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위터 친구 채뇨리따님의 생일 축전입니다! 많이 늦어버렸네요...ㅠㅠ;;;


 * 비상금 전쟁에 나왔던 인랑 오소마츠가 나와요. (아래 사진처럼 생긴 녀석입니다ㅎ)



 * 공미포  20,569자.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카라마츠, 전화 좀~.”

현관 쪽에서 들려오는 이치마츠의 목소리에 대답과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거실문을 여니 코앞으로 성큼 다가온 동장군이 길티한 마이 페이스에 입김을 불었다

절로 딱딱 맞부딪치는 이를 악물고 무거운 수화기를 들어 귀에 가져갔다

연식과 달리 너무나 깨끗하고 선명한 목소리가 귓가에 크게 울렸다.


『카라마츠 형아?!

, 오오. 쥬시마츠. 무슨 일 있나?”

『응!! 지금 빨리 데카판 박사 연구소로 와줘! 빨리이!!

, , 알겠다!”

쥬시마츠의 재촉에 서둘러 전화를 끊고 신발을 구겨 신고 현관에서 뛰어나왔다

익숙한 동네를 가로질러 내리막길에 있는 연구소에 도착했다

숨도 고르지 않고 자동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복부에 느껴지는 충격에.” 하고 신음이 새어 나왔다.


“…?”

“…크응?”

품에 들어오는 뜨끈한 온기에 고개를 내리자, 처음 보는 생물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생기 넘치는 짙은 피부와 검은 머리칼, 그 위에 쫑긋거리는 붉은 털의 귀가 달려 있었다

만화에서 보았던 인디언의 옷과 비슷한 조끼를 입고, 사자의 갈기처럼 복슬복슬한 털이 길게 이어진 머리띠를 한 남자아이.

아이의 엉덩이에서 뻗어 나온 붉은 색의 꼬리가 좌우로 힘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를 똑바로 응시하는 갈색의 눈동자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새하얘진 머리를 붙잡고 멍청히 눈을 깜빡였다.


! 카라마츠 형아가 잡았다!!”

.”

탓탓탓, 경쾌한 발소리를 울리며 쥬시마츠가 뛰어와, 활짝 미소를 피웠다

뒤따른 닥터도 내 앞에 있는 보이를 보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 쥬시마츠…. 이 리틀 보이-, 대체….”

호에호에, 인랑이다요.”

…, ?”

닥터의 말에 고개를 기울이자, 아래서크릉~.” 하고 작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저에게 다가오려는 쥬시마츠를 향해 귀를 눕히고 이를 드러내는 보이의 모습에 당황해 그사이에 서서 보이와 쥬시마츠를 떨어뜨렸다.


쥬시마츠 군이 들어간  UMA 탐험대에서 찾아낸 아이다요.”

박사의 말에 절로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런 탐험대에 들어갔단 말은 듣지 못했다, 쥬시마~!? 

아니, 들어갔다는 말은 했었나?!

최근 묘하게 외출이 잦다 싶었더니, 탐험대에 들어갔던 건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나를 보며 쥬시마츠가에헤헤~.” 하고 수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칭찬한 게 아니다!! 쥬시마~!? 

떨리는 동공을 어떻게든 진정시키고 박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곧 개발이 진행될 숲에서 발견해 구출한 것은 좋았지만, 다시 대자연에 돌려보내야 한다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그 아이에게도 좋을 것이다요. 그래서 하타보 군이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보호구역을 찾아보고 있다요.”

“…, 그렇군….”

닥터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이자, 단번에 닥터의 얼굴에 어둠에 드리웠다.


그런데…, 새로운 서식지를 찾을 때까지 돌봐줄 곳이 필요하다요. 이곳에서 돌보면 좋겠지만, 나는 연구로 바쁘다요. 마침 그 아이는 카라마츠 군을 따르는 것 같으니, 마츠노 가에서 돌봐주는 게 어떻다요?”

.”

닥터의 말에 쥬시마츠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아니아니, 사내놈 6명이 백수로 있는 집에 보이를 넣겠다니 무슨 생각인가?! 

항의하려 입을 연 순간 쥬시마츠가 나를 빤히 응시했다.


그치만 엄청 카라마츠 형아 좋아해!”

?”

쥬시마츠의 말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어느새 내 주변을 빙빙 맴돌던 보이는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더니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며 꼬리를 힘차게 흔들었다

보이—!? 확실히 이 몸은 끝장나게 멋지지만 그런 반짝이는 눈으로 올려다보는 건 부담스럽다고!? 

식은땀이 마구 샘솟는 것을 돌리며 닥터를 보자, 꼭 부모자식을 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 이건 거절할 수 없는 패턴이다.

-, 한숨을 내쉬고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필요한 물품을 챙겨주겠다요.”

-….”

그 아이는 아직 1살이다요. 한창 호기심이 많을 때니까 눈을 떼지 말고 잘 살펴달라요.”

, 한 살!?”

닥터의 말에 크게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이의 머리는 내 허벅지까지 올라와 있었다

어린아이의 평균 키는 잘 모르겠지만, 보이는 적어도 5~6살은 되어 보였다

놀라는 나를 보며 닥터가 고개를 끄덕이고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인간과 늑대의 특성을 모두 가진 인랑이기 때문에 인간보다 더 성장이 빠르다고 한다

그 밖에 조심해야 할 것들을 늘어놓는 닥터에게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강인한 발톱으로 내 옷을 붙잡고 있는 보이는 한치도 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2.

 

닥터가 준 옷으로 보이의 몸을 가리고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 나갔던 브라더-들은 모두 거실에 모여 앉아있었다.


, 이 카라마츠가 돌아왔다! 브라더-!”

? 그거 뭐야?”

사랑스러운 브라더-들을 위해 가슴을 쫙 펼치고 외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쵸로마츠의 질문뿐이었다

내 뒤를 따라 거실에 들어온 보이를 가리키며 쵸로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만화책을 보던 오소마츠도, 리틀 키티와 놀던 이치마츠도, 스마트폰을 두드리던 토도마츠도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옷과 담요로 돌돌 둘러맨 보이가 답답한지 거칠게 담요와 옷을 하나씩 벗어 던지기 시작했다.


“…? 뭐야, …, 인간!?”

싫다는 것을 어떻게든 달래가며 겨우 입혔던 옷을 전부 바닥에 던지고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이 된 보이가 하품을 크게 하게 거실 바닥에 앉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쭈그려 앉았다

마치 강아지처럼 다리를 오므리고 손을 바닥에 대고 앉아 귀를 쫑긋대는 보이를 보며 브라더-들이 모두 턱을 떨어뜨렸다.


, 개똥마츠…. , 그거, 어디서 주워 온 거야….”

잔뜩 굳은 얼굴로 묻는 이치마츠에게 내 옆에 선 쥬시마츠가 대답했다.


있잖아! 내가 주웠어!!”

““““?!””””

쥬시마츠의 대답에 당황해 브라더- 전원이 외쳤다

갑자기 큰 소리가 울린 탓인지 보이가 펄쩍 뛰더니 서둘러 내 뒤로 자리를 옮겼다.

브라더-들의 어이없다는 얼굴에 내게 말재주가 없는 것을 한탄했다

아아—, 신은 이 나에게 너무 많은 축복을 부어주길 두려워한 것 같다

내게는 이 상황을 매끄럽게 설명할 재주는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쥬시마츠에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꼬치꼬치 캐묻는 쵸로마츠 덕분에 사정 설명은 금방 끝났다.


헤에…. 쥬시마츠가 주워온인랑이라고?”

모든 사정을 들은 오소마츠가 만화책을 내려놓고 보이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굽혔다

반 인간, 반 늑대라는 설명에 곧바로 경계 태세를 갖춘 이치마츠는 털을 곤두세우며 무릎에 올려놓았던 고양이를 품에 안고이쪽으로 데리고 오기만 해봐!! 죽여버린다, 개똥마츠!!” 하고 외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보이의 모습에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를 보며 눈썹을 찌푸린 오소마츠가 천천히 보이의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어린애네—.”

