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정말 오랜만이네요ㅠ 저번달에 일본 갔다가 못 돌아올 뻔하고 쌓인 일들을 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지나 있었습니다ㅠㅠ 기다려주신 분들 감사해요!!


* 처음 블로그에서 연재했던(?) 장편 '장남의 심중' 외전입니다. 원래 더 빨리 올릴 수 있었는데, 거의 다 쓴 글이 컴퓨터 오류로 날아가는 바람에..ㅠㅠ 다시 쓰느라 늦었네요ㅠㅠ


* 여러 모브캐가 나옵니다.


* 공미포 12,994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드륵-, 부드럽게 열리는 발코니 문을 젖히고 나간 오소마츠가 난간에 기댔다. 

코앞에서 철썩이는 파도 소리는 바다의 짠내를 머금은 바람과 함께 오소마츠의 얼굴을 간질였다. 

쨍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눈을 찡그린 오소마츠가 푸르다 못해 하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몇 십년 만에 찾아온 기록적인 무더위라는 뉴스에 걸맞게 구름 하나 없는 하늘에서 내려온 햇빛은 지상을 뜨겁게 달궜다. 

심지어 바다까지도. 모처럼 바닷가로 휴가를 왔건만, 시원해야 할 바다는 햇빛에 데워져 미지근하게 욕탕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이번 휴가를 꽤 기대했었던 오소마츠에게 무더위는 아군이 아니었다. 시원해 보이는 바다가 넘실대건만 지나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휴-,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방 안으로 몸을 돌리자 당황한 듯한 시로마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건 아닌데…. 꼭 가야돼요? 아, 알겠어요.”

푸욱~,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귀에 대고 있던 스마트폰을 내린 시로마츠가 거칠게 머리를 쓸어올렸다. 

시로마츠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나오는 버릇이라는 걸 알고 있는 오소마츠가 침대에 엉덩이를 내리며 물었다.


“누군데 그래?”

“엄마. 돌아가는 길에 본가에 좀 들려야 할 것 같아.”

“……헤?”

시로마츠의 청천벽력 같은 말에 오소마츠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2.


빠른 속도로 건물이 지나가는 창가에 기댄 오소마츠가 뚱한 표정으로 시로마츠를 향해 눈을 흘겼다. 

항상 즐겁게, 밝은 목소리로 쉴새 없이 말하던 오소마츠의 입은 굳게 닫혀 침묵하고 있었다. 

옆에서 박히는 따가운 눈초리에 시로마츠가 눈썹을 찌푸리고 귀찮다는 듯이 투덜댔다.


“그러니까 나 혼자 들어가서 반찬만 받고 나온다니까?”

“….”

“오소마츠.”

시로마츠의 부름에도 오소마츠는 대답하지 않았다. 

휴가 마지막 날에 갑자기 결정된 시로마츠의 본가 방문에 오소마츠는 굳어버렸다. 

시로마츠와는 오랜 세월을 알아왔지만 그의 집을 찾아간 적은 없었다. 

시로마츠의 부모님 역시 오소마츠는 뵙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시로마츠의 집에 간다는 사실에 오소마츠는 그만 머리가 멈추고 말았다. 

백지가 된 머릿속, 느리게 박동하는 심장, 그리고 서서히 올라오는 불안에 오소마츠가 헤매고 있는 사이 시로마츠가 먼저 오소마츠를 달래듯 말했다.


“나만 잠깐 얼굴 비추고 올게. 차에서 기다리고 있어.”

피가 중력을 따라 싸악-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시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는 얼굴을 구기고, 시로마츠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숙소에서 출발해 시로마츠의 집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왜 화난 건데.”

“….”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단 투로 묻는 시로마츠를 있는 힘껏 째려본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려 뒷좌석에 다소곳이 올려진 과일 바구니를 쳐다보았다. 

그냥 가도 된다는 시로마츠의 말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오소마츠가 마트에서 산 과일 바구니가 안전히 있는 것을 확인한 오소마츠가 정면을 보며 겨우 입을 열었다.


“별로 화 안났어.”

“그 얼굴로 잘도 그런 말을 한다?”

뚱한 얼굴로 국어책 읽듯이 말하는 오소마츠를 향해 픽-, 헛웃음을 흘린 시로마츠는 곧이어 날아온 오소마츠의 주먹에 다시 외마디 신음을 질렀다.

“때린 데 또 때리기냐.” 하고 투덜대는 시로마츠의 목소리가 사라지자마자 네비게이션의 안내 목소리가 멈췄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에 오소마츠가 벌컥 조수석 문을 열고 나갔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평범한 가정집 앞에 멈춘 차에서 내린 오소마츠가 뒷좌석에서 과일 바구니를 꺼냈다. 

정상 속도에서 아득히 멀어진, 터질듯이 빠르게 뛰는 심장에 아려오는 가슴을 문지르며 시로마츠를 따라 현관앞에 선 오소마츠가 크게 심호흡했다. 

“후우~~~.” 하고 바닥에 내려앉을 것처럼 무거운 숨을 내쉬었을 때, 느닷없이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단발머리에 얇은 금속테 안경을 쓴 중년의 여성은 시로마츠와 오소마츠를 보자마자 인자한 미소를 가득 피웠다.


“어머, 어서오렴. 네가 오소마츠 군이구나?”

“아, 아아, 안녕하세요!!”

