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편, 완결편입니다..


*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그저 타이밍이 나빴다.

어머니의 죽음은, 운이 나빴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어머니의 죽음은 우리 세 쌍둥이 모두에게 책임이 있었다. 


폭우가 쏟아지던 그 날, 쥬시마츠와 내가 먼저 옷이 젖는 것은 기분이 나쁘다고 칭얼거렸다. 

막내인 쥬시마츠가 항상 부리던 응석을 확장해 어머니에게 마중 나와 달라고 하자는 말을 꺼냈다. 

카라마츠는 자신이 장남인 것을 의식해서인지, 어머니가 불편할 테니 좀 젖어도 걸어가자고 했지만, 나와 쥬시마츠는 카라마츠의 말을 듣지 않았다. 

카라마츠의 팔을 잡고 조르기 시작한 쥬시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마지못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냥한 어머니는 사양하지 않고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을 끝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어머니의 죽음에,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한 아버지는 망가져버리고 말았다. 

사람이란 너무나 간사해서 책임을 질 대상이 없으면, 억지를 부려 원망할 상대를 만들고 그를 질책한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단순한 피해자라고 자위를 하며 평안을 얻는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에게 자상했던 아버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아버지는 지독하다고 할 정도로 카라마츠를 비난했다. 

욕설로 시작된 아버지의 증오는 곧 폭력으로 이어졌다. 

묵묵히 아버지의 모든 증오를 받아들이는 카라마츠와 자기 자식이 아니라는 듯 카라마츠를 원망하고 증오하는 아버지를 말리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어렸다. 

누가 봐도 부당한 카라마츠의 대우는 우리의 침묵 속에 나아질 기미도 없이 서서히 더 악화되어 갔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카라마츠는 몇 년이고 이어지는 아버지의 냉대와 원망 속에서 변해갔다. 

항상 다정하고 ‘형’이랍시고 우리를 살펴주고, 자신만만했던 카라마츠는 어머니를 자신이 죽였다는 죄책감과 자괴감에 빠져 스스로의 목을 졸랐다. 

당당했던 태도는 지극히 소극적으로 변했고, 마치 있는 듯 없는 듯 모든 행동을 조심하며 살아갔다. 


카라마츠도, 우리도 어머니의 죽음 앞에 떳떳할 수 없었는데… 카라마츠는 홀로 모든 것을 짊어지고 자기 자신을 미워했다. 





“그럼 말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서류를 모아 인사를 하려 고개를 숙인 순간, 아버지가 부드럽게 나를 불렀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단 한번도 카라마츠를 그렇게 다정하게 부른 적이 없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너무나 간사하게 들려 헛웃음이 나왔다.


“이번에 거래처 야마모토씨의 따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신다고 하시는 구나. 한번 만나보면 어떠냐? 네게 득이 될 게다.”

부드러운 아버지의 말 속엔 거절해선 안 된다는 압력이 들어가 있었다. 

야마모토씨라면 이번에 거래하게 된 대기업의 이사였다. 

중견기업이라곤 하나 중소기업인 우리의 처지상 거절을 한다면 불이익이 따를 것은 자명했다. 

당연히 거절하지 않을 거라는 신뢰하는 얼굴로 지긋이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에 절로 나오려는 비웃음을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추후 만날 날짜와 시간을 정해 알려주겠다는 아버지에게 인사를 한 후, 사장실을 나왔다. 


답답하게 목을 조이고 있는 넥타이를 풀고 거칠게 서류를 내 책상에 던졌다. 

여전히 아버지는 변하지 않았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어리석은 아버지를 향해 비소를 머금었다. 

모든 것이 아버지의 뜻대로였다. 

맞선도, 결혼도, 이 회사도. 절대 내가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고 계신 아버지는 아마 꿈도 못 꿀 것이다. 


내가 같은 남성을 좋아하는 ‘게이’라는 것을. 


강하게 담배를 피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지만, 이 망할 회사에는 흡연실이 따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혀를 차며 주머니에서 꺼낸 담뱃갑을 구기고 손목에 찬 시계를 보았다. 

오후 3시 30분. 본래 이 시간에 자리를 비우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지만, 잠깐의 일탈은 말로 잘 구슬리면 허락 받을 수 있을 터였다. 

