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 출근 전, 올려요...ㅎㅎ 다른 단편에 비하면 조금 짧습니다ㅎ


* 카라오소지만, '카라→오소'입니다.


* 공미포 4,448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오늘도 카라마츠는 장미 한 송이를 들고 돌아왔다

카라마츠 걸-라는 미지의 생명체를 기다리다 지쳐 돌아온 카라마츠의 손엔 항상 붉은 장미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장미에 대해 묻자, 카라마츠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씨익- 올라가는 입꼬리를 보자마자 질문을 한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물론 이 카라마츠를 기다리는 걸-즈에게 줄 선물이다! 내 정열적인 사랑을 조금이라도 나눠주고 싶어 매일 강 근처 꽃가게에서 사고 있다고~?”

, 그러냐.”

제 나름의 멋진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카라마츠의 말을 대충 흘리며 입을 크게 벌려 하품했다.

오늘은 기다리고 있던 신기계가 들어오는 날이었다. 모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파칭코로 달려갔지만, 돌아오는 것은 텅 빈 지갑뿐이었다

항상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일어나는 나에게 오늘의 이른 기상은 타격이 컸다

-한 정신으로 눈을 비비며, 발을 돌려 2층으로 향했다

내 건조한 반응에 기가 죽었는지, 카라마츠는 묵묵히 내 뒤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자는 건가? 형님.”

. 졸려.”

장 속에서 담요를 꺼내 소파에 드러눕는 내게 카라마츠가 물었다

뻑뻑한 눈을 감고 이미 낮게 잠긴 목소리로 대답하자 카라마츠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부스럭거리며 귀를 울리는 소음에 카라마츠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너무 졸려 눈을 뜬 기운도 없었다

카라마츠가 만들어내는 작은 소음은 서서히 저 멀리로 사라지고, 곧 내 정신은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오소마츠 형, 저녁 먹어!”

흔들리는 몸에 힘겹게 눈을 뜨자, 토도마츠가 못마땅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체 언제까지 잘 생각이야!?” 하고 황당하단 투로 외치는 토도마츠를 무시하고 몸을 일으켜 소파에서 내려왔다

기지개를 키며 하품을 하자, 나를 보며 푹- 한숨을 내쉰 건방진 막내가 얼른 내려와.” 하고 제 할말만 마치곤 방을 나섰다

뚜둑- 하고 비명을 지르는 어깨를 두세 번 크게 돌려 풀어주고 소파에서 일어나 방문으로 걸어갔다.


“…?”

문득 내린 시선에 쓰레기통이 보였다

켜켜이 쌓인 쓰레기들 사이로 붉은 장미가 처량하게 꽃잎이 뜯겨진 채, 버려져 있었다

아직 시들지도 않은 생화가 버려져 있는 꼴이 묘하게 불쌍하게 느껴졌다

저걸 어째야 하나, 하고 나답지 않은 생각을 하는 사이에 엄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밥이다, 백수들아~!”

엄마의 외침에 장미도 뒤로 하고 발을 재촉했다.

1초라도 늦으면 맛있는 반찬을 전부 굶주린 늑대 같은 녀석들에게 뺏기고 만다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자, 아니나다를까 녀석들은 그새 내 몫의 카라아게에 달라붙어 있었다

괘씸한 녀석들에게 정의의 주먹을 내리며 밥상머리에 주저앉은 나는 장미에 대한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2.

 

어서와….”

, 다녀왔다. 형님.”

뻔한 내용에 우하하 떠들기만할 뿐인 재미없는 예능에 질려 TV를 껐다. 

2층방에서 만화책이라도 가지고 내려올 생각에 복도에 나오자, 카라마츠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늘도 역시 카라마츠의 손엔 장미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

드르륵- 하고 서서히 닫히는 현관문 너머 붉게 물든 하늘이 보였다

시선을 돌려 거실에 걸린 시계를 보니 어느새 시침이 6에 가까워져 있었다

구두를 벗고 복도에 올라온 카라마츠를 본 순간, 어제 봤던 장미가 떠올랐다.


카라마츠, 그거 어쩔 거야?”

장미를 가리키며 묻자 카라마츠가 눈을 크게 뜨고 제 손에 들린 장미를 내려보았다.


이 장미 말인가?”

.”

, 오늘은 아쉽게도 이 로즈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서 말이지,”

알겠으니까, 그거 어쩔 건데.”

“…버릴 생각이다만.”

아깝잖아. 아직 싱싱한데.”

쓰게 웃으며 대답하는 카라마츠에게 말했다

내 대답이 의외였는지 카라마츠가 눈을 꿈뻑이며 가만히 나를 응시했다

어쩐지 카라마츠의 시선이 낯설게 느껴져, 카라마츠의 손에 들린 장미에 눈을 고정했다.


