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소마츠 허리 합작에 참여했던 글입니다.
허리 합작은 12일에 공개되었는데, 이러저러 바쁜 일이 있어 이제야 블로그에 올리네요ㅎㅎ
제 글 말고도 존잘님들의 글과 그림이 많으니 한 번 들어가보세요~
오소마츠 허리 합작 : rladlwl99.wixsite.com/osomatsu
* 공미포 14,844자.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운동장 가득 크게 울리는 팡파르와 학생들의 웃음소리, 지나가는 학생들을 불러 세우려는 외침으로 가득 찬 아카츠카 고교.
오늘은 지루하고 지루한 학교생활의 유일한 재미이자, 학창시절의 꽃인 ‘축젯날’이었다.
운동장 빼곡히 채워진 먹거리 장터와 학교 창문에 덕지덕지 붙은 가지각색의 홍보 포스터가 오늘이 축젯날임을 어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웩….”
“우와…. 눈 썩는다….”
“오소마츠 누나아?!”
“혀, 형님…. 대체 그 꼴은….”
속된 말로 일명 ‘썩은 표정’을 한 동생들이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눈앞에 서 있는 장남을 응시했다.
“시-끄럿!! 나도 좋아서 이러고 있는 거 아니라고!!!”
“쫌! 오소마츠 형!! 복도에 목소리 다 울려!”
들고 있는 팻말을 붕붕 휘두르며 새빨개진 얼굴로 외치는 오소마츠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검은 가쿠란이 아닌, 학교 지정의 푸른 세라복을.
그 옆에서 인상을 쓰고 오소마츠를 나무라는 토도마츠가 빨간 망토를 연상시키는 붉은 망토와 펑퍼짐한 원피스를 입고 있는 꼴에 형제들의 경악은 더욱 짙어졌다.
이치마츠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오소마츠가 들고 있는 팻말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2-A, 여장 카페!’ 라고 쓰인 팻말에 이치마츠가 한숨을 내쉬며 “우와, 악취미….” 하고 홀로 작게 중얼거렸다.
온갖 먹을거리와 볼거리, 놀이가 가득 찬 축제.
1년을 축젯날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육둥이는 축제를 좋아했다.
지겨운 수업도 없이 학교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축젯날은 육둥이가 함께 몰려다닐 수 있는 유일한 날이기도 했다.
육둥이의 악명에 여섯이 함께 같은 반에 배정되는 일은 굉장히 드물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지금도 오소마츠와 같은 반이 된 토도마츠를 제외하면 나머지 동생들은 각 반에 한 명씩 배정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 떨어져도 육둥이.
축젯날만큼은 각자 다른 반에 있어도 다 함께 돌아다니는 것이 암묵적인 약속이었고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오
늘도 다 같이 학교를 돌아보기로 약속하고 장남과 막내의 반에 모인 동생들은 세라복을 입은 장남을 보고 한껏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토도마츠, 예뻐!”
“에헷~, 나 귀엽지? 쥬시마츠 형.”
“토할 정도네.”
“이치마츠 형은 좀 다물어 줄래?!”
어느새 모여 꺄- 꺄- 떠들어대고 있는 동생들을 보며 쵸로마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한 바퀴 빙글- 돌아 옷 자랑을 하는 토도마츠는 영락없는 여학생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나름 육둥이 중에서 애교 있는 얼굴인 토도마츠는 여장을 해도 도저히 못 봐줄 수준은 아니었다.
옅게 화장도 했는지 평소보다 더 여성스러워 보이는 얼굴에 위화감을 느끼며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 선 오소마츠를 쳐다보았다.
“같은 얼굴인데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이야.”
“뭐야! 나도 나름 어울리잖아!! 봐!!”
쵸로마츠의 싸늘한 눈빛에 오소마츠가 발을 쿵쿵 굴리며 외치더니,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스커트를 살며시 들어올렸다.
짧은 루스 삭스를 신은 덕분에 완전히 노출된 맨다리와 허벅지가 확연히 드러났다.
“어때? 섹시하지?”
“…죽여버리기 전에 내려라. 눈 썩는다.”
“아, 왜~!”
“옷, 오소마~츠?!”
중학교 시절 오소마츠와 함께 ‘쌩양아치’라 불리며 악명을 떨쳤던 시절의 쵸로마츠가 나타나 오소마츠를 매섭게 노려봤다.
쵸로마츠의 사나운 눈길에도 기죽지 않고 항의하며 볼을 부풀리는 오소마츠에게 카라마츠의 당황스러운 외침이 닿았다.
새빨개진 얼굴로 오소마츠를 향해 팔을 뻗은 카라마츠가 자못 근엄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스커트를 들추면 안 된다!!”
“에~”
카라마츠의 외침에 오소마츠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스커트를 들고 있던 손을 내렸다.
2.
“그럼 갈까?”
터덜터덜 교실을 나온 오소마츠가 기다리고 있던 동생들에게 말했다.
오전에만 일하기로 한 오소마츠와 토도마츠의 휴식시간, 모두 함께 학교를 돌아다니기로 한 시각이 되었다.
어슬렁어슬렁 복도로 나온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가 말을 더듬었다.
“혀, 형님…? 설마…, 그대로 다닐 건가?”
“응~? 응. 갈아입기 귀찮고.”
“Oh…. 지져스….”
“네놈은 ‘수치심’이라는 게 퇴화했냐?”
평범한 남학생 교복으로 갈아입은 토도마츠와 달리 세라복 그대로 나온 오소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깊은 한숨과 함께 쏘아붙였다.
오소마츠는 ‘메롱-’ 하고 혀를 내밀곤 입을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돌아다니면서 카페 홍보하고 오라고 했단 말이야….”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흘끔- 오소마츠의 등을 확인했다.
세라복을 입은 오소마츠의 등에 여장 카페를 홍보하는 커다란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다.
오소마츠가 세라복 차림으로 돌아다녀야 하는 것에 불평하기 시작하자, 쵸로마츠가 작게 한숨 쉬며 “알겠으니까, 가자.” 고 오소마츠를 이끌었다.
