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50제 시작입니다! 첫편이네요ㅎ 주중에 깔짝깔짝 써서 오늘 정리해 올립니다ㅎ

 50제가 올라오는 순서는 랜덤입니다ㅎㅎ


* 오메가버스입니다. 오메가버스에 관한 설명은 링크(요기)로 가주세요~


* 이거 전연령으로 수위 낮추느라 좀 고생했네요... 

  50제는 정말 부득이한 키워드나 상황이 아니면 대체로 전연령으로 올릴 생각입니다^^


* 임신과 관련된 자극적인 소재와 단어가 들어가있습니다. 불편하신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 공미포 19,652자. 한번 더 퇴고해서 재업로드 했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소른 50제


22. 발정기 (카라오소)   보름달 님 신청 키워드.




* 오메가버스 카라오소.

* 키워드가 키워드지만 전연령 버전입니다.

* 공미포 19,770자.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소른 50제


22. 발정기 (카라오소)   보름달 님 신청 키워드.


1.


아직 잠에 취한 눈을 비비고 젓가락을 고쳐 든 오소마츠가 멍청히 밥상을 응시했다. 어젯밤 그렇게나 달콤했던 술은 온화했던 얼굴을 바꿔 악마와 같은 형상으로 오소마츠의 머리를 강하게 쥐어짰다. 지끈거리는 두통에 한껏 인상을 찌푸린 오소마츠가 작은 한숨과 함께 눈을 끔뻑였다.

“쵸로~, 간장 좀….”

“자.”

“응. 감솨.”

“아으….” 하고 신음하며 머리를 짚는 오소마츠를 한심하단 눈으로 쳐다본 쵸로마츠가 간장을 건넸다. 짤막한 감사 후, 건네받은 간장을 계란프라이에 살짝 뿌렸다. 억지로 밥을 입으로 옮기고 있지만, 지금 당장 위 속 내용물이 밖으로 튀어나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어 위액이 올라오지 못하게 막은 오소마츠가 다시 “하아….” 하고 한숨을 쉬며 빈 그릇을 들고 일어났다.

“얼마나 처마신 거야…. 어제부터 상태 안 좋아 보이더만!”

식사를 마치고 행주질까지 끝난 상 위에 턱을 괴고 엎드린 오소마츠에게 쵸로마츠의 잔소리가 쏟아져 내렸다. 숙취로 빌빌대는 오소마츠를 생각해 언성을 높이지 않은 것이 쵸로마츠 나름의 배려였다. 오소마츠는 여전히 상 위에 얼굴을 올린 채, 눈동자만 굴려 쵸로마츠를 바라보았다.

“너무 그러지 마~, 쵸로씌~ 횽아도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궁~”

“그걸 왜 몸 안 좋을 때 하냐고! 이 바보 장남아!”

“별로, 괜찮다니깐~?”

“어이, 카라마츠! 너도 한마디 해!!”

손을 휘저으며 쵸로마츠의 잔소리를 흘려 넘기는 오소마츠에게 눈을 흘긴 쵸로마츠가 고개를 돌려 거실 한쪽에서 거울을 보고 있던 카라마츠를 불렀다. 쵸로마츠의 부름에 거울을 내려놓은 카라마츠가 고개를 기울이고 “응~?” 하고 눈을 깜빡였다.

“듣지도 않았냐….”

산뜻하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돌아보는 카라마츠에게 쵸로마츠가 질린 듯이 중얼거렸다. 제 얼굴 보는 게 뭐가 그리 좋은지, 쵸로마츠와 오소마츠의 대화는 카라마츠의 귓바퀴에도 걸리지 않았다. 쵸로마츠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자신을 바라보는 카라마츠와 두통으로 눈썹을 찌푸리고 축 늘어져 있는 오소마츠를 번갈아 보며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두드렸다.

“아오! 내 위에 놈들은 제대로 된 놈이 없어!! 오소마츠 형!”

“…응?”

“제대로 병원 갔다 와!”

“에―? 귀찮아.”

“가라면 좀 가! 얼굴이 새하얘!”

“우으~, 귀찮아….”

나가기 위해 미리 싸둔 녹색 가방을 어깨에 멘 쵸로마츠가 다시 오소마츠에게 삿대질하며 병원에 꼭 가라며 신신당부했다. 적당히 알겠다 대답한 오소마츠가 손을 흔들어 현관을 나서는 쵸로마츠를 배웅했다. 쵸로마츠의 말대로 어제부터 속이 더부룩하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을 떠올린 오소마츠가 이내 귀찮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어 병원을 지워버렸다. 단순한 컨디션 불량이라면 푹 쉬면 나을 터였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나간 동생들과 쵸로마츠까지 떠난 거실엔 오소마츠와 카라마츠, 그리고 똑딱거리는 초침 소리만이 남아 있었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오소마츠가 달그락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카라마츠도 나가?”

보던 거울을 상에 내려놓고 몸을 일으키는 카라마츠를 향해 오소마츠가 물었다.

“아! 오늘도 뷰티풀-한 카라마츠 걸-즈를 위해!”

“후핫! 그런 거 없겠지만,”

“엩.”

“잘 다녀와~”

오소마츠가 가볍게 손을 흔들자 카라마츠도 만면에 미소를 띠고 “아, 다녀오지. 형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멍청히 거실을 나가는 카라마츠의 등을 바라보던 오소마츠가 돌연 고개를 돌린 카라마츠의 눈이 맞았다.

“응?”

“그…, 몸이 안 좋으면 오늘 꼭 병원 가라, 형님. 병원이 싫다면 하다못해, 데카판 박사에게라도 가 봐.”

“오―. 알겠엉~”

오랜만에 건네진 카라마츠의 걱정에 오소마츠가 기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소마츠의 대답에 안도한 것처럼 작게 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다시 인사하며 거실을 나섰다. 드륵-, 현관문이 닫히고 정적에 휩싸인 거실에서 오소마츠가 쭉 참고 있었던 불편한 숨을 내쉬었다. 딱히 정확히 어디가 아프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몸 전체가 늪에 빠진 것처럼 축 가라앉아 무거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침 식사 덕분인지, 마츠요의 특제 해장 주스를 마신 덕분인지, 두통은 많이 가라앉았지만,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감각은 사라지지 않고 선명하게 체내를 표류하고 있었다.

“데카판한테 가볼까….”

혼잣말하며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가 2층으로 올랐다. 줄곧 입고 있었던 하늘색 잠옷을 벗고 붉은 후드로 갈아입은 오소마츠가 현관을 나섰다.

“…호에….”

“데카판? 뭐야? 나 무슨 병 걸렸어?”

처음 보는 문자와 이상한 수치들이 빼곡히 적힌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데카판 박사가 신음하며 턱을 쓸었다. 눈을 깜빡이며 재차 수치를 확인한 데카판이 몸을 돌려 오소마츠를 쳐다봤다.

“축하한다요, 오소마츠군. 임신이다요!”

“…하?”

데카판의 말에 오소마츠의 턱이 떨어졌다. 동태 같은 눈으로 박사를 응시하며 고개를 기울인 오소마츠가 손을 흔들었다.

“아니아니아니, 그런 일 없으니까. 일어날 리 없으니까. 데카판은 바보야?”

“호, 호에…. 이 수치를 보면 임신이 맞다요! 검사는 정확하다요!!”

“…하?”

영혼이 빠져나간다는 게 바로 이건가 하고 독백하며 넋을 놓은 오소마츠가 얼굴을 찡그렸다. 데카판은 다시 모니터에 시선을 옮겨 수치를 해석해나갔다.

“임신 3주 정도 된 것 같다요. 피검사 결과, 오소마츠 군은 철분이 부족한 것 같다요.”

“아니, 잠깐 멈춰봐, 데카판.”

연구소에 있는 철분제를 주겠다며 의자에서 일어서려는 데카판을 만류한 오소마츠가 다시 지끈거리기 시작한 머리를 붙잡고 눈을 굴렸다.

