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위터 친구 레모몬님의 생일 축전으로 쓴 단편입니다! 좀 늦었지만...ㅎㅎ;;


* 레모몬님이 바라시던 글과 좀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런 글입니다.


* 어쩌다보니 약한 장남이 되었습니다.....


* 학생마츠입니다.  육둥이의 학창시절 날조가 있습니다.


* 공미포 10,143자.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낡은 자물쇠를 요령껏 오른쪽으로 비틀자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열렸다

끼이익-, 하고 비명을 지르는 문을 열자 하얀 바닥과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옥상 위로 쏟아지는 햇빛에 눈을 찡그린 오소마츠가 차가운 바닥에 엉덩이를 내렸다. 빨간 보자기에 쌓인 도시락을 바닥에 내려놓고 닫힌 문을 응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라마츠가 비명을 지르는 문을 열고 옥상에 올라왔다

한 손엔 대본을, 다른 한 손엔 도시락을 들고 다가오는 카라마츠에게 가볍게여어-.” 하고 인사를 건넨 오소마츠가 도시락을 열었다

마츠요가 싸준 도시락은 6개 모두 똑같은 반찬이 담겨 있었다

엄마의 손맛이 가득한 계란말이를 입에 넣은 오소마츠가 대본을 읽는 카라마츠를 가만히 응시했다

하나씩 반찬이 없어져 가는 오소마츠의 도시락과 달리 카라마츠의 도시락은 그대로

대본에 열중해 오소마츠에겐 시선도 주지 않는 카라마츠를 오소마츠가 말없이 바라보았다.

 

 

 

 

 

2.

 

미지근한 온수처럼 느껴졌던 초등학교를 졸업한 육둥이는 중학교에 들어갔다

귀가 시간은 더 늦어지고, 교복을 입고, 더 어려워진 수업

모든 것이 변한 가운데 육둥이도 변해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겨우 학교 하나 옮겼을 뿐인데 육둥이를 둘러싼 환경은 급변했다

선생님들은공부를 강조하기 시작했고, 친구들도 마냥 즐겁게 놀지는 않았다

육둥이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혼동한다는 이유로 각 반에 한 명씩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주변의 변화를 따라 육둥이 내부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동등했던 지위는형과 동생으로 나뉘었고 오소마츠에게는장남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겨우장남이라는 단어 하나에 오소마츠를 보는 사람들의 눈이 변했다

장남이니까, 장남이 왜, 장남이 해라…, 등등. 오소마츠에게만 특별함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그저 당황스러웠다

그러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부모님조차네가 장남이잖니.” 라는 말을 태연하게 내뱉었다

자신에게 요구대는 기대에 오소마츠는 숨이 막혔다

강요받은 기대에 혼란스러워하며 도망치는 사이에 오소마츠 자신은장남이자이 되었고 다른 녀석들은동생이 되었다

커지는 몸과 변성기를 거쳐 낮아지는 목소리와 함께 동생들은 점점 더 변해갔다

오소마츠로 있으려 하는 오소마츠를 남겨두고 멀어지는 동생들이 낯설었다

가장 가까웠던 쵸로마츠조차 오소마츠의 곁을 떠나자 오소마츠는 혼자가 되었다

항상 여섯이 함께였던 그 자리에 달랑 혼자 남은 오소마츠는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항상 어린 시절만 같을 줄 알았다.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동생들은 각자의 것을 찾아 바빠졌고, 자연스럽게 오소마츠는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니, ‘혼자인 것은 아니었다

활발하고 쾌활한 오소마츠 곁엔 항상 친구들이 있었다

오소마츠의 주변은 항상 떠들썩했다

한시도 조용하지 않은 무리 속에서, 오소마츠는 자신이외톨이임을 느꼈다.