이미 저-만치 앞서 걸어가고 있는 동생들의 뒤를 따라 2학년 교실이 모여있는 복도를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앞으로 20분 후에 ‘결전! 최고가 되어라’가 시작됩니다~. 참가할 학생은 학생회실 앞으로 모여주세요.」
교내에 울리는 안내 방송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뭐야? ‘최고가 되어라’는?”
“오소마츠 형 몰라? 이번에 학생회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거잖아~!”
오소마츠의 질문에 앞서 걷던 토도마츠가 휙 몸을 돌려 오소마츠에게 대답했다.
토도마츠의 말에도 오소마츠가 여전히 모르겠단 얼굴을 하자, 푹- 한숨을 내쉰 토도마츠가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학생회가 축제 활성화를 위해서 준비한 행사야. 여러 개의 미션을 해서 전부 클리어한 사람에게 상품을 준대. 상품이 꽤 빵빵하다고 그러던데?”
“돈 주는 거야?!”
“아니.”
“췟-”
엔(¥) 모양으로 변한 눈을 빛내며 묻는 오소마츠에게 토도마츠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즉각 답했다.
그럴 리 없잖아, 하고 경멸을 담은 토도마츠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소마츠가 노골적인 아쉬움을 내비치며 볼을 부풀렸다.
“토토코~, 1등 상품 가지고 싶은데~”
발랄하게 복도에 울리는 소꿉친구이자 교내 마돈나의 목소리에 육둥이가 화색이 도는 얼굴로 뒤돌았다.
생글생글 귀엽게 웃으며 육둥이의 뒤에 서 있던 토토코가 다시 말을 늘였다.
“토토코~, 그 1등 상품이 너~무나 가지고 싶은데에~. 누가 가져다주지 않으려나~?”
작고 고운 양손을 마주 잡고 가슴께에 모아 묘하게 글썽거리는 눈으로 육둥이를 지그시 바라보는 토토코의 모습에 육둥이의 종잇장 같은 이성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저마다 손을 번쩍 들고 자기가 가져다 주겠다고 수선을 떠는 육둥이를 보며 토토코가 앙큼한 미소를 피웠다.
“그럼~, 토토코! 모두를 믿고 기다리고 있을게~”
““““““우리에게 맡겨!!!””””””
말을 끝내자마자 일제히 학생회실을 향해 달려가는 육둥이의 등을 토토코가 흐뭇한 미소로 배웅했다.
3.
“에-, 왜 이렇게 된 거?”
벅벅 스커트를 두른 엉덩이를 긁으며 오소마츠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대결’의 참가자임을 알리는 리본을 손목에 두른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쏘아보며 말했다.
“오소마츠 형하고 했다간 꼴찌 할 테니까!”
“에에~~”
‘대결’은 2인 1조로 진행되었다.
등록을 마친 육둥이는 2인 1조라는 말에 곧바로 서로 짝을 찾아 손을 잡았다.
쥬시마츠와 손을 잡은 이치마츠야 그렇다 쳐도, 토도마츠와 손을 잡은 쵸로마츠의 모습에 오소마츠가 경악했다.
당연히 자신과 팀을 할 것으로 생각했던 쵸로마츠가 토도마츠와 다정~히 손을 잡고 있는 것을 본 오소마츠의 허공에 뜬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왜 토도마츠으?!” 하고 절규하는 오소마츠에게 쵸로마츠가 콧방귀를 끼었다.
결국 오소마츠는 좋든 싫든 남겨진 카라마츠와 팀이 되어야 했다.
육둥이가 팀을 정한 것을 확인한 진행 요원이 웃는 얼굴로 육둥이에게 1~6번까지 번호가 적힌 작은 종이를 내밀었다.
각 번호의 아래엔 작은 글씨로 체육관, 교실, 식당 등 여러 장소가 적혀 있었다.
종이를 확인하는 육둥이를 본 진행요원이 생글생글 웃으며 대결의 규칙을 설명했다.
1~6번에 쓰여진 장소에 가서 미션을 성공하고 스탬프를 받아, 전부 모이면 학생회실로 돌아올 것. 스탬프를 받는 순서는 번호를 따르지 않아도 OK.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모두 들은 육둥이가 팀별로 뿔뿔이 흩어졌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와 함께 들고 있는 작은 미션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뭐가 있는지 모르고. 귀찮으니까 순서대로 돌까?”
“훗, 그것도 좋겠군.”
종이에 적힌 장소와 장소의 거리라던가, 이동시간이라던가 그런 것들을 일일이 계산해 출발한 동생들과 달리 오소마츠는 미션지를 팔랑팔랑 흔들며 카라마츠를 쳐다보았다.
빙긋-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카라마츠에게 “그치~!” 하고 활짝 웃은 오소마츠가 1번 아래에 적힌 장소로 발을 옮겼다.
4.
2-C반.
오소마츠는 손에 든 종이와 팻말에 적힌 반 번호를 확인했다.
번호 순서대로 돌기로 해, 첫 번째 관문 앞에 도착한 오소마츠가 망설임 없이 드르륵- 교실 문을 열었다.
“형님, 정말 자신 있는 건가…?”
“걱정 말래도~! 이 횽아만 팍팍 믿어!!!”
불안한 얼굴로 뒤돌아 묻는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며 주먹으로 가슴을 팡! 쳤다.
가위바위보를 해 따낸 역할에 의기양양한 오소마츠를 본 카라마츠가 울음 반, 한숨 반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1번 미션은 방석 퀴즈.
한 사람이 방석 위에 앉아 문제가 끝나면 재빨리 깔고 앉은 방석을 들고, 대답할 찬스를 얻으면 뒤에 앉은 사람이 정답을 맞히는 게임이었다.
