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픈 오소 합작'에 냈던 단편입니다.

 제글 말고도 존잘님들의 글과 그림이 많아요!

   https://eve13621.wixsite.com/sickoso


 * 약한 장남, 아픈 오소마츠입니다.


 * 공미포  14,775자.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히나 선배님….”

후배의 부름에 정리하던 차트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바로 저번 주에 이 병원에 와서 모든 일이 서투른 신입 후배

울상이 된 얼굴에 푹- 한숨을 내쉬고그 환자분?” 하고 물었더니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들고 있던 차트를 가슴께에 꼭 끌어안고 비 맞은 강아지마냥 도움을 요청하는 눈길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다시금 커다란 한숨을 내쉬고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후배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보고 쓴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시골, 한적한 동네에 세워진 병원. 물 맑고 공기도 깨끗한 이곳은 평범하지 않은 환자들이 머무르는 곳이었다

먼지 가득하고 사람 냄새에 찌든 도시에서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 아주 작은 일말의 희망을 품은 사람들,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이곳

경력 5년에 겨우 신입 딱지를 뗀 내가 근무하는 이곳에 여느 환자들과 다른 색을 띤 한 환자가 있었다.

 

노크도 없이 개인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언제나 그랬듯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나를 맞이했다

침대에 둘러 모여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리고 있는 아이 중엔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할 아이도 섞여 있었다

오늘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땅이 꺼지라 내쉬고 허리에 손을 올렸다.


유카! 오늘 검사 남아있었죠? 그리고 치요도! 유우는 오늘 점심도 안 먹었는데 여기 와 있는 거예요?”

발을 동동 굴리며 웃던 아이들이 어깨를 홱 움츠렸다

접시라도 깬 어린아이처럼 나를 흘끗 보더니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웅얼거렸다

쓴웃음을 짓고 짝! 소리가 나도록 손뼉을 치자 아이들의 눈이 모였다.


! 각자 자기 병실로 돌아가세요~, 얼른!”

-.”

….”

알겠다구요-!”

가볍게 항의하듯 대답한 아이들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 와중에 또 오겠다며 손을 흔드는 것까지 막아야 하나, 가볍게 고민하며 병실 안으로 걸어갔다.


마츠노 씨?”

—! 오늘도 고생이 많네요, 간호사 누나!”

배시시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청년의 이름은 마츠노 오소마츠

겨우 3개월 만에 이 병원에 있는 모든 아이의 마음을 빼앗은 애같은 사람이다.

헤헤-.” 하고 멋쩍게 웃는 모습에 슬쩍 눈썹을 찌푸리고 엄한 아버지처럼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이 병원에 있는 아이들은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정말 큰일 나니까 너무 자극하지 말아 달라고 했을 텐데요?”

—? 그럼 심심하잖아~. 이 정도는 괜찮아요~. 겨우 딱지치기고.”

팔에 힘도 없는 사람이 무슨 딱지치기를 하고 있어요.”

아직 그 정도 힘은 남아있습니다아~. 간호사 누나가 마사지를 해주면 더 힘이 날지도 몰,”

그럴 일 없습니다.”

-.”

입을 삐죽 내밀고 토라지는 모습이 영락없는 초등학생이었다

과장되게 어깨를 들썩여 숨을 내쉬고 병실 구석에 놓인 휠체어를 끌고 침대로 다가갔다.


, 검사받으러 가셔야죠.”

~.”

대답 하나는 잘 하는 마츠노씨를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내자 앙상하게 마른 다리가 드러났다

처음, 이 병원에 왔을 때는 이렇지 않았던 다리

자신의 다리로 걸을 수 있었고, 병원 곳곳을 돌아다녀 검사 시간마다 마츠노씨를 찾아다녔던 그때는 그렇게 먼 과거가 아니었다

술렁이는 가슴을 꾹 누르고 입술 안쪽을 깨물고 마츠노씨가 일어나는 것을 부축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움직여 휠체어에 안전히 앉은 것을 확인하고 병실을 나왔다.

검사 기계가 있는 방까지 긴 복도를 지나가는 그 짧은 시간에도 마츠노씨는 입을 바쁘게 움직였다.


이번에 애들이랑 학이었나? 그거 접기로 했는데-, 그것도 안 된다고 할 거예요?”

그 정도는 괜찮아요.”

앗싸~. 그럼 내일 색종이 좀 가져다줘요~~.”

부탁하는 사람이 그 태도는 뭐에요?”

간호사 누나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어서 그래요!”

“…할 수 없네요.”

햐호~! 역시 간호사 누나!”

밝게 활짝 웃는 얼굴에 끌려 나도 모르게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검사실에 들어가 의사 선생님께 가볍게 인사를 하고 휠체어에서 한 걸음 떨어졌다.

의사 선생님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힘겹게 기기에 오르는 가냘픈 몸을 가만히 응시했다

처음 인사를 했을 때, 그 천진난만한 웃음은 변하지 않았다

반면 그의 몸은 차츰차츰, 생명을 잃어가고 있었다.

 

 

많은 환자를 만났다. 특히 이 병원엔 안타까운 어린아이들도 있고,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어르신분들도 있다

이 병원에서 특별할 것 없는 환자 중 하나인 그가, 어째서 이토록 눈에 밟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웅웅, 귀 아픈 소음을 만들어내던 기계가 멈추고 밖으로 나온 마츠노 씨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밝게 행동해도 그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말없이 휠체어를 끌고 그에게 다가가자 마츠노 씨는 다시 미소를 활짝 피웠다.

 

 

병실로 돌아가는 길에도 마츠노씨의 입은 바쁘다.


저 기계 말이에요~. 톳티 녀석이 봤으면 무섭다고 할 거 같아~.”

웃음기 섞인 말에 피식 웃으며그래요?” 하고 맞장구를 쳤다

마츠노 씨는 하루에도 많은 말을 쏟아내지만 그중 태반은 자신의 동생들 이야기였다.