이 카라마츠를 찾아오는 카라마츠 걸-즈에게 하루 지난 헌 장미를 줄 수는 없지! 로즈-에겐 미안하지만 이 로즈-의 데스티니는 오늘로 끝이다!”

영문 모를 손짓으로 얼굴을 감싸고 말하는 카라마츠를 잠시 한심하단 얼굴로 바라보았다.

내가 입을 열지 않자 자연스럽게 어색한 침묵이 복도를 채웠다.


“….”

“….”

“…그럼, 오소마츠에게 주지.”

?”

얼굴을 가리던 손을 내리고 평범한 차남의 얼굴로 돌아온 카라마츠가 멋쩍게 웃으며 장미를 내밀었다

카라마츠가 내민 붉은 장미를 보며 고개를 기울이자 카라마츠가 말했다.


내겐 이제 필요 없으니까.”

“…내가 쓰레기통이냐! , 일단 받아두지.”

카라마츠의 필요 없다.’는 말에 쓰레기통에 버려졌던 어제의 장미가 다시 떠올랐다

내가 받지 않으면 또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걸까, 생각하니 어쩐지 장미가 불쌍해 보였다

작게 한숨을 쉬며 카라마츠가 내민 장미를 받아 들었다

카라마츠가 들고 있었을 때는 몰랐던, 은근한 장미 향기가 슬그머니 코를 간질였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꽃 향기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

?! , 아니…. 아무 것도.”

장미를 바라보던 눈을 올리자 멍청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던 카라마츠와 마주쳤다

복도에 선 채로 굳어진 카라마츠를 부르자, 카라마츠는 고개를 홱 돌리고 말을 더듬더니 이내 나를 지나쳐 거실로 들어갔다.


왜 저래?”

평소에도 정상은 아니지만, 오늘따라 요상한 녀석의 행동에 고개를 기울이고 눈썹을 찌푸렸다.

 

 

 

 

 

 

3.

 

처음 이 마음을 자각한 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등학교 졸업식 날에 도착한다

거금을 들여가며 우리 여섯 명 모두에게 꽃다발을 안겨준 엄마는 그날만큼은 우리가 자랑스럽단 얼굴로 인자한 미소를 피우셨다

향기로운 꽃 향기에 감싸여, 품에 안은 꽃다발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꽃다발을 안고 엄마와 함께 사진을 찍고, 웃으며 고개를 돌린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은 충격이 내 온 몸을 지배했다

나와 같은 꽃다발을 안고 수줍게 웃는 오소마츠가 시야에 들어오자, 지금까지 의식한 적 없었던 심장이 거세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고막을 울리는 심장소리와 빨라진 맥박과 함께 머릿속의 모든 사고가 정지했다


20년 가까이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사랑스러움이 심장을 간질이며 내 모든 감각을 차지하고 달콤한 행복으로 이끌었다

미치도록 두려울 정도로 오소마츠와 꽃은 잘 어울렸다

망연히 서서 오소마츠를 응시하는 나와 눈이 마주친 오소마츠가 해맑게 웃으며 나를 불렀다

카라마츠!” 하고 내 이름을 부르며 이리 오라고 손짓한 순,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오소마츠와 함께 나를 낳아준 엄마가 마치 부처처럼 보였다

감미로운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외치는 것이 내 이름이라는 사실에 황홀함을 넘어 공포까지 느껴졌다

오소마츠에게 다가가 꽃향기와 함께 오소마츠의 옆에 섰을 때, 강하게 바랐다


이 사랑스러운 사람이 내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꽃이 어울리는 오소마츠가 평생 내 곁에 있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소마츠의 사랑스러움에 눈이 먼 나는 그 때까지 나의 욕망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하아~”

다리 난간에 기대 손에 들린 장미를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에 비친 내 얼굴은 수심이 가득했다

도시 외곽의 산 너머로 숨어들어가는 해를 보며 허탈한 숨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집으로 향하는 발은 추를 달아놓은 것처럼 무거웠다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수명이 하루씩 단축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착잡한 마음은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오늘이야말로, 하고 힘차게 집을 나왔지만 결국 내일, 이라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촉촉한 꽃잎을 뽐내는 한 송이의 장미를 처연히 바라보았다.

 

좋아한다는 말은 이제 부족하다.

사랑한다는 말도 어딘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소마츠를 향한 이 감정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어로 정의할 수 없다.

일 초가 아까울 정도로, 매 순간 오소마츠를 생각하고 있다.

오소마츠가 내 곁에 있기를, 내 것이 되기를.

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감정을, 농익은 과실을 오소마츠에게 한시라도 빨리 전하고 싶지만, 겁쟁이인 나는 결국 오늘도 한 송이 장미만을 남기고 말았다.

