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50제입니다!! 이제 50제도 슬슬 써야겠다 싶어서 썼습니다.
* 이번편은 무려 해리포터AU 입니다. 글 쓰면서 공식(?) 설정을 많이 참조했지만 미묘하게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육둥이가 일본계 영국인입니다.
* 공미포 21,756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소른 50제
13. 너구리 (오소른) 엘녜이 님 신청 키워드.
1.
투다닥, 복도 가득 요란한 발소리를 울리며 뛰어가는 한 무리.
식당에서 나와 복도로 들어선 신입생 하나가 저를 스쳐지나가는 여섯 명의 학생들에 놀라 몸을 뒤로 뺐다.
망토를 휘날리며 뛰어가는 이들의 등을 보며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신입생이 제 어깨를 두드리는 손에 놀라 뒤돌았다.
“아, 형….”
“놀랐어?”
“응…. 저 사람들…, 얼굴이 다 똑같았어….”
혼을 놓은 사람처럼 망연히 중얼거리는 동생을 보며 형이라 불린 상급생이 피식 웃었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걸? 우리 학교에서 엄청 유명한 사고뭉치들이니까 말이야.”
하하, 하고 웃는 상급생을 올려다 보며 신입생이 눈썹을 찌푸렸다.
6년 전, 호그와트에 새로 입학한 신입생 가운데 유난히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이들이 있었다.
호그와트에서 보기 힘든 동양인의 외모, 그리고 복사한 것처럼 똑같은 얼굴이 여섯.
일본계 영국인, 마츠노 가의 여섯 쌍둥이가 연회장 단상 앞에 모였다.
신입생 명단이 적힌 스크롤을 들어올린 교수가 흠흠, 목을 가다듬고 한 명씩 호명하기 시작했다.
흥분한 얼굴, 긴장한 얼굴, 기대하는 얼굴로 단상에 오른 신입생들의 머리 위에 말을 하는 마법 모자가 올라가고 모자가 가장 알맞는 기숙사를 크게 외쳤다.
강당에 울린 기숙사명에 학생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교사가 육둥이를 불렀다.
“쵸로마츠 마츠노.”
육둥이 중 셋째, 쵸로마츠의 이름이 불리자 형제들의 눈이 쵸로마츠에게 쏠렸다.
긴장된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인 쵸로마츠가 단상에 올랐다.
준비된 의자에 앉은 쵸로마츠의 머리 위로 모자의 그림자가 올라왔다.
“음~, 이 녀석은 쉽군. 래번클로!”
모자의 외침에 쵸로마츠의 얼굴이 단번에 밝아졌다.
래번클로의 학생들이 모두 일어나 테이블로 뛰어오는 쵸로마츠를 맞이했다.
래번클로에 배정된 것이 어지간히 만족스러운지 쵸로마츠의 세모꼴 입에 미소가 가득 피었다.
“다음, 이치마츠 마츠노.”
두번째로 불린 것은 넷째, 이치마츠.
긴장하다 못해 덜덜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던 이치마츠가 흠칫 놀라며 어기적어기적 단상 위로 올랐다.
모자가 내려앉는 감각에 “힛,” 하고 비명을 삼킨 이치마츠가 불안한 눈으로 모자를 올려다보았다.
“흠…, 이 녀석은…, 여기? 아니야, 거기보단 여기가 더 좋겠군. 슬리데린!”
“…헤?”
“슬리데린이다, 꼬마.”
모자의 외침에 이치마츠의 얼굴이 파래졌다.
너무나 당연하게 모두 같은 기숙사가 될 것이라 생각했던 형제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서렸다.
래번클로 테이블에 앉아있던 쵸로마츠도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이치마츠를 걱정스럽게 응시했다.
아무리 기숙사 간 갈등이 묽어졌다고 해도 여전히 슬리데린은 학생들이 가장 기피하는 기숙사였다.
모자의 확인사살과 교사의 부름에 천천히 의자에서 엉덩이를 뗀 이치마츠가 혼이 나간 사람처럼 터덜터덜 슬리데린 쪽으로 걸어갔다.
선배들의 환대에도 이치마츠는 고개를 깊게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수선하게 시선을 서로 교환하며 이치마츠를 걱정하던 남은 형제들이 교사의 부름에 눈을 위로 들었다.
“쥬시마츠 마츠노.”
“네, 넵!”
건조한 교사의 부름에 손을 번쩍 들어 대답한 쥬시마츠가 삐걱이는 로봇처럼 단상에 올라 의자에 앉았다.
모자가 씌여졌는데도 시선을 이치마츠에게 고정한 쥬시마츠가 모자의 외침에 눈을 깜빡였다.
“그리핀도르!”
“에!?”
일어서 박수를 치는 그리핀도르 테이블로 걸어간 쥬시마츠가 남은 형제들에게 어색한 눈을 돌렸다.
여섯 중 셋이 각각 다른 기숙사로 뿔뿔히 흩어진 것에 육둥이 모두 당혹해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하루도 떨어진 적 없었던 형제들이 서로 다른 기숙사에 들어갔다는 것은 육둥이에게는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카라마츠 마츠노.”
이어서 불린 둘째, 카라마츠가 마른침을 삼키고 단상 위 의자에 앉았다.
다시 한 번 모자가 그리핀도르를 외치자 쥬시마츠의 얼굴이 한층 밝아졌다.
의자에서 일어나 후다닥 쥬시마츠 옆으로 뛰어간 카라마츠가 이어서 의자에 앉은 자신의 형,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오소마츠 마츠노, 의자에 앉으세요.”
“네….”
항상 활기차던 오소마츠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힘없이 대답했다.
모자가 머리 위로 올라오자 오소마츠의 얼굴이 잔뜩 굳었다.
“아—, 이 녀석도 저쪽으로 보내면 되겠군. 그리피,”
‘아냐, 슬리데린. 슬리데린으로…!’
“응~? 슬리데린? 그곳도 네게 어울리긴 한다만….”
‘이치마츠를 혼자 놔두기 싫어.’
“그래, 네 바람이 그렇다면. 슬리데린!”
강당에 울리는 기숙사명에 이치마츠를 비롯한 육둥이 모두가 놀랐다.
바란다고 정말로 슬리데린을 불러준 모자에게 놀란 오소마츠가 얼떨떨한 얼굴로 일어나 이치마츠 옆으로 걸어갔다.
당연히 오소마츠가 그리핀도르로 올 것이라 예상하고 자리를 비워두었던 카라마츠와 쥬시마츠가 멍청히 오소마츠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래번클로에 있던 쵸로마츠도, 남겨진 토도마츠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읏챠~.”
“….”
“에~, 뭐야—, 이치마츠. 내가 왔는데 그런 얼굴하고~. 엄청 웃긴 얼굴인데~.”
후핫, 하고 턱을 떨어뜨리고 저를 쳐다보는 이치마츠에게 웃어보인 오소마츠가 능청스럽게 맞은편에 앉은 선배와 인사를 나누었다.
“다음, 토도마츠 마츠노.”
“아, 네!!”
마지막으로 불린 막내 토도마츠는 모자를 다 쓰기도 전에 래번클로로 배정되었다.
쵸로마츠의 옆에 앉은 토도마츠가 쵸로마츠가 가벼운 미소를 나누고 단상으로 눈을 돌렸다.
육둥이를 마지막으로 신입생 기숙사 배정이 끝난 강당은 교사의 박수에 모습을 단번에 바꾸었다.
테이블 가득 피어난 음식들에 학생들이 모두 눈을 빛내며 군침을 흘렸다.
모두에게 존경받는 마법사이자 교장의 연설을 흘려듣는 육둥이의 눈에는 오직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음식만이 가득 맺혀있었다.
그리고 소란스러웠던 입학식 이후로 6년.
6학년이 된 육둥이는 학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2.
“자, 자~. 모두 어서 모이라구~!”
교수들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복도 구석.
씨익- 장난스러운 미소를 피운 오소마츠가 주변에 모여든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글자가 어지러이 적혀있는 작은 수첩.
입학 선물로 부모님이 선물해주었던 만년필을 꺼낸 오소마츠가 저를 보며 눈을 빛내는 학생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번 예선전은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 오~~래 전부터 라이벌이었던 두 기숙사라구~! 이번에 나오는 선수들은 양쪽 기숙사가 자랑하는 최정예! 막상막하라구~. 솔직히 이 카리스마 레전드 오소마츠님도 어디가 이길지 감—히 예측을 못하겠단 말이지~.”
“그러지 말고 솔직히 말해보지 그래?”
오소마츠의 능청에 학생 하나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 학생과 정면으로 눈을 맞춘 오소마츠가 얼굴을 찡긋이며 음흉한 미소를 피웠다.
“에~, 들켰네—. 실은 말이지~, 이번 경기에서 내 귀—여운 동생들이 나간단 말이지~. 근육 빵빵한 카라마츠가 몰이꾼! 모두의 예상을 뒤집는 발랄한 바보 쥬시마츠가 수색꾼! 자랑은 아니지만 내 예상엔 그리핀도르가 이길 가능성이 쪼~~끔 더 많달까?”