대결에 참가한 학생들이 제법 되는지 오소마츠와 카라마츠 외에도 세 팀이 쭈르르 나란히 앉아 문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섯 문제를 맞혀야만 스탬프를 받을 수 있다는 진행 요원의 말에 오소마츠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카라마츠는 가위바위보에서 진 자신을 원망할 정도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육둥이 모두 그리 자랑할만한 성적을 받지는 못하지만, 그중에서도 오소마츠와 쥬시마츠는 정말로 심하다고 할 정도의 점수를 받아왔다.
전교생과 선생님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바보가 바로 오소마츠와 쥬시마츠였다.
카라마츠는 쥬시마츠와 팀을 짠 이치마츠도 이 미션에서 애 좀 먹겠다고 자신을 달래며 눈물을 머금고 방석 구석을 쥐었다.
“자, 그럼 첫 번째 문제! 스포츠 문제입니다.”
진행 요원의 말에 카라마츠의 마음에 일말의 희망이 피어났다.
오소마츠는 학교 친구들과 자주 축구나 농구 같은 운동을 하니 조금은 스포츠 지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눈썹에 힘을 주고 초조하게 문제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축구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스코어를 ‘펠레 스코어’라고 합니다. 그럼 그 스코어는 몇 대 몇?”
재빨리 방석을 들어올린 카라마츠는 ‘지져스!!’ 하고 속으로 외쳤다.
생각보다 문제가 어려웠다.
카라마츠도 모르는 답을 오소마츠가 알 리 없다고 생각하며 신을 찾는 카라마츠를 뒤로하고 오소마츠가 밝은 미소와 함께 답을 외쳤다.
“3 대 2!”
“네! 정답입니다!!”
“…하?!?!”
진행요원의 말에 카라마츠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뒤돌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청히 자신을 바라보는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가 살며시 볼을 부풀리고 “카리스마 레전드 횽아 얕보지 마!”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놀란 얼굴을 지우지 않고 “찍은 건가?” 하고 작게 묻는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가 “아니거든!?” 하고 외쳤다.
오소마츠의 큰 목소리에 진행요원이 끼어들어 “다음 문제입니다.” 하고 둘의 대화를 막았다.
카라마츠는 얼떨떨한 얼굴로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두 번째 문제! O, X 문제입니다. 물고기에도 귀가 있다?”
O, X 이라면 확률은 반반.
카라마츠가 힘차게 방석을 들어올렸지만, 한발 늦어 카라마츠 옆에 앉은 팀이 찬스를 얻었다.
뒤에 앉은 남학생이 자신 있게 “X”라고 외쳤지만, 진행 요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 틈에 오소마츠가 옆에서 “그럼 O!!” 하고 외쳤다.
진행 요원은 오소마츠를 응시하며 빙그레 웃곤 “정답입니다!” 하고 외쳤다.
물론 옆에 앉은 팀과 다른 팀들의 반발이 이어졌지만, 진행 요원은 “다른 팀이 틀린 후에 곧바로 대답하지 말라고 한 적 없습니다.” 라며 권력을 이용해 반발을 억눌렀다.
카라마츠는 연달아 두 문제를 맞힌 오소마츠의 능력에 그저 눈을 끔뻑이며 혼란스러운 머리에 눈썹을 찡그렸다.
“이어서 세 번째 문제! 상식 문제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후지 산!!”
“땡!”
“에베레스트!!”
“네! 정답입니다!”
제일 먼저 방석을 든 것은 카라마츠, 그리고 멋지게 오답을 외친 오소마츠였다.
카라마츠는 이마에 힘줄을 세우고 오소마츠를 노려보았다.
“오소마~츠!?”
“먄~”
배시시 웃으며 혀를 살짝 내미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퀴즈는 그 이후로 계속 이어졌고, 놀랍게도 오소마츠가 선전해 카라마츠와 오소마츠는 앞으로 한 문제만 맞히면 스탬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럼 마지막 문제!! 불을 켜려고 하는데 성냥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석유난로와 전기난로, 그리고 램프가 있는데 가장 먼저 불을 붙여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카라마츠가 머리 위에 물음표를 잔뜩 띄운 채로 방석을 들었다.
진행 요원이 미소를 띠고 카라마츠 뒤에 앉은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오소마츠도 헤실헤실 웃으며 자신 있게 정답을 외쳤다.
“성냥!!”
“네! 정답입니다~!”
마지막 문제를 맞힌 오소마츠 덕분에 카라마츠와 오소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진행 요원에게 미션지를 내밀었다.
1번 칸에 도장을 찍어준 진행 요원에게 오소마츠가 싱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 오다~!”
“천만에요~! 근데 오소마츠 선배, 그 차림은 대체 뭐에요?”
“우리 교실에서 여장 카페하고 있거든~! 그거 홍보!!”
‘대단하지!’ 하고 어깨를 으쓱대며 오소마츠가 등을 보여주었다.
세라복 등에 붙은 카페 홍보 스티커에 진행 요원이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카라마츠는 멀뚱히 서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오소마츠와 진행 요원의 정다운 대화에 눈썹을 찌푸렸다.
“오소마츠! 빨리 다음 가자!”
“아, 오오!!”
휙- 오소마츠의 손목을 잡아채듯 붙잡아 이끄는 카라마츠에게 수긍하며 오소마츠가 진행 요원에게 손을 흔들었다.
오소마츠를 배웅하며 “오소마츠 선배, 파이팅~!” 하고 외치는 진행 요원의 목소리에 어쩐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카라마츠는 누가 보면 사람 죽였냐고 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오소마츠를 끌고 쿵쿵 발을 울리며 다음 미션 장소를 향해 걸어나갔다.
5.
2번 미션 장소는 1-B반.
카라마츠와 오소마츠가 비장한 표정으로 서로 마주 보며 각오를 다지고 교실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교실 안에는 단 한 명의 진행 요원만이 서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교실 안에 들어가자 진행 요원이 상냥히 웃으며 미션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2번 미션은 힌트 3개를 듣고, 힌트에 해당하는 물건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물건은 교실 안에 있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단, 이 교실 밖에 나가서 찾아오셔야 합니다. 그럼 힌트 드리겠습니다!”