그 녀석 무서운 거에 약해서~, 혼자서 밤에 화장실도 못 간다니까요?”

그렇군요.”

쥬시마츠는 큰 소리에 강하니까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그 녀석 체육대회 때 응원하는데 다른 놈들 소리 다 묻히고 쥬시마츠 목소리 밖에 안 들렸고.”

후후.”

이치마츠는 좁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지만 시끄러운 건 못 견디니까 그 녀석도 저건 싫어할 것 같네. 체리마츠는 또 잔소리나 늘어놓을 거구…. 지도 딱히 하는 거 없으면서 입만 살아서는.”

말을 잠시 멈춘 마츠노 씨가 복도 창문 너머에 펼쳐진 푸른 잔디밭을 응시했다

이곳에 왔을 때, 아이들과 같이 뛰며 놀았던 잔디밭은, 이제 다시 닿을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카라마츠는 바보에 울보에 안쓰러운 녀석인데…, 그래도 꽤 괜찮은 녀석이니까.”

서두 없는 이야기를 마치고 천천히 숨을 내쉰 마츠노씨가 도착한 병실 입구에서 눈을 깜빡였다

개인실 문을 열고 들어가 다시 침대에 몸을 누이자마자 마츠노 씨의 눈은 창밖을 향했다

개인실에 있는 것은 침대 하나

마츠노 씨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문병 오지 않았다

그렇게 즐겁게, 행복한 얼굴로 가족의 이야기를 하는 그를, 듣는 내가 더 행복해지고 따뜻해지는, 사랑을 이야기하던 그를.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저렇게 쓸쓸하게 내버려 두는 이유를, 짐작은 하고 있다

쉴 새 없이 조잘대던 입술도 꾹 맞물린 채 열리지 않는다

혼자 있으면 그는, 극도로 말수가 줄어든다. 눌러두고 있던 감정이 불쑥 튀어나온다

안타깝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을 안고 조용히 병실을 나왔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대충 알고 있다

전부 그에게 들었으니까

그렇기에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그가 바라는 일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번호를 누르는 손을 멈춰 세우는 죄책감에 눈을 감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2.

 

장난으로 한 검진 결과에 입에 물고 있던 쿠키를 떨어뜨렸다

눈을 깜빡이며 내뱉은 말은 그 녀석들은 어떻냐는 질문

커다란 팬티 하나만 입은 데카판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으로선 오소마츠 군 뿐이다요.”

발병한 사람은…, 하고 말을 흐리는 데카판의 말에 어깨를 늘어뜨렸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는 자신에게 헛웃음을 돌리고 고개를 들었다

어릴 적부터 어울린 데카판은 진심으로 걱정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데카판. 이 병, 연구해보고 싶다고 했지? 내 몸을 써. 대신 내 부탁 좀 들어줘.”

, 호에호에?”

점같이 작은 눈동자를 껌뻑이며 내 말을 기다리는 데카판에게 부탁을 말했다

그 작던 눈동자가 점점 커지는 것이 꽤 재미있었다.

 

 

 

반드시 이길 거라는 예감을 안고 들어간 파칭코는 내 예상대로 두툼한 지폐 뭉치를 안겨주었다

적당히 접어 주머니에 구겨 넣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녀석들이 좋아하는 안주와 술을 바구니에 넣고 계산을 마쳤다

점원에게 건네받은 봉지가 은근히 무거워 나도 모르게 욕이 새어 나왔다.


오소마츠 님 오셨다!!!”

현관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외쳐도 이놈들은 마중도 나오지 않는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치솟는 화를 삭이며 거실문을 열었다.


-, 어서 와.”

그렇게 크게 외쳤는데, 이제야 봤다는 투로 말하는 쵸로마츠를 한껏 노려봐주고 팔에 매달린 봉지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뭐야?”

.”

? 오소마츠 형이 웬일이야?? 혹시 또 파칭코에서 땄어?”

, 이 카리스마 레전드님에게 걸리면 파칭코 따위.”

우와~!! 많이도 샀네!!”

봉지를 들춰보는 토도마츠의 말에 거실에 퍼져 있던 놈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봉지에서 하나둘 나오는 술병에 눈을 크게 뜬 놈들이 나를 쳐다봤다. , 하고 가슴을 내밀고 씩- 웃어 보였다.


오늘은 쓰러질 때까지 마시자구~!”

내 말에 모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단순한 놈들 같으니라구…. 

슬쩍 한심하게 쳐다봐준 후, 부모님도 불러 술병을 땄다

아빠랑 엄마에게 먼저 따라주고 여섯 개의 술잔에 술을 들이붓는다

벌컥벌컥 술을 넘기고 사 온 술병 수가 절반으로 줄었을 때, 마른 입술을 적시고 말을 꺼냈다.


, 데카판이 소개해준 알바하기로 했어.”

“““““??”””””

오소마츠, 네가 알바를 한다고?”

어머나, 정말이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되묻는 놈들과 아빠. 엄마도 놀란 얼굴이다

볼을 부풀리고정말이야~!” 하고 대답하자, 쵸로마츠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니, 오소마츠 형이 스스로 알바를 한다니 절~~~대 있을 수 없고.”

진짜라고!!”

? 정말?”

정말! 진짜!! 레알!!! 그리고 좀 멀리 있는 데로 가니까 내일 나가면 당분간 못 와.”

.”

소리를 낸 것은 카라마츠였다

저도 모르게 나왔는지 당황한 얼굴로 손으로 입을 가린 카라마츠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정말인가? 형님.”

.”

멀리, 어디로?”

고개를 끄덕이자 이치마츠가 물어왔다.

몰라. 나도 자세히는. 근데 전화도 인터넷도 없대.”

?? 어디 오지로 가?”

쵸로마츠가 당연하다는 듯이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태클을 걸었다

석연치 않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놈들과 달리 아빠랑 엄마는 일만 한다면 뭐든 좋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조심해서 다녀오렴.”