오소마츠의 미소가 옮은 학생들이 지그시 미소를 띄웠다.
주머니에서 꾸깃꾸깃 구겨진 지폐를 꺼낸 학생들이 오소마츠에게 내밀며 예상 승리팀을 외쳤다.
“그럼 난 그리핀도르에 걸래!”
“나도!”
“난 슬리데린. 이번에 슬리데린도 만만치 않다구!”
“나는 그리핀도르. 오소마츠 예상은 잘 맞으니까!”
“그만큼 꽝도 많잖아. 나는 슬리데린하고 그리핀도르 둘 다 걸거야!”
“에~? 안전빵으로 가기~? 뭐, 나는 상관 없지만.”
학생들의 이름과 그가 외친 기숙사명을 노트에 적어내려간 오소마츠가 “매번 감솨~.” 하고 웃으며 학생들의 돈을 모아 주머니에 넣었다.
“이참에 다음 경기까지 돈 걸 사람은 없어?”
오소마츠의 도발에 학생들 중 한둘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서로 속닥거리는 학생들을 보며 “없으면 말구~.” 하고 노트를 덮는 오소마츠에게 몇 학생이 급히 돈을 더 내밀었다.
이를 드러내고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가득 흘린 오소마츠가 “현명한 선택이야!” 하고 학생들을 북돋으며 돈을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잘~들 한다, 정말.”
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둥그렇게 모여 속닥이던 학생들의 뒤에서 들려오는 혀차는 소리에 오소마츠가 볼을 부풀리고 고개 들었다.
“뭐야, 쵸로 씌. 지금 나는 비지니스 중 이니까 방해하지 말고 가던 길 마저 가라구~.”
“비지니스 좋아하네! 도박이잖아, 그거!! 교수님들께 걸리면 어쩔려고 그래!?”
쵸로마츠의 핀잔에 오소마츠가 바람이 다 빠졌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손을 휘휘 휘저었다.
오소마츠의 신호에 쓴웃음을 흘린 학생들이 멀리 퍼져 복도를 빠져나갔다.
“정~말 잔소리쟁이라니까—. 이 아첨꾼(teacher’s pet)은.”
오소마츠의 한숨 섞인 한탄에 쵸로마츠가 늘어뜨린 눈썹을 추켜세웠다.
“누가 아첨꾼이라는 거야!! 나는 유급하지 않고 제대로 졸업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 뿐이라구!”
“아~, 그러셔요~? 그런 분이 시키지도 않은 교실 청소도 하고 말이지~?”
“내가 공부하는 곳을 좀 깨끗하게 만들겠다는데 왜 태클이야!”
“언제부터 네가 그렇게 깔끔했다고!?”
“오소마츠 형보단 백배 더 깔끔하거든!?”
“앙!? 해보자는 거냐!?”
오소마츠가 벌떡 일어나 쵸로마츠의 멱살을 잡자 쵸로마츠도 지지않고 팔에 걸쳐놓은 노트를 던졌다.
넥타이도 제대로 매지 않은 오소마츠의 멱살을 콱 붙잡아 노려보던 쵸로마츠가 귓가에 닿는 웃음소리에 작은 눈동자를 돌렸다.
“헤~, 동양에는 그런 게 다 있구나.”
“응응. 그래서 내가 이번에 ‘점성술’을 신청한 거라구~. 동양의 ‘점술’하고는 뭐가 다른지 알아보려구~.”
“나, 그 이야기 더 듣고 싶어!”
“그래~! 동양에는 ‘12간지’라는 게 있는데 말이야~,”
슬리데린을 상징하는 초록색이 섞인 교복을 입은 두 명의 금발 미녀와 떠들며 복도를 지나가는 것은 오소마츠와 쵸로마츠의 동생이자 육둥이의 막내 토도마츠였다.
오소마츠도 말을 걸어보지 못한 미녀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복도를 걸어 지나가는 토도마츠를 탁한 눈으로 보던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서로 멱살을 잡은 손을 팟, 하고 털어냈다.
“톳티-, 저 자시익~! 우리 기숙사에서 제일 예쁜 제인하고 이야기르 해!?”
“저 망할 동정 자식이…. 똥꼬털 태워버린다….”
이를 으득으득 갈며 태워버릴 듯이 쳐다보는 형들의 눈빛을 눈치챈 토도마츠가 애써 무시하고 발을 돌리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어이~! 톳티-!”
“어이~! 약은 톳티-!”
“…‘톳티-’라고 부르지 말랬지!!”
손을 좌우로 크게 흔들며 복도에 가득 울리도록 저를 부르는 형들의 목소리에 토도마츠가 결국 언성을 높이며 형들을 노려보았다.
갑작스럽게 버럭 소리를 지른 토도마츠의 옆에 있던 미녀들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을 본 오소마츠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톳티~, 너 작년에도 점성술 듣지 않았어~?”
“읏!? 시끄러워!”
“그거 들어면 여자 꼬시기 좋다고 했었잖아~, 응~?”
오소마츠의 고발에 이은 쵸로마츠의 폭로에 토도마츠가 주먹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새빨개진 얼굴로 형들에게 달려드는 토도마츠를 보며 수근거린 미녀들은 어느새 복도를 지나쳐 저 멀리 떠나가고 있었다.
“아~~! 정말—! 무슨 짓이야! 겨우 친해질 수 있었는데!!”
“이 횽아를 빼 놓고 그렇게 친해지면 섭하쥥~! 같은 기숙사인 횽아도 아직 말 한번 못했는데!!”
“어디서 먼저 여자친구를 만들려고?! 막내면 막내답게 형들을 기다려야지!”
“무슨 헛소리야!!”
토도마츠가 내지른 주먹을 이리저리 요령있게 피하며 신경을 긁는 오소마츠와 쵸로마츠의 말에 “이익~~!!!” 하고 성질을 낸 토도마츠가 발을 쾅쾅 굴렀다.
달려드는 토도마츠와 그를 피하는 오소마츠와 쵸로마츠, 세 명이 뒤엉킨 복도에 새로운 발소리가 다가왔다.
“응~? 무슨 일 인가, 브라더-.”
“오소마츠 형아~! 쵸로마츠 형아~! 톳티-!”
“‘톳티-’라고 부르지 말라구, 쥬시마츠 형!!”
밝게 웃으며 다가오는 쥬시마츠에게 억울하다는 듯이 외친 토도마츠가 카라마츠와 쥬시마츠 뒤로 쏙 몸을 숨겼다.
“카라마츠 형, 쥬시마츠 형! 오소마츠 형이랑 쵸로마츠 형 좀 말려줘~! 이유도 없이 나를 막 놀린다구!”
““하아!?””
“오소마츠, 너는 장남이라는 녀석이 동생을 놀리기나 하는 건가….”
“쵸로마츠 형아도!”
토도마츠의 발언에 호흡을 맞춰 외치는 오소마츠와 쵸로마츠에게 카라마츠와 쥬시마츠가 따끔하게 충고했다.
훗, 하고 카라마츠 뒤에서 입꼬리르 올리는 토도마츠를 불같은 눈으로 노려보던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괴롭힌 것이 아니라며 손발을 버둥대며 해명하기 시작했다.
“어찌되었든, 2대 1로 동생을 괴롭히는 것은 나쁘다.”
“응응!”
이야기를 전부 듣고도 자신을 나무라는 카라마츠를 답답하다는 듯이 쳐다본 오소마츠가 ‘메롱’ 혀를 내미는 토도마츠를 보며 이를 갈았다.
조금 전과 완전히 역전된 상황에 쵸로마츠도 이마에 힘줄을 세웠다.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대치하고 있는 다섯의 옆으로 비웃음 가득한 조롱이 흘러왔다.
“헤—, 슬리데린의 돈벌레랑 가디언이네~?”
“여-, 가디언 씨. 저번에 또 슬리데린 욕한 녀석을 패서 벌점 받았다며?”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시비를 거는 목소리는 슬리데린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것이었다.
‘가디언’이라는 별칭이 자신을 칭하는 것임을 이미 알고 있는 카라마츠가 씩- 미소지으며 검지를 들어 흔들었다.
“논논~, 스튜던트~? 슬리데린이 아니라 브라더-를 욕해서, 다.”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카라마츠를 보며 혀를 찬 불량배(bully)가 다시 그 쓸모없는 입을 놀리려는 순간, 슥- 하고 뒤에서 다가오는 검은 구름에 놀라 뒤돌았다.
“어이쿠…. 나름 눈치는 빠르네—? 무슨 이야기 중?”
히힛, 하고 웃으며 기척도 없이 다가온 이치마츠의 질문에 불량배 둘의 얼굴이 금방 사색이 되었다.
“있지, 그거 알아? 내가 실수로 마비가 되는 물약을 흘렸는데 말이야…. 어쩌면 네 부엉이가 그걸 핥아먹었을 지도 몰라…. 힛.”