다녀왔다는 시로마츠의 인사를 가볍게 받은 여성은 오소마츠에게 시선을 주고 웃었다. 

여성이 먼저 말을 건넬 것이라 예상치 못한 오소마츠가 허리를 90도로 꺾어 인사했다.


“후후, 그래. 반가워—. 시로마츠의 엄마, ‘유우노 세나’예요. 어서 들어와.”

오소마츠의 인사에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세나가 오소마츠에게 손짓했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잘게 떨던 오소마츠가 세나가 안내하는 대로 시로마츠의 집에 발을 들였다.


“아, 이거!”

“어머, 이런 거 안 줘도 괜찮은데~. 고마워.”

땀이 흥건한 손으로 쥐고 있던 과일 바구니를 내민 오소마츠가 세나의 인사에 고개를 휘저었다. 

세나가 달콤한 과일향이 은은하게 감도는 바구니를 들고 주방으로 향하는 동안 오소마츠는 시로마츠를 따라 거실로 들어갔다. 

푹신한 소파에 나란히 앉아 세나를 기다리는 동안 오소마츠는 안절부절 못하고 손을 꼼지락거리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았다. 

맛있게 영글은 사과를 깎아 거실에 들어온 세나가 편히 앉아도 된다 말해도 오소마츠는 괜찮다 사양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다는 시로마츠의 말에도 오소마츠는 힘을 풀지 않았다.


“참, 얘네는 뭐하는데 형이랑 손님이 왔는데 안 나와.”

포크에 토끼 모양으로 자른 사과 조각을 푹 찍어 오소마츠에게 건네준 세나가 거실 저편에 닫힌 문을 보며 몸을 일으켰다. 

거침없이 닫힌 문으로 걸어가 쾅쾅 문을 두드리자 곧 문이 열리고 시로마츠의 동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형, 어서와.”

“어서와, 형.”

“오소마츠 군한테도 인사해야지! 손님인데.”

오직 시로마츠에게만 인사하는 형제에게 세나가 핀잔을 주자 팩 얼굴을 구긴 형제가 오소마츠를 향해 고개를 까딱이곤 쏙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굳게 닫힌 방문을 보며 세나가 황당하다는 한숨을 내쉬고 소파로 돌아왔다. 

오소마츠에게 면목없다는 얼굴로 세나가 멋쩍게 웃으며 자식의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미안해-. 우리 애들이 형을 너무 좋아해서…. 친구를 데려오면 저렇게 쌀쌀맞게 대한다니까. 우리가 맞벌이라 시로가 동생들을 챙기는 시간이 많았거든.”

“하하, 괜찮아요.”

“저건 이따 내가 혼내 놓을게.”

세나의 변명에 이어 시로마츠가 싸늘하게 말하며 오소마츠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손을 흔들며 괜찮다 말하던 오소마츠가 넘어온 시로마츠의 손길에 수줍게 웃었다.


사실, 오소마츠는 동생들의 저런 태도를 이미 알고 있었다. 

오소마츠는 몇 달 전에 있었던 동생들과의 충격적인 첫만남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삼켰다. 




띵동—, 청량하게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오소마츠가 늘어지게 하품을 흘리며 문을 열었다.

“서프라이-즈! 형, 생일 축하해!!”

“축하~, …해?”

처음 보는 두 남성의 갑작스런 방문에 얼어붙은 오소마츠와 마찬가지로 낯선 이를 마주하고 굳어버린 두 남성은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놀라 커다래진 눈을 깜빡이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이자, 두 남성도 오소마츠를 따라 갸웃거리며 눈썹을 음산하게 세웠다.


“누구?”

남성의 물음에 오소마츠는 멍청히 “오소마츠인데….” 하고 대답했다. 

남성이 가지고 있는 그 어떤 의문도 해결해주지 않는 대답에 답답함을 느낀 남성이 목소리를 높였다.


“누군데 형 집에서 나오는데!”

“형…?”

남성의 외침에 오소마츠가 입을 벌리고 머릿속을 스치는 작은 가능성을 붙잡았다.


“어? 혹시 시로 동생들…?”

두 남성은 낯선 이의 입에서 형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심하게 얼굴을 구기고 이를 갈았다.


“그러니까 당신 누구냐고!”

“어, 그, 러니까.”

바락바락 오소마츠의 정체를 묻는 성난 목소리에 오소마츠는 잠시 패닉에 빠졌다. 

연인인 시로마츠에게 동생들이 있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동생들이 일란성 쌍둥이라는 것도. 

오소마츠는 자신을 뭐라 소개해야 할지 몰라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너네 왜 여기있어.”

그때, 구세주처럼 시로마츠가 방에서 나와 현관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눈치채고 걸어왔다. 

고향 본가에 있어야 할 동생들의 모습에 시로마츠도 적잖이 놀란 것처럼 보였다. 

시로마츠의 물음에 동생들이 다급히 오소마츠를 제치고 앞으로 나왔다.


“형 생일이니까 왔지!!”

“놀래키려고 했단 말이야!”

동생들의 성화에 시로마츠가 눈썹을 올렸다. 동생들의 말대로 오늘은 시로마츠의 생일이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걸려온 동생들의 축하 전화도 받았다.


“통화할 땐 온다는 말 안 했잖아.”

“서프라이즈로 왔다고!”