 

 

 

모두 둘러앉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토도마츠가 자랑스럽게 가슴을 내밀며 카라마츠의 주역 소식을 알렸다

뭘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카라마츠가 주역이 된 것은 순전히 자기 덕분이라며 으스대는 토도마츠에 이어 카라마츠도,” 하고 웃음을 흘렸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소란을 떨며 정말이냐, 거짓말 아니냐, 무슨 역이냐, 질문 세례를 퍼붓는 동생들에게 카라마츠가 하나하나 질문에 답했다

이번 연극은 왕자와 공주가 나오는 전형적인 이야기로 카라마츠는 무려 왕자역을 맡았다

놀라운 이야기에 모두 축하한다는 말을 던지자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짙은 눈썹을 슬쩍 늘어뜨렸다.


그런데 혼자 연습할 곳이 없어서 곤란하다….”

카라마츠의 말에 잽싸게 비엔나소시지를 제 밥그릇에 옮긴 토도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부실에서 같이 연습하면 되잖아?”

그게, 감정을 잡고 대사 연습을 하려면 혼자가 편하다. 그런데 부실은 다른 부원이 있고, 체육관은 운동부가 쓰고 있고, 빈 교실은 선생님께 혼나니까….”

수업이 모두 끝난 후, 빈 교실에 있다가 걸리면 무슨 나쁜 짓을 하는게 아니냐는 추궁을 듣기 쉽상이었다

카라마츠의 고민에 동생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돌려주며 찾아보면 연습할 곳이 있을거라는 무책임한 대답을 했다. “-.” 하고 대답하고 다시 밥을 우물거리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눈을 빛냈다.

 

기회다!’

 

오소마츠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오소마츠가 터져 나오는 환희를 삼켰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도록 입안 가득 밥을 욱여넣고 먼저 밥상에서 일어난 오소마츠가 주방으로 향했다

평소에도 형제들보다 먹는 속도가 빠른 오소마츠를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주방에 들어가 싱크대에 빈 밥그릇을 내려놓은 오소마츠가 다음 동생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오소마츠 다음으로 밥을 빨리 먹는 것은 카라마츠였다

터벅터벅,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심장이 두방망이 치는 것을 느꼈다

두근두근두근,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을 누르고 주방 입구를 응시한 오소마츠가 들어오는 카라마츠를 보며 씩- 환한 미소를 피웠다.


카라마츄~.”

? 뭔가? 형님.”

실실 웃으며 다가오는 오소마츠를 경계하듯 눈을 게슴츠레 뜬 카라마츠가 물었다

슬슬 저를 피하는 태도에 흐트러진 미소를 억지로 올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혼자 연습할 수 있는 데를 알고 있는데-.”

. 정말인가?”

! 알고 싶으면 내일 점심시간에 우리 반으로 와!”

카라마츠에게 말을 끝낸 오소마츠가 그 옆을 스쳐 주방을 빠져나왔다

멈추지 않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쿵쿵쿵, 박동하는 심장 위에 손을 얹었다

겨우 대화 몇 마디 나누는 것뿐인데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고 있었다

왜 자신이 이렇게나 떨고 있는지, 잘게 떨리는 손끝을 보며 쓴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제 손을 감싸 쥐었다

거부당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카라마츠도 오소마츠를 두고 간 동생 중 하나였다

장남오소마츠의 가장 가까운차남이지만, 쵸로마츠마저 오소마츠의 곁을 떠난 상황에서 카라마츠가 남아있을 리 없었다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은 것이 기뻤다

한숨과 함께 마음을 가라앉히고 변기 레버를 내렸다

낡은 변기에서 쿠르릉- 소리와 함께 물이 내려가는 것을 뒤로하고 오소마츠가 화장실을 나갔다.

 

 

 

점심시간이 되어 교실 문을 바라보던 오소마츠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저를 찾아온 카라마츠를 보자마자카라마츠~~!” 하고 손을 흔들며 달려간 오소마츠가 카라마츠 손을 잡고 복도 저쪽으로 이끌었다

뛰다시피 복도를 가로지르는 오소마츠에게 이끌려 도착한 곳은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이었다

옥상은 잠겨 있을 것이 뻔한데 계단을 오르는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빨리~.” 하고 저를 재촉하는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할 수 없이 계단을 올랐다.