조근조근 이치마츠가 내뱉는 말에 불량배들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렸다.
낮고 거친 목소리로 큭큭, 웃는 이치마츠가 또 어떤 무시무시한 말을 꺼내기도 전에 불량배들은 망토를 휘날리며 복도를 뛰어 빠져나갔다.
“여~! 이치맛쨩!”
“오소마츠 형, 이번에 도박한 거 걸리면 기숙사 점수 감점이니까. 부디 교수님들에겐 걸리지 말아줘.”
“오케~!”
“아니, 그 전에 못 하게 말리라고!!”
제 옆으로 다가오는 이치마츠를 기쁘게 반긴 오소마츠가 검지와 엄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며 흔쾌히 대답했다.
쵸로마츠의 태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치마츠와 잡담을 나누던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와 쥬시마츠를 보며 진지한 얼굴로 목소리를 깔았다.
“카라마츠, 쥬시마츠.”
“응? 뭔가? 형님.”
“응~?”
“이번 경기…. 꼭 이겨라! 나, 너네한테 전재산 걸었다구~!!”
항상 헤실헤실 미소를 갖추고 있던 얼굴을 굳힌 오소마츠에게 얼굴을 모은 카라마츠와 쥬시마츠가 오소마츠의 발언에 빙그레 웃으며 엄지를 들어보였다.
“물론이다! 어떤 위협이든 이 카라마츠가 지켜보이지!”
“나도! 꼭 골든스니치 잡겠슴닷~!”
“아니, 오소마츠 형은 슬리데린을 응원하라고…. 자기 기숙사 놔두고 뭐하는 건데….”
자신만만하게 외치는 카라마츠와 쥬시마츠를 보며 빵긋 웃는 오소마츠를 황당한 얼굴로 바라보는 토도마츠가 중얼거렸다.
거기에 또 쵸로마츠가 껴들어 태클을 걸고, 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괴롭히고, 토도마츠가 쥬시마츠를 챙겼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오소마츠가 즐겁게 웃었다.
비록 기숙사는 뿔뿔히 흩어졌어도 육둥이는 여전히 사이가 좋았다.
기숙사에 맞게 성격이 많이 변했어도 그들은 육둥이였고, 호그와트 역사에 오래 기록될 사고뭉치들이었다.
3.
부드럽게 빗자루를 비틀어 땅에 내려앉은 카라마츠가 빗자루에서 내리며 땀을 닦아냈다.
이번 예선에서 이긴 덕분에 결승까지 진출하게 되어 연습이 평소보다 배로 늘었다.
거친 숨을 다듬으며 하늘을 올려다본 카라마츠가 쥬시마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직 저 높은 상공에 떠 있는 쥬시마츠가 카라마츠에게 손을 마주 흔들더니 손가락으로 카라마츠 뒤를 가리켰다.
“카라마츠 형아~!! 뒤에~!”
하늘에 가득 퍼지는 커다란 쥬시마츠 목소리가 힘을 잃고 카라마츠 귀에 닿았다.
고개를 기울이고 짙은 눈썹을 찌푸린 카라마츠가 몸을 돌린 순간, 덥썩 품에 안겨오는 인영에 카라마츠가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형님.”
“카라마츄~! 들어봐아~! 약초학 교수님이 너무하다구우~~!”
울상이 된 얼굴로 제 품에 안긴 채 찡찡대는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또 무슨 일인가.” 하고 돌아올 대답을 예상하며 묻자 오소마츠가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들었다.
“저번에 돈 걸고 빗자루 경주하자고 했던 게 들켜서 약초학 교과서를 챕터 1부터 5까지 정리해오라고 했다구~! 너무하지 않아!? 빗자루 경주가 그렇게 나쁜 일!?”
“자업자득이다.”
“너무해~! 주말 다 반납해야 된다구우~.”
우는 소리를 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카라마츠가 통통 가볍게 오소마츠 머리를 두드렸다.
“오소마츠 형아~!”
언제 내려왔는지 빗자루를 휘두르며 오소마츠를 향해 뛰어온 쥬시마츠가 울상이 된 오소마츠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일 있슴까?”
“쥬시마츠우~!”
카라마츠에게서 쥬시마츠로 타겟을 옮긴 오소마츠가 쥬시마츠를 껴안고 다시 투덜대기 시작했다.
“교수님이 너무해애~!”
“하핫! 또 벌 받았슴까?”
“응~.”
“저번처럼 안 하면 될 일 아닌가.”
징징대는 오소마츠를 쥬시마츠가 달래는 모습을 보며 카라마츠가 차가운 말을 던지자 오소마츠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이번에 안 해오면 맨드레이크 화분 갈이를 도우라고 하셨다구~. 횽아는 싫어~!! 맨드레이크라니이~!”
허공에 대고 비통하게 외치며 우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함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짙은 눈섭을 더욱 찡그렸다.
쥬시마츠 품에서 떨어지지 않고 “우~.” 하고 신음하는 오소마츠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카라마츠가 저 멀리서 다가오는 동생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브라더-!”
“이 바보 장남은 또 왜 이러고 있어?”
“보나마나 또 벌 받았나보지. 참, 쥬시마츠 형!”
“응~?”
오소마츠를 보자마자 혀를 차는 쵸로마츠에게 혼잣말처럼 대답을 흘린 토도마츠가 해맑은 얼굴로 쥬시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등에 팔을 두른채로 저를 쳐다보는 쥬시마츠에게 다가간 토도마츠가 억지로 쥬시마츠와 오소마츠를 찢어냈다.
“이치마츠 형 어디있는지 알아?”
“이치마츠 형아?”
“응.”
오소마츠를 걸레짝 던지듯 카라마츠 쪽으로 쳐낸 토도마츠가 이치마츠를 찾자 쥬시마츠가 눈을 깜빡이며 커다란 물음표를 띄웠다.
옆에 있던 쵸로마츠도 “이치마츠는 왜?” 하고 묻자, 토도마츠가 나름 귀엽다고 생각하는 표정으로 툴툴댔다.
“변신술 낙제 맞을 것 같아서…. 이치마츠 형한테 노하우 좀 들으려고.”
“헤—.”
토도마츠의 설명에 건조한 신음을 흘린 쵸로마츠가 쥬시마츠를 보며 “그래서 이치마츠는 어디 있는데?” 하고 쥬시마츠에게 물었다.
“이치마츠 형아라면 금지된 숲으로 산책갔슴닷!”
“하아!? 금지된 숲으로!?”
“용케 거길 가네, 그 녀석….”
경악하는 토도마츠를 보며 작게 중얼거린 쵸로마츠가 온갖 인상이란 인상은 다 찌푸린 토도마츠의 어깨를 두드렸다.
“톳티-, 저기.”
“‘톳티-’라고 부르지 말,”
쵸로마츠의 부름에 팩 고개를 돌리고 화를 내려던 토도마츠가 쵸로마츠가 가리킨 방향으로 눈을 돌리며 말을 잃었다.
터덜터덜, 형제들 쪽으로 걸어오는 이치마츠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치마츠 품에 안긴 동물이 고양이가 아닌 것에 놀란 형제들이 다가온 이치마츠에게 물었다.
“뭐야? 그 생물은….”
쵸로마츠의 질문에 이치마츠가 머쓱하게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금지된 숲에서…, 날 따라왔어.”
““““하아!? 그걸 주워왔어!?””””
쥬시마츠를 뺀 형제들의 비명에 이치마츠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긴 건 너구리 같은데?”
어느새 동생들 곁으로 다가온 오소마츠가 눈을 깜빡이며 이치마츠 품에 안긴 동물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카라마츠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오소마츠의 말에 동의했다.
울지도 않고 오소마츠의 눈을 마주보며 귀를 쫑긋이는 동물의 모습에 쵸로마츠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교수님께 말씀 드리자. 생긴 건 너구리 같아도, 금지된 숲에 사는 녀석이면 보통 너구리는 아닐거야.”
“그렇겠지~.”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머리를 긁적이며 맞장구를 쳤다.
이치마츠는 형들의 대화를 들으며 짧은 눈썹을 구기고 제 품에 안긴 동물을 바라보았다.
‘꼬르륵—’
공기를 울리며 퍼지는 소리에 육둥이의 눈이 너구리(를 닮은 생물)에게 향했다.
조금 전까지 얌전히 이치마츠에게 안겨있던 너구리가 얼굴을 찡그리고 꼬리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배고픈가봐.”
토도마츠의 추측에 다시금 ‘꼬르륵~’ 하는 작은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핫, 배고픈 녀석을 그냥 보내긴 그렇고…. 뭘 좀 먹이고 내일 데려갈까?”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버릇처럼 검지로 코 밑을 문지른 오소마츠가 이치마츠의 등을 툭 쳤다.
오소마츠의 말에 하늘이 벌써 검게 물들었다는 것과 저들을 제외한 학생들은 모두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간 것을 눈치챈 형제들이 말없이 오소마츠의 뒤를 따랐다.