답답하다는 듯이 격앙되어 외치는 동생들을 보며 시로마츠는 무심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든 시로마츠가 동생들과 자신에게서 소외되어 멀찍이 떨어져 있는 오소마츠를 불렀다.


“근데 그 자식은 누구야?”

“왜 형 집에 있어?”

노골적으로 오소마츠를 경계하며 적의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는 동생들 앞에서 오소마츠가 몸을 움츠렸다. 

시로마츠는 제 옆까지 다가온 오소마츠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너무나 태연하게 말했다.


“동거인.”

““하아?!?!””

“시로오!?”

사백안을 만들고 땅에 떨어질 것처럼 턱을 떨어뜨리고 경악하는 동생들의 비명과 오소마츠의 당황한 부름이 섞였다. 

적당히 친구 혹은 룸메이트라 소개할 줄 알았던 오소마츠는 사실을 말하면 어쩌냐는 얼굴로 시로를 흔들었다. 

허나 시로마츠는 태연자약하게 어깨를 으쓱 올리고 “이 녀석들한텐 말해도 괜찮아.” 하고 오소마츠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오소마츠는 내려오는 시로마츠의 손길에 머리가 헝클어지면서도 태평하게 상황을 해석하는 시로마츠를 쏘아보았다. 

충격으로 얼어붙은 동생들의 모습이 시로마츠에겐 보이지 않는 것인지, 시로마츠는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고 동생들의 이름을 불렀다.


“마사유키, 타카유키. 늦었으니까 이제 집에 가. 차비 줄 테니까.”

시로마츠는 커피 테이블에 올려진 자신의 지갑을 들어 만엔 지페를 꺼내 동생들에게 건넸다. 

시로의 손가락 사이에 끼인 지페를 가만히 내려다 본 동생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쫓아내는 거야?!”

“자고 갈거야!!”

똑같은 얼굴을 한 남성 둘이 조르듯 외치는 모습에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오소마츠가 시로마츠를 말렸다.


“시로 생일이라서 왔다잖아. 자고 내일 가라고 해.”

일부러 형을 찾아온 기특한 동생들이었다. 

이대로 돌려보내기엔 너무 박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만류하는 오소마츠를 지그시 응시한 시로마츠가 픽- 행복이 묻어나오는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럼 자고 가. 아, 그리고.”

동생들을 거실로 들이려던 시로마츠가 발을 딱 멈추고 동생들을 향해 몸을 틀었다. 

자고 가도 된다는 허락에 의기양양한 미소로 오소마츠를 거들떠보던 동생들이 시로마츠의 목소리에 몸을 굳혔다.


“오소마츠한테 정식으로 인사 아직 안했잖아.”

“……시로마츠 형의 동생 마사유키입니다.”

“…쯧, 타카유키.”

“야.”

얼굴 가득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티를 내면서 작게 혀까지 차고 이름을 대는 동생들의 태도에 시로마츠가 다시 눈썹을 찡그리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동생들을 불렀다. 

시로마츠가 이대로 화를 내려는 낌새를 알아챈 오소마츠가 재빨리 그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한바탕 싸움이 일어났을 것이다.


“괜찮아~! 얼른 저녁이나 먹자. 아아, 그리고 나는 마츠노 오소마츠야~!”

하하, 어색한 웃음을 피우며 손을 가볍게 흔든 오소마츠가 시로마츠의 등을 밀며 거실로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오는 동생들을 소파에 앉히고 주방으로 들어간 시로마츠와 오소마츠가 텅 빈 냉장고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오늘 계획은 둘이 나가 저녁 외식을 할 생각이었다. 

어제 냉장고를 정리할 겸 남아있던 음식을 모두 처분한 덕분에 냉장고에 있는 것은 과일 몇 개. 

머리를 긁적인 시로마츠가 오소마츠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상 가득 차려진 저녁은 치킨와 피자. 게걸스럽게 피자와 치킨을 해치우는 동생들을 보며 ‘잘 먹는 구나~.’ 하고 감탄하던 오소마츠가 슬쩍 시로마츠에게 눈을 돌렸다. 

묵묵히 피자를 입에 가져가다가 오소마츠의 눈길을 알아챈 시로마츠가 “응?” 하고 부드럽게 오소마츠가 살포시 고개저었다. 

외식이 취소된 것은 아쉬웠지만, 오랜만에 시로마츠와 함께 먹는 피자와 치킨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

“형.”

서로 다정하게 바라보는 오소마츠와 시로마츠의 모습을 지켜보던 동생들이 손을 멈추고 시로마츠를 불렀다.


“왜.”

“우리 이거 주려고 온 건데 잊고 있었어.”

“생일 선물.”

“응?”

기름기 가득한 손가락을 대충 물티슈로 닦아낸 마사유키가 거실 한구석에 던져놓은 자신의 가방에서 예쁘게 포장된 아담한 크기의 선물을 꺼냈다. 

그 옆에서 퉁명스럽게 생일 선물이라 말한 타카유키가 선물을 마사유키에게서 받아 시로마츠에게 내밀었다. 

시로마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동생들의 선물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빵가루가 묻은 손을 털어내고 선물을 받아들었다.


“뭐야?”

“우리가 알바해서 산 거야.”

“형, 그거 가지고 싶어했으니까.”

동생들의 추가 설명에 더욱 선물 내용이 궁금해진 시로마츠가 선물을 서둘어 뜯어보았다.