“응, 일단. 알겠어. 임신이라고? 알겠는데…. 나, 는….”

다음 말을 섣불리 꺼내지 못하는 오소마츠의 얼굴이 괴롭게 일그러졌다. 데카판은 쉽게 입술을 떼지 못하는 오소마츠의 표정을 살피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싶다면, 의 동의가 필요하다요.”

오소마츠가 차마 내뱉지 못한 단어를 일부러 언급하지 않으며 데카판이 지그시 미소 지었다. 불안해하는 오소마츠를 조금이라도 달래주려는 미소에 오소마츠가 어느 순간부터 멈추고 있었던 숨을 몰아 내쉬었다.

“응….”

 



2.


이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 외에 또 다른 성별이 있다. 알파(α)와 오메가(Ω)와 베타(β). 베타는 그냥 보통 사람들, 여자와 남자라는 두 가지 성별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알파는 그중에서도 조금 우수한 사람들…, 이려나? 오메가는 임신이 가능한 사람들. 남자라고 반드시 알파인 건 아니고, 여자라고 반드시 오메가인 것도 아니다. 오메가는 3개월에 한 번씩 ‘히트’가 오고, 알파의 아이를 낳을 수 있다.

그 정도가 내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 지식의 전부. 중학교에 들어가 여자와 남자 외의 성별에 대해 배웠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은 꽤 컸다. 그때까지는 달린 놈들이 남자, 가슴이 있는 게 여자, 정도의 지식밖에 없었으니까. 무슨 연구소에서 왔다는 선생님의 설명에 나는 “헤에―.” 하고 감탄하고 끝냈다.

그야 나랑은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우리는, 여섯 명이 하나인 우리는, 당연히 모두 같은 성별이라고 생각했고. 우리 모두 당연히 베타일 거라고 그때의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본격적인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학교에서 받은 성별 검사 결과를 받은 나는 땅이 꺼지는 느낌을 받았다. ‘마츠노 오소마츠’라고 쓰인 종이에 당당히 쓰여 있는 문자.

 

베타(β)가 아닌, 오메가(Ω).

 

알파도 아니고 오메가?! 머리를 강타하는 커다란 충격에 숨을 쉬는 것도 잊고 뚫어지라 결과 용지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노려보아도 오메가를 상징하는 문자가 베타로 바뀌는 일은 없었다. 당연히 혼란스러웠다. 도저히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떨리는 손과 함께 흔들리는 그 기호가 뇌를 마구 짜내는 것 같았다. 흔들리고 뒤틀리는 시야를 참지 못하고 쓰러지려는 순간, 시끄럽게 복도를 울리는 녀석들의 목소리에 들고 있던 결과 용지를 구겨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한시도 입을 멈추지 않고 떠들며 다가온 녀석들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즐겁게 웃으며 물었다.

“오소마츠 형은 뭐 나왔어?”

이때 우리는 이미 ‘형’과 ‘동생’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주머니 안에 구겨 넣은 용지를 꽉 쥐고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려 평소처럼 웃었다.

“너네는?”

“우린 다 베타야.”

“오~! 나도!!”

내 질문에 쵸로마츠가 녀석들을 쭉 둘러보며 대답했다. 단단하게 내 발밑을 지지해주고 있던 바닥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웃었다. 나 역시 베타라고 말하자 녀석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일까,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메가여도 녀석들이 나를 경멸할 리 없지만, 나만 녀석들과 다른 것이 참을 수 없이 싫었다. 나만 다르다는 것을 녀석들이 알게 되는 것이 싫었다. ‘형’인 내가 녀석들보다 나약한 오메가라는 것이 싫었다.

이대로 숨기자고, 철저하게 숨기자고 홀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나와 엄마, 아빠에게만 알려졌다. 녀석들에게 내가 오메가라는 것을 숨기고 싶다고 솔직히 말하자, 엄마는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 결과 용지는 녀석들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잘게 찢어 변기 속으로 흘려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카라마츠도 나처럼 녀석들에게 자신의 성별을 속인 거였다. 그 녀석은 연극부답게, 나보다 더 자연스러운 연기로 녀석은 ‘베타’를 자청했다.

 

저출산 시대에 오메가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남성이어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오메가가 받을 수 있는 지원은 제법 빵빵했다. 히트 억제제나 피임약을 살 때 보험이 적용돼서 꽤 싸게 살 수 있었다. 1년에 한 번,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상담을 받는 것도 무료. 녀석들에겐 내가 오메가라는 것을 숨겨야 했기에 병원에 갈 때는 항상 엄마가 함께였다.

흰 가운을 입은 미인 의사 누나에게 오메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억제제를 받았다. 하얗고 동그란 작은 알약은 내가 녀석들과 다르다는 증거였다. 평생 이 약과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질 수 없다.

나는 베타가 아니다. 3가지 성별 중에서 가장 약한 ‘오메가’.

나는 이제 ‘여섯 명이 하나’가 될 수 없다. 함께 손을 이어 만들었던 작은 울타리에서 혼자 툭- 하고 떨어진 존재가 됐다. 녀석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약을 엄마에게 맡기고 병원에서 돌아온 그 날, 어두운 방 안에서 소리 죽여 울었다. 겨우 현실로 다가온 ‘오메가’라는 성별이 날카로운 단검이 되어 수십 번 가슴을 찔렀다. 얼굴을 후려치는 비정한 현실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오메가 진단 후에도 내 몸이 변화하는 일은 없었다. 육둥이답게 녀석들과 큰 차이 없이 자라나는 몸에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오메가는 ‘약하다’라는 인상이 있었지만, 나는 녀석들과 똑같은 키, 똑같은 덩치로 쑥쑥 자랐다. 육둥이 안에서 최강자라는 타이틀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오메가에게 반드시 찾아온다는 ‘히트’도 없었다. 검사 결과가 바뀐 것 아닐까, 나는 원래 베타인 거 아닐까 하고 한 줌의 모래와 같은 희망을 품었다.

 



3.


중학교 3학년, 졸업식이 가까워진 2월. 근처 고등학교에 배정된 우리는 느긋하게 남은 중학교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이 시기에는 각자의 개성이 확실해져서 쥬시마츠는 지금과 같은 밝은 광인이 되어 있었다. 쵸로마츠는 성실해지고, 이치마츠는 반대로 어두워졌다. 토도마츠도 지금처럼 약삭빠르게 잔머리를 굴리면서 여자애들과 어울렸다. 카라마츠는 중학교 3년간 연극부에 있으면서 지금의 아픈 모습이 완성되었다.

졸업식을 며칠 남기지 않은 어느 날, 여자애들에게 인기라며 토도마츠가 틀어놓은 시시한 아침 드라마를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각인’이니, ‘운명의 상대’니, 시시한 아침 드라마에 걸맞은 알파와 오메가 이야기. 자기에겐 이미 ‘짝’이 있다며, 남주인공에게 울부짖는 여주인공을 보며 계란말이를 입에 집어넣었다.

그 순간, 이상한 위화감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몸이 간질간질하면서 배 아래 쪽에 뭔가 묵직한 것이 내려앉았다. 따뜻하면서도 무겁고, 불편한 뭔가에 “응?” 하고 젓가락을 입에 문 채 고개를 기울였다. 이게 뭐지? 자신에게 던진 질문에 답을 찾기도 전에 카라마츠가 내 목덜미를 물었다.

“…헤?”

“…에?”

갑자기 목을 콱! 물린 자극에 놀라 어깨를 튀면서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는 카라마츠와 눈이 맞은 순간, 둘이 거의 동시에 멍청한 신음을 흘렸다. 카라마츠는 바보처럼 눈을 끔뻑이며 나를 보고 있었다.

