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 초창기 때 올린 부끄러운 단편 「마지막 포옹」의 속편입니다.

 전편을 보고 오시는 게 이번 단편을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요...(머쓱)


* 이치마츠랑 오소마츠 나이차가 많이 나요... (먼산)


* 이치마츠가 많이 부정적(?) 입니다..


* 공미포 8,206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끼익-, 끼익-, 끼익-.

낡은 의자의 등받이가 기울며 내지르는 비명에 눈썹을 찌푸렸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귓가에 흘러들어오는 소음에 펜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무시하려해도 그럴 수 없는 짜증하는 소음에 결국 명단에 쓰인 이름을 하나씩 확인하며 내리던 눈을 들어올렸다.


“오소마츠.”

“응~?”

자신을 왜 불렀는지 뻔히 다 알고 있으면서 ‘난 아무것도 모르오’ 하는 얼굴로 되묻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참았던 한숨이 나왔다.


“땡땡이 좀 적당히 쳐. 일지에 네 이름이 빠진 날이 없잖아.”

보건실을 찾아온 학생들의 이름이 쓰인 일지를 펜으로 툭툭 두드리며 핀잔을 주자 오소마츠가 팩 고개를 돌렸다.


“재미없는 걸~, 수업 같은 거….”

‘헹’ 하고 콧방귀를 끼면서 어깨를 으쓱하는 저 녀석을 어쩌면 좋을까…. 

요근래 늘은 한숨을 다시금 내쉬며 일지를 훑어보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보건소를 찾은 오소마츠의 이름 옆에는 감기, 현기증, 염좌 등등 다양한 사유의 꾀병이 적혀 있다. 

멋대로 찾아와 일지에 이름도 쓰지 않은 날도 많으니 오소마츠가 보건실에 발을 들이는 시간은 더 많겠지….


“하아….”

“이치맛쨩~, 한숨 쉬면 복 달아난다~?”

자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태평한 소리를 하는 오소마츠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고 작은 싱크대로 향했다. 

빨간색과 보라색의 머그컵에 인스턴트 커피 가루와 뜨거운 물을 부었다. 

빨간색의 머그컵에 하얀 각설탕 2개를 떨어뜨리고 티스푼으로 휘휘 저어 오소마츠에게 건네자 “땡큐~.” 하고 발랄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블랙 커피가 담긴 보라색 머그컵을 들어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일지를 넘겼다. 

집중해 일지를 정리하고 있으면 옆에서 ‘후~’ 하고 커피를 식히는 오소마츠의 숨소리와 ‘후룩’ 하고 커피를 들이마시는 소리가 귀에 걸렸다. 

무엇을 해도, 일에 집중해도 무시할 수 없는 오소마츠의 기척에 자신에게 쓴웃음을 돌리고 일지 정리를 끝냈다.


“끝났어?”

“응. 일단은.”

일지를 약품이 가득한 장식장 구석에 꽂고 흰 가운을 벗어 옷걸이에 걸자 오소마츠가 눈을 반짝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활짝 웃으며 이제 놀자는 얼굴을 하고 다가오는 오소마츠에게 또다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치마츄~, 그렇게 한숨 쉬면 늙는다?”

“누구 때문인데.”

“나?”

“그래.”

“헤헤헤—.”

멋쩍게 웃으며 코밑을 문지르는 오소마츠는 10년 전과 무엇하나 변하지 않았다. 

조부모 댁이 있는 작은 마을. 

그 마을 뒤에 있던 깊은 숲에서 만난 오소마츠는 1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과거와 똑같은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다.


“반에서 친한 친구, 없어…?”

이 학교에 정을 붙이지 못한 것일까, 조심스럽게 묻자 오소마츠가 고개를 슬쩍 저었다.


“어울려 다니는 녀석들은 있어~. 재미는 별로 없지만….”

“하아….”