진행 요원의 말에 오소마츠가 카라마츠가 긴장된 표정으로 꿀꺽 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매일 기침을 합니다. 그리고 매일 흰 마음을 쌓아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겐 항상 함께하는 소중한 짝꿍이 있습니다. 이 짝꿍은 하얗기도 하고, 푸르기도 하고, 붉기도 합니다. 저는 뭘까요~?”
““하?!””
“자, 자~. 얼른 나가서 찾아오세요~!”
“…모르겠다.”
진행 요원에게 떠밀리듯이 교실을 나와 복도를 걷는 카라마츠가 손가락으로 턱을 받친 채,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오소마츠도 옆에서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며 고개를 기울였다.
“매일 기침을 하고, 흰 마음을 쌓아둔다? 짝꿍??”
정체불명의 힌트에 머리를 싸매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오소마츠가 다짜고짜 카라마츠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혀, 형님!?”
“교실 안에 있다니까 일단 아무 교실이나 들어가 보자고!”
오소마츠는 그대로 카라마츠를 끌고 빈 교실로 들어갔다.
드르륵- 문이 닫히자, 둘만 서 있는 텅 빈 교실이 어쩐지 을씨년스러웠다.
빈 교실에서 느껴지는 묘한 서늘함에 소름 돋은 팔을 문지른 카라마츠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책상 위에 올려진 의자, 칠판, 교탁, 벽에 걸린 낡은 선풍기.
교실 안에 들어와도 여전히 답은 깜깜 오리무중이었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오소마츠 쪽으로 고개를 돌린 카라마츠가 입 한쪽을 씰룩였다.
문제의 해답을 찾아 맹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 카라마츠와 달리 태평하게 빈 칠판에 흰 분필로 똥 모양을 그리고 있는 오소마츠를 본 카라마츠의 이마에 빠직- 하고 힘줄이 솟아난 것은 당연했다.
“오소마츠!!!”
“우왓!!”
쩌렁쩌렁한 카라마츠의 외침에 놀란 오소마츠의 손이 튀면서 칠판을 세게 긁었다.
끼끼끽- 하고 귀를 고문하는 소음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카라마츠의 노성이 다시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아, 알겠다고~”
입을 삐죽 내밀고 툴툴대며 칠판지우개를 들어 자신이 그린 똥 모양 낙서를 지우는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매섭게 노려보았다.
슥- 슥- 낙서를 지우고 손을 탁탁 턴 오소마츠를 보는 카라마츠의 눈이 반짝였다.
“혀, 형님. 답을 알아냈다.”
“어? 너도?”
“에?! 형도!??!”
“응!! 얼른 가지러 가자!!”
“에, 에에에!?!?”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외친 카라마츠를 향해 오소마츠가 빵긋 웃으며 말했다.
바보 중의 바보인 오소마츠가 답을 알아냈단 말에 까무러치게 놀라는 카라마츠의 손을 붙잡고 교실 밖으로 나온 오소마츠가 걸음을 재촉했다.
분명 답은 ‘교실 안에 있는 물건’ 인데도 교실을 지나치는 오소마츠에게 끌려가는 카라마츠가 당황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탁, 탁 경쾌한 발소리를 울리며 오소마츠가 복도를 뛰었다.
이리저리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찾던 오소마츠가 환한 얼굴로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어이~!! 이쿠치~!!”
“에에에에에?!”
방, 방- 바람 소리가 울리도록 팔을 흔드는 오소마츠와 달리 카라마츠가 숨을 삼키며 경악했다.
복도의 저편에 흰 마스크를 쓰고 어슬렁거리던 남학생이 오소마츠의 부름에 뒤돌았다.
이쿠치라고 불린 남학생이 “무슨 일이야?” 하고 묻자 오소마츠가 눈을 빛내며 “일단 따라와!” 하고 빈손으로 이쿠치 군의 손을 잡았다.
한 손엔 카라마츠, 한 손엔 이쿠치 군을 단단히 붙잡은 오소마츠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미션을 받은 1-B반으로 발을 옮겼다.
“자! 정답!!”
진행 요원의 앞에 이쿠치 군을 내민 오소마츠를 보며 턱을 떨어뜨린 것은 카라마츠 만이 아니었다.
“무, 무, 무슨??”
말까지 더듬어가며 눈앞에 선 이쿠치 군을 응시하는 진행 요원에게 오소마츠가 쾌활하게 말했다.
“이쿠치는 매일 기침하고, 소심해서 무슨 말만 하면 가슴에 쌓아두잖아~? 그리고 맨날 흰 마스크 쓰고 있어!!”
“….”
“….”
“….”
그 자리에서 오소마츠를 제외한 전원이 말을 잃었다.
이미 끝났다는 얼굴로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카라마츠, 오소마츠의 노골적인 디스(dis)에 넋을 잃은 이쿠치 군, 눈을 깜빡이며 가만히 서 있는 진행 요원을 번갈아 쳐다본 오소마츠가 “어? 틀렸어?” 하고 물었다.
“짝꿍은 하얗기도 하고, 푸르기도 하고, 붉기도 하다고….”
무거운 침묵을 깨고 소리를 낸 진행 요원의 말에 오소마츠가 해맑게 웃었다.
“마스크 색은 여러 가지 있잖아?”
“…교실 안에 있는 물건입니다만,”
“이쿠치는 교실 안에 있어! 항상!”
오소마츠의 대답에 고개를 푹 숙인 진행 요원을 보며 카라마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다 끝났다…. 그렇게 생각하고 포기하기 직전, 진행 요원의 어깨가 덜덜 떨렸다.
“…푸, 크크크크크…. 저, 정답으로 해 드릴게요…. 큭큭큭큭…!!”
눈물까지 글썽이며 배를 잡고 웃는 진행 요원의 말에 오소마츠가 환하게 웃었다.