그래, 되도록 오래 있다 오렴.”

남일 이야기하듯 간단하게 말하는 아빠와 엄마에게네이~.” 하고 대답했다

말을 저렇게 해도 나를 보는 엄마와 아빠의 눈빛은 너무나 다정했다

심장을 조이는 아픔과 함께 바닥에 가라앉아있던 기분을 저 위로 끌어올려 술잔을 높이 들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실컷 마시자구~~!!”

힘껏 외친 목소리가 정말로 유쾌하게 들렸을까, 걱정하며 웃었다

다행히 그 누구도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 즐겁게 술잔을 들어 건배했다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신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깨를 흔드는 감각에 자신을 붙잡고 있던 진흙에서 무거운 팔을 들었다

환한 빛을 등지고 나를 응시하는 작은 눈동자와 마주하자마자 참을 수 없는 하품에 입을 크게 벌렸다.


일어나, 이 망할 장남. 오늘 몇 시에 가기로 한 거야? 벌써 점심때라고!”

익숙한 잔소리에 배를 벅벅 긁으며 따뜻한 이불에서 일어났다

적당히오후 언제쯤~?” 하고 대답하며 화장실에 가 얼굴을 대충 씻고 잠옷 차림으로 거실에 내려갔다

옛날 옛적에 일어나 후드로 갈아입은 녀석들이 일제히 나를 반겼다

오늘도 뿔뿔이 나갈 줄 알았는데…. 

집에 남아있는 것이 내심 기뻐 오랜만에 즐겁게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거실에 누워 적당히 녀석들을 놀리고, 쵸로마츠가 퍼붓는 잔소리를 들으며 만화책을 읽었다

엄마가 차려주는 저녁까지 알차게 먹고서야 옷을 주섬주섬 챙겼다

적당히 속옷과 양말, 소나무 마크가 그려진 옷을 가방에 쑤셔 넣고 등에 멨다

현관에 서서 신발에 발을 끼우자 답지 않게 녀석들이 모두 마루에 섰다

아쉬운듯한 얼굴로 나를 배웅해주는 엄마와 아빠

묘한 얼굴을 하는 이치마츠와 쥬시마츠, 토도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쵸로마츠와 카라마츠의 어깨를 두드렸다

언제나 그랬듯 씩- 웃어주었다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고 이를 악문 채 현관문을 열었다

타박타박, 조금씩 20년 넘게 살아온 그리운 집과, 가족과 멀어진다

어릴 적 자주 놀았던 공원을 지나자 참았던 눈물이 툭, 하고 터졌다.

 

 

다음에, 집에 돌아갈 때는-

나는 재가 되어 있을 테니까.

 

 

 

 

 

3.

 

하얀 종이에 글씨를 써 내려가는 손이 덜덜 떨렸다

초등학생 같은 글씨체가 더욱 심해졌다

막 글씨를 배운 어린아이가 쓴 것 같은 글씨에 오소마츠가 쓴웃음을 지었다

날이 갈수록 약해지는 근력으로는 연필을 쥐기조차 쉽지 않았다

끝에 분홍색 지우개가 달린 노란 연필을 쥐고 있는 손가락이 삐걱거렸다

이를 악물어도 사라지지 않는 뻐근함과 통증

직선 하나 제대로 긋지 못한 연필은 삐뚤빼뚤 이상한 글자를 만들어냈다

간호사에게 양해를 구해 얻은 붕대로 연필을 쥔 손을 둘둘 감아도 연필은 여전히 이리저리 흔들렸다

두 손으로 연필을 움켜잡아도, 하다못해 연필 끝을 입에 물어 고정해도 글씨는 변하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이 악필이라지만 읽을 수도 없는 글씨로는 얼버무리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침대 옆에서 빼꼼 얼굴을 빼든 작은 손님을 향해 미소지었다.


치요~, 오늘도 검사 안 받으려고 도망쳤구나?”

아니야! 오늘은 제대로 받고 왔어!”

오소마츠의 장난기 가득한 질문에 발끈해 외친 작은 소녀는 익숙하게 오소마츠의 침대에 올라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머리 위에 쓰고 있는 베이지색 털모자에 작은 민들레 하나가 꽂혀 있었다.

피식- 눈웃음을 지으며 작은 소녀가 앉을 수 있게 엉덩이를 비켜준 오소마츠가 물었다.


왜애~?”

오소마츠 오빠, 뭐 하고 있어?”

이거~? 편지 쓰고 있는데-, 잘 안 써지네—.”

“…내가 써주까?”

치요의 물음에 오소마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짐짓 걱정하는 눈길로 자신을 응시하는 작은 아이를 향해.” 하고 잔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노란 연필을 치요에게 건넸다.


그럼 부탁 좀 할까~? 횽아가 말하는 대로 써줘야 돼?”

!”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어린아이들에겐 장난과 같았다. 그것도 자신보다 

훨씬 큰 어른을 돕는 것은 어린아이들에게 은근한 자랑거리가 되었다

치요는 눈을 반짝이며 오소마츠가 건넨 연필을 들고 손 아래 하얀 종이를 눌러놓고 자신만만하게 오소마츠를 쳐다보았다

큭큭, 스쳐 지나가는 잔웃음을 공기 중에 버린 오소마츠가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들에게.”

, , , …. , , , -….”

오소마츠가 내뱉은 말을 한 글자씩 따라 우물거리는 치요의 작은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아이의 글씨는 여전히 삐뚤거렸지만, 그래도 오소마츠의 글씨보다는 알아보기 쉬웠다

치요가 다 쓸 때까지 기다렸다가 오소마츠가 다음 인사말을 흘렸다

편지는 지금까지 보냈던 것과 같이 자신은 잘 지내고 있다

이곳은 공기가 맑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뿐이다, 일이 일찍 끝나면 금방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운운….