발이 빠른 쥬시마츠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길게 늘어난 소매 속에 음식을 숨겨 층계로 뛰어왔다.
꾸르륵 꾸르륵-, 배를 울리다못해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고 있는 너구리에게 한눈에 봐도 군침이 도는 음식들을 내주자, 이치마츠 품에서 뛰어내린 너구리가 음식에 얼굴을 박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내일 아침에 바로 교수님께 데려갈 거니까!”
“알고 있다궁~. 그렇게 잔소리할 필요 있어~? 쵸로 씌~.”
“원래는 발견한 즉시 데려갔어야 했다고!”
목에 핏대를 세운 쵸로마츠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해 고개를 돌린 오소마츠가 이치마츠에게 말했다.
“이치맛쨩~. 이 녀석, 어디서 재울 거야?”
“어…?”
“이치마츠가 오늘밤만 데려가면 되잖아.”
오소마츠의 질문에 이치마츠가 당황한 듯이 한심한 소리를 흘렸다.
대답을 하지 못하는 이치마츠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간단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무리야. 우리 기숙사 지하고….”
“그럼 누가 데려가서 재울 건데?”
잘게 고개를 젓는 이치마츠에게서 시선을 돌린 쵸로마츠가 형제들을 둘려보며 물었다.
그때, 너구리가 밥 먹는 모습을 관찰하던 쥬시마츠가 번쩍 손을 들었다.
“나나나나나!! 우리 기숙사에 데려가겠슴닷!!”
“오~! 굿 아이디어다! 쥬시마~츠!”
쾌활하게 웃는 쥬시마츠와 똥폼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카라마츠를 탁한 눈으로 바라본 쵸로마츠가 “아냐….” 하고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데려갈게. 쥬시마츠랑 카라마츠는…, 불안하니까.”
쵸로마츠의 말에 토도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서 “쵸로마츠!? 와이!?” 하고 카라마츠가 절규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깔끔하게 무시한 쵸로마츠가 그새 접시를 깨끗하게 비운 너구리를 안아 들었다.
“그럼 우리가 데려갈 테니까-. 내일 보자.”
“오~. 잘 자, 쵸로 씌~. 톳티-도~.”
“그-러-니-까—!! ‘톳티-’라 부르지 말라구! 형들도 잘 자~.”
형제들보다 커다란 눈동자를 험악하게 빛내며 협박하듯 낮게 조아린 토도마츠가 단번에 표정을 바꿔 상쾌하게 웃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단 몇 초만에 바뀌는 표정에 내심 감탄하며 손을 흔들어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를 배웅한 오소마츠가 이치마츠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 그러면 우리도 갈까~?”
“응…. 잘 자, 쥬시마츠.”
“안녕히 주무십쇼! 오소마츠 형아! 이치마츠 형아!”
“굿 나잇~! 마이 프레셔스 브라더-!”
“죽인다, 개똥마츠.”
“엩.”
평소와 같은 인사를 주고 받은 오소마츠와 이치마츠가 계단을 내려갔다.
슬리데린의 기숙사는 특이하게도 지하에 있었다.
축축하고 습한 기숙사를 이치마츠는 은근히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
오소마츠와 이치마츠가 멀어지는 것을 지켜본 카라마츠와 쥬시마츠도 서로 마주보고 웃으며 계단을 올랐다.
4.
“…형,”
“으음….”
“쵸로마츠 형!!”
어깨를 흔들며 자신을 부르는 토도마츠 목소리에 쵸로마츠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도 밤에 혼자 화장실을 가지 못하는 토도마츠가 또 같이 화장실 가달라는 이유로 깨우는 것이라 짐작한 쵸로마츠가 짜증을 내며 눈을 떴다.
“아, 왜….”
“너구리…, 없어졌어.”
“하아?!”
순식간에 잠이 달아나고 이불을 차고 벌떡 일어난 쵸로마츠가 토도마츠 침대 옆에 자고 있어야 할 너구리가 없는 것을 확인했다.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너구리의 모습에 사색이 된 쵸로마츠가 마찬가지로 시퍼런 얼굴을 한 토도마츠와 눈을 맞췄다.
“어, 디로 간 거야…?”
“내가 알 리 없잖아~~!!”
멍청히 중얼거리는 쵸로마츠에게 토도마츠가 울먹이며 외쳤다.
파하~,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하늘색 파자마 위에 카키색 외투를 걸쳤다.
“다른 녀석들도 얼른 깨우러 가자.”
레번클로 기숙사를 서둘러 나가는 쵸로마츠를 따라 토도마츠가 외투를 집어들고 뛰었다.
그리핀도르 기숙사 입구 앞에서 눈썹을 찌푸린 쵸로마츠가 머리 위로 검은 구름을 피웠다.
기세 좋게 그리핀도르까지 온 것은 좋으나 그리핀도르의 암호를 쵸로마츠는 알지 못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전에 쥬시마츠가 알려준 암호를 댔지만, 정기적으로 바뀌는 기숙사 암호가 맞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푹-, 한숨을 쉬고 초조하게 다리를 떨던 쵸로마츠가 딸깍 소리를 내며 열리는 기숙사 문에 놀라 뒷걸음질 쳤다.
“어? 마츠노다.”
“아, 안녕. 잠깐 카라마츠랑 쥬시마츠한테 볼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들어가~.”
쵸로마츠는 면식도 없는 그리핀도르의 학생이 흔쾌히 몸을 비켜주었다.
학교에서 제일 유명한 육둥이를 모르는 학생은 없었고, 특히 육둥이가 속해있는 기숙사 학생이라면 백이면 백, 육둥이에 대해 모두 알고 있었다.
기숙사 밖으로 나가며 친절하게 손을 흔든 학생에게 가볍게 눈인사하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간 쵸로마츠가 익숙하게 카라마츠와 쥬시마츠 방으로 발을 옮겼다.
“카라마츠! 쥬시마츠! 당장 일어나!!”
이불을 둘둘 감고 코까지 골며 자고 있는 쥬시마츠를 때려 깨운 뒤, 카라마츠의 이불을 단번에 뺏어 깨운 쵸로마츠가 방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너구리가 없어진 것을 알렸다.
“아! 크리스틴~!”
“어? 토도마츠다! 여긴 웬일이야?”
슬리데린 기숙사 입구에서 망설이던 토도마츠가 마침 기숙사로 들어가려던 여학생 하나를 붙잡았다.
빨간 머리에 매력적인 주근깨를 가진 여학생이 후후 웃으며 토도마츠에게 걸어갔다.
“하하-, 형들한테 볼일이 있어서…. 형들보다 크리스틴을 보러 왔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야.”
“후후, 여전히 말은 잘 하네~. 여기서 잠깐 기다려. 안에 존이 있을 테니까 말 전해줄게.”
“고마워~!”
어색하게 웃으며 과장된 한숨을 내쉰 토도마츠에게 잔잔한 미소를 보낸 여학생이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10분 정도 지나자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머리를 한 이치마츠가 크게 하품을 하며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뭔데….”
“너구리가 없어졌어!”
“하!? 잘 지키고 있었어야지!!”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 얼굴을 가까이 접근한 토도마츠의 속삭임에 이치마츠가 복도가 울리도록 큰 소리를 냈다.
좀처럼 언성을 높이지 않는 이치마츠의 외침에 학생들의 이목이 집중하자 이치마츠가 긴장해 몸을 움츠렸다.
“하아!? 내 탓이라는 거야!? 애초에 너구리를 주워온 건 이치마츠 형이잖아!!”
“칫, 여기서 기다려. 오소마츠 형 깨워서 데려올게.”
“빨리 깨워!”
“알고 있다고!”
토도마츠의 항의에 주변 학생들의 시선이 더 몰리는 것을 겁낸 이치마츠가 다시 목소리를 낮추고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시시각각 방향이 바뀌는 마법의 층계에 모인 육둥이가 심각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어, 어쩌지…? 쵸로마츠 형….”
울상이 된 토도마츠에 이어 쥬시마츠도 항상 벌리고 있던 입을 꾸욱 다물고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이치마츠는 말이 없었지만 평소보다 더 무겁고 어두운 오라를 풍기고 있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동생들을 보며 시선을 교환한 오소마츠와 쵸로마츠, 카라마츠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일단 우리 뿔뿔히 흩어져서 찾아보자. 분명 학교 안에 있을 거야.”
짝, 하고 박수쳐 분위기를 바꾼 쵸로마츠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덜컹, 하고 육중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한 층계를 육둥이가 모두 흩어져 하나씩 올랐다.
5.
학교 앞 잔디밭으로 나온 카라마츠가 차가운 아침 공기를 잔뜩 들이마시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침 수업에 늦어 잔디밭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학생들은 몇 보였지만, 갈색 몸을 가진 너구리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짙은 눈썹을 팩 찌푸린 카라마츠가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선배의 목소리에 발을 멈췄다.
“카라마츠! 혹시 오늘 빗자루 보관실에 갔었어?”
“엩. 아니, 간 적 없다만….”