“그치만 말이야, 이치맛쨩~! 내가 훨씬 연상이라구? 이 학교에 다니는 녀석들보다 말이야-. 내가 정신연령이 더 높은데 쉽게 친해지는 건 무리라구~.”

새침하게 볼을 부풀리고 ‘정신 연령’ 운운하는 오소마츠의 말에 얼이 빠졌다. 

숲 속에서 여우 ‘콘’과 함께 뛰놀며 장난을 밥 먹듯 하던 오소마츠를 떠올리면 도저히 오소마츠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정신 연령이 높다니…, 그 때나 지금이나 오소마츠의 정신 연령은…,


“그렇게 높지 않잖아…. 정신 연령.”

“뭣! 아냐!! 높다구~!!”

입술 밖으로 새어나온 말에 오소마츠가 달려들어 항의했지만 뻣뻣하게 굳은 고개는 끄덕여지지 않았다. 

가만히 있는 나를 보고 오소마츠는 분이 찼는지 왜 자신의 정신 연령이 높은지 그 이유를 들기 시작했다. 

이유답지도 않은 이유를 들며 자신의 높은(웃음) 정신 연령을 어필하는 오소마츠를 언제 말려야 하나 때를 보고 있을 때, 노크도 없이 보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녀석이 있었다.


“오소마~~츠?”

“히익—!!”

소매를 걷어올리고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실내용 슬리퍼를 끌고 들어온 녀석은 오소마츠의 담임인 카라마츠였다. 

곧잘 사고를 치고 보건실에 숨는 오소마츠 덕분에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잡으러 보건실에 오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이번엔 뭐야?”

“청소 땡땡이다.”

가차없이 오소마츠의 목덜미를 잡아 끌고 나가는 카라마츠에게 가볍게 묻자 카라마츠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보다 덩치가 큰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는 속절없이 끌려가며 울상이 된 얼굴로 나를 불렀다.


“이, 이치맛쨔앙~!!”

“가서 청소하고 와.”

“너무해!!”

도와달라는 오소마츠의 부름을 무시하고 손을 휘적여 배웅하자 오소마츠가 눈을 찡그리고 외쳤다. 

저런 모습을 보면 도저히 나보다 오래 산 존재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질질 끌고 나가며 “다음에 보자, 브라더-.” 하고 지 나름의 멋진 포즈를 취하더니 오소마츠와 함께 보건실을 떠나갔다. 

닫힌 보건실 문 너머로 복도로 끌려가는 오소마츠의 외침이 들려왔다.


처음 만났을 때 모습 그대로인 오소마츠. 함께 숲속에서 놀았던 오소마츠는 한 번 죽었다. 

인간이 아니었던 오소마츠에게 ‘죽었다’ 라는 표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것이 오소마츠의 ‘죽음’으로 받아들여졌다. 

반딧불처럼 작은 빛이 되어 사라진 오소마츠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매년, 오소마츠가 사라졌던 그 여름이 다시 돌아오면 매일 오소마츠를 생각했다. 

다시는 볼 수 없을 나의 어린 첫사랑을 떠올리고, 행복했던 기억과 상실의 아픔을 되새기며 17년을 보냈다. 

오소마츠를 떠나보낸던 그때의 나이와 똑같은 햇수를 보냈던 내게 설마,


“이번엔 내가 널 만나러 왔어. 이치마츠.”


오소마츠가 돌아올 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나와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인간이 되어 다시 태어난 오소마츠는 내 기억에 남아있던 그 모습 그대로 내 앞에 나타났다.

그 얼굴 그대로, 그 목소리 그대로 나를 부르는 오소마츠. 


그리고 달라진 나.



오소마츠는 변하지 않은 태도로 나를 대했고, 서스럼없이 내게 다가왔다. 

어릴 적엔 너무나 기뻤던 오소마츠의 그 모습이 지금은 순수하게 기뻐하며 받아들일 수 없다.


“선생과 학생이라니…. 아침 드라마도 아니고….”