오소마츠의 말을 따라 글씨를 써 내려가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은 치요가 눈썹을 찡그렸다.


왜 거짓말해?”

?”

치요의 물음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치요는 편지를 빤히 보며 문장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찍었다.


이거랑 이거랑, 이것도 다- 거짓말이잖아.”

의문을 품은 순진한 눈동자에 오소마츠의 너털웃음이 비쳤다

진지하게 한 말에 오소마츠가 웃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치요가 뿌루퉁한 얼굴로 말했다.


거짓말하면 안 돼! 나쁜 어른이 된다고 했어!”

횽아는 이미 나쁜 어른이라 괜찮은뎅~.”

아냐! 오소마츠는 나쁜 어른 아니잖아!”

“…걱정하지 말라고 거짓말하는 거야.”

걱정?”

. 왜냐면 횽아가 솔직하게 에고~ 아파요~~, 하고 쓰면 횽아 엄마가 걱정하잖아?”

그래도 아프면 아프다고 솔직히 말하는 게 더 좋다고 했어! 우리 엄마가!”

그렇네~.”

적당히 대답을 흘린 오소마츠가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었다.


써줘서 고마워, 치요-.”

오소마츠의 감사에 치요가 뚱한 얼굴을 활짝 폈다

해바라기처럼 웃으며!” 하고 대답하는 기특한 아이에게 빙긋- 미소지은 오소마츠가 작은 한숨과 함께 봉투를 접었을 때였다

노크 후 개인실 안으로 들어온 히나를 본 치요가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그렇게 충고했는데도 오소마츠의 침대에 올라가 있는 치요를 보고 쓴웃음을 삼킨 히나가 오소마츠 손에 들린 편지를 받았다.


이번에도 부탁해요~, 간호사 누나~.”

실실 웃으며 앙상하게 마른 손을 흔드는 오소마츠가 병실 안에 들어온 목소리에 숨을 멈췄다.


우리한테 쓰는 편지면 직접 주지그래?”

동일하게 울리는 다섯 쌍의 발소리

침대에 앉은 오소마츠와 똑같은 얼굴이 다섯이나 나타나자 치요가 눈을 크게 뜨고!!!” 하고 비명을 질렀다.

 

 

 

신기하게 다섯을 뚫어지라 응시하는 치요를 보내고 육둥이가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멋쩍은 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살며시 고개를 기울였다.


, 랜만이다?”

“…, , 랜만은 무슨!!! 이 븅딱아!!”

히엑!!”

개인실 가득 우렁차게 울리는 쵸로마츠의 외침에 오소마츠가 어깨를 움츠렸다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다짜고짜 성을 내는 쵸로마츠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어 반격도 하지 못한 오소마츠가 도움을 요청하는 눈으로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이런 거짓말은 좋지 않다, 형님.”

어느새 카라마츠의 손으로 옮겨간 편지를 흔들며 짙은 눈썹을 잔뜩 찌푸린 카라마츠가 낮게 읊조렸다

항상 의미모를 영어를 섞던 카라마츠가 진지하게 내리깔은 목소리는 비정하게 오소마츠의 가슴을 찔렀다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보아 카라마츠도 제법 화가 난 상태였다.


에에-.”

어쩌려고 이걸 숨겼어!? ?! 엄마랑 아빠한테도 말 안 하고!! 어쩐지 네놈이 알바를 한다는 헛소리를 할 때부터 이상하더라니!!”

하아!? 말이 너무한 거 아냐?!”

시끄럿!! 뭘 잘했다고 지껄여!!!”

에에….”

일방적으로 몰아치는 쵸로마츠의 분노에 오소마츠가 몸을 뒤로 뺐다

아직도 분이 안 풀렸는지 이글거리는 눈으로 오소마츠를 보며 씩씩대는 쵸로마츠의 어깨에 카라마츠가 손을 올렸다.


쵸로마츠, 그 정도면 됐다.”

카라마츠의 한마디에하아~~.” 하고 큰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지친 얼굴로 한걸음 물러났다.


오소마츠.”

, 오우.”

정확한 상태를 알려주겠나? 너스-에게 대충 들었지만,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아하하. 여전히 바보네-, 너는.”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마른 웃음을 떨어뜨렸다

웃음이 그치자 오소마츠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도저히 자신의 병을 제 입으로 설명할 용기가 들지 않았다

끝을 알고 있었기에 집을 나왔고, 마지막 자신의 모습이 어떨지 알기에 모든 것을 비밀에 부쳤다

자물쇠를 채운 것처럼 입을 열지 않는 오소마츠를 가만히 기다리던 카라마츠가 비탄에 잠긴 목소리로 그르렁거렸다.


이대로, 혼자…, 죽을 셈이었나?”

“….”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오소마츠가 눈을 돌렸다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와 동시에 오소마츠에게 그림자 셋이 달려들었다.


오소마츠 형아!!”

이 바보 장나암~~!!”

“…, ….”

쵸로마츠와 카라마츠 뒤에서 혼란스러운 얼굴로 서 있던 이치마츠와 쥬시마츠, 토도마츠가 오소마츠의 침대에 뛰어들었다

항상 동생들은 안아주던 팔에 매달려 울음을 쏟아내는 셋을, 오소마츠가 안타까운 눈길로 응시했다

말도 제대로 끝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으로 우는 쥬시마츠와 오소마츠의 옷을 꽉 붙잡고 얼굴을 묻은 토도마츠, 흐느끼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어깨를 떨며 굵은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는 이치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옅은 숨을 내뱉었다

팔을 올려 세 동생의 머리를 번갈아 쓰다듬는 오소마츠의 나뭇가지 같은 손이, 그 하찮은 움직임도 견디지 못하고 달달 떨렸다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는 그 손길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자, 카라마츠와 쵸로마츠의 눈물샘도 터지고 말았다

터덜터덜 오소마츠에게 다가가 눈물을 흘리는 카라마츠와 쵸로마츠의 머리도 천천히 쓰다듬은 오소마츠의 입가에 슬픈 쓴웃음이 걸렸다.