둘이 눈을 마주한 채 놀라서 말을 잃은 사이, 엄마가 뛰어왔다. 목덜미에 선명히 남은 이빨 자국. “세상에….” 하고 망연자실한 엄마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넋이 나간 엄마를 보면서 목을 감싸고 있는 미약한 열에 손을 짚고 숨을 삼켰다. 동생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냐는 얼굴로 쳐다보고, 카라마츠는 자신이 한 행동의 의미를 여전히 알지 못했다. 긴 침묵 끝에 정신을 차린 엄마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마찬가지로 카라마츠의 팔도 붙잡은 엄마는 우리 둘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녀석들은 엄마에게 이끌려 현관을 나서는 우리를 기이하단 눈빛으로 쳐다봤다.

 

‘운명의 상대’

 

그게 나와 카라마츠였다. 내게 오메가에 관해 설명해주었던 미인 의사 누나는 시종일관 동그랗게 뜬 눈을 감추지 못했다. 엄마에게 이건 기적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의사 누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단 한 명의 알파와 단 한 명의 오메가가 가질 수 있는 최상의 관계. 그게 바로 ‘운명의 상대’였다. 원래 ‘각인’은 그냥 목덜미를 문다고 되는 게 아니고, 여러 조건과 상황이 맞아떨어져야 했다. 상호 동의 아래, 섹스하면서 목덜미를 깨무는 것. 그게 기본적인 ‘각인’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운명의 상대’는 달랐다. 본능으로 알아챈 운명의 상대는 서로의 동의 없이도, 섹스 없이도, ‘각인’이 가능했다. 아주 미약한 ‘히트’의 기운에 이끌린 카라마츠가 내 목덜미를 문 것처럼. 그리고 우리는 ‘짝’이 되었다.

의사 누나는 ‘운명의 상대’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하며 우리를 응시했다. 70억 명 중의 한 명. ‘운명의 상대’를 찾아내는 기술이나 요령 따윈 없다고, 의사 누나가 설명을 시작했다. 보통의 알파-오메가보다 강한 유대를 가질 수 있는 ‘운명의 상대’는 우수한 알파나 오메가 자손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소울메이트와 같은 거라고.

의사 누나의 열성적인 설명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뭐가 그렇게 특별한 건지. 엄마는 의사 누나의 설명을 듣는 내내 어딘가 혼란스러워 보였고, 우리는 그저 나란히 앉아 서로를 보며 “후응―” 하고 무미건조한 감탄사를 흘렸다.

“카라마츠, 너 알파였구나….”

“형님이 오메가일 줄은 몰랐다.”

별 감흥도, 감동도 없는 우리를 부럽다는 눈으로 쳐다보며, “너희는 축복받은 거야. 운명의 상대가 이렇게나 가까이 있었으니까.” 하고 말하는 의사 누나의 말에 눈을 돌렸다.

 

우리는 그냥 형제인데.

 

작게 중얼거린 내 혼잣말에 카라마츠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에서 돌아와 녀석들에게 필사적으로 숨겼던 성별을 밝혔다. 녀석들도 아침의 사태로 어림짐작하고 있었는지, 별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예상대로 녀석들은 내 성별을 거부하지도, 혐오하지도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로 나에게 다가오는 녀석들이 고맙고, 또 슬펐다.

 



4.


카라마츠와 ‘짝’이 된 이후, 나는 3개월에 한 번씩 ‘히트’를 맞이하게 되었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열기에 제대로 숨도 쉴 수 없었다. 온몸이 뜨겁고, 제대로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원초적인 본능이 뇌를 지배했다. 내뱉는 숨 하나하나가 뜨거웠다. 몸은 팔다리를 휘감은 쾌락과 함께 진득하게 녹아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질척였다. ‘히트’가 오면 괴롭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오직 자신의 ‘짝’뿐. 닿고 싶다고, 껴안고 싶다고, 만져지고 싶다고 본능이 외쳤다. 머릿속에 가득 울리는 그 외침이 끔찍한 두통을 만들어냈다. 본능을 거부하는 내게, 본능은 무시무시한 괴로움을 안겨주었다.

그런 지독한 ‘히트’가 고등학교 1학년 어느 아침에 찾아왔다. 어제와 같은 아침에 갑자기 ‘히트’에 카라마츠는 이성을 잃었다. 맹수와 같은 눈으로 나를 뚫어지라 응시하며 다가오는 카라마츠는 오로지 자신의 ‘오메가’을 향한 욕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히트’가 주는 괴로움에 몸을 작게 움츠리고 떠는 내게 카라마츠가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곧바로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챈 녀석들과 엄마, 아빠가 카라마츠를 뜯어말렸다. 아빠가 카라마츠의 뒤에서 붙잡고, 엄마가 카라마츠의 팔 한쪽을 잡았다. 쥬시마츠와 이치마츠는 카라마츠 다리에 매달리고, 쵸로마츠가 남은 팔 한쪽을, 토도마츠가 카라마츠 허리에 매달렸다. 하지만 내가 내뿜는 페로몬에 완전히 정신이 나간 카라마츠는 온 가족이 달라붙어도 막을 수 없었다. 카라마츠는 알파 특유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가족 모두를 질질 끌면서 내게 다가왔다.

‘히트’에 반쯤 정신을 놓은 나는 아수라장이 된 그 광경을 얄팍한 호흡을 이어가며 응시했다. 그때, 히트에 삼켜진 나는 카라마츠가 한 발짝씩 다가오는 걸 기뻐하고 있었다. 카라마츠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엄마가 재빨리 나를 데리고 병원으로 피신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나는 카라마츠에게 범해졌을 것이다.

 

이후, 발정기를 어떻게든 막기 위해 병원에서 독한 억제제를 처방받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히트’가 올 때마다 카라마츠를 피해 병원으로 도망가야 했고, 남은 가족들은 날뛰는 카라마츠를 말리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히트’를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억제제를 먹어도 큰 효과는 없었다.

나를 담당한 의사 누나는 ‘운명의 상대’를 진찰하는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70억 명 중에서 한 명을 찾아야 하는 ‘운명의 상대’는 지금까지 알려진 사례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아침 드라마에서나 나올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진 개념으로 취급되었다. 판타지라고나 할까? 사례가 드문 만큼, 관련 연구도 적었다. ‘각인’에 따라서 오메가가 겪는 증상이 다르기에 개개인에게 맞는 처방이 필요했지만, 의사 누나는 ‘운명의 상대’를 가진 내게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할지 알아내지 못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1년간 고생한 끝에 의사 누나가 ‘운명의 상대’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박사를 소개해주었다.

그게 바로 데카판 박사였다.

 

“호에호에” 하고 이상한 감탄사를 내며 나를 진단한 데카판은 간단하게 억제제가 들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운명의 상대라는 것은 알파와 오메가가 가장 자신에게 맞는 상대라는 증거다요. 서로가 ‘짝’이 되기를 강하게 바라고, 그만큼 ‘히트’도 심해진다요. 가장 잘 맞는 짝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 아이를 가지려는 욕망도 커지는 거다요. 오소마츠 군도 짝이 가까이 있는데 성관계를 하지 않으니까 ‘히트’가 강해지고 억제제도 효과가 없는 것이다요.”

‘성관계’라는 노골적인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그게, 하고 짜증을 내려는 찰나 데카판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어진 데카판의 말에 원치 않는 유체이탈을 경험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성관계하는 거다요. 반복해서 하다 보면 자연히 ‘히트’도, 성적 충동도 옅어질 거다요.”

으으응???

머리 위에 가득 물음표를 띄운 나와 달리 엄마는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야, 방구야!?” 하고 외쳤지만, 엄마는 깔끔하게 씹어먹고 나를 약국으로 끌고 들어갔다.

‘피임약’을 달라는 엄마의 말에 또 혼이 날아갈 것 같았다. 내 손에 단단히 피임약을 쥐여 준 엄마가 말했다.

“약은 꼭 먹으렴.”

