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편입니다ㅎ
*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1.
텅 빈, 가치 없는, 쓸모 없는, 소용 없는.
그 모든 수식어가 내가 나 ‘자신’을 정의하고 있는 단어들이었다.
나는 대체 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일까, 그런 고민조차 나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나에겐 지나친 사치와 같았다.
그렇기에 아무 생각 없이 취미로 쓴 소설이 정식으로 출판되고 작가상을 수상했을 때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특별하지 않은 대학 노트에 적어간 별 볼일 없는 내 소설을 신인작가 응모전에 투고할 생각도 없었던 나는, 동생이 알려오는 수상 소식에 턱을 떨어뜨릴 수 밖에 없었다.
우연히 내 소설을 발견하고 내 동의도 없이 응모전에 투고했다는 동생의 사과에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수상식에 참여하고, 유명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또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나는 많은 수상 경력을 가진 유명 소설가가 되어 있었다.
보잘것없는 내 글로 충분히 밥을 벌어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불만은 없다.
하지만 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는 독자의 편지나, 내 작품에 얼마나 심오한 주제가 숨겨져 있는지 감탄하는 평론가의 글을 읽다 보면 세상에 이런 희극이 또 있을까 싶었다.
심오한 주제?
작품 세계?
그런 것이 내게 있을 리 없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내가 과연 그렇게 무게 있고 값어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도 안 된다.
나는 다만 남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썼을 뿐이다.
인간은 그 개체 하나하나가 바라는 가치가 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할지, 어떤 의미를 남길지를 바라고 기대한다.
나는 그런 기대들을 모아 글로 표현한 것뿐이다.
그런 글들을 칭찬하는 자들은 대체로 내 글에서 자신의 기대와 이상을 본 어리석은 자들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카츠카 출판사의 마츠노 오소마츠라고 합니다. 이번에…”
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앳된 목소리에 도로 문을 닫았다.
단단한 쇠문에 걸려있는 삼중의 걸쇠를 모두 제거하고 다시 문을 열자 보란 듯이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고 있는 남자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성인 남자가 되어서, 자신의 불쾌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미성숙함에 한숨이 나왔다.
이대로 돌려보내고 싶었지만, 말도 안 듣고 내치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에 일단 집 안으로 들였다.
주춤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와 거실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남자는 아니나 다를까 내 질문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별로 상관은 없다.
내 글을 읽던 말던.
아무런 가치도 없는 내 글을 읽는다고 뭔가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다만, 슬슬 글을 쓰는 것에 질려가던 차에 또 다른 출판사와 계약해 책을 내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낸 책들로 번 돈은 계획적으로만 쓴다면 앞으로 일도 하지 않고 살 수 있을 정도로 넘쳐났다.
나는 이대로 내가 직접 만든 이 성 안에 머물며 그대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를 찾아온 어린 편집자를 새까맣게 잊었다.
3주 후, 다시 들려오는 벨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지금은 그 어떤 출판사와도 계약하지 않았다.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도 눌린 벨에 호기심이 생겨, 문을 열지 않고 경비 시스템의 버튼을 눌러 문 앞에 있는 사람을 확인했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에 겨우 저번에 찾아온 편집자라는 것을 기억해내고 문을 열었다.
졸린 듯한 얼굴로 내 책을 다 읽었다는 편집자에게 약간 흥미가 생겨 집 안으로 들였다.
소파에 앉아 내 이름으로 출판되었던 책들을 하나하나 물으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착실히 정답을 말하는 편집자는 멍청히 나를 바라보았다.
일단 소파에 앉으라고 손을 들자,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소파에 앉은 편집자의 얼굴이 작은 한숨과 함께 이완했다.
편안하게 소파에 몸을 묻은 편집자는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았다.
무례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그의 태도에 대체 언제 깨달을까 싶어 가만히 쳐다보니, 겨우 정신을 차린 그가 정중하게 두 손으로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 쓰인 성씨가 나와 같은 것에 작게 놀라며 별 생각 없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책을 물었다.
계약을 하지 않을 변명을 적당히 생각하고 있는 내게 편집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해」요.”
순간, 손에 쥐고 있던 명함을 떨어뜨릴 뻔 했다.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니 아직도 잠에 취한 멍청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작게, 혼잣말과 같은 음량으로 “왜 그 책이…?” 하고 묻자,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잠시 허공을 바라보더니 곧 입을 열어 대답했다.
“뭔가, 가장 선생님답다고 생각해서요.”
대체 이 대답에 내가 뭐라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일까.
「심해」는 내가 쓴 책 중에서 가장 최악의 평을 들은 책이었다.
의미도 주제도 없는 책이라는 평론가들의 악평과 더불어 매출도 가장 적었던 책.
내 책들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내가 썼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그런 책이었다.
하지만, 가장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책이기도 했다.
단 한번, 시험해 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바라는 글이 아닌, 나 ‘자신’을 드러내는 솔직한 글을 쓰면 어떻게 될지를. 공허하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나’를 드러내면 나를 찬양하던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처참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판매량과 악평들.
당연히 나와 계약하고 그 책을 낸 출판사는 큰 손해를 보아야 했고, 나는 그 보상으로 한 권을 더 계약해 많이 팔릴 수 있는 글을 써주어야 했다.
그런 책이다, 「심해」는.
출판사에 속해있는 편집자 입장에서는 가장 피해야 하는 책.
그런데 눈 앞에 멍청한 얼굴로 앉아있는 이 자는 내 질문에 “「심해」”라고 대답했다.
그 책이 가장 ‘나 답다’고 말했다.
아주 미미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있던 흥미가 순식간에 성장해 그 존재를 과시했다.
눈 앞에 있는 이 남자를 더 알고 싶었고, 더 ‘나’를 드러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그와 계약했다.
다른 이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인 그가, 조금은 내게 즐거움을 주지 않을까 기대와 함께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2.
‘마츠노 오소마츠’라는 남자를 지켜보며 알게 된 사실은 많다.
