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전에 엄청 짧은 단편 하나 더 올립니다.
* 정말 짧아요...ㅎㅎ
* 조금 많이 추상적입니다...ㅎ
* 카라오소이지만 카라오소인가 싶을 정도...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흰 공간을 본 순간, 깨달았다.
아, 이것은 꿈이다, 라고.
정말로 새하얀 공간, 빛이 어디서 들어오는지도 알 수 없는 공간은 평평하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목적도 없이 새하얀 공간을 천천히 걸어간다.
대체 나는 왜 이런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형제들에게 텅 비었다는 말을 들어도 꿈 속까지 이 지경일 이유는 안 된다.
나 스스로는 제법 생각이 많다고 평가하고 있고.
“대체 이건….”
한탄하듯 내뱉으며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보았다.
본래 푸른색이어야 할 하늘조차 새하얗다.
언젠가 토도마츠가 사람을 사방이 새하얀 방에 집어넣으면 미쳐버리고 만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이런 꿈을 꾼다는 것은 나도 미친 것인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발을 옮긴다.
걸어도 걸어도 보이는 것은 백색의 평지.
무언가가 나오는 일도 없고, 들려오는 소리조차 없다.
오직 내 숨소리와 맨발이 만들어내는 찰싹대는 소리만이 고막을 울린다.
이대로 걷기만해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발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
내 오른편에 작은 물체 하나가 보였다.
새하얀 공간에 아프도록 눈에 띄는 붉은색에 놀라며 발을 그쪽으로 옮겼다.
저 붉은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악을 경우 시체나 괴물이라고 해도 이건 꿈이다.
깨어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발을 멈추지 않고 붉은 물체를 향해 걸어갔다.
“꽃….”
투명한 유리병에 꽂힌 붉은색의 꽃 한 송이.
꽃의 특징을 보아 ‘장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째서 꽃이 여기에…?”
어쩐지 만질 염두는 나지 않아 가까이서 이리저리 꽃을 관찰해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단순한 꽃에 불과한 붉은 장미는 물기를 잔뜩 머금고 촉촉한 꽃잎을 화사하게 피우고 있었다.
적당한 길이를 남겨두고 잘린 줄기는 시원해 보이는 물이 담긴 꽃병에 들어가있었다.
꿈 속이기에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체감상 한참이 지나도 꽃은 변화하지 않았다.
갑자기 거대해져서 인간을 잡아먹는 식인 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실없는 상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 아디오스-. 레드 로즈.”
이대로 이 곳에 있는 것도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붉은 장미에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넓은 공간은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고 새하얬다.
방향조차 무의미한 공간에서 한 걸음씩 꽃에서 멀리 떨어져갔다.
어느새 저 멀리로 멀어진 붉은색은 이제 먼지만한 크기로 작아졌다.
제법 걸어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다리가 무거웠다.
“꿈 속인데도 피로는 느껴지는 것인가….”
한 번도 꿈 속이라는 것을 인지한 적 없는 내겐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무거운 다리와 뻐근한 무릎뼈를 느끼며 걸음을 멈추고 주저앉았다.
잠시 쉬었다가 걷자고 생각했을 때, 저 멀리서 탁탁탁 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색이 다가오고 있었다.
드디어 꽃이 걷게 된 것인가?!
식인꽃의 상상을 다시 불러일으키며 피로도 있고 몸을 일으켰다.
저 멀리서 보이던 붉은색이 점점 내 눈앞으로 다가올수록 내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오소마츠….”
“아, 카라마츠.”
맨발로 탁탁 소리를 내며 내 앞으로 뛰어온 오소마츠가 거친 숨을 고르며 물었다.
“혹시 이 주변에서 꽃 못 봤어?”
“…붉은 장미라면 저 쪽에서 봤다만….”
오소마츠의 질문에 꽃을 봤던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가 똑바로 걸은 것이 맞다면 꽃은 내 뒤쪽에 있을 터였다.
오소마츠는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눈을 돌리고 “고마워!” 하고 급히 인사를 던지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왜 내 꿈인데 오소마츠가 나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오소마츠가 뛰어온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여전히 새하얀 공간은 변하지 않고 오소마츠의 발소리는 점점 내게서 멀어져 갔다.
붉은 장미,
오소마츠….
우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오소마츠는 대체 왜 그 꽃을 찾으려고 한 걸까.
왜 이 새하얀 공간에 그 꽃만이 덩그러니 있었던 것일까.
수많은 의문과 함께 이유 모를 불안이 몸을 덮쳤다.
망설이지 않고 오소마츠를 향해 뛰었다.
왜 뛰는지, 무엇이 이리도 불안한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해는 하지 못해도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오소마츠를 막으라, 고.
“오소마츠!!!”
“크읏! 이거 놔!!!”
불안은 보기 좋게 적중하고, 오소마츠는 손에 든 칼로 가녀린 꽃을 무자비하게 찌르고 있었다.
바닥에 흩어진 붉은 꽃잎이 어쩐지 애처로워서, 꽃에 칼을 내리꽂는 오소마츠의 손을 붙잡았다.
