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위터 친구 첼님께 받은 썰로 쓴 단편입니다^^


* 마피아 카라, 돈 이치 x 세라 오소


* 색오소는 마지막에 잠깐나오고 대체로 카라오소입니다ㅎ


* 카라마츠가 많이 불쌍합니다ㅎㅎㅎ


* 공미포 13,478자.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무릎 위로 올라오는 주름 잡힌 푸른 스커트

붉은 리본을 포인트로 뒤로 넘어가는 푸른 옷깃이 경쾌하게 흔들렸다

명랑한 여자아이의 웃음소리와 함께 천이 스치는 소리 속에서 오소마츠가 발을 멈췄다

고개를 살며시 기울이고 곤란한 듯이 눈썹을 살포시 찡그린 소꿉친구 토토코를 보며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운 오소마츠가 토토코를 불렀다.


토토코?”

있지-, 오소마츠 군. 아무래도 변태 하나가 붙은 것 같아.”

어휴~.” 하고 과장된 한숨을 내쉰 토토코가 우아하게 손 하나를 들어 제 뺨에 가져댔다.


토토코가 너무 미인이라서 그런 걸까~? 일단 경찰 아저씨 부르자~.”

생긋 웃으며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빠르게 112를 누르는 토토코를 뒤로하고 고개를 홱 돌린 오소마츠가 재빨리 전봇대 뒤로 몸을 숨기는 인영을 확인하고 씩- 입꼬리를 올렸다.


토토코, 신고할 필요 없어~.”

? 오소마츠 군이 아는 사람이야?”

—, 일단은?”

이를 드러내고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오소마츠를 보며 토토코가 할 수 없다는 얼굴로 손을 멈췄다

통화 버튼 위에 올려둔 손가락을 거두고 폰을 다시 주머니에 되돌린 토토코가 둘을 따라오는 검은 인영을 눈짓하며 물었다.


정말로 놔둬도 괜찮아~? 오소마츠 군.”

~, 괜찮아, 괜찮아~. 해는 없어~.”

키들거리며 대답하고는 가던 길을 마저 걷는 오소마츠를 보며 토토코가 뿌루퉁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2.

 

보람찬 취미 생활로 기분이 한껏 오른 오소마츠가 스커트가 펄럭이는 것도 잊고 가벼워진 몸을 튕기며 집으로 향했다

오늘 걸린 양아치 무리는 특히 지갑이 두둑했었다

손에 쥔 지폐들을 보고으히히.” 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어두운 골목 사이에서 튀어나온 고양이의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우왓!!”

오소마츠를 순식간에 가로질러--!” 하고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흘리고 도망가는 고양이를 멍청히 바라본 오소마츠가뭐야.” 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고양이 덕분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시 집으로 가려던 발을 이번엔 골목에서 새어 나오는 신음이 오소마츠를 멈춰 세웠다

고양이가 튀어나온 어두운 골목에서 간신히 들릴락 말락 희미하게 퍼지는 신음에 오소마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누가 있는 건가, 호기심에 슬쩍 골목 안으로 발을 들였다

가로등 불빛 하나 제대로 비치지 않는 골목길은 검은 쓰레기봉투가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그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숨도 쉬기 힘든 악취에 코를 틀어막고 가까이 다가가서 툭툭 발로 남자의 다리를 건드렸다

몇 번을 쳐도 미동도 하지 않는 남자의 모습에 문득 죽은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이 일어났다

냄새를 참고 남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몸을 숙였다

제대로 몸이 위아래로 잘게 흔들리며 호흡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오소마츠가 안심하며 찬찬히 남자를 살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는 온몸에 타박상을 입은 상태였다

남자의 숨에서 술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을 보아 단순한 취객은 아닌 것 같았다

-, 하고 한숨을 내쉬고 몸을 핀 오소마츠가 손에 쥐고 있던 지폐를 접어 스커트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눈을 뜨자 낯선 나무 천장이 보였다. 어찌 보면 얼굴 같은 나뭇결이 새겨진 천장에 눈을 깜빡인 카라마츠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직 복부에 아릿한 아픔은 있었지만, 몸을 움직이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팔과 다리를 하나씩 휘저어 제대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카라마츠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장과 창호지 문으로 둘러싸인 방안은 살림살이 하나 놓여있지 않았다

방 중앙에 카라마츠가 누워있던 이불 한 채가 전부인 황량한 방안을 쭉 둘러본 카라마츠가 짙은 눈썹을 찌푸렸다

작게 한숨을 쉬고 이불에서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벌컥 문이 열렸다

갑자기 열린 문에 놀라 카라마츠의 몸이 크게 튀었다.


? 아저씨, 정신 차렸네~?”

밝은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눈을 깜빡이며 시선을 위로 올렸다

짧은 숏컷 머리에 세라복, 그 위에 빨간 앞치마를 두른 오소마츠가 자신을 응시하는 카라마츠에게 씩- 웃어주며 옆에 앉았다.


쓰러져 있는 걸 옮기느라 엄~청 힘들었다구—. 마침 부모님이 여행 중이라서 다행이지~. 안 그럼 아저씨 못 주웠어.”

헤헤, 웃으며 상황을 설명하는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하고 작게 신음하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치료도 해 준 건가…. 고맙다, -.”

여기저기 반창고가 붙어있는 몸을 내려다보며 눈썹을 늘어뜨린 카라마츠가 인사하자 오소마츠가 손을 흔들었다.