 

 

예상대로 잠겨있는 자물쇠에 카라마츠가 한숨을 내쉬고형님.” 하고 오소마츠를 불렀다

손을 들어기다려봐.” 하고 자물쇠를 손에 쥔 오소마츠가 선배들에게 배운 대로 자물쇠를 오른쪽으로 비틀었다

, 소리를 내며 열린 자물쇠를 본 카라마츠가 눈을 크게 떴다.


어때~? 대단하지~? 카리스마 레전드 오소마츠님한테 걸리면 이런 건 껌이지~.”

코 밑을 집게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씩- 웃은 오소마츠가 옥상 문을 열고 들어갔다

녹슨 문이 끼이익- 하고 고막을 긁었다

카라마츠는 누가 듣고 올라오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을 안고 오소마츠를 따라 옥상에 발을 내디뎠다

환한 햇빛 아래 선선한 바람이 교복을 뒤집고 지나갔다

푸른 하늘 아래 선 오소마츠가어때?” 하고 카라마츠를 보며 물었다

옥상은 오소마츠가 으스댈 정도로 혼자 연기 연습을 하기엔 더없이 좋은 장소인 것은 확실했다.


, 완벽하다.”

그치?”

카라마츠의 대답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오소마츠가 손에 들고 있던 도시락을 열고 바닥에 앉았다

바로 연습할 수 있도록 대본을 들고 온 카라마츠가 그 자리에 앉는 오소마츠를 보며 당황스러운 얼굴을 감추지 않았다.


, 형님. 여기서 먹을 건가?”

카라마츠의 질문에 오소마츠가 울컥 치솟는 화를 그대로 드러냈다.


. 나는 여기 있으면 안 돼? 내가 알려준 데잖아.”

오소마츠의 낮은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손까지 휘저으며그런 건 아니다.” 하고 얼버무린 카라마츠가 젓가락을 입에 문 오소마츠에게 물었다.


시끄럽지 않겠나? 여기서 대사 연습도 할 생각인데….”

괜찮아.”

카라마츠의 질문에 깔끔하게 대답한 오소마츠가 다시 젓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볼 가득 밥을 넣고 우물거리는 모습이 꼭 다람쥐를 닮았다

괜찮다는 말대로 카라마츠 자신에겐 신경도 쓰지 않고 도시락에 집중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대본을 펼쳤다.

 

이날 이후로, 옥상은 오소마츠와 카라마츠, 단둘만의 공간이 되었다.

 

 

 

 

 

3.

 

마츠요의 도시락을 먹느라 고개를 숙인 오소마츠가 슬쩍 눈을 위로 올렸다

젓가락을 한 손에 든 채, 대본을 읽는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오소마츠에게 닿았다

목소리까지 비슷했던 육둥이는 변성기를 거쳐 서로 다른 색을 가진 목소리를 가지게 되었다

같은 남자인데도 목소리의 높낮이가 달랐다

카라마츠는 육둥이 중에서도 가장 목소리가 낮았다

남자의 매력을 가진 낮고 멀리 울리는 목소리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굉장히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종종 이치마츠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겠다고 제안하는 카라마츠

한 번도 들어본 적은 없었지만, 카라마츠가 부르는 자장가는 분명 부드럽고 은은하면서 상냥하게 자신을 잠의 세계로 보내줄 것이리라

카라마츠의 목소리를 훔쳐 들으며 식사를 끝낸 오소마츠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딸깍, 하고 젓가락이 부딪치는 소리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형님.”

?”

다 먹어라.”

한구석에 피망만 남은 오소마츠의 도시락을 보며 카라마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초록색 피망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오소마츠가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 카라마츄~. —.”

