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라오소 전제 파카마츠입니다. 수륙마츠도 약간.
*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많이 나약합니다.
카라마츠는 약간 싸이코패스.
* 5화의 카라마츠 사변 전제입니다.
* 약간 수위가 있습니다만, 그리 진하지 않습니다. R-15 정도입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트위터 시작했습니다. 소설 올릴 때마다 알림(?)으로 이용할 생각입니다. [WHITEPINE, @WHITEPINE92]
1.
하얀 이불에 감싸인 몸을 내 품에 안고, 새근새근 숨을 내쉬며 한창 꿈나라를 여행 중인 카라마츠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땀에 젖은 앞머리를 이마에서 떼주고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이불을 올려주자 “으응….” 하고 신음하며 내 가슴에 더 얼굴을 파묻었다.
피식- 새어 나온 웃음을 흘리며, 카라마츠의 등을 토닥였다.
천천히 상냥하게, 카라마츠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평온한 얼굴로 잠든 카라마츠를 바라보며, 이제는 잠들었을 때밖에 볼 수 없는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후에 ‘카라마츠 사변’이라고 불리게 된 납치 사건 이후, 카라마츠는 동생들에게 거부당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게 되었다.
평소의 안쓰러운 언행은 변하지 않았지만, 다른 녀석들이 카라마츠를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태도를 보이면, 태평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서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는 자신을 숨겼다.
제대로 ‘자기 자신’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진 카라마츠는 항상 나를 찾았다.
자신의 ‘형’인 나만큼은 자신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불안에 흔들리는 눈빛으로 다가오는 카라마츠를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다급하게 내게 뻗어오는 카라마츠의 손은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고 있었다.
단순한 형제였던 우리는 급격히 방향을 틀어, 어느새 몇 번이고 육체관계를 가졌다.
카라마츠는 동생들에게 거부당했다는 두려움과 사랑받지 못한다는 불안을 전부 내 안에 쏟아냈다.
내게서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얻고 나서야 카라마츠는 다시 평온한 얼굴로 마츠노가의 차남 ‘카라마츠’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오늘도 자신만만한 태도로 토도마츠에게 낚시터에 가자고 말하더니 미팅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카라마츠가 내게 달려왔다.
카라마츠를 이끌고 러브호텔로 향하는 것에 망설임은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아직 방 안에 남아있는 짙은 정사의 향기에 쓴웃음을 짓고, 곤히 잠들어 있는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내가 제대로 된 형이라면 그 사건 이후로 강박 증상을 가지게 된 카라마츠를 병원에 데려갔을 것이다.
그럼 다소 시간은 걸려도 카라마츠는 정상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카라마츠에게 형제 이상의 감정을 가져온 나는, 동생들에게 거절당한 카라마츠가 절박하게 나를 찾는 것이 기뻤다.
내게 구원을 바라고 뻗어오는 카라마츠의 손을 거절하지 못한 결과, 카라마츠는 더욱더 망가져 버렸다.
숨을 내쉬는 카라마츠의 몸을 꽉 껴안고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미안해, 카라마츠…. 이런 형이라서 미안해….”
내 욕망 때문에, 너를 구원해주지 못하는 글러먹은 ‘형’이라서 미안해….
나의 이 비참한 고백을 듣지 못하는 카라마츠는 그저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2.
느긋하게 2층 방에 누워 만화책을 보고 있으니 아래층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쥬시마츠일까, 생각하며 몸을 돌려 엎드린 순간, 벌컥! 방문이 열렸다.
“…카라마츠.”
죽을 것 같은 얼굴로 서 있는 하나 아래의 동생들을 불렀다.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필사적으로 참고 입가를 일그러뜨린 카라마츠가 내게 달려와 안겼다.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떠는 카라마츠의 등을 작게 토닥이며 쓰게 웃었다.
방금 아래에서 쥬시마츠의 목소리가 들려왔었는데, 또 카라마츠는 쥬시마츠에게 같이 놀러 가자고 했었나 보다.
오늘 쥬시마츠는 아침부터 야구 유니폼을 입고 있었느니 분명 예정이 있었겠지.
카라마츠는 눈치도 없이 쥬시마츠에게 권유했다가 멋지게 차이고 내게 달려온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추리가 맞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며 카라마츠를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내린 순간, 나를 응시하던 카라마츠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아, 이건 위험하다.
눈물에 젖은 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내 목에 제 얼굴을 묻고, 뜨거운 혀를 내밀었다.
축축하고 말캉한 것이 목을 기어 올라오는 감촉에 “힉!” 하고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양손은 카라마츠에게 잡혀 자유를 잃었다.
목을 타고 올라와 쉬지 않고 내 입술에 제 입술을 내리는 카라마츠를 간신히 불렀다.
“카, 카라마츠…! 여기, 집! 나가자, 나가서….”
다가오는 입술을 고개 돌려 피하고 말하자, 카라마츠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절망한 얼굴로 카라마츠가 내게 물었다.
“시, 싫다! 형님마저 나를 버리는 건가…?”
“…그럴 리 없잖아.”
체념을 담아 웃고 카라마츠에게 입 맞추었다.
그제야 안심한 얼굴로 눈썹을 늘어뜨리고 한심하게 웃은 카라마츠가 맹렬하게 다가왔다.
잠든 카라마츠에게 담요를 덮어준 후, 창문을 열어 방 안에 남은 공기를 빼냈다.
온몸 곳곳에 남은 붉은 흔적에 자조하며 옷을 입었다.
회를 거듭할수록, 이 행위는 더욱 열정적이 된다.
몇 번이고 확인하듯 덧씌운 몸의 흔적을 가만히 쓰다듬고, 카라마츠의 옆에 앉았다.
근심걱정 하나 없는 얼굴로 잠든 카라마츠의 등이 느릿하게 오르내렸다.
그 등에 기대어 카라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후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켰다.
깊이, 깊이 연기를 빨아들였다가 단숨에 내뿜으며 한숨을 감췄다.
일그러진 눈가가 떨려와, 고개를 숙이고 감췄다.
이 얼굴을 엿볼 사람은 이 방에 아무도 없는데….
부드럽게 손가락에 맞아 부서지는 카라마츠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형제가 아니었다면 좋았을까.”
그럼 이 관계도, 네 상처도 존재하지 않을 텐데….
내가 너를 상처 입히는 일도 없을 거고, 이렇게 답답한 기분이 드는 일도 없을 텐데….
3.
“죽인다, 개똥마츠.”
또 뭘 했는지, 파칭코에서 거하게 지고 돌아오자, 이치마츠의 화난 목소리가 복도 가득 울렸다.
울상이 된 카라마츠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이치마츠를 망연히 올려다보았다.