오소마츠는 보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던 것 같지만, 한 번도 사람의 손길에 닿은 적 없는 보이에게 다가오는 손은 꽤 무서웠던 것 같다

귀를 뒤로 눕히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보이가 낮게그르릉-.” 하고 으르렁거리며 오소마츠를 노려보았다.


오소마츠 형아! 물지도 몰라!!”

우옷, 그럼 안 되지….”

걱정스러운 눈으로 오소마츠와 보이를 보던 쥬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손을 거두었다

오소마츠의 손이 멀어지자 보이의 위협도 사라졌다.


그래서? 얼마나 데리고 있어야 한대?”

? , 그러니까…. 새로운 거주지를 찾을 때까지….”

? 그럼 오래 걸릴 수도 있잖아.”

, 럴 수도 있겠군….”

하아~. 그런 것도 체크 안 하고 데려오면 어떻게 해? 엄마랑 아빠한텐 카라마츠 형이 말해.”

, 오우….”

크게 한숨을 내쉬는 쵸로마츠에게 대답하자, 잔소리를 끝낸 쵸로마츠가 보고 있던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쵸로마츠…, 보이를 데려온 것은 쥬시마츠다만….

, 할 수 없지

동생을 대신해 책임을 지는 것이 바로 형! 사랑스러운 브라더-를 위해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 -!


그 아이, 이름은 뭐래?”

.”

줄곧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찾아보던 토도마츠의 질문에 눈을 깜빡였다

모르겠다….” 하고 솔직하게 대답하자, 토도마츠가 김빠진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름 없대?”

, 물어보지 않았다만…. 쥬시마츠는 알고 있나?”

으으응~.”

쥬시마츠도 고개를 휙휙 좌우로 휘저었다.

그런가, 보이는 이름이 없는 건가….


우리가 이름을 지어주지 않겠나!”

자신만만하게 외쳤지만, 브라더-들은 눈살을 찌푸릴 뿐이었다

? 뭔가 문제라도 있나?


그럼 정 붙잖아…. 나중에 보낼 때 힘들어질,”

보이의 이름은…, ‘레드 선더!!”

들어, 이 자식아!!”

쵸로마츠의 외침에 고개를 기울였다

최고로 쿨-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한가

하아~.” 하고 이유 모를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작게됐다, 됐어.” 하고 고개를 흔들며 다시 책을 펼쳤다.


, ‘레드 선더~~!! 이름 너무하잖아~~!”

왜 웃는지 모를 오소마츠는 무시하고, 아직도 내 뒤에 숨어있는 레드 선데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오소마츠의 손은 두려워했던 레드 선더는 조심스럽게 내려오는 내 손을 피하지 않았다

빳빳한 느낌의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떼자, 아쉬운 듯이 레드 선더가 내 손바닥을 핥았다

사람의 혀와 별반 다르지 않은 감촉에 손바닥이 간지러웠다

잘게 웃으며 손을 거두자,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쥬시마츠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뭔가, 오소마츠 형아 닮았네-!!”

? ~?”

쥬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레드 선더를 응시했다

확실히 레드 선더의 털빛은 오소마츠의 색인 빨강이지만, 레드 선더는 오소마츠와 전~~혀 닮지 않았다.


쥬시마~? 그럴 리 없잖나. 잘 봐라. 오소마츠는 바보에 쓰레기에 답도 없는 문제아지만, 레드 선더는 이렇게나 큐트하고 동시에 쿨-한 녀석이다! 오소마츠를 닮았다니, 그런 말은 레드 선더에게 실례다!!”

네가 실례야!! 너무하네, 진짜!!!”

지극히 당연한 소리를 했는데도, 오소마츠는 발을 굴리며 화를 냈다

뭐에 저렇게 심통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오소마츠는 항상 사소한 것에도 화를 내는 녀석이니까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저기….”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말리고, 그 모습을 쥬시마츠가 지켜보던 거실 안에 이치마츠의 목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졌다

이 카라마츠는 누구도 듣지 못하는 브라더의 작은 부름도 놓치지 않고 응답해주는 상냥한 남자다!!


무슨 일인가? 이치마츠.”

, 하고 혀를 찬 이치마츠가 내 옆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레드 선더를 향해 눈짓했다.


그 녀석, 씻겨야 하는 거 아냐…? 짐승 냄새, 나는데….”

—, 그러네. 우리는 목욕탕 다녀올 테니까 카라마츠 형이 좀 씻겨줘~.”

.”

부탁할게~.”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일어난 토도마츠를 시작으로 한둘씩 브라더-들이 거실을 빠져나갔다

쥬시마츠까지 이치마츠를 쫓아 목욕탕을 향해 나간 거실 안에는 나와 레드 선더만 남게 되었다

, 할 수 없군

작게 한숨을 내쉬고 레드 선더와 함께 욕실로 이동했다

낮에 마미가 청소해놓은 깨끗한 욕조에 물을 받고 탈의실에서 옷을 벗는 나를 레드 선더가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혹시…, 레드 선더는 목욕하는 방법을 모르는 건 아닌가?

불안한 예감은 멀뚱히 서 있는 레드 선더의 모습에 확신으로 바뀌었다.


레드 선더~? 여기선 옷을 벗는 거다.”

?”

아아-, 그래. 그 조끼랑…, 이 머리띠도 벗자.”

하나씩 레드 선더의 옷을 벗겨주자, 레드 선더도 반항하지 않고 얌전히 내게 몸을 맡겼다

대충 걸친 것 같은 바지까지 벗기자, 붉은 털에 뒤덮힌 하반신이 드러났다

레드 선더의 내츄럴한 모습에 레드 선더가 정말 인간이 아니라, ‘인랑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말이 없어진 나를 보며 고개를 기울인 레드 선더에게 빙긋- 웃어주고, 레드 선더를 안아 올렸다

피부에 닿는 레드 선더의 털은 고양이의 털보단 힘이 있었지만, 부드럽게 살갗을 감싸고 있었다

온기가 감도는 욕실 안에 발을 들이고 조심히 레드 선더를 내려놓았다

레드 선더는 모든 것이 신기한지, 낮은 목욕 의자나 토도마츠의 린스 통을 건들이며 냄새를 맡았다.

욕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레드 선더를 놔두고 샤워기를 틀었다.

-, 하고 바닥을 때리는 물줄기 소리에 레드 선더가 움찔거리며 내 손에 들린 샤워기를 빤히 쳐다보았다.

레드 선더를 향해 손짓하자, 신중하게 한 발짝씩 천천히 내디뎌 다가온 레드 선거가 얼굴을 찡그렸다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을 샤워기 쪽으로 코를 쭉 내밀고, 킁킁 냄새를 맡는 레드 선더의 등에 슬쩍 샤워기를 가져대자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샤워기를 가까이 대면 레드 선더가 한 걸음 뒤로 물러간다

샤워기와 레드 선더 사이의 거리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도망치는 레드 선더를 쫓다가 샤워기의 호스가 팽팽해졌다

샤워기가 더 가까이 올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챈 레드 선더가 욕실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레드 선더-, 항상 몸과 마음이 깨끗해야 레이디에게 사랑받는 법이다.”

크르르….”

설명을 해도 레드 선더는 다가오지 않았다. 몸은 잔뜩 움츠리고, 뾰족한 귀는 완전히 뒤로 누웠다

꼬리까지 다리 사이에 숨기고 달달 떠는 모습은 나의 하트에 화살을 꽂았다

-, 레드 선데. 네 마음은 잘 알겠다

난생처음 하는 목욕이 무섭겠지…. 

하지만!! 이런 역경을 이겨내야만 비로소 멋진 남자! 나와 같은 쿨- 가이가 될 수 있는 거다!! 

샤워기를 내려놓고, 안심하는 레드 선더를 안아 욕조로 걸어갔다

미안하다, 레드 선더!! 

눈물을 삼키고 레드 선더를 욕조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아니, 내려놓으려고 했다….

 

 

으악!!! , 레드 선더어———!!”

캬웅——!!”