“….”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엄마는 넋을 잃고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는 내 손을 잡고 집에 들어갔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내게 “괜찮았나?” 하고 묻는 카라마츠의 머리에 있는 힘껏 주먹을 쥐어박았다.

“아프다!! 무슨 짓인가! 형님!!”

“시-끄럿! 너 때문에 내가 피임약을 먹게 생겼다고!!”

“핏, 피피, 피, 피임!?”

동정에게 자극이 강한 단어를 내뱉자 카라마츠가 새빨갛게 얼굴을 물들이고 말을 더듬었다. 나도 동정인데! 왜 이렇게 된 거냐고!! 억울하고 화가 나서 한참 동안 카라마츠를 붙잡고 외쳤다. 있는 대로 짜증 내며 쌓아둔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나를 엄마는 말리지 않았다. 카라마츠도 묵묵히 내 짜증과 구타를 참아내며 “미안하다, 형님….” 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항상 힘있게 서 있던 눈썹이 축 늘어진 걸 보자마자 가슴이 꾹- 조여와 입을 다물었다. 녀석의 이런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서 주먹 쥔 손을 펴 카라마츠의 머리에 올렸다.

“미안, 카라마츠.”

“아니다. 형님은 아무 잘못 없다….”

그렇게 따지면 너도 별 잘못 없잖아….

단지 네가 알파고 내가 오메가였을 뿐인데….

큰 한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쓰다듬자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를 스쳤다. 부들부들한 감촉이 꼭 커다란 강아지를 만지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새어 나온 미소를 본 카라마츠도 나를 따라 눈가를 늘어뜨리고 씩 웃었다.

다른 수가 없었다. 이거라도 해보자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우리는 데카판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처음은 정말로 엄~청난 거부감이 들었다.

그야, 나랑 카라마츠라고? 같은 남자에 형제라고?

형제끼리…, 그걸 하라니….

나도 카라마츠도 언제 다음 히트가 올까 조마조마했다. 엄마가 준 피임약은 거실과 주방에 항상 비치되어 있었다. 이미 ‘짝’이 있는 내 페로몬을 감지할 수 있는 건 카라마츠 뿐이었다. 카라마츠는 평소엔 멍텅구리 둔탱이면서, 내 페로몬의 변화만큼은 예민하게 잡아냈다.

 

“형님.”

“아, 벌써 그때인가.”

내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나직이 나를 부르는 음성에 달력을 확인했다. 엄마가 표시해 놓은 날짜가 가까웠다. 약을 챙기기 위해 일어서면서 카라마츠에게 연락을 부탁했다. 고개를 끄덕인 카라마츠가 스마트폰을 꺼내 가족 단체 대화방을 켰다. 폰이 울리고 ‘알겠다’는 대답이 이어졌다. 엄마는 하던 일을 급히 끝내고 집에 돌아와 3일간 먹을 음식을 챙겨 줬다. 우리 둘을 뺀 나머지 가족은 전부 하타보가 준비해준 임시 거처로 옮겨 갔다.

완전히 둘만 남은 집 안에서 히트가 바로 코앞에 다가온 것을 느끼며 피임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고등학교 3년간, 몇 번의 히트를 경험하고, 우리 가족은 어떻게 히트를 준비해야 하는지 학습했다.

운명의 상대라서 그런지, 내가 특이한 건지, 내 ‘히트’는 제법 강했다.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해서 카라마츠가 옆에 다가오면 정신을 잃었다. 아니, 기억을 잃었다고 할까. 나에겐 히트 2~3일간의 기억이 없다. 아마 짐승처럼 정신없이 번식하는데 집중하는 거겠지. 정신을 차려보면 몸엔 정액과 여러 액체가 말라붙어 엉망이고, 냉장고 안의 음식은 착실히 줄어있었다.

처음엔 집이 아니라 하타보가 준비해준 호텔에 갔지만, 낯선 환경이라서 그랬는지 몸이 뜨거워지기만 할 뿐, 히트가 오지는 않았다. 결국, 오랜 가족회의 끝에 히트가 오면 나와 카라마츠를 뺀 다른 가족들이 자리를 피해 주기로 했다. 뭐, 눈앞에서 형 둘이 얼싸안고 있는 걸 보고 싶을 리 없으니까, 녀석들도 군말 없이 동의했고. 나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히트 후, 정신을 차리자마자 하는 일은 ‘사후피임약’을 먹는 것. 완전히 알파의 본능 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카라마츠가 콘돔을 챙길 리 만무했다. 히트가 끝나자마자 여기저기 쑤시는 몸을 끌고 주방에 들어가 찬장에 있는 약을 물과 함께 들이켰다.

 

보통 ‘짝’이 있으면 히트가 약해진다. ‘짝’ 이외의 상대를 유혹할 필요가 없어지니까 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아지는 일 없이 정신을 잃을 정도로 심한 히트가 이어졌다. 점차 약해질 거란 데카판의 말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고등학교 3년간,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도 히트 동안의 기억은 없다. 차라리 다행이지. 그딴 기억 필요 없고.

 

데카판은 내 히트가 약해지지 않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다양한 검사를 했다. 박사라는 데카판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 히-트가 약해지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잖아? ‘짝’이 있으면 자연히 약해지는 히-트가 계속 강하게 유지되는 이유는,

 

우리가 제대로 된 ‘짝’이 아니니까.


가만히 상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히트 따위, 영영 없어지면 좋을 텐데….

 



5.


데카판 연구소에 돌아와 녀석들과 함께 목욕탕으로 향했다. 저마다 한마디씩 해도 여섯이 동시에 말하니 조용한 골목이 금세 떠들썩해졌다. 시시한 이야기나 웃긴 이야기를 나누며 목욕탕에 도착했다. 태어난 순서로 일렬로 앉아 서로의 등을 밀어주고, 커피 우유를 나눠 먹고 목욕탕을 나왔다. 여섯이 모두 누울 수 있는 커다란 이불을 깔고, 제 자리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토도마츠가 불을 끄자, 방 안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녀석들의 숨소리에 집중해 시간을 쟀다. 양옆에 누운 녀석들의 숨소리가 느긋해졌을 때 눈을 떴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눈을 이리저리 굴리자 어렴풋한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른 숨소리를 내는 녀석들이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이불을 빠져나왔다. 색색- 꿈나라에 폭 빠져 있는 토도마츠의 머리를 슬쩍 매만지고 카라마츠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이, 카라마츠.”

짝짝, 카라마츠의 이마를 때리며 이름을 부르자, 눈썹을 한껏 찌푸린 카라마츠가 힘겹게 눈을 떴다.

“…응? 뭔가, 형님….”

“일어나봐. 할 말이 있어.”

다시 눈을 감으려는 카라마츠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깊은 한숨과 함께 눈을 비비며 일어난 카라마츠가 이불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먼저 계단을 내려가 거실로 들어갔다.

 

“뭔가?”

커다란 하품을 끝내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 카라마츠가 내 맞은편에 엉덩이를 내리고 앉았다. 정신의 반은 아직도 꿈나라에 빠져 있는지 카라마츠가 초점 잃은 흐리멍덩한 눈을 찌푸렸다. 금방 내려앉을 것 같은 녀석의 눈꺼풀을 보며 머리를 긁적이고 입을 열었다.

“오늘 몸이 안 좋아서 말이야…,”

“아, 몸은 괜찮은가?”

내 말에 졸음을 날려버린 카라마츠가 말을 끊고 물었다. 적당히 “어, 괜찮아.” 하고 대답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마른 입술을 적셨다.

“나, 임신했대.”

“….”

쩌억-, 카라마츠의 턱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 놀라겠지. 응, 횽아도 그 맘 안다. 나도 놀랐는걸.

꼬박꼬박 피임약 먹고 있었는데 말이지~.

“그, 지, …우려면 네 동의가 필요하대. 그러니까, 내일 데카판한데 가서…”

“자, 잠깐만, 형님.”

“응?”