 

 

 

간이침대와 의자를 끌어모아 잠든 동생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오소마츠가 눈을 깜빡였다

블라인드 너머로 들어오는 흐릿한 달빛이 오소마츠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스르륵-, 병실 문이 열리는 작은 소리에 오소마츠가 눈을 돌렸다

차트를 들고 오소마츠의 상태를 보러 들어온 히나가 오소마츠와 눈이 맞자 걸음을 멈췄다.


“…원망하고 있어요?”

동생들에게 연락한 자신을, 이라고 미처 묻지 못한 히나가 숨을 내쉬었다

쓸데없는 참견을 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원망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

각오했던 일이었지만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에, 히나는 초조하게 오소마츠의 대답을 기다렸다.


간호사 누나를 왜 원망해요~. 안 해요, 그런 거…. 솔직히, 보고 싶었고, 이 바보놈들.”

“….”

“…근데 이렇게 우는 얼굴은 보고 싶지 않았는데….”

힘없이 내뱉으며 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는 오소마츠의 손길을 가만히 바라보며 히나는 가슴에 남아있던 작은 후회를 버렸다.

 

 

 

 

 

4.

 

, 호에호에.”

데카판을 대동해 병실에 들어온 마츠요와 마츠조는 한참 전부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부모를 마주한 오소마츠가 눈을 굴려 제 뒤에 서 있는 동생들을 슬쩍 노려보았다

되도록 부모님에게는 늦게 알리고 싶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오소마츠가 먼저 말을 꺼내기 위해 입을 열었을 때, 마츠조가 주먹을 들었다.

오소마츠를 향해 든 커다란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 아빠!!”

대디-, NO!!!”

이를 꽉 악물고 주먹을 그대로 내려치려는 마츠조의 양팔에 쵸로마츠와 카라마츠가 매달렸다

겁먹은 얼굴로 오소마츠 뒤에 웅크린 동생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카라마츠와 쵸로마츠, 마츠조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일어나고, 큰 한숨과 함께 주먹을 내린 마츠조가 오소마츠의 머리에 가벼운 꿀밤을 내렸다.


아얏!”

부모를 속인 벌이다.”

맞은 머리를 쓸어올리는 오소마츠를 향해 엄하게 내뱉은 마츠조가 마츠요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었다

빛에 비친 안경은 그 너머를 보여주지 않았다

동그란 안경에 가린 얼굴을 직시할 수 없어, 고개를 숙였다

오소마츠의 옆으로 다가온 마츠요는 말없이 팔을 뻗어 오소마츠를 품에 안았다.


혼자, 힘들었지? 오소마츠, 우리 아들.”

부드럽게 몸을 감싸는 목소리는 지극히 상냥하면서도 휘몰아치는 감정에 떨리고 있었다

온갖 서러움이 흘러넘쳐서, 오소마츠는 마츠요의 품에서 그동안 참았던 모든 것을 쏟아냈다.


, 흐윽…!”

히끅거리며 폐까지 토해낼 기세로 우는 오소마츠의 떨리는 몸을 말없이 보드랍게 끌어안은 마츠요의 주름진 눈가에도 비탄의 물방울이 매달렸다.

 

 

눈물바다가 된 가족의 재회를 끝내고 데카판에게 오소마츠의 상태를 상세히 들은 마츠요와 마츠조가 어두운 얼굴로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끝까지 괜찮다고 대답하는 오소마츠의 배웅을 받으며 마츠요와 마츠조는 집으로 돌아갔다

직장에 출근을 해야 하는 마츠조와 마츠요가 필요한 물품을 챙겨 내일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떨어지지 않는 발을 옮겼다

손을 흔들어 병실을 나가는 부모님을 배웅한 오소마츠가 당연하다는 듯이 제 옆에 남아있는 동생들을 향해 물었다.


너네는 안 가?”

안 간다.”

.”

“…안 가.”

오소마츠 형아 옆이 있을 머슬허슬~!”

여기 와이파이 터지고, 굳이 돌아갈 이유 없는데?”

단호히 대답하는 동생들을 보며 오소마츠가 픽- 웃음을 흘렸다.

 

 

아무것도 없었던 오소마츠의 개인실에 많은 물건이 쌓였다

옅은 하늘색 환자복만 입었던 오소마츠의 어깨엔 육둥이 맞춤의 후드가 걸렸다

침대 옆 탁상엔 오소마츠가 즐겨보던 만화책과 트럼프가 항상 쌓여 있었고, 병실 냉장고에도 오소마츠가 좋아하는 과일이 가득이었다

매일매일, 오소마츠의 병실에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친했던 어린아이들, 동생들, 그리고 부모님까지

서로 순서를 정해 매일 오소마츠를 찾는 동생들과 주말만 되면 내려오는 부모님 사이에서 오소마츠는 진심으로 행복하게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오래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히나와 오소마츠뿐이었다.

 

 

 

날이 갈수록 오소마츠의 기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오래 앉아있는 것도 힘에 부치는 지경이 되었지만 오소마츠는 항상 밝은 얼굴로 동생들을 맞이했다

트럼프를 흔들며 함께 하자는 토도마츠의 제안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 위에 널린 카드들

사람 수에 맞춰 카드를 나누고, 카드를 손에 든 토도마츠가 오소마츠를 보며 숨을 멈췄다

얇은 카드를 쥐고 있는 손이 애처롭게 부들부들 떨렸다

연필을 쓰지 못했던 것처럼 가벼운 카드도 제대로 쥘 수 없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숨긴 토도마츠가 급히 카드를 모았다.


, 다른 거 하자!”

? 아냐, 괜찮아~. 톳티-.”