비서에게 잠시 1시간 정도 자리를 비우겠다 말을 하고, 회사를 나왔다. 

가족 중 내 비밀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나의 ‘형’, 카라마츠의 집은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연락도 없이 찾아온 나를 카라마츠는 기쁘게 반겼다. 

아버지에 대한 화제는 최대한 피해가며, 회사 일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짙은 눈썹을 구부리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카라마츠는 누가 뭐래도 내 ‘형’이었다. 

시간이 너무 늦어지면 안되기에 적당히 이야기를 마치고 몸을 일으켰다. 

떠나려는 순간, 쥬시마츠의 안부를 물어오는 카라마츠에게 간단히 대답했다. 

고등학교에서 만나 사귀게 된 여자아이와 함께 가정을 이룬 쥬시마츠는 회사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내와 함께 인근의 농가에 내려간 쥬시마츠는 직접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우리 중 가장 때가 묻지 않고 순수하게 살아가는 녀석일 것이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리하지 말라는 카라마츠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여전히 텅 빈 눈동자에 가슴이 아팠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된 카라마츠는 항상 어딘가 비어 있는 것 같았다.

 공허한 눈빛에 여전히 카라마츠는 자신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쓰게 웃었다. 

적당히 인사를 건넨 후, 현관으로 나왔다. 카라마츠는 언제나와 같이 굳이 배웅하지 않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타닥타닥하고 키보드가 눌리는 소리가 났다.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자, 학생처럼 보이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오소마츠?”

카라마츠의 놀란 음성과 함께, 둔탁한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 카라마츠를 바라보자, 생기가 도는 눈빛을 한 카라마츠가 현관으로 다가왔다. 

내 앞에 서 있던 남자는 카라마츠를 보며 곤란한 듯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시선을 돌렸다.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는 카라마츠의 눈빛이 부드럽게 녹았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공허하지 않은 카라마츠의 눈빛을 본 것 같았다. 

가족 외의 타인에겐 관심도 주지 않았던 녀석이 너무나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눈 앞의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문득 고개를 든 의문에 좀 더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하게 남자에게 인사하자, 남자도 자신을 ‘오소마츠’라 하며 인사했다.

일단은 회사로 돌아가는 것이 급했기에 카라마츠에게 다시 인사한 후, 카라마츠의 맨션을 나왔다. 

어쩌면, 카라마츠를 구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누구에게도 죄가 없는 어머니의 죽음, 그 책임을 홀로 짊어지고 있는 카라마츠를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회사를 통해 교류를 하고 있었던 사설탐정에게 오소마츠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다. 

현재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고, 가족관계는 어떤지, 자주 찾는 가게는 없는지, 휴일엔 주로 어떻게 지내는지. 

탐정이 조사해온 보고서를 읽으며, 개인의 정보가 이렇게 쉽게 노출 되어도 되는 것인지 걱정이 들었다. 

오소마츠의 취향에 대한 보고서를 다 읽고 인터넷을 통해 오소마츠가 좋아할 법한 영화 예매권을 손에 넣었다. 



“아, 저번의! 그, 오소마츠씨?”

“아, 저, 안녕하세요… 그..”

“쵸로마츠입니다.”

우연을 가장해 오소마츠가 자주 찾는 가게에서 마주쳤다. 

뻘뻘대며 인사를 하는 오소마츠는 빨리 이 자리를 떠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나는 눈치 없는 지인을 연기하며 가방에서 예매권을 꺼냈다.


“마침 잘 되었네요. 실은 제가 영화 예매권을 얻었는데, 저는 갈 시간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에…예?!”

“이거 괜찮으시면 받아주세요. 어차피 저는 못하고 버리자니 돈이 아까워서…”

“아, 저, 저기…”

막무가내로 사양하는 오소마츠의 손을 잡고 예매권을 쥐어 주었다. 

그리고 웃는 얼굴로 재빨리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아무래도 오소마츠는 밀어붙이는 상대에는 약한 것 같았다. 

아님 아직 나와 친한 상대가 아니라서 딱 잘라 거절하는 것도 어색할 거라 생각했을지도. 



그 후로, 한 번 더 우연을 가장해 만나 오소마츠의 연락처를 받았다. 

내가 준 영화는 동생들에게 양보한 것 같았다. 

