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편 들고 왔습니다^^
이번 왕자공주 장편은 여우골 이야기보다 길어질 것 같아요...
아마 완결이 13화...ㅎㅎㅎ;;
* 여전히 썸을 타고 있는 오소카라입니다ㅎ
* 소설에 나오는 '붉은 왕국'은 북유럽과 바이킹족을 모델로 참고했어요.
* 공미포 10,521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오소마츠 형.”
쵸로마츠의 부름에 오소마츠가 눈을 창밖으로 돌렸다.
이어질 말을 억지로 무시하고 있는 오소마츠를 보며 푹-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망설이지 않고 다음 말을 이어갔다.
“조만간 왕위 계승자 발표가 있을 테니까, 준비해.”
“….”
“어이!”
꽃잎이 내리듯 차분히 대지에 가라앉는 하얀 눈송이를 보며 딴청을 피우는 오소마츠에게 쵸로마츠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그제야 깊은 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창에서 눈을 뗐다.
“왜.”
“준비해 두라고.”
“….”
오소마츠는 또다시 쵸로마츠에게서 눈을 돌렸다.
거실에서 타닥타닥 타오르고 있는 장작을 지그시 응시하더니 또각또각 거실로 다가오는 구두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 뭔가 중요한 이야기 중이었나…?”
쵸로마츠와 오소마츠 사이에 흐르는 심상치 않은 기류에 카라마츠가 마른침을 삼키고 눈썹을 늘어뜨렸다.
티격태격 대긴 해도 사이가 좋은 편에 속했던 오소마츠와 쵸로마츠 사이에 긴장된 공기가 잔뜩 움츠려있었다.
카라마츠를 보자마자 푹신한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가 활짝 웃으며 카라마츠의 손을 잡았다.
“요즘 할 일 없어서 심심하지 않아? 겨울이라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말이야!”
“어…, 에?”
“그렇다고? 그럼 나가야지! 옷 갈아입자!!”
“에, 에!?”
“잠, 오소마츠 형!!”
쵸로마츠의 부름도 무시하고 카라마츠의 손을 잡아 끌어당긴 오소마츠가 당황하는 카라마츠와 함께 거실을 나섰다.
오소마츠와 교대하듯 거실로 들어온 이치마츠가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는 쵸로마츠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소마츠 형이 하고 싶은대로 하게 놔둬, 쵸로마츠 형. 오소마츠 형도 다 알고 있을 테니까….”
나른한 이치마츠의 목소리로 내뱉은 그 말에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실렸다.
오소마츠에게 있어서 아마도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자유.
이치마츠는 그것을 빼앗고 싶지 않았고, 쵸로마츠 역시 그 마음은 같았다.
오소마츠가 떠난 거실에 남겨진 두 동생이, 앞으로 형이 헤쳐 나가야할 역경을 떠올리고 무겁게 입을 다물었다.
2.
옷장 깊숙이에 숨겨 놓았던 평민의 옷을 꺼내는 김에 엄마가 준비해 주었던 정장을 함께 꺼냈다.
공주를 위해 엄마가 손수 만든 정장은 한눈에 보아도 고급진 원단에 짙은 푸른 빛을 띄고 있었다.
꺼낸 옷들을 침대에 획 던져놓고 뒤돌자, 나를 따라 침실로 들어온 공주가 멀뚱히 서 있었다.
“뭐해? 갈아입어.”
“에엩?! 지금 말인가?”
“응.”
놀라는 공주에게 대답하고 옷을 벗었다.
답답하게 몇 겹이나 입고 있던 정복을 벗어 침대에 던지고 펼쳐 놓았던 평민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
붉은색의 코트를 벗고 베스트, 셔츠를 벗었다.
바지도 벗어 침대에 올리고 평민의 바지를 입는다.
혹독한 겨울을 견딜 수 있게 평민의 옷이라도 동물의 털이나 따뜻한 털실을 소재로 만들어져 있어 춥지는 않았지만, 정복만큼의 화려함이나 고급진 느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붉은 빛이 도는 짙은 갈색의 평민옷을 입고, 낡은 털신을 신고 침대에서 일어나자, 아직도 푸른 드레스를 입고 있는 공주가 눈에 띄였다.
“응? 왜 아직도 안 갈아입었어?”
