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우골이야기 제본하는 동안 블로그를 너무 방치한데다, 제본이 늦어져 기다리시는 분들을 위해 올립니다ㅎㅎ


* 이 외전은 여우골이야기 책에 특전으로 들어가있는 단편입니다^^


* 수위는 R-15?


* 이번주 주말에 또 단편 하나 올릴 예정입니다^^






1.


“있잖아, 시로~”

“응?”

읽고 있는 만화책의 한 페이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오소마츠가 시로마츠를 불렀다. 

침대에 엎드려 경제학 관련 책을 읽던 시로마츠가 대답했다. 대답은 했지만, 시로마츠의 시선은 여전히 책에 머물러 있었다. 

오소마츠가 보고 있는 만화에는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키스신이 펼쳐져 있었다. 

울며 뛰쳐나가려는 여주인공을 막고 열정적으로 키스하는 남주인공을 바라보며 오소마츠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있지-, 왜 시로 씨는 먼저 츄- 안 해줘?”

“…하?”

멍청히 되물으며 시로마츠가 고개를 돌려 오소마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소마츠는 시로마츠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만화책만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츄-도 그렇고! 꼬옥- 안아주는 것도 그렇고! 생각해보니까 시로가 먼저 뭘 해준 적이 없어!!”

충격적인 사실에 오소마츠가 경악하며 언성을 높였다. 황당하단 얼굴의 시로마츠가 “일단 목소리 좀 줄여.” 하고 말했다. 

미적지근한 시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만화책을 내던지고 다시 외쳤다.


“왜?! 왜 스킨쉽 안 해주는 거야!?”

“아니, 너 지금 내 허리 베고 있잖아…. 이건 스킨쉽 아니냐?”

어이가 없다는 투로 시로마츠가 중얼거렸다. 

침대에 엎드려 책을 읽는 시로마츠의 허리를 베고 누워 만화책을 읽던 오소마츠가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이건 좀 다르지!!”

팡팡- 침대를 두드리며 불평하는 오소마츠를 가만히 바라보던 시로마츠가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그러냐~.” 하고 대답을 흘리는 시로마츠를 흘겨본 오소마츠가 다시 침대를 두드렸다.


“내가 해달라고 해야 해주고! 듣고 있어!? 시로~!!”

“먼지 날린다-.”

시로마츠가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침대를 두드리는 오소마츠의 손을 잡아 멈췄다. 

볼을 잔뜩 부풀리고 불만 가득한 표정의 오소마츠가 시로마츠에게 잡힌 손을 위아래로 붕붕 흔들었다. 

시로마츠의 손을 떼어낼 심산으로 휘둘렀건만, 시로마츠에게 잡힌 손은 해방되지 않았다. 

“우-” 하고 신음하며 시로마츠에게 잡혀있는 자신의 손을 응시한 오소마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말하면 해 주잖아. 하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오소마츠의 한숨 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린 시로마츠가 오소마츠를 바라보며 말했다. 

시로마츠의 말에 눈썹을 찌푸린 오소마츠가 “그게 아니라고~.”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2.


‘회의 중’이라는 팻말이 걸린 회의실에서 이번 분기의 실적을 정리하던 쵸로마츠가 눈앞에서 칭얼대는 오소마츠의 소리에 혀를 찼다. 

서류 뭉치에서 시선을 떼 고개를 들자 책상에 얼굴을 올리고 입을 삐죽 내민 오소마츠와 시선이 마주쳤다.


“쵸로 씨~,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해달라고 할 때까지 먼저 안 해준다는 게 말이야~~.”

“오소마츠 씨, 일단 이번 분기 실적 확인 후, 다음 분기의 전략을….”

“응~? 그건 이따 해도 괜찮잖아~~.”

“괜찮을 리 있냐!!!”

건네준 서류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오소마츠의 태도에 결국 쵸로마츠가 폭발하고 말았다. 

쾅! 하고 책상을 내리치며 의자에서 일어선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노려보며 외쳤다.


“지금은 근무 시간이라고!!! 이거 빨리 확인 받아서 처리해야 한다고!! 이 식아아아!!! 그딴 자랑 듣고 싶지 않아!!!”

머리를 박박 긁으며 외치는 쵸로마츠를 멍청히 쳐다본 오소마츠가 조금 전까지 불평하던 표정을 싹 지우고 말했다.


“자랑한 거 아냐, 쵸로마츠. 머리 괜찮아…? 요즘 많이 피곤해…?”

“으아아아아아!!!!!”

“쵸로마츠으!?”

오소마츠의 말에 몇 번이고 책상에 머리를 처박으며 신음하는 쵸로마츠를 오소마츠가 필사적으로 말렸다. 

기어이 이마에 큰 혹을 만든 쵸로마츠가 깊이 심호흡하며 의자에 앉았다. 

치솟는 분노를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오소마츠에게 다시 서류를 내밀었다.


“이거, 빨리 확인해. 이 자식아.”

“에~, 중요한 거래처 상대한테 그런 말투 써도 되는 거야!?”

“닥치고 확, 인, 하라고.”

이를 악물고 글자 하나하나에 힘주어 말하는 쵸로마츠의 이마에 핏발이 섰다. 

“쵸로 씨는 너무 빡빡하네-.” 하고 툴툴대며 오소마츠가 서류를 들었다. 

바로 직전까지 툴툴대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진지한 얼굴로 서류를 꼼꼼히 살핀 오소마츠가 서류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응! OK야~.”

“하아~, 감사합니다.”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간신히 서류를 결제용 파일에 끼워 넣었다. 

통통 서류철을 책상에 내리쳐 정돈한 쵸로마츠가 서류철을 옆구리에 끼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오소마츠가 급히 쵸로마츠의 소매를 붙잡았다.


“좀 더 이야기 들어줘~~!”

“폭발해라, 리얼충!”

그 한마디 말을 남기고 쵸로마츠는 미련 없이 회의실을 나섰다. 

남겨진 오소마츠가 “에-?!” 하고 외쳤지만, 쵸로마츠에겐 닿지 않았다.




퇴근하는 길에 집에 들러 반찬을 가져가라는 마츠요의 연락에 오소마츠가 발길을 돌렸다. 

퇴근은 항상 시로마츠와 함께하지만 오늘 시로마츠에겐 드물게 잔업이 남아 있었다. 

친가로 향하는 전철을 타고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본 오소마츠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 나 왔어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외치자, 마츠요가 주방에서 나왔다. 

바로 싸줄 테니 거실에서 기다리라는 마츠요의 말에 오소마츠가 신발을 벗었다. 

터벅터벅 걸어 거실에 들어가니 글을 쓰고 있던 이치마츠가 오소마츠를 반겼다.


“어서 와, 오소마츠 형.”

“이치마츄~, 오랜만이네.”

오소마츠가 반갑게 웃으며 이치마츠의 맞은편에 앉자, 씨익- 입꼬리를 올리고 미소를 지은 이치마츠가 말했다.


“오늘 쵸로마츠 형 귀찮게 했다며?”

“응? 어떻게 알아?”

“단체 라인(LINE).”

스마트폰을 들어 화면을 보여주며 이치마츠가 웃었다. 

이치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볼을 잔뜩 부풀리고 밥상에 턱을 올렸다.


“쵸로마츠가 너무했어~,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건데~.”

“그래 보이진 않는데….”

“이치마츄, 너까지!! 횽아 울 것 같아!”

