촉했다.
― 빨리, 그 ‘행복’ 안에 들어가고 싶기에.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번주 올릴 예정이었던 마피아마츠는 조금 늦어질 것 같아요.. 제가 일요일에 약속이 있는지라...ㅎ
아마 월요일이나 화요일 중으로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R-18 버전의 비밀번호는 공지를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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