저가 남긴 피망을 한꺼번에 들어 올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 피망을 내밀었다

—.” 하고 말하며 제 입을 같이 벌린 오소마츠의 모습에 허탈하게 숨을 흘린 카라마츠가.” 하고 입을 벌렸다

입안에 가득 들어오는 피망을 아무렇지도 않게 씹어 넘기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빙그레- 미소지었다.


내 꺼 반찬 하나 줬으니까, 너 꺼도 하나 줘!”

뻔뻔하게 연습하느라 손도 대지 않은 카라마츠의 도시락을 보며 오소마츠가 입을 벌렸다.


-.”

입에 넣어달라며 손가락으로 제 입을 가리킨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빤히 바라보았다

짙은 눈썹을 찌푸리고 어이없다는 얼굴을 잘잘 흔든 카라마츠가 계란말이를 하나 집어 오소마츠 입속에 넣어주었다

푹신푹신한 계란말이의 감촉을 만끽하며 오소마츠가~~.” 하고 행복하게 웃는 것을 본 카라마츠가 픽-, 작은 웃음을 흘렸다.


맛있나? 형님.”

!”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하핫.” 하고 푸근한 미소를 띄웠다

형제들과 있을 때는 보기 힘든 카라마츠의 미소에 오소마츠가.” 하고 옅은 웃음을 뱉었다

카라마츠는 자신의인 오소마츠에게 엄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동생들에게 한없이 상냥한 카라마츠는인 오소마츠에게는 쌀쌀맞았다

나를 싫어하나, 진지하게 생각해볼 정도로 오소마츠에게 차가운 카라마츠가 옥상에 단둘이 있을 때는 완전히 달랐다

옥상에 있을 때만큼은 동생들에게 보여주는 상냥함이 오소마츠에게 향했다

대본을 읽거나 연기 연습을 하다가도 오소마츠가 반응을 보이면 바로 오소마츠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것이 오소마츠는 참을 수 없이 기뻤다

카라마츠뿐 아니라 다른 동생들과도 가끔 단둘이 있을 때는 있었다

그럴 때마다 동생들은 오소마츠가 있든 없든 자기가 할 일을 했다

숙제하거나, 공을 가지고 놀거나, TV를 보거나, 책을 읽었다

동생과 둘이 있는데도 오소마츠는 사무치는 외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카라마츠는 그렇지 않았다.

연기 연습을 하거나, 거울을 보는 등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은 같았지만, 카라마츠와 함께 있으면 서로 같은 일을 하지 않아도, 대화하지 않아도 쓸쓸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않은 유일한동생’, 그것이 카라마츠였다.

 

 

 

쵸로마츠, 간장 좀.”

.”

건네받은 간장을 뿌리고 옆에 내려놓자 쵸로마츠가 젓가락을 멈추고 오소마츠에게 물었다.


근데 오소마츠 형.”

~?”

점심시간에 어디 갔었어?”

?”

교과서 빌리러 갔더니 없던데.”

—.”

카라마츠한테도 갔는데, 카라마츠도 없고.”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눈을 굴렸다.

 “그게….” 하고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오소마츠를 수상하단 눈으로 응시한 쵸로마츠가 카라마츠를 보며 물었다.


둘이 같이 어디 가서 먹어?”

쵸로마츠의 질문에 형제 전원의 눈이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에게 꽂혔다

저에게 집중된 네 쌍의 눈동자에.” 하고 눈을 깜빡이는 카라마츠를 대신해 오소마츠가 소리를 높였다.


어디서 먹든 무슨 상관이야—.”