토도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저었다

, 치만….” 하고 말을 흐리는 토도마츠와 오소마츠를 번갈아 쳐다본 쥬시마츠가!”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제 준비했던 것인지 모를 독서대를 쑥 꺼낸 쥬시마츠가 오소마츠 무릎 위에 올렸다

독서대 위에 카드를 늘어놓더니 혼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릎에 놓인 독서대를 보며후핫.” 하고 웃음을 터뜨린 오소마츠와 부드러운 손길로 쥬시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은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와 눈을 맞췄다.


고마워, 쥬시마츠.”

아이아이!”

오소마츠의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쥬시마츠를 보고 오소마츠와 이치마츠, 토도마츠가 빙긋- 미소지었다.

 

블라인드를 뚫고 개인실을 밝히는 햇빛에 오소마츠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푹신한 베개에 올려진 머리를 돌려 간이침대에서 잠든 동생들을 내려다본 오소마츠가 작은 한숨과 함께 팔에 힘을 주었다.


….”

왈칵 솟아난 눈물이 옆으로 흘러 베개에 스며들었다.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힘을 주어도, 뇌에서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뼈만 남은 팔은 요지부동

—” 하고 허탈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외면하고 싶어도 더는 그럴 수 없었다

조금씩 착실하게 오소마츠는 커다란 낫을 들고 있는 사신(그림 리퍼)에게 몸을 빼앗기고 있었다

멍청히 하얀 병원 천장을 보고 있자,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들어온 히나와 눈이 맞자, 오소마츠가 울음 섞인 미소를 실쭉 흘렸다.


히나, 누나…. 나 좀, 일으켜 줘요….”

흐느낌을 참으려 덜덜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움직여 내뱉은 오소마츠의 부탁에 히나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서둘러 오소마츠의 옆으로 뛰어간 히나가 조심스럽게 오소마츠의 등 아래에 손을 넣었다

천천히 오소마츠의 상체를 일으켰다. 살도 근육도 사라진 등은 척추뼈가 손에 잡힐 정도였다

숨을 삼키고 눈가로 차오르는 열기를 억누른 히나가 침대를 세워 오소마츠가 등을 기댈 수 있게 했다

고마워요….” 하고 건조한 목소리로 전하는 인사가 가슴을 촉촉하게 만들었다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저은 히나가 간단한 상태 확인을 끝낸 후 병실을 나왔다

딸깍, 하고 히나가 닫고 나간 미닫이문 소리에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눈을 떴다. 곧이어 토도마츠가 눈을 비비며 작게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켰다

펄쩍 뛰듯이 일어나 오소마츠 옆으로 다가온 쥬시마츠가 환하게 웃으며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형아! 좋은 아침임다!!”

좋은 아침~. 아침부터 씩씩하구나, 쥬시마츠.”

아이아이!!”

오소마츠의 말에 쥬시마츠가 다시 밝게 웃으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커다란 눈이 온전히 오소마츠에게 고정되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쥬시마츠에 이어 아침 인사를 건네며 다가온 이치마츠도, 눈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손에 쥔 토도마츠도 오소마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오소마츠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이제 오소마츠가 줄 수 없는 것이었다.


오소마츠 형, ?”

위화감을 가장 먼저 눈치채고 입에 올린 것은 쥬시마츠

이치마츠와 토도마츠의 눈동자에도 의문이 싹텄다

…. ….” 하고 멋쩍게 웃는 오소마츠의 손은 올라오지 않았다

항상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그 손은 힘없이 침대 위에 늘어져 있었다

긴 소매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쥬시마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소마츠, 형아….”

미안, 쥬시마츠. 이제 쓰다듬어주는 거 못하겠다.”

하핫, 하고 마른 웃음을 흘리는 오소마츠의 말에 쥬시마츠의 눈동자가 눈물을 토해냈다

소리 없이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려 했던 오소마츠가 처연하게 눈썹을 늘어뜨렸다

사신에게 뺏긴 팔은 이제 동생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쥬시마츠의 눈물을 가만히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옆에 이치마츠와 토도마츠가 쓰러졌다

흐느끼는 소리가 병실 안을 가득 채워도 오소마츠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간신히 침대에 기대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오소마츠가 노크 소리에 눈을 돌렸다

과일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들고 들어온 카라마츠와 쵸로마츠의 모습에 오소마츠가 빙그레- 미소를 피웠다

바구니를 침대 옆 탁상에 내려놓고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은 쵸로마츠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말라가고 있다는 소리는 들었다. 매일 보니까 그것을 실감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쵸로마츠는 자신이 너무나 안일했음을 처절하게 느꼈다

뼈와 가죽밖에 남지 않은 오소마츠의 팔에는 링거 여러 개가 꽂혀 있었다

똑똑,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지는 그 물방울이 오소마츠를 서서히 무덤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 같아 쵸로마츠가 눈을 돌렸다

쵸로마츠를 보며 쓴 입맛을 넘긴 오소마츠가 뻗어오는 카라마츠의 손을 받아들였다

마른 몸을 가볍게 들어 자세를 바꿔주는 카라마츠의 손길은 더없이 조심스러웠다.

 


오늘은 밖에 나갈까?”

창밖, 푸른 잔디를 때리듯 쏟아지는 햇빛을 가만히 응시한 오소마츠가 작게 중얼거렸다

오소마츠의 작은 말을 놓치지 않은 카라마츠가 벌떡 일어나 휠체어를 끌고 왔다

쵸로마츠도 겉옷을 하나 꺼내 오소마츠의 가느다란 어깨에 걸치고 링켈을 휠체어에 옮겨 꽂았다

속전속결로 나갈 준비를 마치는 동생들을 보며푸핫.” 하고 이유 모를 웃음을 터뜨린 오소마츠가 오랜만에 뜰로 나들이를 나갔다.