 

따끈한 목욕물에 겨우 발가락 하나 닿았을 뿐인데, 레드 선더는 몸을 비틀며 내 손에서 빠져나가 욕실 안을 뛰어다녔다

닫힌 문을 열 수 없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열 수 있었다면 단번에 뛰쳐나갔을 테니까…. 

아우우—!” 하고 울며 욕실 안을 뛰어다니는 레드 선더를 잡으려면 나도 좁은 욕실 안에서 뛸 수밖에 없었다.

미끄러운 타일 바닥에 발을 헛디뎌 엎어지기를 몇 번

겨우 발버둥 치는 레드 선더를 안고 목욕물에 들어가서야 넘어져서 부딪친 엉덩이나 무릎이 욱신거렸다

목욕물에 서서히 잠겨가는 느낌이 두려운지 완전히 몸을 담그자, 레드 선더는 내게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욕실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욕조에 떨어져탐방하고 소리를 울리는 것도 무서워했다

물에 닿는 것만으로 이 난리를 쳤는데, 씻기는 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한숨과 함께 목에 매달려있는 레드 선더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어느 정도 몸이 따끈하게 데워졌을 때, 레드 선더를 안고 욕조에서 몸을 일으켰다

낮은 의자에 앉아 앞에 레드 선더를 앉히고 보디샴푸를 손에 듬뿍 짜냈다

물에 젖은 생쥐처럼 달달 떠는 레드 선더의 등부터 아프지 않도록 살살 문질러 거품을 냈다

조금, 예상 이상으로 거품이 많이 나서 커다란 거품 덩어리에 레드 선더의 얼굴만 불쑥 튀어나온 것처럼 되어버렸지만…. 

살살 달래며 샤워기로 거품을 헹구자, 말끔한 얼굴이 드러났다

오른쪽 볼에 하나, 왼쪽 볼에 둘. 날카로운 발톱에 긁혀 생긴 흉터가 뺨에 자리 잡고 있다

이 흉터들은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이 없는 곳에서 레드 선더 혼자 있는 힘껏 살아온 증거일 것이다

가슴에서 피어나오는 뜨거움에 눈썹을 내리고 레드 선더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고생했구나.” 하고 전했지만, 레드 선더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욕실을 나오자마자 온몸을 털어서 사방에 물을 튀기고, 수건을 피하며 도망치려는 레드 선더를 어떻게든 붙잡아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

이 추운 날씨에 털이 젖은 채로 있으면 추울 것이다

토도마츠의 드라이기를 빌려 레드 선더의 털을 세심하게 말려주었다

드라이기를 켜자마자 들려오는 커다란 소리에 놀라 도망치려고 다리에 힘을 주는 레드 선더를 가까스로 막아 무릎 위에 앉혔다

손으로 털을 들추며 드라이기로 털을 말려주는데도, 소리가 무서운지 레드 선더의 몸은 벌벌 떨리고 있었다.


조금만 참아라. Be patience, 레드 선더. 조금만 더 하면 된, 흐약!?”

숨을 곳을 찾던 레드 선더가 갑자기 내 옆구리에 얼굴을 끼워 넣었다

불쑥 들어오는 감각에 놀라 나답지 않은 소리를 내고 말았다

레드 선더-, 어째서 내 비명에 맞춰 꼬리를 들었다 놓은 건가…. 

그래도 이렇게 얼굴을 숨기고 있으면 반항이 덜 하다

재빨리 드라이기를 흔들어 레드 선더의 몸을 말려주고 나니, 엉망이 된 옷이 눈에 들어왔다

갈아입은 푸른 후드는 레드 선더가 발버둥 치며 잡아당긴 덕분에 여기저기 늘어나 있고, 축축하게 젖어있다

이건 다시 갈아입을 수밖에 없겠군…. 

, 한숨을 내쉬고 레드 선더를 보자 멀뚱히 거실 바닥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그러고 보니 레드 선더에게 입힐 옷이 없다

아직도 네츄럴한 모습으로 있는 레드 선더에게 잠깐만 기다리라 외치고 위층으로 올라가 옷장을 열었다

나의 퍼펙트 패선을 입혀주고 싶지만, 이제 곧 꿈나라에 들어갈 시간이다

퍼펙트 패션으로는 잠자기 불편하겠지

서랍을 몽땅 열어 뒤지다가 할 수 없이 나의 푸른 후드와 쥬시마츠의 반바지를 꺼냈다

바지 하나만 빌리겠다, 쥬시마츠

옷을 가지고 내려오니 브라더-들이 돌아와 있었다.


어서 와라, 브라더-!”

이 아이, 엄청 뽀송뽀송해졌네.”

토도마츠의 말에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고 레드 선더에게 옷을 입혔다

내 후드는 조금 컸지만, 레드 선더 마음엔 꼭 드는 것 같았다

킁킁, 옷의 냄새를 맡은 레드 선더가 활짝 웃었으니까!

 

 

브라더-들과 함께 이불을 펴고 베개를 놓자, 쵸로마츠가 우리 뒤에 선 레드 선더를 보며 물었다.


이 녀석은 어디서 재워?”

적당히 이불에서 재우면 되는 거 아냐?”

우리 이불에 어디 재울 데가 있냐!”

오소마츠의 시큰둥한 대답에 쵸로마츠가 언성을 높였다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까지 합세해 레드 선더를 재울 곳을 상의한 끝에 소파에 담요를 깔아서 잘 곳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소파를 통통 두드리니 훌쩍 소파 위로 뛰어오른 레드 선더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우리 모두 자리에 누웠다

잘 자라는 토도마츠의 인사말과 함께 불을 끄고 고독한 어둠에 감싸였다.

 

 

 

 

 

3.

 

아름답게 이불 위에 내려앉은 선샤인에 눈을 떴다

오늘 날씨도 베리 나이스다!! 

상쾌하게 기지개를 켜며 눈을 뜨자 웬 푹신푹신한 덩어리 하나가 내 옆에 누워있었다

~? 레드 선더

소파에서 자고 있어야 할 레드 선더가 왜 내 옆에 누워있는 건가

그리고 그 옆엔 토도마츠가 아니라 오소마츠….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소파로 눈을 올리자, 소파 위에 담요가 정갈하게 개어져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고개를 기울이자, 때마침 벌컥 열린 문으로 쵸로마츠가 들어왔다.


, 쵸로마츠! 굿 모닝-!”

카라마츠…. 너랑 그 녀석 때문에 내가 어제 소파에서 잤잖아!!”

?”

어제 토도마츠한테 끌려서 화장실 다녀왔더니 그 녀석이 너랑 오소마츠 형 사이에 누워 있어서, 자리가 없었다고! 톳티-, 이 얍삽한 자식이 내 자리에 누워서 내가 소파에서 잘 수밖에 없었어!”

, 오우…. 미안하다.”

하아~. 됐어…. 아침 먹으러 내려오기나 해.”

, ….”

한숨 섞인 쵸로마츠의 잔소리에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일으켰다

바스락거리는 이불 소리에 레드 선더의 귀가 움찔거리더니 레드 선더의 갈색 눈이 슬그머니 빛을 발했다.


굿 모닝~, 레드 선더.”

꺄응~~!”

대답하듯 울며 기지개를 쭉 켠 레드 선더가 입맛을 다셨다.

함께 방을 나와 거실로 내려가니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과 반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녀석은 밥 주면 되는 건가?”

젓가락을 들어 올리던 쵸로마츠의 질문에….” 하고 한탄했다

뭘 먹이면 좋을지 닥터가 말해준 것 같은데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흔들리는 눈으로 쥬시마츠를 쳐다보았지만 쥬시마츠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함께 나를 마주 보았다

쥬시마~!? 레드 선더를 발견한 것은 너인데, 너도 모르는 것인가!? 

또 모른다고 대답했다간 쵸로마츠의 잔소리가 이어질 것은 뻔할 뻔자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다물고 있자, 쵸로마츠가어이?” 하고 내 어깨를 흔들었다.


…. 레드 선더는 인랑이니까 말이다! 물론 잡식이다! 밥도 먹을 수 있지!”