카라마츠가 눈썹을 찡그리고 머리를 붙잡은 채, 내 말을 막았다. 고개를 기울이고 가만히 쳐다보니 녀석이 얼마나 혼란스러워하는지 뻔히 보였다. 잘게 눈동자를 흔드는 녀석을 잠깐 기다려줄 생각으로 고개를 들었다.

어릴 때부터 숱하게 봤던 낡은 나무 천장의 무늬를 하나씩 세다가 차가운 바람이 느껴져 몸을 부르르 떨었다. 팔에 돋아난 소름을 쓰다듬으며 바람이 들어오는 곳을 확인했다. 누가 범인인지, 툇마루 쪽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날짜는 여름에 이제 들어섰지만, 여전히 밤공기는 쌀쌀했다. 슬금슬금 무릎으로 기어가 문을 닫았다. 탁,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형님….”

“응~?”

“…동의할 수 없다.”

“응? 뭐가?”

“…나, 낳아주지 않겠나?”

“하?”

일그러지는 표정과 함께 어이없는 신음을 던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낳자. 그리고 혼인 신고도…”

“미쳤냐, 너?”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험한 말에 카라마츠가 얼굴을 구겼다. 슬퍼 보이는 얼굴로 곤란한 미소를 피운 카라마츠가 살짝 고개 숙였다. 때때로 이 녀석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생각하곤 한다. 지금도 카라마츠 나름의 이유가 있는 발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카라마츠를 대신해 한숨과 함께 물었다.

“왜 낳자는 건데, 너.”

“…낳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왜.”

“그건…, 잘 설명하지 못하겠지만….”

저도 답답한지 입술을 깨문 카라마츠가 말끝을 흐렸다.

아아, 진짜 이 녀석 바보.

짜증 섞인 숨을 내뱉으며 머리를 벅벅 긁고 단호히 말했다.

“내일 데카판한테 갈 거니까.”

“싫다…, 형님.”

“카라마츠, 우린 형제야.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카라마츠의 입술에 이가 깊숙이 파묻혔다. 피가 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꽉 문 입술이 안쓰러웠다. 겨우 고개를 든 카라마츠의 눈동자가 내가 모르는 색으로 일렁거렸다.

“동의할 수 없다. 데카판에게 가지 않을 거다.”

“야.”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한 화를 억누르고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눈인데도, 그 안에 서린 빛은 확고했다.

“카라마츠.”

“낳아줘, 형님.”

“우린 형제야!!”

“그게 왜 문제가 되는 건가!! 형제인 동시에 ‘짝’이다!”

“하아?!”

“제대로 혼인신고를 한다면 나라의 지원도 받을 수,”

“형제가 무슨 혼인신고!? 기분 나쁘거든! 역겹거든!!”

“형님!!”

“시끄럿! 부르지 마! 닥쳐!! 내일 데카판한테 갈 거야!!”

“못 보낸다!”

“네가 무슨 권리로!?”

모두가 잠든 새벽이라는 것도 잊을 정도로 머리에 피가 몰렸다. 점점 높아지는 노성이 고요한 새벽 공기를 울렸다.

이 앞뒤 꽉 막힌 멍청이가!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는 카라마츠를 향해 치솟은 분노로 비아냥거리자 카라마츠가 쾅! 하고 상을 내리쳤다.

 

“넌 내 것이잖아!!!”

 

벌어진 입을 다물고 숨을 삼켰다. 조금 전까지 거세게 휘몰아치던 분노가 바닥에 가라앉았다. 싸늘하게 식은 화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실언을 눈치챈 카라마츠가 화난 얼굴을 지우고 당황하며 손을 뻗었지만, 강하게 뿌리치고 거실을 나왔다. 복도에서 멈추지 않고 현관으로 걸어가 신발에 발을 끼웠다.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다. 목소리도 듣기 싫다. 역겹다. 헛구역질이 날 만큼 기분이 더럽다.

카라마츠를 향한 분노와 증오가 뒤섞여 참을 수 없는 울분을 만들어냈다. 지금 이 자리에 1초라도 더 있고 싶지 않다. 카라마츠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싶지 않다. “형님!!”하고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카라마츠의 목소리를 씹어버리고 현관을 열고 뛰쳐나갔다. 고요한 새벽 골목에 울리는 발소리와 함께 차가운 밤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6.


점멸하는 신호등을 지나 거리를 걷는 그림자는 나뿐이었다. 셔터가 내려간 가게들과 은은하게 빛을 내려주고 있는 가로등 사이를 걸었다. 여름밤은 춥지는 않았지만, 얇은 잠옷 하나로 견딜 수 있는 기온은 아니었다. 쌀쌀한 공기에 딱딱해진 피부를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정말 지긋지긋하다.

이제 ‘오메가’도 ‘히트’도 다 싫다. 생각도 하기 싫다.

나는 녀석들과 달라지고 싶지 않았어. 녀석들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뭐야. 성별이 오메가라는 그거 하나만으로 나는 녀석들과 다른 존재가 되었다. 3개월에 한 번씩 히트를 겪고, 동생과 짝이 되어서, 이성도 잃고 미친 듯이 짐승처럼 섹스하고. 느슨해진 눈물샘 밖으로 뜨거운 물방울이 새어 나왔다.

히트 때 나는, ‘내’가 아니다.

나약하고, 음탕하고, 이상한, 오로지 자신의 짝에 좌지우지되는 오메가.

기분 나빠. 그딴 거 내가 아니다.

 

혐오와 증오.

 

내가 오메가인 나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이다.

오메가인 내가 미치도록 싫다. 치가 떨리도록 증오스럽다.

임신도 전부 오메가 탓. 히트가 끝나고 사후피임약을 먹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것도 오메가 탓이다. 히트가 끝나고 막 정신을 차렸을 즘엔 아직 몽롱한 상태니까 기억도 희미하다. 그래도 확실히 확인했었다. 주방 식탁 위에 사후피임약의 빈 껍질이 놓여 있는걸. 그러니까 제대로 먹었다고 생각했고, 아무런 의심 없이 빈 껍질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개새끼.”

낮게 내뱉은 말이 지닌 온도는 내 생각보다 더 차가웠다. 졸졸 흐르는 물을 보며 강둑에 앉았다. 그새 짧은 풀에 내려앉은 이슬 덕분에 얇은 잠옷이 젖었다. 차가운 흙의 감촉에 몸을 힘껏 움츠렸다.

내가 오메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평범한 형제로 남았을 텐데.

알파인 카라마츠의 걸림돌이 되지 않았을 텐데. 베타보다 우수한 알파니까, 카라마츠가 원한다면 좋은 기업에 취직해 예쁜 부인을 얻는 것도 가능했다. 내가 오메가가 아니었다면, 카라마츠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었다. 나도, 내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었다. 히트다 뭐다, 그런 거 없이 자유롭게.

아니면 차라리, 운명의 상대가 아니었다면. 카라마츠는 나보다 더 나은, 녀석과 마음이 맞는 오메가와 짝이 될 수 있었을 거다. 남자가 아닌 여자, 피가 연결되지 않은 타인의 오메가를.

서로가 자각하기도 전에 이루어진 ‘각인’ 덕분에 다른 알파가 어떤지도 알지 못한다. 오메가가 가지는 모든 특징은 필사적으로 알파를 붙잡으려는 애처로운 노력이 만들어낸 것이다.

나는 이렇지 않은데.

마츠노 오소마츠는, 형인 나는, 카라마츠보다 강해야 했다.

더 의지가 되고, 멋진, 그런 형이 되어야 했다.

약해 빠져서 카라마츠에게 빌빌대는 그런 형이 아니라.

뿌득- 이를 갈며 수도 없이 오메가를 욕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욕이란 욕을 다 쏟아부어도 온몸을 가득 채운 증오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메가는 내게 더러운 기생충과 같았다.

 

멋대로 내 허락 없이 기생하는 기분 나쁘고 더러운, 혐오스러운 존재.