하하, 마른 웃음을 흘리며 가능성을 외치는 자신의 작은 소망을 짓눌렀다. 

17년. 

자그마치 17년이라는 차이가 생겼다. 

오소마츠와 나 사이에. 그저 혼으로서 존재했던 오소마츠에게 나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오소마츠는 나보다 훨씬 연상이었다. 

나의 할아버지의 형제이자 버려진 아기. 

몇 십년은 가볍게 뛰어넘는 차이가 왜 지금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것일까. 

서른을 넘은 아저씨인 나와 한창 청춘을 누리고 있을 오소마츠 사이에, 내가 품고 있는 감정은 있어서는 안되는 죄악과 같은 것이다.


어리석은 미련은 서둘러 접어야만 한다. 

몇 번째인지 모를 다짐을 자신에게 새기며 눈을 감았다.






2.


하품을 하며 눈을 비볐다. 

하늘은 벌써 깜깜하고 달빛이 겨우 학교 운동장을 비추고 있었다. 

일지 정리에 다음주에 있을 보건 교육까지 준비하다보니 어느새 밤 8시가 가까워졌다. 

이렇게 학교에 오래 남아있을 때는 항상 피로가 무겁게 어깨를 누른다. 

딱딱하게 굳은 목과 어깨를 두드리며 정문을 막 나섰을 때, 익숙한 인기척에 눈썹을 구겼다.


“아.”

“오소마츠….”

“헤헤.”

정문에 기대 발치에 놓인 돌멩이를 차던 오소마츠는 실실 웃으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늦는다구, 이치마츄~.”

“누가 멋대로 기다리래….”

한숨을 섞어 말하자 오소마츠가 배시시 웃으며 코밑을 문질렀다. 

“이치마츠 집에 놀러가고 싶어서~.” 하고 장난스럽게 말하는 오소마츠의 머리에 가볍게 쥔 주먹을 내렸다.


“아얏.”

“늦은 데다가 학생이 함부로 선생님 집에 가는 것도 안 돼.”

너무나 당연한 소리인데도 오소마츠는 “에이~~.” 하고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 후엔 예상했던 대로 오소마츠는 내 팔을 잡고 흔들며 가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다. 

그 나이에 맞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조르는 오소마츠에게 이긴 적은 없다. 

나는, 과거의 오소마츠는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아이다운 모습에 약했다.


“하아…, 잠깐만 있다가 가. 부모님께는 지금 연락드리고.”

“응~! 이치맛쨩, 싸랑해~!!”

어쩔 수 없이 끄덕이는 나를 향해 오소마츠가 밝게 웃으며 팔을 활짝 벌렸다. 

그대로 품에 뛰어드는 오소마츠의 머리를 밀어내 막아내고 오소마츠의 얼굴을 보지 않고 집을 향해 앞장서 걸었다.



“이치마츠우~, 냉장고가 너무 추운데-.”

“…요리 안 하니까.”

오늘 길에 편의점에서 산 도시락을 전자렌지에 돌려 간이 책상에 내려놓으며 냉장고를 열어 보는 오소마츠에게 답했다. 

냉장고에는 생수와 맥주 캔 몇 개가 전부. 내 대답에 얼굴을 구기고 다가와 마주앉은 오소마츠가 도시락 통을 열면서 나를 응시했다.


“너무 편의점 도시락만 먹으면 건강에 안 좋다구~.”

“네네.”

자신보다 훨씬 어린 오소마츠의 잔소리에 픽-, 잔웃음이 새어나왔다. 

오소마츠는 내 웃음 소리를 못 들은 것인지, 무시하는 것인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무 젓가락을 반으로 쪼개고 있었다. 

그저 그런 편의점 도시락을 함께 먹으며 실없는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오소마츠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있었던 일이나 땡땡이 쳤다가 카라마츠에게 붙잡힌 일을 신나게 늘어놓고 내가 거기에 맞장구를 치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더러운 행복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학생과 단 둘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니…. 