거짓말이 들키지 않기를 빌며 쵸로마츠에게 대답했다

나중에 닥터에게 전화해 한 번 더 확인하자. 홀로 다짐하며 레드 선더의 몫을 준비하는 쵸로마츠를 따라 젓가락을 레드 선더 앞에 내밀었다.

두 개의 가느다란 막대기를 왜 내 앞에 내려놓냐는 얼굴로 나를 보는 레드 선더의 눈길에 또다시아차했다

레드 선더는 젓가락은 물론이고 숟가락도 제대로 쓴 적 없었다

레드 선더의 손으로는 젓가락은 쥐기 힘들겠지

주방으로 들어가 젓가락을 돌려놓고, 라면 먹을 때 쓰는 깊은 숟가락을 꺼냈다

좀 짧지만, 레드 선더가 쥐기에는 충분하겠지

숟가락을 가져가 레드 선더에게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여주었다

레드 선더는 눈을 깜빡이며 내 손짓을 보더니 곧잘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방 어색한 방법으로라도 숟가락은 제대로 쥘 수 있게 되었다

브라더-들과 함께 테이블에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오늘 아침은 호화롭다

무려 가라아게가 나왔으니까!! 

군침을 흘리며 마미의 손맛이 묻어나는 가라아게를 씹으니 입안에서 바삭거리는 튀김옷과 부드럽고 육즙이 가득한 고기가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루며 입안에 퍼졌다

행복한 얼굴로 가라아게를 먹고 있자, 옷을 쭈욱 잡아당기는 손이 있었다.


? 레드 선더도 가라아게가 먹고 싶은가?”

!”

후후, 좋다. -.”

레드 선더의 숟가락 위에 가라아게를 올려주자 서둘러 가라아게를 입에 넣은 레드 선더의 얼굴이 단번에 밝아졌다

오물오물 입을 움직이며 맛있게 먹는 모습에 내가 먹을 가라아게까지 레드 선더의 숟가락 위에 올려주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가라아게를 모두 해치운 후, 외출 준비를 하는 브라더-들을 보며 레드 선더가 크게 하품을 했다

배가 부르니 졸음이 오는지, 슬금슬금 레드 선더의 눈이 감겼다

레드 선더가 잠들면 나도 비너스를 만나러 가 볼까

거울을 보며 앞머리를 다듬고 있을 때, 오소마츠가 배를 긁으며 거실 안으로 들어왔다.


후아암~~. 졸려어~.”

엉망으로 솟아난 뒷머리를 가지고 이제 막 일어났으면서 한심한 소리를 흘린 오소마츠가 거실을 지나 주방으로 들어갔다

텅 빈 밥솥을 열어보고-! 밥 없어!?” 하고 당연한 소리를 내지른 오소마츠가 투덜대며 싱크대 아래 찬장을 열었다

오소마츠가 꺼낸 인스턴트 야키소바에는스카이피시 야키소바라고 쓰여 있었다

먹는 건가!? 그걸!? 

경악하며 가만히 쳐다보자 오소마츠는 하품을 하며 포장을 뜯어 뜨거운 물을 부었다

3분을 기다려 물을 버리고 소스를 넣어 젓가락으로 대충 비비고는 그대로 거실로 들고 왔다.


먹는 건가? 그거….”

? 먹을 건데? …달라고 해도 안 줄 거야!”

달라고 안 한다! 먹고 싶지도 않아!”

야키소바를 홱 저쪽으로 돌리며 노려보는 오소마츠에게 외치고 거울을 들었다

저런 수상한 이름을 가진 야키소바를 먹으려고 하는 사람은 오소마츠 뿐일 거다

젓가락 가득 소바를 들어 올려 게걸스럽게 먹는 오소마츠를 무시하려는데, 오소마츠의 옆에 레드 선더의 귀가 불쑥 튀어나왔다.


? 뭐야, 너도 먹고 싶어?”

혀를 길게 빼고 오소마츠 손에 들린 야키소바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레드 선더에게 오소마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불쌍한 레드 선더가 아무리 쳐다봐도 욕심이 많은 오소마츠가 야키소바를 양보할 리 없었다

손을 뻗는 레드 선더를 피해 오소마츠가 야키소바를 들어 올렸다

정말이지, 저 녀석은….

장남이 되어서 저런 것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인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흔들고 주방에 들어가 작은 접시와 포크를 들고 왔다

아예 머리 위로 야키소바를 들어 올리고 레드 선더를 약 올리는 오소마츠의 머리에 주먹을 내리고 야키소바를 뺏어 들었다.


아야!!”

조금 정도는 나눠줘라, 오소마츠!!”

하아!? 내 아침 밥인데 왜!?”

옆에서 떽떽 시끄럽게 구는 오소마츠는 무시하고 야키소바를 절반 덜어 접시에 옮겼다

포크를 레드 선더에게 쥐어주자 재주 좋게 야키소바를 입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반 넘게 가져갔잖아!? 너무하지 않아!?”

또 해 먹어라.”

없다고, 이제!!”

씩씩대며 남은 야키소바를 입에 털어 넣은 오소마츠가 주방으로 향했다

찬장을 열어보더니역시 없어….” 하고 절망했다

세모 눈을 하고 나를 노려보는 것을 무시하고 맛있게 야키소바를 먹는 레드 선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덜 찬 배를 붙잡고 오소마츠가 파칭코를 하러 나가자 교대하듯 아침 연습을 하러 나간 쥬시마츠가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다

간단하고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거실에 들어온 쥬시마츠가 노란 짐볼을 가지고 왔다

짐볼 위에 올라타 흔들리는 쥬시마츠를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본 레드 선더가!” 하고 울었다

레드 선더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쥬시마츠도 눈을 반짝이며좋아!!” 하고 대답하고는 짐볼에서 내려와 레드 선더에게 내밀었다

, 대화가 가능한 건가!? 쥬시마~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으니 쥬시마츠가 짐볼을 잡아 고정하고는 레드 선더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서 뭘 하려는 건지 궁금해 거울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가만히 관찰했다

노란 짐볼을 향해 꼬리를 흔든 레드 선더가 그대로 거실 바닥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노란 짐볼에 뛰어오르려는 것 같았는데, 높이를 잘못 가늠했는지, ‘!’ 하는 소리와 함께 레드 선더가 짐볼에 부딪혀 그대로 튕기고 말았다

다시 거실 바닥에 앉아 무엇이 일어난 것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고개를 기울이는 레드 선더의 순진함에 나도 모르게,”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쥬시마츠도 하하 웃으며 다시 레드 선더에게 신호를 보냈다

엉덩이를 실룩이며 다시 멋지게 뛰어오른 레드 선더가 이번엔 퍼펙트하게 짐볼 위에 올라탔다

!” 하고 자랑하듯이 가슴을 내미는 레드 선더에게대단하다! 레드 선더!!” 하고 레드 선더의 머리를 쓰다듬자, 레드 선더의 꼬리가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늘어지기 쉬운 오후

밥 먹기 전 채워둔 기름 난로가 따끈하게 공기를 데우고, 발을 넣은 코타츠는 따끈하게 몸을 데웠다

슬슬 몰려오는 졸음에 눈을 비비고 귤을 집어 들었을 때, “야옹~” 하고 친근한 울음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이치마츠를 찾아 놀러 온 리를 키티가 훌쩍 코타츠 위로 올라와 그루밍을 시작했다

리를 키티~? 찾아와준 것은 정말 고맙지만, 오늘은 이치마츠가 나가고 없다

다음에 또 와주지 않겠나~? 으응~? 

리를 키티에게 눈빛으로 호소해도 리를 키티는 열심히 자신의 발바닥을 핥을 뿐이었다

할 수 없군…. 있고 싶다면 얼마든지 몸을 녹이고 가라, 리를 키티

응응,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그림자 하나가 내 옆을 스쳤다. 코타츠 안에서 낮잠을 자던 레드 선더가 리를 키티를 향해 눈을 반짝였다.


, 잠깐!! 웨이트다! 레드 선더어~!!”

말리려고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었다

레드 선더가 코타츠 위로 점프해 올라서 꼬리를 흔들며 팔을 앞으로 쭉 내밀고 상체를 숙였다

레드 선더~? 놀고 싶은 건 잘 알겠다.