동생들이 엄청 재미있게 봤다며 고맙다고 인사하는 웃는 얼굴이 묘하게 앳되어서 굉장히 귀여웠다. 

그 후로, 자주 연락을 하며 우연히 예매권이 손에 들어왔다며 건네주기를 반복했다. 

완전히 내게 경계를 풀게 된 오소마츠는 아예 나와 만나 맛있다고 소문난 맛집 순회를 하지 않겠냐고 제안까지 해왔다. 

혀가 아플 정도로 단 초코 파르페를 입에 낳고 행복하다는 얼굴로 웃는 오소마츠를 보며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오소마츠와 만나 이야기를 하고 그 얼굴을 보며 왜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순수하고, 바보같고, 어린 일면이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자극했다. 

이대로 오소마츠를 내 것으로 하고 싶을 정도로 오소마츠는 내가 꿈꿔왔던 이상형에 부합했다.

 




앞으로 몇 번 더 만난 후, 오소마츠와의 약속에 카라마츠를 데려올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오소마츠와 대화할 때 카라마츠의 화제를 꺼내면 바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분명 오소마츠와 카라마츠 사이에 트러블이 생겼던 것이 틀림 없었다. 

어떻게든 그 둘 사이를 좋게 만들어 주고 싶어서 계획을 세우고 있던 차에 카라마츠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연락하는 일은 많아도 카라마츠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드물었기에, 전화를 받자 저 너머 카라마츠의 흐느낌이 들렸다.


“…쵸, 쵸로마츠….흑, 나, 나는…”

“카라마츠?! 너 지금 울어?!”

내 물음에 카라마츠의 흐느낌이 더 커지더니 곧 전화가 끊겼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나도록 눈물을 참고 있던 카라마츠가 떠올랐다. 

참고 참고 참다가 아버지의 비난 어린 한마디에 결국 울음을 터뜨린 카라마츠는 그 다음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과거의 기억에 숨을 몰아 쉬며 거칠게 차를 몰아 카라마츠의 맨션으로 향했다. 

이미 알고 있는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급히 문을 열자 거실 한복판에 카라마츠가 몸을 웅크리고 울고 있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며 카라마츠의 등을 두드렸다. 

마치 세상이 끝난 것처럼, 흐느끼던 카라마츠는 그 후 1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얼굴을 들었다. 

말하지 않으려는 카라마츠를 달래고 어르고 나서야 겨우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오소마츠와의 관계에서도 자신은 자격이 없다느니 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어떻게든 카라마츠를 달래고 괜한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한 뒤, 오소마츠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오소마츠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직도 자신을 질책하고 있는 카라마츠에게 잔잔히 말했다.


“카라마츠, 그렇게 원한다면 그에 응당 하는 노력을 해. 모두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해 살아가고 있어.”

내 말에 카라마츠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마음의 정리가 필요하다는 카라마츠를 내버려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설마 또 이상한 짓을 하진 않겠지 하는 불안과 그래도 카라마츠를 믿어야 한다는 이성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한지 12시간. 

한밤중, 카라마츠에게 연락이 왔다. 

오소마츠 회사의 편집장에게 연락해보겠다는 카라마츠를 응원했다. 

이제야 겨우, 카라마츠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제 욕망을 따라 걷게 된 것이다. 

간절히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와 잘 되기를 빌며 나도 변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가 무서워 카라마츠가 받는 핍박을 무시하는 어린애가 아니었다. 





“쵸로마츠, 저번에 말했던 야마모토씨의 따님 말인데…”

“아버지, 죄송하지만, 저는 ‘게이’라서 그 따님과는 결혼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맞선은 제가 직접 야마모토씨께 연락해 취소하겠습니다.”

“…무, 뭐?”



황당하단 얼굴로 나를 응시하는 아버지에게 미소로 인사하고 사장실을 나왔다.








2.


중학교에 입학해, 짙은 군청색의 교복을 입게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극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공장장으로 근무하던 공장에 불이 났고,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에도 제대로 안전관리를 하지 않은 회사 덕분에 공장에 갇힌 사람들은 모두 불에 전소되었다. 

아버지에게 저녁 도시락을 가져다 주셨던 어머니도 아버지와 함께 거대한 화염에 먹히고 말았다. 

공장 화재의 모든 책임은 안전 관리를 하지 않은 회사가 아닌 공장장이었던 아버지에게 돌아갔다. 