오소마츠의 대답에 쵸로마츠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 물어본 거잖아.” 하고 짜증 섞인 말을 던진 쵸로마츠가 분주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오소마츠와 쵸로마츠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에 남은 형제들도 더 추궁하지 않고 식사에 집중했다

볼을 살짝 부풀리고 쵸로마츠를 노려본 오소마츠가 다시 젓가락을 고쳐잡자, - 하고 카라마츠의 발이 오소마츠의 발을 건드렸다

눈을 옆으로 옮기자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향해 빙긋- 웃었다

형제가 다 있는 자리에서 옥상에서 보여주었던 미소를 지은 카라마츠 덕분에 오소마츠의 머릿속은 혼란에 빠졌다

언제 웃었냐는 듯이 묵묵히 식사에 돌아간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살짝 입술을 씹었다

카라마츠의 미소에 담긴 의미를 오소마츠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답답한 가슴에 괜히 화를 내며 눈을 돌렸을 때, 맞은편에 앉은 쵸로마츠가 보였다

오소마츠에게 눈도 마주치지 않고 밥을 먹는 쵸로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고개 숙였다


쵸로마츠의 질문에 솔직하게 옥상에서 먹고 있다고 대답했으면 어땠을까

선배들이 졸업한 지금, 옥상 자물쇠를 따는 법을 아는 건 오소마츠뿐이다

한 번도 올라보지 않은옥상이라는 장소에 흥미를 느낀 동생들을 이끌고 다 함께 옥상에서 점심을 먹을 수도 있었다

능숙하게 자물쇠를 여는 오소마츠를 보며 감탄하는 동생들에게 으스댈 기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자신은 그런 대답을 한 것일까

밥을 씹는 둥 마는 둥 넘기며 머리를 굴려도 알 수 없었다

이유가 어쨌든 모두 다 함께 옥상에서 밥을 먹을 기회는 날아갔다

오소마츠는 옆에 앉은 카라마츠를 힐끗 쳐다보고, 옥상에서 좀 더 단둘이 있을 수 있음에 안도했다.

 

 

 

4교시 종이 치고 가방에서 도시락을 챙겨 교실을 나서려는 오소마츠를 친구 하나가 불러 세웠다

반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의 부름에 오소마츠가?” 하고 걸음을 멈췄다

오소마츠의 도시락을 보며 즐겁게 웃은 친구가 교실 한쪽에 모여있는 무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츠노~! 오늘은 우리랑 같이 먹자! 저번에 우연히 숨겨진 교실 같은 걸 발견했는데, 재미있는 게 엄청 많아!!”

오소마츠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엄지를 들어 올린 친구의 제안에 오소마츠가….” 하고 대답을 흐렸다

다를 때였다면 흥미로운 친구의 제안에 바로 올라탔겠지만, 모처럼 카라마츠와 단둘이 있는 시간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오소마츠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 친구가마츠노?” 하고 오소마츠를 불렀을 때, 드륵- 하고 교실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카라마츠…?”

열린 문 너머에서 잔뜩 화난 얼굴로 오소마츠를 노려보던 카라마츠가 성큼성큼 오소마츠의 반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서 뭐 하는 건가, 형님. 동생들이 기다리고 있다.”

, ?”

-, 동생들하고 먹기로 한 거야? 사이좋다-, 너네.”

카라마츠의 말에 어리둥절해 하는 오소마츠 옆에서 친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오소마츠의 어깨에서 팔을 내렸다

친구가 물러나자마자 오소마츠 손을 잡아끈 카라마츠가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왔다

계단을 올라 옥상에 오르자마자 카라마츠가 몸을 빙글 돌려 오소마츠에게 다가왔다.


형님, 다리 보여줘.”

, …? 카라마츠, 너 화난 거 아니었어?”

조금 전 교실에서 보여주었던 험한 얼굴을 떠올리며 묻자, 짙은 눈썹을 부드럽게 내린 카라마츠가화 안 났다.” 하고 대답했다.


아니, 너 아까 엄청 심한 얼굴,”

그것보다 아까 체육 시간에 넘어졌지.”

“…보고 있었어?”

눈썹을 찌푸린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머리를 긁적였다.