아냐~. 그리고 나, 이래 보여도 남자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잠시 말을 잃었다

확실히 여자라고 하기엔 목소리가 낮았다

게다가 세라복 칼라 사이로 보이는 뽀얀 목에 툭 튀어나온 저것은 분명 카라마츠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어째서 남자인 오소마츠가 세라복을 입고 있는지, 당연히 가져야 할 의문을 카라마츠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소마츠를 보며,” 하고 한숨 같은 웃음을 흘린 카라마츠가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렇군. 고맙다, 보이-.”

뜬금없이 눈에 힘을 주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자신을보이-’라 부르는 카라마츠의 모습을 멍청히 바라본 오소마츠가 볼을 크게 부풀리고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 푸하하하하~!! 보이, 라니!! 보통 왜 치마 입고 있냐고 물어보는 거 아냐~?! 큭큭큭큭큭.”

몸을 앞으로 숙이고 어깨를 털며 웃음을 털어내는 오소마츠를 보며.” 하고 당황한 신음을 흘린 카라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왜 눈앞에 있는 보이-는 이리도 크게 웃는 것인가, 카라마츠는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한참을 배를 잡고 웃은 오소마츠가 겨우 숨을 진정할 즈음, 부우우- 하고 진동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뻗은 카라마츠가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오소마츠가 손을 들어 이불 옆에 놓인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화면에 찍힌 글자에 카라마츠가 푹-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진동이 울리지 않도록 무음으로 설정한 스마트폰을 손에 쥔 카라마츠가 몸을 일으켰다

뼈마디가 삐걱거리는 느낌은 있어도 큰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낡은 집 천장에 닿을 것처럼 큰 키로 이불에서 일어난 카라마츠를 따라 오소마츠가 고개를 위로 올렸다.


아저씨, 일어나도 괜찮아?”

어제 주워올 때만 해도 꽤 많은 상처를 달고 있었던 카라마츠가 아무렇지도 않게 벌떡 일어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오소마츠의 염려에 카라마츠가 입꼬리 한쪽을 스윽- 끌어올리고 엄지를 척하니 들어 올렸다.


오브코-! 이 정도는 상처도 아니다! 걱정할 필요 없다, 키티-.”

아야야야야, 갈비뼈가 아파!”

어째서!?”

카라마츠의 안쓰러움에 당한 오소마츠가 옆구리를 잡고 신음했다

당황해 두 팔을 벌려 오소마츠에게 뻗은 카라마츠가 어쩔줄 몰라 하자, “-,” 하고 다시 웃음을 터뜨린 오소마츠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손을 휘저었다.


괜찮아, 괜찮아~. 아저씨, 이제 가봐야 하는 거 아냐? 전화 계속 오고 있어.”

짙은 눈썹을 내리고 자신을 걱정하듯 쳐다보는 카라마츠에게 씩- 웃어준 오소마츠가 카라마츠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진동이 나지 않을 뿐이지 카라마츠의 폰은 쉴 새 없이 전화가 오고 있었다

화면에 찍힌 이름을 다시 확인한 카라마츠가.” 하고 대답했다.


현관은 이쪽이야.”

앞치마를 벗어 바닥에 내려놓은 오소마츠가 앞장서 현관으로 걸어갔다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푸른 스커트가 오소마츠의 허벅지 위에서 살랑거렸다

걸음걸이에 맞춰 좌우로 흔들리는 스커트의 주름을 보며 마른침을 삼킨 카라마츠가 현관 앞에 놓인 자신의 가죽 구두에 발을 끼워 넣었다

잘 가—.” 하고 손을 흔드는 오소마츠를 뒤로 하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던 카라마츠가 몸을 돌렸다.


보이-, …, 오늘의 은혜를 갚고 싶은데. 연락처를 알려 줄 수 있겠나?”

연락처…? 별로 한 것도 없는데. 그런 거 됐으니까 빨리 가봐.”

! 그럼, 보이-의 이름이라도 알려주겠나?”

내 이름? ‘오소마츠.”

오소마츠….”

. -, 빨리 가봐. 폰 터질 것 같다고~.”

찬찬히 오소마츠의 이름 한 자 한 자를 머릿속에 새겨넣듯이 되뇌었다.

.” 하고 작게 고개를 끄덕인 카라마츠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제 등을 떠미는 오소마츠의 손을 따라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줄곧 걸려오던 전화를 받으며 오소마츠의 집을 떠나는 카라마츠의 목소리는 조금 전과 너무나 달랐다

나긋나긋하고 옆집 청년 같은 목소리가 일변해 낮고 날카롭게 변했다.

 

 

 

 

 

3.

 

시장 거리 중앙에 있는 생선 가게 앞에서 토토코와 헤어지자마자 뒤를 따라오던 아저씨가 내 옆에 섰다

아저씨가 뭐라 말을 걸기 전에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이 울렸다

꺼내 확인해보니 장 보고 오라는 엄마의 심부름이었다

용돈 날이고 해서 오늘은 오랜만에 오락실이나 가려고 했는데, -. 


볼을 부풀렸다가 푸-, 하고 바람을 빼고 엄마가 보낸 문자에 쓰인 재료를 확인했다

버섯, 닭고기, 두부, 간장…. 오늘 저녁은 전골인가? 심부름으로 가라앉았던 기분이 단숨에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채소 가게로 발을 돌렸다.


