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업하다 마무리해서 올립니다ㅎ
* 비상금전쟁의 마법사AU 입니다ㅎ
* 공미포 13,722자.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소른 50제
4. 거짓말 (카라오소) 하늘밤 님 신청 키워드.
1.
푸른 비닐에 덮인 용이 하늘 위 구름에서 튀어나와 “뀨이-!” 하고 울었다.
조종간을 설치해 개조한 빗자루에 탄 남자가 용의 부름에 후후-, 웃음을 흘렸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구름 사이를 오가며 즐겁게 비행을 하던 용이 급히 고도를 낮춰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애정을 숨기지 않고 뀨이, 뀨이 울어대며 남자의 볼에 얼굴을 비비는 용을 부드럽게 쓰다듬은 남자가 제 무릎 위에 용을 앉혔다.
구름 위에서 놀아 지쳤는지 용은 금세 색색 규칙적인 숨을 내쉬며 잠들었다.
용이 깨지 않도록 빗자루의 속도를 낮춰 부드럽게 비행하며 용의 등을 상냥하게 어루만진 남자가 쓴웃음과 함께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 고향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3년만인가….”
그리운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동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린 남자가 다시 푸른 용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때……. 오소마츠, 네 거짓말을 알아챘다면….”
후회가 묻어나오는 목소리가 낮게 퍼졌지만, 용은 꿈쩍도 하지 않고 고른 숨을 내뱉으며 꿈나라를 여행했다.
침까지 흘리며 잠든 용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흐르는 침을 닦아낸 남자가 고향을 향해 빗자루를 몰았다.
2.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다.
눈에 익은 건물들 사이로 빗자루를 몰아 도시 외곽, 아늑한 스위트 홈에 도착해 빗자루에서 뛰어내리자, 커다란 캔버스를 들고 외출을 하려던 쥬시마츠와 마주쳤다.
“카라마츠 형아——!!!”
“쥬시마-츠!”
캔버스를 땅에 던지고 맹렬하게 나를 향해 달려오는 쥬시마츠를 간신히 받아내 기쁨의 포옹을 나누었다.
“스케치하러 가는 건가?”
“응! 강가에!”
“그렇군. 나이스한 페이팅-. 기대하고 있겠다.”
“아이아이!!”
힘차게 대답한 쥬시마츠가 손을 팟! 들어 흔들고 다시 캔버스와 그림 도구들을 들고 강가로 향했다.
마당 한쪽에 마련된 보관실에 빗자루를 넣어두고 현관문을 열었다.
끼이익- 하고 낡은 문이 내는 소리가 귓가에 음악처럼 울린다.
오래된 목조 건물에서 나오는 축축하지만 향긋한 나무 냄새가 가득한 집 안에 발을 들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방에도 거실에도 형제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며 시간을 확인하고서야 자신의 어리석음에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은 평일 낮.
형제들 모두 일터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거실 소파에 내려놓고 텃밭으로 나갔다.
반반의 확률이었지만, 자신의 예상대로 토도마츠가 텃밭에 있었다.
여행하며 자주 보았던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이 심어진 밭을 조심스럽게 넘어 커다란 모종삽을 이리저리 움직여 땅을 뒤집고 있는 토도마츠의 뒤로 다가갔다.
“토도마츠.”
“으왓!! 깜짝야!! 어? 카라마츠 형? 언제 돌아왔어?”
“방금 돌아왔다.”
“아-, 그렇구나. 어서 와. 반년 만에 돌아온 건가?”
“그렇지.”
갑자기 등을 두드려 화들짝 놀란 토도마츠가 나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이내 오랜만이라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웃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아직 일이 남은 토도마츠에게 형제들의 위치를 묻고, 집에서 일터가 제일 가까운 이치마츠를 만나러 가방을 챙겨 집을 나왔다.
약사인 이치마츠가 있는 약국은 집에서 약 10분 거리에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게 안은 대낮인데도 어둡고 매캐한 약 냄새가 진동했다.
계산대에 이치마츠가 보이지 않아,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냄비에 대형 주걱을 넣어 휘적휘적 약을 만들던 이치마츠가 안으로 들어온 나를 보고 “쯧-.” 하고 혀를 찼다.
“오랜만에 본 건데, 혀를 차는 건 너무하지 않나? 브라더-.”
“아-, 그래. 어서 와.”
일편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형식적인 환영 인사를 건넨 이치마츠에게 가방에서 물약을 꺼내 건넸다.
“약이 다 떨어져서 말이야. 또 만들어 주지 않겠나?”
“진통제야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이번엔 얼마나 필요한데?”
“3년 치.”
“3?! 하? 개똥마츠, 너 3년이나 안 돌아올 셈?!”
“아하하. 일이 좀 그렇게 됐다.”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리고 추궁하는 눈빛으로 날카롭게 나를 응시하는 이치마츠에게 적당히 대답을 흘리고,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후다닥 가게를 나왔다.
하늘은 청명. 그야말로 산책하기 좋은 날씨다.
이 좋은 날씨에 콩나물 보이처럼 연구실에 처박혀 있을 사랑스러운 하니-를 만나서 그리운 학교로 발을 돌렸다.
나라 안에서 제일 유명한 마법 학교.
우리 육둥이가 졸업한 모교인 그곳에 우리의 장남이자 나의 연인이 교사로 재직 중이다.
익숙한 교문을 넘어 오소마츠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지만 몇 번을 두드려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문을 열어보았지만, 너무나 가볍게 열린 문 너머 연구실에는 책만 가득 쌓여있을 뿐 오소마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외출한다면 문 정도는 잠가라, 오소마츠.”