포장지를 뜯자 작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케이스가 나왔다. 

케이스에 적힌 브랜드 명에 시로마츠가 설마하며 케이스를 열었다.


“너희가 알바해서 샀다고?”

믿어지지 않는단 시로마츠의 목소리에 동생들이 자랑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로마츠의 손에 들린 하얀색 만년필은 시로마츠가 학생 시절 가지고 싶어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학생 신분으로 사기엔 가격이 너무나 부담되어 포기한 후,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그 만년필을 동생들이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시로마츠가 숨을 들이마셨다.


“…고맙다. 진짜 고마워. 이거 살려면 알바 많이 했을텐데, 고생했네. 고맙다.”

고맙다는 말만 반복하는 시로마츠를 보며 동생들이 해족이 웃었다. 

말주변이 없는 시로마츠가 지금 얼마나 감동해있는지 동생들은 잘 알 수 있었다. 

만년필을 조심스럽게 케이스에 돌려 놓은 시로마츠가 따뜻한 미소로 동생들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이 기특한 자식들~!” 하고 웃으며 동생들의 머리를 헝클이는 시로마츠를 보며 오소마츠는 가슴 안쪽이 쪼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얼마나 시로마츠의 선물을 고르기 위해 고민하고 고민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주변에 조언을 구해도, 시로마츠에게 줄 선물을 정할 수 없어 결국 무난한 넥타이를 골랐다. 

시로마츠는 물론 오소마츠가 주는 선물에 기뻐했지만, 지금과 같은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시로마츠는 넥타이를 잘 하지 않는 편이었다. 

속으로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식탁 아래로 눈을 내렸다. 


오소마츠보다 더 오래, 동생들은 시로마츠를 알아왔을 것이다. 가족이니까 오소마츠보다 시로마츠의 취향을 더 이해하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당연했지만…, 그래도 어쩐지 지는 기분이 들어 괜히 손가락을 꼼질였다.


시로마츠에게 동생들은 오소마츠 자신보다 더 소중한 존재일까—.


바보같은 질문인 것은 알지만 오소마츠는 답을 얻고 싶었다. 

동시에 시로마츠에게 답을 듣는 것이 두려웠다. 

동생들의 자립과 취직 소동.

 그 사건이 있은 뒤로 벌써 몇 년이 흘렀는지. 지금은 모두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걷고 있는 동생들을 떠올린 오소마츠가 쓴웃음을 지었다. 

멀어지는 동생들을 붙잡지 못해, 붙잡을 수 없어서 괴롭고 힘들어했던 자신을, 가장 위태로웠던 순간의 자신을 지탱해 준 것은 시로마츠였다. 

혼자가 외로워서, 슬퍼서, 남겨지는 것이 두려워서 차라리 아무도 들이지 말자고 다짐했던 자신을 풀어준 것도 시로마츠였다. 

‘형’이 될 것인가, ‘오소마츠’가 될 것인가 고민하던 자신에게 ‘둘 다 너’ 라고 말해준 것도 시로마츠였다. 

어느새 오소마츠 안에서 동생들보다, 가족보다 더 크게 자리잡은 시로마츠를 보며 얼마나 행복했던지. 

오소마츠를 이를 세워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동생들보다 소중해진 시로마츠에게, 오소마츠도 그의 동생들보다 소중한 존재가 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시로마츠는 오소마츠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시로마츠의 동생들보다 더 클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오소마츠는 뜨겁게 달궈진 눈가를 소매로 비볐다.






3.


“저녁 준비 마무리될 때까지 둘 다 방에 올라가 있으렴.”

시로네 엄마의 말에 시로와 함께 거실을 나왔다. 

굳게 닫힌 시로 동생들의 방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2층에 바로 시로의 방이 있었다.


“우와~.”

처음 들어가보는 시로의 방은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라 어쩔 수 없이 건조한 감탄사가 나왔다.

책이 잔뜩 꽂힌 책꽂이에 1인용 침대, 책상, 작은 옷장이 전부인 방은 우리가 같이 살고 있는 집의 시로 방과 똑같았다. 

방에 들어가 침대에 앉자, 시로도 책상 의자에 앉았다.


“피곤하지는 않아?”

“별로~?”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는데 말이야.”

키득키득, 나를 놀리듯 웃는 시로를 힘껏 째려봐주고 볼을 부풀었다가 바람을 내뱉었다. 


긴장하지, 보통!? 

여, 연인의 부모님을 만나는데 말이야—. 

긴장하지 않는 녀석이 어디 있다는 거야.


시로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게 툴툴대는 사이, 시로는 책꽂이에 있는 책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 이 책이 여기 있었네.”

시로는 책꽂이에서 책 몇 권을 꺼내 책상에 쌓기 시작했다. 

저거 집에 가져갈 생각인건가? 

만화책은 재미있지만 시로가 읽는 책은 죄다 어려운 말 뿐이라 별로 읽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쌓여가는 책의 산을 보며 푹- 한숨을 쉬고 만화책이나 내가 볼 만한 것은 없나 둘러보았다.

정갈하게 꽂힌 책 사이에서 발견한 「졸업앨범」. 

고등학교는 시로와 다른 곳을 다녀서 시로의 고등학교 시절엔 흥미가 있다. 

다른 학교로 갈라져도 종종 만나긴 했지만, 그땐 항상 휴일이었고 서로 사복이었으니까….