그리핀도르 퀴디치 팀의 주장이 던진 질문에 카라마츠가 무고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 하고 작게 카라마츠의 대답을 곱씹은 주장이 근심 가득한 얼굴을 들어올렸다.
“곧 연습 시간인데 빗자루가 전부 없어졌어. 우리 것뿐만 아니라 다른 기숙사 것도. 혹시 어제나 오늘 아침에 수상한 녀석 보지 못했어?”
“아니, 본 적 없다.”
“하아~, 대체 누가 빗자루를 전부 가져간 건지…. 이래선 연습을 못하잖아. 그럼 카라마츠, 너도 빗자루가 있을 법한 곳이나 빗자루를 가져간 범인 좀 찾아봐.”
“아, 알겠다.”
어깨에 툭 손을 올렸다가 지나가는 주장의 모습에 카라마츠 미간에 맺힌 주름이 더 깊어졌다.
너구리가 없어진 것도 큰일인데, 빗자루까지 없어지다니.
대체 누가, 그리고 왜.
아무리 짱구를 굴려도 단서 하나 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쓰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흠….” 하고 목을 끓은 카라마츠가 건물로 향했던 발을 돌려 학교 뒤편에 있는 검은 호수로 향했다.
검은 호수의 비릿한 물냄새가 점점 진해지고, 카라마츠의 발걸음도 이유를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점점 빨라졌다.
거의 뛰다시피해 호수 근처에 도달했을 때, ‘퐁당’하고 검은 호수에 어울리지 않는 청명한 소리가 귀에 닿았다.
“아앗!? 네가 범인이었나, 리를 애니멀!!”
검은 호수의 부두 위에 잔뜩 쌓인 빗자루를 하나씩 호수에 버리고 있는 너구리를 향해 외친 카라마츠가 발을 더 빨리 놀렸다.
잔물결을 일으키는 호수를 재미있다는 얼굴로 쳐다보던 너구리가 뿅, 하고 위로 튀어올라 자신을 붙잡으려는 카라마츠의 손을 피했다.
관성의 법칙을 따라 너구리를 잡지 못하고 앞으로 기우는 카라마츠의 등을 밟은 너구리가 카라마츠 뒤에 안착함과 동시에 카라마츠가 크게 고꾸라졌다.
“크읏~!”
나무판자에 쓸린 턱을 붙잡고 몸을 일으킨 카라마츠를 보며 너구리가 배를 잡고 뒹굴었다.
킬킬거리는 너구리를 보며 짙은 눈썹을 씰룩인 카라마츠가 두 손을 번쩍 들고 너구리를 향해 눈을 빛내며 다가갔다.
“리를 애니멀~? 거기 얌전히 있어라. 스테이 컴-.”
조심조심 발소리를 죽여 너구리에게 다가간 카라마츠가 빠른 속도로 팔을 흔들었지만 켈켈 웃던 너구리가 튀어오르는 것이 더 빨랐다.
휙, 하고 튀어올라 카라마츠의 손을 피한 너구리가 다시 즐겁게 꼬리를 흔들며 카라마츠를 향해 웃음을 던졌다.
명백하게 저를 비웃는 너구리의 웃음에 이마에 힘줄 하나를 솟아낸 카라마츠가 콧김을 내뱉으며 화를 가라앉히고 망토에 손을 넣어 완드를 꺼냈다.
짙은 갈색에 나무결이 그대로 보이는 완드는 소나무에 용의 심장을 넣어 만든 것이었다.
형제들과 똑같은 완드를 꺼내 너구리에게 겨눈 카라마츠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마법 주문을 읊으려는 순간 너구리가 나뭇잎 하나를 꺼내 제 머리 위에 올렸다.
“응~? 그런 나뭇잎을 꺼내 뭘 하려는 거지~?”
가소롭다는 뜻을 담아 말꼬리를 올린 카라마츠를 향해 씨익- 장난스러운 미소를 띄운 너구리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 재주를 부렸다.
너구리가 땅에 발을 대자마자 ‘퐁’ 하고 하얀 연기가 일어나 카라마츠의 시야를 가렸다.
“무슨?!”
갑자기 피어난 연기에 놀라 서둘러 너구리가 서 있던 곳으로 달려간 카라마츠가 연기를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인영에 말을 잃었다.
“에…?”
살랑살랑, 좌우로 크게 꼬리를 너울거리며 연기를 쫓아낸 그것은 너구리가 아니었다.
붉은 비늘에 감싸인 유선형의 꼬리와 금붕어처럼 얇고 반짝이는 지느러미, 산호와 조개로 화려하게 머리를 장식하고 비단같은 소매를 흔들고 일으킨 상체는 뽀얀 피부가 훤히 드러나있다.
카라마츠 눈앞에 있어야 할 너구리가 아닌, ‘인어’가 다소곳이 땅에 앉아있었다.
검은 호수에 인어의 한 종류인 ‘실키’가 있다는 것은 호그와트 학생들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호그와트에 살고 있는 인어인 실키는 인간이 보기에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생물이었다.
카라마츠는 한번도 실키를 본 적 없었지만, 우연히 실키를 봤던 오소마츠에게 자세히 들어 그들의 외모를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읏,”
찰싹, 하고 지면에 지느러미를 살짝 내리치고 카라마츠에게 다가온 인어는 카라마츠가 알고 있는 (혹은 추측하고 있는) 모습과 정반대였다.
햇빛 하나 받은 적 없는 듯한 하얀 피부와 아름다운 곡선을 이룬 꼬리, 반짝반짝 빛나는 선명한 붉은 비늘과 그리고…,
“오, 소마츠…?”
자신의 단 하나뿐인 형, 오소마츠를 닮은 얼굴.
카라마츠의 부름에 눈을 가늘게 뜨고 배시시, 앙큼한 미소를 흘린 인어가 한 발자국 더 카라마츠에게 접근했다.
볼에 옅은 홍조를 피우고, 방금 물에서 올라온 것같은 촉촉한 피부를 뽐내며 다가오는 인어의 모습에 카라마츠는 당황하며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곧 카라마츠 코 앞까지 다가온 인어는 카라마츠 어깨에 손을 올리고 꼬리에 힘을 주어 몸을 위로 올렸다.
카라마츠와 비슷한 높이까지 몸을 올린 인어가 상글상글 웃으며 카라마츠에게 몸을 비볐다.
어깨에 올렸던 손을 카라마츠 목에 감아 깍지끼어 매달리듯 카라마츠에게 몸을 가져간 인어의 미소와 눈을 조금만 내리면 보이는 하얀 피부, 상체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탓에 보이는 가슴과 그 가운데 자리잡은 분홍빛 돌기까지.
모든 것이 카라마츠를 번민에 빠뜨리다 못해 작은 컵에 넣고 마구잡이로 휘저은 것 마냥 이성을 위태롭게 흔들었다.
꼬리를 느긋하게 흔들며 카라마츠 뺨에 제 볼을 비빈 인어가 카라마츠 귓가에 작게 “카라마츄~.” 하고 오소마츠와 똑같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결국 욕망의 허리케인에 휩쓸린 카라마츠가 코피를 내뿜으며 장렬하게 쓰러졌다.
행복한 얼굴로 쓰러진 카라마츠를 보며 눈을 찡긋이고 크게 웃은 인어가 다시 ‘퐁’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에 휩싸였다.
연기가 사라지자 인어는 온데간데 없고 다시 너구리가 나타나 쓰러진 카라마츠의 배를 밟고 지나가 호숫가를 빠져나갔다.
6.
혹시 아직 기숙사에 숨어있는 것이 아닐까.
자기나 토도마츠가 못 보고 지나쳤을 가능성을 좇아 다시 기숙사로 돌아간 쵸로마츠가 쿠션과 이불을 들썩이며 너구리를 찾았다.
커다란 캐리어를 열어보아도, 이불을 아무리 들어올려도 너구리의 털 하나 보이지 않았다.
쯧, 하고 짜증 섞인 혀를 찬 쵸로마츠가 벽난로가 타오르고 있는 휴게실로 나왔다.
같은 기숙사 학생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지만, 이치마츠가 멋대로 금지된 숲에서 주워온 정체도 모르는 생물을 함께 찾아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아~, 한숨을 내쉬고 휴게실을 샅샅이 찾아보던 쵸로마츠가 여학생 방 쪽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허리를 폈다.
“꺄악~!!!”
탁탁탁, 요란한 발소리를 울리며 여학생 방에서 계단을 내려온 것은 쵸로마츠가 남몰래 연모하던 ‘레이카’였다.
“레, 레이카!? 무슨 일이야!?”
“저, 저기에!”
분홍빛 머리칼을 흩날리며 휴게실에 뛰어들어온 레이카가 쵸로마츠 뒤로 몸을 숨기고 계단을 내려오는 한 생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여학생 방 쪽에서 나온 너구리가 음흉한 얼굴로 레이카를 쫓아 계단을 내려왔다.
“너!? 어디 있었어! 거기 가만히 있어!!”