두 눈을 꼭 감고 외치는 오소마츠를 보며 빙긋이 웃은 이치마츠가 태세를 바꿔 짐짓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카라마츠 형한테는 말하지 마.”

“어? 왜?”

“있어. 말하지 마.”

“어…?, 어…. 알겠어.”

떨떨한 얼굴로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가 카라마츠 ‘형’이라고 말하는 것에 내심 놀란 오소마츠가 이치마츠에게 물었다.


“그럼 이치마츠는 어떻게 생각해? 너무하지 않아?”

“글쎄. 동정에 연애 한 번 한적 없는 나는 잘 모르겠는데….”

“에-, 러브신 쓰잖아? 그럼 경험 없어도 얼추 알지 않아?”

“저기, 오소마츠 형. 내가 쓰는 건 미스터리/호러니깐…. 러브신 같은 거 안 나오니깐….”

“췌엣-.”

이치마츠라면 좋은 조언을 주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했던 오소마츠가 숨을 내쉬며 바닥에 벌렁 누웠다.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팔다리를 흔들며 “아~! 진짜아아아~.” 하고 투정부리는 오소마츠를 이치마츠가 가만히 응시했다. 

결국 보다 못한 이치마츠가 뭐라 운을 떼려는 순간, 마츠요가 오소마츠를 불렀다. 

반찬도 다 준비되었으니 가지고 가라는 말에 오소마츠가 “네~.” 하고 대답하고 몸을 일으켰다. 

오소마츠의 발소리가 복도에 가득 울리더니 곧 반찬통을 든 오소마츠가 거실로 돌아왔다.


“바로 가?”

이치마츠가 타자를 치던 손을 멈추고 물었다. 오소마츠는 스마트폰을 들어 시로마츠에게 라인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고 고개를 돌리는 이치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이치마츠의 머리를 껴안았다.


“이치마츄~, 횽아가 빨리 가는 게 시러쪄요~?”

아기에게 말하듯 혀 짧은소리를 내며 기쁘게 웃는 오소마츠를 이치마츠가 밀어냈다. 

눈썹을 찌푸리고 어두운 오라를 내뿜으며 “다신 하지 마.” 라는 이치마츠의 말에 오소마츠는 “넵.”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오소마츠가 시로마츠에게 연락하고 10분쯤 지나자, 시로마츠에게서 차로 가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이치마츠와 마츠요에게 인사를 하고 나가자 시로마츠의 차가 현관 앞에 섰다. 

손을 힘차게 흔들며 마츠요와 이치마츠에게 인사한 오소마츠가 조수석에 탔다. 

시로마츠도 마츠요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올린 후, 운전석에 올라타 엑셀을 밟았다. 

멀어지는 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치마츠가 험악한 얼굴로 칫! 하고 혀를 찼다.


“완전 러브러브구만….”




편의점 봉투를 손에 들고 흔들며 강둑을 따라 걷는 오소마츠가 홀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산책길에 변덕으로 들린 편의점에 새로 나온 푸딩이 남아있는 것은 행운이었다. 

빨리 집에 돌아가 달콤한 푸딩을 먹을 생각에 군침을 삼킨 오소마츠를 향해 커다란 발소리가 서서히 다가왔다.


“오소마츠 형아~!!!”

“쥬시마츠?!”

오소마츠에게 돌진해 그대로 오소마츠의 허리를 끌어안은 쥬시마츠의 등장에 오소마츠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로마츠와 오소마츠가 사는 이 마을은 아카츠카 구(區)에서 제법 거리가 있었다.

이치마츠와 함께 친가에서 머물며 아카츠카 구에서만 활동하는 쥬시마츠가 이곳에 있는 것에 오소마츠가 놀라 물었다.


“여긴 무슨 일이야?”

“이번에 여기서 전지훈련 하기로 했슴다!!”

“아~.”

쥬시마츠가 코치로 들어가있는 유소년 야구단의 전지훈련이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쥬시마츠는 오소마츠와 마주친 것이 어지간히 기쁜지 오소마츠의 손을 잡고 붕붕 흔들었다. 

사정없이 흔들리는 팔에 휘청이던 오소마츠가 쥬시마츠에게 물었다.


“쥬시마츠! 너도 내가 쵸로마츠한테 한 말 알고 있지?”

“넵!!”

쥬시마츠가 활짝 웃으며 팔을 들었다. 오소마츠도 기쁘게 웃으며 “어떻게 하면 좋다고 생각해?” 하고 물었다. 

쥬시마츠는 길게 늘어진 소매를 입가에 가져대고 가만히 생각하더니 오소마츠를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나는, ‘그녀’랑 같이 있으면 무~지 행복했슴다! 그녀 옆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또 떨려서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도 너무 부끄러워서…. 시로마츠 형아도 그런 거 아닐까요?”

아직도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쥬시마츠가 부드럽게 웃었다. 

어느새 자신보다 더 ‘사랑’이라는 감정을 잘 알게 된 쥬시마츠를 자상한 미소로 응시한 오소마츠가 쥬시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쥬시마츠가 밝게 웃으며 “어떻슴까아~?” 하고 묻자, 오소마츠가 눈을 굴리며 시로마츠를 떠올렸다. 

오소마츠가 생각하기에 쥬시마츠만큼이나 특이한 성격을 가진 시로마츠는 거의 항상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오소마츠와 함께 있을 때도, 오소마츠가 졸라대고 귀찮게 하면 여지없이 인상을 찌푸리는 녀석이었다. 

오소마츠가 대답을 기다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쥬시마츠에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녀석은 그런 녀석이 아니니까….”

오소마츠가 시로마츠에게 그런 ‘감수성’이 존재할 리 없다 단언하며 대답했다.


“네에….”

오소마츠의 말에 쥬시마츠도 말꼬리를 흐리며 헛웃음을 흘렸다. 

웃음이 사라지자 오소마츠가 추욱- 어깨를 늘어뜨리고 풀이 죽었다. 

침울해하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쥬시마츠가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오소마츠 형아, 파이팅!!!”

쥬시마츠의 커다란 외침에 오소마츠가 푸핫- 하고 웃으며 주먹 쥔 손을 올리고 “오-!!” 하고 외쳤다.






3.


카라마츠로부터 라인과 함께 모바일티켓이 온 것을 확인한 오소마츠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작년, 유명한 극단에 들어간 카라마츠는 자신이 주연을 맡은 연극의 티켓을 반드시 오소마츠에게 보내주었다. 

항상 안쓰러운 발언만 하던 카라마츠가 수많은 사람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오소마츠는 좋아했다. 

이번에도 2장의 티켓을 보내준 카라마츠에게 고맙다는 라인을 전송한 후,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시로마츠에게 달려갔다.


“시로~, 카라마츠가 티켓 보내줬어! 같이 보러 가자!”

“아….”

시로마츠에게 쪼르르 달려가 옆에 앉아 말했지만, 시로마츠는 의미 모를 신음을 흘리며 시선을 돌렸다.


“시로?”

“음…. 나 말고 동생이랑 보고 와.”

“…하? 왜? 나는 시로랑 보러 가고 싶은데! 카라마츠도 2장이나 보내 줬고!”

“음…. 나는 연극에 별로 관심 없으니까….”

“거짓말! 저번에 같이 봤던 연극 엄청 재미있다고 했었잖아!”

“….”