주의성 없는 연인에게 혼잣말로 핀잔을 주고 문을 닫고 학교를 나왔다.
오소마츠가 있을 법한 곳은 도박장이나 경마장.
급한 볼일은 없으니 일단 쵸로마츠를 만나러 갈까. 고개를 끄덕이고 서고로 향했다.
서고에서 제일 중요한 책들을 관리하는 일을 맡은 쵸로마츠를 만나서 서고 가장 깊숙이 있는 섹션으로 들어갔다.
일급비밀로 취급되는 책들은 자격증이 없으면 볼 수 없지만, 드래곤 연구가로서 미리 자격증을 따놓은 나는 프리 패스가 가능하다.
빛이 들어오는 것을 철저하게 막고 은근한 간접 조명만을 띄워놓은 서고 안쪽에 커다란 열쇠를 타고 둥둥 떠다니며 저- 위로 솟은 책꽂이에 책을 정리하고 있는 쵸로마츠를 발견했다.
“쵸로마츠-!”
“어? 카라마츠?”
“아-, 오랜만이다.”
내 부름에 쵸로마츠가 놀란 얼굴로 휙 내려왔다. 반년 만에 본 동생의 얼굴이 순수하게 기뻐 활짝 웃으며 잘 지냈냐며 근황을 주고받자마자 쵸로마츠 뒤쪽에서 사랑해 마지않는 허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쵸로~. 이 책 말고 또…,”
“오소마츠!!”
“어엣!? 카라마츠? 언제 돌아왔어!?”
“조금 전에 돌아왔다. 마이 하니-~~!!!”
“우왁!!”
투명한 거대 구슬에 걸터앉아 책 하나를 들고 쵸로마츠에게 다가오던 사랑스러운 오소마츠에게 달려들었다.
가녀린 몸을 품에 꽉 안고 그토록 그리웠던 오소마츠의 체온을 만끽하고 있자, 오소마츠가 괴로운 듯이 버둥거리며 내 등을 찰싹찰싹 때렸다.
쵸로마츠의 험악한 표정도 있고 해, 아쉬움을 남기고 오소마츠를 놓아주자 오소마츠가 헤실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오소마츠의 손!
따뜻하고 부드러운 상냥한 손길에 눈을 지그시 감고 감동의 눈물을 들이마셨다.
“잘 지냈어? 카라마츠?”
“아-. 오소마츠야말로, 잘 지냈나?”
“나야 항상 똑같지~. 그리고, 다리는 좀, 어때?”
“가끔 욱씬거리지만 이치마츠의 약이 잘 들어 괜찮다.”
“…그래.”
사라진 오른 다리에 오소마츠의 체온이 닿았다.
직접 피부로 그 온기를 느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오소마츠의 손에 닿는 것은 따뜻함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금속뿐.
딱딱하고 은색으로 빛나는 의족을 쓰다듬는 오소마츠의 얼굴에 슬픔이 드리워진 것이 싫어 서둘러 화제를 바꿔 여행에서 보았던 진귀한 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에 금세 어두운 얼굴을 버리고 생긋- 미소를 보여주는 오소마츠가 더욱 사랑스러워서 심장이 거세게 두근거렸다.
단 일 초라도 오소마츠와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아 이야기하는 내내 옆에 딱 달라붙어 있자, 쵸로마츠의 호통과 잔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3.
달력을 확인하고 여행하며 항상 품에 넣고 다녔던 수첩을 꺼내 펼쳤다.
‘용의 대이동’. 번식기를 맞아 전 세계에 퍼져있는 드래곤이 인간은 찾을 수 없는 둥지로 돌아가는 시기이다.
푸른 하늘을 수천만 마리의 드래곤이 가득 채우고 웅장한 날갯짓 소리와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널리 퍼뜨리며 무리 지어 날아가는 광경은 그야말로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장관임이 틀림없다.
게다가 장수를 하는 드래곤의 특징 때문인지 ‘대이동’은 100년에 한 번 일어난다.
운 좋게도 올해 ‘대이동’이 있을 것이라 관측되었고, 하늘의 복이 내렸는지 고향인 아카츠리아가 ‘대이동’을 하는 드래곤들이 지나가는 길목이라고 한다.
100년에 한 번 있는 ‘대이동’.
그것을 놓친다면 드래곤 연구가라는 이 카라마츠의 이름이 울 것이다. 한 번 더 달력을 확인하고 날짜를 정해 관찰 준비를 할 것을 마음속에 새기고, 반년간 여행으로 알게 된 드래곤에 관한 지식을 정리해 국가에 제출할 연구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국가가 인정하는 연구원은 매해 예정된 예산을 받고 그에 필적하는 연구 결과를 내야 한다.
드래곤이라는 것은 아직 미지의 생물이기 때문에 내 연구는 제법 인기가 많은 축에 속한다.
반년간 온갖 고생을 함께 해온 가방에서 부서지지 않도록 잘 밀봉해두었던 드래곤의 비늘과 발톱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지금까지 수첩에 적어놓았던 내용을 보고서로 옮기려면 밤샘을 각오해야 하겠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반듯한 양피지를 펼쳐, 깃펜에 잉크를 묻혀 정성스럽게 글씨를 써 내려갔다.
“자, 카라마츠.”
큰 수정구에 올라탄 오소마츠가 커피잔을 책상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온종일 마을 안을 돌아다니느라 보고서를 쓰기 시작한 것은 동생들이 모두 잠든 늦은 시간.