3교시였던 체육 시간,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하던 오소마츠는 제 발에 걸려 화려하게 넘어지고 말았다

괜찮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창피함을 억누르며 괜찮다고 말하고 벌떡 일어나는 모습을, 카라마츠는 교실 창문을 통해 전부 보고 있었다

그 화려한 넘어짐을 카라마츠에게 보였다는 창피함에 팔을 들어 얼굴을 숨겼다

귀까지 빨개진 오소마츠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바지 밑단을 잡아 올렸다.


우왓!”

양호실도 안 간 건가….”

검붉은 피딱지가 붙은 상처를 보며 황당하다는 얼굴을 한 카라마츠가 가볍게 오소마츠를 노려보았다.

대단한 상처가 아니기에 양호실 가는 것도 귀찮아 가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며 가만히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오소마츠의 상처를 보고 눈썹을 한껏 찌푸리고는 주머니에서 반창고와 연고를 꺼냈다

조심조심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단단히 붙여주더니 바지까지 다시 내려주고는 만족스럽게 웃는 카라마츠를 오소마츠가 멍청히 응시했다

오소마츠의 시선에 슬쩍 고개를 돌리고, 밥 먹자.” 하면서 도시락을 여는 카라마츠의 행동에 픽- 웃음을 터뜨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 옆에 앉았다.


역시 옥상에 있을 때만큼은 카라마츠가 상냥하다

이대로, 계속 여기에서 둘이 있었으면 좋겠다 소망하며 오소마츠가 도시락을 열었다.

 

 

 

 

 

4.

 

짧아진 해가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하굣길. 오늘도 혼자 운동화를 질질 끌며 집으로 향하던 오소마츠가 걸음을 멈췄다

여러 가게가 모여 있는 시장으로 들어가는 한 쌍의 남녀.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학생화 하하 호호 웃으며 걸어가는 남자는 카라마츠였다

까르르 웃는 여학생이 카라마츠의 팔을 툭 건드렸다. 카라마츠도 수줍게 웃으며 여학생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같은 교복을 입고 나란히 걸어가는 카라마츠와 여학생은 사이좋은 연인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 하고 숨이 막혔다. 폐가 꼭 밧줄을 칭칭 감아 있는 힘껏 조이는 것처럼 꽉 막혀 숨을 쉬기 힘들었다

, 하고 간신히 내뱉은 숨은 시야에서 멀어지는 카라마츠와 함께 오소마츠의 곁을 떠났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뭔가와 함께 눈시울이 뜨거웠다

촉촉해지는 눈가는 소매로 가린 오소마츠가 이를 악물고 울음을 삼킨 채, 집을 향해 땅을 박차고 뛰었다.

 

 

 

멍청히 하늘 위에 유유히 흘러가는 하얀 구름을 올려다보던 오소마츠가 끼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흠칫 놀라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카라마츠와 눈이 맞은 순간, 오소마츠가 작게 혀를 차고 도시락 뚜껑을 덮어 벌떡 일어났다

카라마츠를 스쳐 지나가 옥상을 나가려는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붙잡았다.


뭐야. 연습할 거 아냐?”

형님, 요즘 왜 나를 피하는 건가.”

별로 안 피했는데—?”

카라마츠의 질문에 오소마츠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이전에 오소마츠 친구에게 보여주었던 험악한 얼굴을 한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가 비웃는 투로 말했다.


안 피했거든~? 내가 너가 뭐라고 피하냐? 자의식 과잉이야, 그거~.”

아니-. 피했다. 어제저녁에 일부러 내 옆에 안 앉고, 잠자리도 토도마츠한테 바꿔 달라고 했잖나. 아침에도 내가 기다려달라 했는데 먼저 학교 가고! 내가 뭘,”

뭘 했다고 그러나, 라고 물으려던 카라마츠의 말을 끊은 오소마츠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음산한 미소를 보냈다.


어제 같이 하교하던 애랑 엄~청 뜨겁더라?”

.”

이야~, 몰랐어. 너한테 그런 예~~쁜 여친이 있을 줄은?”