“아싸!!” 하고 팔을 들고 환호하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이쿠치 군도 헛웃음을 흘리며 “축하한다. 오소마츠.” 하고 인사를 건넸다.
2번에 찍힌 스탬프를 보며 방실방실 웃은 오소마츠가 “응!! 땡큐!” 하고 이쿠치 군의 어깨를 팡팡 두드리는 모습을 보며 카라마츠는 대체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았다.
6.
3번 미션은 체육관에서 이루어졌다.
농구 골대에서 일정 거리 떨어져 자유투를 3번 넣으면 미션 성공.
단, 5번 안에 3번을 성공시켜야 했다.
미션이 자유투라는 말을 듣자마자 오소마츠의 얼굴이 단숨에 환해졌다.
체육 실기로 했던 자유투를 자기는 10번 중의 8번 이상 성공했다며 카라마츠를 밀치고 공을 잡은 오소마츠가 통통 가볍게 발을 굴리고 지정된 자리에 섰다.
오소마츠의 타고난 운동 실력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카라마츠가 한숨을 내뱉으면서도 오소마츠에게 공을 맡기고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진행 요원의 삑- 하는 호각 소리에 오소마츠가 팔을 들어 올리며 가볍게 발꿈치를 들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오소마츠의 손을 떠난 공이 흔들림 없이 동그란 림을 통과해 바닥에 튕겼다.
깔끔한 폼과 모범적인 공의 궤도에 감탄하는 진행 요원과 달리 카라마츠는 머리끝까지 치솟는 카오스에 얼굴을 잔뜩 붉히고 오소마츠를 노려보았다.
“아싸!!” 하고 빵실 웃으며 다음 공을 집어 든 오소마츠가 다시 멋진 폼으로 공을 던졌다.
오소마츠 자신은 공에 집중하느라 알지 못했지만, 공을 던지기 위해 팔을 뻗으면 짧은 세라복 상의가 팔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아무리 오소마츠가 마른 몸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여성의 옷이 오소마츠에게 딱 맞을 리 없었다.
오소마츠가 입은 세라복은 약간 짧아서 정말로 아슬아슬하게 치마와 맞닿아 오소마츠의 몸을 간신히 가려주고 있었다.
팔을 따라 올라간 세라복 사이로 얇은 허리를 감싸고 있는 치마와 하얀 피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뛰어다니는 오소마츠의 허리는 잔 근육으로 탄탄히 다져져 있었다.
형제보다 약간 하얀 피부와 지방 하나 붙지 않은 날씬한 허리가 세라복이 흔들릴 때마다 카라마츠의 시각을 빨아들였다.
탕- 하고 림을 빗나간 공에 작게 혀를 찬 오소마츠가 다시 공을 들어 올렸다.
자유투 자세를 잡는 오소마츠를 벌게진 얼굴의 카라마츠가 멈춰 세웠다.
“옷, 오소마츠!!!”
“쉿! 집중하고 있으니까!”
오소마츠를 말리려 코앞으로 다가온 카라마츠를 밀어낸 오소마츠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골대에 시선을 집중했다.
얇은 허리가 카라마츠의 번민을 부르는 동안, 오소마츠의 손을 떠난 공이 골대를 통과했다.
씨익- 입가 가득 넘실거리는 미소로 오소마츠가 연달아 자유투를 성공시키는 동안, 카라마츠는 혹여 진행 요원이나 지나가는 학생들이 오소마츠의 허리를 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주변을 지켰다.
오소마츠는 두 번째 공을 제외하고 3번의 자유투를 훌륭하게 성공시키고 스탬프를 받아 으스대는 얼굴로 카라마츠 앞에 내밀었다.
“…하아~. 알겠으니 다음 가자.”
코를 높이 쳐들고 자랑하는 오소마츠에게 한숨을 내뱉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카라마츠는 다음 장소로 향하는 도중에 오소마츠에게 “앞으로 팔 들지 마라!!” 하고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7.
4번에 적힌 교실로 이동한 카라마츠는 한 번 더 번민했다.
4번 미션은 바로 팀원을 업고 앉았다 일어나기 15회.
오소마츠보다 힘이 센 자신이 오소마츠를 업는 편이 확실히 성공하기 쉽지만, 치마를 입고 있는 오소마츠를 도저히 등에 태울 수 없었다.
진행 요원과 더불어 미션을 하기 위해 다른 팀들도 같은 교실에 있는 상황.
카라마츠는 머리를 붙잡고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뭐해, 카라마츠. 빨리 앉아봐!!”
카라마츠의 속을 알 리 없는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재촉했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카라마츠가 몸을 낮췄다.
오소마츠가 이제야 굽히냐, 하는 얼굴로 카라마츠에게 다가가자 카라마츠가 몸을 틀어 오소마츠의 어깨를 감싸고 무릎 아래에 제 팔을 집어넣었다.
카라마츠가 그대로 벌떡 일어나자, 눈을 깜빡이며 자신의 자세를 확인한 오소마츠가 비명을 질렀다.
“으갸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공주님 안기로 안긴 자신의 모습에 경악하는 오소마츠와, 오소마츠의 무릎을 지지하고 일어난 덕분에 무방비로 늘어진 스커트를 알아챈 카라마츠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중력에 이끌려 대롱대롱 흘러내린 스커트는 오소마츠의 뽀얀 허벅지와 통통한 엉덩이를 무방비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공주님 안기의 치명적인 허점에 절규한 카라마츠가 재빨리 오소마츠를 내려놓자, 오소마츠가 인정사정 없이 카라마츠의 머리에 주먹을 내리쳤다.
“아팟!!”
“업으라니까 왜 안아 올려!! 이 바보마츠(바카라마츠)!!!”
퍽! 소리가 나도록 맞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글썽이는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가 씩씩거리며 노성을 냈다.
카라마츠는 제대로 업으라는 오소마츠의 외침을 한 귀로 흘리며 짧고 살랑거리는 푸른색의 스커트를 노려보았다.
“아!”
“아!?”