나와 함께 깨어있는 오소마츠가 건네준 커피의 향긋함에 마음이 녹는 것을 느꼈다.
“고맙다, 오소마츠. 오소마츠는 안 졸린가?”
“응~, 아직 할 일이 남아서.”
“그런가. 그럼 함께 열정적인 나이트를 보낼 수 있겠군!”
“푸핫! 열정적인 나이트는 뭐야~. 너나 나나 일하느라 밤새는 건데!”
손가락을 치켜들고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오소마츠의 웃음만 터뜨리고 말았다.
큭큭거리며 즐겁게 웃는 오소마츠의 얼굴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제 손에 들린 커피를 후루룩 마신 오소마츠가 빈 컵을 들고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공중에 떠 있는 수정구가 오소마츠의 의지에 맞춰 주방으로 이동했다.
“카라마츠, 너도 한 잔 더 마실 거야?”
주방에서 들려오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커피잔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덜 마신 커피가 반쯤 남아있어 괜찮다 대답하고 다시 보고서를 써 내려갔다.
둥둥, 오소마츠가 탄 수정구가 다시 거실로 나왔을 때, 벌컥 문이 열리고 쵸로마츠가 피곤한 얼굴로 집에 들어왔다.
“어서 와~, 쵸로마츠.”
“웰컴 홈-! 브라더-.”
“어. 다녀왔어…. 아, 오소마츠 형.”
“응~?”
“신청했던 도서 열람, 허가 났어.”
“어!? 진짜!!”
“응. 여기. 가져왔으니까 혹시나 잊어먹지 마.”
“오~, 땡큐땡큐!”
쵸로마츠가 내민 낡고 너덜거리는 책을 소중히 안아 든 오소마츠가 천사와 같은 미소로 쵸로마츠에게 인사했다.
쵸로마츠는 적잖이 피곤한지 손을 흔들며 대충 대답하고는 곧바로 침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거실에 놓인 6인용 테이블 위에 쵸로마츠가 가져온 책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오소마츠가 양피지 다발을 가지고 와 내 맞은편에 앉았다.
“할 일이라는 게 그건가?”
“응. 좀, 알아볼 게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는 오소마츠의 손 아래, 펼쳐진 책을 슬쩍 들여다보았지만 나는 읽지 못하는 고대문자로 쓰여 있었다.
학창시절 이론 수업은 항상 낙제했던 오소마츠가 고대 문자를 읽을 수 있다는 것에 내심 놀라며 다시 보고서로 시선을 돌렸다.
째깍째깍, 시계의 초침 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보고서에 집중했다가 고개를 들자 어느새 3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창밖은 완전히 깜깜해졌고, 집 안팎은 새벽의 고요함이 가득했다.
새벽에 들어가 약간 쌀쌀해진 공기에 부르르 떨며 히터를 켜야겠다고 생각해 몸을 일으키자 맞은편에서 책을 읽고 있던 오소마츠가 눈을 들었다.
“응? 뭐하게?”
“잠깐 히터를 켜야겠다 싶어서….”
“아, 그럼 내가 할게. 카라마츠는 움직이지 마.”
“고맙다.”
내 다리를 배려한 것인지 오소마츠가 싱긋- 웃으며 수정구를 탄 채로 거실을 떠났다.
주방 뒤쪽에 있는 히터를 마법으로 켜고 다시 거실로 돌아오는 오소마츠를 보며 아주 작은 위화감을 느꼈다.
그게 뭘까, 곰곰이 생각하며 오소마츠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문득 오소마츠가 줄곧 수정구에 타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서고에서도, 집 안에서도 오소마츠는 필요 이상으로 수정구에 탄 채로 이동하고 있지 않은가?
머릿속을 스치는 의문에 눈썹을 찌푸리고 오소마츠를 불렀다.
또 뭔가 숨기고 있다는 의심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는 스스로 놀랄 정도로 낮게 가라앉아있었다.
“어? 뭐야.”
“혹시, 걷는 것이 힘든 건가?”
“헤?”
“계속 그 수정구에 타고 있다. 서고에 있을 때부터 줄곧. 다리가 아픈 건가? 아니면 움직이기가 힘든가?”
“푸핫, 완전 건강체인 내가 그럴 리 없잖아~. 이건 그냥 걷기 귀찮을 뿐이야~.”
“….”
“정말이라구? 자, 봐.”
내 의심을 빨리 떨쳐버리려는 것처럼 오소마츠가 과장되게 수정구에서 뛰어내려 내 앞까지 걸어왔다.
걷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이상한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내 앞에 서서 부드럽게 웃는 얼굴이 이상하게 묘한 불안을 더 부추겼다.
알 수 없는 초조함에 한숨을 흘리며 오소마츠의 허리에 팔을 감아 강하게 끌어당겼다.
의자에 앉은 내 위로 겹쳐진 오소마츠의 몸을 강하게 끌어안고 얇은 천 너머로 느껴지는 오소마츠의 심장 박동 소리에 안심하며 나직이 속삭였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말해야 한다.”
“응. 알고 있어.”
“반드시다!”
“응.”
몇 번이고 당부하는 나를 보며 오소마츠가 빙그레 웃고는 상냥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불쾌한 기분에 눈썹을 늘어뜨린 내 얼굴을 보며 피식-, 잔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살짝 고개를 내려 내게 입 맞췄다.
쪽, 하고 떨어진 입술이 아쉬워 오소마츠의 머리 뒤로 손을 감아 끌어당겼다.
말랑말랑한 입술이 제대로 체온을 지니고 있는 것에 안도하면서 오소마츠의 입술을 비집고 들어가자, 뜨끈한 살덩이가 내 혀에 닿았다.