“칫!” 하고 혀를 찬 이치마츠가 나를 지나쳐 슬리퍼를 신고 현관을 나갔다.
“하아~” 하고 숨을 내뱉으며 복도에 올랐다.
훌쩍이는 카라마츠의 손을 잡고 다시 집을 나왔다.
가까운 러브호텔이 이 앞이다. 서둘러 번화가를 지나쳐가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카라마츠의 걸음이 멈췄다.
“카라마츠…?”
설마, 하는 생각으로 뒤돌아보자 이미 진득이 열을 머금은 카라마츠와 눈이 마주쳤다.
우와-, 이 녀석이 어째 갈수록 참을성이 없어지지 않아? 나보다 심한데….
급한 대로 카라마츠의 눈을 가리고 달랬다.
바로 앞이 호텔이라고, 달려가면 1분도 걸리지 않는다고, 속삭이는 내 손을 꽉 붙잡은 카라마츠가 그대로 나를 건물 사이로 끌고 들어갔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간, 그렇다고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어서 바로 1m 옆엔 거리를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거칠게 나를 벽에 몰아붙인 카라마츠가 내 다리 사이에 깊숙이 제 다리를 꽂아 넣고 벌렸다.
훅- 하고 솟아오르는 수치심에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카라마츠의 손을 막았다.
후드 안으로 침입해 들어오던 손이 막히자 카라마츠의 눈이 또 불안하게 흔들렸다.
“아….”
항의를 하려고 했던 말은 목구멍을 넘어오지 못하고 바보 같은 소리를 흘렸다.
카라마츠를 막고 있던 손의 힘을 풀자, 카라마츠가 부드럽게 웃으며 내 후드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맨살을 만져오는 커다란 손의 감촉에 몸을 떨었다.
뜨거운 손이 기어 올라와 유두에 닿았다.
딱딱하게 솟은 유두를 가볍게 꼬집는 손길에 흘러나오려는 신음을 참았다.
흠칫거리며, 카라마츠의 손길에 맞춰 몸을 떨었다.
나를 응시하는 카라마츠의 눈빛에 욕망이 얽히고, 뜨겁게 열을 부추겼다.
가슴을 주무르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카라마츠가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카라마츠가 내뱉는 숨이 입술에 걸렸다.
아, 젠장.
카라마츠의 눈빛을 외면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고 눈을 감았다.
다가오는 숨에 이어질 입맞춤을 기다리던 내 귀에 낮은 목소리가 걸렸다.
“냐-!”
“…뭐, 하는 거야…?”
나와 카라마츠가 동시에 숨을 집어삼켰다.
도저히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시선을 마주한 카라마츠의 눈에 절망이 깊게 드리웠다.
숨을 삼키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겨우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한때, 사건의 중심이었던 안경 무늬를 가진 에스퍼냥이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나와 카라마츠를 응시하는 이치마츠가 보였다.
나와 이치마츠의 시선이 얽히고, 조용히 나를 비난하는 이치마츠의 눈빛에 두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다.
간절히, 간절히 이대로 그냥 지나쳐달라고 그렇게 빌었다.
내가 “제발….” 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돌려 이치마츠를 쳐다보았다.
흠칫 몸을 떨며 카라마츠를 본 이치마츠의 시선에 혐오가 담겼다.
“…더러워.”
한 마디 비수 같은 말을 남기고, 이치마츠는 저 멀리 뛰어갔다.
‘털썩’하는 소리에 눈을 내리자, 카라마츠가 멍하니 주저앉아있었다.
멀쩡히 살아계시는 부모님이 단 한 순간에 돌아가신 것 같이 절망한 카라마츠의 표정에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4.
이치마츠에게 들킨 이후로, 카라마츠는 잠이 늘고 극도로 말수가 적어졌다.
하루의 반 이상을 자고, 일어나도 멍하니 거울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전에도 말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젠 거는 말에만 대답할 뿐, 스스로 먼저 말을 꺼내는 일은 없었다.
마치 인형 같은 카라마츠의 모습에 작게 혀를 차고, 집을 나가려는 이치마츠를 붙잡았다.
“…뭐야.”
“이치마츠, 그 일은….”
“걱정 마, 그런 웃기지도 않는 일. 다른 놈들에게 말할 생각 없으니까. 비밀은 지켜줄게. 됐지?”
제멋대로 말을 마치고 나가려는 이치마츠의 팔을 붙잡았다.
순간, 뒤돈 이치마츠의 눈빛에 담긴 증오의 조각이 심장을 찔렀다.
천천히 이치마츠를 잡은 손을 풀었다.
잡을 곳 없는 손은 힘없이 늘어져 제 자리로 돌아왔다.
입술을 깨물고 힘겹게 목소리를 짜냈다.
“비밀로 해 주는 건 고마워. 그래도 그 태도는 아니잖아….”
“….”
이치마츠는 돌아온 우리에게 노골적인 혐오를 품고 숨기지 않았다.
같은 방 안에 있어도 나와 카라마츠가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어떻게든 해명하기 위해 카라마츠가 말을 걸면, 경멸과 혐오를 담아 카라마츠를 노려보며 자리를 떴다.
‘너, 그런 얼굴도 할 수 있었어?’ 하고 놀랄 정도로, 정말로 지독한 얼굴로 나와 카라마츠를 노려보는 이치마츠의 태도에 카라마츠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얼마나 심했으면 드라이몬스터 토도마츠가 걱정하며 내게 “무슨 일 있었어? 이치마츠 형하고 카라마츠 형.” 하고 물어왔을까….
죄는 나와 카라마츠가 범했다.
그런데 이치마츠는 나보다 더 카라마츠를 혐오했다.
나와 비교되는 이치마츠의 태도에 카라마츠는 더 비참해졌다.
“…형제끼리, 이상해. 오소마츠 형도, 개똥마츠도…. 정상이 아니야….”
나를 보며 낮게 읊조린 이치마츠가 현관을 나섰다.
눈 시리도록 아픈 정론에 반박도 하지 못했다.
차가운 복도에서 발을 옮겼다.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갈수록 흐느끼는 소리는 점점 커졌다.
방문을 눈앞에 두고 한숨과 웃음을 섞어 내쉬었다.
이치마츠의 말대로, 정상이 아니다. 나도, 너도.
눈을 감고 문을 열었다.
스륵- 하고 시원하게 열린 문 너머로 작은 아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울던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잔뜩 젖은 얼굴로 망연히 나를 응시하는 카라마츠에게 다가갔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자, 카라마츠가 괴롭게 눈썹을 찌푸리고 내 옷을 움켜쥐었다.
“괴롭다, 형님…. 아파, 괴로워…. 거대한 손가락에 짓이겨 죽어버릴 것만 같다….”