첫째로, 그는 나이에 맞지 않게 굉장히 어리다.
말투도, 행동도, 반응도 전부 마치 어린애와 같은 순수함과 어리석음이 있었다.
소설의 컨셉을 잡기 위한 회의에서도 몇 번이고 말실수를 하며,
실례임이 분명한 발언을 서슴없이 하지를 않나,
내 질문에 멍청히 “헤?” 하고 대답하지를 않나.
20살은 넘은 성인이 할 법한 언행은 절대 아니었다.
둘째로, 그는 굉장히 자신의 동생들을 예뻐했다.
회의 도중, 동생들에게서 문자나 전화가 걸려오면 그는 바로 회의를 중단하고 동생들의 연락에 답했다.
전화를 하는 내내 부드러운 목소리와 상냥한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동생과 연락을 할 때는, 그의 어린아이 같은 면도 사라지고 한 명의 ‘형’으로서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다.
한 번, 그의 동생에 대해 물으니 싱글벙글 웃으며 동생이 두 명 있으며 그 중 한 명은 마을에서 유명한 사립 고등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다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동생들이 그 자리에 없는데도, 동생을 떠올리고 있는 그의 눈빛은 지극히 다정했다.
그는 항상 저런 눈빛으로 동생들을 바라보는 것일까, 의문과 함께 그 눈빛을 받는 동생들이 조금은 부러웠다.
그런 그의 상반된 면들이 재미있었다.
순수하고 솔직한 그의 어린아이 같은 면도, 동생들을 향한 ‘형’의 일면도 보면 볼수록 더 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 일으켰다.
소설의 주제와 컨셉을 결정하고, 글만 쓰면 되는 작업으로 들어갔을 때, 더 이상 그를 자주 볼 수 없다는 실망감에 매주 그에게 전화를 걸어 말도 안 되는 불평을 늘어놓으며 잔심부름을 시켰다.
초인종을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그의 표정은 항상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화가 난다고는 하나, ‘일’인데도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드러내는 그가 재미있었다.
우연히 그가 단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난 후로는 잔심부름 가운데 반드시 단 음식을 사오도록 했다.
수고했다는 의미로 그가 사온 케이크나 아이스크림 같은 단 음식을 내놓으면 행복한 얼굴로 맛을 음미하는 그의 모습이 굉장히 웃겼다.
편안하게 얼굴을 이완하고 단 음식을 먹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내 예상보다 더 즐거웠다.
“아, 이 책.”
재판이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타 출판사에서 보내온 내 책을 보며 그가 눈썹을 찌푸렸다.
커피테이블에 놓인 두꺼운 책을 노려보는 그에게 “그 책이 왜?” 하고 묻자, 그는 푹- 한숨을 쉬며 이 책이 제일 비쌌다며, 책 주제에 뭐 그리 비싼 건지 모르겠다는 투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책을 쓴 당사자 앞이라는 것도 잊고 솔직하게 불만을 늘어놓는 그가 우스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 책 때문에 돈이 더 들었는데…”
책을 들어 이리저리 돌려보며 입을 비죽 내민 그에게 대체 언제 책을 샀는지 물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본 그가, 나와 처음 만났을 때라고 대답했다.
내가 내 책을 읽고 오라는 말을 한 탓에, 10권이 넘는 내 책을 전부 사야 했다는 그의 말에 출판사에 구비되어 있지 않았나 물었다.
“저희 출판사가 아니고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인데… 있을 리가요.”
그의 말에 놀라 타자를 두드리고 있던 손을 멈추었다.
10권이 넘는 책이라면 분명 2만엔(약 20만원) 가까이 들었을 것이다.
그의 입장에선 분명 부담되는 금액이었을 거란 생각에 그 때 그렇게 내치지 말고 내 서재에 있는 내 책을 내주면 좋았을 것이라는 때늦은 후회를 했다.
그리고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자신의 사비를 들여가며 내 책을 사서 3주에 걸쳐 읽고 온 것이 기뻤다.
노트북의 화면을 바라보는 눈이 부드럽게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아, 귀엽다.
다시 책을 커피테이블에 내려놓고 눈 앞에 놓인 케이크에 집중하고 있는 그를 모니터 너머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이 사랑스러웠다.
“저는, ‘그런 건’ 무리입니다.”
심하게 일그러진 얼굴은 곤란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괴로운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간신히 짜내어 말을 마친 그는 바로 몸을 돌려 집을 나갔다.
줄곧 나 혼자 살아왔던 집이 이상하리만치 쓸쓸하고 차갑게 느껴졌다. 공허한 마음 속 텅 빈 공간에 바람이 불었다.
커다란 빈 방에 울린 바람은 벽에 부딪히고 쪼개어져 휘파람 같은 소리를 냈다.
이 감각은 익숙하다.
이미 몇 번이고 겪고, 아파했던 감각은 이젠 내게 아무런 고통도 주지 않을 것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욱신거리는 심장을 붙잡고 허탈하게 숨을 내뱉었다.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왔다.
내가 원하는 것들은 전부 나보다 나은 자들의 것이었거나, 내가 가지기엔 너무나 가치 있는 것들뿐이었다.
내가 ‘그것’을 가질 자격이 없다면 시원하게 포기해왔다.
내가 가져서 ‘그것’의 값어치가 떨어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저 멀리 떨어져서 ‘그것’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항상 그렇게 해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올 예정이었다.
이변 따위는 없었다.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설마 이렇게나 간단하게 ‘그’는, ‘오소마츠’는 내가 세운 내 규칙을 모두 내던지도록 만들었다.
허무하고 비어있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내가, ‘오소마츠’를 원하게 만들었다.
수줍게 웃는 얼굴도, 어린아이 같은 행동도, 솔직한 말투도, 그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가지고 싶었다.
곁에 두고 싶었다.
이번만큼은 멀리서가 아닌 바로 옆에서, 제로(0)에 가까운 거리에서 그와 있고 싶었다.