오소마츠.”

, 이 아저씨가 아직 있었군

절대 나한테서 1m 이상 떨어지지 않는 아저씨가 슥- 얼굴을 가까이하더니 무슨 비밀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작게 속삭였다.


조금 전 프리티 걸-과 사귀는 건가?”

바보 같은 질문에 울컥해서 왜 그런 걸 물어보냐고 쏘아붙이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남자다운 짙은 눈썹에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누가 봐도 훈남이라고 할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 쳐량하게 내 대답을 기다리는 꼴이 퍽 귀엽다

몽글몽글 가슴 속에서 피어나는 모성애 비슷한 감정에 씩- 천연덕스러운 미소를 만들었다.


왜요~? 아저씨는 사귀었으면 좋겠어요~?”

장난스럽게 묻자 아저씨가 내 눈을 피해 고개를 돌리고아니, 그런 건 아니고….” 하고 말을 흐렸다.

딴 곳을 바라보고 있는 뒤통수 옆에 삐죽 튀어나온 귀가 발갛다

같은 남자인 내 뭘 보고 반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보다 연상인 어른이 내 말 한마디에 저렇게 동요하는 것이 꽤 재미있다

어린아이처럼 나를 좋아하는 것을 숨기지도 못하고 티를 팍팍 내는 것도

요즘 애들도 아저씨 정도는 아니다

나를 좋아한다는 걸 만면에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다가오는 게 꼭 주인의 관심을 원해서 꼬리를 마구 흔드는 강아지 같아서, 스토커 비슷한 짓을 해도 의외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아직도 입을 우물거리며 뭔가를 중얼거리는 아저씨를 끌고 다음 가게로 향했다.

 

 

마트에서 간장을 사고, 두부 가게에 들러 오늘 만든 따끈따끈한 두부를 샀다

추가로 엄마가 사 오라고 문자 보낸 무랑 곤약도 샀고

남은 건 닭고기뿐인가


알아서 따라오는 아저씨를 데리고 정육점으로 갔다

오늘도 호탕하게 웃는 정육점 아저씨에게 닭고기를 받아서 아저씨에게 건넸다

이미 아저씨의 팔엔 내가 건넨 짐이 한가득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고기까지 받아서 팔에 건 아저씨가 생긋- 웃으며다 산 건가?” 하고 물었다

.” 하고 엄마가 보낸 문자에 쓰인 재료를 한 번 더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 사고 보니 제법 많다

아저씨가 없었다면 저걸 혼자서 끙끙대며 집으로 옮겼겠지…. 

떠오르는 상상에 부르르 몸을 떨자마자, 아저씨의 주머니에서 웅장한 노래가 울렸다


, 이거. 그거다. 다스ㅇ이더 주제곡

익숙한 멜로디에스읍-, -” 하고 호흡하던 세기의 악당을 떠올리는 사이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한 아저씨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저씨가 통화 버튼을 누르고 폰을 귓가에 가져대자마자 걸걸한 목소리의 커다란 외침이 전부 들렸다.


개똥마츠, 이 새X!! 일 안 하고 또 어디로 샜어!!!”

옆에서 들어도 무시무시한 외침에 아저씨가 미간을 찌푸리고 관자놀이에 지그시 손가락을 눌렀다

그칠 기미도 없이 몰아치는 욕설에 아저씨를 동정하며 아저씨 손에 들린 봉지를 전부 내 손으로 옮겼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는 아저씨 어깨를 가볍게 통통, 치고가 봐, 아저씨.” 하고 손을 흔들었다

여전히 전화 너머의 걸걸한 목소리가 속사포로 욕을 늘어놓고 있는데, 내 두 손을 소중하게 꼬옥 잡은 아저씨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오소마츠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 마이 리를 키티-! 왜 우리의 데스티니-는 우리를 이렇게나 떼어놓으려고 하는 건가!! 아아-, 야속한 운명이여.”

갈비뼈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삐걱거리는 것을 느끼며 한심하게 흐느끼는 아저씨를 달랬다

눈물을 훌쩍이면서 마저 통화를 끝낸 아저씨가 푸른 셔츠에 꽂아두었던 선글라스를 썼다.


그럼, 가보겠다. 키티-. ! 내일 또 만나자!”

어디 B급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의 대사 같은 말을 던진 아저씨가 빠른 걸음으로 시장 거리를 빠져나갔다

아저씨한테 전화한 사람은 상사려나? 아마 대판 혼나겠지

일도 하지 않고 나를 따라다닌 아저씨의 등을 배웅하며 엄청 무서워 보였던 상사에게 조금이나마 덜 혼나길 빌어주었다.

 

 

 

 

 

4.

 

마지막으로 아저씨를 본 건 일주일 전. 매일 보이던 얼굴이 안 보이니까 이상하게 신경에 거슬린다

마지막으로 헤어진 게 그렇게 헤어져서 그런가

상사에게 너무 많이 혼나서 더는 일 땡땡이치고 못 오게 된 걸지도 모른다

요즈음 학교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계속 같이 있었으니까, 옆에 쓸데없이 큰 덩치가 없는 게 아쉽기까지 하다.


오소마츠 군, 뭐해?”