“엩, 아니…. 저기,”
“같은 남자끼리 부끄러울 것도 없잖아.”
“그게 아니라, …드, 드레스를…, 혼자 벗을 수가 없다.”
“하?”
공주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물쩍거리며 다음 말을 망설이는 공주를 재촉하자, “뒤에 있는 끈을 풀어야 벗을 수 있다.” 하고 공주가 남은 말을 이었다.
푹- 나오는 한숨을 내뱉고 공주의 뒤로 돌자, 과연 이건 혼자 못 벗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레스라는 건 귀족들만이 있는 것이고, 귀족들에겐 당연히 시녀가 붙어있으니 혼자 벗을 수 없는 드레스를 입어도 상관없다지만, 이 녀석은 남자고 이렇게 철저하게 여성용 드레스를 따라할 필요가 있어?!
순간 샘솟는 분노를 억누르고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나도 드레스 벗겨 본 적 없다고….”
“끄, 끈만 풀면 되니까!”
내 불평을 들었는지 공주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공주의 지시를 따라 드레스의 등에 달린 끈을 하나씩 풀었다.
X자로 어긋나 자잘하게도 묶여있는 드레스 끈을 하나씩 풀다보니 나도 모르게 억눌렀던 분노가 다시 머리를 들었다.
“끈 겁나 많아!!”
“미, 미안하다….”
공주의 잘못은 아니지만 내 짜증에 사과하는 공주에게 작게 사과하고, 마침내 그 많던 끈을 다 풀었다.
휘유~, 하고 한숨을 내쉬고 침대에 걸터 앉았다.
공주는 드레스 끈이 전부 풀린 것을 확인하고 침대에 올려둔 정장을 집어들고 침실 구석에 세워진 파티션 뒤로 들어갔다.
들어가 숨어서 갈아입을 필요 없을 텐데….
침대에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산을 보고 있는 사이, 공주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엄마가 만들어준 남성용 정장이 제법 잘 어울렸다.
아니, 그 전에 남자옷을 입은 걸 보는게 처음인가.
오랜만에 입은 남자옷이 어색한지 쭈뼛거리는 공주의 손을 잡고 침실을 나왔다.
어딜 가냐 묻는 공주에게 씩- 웃어주고 별궁을 나와 성의 뒷문으로 향했다.
시녀나 하인들이 드나드는 아주 작은 쪽문.
문을 지키는 문지기도 겨우 2명인 뒷문은 문지기에게 미리 말만 해둔다면 자유롭게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성 밖 마을은 시장과 여러 길드가 모여 있어 항상 활기가 넘쳤다.
시장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손님을 모으려는 상인들의 커다란 외침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금발과 푸른 눈동자가 신기한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살피는 공주의 손을 잡았다.
어리벙벙하게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구경하는 모양이 곧 인파에 쓸려 길을 잃을 것처럼 보였다.
맞잡은 손은 군데군데 굳은살이 박히고 피부도 두꺼워서, 굉장히 딱딱하고 두터웠지만, 그러면서도 너무나 따뜻했다.
“오, 오소마츠. 이렇게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괜찮은 건가?”
무슨 걱정이 든 건지, 짙은 눈썹을 잔뜩 늘어뜨리고 묻는 공주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웃었다.
허름한 평민옷을 입은 남자와 짙은 청색 고급 정장을 입은 남자.
한눈에 봐도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그동안 내가 이 마을에서 쌓은 평판이라면 문제 없다.
“웬 떠돌이 한량이 도련님 하나 꼬셔서 돈줄로 데리고 나온 걸로 보일테니까 걱정 마.”
“에…?”
그게 무슨 말이냐는 얼굴로 쳐다보는 공주를 끌고 시장 거리를 헤치고 나갔다.
오가는 많은 사람들의 밝은 얼굴에는 ‘전쟁’이 주는 어둠이 보이지 않았다.
치열하게 전투가 일어나고, 생명이 무참히 스러지는 곳은 오직 국경 주변 전장뿐.
처절하게 싸우는 군인들과 달리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는 스처가는 표정들에 안도감과 함께 묘한 분노가 들끓는다.
뒤에서 힘겹게 뒤쫓는 공주를 끌고 마을에 내려왔을 때마다 찾았던 잡화점으로 발을 재촉했다.