“시로-, 이거 봐도 돼?”

“응. 봐.”

내가 뭘 들고 있는지 보지도 않고 대답하는 시로에게 메-롱 혀를 내밀어주고 앨범을 펼쳤다. 

시로를 찾아보려 했지만, 똑같이 교복을 입고 있으니 얼굴이 다 비슷비슷해보였다. 

사진 아래에 적힌 이름을 찾으며 페이지를 넘기다가 5반에서 겨우 시로를 찾아냈다.


“변한 게 없네—.”

웃음기 섞인 혼잣말을 읊으며 사진과 내 앞에 서 있는 시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시로는 학생 때랑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헤어스타일로 정말 변한 게 없는 것 같았다. 

19살의 소년 시로가 그대로 어른이 된 느낌. 

나도 그렇게 크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시로는 나보다 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19살과 20대 후반인 지금의 시로가 판박이인 것이 웃겨 큭큭 어깨를 떨자, 그제야 나를 본 시로가 다가왔다.


“뭘 보나 했더니 앨범 보고 있었냐?”

“시로—, 너 진짜 안 변했다.”

“뭐…. 그렇지. 너도 그렇잖아.”

“아닌데? 나는 매해 카리스마 레전드가 되어 가고 있다구!!”

흐흥-, 가슴을 내밀고 콧바람을 내뿜자 시로가 잘게 웃더니 “그래그래.” 하고 어린아이 대하듯 내 머리를 어루만졌다.

친구일 때도 종종 시로가 머리를 쓰다듬어 준 적 있지만, 연인이 된 후로는 손길이 조금 변했다. 

거칠게 머리를 헝클이던 손길이 부드럽게 결을 따라 쓸어내리고, 삐죽 솟아난 머리를 정돈해주며 다정하게 만져주는 손길에 절로 눈꺼풀이 내려왔다.


“얘들아~, 식사 준비 다 됐다~.”

아래에서 들려오는 시로네 엄마의 목소리에 쓰다듬이 멈췄다. 

눈을 뜨고 시로를 따라 일어나 방을 나와 계단을 내려가니 양복 차림의 중년 남성이 거실에 있었다. 

감청색 양복을 입고 희끗희끗한 머리를 깔끔하게 넘긴 얼굴은 시로가 20년 정도 늙은 것같았다. 

단번에 시로네 아빠라는 걸 알아보고 허둥지둥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세요!! 시로 친구, ‘마츠노 오소마츠’라고 합니다.”

“아, 아아, 그래…. 시로 아빠인 ‘유우노 마사노리’ 란다.”

시로 아빠는 어색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나도 시로 아빠를 따라 긴장해서 시로네 아빠 손을 덥석 잡아 흔들었다.

생각보다 힘이 들어간 악수를 끝내고 시로네 엄마를 따라 식탁에 앉았다. 

나와 시로가 나란히, 반대편엔 시로네 엄마와 아빠가 앉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흰 밥과 우리 엄마가 한 것보다 더 맛있어 보이는 반찬들에 긴장도 잊고 군침을 삼켰다. 

시로네 엄마가 불러온 시로의 동생들도 자리에 앉고나서야 식사를 시작했다. 

딱 적당하게 구워진 생선 구이와 고기감자조림, 나물 무침이 엄청 맛있었다. 

시로집이라는 것도 잊고 우리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후다닥 밥을 해치우고 한 공기 더 부탁하고 말았다. 

시로네 엄마는 잘 먹어줘서 기쁘다며 밥그릇에 밥을 높이 올려주었다. 정말정말정~~말 맛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시로의 동생들은 역시나 또 방에 틀어박혔다. 

시로와 시로 엄마가 상을 치우는 동안 시로네 아빠와 단 둘이 식탁에 앉아있었다. 

무지 어색해!!! 

시로네 아빠는 시로네 엄마와 다르게 나를 불편해하는 것 같았다. 

혹시 내가 마음에 안 드나? 불쑥 드는 불안에 마른 입술을 적시고 뭔가 좋은 이야기 없을까 머리를 굴렸다.


“그래, 저번에 사 놓은 술이 있었지?”

내가 먼저 입을 열기도 전에 주방을 향해 시로네 아빠가 물었다. 

시로네 엄마가 그렇다고 대답하더니 술병과 술잔 3개를 가져다 주었다. 

시로네 아빠는 망설임없이 술병을 따서 잔에 술을 가득 따라 내게 건네주었다. 

아마도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하는 거 아닐까. 

시로네 아빠가 준 술잔을 술이 넘칠까 조심스럽게 받자, 술에서 향긋한 냄새가 은은하게 났다. 

꽤 비싼 술인 것 같았다. 

시로네 아빠를 따라 시로와 시로네 아빠와 함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한 잔, 두 잔, 마시다보니 어느새 시로네 아빠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시로 아빠가 1잔 마실 때 내가 2잔 마셨으니 그렇게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완전히 취한 것 같았다. 

시로가 왜 술이 약한지 알겠다~. 

스스로 조절하며 마시던 시로가 거나하게 취한 아빠를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아버지, 이제 그만 마셔요.”

“응~? 아니, 오랜만에 아들내미가 왔는데 좀 마시면 어때서. 안 그래? 마츠노 군.”

“하하, 네.”

“아아, 그래. 재미있는 거 알려줄까?”