공장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들과 친했던 자랑스러운 아버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은 살인자라는 오명을 쓰고 하늘로 떠났다. 

검은 교복에서 검은 상복으로 갈아입은 나는 양 팔에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어린 동생들을 팔에 끼고 조문객들을 받았다. 

공장 화재로 얻은 빚을 떠안은 우리를 받아줄 곳은 없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시설출신으로 우리는 마땅한 친척도 없었다. 

이대로라면 시설에 맡겨져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는 복지 직원의 말에 두려웠다. 

부모님이 남겨주신 것은 나를 믿고 의지하는 동생들이 유일했다. 

부모님 앞으로 나온 사망보험금을 챙겨 정들었던 집을 떠났다. 

집주인으로부터 받은 보증금과 사망보험금으로 간신히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 방을 얻었다. 

동생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던 나는 필사적으로 일을 해 돈을 벌었다. 

중학생을 받아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간신히 마음씨 좋은 한 분의 호의로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학교를 다녀와서 밤 늦게까지 일을 해도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너무나 부족했다. 

게다가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남겨진 동생들이 걱정되기도 했다. 

어느 날은 배가 너무 고파 냉장고에 남은 음식을 데워 먹으려던 동생들이 화재를 낼 뻔한 적도 있었다. 

큰 일이 날 뻔했다며 호통치는 집주인의 앞에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들을 남겨두고 일을 해 봤자, 벌 수 있는 돈은 너무나 적었고, 우리가 필요한 돈은 너무나 많았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고민해 결국 나는 학교에 자퇴서를 냈다. 

식당 일을 오전반으로 옮기고, 오후엔 학교에서 돌아온 동생들을 돌봤다. 

동생들이 잠들고 나면 밖으로 나와 몸을 팔았다. 어린 내가 생각하기에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었다. 

소문을 들어 알게 된 공원에 홀로 서 있으면 나를 사려는 손님들이 다가왔다. 

아직 어린 나를 원하는 손님은 많았다. 




아무리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어도, 몸을 파는 것은 내 상상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내 팔과 다리를 내 의지로 자유롭게 움직이지도 못한 채, 나는 그들의 성욕을 배출하는 인형이 되었다. 

거친 손이 내 온 몸을 기어 다니는 느낌은 구토가 나올 정도로 역겨웠다. 

나를 찾는 손님 중에선 나의 괴로워하는 얼굴을 보기 위해 심한 짓을 하는 변태들도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듯 돈을 던지고 떠나는 놈들의 돈을 주섬주섬 줍는 와중에 눈물이 흘렀다.


비참하고 비참했다. 

땅에 떨어진 자존심은 사람들의 잔혹한 발에 닳고 닳아 아예 사라져버렸다. 

일이 끝난 후, 자신의 몸을 보면 허탈한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너무나 하기 싫었다. 


날이 갈수록 익숙해질 거라 자신을 달랬던 말과 달리,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모든 행위는 너무나 역겹고 고통스럽고 증오스러웠다. 

나를 찾는 손님들의 행위도 점점 더 가혹해졌다. 

어느 사디스트 자식은 내 몸에 사라지지 않는 흉터를 남기기도 했다. 

재미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빨고 있던 담배를 내 팔과 허벅지의 가장 연약한 살에 지지던 그 자식은 비명을 지르는 나를 보며 즐겁게 웃고 있었다. 

도저히 그 자식만은 용서할 수 없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팼다. 

남의 아픔은 즐거워하면서 제 아픔은 즐겁지 않은지, 내게 맞아 피범벅이 된 얼굴로 그 자식은 두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그 개자식 덕분에 나는 두 번 다시 동생들과 함께 목욕할 수 없게 되었다. 




몇 년이고 이어진 일에 결국 잔뼈가 굵은 나는 웬만한 일에는 눈도 끔쩍하지 않게 되었다. 

그제 그런 심한 일은 없겠지 안심했던 나날, 갑자기 ‘그’가 찾아왔다. 

내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정기적으로 나를 샀던 단골 손님이 내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 외에 다른 손님을 받으려 할 때, 스토커처럼 나는 쫓아와 내게 울며 외쳤다. 