“여어-, 올슨. 오랜만이다?”
“뭐 그렇지~. 전쟁 중이었잖아? 병사로 안 끌려갈려고 시골까지 내려갔었다구~.”
마을에서 가장 큰 잡화점에 들어서자 카운터에 서 있떤 마이클 아저씨가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겼다.
마을에 내려오면 나는 ‘왕자 오소마츠’가 아닌 ‘떠돌이 한량 올손’이 된다. 올슨이 내걸만한 변명을 말하며 카운터에 기댔다.
“요즘 어때?”
“말도 마라. 전쟁 중이라고 장사 안 되고, 지금은 겨울이라고 안 되고…. 죽지 못해 살고 있다.”
“에이~, 마을에서 제일가는 아저씨가 장사 안 되면, 다른 아저씨들은 벌써 굶어 죽었지~.”
“그건 그렇지-. 하하핫!”
호쾌하게 웃는 아저씨가 이어 잡화점 안을 둘러보며 신기하단 눈을 빛내는 공주를 눈짓했다.
“저 녀석은?”
“부~잣집 도련님. 돈줄 좀 될까 해서 꼬셨지~.”
“너도 참…. 적당히 빨아먹고 보내줘라.”
“알고 있어~. 나도 그렇게 냉혈한은 아니라구~.”
아저씨의 엄포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불어 오늘 열릴 도박판의 장소를 물어보았다.
항상 열리던 그곳이라고 답해준 아저씨가 스윽- 몸을 굽혔다.
아저씨에 맞춰 몸을 낮추자, 아저씨가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전에 애플파이 나누어준 미란다 아주머니 말이야….”
“응.”
“남편분이 병사로 나갔다가 돌아가셨대. 그 이후로 계속 혼자 일하시다가 며칠 전에 쓰러졌대나봐. 그 아들이 약값 벌려고 일하더니, 양아치놈들이 바람을 넣어서 도박판에 종종 나타나나 뵈. 혹시나 가서 본다면 말 좀 해서 이쪽으로 보내라.”
“OK.”
아저씨에 맞춰 최대한 목소리를 죽이고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3.
“어딜 가는 건가?”
카라마츠의 질문에 오소마츠가 빙그레 웃으며 집게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갔다.
“쉬-.” 하고 소리를 줄이는 오소마츠를 따라 카라마츠가 숨소리를 죽이고 눈썹을 찌푸렸다.
활발한 시장통,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 구경을 하며 들뜬 기분이 묘하게 가라앉았다.
타국과 활발히 무역을 하는 푸른 왕국에서도 금발의 외국인을 본 적은 있었지만, 국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검은 머리가 아닌 다양한 머리색을 가진 것이 카라마츠가 보기엔 너무나 신기했다.
자신보다 훨씬 더 큰 몸집과 큰 키.
머리 하나 이상 높이 솟은 그들을 구경하며 시장을 돌아다니고, 푸른 왕국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기계나 도구들을 보았다.
대장장이에서는 푸른 왕국의 것보다 훨씬 우수한 품질의 무기와 갑옷이 걸려져 있었다.
시장에서 파는 음식이나 진열된 과일, 야채의 종류는 푸른 왕국보다 적었지만, 타국의 국민들이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다니는 시장은 그 풍경만으로 큰 구경거리가 되었다.
사방을 보며 구경을 하는 카라마츠를 끌고 오소마츠가 데려온 곳이 바로 이곳이다.
술집으로 들어가나 싶었더니, 바에 서 있던 주인에게 오소마츠가 뭐라 말하자 곧 술집 주인이 가게 뒤편을 가리켰다.
뒤쪽에 있는 쪽문으로 나와 뒷골목으로 들어왔다 싶었더니 바로 어두운 골목을 지나, 검은 문 앞에 섰다.
단단히 잠긴 문 앞에 선 오소마츠가 똑똑똑, 일정한 박자로 문을 두드리자, 스륵- 문에 직사각형의 구멍이 열리고 싸늘한 검은 눈이 카라마츠와 오소마츠에게 박혔다.
“감자.”
“들어와.”
오소마츠가 댄 암호에 철컥, 중후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시장에서 본 그 어떤 사람들보다 더 거대한 몸집을 가진 사내가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들어갈 수 있도록 몸을 비켰다.