내 가슴에 이마를 대고 흐느끼며 중얼거리는 카라마츠의 등을 다독였다.
절로 나오는 헛웃음에 입꼬리를 올리고 카라마츠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옆에 있어도…?”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순간, 울음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본 카라마츠가 고통스럽게 얼굴을 구겼다.
“…네가 옆에 있어도….”
그런가, 내가 옆에 있어도 안 되는구나-. 카라마츠 군은….
입술을 꾹 다물고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삼켰다.
눈가가 뜨거워지며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아, 눈을 감아 젖은 눈을 감췄다.
카라마츠는 고장 난 레코드처럼 “미안해, 미안해…. 오소마츠 형….” 하고 사과를 반복했다.
숨을 들이마시고 넌덕스레 웃으며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야말로 미안해…. 카라마츠.”
이 지경이 되도록, 너를 놓아주지 못해서….
카라마츠는 망가져 가고 있는데,
서서히 제 목을 조르며 죽어가고 있는데도,
이렇게 괴롭다며 몸부림치고 울부짖고 있는데도,
나는 너를 놓아줄 수가 없다.
그토록 바랐던 카라마츠,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
네 정신이 망가지고, 마음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도 분명 나는 끝까지 네 마음 한 조각이라도 붙잡고 놓아주지 못할 것이다.
흐느끼면서도 내 이름을 부르는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오싹하게 가슴이 떨렸다.
미안해, 카라마츠….
“아아, 정말로 최악의 쓰레기구나…. 나는-”
사과를 반복하며 울다 지쳐 잠든 카라마츠를 안고, 홀로 쓸쓸히 중얼거렸다.
5.
전화벨이 울리고 곧 쵸로마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점점 작아지던 쵸로마츠의 목소리가 단숨에 높아지더니 세차게 거실문을 열고 외쳤다.
“카라마츠 형이 교통사고 당해서 지금 병원이래!!!”
일 나간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고 서둘러 병원으로 달려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정리하기도 전에 의사가 내민 ‘수술동의서’에 숨을 멎을 것 같았다.
응급 수술은 이미 들어갔다. 남은 수술은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지금 굉장히 위독한 상태이다. 수술이 성공적이어도 생존은 장담할 수 없다….
의사가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위독? 누가? 카라마츠가?
망연히 서 있는 내게, 의사가 다시 한번 동의서를 내밀었다.
굳게 닫힌 수술실 문 너머 카라마츠가 있다.
의사가 입고 있는 하얀 가운엔 붉은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동의서에 이름을 썼다.
의사는 동의서를 들고 다시 수술실로 들어갔다.
열릴 것 같지 않은 푸른 문 위에 달린 ‘수술 중’이라는 팻말에 불이 들어왔다.
벽면에 세워진 의자에 엉덩이를 내리자마자, 외출해있던 녀석들과 부모님이 달려오셨다.
마츠요 여사의 얼굴은 이미 눈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별일 아닐 거라고, 카라마츠가 죽을 리 없다고 부모님을 달래고, 울고 있는 다른 녀석들도 얼랬다.
다른 녀석들처럼 창백해진 이치마츠의 얼굴에 작게 안도했다.
제대로 대화도 하지 못하고 수술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우리 곁으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아버지에게 명함을 내민 남자는 카라마츠가 당한 교통사고사건을 담당하게 된 형사라고 했다.
너무 울어 휘청거리는 엄마를 아빠에게 맡기고, 쵸로마츠에게 동생들을 부탁한 뒤, 남자를 따라 병원 뒤뜰로 나갔다.
찬바람을 맞아 남자의 머리칼이 흩날렸다.
“상대방은 음주운전 중이었습니다. 신호를 보지 못하고 돌진하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피하려다 인도로 돌진했습니다. 마츠노 씨는, 트럭을 보고서도 피하지 못해 피해를 본 것 같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차를 보면 다리가 얼어 움직이지 못하게 되니까요…. 여러 사고를 다루다 보면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사건의 개요를 간단하게 설명한 남자가 상대방은 현재 구속 중이며, 형사재판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내게 자신의 지갑에 들어있던 변호사의 명함을 내밀며, 민사소송을 하면 병원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조언한 남자는 그대로 자리를 떴다.
손에 남은 명함을 보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우리가 쌍둥이라서 더 동정이 갔는지, 남자는 굳이 묻지 않은 사항까지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나를 바라보던 그 연민의 표정의 잊혀지지 않는다.
빳빳하게 펼쳐진 명함을 손에 넣고 쥐어 구겼다.
그딴 상냥함, 필요 없었어….
8시간의 수술 뒤, 카라마츠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라는 의사의 말에 모두 안심했다.
남은 것은 카라마츠가 눈을 뜨는 것뿐이라는 의사의 말에 가만히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이 횽아 혼자 남기고, 먼저 가면 안 돼. 카라마츠….
그런 거, 나는 용서 안 하니깐….
6.
링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며 초를 세었다.
1…, 2…, 3…, …60.
1분이 흐르고 여전히 카라마츠는 눈을 뜨지 않는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어이-, 카라마츠. 너 체력 바보에 쓸데없이 튼튼한 녀석 아니었어?
왜 아직도 안 일어나는 거야-.
원망하는 마음을 담아 잠들어있는 카라마츠의 이마에 딱! 손가락을 튕겼다.
카라마츠의 이마 한가운데가 붉어졌다.
피식- 웃음을 흘리며 붉게 물든 창 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너는 눈을 뜨지 않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타오르는 갈증에 침대 옆 테이블에 놓아둔 물병으로 손을 뻗었다.
찰랑- 하고 바닥에 약간 남은 물에 인상을 쓰고 한숨을 내쉬며 간이의자에서 일어났다.
복도의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다시 병실로 돌아와 카라마츠 쪽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내 손에 들려있던 물병은 어이없이 떨어져 바닥에 그 물을 쏟아내었다.
“…카, 라마츠….”
상체를 일으켜 침대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던 카라마츠가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기이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던 카라마츠가 입을 열었다.
“…너는, 누구, 지…?”
병원 로비에 마련된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해, 카라마츠가 눈을 떴다는 것을 전했다.
수화기 너머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마츠요의 목소리에 쓰게 웃었다.
이미 면회시간은 끝나, 내일 아침 일찍 모두 함께 찾아가겠다는 마츠요에게 알겠다고 대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
카라마츠가 눈을 뜨고 그 소식을 가족에게 알리기 전에, 카라마츠는 각종 검사를 받아야 했다.
기억이 없다는 카라마츠의 말에 MRI? CT? 라는 어려운 검사를 받은 카라마츠는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환자의 보호자로서 의사에게 불려간 나는 카라마츠의 현 상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뇌의 손상에 따른 기억 상실 같지는 않다고. 뇌는 큰 문제 없다고.