, 건가…. 틀리다, 형님. 그 아이는 같은 연극부 동료다. 어제는 필요한 물품을 사야 된다고 짐꾼으로,”

됐어, 됐어~. 그렇게 변명하지 않아도 괜찮아~.”

형님!”

사랑의 방해꾼인형아는 빠져줄게~.”

자신을이라고 칭한 순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오소마츠는 재빨리 고개를 돌리고 카라마츠가 붙잡고 있는 팔을 크게 흔들었다

! 하고 힘을 주어 단번에 흔들자 카라마츠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그대로 카라마츠를 지나쳐 나가려는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다시 붙잡았다.


사람 말을 좀 들어라!!”

—, -끄럽네!!! 모처럼이 빠져 주겠다고 하잖아!!”

그게 아니라고 말하잖아!!!”

커진 언성에 분위기는 험악해진다. 오가던 노성이 주먹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츠노 가에서 진수성찬에 들어가는 가라아게를 앞에 두고 육둥이는 조용했다

얼굴과 팔다리 여기저기에 시퍼런 멍을 달고 있는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의 눈치를 살핀 토도마츠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원인은 모르지만 서로 멍이 들 때까지 싸운 것은 초등학교 때가 마지막이었다

서로 멀찍이 떨어져 앉아서 묵묵히 밥을 입에 넣는 오소마츠와 카라마츠 덕분에 마츠노 가의 저녁 식사 시간은 유례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얌전했다.

 

 

아직 잠들어있는 동생들을 한 번 훑어본 오소마츠가 이불에서 몸을 뺐다

등교 시간이 한참 남은 이른 아침. 눈을 비비며 계단을 내려온 오소마츠를 본 마츠요가 놀라 물었다.


어머나,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나.”

오소마츠를 보며 싱긋- 미소지은 마츠요가 내주는 밥과 따끈한 된장국을 후루륵 들이킨 오소마츠가 교복으로 갈아입고 마츠조와 함께 현관을 나왔다.

마츠조도 놀라 웬일로 일찍 나가냐 물어왔다

적당히 당번이라는 거짓말을 흘린 오소마츠가 욱신거리는 가슴을 붙잡고 학교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들어가 책상에 엎드린 오소마츠가 핑- 도는 눈물을 소매로 닦았다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카라마츠에게 여자친구가 생기는 것은 확실히 싫다

아직 오소마츠 자신도 여자친구를 가져본 적이 없는데, 카라마츠가 자신을 앞서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건 다른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마음은, 울화는 그것과는 다른 것 같았다.

카라마츠에게 여자친구가 생긴다면, 더는 둘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오소마츠는 무엇보다도 큰 충격이었다

쵸로마츠가 자신의 곁을 떠났을 때보다 더, 훨씬 더 괴롭고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이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화를 내고 카라마츠와 대판 싸우게 되었다

눈을 감고 엊그제 본 카라마츠와 여학생을 떠올렸다


잘 어울렸다

분하도록 잘 어울렸다


오소마츠는 눈을 깜빡이며 눈물을 말리고 홀로 다짐했다

카라마츠에게 여자친구가 생기기 전에, 적어도 남은 이 시간을 즐겁게 보내자

아직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면 카라마츠와 자신의 시간에도 조금의 유예가 있었다


오늘 화해하자, 그렇게 다짐한 오소마츠가 눈을 감았다.

 

 

 

저를 흔드는 친구의 목소리에 눈을 뜨자 어느새 4교시가 끝나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새벽 기상을 한 탓인지 한 번도 깨지 않고 내리 4교시를 잤다

오소마츠의 악명을 잘 알고 있는 선생님들도 오소마츠를 깨우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오소마츠는 볼에 남을 자국을 문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오늘도 동생들과 먹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그렇지—.” 하고 대답을 던지고 교실을 나왔다

초조한 마음에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옥상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오소마츠는 발밑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누가 본 걸까, 아니면 뒤늦게 낡은 자물쇠가 발견된 걸까, 옥상 문을 굳게 막고 있는 자물쇠가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열쇠로 여는 것이 아니라 비밀번호를 넣어야 열리는 형태로 완전히 바뀐 자물쇠를 손에 쥔 오소마츠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물쇠를 비틀었다.