 

날씨는 살짝 찬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지는 수준이었다

호들갑을 떨며 춥지 않냐고 물은 쵸로마츠가 괜찮다는 오소마츠의 대답에 들고 있던 겉옷을 팔에 걸었다

입원한 것을 들킨 뒤로 부쩍 과보호를 하게된 동생들이었다

푸른 들판에 빨간 들꽃이 찬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겨울이 되면 이 잔디밭이 하얀 눈 속에 파묻힐 것이다

작년에, 잔뜩 눈이 왔을 때 쥬시마츠와 함께 눈 집을 만들었던 추억을 떠올리며 오소마츠가 빙그레- 미소지었다

찬바람을 오래 맞는 것도 좋지 않다는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다시 침대 위에 앉히자마자 쵸로마츠가 바구니에서 노란 배 하나를 꺼냈다

배를 좋아하는 오소마츠를 위해 마츠요가 준비한 것이었다

같이 먹자는 말과 함께 쵸로마츠가 능숙하게 과도로 배 껍질을 벗겨냈다

노란 껍질을 벗기자 하얀 속이 드러났다

형광등에 반짝이는 게 과즙을 가득 머금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일회용 접시에 배를 적당한 크기로 조각내 포크에 푹 찔러 카라마츠에게 건넨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에게도 배를 내밀었다.


. 오소마츠 형.”

하고 포크에 꽂혀있는 배는 오소마츠가 씹기 쉽게 작게 잘라져 있었다.


….”

오소마츠 형?”

오소마츠?”

이름을 부르며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두 동생의 눈동자에 오소마츠가 눈썹을 작게 찌푸렸다

이번 한 번쯤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오소마츠가 쵸로마츠가 내밀고 있는 배를 입에 물었다

한입에 들어가는 작은 크기의 배는 입안에서 톡톡 터지며 달콤한 배즙을 뿜어냈다

천천히, 조금씩 배즙을 마시고 남은 배를 삼키려는 순간, 오소마츠의 몸이 고꾸라졌다

괴로운 얼굴로 목을 감싸고케훗,” 하고 약한 숨소리를 간신히 내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와 쵸로마츠가 놀라 벌떡 일어났다.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등을 두드리는 동안 쵸로마츠가 병실을 뛰쳐나가 의사를 불렀다.


커흐,”

오소마츠!! 정신 차려라!”

등을 두드리는 카라마츠의 손길에 오소마츠가 괴롭게 숨을 내뱉으려 했다

꼭 물속에 갇힌 것처럼 아무리 입을 크게 벌려 공기를 빨아들일 수 없었다

폐가 신선한 산소를 요구하며 쪼그라드는 감각에 오소마츠의 눈가가 붉어졌다.


마츠노 군!!”

병실로 뛰어들어온 히나의 뒤를 쵸로마츠가 심각한 얼굴로 들어왔다

단번에 오소마츠의 상태를 확인한 히나가 오소마츠 뒤로 돌아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빼 오소마츠의 가슴을 압박했다

가슴을 꾹 눌러 압박하기를 몇 번, 오소마츠의 입에서 소화되지 않은 배와 함께 위액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겨우 뚫린 기도가 그토록 갈구했던 산소를 듬뿍 들이마셨다.


카흣, , 콜록…. ,”

오소마츠가 위액과 목을 막고 있던 모든 것을 토해낸 후, 천천히 호흡을 하는 것을 확인한 히나가 큰 한숨과 함께 벽에 기댔다.

 

 

이불을 정리하고 새 이불과 요 가운데 파묻힌 오소마츠를 놔두고 의자에 앉은 쵸로마츠와 카라마츠가 굳은 얼굴로 히나가 갈아준 배를 들었다

신은 야속하게도 오소마츠를 차근차근 죽음의 길로 끌고 가고 있었다

다리와 팔에 이어, 오소마츠는 이제, 음식을 삼키는 것도 쉽게 할 수 없었다

작은 티스푼을 들어 갈린 배를 조금 뜬 쵸로마츠가 오소마츠 입가에 스푼을 가져댔다.


, 먹어. 오소마츠 형….”

쵸로마츠가 내민 스푼을 조용히 입에 넣은 오소마츠가 입을 오물거리고 천천히 배를 목 아래로 넘겼다

오소마츠가 삼킨 것을 확인하고 다시 쵸로마츠가 배 한 스푼을 떴다.


쵸로마츠.”

“…흐윽.”

,”

나직이 부르자 쵸로마츠의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갈린 배 속으로 가라앉는 눈물을 가만히 바라본 오소마츠가 쓴웃음을 삼켰다

쵸로마츠를 따라 흐느끼며 눈물을 흘리는 카라마츠에게도 눈을 준 오소마츠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겨울을 대비하기 위한 뜨개질을 하며, 마츠요가 침대에 누운 오소마츠를 가만히 응시했다

허공을 배회하던 눈동자가 마츠요와 마주하자마자 싱긋- 얇게 가늘어졌다

-, 하고 덧없이 웃은 마츠요가 붉은 털실을 의자에 내려놓고 오소마츠에게 다가갔다

길게 자란 앞머리가 이마를 덮고 있다. 한쪽 눈썹을 찌푸리며 마츠요가 정성스럽게 머리를 넘겨주었다.


머리도 많이 자랐네…. 다 나으면 머리 자르러 가야겠다.”

마츠요의 잔소리에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가 울렸다

달싹이는 입술은 아무리 노력해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저를 어루만지는 마츠요를 부르기를 포기한 오소마츠가 눈썹을 길게 늘어뜨렸다

오소마츠와 눈을 맞추고 마츠요가 잔잔한 미소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얼른 나아서, 할 일이 많잖니? 취직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하고, 엄마한테 손자도 보여주고…. 그 전에 동생들하고도 놀아줘야 하고. 토도마츠는 너랑 같이 쇼핑간다고 맛집이니-, 옷집이니-, 유명한 곳을 찾아다니느라 바쁘고, 쥬시마츠는 너랑 야구한다고 알바를 해서 새 미트랑~, 배트도 샀어. 이치마츠는 기특하게 너랑 고양이 카페를 간다고 하더라. 쵸로마츠는 제대로 운동시켜주겠다고 벼르고 있고-, 카라마츠는 오소마츠한테 멋-진 옷을 선물해서 같이 다니고 싶다네~.”