나도 모르게 지나친 전봇대를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함께 귀가하던 토토코가 고개를 기울였다

아무것도 아니라며 얼버무렸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도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시장 거리에서 토토코와 헤어지고 집으로 가는 중간중간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고 어두운 골목길이 나올 때마다 슬쩍 들여다보았다

또 심하게 다쳐서 쓰러져 있을지도 모르고…. 

집 가는 길을 빙 돌아 처음 만났던 골목에도 가 보았지만 어디에도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다.


뭐야—, 뭔가 재미없네.

바보 같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분이 나빠졌다

아저씨도 뭔가 일이 있어 오지 못하는 거겠지만, 한 번쯤은 잠깐이라도 얼굴을 내비쳐도 괜찮지 않아

괜히 차오르는 심술에 볼을 부풀리고 지름길을 통해 집으로 향했다

해가 지면서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더불어 찬바람이 쉽게 스커트를 뚫고 들어왔다

훤히 내보인 다리가 으슬으슬 춥다

으으으-.” 하고 신음하며 덜덜 떨었다

내일은 꼭 가디건 걸치고 나와야지…. 


애초에 왜 그런 이상한 집안 풍습이 남아있는 건지

옛날부터 집안 남자들이 젊은 나이에 돌연사하는 일이 많았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여장을 할 필요는 없지 않아!?

중학교에 들어가고 여학생 교복을 입어야 한다고 들었을 때 얼마나 황당했는지

그 충격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물론 발광을 하면서 저항했지만, 엄마가 보여준 아빠의 학창시절 사진에 다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엄마가 보여준 사진 속 아빠는 나처럼 세라복을 입고 가쿠란(*남학생 교복)을 입은 친구들 사이에 서 있었다

이야~, 그런 사진 보면 포기할 수밖에 없지

흑백 사진 속 세라복 입은 아빠라니

. 겁나 위험

핵폐기물 수준이지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어릴 적 그렇게 뛰어놀았던 익숙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저 앞에 보이는 길모퉁이를 돌면 바로 집 앞이다

멍청히 허공에 시선을 두고 절로 집을 향해 걸어가는 다리를 방치했다

그렇게 막 모퉁이를 돌았을 때, 아저씨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오소마츠, 위험하다!!!”

 

기차 화통 삶아 먹은 것처럼 귀청을 가격하는 목소리에 눈을 깜빡이자마자, 아저씨의 팔이 내 어깨를 붙잡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 하는 소리와 함께 벽에 밀쳐진 내 앞을 아저씨가 막았다

위험하다고 외쳤으니까 차라도 있었던 걸까

망연히 눈을 돌려 내 앞을 다 가린 아저씨 뒤를 확인했다

끼익 끼익,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아저씨의 등 너머로 지나갔다.

 

세발자전거가.

 

아니, -.

확실히 그대로 들어갔으면 부딪혔겠지만

세발자전거랑!?


황당해서 말을 잃은 나를 보며 (제 생각엔) 멋진 손동작으로 선글라스를 벗은 아저씨가 쓸데없이 반짝이는 눈으로 물었다.


다친 곳은 없나? 키티-.”

“…크흐, 흐읏, , 크크크크.”

키티—? 으응~?”


잠깐, 살려줘…. 

웃겨 죽을 것 같아…. 

너무 웃겨서 웃음소리도 안 나온다고!! 

다친 곳 없냐니

치일려던 거 세발자전거였습니다만!? 

뭔데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폼 잡으면서 물어보는 건데

, 안돼. 웃겨 죽어~~~!!


히이-, 히이-, 웃음소리가 되지 못한 숨을 몰아쉬며 한참 동안 배를 잡고 나서야 겨우 진정됐다

—, 배 아파.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 고개를 들고나서야 울상으로 나를 응시하는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 왜 또 울려고 그래~. 오랜만에 봤는데~.”

퉁퉁, 가볍게 아저씨의 머리를 치자, 울음 섞인 목소리가 닿았다.


오소마츠우~~! 보고 싶었다!! 일주일이나 키티-를 보지 못해서!!”

응응, 나도 아저씨가 안 보여서 심심했어~.”

오소마츠!! 나도 빨리 오고 싶었지만, 일이 바빠서…. 보고 싶었다! 마이 리를 키티-!!”

~!”

콧물까지 흘려가며 훌쩍이더니 와락 나를 안아오는 게 귀엽다

우느라 떨리는 등을 아이를 재우는 엄마처럼 두드려주자 서서히 울음이 잦아들었다

코를 훌쩍이고 우느라 붉어진 눈가를 소매로 훔친 아저씨가 씩- 웃으며 손가락을 높이 치켜들었다

위로 올라가는 손을 따라 두꺼운 금시계가 찰칵 소리를 냈다.


이제 절대 떨어지지 않고 지켜주겠다! 마이 키티-!!”

, .”

뭐 대단한 거 선언하는 것처럼 외치는 아저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로 대답했다.

 

 

 

학교를 마치고 토토코를 먼저 보내고 집으로 가는 길

옷이 뚫어질 것처럼 강하게 와 꽂히는 시선을 느끼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빙글 몸을 돌리자 스커트가 함께 너울거렸다

급히 전봇대 뒤로 몸을 숨기는 아저씨에게 성큼성큼 걸어가자 아저씨 얼굴에 당황한 게 다 보였다.


아저씨-, 야키소바 먹고 싶지 않아요?”