반년간의 공백을 채우고 싶어 숨을 쉴 틈도 주지 않고 오소마츠의 혀를 강하게 얽어맸다.
뜨거운 숨이 하나가 되고, 오소마츠의 신음조차 삼켜버리고 부드럽고 뜨거운 몸을 품에 안았다.
4.
“벌써 그 책을 다 봤다고?”
쵸로마츠의 놀란 말투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젯밤 가져다준 책은 고대 문자로 쓰여 있어 해독에 애를 먹었지만, 카라마츠와 함께 밤을 새며 필요한 정보는 다 빼낼 수 있었다.
낡은 책이 부서지기라도 할까 조심스럽게 책을 건네받은 쵸로마츠가 서고에 들어가 책꽂이에 책을 꽂고 돌아왔다.
연구 목적으로 학교장에게서 받은 열람권을 쵸로마츠에게 건네며 또 다른 책을 부탁했다.
고대부터 전해져 오는 드래곤의 설화나 신화와 같은 이야기를 정리한 「드래곤 신화」.
대체 무슨 연구를 하는 거냐며 세모꼴의 입술을 비틀면서도 얌전히 책을 찾아준 쵸로마츠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고 학교로 돌아왔다.
스멀스멀 뇌로 올라오는 감각에 서둘러 자신의 연구실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더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책을 책상에 내던지고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신음을 토했다.
“크, 하앗!!”
뜨겁다, 뜨겁다, 뜨겁다.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워서 견딜 수 없다.
피부를 감싸고 있는 부드러운 천의 질감조차 참을 수가 없어서 장갑을 찢어버릴 기세로 벗어 던졌다.
부츠도, 거슬린다.
아프다.
종아리까지 감싸고 있는 부드러운 가죽조차 끔찍한 통증을 유발하는 기폭제가 된다.
자신의 피부가 아닌 이질의 물체를 벗어 던지고, 인간의 체온 이상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손과 발을 감싸 쥐었다.
“크, 흣! 이제, 시간이 없어…. 빨리….”
끝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조용히 되뇌였다.
이대로 한계가 온다면, 그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나 자신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할 것이다.
그런 일만은,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하루빨리 손을 써야 한다는 것을 몇 번이고 다짐하면서 입술을 깨물고 온몸을 휘감는 고통을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5.
아침에 눈을 뜨고 오소마츠가 이미 출근한 것에 감사했다.
매일 아침 칼로 다리를 찌르는 것 같은 통증에 눈을 뜬다. 이치마츠의 약을 마시면 어느 정도 고통이 격감하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리를 주물러보거나, 마법을 걸거나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고통이 느껴지는 것은 이미 내 몸에서 사라진 오른쪽 다리.
의족 속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존재하지 않는 오른쪽 다리의 신경이 타는 것처럼 뜨겁고 고통스럽다.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아내며 이치마츠의 약이 효과를 발휘할 때까지 기다렸다.
약 1시간 정도 흐르고 나서야 통증이 가라앉았고, 내 얼굴과 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누구에게 들키지 않게 재빨리 샤워를 마치고 이치마츠의 약국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보자마자 눈썹을 실룩인 이치마츠가 손짓으로 나를 부르고 가게 뒤쪽으로 들어갔다.
“요즘 통증은 어때?”
“종종 있지만, 약을 먹으면 괜찮아진다.”
“약을 먹어도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아아-, 그렇군.”
“통증이 오는 빈도는?”
“…그건 예전과 동일하다.”
“원래 말이야, 내가 주는 진통제는 통증을 완전히 없애주는 거거든. 근데 개똥마츠, 너한테는 잘 듣지 않는 것 같으니까 조성을 바꾸자.”
“아-, 그런가.”
“응. 지금 주고 있는 약에는 중독성을 가진 재료도 들어가니까…. 3년 치를 한꺼번에 처방해주는 건 위험하고.”
“아아. 신경 써줘서 고맙다.”
“…근데, 3년이나 떠난다는 거 오소마츠 형한텐 말했어?”
“아직….”
“3년이라니…, 나중에는 영영 안 돌아올 셈?”
양피지에 새로운 약의 조성을 적던 손을 멈추고 나를 날카롭게 노려보는 이치마츠에게 고개를 거세게 흔들며 부정했다.
그럴 리 없다.
내가 있을 곳은 오소마츠의 옆이니까.
돌아오지 않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이 다리를 볼 때마다 오소마츠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이 참을 수 없이 괴롭다.
오소마츠의 탓이 아닌데, 모두 자기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오소마츠를 조금이라도 기쁘게 만들어주고 싶다.
그렇기에…
“겨우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 이 고통을 없앨 방법을….”
“단순한 환상통 아냐?”
“논논, 그게 아니다. 이 다리는…, 고대 용의 저주…, 라고 할 수 있겠지.”
“저주…….”
“그렇기에 이치마츠의 약이 잘 들지 않는 거로 생각한다. 용의 저주라면 반드시 저주를 푸는 방법이 존재할 것이다. 이번 여행으로 이 저주를 풀게 된다면! 아무런 고통 없이 자유롭게 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된다면! 오소마츠도 다시 나를 보며 예전처럼 웃어줄 수 있겠지. 그러면 또 함께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확신에 가득 차 외쳤지만, 이치마츠는 못 미덥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마지막 여행이 그 모양이었는데…, 오소마츠 형이 같이 갈 거로 생각해?” 하고 진심으로 묻는 이치마츠의 말에 “당연하다!”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내뱉은 말이 마음에 걸리는 이유는 그 말에 스스로도 자신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학교에 내기 위해 교문으로 들어섰다.