손에 넣고 싶었다. 원한다. 그가 나를 거부해도, 나를 이 마음을 멈출 수 없다.
그를 향한 갈망이 멈추지 않는다. 포기할 수 없는 마음에, 그저 눈물이 흘러 내렸다.
3.
마음이 무겁다.
이제 더 이상 그 집엔 갈 수 없다.
담당도 물론 할 수 없다.
얼굴에 철판을 깔지 않는 이상, 그 앞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설 자신이 없다.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책상에 앉자마자 그대로 엎드렸다. 차가운 플라스틱의 냉기가 볼을 타고 스며들어왔다.
이 회사를 다니면서 지금처럼 우울했던 적이 있었나…
아니, 없었다.
어찌 보면 사사로운 나의 개인적인 이유로 나는 회사의 돈줄과 다름없는 작가와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잘려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잘리면 당장 다음달부터 식비는 어찌할 것이며, 동생들의 학비도 어떻게 지원을 해야 할지 눈 앞이 막막하다.
알바라도 해야 하나.
지금처럼 돈을 받을 수 있는 일이 있나…
후회에 후회를 거듭해도 이미 일어난 일, 되돌릴 수는 없다.
회사에서 잘린 후,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짝! 소리를 내며 등짝스매시가 내려왔다.
“아팟!!!!”
“이 자식이, 출근하자마자 농땡이야!?”
고개를 드니 이시이씨가 눈썹을 올리고 노려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여자가 이렇게 손이 매운지..
맞은 등을 슬슬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저기, 이시이씨…”
“뭐야, 뭔가 불안한 어조인데… 또 사고 쳤어?”
대체 어떻게 아는 걸까, 절대 풀 수 없는 미스터리 중엔 반드시 이시이씨의 ‘감’도 들어가 있을 것이다.
얼굴을 찌푸리고 취조를 하는 형사와 같은 눈빛이 따갑게 박혔다.
고개를 돌려 눈을 피하고 망설이며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열었다.
“그, 저…”
“뭔데.”
“담당 바꿔주시면 안될까요..?”
“어. 안 돼.”
“너무 빨리 대답하시는 거 아니에요!?”
“안 되니까. 왜, 진짜 사고 쳤어?”
“으…”
“아이고!! 이 화상아~!!!!”
대답을 망설이자 바로 ‘퍽, 퍽’ 소리와 함께 등에 불이 붙은 것처럼 화끈거렸다.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지만, 이시이씨의 용서 없는 스매싱은 멈추지 않았다.
등과 손바닥이 마주쳐 이루는 찰진 소리에 사무실 동료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고 나서야 이시이씨의 손이 멈췄다.
얼얼함을 넘어 감각이 사라진 등에 울상을 지으며 이시이씨를 올려다보자 조금 미안한 얼굴로 이시이씨가 들고 있던 커피를 홀짝였다.
“암튼, 담당은 못 바꿔줘.”
“왜요!!”
강하게 항의하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이시이씨가 동료들에게는 들리지 않게 작게 중얼거렸다.
“나한테 ‘빚’ 있잖아, 너.” 하고 냉정하게 말하는 이시이씨의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또다시 과거가 아프게 가슴을 쑤셨다.
가라앉은 기분에 절로 나오는 한숨을 내뱉자 부드러운 손길이 머리에 닿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사과해.”
“왜 꼭 나여야 해요? 그렇게 유명한 작가면 나 말로 더 유능한 사람이 담당인 게 좋잖아요.”
이시이씨를 올려다보며 묻자 이시이씨는 눈을 돌려 허공을 바라보았다.
내 물음에 제대로 대답해주기 위해 말을 고르는 이시이씨를 기다렸다.
이시이씨의 미간에 생진 주름이 더 짙게 패였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한참을 묵언수행하고 나서야 이시이씨가 대답했다.
“왠지 너랑 그 선생님은 닮았어. 어디가 닮았냐고 하면 콕 집어서 말은 못해줘. 여자의 ‘감’이거든.”
납득할 수 없으면서도 납득할 수 밖에 없는 강압이 들어간 말에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털퍽 책상에 얼굴을 묻은 나를 이시이씨가 토닥이며 “힘내-“ 하고 무책임한 응원을 보내고 떠났다.
아-, 들어가고 싶지 않다.
닫힌 쇠문을 앞에 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원망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 왜 이런 일이?!
전화도 껄끄러워 문자로 연락을 하고 찾아왔지만 도저히 초인종을 누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얼굴을 마주하고 제대로 대화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신사적인 사람이니, 갑자기 덮쳐지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아~, 진짜 우째~~”
푹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한숨 밖에 안 나온다.
돌아갈까 말까 맹렬히 고민하고 있는 사이 묵중한 소리를 내며 쇠문이 열렸다.
“으힉?!”
놀라 비명을 지르며 한 발자국 물러나자, 카라마츠의 얼굴이 나타났다.
“…? 누구?”
“…헤?”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하고 묻는 카라마츠의 말에 ‘이 녀석이 드디어 정신을 놨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이 빠져 정말로 처음 본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카라마츠를 올려다보았다.
미쳤나? 아님, 어제의 일을 없던 일로 하기 위해서 기억상실이라도 연기하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추측을 쏟아내고 있자, 카라마츠가 고개를 돌려 집 안을 향해 외쳤다.
“카라마츠, 손님 왔어.”
“…헤?”
..정신분열증?
이쯤 되면 진심으로 도망쳐야 할지 구급차를 불러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주머니에 넣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사태를 파악하려 머리를 굴리고 있으니, 집 안에서 익숙한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오소마츠?”
“…아…”
문을 연 카라마츠의 뒤로 또 다른 카라마츠가 보였다.
에? 뭐야? 그림자 분신술??
“아, 이 분이 말했던 담당인가. 안녕하세요. 카라마츠의 쌍둥이 동생 쵸로마츠라고 합니다.”