자기 이외의 손님은 받지 말아달라고. 이대로 놔두면 신변이 위험할 것을 예상하고 손님을 받아왔던 장소를 바꾸었다. 

‘그’와도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됐겠지 안심했던 것도 잠시, ‘그’는 나와 동생들이 살고 있는 집 앞에까지 나타났다. 

대체 어떻게 우리 집의 주소를 알아냈는지는 모르겠다. 

동생들의 앞에서 더러운 말을 내뱉으며 나를 요구하는 그의 눈엔 광기가 어려있었다. 

집 주소까지 알아낸 그가 두려워, 인근에 친하게 지냈던 아주머니께 동생들을 맡겼다. 

혹시나 그가 동생들까지 해코지할 것이 두려웠다. 

동생들을 맡기고 난 후, 나도 한동안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매번 손님과 뒹굴었던 싸구려 호텔의 방 하나를 얻어 그곳에서 생활했다.

매일 청소가 되는 호텔 생활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기를 한 달, 겨우 따돌렸다고 생각해 안심하고 동생들을 만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가 내게 다가왔다. 

'그’의 손에 들린 커다란 식칼에 온 몸에서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도망가야 하는데, 도망가야 하는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게 다가온 그는 망설이지 않고 그 큰 칼을 내 배에 찔러 넣었다.


“다, 너 때문이야.”

내 귀에 속삭이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숨을 내쉬었지만, 기도로 차오르는 핏물에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다. 

기침과 함께 붉은 피를 뱉으며 동생들을 떠올렸다. 

이대로 죽으면, 동생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죽고 싶지 않다고 강하게 소망했다. 


내가 죽으면 동생들은…





눈을 뜨자, 환한 빛에 눈이 부셨다. 

두어 번 눈을 깜빡이자 시야가 선명해졌다. 

몸을 일으키자,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숨을 멈췄다. 

팔을 지지해 간신히 상체를 일으키자 출렁이는 침대에 동생들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내리자, 내 양 옆에 달라붙어 잠든 동생들이 보였다. 

울었는지 붉게 부어 오른 눈가가 아팠다. 

침대에 몸을 기대로 손을 뻗어 부드럽게 녀석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나 살아있구나. 다행이다… 


차오르는 눈물을 소매로 닦았다. 

안도감에 터져버린 눈물을 쉽사리 그치지 않았다. 

소매로 계속 눈물을 닦다 보니 어느새 소매는 눈물로 축축히 젖어있었다. 


“아, 일어났구나.”

드드륵- 하고 병실의 미닫이 문이 열리며 한 여성이 들어왔다.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등을 곧게 피고 당당히 병실로 들어왔다. 

처음 보는 얼굴에 “누구세요?” 하고 물었다. 낮게 가라앉아 갈라진 목소리에 기침이 나왔다.


“너를 찌르고 도망친 남자의 아내…아니, 전(前)부인이야.”

“…예?”

예상치 못한 대답에 절로 한심한 소리가 나왔다. 

여성은 쓴웃음을 지으며 병실 한 구석에 박혀있던 의자를 끌어당겨 침대 곁에 놓고 앉았다. 

요염하게 다리를 꼬고 앉은 여성이 멋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남편의 바람을 의심했어. 매일 늦게 들어오니까. 그래서 흥신소에 남편의 행적을 조사해달라고 의회를 했는데, 뜻밖의 일이 걸리더라고? 설마 남편이 남자아이를 사고 있을 줄은 몰랐어.”

“…”

순간, 숨을 삼켰다. 

내 옆에서 자고 있는 동생들이 방금 전의 그 말을 듣지 못한 것에 진심으로 안도하며 여성을 바라보았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여성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변명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래서 이혼을 요구했어. 딸의 양육권은 당연히 내가 가지는 걸로 해서. 그랬더니 발광을 하며 거절하더라고. 그래서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왔는데, 경찰한테서 연락이 왔어. 남편이 사람을 찌르고 도주했다고.”

덤덤히 마치 남의 일인 양 말하는 여성의 모습에서 일말의 두려움을 느꼈다. 

지금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너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조사했어.”

“네..?”

여성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도 딸이 있는 엄마야. 너를 고소하거나 신고할 생각은 없어. 너, 우리 회사에서 일할 생각 없니?”

“…네?”