국가 연구원이라는 것은 행정상 마법 학교에 소속되어 있다.
그리운 교장실에 발을 들여 커다란 줄무늬 팬티를 입고 있는 학교장에게 보고서를 제출하고 나와 오소마츠의 연구실로 향했다.
오늘 아침 얼굴을 보지 못했다. 오소마츠가 부족하다.
빨리 오소마츠의 큐트한 페이스를 보고 싶어 발을 서두르던 와중에 오소마츠의 연구실에서 나오는 쵸로마츠와 마주쳤다.
“쵸로마츠!”
“카라마츠…. 오소마츠 형 보러 온 거야.”
“아.”
“오소마츠 형 지금 없어. 외출한 것 같아.”
“아……, 그런가.”
“나는 오소마츠 형이 요청한 책 가져다주러 온 거야. 하여간 그렇게 말을 해도 문단속 안 한다니까!”
“하하하, 오소마츠 답지 않나.”
“…카라마츠, 잠깐 시간 괜찮아?”
“시간은 많다만…?”
눈썹을 찌푸리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며 묻는 쵸로마츠에게 대답하자, 쵸로마츠가 내 손을 잡고 학교를 빠져나와 마을 구석에 있는 허름한 카페로 들어갔다.
마녀가 운영하는 카페는 보완 마법이 철저하게 걸려 있는 곳으로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회의나 이야기를 하는데 최적의 장소였다.
나라에서 제법 유명한 마법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홀을 지나, 가게 구석에 있는 자리에 앉은 쵸로마츠가 음파 차단 마법을 걸고 낮게 속삭였다.
“요즘 오소마츠 형이 이상해.”
“…이상해?”
“안 읽던 책을 찾아보더니, 얼마 전에는 데카판 교장에게 교사직을 사퇴한다고 했대.”
“엩!?”
“요즘 묘하게 예민한 것도 그렇고…. 분명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는데, 물어봐도 말을 안 해. 우리나 카라마츠, 너한테도 숨기고 있는 걸 보면 십중팔구 네 다리 문제야.”
쵸로마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밤을 새울 때, 수정구에서 내려오지 않는 오소마츠에게 위화감을 느낀 것을 떠올리고 눈썹을 찌푸렸다.
오소마츠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했지만, 역시 그 말은 거짓말이었나….
과거의 파트너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쵸로마츠에게 알겠다고 대답한 후, 오소마츠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카페를 빠져나왔다.
6.
카페에서 쵸로마츠와 대화를 나눈 후,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찾아 헤맸다.
마을 안에 오소마츠가 있을 법한 장소를 전부 뒤졌는데도 오소마츠의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지만, 역시나 오소마츠는 보이지 않았다.
온종일 마을 곳곳을 돌아다녀 지친 몸을 침대에 누이자 오소마츠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그 후로 아침에 일어나면 오소마츠는 이미 출근, 직장에 찾아가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고, 모두가 잠든 밤늦은 시각에야 귀가했다.
요 3, 4일 오소마츠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은 카라마츠뿐만이 아니었다.
쵸로마츠의 걱정은 자연스럽게 더욱 깊어졌고, 동생들 역시 오소마츠를 염려하기 시작했다.
자신만이 아니라 동생들에게도 걱정을 끼치는 것에 단단히 화가 난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에게 졸음을 쫓는 약을 받아 벌컥 마시곤 오소마츠의 침실에서 오소마츠의 귀가를 기다렸다.
덜컥, 침실문이 열리자 카라마츠가 마른침을 삼키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친 한숨을 내쉬며 침실 안으로 들어온 오소마츠의 손을 단단히 잡아 도망치지 못하게 하자 오소마츠가 놀란 얼굴로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카라마츠!? 너 왜 여기 있어?”
“오소마츠, 뭘 꾸미고 있나.”
“헤? 아무것도? 잠깐, 아프다고! 손!!”
“거짓말하지 마. 분명히 내게 숨기고 있는 게 있잖아. 그러니까, 요 며칠 나를 피하는 거지.”
“아니래도…! 일이 바빠서 그런 거야!!”
“교사직을 사퇴할 정도로 바쁜 일인가?”
“너, 그걸 어떻게…!”
“말해, 오소마츠. 약속했잖아, 무슨 일이 있다면 말하겠다고. 왜 나를 피하는 건가!!!”
“읏-, 피, 하는 건 너잖아!!”
“하?”
오소마츠의 울부짖음에 카라마츠가 분노를 거두고 멍청히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잡힌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이를 악문 오소마츠가 원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집에 잘 돌아오지도 않고! 한 번 여행가면 1년에 한 번 돌아올까 말까!! 게다가 이번엔 3년이나 떠날 생각이라면서! 그런 주제에…. 피하는 건, 너잖아! 내가 싫어졌으면 말을 하라구!”
“아냐, 틀리다! 오소마츠, 그게 아니야.”
“뭐가 아닌데!!”
오소마츠의 울먹임에 카라마츠가 당황하며 손을 뻗어 오소마츠의 얼굴을 감쌌지만, 얼굴을 흔들어 카라마츠의 손을 쳐낸 오소마츠가 고개를 숙였다.
“이제 놔 줘….” 하고 힘겹게 내뱉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품속으로 끌어당겼다.
“아냐, 오소마츠. 그게 아니다. 나는, 네가 괴롭지 않기를 바라서…. 너는 항상 내 다리를 보면서 슬퍼하니까, 네가 슬픈 얼굴을 짓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미안해, 오소마츠. 너를, 외롭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믿어줘.”