레이카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줄 기회라는 것을 깨달은 쵸로마츠가 과장된 몸짓으로 완드를 꺼냈다.
형제와 똑같은 33cm 소나무 완드를 휘두르며 마비 주문을 외우려던 쵸로마츠가 ‘퐁’ 하고 피어난 연기에 놀라 눈을 깜빡였다.
연기 너머로 드러난 너구리의 모습에 쵸로마츠의 동공이 경악에 물들며 동그랗게 커졌다.
쵸로마츠 뒤에 숨은 레이카와 같은, 그리핀도르의 여학생 교복을 입은 오소마츠가 너구리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다.
어버버, 입을 벙긋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는 쵸로마츠에게 가살궂게 웃은 오소마츠가 양손을 슬쩍 들어올렸다.
밖에 나가서 너구리를 찾고 있어야 할 오소마츠가 왜 그리핀도르 기숙사에 들어와있는지는 몰라도 오소마츠가 입은 여학생 교복에 넋이 나간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붉은색과 노란색이 섞인 줄무늬 넥타이 위에 회색 니트를 입고, 짙은 색의 치마를 입은 오소마츠의 다리는 무방비하게 일자로 뻗은 다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무릎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치마자락의 끝을 손가락에 건 오소마츠가 얄궂게 웃으며 손을 위로 올렸다.
자연스럽게 치마자락도 손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사락사락, 천과 맨살이 스치는 소리를 내며 무릎 위, 허벅지로 올라간 치마 끝에 쵸로마츠가 인중을 길게 빼고 숨을 들이마셨다.
항상 덜렁대는 탓에 상처가 가득했던 둥근 무릎과 적당히 살이 붙은 하얀 허벅지에 쵸로마츠가 본능을 따라 몸을 굽혔다.
못 볼 것을 본 것 처럼 자신을 어이없이 쳐다보는 레이카의 시선도 눈치채지 못한 채, 슬슬 올라가는 오소마츠의 치마자락을 따라 점점 더 몸을 아래로 내린 쵸로마츠가 상승을 멈춘 손을 원망스럽게 응시했다.
속옷이 보일 것처럼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손을 멈춘 오소마츠가 실실 웃으며 허리를 흔들자, 치마의 주름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응응음음음~~!!!”
“…대~박.”
세모꼴의 입을 더욱 올리고 흔들리며 보일듯 보이지 않는 그 너머에 신음하는 쵸로마츠를 보며 레이카가 작게 중얼거렸다.
가슴께에 모은 주먹을 위아래로 흔들며 안달내는 쵸로마츠의 모습에 야릇한 미소를 피운 오소마츠가 다시 손을 움직인 그때,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쵸로마츠 얼굴에 티슈곽이 박혔다.
소파 옆 테이블에 있던 티슈곽을 재빠르게 집어 던진 오소마츠가 씩- 웃더니 ‘퐁’ 하는 소리와 함께 너구리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눈을 빙빙 돌리며 기절한 쵸로마츠를 킬킬 비웃은 너구리가 여유롭게 레이카의 다리 사이를 지나가 그리핀도르 기숙사를 빠져나갔다.
7.
아침부터 육둥이가 흩어져 너구리 찾기를 했건만, 점심 시간이 가까워진 지금도 그 누구 하나 수확을 거두지 못했다.
층계와 복도를 오가며 너구리를 찾던 쥬시마츠도 너구리의 꼬리도 찾지 못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쉰 쥬시마츠가 복도 창밖에 높이 솟은 태양을 바라보았다.
하늘 가장 높은 곳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내려주는 해를 본 순간, 뱃고동이 울렸다.
꼬르륵 꼬르륵~, 피리를 부는 것처럼 연달아 울리는 소리에 쥬시마츠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형제가 없음을 확인한 쥬시마츠가 연회장으로 발을 돌렸다.
잠깐 밥 좀 먹고 온다고 너구리가 갑자기 땅으로 꺼지진 않을 것이다.
맛난 점심 식사를 할 생각에 입안에 도는 군침을 삼킨 쥬시마츠가 연회장 안에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모여있는 학생 무리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왜 아무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가, 그 궁금증은 연회장 안을 들여다본 순간 풀렸다.
테이블에 올라가 있어야 할 음식들이 접시 째로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아!!”
이게 무슨 일이냐, 수근대는 학생들 사이에서 쥬시마츠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높였다.
학생들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이에 떠 있는 음식들 사이로 자유롭게 부유하며 요리를 집어먹는 너구리의 모습에 쥬시마츠는 온몸의 땀샘에서 땀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소매로 훔쳐낸 쥬시마츠가 허겁지겁 학생들을 헤치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타고난 괴력으로 커다란 연회장 문을 쾅! 닫자, 문 너머에서 학생들이 소근거리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쥬시마츠를 알고 있는 학생들이 쾅쾅 문을 두드리며 쥬시마츠를 부르는 가운데 손가락을 꿈틀대며 준비태세를 갖춘 쥬시마츠가 허공에 떠 있는 너구리를 노려보았다.
“우럇!!”
기합을 외치며 테이블을 차고 뛰어오른 쥬시마츠가 너구리가 떠 있는 공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저를 향해 날아오는 쥬시마츠를 본 너구리가 당황하며 허공에 다리를 뻗어 바삐 움직였다.
날개를 파닥이는 새처럼 다리를 힘껏 휘저은 너구리가 공중에서 이동해 쥬시마츠의 손아귀를 피했다.
“다시 한 번~!!”
큰 소리를 내며 바닥에 착지한 쥬시마츠가 쉬지 않고 다시 다리를 스프링처럼 튕겼다.
테이블을 차고 올라가 공중에 있는 너구리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너구리는 아쉽게 쥬시마츠의 손을 빠져나갔다.
테이블과 의자, 벽까지 차면서 자신을 붙잡으려는 쥬시마츠를 놀리는 것처럼 너구리가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 움직이며 아직도 부유하고 있는 음식들을 집어 먹었다.
냠냠, 볼을 가득 부풀리고 행복한 얼굴로 혼자 요리를 만찍하는 너구리의 모습에 “익!” 하고 눈썹을 찌푸린 쥬시마츠가 다리를 접어 몸을 작게 움츠렸다.
“캐논 볼~!!!”
외치며 단번에 다리를 핀 쥬시마츠가 빠른 속도로 너구리를 향해 직선으로 날아갔다.
여기까진 닿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던 높이까지 껑충 뛰어오른 쥬시마츠의 모습에 당황한 너구리가 허둥지둥 나뭇잎 하나를 꺼내 머리 위에 올렸다.
“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요정으로 변한 너구리에 쥬시마츠가 공중에 멈췄다.
따로 마법을 부린 것도 아니지만 날아가던 상태 그대로 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멈춘 쥬시마츠가 멍청히 요정을 응시했다.
초콜릿을 닮은 작은 날개를 파닥이며 둥글게 부푼 치마를 흔드는 붉은 머리의 요정은, 육둥이의 장남 오소마츠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같은 얼굴이 여섯있는 육둥이지만, 저마다 얼굴에서 보이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하나로 묶은 머리를 동그랗게 말아올린 작은 요정이 생긋 웃으며 아기보다 더 조그만 손을 입가에 가져갔다.
“chu~♡”
“에엣!?”
작디작은 손을 제 입가에 가져가 쪽, 하고 귀여운 키스를 날린 요정 덕분에 쥬시마츠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바닥에 추락했다.
쾅! 소리를 내며 정면으로 바닥에 추락한 쥬시마츠를 보고 큭큭 잘게 웃음을 흘린 요정이 훨훨 날아 연회장에 굳게 닫힌 문틈으로 쏙 빠져나갔다.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리 없는 학생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인적이 드문 복도까지 나온 요정은 다시 ‘퐁’하는 소리를 내며 너구리의 모습으로 돌아와 운동장을 향해 뛰어 나갔다.
8.
“대체 어디로….”
인상을 쓰고 운동장을 걷던 이치마츠가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자신을 졸졸 따라와 금지된 숲에서 나온 너구리.
너구리가 없어진 것에 제일 큰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치마츠였다.
답지않게 필사적으로 온 학교 건물을 해멨지만, 너구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제일 마지막으로 미루었던 바깥까지 나왔지만 여전히 너구리 찾기는 소득이 없었다.
휴~, 한숨을 내쉰 이치마츠가 다시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작은 비명소리가 귀에 닿았다.
발을 멈추고 잘못 들은 것인가 확인하기 위해 귀를 기울인 이치마츠에게 다시 한번 얇고 높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항상 반쯤 감고 있던 눈을 크게 뜬 이치마츠가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헐레벌떡 뛰어갔다.
고막을 울리는 맨드레이크의 비명소리가 울리는 온실 앞에 선 이치마츠가 숨을 들이마시고 온실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고막을 찢을 듯이 들려오는 맨드레이크의 비명에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을 뻔한 이치마츠가 제 허벅지를 꼬집고 고개를 크게 흔들었다.