빨리 사라져버려. 제발, 없어져.

이루어지지 않을 바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간절히 기도하며 손에 치인 돌멩이 하나를 들어 강에 던졌다. 퐁당- 하고 울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몸을 일으켰다. 잠옷 한 벌로 나와서 몸이 으슬으슬 떨린다. 모텔이나, PC방에 가고 싶어도 지갑을 들고나오지 않아 돈이 없다.

다 싫다….

쓸쓸하게 내뱉고 몸을 돌렸다.

 



7.


정처 없이 걷고 걷다가 기차역에 도착했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역을 보며 첫차가 다닐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라리 멀리 떠나버릴까? 교통비 정도는 이야미에게 뺏으면 될 일이다. 다행히 이야미 집은 역에서 멀지 않으니까. 응, 그러자. 이야미 집은 여기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형님!!”

젠장. 낮게 욕하고 냅다 뛰었다. 조용한 새벽 거리에 뜀박질 소리가 2개. 전속력으로 뛰고 있는데도 멀어지지 않는 발소리에 초조하게 팔을 흔들었다. 머릿속으로 제일 빨리 이야미 집으로 갈 수 있는 길을 계산해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낮고 남자다운 목소리가 새벽 공기를 뒤흔들었다.

“오소마츠!!!”

“흣!”

숨을 삼킴과 동시에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감각에 치를 떨었다. 그 자리에서 멈춘 발은 접착제라도 붙인 것처럼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다가오는 인기척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얕아진 숨이 금방이라도 끊길 것처럼 가빴다. 카라마츠의 거친 숨소리가 점점 더 또렷하게 들릴수록 심장 박동도 빨라졌다. 원치 않는 기쁨이 온몸을 지배했다. 겨우 이름이 불린 것뿐인데!! 자동으로 일어나는 신체 변화에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이 치밀어 올랐다. 빌어먹을 오메가. 다시 발을 떼서 달아나려고 해도 이미 달뜬 몸은 뇌의 명령을 무시했다.

젠장, 젠장, 젠장, 빌어먹을! 이를 갈며 입을 꾹 다문 내 앞에 슬리퍼를 신은 발이 섰다.

“따라와.”

팔을 잡혀 그대로 끌려갔다. 있는 힘껏 발에 힘을 주고 저항해도 카라마츠와 내 안에 있는 오메가를 이길 수는 없었다.

 

저에게 잡힌 팔을 빼내려 이리저리 몸을 비트는 오소마츠를 끌고 카라마츠가 도착한 곳은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러브호텔이었다. 빈방을 보여주는 패널에서 적당한 방을 골라 떨어진 카드를 집어 들자 오소마츠의 저항이 더욱더 거칠어졌다. 건물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큰 노성을 내지르는 오소마츠를 들쳐 메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냅다 침대 위로 오소마츠를 던진 카라마츠가 그 위에 올라탔다.

“크우읏!! 이거 놔!!”

제 손을 구속하고 있는 카라마츠를 밀어내며 비통하게 외치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반항하며 휘젓는 오소마츠의 남은 손을 잡아 침대에 눌렀다.

알파의 힘이 주는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도 오소마츠는 반항을 멈추지 않았다. 몸부림치는 오소마츠의 몸을 자신의 체중으로 지그시 누른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와 눈을 맞췄다. 러브호텔의 간접조명에 비친 오소마츠의 다갈색 눈동자엔 태풍과 같은 분노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왜, 그렇게나 싫어하는 건가…. 전부 내가 책임지겠다. 취직도 하겠다. 오메가와 알파를 부정하는 시대도 아니다. 세상도 우리를 이상하게 보지 않아.”

빠드득- 스티로폼이 부서지는 것처럼 강렬한 소리가 울렸다. 분노로 눈을 새빨갛게 물들인 오소마츠가 이를 갈며 카라마츠를 똑바로 응시하고 격분해 외쳤다.

“난 네 이지, 네 소유물이 아냐!!!”

오소마츠의 외침에 카라마츠가 슬프게 눈썹을 늘어뜨렸다. 자신이 원한 건 이런 것이 아니었다고 독백하며 카라마츠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 전 ‘내 것’이라고 한 건 실언이다. 오소마츠는 내 이다. 내 단 하나뿐인, 사랑스러운 상대다.”

“하? 무슨 말을,”

“사랑한다.”

카라마츠의 고백에 오소마츠의 눈동자에서 불타오르던 분노가 사그라졌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찌푸리고, 사색이 된 오소마츠에게서 떨리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왜 그러는 건데. 진짜….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너. 우린 형제야! 피가 이어진 형제라고!!”

짙은 파랑이 담긴 눈이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가늘게 뜬 눈이, 사랑스럽단 듯이 오소마츠의 얼굴을 샅샅이 훑었다.

“형제면 뭐? 우린 운명의 상대인데. 서로를 위해 태어났는데. 이 세상에 오직 단 한 사람을 위해 태어났는데, 왜 사랑하면 안 되나.”

“….”

미쳐버린 궤론에 오소마츠가 입을 다물었다.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오소마츠에게 카라마츠가 애원하듯 매달렸다.

“정말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나? 오소마츠.”

 



8.


깨닫지 못한 본능이 이성을 앞섰다. 얼떨결에 물어버린 얇은 목덜미에 남은 자신의 이빨 자국을 멍청히 응시했다. 엄마와 동생들의 소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단 한 사람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의 ‘운명의 상대’라는 말에 고개를 기울였다.

운명이라는 것이 겨우 이런 것인가?

각인을 통해 짝이 되었는데도 오소마츠를 향한 내 마음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소마츠는 그냥 ‘형’이었다. 육둥이의 장남이자 나의 형.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존재도 아니었다. 우리가 운명의 상대라는 것을 알았을 때도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무덤덤하게 서로가 짝이 되었다는 사실만을 받아들였다. 짝이 되었어도 뭔가가 변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단순한 ‘형제’였으니까.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오소마츠에게 2번째 히트가 왔을 때였다. 식욕을 돋우는 밥 냄새에 섞여 희미하게 퍼지는 모란꽃의 향기. 그 향기를 맡은 순간, 기계 전원을 끄듯 뚝- 하고 기억이 끊겼다.

후에 정신을 차리자, 나는 두꺼운 밧줄로 꽁꽁 묶여서 모두 함께 사용하는 2층 방에 휙- 던져져 있었다. 이성을 되찾은 내게 동생들은 무서웠다며 울먹였다. 오로지 충동과 욕망이 몸을 지배하고 있었던 나는 동생들과 부모님도 뿌리치고 형님에게 달려들었다고 했다. 기억이 없는 것에 놀라고, 자신이 그런 짓을 했다는 것에 또 놀랐다. 히트가 끝나 병원에서 돌아온 오소마츠에게 사과하자, 오소마츠는 언제나 그랬듯이 장난스러운 웃음을 돌려주었다.

 

오소마츠에게 히트가 올 때마다 이성을 잃고 덮치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아니, 문제밖에 없었다. 아무리 공인된 짝이라고 해도 그건 강제로 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병원에서 억제제를 받아온 오소마츠와 함께 나도 알파 전용 억제제를 처방받아 복용했다. 하지만 아직 연구가 덜 된 알파 전용 억제제는 큰 효과가 없었다. 오소마츠도 어째서인지 억제제가 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히트가 올 때마다 오소마츠는 나를 피해 병원에 입원했고, 나는 밧줄에 묶여 방에 방치되었다. 시중에 판매하는 온갖 억제제를 먹어도 오소마츠의 히트가 잠잠해지는 일은 없었다.

꿀꺽- 하고 물과 함께 약을 삼킨 오소마츠가 혀를 차며 상에 엎드렸다.

“발정기 따위, 정말 싫어.”