하지만, 크기 차이를 생각해라, 레드 선더어~!! 

차마 말리기도 전에 잔뜩 털을 세운 고양이가 먼저 발톱을 세웠다

!!” 하는 단말마와 함께 레드 선더가 황급히 코타츠에서 내려왔고, 리를 키티도 집 밖으로 도망쳤다

끙끙, 할킨 얼굴을 발로 비비는 레드 선더의 손을 잡고, 상처를 더 만지지 못하도록 했다

콧등에 남은 세줄의 발톱 자국에 마음이 아팠다

레드 선더를 안아 들고 선반에서 약 상자를 꺼냈다

연고를 콧등에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며 흉터가 남지 않도록 반창고 위에 이 카라마츠의 멋진 얼굴을 그려 넣어 주었다

저녁을 먹으러 돌아온 오소마츠가 왜인지 레드 선더의 코에 붙은 반창고를 보며 배를 잡고 웃었지만, 레드 선더는 만족한 얼굴로 다시 씩씩하게 밥을 먹었다.

 

 

 

 

 

4.

 

레드 선더가 우리 집에 온 지, 벌써 일주일

마미와 대디는 물론이고 브라더-들도 완전히 레드 선더가 있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따끈한 온기를 옆에서 느끼며 눈을 뜨는 아침에도 익숙해졌다

다른 곳에서 재워도 꼭 새벽만 되면 내 옆으로 오는 레드 선더 때문에 브라더- 중 한 명은 꼭 소파에서 자게 되었다

대체로 쵸로마츠가 잠버릇 고약한 오소마츠를 소파로 던지지만…. 

레드 선더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이불에서 발을 빼냈다

차가운 겨울의 아침 공기가 이 몸을 맞이한다

오늘도 아름답구나, 선샤인~!! 

입꼬리를 올리며 세면대 앞에 서서 얼굴을 씻고, 양치질했다

머리까지 완벽하게 정돈하고 나면 이 세상의 제일가는 길티 가이, 이 카라마츠 님의 등장이지

거울을 보며 마지막으로 한번 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세면실을 나왔다

입구에 서 있던 이치마츠가.” 하고 혀를 차며 날린 보디 블로(body blow)에 약간 피를 흘렸지만, 금방 회복했다

, 이치마츠의 보디 블로는 귀여운 키티가 날리는 고양이 펀치와 같은 것이지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브라더-들의 자리는 모두 비어있는 가운데 오소마츠의 자리만 불룩 튀어나와 있다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도 자는 건가…. 

한숨을 내쉬고 오소마츠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양옆에 있던 사람의 체온이 없어진 탓인지 레드 선더는 오소마츠 위에 올라타 자고 있었다.

그것도 하필 오소마츠의 머리 위에서.


오소마츠, 괜찮은가?”

“…모가지 나갈 것 같으니까, 이 똥개 좀 치워어~!”

예의상 물어보자 오소마츠의 갈라진 목소리가 레드 선더의 밑에서 새어 나왔다

제일 늦게 일어나니까 그런 꼴을 보는 게 아닌가

앞으로 올라올 쵸로마츠에게 잔소리를 맡기고 아직 눈을 덜 뜬 레드 선더를 안고 거실로 내려왔다

이제 레드 선더 전용이 된 숟가락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함께 모여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면, 그제야 눈을 뜬 오소마츠가 눈을 끔뻑이며 거실에 들어왔다

남은 밥을 긁어모아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어 식탁에 내려놓은 오소마츠가 손을 모으고 잘 먹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끝내고 젓가락을 들었다

오소마츠가 밥을 한 젓가락 뜨자마자 레드 선더가 식탁으로 달려가 턱을 올렸다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소마츠를 쳐다보는 레드 선더를 보며 토도마츠가 신기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러면서, 오소마츠 형이 뭘 먹으면 꼭 달라고 저러네.”

응아? ! 이 녀석 또 이러고 있음?! 헹, 안 줄 거지롱~~!”

토도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아직 졸린 눈을 비비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침을 흘리며 제 반찬을 보는 레드 선더의 모습에 흠칫 놀란 오소마츠가 반찬을 저만치 띄워놓았다

매일 보는 모습에 브라더-들은 신경 쓰지 않고 외출 준비를 마치고 하나둘씩 현관 밖으로 나갔다

오소마츠도 레드 선더가 뺏어 먹을까 서둘러 밥을 해치우고, 파칭코 가겠다는 말을 던지고 밖으로 나갔다

브라더-들이 모두 떠난 뒤, 레드 선더를 불러 무릎 위에 앉혔다

이젠 일과가 되어버린 레드 선더의 털 손질 시간

토도마츠가 사 온 빗으로 레드 선더의 꼬리와 머리를 정성스럽게 빗겨주면 마음의 안정이 절로 찾아온다

한 번도 걸리지 않고 부드럽게 쓰다듬어지는 꼬리에 만족하며다 되었다!” 하고 말하면 레드 선더가 방긋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불쑥 얼굴을 위로 올려 내 얼굴이 침에 흠뻑 젖을 정도로 핥고, 내 코를 깨물었다

혀를 내밀어 더 위로 오르려는 레드 선더를 쓰다듬고 거실 구석에 굴러다니는 장난감을 레드 선더에게 주었다

오소마츠가 경마에서 이겼다며 브라더-들이 좋아하는 음식과 함께 사 온 레드 선더의 장난감

강아지용 장난감으로 누르며-!” 하고 소리가 나는 뼈다귀 모양 인형이다

레드 선더는 그 장난감이 마음에 드는지 주먹으로 때려보기도 하고 입에 물어서 삑삑 소리를 내면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가끔 내게 가져와 줄다리기하듯이 힘을 겨루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레드 선더가 내는 삑삑 소리를 들으며 코타츠에 발을 넣고 귤을 하나 깠다

레드 선더가 온 뒤로 거울도, 기타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레드 선더가 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평소처럼 거울을 꺼내 들었더니 레드 선더가 관심을 보이며 내게 달려왔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곧 컹컹 크게 짖기 시작했다

내가 거울만 꺼내면 레드 선더가 짖는 바람에 더는 거울을 볼 수 없었다

하루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자, 레드 선더가 다가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귀를 쫑긋거리며 노래를 감상하고, 내 목소리에 맞춰 레드 선더도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했다

이 카라마츠와 레드 선더의 그레이트한 듀엣!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쵸로마츠가 시끄럽다고 화를 내는 통에 다시는 하지 말라는 핀잔을 들었다

게다가 마미에게도 옆집에 폐가 되니 레드 선더가 있는 동안은 기타를 연주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거울을 보며 마츠노 가의 제일가는 미남인 나의 퍼펙트한 얼굴을 보는 것도, 애창곡을 연주하는 것도 금지당한 뒤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TV를 보거나 멍청히 코타츠에 앉아있는 일이 전부

지루함에 못 이겨 오소마츠의 제안을 받아들여 함께 파칭코를 가려고 했었지만, 내가 현관을 나오자마자 온 집안에 올리는 레드 선더의 울음소리에 다시 집 안으로 돌아와야 했다

레드 선더, 외로운 것은 알지만 본디 남자라는 생물은 고독한 존재다

혼자 있는 것 정도는 익숙해져야 한다고

한숨을 내쉬며 슬쩍 레드 선더에게 눈길을 주자, 나와 눈이 마주친 레드 선더가 빵긋- 웃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아아—, 천사다.

아직 레드 선더에게 정적과 고독을 가르쳐 주기에는 이른 것 같다

삑삑, 일정하게 울리는 장난감 소리에 슬슬 졸음이 몰려온다.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에 저항하는 것을 포기하고 테이블 위에 턱을 괴었을 때, “!” 하고 레드 선더의 울음소리가 나를 깨웠다.


~? 누가 오고 있나?”

!”

이 시간이면…. 쵸로마츠인가?”

끄응~.”

아닌가? 그럼…. 오소마츠?”

!!”