“네!”

“동생이 형을 엄청 좋아하는 걸 3글자로 줄이면 뭘까?”

“어…,”

“형광펜!”

갑자기 아재 개그를 시전하는 시로 아빠에게 어떻게든 미소를 만들어 보였다. 

시로네 아빠가 아재 개그를 치기 시작하자 시로와 시로네 엄마는 아빠를 완전히 무시했다. 

나라도 웃어주지 않으면!! 

묘한 사명감이 들어 시로네 아빠가 치는 개그에 전부 웃었더니 얼굴 근육이 아팠다. 그

그래도 시로네 아빠가 굉장히 기뻐하는 것 같아서 아려오는 입꼬리를 다시 끌어올렸다.


“아빠, 이제 그만하고 자요.”

시로가 보다못해 나섰지만 시로네 아빠는 나를 보고 호탕하게 웃을 뿐이었다.


“이야~, 우리 재미없는 아들내미한테 이렇게 유쾌하고 활기찬 친구가 있는 줄은 몰랐네—. 앞으로 우리 아들 잘 부탁한다.”

“아, 네!!”

만족스럽게 웃은 시로 아빠에게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로 아빠와도 사이가 좋아진 것 같아 뿌듯하게 시로를 보자 시로도 가는 미소로 내 등을 작게 두드려주었다. 

한바탕 웃은 시로네 아빠가 졸린 듯 책상에 엎드리자 시로가 재빨리 일어나 아빠를 부축해 안방으로 향했다.


“오소마츠 군, 미안한데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네!”

시로를 도우려 일어난 나를 시로네 엄마가 불렀다. 

얼른 대답하니 시로네 엄마가 잘 개인 옷가지를 가져왔다.


“이거 잠옷으로 입으렴. 그리고 이 옷들은 마사유키랑 타카유키한테 가져다 주겠니?”

“네!”

잠옷까지 준비해준 시로네 엄마한테 감사하며 옷을 받아들었다.

먼저 시로 방에 올라가 침대에 대충 잠옷을 던져놓고 내려와 동생들의 방문 앞에 섰다. 

절대 열리지 않는 강철문처럼 느껴지는 그 앞에서 크게 심호흡을 하고 살며시 노크했다.


“….”

힘을 빼긴 했지만 분명히 안까지 노크 소리는 들렸을 만한 크기였다.

그런데도 아무런 대답도 반응도 없는 문에 살~~짝 짜증이 났다.


아니, 생각을 좀 해봐? 

나 여태 저자세로 나갔지? 

실은 잘못한 거 없는데 말이야.

집에서는 녀석들에게 폭군이라고까지 불렸었는데 말이지—. 

시로네 동생들 앞에선 꽤 얌전하게 있었다고. 

그런데도 이런 대우는 너무하지 않아? 

나, 꽤 참았고.


발끈하는 기분에 따라 다시 노크했다. 

이번엔 힘도 빼지 않고, 안에서 반응이 있을 때까지. 

문을 쳐부수는 한이 있어도 노크를 그만두지 않겠다는 기세로 맹렬하게 두드리자 그제서야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러워!!”

시로 동생 중 한 녀석의 목소리에 씨익- 웃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갑자기 들어온 나를 보고 놀란 동생은 왜 멋대로 들어오냔 얼굴로 살기등등하게 나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노려봐도 전혀 무섭지 않거든~? 

흥! 하고 콧방귀를 껴주고 손에 들고 있던 옷을 내밀었다.


“이거, 엄마가 갖다 주래서 온 거라구.”

쌍둥이 것으로 보이는 2층 침대에 누워 나를 엄청 노려보던 동생 1 (이름은 알지만 불러주고 싶지는 않다) 이 옷을 건네받아 옷장에 구겨넣었다. 

도로 침대에 털썩 누워 거만하게 늘어진 자세로 책을 읽는 동생 1은 제껴두고 책상에 앉아 동영상을 보고 있는 동생 2 뒤로 돌아갔다. 

무슨 영상을 보는지 궁금했고, 혹시 야동이면 같이 볼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동생 2가 보고 있던 건 카라마츠의 연극 영상이었다.

카라마츠의 연극은 카라마츠가 항상 티켓을 보내주어서 다 봤었지만, 화면에 비친 카라마츠의 연기는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조용히 대사를 치는 카라마츠를 바라보고 있자, 나를 발견한 동생 2가 갑자기 “왁!” 하고 놀래며 몸을 튕겼다.


“나간 거 아니었어요!?”

“응? 아—. 근데 연극 좋아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묻는 동생 2의 질문에 대충 대답하고 영상을 가리키자 동생 2가 화면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우물쭈물했다.


“저, 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응? 뭔데?”

“그…,”

그 다음 말은 동생 2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 잘 들리지 않았다. 

몸을 숙여 귀를 동생 2에게 더 가까이 가져가 “뭐?” 하고 묻자, 동생 2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마츠노 카라마츠, 라는 배우 알아요?”

“응. 동생이야.”

“역시!?”

당연한 걸 묻길래 바로 대답했더니 동생 2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내 손을 잡았다.


“저 마츠노 카라마츠 배우 팬이에요!!”

“헤…?”

우—와…. 거짓말…. 

카라마츠 보이가 이치마츠 말고 또 있어!? 