손바닥에 주먹을 퉁! 치며 머리 위로 빛나는 전구를 띄운 카라마츠를 따라 오소마츠가 언성을 높였다.
자신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무표정한 카라마츠에게 다시 주먹을 올린 순간, 카라마츠가 입고 있던 검은 교복 재킷(마이)를 벗어 오소마츠의 허리에 칭칭 감았다.
재킷의 소매를 단단히 묶어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정한 카라마츠가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소매로 이마를 훔쳤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카라마츠의 행동을 살피던 오소마츠가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허리에 딱 맞게 감긴 재킷이 짧은 스커트와 훤히 드러나 있던 허벅지를 가렸다.
겨우 카라마츠의 행동을 이해한 오소마츠가 얼굴을 찡그리고 입을 떼려하자, 카라마츠가 서둘러 오소마츠를 안아 들었다.
오소마츠는 팀원을 업고 있는 다른 팀들 사이에서 홀로 공주님 안기 상태로 들린 자신에게 경악하며 입을 뻐끔거렸다.
오소마츠가 뭐라 항의하기도 전에 진행 요원의 호루라기 소리가 교실에 울렸다.
“하나~”
진행 요원의 외침에 교실 안에 있던 모두가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가 일어났다.
모두 일어난 것을 확인한 진행 요원이 다시 “둘~” 하고 수를 셌다.
앉았다가 일어나는 카라마츠에게 매달린 오소마츠가 “셋~” 하고 외치는 진행 요원의 목소리에 그제야 미션이 시작된 것을 깨달았다.
“열다섯!”
“끄핫!!!”
괴성을 내지르며 카라마츠가 무릎을 펴고 일어섰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어깨너머로 다른 팀들의 모습을 살폈다.
다른 팀은 자기 또래의 타인을 업고 일어나는 일이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듯, 15회를 채우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었다.
업히는 쪽과 앉았다 일어나는 쪽이 자리를 바꾸어 다음 기회를 준비하고 있는 팀도 있었다.
교실 안에 남은 팀 중, 유일하게 15회 안았다 일어나기를 성공한 카라마츠의 든든함에 빙그레 미소를 피운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 안긴 채, 카라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카라마츄~! 최고다!! 횽아, 반하겠어~~”
“꺄~!” 하고 스스로 효과음을 내며 두 손을 가슴께에 모으고 고개를 흔드는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살짝 노려보았다.
헉-, 헉-, 하고 거친 숨을 내쉬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오소마츠가 통통통 가볍게 뛰어 진행 요원에게 미션지를 내밀었다.
4번에 찍힌 스탬프에 시선을 고정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다가오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가 가쁜 숨 가운데 피식- 짧은 웃음을 섞어 내뱉었다.
8.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라면 두 그릇을 눈앞에 둔 카라마츠와 오소마츠가 군침을 삼켰다.
5번 미션 장소는 식당.
미션은 빨리 먹기. 뜨거운 라면을 5분 안에 먹어야 한다고 설명을 마친 진행 요원이 초시계를 손에 들었다.
오소마츠와 카라마츠 모두 고양이 혀는 아니었지만, 김이 날 정도로 뜨거운 라면을 망설임 없이 입에 집어넣을 정도로 도전 정신이 투철하지는 않았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카, 카라마츠! 이런 거 후딱 해치워버리자고!!”
“오, 오우!!”
긴장한 표정으로 무모하게 외치는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도 고개를 끄덕였다.
딸깍- 하고 초시계를 누르는 소리와 동시에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후루륵-, 후루륵- 국수를 빨아올리는 소리가 식당 안에 가득 찼다.
뜨거운 면을 한두 번 불고 입에 넣자니 입천장도, 혀도 뜨거워 고역이 따로 없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아직도 뜨거운 면을 대충 씹고 넘기자, 화상을 입을 것 같은 열기가 식도를 타고 명치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입안을 가득 채운 더운 숨을 토해낸 카라마츠가 힐끗 옆을 바라보았다.
맹렬하게 후루륵- 소리를 울리며 아예 씹지도 않고 뜨거운 면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질겁한 카라마츠가 서둘러 눈을 돌렸다.
“2분 남았습니다.”
가혹한 진행 요원의 말에 카라마츠가 경악하며 서둘러 남은 면을 한 젓가락에 집어 들었다.
오소마츠를 따라 면을 씹지도 않고 기세로 넘긴 후, 그릇에 남은 국물을 그릇째 들어 꿀떡꿀떡 넘겼다.
온몸을 달구는 열에 “푸하아!!!” 하고 숨을 거하게 내쉬며 그릇을 내려놓자, 오소마츠도 “탕!” 소리를 내며 빈 그릇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두 사람의 그릇이 완벽하게 빈 것을 확인한 진행 요원이 빙그레 웃으며 오소마츠가 내민 미션지에 스탬프를 찍었다.
“카아마흐~, 혀 데어혀~~”
스탬프가 찍힌 미션지를 확인도 하지 않고 주머니에 밀어 넣은 오소마츠가 입 밖으로 삐죽 혀를 내밀고 부채질을 했다.
타액에 촉촉이 빛나는 붉은 혀가 얇은 입술 사이로 빠져나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식당의 형광등에 비쳐 번들거리는 붉은 살덩어리에 카라마츠가 ‘부웃!’ 하고 숨을 토해내고 벌겋게 익은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의자에서 일어나는 카라마츠를 따라 오소마츠가 시선을 올려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혀를 내밀고 멍청히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오소마츠의 상의 사이로 툭 튀어나온 쇄골이 보였다.
세일러 복의 디자인상 깊게 파인 목둘레 사이로 드러난 쇄골과 하얀 피부에 카라마츠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식당 구석에 놓인 정수기를 향해 달렸다.
학교에 비치된 은색 컵에 찬물을 가득 받아 다시 오소마츠에게로 뛰어온 카라마츠가 찬물이 흘러넘치는 컵을 내밀었다.
“얼른 식히고 다음 장소 간다!!!”