“안, 녕하세요…”
꾸벅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쵸로마츠라 소개한 남자는 나를 지나쳐 집 밖으로 나왔다.
“그럼 갈게.” 하고 인사를 건네는 쵸로마츠에게 카라마츠가 “아아.” 하고 웃으며 인사했다.
같은 얼굴을 가진 두 남자 사이에 끼여 오도가도 못한 채 나는 가만히 두 사람의 인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다시는 안 올 거라 생각했다.”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눈을 돌렸다.
내 앞에 선 카라마츠는 항상 당당했던 모습을 잃고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그제야 왜 자신이 이곳에 그렇게 오고 싶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아무리 동생들에게 ‘기적의 바보’라고 듣는다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그걸 잊고 있다니 바보 중의 바보인가 하는 조소가 흘러 나왔다.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카라마츠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실은 나도 안 오고 싶었다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담당도 바뀌지 않는다.
일은 계속 해야 하고, 싫어도 나는 계속 이 집에 드나들며 카라마츠와 마주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푹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앞으로는 철저하게 ‘일’과 관련된 연락만 받겠습니다. 어제의 ‘그 일’과 ‘일’은 별개니까요. 연락은 계속 하겠습니다. 필요하시면 집에도 찾아오겠습니다만, 그것뿐입니다. 명심해 주세요.”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일부러 딱딱하고 건조한 어조로 말을 했다.
카라마츠는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리며 “알았다.” 하고 싱겁게 대답했다.
뭐야, 뭐 그렇게 쉽게 납득해.
나를 원한다면서 좀 더 억지를 부리고, 졸라보라고.
갑과 을 중에서 당연히 네 입장이 ‘갑’의 입장이잖아.
이용해보라고 유리한 입장을…
고개를 드는 불합리한 불평에 재빨리 발을 돌렸다.
간단하게 인사를 건네고 바로 집을 나왔다.
카라마츠의 맨션에서 한참 멀어지고 나서야 겨우 한숨을 돌리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조금만 더 그 자리에 있었다가는 카라마츠의 멱살을 붙잡을 것 같았다.
왜 그렇게 쉽게 포기하냐고 화를 낼 것만 같았다.
만약 카라마츠가 좀 더 강하게 나왔다면, 나는 분명 그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가 ‘갑’의 입장을 이용해 나를 협박하지 않아도, 시간을 들인다면 나는 그에게 넘어갔을 것이다.
그렇게 싫은 기억을 떠올리게 한 그를 향한, 희미하게 남아있는 ‘호감’이 증명해준다.
처음으로, 20여 년을 살아온 나의 인생에 처음으로 ‘나’를 원해준 사람이다.
좀 더, 나를 원해주기를 바래, 오로지 나를 향한 그 팔에 안기면 얼마나 행복할까.
슬며시 카라마츠와 함께 누릴 수 있는 미래를 그리는 머리를 거칠게 흔들었다.
올 리가 없는 미래 따위 그려봤자 남는 것은 허무함뿐이라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4.
“요즘은 어때?”
짐을 챙기고 돌아갈 채비를 마친 쵸로마츠가 물었다.
꼬박꼬박 이런 형편없는 형의 안부를 물어오는 동생이 기특해 미소를 지으며 “항상 같다. 잘 지내고 있어.” 하고 대답했다.
내 대답의 어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쵸로마츠에게 쥬시마츠의 근황을 물었다.
얼마 전, 직접 재배한 채소와 과일을 보내준 것으로 보아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쵸로마츠는 쥬시마츠와 자주 연락을 주고 받고 있으니 더 정확한 근황을 알고 있을 터였다.
“뭐, 잘 지내. 내년엔 벼농사에도 도전할 생각이라고 하더라고.”
“그런가.”
“우리 중에선 그 녀석이 가장 건전하게 살고 있으니까. 정상적으로.”
쓸쓸한 얼굴로 눈을 바닥으로 돌리는 쵸로마츠를 보며 쓰게 웃었다.
이미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내쫓긴 나와, 스스로 그 울타리를 나와 자립한 쥬시마츠와 달리 쵸로마츠는 아직도 그 좁은 영역 안에서 발버둥치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숨기고 살아가는 모습이 안타까워 손을 뻗어 가볍게 쵸로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무리하지 마.”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나는 바라보던 쵸로마츠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너야 말로.” 하고 말했다.
가방을 들고 현관으로 걸어가는 쵸로마츠의 뒷모습을 배웅하고 소파에 앉았다.
우리 사이에 쓸데없는 인사는 필요하지 않았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옆에 놓았던 노트북을 들어 무릎에 올려놓았다.
“…? 누구?”
현관문을 나가 떠났어야 할 쵸로마츠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현관문을 반쯤 연 채, 쵸로마츠가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라마츠, 손님 왔어.”
비켜서며 나를 부르는 쵸로마츠의 목소리에 현관을 바라보았다.
어제 그대로 헤어진 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얼굴이 그 앞에 있었다.
벌떡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자, 무릎에 있던 노트북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오소마츠?”
설마 하는 생각으로 현관으로 다가갔다.
쵸로마츠의 앞에, 내 눈 앞에 오소마츠가 서 있었다.
“아, 이 분이 말했던 담당인가. 안녕하세요. 카라마츠의 쌍둥이 동생 쵸로마츠라고 합니다.”
나와 오소마츠를 번갈아 쳐다보던 쵸로마츠가 깨달았다는 듯, 오소마츠에게 말을 걸었다.
“안, 녕하세요… 카라마츠 선생님의 담당편집인 마츠노 오소마츠라고 합니다.”
쵸로마츠의 인사에 깜짝 놀라 몸을 움찔거리며 오소마츠가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만들고 쵸로마츠에게 인사했다.
짧은 인사를 나눈 후, 쵸로마츠는 나를 향해 “그럼 갈게.” 하고 인사했다. “아아.” 하고 대답하니, 슬쩍 오소마츠의 얼굴을 살피며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스쳐 지나가 밖으로 나갔다.