‘싫다’는 말이 오소마츠 나름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실은 더 강한 감정일 것이다. 싫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진한 감정을 오소마츠는 그렇게 표현했다. 2번째 히트 후로 장장 1년 동안, 오소마츠는 여러 가지 약을 먹었지만, 하나같이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 찾아간 데카판 박사는 억제제로 억누르려 하지 말고 본능이 이끄는 대로 놔두면 자연스럽게 히트가 약해질 거라 했다. 오소마츠에게 히트가 오고 2~3일 동안 가족은 전부 임시 거처로 옮기고, 나와 오소마츠만 남은 집에서 우리는 짐승처럼 서로를 탐했다. 기억이 날아가 있을 때는 오롯이 본능이 몸을 지배했다.

이렇게 계속 이어가면 히트가 나아질 것이라 희망을 품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해 성인이 되어도 오소마츠의 히트는 여전히 지독했다.

 

히트 때의 기억이 없는 내게 오소마츠는 그냥 ‘형’이었다.

그랬는데, 왜….

 

어느 순간부터 히트 때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안개 속처럼 어렴풋했던 기억은 갈수록 선명해졌고, 단편적인 기억이 아닌 히트 동안의 모든 기억이 뇌 속에 틀어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뜨거워진 신체와 이성을 밀치고 수면으로 올라온 욕정과 욕망, 색욕.

빨리 열을 해소하고 싶다는 갈망과 동시에 자신의 짝을 품에 넣으려는 다급함이 이성을 조각냈다.

짝을 확인하기 위해 초조하게 뻗은 팔 아래에,

오소마츠가 있었다.

 

형이었던 오소마츠가 처음 보는 표정으로 애처롭게 나를 불렀다. 애타게 내 이름을 읊는 달아오른 목소리. 나를 요구하며 오직 나를 향해서 들어 올린 팔. 쾌락에 엉망으로 녹아 초점을 잃은 다갈색의 눈동자에 나만이 비친 순간, 참을 수 없는 욕정과 동시에 행복이 피어올랐다.

모두의 형인 오소마츠를 독점했다는 우월감, 오소마츠를 손에 넣었다는 성취감, 내 품에 오소마츠가 있다는 그 사실이 주는 안도감, 그리고 농후한 행복. 달뜬 숨결과 덜덜 떨면서 닿아오는 가녀린 손길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카라마츠우….” 하고 나를 부르며 울먹이는 귀여운 사람이, 내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눈앞의 존재가 애처로워서, 사랑스러워서, 귀여워서, 애끓는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석게도 나는, 히트에 빠진 오소마츠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와 같은 얼굴, 같은 신장을 가지고 있는데도 여리게 보이는 몸을 품에 안기까지 견뎌낸 인내의 시간. 오소마츠를 사랑하게 된 것을 자각한 후로, 히트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가는 어깨를 감싸고 키스를 하면 오소마츠가 눈을 가늘게 뜨고 요염한 미소로 내 목에 매달렸다. 배시시 웃는 눈은 가늘게 휘어져서 그 눈 속에 가득 담긴 달콤한 꿀이 내 몸을 녹이는 것 같았다. 붉고 부드러운 입술은 촉촉이 젖어 한 시라도 떨어지기 싫다는 듯이 닿아왔다. 보들보들한 살결을 따라 손을 내려 등을 매만지고, 얇은 허리로 미끄러져 내려와 감싸 안았다. 짙은 모란꽃의 향이 비강을 타고 올라와 걸쭉한 행복을 불러왔다. 꽃향기가 섞인 살냄새가 체온과 함께 넘어왔다. 나를 원해서, 내게 안기고 싶어서 달아오른 몸을 품에 안고 “오소마츠, 사랑한다.” 하고 나직이 귓가에 속삭이면, 떨리는 목소리가 “응, 나도 사랑해. 카라마츠으~” 하고 대답했다.

아아, 사랑스러운 나의 짝.

오직 나만을 위한 귀여운 존재.

몇 번이고 입술을 겹치고, 그 뜨거운 몸속 깊숙이 자신을 새겼다. 달콤한 신음을 흘리는 오소마츠의 허리가 튕길 때마다 더 깊이 안으로 들어가 진한 사랑을 나눴다.

그러나 내 것이 분명한 그 몸에 아무리 나를 새겨도 가슴 한쪽에 자리 잡은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의 짝, 나만을 위한 유일한 존재가, 내 것인데도 꼭 금방이라도 내 손에서 빠져나가 멀리 달아나버릴 것만 같았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나 애틋한 존재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다.

 

히트가 와도 기억이 유지되고 의식이 또렷한 나와 달리 오소마츠는 계속 기억을 잃었다. 히트가 아닌 시기엔 평소와 다름없이 ‘형’으로서 나를 대했다. 나 역시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히트의 오소마츠지, 형님이 아니다.

오소마츠가 보여주는 얼굴을 형님은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형님은 나를 달콤한 목소리로 부르지 않는다. 나를 동생으로밖에 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구분할 수 있었다. 가족애로서 형님을 사랑하는 동시에, 오소마츠를 사랑할 수 있었다. 이걸로 되었다고, 이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고등학교 2학년, 이치마츠를 괴롭히는 무리의 대장이자 수시로 토도마츠에게 시비를 걸던 녀석과 오소마츠가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먼지와 발자국이 가득하고 팔 한쪽이 뜯어진 너덜너덜해진 교복을 걸치고 코 아래를 문지르며 웃은 오소마츠의 머리에선 피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가족들 모두 잠든 늦은 시간, 오자키에 대한 특집 방송을 보려 깨어 있던 나만이 오소마츠를 맞이했다. 볼을 타고 떨어지는 핏방울에 사색이 된 나를 보며 오소마츠는 그저 웃었다. “오~? 아직 안 잤네? 카라마츠~.” 하고 평소와 같은 장난스러운 말투로 마루에 오른 오소마츠의 손을 잡고 거실로 끌고 왔다.

피를 닦아내고 크게 찢어진 이마를 소독한 후, 약을 발라 솜을 붙였다. 머리 외에 또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오소마츠의 상의를 벗기자마자 말을 잃었다. 몸 곳곳에 남은 타박상과 피멍, 흉터. 생긴 지 얼마 안 된 시퍼런 멍부터 흐려진 갈색 자국까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생긴 상처를 보자마자 뜨거운 불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내 것인데….

 

무의식의 깊은 바닷속에서 떠오른 생각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은 오소마츠가 아닌데도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보지 못한 곳에서 멋대로 상처를 달고 돌아온 오소마츠에게 화가 났다. 오소마츠를 상처 입힌 불량배 놈들에게도 화가 났다. 이 이상 오소마츠의 몸에 상처가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혼자서 싸우지 않기를 바랐다.

 

지켜주고 싶다.

 

풍선이 부풀어 오르듯이 커진 마음이 기도를 막았다. 호흡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을 메운 자신의 마음에 질식되어 죽을 것 같았다. 자신의 마음에 농락당해, 오소마츠의 손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자, “아파!”하는 외침과 동시에 머리에 꿀밤이 내려왔다. 씩씩거리며 손을 주무르는 오소마츠에게 사과하고 다시 치료를 이어갔다.

 

그일 이후, 오소마츠가 싸움을 할 때는 반드시 따라갔다. 귀찮다는 오소마츠의 말을 무시하고 토도마츠의 도움까지 구해가며 오소마츠가 몰래 싸우러 갈 때마다 따라붙었다. 싸움 횟수가 더해갈수록 실력도 늘었다. 이윽고 자연스럽게 오소마츠와 호흡을 맞추며 싸울 수 있게 되었다. 뭐, 잦은 싸움으로 연극부는 잘리고 말았지만.

오소마츠와 함께 싸우면서 알게 된 게 두 가지 있었다. 오소마츠는 자기 몸을 보호할 생각이 없다는 것과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앞에서 울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사내놈들을 쳐내면서, 놈들이 걸어오는 공격은 대충 피한다. 맞아도 어쩔 수 없지 라는 식으로 싸우는 오소마츠를 전력으로 보호했다. 네 몸을 그렇게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몇 번이고 타일러도 소용없었다. 아무리 내가 오소마츠를 보호해도 싸움을 거듭할수록 상처는 늘어갔다. 크게 화를 내도 오소마츠는 변하지 않았다.