약초학 수업에 쓸 맨드레이크 묘목을 하나씩 화분에서 뽑던 너구리가 온실 안으로 들어온 이치마츠를 그제야 눈치채고 움찔 몸을 떨었다.
엉망으로 바닥에 떨어진 화분과 흙, 그리고 사람을 기절시키는 비명을 지르는 맨드레이크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이치마츠의 귀와 온실 전체를 울리는 비명에 이치마츠가 재빨리 주머니에서 구겨진 티슈를 꺼내 귓구멍에 밀어넣었다.
눈썹을 찌푸리는 너구리에게 히힛, 하고 음험한 미소를 던진 이치마츠가 맨드레이크를 밟지 않도록 조심조심 발을 옮겨 너구리에게 접근했다.
어느정도 가까워지자 이치마츠가 날쎄게 몸을 날렸지만 손에 들고 있던 맨드레이크 묘목을 이치마츠에게 던진 너구리가 펄쩍 뛰어 도망쳤다.
너구리가 던진 맨드레이크를 혹시나 상처라도 날까, 부드럽게 화분에 넣어준 이치마츠가 날렵한 몸놀림으로 너구리가 나가기 전에 온실 입구를 막아섰다.
“히히힛, 이제 갈 곳은 없어. 얌전히 이리로 오라구~.”
승리의 미소로 말하는 이치마츠를 분한 듯이 노려보던 너구리가 나뭇잎을 꺼내 퐁, 하고 연기를 내뿜었다.
“에…? 무슨,”
갑자기 피어난 연기에 이치마츠가 영문을 모르고 얼굴을 찌푸리자, 연기 속에서 “냐~.” 하고 고양이 울음소리가 튀어나왔다.
“…헤?”
연기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연갈색 줄무늬의 고양이 옷을 뒤집어쓴 오소마츠였다.
동물 잠옷처럼 헐렁한 고양이 옷을 뒤집어쓴 모습으로 꼬리를 살랑이며 다가오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기겁한 이치마츠가 말을 더듬었다.
“나, 나는 그런 소, 속임수에 안 속아!”
억지로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외쳤지만, 파들파들 떨리는 입술처럼 이치마츠의 목소리도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치마츠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빵긋-, 웃으며 다가온 오소마츠가 이치마츠의 다리에 고양이처럼 몸을 비볐다.
골골골, 고양이가 가르랑 거리는 소리까지 내며 이치마츠의 다리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모습에 이치마츠가 두눈을 질끈 감고 신을 찾았다.
‘오—! 이런 젠장, 신이시여~!!! 아냐, 이건 고양이 탈을 쓴 오소마츠 형이 아니야. 저건 그 너구리다…. 속지 말자! 너구리라구, 저건!!’
염불을 외는 승려처럼 마음을 가다듬은 이치마츠가 짐짓 화난 표정으로 오소마츠를 들어올렸다.
“오소마츠 형 얼굴을 해도 네가 너구리인거 알고 있어!”
선언하는 이치마츠를 보며 활짝 웃은 오소마츠, 아니 너구리가 할짝, 작은 혀를 내밀어 이치마츠의 코끝을 핥았다.
“헤…?”
너구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지금은 오소마츠의 얼굴. 제 코를 핥고 수줍게 웃는 오소마츠를 보며 굳어버린 이치마츠가 버둥거리는 너구리를 놓치고 말았다.
고양이처럼 몸을 돌려 발부터 착지한 너구리가 쌩- 하니 이치마츠를 지나쳐 온실 문을 열고 도망쳤다.
남겨진 이치마츠는 그저 망연자실한 얼굴로 멀어지는 너구리를 바라보았다.
9.
계단을 올라 수업이 있는 교실로 향하던 토도마츠가 고개를 돌려 아래를 응시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쳐다보았지만 역시나 너구리는 없었다.
찾다찾다 도저히 찾을 수 없자 진작에 찾는 것을 포기한 토도마츠는 시간표대로 수업에 참석했다.
남은 것은 점성학 수업뿐. 남은 형제들이 무사히 너구리를 찾기를 빌며 토도마츠가 저를 부르는 동급생을 따라 교실에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앉아 수업 시작 전 가벼운 잡담을 나누던 토도마츠가 교실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교탁으로 돌렸다.
교실로 들어온 교수님이 교탁으로 걸어오는 그 짧은 시간에 토도마츠의 얼굴이 변했다.
‘저 녀석이 왜 저기 있어!?’
교탁 아래 숨어있던 너구리가 빼꼼 얼굴을 내민 것을 토도마츠가 목격하고 입을 벌렸다.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더니 교실에 숨어 있었던 것인가, 눈썹을 찌푸린 토도마츠가 너구리가 들어올린 무언가에 놀람을 경악으로 바꾸었다.
빨간 방석 같이 생긴 그것을 교수님이 앉을 의자에 살포시 내려놓은 너구리가 킬킬대며 다시 교탁 밑으로 몸을 숨겼다.
토도마츠는 너구리가 의자에 놓은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머글 세계에 놀러 갔을 때 오소마츠가 장난으로 샀던 그것, 바로 방구 방석. 집에서 형제들을 상대로 오소마츠가 몇 번이고 사용했던 방구 방석의 위력을 토도마츠는 끔찍한 경험을 통해 배웠다.
교수님이 그대로 의자에 앉는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한 결과에 토도마츠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교수님을 불러 세웠다.
“교수님! 그, 그러니까….”
“네? 무슨 일이죠? 마츠노 학생.”
“저, 저기…. 도, 동양에는 12간지라고 해서 한 해를 대표하는 동물이 있는 걸 아시나요? 그 동물이 대표하는 연도에 태어났다는 것으로 점을 치기도 하는데….”
“호오~, 그것 참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마츠노 학생이 자료를 준비해준다면 다음 수업시간에 발표를 부탁해도 될까요?”
교수님을 멈춰 세우겠다는 목적만으로 횡설수설 떠들던 토도마츠가 재빨리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건 아니구요…,”
“아쉽게도 오늘은 이미 수업 내용이 정해져 있으니 다음에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죠.”
생긋 웃으며 토도마츠에게 강요아닌 강요를 한 교수님이 다시 교탁으로 걸어갔다.
“교수님! 그리고 동양에는 별자리에 따라서 하루의 운세를 점치는 것도,”
“그건 서양도 마찬가지랍니다, 마츠노 학생.”
어떻게든 최악의 사태는 막아야한단 생각에 늘어놓은 이야기를 부드럽게 멈춘 교수님이 교탁 앞에 섰다.
“자, 오늘 수업을 시작할까요?” 하고 인자하게 웃으며 의자에 엉덩이를 내리는 교수님을 보며 토도마츠가 고개를 푹 숙였다.
엉덩이가 의자에 내려앉기까지 1초도 걸리지 않는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엎드려 얼굴을 파묻은 토도마츠에게 현실은 너무나 잔인했다.
“뿌우웅——!!”
교실에 크게 울려 퍼지는 소리에 이어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가 방석에서 새어나왔다.
계란을 썩인 듯한 냄새에 학생들 모두 얼굴을 찡그리고 코를 붙잡았다.
진실을 알고 있는 것은 토도마츠뿐. 교실에 있는 학생 전원은 교수님이 실수를 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 내에서 괴짜로 뽑히는 교수님은 얼굴을 붉히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킁킁, 허공에 코를 올리고 냄새를 맡은 교수님이 심각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죽음…! 죽음의 냄새다!! 모두 지금 당장 이 교실을 나가세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 교수님 뒤로 의자가 넘어지면서 쿠당탕 하고 소음을 만들어냈다.
얼이 빠진 토도마츠를 놔두고 학생들이 교수님의 외침에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빠져나갔다.
학생들이 모두 빠져나갔는지도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공황 상태에 빠진 교수님가지 교실을 나가고 남은 것은 토도마츠와 너구리 그리고 지독한 냄새뿐이었다.
“후, 후후후후….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붙잡기나 하자….”
자포자기한 눈으로 마른 웃음을 흘린 토도마츠가 자리에서 일어나 완드를 들고 교탁으로 걸어갔다.
교탁 아래서 일련의 사건으로 모두 지켜보고 배를 잡고 웃던 너구리가 토도마츠가 다가오는 발소리에 귀를 쫑긋거렸다.
교탁 위로 얼굴을 빼낸 너구리와 눈이 마주치자 토도마츠가 헤헷, 하고 웃으며 웃는 얼굴인 채로 완드를 들어올렸다.
완드를 부드럽게 휘두르며 주문을 외는 찰나, ‘퐁’ 하는 소리와 함께 너구리가 모습을 바꾸었다.
“…하아!? 너구리 주제에 마법도 쓰는 거!?”
적절한 태클을 걸며 놀라는 토도마츠 앞에 연분홍색 토끼 귀가 돋아난 오소마츠가 해맑게 웃으며 다가왔다.
“게다가 왜 오소마츠 형으로 변한 건데!!”
짜증섞인 비명을 내지르며 완드를 고쳐 잡은 토도마츠가 저에게 슬슬 가까이 오는 너구리에게 마법을 겨누었다.