다만, 충돌 시의 충격으로 뇌가 흔들려 기억을 잃을 수도 있다며, 카라마츠가 지금 무슨 기억을 잃었는지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의사의 말을 듣고 왜 하필 내가 병간호 당번일 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한탄하며 카라마츠에게 갔다.
아직도 나를 완전히 처음 보는 사람처럼 보는 카라마츠에게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오소마츠. 네 형이야.”
“오, 소마츠….”
“그래. 의사 선생님이 네가 뭐가 기억나고, 뭐가 기억나지 않는지 확인해보라고 하셔서…. 지금부터 이것저것 물어볼 건데 괜찮아?”
“아! 물론이다.”
시원스레 대답하는 카라마츠에게 짧게 웃고, 질문했다.
의사 선생님이 알려준 가이드라인에 따라 여러 질문을 하고 그 대답을 종이에 적었다.
내 질문에 카라마츠가 하나하나 대답할 때마다, 가슴이 아파서 눈물을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꽉 깨물고 필사적으로 참으며 질문을 마치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을 뛰쳐나왔다.
눈물로 흐려진 시야에 내가 적은 카라마츠의 대답이 비쳤다.
“하핫, 거짓말이지….”
카라마츠는…,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고 있었다.
마츠노 카라마츠가 자신의 이름이라는 것도,
마츠요와 마츠조가 부모님이라는 것도,
치비타와 토토코라는 오랜 친구가 있다는 것도,
줄곧 아카츠카 구에서 살아왔던 것도,
경마장의 위치도, 파칭코의 위치도,
그리고 자신이 항상 카라마츠 걸즈를 기다렸던 다리도 기억하고 있었다.
전부-, 전-부 다, 기억하고 있었다.
‘형제’들에 대한 것만 빼고.
아침 일찍 찾아온 가족들 모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야 그렇지. 부모님은 멀쩡히 기억하면서 우리는 기억하지 못하니까.
같은 얼굴이 대량으로 자신에게 다가오자 카라마츠는 무의식적으로 “으왓!! 징그러-!!” 하고 외치며 무서워했다.
너도 같은 얼굴이라고 말하자 미묘한 얼굴을 했다.
언젠가 기억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무책임한 말을 내뱉은 의사를 뒤로하고, 우리는 한 사람씩 옛 추억을 늘어놓았지만, 카라마츠는 기억하지 못해 미안하단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결국, 아무런 진전도 없이 시간은 흘러 곧 면회 시간이 끝이 났다.
아쉬워하는 쥬시마츠와 울먹이기 시작한 토도마츠를 끌고 쵸로마츠가 병실을 나섰다.
오늘도 부탁한다는 마츠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는 흘깃 카라마츠를 보고 축- 어깨를 늘어뜨리고 병실을 떠났다. 모두가 떠나자 시끌벅적했던 병실이 다시 고요해졌다.
“저렇게 형제가 많으면 매일 시끄럽겠군.”
마치 남 일처럼 말하는 카라마츠에게 쓰게 웃으며 “뭐, 그렇지-.” 하고 대답했다.
문병 선물이라며 녀석들이 놓고 간 배를 하나 들어 흔들며 먹을 거냐고 물었다.
카라마츠는 기쁘게 웃으며 “아아! 배는 좋아한다!” 하고 말했다. 순간, ‘카라마츠 사변’의 기억에 몸이 떨렸다.
왜 하필 배냐-. 진짜 악취미야, 그 녀석들….
카라마츠에게 잠깐 기다리라 말하고 과도를 씻어 돌아왔다.
배 껍질을 요령껏 깎아내고 한입 크기로 잘라 카라마츠에게 내밀었다.
방긋- 밝게 웃으며 배를 받아든 카라마츠가 행복하단 얼굴로 배를 입에 넣었다.
멍하니 배를 먹는 카라마츠를 바라보고 있는 내 어깨에 누군가의 손이 올라왔다.
“우왁-!!”
“뭐야, 왜 그렇게 놀라.”
“쵸로마츠으?!”
놀라 비명을 지르며 뒤돌자, 쵸로마츠가 황당하단 얼굴로 서 있었다.
어? 아까 돌아간 거 아니었어?
그리고 지금 면회시간 끝났는데??
멍청히 묻자 쵸로마츠가 태연한 얼굴로 옆에 앉으며 “오소마츠 형인 척하고 들어왔어.” 하고 대답했다.
“하-!?”
“그것보다, 요 일주일간 계속 오소마츠 형이 병원에 남았잖아. 오늘은 내가 남을게. 집에 가서 쉬어.”
쵸로마츠의 말에 튀어나오려는 말을 삼키고 “알겠어.” 하고 대답한 후,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병실 입구에 서서 카라마츠에게 잘 자라고 인사하자, 카라마츠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아아! 오소마츠도, 고마웠다!!”
입술을 꽉 닫아 숨을 막고 조용히 병실을 나왔다.
문병객이나 환자의 병간호를 하는 보호자들을 위해 마련된 휴게실에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이런 얼굴로 집에 돌아갈 수는 없다. 얼굴을 감싼 손이 눈물로 젖은 눈 때문에 뿌옇게 흐려졌다.
“흐아….”
내뱉은 숨이 뜨거워 다시 눈물이 치솟았다.
카라마츠는,
카라마츠는 우리를 잊고,
…너무나 행복하게 웃었다.
그런가, 너는 우리를 잊어야 행복해질 수 있었구나….
나를 잊어야, 다시 그렇게 밝게 웃을 수 있었다.
겨우 깨달은 진실에 헛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크, 크흐흣! 흐, 흐으-, 으읏! 하-….”
웃음과 울음이 섞여 기묘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형사라던 남자의 말을 듣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외면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치만, 무서웠는걸….
하지만, 카라마츠의 저 미소를 보면 싫어도 인정하게 된다.
카라마츠가, 자살하려 했다는 것을….
미처 피하지 못해서 차와 충돌?
어릴 적부터 여섯 명의 형제들과 자라며, 수도 없이 싸웠던 우리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좋은 반사신경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 카라마츠가 미처 피하지 못했다? 그럴 리 없잖아.
저 녀석은 피하지 못한 게 아니야.
피하지 않은 거다….
왈칵-, 숨을 집어삼키고 올라오는 울분에 이성이 가냘프게 흔들렸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울고 싶지 않은데, 눈물은 계속 흘러 얼굴을 감싼 손을 적셨다.
“…오소마츠 형.”
낮은 목소리에 어깨가 떨렸다. 손을 치우지 않고 물었다.
“이치마츠…. 너 어떻게 들어왔어?”
“…오소마츠 형인 척하고.”
“…너도냐….”
이치마츠의 말에 숨을 흘리며 말했다.