검은 양복의 소매를 걷어 올린 아저씨 팔에 슥- 팔을 감고, 눈에 걸치고 있던 선글라스를 뺏어 썼다

당황하면서 벌게진 얼굴로 눈도 맞추지 못 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대답도 못하는 아저씨 팔을 끌고 시장 거리로 향했다.


내가 맛-있는 가게 알고 있어!!”

, , 하고 우물거리는 아저씨를 끌고 전에 친구들이랑 갔던 맛집으로 들어갔다

가장 맛있다고 소문난 아키소바랑 덤으로 오코노미야키도 주문하고 맞은편에 앉은 아저씨를 보며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 턱을 괴었다.


아저씨가 사주는 거지~?”

활짝 미소를 지으며 슬쩍 묻자, 미끼를 덥석 문 아저씨가물론이다!!”하고 신나서 대답했다

아저씨의 몸짓에 큭큭 웃음을 흘리고 있자, 때맞춰 야키소바와 오코노미야키가 나왔다

익숙하게 오코노미야키를 철판에 부어 맛있게 구워 반으로 나눴다.


여기 엄청 맛있으니까-, 많이 먹어, 아저씨!”

호언장담하고 야키소바를 후루룩 빨아들였다

두꺼운 면에 스며든 양념이 입안에서 감돈다

역시 맛있어!! 

오코노미야키도 카리스마 레전드님이 구운 것답게 평범하게 맛있다

대화도 없이 야키소바와 오코노미야키를 흡입하고 있을 때, 맨다리에 꽂히는 시선을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홀을 돌아다니며 주문을 받고 음식을 서빙하는 알바생 하나가 힐끗힐끗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가 세라복을 입은 게 신기한 건지, 검은 양복을 입고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아저씨랑 있는 게 신기한 건지, 계속 이쪽으로 시선을 준다

내가 이 차림을 하고 돌아다니는 건 이 동네 사람이 다 알고 있고, 이 가게는 자주 오는 가게라 알바생들 모두 나를 알고 있는데 저렇게 쳐다보는 걸 보면 신입이 분명했다

따가운 시선 때문에 식사에 집중할 수가 없다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뭐라 해야 하나, 생각하며 다시 고개를 원위치로 돌렸을 때, 입에 들어있던 소바를 뿜을 뻔했다.


아저씨가 엄~~~~청 험악한 얼굴로 신입 알바를 노려보고 있었다

사람 하나 죽일 기세로 노려보니까 신입 알바도 얼굴이 새파래져서 주방으로 도망쳤다

시선이 없어져 마음 편히 맛있는 야키소바에 집중할 수 있게 돼 기분이 단번에 올라갔다.


아저씨~, 맛있지? 여기 자주 오는데 오늘은 아저씨랑 같이 먹어서 더 맛있는 것 같아~!”

, 키티-!!”

서비스로 한 마디 날려주자 금방 울먹이며 감동했다는 얼굴을 한다. - 웃어주고 식사를 재개했다.

 

 

배불리 먹고 가게를 나오자마자, 아저씨의 스마트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다스베이더 주제곡이다

액정을 확인한 아저씨가 손을 들어 잠깐 자리를 비우겠다며 가게 뒤쪽으로 들어갔다

발치에 놓인 돌멩이를 차며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림자 하나가 내 위로 올라왔다.


?”

여어—. 이런 데서 혼자 뭐하고 있냐~?”

—, 지금 형아가 기분이 좋으니까 그냥 지나가지?”

누군가 싶어 고개를 드니 얼마 전 중학생들 삥 뜯던 양아치였다

모처럼 아저씨랑 노는데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좋게 말해줬는데도 머리 나쁜 걸 광고하는지 양아치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침까지 튀겨가며 저번엔 신세 졌다느니, 오늘 잘 만났다느니, 혼쭐을 내주겠다느니, 시끄럽다

그리고 입 냄새 쩔어!! 

아저씨가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 가볍~게 손 좀 봐줄까 하고 숨을 고르는 사이 양아치가 먼저 주먹을 날렸다

, 이건 한 방 맞고 시작하겠구나 싶어 이를 악물었을 때, ! 하고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통화는 다 끝냈는지 내 앞을 막고 선 아저씨가 양아치 주먹을 막고 있다

양아치도 당황했는지 아저씨를 내리훑었다

나를 등지고 서서 아저씨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양아치 표정을 보건대 또 엄청 험악한 얼굴을 한 것 같았다.

아저씨가 심상치 않은 사람인 걸 알았는지 내빼려는 양아치 배에 아저씨가 깔끔하게 주먹을 먹여주었다

억 소리도 내지 못하고 쓰러지는 양아치를 보며—!” 하고 감탄과 함께 손뼉을 쳤다

역시! 나보다 싸움이 능숙하다

-.” 하고 숨을 내쉬며 먼지도 묻지 않은 옷을 털어낸 아저씨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뭐라 말하기도 전에 아저씨가 내 어깨를 감싸고 그대로 휙 들어 올렸다.


“?!”

부모가 어린애를 안아 올리는 것처럼 팔로 내 무게를 지탱하고 높이 안은 아저씨가 또 잘난 척하는 얼굴을 했다.


키티-는 저런 쓰레기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깨끗한 공기가 어울린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면서 아저씨가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쓰러진 양아치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며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여기서 왜 빨개지는데!? 