닫힌 현관에는 나와 오소마츠만이 남았다.
“다시는 안 올 거라 생각했다.”
무심코 새어 나온 속마음에 적잖이 당황했다.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는 내 실언에 더 낮게 내려앉았다.
줄곧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 오소마츠의 얼굴에 절망이 발목을 잡고 내 귓가에 ‘거 봐.’ 하고 속삭였다.
어색하게나마 쵸로마츠에게 지어주었던 미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무표정에 가까운 굳은 얼굴로 오소마츠는 기계적이고 업무적인 태도를 취했다.
다시,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격했던 것도 잠시, 오소마츠의 말에 나는 벼랑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한 순간의 어리석은 한마디로 나는 오소마츠의 얼굴도 자유롭게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오소마츠는 이제 그렇게 풍부하고 시시각각 변했던 표정들은 더 이상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실수에 가슴 깊이 한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 이상 욕심을 부린다면 오소마츠의 얼굴도 보지 못할 것이 두려웠다.
오소마츠가 떠난 현관에 서서 이 욕망을 억누를 것을 다짐했다.
오소마츠가 잠시라도 남아있었다는 흔적은 방 안의 차가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오소마츠의 체온이 남기를 바라며 눈을 감았다.
문자도 전화도 전과 비교하면 확연히 줄었다.
이젠 내게 전화하는 것조차도 부담스러운지 오소마츠는 대부분의 연락을 문자로 보내왔다.
얼굴을 보는 빈도도 크게 줄어, 정기적인 스토리 회의 말고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주 2, 3회 내 집에 얼굴을 비추던 것이, 2, 3주에 한번으로 줄었다.
포커페이스를 만들고 딱딱한 업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오소마츠를 볼 때마다, 그 가녀린 몸을 품에 안고 그의 체온을 온 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강하게 껴안아 그의 몸 전부를 알고 싶었다.
그 부드러워 보이는 살갗에 닿고 싶었다.
그를 만지고, 그의 손이 내 몸에 닿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런 일을 저지른다면, 다가올 결과는 물 보듯 뻔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은 고사하고 그에게 연락을 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건조한 어조임에도 감미롭게 들리는 그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을 것을 생각하며 주먹을 굳게 쥐고 떠오르는 욕망을 억눌렀다.
나는 항상 내 모든 것들을 통제해왔다.
나의 행동, 생각, 내 주변의 환경까지.
필사적으로 아버지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제한하며 조용히 살아왔다.
20여 년을 넘게 그렇게 살아오면 싫어도 몸에 완전히 베어 버리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오소마츠를 향한 내 욕망도 통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는 그 생각이 얼마나 안일하고 낙관적이었는지 통탄한다.
오소마츠를 향한 충동을 억누르기로 한지 벌써 한 달하고도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내가 오소마츠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겨우 3번.
그 3번 동안 오소마츠를 향한 내 끝이 없는 욕심은 더욱 박차를 가해, 결국 내 통제를 벗어나기 직전의 상황에 이르렀다.
오소마츠가 보고 싶다.
만지고 싶다.
글을 쓰면서도 머리 속은 온통 오소마츠로 넘쳐나고 있었다.
자신이 제대로 글을 쓰고 있긴 한 건지 확신도 들지 않아 타자를 치던 손을 멈추고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쓸었다.
지금 내 눈 앞에 오소마츠가 서 있기를 바랬지만, 하늘은 무심하게도 하찮은 나란 존재를 무시하기에 바빴다.
허탈하게 비소를 머금고 몸을 일으켰다.
“삐리리-“
몸을 일으킨 순간, 현관에서 들려오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얼굴을 돌렸다.
자동으로 잠기고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리는 이 맨션의 문을 열고 들어올 사람은 나 아니면 쵸로마츠뿐이다.
터벅터벅 발소리를 내며 예상했던 얼굴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쵸로마츠.”
“어, 오랜만.”
“무슨 일이야?”
주방에 들어가 찬장에서 커피통을 꺼내며 물었다.
커피통을 들어 흔들며 무언으로 묻자, 쵸로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분의 커피를 내려 머그잔에 담아 내밀었다. 뜨거운 김이 나는 머그잔을 들고 소파에 앉은 쵸로마츠가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거래처가 말이 안 통하는 꼰대들이라, 화딱지 나서 못 있겠어.”
“고생이 많네.”
후룩 뜨거운 커피를 마셔가며 불평하는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을 감고 내 손길을 받아들인 쵸로마츠가 다시 푹 한숨을 쉬었다.
인상을 쓰고 회사 일이 어떻고, 아버지는 어떻고 하는 불평을 가만히 들어주었다.
중간중간 울 것 같은 얼굴로 괴로워하는 쵸로마츠의 얼굴에 가슴이 조여왔다.
자신이 제대로 ‘형’으로서 모범을 보이지 않아 쵸로마츠가 더 고생을 하고 있다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어리둥절한 얼굴로 “뭐가?” 하고 돌려주는 동생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불평 들어줘서 고마워. 잠깐 점심시간에 짬 내서 온 거라, 이제 돌아갈게.”
말을 마치고 머그잔에 남은 식은 커피를 입에 들이부은 쵸로마츠가 몸을 일으켰다.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머그잔을 씻어놓고 가겠다고 주장한 쵸로마츠가 주방에 섰다.
소파에 앉아 쵸로마츠의 모습을 응시하고 있으니, 초인종이 눌리는 소리가 집 안에 울렸다.
컵을 다 씻고 손을 털며 주방에서 나온 쵸로마츠가 “누구 올 사람 있어?” 하고 물었다.
현관으로 향하며 고개를 젖고 무거운 쇠문을 열었다.
“아, 저기…”
멋쩍은 얼굴로 문 앞에 서 있던 오소마츠가 한 발작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죄송합니다!! 부탁이 있어서 미리 연락도 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허리를 깊게 숙여 거의 직각이 되도록 몸을 굽히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오소마츠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것 같아,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없는지 알고 싶었다.