질질- 슬리퍼가 바닥에 쓸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치마츠가 내 앞에 주저앉았다.
얼굴을 감싸고 있던 손이 속절없이 이치마츠의 손에 이끌려 내려갔다.
눈물로 엉망이 되어 있을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는 이치마츠의 얼굴도 눈물, 콧물로 엉망이었다.
“후핫, 너 얼굴…, 무-지 웃겨.”
“…사돈 남 말 하지 마, 오소마츠 형.”
이치마츠는 뭔가를 떠올렸는지,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리고 내 두 손을 잡았다.
“…미안해, 오소마츠 형…. 미안해…. 내가, 내가 그런 말만 하지 않았어도….”
뚝뚝- 커다란 눈물방울이 이치마츠의 눈에서 굴러떨어졌다.
고개를 깊이 숙이고 헐떡이면서 우는 이치마츠를 보며 마른 웃음을 지었다.
이치마츠~, 이 횽아는 알고 있었어.
상냥한 네가 진심으로 카라마츠를 증오할 리 없다는 걸.
다만, 너는 놀랐던 거야.
나와 카라마츠의 관계에.
상냥한 네가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라는 걸, 이 횽아 알고 있었다고?
“아, 아으…. 미안해, 미안해…. 오소마츠 형….”
카라마츠처럼 사과를 반복하는 이치마츠를 보며 형제는 형제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 앞에 무릎 꿇고 우는 이치마츠의 몸을 꽉- 껴안았다.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 이치마츠를 토닥이며 작게 말했다.
“그럼 우리는 ‘공범자’네. 카라마츠를 죽인 공범자….”
자조하듯 씹은 말에 이치마츠의 울음소리가 커졌다.
후회하고 떨면서 우는 이치마츠를 품에 안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았다.
우리는 공범자다.
카라마츠가 스스로 제 목을 조르도록 만든, 공범자.
나는 카라마츠를 향한 내 마음 때문에 카라마츠가 제 목에 목줄을 두르는 것을 모른 척 외면했다.
그리고 이치마츠는 의도치 않게 그 목줄을 잡아당겼다.
―그러니까, 우리는 공범자다.
6.
약 한 달의 입원이 끝나고, 카라마츠 형이 집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우리 모두 카라마츠 형을 환영했다.
카라마츠 형도 웃는 얼굴로 우리의 축하를 받아들였다.
“퇴원 축하함닷!! 카라마츠 형아!”
“아! 고맙다, 이치마츠.”
“…저는 쥬시마츠임다!!”
“아, 미안….”
아직도 기억이 돌아오지 않아, 우리를 헷갈리긴 해도.
“쵸로마츠.”
“어?”
카라마츠 형 퇴원 기념으로 엄마가 모처럼 힘주고 만든 전골을 모두 맛있게 먹고, 남은 식기를 정리하는 나를 카라마츠 형이 조용히 불렀다.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는 카라마츠 형에게 한시도 떨어지지 않더니 기어이 카라마츠 형의 옆에서 무릎베개하고 잠들었다.
두 사람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목소리를 낮추고 나를 부른 카라마츠 형이 두리번거리더니 말했다.
“그, 남은 둘은 어디로 갔나? 오소마츠는 보이지 않는데.”
“아, 그 녀석들은 믿어지지 않지만 알바 하고 있어서. 오늘도 늦을 거야.”
“아…. 그런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하자, 카라마츠 형이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카라마츠 형은 우리들의 얼굴은 몰라봐도 오소마츠 형만은 제대로 알아보았다.
오소마츠 형이 가장 오래 카라마츠 형 옆에서 병간호를 했던 탓인지, 아니면 오소마츠 형만큼은 잊어도 알아볼 수 있는 건지, 나는 알지 못한다.
식탁을 행주로 닦아 마무리하고,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를 깨웠다.
“우응-” 하고 신음하며 일어나지 않는 두 녀석을 발로 차 깨우고 먼저 위로 올려보냈다.
잘 시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 두 바보 녀석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카라마츠 형에게 손을 내밀었다.
망설이지 않고 내 손을 잡고 일어난 카라마츠 형이 잠시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카라마츠 형의 손을 꽉 잡아 지지하고 괜찮냐 묻자,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리가 아픈지 눈썹을 찌푸린 카라마츠 형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 카라마츠 형의 팔을 어깨에 둘렀다.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카라마츠 형은 왼쪽 다리를 절게 되었다.
앞으로 재활훈련을 꾸준히 한다면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지만, 약간은 다리를 절게 될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을 떠올렸다.
사양하는 카라마츠 형을 무시하고 천천히 카라마츠 형과 함께 계단을 올랐다.
2층 방에 올라 카라마츠 형을 이불에 눕히자, 카라마츠 형이 미안하단 얼굴로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어쩐지 솔직하게 인사하는 카라마츠 형의 모습이 어쩐지 간지러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별로.” 하고 대답하고 말았다.
카라마츠 형이 퇴원하고 또 한 달.
오소마츠 형과 이치마츠는 얼굴도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로 아르바이트에만 매달렸다.
우리가 잠들고 나서야 집에 들어오고, 아침 일찍 나가는 두 녀석의 얼굴이 얼마나 보기 힘든지, 같은 얼굴인데도 잊어먹을 지경이었다.
매일 아침, 비어있는 자신의 옆자리와 중앙의 빈자리를 본 카라마츠 형은 슬프게 웃었다.
“저기, 쵸로마츠 형.”
“응?”
“오소마츠 형한테 말 좀 해! 집에 제대로 좀 들어오라고.”
“아니, 그 녀석들 제대로 들어오고 있잖아. 외박은 안 한다고, 엄마가….”
“그런 말이 아니라! 오소마츠 형하고 이치마츠 형이 알바하고 나서 제대로 얼굴 본 적 없다고!”
“….”
토도마츠의 불평에 입을 다물었다.
거실 한쪽에서 쥬시마츠와 함께 기타 코드를 더듬어가며, 자작 노래였던 ‘육둥이의 노래’를 흥얼거리던 카라마츠 형도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토도마츠의 불평은 당연히 이해한다.
하지만, 나까지 둘을 원망할 수는 없었다.
“두 녀석이 알아서 하겠지. 그리고 모처럼 일하고 있는데 거기에 뭐라 잔소리 늘어놓고 싶지 않아.”
“…확실히 그건 그렇지만….”
내 말에 토도마츠가 말을 흐리며 숨을 내쉬었다.
풀이 죽은 토도마츠에게 쥬시마츠가 다가가 달랬다.
카라마츠도 함께 다가가 토도마츠에게 위로의 한마디를 던졌다.
“토도마츠, 걱정 마라. 오소마츠는 이 하늘도 탐하는 길티-가이 카라마츠 님의 형이라고?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돈- 워리!!”