간신히 문을 지나 깜깜하고 긴 복도를 걸어 나오자 연약한 촛불에 의지해 앉아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다수의 원형 테이블이 있는 방이 나왔다.
창문 하나 없는 방 안에는 사내들이 내뿜은 담배 연기로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너무나 밝고 활기차던 시장의 분위기와 상반된, 어둡고 정체된 공기에 당황한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뒤에 바짝 붙어 마른침을 삼켰다.
“오, 오소마츠…. 여긴 대체….”
“불법 도박장. 그리고 성을 나오면 ‘올슨’이라고 불러.”
“도박장…?”
“응. 자, 저쪽으로 가자.”
‘도박장’이라는 단어에 황당한 얼굴을 하는 카라마츠를 끌고 자리가 두개 비어있는 테이블로 발을 옮긴 오소마츠가 아무렇지도 않게 빈 의자에 엉덩이를 내렸다.
멀뚱히 서 있는 카라마츠의 손을 잡아 끌여 옆자리에 앉힌 오소마츠가 저를 쳐다보는 사내들에게 멀쭉이 웃었다.
“오랜만이야~, 아저씨들.”
“올슨이냐. 오늘도 지려고 왔냐?”
“아니야~, 오늘은 좀 다르다구~. 내 승리의 여신을 데려왔으니까!”
“헛, 웬 도련님이냐?”
“이 녀석이 오늘 나를 승리로 이끌어 줄 승리의 여신~!”
“그건 두고 봐야지.”
카라마츠를 가리키며 ‘승리의 여신’이라고 너스레를 떤 오소마츠가 딜러가 나눠주는 카드를 집어들었다.
오소마츠가 하는 것을 따라 자신 앞에 던져진 카드를 집어든 카라마츠가 오소마츠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 이걸로 뭘 하면 되나?”
“음-, 적당히 하면 돼.”
“어이어이, 올슨. 규칙도 모르는 녀석을 끌고 오면 어쩌냐.”
“괜찮아~. 이런건 잃으면서 배우는 거잖아~? 일단 시작하자고? 나는 바로 100 올릴게.”
“오-, 오늘은 통이 큰데? 좋아, 나도 100 올린다.”
“나는 다이.”
“레이즈.”
오소마츠가 판돈을 올리고 바로 게임이 시작되었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따라 설명 듣지 못한 규칙을 홀로 추리해가며 게임에 집중했지만, 초심자의 행운(begninner’s luck)도 잠시.
카라마츠는 도박장에 들어오기 전 오소마츠가 나누어준 돈을 모두 잃고 오소마츠의 게임을 구경하는 처지가 되었다.
오소마츠는 선수들 사이에서 이기고 지는 것을 반복하다 막판에 맞은편에 앉은 아이에게 모든 돈을 뺏기고 말았다.
“아———!! 패는 좋았는데!! 올인하지 말걸~!!”
“잘 가라, 올슨. 네 여신은 가짜였던 모양이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하는 오소마츠를 조롱하는 사내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건넨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와 함께 의자에서 일어났다.
오소마츠는 돈을 챙기는 검은 피부의 아이를 흘겨보더니, 다음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아이를 불렀다.
“어이, 잠깐 따라 나와. 너.”
“오-, 올슨의 화풀이가 시작된 건가?”
“초보니까 너무 심하게 하진 말라고~.”
“나도 사람이야~? 심하겐 안 한다고~. 잠~깐 요 꼬맹이한테 인새의 쓴맛을 좀 보여주려고. 꼬맹아? 설마 이 올슨님의 돈을 전-부 따 먹어놓고 그대로 발 빼려고~?”
싱글싱글 웃으며 사내들에게 농담을 던진 오소마츠가 움찔거리는 검은 피부의 아이를 붙잡고 도박장을 나왔다.
뭘 하려는 거냐고 얼굴로 물어오는 카라마츠를 옆에 세운 오소마츠가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뒷골목에서 아이의 손을 놓고 가만히 아이를 응시했다.
“너, ‘라구엘’이지? 미란다 아주머니 아들.”
“네…? 저를 어떻게.”
“마이클 아저씨한테 들었어. 너말이야, 돈이 궁하면 도박장에서 딸 생각하지 말고 착실히 일을 해야지.”