카라마츠의 뜨거운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훌쩍임을 멈추고 카라마츠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살포시 카라마츠의 등에 팔을 두른 오소마츠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도, 다리…, 아파?”
“…약간. 하지만 이치마츠의 약이 있으니까 견딜 만 하다.”
카라마츠의 솔직한 대답에 오소마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래….” 하고 작게 속삭였다.
어딘가 애처롭게 떨리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카라마츠는 자주 집에 돌아오지 않은 자신을 질책하며 욱신거리는 심장을 달랬다.
“오소마츠, 같이 여행 가자. 이번 ‘대이동’ 후, 같이 떠나자. 다리의 통증을 없앨 방법을 찾은 후에 함께 가자고 하려 했지만, 오소마츠를 혼자 남겨두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같이 가자.”
“….”
“오소마츠?”
카라마츠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오소마츠가 젖은 한숨을 내쉬었다.
품 안에서 꿈틀거리는 오소마츠의 몸이 비정상적으로 뜨거워진 것을 눈치챈 카라마츠가 재빨리 오소마츠를 품속에서 떼어내어 얼굴을 살폈다.
열이 올라 붉어진 얼굴에 식은땀이 가득하다.
손이 아픈지 눈에 띄게 파들파들 떨며 입술을 깨물고 신음을 참아내는 모습에 카라마츠는 순식간에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 들었다.
새파래진 얼굴로 당황해 오소마츠의 얼굴을 감싸고 이름을 불렀지만, 고통을 참는 것에 모든 정신을 쏟고 있는 오소마츠는 대답을 돌려줄 수 없었다.
“오소마츠!? 오소마츠!!”
“읏, 흣…! 크웃!”
“오소마츠!!”
“하-, 읏!”
“오소마츠!”
“괜, 찮아…읏!”
“어디가 아픈 건가!! 지금 당장 이치마츠에게 가서!”
“기다, 렷! 괜찮으니까….”
이치마츠에게 약을 받아오려는 카라마츠의 옷자락을 붙잡은 오소마츠가 벌벌 떨리는 몸을 웅크렸다.
“오소마츠!”
“마법, 아까 새로 만든 마법을 시험해서 그래…. 이건, 부작용, 이니까….”
“새로운 마법이라니! 스스로 시험해 본 건가!!”
“으, 응….”
“이 멍청이가!!”
오소마츠에게 날카롭게 호통친 카라마츠가 주머니에서 작은 약병을 꺼냈다.
만약을 대비해 항상 들고 다니는 이치마츠의 진통제가 든 약병의 뚜껑을 이로 열어 오소마츠의 입을 억지로 벌려 그 안에 쏟아부었다.
콜록대며 어떻게든 약을 다 마신 오소마츠가 쓰러질 것처럼 몸을 기울였다.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려는 오소마츠의 몸을 안아 침대에 눕히고 차가운 물수건을 가져와 오소마츠의 이마에 올렸다.
열이 너무 높다.
해열제도 가져와야 하나 고민하는 카라마츠를 붙잡은 오소마츠가 “옆에 있어 줘.” 하고 부탁했다.
사랑스러운 연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빨리 오소마츠의 몸이 괜찮아지기를 빌며 오소마츠의 옆에 누웠다.
“카라마츠.”
“좀, 괜찮나?”
“응…, 있지. ‘대이동’ 끝나면 같이 여행 가자.”
“정말인가!?”
“응….”
“아! 약속이다!”
“응. 약속.”
식은땀으로 젖을 얼굴을 끌어올려 잔잔한 미소를 보낸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거친 손을 꽉 잡았다.
조금 전보다 나아진 건지 오소마츠의 호흡이 안정된 것을 확인한 카라마츠가 이불을 끌어 올려 어깨까지 덮어주고, 오소마츠의 손을 잡은 채 눈을 감았다.
고요한 새벽 안개가 새어 들어온 방 안.
카라마츠의 손을 붙잡은 채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가 툭-, 이불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냈다.
꿈속에서도 제 걱정을 하는지 잔뜩 찌푸린 카라마츠의 눈썹을 꾹꾹 눌러 펴주고, 부드럽게 얼굴을 어루만진 오소마츠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오열을 삼키고 몸을 웅크렸다.
“미안해, 카라마츠…. 거짓말해서, 미안해.”
흐느낌은 차가운 새벽 공기에 퍼져 낮게 가라앉았다.
젖은 소매로 눈물을 훔친 오소마츠가 천천히 카라마츠와 마주 잡은 손을 풀고 침대를 떠났다.
7.
‘용의 대이동’ 날.
관측 장비를 언덕에 늘어놓고 하늘을 보며 용을 기다리는 카라마츠 옆에 쵸로마츠와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가 자리했다.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까먹으며 느긋하게 ‘대이동’을 기다리고 있는 동생들과 달리 카라마츠는 아직 비어 있는 오소마츠의 자리를 보며 초조하게 발을 굴렀다.
“쵸로마츠, 오소마츠는?”
“글쎄-. 일이 있어서 좀 늦어진다는 말은 했는데….”
“지금 부르러 갔다 오겠다.”
“하?”
“쥬시마츠!”
“아이!!”
“‘대이동’이 시작된다면 이 장비를 드래곤에 고정해주지 않겠나?”
“알겠씀닷!!”
쥬시마츠의 씩씩한 대답에 씩- 미소를 올린 카라마츠가 쥬시마츠의 머리를 쓰다듬고 집을 향해 뛰었다.