기억을 잃었어도 변하지 않은 카라마츠 형의 아픈 발언에 단숨에 토도마츠의 얼굴이 구겨졌다.
“…오소마츠 형.”
“아, 쵸로마츠~!”
오소마츠 형의 얼굴을 본 순간, 고개를 돌려 거실에 달린 시계를 보았다.
저녁 6시. 항상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오던 오소마츠 형이 일찍 돌아온 것에 놀라, 2층 방으로 들어가려는 오소마츠 형을 불러 세웠다.
“오소마츠 형! 잠깐만!! 오늘은 왜 일찍 들어온 거야? 이치마츠는?”
“이치마츠는 아직 일하는 중-. 나는 열이 나서 돌아가라고….”
“열?!”
오소마츠 형의 말에 놀라며 다가가 이마에 손을 얹었다.
따끈한 이마 온도에 놀라 거실의 장식장 위에 있는 약 상자를 꺼냈다.
“에-, 별로 약 필요 없어. 자면 나아.”
“안 돼! 잠깐만 기다려봐.”
약 상자에서 해열제를 찾아내 툴툴거리는 오소마츠 형을 끌고 주방으로 향했다.
미지근한 물을 받아 약과 함께 오소마츠 형에게 내밀자, 입을 삐죽 내민 오소마츠 형이 말없이 약을 받았다.
단숨에 약을 입에 털어 넣은 오소마츠 형이 식탁에 빈 물잔을 내려놓고 “이제 됐지? 자러 올라간다~” 하고 팔랑팔랑 손을 흔들며 주방을 나섰다.
낙천적인 오소마츠 형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약을 정리하고 있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카라마츠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소마츠? 괜찮은 건가? 얼굴이 빨갛다.”
쥬시마츠와 함께 나갔던 카라마츠 형이 돌아온 것 같았다.
숨을 죽이고 카라마츠 형의 물음에 이어질 오소마츠 형의 대답을 기다렸다.
“응, 좀 열이 나서. 쵸로마츠가 약 줘서 먹었고. 걱정 마.”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가 살며시 떨렸다.
모든 것을 눌러 참는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에 절로 눈썹이 찌푸려졌다.
오소마츠 형은 그대로 터벅터벅 복도를 울리며 계단을 올랐다.
남겨진 카라마츠 형에게선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 속에 불안해하고 있을 쥬시마츠를 떠올리고, 약을 들어 주방을 나왔다.
“어서 와. 쥬시마츠, 카라마츠 형.”
“다녀왔머슬-! 허슬!”
“…다녀왔다.”
두 사람에게는 감기가 옮을 수도 있으니 2층에 올라가지 말라고 당부한 뒤, 거실로 들어갔다.
약 상자에 다시 약을 돌려놓자, 손을 씻고 온 쥬시마츠와 카라마츠 형이 거실로 돌아왔다.
뭔가 석연치 않은 표정의 카라마츠 형이 내게 “오소마츠는 정말로 괜찮은 건가?” 하고 물었다.
가볍게 괜찮다고 대답하고 구인잡지를 펼치자, 카라마츠 형이 쓰게 웃으며 떠나갔다.
“…차라리, 형제가 아니었다면 좋았을까.”
그 한 마디가, 너무나 아파서 나도 모르게 조용히 계단을 내려왔다.
처음엔 당혹스러웠다. 오소마츠 형과 카라마츠 형이 그런 관계라는 것이.
하지만, 카라마츠 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조하듯 내뱉는 오소마츠 형의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안의 모든 혼란이 날아가 버렸다.
어릴 적부터 오소마츠 형의 파트너였던 나는 오소마츠 형과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해 왔지만, 오소마츠 형의 그런 얼굴은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죽을 것 같은 마음을 숨기고, 조소를 섞어 허무하게 내뱉는 그런 얼굴은….
그렇기에 모른 척하기로 했다.
오소마츠 형과 카라마츠 형의 관계도, 오소마츠 형의 마음도, 전부….
하지만 지금은, 차라리 그때 내가 나서서 뭔가를 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까 하고 후회한다.
저녁이 되어 이치마츠가 돌아왔다.
가볍게 “다녀왔어.” 하고 인사한 이치마츠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오소마츠 형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이치마츠가 돌아오고 잠시 후, 파트타임에서 돌아온 엄마에게 오소마츠 형과 이치마츠가 있다는 말을 하자, 반갑게 웃으며 “그럼 오늘은 8인분이네-.” 하고 즐겁게 중얼거렸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2층에 올라 노크하자, 스륵- 하고 열린 문으로 오소마츠 형과 이치마츠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녁 먹어.”
“오-! 오랜만에 마츠요 여사의 손요리~!”
억지웃음을 지으며 계단을 내려가는 오소마츠 형의 눈가가 붉게 부어있었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아련한 애절함에 숨을 삼키고 말없이 내려가는 이치마츠의 뒤를 따랐다.
오소마츠 형과 이치마츠가 있는 탓인지, 원래 계획이 그랬던 건지, 오늘 저녁은 전골이었다.
군침을 흘리며 새우만을 쏙- 빼가 접시에 담는 오소마츠 형에게 내가 잔소리를 하고, 쥬시마츠와 이치마츠가 사이 좋게 서로 밥을 먹여주는 그런 평범한 모습이 밥상 주위에 펼쳐졌다.
정말로 오랜만에 여섯이 모두 모여 함께 한 저녁상은 굉장히 맛있었다.
토도마츠도 안심한 얼굴로 솔직하게 오소마츠 형에게 응석 부렸다.
이대로, 이런 나날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도 잠시, 오소마츠 형이 고개를 홱 돌려 엄마에게 충격 발언을 했다.
“아- 맞다, 마츠요 여사님~. 나랑 이치마츠-, 취직했어.”
“…엣?”
“…헤?”
“““…하아?!?!?!”””
“….”
오소마츠 형의 말에 이치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와 아빠는 차례로 멍청한 얼굴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고, 카라마츠 형을 제외한 우리는 크게 외치며 오소마츠 형에게 달려들었다.
“우왓! 뭐야, 너네….”
“취, 취, 취, 취직했다고-!?”
“쵸로 씌, ‘취’가 많아.”
“에? 오소마츠 형, 진짜로? 진짜로 취직한 거야? 블랙 공장에 들어간 게 아니고? 진짜, 진짜로?”
“그렇다니까~ 톳티- 의심이 많네.”
“오소마츠 형, 다우트-!!”
“거짓말 아니니까, ‘다우트’ 아니야~, 쥬시마츠~”
실실 웃으며 우리들의 말에 대답하는 오소마츠 형의 모습에 얼이 빠졌다.
하? 취직? 저 파칭코 쓰레기가?