“읏!! 그러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말아! 나는 빨리 돈이 필요해서…!!”
“그렇다고 도박~?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애가 도박은 너무 빠르다고. 오늘 딴 내 돈으로 당분간 버텨. 그리고 또 돈이 필요하면 마이클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해. 이자는 비싸게 받겠지만, 마이클 아저씨라면 반드시 도와주실거고. 그걸로도 모자라면 나도 도울테니까.”
“아-, 저 녀석만 없었으면 더 놀다 가는 건데.”
‘라구엘’이라는 아이를 보낸 후, 한숨을 내쉬며 다시 시장으로 나온 오소마츠가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오소마츠를 뒤따르던 카라마츠가 밝게 불을 밝힌 집들과 시장을 보고, 걸음을 재촉해 오소마츠의 옆에 섰다.
“오소마츠.”
“올슨.”
“올, 슨…. 혹시 아까 도박장 간 이유가 그 아이 때문인가?”
“응? 아니? 그냥 평범하게 도박이 하고 싶었을 뿐이야.”
“평범….”
“에—. 그렇게 깬다는 얼굴 하기~?”
너무나 가벼운 대답에 카라마츠가 황당하단 얼굴로 오소마츠를 가볍게 노려보았다.
그런 카라마츠를 보며 씩- 웃은 오소마츠가 “어때? 여기.” 하고 물었다.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번 둘러본 카라마츠가 조심스럽게 미소를 피웠다.
“좋은 것 같다…. 모두 활기차고…, 우리 나란 밤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오지 않으니까.”
“어? 그래?”
“이런 시간까지 불이 꺼지지 않은 곳은 아마….”
“…흐-응~. 그럼 갈까, 다음.”
“다음?”
성큼성큼 앞서 걷기 시작한 오소마츠를 놓칠새라 카라마츠가 발을 재촉했다.
“좋은 데가 있어~.” 하고 싱글벙글 웃은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와 함께 한 가게 앞에 섰다.
“여기…?”
“여기!”
망연히 서서 멍청히 물어보는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환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그곳으로 발을 들인 오소마츠가 당당하게 주인장을 불러 맥주를 주문했다.
이미 거나하게 취한 이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는 술집.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에게 손짓해 자신의 맞은편에 앉히고 검은 맥주를 건넸다.
“쭉 마셔!”
카라마츠가 잔을 받자마자 자신의 잔을 쭉 기울인 오소마츠가 빈 잔을 내려놓았다.
“크햐-!” 하고 술기운이 물씬 묻어나는 뜨거운 숨을 내뱉은 오소마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사 술집 한쪽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이들에게 다가갔다.
오소마츠가 건넨 팁으로 오소마츠가 신청한 민요가 연주되기 시작하고, 술에 빠진 이들은 그 음악에 따라 몸을 들썩거리며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새 ‘올슨’을 알아보고 다가온 이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마시기 시작한 오소마츠가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고, 떠들썩하게 잡담을 나누었다.
아직 비우지 않은 잔을 든 카라마츠는 도저히 오소마츠를 따라갈 수 없어 멍청히 자리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어이, 도련님~! 도련님도 마시라구~~!”
“아, 아뇨…. 저는.
“자, 자, 빼지 말고~! 올슨 녀석한테 끌려다니느라 고생했어~!”
“어이, 아저씨~! 내가 뭘 했다고 그래~!”
오소마츠와 함께 웃으며 떠들다 카라마츠에게 다가온 이들이 즐겁게 카라마츠와 오소마츠를 놀리기 시작했다.
오소마츠도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도록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웃었다.
오소마츠와 취한 이들의 강요에 할 수 없이 맥주 한 잔을 비운 카라마츠가 발개진 볼을 붙잡고 무리와 한데 뒤섞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즐겁게 활짝 웃으며 손님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눈가가 가늘게 휘었다.
무리에서 떨어져 앉아있던 오소마츠에게 또 다른 무리가 다가왔다.
오랜만에 마을을 찾은 ‘올슨’에게 안부를 건네는 이들에게 오소마츠도 잘 지냈냐는 인사를 건네며 슬쩍 현 생활은 어떠냐는 질문을 던졌다.