 

 

내가 필요 없다고 말한 장미를 손에 든 오소마츠는 역시나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타오르는 것처럼 붉은 장미는 발그스름한 오소마츠의 뺨 앞에선 그 빛을 잃었고, 향긋한 꽃 내음도 오소마츠의 미소 앞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오소마츠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내 마음을 삼킨 장미는 오소마츠의 손 안에서 청아하게 여물었다.

 

오소마츠가 장미를 받고 며칠이 지나도 여전히 나는 고백도 하지 못한 채, 매일 장미만을 전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소마츠의 손에 넘겨진 장미들은 점차 쌓여, 어디서 구했는지 알 수 없는 커다란 꽃병에 꽂혔다

광택 나는 하늘색 도자기 꽃병에 꽂힌 붉은 장미는 그 붉은색이 더 도드라져 보여 너무나 아름다웠다

현관에 있는 신발장 위, 검은색 낡은 전화기 옆에 옮겨진 꽃병에 하루가 갈수록 장미가 쌓였다

이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꽃병엔 장미가 가득 찼다

화려한 붉은빛과 함께 장미향이 현관 가득 퍼져 집에 돌아오는 형제들을 반겼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들어오던 쵸로마츠조차 장미향에 미간의 주름을 풀고 입가에 미소를 피웠다


내가 고백을 두려워하는 나날만큼 꽃병의 장미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꽃병을 가득 채운 장미는 오소마츠의 관리 아래에 매일 싱싱한 상태로 제 요염함을 드러냈다

한두 송이가 시들면 오소마츠는 시든 꽃만을 뽑아내 엄마에게 전했다

엄마의 지인 중 드라이플라워 공예를 하는 분이 있어, 시든 꽃은 매번 그 분에게 전해졌다

한 송이도 시들지 않고 만발한 장미는 제 붉은빛을 과시하며 나를 도발했다

매일 외출하려 현관을 지날 때마다, 꽃병 가득 꽂힌 장미들을 나는 무시할 수 없었다

내 두려움과 망설임이 눈 앞에 있는 장미로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이 이상 장미의 수를 늘릴 수 없다고 스스로 다짐하지만, 결국 그 날 저녁엔 새로운 장미 한 송이가 꽃병에 꽂혔다.

 

 

 

그거 가지고 가지 그래?”

외출 전, 구두를 신고 멀거니 장미꽃을 바라보는 내게 오소마츠가 말했다

무슨 말이냐고 되묻자, 오소마츠가 꽃병 가득 꽂힌 장미들을 가리켰다.


아직 싱싱하니까 그냥 하나 뽑아가면 되잖아. 새로 살 필요 없이….”

오소마츠의 말대로 햇빛을 받은 장미들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도 그 빛을 잃지 않는 장미들의 모습에 오소마츠에게 이런 재주가 있었나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카라마츠 걸-즈에겐 매일 새로운 장미를 주지 않으면 안 된다.”

티 안 난다니까?”

아니, 괜찮다. 신경 써줘서 고맙다, 형님.”

“…이상한 녀석.”

오소마츠의 중얼거림을 뒤로하고 현관을 나와 강가를 향해 걸었다

소마츠의 말이 맞다. 굳이 새 장미를 구입하지 않아도 꽃병에 꽂힌 장미를 들고 가도 된다

아직 싱싱한 장미는 하루 이틀 지나도 새 장미처럼 보였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장미 하나를 뽑아가라는 오소마츠의 말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오소마츠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당연했지만, 내 심장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슬피 울며 가슴을 조였다.

 


마치, 내 마음을 되돌려주는 것 같았다.


고백은 하지 못해도, 오소마츠에게 전해준 장미에는 내 마음이 담겨 있었다

오소마츠가 장미들을 버리지 않고 소중히 꽃병에 꽂아 돌봐주는 모습을 보면, 꼭 내 마음을 감싸주는 것 같았다

세간에서 말하는 금지된 사랑, 용서받을 수 없는 이 마음을, 오소마츠가 받아들여준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런 장미를 되돌려 받는다니…. 

할 수 없다

이젠 오소마츠가 더 이상 필요 없다며 장미를 받아주지 않는 것을 상상만해도 눈시울이 뜨거워질 지경이다.


침울한 기분을 날리려 강가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거칠어지는 숨결과 함께 가라앉은 기분도 저 멀리 날아가는 것 같았다

오늘도 나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새 장미를 오소마츠에게 건넬 것이다

더는 꽃병에 꽂힌 장미가 늘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꽃집 앞에서 발을 멈췄다.





* '꽃'을 주제로 한 3개 단편의 마지막입니다ㅎ

  이런 식으로 주제를 정해서 플롯을 짠 단편이 몇개 있는데, 언제 다 쓸 수 있을지...ㅠ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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