시로마츠와 함께 카라마츠의 연극을 보러 갈 생각에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았던 기분이 이카로스처럼 순식간에 땅으로 추락했다. 

분명 이전에 함께 연극을 보러 갔을 때, 시로마츠는 재공연 시기를 조사해 볼 정도로 즐거워했다. 

함께 보러 갔던 자신이 뻔히 그것을 알고 있는데도 시로마츠는 연극에 관심이 없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고 있었다. 

얼이 빠진 표정으로 오소마츠가 시로마츠를 바라봤지만, 시로마츠는 TV에 시선을 고정하고 오소마츠에게서 눈을 돌린 채였다. 

오랜만의 데이트를 기대하고 있던 오소마츠기 바닥으로 추락하는 기분에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이제 됐어.”

그렇게 말하고 소파를 떠난 오소마츠가 스마트폰을 들어 주소록을 훑었다. 

시로마츠에게 등을 보이고 한껏 풀 죽은 오소마츠를 보며 시로마츠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리모컨을 들어 TV를 끄고 신경질적으로 소파에 던졌다. 

TV 소리가 사라진 조용한 거실 안에 오소마츠가 통화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오소마츠 형!”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토도마츠의 모습에 오소마츠가 앉아있던 벤치에서 일어났다. 

카라마츠가 보내준 티켓은 티켓을 보내준 바로 다음 날인 일요일 공연의 티켓이었다. 

동생들 모두 일정이 있겠지, 생각하면서도 반신반의로 토도마츠에게 제일 먼저 전화를 걸었다. 

토도마츠는 “내일? 응! 좋아!” 하고 시원스레 오소마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일 괜찮아?”

바리스타라는 토도마츠의 직업 특성상, 주말은 특히 바쁜 날이었다. 

토도마츠는 웃으며 “괜찮아~, 오늘 휴가였어.” 하고 대답했다. 

토도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안심한 얼굴로 싱긋 웃고는 “그럼 가자!” 하고 토도마츠의 손을 잡아끌었다. 

오소마츠의 전화를 받은 후, 토도마츠가 바로 가게의 사장에게 전화해 반협박으로 휴가를 따낸 것을 알 리 없는 오소마츠는 마냥 해맑게 웃었다. 



커다란 공연장 안에 빈자리 없이 들어찬 관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인사를 하는 배우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VIP석에 앉아 바로 눈앞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본 오소마츠도 무아지경으로 박수를 보냈다. 

오소마츠의 눈가에 살며시 매달려 있는 눈물을 본 토도마츠가 피식 웃고 말았다. 

배우들의 인사와 함께 막이 내리고, 관객들이 하나둘 공연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관객들이 모두 빠져나가길 기다리자 무대 천막 뒤에서 카라마츠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형님, 토도마츠! 이쪽이다.”

손짓하는 카라마츠를 따라 무대 뒤로 들어가자 다양한 의상들과 소품들로 가득한 커다란 준비실이 나왔다. 

준비실에는 배우들뿐 아니라 연극에 참여했던 연출가, 각본가, 무대장치감독 등 여러 사람이 이미 잔을 들고 떠들고 있었다. 

“우와….” 하고 감탄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은 카라마츠가 음료를 따른 잔을 건넸다.


“아, 고마워. 카라마츠!”

잔을 받고 빙그레 웃은 오소마츠가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유명 여배우를 발견한 토도마츠가 눈을 빛내며 카라마츠의 팔뚝을 때렸다.


“카라마츠 형!! 저, 저 사람 설마…?”

“아, 요즘에 뜨는 배우였나?”

“이 연극에 참여하는 거야?”

“아아, 나와는 출연하는 날이 다르지만…. 오늘은 공연 마지막 날이라 온 것 같군.”

“소개해 줘!!”

“엩…?! 나, 나도 한 번도 말해본 적 없ㄴ….”

“빨리!”

“아, 알겠다. 형님, 잠시만 기다려 달라.”

“응~, 다녀와~.”

오소마츠가 손을 흔들며 배웅하자 토도마츠가 카라마츠의 팔을 잡고 끌고 가다시피 데려갔다. 

멀어지는 토도마츠와 카라마츠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잔에 담긴 음료를 들이켰다. 

준비실의 벽 한쪽에 놓인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앉아 발을 구르던 오소마츠에게 카라마츠가 다가왔다.


“어? 벌써 끝났어?”

토도마츠와 함께 저쪽으로 간지 아직 10분도 지나지 않은 것에 놀라며 묻자, 카라마츠가 토도마츠 쪽을 보며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까.” 하고 쓰게 웃었다. 

카라마츠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여배우들에게 둘러싸인 토도마츠가 스마트폰을 들고 연락처를 교환하고 있었다. 

대단한 녀석이라고 감탄하며 어이없어하는 오소마츠의 옆에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카라마츠가 앉았다.


“카라마츠, 너는 주연인데 저기 안 가봐도 돼?”

“아, 상관없다.”

배우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무리를 가리키며 묻자 카라마츠가 잔잔한 미소를 띠고 대답했다. 

그래도 괜찮은 건가, 싶어 고개를 기울이는 오소마츠를 상냥하게 바라본 카라마츠가 물었다.


“형님은 그동안 잘 지냈나?”

“응~, 뭐 그렇지~.”

다리를 흔들며 오소마츠가 대답했다. 가만히 오소마츠의 얼굴을 살핀 카라마츠가 나직이 물었다.


“시로마츠와도 잘 지내고 있는 건가…?”

“…뭐 그렇지…. 그것보다! 저번에 우연히 우리 집 근처에서 쥬시마츠를 봤는데 말이야~.”

살짝 볼을 부풀리고 카라마츠의 시선을 피하며 말을 흐린 오소마츠가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 

유쾌하게 웃으며 쥬시마츠의 이야기를 하는 오소마츠의 미소가 어색한 것을 눈치챈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이야기에 적당히 맞장구쳤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가 시로마츠와 싸운 것을 짐작했다. 

배우가 되고 난 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하다 보니 어느새 타인의 감정을 민감하게 알아채게 되었다. 

오소마츠의 미소 뒤에 가려진 슬픔을 읽어낸 카라마츠가 다정하게 웃으며 오소마츠의 속이 풀릴 때까지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와 시로마츠가 싸운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 싸움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카라마츠 자신이었기 때문에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오소마츠가 시로마츠와 사귀게 되어, 친가를 떠나 시로마츠와 동거를 시작하자, 카라마츠는 오소마츠 몰래 따로 시로마츠를 불러내었다. 

카라마츠는 자신을 비롯한 동생들 모두가 오소마츠와 시로마츠의 교제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시로마츠에게 전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부탁을 들어달라고 했다. 

오소마츠가 동생들과 만나는 시간을 방해하지 말아 달라고, 카라마츠는 그렇게 말했다. 

푸른빛이 일렁이는 카라마츠의 눈동자를 응시한 시로마츠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주어서 고맙다.”

머그잔에 담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카라마츠가 말했다. 

고개를 돌려 카페 창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시로마츠가 무덤덤하게 중얼거리는 것을 카라마츠는 놓치지 않았다.


“거절하면 죽이겠다는 듯이 노려봐놓고 감사는 무슨….”

시로마츠의 혼잣말에 카라마츠의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우리에게서 오소마츠를 뺏어가 놓고, 그 정도도 양보해주지 않으면 곤란하지.’