오소마츠가 입은 부상을 치료하는 것은 내가 맡았다. 그 누구에게도 오소마츠의 상처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닌 타인의 손이 닿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귀여운 동생이라도 해도 참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싸움을 멈추지 않는 오소마츠 뒤로 악명이 쌓여갈수록 억울한 상황도 늘어갔다. 오소마츠가 관련된 싸움이 아니어도 선생들은 오소마츠를 탓했다. 때때로 사고를 친 동생들마저 오소마츠의 이름을 대서 악명을 더욱 부추겼다. 육둥이 중 누군가가 저지른 잘못인데도, 비난과 질책은 전부 오소마츠가 뒤집어썼다.

토도마츠가 여자애들에게 시비를 거는 양아치들에게 대들고, 오소마츠의 이름을 말해 불합리한 싸움이 일어나도. 그리고 그 싸움으로 팔 하나가 부러져도 오소마츠는 헤실헤실 웃었다. 절대로 울지 않았다.

깁스한 팔을 보며, “미안~” 하고 가벼운 사과를 건네는 토도마츠에게도 화내지 않고 바보처럼 웃었다. 쵸로마츠가 옆에서 토도마츠를 꾸짖지 않았다면 내가 토도마츠의 멱살을 잡았을 것이다. 오소마츠는 울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에서도 “할 수 없네―.” 하며 웃었다.

슬픔에 살짝 일그러진 그 미소가 심장을 파고들어 서리를 만들었다. 애처로운 미소를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짝이 아닌 단순한 동생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그것이 억울해 울었다. 사랑스러운데, 저렇게나 애달픈 미소가 사랑스러운데, 오소마츠는 내게 의지하지 않는다.

 

 

사랑스러운 짝, 내 단 하나의 운명.

 

하지만, 오소마츠는 그것을 거부했다. 내가 형제로 남아 있기를 요구했다. 히트가 아닌 오소마츠는 짝인 나를 원하지 않았다.

상처받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형제인 오소마츠조차 사랑해버린 나처럼, 오소마츠도 나를 사랑해주길 원했다. 하지만 내 일방적인 바람을 오소마츠가 들어주는 일은 없었다. 오소마츠는 내 마음조차 알지 못했으니까.

그렇기에 오소마츠가 원하는 대로 형제를 연기했다. 오소마츠의 동생, 마츠노가의 차남인 카라마츠를. 형제 이상의 접촉은 하지 않고, 오소마츠가 나를 의지하지 않아도 추궁하지 않았다.

 

대신, 히트의 오소마츠는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기억을 잃고, 이성조차 날려버린 사랑스러운 내 짝을, 녹아 허물어질 정도로 사랑해주었다. 실컷 응석을 받아주고, 응석 부렸다. 나를 요구하는 팔을 기꺼이 따랐다. 내가 팔을 뻗으면 당연하게 내 품에 안겨주었다. 사랑한다고 귓가에 쉴새 없이 속삭이면 수줍게 웃으며 “나도” 하고 대답을 돌려주었다.

금방이라도 손끝으로 빠져나갈 것 같은 위태로운 사랑을 손에 쥔 채로 이 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9.


“정말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나? 오소마츠.”

카라마츠의 물음에 오소마츠가 입을 뻐끔거렸다. 당연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외쳐야 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턱, 하고 막혀버린 숨에 가슴을 달싹거린 오소마츠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나를 불렀던 것도 기억나지 않는 건가…? 나를 원했던 것도? 내게 먼저 키스했던 것도?”

오소마츠를 응시하는 짙은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카라마츠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을 보며 희미하게 떠오른 기억을 붙잡은 오소마츠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짧은 기억의 파편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갔다. 죽기 직전에나 보인다는 플래시백이 눈동자 아래를 스쳤다.

껌뻑 죽을 정도로 질척질척하고 애달프게, 눈물이 날 정도로 진하게 사랑받고, 쾌락에 허우적거렸던 기억이, 감각이, 행복이, 되살아나 오소마츠를 감쌌다. 애타게 카라마츠를 불렀던 자신은 형이 아니었다. 카라마츠의 짝으로서, 운명의 상대로서 카라마츠를 부르며 그를 간절히 원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초점에 카라마츠가 맺혔다.

“오소마츠…!”

오소마츠의 어깨를 감싼 카라마츠가 결국 눈물을 흘렸다. 카라마츠의 눈가를 떠난 눈물이 툭, 오소마츠의 얼굴에 떨어졌다. 피부에 닿은 미지근하고 축축한 눈물이 히트의 기억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흐느끼는 카라마츠의 목소리 위로 오소마츠를 부르던 카라마츠의 애정 어린 목소리가 덧씌워졌다.

‘젠장.’

완전해진 기억에 오소마츠가 얼굴을 찡그렸다. “사랑한다, 오소마츠.”하고 고백하는 카라마츠의 마음을, 진심을 깨닫고 말았다.

‘나랑 같은 마음 아니었냐고, 나처럼…. 형제로만 봤던 거 아니었냐고….’

억울함과 함께 울컥 치솟은 눈물이 선을 그리며 흘러내렸다. ‘왜’라는 물음은 이제 의미가 없었다. 카라마츠는, 카라마츠를 형제로만 생각했던 오소마츠와 달랐다.

오소마츠를 사랑하고 있었다. 짝인 오소마츠도, 형제인 오소마츠도, 한 사람의 인간인 오소마츠도,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해주고 있었다.

흘러내린 눈물이 하얀 이불 속으로 사라지듯이, 오소마츠의 안에 존재하던 무언가가 녹아내려 오소마츠의 안으로 스며들었다. 자신의 어깨를 붙잡은 단단한 팔에 제 손을 올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불렀다.

“카라마츠.”

눈물로 엉망이 된 카라마츠의 눈가를 닦아주며 오소마츠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제대로, 사랑해줘?”

“읏!”

양팔을 활짝 벌리고 웃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가 숨을 삼키고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강하게 얼싸안은 카라마츠의 애정을 느끼며 오소마츠도 카라마츠의 등에 팔을 둘렀다. 아직은 형제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변하기까지 아마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훌쩍- 하고 콧물을 삼키는 카라마츠의 귓가에 오소마츠가 속삭였다.

“조금만, 기다려줘. 나도 제대로 사랑해줄게…. 너를, 카라마츠를.”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울음에 잠긴 목소리로 “아아.” 하고 대답했다. 어린아이가 울음 끝에 겨우 대답하는 듯한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10.


사랑해주길 바랐다. 진정한 사랑을 원했다. 내 모든 것을 인정해주는, 내 모든 것을 받아들여 주는 그런 사랑을. 스스로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자신을 깊이, 아주 깊이 사랑해주는 상대를 원했다.

바로 곁에 있었던 나의 짝, 단 하나의 사랑.

내가 원하는 대로 행복해 죽을 것만 같은 사랑을 부어준 짝.

 

그러니까, 자신에게 외치기 시작했어.

내 짝을 슬프게 하지 말라고, 나를 인정해달라고.

‘나’도 결국 너니까. ‘나’도 네가 행복하길 바라니까.

그러니까, 제대로 ‘나’를 사랑해주세요, 오소마츠.



* 마지막은 오메가인 오소마츠가 자신에게 보내는 말입니다ㅎ

* 이 단편의 후편을 유료 공개하고 있습니다. 후편은 성인 공개입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여름 장마가 왔네요. 습하고 덥고, 그래서 그런지 자도 잔 것 같지 않네요.

 이럴 때일수록 몸관리를 잘해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ㅎ  제 블로그 찾아와주시는 모든 분들도 건강 꼭 챙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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