“오, 오…. 행휴~”
고개를 기울여 카라마츠의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면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가 내민 컵을 건네 들었다.
찬물에 혀를 담그고 “흐햐아~” 하고 풀린 눈을 감은 오소마츠 모습에 카라마츠가 손을 들어 목까지 뜨거워진 얼굴을 감췄다.
9.
식당에서 5번 미션까지 성공한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마지막 장소를 향해 뛰어갔다.
6번 미션 장소는 운동장.
신발장에서 빠른 속도로 운동화를 갈아 신은 둘은 전속력으로 운동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진행 요원에게 달려갔다.
“이인삼각으로 50m를 20초 안에 들어와 주세요.”
하얀 끈을 내밀며 웃는 진행 요원의 말에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에에에에….””하고 신음했다.
“괜찮아. 우린 육둥이잖아~? 이 정도는 껌이징!!”
근거 없는 자신감을 드러내며 주먹을 불끈 쥐는 오소마츠와 달리 끈을 매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은 카라마츠가 작은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뜀박질이 빠른 오소마츠나 쵸로마츠와 달리 카라마츠는 그리 다리가 빠르지 않았다.
형제 중 자신이 두 번째로 느린 것을 카라마츠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힘든 것이 싫다며 일부러 온 힘을 다해 뛰지 않는 이치마츠를 제외하면 카라마츠가 달리기로 이길 수 있는 형제는 없었다.
반면, 오소마츠는 발이 빠른 쵸로마츠와 비슷할 정도로,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더 빨리 달릴 수 있었다.
그런 오소마츠와 이인삼각은 솔직히 무리, 라고 생각하며 카라마츠가 끈의 매듭을 질끈 묶었다.
“다 됐다, 형님.”
“조아쓰~! 자, 카라마츠! 어깨동무!!”
“하아…, 아아.”
“뭐야, 왜 한숨 쉬어? 할 수 있다니까~!”
“…아.”
“에에에~, 뭐야 그 반응…. 횽아 상처 받았엉~!”
“오소마츠, 준비해라.”
“췟!”
저 앞에 선 진행 요원이 하얀 깃발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본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달리기 준비 신호에 오소마츠도 장난을 멈추고 정면을 응시하며 입을 꾸욱 다물었다.
한층 진지해진 표정의 오소마츠를 엿본 카라마츠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깃들었다.
펄럭- 소리를 내며 깃발이 내려감과 동시에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땅을 박차고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역시 무리다!!!’
빠르게 내달리는 오소마츠를 간신히 따라가며 카라마츠가 절규했다.
쑥쑥 앞으로 내미는 오소마츠의 다리는 그보다 느린 카라마츠의 다리에 묶여 무겁게 움직였다.
오소마츠도 생각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고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어떻게 해도 생각만큼 빨라지지 않는 속도에 실패를 예감한 카라마츠가 울상이 된 얼굴로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골에 서 있는 진행 요원의 놀란 얼굴이 시야에 잡혔다.
입을 떡 벌리고 얼굴을 살짝 붉힌 채, 어딘가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진행 요원의 시선을 따라 카라마츠가 고개를 돌렸다.
“!?!?!?!?!?!!!”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크게 뜬 카라마츠가 하늘을 향해 입을 뻐끔뻐끔 벌리며 결코 소리가 나지 않는 비명을 한껏 내질렀다.
진행 요원의 시선이 꽂혀있던 곳은 바로, …오소마츠의 다리였다.
자신이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오소마츠는 전력을 다해 뜀박질을 시작했고, 앞으로 나아가며 가른 공기가 거센 바람이 되어 스커트를 사정없이 들췄다.
펄럭이며 다리를 따라 올라간 스커트가 바람에 흔들리며 아슬아슬하게 나부꼈다.
넘실대는 스커트와 그 사이로 드러난 쭉 뻗은 다리와 뽀얀 허벅지,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속옷은 한창때 소년들의 남심(男心)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설사 그 다리의 주인이 같은 동성일지라도 곧게 뻗은 다리는 매혹적이었다.
진행 요원이 눈썹을 늘어뜨리고 오소마츠의 스커트에 집중해 있는 것을 깨달은 카라마츠가 치솟는 분노에 이를 악물었다.
‘오소마츠, 이 멍청이가~!!! 치마를 입고 뛰면 어쩌자는 건가!! 지금이라도 멈출까? 아니, 그러면 분명 오소마츠가 엄청 화내겠지. 그리고 바로 재도전하겠다고 난리를 칠 거다! 아냐, 그래도 일단 멈추고 갈아입으라고 해야…. 잠깐, 그럼 돌아가는 모습을 또 보이는 거 아닌가? 그렇다고 지금 급정지하면 오소마츠가 넘어질 거고…. 차라리 이대로 빨리 골에 도착하는 것이…!’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 오만 가지 생각이 카라마츠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수많은 생각 속에서 결정을 내린 카라마츠가 들끓는 번민을 커다란 외침으로 승화시켰다.
“우오오오오!!!”
“에에에에에!?”
큰 기합 소리와 함께 갑자기 빨라진 카라마츠의 속도에 오소마츠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카라마츠 때문에 느려졌던 속도가 서서히 빨라지자, 이번엔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끌려가는 처지가 되었다.
본 적 없는 카라마츠의 빠른 달리기에 당황한 오소마츠가 당혹스러운 탄성을 내뱉으며 가까스로 카라마츠의 속도에 맞추었을 즈음, 둘은 골을 통과했다.
진행 요원이 흔드는 하얀 깃발을 뒤로하고, 가속도를 이기지 못해 그 후로 몇 m를 더 뛰어간 카라마츠가 헉헉거리며 속도를 줄이고 발을 멈췄다.
힘없이 꺾어진 무릎에 손을 얹고 허리를 굽힌 카라마츠가 가쁜 숨을 내뱉으며 호흡을 정리하고 있는 동안, 오소마츠가 두 사람의 다리를 엮고 있던 끈을 풀었다.