귀를 쫑긋거리며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한 레드 선더가 크게 짖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늑대만큼이나 예민한 후각과 청각으로, 레드 선더는 브라더-들이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누가 오는지 알아차렸다

드르륵-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오소마츠에게 어서 오란 인사말을 던지고 레드 선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번에도 정답이구나! 레드 선더—!”

!!”

꼬리를 흔들며 고개를 끄덕인 레드 선더가 이어 귀가한 쵸로마츠와 이치마츠, 쥬시마츠를 모두 맞췄다

잡지를 펼치고 코타츠에 들어가 있던 쵸로마츠가 레드 선더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렇게 말 다 알아들으면, 말도 할 수 있는 거 아냐?”

.”

쵸로마츠의 말에 놀라 레드 선더를 응시했다

확실히 레드 선더는 나나 브라더-들이 하는 말은 모두 알아듣는 것 같다

인랑이라는 것은 반은 인간이라는 소리

쵸로마츠의 말대로 말을 가르쳐준다면 레드 선더도 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쵸로마츠의 말에서 피어나온 가능성의 빛이 레드 선더의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래! 레드 선더라면, 반드시 할 수 있을 거다!! 

확신을 하고 레드 선더를 앞에 앉히고, 말을 하나씩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 레드 선더. 따라하는 거다. ‘카라마츠라고!”

—, ?”

논논~. 레드 선더~? , , , !”

, 아우-, ?”

~?”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그 방법조차 잘 알지 못하는 레드 선더를 붙잡고 아이우에오를 시작으로 천천히 말을 가르쳤다

레드 선더의 집중력이 1시간을 버티지 못해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일주일쯤 지나자 제법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마휴~!”

음음음~~!! 그래! 카라마츠다!! 마이 리틀 레드 선더!!!”

갸하하하~~!! 아파~~!!”

으음~?”

오소마츠를 보고 따라 하는 건지 레드 선더는 말을 하게 된 뒤로 내 말에 배를 잡고 웃는 일이 늘어났다

이런 이런, 앞으로 레드 선더 앞에서 쓰레기 같은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오소마츠에게 말해둬야겠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땅을 치며 웃고 있는 레드 선더의 밥을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한창 성장기인지 레드 선더는 금방 밥을 먹고도 또 배고프다며 냉장고를 열고 생고기를 먹으려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다행히 먹기 전에 말렸지만…. 

그 고기는 무려 불고기 파티를 할 고기였다고~? 레드 선더

마미가 레드 선더 용으로 준비해 놓은 고기를 가볍게 프라이팬에서 구워 접시에 옮겨 담고 거실로 들어오자, 언제 돌아왔는지 모를 오소마츠가 레드 선더에게 또 쓸데없는 말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잘 듣고 따라 하는 거다~? ‘카라마츠는 바보다. 겁나 안쓰럽다.’”

? 마휴는 바호다. 앙흐?”

아니 아니, ‘안쓰럽다!’”

-업다!”

으음~, 좀 더…. 이렇게…. 마음을 담아서! 안쓰-, 으겍!!”

레드 선더한테 이상한 말 가르치지 말아라, 오소마츠!!”

오소마츠의 머리 위에 내린 주먹을 거두고 눈을 반짝이는 레드 선더에게 고기를 내려주었다

레드 선더는 고기를 보자마자 와구와구 입에 넣기 바빴다.

 

 

배불리 고기를 먹은 레드 선더가 쥬시마츠와 함께 공놀이를 시작했다

쥬시마츠가 있는 힘껏 던진 공이 벽에 튕기며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빠르게 움직이는 공을 쫓으며 뛰어다니는 레드 선더와 그 뒤를 따르는 쥬시마츠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쵸로마츠가 거칠게 책을 덮고 빽 소리를 질렀다.


정신 사납네!! 쥬시마츠! 고만 뛰어!! 그리고 카라마츠!!”

!?”

이 녀석 데리고 산책이라도 나갔다 와!! 온 집안을 돌아다니니까 정신 사나워 죽겠어!!”

.”

쵸로마츠의 노성에 당황해 눈을 끔뻑였다. 레드 선더는,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면 안 된다고 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돌려보내야 하니까. 레드 선더가 답답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집 밖으로 외출하지 못했는데…. 

멀뚱히 쵸로마츠를 응시하자 쵸로마츠가 답답하다는 듯이 푹-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사람이 안 돌아다니는 새벽에 산책하면 되잖아. 늑대는 야행성이라고 하고.”

밖에, 춥다아….”

!?”

오늘 나갔다 오겠다!!”

쵸로마츠의 얼굴이 도깨비가 되기 전에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 하고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다시 책을 펼치는 것을 보고 안도하며 레드 선더를 내려다보았다

첫 산책….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에 절로 눈썹이 아래로 내려앉았다.

 

 

지나가는 사람도, 차도 하나 없는 새벽. 차가운 공기에 부르르 몸을 떨고 레드 선더와 함께 현관 밖으로 나왔다.


? 레드 선더~? 무섭지 않다! , 이리로.”

현관문을 붙잡고 떨리는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레드 선더에게 손짓했다

무섭지 않아! 무슨 일이 있다면 반드시 내가 지켜줄 테니까

마음을 담아 레드 선더를 응시하자, 용기를 낸 레드 선더가 집 밖으로 한 발짝 내디디었다

새벽의 찬바람이 레드 선더는 개의치 않는지 한번 나온 바깥에 익숙해진 레드 선더는 나를 앞서 달려나갔다

서둘러 레드 선더를 뒤쫓아 레드 선더를 붙잡고 천천히 걸음을 맞춰 동네를 걷기 시작했다.



카라마츄~, 저건 뭐야?”

~? , 저건 자동차다. 엄청 위험한 거니까 가까이 가면 안 된다. 레드 선더.”

흐음~. 그럼 저건?”

저건…,”

전보다 더 말을 잘 하게 된 레드 선더는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지나가는 곳곳 신기한 것을 발견하면 꼭 나를 불러 무엇인지 물어보아야 성이 풀리는 것 같았다

마을을 한 바퀴 크게 돌고 인적 없는 공원에 도착했다

공원 안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레드 선더에게 마음껏 돌아다니고 오라고 했다

이 추운 날, 동네 한 바퀴는 체력적으로 힘들다

차가운 냉기를 뿜어내는 벤치에 앉아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자 하얀 입김이 퍼졌다

얼마나 뛰어노는지 조용한 공원 안에 레드 선더의 발소리가 울린다

공원 중앙에 있는 시계를 보며 시간을 가늠하고 20분 정도 지났을 때, 레드 선더를 불렀다.


(카라마츠), 이어 아아(이거 봐봐)!”

~? , 으왁!?!? , 레드 선더!? , 그 버드는 어디서 잡은 건가!?”

-()!”

입에 회색 피죤을 물고 있는 레드 선더에게 놀라 펄쩍 뛰며 벤치에서 일어났다

내 질문에 레드 선더는 밝은 얼굴로 풀숲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아무리 요즘 피죤이 살이 많이 찌고 걸어 다니길 좋아한다지만, 레드 선더에게 잡힐 정도인가?!

일단은 피죤도 새다만!?!? 

머리 위로 물음표가 잔뜩 떠 오르는 것은 느끼며 레드 선더를 잘 타일러 피죤을 놓아주도록 했다

피죤을 놓아주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레드 선더에게 내일 또 나오자고 말하자 그제야 뷰티풀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기타를 칠 수 없는 허전한 마음을 공기를 울리며 달래고 있을 때, 방으로 들어온 쵸로마츠가 벽장을 열고 얼굴을 밀어 넣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 레드 선더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쵸로마츠의 엉덩이를 응시했다.


, 로마츠? 뭔가 찾는 게 있는 건가?”

, …. 분명히 이쯤에 냐-쨩의 피규어를 넣어둔 것 같은데…. 그 망할 장남이 망가뜨리지 못하게 넣어놨는데,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

항상 축 처진 눈썹을 세우고 숨을 크게 내쉰 쵸로마츠가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눈을 감고대체 어디에 뒀지?” 하고 기억을 더듬는 쵸로마츠에게 다가간 레드 선더가 벽장 속 냄새를 맡더니 옷장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망설임 없이 옷장 문을 열고 서랍을 쭉 꺼내 옷 속에 얼굴을 묻고 꼬리를 살랑이던 레드 선더가여기!” 하고 피규어를 손에 들고 옷장 서랍에서 몸을 빼냈다.