—, 하고 바람이 새는 소리가 다시 났다

마츠요가 늘어놓는 동생들의 바보짓에 오소마츠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소리 없이 들썩이며 웃는 오소마츠를 보며 마츠요도 싱긋 웃었다

미소와 함께 접힌 눈가 주름이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숨을 들이마시며 눈물을 숨긴 마츠요가 온화하게 웃었다

오소마츠의 마른 몸을 매만지며 반드시 나을 것이라 속삭이는 마츠요의 말에 오소마츠가 옅은 미소를 흘렸다.

 

 

검은 밤이 내려앉은 병실. 귀에 울리는 고음의 알람 소리에 마츠요가 눈을 떴다

스마트폰에 설정해놓은 알람이 울리기엔 아직 이른 시각이었다

눈을 가볍게 비비고 안경을 코에 건 마츠요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는 오소마츠 주변에, 우뚝 서 있는 기계들이 커다란 고음을 내고 있었다

-, -, -.” 하고 울리는 알람은 위험 신호를 병실 가득 울려 퍼뜨리고 있었다

미처 마츠요가 오소마츠를 부르기도 전에 병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의료진들이 알 수 없는 단어를 연달아 외치며 오소마츠 주변을 둘러쌌다

가까이, 자기 아들에게 다가가려고 해도 하얀 가운에 둘러싸여 보이지 않았다

마츠요는 자신을 뒤로 끄는 간호사의 손길을 뿌리치고 오소마츠에게 다가갔다

마츠요가 간호사와 실랑이를 하는 사이 하얀 가운의 의사들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침대에서 떨어졌다

또 하나의 창백한 기계가 오소마츠 옆에 세워졌다.

곧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사람처럼 오소마츠 주변을 둘러싼 기계들이 무서웠다

괜찮을 거야, 하고 중얼거리면서 자신을 타이르고 오소마츠에게 걸어갔다

차갑게 식은 손을 어루만지자 오소마츠의 짙은 갈색 눈동자가 마츠요를 담았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히죽 웃으며 산소 호흡기를 단 입을 달싹인다

엄마.” 하고 움직이는 입술에 마츠요가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다리를 먹히고,

손을 먹히고,

팔을 먹히고,

목을 먹히고,

폐를 먹히고,

 

심장을 먹혔다.

 

 

 

 

두근, 심장이 뛰었다.

 

두근,

토도마츠, 드라이몬스터 막내 녀석

그래도 나름 형들을 챙겨주는 녀석이니까—, 괜찮겠지

네가 찾아봤다던 맛집, 같이 가고 싶었어….

 

두근,

쥬시마츠하고는 더 많이 야구할 걸.

그때 운동을 많이 했으면 좀 나았으려나

그래도 쥬시마츠는 횽아가 없어도 씩씩하게 지낼 거지?

 

두근,

이 녀석이 제일 걱정이야-. 이치마츠

그래도 쥬시마츠가 있으니까 안심인가—. 

토도마츠도 있고, 여차하면 카라마츠도 있으니까.

 

두근,

~, 이 녀석도 바보라 걱정이네. 체리마츠

또 라이징하면 말려줄 녀석이 톳티밖에 안 남잖아

지금도 억지로 울음 참고 있고…. 정말 바-보네—.

 

두근,

우와, 이 녀석은 그냥 엉망으로 우는구나

하긴 우리 중에서 제일 울보니까

콧물도 나오고 있어. 드러-. 그래도 실컷 울어

카라마츠, 너는 상냥하니까 녀석들을 부탁해. 물론 이 카리스마 레전드님이 없으니까 고생 좀 하겠지만…. 

너 같은 바보가, 내 옆에 있어서 무지 좋았어.

 

두근,

엄마, 아빠. 미안, 정말 미안해. 이래 봬도 죄책감 제대로 있다구~. 

그래도 금방 일어설 거지? 저 바보 녀석들을 조금만 더 챙겨줘.

 

두근,

이야미, 치비타, 하타보. 너네까지 올 필요 없는데 말이야. 그래도 역시 절친이야-, 너희들은.

토토코! 이런 꼴 사나운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지-.

 

두근,

히나 누나, 고마워. 전부 고마워. 이제야 후회되네

좀 더 빨리 녀석들에게 알릴걸

연락 안 하려고 했던 거. 그랬다면 나, 외로워서 죽어버렸을 거야—. 

고마워. 이 녀석들을 불러줘서…. 다시 만나게 해줘서….

 

두근,

이십 년을 겨우 넘은 짧은 인생이었지만, 훌륭하다곤 못해도 꽤 괜찮은 인생이잖아

, 열심히 살았고. 많이 놀긴 했지만, 나쁜 짓은 안 했다고.

 

——, 이제 끝이구나.

이게 작별인 건 쪼금, 아주 쪼끔-

 

아쉬워….

 

 

 

 

 

삐이————————————————————

 

 

 

 

 

 

5.

 

검은 관을 둘러싼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모두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죽을 것처럼 울고 있다

소리를 지르고 있다. 형제와 함께 입었다는 붉은 후드를 덮고, 그는 눈을 감았다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한 장례식을 뛰어나왔다

푸른 하늘 아래에 서도 답답한 마음은 도저히 사라지지 않았다.

 

, 흐윽…. 흐으….”

 

주저앉아서 눈물을 쏟아냈다.

 

입원하고 겨우 1년 남짓.

그는 하늘에 높이 뜬 별이 되었다.

 

어떻게 해도 닿을 수 없는 작은 별이 되었다.

 

 

오열하는 입을 막고 눈을 감았다.

믿지 않는 신을 향해 간절히 외쳤다.

 

 

 

부디—, 그가 바라던 행복 안에서 평안히 잠들기를….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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