“잠~깐만 잠들자~.”
대상을 깊은 수면에 빠지게 만드는 주문을 읊으려던 토도마츠가 행동을 멈추고 저를 빤히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눈빛에 목소리를 멈췄다.
“뭐, 뭐야!? 그렇게 귀엽게 바라본다고 내가 봐줄 것 같아! 어림도 없어!”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동그란 눈을 더욱 크게 만들어 저를 빤히 쳐다보는 너구리의 얼굴은 토도마츠가 한번도 본 적 없었던 표정을 한 오소마츠의 얼굴이었다.
그 애처롭게 반짝이는 초롱초롱한 눈빛에 이를 갈며 “으으윽~~~!!” 하고 번민하던 토도마츠가 푹-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완드를 내렸다.
“하아~~, 진짜…. 그렇게 귀여운 건 반칙이라구…. 물론 나만큼 귀엽진 않지만!”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기울인 토도마츠가 몸을 돌려 교실을 나섰다.
남겨진 너구리가 어디로 가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묵묵히 학생들이 먼저 걸어내려간 계단을 밟아 아래로 향했다.
10.
한 자리에 모인 동생들을 쭉— 둘러보며 오소마츠가 어이없는 한숨을 떨어뜨렸다.
“너네 전부 놓쳤다고?”
황당해 묻는 오소마츠에게 동생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왜 놓친 건데?”
순수하게 이유를 묻는 오소마츠에게 동생들이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당사자인 오소마츠에게 놓친 이유를 솔직하게 설명할 용자는 없었다.
시선을 피하고 휘파람이나 불며 딴짓을 하는 동생들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린 오소마츠가 이해되지 않는단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 됐어. 무튼 빨리 그 녀석을 잡지 않으면 큰,”
말을 마치기도 전에 복도로 나온 너구리와 오소마츠의 눈이 마주쳤다.
흠칫 놀래며 천천히 발을 뗀 너구리가 오소마츠와 정반대 방향으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
“앗!! 이 녀석! 거기 서어~!!!”
너구리를 뒤쫓는 오소마츠를 따라 동생들도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복도를 빠르게 달리는 너구리를 쫓아 육둥이가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우당탕탕하는 커다란 발소리가 학교 전체에 울려퍼지고 곧 교수들이 소음이 일어나는 복도로 몰려들었다.
이리저리 장애물을 잘 피해가며 도망치는 너구리를 쫓으며 육둥이도 몸을 숙이고, 물건을 뛰어넘고, 넘어지고 하며 잔상처를 입었다.
그렇게 한참을 쫓다가 오소마츠가 방향을 바꿔 정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오소마츠를 말릴 새도 없이 너구리를 뒤쫓던 형제들이 모퉁이를 돈 순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며 호통을 치는 교수들에게 막혀 너구리를 놓치고 말았다.
잔뜩 화가 난 교수진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할 수도 없어 말도 안되는 번명을 만들어내며 식은땀을 흘리는 육둥이의 모습을 본 너구리가 킬킬 웃으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아하!! 이리로 올 줄 알았지!”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통로를 통해 너구리가 올 장소를 예측해 먼저 숨어있던 오소마츠가 훅 모습을 드러냈다.
너구리가 갈 길을 막고 완드를 꺼내든 오소마츠가 히히히, 하고 웃으며 너구리에게 말했다.
“이제 포기해~. 이 카리스마 레전드 오소마츠님을 따돌릴 수는 없다구~.”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오는 오소마츠의 위협에 너구리가 털을 곤두 세우고 으르렁대며 뒷걸음질 쳤다.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가면 너구리도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침묵 속에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감이 흐르고, 오소마츠가 눈을 깜빡이는 틈을 탄 너구리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똑바로 곧게 뻗은 복도를 뛰던 너구리가 유연하게 방향을 선회해 저를 뒤쫓는 오소마츠의 다리 사이로 빠져나가며 혀를 길게 내밀었다.
오소마츠 뒤로 달려가는 너구리를 보며 이를 간 오소마츠가 다시 뒤를 따랐다.
복도를 달리고 또 달려 모퉁이가 나오자 너구리가 모퉁이로 쏙 모습을 감췄다.
“어딜…!”
벽에 손을 집어 너구리를 따라 속도를 줄이지 않고 모퉁이를 돈 오소마츠가 바닥에 떨어진 금화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조금 전까지 바로 앞에 뛰어가던 너구리는 보이지 않고 바닥에 흩어진 금화에 눈을 깜박이던 오소마츠가 씨익-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만면에 피우고 금화 하나를 들어올렸다.
“가짜 금화로 이 오소마츠 님은 못 속이지~!”
금화가 진짜인지 확인하려는 양 금화를 이 사이에 낀 오소마츠가 금화를 콱 물기도 전에 ‘퐁’ 하는 소리를 내며 금화가 너구리로 모습을 바꾸었다.
“역시~!”
손에 잡힌 너구리를 보며 거만한 미소를 피운 오소마츠가 땅에 떨어진 금화를 주우려고 허리를 숙이자, ‘퐁’ 소리를 내며 금화가 푸른 나뭇잎으로 바뀌었다.
“…이것도 가짜였냐….”
힘없이 중얼거리는 오소마츠를 보며 너구리가 즐겁게 꼬리를 흔들었다.
버둥대며 오소마츠의 손에서 빠져나가려는 너구리를 꼭 붙잡은 오소마츠가 “용서 못한다.” 하고 이를 갈며 복도를 빠져나왔다.
“오소마츠 마츠노 학생.”
“히익!?”
복도를 나온 오소마츠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험악한 얼굴을 한 교수진과 교수진에게 이미 붙잡힌 동생들이었다.
낡고 허름하고 축축한 지하실에서 육둥이는 앞에 내밀어진 종이와 깃펜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소마츠가 붙잡은 너구리를 데려간 교수진은 멋대로 정체불명의 생물을 학교 안에 들인 경위와 너구리를 잡겠다고 온 학교 안을 들쑤신 과정을 모두 낱낱히 빠짐없이 쓰라는 벌을 내렸다.
비밀이나 감추는 것 없이 전부 쓰라는 교수의 말에 동생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오소마츠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그것만은 봐 달라고 비는 동생들을 어리둥절한 얼굴로 응시했다.
결국, 육둥이가 쓴 경위서는 교수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너구리를 쫓겠다고 육둥이가 온 학교 안을 돌아다니고, 또 그동안 너구리가 벌인 사건들은 빠른 속도로 학교 안에 퍼졌다.
또 육둥이가 거대한 사고를 쳤다고, 학생들이 받아들일 무렵 너구리의 정체를 밝혀낸 교수들이 남몰래 육둥이를 불렀다.
“너희가 붙잡은 생물의 정체를 알아냈다.”
““““““헤….””””””
처음부터 너구리의 정체는 안중에도 없었던 육둥이가 건조하게 대답하자, 흐흠- 하고 헛기침을 한 교수가 말을 이었다.
“마법 생물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일본의 요괴 중 하나인 ‘바케너구리’ 라는 생물이라더구나. 신고되지 않은, 밀수입된 생물로 전문가에게 맡겨 일본의 마법학교인 ‘마호토코로’에 보내기로 했다.”
“네—, 교수님~! 바케너구리가 뭔데요?”
교수의 설명에 오소마츠가 손을 들고 물었다. 후- 하고 한숨을 내쉰 교수가 육둥이를 쭉 둘러보며 말했다.
“너희도 다 봤겠지만,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너구리라고 한다.”
“헤~, 역시 보통 너구리는 아니었네—.”
교수의 말에 태평하게 머리를 긁적인 오소마츠가 이어진 교수의 말에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너희가 쓴 경위서 말인데,”
뒷말을 흐리는 교수를 보며 오소마츠를 제외한 동생들이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잔뜩 긴장한 채로 뻣뻣하게 섰다.
오소마츠만이 그런 동생들을 보며 이유도 알지 못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너희는…, 장남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구나.”
뭔가를 포기한 듯한 교수의 혼잣말 같은 발언에 동생들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여전히, 오소마츠만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푸쉬쉬- 연기를 내뿜을 정도로 시뻘겋게 달아오른 동생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요즘 일도 바빠지고 여유가 없다보니 달아주시는 댓글에 답글을 달 기력이 없네요...ㅠ 그래도 남겨주시는 댓글은 모두 소중히 잘 보고 있습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소마츠상 > 오소른 50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7. 사랑의 기적 - [카라오소] 일어나지 않는 기적 (2) | 2018.05.14 |
---|---|
05. 뫼비우스의 띠, 고리 - [카라오소] 그런데 뫼비우스가 누군가 (2) | 2018.04.24 |
1. (물리적)추락 - [올캐러] 깊이, 가라앉다 (10) | 2018.01.14 |
50제 목록 (+링크) (13) | 2018.01.13 |
19. 민감한 몸 - [카라오소] 민감? 둔감? (R-18) (2) | 2018.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