자신의 역겨움에 조소를 날리며 오소마츠의 목소리를 마음에 담았다. 

언젠가, 오소마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날이 올테니까.


“우리 부모님은,”

“응?”

조용히 오소마츠가 만들어내는 음악을 듣다가 낯선 단어에 고개 들었다. 

‘부모’ 라는 단어가 오소마츠 입에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치마츠 엄청 마음에 들어하시던데. 이치마츠 집에 간다니까 늦게 와도 괜찮다고 했고.”

“에….”

어쩌다 한 번,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 나를 기다리던 오소마츠를 집까지 데려다줬을 때를 떠올렸다. 

오소마츠를 걱정했던 오소마츠의 부모님이 현관 앞까지 나와 오소마츠를 맞이하며 잠깐 인사를 나눈 것이 전부였는데, 어째서 그들은 나를 믿는다는 말을 한 것일까.


“오소마츠, 네가 너무 좋은 말만 한 거 아니야? 나같이 음침하고 별 볼일 없는 아저씨를 좋게 생각할 리 없잖아.”

“아냐~! 이치마츠 칭찬을 좀 하긴 했지만, 저번에 봤을 때 이치마츠가 선량해 보인다고 그랬다구.”

분에 넘치는 오소마츠 부모님의 평가에 젓가락으로 집어들었던 가라아게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부모님’이라는 거, 되게 재미있다? 막, 사랑해주고 돌봐주고 그래서 말이야. 그게 기쁘긴한데, 가슴이 막 간지럽다고 해야하나….”

익숙하지 않은 감정을 서투르게 전한 오소마츠가 쑥스럽게 웃었다. 

홍조가 옅게 핀 얼굴로 순수하게 웃는 오소마츠를 도저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오소마츠가 ‘부모’에 익숙치 않은 이유를, 숲에 버려진 이유를 알고 있으니까. 

입이 많다는 이유로, 식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오소마츠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다. 

나의 고조부의 손에. 원망하고 증오해도 모자란 판에 오소마츠는 그 자손인 나를 아껴주었다. 


나 때문에, 사라지게 되었는데도.



다 먹은 도시락을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는 오소마츠를 억지로 일으켜 가방을 안겨주고 현관으로 내몰았다. 

더 있다가 가고 싶다는 오소마츠의 투정에도 단호히 고개를 젓자, 뽀로통한 얼굴이 된 오소마츠가 소매를 잡아끌었다.


“그럼 내일 놀러와도 돼? 주말이니까 하룻밤 자고 갈래.”

원하는 것이 있으면 큰 소리로 떼쓰던 오소마츠답지 않은 작은 목소리였다. 

어딘가 힘이 빠진 목소리가 걱정되었지만 그렇게 하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남의 집에서 쉽게 자고 그러면 안 돼.”

“이치마츠는 ‘남’이 아니잖아!”

울컥해 목소리를 높이며 고개 든 오소마츠가 나와 눈을 맞추고 입술을 깨물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지 애처롭게 깨문 입술을 떨며 뻐끔거리던 오소마츠는 거세게 머리를 흔들고 방긋- 웃었다.


“알겠어…. 그럼 어른이 되면 꼭 재워주기다!”

“…그래.”

새끼 손가락을 내미는 오소마츠에게 손가락을 걸었다. 

약속을 했다는 것에 만족했는지 오소마츠는 더 보채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오소마츠가 떠난 어두운 현관에 남은 나는 허탈한 한숨을 땅에 내렸다.






3.


얼굴 좀 보자는 부모의 연락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근처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카라마츠와 함께 소환된 주말. 

본가로 가는 길목에 있는 번화가를 지마녀 한숨을 푹- 내쉬자 카라마츠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치마츠.”

“왜.”

쓸데없이 목소리에 힘을 준 카라마츠에게 사납게 대답하자, 카라마츠가 어깨를 움츠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마츠노 말이다.”