“오소마츠! 그만 해!”
“카라마츠! 이거 놓으라고!!”
“안 된다!! 네 손도 다쳤잖아!!”
꽃을 찌르면서 가시에 찔렸는지, 아니면 자상을 입었는지 오소마츠의 손에선 새빨간 피가 뚝뚝 흘러나와 새하얀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바닥에 흩어지고 짓이긴 꽃에서도 붉은 피가 묻어있었다.
어떻게든 꽃을 망가뜨리려는 오소마츠의 손을 꽉 붙잡자, 내 힘을 이기지 못한 오소마츠가 쥐고 있던 칼을 떨어뜨렸다.
바닥에 꽂힌 날카로운 칼을 피해 오소마츠를 잡아당기자 오소마츠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왜, 왜 못하게 하는 거야….”
오소마츠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서러운 목소리로 눈물 흘리는 오소마츠의 낯선 모습에 말을 잃은 나는 그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 없었다.
오소마츠는 한참을, 정말로 한참을 울었고, 내가 오소마츠를 달래기도 전에 내 꿈은 끝이 났다.
눈을 뜨자 새근새근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무거운 몸을 일으키자 머리맡에서 쵸로마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망할 장남!! 당장 일어나! 지금이 몇 신데 아직도 쳐 자고 있어?!”
“우응…. 5분만….”
“일어낫!!”
매일 일어나는 쵸로마츠와 오소마츠의 공방을 멍하니 바라보는 내게 토도마츠가 다가왔다.
“카라마츠 형? 아직도 잠이 덜 깼어?”
“어? 아니, 일어났다.”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고 잠시 나를 보던 토도마츠는 이내 다시 스마트폰에 눈을 돌렸다.
느리게 돌아가는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이불에서 몸을 꺼냈다.
따뜻한 이불에서 나오자마자 부르르 떨리는 몸을 안고 잠옷을 벗어 푸른색의 점프 수트를 입었다.
포인트로 항상 하는 금목거리를 목에 걸고 나서야, 오소마츠가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벅벅- 엉덩이를 긁으며 하품을 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었다.
“얼른 씻어!” 하고 잔소리하는 쵸로마츠에게 “네-” 하고 건성으로 대답하며 내 옆을 지나가는 오소마츠가 잠시 발을 멈추고 내게 눈을 돌렸다.
“…오소마츠?”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형의 표정에 고개를 기울이고 부르자, 오소마츠가 눈을 낮게 깔고 고개를 돌렸다.
“진짜, 잔인한 놈이야. 넌….”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는 아직 잠에 잠겨있었다.
작지만 똑똑히 귀에 남은 오소마츠의 말에 사고가 멈췄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알 수 있었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하얀 공간과 붉은 장미의 모습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침묵 뿐이었다.
또, 인가….
새하얀 공간에 눈을 뜨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붉은 장미를 찾았다.
새하얀 배경에 붉은색은 눈에 확 띄었기에 붉은 장미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푸른색의 유리병에 꽂힌 장미가 아직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장미 옆에 엉덩이를 내렸다.
아직 오소마츠는 오지 않았다. 만일 오늘도 오소마츠가 이 장미를 부수려 한다면 나는 또 말릴 것인가….
스스로가 무슨 행동을 할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마치 타인의 마음속을 읽을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도 짐작이 되지 않았다.
나는 왜 이 장미 옆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왜 오소마츠를 말리자고 생각하는 것일까….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은 해답도 없이 흩어져 사라져간다.
아름답게 피어난 붉은 장미만이 내 곁은 지키고 있는 이 상황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편안함마저 느끼는 자신에게 당황하며 장미를 응시했다.
붉게 피어난 한 송이의 장미는 오늘도 물을 머금고 촉촉하게 그 빛을 뽐내고 있었다.
평범한 장미꽃인데도 아름답다고 생각해버린다.
한 송이의 장미는 굉장히 사랑스럽고, 애처롭고, 아름다웠다.
“…너는 귀엽구나….”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자각하지 못한 채, 장미에 손을 뻗었다.
촉촉하고 매끄러운 꽃잎에 손가락을 가져댄 순간, 또록- 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새하얀 공간에 파문이 일었다.
붉은 장미에서 시작된 파문은 새하얀 세상을 흔들며 장미의 색을 바꾸었다.
붉은 꽃잎이 마치 휴지에 떨어진 잉크 방울처럼 푸르게 물들어갔다.
이내 붉은 장미는 완전히 푸른 장미로 변화했다.
바다처럼 푸른빛을 띤 장미는 조금 전보다 더 영롱하게 빛나며 내게 다가왔다.
조심스럽게 손에 쥔 푸른 장미를 응시하며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푸른색의 장미는 군침이 돌 정도로 매우 맛있어 보였다.
* 추상적이고 미지근한 카라오소였습니다.
* 붉은 장미의 꽃말은 '사랑' / 푸른 장미는 '기적' 입니다.
* 단편 '붉게 피어난 아네모네'와 같이 "꽃"을 주제로 한 단편이었습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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