믿어지지 않아서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동생 2는 제멋대로 카라마츠가 왜 좋은지 이유를 좔좔 늘어놓기 시작했다. 

확실히 카라마츠가 연기를 잘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동생 2가 하는 말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적당히 응응,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마츠가 메소드 연기…. 그거 엄청 유명한 연기 아냐?

그걸 카라마츠가 한다고?? 절~~~~대 아니지?? 

실제로 봤던 카라마츠의 연기를 떠올리며 머리를 털어냈다. 

아무래도 시로의 동생 2는 제대로 콩깍지가 씌워진 것 같았다.

한참을 카라마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동생 2가 내 손을 놓아주었다. 

오늘 평생 들을 ‘카라마츠’라는 단어를 다 들은 것 같아. 

멀미가 온 것처럼 살짝 어지러운 머리에 한숨을 쉬고 고개를 올리자 동생 2가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카라마츠 배우 형이라면 충분하네요. 저, 인정할게요. 오소마츠 형! 형도 ‘마사유키’라고 불러주세요!”

“어? 응? 으, 응.”

에?? 대체 뭐가 충분하다는 건지, 뭘 인정한다는 건지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눈을 반짝이는 동생 2, 아니 마사유키에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사유키는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하고 활짝 웃었다. 

웃는 얼굴이 학생 때 시로와 조금 닮아서 살짝 두근거렸다. 

마사유키는 북마크 해 두었던 카라마츠가 나오는 영상을 쭈루룩 켜놓고, 카라마츠의 연기를 하나씩 칭찬했다. 

형으로서 동생이 칭찬받는 게 기쁘긴 하지만 전혀 공감할 수 없어서 조금 난감했다. 

적당히 응, 응, 대답하며 넘기고 있을 때였다.


“시끄러워서 책을 못 읽겠네!”

다 들리도록 “쯧.” 하고 혀를 찬 동생 1이 나와 마사유키를 노려보았다. 

마사유키가 나를 감싸고 나서서 동생 1에게 뭐가 시끄럽냐고 반박하는 동안 멍청히 동생 1을 바라보다 문득 깨달았다.


“그거 ‘무라사키’ 책이야?”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

마사유키와 언쟁을 하던 동생 1이 의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흐흥~~, 과연 그런거군. 

씨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야—, ‘무라사키’는 내 동생이니까.”

‘무라사키’는 이치마츠의 필명이었다. 

이치마츠가 쓰는 책은 범죄추리 소설로 제법 잘 팔리고 있었다. 

이치마츠가 책이 나올 때마다 내게 보내주어서 책 제목 정도는 알고 있다.

 내용은 너무 어려운 한자가 많이 쓰여서 읽지 않았지만…. 

아무튼 동생 1은 내 말을 듣자마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몸을 일으켰다.


“거, 짓말 하지마.”

“진짜야! 지금 전화해볼까!?”

“엣.”

동생 1의 말에 울컥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이치마츠의 번호가 저장된 단축번호를 눌러 통화 버튼을 누르자, 통화 연결음이 이어졌다. 

뚜르르, 뚜르르-. 계속 울리던 연결음은 이러다 안 받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이 들 때쯤 끊겼다.


『네, 여보세요.』

“이치맛쨩~!!”

『오소마츠 형, 무슨 일이야?』

“우헤헤—, 그냥~. 저기 이치맛쨩.”

『응.』

“지금 내 앞에 있는 어떤 녀석이 이치맛쨩이 ‘무라사키’라고 말해도 안 믿어. 이치맛쨩이 제대로 말해줘.”

『엣』

“자.”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돌리고 동생 1 앞에 스피커를 내밀었다.


『에…, 오소마츠 형?』

“이치맛쨩이 ‘무라사키’ 맞지?”

조심스럽게 나를 부르는 폰 너머의 이치마츠에게 물었다. 

이치마츠는 아직 상황 파악 중인지 잠시 간격을 두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거짓말 아니야?”

“아니야!! 그치? 이치맛쨩!!”

『엣? 나?? 아, 응…. 안녕하세요. 더럽게 우울하고 끔찍한 글을 쓰는 ‘무라사키’입니다.』

“왜 거기서 어둠 오라를 내뿜는 거야?! 이치마츄~!!”

자기 소개를 하면서 서서히 어두워지는 이치마츠의 목소리에 내가 들고 있는 폰에서도 어두운 기운이 뿜어나왔다. 

“히히힛.” 하고 음산하게 웃는 이치마츠의 목소리에 동생 1이 구기고 있던 얼굴을 피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말로 ‘무라사키’ 작가님 이에요?”

『네.』

“그럼 이번에 정말 「정맥」후편 나오나요?”

『네.』

「정맥」이라는 것은 이치마츠가 쓴 소설 중에서 제일 잘 팔렸던 책으로, 동생 1이 읽고 있던 책이었다.


『지금 탈고 중이니까 아마 다다음달엔 책이 나갈 것 같아요.』

“지, 진짜요!?”

이치마츠의 설명에 동생 1이 펄쩍 뛰면서 폰을 잡고 있던 내 손을 자기쪽으로 끌어당겼다.


“저, 정말 ‘무라사키’ 작가님 글 좋아해요!! 지금까지 나온 책 다 샀어요!”

『아, 감사합니다.』

“「정맥」을 제일 좋아해요. 후편도 나오면 바로 살게요!”