“카라마츠!! 하면 되잖아!!!”
“…좀, 다물어라.”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한계를 뛰어넘어 내달렸는지도 모른 채, 속 편하게 웃는 오소마츠를 한 번 노려본 카라마츠가 큰 한숨을 내쉬며 결국 운동장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부―” 하고 볼을 부풀린 오소마츠가 “기껏 칭찬해 줬더니….” 하고 중얼거리며 진행 요원에게 다가가 스탬프를 받았다.
6개의 스탬프가 전부 찍힌 미션지를 보며 뚱- 했던 표정을 싹 지우고 환하게 웃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도 짧은 웃음을 흘렸다.
10.
“와아~! 오소마츠 군! 카라마츠 군! 고마워~!!”
반짝거리는 하트 모양의 목걸이를 소중히 손에 쥔 토토코가 여신 같은 미소로 인사했다.
인중을 쭉 내리고 헤실 웃은 오소마츠가 “에이~, 이 정도는 이 카리스마 레전드 님에게 별거 아니쥐~!” 하며 코 밑을 문질렀다.
카라마츠도 토토코의 미소에 헬렐레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큐티 비너스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 하드 워크 따위…”
“그럼 토토코 갈게~!”
“엩!?”
“응! 바이바이~~”
“에엩!?!?!”
멍청히 바보 같은 말을 흘리는 카라마츠를 뒤로 하고 토토코가 총총 저 멀리 뛰어갔다.
멀어지는 뒷모습에 푹-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는 카라마츠와 마주 본 오소마츠의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카라마츠우~, 오늘 수고했엉~”
웃음기 섞인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눈을 깜빡였다.
가늘게 뜬 눈을 반달처럼 휘고 샐쭉 웃는 오소마츠를 본 카라마츠가 “하아~” 하고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미션을 수행한답시고 여기저기서 만천하에 맨살을 드러낸 오소마츠 덕분에 자신이 한 고생을 떠올린 카라마츠의 눈썹이 매섭게 곤두섰다.
오소마츠는 묘하게 기분 나빠 보이는 카라마츠의 표정에 고개를 기울이고 물음표를 띄웠다.
“오소마츠, 오늘…”
“아! 포크송! 카라마츠, 나가자!”
카라마츠가 짐짓 진지한 목소리로 오소마츠를 부르자마자 운동장에 포크송이 울려 퍼졌다.
몸을 내밀어 창문 너머로 운동장을 확인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포크 댄스.
운동장에 큰 원 모양으로 선 남녀가 가벼운 인사를 건네고 서로의 손은 맞잡았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손을 흔들며 도는 학생들의 모습을, 운동장에서 조금 떨어진 잔디밭에 앉은 오소마츠가 가만히 응시했다.
포크 댄스에 참가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고 예상한 카라마츠가 운동장으로 내려가지 않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눈썹을 올리고 그 옆에 앉았다.
“아, 저기 토도마츠 있다. 우와~, 저 약아 빠진 막내 녀석.”
여학생의 손을 잡고 계산된 미소를 피운 토도마츠를 찾아낸 오소마츠가 투덜거렸다.
“형님도 참가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응? 아니? 그냥 구경하려고. 왜? 카라마츠, 참가하려고.”
“아니, 이미 시작해버렸으니….”
오소마츠의 물음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젓고 시선을 돌려 운동장을 응시했다.
환하게 축젯날을 비추었던 해님은 저 산 아래로 가라앉고 까만 밤하늘의 달빛이 운동장을 밝혔다.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즐겁게 춤추는 학생들에게 눈을 떼지 않은 채, 오소마츠가 입을 열었다.
“오늘 정~말로 재미있었지?”
오소마츠의 질문에 카라마츠가 시선을 돌려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카라마츠의 시선을 느꼈는지 오소마츠도 천천히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마주보았다.
“응?”
“아아…. 즐거웠다.”
“헤헤헤~, 그치!”
배시시 웃는 얼굴에 마주 웃어주며 카라마츠가 수긍하자, 오소마츠가 한층 더 귀엽게 웃으며 코 밑을 문질렀다.
원래 계획했던 대로 형제들과 함께 학교를 돌아보거나, 아름다운 여학생을 찾는 일은 할 수 없었지만, 오소마츠와 함께 미션을 해결해나가는 일은 정말로 즐거웠다.
철없던 어린 날이 다시 돌아온 것 같은 그리움과 함께 찾아온 행복이 심장을 환희로 물들였다.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며 새삼 얼마나 즐거웠는지는 떠올린 카라마츠가 빙긋- 미소 짓자, 그를 본 오소마츠가 기쁘게 웃었다.
“우~, 춥다.”
포크 댄스도 끝나갈 무렵, 깊어진 밤이 불러온 찬 공기가 피부를 어루만졌다.
부르르- 몸을 떨며 팔을 쓸어 올리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가 “아” 하고 신음했다.
쩍- 하니 다리를 벌리고 앉은 오소마츠는 또 맨살을 내놓고 있었다.
탱탱하고 핑핑한 오소마츠의 허벅지에 한 번 더 거대한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응?”
“빨리 옷, 갈아입어라.”
“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하는 카라마츠의 시선을 따라 제 몸을 살핀 오소마츠가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이제야 자기가 어떤 차림으로 학교 내를 돌아다녔는지 깨달은 오소마츠의 얼굴이 딸기처럼 새빨개졌다.
열기를 내뿜는 오소마츠의 옆에서 이마에 손을 짚고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다고 한탄하며 고개를 저었다.
'오소마츠상 > 카라오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라오소] 오소마츠는 멈췄다. (8) | 2017.06.24 |
---|---|
[카라오소] 감기 (10) | 2017.06.18 |
[카라오소/오소른] 너를 지킨다 -후일담- (10) | 2017.06.04 |
[카라오소] 새장 안에 갇힌 새는 모른다 (13) | 2017.05.07 |
[카라오소] 「0」의 의미 (12) | 2017.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