-!! 그래! 거기에 숨겨놨지!! 고마워!”

레드 선더에게 피규어를 건네받은 쵸로마츠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레드 선더를 칭찬하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쵸로마츠의 칭찬에 수줍게 볼을 발갛게 물들인 레드 선더가 손가락으로 코밑을 문질렀다

방방 뛰며 쵸로마츠가 피규어를 가지고 아래로 내려간 틈을 노려 레드 선더를 불렀다

며칠 전부터 나의 퍼펙트 재킷이 보이지 않는다

레드 선더에게 쵸로마츠의 피규어를 찾은 것처럼 재킷을 찾아달라고 말하자 레드 선더가 화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킁킁 냄새를 맡은 레드 선더는 그대로 소파 뒤쪽으로 얼굴을 집어넣었다.


?! 그런데 떨어져 있었던 건가?”

항상 옷걸이에 걸어두었던 재킷이 왜 소파 뒤에 떨어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레드 선더가 비켜준 자리로 들어가 소파 뒤에 구겨져 있는 가죽을 잡아 빼냈다.


“……레드 선더. 이건, 네가 한 건가?”

내 손에 들려 나온 재킷은…, 엉망으로 물어 뜯겨서 팔 한쪽은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 않고, 등 뒤에 박혀있던 깔쌈한 해골 마크는 반이 날아가 있었다

우리 집에 질긴 가죽을 이렇게 엉망을 뜯어놓을 녀석은 레드 선더밖에 없다

황당함을 감추고 레드 선더에게 묻자, 레드 선더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내가 안 했어! 나는 몰라! 카라마츠가 찾아달라고 해서 냄새 맡아보니까 여기 있었어!”

정말인가…? 솔직하게 말하면 화내지 않겠다.”

! 정말이야! 나는 몰라! 내가 안 했어!”

억울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홱홱 젓는 레드 선더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거짓말은 가르친 기억이 없는데 말이야-. 

이걸 어떻게 혼내야 하나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끼잉~.” 하고 우는 소리가 났다.


카라마츠~, 화났어? 그거, 그렇게 되서…, , 나써?”

후드에 살짝 발톱을 걸어 아래로 당기고 귀와 꼬리는 축 늘어뜨리고 묻는 레드 선더의 모습에 숨을 삼켰다

과연, 그렇군. 이게 쵸로마츠가 그렇게 외치던귀여우니까 용서한다!’라는 것인가!! 

뜨거워지는 얼굴을 돌리고 심호흡을 하며 힘차게 박동하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다시 고개를 돌리니 제 눈길을 무시했다고 생각했는지 레드 선더가 새파래진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심장이 다시 펄떡이는 것을 느끼며 레드 선더를 품에 꼭 안고화나지 않았다

다음부턴 물어뜯는 것은 내가 좋다고 말한 것만 하는 거다, 레드 선더-.” 하고 나직이 속삭이자, 레드 선더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품에 넣은 레드 선더의 몸이 굉장히 따뜻하고 또 잘게 떨리고 있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작은 보이를 지켜내고 말겠다는 다짐이 샘솟았다.

 

 

 

 

 

5.

 

레드 선더와 함께 지낸 지 한 달

엄청난 식욕과 식탐으로 가계의 절반을 거덜 낸 레드 선더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 어느새 머리가 내 가슴까지 오게 되었다

인간과 늑대가 섞인 인랑인만큼 성장이 빠른 것이라도 닥터를 설명했지만, 이 정도로 빠르면 놀랄 수밖에 없다

집안을 돌아다니는 레드 선더를 보며 브라더-들도 흠칫흠칫 놀랄 때가 있다

쥬시마츠와 함께 공놀이하며 거실 안을 돌아다니는 레드 선더를 보면 거실이 너무나 비좁아 보일 지경이었다

이제 슬슬…. 그런 생각이 들었을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네네네-!! 나갑니 도루왕~!!”

! 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벨이 끊겼다. 쥬시마츠의 밝은 목소리가 복도에 울리는 것이 들려와 몸을 일으켰다

아마도, 내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면 전화를 건 사람은 닥터일 것이다

복도로 나가 나를 보고….” 하고 입을 다무는 쥬시마츠에게 수화기를 건네받아 귀에 가져갔다.


『호, 호에? 쥬시마츠 군?

카라마츠다, 닥터. 레드 선더의 일인가?”

『카라마츠 군! 그렇다요. 겨우 그 아이가 있을 곳을 찾았다요. 카라마츠 군과 쥬시마츠 군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도 있으니 그 아이를 연구소로 데려 와달라요.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하려면 나가는 것은 밤이 깊은 후가 될 것 같다. 그래도 괜찮은가?”

『물론이다요! 오기 전에 연락을 준다면 문제 없다요.

—. 알겠다.”

전화를 끊고 커다래진 동공으로 나를 쳐다보는 쥬시마츠에게 싱긋- 웃어주었다

알고 있었다. 이런 때가 올 거라고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날이 오늘이라는 것까지

브라더-들과 마미와 대디에게 간략하게 이야기를 하고 새벽에 레드 선더와 함께 집을 나섰다

이미 몇 번이고 새벽 산책을 경험한 레드 선더는 망설임 없이 우리를 따라왔다

평소 다니던 길에서 조금 벗어나 시내를 지나서 닥터의 연구소까지 걸어서 20분 남짓

도착한 연구소를 알아본 레드 선더의 꼬리가 크게 넘실댔다.


이리 오너라~!!”

쥬시마츠의 큰 목소리에 닥터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찬 몸을 녹이기 위해 서둘러 쥬시마츠, 레드 선더와 함께 연구소 안으로 발을 들였다.

 

 

적응, 훈련…, 말인가?”

그렇다요. 지금 당장 야생에 풀어놓는다면 적응해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요. 이 아이는 한 달 넘게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왔으니 야생 적응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요.”

그 훈련은, 이곳에서 한다는 건가?”

그렇다요.”

말을 마친 닥터가 앞서서 연구실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쥬시마츠와 연구실 안을 기웃거리던 레드 선더를 불러 함께 닥터의 뒤를 따랐다

용도를 할 수 없는 이상한 기계들과 각양각색의 약물이 진열된 약장을 지나 도착한 곳은 잔디가 넓게 깔린 마당 같은 곳이었다

1m 정도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곳을 가리키며 닥터가 말했다.


이곳에서 사냥 연습과 먹이를 찾는 훈련, 그리고 사람을 경계하는 교육 같은 걸 할 생각이다요. 갑자기 마츠노 가에서 떨어지는 것은 힘들 테니까 앞으로 매일 새벽 이곳에 와 달라요. 3주 정도 훈련 기간을 거치고 이 아이를 야생으로 돌려보낼 생각이다요.”

, 렇군….”

닥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내 옆에 꼭 붙어있는 레드 선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 레드 선더가 나를 올려다보며 눈썹을 찡그렸다.


카라마츠, 나 어디 가?”

아니다, 레드 선더-. 앞으로 매일 산책하다가 이곳에 들러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갈 거다.”

놀이!? 무슨 놀이!! 나 노는 거 좋아! 뭐 하는데? 쥬시마츠랑 같이 공 쫓기 하는 거야?”

….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걸 할 거다.”

더 재미있는 거!? 진짜!? 신난다~~!!”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으며 좋아하는 레드 선더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닥터에게 인사를 했다

훈련은 내일부터

레드 선더의 손을 잡고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추웠다.