옆에 앉아 쥬시마츠의 이야기에 이어 이치마츠, 쵸로마츠의 근황을 전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빙긋이 웃었다.






4.


카라마츠와의 뒤풀이 후, 귀가 전 카페에 들린 토도마츠와 오소마츠가 전망 좋은 창가 자리에 앉았다. 

카페모카 위에 잔뜩 올라간 생크림을 빨대로 떠먹으며 토도마츠가 먼저 입을 열었다.


“쵸로마츠 형하고 이치마츠 형한테 들었어. 오소마츠 형, 시로마츠 형하고 싸웠다면서?”

“별로…. 그건 싸운 것도 아니야….”

“뭐 때문에 생전 안 싸우던 사람들이 싸웠대?”

“…들어봐아~, 톳티-. 시로, 그 자식이~~.”

“네~, 네~. 뭘 어쨌는데?”

볼을 잔뜩 부풀리고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한 오소마츠가 투덜 모드로 들어갔다. 


“얼마 전에 내가 왜 먼저 스킨십 안 해주냐고 물어봤단 말이야~? 근데 대충 대답하더니 여전히 먼저 츄-도 안 해주고~! 연극도! 어제 카라마츠가 티켓 보내줘서 같이 가자고 했더니, 자기는 연극에 흥미 없다고 안 간다고 하고!! 시로가 연극 좋아하는 거 나도 아는데! 왜 안 가는지 이유도 말 안 해주고!! 너무하지 않아~?!”

“그래그래, 너무하네-, 너무했어.”

잔뜩 삐진 오소마츠의 얼굴을 스마트폰으로 찍으며 토도마츠가 말했다. 

토도마츠의 맞장구에 힘입어 지금까지 쌓아둔 불평을 쏟아내는 오소마츠를 보며 토도마츠가 쓰게 웃었다. 

카라마츠와 시로마츠간의 약속을 알 리 없는 오소마츠가 시로마츠에게 화를 내는 것은 당연했다. 

그 약속 때문에 카라마츠가 출연하는 연극은 절대 오소마츠와 함께 보러 오지 못한다는 것을 오소마츠는 모르니까. 

동생들은 모두 카라마츠가 시로마츠에게서 받아낸 그 약속을 알고 있었다. 

알고 있기에 거리낌 없이, 함께 친가에서 살았던 그 시절처럼 오소마츠를 대할 수 있었다. 

토도마츠도 물론 그 약속을 알고 있지만, 오소마츠에게 말해주진 않았다. 

오소마츠가 그 약속을 알게 되면 분명 “너희, 사이 좋아진 거 아니었어?!” 하고 당황할 것이 뻔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전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오소마츠는 시로마츠와 동생들의 사이 개선을 위해 다 함께 놀자고 할 것이다. 


그것은 동생들도, 시로마츠도 바라고 있지 않았다. 

오소마츠라는 단 하나의 보물을 눈앞에 두고, 서로 사이좋게 지낼 가능성은 모기의 눈알에 기생하는 박테리아만큼도 없었다. 


‘카라마츠 형도 참 대단해….’

오소마츠와 시로마츠가 싸운 이유는 결국 카라마츠가 받아낸 그 ‘약속’ 때문이다. 

시로마츠가 절대 오소마츠와 함께 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카라마츠는 항상 자신이 출연한 연극의 티켓을 2장씩 보냈다. 

그리고 그때마다 시로마츠는 온갖 변명을 대가며 연극을 오지 않았고, 카라마츠의 연극을 보러 오는 오소마츠는 항상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아마도 카라마츠는 그것을 노리고 매번 2장의 티켓을 보내고 있으리라 짐작한 토도마츠가 몸을 떨었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에 대한 집착이 가장 강했던 만큼, 시로마츠를 향한 적의도 가장 강했다. 


“잠, 토도마츠! 듣고 있어?!”

오소마츠의 호통에 토도마츠가 눈을 깜빡였다. 

얼굴을 찡그리고 자신을 응시하는 오소마츠를 재빨리 찍으며 토도마츠가 말했다.


“듣고 있어~. 결국 오소마츠 형은 시로마츠 형이 먼저 스킨십해주지 않는 게 불만이라는 거잖아?”

“…응.”

바람 빠진 풍선처럼 단번에 기운을 잃은 오소마츠가 흐물흐물 탁자에 무너졌다. 

아예 탁자에 팔을 베고 엎드린 오소마츠가 신음했다.


“왜 안 해주는 걸까-….”

“그럼, 이렇게 해보면 어때?”

“뭐를?”

토도마츠가 씨익-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오소마츠에게 제안했다.


“오늘부터 오소마츠 형은 시로마츠 형이 말을 걸어도 대답도 안 하고, 완~전 무시를 하는 거지! 스킨십도 먼저 안 하고!”

“에…. 그건 좀 심하지 않아?”

“아니지! 그 정도는 해 줘야 오소마츠 형의 소중함을 느끼지 않겠어? 지금 시로마츠 형의 상태는 그거라고! 잡은 물고기한테 밥 안 주는!!”

“그게 뭔지 잘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스킨십을 끊음으로써 오소마츠 형의 소중함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자~, 이거지!”

“…정말로 그런 게 먹혀?”

“당연하지!!”

“그래…? 그럼…, 한번 해 볼까!!”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토도마츠의 꼬드김에 넘어간 오소마츠가 굳게 다짐했다. 

절대로 시로마츠의 말에 대답도 하지 말고, 먼저 스킨십도 하지 말자고! 

비장한 얼굴로 다짐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토도마츠가 슬며시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우와-, 오소마츠 형, 완전 쉬워! 그리고 함 당해봐라, 망할 시로마츠!’






5.


찰칵, 하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시로마츠가 방에서 나왔다.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온 오소마츠에게 시로마츠가 “연극 어땠어?” 하고 물었다. 


“완~전 재미있었어! 끝부분은 쪼-금 슬펐지만!”

“그래….”

안도한 얼굴로 숨을 내쉰 시로마츠가 부드럽게 웃었다. 

시로마츠의 미소를 빤히 바라보던 오소마츠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무시하기로 했는데에에에에에!!’

바로 조금 전에 토도마츠와 함께 했던 다짐을 떠올린 오소마츠가 머리를 잡고 주저앉았다. 

‘다음엔 꼭!! 무시한다!’

그렇게 다짐하며 심호흡을 하고 일어난 오소마츠를 향해 시로마츠가 또다시 말을 걸었다.


“오소마츠, 커피 마실 거야?”

“아, 응!”

너무나 자연스럽게 또 시로마츠의 말에 대답한 자신을 다시 자책하며 오소마츠가 머리를 감쌌다. 

소파에 앉아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바보스러움을 원망하는 오소마츠에게 시로마츠가 커피잔을 내밀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잔의 손잡이를 잡기 쉽게 건네주며 “뜨거우니까, 조심해.” 하고 말하는 시로마츠를 따라 잔을 손에 들었다. 

후룩- 커피 한 모금을 마시자 딱 오소마츠가 좋아하는 정도의 달달함과 은은한 커피 향이 입 안에 퍼졌다. 

말없이 후루룩 커피를 홀짝거리는 오소마츠의 옆에 앉은 시로마츠가 멋쩍게 머리를 긁으며 입을 열었다.


“그…, 어젠 미안. 금요일에 거래처랑 회의하고 잔업하고…, 바빴으니까 주말엔 좀 쉬고 싶었어. 내가 쉬고 싶다고 하면 너도 연극 안 간다고 할 것 같아서…. 미안해….”