힘들다, 겨울은 견딜만 하다, 장사가 안 된다 등등 다양한 말이 나온 와중에 오소마츠의 이목을 끄는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요즘 공작가 하인들이 아주 오만방자해서. 우리 가게에 와서 온갖 진상짓은 다 하고 갔다니까.”
“아! 그건 우리집도야.”
“공작가에서 물건을 다 사가는 통에 우리는 죽겠어.”
좌우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평에 오소마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헤-.” 하고 건조한 감탄사를 흘리며 고개를 숙인 오소마츠의 얼굴이 어떤 얼굴인지, 취한 이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를 갈며 작게 “역시 공작 가가 문제인가….” 하고 중얼거리는 오소마츠의 목소리는 떠들썩한 이들의 소음에 묻혀 그 누구도 듣지 못했다.
4.
펜이 멈춘 종이에 까만 글자가 가득하다.
아버지에게 쓰는 편지.
그 편지에 대체 나는 뭐라고 써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오소마츠’라는 왕자는 도저히 종 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전장에서 훌륭히 병사들을 이끌고, 국경을 회복하는 업적을 세운 대단한 자인데….
평소에 보면 그런 인물로는 보이지 않는다.
장난스럽고, 대충에, 진지하지 않고, 바보같다.
하지만 가끔 굉장히 성숙한 얼굴을 보여준다….
묘하게 사람을 이끄는 매력이 있어,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어떤 불만도 없어 보인다.
함께 웃고 떠들고 즐겁게 있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멍청한 것인지 생각이 깊은 것인지, 타인에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톡톡, 펜을 종이에 두드리다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버리고 다시 편지지에 시선을 내렸다.
“…엩.”
하얀 편지지에 가득한 까만 글자는 전부 오소마츠에 대한 것.
필요 이상으로 오소마츠에 대한 설명이 많다.
괜히 얼굴이 화끈거려 재빨리 편지지를 접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새 편지지를 펼쳤다.
으레 하던 대로 정기적인 간단한 보고서를 써서 봉투어 넣었다.
“카라마츠 형?”
“토도마츠, 잠깐 산책 갔다 오겠다.”
마침 노크를 하고 들어온 토도마츠에게 편지를 건네고 한숨과 함께 침실을 나왔다.
오소마츠는 별궁 주변으로 한정한다면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좋다고 했다.
그 이후, 생각이 정리되지 않거나 답답한 기분이 들 때면 별궁 근처를 산책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마츠요 왕비님이 오지 않을 때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돌아 처치가 곤란할 지경이라 산책은 곧 하루 일정 중 내가 가장 기대하는 시간이 되었다.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는 아직 자는 중.
조금 전 막 해가 뜬 이른 시간이니 아직 침대 속에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오소마츠는 아침 일찍 눈을 떴을 때, 침실에 없었다.
일하러 본궁으로 간 것일까.
겨울 휴전 이후, 오소마츠는 지친 몸을 쉴 새도 없이 많은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감고 찬 새벽 공기를 들이마셨다.
고향에 있을 땐, 새벽 이슬이 사라지기 전에 눈을 떠, 이 찬 공기를 맞으며 훈련을 했었다.
붉은 왕국에 온 뒤로 검은 커녕 몸을 제대로 움직일 기회조차 없었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뻐근해져 오는 목과 어깨를 가볍게 스트레칭하고, 평소 걷던 길이 아닌 낯선 길로 들어갔다.
항상 산책하는 코스는 사람들이 다소 다녔던 길로 뚜렷하게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 뻐근한 몸을 조금이나마 풀고 싶어, 풀이 자란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길을 걷고 싶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은 자연히 보통의 길보다 조금 험하다.
돌이 치이고 풀을 헤치고 걸어가야 하는 길 속으로 들어서자, 보다 짙어진 풀내음과 함께 사람의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낮은 기합소리와 쇠가 쇠가 부딪치는 소리.
근처에 기사들의 훈련장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스스로 몸을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기사들이 훈련하는 모습만이라도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 싶은 마음에 기합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별궁의 뒤쪽, 넓게 정돈된 훈련장에서 내 예상대로 기사들이 검과 검을 맞부딪치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싸고 있는 갑옷을 입고, 재빠르게 움직이는 기사들을 눈에 담았다.