자신에게 태클을 걸며 붉은 얼굴을 아저씨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저쪽으로 돌렸다

다행히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아저씨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시장 거리를 나와 익숙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항상 학교 갈 때 지나가는 사거리를 지나 주택가에 접어들었을 때, 겨우 생각났다.

 

지금 나, 엄청 창피한 모습 아님?

 

겨우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려달라고 말하려는 순간 아저씨의 전화가 또 울렸다

진동으로 바꿨는지부우우우-’ 하는 소리가 끊기지 않는다.


아저씨, 전화 오는데?”

괜찮다, 키티-.”

혼나는 거 아냐?”

논논, 전화 하나로 키티-와 있는 이 스위트한 시간을 멈출 수는 없지!”

계속 울리는 전화를 무시하고 걸음을 재촉한 아저씨 덕분에 집에는 금방 도착했다

집 앞에 도착해서야 나를 내려준 아저씨가 선글라스를 밀어 올리고 안쓰러운 말로 작별 인사를 하려는 순간, 처음 보는 아저씨가 옆에 섰다

아저씨랑 비슷한 체격에 보라색 셔츠에 하얀 넥타이를 매고 새하얀 정장을 입은 아저씨는 하얀 중절모를 깊이 눌러쓰고 있었다

삐죽삐죽 튀어나온 머리 사이로 슬쩍 보이는 눈빛이 아저씨 이상으로 흉악하다.


개똥마츠, XX….”

낮게 깔리는 목소리에 단번에 알아차렸다

아저씨 상사다!! 맨날 전화하는!! 

그 증거로 아저씨 얼굴이 한 번도 본 적 없을 정도로 새하얘졌다

아저씨가 뭐라 변명하기도 전에 상사 아저씨(?)가 아저씨 목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지보다 한참 어린놈한테 빠져서 일도 팽개치고 잘- 한다!? !!”

아저씨를 질질 끌고 가며 외치는 상사 아저씨에게 일말의 측은함을 느끼며 눈물을 글썽이는 아저씨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무사하길 빌게, 아저씨.

 

 

 

 

 

5.

 

어제 그렇게 헤어져 놓고 오늘도 나타난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오늘도 와도 괜찮아?”

오소마츠의 질문에 주머니에 들어있던 스마트폰의 전원을 끈 카라마츠가 자신만만하게물론!” 하고 외쳤다

그 외침이 끝나자마자 카라마츠 뒤에 멈춰선 고급 세단을 본 오소마츠가 속으로 카라마츠를 동정하며 눈을 반쯤 뜨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저씨, 저기.”

야 이 개똥마츠!!!”

오소마츠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마자 이치마츠에게 멱살을 잡힌 카라마츠가 그대로 이치마츠에게 짤짤 흔들렸다.


내가 어디 가냐고 물어봤을 때, 일하러 간대며! 그래서 일 끝내자마자 오라고 했지?!”

, 아직 안 끝났다!!”

아앙!?”

이치마츠의 노성에 카라마츠가 울먹이며 외쳤다

그게 무슨 말이냐는 얼굴로 노려보는 이치마츠에게 카라마츠가 필사적으로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놈을 죽이는 게 일이잖나! 아직 안 죽였다! 기절시켜서 가둬났으니까 아직 일은 끝나지 않았다!!”

자랑스럽게 흉흉한 말을 내뱉은 카라마츠를 보며 이치마츠가 머리 밖으로 뛰어내리는 어이를 배웅했다

둘을 보고 있던 오소마츠도 그건 아니지, 하는 얼굴로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 하고 긴 한숨을 내쉰 이치마츠가 오소마츠는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욕을 퍼붓고 카라마츠의 목덜미를 끌고 차로 향했다

오늘도 처량하게 끌려가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아련하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오던 오소마츠 앞에 흰 정장이 섰다

손을 들어 가볍게 이치마츠에게 인사를 한 오소마츠가 얕은 스커트 주머니에 손을 꽂고 이치마츠를 노려보았다

남자면서 어울리지도 않는 세라복을 입은 어린 녀석이, 저가 무슨 일을 하는지 다 알고 있으면서 당돌하게 노려보는 것이 우스워,” 하고 헛웃음을 흘린 이치마츠가 거두절미하고 용건을 전했다.


, 개똥마츠 그 자식 내 말은 안 들으니까 다음에 또 개똥마츠 오면 상대해주지 말고 오지 말라고 해.”

제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

!?”

개똥마츠 아저씨, 엄청 재미있거든요!?”

당돌함을 넘어서 생각이 있는 건지 의심될 정도로 반항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이치마츠가 머리를 싸맸다

지금 당장 재킷 안쪽에 있는 총을 꺼내 협박할 수도 없고, 말로 풀려고 해도 이 어린 녀석은 개똥마츠처럼 말을 지지리도 안 들을 것 같다

이마에 수도 없이 솟은 핏줄을 간신히 가라앉히고 큰 키로 오소마츠를 내려다본 이치마츠가 쯧, 하고 혀를 찼다.


그럼 네가 개똥마츠를 안 보겠다 할 때까지 따라다닐 거야.”

그러시던가요-.”