오소마츠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으며 시로마츠가 말했다. 

미안하단 얼굴로 눈썹을 내리고 오소마츠를 응시하는 시로마츠를 보자 어제 싸웠던 일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햇빛에 눈 녹듯 어제의 싸움도 녹아 사라졌다. 

배시시 웃으며 시로마츠의 손길을 만끽한 오소마츠가 “응!” 하고 대답했다. 

오소마츠의 대답에 비로소 안심했다는 얼굴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시로마츠가 옆에 놓아두었던 커피를 집어 마셨다. 

시로마츠의 사과에 싱글벙글 커피를 마시던 오소마츠가 문득 깨달았다.


‘응? 애초에 내가 화난 건 이게 아닌데?’

그리고 연극에서 돌아와 지금까지 시로마츠의 말을 무시하기는커녕 좋다고 일일이 대답한 것에 절망했다. 

그리고 그 절망은 저녁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이어졌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무시하자고 스스로 다짐해도 시로마츠가 거는 말에 무의식적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그것이 잠들 때까지 이어지니 결국 오소마츠도 포기하고 말았다. 


‘말을 무시하는 건 못하겠으니까…. 스킨십이라도 금지해야지!!’

토도마츠의 말을 떠올리며 오소마츠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까지 스킨십은 모두 오소마츠가 먼저 시작했다. 먼저 다가가고, 먼저 안기고, 먼저 키스하고…. 

오소마츠 자신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오소마츠는 지금 이 순간부터 시로마츠에게 그 어떤 스킨십도 하지 않을 것을 홀로 선언했다. 






6.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작게 숨을 내쉬었다. 옆에 누운 시로는 오늘도 내게 등을 돌리고 잠들었다. 

사람마다 잠드는 포즈가 다르다는 것은 녀석들을 봐서 알고 있다. 

같은 유전자를 공유한 녀석들이었지만, 서로 자는 모습은 천차만별이었다. 

시로도 항상 옆으로 누운 자세로 잠들었다. 

별로 옆으로 눕든, 똑바로 눕든 상관은 없었지만 시로는 항상 내게 등을 돌리고 잤다. 

시로의 이 버릇은 본격적으로 동거를 시작하고 며칠이 지났을 시점에 알게 되었다. 

같은 침대에서 잠들어, 일어나보면 시로는 항상 내게 등을 돌리고 자고 있었다. 

친가에서 녀석들과 모두 함께 잘 때, 살을 맞대고 체온을 나누며 잤던 나는 바뀐 잠자리에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내게 등을 돌리고 잠든 시로는 나와 조금 거리를 띄우고 있어, 바로 옆에서 자고 있어도 충분한 체온을 느낄 수 없었다. 

매일 양옆에서 느껴지던 체온이 사라지자 며칠 밤을 거의 뜬 눈으로 보냈다. 


그 날도 제대로 잠들 수 없어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돌리자 시로마츠의 등이 보였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어깨를 보며, 나는 잠도 못 자고 있는데 혼자 잘만 자는 게 얄미워, 손가락으로 시로의 등을 콕콕 찔렀다. 

그러자 시로가 “뭐야아….” 하고 중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시로가 몸을 돌리자 자연스럽게 거리가 가까워져, 나도 모르게 놀라서 숨을 삼켰다. 

그때, 몸을 뒤척이며 얼굴을 찌푸리고 실눈을 뜬 시로가 나를 꼬옥- 껴안았다. 

등을 두어 번 찔렀을 뿐인데, 시로가 안아줘 가슴이 알싸하게 아렸다. 

시로에게 안겨서 따뜻한 시로의 체온을 느끼며, 그 날 나는 동거 후 처음으로 푹 잠들 수 있었다. 

그 날 이후, 시로가 등을 돌리고 잘 때마다, 꼭 등을 두드렸다. 중간에 깨어났던 것을 시로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매일 시로의 체온을 만끽하며 잠들었지만….


‘스킨십 금지!’

조금 전에 스스로 했던 다짐을 되새기며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배 위에 올렸다. 

오늘은 절대 등을 두드리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스킨십 금지, 스킨십 금지!’

스스로 몇 번이고 되뇌며 눈을 감았다. 

항상 시로마츠의 품에 안겨 자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린 나는, 시로와의 거리에서 느껴지는 냉기에 코를 훌쩍였다.



향긋한 토스트 냄새에 눈을 떴다. 

하품하며 몸을 일으켜 눈을 비비며 침대를 나왔다. 

거실 한쪽의 오픈형 주방에 서 있던 시로가 “좋은 아침.” 하고 인사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좋…, 아침….” 하고 대답했다. 

아직 졸음이 완전히 날아가지 않아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피식- 웃은 시로가 몸을 돌렸다. 계란 후라이를 굽는 시로의 등에 다가가려던 나는 순간 시로에게 뻗은 팔을 멈추었다.


아…. 스킨십금지….

어제의 다짐이 떠올라 시로를 껴안으려던 팔을 거두고 욕실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매일 아침, 아침 식사를 준비해주는 시로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포옹해주는 것이 버릇이 되어 있었다. 

세수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힘내자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시로를 애타게 만들어 주겠어!!




드르륵- 하고 사이드브레이커를 올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시로의 차로 함께하는 출근은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창밖을 보고 있던 고개를 돌리자 시로와 눈이 마주쳤다. 

매일, 시로에게 오늘도 일 힘내라는 말과 함께 츄-를 해주었지만…, 오늘부터 스킨십 금지니까!


“시로, 오늘도 힘내자~.”

“…그래.”

씨익- 하고 웃은 후, 차 문을 열고 나왔다. 

어째 제대로 미소가 지어지지 않아 볼을 늘리며 매만지고 있자, 차에서 내린 시로가 “뭐해?” 하고 물었다. 

고개를 저으며 “아무것도 아냐.” 하고 얼버무린 후, 함께 사무실로 향했다.




텅 빈 사무실 안, 복지가 잘 되어 있는 우리 회사의 점심시간은 오후 1시 30분까지. 

1시도 안 된 지금은 아직 아무도 돌아와 있지 않았다. 대체로 1시 20분쯤에 돌아오기 시작하니까. 

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오늘도 항상 그랬듯 회사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사 들고 사무실에 들어왔다. 

시로도 나도 밥을 빨리 먹는 편이라 시간은 넉넉했다. 

후룩- 커피를 마시며 자신의 책상에 앉아 오후 일정을 확인하는 시로의 옆에 의자를 가져가 앉았다. 

실은 시로 무릎에 앉고 싶지만, 스킨십 금지 중이니까! 


“오후에 회의 하나 있지?”

시로의 목소리에 시선을 위로 올렸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로의 눈길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쵸로 쪽이랑.”

“그거 끝나면 바로 돌아와. 사내 회의 있으니까, 잊으면 안 된다?”

“응!”

그 외에도 오늘 내로 처리해야 할 서류나, 받아내야 할 보고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벌써 1시 15분. 슬슬 직원들이 돌아올 시간임을 확인하고 의자를 원래 자리에 돌려놓았다. 

털썩 자기 자리에 앉아 멍하니 노트북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점심을 일찍 먹고 올라와 시로 무릎에 앉아서 이야기했는데…. 

등에서 느껴지던 시로의 체온이 기분 좋아서, 점심시간을 제일 기다렸었는데…. 