그야 요즘 정신 차리고 알바하고 있긴 했지만…, 취직이라니….
멍청히 오소마츠 형을 보다가 ‘핫!’ 하고 카라마츠가 떠올라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오소마츠 형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있던 카라마츠 형이 젓가락을 멈추고 가만히 오소마츠 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내일 이사야.”
“응?”
계속 조용히 있던 이치마츠의 말에 되물었다.
이치마츠는 무덤덤하게 젓가락을 내려놓고 다시 말했다.
“근무처, 홋카이도니까. 내일 이사한다고.”
“““““…하?”””””
이치마츠의 말에 쥬시마츠, 토도마츠, 부모님과 내가 또 멍청히 신음했다.
망연히 오소마츠 형에게 시선을 돌리자, 오소마츠 형이 처연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러운 이사 소식에 내 머릿속에서 카라마츠 형에 대한 것은 모두 지워지고 말았다.
오소마츠 형과 이치마츠는 저녁 식사 후, 2층 방에 올라 자신들의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적응했는지 토도마츠는 오소마츠 형 옆에 붙어서, 쥬시마츠는 이치마츠 옆에 붙어서 짐 정리하는 것을 돕기 시작했다.
애초에 우리 육둥이 중에서 가장 개인 물건이 적은 두 사람이었기에, 짐 싸기는 굉장히 빨리 끝났다.
짐을 다 싼 오소마츠 형과 이치마츠는 이불을 펴고, 그 안에 들어갔다.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도 주섬주섬 잘 준비를 끝내고 이불에 들어갔다.
남겨진 나와 카라마츠 형도 하는 수 없이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내일 이사라니. 그럼 이렇게 자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잖아….
믿어지지 않는 사실에 한숨을 내쉬고 옆에 누운 오소마츠 형에게 조용히 물었다.
“…정말로 이걸로 된 거야?”
“…응. 나랑 이치마츠는 죄인이니까.”
오소마츠 형의 대답에 더는 물을 수 없었다.
가슴 한쪽에 남아있던 아픔이 다시 애틋하게 심장을 조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우리의 배웅을 받으며 떠난 오소마츠 형과 이치마츠는 2년이 지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7.
“쵸로마츠, 자.”
카라마츠 형이 내민 도시락을 받아 “고마워.” 하고 인사했다.
카라마츠 형은 쑥스럽게 웃으며 “잘 다녀와라.” 하고 배웅했다.
구두를 신고 현관을 나섰다.
오소마츠 형과 이치마츠가 취직하고 2년이 지났다.
그 후, 나도 잠시 멈췄던 구직 활동을 다시 시작해 얼마 지나지 않아 중소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다.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도 나름대로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더니 이젠 거의 정직원과 다름없다.
카라마츠 형은 다리가 불편해 아르바이트도, 취직도 할 수 없어 자동으로 집안일을 맡게 되었다.
만원 전철에 끼어 힘겨운 출근길을 마치고, 사무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았다.
바쁘게 오전 일정을 끝내고 점심시간이 되어 카라마츠 형이 싸준 도시락을 꺼냈다.
청색 반짝이는 보자기에 싸인 도시락을 펼쳤다.
날이 갈수록 요리가 익숙해지는지 카라마츠 형의 음식은 점점 맛있어졌다.
이젠 요리사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그 솜씨에 다시금 감탄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고슬고슬한 밥을 입에 넣자 문득, 오늘 아침에 본 카라마츠 형의 얼굴을 떠올렸다.
항상 기쁘게 웃던 카라마츠 형의 얼굴이 오늘따라 조금 어두워 보였다.
게다가 요즘에 유난히 기운 없는 카라마츠 형을 떠올리며 스마트폰을 들어 토도마츠에게 라인(LINE)을 보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가로수를 장식한 일루미네이션에 카라마츠 형의 눈이 빛났다.
요즘에 우울해 하는 카라마츠 형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토도마츠에게 묘안을 물었을 때, 광장에 한번 데려가 보라고 들었다.
역시, 파트너.
카라마츠 형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토도마츠에게 감탄하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는 카라마츠 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 바쁘게 돌아다니던 카라마츠 형의 눈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의아한 얼굴로 카라마츠 형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붉은빛의 일루미네이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붉은빛, 빨간색.
그것이 무엇을 떠올리게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말없이 빛을 바라보는 카라마츠 형을 부르려는 순간,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스마트폰이 울렸다.
꺼내 확인하니 올해 막 입사한 후배의 이름이 찍혀있었다.
이 후배가 또 뭔가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직감하고 쓰게 웃으며 카라마츠 형을 불렀다.
“카라마츠 형.”
“응?”
“나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
“아아. 천천히 해라.”
카라마츠 형에게 고개를 숙여 미안하단 표시를 한 후,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아니나다를까 징징거리기 시작한 후배의 목소리에 전화가 길어질 것을 예감했다.
아름답다, 고 생각하며 붉은빛을 언제까지고 바라보았다.
이제 집엔 붉은색이 남아있지 않다.
2년 전에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단순히 형제가 독립한 것뿐인데, 왜 자신은 이렇게나 쓸쓸함을 느끼는지 알 수 없다.
떠난 오소마츠와 이치마츠는 명절이 되어도 바쁘다며 집에 오지 않았다.
나와 똑같은 그 얼굴이 이상하게 흐려져 기억나지 않는다.
왜, 나는 그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까.
스스로 되물으며 붉은빛을 보고 있는 내 눈앞에 빨간 목도리가 보였다.
“…오소마츠!!”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크게 불렀다.
순간, 붉은 목도리를 두른 사내의 어깨가 크게 튀었다.
그 반응으로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오소마츠에게 달려갔다.
나는 달려갈 심산이었지만 불편한 다리는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기우뚱거리는 몸을 빨리 움직여 오소마츠에게 다가갔다.
눈썹을 늘어뜨리고 내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본 오소마츠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오, 랜만이다! 오소마츠!”
“…응. 오랜만, 카라마츠. 다리 괜찮아?”
시선을 내려 내 다리를 보는 오소마츠에게 시원하게 웃어주었다.
이제 거의 통증은 느껴지지 않으니까.
오소마츠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오소마츠의 얼굴에 남은 근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소마,”
“쵸로마츠는 잘 지내?”
“아, 아아….”
“쥬시마츠랑 토도마츠는? 둘 다 일하고 있다며, 요즘.”
“아, 아아…. 잘 지내고 있다. 그것보다 오소마ㅊ….”
“그래? 잘됐네~! 나랑 이치마츠도 잘 지내고 있어.”
“아, 응….”
말을 걸고 싶어도 오소마츠는 미소를 띤 얼굴로 막았다.
아니다, 내가 묻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야….