일단 아직도 내 앞에서 허리를 숙이고 있는 오소마츠를 일으키기 위해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허공에 떠 있는 손을 쓰게 웃으며 다시 제자리로 돌렸다.
그럴 마음이 없었다고 해도, 지금 오소마츠에게 닿는다면 참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일단 일어나. 들어와서 듣지.”
말을 마치고 거실로 들어가자 나를 따라 들어온 오소마츠를 본 쵸로마츠가 “일 이야기인 것 같으니, 갈게.” 하고 가방을 챙겼다.
간단하게 대답을 한 나를 스쳐 지나가는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보며 싱긋 웃었다.
“오랜만이에요. 오소마츠씨.”
“아, 쵸로마츠씨. 안녕하세요.”
굳어 있던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의 인사에 미소를 띠고 대답했다.
내가 그를 원한다고 했던 그 날 이후, 나는 볼 수 없었던 오소마츠의 미소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내게는 보여주지 않으면서 어째서 쵸로마츠에게 그렇게 환한 미소를..?
“저번에 봤던 영화 정말 재미있었어요.”
“재미있게 봤다니 다행이네요. 나중에 또 생기면 연락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쵸로마츠씨.”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네. 안녕히 가세요.”
너무나 부드럽게, 편안하게 쵸로마츠와 대화하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혼란이 가중되었다.
어떻게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서로를 알고 있는지, 그리고 함께 만난 적이 있는 건지 끝없이 의문이 떠올라 맴돌았다.
내 앞에선 잔뜩 경계하고 결코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한치의 틈도 내주지 않으면서, 쵸로마츠에겐 그렇게나 즐거운듯한 얼굴로 대화하는 건가.
손까지 흔들어가며 쵸로마츠를 배웅한 오소마츠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힘을 주어 쥔 주먹 때문에 손이 아렸다.
소파에 몸을 묻고 오소마츠의 시선을 피해 갑자기 찾아온 이유를 묻자 오소마츠가 다시 허리를 숙이며 간절히 요청했다.
“그, 이번에 저희 출판사에서 내는 문학 잡지에 실리기로 예정되어 있던 단편이 펑크가 나서.. 실례가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 잡지에 실릴 단편 하나를 써주실 수 있으신가요…”
말끝을 흐리며 눈썹을 내리고 나를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오소마츠가 나를 찾는 이유는 ‘일’ 때문이다.
“쵸로마츠와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건가?”
스스로 놀랄 정도로 낮은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본 오소마츠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 얼마 전에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쳐서…”
항상 나를 어려워하며 나와는 거리를 두고 있으면서, 쵸로마츠와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를 풍기던 것이 다시 떠올라 마른 침을 삼켰다.
나는 내 마음을 받아들여지기는커녕 이제는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할 수 없는데, 거리킴 없이 오소마츠에게 다가간 쵸로마츠에게 오소마츠를 뺏길 거라는 불안이 온 몸을 지배했다.
“쵸로마츠가, 좋은 건가..?”
“…예?”
내 물음에 얼굴을 찌푸리고 되물어오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뭔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움직여 오소마츠의 팔을 붙잡았다.
“아팟!!” 하고 오소마츠의 신음이 들렸지만, 그 신음은 내 귀에 도달하지 못한 채, 공중으로 흩어졌다.
작은 머리를 안고 그대로 맛있어 보이는 붉은 입술에 입맞추었다.
놀라 크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얼굴을 무시하고 오소마츠의 머리를 더 강하게 끌어당겨 더 깊게 키스했다.
말랑말랑한 입술의 감촉에 욕망이라는 이름의 야수를 묶고 있던 쇠사슬이 풀렸다.
당황한 오소마츠가 입을 연 순간에 맞추어 혀를 집어 넣어 오소마츠의 입 안을 탐했다.
질척이는 물소리와 함께 뜨거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입술에서 느껴지는 오소마츠츠의 체온에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욱…!”
일순 명치에 느껴지는 강한 충격에 정신 없이 요구하던 입술이 떨어졌다.
배를 감싸고 절로 숙여진 상체에 고개를 들어 오소마츠를 바라보자, 소매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나를 향해 외치는 오소마츠의 얼굴은 너무나 괴로워 보였다.
“당신, 진짜 최-악이야!!!!”
단말마의 비명과 같은 절규에 오소마츠에게 손을 뻗었지만, 내 손은 무참히 오소마츠를 놓치고 허공에 멈추고 말았다.
바로 등을 돌려 집을 나서는 오소마츠의 뒷모습에, 사무치도록 가슴을 아려오는 외로움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5.
제대로 호흡할 수 없어 발을 멈추고 숨을 가다듬었다.
몰려드는 괴로운 기억에 눈 앞이 뿌옇게 흐렸다.
뚝뚝 흘러 넘치는 눈물은 그대로 빗방울처럼 땅을 적시며 떨어졌다.
내 의지 따위 고려하지 않고 뻗어오는 손, 커다란 손이 온 몸을 훑어 내려가는 감각에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이미 오래 전 기억인데도 바로 지금 눈 앞에 닥친 것처럼 생생한 감각에 다시 호흡이 거칠어졌다.
싫어, 떠올리고 싶지 않아.
그 고통도, 죄악감도, 절망도 떠올리고 싶지 않다.
무서워… 생각하지 마. 안 돼…
어떻게 집으로 돌아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치마츠와 토도마츠가 나를 부르며 울상이 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형아 안 죽어.
실없는 농담을 섞어 다녀왔다는 인사를 하자 그제야 안심한 얼굴을 한 이치마츠와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린 토도마츠가 동시에 안겨왔다.
이젠 제법 나와 비슷한 덩치까지 성장한 동생들을 가득 품에 안고 눈물 젖은 숨을 내쉬었다.