양날검을 휘두르고, 상대방의 검격을 피하거나 유연하게 흘러넘겨 갑옷 사이 급소를 벤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움직임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열 명 남짓한 기사들이 훈련을 하고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투구에 빨간 깃을 단 자가 제일 검술이 뛰어났다.
누구보다도 재빠른 움직임에 방패를 쓰는 것도 능숙하다.
무엇보다 순식간에 상대방의 검을 흘리며 몸을 돌려 급소를 치는 기술이 대단했다.
조용히 수풀 사이에 숨어 감탄하며 눈을 떼지 못하던 그때, 투구를 벗은 기사의 정체에 숨을 들이마셨다.
가장 검술이 뛰어난 붉은 깃의 기사.
그는 오소마츠였다.
열 명의 기사들과 모두 일대일 대전을 펼치고, 그에 모자라 갑옷을 입은 채로 온갖 체력 훈련을 하는 오소마츠는 우리 나라의 장군보다 더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 있었다.
땀에 젖은 머리칼을 뒤로 넘기고 투구를 옆구리에 낀 채로 기사들과 휴식을 취하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오소마츠는 엄연한 ‘왕자’이다.
그런데 기사들과 저렇게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건가…?
게다가 기사들보다 더 강도 높은 훈련에, 뛰어난 검술까지.
왕자가 갖춰야 할 기본 소양 이상의 실력을 가진 오소마츠에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감탄사를 늘어놓아도 부족할 것 같다.
“어이.”
“힛-!!”
“쉿! 조용히.”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어 절로 튀어나오는 비명을 간신히 삼켰다.
내 입을 틀어막고 제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 댄 이치마츠가 눈썹을 찌푸리고 나를 노려보았다.
이치마츠의 조용히 하란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자, 이치마츠가 내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내렸다.
“여기서 뭐해.”
“아니, 산책하다, 우연히….”
“그래-. 오소마츠 형인가….”
“아, 아아…. 기사들과 훈련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저런 검술 실력은 나도 못 당할 것 같아….”
“뭐, 그렇지-. 오소마츠 형은 노는 것 같아도, 맘만 먹으면 저렇게 제대로 하니까. 그래서 우리도 믿고 따를 수 있는 거고. 오소마츠 형은 어릴 때부터 저렇게 기사들과 함께 훈련해왔어. 만약의 상황이 왔을 때, 마음먹은 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어야 우리들을 지킬 수 있다면서…. 나같은 쓰레기, 지킬 가치따위 없는데 말이야.”
“그, 그런가….”
자조적으로 내뱉은 이치마츠였지만, 오소마츠를 향한 그 눈빛은 너무나 다정하고, 이치마츠가 얼마나 오소마츠를 신뢰하고, 존중하고 있는지 증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삼형제의 장남이지만, 나는 오소마츠에 비하면 그리 훌륭한 형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동생들을 이끌어 주어야하는데, 완전히 반대가 되어버렸고….
솔직하게 동생에게서 이런 무한 신뢰의 시선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부러웠다.
“…훌륭한 형님이네.”
“마,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거든?!”
“이, 이치마츠!! 쉿! 쉬잇-!!”
“아. 응….”
흥분해 갑자기 일어서려는 이치마츠를 끌어내리고 다급히 ‘쉿’을 외쳤다.
정신을 차린 듯, 멋쩍은 얼굴로 몸을 웅크린 이치마츠가 휴식을 마치고 다시 훈련을 시작하려는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3일에 한 번씩, 아침 일찍 저렇게 훈련해…. 그러니까, 보고 싶으면 보던가.”
“아, 응…. 고맙다. 이치마츠.”
“별로.”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썹을 찌푸린 이치마츠가 다시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이치마츠가 돌아가고 그 후로 한 시간, 오소마츠의 훈련이 이어졌다.
이치마츠의 말대로 오소마츠는 3일 간격으로 기사들과 훈련했다.
너무나 기분좋게, 그리고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오소마츠의 모습이 눈에서 떠나지 않아, 오소마츠가 훈련을 하는 날이면 항상 훈련장 구석 수풀 속에서 그 모습을 구경했다.
훈련을 몰래 훔쳐 본 것이 딱 4번째가 되었을 때, 중간 휴식에 들어간 오소마츠가 망설임 없이 내가 몸을 숨기고 있는 수풀 쪽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구경만 하지 말고 같이 하자.”
“…눈치 챘었나….”