이치마츠의 협박에 콧웃음을 친 오소마츠가 번화가로 향했다

오랜만에 오락실이나 갈까, 하고 휘파람을 불며 번화가를 걷는 오소마츠를 발견한 토토코가 저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학교 내에서 제일 미인이자 소꿉친구인 토토코의 부름에 오소마츠가 화색이 되어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무슨 할 말이 있는지 오소마츠를 향해 뛰어오던 토토코가 흠칫 놀라며 발을 멈췄다

무슨 일인가 싶어 오소마츠가 고개를 뒤로 돌리자마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카라마츠 못지않은 험악한 얼굴로 토토코를 노려보고 있는 이치마츠의 행동에 경악한 오소마츠가 재빨리 손을 저었지만, 토토코는 이미 슬슬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아냐! 토토코!”

, 미안. 오소마츠 군. 토토코, 중요한 볼일이 생각났어. 그럼 내일 보자-!!”

걸음아 날 살려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는 토토코를 보며 오소마츠가으아아아-.” 하고 신음했다

도망치는 토토코와 절망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그 뒤에 선 이치마츠가 입꼬리를 크게 치켜들고 씩- 웃었다

하아~~.” 하고 저 멀리 사라진 토토코를 보며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제 뒤에 서 있는 이치마츠를 흘겨보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번화가에서 제일 큰 오락실로 들어간 오소마츠가 제일 인기가 많은 격투 게임기 앞에 섰다

인기를 증명하듯 벌써 몇 명이 줄 서서 대기하고 있는 게임은 최근에 나온 유명 격투 게임의 신작이었다

화려한 기술을 쓰며 상대편을 쓰러뜨리는 게임 속 격투가를 보며 눈을 반짝인 오소마츠가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때, 소란스러워진 뒤쪽으로 무심코 눈을 돌렸다

한눈에 봐도 불량해 보이는 양아치 하나를 붙잡은 이치마츠가 욕설을 주고받으며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주먹이 오고 갈 것 같은 위태로운 공기에 오소마츠가 사색이 되어 이치마츠에게 뛰어갔다

싸우더라도 오락실 안에서 싸우는 건 곤란했다

취미랍시고 양아치와 싸우는 걸 즐긴 오소마츠가 오락실 안에서 싸움을 벌였다가 쫓겨난 적이 몇 번

다음에 또 싸움을 일으킨다면 출입금지 시키겠다던 오락실 주인장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양아치 멱살을 잡고 주먹을 쥔 이치마츠에게 매달려그만~~~!!” 하고 울먹이는 사이, 도끼눈을 하고 소란스러운 현장으로 다가온 주인장이 오소마츠를 보자마자 단호히 외쳤다.


또 너냐! 앞으로 출입 금지! 나가!!”

주인장의 말에 오소마츠가 재빨리이번엔 저 아니에요!!” 하고 하소연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당장 나가라며 역정을 내는 주인장에게 이끌려 떠밀듯 오락실 밖으로 튀어나온 오소마츠가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러 그랬죠!!!”

아니~?”

오소마츠의 외침에 이치마츠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입가에 주름을 만들고 입꼬리를 있는 대로 끌어올린 이치마츠의 미소에 까득 이를 갈며 약오르는 마음을 가라앉힌 오소마츠가 편의점으로 향했다

곧 저녁 시간이지만 화를 낸 탓인지 배가 고팠다

가벼운 샌드위치라도 사 먹을 생각으로딩동하고 울리는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이치마츠가 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뭐 사려고? 근데 나’! 마렵네-.”

!?”

여기서 쌀까?”

태연자약하게 물어보는 이치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턱을 떨어뜨렸다

이치마츠의 발언에 편의점 안에 있던 손님과 점원이 오소마츠를 노려보았다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이라는 단어를 연발하는 이치마츠를 보며 인내심의 한계를 체험한 오소마츠가 이치마츠의 손을 잡아끌었다

따가운 눈초리를 뚫고 편의점을 나온 오소마츠가 이치마츠 손을 던지듯 놓았다.


, 쫌 꺼져요!!”

가운뎃손가락을 높이 들고 외치는 오소마츠를 보며 이치마츠가 히힛-, 하고 웃었다.


내가 왜?”

———!!”

그러니까 빨리 개똥마츠 그만 만나겠다고 약속해. 그럼 꺼져줄 테니까.”

이치마츠의 말에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오는 짜증으로 눈을 감은 오소마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안 만나겠다고 할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치마츠의 말을 따르는 것이 싫었다.


무슨 수 없나-? 이 아저씨를 물 먹일 방법이….’

공부를 할 때도 열심히 굴리지 않았던 머리를 헤집어도 좋은 수는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안 만나겠다고 약속하고 안 지키면 그만이지, 하고 간단한 결론을 내고 고개를 든 순간,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의 알람이 울렸다.

알람을 끄고 시간을 확인한 오소마츠가 이치마츠를 버려두고 펫샵으로 들어갔다

전혀 예상치 못한 목적지에 이치마츠가 눈썹을 찌푸리고 오소마츠의 뒤를 따랐다

펫샵에서 고양이 캔을 두세 개 산 오소마츠가 시장 거리를 빠져나와 빈 공터로 향했다

잡초가 듬성듬성 난 공터에는 회색 콘크리트 토관이 쌓여 있었다

토관 뒤, 길거리에서는 보이지 않는 풀숲에 들어간 오소마츠가 조심스럽게 쪼그려 앉았다

뭘 하려는 걸까, 오소마츠를 가만히 관찰하던 이치마츠가 풀숲에서-.” 하고 울며 나오는 새끼 고양이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삼색 고양이라고 일컬어지는 고양이 한 마리가 반갑게 오소마츠를 보고 달려와 몸을 비볐다

그래그래.” 하고 웃으며 고양이 몸을 크게 쓰다듬은 오소마츠가 고양이 캔을 따서 내려놓았다

허겁지겁 캔에 머리를 박고 먹기 시작하는 고양이를 내려다보는 오소마츠 옆에 다가간 이치마츠가 머리를 긁적였다.