그럼 그렇지.”

아무리 힘을 주어 비틀어도 열리지 않는 자물쇠를 보며 허탈한 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유일한 장소였다

옥상은,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와 단둘이 있을 수 있었던 유일한 장소

카라마츠가 동생들에게도 베풀지 않는 상냥함과 미소를 오소마츠에게 보여주는 곳이었다.


안 그래도 남은 시간이 없는데, 옥상마저 들어갈 수 없다

참고 참았던 눈물이 봇물 터지듯 흘러내려 소매를 적셨다

,” 하고 새어 나오는 흐느낌도 삼키지 못하는 오소마츠의 귀에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렸다

과연 오소마츠가 와 있을까

어제의 싸움을 재생하며 불안한 마음을 안고 계단을 오른 카라마츠가 옥상 문 앞에 쭈그리고 있는 오소마츠에게 달려갔다

몸을 둥글게 말고 고개를 푹 숙인 오소마츠는 아주 작게 흐느끼고 있었다

눈물을 잘 보이지 않는 오소마츠가 울고 있는 것을 깨달은 카라마츠가 입술을 깨물고 오소마츠의 얼굴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저항하는 힘을 이기고 얼굴을 들어 오소마츠와 눈을 맞춘 카라마츠가 눈물로 흠뻑 젖은 오소마츠의 얼굴을 보고 슬프게 눈썹을 늘어뜨렸다.


형님, 무슨 일 있었나? 왜 여기서,”

미안, 카라마츠. 연습할 장소 없어졌어.”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옥상 문에 달린 자물쇠를 봤다

광이 나는 새 자물쇠를 본 순간, 오소마츠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카라마츠가 다시 고개를 돌려 오소마츠를 보며괜찮다.” 하고 달랬다

옥상에 들어갈 수 없다면 다른 장소를 찾으면 된다

혼자 연습할 장소가 없는 것은 카라마츠에게 있어서 큰 문제가 아니었다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해도 오소마츠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찾아보면 연습할 수 있는 장소는 많을 거다.”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는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저었다

눈물에 코가 막혀 코맹맹이 소리로 오소마츠가 울먹였다.


옥상에서는, 둘이 있을 수 있었잖아….”

어린아이 투정 같은 말에 카라마츠가 눈을 깜빡였다

오소마츠가 울고 있는 이유가, 자신과 둘이 있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심장을 조였다

—, 하고 몸 전체에 퍼지는 달콤한 아픔에 몸을 부르르 떤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품에 안았다.


또 둘이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으면 된다! 꼭 옥상이 아니더라도, 연습 때문이 아니어도, 나는오소마츠와 같이 있고 싶다!”

“…, ? 계속 같이 있어줄 거야? 여친이 생겨도?”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코를 훌쩍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직도 그걸 신경 쓰고 있었나, 하고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두 손을 꽉 잡았다.


물론! 그리고 내게 여친이 생길 일은 없다!”

“…진짜?”

!”

오소마츠의 되물음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겨우 카라마츠의 말을 믿기로 했는지 오소마츠가 눈물 맺힌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울어서 빨개진 코를 하고 배시시 웃는 얼굴에 심장이 크게 뛰는 것을 느끼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손에 깍지를 끼웠다.


그럼 어디를 가야 둘이 있을 수 있을까?”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선배들에게 들었던 비밀장소를 하나하나 떠올리는 오소마츠의 질문에 카라마츠가 빙긋- 웃었다.


같이 찾아보자, 오소마츠.”

!”

카라마츠의 다정한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깍지 낀 손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 놀랍게도 아직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자각하지 못한 카라오소였습니다ㅎㅎ


* 레모몬님 마음에 드실려나 모르겠네요...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립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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