오소마츠의 사퇴서가 수리되어 백수가 된 오소마츠는 집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어제도 아침 일찍 어딘가로 나가 얼굴을 보지 못한 오소마츠를 걱정하며 카라마츠가 전력으로 뛰어 언덕을 내려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의수와 이어진 허벅지가 욱신거리는 것을 참고 오소마츠의 방으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학교에 있는 연구실에서 온갖 연구 자료를 다 옮겨와, 책이 빼곡히 들어찬 방 안에 쓰러져 있는 오소마츠를 본 순간 카라마츠는 호흡이 멎는 것 같았다.
“오소마츠!!!”
놀라 뛰어간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웠다.
헉헉, 거친 숨을 내뱉는 오소마츠는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당장 의사에게 데려가기 위해 오소마츠를 안아 올리려는 찰나, 오소마츠가 소매에 숨겨두었던 단검을 꺼내 카라마츠의 손가락을 베었다.
“읏!?”
“핫, 성공.”
크게 베인 손가락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만족스럽게 웃으며 책상 위에 올려놓은 삼각 비커에 카라마츠의 피를 받은 오소마츠가 푸른 약물과 카라마츠의 피를 섞었다.
“오, 소마츠!?”
“응. 이걸로 완성.”
카라마츠의 부름이 들리지 않는지 책상에 기대 힘겹게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가 말릴 새도 없이 푸른 약물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비커에 들어있던 푸른 약물이 전부 오소마츠의 체내로 들어가고, 오소마츠가 곧바로 심하게 몸을 떨며 괴로운 신음을 토해냈다.
힘이 빠진 손에서 빈 비커가 떨어져 산산이 조각났다.
뜨거운 숨을 가쁘게 내뱉으며 몸을 웅크린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끌어안았다.
“대체 뭘 마신 건가!!”
경악하는 카라마츠에게 씩-, 장난스러운 미소를 피운 오소마츠가 괴로워하는 와중에 고개를 들어 카라마츠의 입술에 제 입술을 눌렀다.
“오, 소마츠…?”
심상치 않은 오소마츠의 행동에 카라마츠가 눈을 동그랗게뜨자마자, 오소마츠가 “크핫!!” 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제 손을 감싸고 있는 장갑을 벗어 던졌다.
“오소, 마츠…, 너….”
오소마츠의 하얀 피부를 좀먹으며 서서히 올라오는 푸른 비늘.
용을 가까이서 봐온 카라마츠라면 그 비늘이 용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을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카라마츠의 망연자실한 신음도 들리지 않는지 오소마츠는 부츠와 옷을 차례로 벗어던졌다.
다리에도, 그리고 얇은 허리와 등에도, 푸른 비늘이 서서히 오소마츠의 몸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오소마츠!!”
오소마츠의 비명에 카라마츠가 눈물을 글썽이며 오소마츠를 감쌌지만, 오소마츠의 몸을 타고 올라오는 비늘은 무자비하게 오소마츠의 몸을 모두 침식했고, 고통스럽게 몸을 웅크린 오소마츠는 곧 푸른 비늘을 가진, 한 마리의 작은 아기용이 되었다.
“…오소마츠….”
망연하게 연인의 이름을 불러도 아기용은 대답하지 않았다.
작게 웅크린 몸을 기지개 피고 일어난 용은 카라마츠를 보며 고개를 기울이고 “뀨우-?” 하고 울었다.
8.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는 형제이자 연인이었다.
육둥이 다 함께 마법 학교를 졸업하고 오소마츠는 교사가, 카라마츠는 드래곤 연구가가 되었다.
직업 특성상 전국을 돌아다니는 카라마츠는 연인인 오소마츠를 위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자주 고향에 들렀다.
거의 한 달에 한 번은 돌아오는 카라마츠와 오소마츠의 깨가 쏟아지는 모습에 동생들이 질려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을 때,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에게 여행을 제안했다.
드래곤 연구로 고향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가야 했던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와 오래 떨어져 있기 싫다며 오소마츠와 함께 가자며 손을 내밀었다.
마침 쌓아둔 휴가와 더불어 방학 시즌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오소마츠는 흔쾌히 카라마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동생들의 배웅을 뒤로하고, 한 쌍의 연인이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처음 몇 주는 신혼여행이나 다름없었다.
둘이 함께라면 노숙도 너무나 즐거웠다.
아침부터 밤까지 자신의 연인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카라마츠도 오소마츠도 너무나 들떠 있었다.
그렇게 목적지에 거의 도달했을 때, 우연히 고대 용의 무덤에 들리게 되었다.
고대 용이 잠들어있다는 전설 속의 장소.
날카롭게 깎아진 절벽 사이에 고대 용의 둥지가 보존되어 있고, 그 뒤엔 커다란 산이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절벽 곳곳엔 어린 용들이 만들어놓은 둥지가 보였다.
용의 둥지를 가까이서 관찰할 기회는 흔치 않기에 카라마츠와 오소마츠는 둥기 근처에 몸을 숨기고 용을 관찰했다.
조용히, 용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 관찰을 하는 두 사람의 시야에 ‘용 밀렵꾼’이 보였다.
엄연한 불법인 살상 무기를 가지고 용을 하나둘 잡아끌고 가려는 밀렵꾼들의 횡포에 카라마츠와 오소마츠가 수풀 속에 숨기고 있던 몸을 일으켜 전투를 시작했다.
마법 학교에서도 마법에 관한 재능은 특출났던 오소마츠의 지원 아래, 카라마츠가 밀렵꾼들을 물리적으로 짓이겨 밧줄로 옭아맸을 때,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렸다.