그 날로 이시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역시 카라마츠의 담당은 할 수 없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3일 정도의 휴가를 받아냈다. 받아냈다기보다는 선언했다는 것에 가깝지만, 지금은 카라마츠의 얼굴도, 나를 카라마츠에게 보낸 이시이씨의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았다.
휴가 첫날은 전날의 내 상태를 걱정한 동생들이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항상 친구들이니, 여자애들이니 놀러 나가 늦게 들어오던 토도마츠도 일찍 들어와 내 곁에 붙어 학교가 어떻고, 친구가 어떻고, 이것저것 늘어놓았다.
내가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학교에서 기죽지 않고 잘 어울리는 것이 대견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잔뜩 칭찬해 주었더니 기쁘게 웃는 토도마츠의 얼굴에 아직 어린 시절의 얼굴이 남아 있어 웃었다.
휴가 둘째 날, 어제 그렇게 붙어 있었던 것이 거짓말같이 토도마츠는 내가 괜찮다고 판단했는지 바로 친구들과 논다며 연락을 해왔다.
이 드라이몬스터 자식. 형아 아직 외롭다고~?
툴툴거리며 거실에 늘어져 있으니, 귀가부인 이치마츠가 돌아왔다.
손을 흔들며 반기자 슬며시 다가온 이치마츠가 내 옆에 앉았다.
“형, 괜찮아…?”
쓸데없는 수식어도 붙이지 않고 조심스레 물어오는 동생의 걱정에 다시 시야가 흐려졌다.
너희는 내가 지난 과거에 저질렀던 일들을 알게 되어도 나를 용서해 줄까..?
어느새 듬직해진 동생의 어깨에 기대어 조금 울어버렸다.
이치마츠는 말없이 들썩이는 내 어깨를 토닥였다.
동생의 성장이 한층 더 확실하게 다가와 울다 웃어버렸다.
“전골~ 전골~ 오늘은 전~골~”
출처가 불분명한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가자 옆에서 나와 같이 양손 가득 장바구니를 든 이치마츠가 다가왔다.
“오소마츠 형.”
“응~?”
“어제 보니까 전화 엄청 울리던데… 괜찮아?”
어젯밤 확인한 핸트폰의 착신이력을 떠올리며 “괜찮아~” 하고 대답했다.
이시이씨에게서는 그 이후 단 한번의 연락이 왔을 뿐이다.
이치마츠가 걱정하는 전화는 전부 카라마츠나 쵸로마츠에게 온 것이었다.
물론 그 전화들은 전부 무시했다.
아예 핸드폰을 꺼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혹시나 동생들에게 급한 연락이 올 수도 있으니 실행되지는 않았다.
멋대로 담당을 그만두고 3일 쉬었으니 이번에야말로 짤릴지도 모른다.
그거 하나가 유일한 걱정이었다.
내 옆에서 수상하단 눈빛으로 나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동생의 시선을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일단 내일 출근하고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집을 향해 걷던 발걸음이 무심코 멈추고 말았다.
“…왜…”
“형? 저 사람 누구?”
“읏! 오, 오소마츠!!”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우리 아파트 앞에서 서성거리다 나를 발견하고 뛰어왔다.
왜 온거야. 아니, 애초에 우리 집 주소는 어떻게 알고?
혼란과 함께 막연한 두려움에 발이 묶였다.
도망쳐야 하는데, 숨이 차오르며 발이 납이라도 달린 것 마냥 무겁게 바닥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망설이는 사이, 그는 내 앞으로 다가와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제발,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내 말을 들어줘…”
하? 웃기지마. 그렇게 내뱉고 싶었지만, 입은 꿀 먹은 벙어리마냥 딱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 이 남자에게서 멀어지고 싶다.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옆에서 상황을 살피고 있는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이치마츠는 가만히 나를 쳐다보더니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츄~!! 역시 너밖에 없다!!!
속으로 감격하고 있는데, 이치마츠는 내 손에 들린 장바구니를 자신의 손으로 옮겨 들고는 내 어깨를 툭 쳤다.
“잘 말하고 와. 먼저 돌아가 있을게.”
“…응??”
잠, 잠깐… 이치마츠으으으으으으?!!?!?!?
내 소리 없는 절규를 듣긴 한 건지 이치마츠는 척척 앞서 걸어가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형아, 분명히 도와달라고 했지?! 왜 무시?! 경악한 얼굴로 이치마츠의 등을 보고 있다가 겨우 눈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존재를 깨달았다.
“오소마츠, 제발 부탁이다… 내 이야기를 들어줘…”
괴로워 보이는 얼굴로 필사적으로 내게 부탁하는 카라마츠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다.
언제든 내 앞에서 거만하고 고자세를 취했던 주제에 왜 이렇게 비참할 정도로 저자세로 부탁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내게 뭘 바라는 거야, 당신…
“부탁이다. 오소마츠…”
“..알겠어.”
“그럼..!”
“저기, 카페에 가자.”
“아아, 고마워. 정말로, 고마워. 오소마츠…”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카라마츠를 끌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적당한 창가 자리에 앉아 맞은편에 앉은 카라마츠의 얼굴을 살폈다.
며칠 잠을 자지 앉았는지, 다크써클이 짙게 가라앉은 눈가가 조금 애처로워 보였다.
그리고 내게 그런 일을 하고도 뻔뻔하게 얼굴을 내비치는 것이 괘씸했다.
“설마 이렇게 공개된 자리에서 또 이상한 짓을 할 생각은 아니죠?”
불과 3일도 되지 않은 그 날을 떠올리며 비죽이 웃는 얼굴로 비꼬았다.
원망이 담긴 목소리에 카라마츠는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그건 정말로 미안하다.” 하고 사과했다.
사과한다고 쉽게 잊혀질 일은 아니지만, 이제와 뭔가를 한다고 해서 내가 카라마츠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가장 괴로운 기억을 불러 일으킨 그 일을, 그런 일을 한 사람을 내가 용서할 리가 없다.