“….”

카라마츠 입에서 나온 이름에 몸에 힘이 들어갔다. 

뻣뻣하게 굳은 다리를 억지로 자연스럽게 움직여 카라마츠와 함께 걸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어, 마츠노가 왜.”

“반에 잘 적응을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

“클래스 메이트와 어울리는 것을 보면 여느 학생과 다르지 않지만, 가끔 뭔가 이질감을 느끼는 것 같아서 말이야. 이치마츠에게 마음을 연 것처럼 담임인 내게도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오소마츠의 담임으로서 자연스럽게 가지는 카라마츠의 걱정에 숨이 막혔다. 

여기서 나는 카라마츠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카라마츠에게 들키지 않도록 심호흡을 하고 볼 안을 지그시 깨물었다.


“별로 마츠노랑 그렇게 친하진 않은데….”

작게 중얼거리듯 대답하자 카라마츠가 멍청히 손을 세워 저었다.


“응? 친하잖아. 퍼스트 네임으로 부르지 않나.”

“아니…. 그건 어쩌다보니 그런거고…. 그 녀석이나 나나 ‘마츠노’니까….”

“그건 그렇지만 이치마츠, 네가 꾀병을 허락해주는 건 마츠노 뿐이잖아.”

“칫, 닥쳐. 개똥마츠.”

“어째서 갑자기!?”

이럴 때만 진짜 쓸데없이 날카로운 개똥마츠 멱살을 가볍게 잡아주고 거칠게 내쳤다. 

구겨진 옷을 다듬으며 나를 따라잡은 카라마츠는 눈치 없이 오소마츠에 대한 걱정을 다시 입에 담았다.


“나는 걱정이다, 이치마츠.”

“또 뭐.”

“마츠노와 너무 친하게 지내는 것이 말이야.”

“…그러니까 별로 안 친하다고.”

“학생들은 졸업하니까 말이야. 마츠노가 졸업한 후에 네가 상처받을 것 같다.”

“…안 받아.”

학교라는 좁은 준사회 안에서의 학생과 선생 사이의 친분은 학생이 졸업하고 끝이 난다. 

그것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카라마츠에게 토 나올 정도로 고마움을 느끼며 단언했다. 

그제야 뭔가를 알아챘는지 카라마츠가 시끄럽던 입을 다물었다.


“아.”

“또 뭐냐.”

5초 지나자 다시 열린 카라마츠 입에 솟구치는 짜증을 가득 담아 노려보자 카라마츠가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아무 것도 아니다.”

말로는 아무 것도 아니라면서 눈으로 어딘가를 뚫어지라 보는 카라마츠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아.”

새어나온 것은 한탄에 비슷한 소리. 번화가 오락실 앞에 모여있는 학생 무리 가운데, 오소마츠가 즐겁게 웃고 있었다. 

아이처럼, 환하고 즐겁게, 천진난만하게, 티없는 밝은 웃음에 숨이 멈췄다.


“이치마츠, 마츠노가 손 흔들고 있는데.”

“알아. 가자.”

“엩.”

나와 카라마츠를 알아본 오소마츠가 그 해맑은 미소 그대로 손을 힘차게 흔들었지만 눈을 돌렸다. 

카라마츠는 자신을 잡아끄는 내게 당황하며 나를 뒤따랐다.



그 모습이, 또래 친구들과 아무 걱정없이 웃고 놀는 그 모습이 오소마츠의 ‘본모습’이다. 

오소마츠가 ‘본래 가져야 할 모습’이다. 

나 같은 아저씨에게 친근하게 구는 게 아니라, 저렇게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이.


새삼스럽게 깨달은 현실에 헛웃음을 보내며 침대에 누웠다. 

짙은 회색의 낡은 천장을 응시하며 새어나오는 자조에 배를 잡았다.

알면서 외면하고 있던 것이 거대한 망치가 되어 머리를 내리쳤다.