“돈은 충분히 줄게. 월 20만엔(약 200만원)이면 충분히 살아가지? 모아놓은 돈도 있을 거고. 아, 병원비는 걱정 마. 내가 냈으니까.”

대체 이 여자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의문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나는 자신의 남편과 놀아나고 결국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한 놈인데, 왜 이 여자는 그런 내게 이런 호의를 보이는 것일까. 

지금 당장 내 머리채를 붙잡고 모든 것을 물어내라고 화내도 뭐라 항의할 수 없는데도.


“…머리채 안 잡아요?”

“…? 내가 왜?”

“…”

“그래서? 어쩔래? 우리 회사 들어올 거야?”

“…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여성은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손과 여자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자 여성이 말했다.


“악수. 앞으로 잘 부탁해. 오소마츠군. 나는 이시이 하즈키야.”

“…네.”

이시이씨가 내민 손을 잡자, 이시이씨는 기쁘게 웃으며 세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곤 푹 쉬라는 말을 남기고 병실을 빠져나갔다. 

한바탕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 같은 허탈함이 몰아쳤다. 

이제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그제야 다가오는 현실감에 안도한 나는 배가 아픈 것도 잊고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3.


“아니, 무슨 회의를 밤새가면서 해!!”

하룻밤 묵을 채비를 서두르는 오소마츠 형의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토도마츠가 불평했다. 

짐을 다 챙겼는지 허리를 피고 고개를 든 오소마츠 형이 어색하게 웃으며 토도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해-“ 하고 사과하는 오소마츠 형의 얼굴에 토도마츠가 볼을 부풀리고 입을 다물었다. 

내일 오소마츠 형과 함께 벼르고 있던 카페 순방을 하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된 것이 어지간히도 불만인 모양이었다. 

짐이 든 가방을 어깨에 멘 오소마츠 형에게 무심하게 “소라쇼우 선생님 집에서 묵고 오는 거야?” 하고 물었다. 

오소마츠 형이 코 밑을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희미하게 달아오른 뺨이 눈에 띄었다. 

아직도 웅얼거리며 칭얼대는 토도마츠의 머리를 꾹 누르고 오소마츠 형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넸다. 

다녀오겠다며 내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은 오소마츠 형이 집을 나섰다.




거실에 주저 앉아 아직도 칭얼대는 토도마츠에게 저녁은 원하는 것을 해주겠다고 하자 바로 얼굴을 풀었다. 

전골을 해먹자며 방방 뛰는 토도마츠에게 주의를 준 후, 주방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 일로 바쁜 오소마츠 형을 대신해 요리를 도맡아 했던 나를 배려해준 오소마츠 형 덕분에 주방은 완전히 내 세상이었다. 

전골에 들어갈 재료들을 다듬으며, 얼마 전 소라쇼우가 찾아왔던 때를 떠올렸다. 


오소마츠 형을 부르며 다가온 소라쇼우를 바라보는 오소마츠 형의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항상 우리를 향해 다정하게 지어왔던 ‘형’의 얼굴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얼굴. 우리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않았던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고 눈 앞에서 오소마츠 형을 부르는 남자와 오소마츠 형이 뭔가가 있음을 짐작했다. 

요 3일간 갑자기 일을 쉬고 무기력하게 집에 틀어박혀 있었던 것도 전부 눈 앞의 남자가 원인일 터였다. 

그 길로 오소마츠 형이 들고 있는 짐을 빼 들어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어떻게 잘 마무리 되었는지, 오소마츠 형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었는지 묻지는 않았지만, 오소마츠 형의 태도로 보아 제대로 화해한 것 같았다. 


‘설마 그 남자가 ‘소라쇼우’일 줄은 몰랐지만…’

후에 소라쇼우의 인터뷰가 실린 잡지를 보고 놀라 자빠질 뻔했다. 

오소마츠 형을 찾아온 그 남자의 얼굴이 떡 하니 잡지에 실려 있었다. 

지금까지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던 작가, 소라쇼우의 얼굴!! 하고 크게 잡지에 쓰인 글귀로 보아 그 남자가 소라쇼우임은 확실했다. 

소라쇼우의 담당이 되었다고 할 때도 놀랐지만, 설마 담당 작가와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채소를 모두 다듬고, 냉장고에 남아있던 고기를 꺼내어 썰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이젠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 부모님, 

그리고 어린 우리를 지금까지 키워준 오소마츠 형. 