몇 번이고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모습이 아주 조~금은 불쌍해 보였으니까, 이제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할 말은 다 하신 것 같으니 가보겠습니다.”
“잠깐..!!”
일어서려는 내 팔을 붙잡은 카라마츠가 외쳤다.
잡힌 팔이 아플 정도로 강하게 쥐고 나를 바라보는 카라마츠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무슨 얼굴을 하는 거야, 너-. 팔이 아팠기에 순순히 다시 의자에 앉았다.
팔을 흔들자 내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놓은 카라마츠가 천천히 말했다.
“나는, 사과를 위해 온 것이 아니야…”
“..하?”
뭐라는 거야, 이 또라이.
그런 짓을 해놓고 사과를 하러 온 게 아냐?!
장난하나?!
다시 일어서려는 내 몸짓에 카라마츠가 다시 얼굴을 구기고 나를 붙잡았다.
“부탁이야. 제발, 내 말을 들어줘…” 하고 애원하는 통에 카페 안의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값싸고 맛있는 커피를 팔아 자주 찾았던 카페였는데, 이제 다시는 못 오겠네…
하아~ 하고 한숨을 내뱉고 한번 들어 줄 테니 말해보라고 말하자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6.
이제는 희미해진 기억 속의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사업을 하는 아버지 덕분에 제법 풍족하게 살아왔다.
세 쌍둥이인 우리와 상냥한 어머니와 자상한 아버지.
마치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그런 화목한 가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우리 가정을 신이 질투한 것인지 우리의 행복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느 여름 날, 장마를 맞이해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초등학교를 마친 우리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그렇게 비가 오는 날은 우산을 써도 온 몸이 젖을 것은 분명했다.
단순히 비에 젖는 것이 싫다는 그런 하찮은 이유로,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일하러 나갔지만, 어머니는 항상 집에 남아 계셨다.
내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지극히 상냥한 목소리로 학교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학교 쪽으로 차를 몰았다.
그것이 어머니의 마지막이었다. 쏟아지는 비, 비에 젖은 아스팔트 도로에 미끄러진 한 트럭이 그대로 어머니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덮쳤고, 어머니는 차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차와 함께 불에 타올랐다.
겨우 수습한 어머니의 유해는 새까만 재가 되어 있었다.
관에 놓인 어머니와 그 앞에서 울부짖는 아버지와 동생들을 보며 자신을 저주했다.
겨우 그딴 하찮은 이유로 어머니를 불러내어 죽음에 이르게 한 내가 용서할 수 없었다.
“네 놈 따위를 마중 나가서…!!!!!”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했던 아버지는 나와 같이 나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후, 나를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매일 폭언과 폭력이 내게 행해졌다.
나는 그것이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몬 나에게 내려지는 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안심했다.
나 같은 버러지에게도 제대로 벌이 내려지는 것에 안심했다.
만약 아버지의 폭력이 없었다면, 나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괴로워하다가 그대로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장남으로서 아버지의 모든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나는 집에서 키우는 개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상관없었다.
나는 당연히 그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존재였으니까.
다만, 나를 향했던 아버지의 기대는 그대로 차남 쵸로마츠에게 이어져 나보다 더한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쵸로마츠가 고생을 한 것은 미안했다.
쵸로마츠에게 무거운 부담을 씌우고, 사랑스런 동생들과 아버지에게서 어머니를 빼앗은 나는 이 세상에 살아있어서는 안 되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녀석이었다.
무가치한 나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바래서는 안되었고, 그것을 원해서도 안되었다.
나는 그 어떤 것도 가질 자격이 없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원해도 원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왔다.
나는 그렇게 살아야 했다.
그것이 스스로도 납득한 삶의 방식이었다.
―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너, 만큼은.
마츠노 오소마츠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포기하려고 했다.
몇 번이고 내가 가져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내 손에 놓이게 된다면 너를 빛나게 만드는 그 많은 장점들이 빛을 바래고 죽어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너를 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자신을 통제하려고 했다. 몇 번이고…
그런데 그게 되지 않았다.
미치도록 너를 원했다. 네가 내 곁에 있어주기를 바랬다.
미안해. 너를 포기하지 못해서…
이런 하찮은 존재인 내가 너를 원해서 미안해.
제발, 부탁이다. 오소마츠.
내게서 멀어지지 말아줘.
나를 떠나지 말아줘.
동정이라도 좋다. 제발 내 곁에 있어줘…
7.
충격적인 말들을 고백하며 흐느끼는 카라마츠를 가만히 바라보며 이시이씨의 말을 떠올렸다.
“왠지 너랑 그 선생님은 닮았어.”
우와- 무섭다. 여자의, 아니 이시이씨의 ‘감’.
이시이씨의 말대로 나랑 카라마츠는 닮았다. 사무치도록 닮았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 가슴에 남은 공허에 고통스러워하고, 미치도록 ‘사랑’을 갈망한다는 점이, 슬프도록 닮았다.
내가 카라마츠를 완벽하게 내치지 못했던 이유도, 그와 같았다. ‘나’를 원해주는 것이 기뻤다.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나를, 마츠노 오소마츠를 바란다는 것이 눈물 나도록 기뻤다.
더 원해주길 바랬다.
더 사랑해주길 바랬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에 괴로워하고 아파했다. 자책했다.
이 세상에 나를 사랑해줄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나서야 눈 앞에서 흐느끼는 카라마츠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보였다.
없을 거라 포기하고 있었던 사람을 찾아냈다.
나를 사랑해줄 사람은, 나를 이해해줄 사람은…이 남자 뿐이다.
부드럽게 이완되는 눈매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주먹을 쥐고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카라마츠의 손을 잡았다.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카라마츠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미소를 담아 웃었다.
결국 눈가에 맺힌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리고 말았다.
* 일단 중편이지만 본편이 이야기는 이걸로 완결입니다. 하편은 번외격인 이야기 입니다.
* '하'편은 내용상 부득이하게 비밀글로 올려야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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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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