네 고양이냐?”

아뇨, 버려진 녀석인데…. 토토코가 발견해서 주인 찾을 때까지 돌보기로 했어요. 토토코가 주인 찾아본다고 했는데….”

말을 흐린 오소마츠가 밥을 다 먹고 입가를 핥으며 제게 다가온 새끼 고양이를 안아 들었다

가녀린 몸을 하고 있으면서 볼록 튀어나온 배를 보고 픽- 웃은 오소마츠가 조심스럽게 고양이를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골골대는 고양이에게서 시선을 올리자 고양이를 빤히 응시하는 이치마츠와 눈이 맞았다

-, 능글맞은 미소를 흘린 오소마츠가안아볼래요?” 하고 고양이를 이치마츠에게 내밀었다.


, !?”

귀엽죠~?”

당황하는 이치마츠 품에 고양이를 안겨주고 방긋 웃으며 코 밑을 문지른 오소마츠가 이치마츠의 반응을 살폈다

당황해하던 이치마츠는 고양이의-.” 하는 울음에 천천히 고양이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이치마츠의 손길이 좋은지 금세 골골대는 고양이를 보며 오소마츠도 눈을 가늘게 뜨고 부드럽게 웃었다

문득 올린 시야에 오소마츠의 미소가 걸리자마자 이치마츠가 빤히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고양이를 보고 있나 했더니 자신에게 꽂힌 이치마츠의 시선에 고개를 기울인 오소마츠가왜요?” 하고 물었다.


“…이 애, 내가 데려갈게.”

정말요!?”

이치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 하고 작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치마츠의 손은 여전히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고양이가 좋아하는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어루만지는 손길에 오소마츠가 배시시 웃으며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잘 됐다~.”

아기에게 말하듯이 온화한 목소리를 흘린 오소마츠가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위로 고개를 젖힌 이치마츠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뭐가 또 문제인지—.” 하고 신음하던 이치마츠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먼저 돌아가겠다는 말을 꺼냈다

끈질기게 따라붙을 것 같았던 이치마츠가 돌아가겠단 말을 하자 오소마츠가 다시금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 한 통에 공터 앞에 선 고급 세단으로 걸어간 이치마츠가 오소마츠를 보며또 보자.” 하고 말을 남기고 차에 올랐다

멀어지는 세단을 배웅하며또 올 생각이야?” 하고 오소마츠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휴일을 맞아 모처럼 세라복이 아닌 붉은 후드와 청바지를 입고 현관을 나온 오소마츠가 콧노래를 부르며 마당을 나왔다

오늘 발매한 따끈따끈한 게임을 입수했으니 하러 오라는 친구의 권유에 한껏 기분이 오른 오소마츠 앞을 붉은 장미 꽃다발이 막아섰다.


이틀 만이구나, 키티-.”

선글라스를 벗으며 눈을 반짝이는 카라마츠의 인사말에푸핫-!” 하고 갈비뼈를 잡으며 웃음을 터뜨린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인 자신에게 장미 꽃다발까지 바치는 카라마츠가 재미있었지만, 오늘은 친구와 게임이 먼저였다

카라마츠에게 오늘은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려는 순간, 또 하나의 꽃다발이 눈앞에 나타났다

보라색 장미꽃이 가득한 꽃다발을 들고 있는 것은 흰 정장을 입은 이치마츠였다

갑작스러운 출연에 놀란 오소마츠와 완전히 굳어버린 카라마츠를 번갈아 보며 씩- 웃은 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향해 조롱 섞인 말을 내뱉었다.


미안, 개똥마츠. 가티노는 내가 받아간다.”

가티노는 또 뭔가, 눈썹을 찌푸리는 오소마츠와 달리 경악해 얼굴을 찌푸린 카라마츠가 외쳤다.


아무리이라도 그건 용서할 수 없다!! 오소마츠! ! 내 마음을 받아줘!!”

언성을 높이며 카라마츠가 붉은 장미 꽃다발을 오소마츠 얼굴 앞으로 쑥 내밀었다

에에!?” 하고 당황해 신음을 흘리는 오소마츠 앞에 이치마츠도 질세라 보라색 장미 꽃다발을 치켜들었다.


가티노-, 이거 받으면 원하는 거 다 사줄게.”

이치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이는 사이 카라마츠가 다급하게 껴들었다.


, 그건 나도 해줄 수 있다! 키티-!”

개똥마츠 너 월급 90% 삭감.”

“WHAT!?!?”

월급을 깎는다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목청 높여 외친 카라마츠가 이치마츠를 붙잡고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연년생 형제처럼 투닥거리는 카라마츠와 이치마츠를 보며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린 오소마츠가 눈을 가늘게 뜨고 앙큼한 미소를 가득 피웠다.

 

그럼…, 누구 걸——”





* 다스베이더 주제곡은 이겁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bzWSJG93P8


* 세라 오소의 취미는 불량배 무찌르기입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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