“옛날 옛적에 말이지.”
“….”
그대로 오소마츠에게 끌려 드세르 차림으로 기사들 앞에 섰다.
남자인데도 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에 기사들은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지만, 자신의 친구라는 오소마츠의 소개에 곧 웃는 얼굴로 나는 맞이했다.
오소마츠가 건네준 끝이 뭉특한 훈련용 검을 받자마자, 오소마츠가 훈련장 중앙에 나를 세웠다.
오소마츠와 기사들과 나란히 서서 드레스 차림으로 검을 휘둘렀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는 기쁨과, 검을 휘두를 때마다 자신의 존재를 자랑하는 근육, 팔의 움직임, 검의 흐름에 따라 발빠르게 움직이는 몸이 너무나 오랜만이여서, 그래서 기뻐서, 내가 드레스를 입고 있다는 것도 잊고 오소마츠를 따라 검을 휘둘렀다.
기사들도 버거워하는 고난이도 훈련을 어떻게든 뒤쳐지지 않고 따라가자, 기사들은 제법 놀랐 얼굴로 내게 칭찬의 말을 던졌다.
그 동안 움직이지 않아 떨어진 체력 덕분에 헐떡이는 숨을 몰아 내쉬고, 칭찬에 감사 인사를 건네자 기사들의 얼굴에 짓궂은 미소가 번졌다.
“우리 왕자님이랑 싸워서 이기는 거 아냐? 공주님.”
“에이-, 설마아~.”
“아냐. 이 정도 실력이면 가능성 있겠는데?”
“어때? 왕자님~? 한 번 대결해 보는 건?”
“무서워서 못하겠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저마다 한 마디씩 실례가 될 수도 있는 짓궂은 말에 오소마츠가 쓴웃음을 피우고 다가왔다.
“어이어이, 나를 너무 얕보는 거 아냐~?”
“내기할까?”
“좋아! 그럼 나는 공주님께 걸지!”
“나는 왕자님.”
“나는 공주님. 공주님, 꼭 저 콧대 놓은 왕자님을 꺾어줘!”
“할 수 없네~. 좋아. 공주님~, 이쪽으로.”
“엩.”
오소마츠의 대답에 걸렸다는 듯이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린 기사들이 모여 내기를 시작했다.
신나게 떠들어대는 기사들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나를 보고 눈짓했다.
훈련장 한가운데, 서로 마주보고 섰다.
긴장된 공기가 발 아래를 기어다니고, 우리를 지켜보는 기사들 또한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깊은 심호흡을 한 번, 그리고 기사의 신호에 맞춰 오소마츠에게 달려들었다.
챙-, 하고 검이 맞붙고, 오소마츠가 깔끔하고 신속하게 몸을 돌려 내 검을 피했다.
확실하게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칼을 흘러버리고 몸을 돌려 칼을 내려치지만, 오소마츠의 칼에 막혀버리고 말았다.
손 안에서 자유자재로 칼을 놀리며 내게 맹공격을 퍼붇는 오소마츠의 기세에 방어를 하는 것이 전부.
틈을 보여 찌르려 해도 오소마츠는 한 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차칵, 하고 내 손을 떠난 칼이 바닥에 꽂혔다.
내게 칼을 겨누고 거친 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오소마츠의 공격을 피하려다 스텝이 꼬여 바닥에 주저앉은 내가 보면 어느새 높이 뜬 햋빛을 가득 머금은 오소마츠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괜찮아~? 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열중해 버려서~.”
검을 휘두르던 때의 박력은 어디로 날려버리고 평소와 같은 장난스러운 말투로 내게 손을 내민 오소마츠의 모습에 어쩐지 가슴이 아팠다.
꼭 심장을 밧줄로 동여매서 꽉 조이는 듯한, 생전 처음 느끼는 감각에 가슴에 손을 올리고 눈썹을 찌푸렸다.
두근 대는 심장은 “어디 다쳤어?” 하고 걱정스럽게 물어오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그 속도를 더했다.
환하고 따뜻한 햇빛 아래서, 오소마츠의 미소 하나로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착각에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 믿기지 힘들겠지만, 츤데레 이치마츠였습니다ㅎㅎ
* 노말 오소마츠의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ㅎㅎ
* 오소른 50제는 내일 한편 올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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