나도 모르게 책상에 기대 한숨을 내쉬자 옆을 지나가던 직원이 말을 걸었다.


“어라? 부사장님, 오늘 기운 없네요?”

“응….”

슬쩍, 시로 쪽을 보며 눈치를 살피던 직원이 내 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장님이랑 싸우셨어요?”

“…조금….”

“헤~, 별일이네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직원에게 “점심시간 끝났으니까, 자리로 가~.” 하고 손을 휘저었다. 

훠이훠이- 하고 손을 흔들자 “제가 개에요?” 하고 황당하단 얼굴을 한 직원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시로는 모르고 있지만, 우리 회사의 직원 대다수는 이미 나와 시로가 사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와 시로의 둘만의 시간을 마련해주겠다며 일부러 점심시간에 늦게 돌아오는 배려를 하기도 했다. 

언젠가 직원 휴게실에서 어떻게 나와 시로가 사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느냐고 묻자, “부사장님, 사장님하고 눈 마주칠 때마다 ‘좋아 좋아 기운’을 마구 내뿜고 있어요.” 하는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뭐야? 그 ‘좋아 좋아 기운’은…. 내가 너무 티를 내고 있다는 건가? 

나름 회사에서는 참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심지어 그 답변을 한 것이 올해 막 입사한 신입사원이라는 것에 어쩐지 절망했다. 

책상에 얼굴을 대고 “우-“ 신음하고 있자, 스마트폰에 설정된 알람이 울렸다. 

쵸로마츠와 회의할 시간임을 알리는 알람을 끄고 몸을 일으켰다. 




스킨십 금지 중인 나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어서 와, 츄-’도 생략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어젯밤부터 쭉- 키스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 나도 모르게 시로의 입술만 뚫어지게 응시하고 말았다. 

항상 함께 들어가던 목욕도 오늘은 따로. 

토도마츠의 말대로 자체 스킨십 금지 중이지만, 시로는 그다지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지 않고…. 

어째 내 목만 조르고 있는 꼴이지 않아? 퇴근 전, 몰래 토도마츠에게 전화해 아무런 효과도 없는 것 같다고 했지만, 토도마츠는 좀 더 노력해보라는 말만 했다. 하루 정도로 애가 탈 리 없다면서…. 

부글부글 목욕물에 입을 담가 숨을 뱉었다. 

시로를 애타게 만들기 위해서…, 나도 참지 않으면! 다시 각오를 다졌다.



“아, 나 오늘 잔업 남았으니까 먼저 자.”

씻고 나오니 시로가 책상에 앉아 고개만 돌려 말했다. 

엑- 하고 얼굴을 찌푸렸지만, 할 수 없이 “알겠어….” 하고 대답했다. 

쓰게 웃으며 “미안. 불 꺼줄 테니까.” 하고 시로가 형광등을 끄고 책상 위의 스탠드를 켰다. 

침대에 올라 이불에 들어가니 목욕을 하고 나왔는데도 추웠다. 

몸을 돌려 시로 쪽을 보자 노트북 화면을 보며 손을 바삐 움직이는 시로의 등이 보였다. 

시로의 움직임을 따라 움찔거리는 어깨와 등을 빤히 바라보며, 빨리 마치고 이리로 와서 꼬옥- 안아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서둘러 단념하고 눈을 감았다. 


오늘은 제대로 잘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7.


“끄아아-.”

완전히 굳어버린 근육을 피자, 비명을 지르는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기지개를 켰다. 

푹- 한숨을 내쉬며 노트북을 종료하자 시계의 시침은 3을 가리키고 있었다. 

잔업은 하지 않는 주의지만, 오늘 있었던 회의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실제로 먹힐지 오늘 내로 분석할 필요가 있었다. 

힘겹게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침대로 다가가자 새근새근 잘 자는 오소마츠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피로도 잊고 침대 옆에 쭈그려 앉아 오소마츠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꾸욱 하고 잠든 오소마츠의 볼을 눌러보았지만, 미동도 없는 모습에 풋-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뭘 먹는 꿈을 꾸고 있는지 우물우물 입술을 오므리는 모습에 다시 웃으며 살며시 손가락을 뻗었다. 

얇고 마른 오소마츠의 입술을 살짝 어루만지며, 오늘 하루 오소마츠가 전혀 다가오지 않은 것을 떠올렸다. 

또 동생들에게 뭔가 영향을 받은 거겠지…. 

사귀고 있는 것을 인정받았어도, 브라콤에 장남 의존인 오소마츠의 동생들은 은근슬쩍 나와 오소마츠의 사이에 껴들어 훼방을 놓았다.


카라마츠는 ‘그 약속’도 그렇고, 만에 하나 오소마츠와 함께 만나면 매번 추억 이야기를 늘어놓아, 내가 끼어들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쵸로마츠는 상식인을 자칭하며 사귄 지 얼마 안 됐으면서 벌써 동거를 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으냐며 나와 오소마츠의 동거를 끝까지 반대했었다. 

이치마츠, 그 녀석은 오소마츠가 친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마음을 이용해, 오소마츠가 친가에 들렸다 하면 오소마츠를 붙잡았다. 

게다가 그 녀석이 쓰는 소설 속 히로인은 항상 오소마츠 닮은꼴. 

그러니 친가에 보내면 어째 불안해서 매번 데리러 가고 만다. 

쥬시마츠는 방해는 하지 않지만, 함께 있으면 오소마츠에게 딱 달라붙어 내가 다가갈 수 없게 한다. 


토도마츠는…, 그 녀석이 카라마츠와 더불어 제일 악질이다. 

동거하고 얼마 되지 않아, 오소마츠가 “시로~, ‘조루’가 뭐야?” 하고 물어왔을 때, 성대하게 마시고 있던 커피를 뿜고 말았다. 

대체 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토도마츠에 의해 철저하게 성적 지식이 차단된 오소마츠는 남자끼리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런 오소마츠에게 내가 지루니, 조루니, 험담을 일삼는 토도마츠…. 

분명 오늘 오소마츠가 먼저 다가오지 않는 이유도 십중팔구 토도마츠에게 있을 것이다. 


“있지-, 왜 시로 씨는 먼저 츄- 안 해줘?”


저번 주말, 오소마츠가 한 말을 떠올렸다. 

오늘의 일은 분명 그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왜 먼저 안 해주냐니….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야-, 부끄러우니까…. 

이 나이가 되어서 창피한 일이지만, 내게 있어 오소마츠는 첫사랑이다. 

학교에 다닐 때는 오로지 공부에 전념했었고, 연애니 사랑이니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첫사랑에 첫 연인. 

오소마츠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친구로 지내온 탓도 있겠지만, 오소마츠를 단순히 친구로 대할 때는 아무렇지 않았던 스킨십이 연인이 되고 나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스킨십을 먼저 하려고 하면 부끄럽고 떨려서 좀체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도 설마 내가 이렇게까지 숙맥일 줄은 몰랐다. 

스킨십을 하다 보면 익숙해질 수 있겠지만, 그건 또 그거대로 걱정이다. 

스킨십에 익숙해지면 점점 더 참을 수 없을 텐데, 순진한 얼굴로 “남자끼리는 섹스…, 못하지?” 하고 묻는 오소마츠에게 키스 이상의 진도를 뺄 자신이 없다. 

그쪽 지식이 없으니, 무서워하지 않을까…. 