새롭게 얻은 오소마츠 인생에,


나는 방해다.



과거의 잔재나 마찬가지. 

나도,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마음도. 지금의 오소마츠에겐 불필요한 것이다.


“하하하.”

어리석은 희망을 품었던 자신에게 터져나오는 웃음을 돌렸다.


내가 뭐라고.

오소마츠에게 특별한 존재가 될 것이라 생각했는지.


마른 웃음이 서서히 작아지면서 내뱉는 숨에 눈물이 고였다.


“젠장.”


눈을 숨긴 소매가 천천히 젖어들었다.






4.


끔찍했던 주말을 보내고 일어나고 싶지 않은 자신을 채찍질해 집을 나왔다. 

장마처럼 쏟아지는 굵은 비가 우산에 시끄럽게 부딪쳤다. 

두두둑, 귓가에 울리는 소리로 마음을 달래며 눅눅한 보건실 의자에 엉덩이를 내렸다.



3교시가 끝나는 종소리를 들으며 머그잔을 들어올렸다. 

오늘 보건실에 온 학생은 1명. 체육 시간에 발목을 접지른 학생 한 명뿐이다. 

점심 시간 전에 반드시 한 번은 얼굴을 비추던 오소마츠는 아직 오지 않았다.


어제 그렇게 노골적으로 무시했으니 오지 않는 것도 당연한가.

그래…, 이게 정상이다.

잘 된 거야.


그렇게 속삭이며 한숨을 내쉬었을 때, 정중한 노크소리가 울렸다.


“네.”

짧은 대답에 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카라마츠였다.


“무슨 일이야?”

오소마츠를 잡으러 올 때 말고는 보건실에 얼굴 비춘 적 없는 카라마츠의 등장에 고개를 기울였다. 

어디 다친 것인가 싶어 전체적으로 훑어보아도 카라마츠는 멀쩡했다.


“그…, 마츠노가 오늘 등교하지 않았다.”

“어, 디 아픈 거 아냐?”

“마츠노 부모님에게 그런 연락은 없었다…. 마츠노와 같이 다니는 학생들에게 물어보아도 모른다고 해서 말이야…. 혹시 이치마츠, 너는 뭔가 들은 게 있을까 해서.”

“아니…, 나도 모르겠는데….”

“그, 런가.”

오소마츠가 학교에 오지 않았단 말을 들은 순간부터, 자신이 제대로 숨을 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떠듬떠듬 뭐라 대답하자 카라마츠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일을 방해해서 미안하다며 눈썹을 늘어뜨린 카라마츠가 보건실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호흡은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악몽을 꾼다.

되돌아온 오소마츠가 다시 사라지는 꿈을.

과거에 멍청했던 나 때문에 사라진 오소마츠가 또 한 번 내 눈앞에서 사라지는 꿈을.

어딘가 자유롭고 가벼워보이는 오소마츠는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어느날 홀연히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현재도, 인간이 되어 나와 같은 시간, 나와 같은 장소에 존재하는 지금도…. 

오소마츠는 이곳에 있지만, 눈을 감았다 뜨면 사라지는 게 아닐까 하는 바보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점점 짙어지는 불안에 다리의 떨림이 커졌다. 

입이 바싹 마르고 숨이 가빠졌다. 

나도 모르게 꽉 진 주먹에 손바닥에 손톱이 박혔다. 



설마,


오소마츠는 또 내 앞에서 사라지는 건가…?



솟아오른 눈물이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의자에서 거칠게 일어났다. 

그 반동으로 의자가 넘어지는 소음에도 발을 멈추지 않고 보건실을 뛰쳐나왔다. 

외출중이라는 팻말을 다는 것도, 문을 잠그는 것도 잊은 채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복도를 뛰었다.




내리 쏟는 비를 뚫고 마을을 돌아다녔다. 

흰 가운이 다 젖어도 오소마츠를 찾을 때까지는 멈출 수 없었다. 