우리를 위해, 오소마츠 형은 과거 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을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우리에게 비밀로 해 가면서 힘든 일을 했던 오소마츠 형이기에 진심으로 행복해지기를 바랬다. 



‘뭐-, 만의 하나라도 그 남자가 오소마츠 형을 울리게 된다면…’

쾅! 하고 고기를 썰던 칼을 도마에 내리쳤다. 



‘절대로 죽인다…’








4.


침대에서 일어난 카라마츠가 이불에 쌓여져 있는 오소마츠를 안아들었다. 

몸 곳곳에 남은 붉은 흔적을 본 카라마츠가 미소를 피웠다.

오소마츠를 안아 향한 욕실에서 깨끗이 몸을 씻은 카라마츠가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 몸을 담그자, 그 뒤를 이어 오소마츠가 욕조에 들어갔다.

두 사람이 들어가도 넉넉한 커다란 욕조의 크기에 감탄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가슴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찰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물 밖으로 나온 카라마츠의 팔이 오소마츠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따뜻한 카라마츠의 체온과 나른하게 피어오르는 피로에 오소마츠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소마츠."

"응~?"

"몸은 괜찮은가?"

"응~, 괜찮아~"

착실하게 자신의 몸을 걱정해주는 카라마츠의 상냥함에 피식- 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힐끗 눈을 뜨고 자신의 팔과 다리를 바라보았다.

가장 괴로웠던 시절의 증거인 작은 화상 자국.

팔의 안쪽과 허벅지에 남은 그 자국엔 벌써 몇 번이고 카라마츠의 잇자국이 남았다.

떠올리기도 싫은 그 시절의 기억에 카라마츠는 몇 번이고 자신을 덧씌웠다.

정말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오소마츠는 홀로 중얼거리며 뻣어온 카라마츠의 손을 마주 잡았다.




“아, 쵸로씨한테 문자 왔다.”

정성스레 오소마츠의 머리를 말려주던 카라마츠가 순간 인상을 썼다. 

정사 후, 카라마츠에게 안겨 함께 욕실에 들어가 씻겨지고, 부드러운 목욕가운에 감싸인 채, 핸드폰을 확인한 오소마츠가 고개를 들어 카라마츠의 얼굴을 확인했다.


“또~ 그런 얼굴 한다~”

“…오소마츠, 몇 번이고 말하지만.. 너무 쵸로마츠와 가까이 지내지 말아줘.”

“어~? 왜?”

찌푸려진 카라마츠의 미간에 큭큭 웃으며 오소마츠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벌써 같은 대화를 한 게 몇 번이던가,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카라마츠가 중얼거렸다.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의 이상형이니까… 불안하다. 뺏길 것 같아서…”

달콤하게 못마땅하단 얼굴로 질투를 해오는 연인의 모습에 오소마츠가 흡족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켜 카라마츠를 안았다. 

체격 차가 있어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매달린 꼴이 되어버렸지만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는 오소마츠가 발꿈치를 들어 카라마츠의 입술에 살며시 입맞추었다.


“나는 카라마츠 말고 다른 사람한테 갈 생각 없어~”

홍조가 핀 얼굴로 웃는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품에 안았다. 

따뜻하고 든든한 카라마츠의 품 안에서 오소마츠가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이 품만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쵸로마츠를 향한 카라마츠의 걱정이 무색하게, 쵸로마츠와 이치마츠가 사귀게 된 것을 알게 된 오소마츠가 당연히 결사반대 하게 되는 것은 좀 더 후일의 이야기이다.





* 모처럼 생각한 이야기를 버리지 않고 쓴 것은 자랑, 이거 쓰느라 여우골 이야기에 손도 못댄건 안자랑...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우골이야기는 아마 이번주 화요일? 전에는 올릴 수 있을 거에요...ㅎㅎㅎ;;



'오소마츠상 > 카라오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라오소] 장미  (10) 2017.03.13
[카라오소] 너를 위한 LOVE SONG!  (6) 2017.03.12
[카라오소] (LINE마츠)발렌타인 데이  (16) 2017.02.14
[카라오소/파카마츠] 공범자  (13) 2017.02.12
[카라마츠] 식욕  (8) 2017.01.2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