 

 

그 후로 매일, 레드 선더는 닥터의 연구소에서 훈련했다

야생을 가정해 작은 쥐나 토끼를 울타리 안에 풀어놓고 레드 선더가 잡을 수 있도록 했다

또 땅에 음식을 묻어 레드 선더가 그것을 냄새로 찾을 수 있게 유도했다

총을 든 사람(밀렵꾼)이 얼마나 무서운지, 총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볍게 큰 상처를 낼 수 있는지도 말해주었다

같은 사람인데도 왜 그런 나쁜 짓을 하냐는 레드 선더의 질문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우리의 품을 떠난 레드 선더가 그런 나쁜 사람에게 잡히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니까 꼭, 다른 사람을 본다면 다가가지 말고 도망치는 거다.”

카라마츠를 봐도?”

“…그래. 나를 보아도.”

엄청 반가워도 가까이 가면 안 돼?”

—. 멀리서 내게 손을 흔들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 나는 카라마츠가 좋은데. 카라마츠한테 가서 이렇게 꽉 안아주면 안 돼…?”

미안하다, 레드 선더. 네가 그렇게 행동하면 내가 슬플 것 같다.”

“…, 겠어. 카라마츠 말대로 할게.”

. 고맙다. 나의 리틀 레드 선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레드 선더를 있는 힘껏 안아주었다

훈련은 날이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졌고, 레드 선더의 본능도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졌다

3주를 채울 필요도 없이, 훈련을 시작하고 2주가 지났을 때 닥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드 선더가, 야생으로 나갈 준비가 모두 끝났다는 오케이 사인

훈련 마지막 3일은 마츠노 가에 돌아가지 않고 연구소에 준비된 훈련장에서 먹고 잤던 레드 선더는 오랜만에 우리와 함께 집으로 간다는 것에 들떠 있었다.

 


집에 돌아가 레드 선더와 함께 몸을 씻고, 같은 이불에 누웠다

내 옆에 누워 행복한 얼굴로 평온하게 잠든 레드 선더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이 일은 슬퍼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축복할 일이다

레드 선더가 다시 대자연의 품에, 마더-의 품에 돌아가는 거니까

얼굴을 좀 볼 수 없어진다고해도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몇 번이고 스스로 되뇌며 뜨거워지는 눈동자를 눈꺼풀 속에 숨겼다


다음 날, 브라더-들과 마미와 대디에게 인사를 하고 집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닥터의 비행선에 올랐다.

두둥실 하늘 위로 떠 올라 도시 위를 빠르게 날아가는 광경에 입이 벌어진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레드 선더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유리창 너머 개미만 하게 보이는 사람들과 작은 블록처럼 보이는 건물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날아가 도착한 곳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평원

군데군데 나무가 있고, 커다란 바위도 있어 레드 선더가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이 많았다

평원을 노니는 사슴과 돌아다니는 작은 족제비가 있는 것으로 보아 먹이도 풍부한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닥터와 함께 비행선에서 내리자, 레드 선더가 주변을 둘러다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좌우로 크게 흔들리는 꼬리를 보아 레드 선더도 이곳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레드 선더-.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거다.”

!! 여기 엄청 넓어!”

—.”

카라마츠~!”

눈을 찡긋이며 배시시 웃은 레드 선더가 내게 다가와 내 손을 잡아끌었다.


? 레드 선더?”

? 카라마츠도 같이 사는 거지?”

.”

나랑 여기서 같이 사는 거, …아냐?”

이상함을 눈치챈 레드 선더가 귀를 늘어뜨렸다

눈썹을 찌푸리고 나를 그윽이 쳐다보는 레드 선더에게 나는 진실을 말해야 했다.


레드 선더-, 나는…. 여기서 함께 살 수 없다.”

“…? 나는 카라마츠랑 같이 있는 게 좋은데!”

그건….”

말을 하려는 순간, 목이 턱 하고 막혔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내가 앞으로 할 말은 너무나 잔혹한 것이었다

카라마츠…?” 하고 내 이름을 부르며 울먹이는 레드 선더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

쵸로마츠처럼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설명을 하는 것은 내 특기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온 마음을 다해 레드 선더에게 전하는 것뿐이다.

 


네가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이곳에서라면 레드 선더가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마음대로. 마음껏 울어도 시끄럽다고 할 녀석들도 없고, 신나게 뛰어도 집이 흔들린다며 화낼 녀석도 없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면 된다. 그렇게 싫던 목욕도 이곳에서는 하지 않아도 된다.”

, 그치만…. 카라마츠가 없잖아….”

내가 없어도, 레드 선더는 혼자서 잘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대자연엔 레드 선더가 필요해. 하지만 나는 필요하지 않다. 내가 있을 곳은그 녀석들의 곁이다.”

나도, 카라마츠 옆에 있으면 안 돼?”

물론, 레드 선더도 있어도 된다! 언제나 내 마음엔 레드 선더가 있을 거다! 사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말이지.”

“….”

스스로 눈물을 닦아낸 레드 선더가 침묵했다

축 늘어진 꼬리가 조금씩 좌우로 움직이며 땅을 쓸었다

레드 선더도 알아챈 것이다.

내가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혼자 저 너머로 가는 것은 역시 두렵겠지

레드 선더의 발이 내 앞에서 떠날 때까지 말없이 기다리기로 했다

행복을 찾아 떠나는 레드 선더의 뒷모습을 배웅하고 싶으니까.

 


우물우물 입술을 깨물며 망설이던 레드 선더가 주먹을 꽉 쥐고 몸을 돌렸을 때, 높은 산 저쪽에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우우——!”

동료를 부르는 늑대의 소리. 하울링에 레드 선더의 귀가 쫑긋 일어섰다

눈을 깜빡이며 망설이던 레드 선더가 나를 한 번 보고 목을 가다듬었다.


우우, 아우우우—!”

산에서 들려오는 울음에 응답하듯이 레드 선더가 크게 울었다

또 그것에 응답하듯 울음소리가 평원에 퍼지고 한 무리의 늑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닥터! 저건!?”

, 호에호에!! 이곳에 인랑 무리가 있었다니!!”

닥터의 놀란 목소리에 이쪽으로 다가오던 인랑의 발이 멈췄다

레드 선더 또래로 보이는 인랑이 다섯

리더로 보이는 보이는 레드 선더와 마찬가지로 검은 피부에 푸른 털빛을 띠고 있었다

풍성한 꼬리를 높이 세우고 탐색하듯 공기에 퍼진 레드 선더의 냄새를 확인한 블루 울프가 천천히 레드 선더에게 다가왔다.

블루 울프도 레드 선더도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어떻게 할 줄을 모르고 쭈뼛대며 서로를 관찰했다

레드 선더에게 다가가던 걸음을 멈춘 블루 울프가 작게아우—.” 하고 레드 선더를 부르듯이 울었다

레드 선더도 작게 블루 울프의 울음에 응답하고, 그렇게 하울링이 오가는 사이에 레드 선더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다.

푸른 울프와 대화를 마치고 나를 향해 몸을 돌린 레드 선더의 얼굴엔 여느 때와 같은 따뜻한 햇살과 같은 푸근한 미소가 가득 피어 있었다.


카라마츠!”

! 꼭 또 보자. 마이 리틀 레드 선더!”

!!”

행복해지는 거다….

“…!!”

웃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인 레드 선더가 블루 울프의 곁으로 뛰어갔다

블루 울프도 부드러운 미소로 레드 선더를 맞이했다

무리의 다른 인랑들도 모두 레드 선더를 반기는 것 같았다

곧 하나의 무리가 된 인랑들은 빠르게 산을 올라, 곧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졌다.

 

 

 

다시 닥터의 비행선을 타고 집 앞에 내리자, 예상하지 않았던 목소리가 닿았다.


—, 어서 와. 카라마츠.”

“…, 소마츠?”

그 녀석은 잘 갔어?”

—. 레드 선더는, 자신이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곳으로 갔다.”

그래. 잘됐네.”

피식- 웃으며 말을 마친 오소마츠가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들어가자고.”

“…!”

열린 현관문으로 고갯짓하는 오소마츠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레드 선더가 있을 곳이그곳이듯이, 내가 있을 곳은 바로이곳이다.





 * 카라마츠가 바보 부모가 된 것 같네요...


 * 재통판 공지는 오늘 저녁에 올라올 예정입니다. 기다려주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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