『하핫, 감솸다-. 오소마츠 형.』

“응?”

동생 1은 눈까지 충혈되서 엄청 흥분한 것 같았다. 

거센 콧바람이 내 손에 닿는 걸 보면…. 

이치마츠는 동생 1의 호들갑이 부담스러운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나를 찾았다.


『나 이제 마감해야하니까 먼저 끊을게.』

“응~. 나중에 봐.”

『응.』

‘마감’이라는 단어에 어쩔 수 없이 통화를 끊고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내밀고 동생 1을 응시했다. 

동생 1은 현실이 잘 믿어지지 않는지 멍청히 허공을 보고 있었다.


“이제 믿지?”

“네. 오소마츠 형.”

“으, 응??”

갑자기 ‘형’이라 불려서 당황했다. 

동생 1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정을 싹 바꾸고 헤실- 웃으며 내게 이치마츠와 관련된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에? 뭐야, 이 광속 태세전환.

당황하는 사이 동생 1이 자기를 ‘타카유키’라고 불러달라는 말을 했다. 

게다가 마사유키도 가세해서 카라마츠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해 뭘 먼저 대답해야 할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잠깐!! 잠깐만! 한 명씩 물어봐!!”

눈을 빛내며 나를 포위한 마사유키와 타카유키를 막고 일단 진정시켰다. 

둘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순서를 정해 카라마츠와 이치마츠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왜 그런 걸 알려고 할까 싶은 사소한 것도 물어오길래 내가 알고 있는 걸 모두 이야기해주었다.




똑똑, 노크소리가 울리고 곧 시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시로는 침대에 동생들과 나란히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놀란 것 같았다.


“언제 그렇게 친해졌냐?”

시로의 물음에 마사유키가 능청스럽게 “오늘부터 친해지기로 했어.” 하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 픽-, 작은 웃음을 뱉은 시로가 내게 손짓했다.


“오소마츠, 올라가서 자자. 벌써 12시 넘었어.”

“벌써 그렇게 됐어?”

시로 말에 놀라 폰 화면에 뜬 시계를 확인했다. 

12시를 훌쩍 넘어 1시를 막 지난 시각에 놀라 침대에서 일어났다. 

시로의 동생들은 더 이야기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잘 자라며 인사했다. 

친해지고 나니 어쩐지 귀엽게 보이는 녀석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시로와 함께 계단을 올랐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했어?”

“응? 헤헤, 비—밀이야!”

입가에 두번째 손가락을 가져가 웃었다. 

시로의 동생들에게 카라마츠나 이치마츠 이야기를 해 준 만큼 나도 시로가 어릴 때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가족만 알고 있던 시로를 알게 된 게 솔직히 기뻐서 기분이 좋았다. 

시로는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해했지만 더 묻지 않고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4.


흐암~, 크게 하품을 하며 내려온 오소마츠가 저를 기다리고 있던 세나를 보자마자 입을 다물고 몸을 뻣뻣하게 세웠다.


“아,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잘 잤니? 잠자리가 바뀌어서 잘 잤을지 모르겠네.”

“네! 잘 잤어요.”

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오소마츠에게 세나가 반찬통을 내밀었다.


“이거 가져가서 먹으렴. 어제 너무 잘 먹길래 아침에 더 해서 싸놨어.”

“감, 감사합니다!!”

어제 맛 본 그 반찬이 담긴 반찬통에 얼굴이 환해진 오소마츠가 재빨리 통을 건네받았다. 

곧이어 계단을 내려온 시로마츠가 오소마츠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제 에 가자.”

“응.”



떠날 차비를 끝내고 현관에 선 오소마츠와 시로마츠를 배웅하기 위해 세나와 마사유키, 타카유키가 나란히 섰다. 

“네 아빠는 어제 너무 마셔서 뻗어버렸지 뭐니.”

“어제 많이 드시긴 했죠.”

어휴—, 눈썹을 내리고 한숨을 내쉰 세나가 시로마츠를 보며 다정하게 웃었다. 

조심히 가라는 세나의 당부와 동생들이 오소마츠와 시로마츠에게 손을 흔들었다. 

시로마츠가 먼저 차를 대기 위해 현관을 나가고 오소마츠도 뒤따르려는 순간, 세나의 상냥한 목소리가 오소마츠에게 닿았다.


“오소마츠 군.”

“네.”

“우리 시로를 잘 부탁해. 그리고 앞으론 같이 자주 놀러오고.”

“……네.”

생글 웃으며 말하는 세나의 목소리는 정말로 너무나 다정해서, 오소마츠는 울컥 눈물을 쏟아낼 뻔했다. 

눈물을 참고 코를 훌쩍이며 시로마츠의 차에 오르자, 시로마츠가 놀란 얼굴로 붉어진 오소마츠의 눈가를 매만졌다.


“울었어?”

“아니, 별 거 아니야…. 근데 시로—.”

“응?”

차에 시동을 걸며 오소마츠에게 대답한 시로마츠가 이어진 오소마츠의 질문에 은은한 미소로 답했다.


“혹시 시로네 엄마랑 아빠한테 우리 관계 말했어?”

시로마츠는 오소마츠와 눈을 맞추고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으로 오소마츠는 그동안 삼키고 있었던 불안을 모두 날려버릴 수 있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계획했던 '장남의 심중' 외전은 1개 더 있어요. 열심히 써서 주중에는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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