요동치는 지면에 휘청거리던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지지하고 주변을 둘러봤을 때, 절벽 뒤에 서 있던 커다란 산이 움직였다.
산인 줄 알았던 그것은, 잠든 고대 용이었다.
밀렵꾼들에게 끌려가던 어린 용들의 울부짖음과 밀렵꾼들과 오소마츠, 카라마츠의 전투로 생긴 소음에 고대 용이 눈을 뜨고 말았다.
도망칠 기세도 없이 고대 용의 브레스(breath)에 밀렵꾼들은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자신을 깨운 것에 크게 분노한 용은 인간들의 선악따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저 분노한 채로,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에게 브레스를 날렸다.
재빨리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감싸고 보호막을 만들지 않았다면, 둘 역시 밀렵꾼들과 마찬가지고 순식간에 녹아 없어졌을 것이다.
고대 용은 하찮은 인간에 지나지 않는 오소마츠가 제 브레스를 막아낸 것에 더욱 분노해 온 나라가 울리도록 큰 울음과 함께 붉은 불덩이를 쏘아냈다.
한 번 더, 오소마츠가 필사적으로 막아냈지만, 고대 용의 힘 앞에 오소마츠의 마법은 너무나 나약했다.
오소마츠를 감쌌던 카라마츠는 한쪽 다리를 잃으며 정신을 잃었다.
모든 마력을 소진해 기진맥진해진 오소마츠 역시 간신히 이성을 붙잡고 있었다.
아주 약간 남아있는 마력 찌꺼기를 모아 카라마츠의 다리를 치료한 오소마츠가 제 앞에 얼굴을 들이민 고대 용과 마주했다.
『감히 내 잠을 깨운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너희에게 「용의 저주」를 내린다.』
고대 용의 근엄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꼭 음량을 최대로 높인 스피커가 머릿속에 있는 것처럼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소리 울림에 뇌가 흔들리고, 오소마츠도 정신을 잃고 말았다.
뒤늦게 구조대에 의해 발견된 오소마츠와 카라마츠.
카라마츠는 오른쪽 다리를 영영 되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용의 저주」로 잃은 다리에서 끔찍한 고통을 떠안게 된 카라마츠.
오소마츠는 자신 역시 「용의 저주」를 받았으면서 카라마츠의 저주를 풀 방법을 백방으로 찾았다.
서고에 있는 오랜 서적을 뒤지고, 용과 관련된 모든 전설, 신화, 책, 쓸모없는 소문까지 모았다.
하지만, 결국 「용의 저주」는 절대 풀 수 없는 강력한 저주라는 결론 앞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용의 저주」는 풀 수 없다….
― 그렇다면 하다못해, 카라마츠의 저주를 내게 옮길 수는 없을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매달려 다시 자료를 뒤지기 시작한 오소마츠는 특정 약물로 저주를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두 사람분의 저주를 자신에게 옮기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오소마츠의 결심은 꺾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적어도 카라마츠만이라도 저주를 풀어 자유롭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 설사, 자신이 그 대가로 ‘용’이 되어 버린다고 해도.
9.
오소마츠는 푸른 용이 되었다.
인간일 때의 기억조차 존재하지 않는지, 푸른 용은 카라마츠와 동생들은 낯설어했다.
완전한 용.
오소마츠는 카라마츠가 그동안 관찰하고 기록했던 그대로의 ‘용’이 되어버렸다.
불을 뿜고, 인간보다 늦게 성장하며, 더 오래 장수하는 종족.
드래곤이 일정 나이가 되면 인간의 모습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은 아마도 카라마츠의 생명불이 꺼진 후의 일이다.
오소마츠가 용이 된 충격으로 휘청이는 동생들을 뒤로하고, 카라마츠는 용과 함께 고향을 빠져나왔다.
다시 전국을 여행하며 용이 된 인간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는 방법을 찾아 헤맸다.
「용의 저주」가 사라진 다리는 더는 아프지 않았지만, 카라마츠는 도저히 기뻐할 수 없었다.
다행히 오소마츠였던 푸른 용은 카라마츠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곧 전국에 푸른 용을 데리고 다니는 드래곤 연구가의 소문이 퍼졌다.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 고향 마을을 보며, 카라마츠가 제 어깨에 올라탄 푸른 용을 쓰다듬었다.
3년 만에 만난 형제들은 푸른 용을 보며 무슨 말을 할까, 쓴웃음을 흘리며 푸른 용과 눈을 맞춘 카라마츠가 붉게 빛나는 그 눈을 응시하며 허탈한 웃음과 함께 속삭였다.
“적어도, ‘함께 여행하자’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구나, 오소마츠.”
쓸쓸히 내뱉은 말의 의미를 푸른 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뀨-?” 하고 눈을 깜빡였다.
* 오소마츠가 계속 수정구에 타고 있었던 이유는 저주 때문에 다리가 아파 걷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ㅎ
* 다음 50제는 또 주말에 올리겠습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소마츠상 > 오소른 50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50제 목록 (+링크) (13) | 2018.01.13 |
---|---|
19. 민감한 몸 - [카라오소] 민감? 둔감? (R-18) (2) | 2018.01.11 |
24. 벚꽃/벚꽃놀이 - [오소른/카라오소] Happy Halloween! (8) | 2017.10.28 |
31. 숨바꼭질 - [오소른] 숨바꼭질은 반드시 끝난다. (12) | 2017.10.12 |
46. 임신 - [오소른] 이렇게 귀여운 게 오소마츠 형일 리 없어! (6) | 2017.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