뭐, 그런 이유로 내가 먼저 스킨십을 하진 않지만, 오소마츠가 먼저 다가와 주니 괜찮았지만…. 


지금의 스킨십레스(less) 상태가 오래가면 나도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아무리 남들보다 성욕이 낮다지만, 나도 한창때의 청년이다. 

이 상태가 오래가면 내 이성을 제대로 붙들 수 있을지…. 

하루빨리 오소마츠가 동생들의 영향에서 벗어나기를 빌며 이불에 누웠다. 

내가 누우며 침대가 흔들리자, “웅-” 하고 눈썹을 찌푸리는 얼굴이 귀여서 큭큭 웃으며 오소마츠를 품에 안았다.






8.


5일이 지났다. 


무려!

5일이! 

스킨십 금지 상태로 5일!! 


이젠 정말로 울 것만 같다. 

5일 동안 시로는 반응도 없고, 여전히 먼저 만져주지도 않는다. 

수요일쯤에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는 시로에게 지쳐 토도마츠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토도마츠는 좀 더 기다려보라는 말만 했다. 

전화를 끊을 때, 나도 모르게 울음이 나와 훌쩍거리자, 전화 저편에서 토도마츠가 다정한 목소리로 “그냥 아예 헤어져 버리는 건 어때?” 하고 물었다. 

그건 싫어…. 그렇게 대답하자, 토도마츠의 작은 한숨 소리가 전해졌다. 

스킨십은 하지 않아도, 나를 ‘오소마츠’로서 대해주고, 배려해주고, 이해해주는 것은 시로 뿐인걸…. 

하지만 5일이나 닿지 않아 외로운 것은 사실이다. 

오늘도 불금인데, 잔업이 남았다며 나 먼저 씻으라는 말에 기분은 땅 아래로 파고들었다. 


외롭다. 외로워…. 외롭다고, 시로~. 




홀로 씻고 나오자 시로가 교대로 욕실로 들어갔다. 

혼자 방 안에 남겨져 침대에 멍하니 앉아있으니 욕실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와 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텅 빈 방 안을 채웠다. 

순간, 사무치는 외로움이 울컥하고 해일처럼 밀려왔다. 

머릿속이 새하얘져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나는 왜 지금 혼자 침대에 앉아있는 걸까…? 

시로랑 같이 살고 있는데도, 외로워서 견딜 수 없다.



“오, 오소마츠?!”

시로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놀란 얼굴로 입을 떡 벌리고 나를 응시하는 시로의 눈에 비친 내 얼굴을 확인하고서야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줄줄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거칠게 소매로 닦아내자, 시로가 신음하며 내 팔을 잡아 막았다.


“그렇게 세게 비비면 눈 상해.”

걱정이 담긴 자상한 목소리에 멈추려던 눈물이 폭발하고 말았다. 

헐거워진 눈물샘으로 끝없이 눈물이 흘러나와 얼굴을 적셨다.


“오소마츠?”

중력에 이끌려 침대로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주며 시로가 나를 불렀다. 


“전부 시로 때문이야!!!”

“…응?”

“기다렸는데! 먼저 꼬옥- 해주고, 츄- 해주길 기다렸는데!! 한 번도 안 해주고!! 해주길 바라서 쭉- 쭉 참고 기다렸는데에에에에!!!”

나도 모르게 복받쳐 오는 감정에 원망을 담아 외쳤다. 

당황한 얼굴로 멀거니 나를 바라보는 시로의 모습에 또 화가 나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미안, 오소마츠. 미안해…. 울지마.”

시로의 얼굴이 가까워지더니 곧 전신이 시로의 체온에 둘러싸였다. 

일주일 만에 느끼는 시로의 체온에 두 팔을 뻗어 시로의 등에 감았다. 

얇은 반팔 너머로 전해지는 시로의 체온에 가슴이 뭉클하니 옥죄였다. 

시로는 미안하다며 사과를 멈추지 않고 내 등을 일정하게 토닥였다. 

서서히 토닥이는 속도에 맞추어 울음이 멎어 들었다. 

꼭 어릴 적 엄마의 품에 안겼던 것 같은 편안함에 어수선하게 들떠 올랐던 기분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9.


천천히 오소마츠의 등을 토닥이자, 울음을 멈춘 오소마츠가 안정을 되찾았다. 

고른 숨소리를 내며 내 등을 꼭 안고 품에 얼굴을 묻은 오소마츠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울어버릴 줄은 몰랐다. 

오소마츠가 먼저 다가오지 않는 것에 나도 묘한 오기가 생겨 오소마츠를 무시하고 말았다. 

다가오진 않으면서 외롭다는 얼굴로 나를 빤히 보는 오소마츠에게 이유 모를 고집을 부린 것을 진심으로 후회한다. 


어느 정도 진정된 오소마츠는 내 품에서 나오지 않은 채,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품 안에서 느껴지는 오소마츠의 온기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일주일만의 포옹에, 목욕을 막 마치고 나와 젖은 머리, 실컷 운 탓에 따끈따끈해진 오소마츠의 몸 때문에 죽을 맛이다.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무게에 구구단을 외며 필사적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아, 죽겠다….”

절로 나온 신음에 오소마츠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젖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오소마츠 덕분에 내 번민은 더욱 깊어졌고, 구구단을 넘어 고등학생 때 배웠던 근의 공식까지 외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난해하기 그지없었던 3차 방정식이나 미적분을 떠올리며 흥분을 가라앉히고, 아직 물기가 남은 오소마츠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미안해, 오소마츠.”

“…응….”

젖은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사과하자 오소마츠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코를 훌쩍이는 모습에 나 때문에 고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자괴감이 머리를 들었다. 

내가 용기가 없었던 탓에 오소마츠에게 마음고생을 시키고 말았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오소마츠를 품에 안고 속삭였다.


“계속 친구로 있었으니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랐어. 부끄럽기도 했고. 항상 네가 먼저 다가와 줬으니까…. 미안해, 좀 더 노력할게.”

변명도 붙이지 않고 솔직하게 고백하며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자, 품 안의 오소마츠가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내리깔고 아직 불만이 남았는지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어린아이 같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샜다. 

오소마츠를 안고 있던 팔을 풀자 오소마츠가 불안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혹여 떨어질까 걱정하는 오소마츠에게 다정하게 웃어준 후, 오소마츠 옆에 앉았다. 

침대에 걸터앉아 그대로 오소마츠에게 두 팔을 벌렸다.


“자.”

빤히 나를 바라보던 오소마츠가 슬금슬금 움직여 나를 마주 보고 내 무릎 위에 앉았다.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꽉- 안아주자, 오소마츠도 다리를 내 등에 감고 나를 꽉 안았다. 

얼굴을 붉히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을 보며 좀 더 일찍 이렇게 해 줄 걸…, 하고 후회했다. 

밀착된 신체에 오소마츠의 몸에서 풍기는 옅은 바디샴푸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조금 전 필사적으로 가라앉혔던 흥분이 다시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올라왔다. 

다시 허리 아래가 묵직해지는 감각에 쓰게 웃은 후,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응?”

앳된 얼굴로 눈을 빛내며 나를 올려다보는 오소마츠의 얼굴을 감싸 쥐고 그대로 입술을 내렸다. 

얇고 따끈한 오소마츠의 입술에 몇 번이고 가벼운 키스를 하자 오소마츠가 후- 하고 뜨거운 숨을 내쉬며 볼을 붉혔다. 