“오소마츠는, 괜찮은가? 아프지 않은가? 내가, 보고 싶지 않았나?”
모든 것을 포기한, 체념한 얼굴로 웃는 오소마츠의 미소에 가슴이 아파서 오소마츠의 팔을 붙잡았다.
도망치지 못하도록 강하게 붙잡고 물었다.
오소마츠는 놀란 얼굴로 나를 보더니, 내 질문에 이내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오소마,ㅊ…”
“뭐야아~, 잘 지내고 있다니까? 그리고 자기가 보고 싶지 않았냐니…. 너, 얼마나 나르시시스트인 거야….”
킥킥 웃음을 흘리며 오소마츠가 말했다.
오소마츠의 마른 웃음은 금세 잦아들고, 숨을 삼키고 은은히 미소 지은 오소마츠가 말했다.
“…나는, 잘 지내고 있어.”
그럼 대체 왜 그런 쓸쓸한 미소를 짓는 거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 미소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애절하게, 애처롭게, 가슴이 떨린다.
거짓말이라고 외치려 고개를 들자, 오소마츠의 옆에 한 인영이 섰다.
“오소마츠 형…. 그리고, 카라…마츠 형.”
“…이치마츠.”
“어서 와~, 이치마츠. 일은 다 끝났어?”
“응.”
보라색의 목도리를 두른 이치마츠가 오소마츠 옆에 섰다.
이치마츠를 반기는 오소마츠의 입가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내 앞에 있을 때와 다르게, 진심으로 기쁘게 웃는 미소에 또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
“어? 이치마츠? 오소마츠, 형?”
쵸로마츠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쵸로마츠도 통화를 끝내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오~, 쵸로~!”
“웬, 일이야?”
“…출장.”
“출장?”
쵸로마츠의 질문에 이치마츠가 대답했다.
쵸로마츠는 황당하단 얼굴로 눈썹을 찡그리고 말했다.
“그럼 미리 연락 좀 하라고…. 집에 들렀다 갈 거지?”
“아니, 늦었어.”
“바로 돌아가 봐야 해.”
쵸로마츠의 말에 이치마츠와 오소마츠가 말했다.
미안하단 얼굴로 쓰게 웃은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취직도 다 하고~, 대단하네-. 쵸로마츠는~!”
“손 치우지?”
“쵸로마츠 형, 취직 축하-.”
“됐어!! 전화로 대충 축하 때웠던 놈들이!!”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장난스럽게 웃고, 이치마츠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잠시 말이 오가더니 곧 이치마츠가 시간을 확인하고 오소마츠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오소마츠도 이치마츠에게 고개를 끄덕이곤 싱긋- 웃었다.
“그럼 우리 가볼게. 다음에 집 갈 테니까.”
“…조심히 가.”
“응! 또 봐~, 쵸로 씌~!”
“다음에 봐. 쵸로마츠 형, …카라마츠 형.”
서둘러 인사를 마친 오소마츠가 조용히 팔을 흔들었다.
그제야 아직도 내가 오소마츠의 팔을 붙잡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카라마츠….” 하고 나직이 나를 부르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입술을 깨물었다.
떼고 싶지 않다.
놓고 싶지 않았다.
기다려도 손을 놓지 않자, 오소마츠가 제 손을 내 손에 겹쳐 천천히 옷자락을 쥐고 있던 손가락을 풀었다.
맥없이 쥐고 있던 옷을 놓은 내 손을, 한 번 꼭- 쥐었다 놓은 오소마츠가 빙긋- 웃었다.
“…그럼, 안녕.”
짧게 인사를 마친 오소마츠가 이치마츠와 함께 몸을 돌렸다.
서서히 멀어지는 오소마츠를 눈으로 좇았다. 오소마츠의 옆엔 이치마츠가 나란히 서 있었다.
문득,
두근거리는 심장과 함께
깨달았다.
저 자리는 ‘내 것’이라고.
아-. 나는, 오소마츠를 사랑하고 있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카라마츳?!” 하고 당황한 쵸로마츠의 목소리는 내 울음소리에 묻혔다.
그래, 나는 오소마츠를 사랑했다.
미치도록, 죽도록 사랑했다.
밝은 표정도, 귀여운 미소도, 나를 향한 사랑스러운 눈빛도 모두 사랑했다.
“오소마츠, 오소마츠, …오소마츠….”
사랑했지만, 이제 작별이다.
안녕, 오소마츠….
나는 앞으로도 너를 사랑할 것이다.
8.
“…차라리, 형제가 아니었다면 좋았을까.”
오소마츠 형의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는 형제였기에 이렇게 만났고,
형제였기에 함께 자랐고,
형제였기에 서로 사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오소마츠 형은 ‘형제’임을 원망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우리의 관계를 이치마츠에게 들키고 난 후였다.
나를 향한 이치마츠의 ‘증오’와 ‘거절’과 ‘거부’에 죽고만 싶었다.
자신의 사랑이, 오소마츠 형과의 관계가 ‘더러운’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로, 거대한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렇게나 행복했던 오소마츠 형의 곁은 가장 괴로운 자리가 되었다.
가슴을 옥죄고 목을 조르는 죄책감 때문에 오소마츠 형의 옆에 다가갈 수 없었다.
자신을 피하는 나를 향한 오소마츠 형의 쓸쓸한 표정도 나를 괴롭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표정을 하게 만드는 자신이 참을 수 없이 증오스러웠다.
내가, 오소마츠 형을 그렇게 힘들게 만들면서 나는 오소마츠 형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겨우, 겨우 손에 넣은 ‘나만의 오소마츠 형’을, 나는 놓고 싶지 않았다.
내게 달려오는 트럭을 보며 깨달았다.
아-, ‘형제’가 아니게 되면 된다고.
오소마츠 형의 말대로 우리가 ‘형제’가 아니라면,
단순한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라면….
우리는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이 서로 마음껏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런 걱정 없이 오소마츠 형의 곁에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달려오는 트럭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보였다.
나는, 앞으로 펼쳐진 미래를 떠올리며 기쁘게 눈을 감았다.
* 처음?은 아니지만, 제대로된 새드 엔딩은 처음 올리는 것 같네요...
앞으로 올라올 단편 중에서 새드 엔딩이 몇 개 있습니다...후후후
* 이번 단편은 후편 없이 이 하나로 완결입니다^^
'오소마츠상 > 카라오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라오소] 갈망 -하- (4) | 2017.02.17 |
---|---|
[카라오소] (LINE마츠)발렌타인 데이 (16) | 2017.02.14 |
[카라마츠] 식욕 (8) | 2017.01.29 |
[카라오소] 갈망 -하 (R-18)- (10) | 2016.12.04 |
[카라오소] 갈망 -중- (0) | 2016.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