번화가, 오소마츠의 집 근처, 내 집, 학교 근처, 뒷골목 등등. 사방을 뛰어다녀도 오소마츠는 보이지 않았다. 

터덜터덜, 다 젖은 슬리퍼를 끌고 허망하게 걷다가 자신이 역앞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순간 도박을 했다.

오소마츠가 그곳에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시골로 향하는 열차표를 샀다.

오소마츠와 처음 만났던 그 숲을 향해, 여우에 홀린 것처럼 걸었다.






5.


“이치마츠.”

성공한 도박에 어이없는 환희를 보내며 오소마츠 앞에 섰다. 

나보다 작은 몸은 비에 쫄딱 젖어 잘게 떨리고 있었다. 

형제들과 떨어져 길을 잃은 내가 울고 있던 곳, 오소마츠와 처음 만난 그곳에, 오소마츠는 홀로 서 있었다.


“오소마츠, 돌아가자.”

얼음장처럼 차가운 오소마츠의 손을 잡자, 오소마츠가 천천히 고개 들었다. 

젖은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눈은 슬픔에 가득차 일렁이고 있었다.


“이치마츠…, 이치마츠는, 내가 싫어졌어?”

“에…,”

“내가, 방해야?”

떨리는 목소리는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슬픔에 잠겨 흔들리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모든게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절대 아니야.”

격렬하게 고개를 저으며 오소마츠의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나는 대체 얼마나 쓰레기인 거지?

비겁하게 숨고, 피해서 오소마츠를 상처입히기나 하고.

혼자 안고 있는 불안을 오소마츠에게 전염시키면 어쩌자는 거야!


자신을 향한 분노에 이를 악물고 하염없이 고개를 저었다.


“오소마츠가, 방해일 리 없잖아.”

대답하는 목소리가 울먹였다. 

서른도 넘은 아저씨가 볼썽사납게 질질 울면서. 

하하, 마른 웃음을 삼키고 오소마츠에게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


“미안해. 불안하게 만들어서, 미안. 내게 가장 소중한 건, 중요한 건 오소마츠야.”

울음에 갈라진 목소리로 필사적으로 전했다. 

내게 그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것은 오소마츠, 너라고. 

몇 번이고 속삭이자 오소마츠가 눈을 깜빡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왜 안아주지 않는 거야-. 이젠 사라지거나 하지 않는데.”

원망이 담긴 오소마츠의 투정에 피식- 실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바닥을 파헤치는 오소마츠의 날카로운 질문에, 자신의 한심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오소마츠의 차가운 손에 조금이라도 온기가 돌기를 소망하며 오소마츠의 손을 어루만졌다.


“무서워서…. 오소마츠가 다시 사라질 것 같아서.”

빗물과 섞여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이 투두둑, 한꺼번에 떨어졌다.

 자신의 한심함에 스스로도 기가 막혀 눈물과 함께 헛웃음이 흘렀다.


“이치마츠는 처음 만났을 때도 이렇게 엉망으로 울고 있었는데 말이야—.”

후후, 장난스럽게 흘리는 오소마츠의 웃음 소리에 어깨를 늘어뜨렸다.

 어느새 ‘연상’의 얼굴을 한 오소마츠는 작은 손을 들어 내 눈가를 닦아주었다. 

상냥하고 부드러운 손길에 바보같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오소마츠는 나를 향해 빙긋- 웃더니 두 팔 벌려 나를 자신의 품에 안았다.



“나는 이치마츠랑 더, 더~ 많이 이야기하고, 놀고, 또 더 많이 안고 싶어.”



귓가에 속삭이는 행복을 강하게 껴안았다. 순수한 ‘오소마츠’의 바람에 사랑스러움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추적추적 내리는, 그치기 시작한 빗속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두번째 포옹이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음주는 무사히 다 쓴다면 오소른 단편 하나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분량이 많을 것 같아서 다 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요... (2만자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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