자기가 먼저 하는 키스는 괜찮았으면서, 내가 먼저 해주는 키스에 완전히 달아오른 얼굴을 한 오소마츠가 “응!” 하고 입술을 내밀었다. 

이것이 오소마츠 나름의 더 해달라는 신호인 것을 알기에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다시 입 맞추었다. 

20대 중반 성인 남성의 어린아이 같은 재촉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입술을 떠나 이마와 볼에도 반복해 입 맞추었다. 

거의 얼굴 전체에 키스를 퍼붓고 나서야 만족하며 다시 입술에 도달하자 오소마츠의 숨이 제법 거칠어져 있었다.


“응~, 시로~.”

“응?”

“좀, 더….”

목에 팔을 감고 끌어당기는 모습이 귀여워 고개를 끄덕이고, 뜨거워진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입술의 감촉을 느끼며 혀를 뻗어 가볍게 입술을 두드리자 살며시 입술이 열렸다. 

살짝 열린 입술의 좁은 틈으로 혀를 집어넣어 치아를 핥았다. 

앞니에서 쭉 뻗어 나가 송곳니를 간질이고, 어금니를 자극하며 오소마츠의 허리에 팔을 감아 힘껏 안았다. 

열을 머금은 숨이 하나가 되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쪽, 쪽- 소리를 내며 얽힌 혀와 입술이 흥분을 끌어당겼다. 


“후응~, 응, 응읏~!”

입천장을 핥자 오소마츠의 어깨가 튀며 신음이 울렸다. 

입 안 중앙의 입천장에서 천천히 밖으로 나와 앞니 뒤쪽을 핥았다. 

간질이듯 혀를 움직이자 오소마츠의 몸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익숙하지 않은 깊은 키스에 오소마츠는 제대로 숨도 못 쉬고 간헐적으로 색색- 콧바람을 냈다. 

점점 차오르는 오소마츠의 숨에 혀를 거두고 입술을 뗐다. 

헉헉 숨을 몰아쉬면서 오소마츠는 불만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며 오물오물 입을 움직였다.


“벌써 끝이야…? 좀 더, 해 줘….”

“….”

숨도 못 쉬면서 욕심만 부리는 애 같은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번엔 천천히 오소마츠가 숨을 쉴 수 있도록 틈을 만들어가며 오소마츠의 입 안을 탐했다. 

얽히는 혀가 기분 좋은지, 내 옷자락을 잡은 오소마츠의 손이 벌벌 떨렸다. 


“하아….”

살며시 입술을 떼자, 오소마츠가 숨을 몰아쉬며 눈물로 촉촉이 젖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 녀석, 정말로 나와 동갑이 맞긴 한 걸까-, 싶을 정도로 어려 보이는 얼굴이 사랑스러웠다. 

볼과 귓가에 입술을 내리고 쪽- 소리를 내자, 오소마츠의 어깨가 다시금 떨렸다.


“오소마츠, 남자끼리도 섹스, 할 수 있어.”

나긋나긋하게 귓가에 속삭이자, 오소마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빤히 응시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깜빡인 오소마츠가 “어, 떻게…?” 하고 물었다. 

정말로 전혀 모르겠다는 천진난만한 얼굴에, 앞으로 하나하나 가르칠 생각을 하니 절로 골치가 아팠다. 


“그건 다음에 알려줄게.”

한숨과 함께 체념했다. 

오소마츠가 무서워하지 않도록 천천히 가르치다가 도리어 내가 말라 죽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스쳐 지나갔지만, 애써 무시했다. 


“시로….”

“응?”

허공을 응시하며 앞으로 펼쳐질 고생길을 한탄하고 있자, 오소마츠가 내 옷자락을 슬며시 쥐고 나를 불렀다. 

달아오른 얼굴로 나를 바라본 오소마츠가 다가와 내 입술을 핥았다. 


“좀 더, 츄- 해 줘….”

정말로 죽을지도…. 

자신의 미래를 예감하며 오소마츠에게 키스했다. 

“응, 응….” 하고 신음하며 오소마츠가 나를 따라 혀를 움직였다. 

두 눈을 감고 서툰 키스를 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천천히 하나하나 가르치면 오소마츠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졌다. 


“…응…. 하아…. 시로…, 어, 어땠어?”

뜨거운 한숨과 함께 입술을 뗀 오소마츠가 나를 보며 물었다. 

얼굴을 붉히고, 자신의 키스를 평가해주길 기다리는 모습에 심장이 꽉 옥죄였다. 

오소마츠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하고 “응, 좀 더 연습하면 능숙해질 거야.” 하고 대답했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뿌루퉁하니 삐진 오소마츠를 꽉 안고 그대로 침대에 몸을 뉘었다. 


품에 안긴 오소마츠의 등을 천천히 토닥이자 오소마츠는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10.


문이 열리고 가게 안에 울리는 벨 소리에 토도마츠가 “어서 오세요~.” 하고 외치며 계산대 앞에 섰다. 

천진난만한 미소를 가득 피우고 선 오소마츠가 손을 흔들었다.


“토도마츠~, 오랜만~!”

“어서 와, 오소마츠 형. 그리고, 거기 그쪽도.”

애교 섞인 웃음으로 오소마츠를 맞이한 토도마츠가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고 시로마츠를 응시했다. 

재빠른 태도 변화에 어이없는 헛웃음을 흘린 시로마츠가 “캐러멜 마끼아또 하나. 오소마츠 꺼니깐….” 하고 주문했다. 


지난날, 대체 뭘 넣었나 싶은 커피 맛을 떠올린 시로마츠가 자신이 아닌 오소마츠 것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살벌하게 웃으며 “네-, 알겠습니다!” 하고 한글자 한글자 힘을 주고 대답한 토도마츠가 샷을 내렸다. 

특별히 더 달달하게 만든 캐러멜 마끼아또를 건네자, 오소마츠가 기쁜 얼굴로 받아 들고 빨대를 꽂았다. 

행복하단 얼굴로 마끼아또를 만끽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아, 보배롭다.’ 하고 감격하는 토도마츠에게 시로마츠가 씨익- 웃으며 다가갔다.


“아, 그리고 저번에 고마워. 덕분에 오소마츠와 더 사이가 좋아졌어.”

시로마츠의 말에 토도마츠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거만하게 웃으며 토도마츠를 도발한 시로마츠가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회의 있으니까 다시 돌아가자.”

“아, 응~. 토도마츠~, 다음에 또 올게~.”

붕붕 손을 흔드는 오소마츠에게 작게 손을 흔들어 배웅한 토도마츠가 싸늘한 얼굴로 주머니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빠르게 타자를 치는 토도마츠의 손이 보이지 않았다. 이를 부득부득 갈며 토도마츠가 형제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똥 같은 시로마츠 자식을 묻어버리려고 하는데, 다들 언제 시간 돼?」


토도마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즉각 답장을 보내오는 형제들의 메일을 보며 토도마츠가 “으흐흐흐흐-.” 하고 음흉하게 웃었다. 






* 여우골이야기 책에는 이 외전 + 여우골이야기 외전 2개가 특전으로 들어가있습니다^^


* 이번 주말에 꼭! 단편 하나 올리겠습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트위터 시작했습니다.  블로그에 소설 올린 후, 실시간 알람으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WHITEPINE, @WHITEPINE9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