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생 카라오소입니다ㅎ
* 육둥이가 타인 설정. 나오는 건 형님조 셋뿐입니다.
* 육둥이가 다니는 학과는 '선생마츠'를 참고했습니다.
* 오소마츠는 멘탈이 초딩. 카라마츠는 아픈 발언을 하지 않습니다.
* 트위터 친구 '모하'님의 꿈썰을 받아서 썼습니다.
* 공미포 11,498자.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강의를 마치겠다는 교수님의 말에 카라마츠가 두꺼운 전공 책을 덮었다.
먼저 말을 걸어오는 친구들과 함께 강의실을 나와 복도를 걸으며 점심은 무얼 먹을까, 잡담을 나누는 사이 단대 건물 밖 정원에 도착했다.
따사로운 햇살이 부드럽게 몸을 감싸고, 상큼한 풀 냄새가 물씬 담긴 잔잔한 바람이 뺨을 쓰다듬는다.
밀폐된 강의실의 답답한 공기에서 벗어나자 자연스럽게 무리의 발이 멈췄다.
“그러고 보니, 그 교수님 항상 마츠노한테 읽기 시키잖아.”
“맞아. 마츠노가 쓸데없이 목소리랑 발음이 좋아서 그래.”
“쓸데없다니 뭔가.”
친구들의 장난에 카라마츠가 눈살을 슬쩍 찌푸렸다.
조금 전에 끝난 전공 수업에서도 카라마츠는 홀로 일어나 한 챕터를 크게 읽어야 했다.
이어지는 친구들의 가벼운 놀림에 카라마츠가 “훗,” 하고 웃으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이 카라마츠님의 목소리가 교수님까지 매료시키고 만 것인가…!”
“푸핫!! 마츠노, 또 시작이다~!”
“진짜, 너 그런 점 웃겨-!”
자랑스럽게 가슴을 내밀고 앞머리를 쓸어올리는 카라마츠를 보며 친구들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별다른 주제도 없는 잡담이 이어지고 겨우 점심 메뉴를 정했을 때, 귓가에 닿은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단번에 인상을 구겼다.
단대 건물 밖으로 나온 한 무리.
그 속에 가장 활발하게 떠들고 있는 오소마츠가 있었다.
두 무리가 마주치자마자 급속도로 카라마츠를 감싼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어라~? 이게 누구야? 이번에 리포트 F 받은 마츠노 카라마츠 군이네~? 리포트에 그렇게 자기애가 넘친다면서?”
굳은 카라마츠 얼굴에 식은땀을 흘리는 친구들은 눈치채지 못했는지 오소마츠가 먼저 비아냥대며 카라마츠에게 다가갔다.
“하아~.” 하고 지친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보며 말을 바로 잡았다.
“교수님께 제대로 설명해, 점수도 정정됐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학생들도 사랑할 수 있는 거다. 바보는 알려줘도 잘 모르겠지만.”
“하!? 누가 바보야!!”
“너 말고 또 누가 있나.”
“하아—?!”
빈정대다 역으로 카라마츠에게 한 방 먹고 버럭 화를 내는 오소마츠를 보며 그 뒤에 선 친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바보는 빨리 밥이나 먹으러 가는 게 어떤가? 배가 고프면 더 멍청해질 텐데….”
“뭣!? 너, 진짜!!”
카라마츠의 말에 부들부들 떨며 반박하려 입을 연 오소마츠를 친구들이 막아섰다.
아직 카라마츠에게 할 말이 남았다며 분을 못 이겨 발을 구르는 오소마츠를 어루고 달래며 질질 끌고 가는 친구들을 보며 카라마츠가 한껏 눈썹을 찌푸렸다.
아카츠카 대학의 사범대에는 마츠노가 여섯 명 있었다.
그 중 영어교육과와 국어교육과의 두 마츠노는 성격도 좋고, 인맥도 넓었다.
주변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둘은 어째서인지 서로 만나면 못 잡아먹어 안달인 앙숙이었다.
2.
떠들썩한 학생 식당.
그 안쪽에 자리를 잡은 오소마츠와 친구들이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과제니, 시험이니, 축제니,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오소마츠는 묵묵히 된장 라면을 후루룩 들이켜고 있었다.
축제 이야기에도 오소마츠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친구들이 의아하단 눈으로 오소마츠를 뚫어지라 응시했다.
갑자기 조용해진 친구들의 시선이 모두 저에게 쏠려있는 것을 눈치챈 오소마츠가 멋쩍게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뭐야.”
“아까 마츠노 군한테 진 게 그렇게 분해?”
“하!? 별로 진 거 아니거든!!”
“진 거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마츠노, 은근히 말발 세지.”
“그렇게 매일 지면서 왜 마츠노 군만 보면 시비를 못 걸어 안달이야, 너는.”
저마다 한마디씩 던지는 친구들의 질문에 오소마츠가 젓가락을 멈췄다.
눈썹을 찌푸리고 볼을 부풀린 오소마츠가 고개를 슬쩍 돌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별로, 보면 열 받으니까….”
“그러면서 마츠노 군이 나가는 미팅을 꼬박꼬박 나가고.”
“맞아. 그리고 엄~청 훼방 놓지.”
“오소마츠, 너 때문에 미팅에 마츠노 데려가는 녀석이 없다구~.”
한숨 쉬듯 내뱉는 친구들의 말에 오소마츠가 젓가락을 테이블 위에 탕! 내려놓았다.
인상을 팍 찡그린 오소마츠가 억울하다는 투로 외쳤다.
“그게 왜 나 때문이야! 이 카리스마 레전드 오소마츠님보다 먼저 여친을 만들려고 하는 저놈이 나빠!!”
뿌루퉁한 얼굴로 외치고는 다시 면발을 후루룩 빨아들이는 오소마츠를 보며 친구들은 쓴웃음을 머금고 “아직 애네, 애야~.”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3.
대학 후문으로 나가면 맛집이 쭉 늘어서 있는 먹자골목이 나왔다.
싸고 맛있는 덮밥집을 향해 카라마츠가 친구들과 함께 걸었다.
카라마츠와 마찬가지로 점심을 먹으러 나온 학생들을 스쳐 지나가며 카라마츠는 작게 이를 갈았다.
기분 좋게 강의를 마치고, 기분 좋게 점심을 먹으러 갈 수 있었을 터였다.
오소마츠가 시비만 걸어오지 않았다면.
작은 목소리로 오소마츠 욕을 이어가는 카라마츠를 친구들이 쓴웃음을 짓고 바라보았다.
“어이~, 마츠노. 너무 그렇게 신경 쓰지 마.”
“그 녀석은,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안 든다!!”
제 어깨를 두드린 친구를 향해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외친 카라마츠가 고개를 작게 흔들고 “미안하다.” 하고 사과했다.
눈썹을 늘어뜨린 카라마츠를 보며 친구가 가볍게 손을 저었다.
“아니, 괜찮아.”
웃음기 섞인 말로 어깨를 으쓱인 친구 뒤로 아키가 손가락을 들었다.
“근데 정말 왜 오소마츠 군은 마츠노 군한테만 그러는 걸까? 알고 보면 엄청 좋은 앤데.”
“맞아.”
“그 녀석이? 좋은 녀석이라고?? 그건 너희들이 그 녀석의 횡포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 아닌가?”
“아니거든—? 너 진짜 오소마츠한테는 가차 없구나.”
“오소마츠 군은 진짜 착해. 전에 내가 교수님이 맡긴 자료 때문에 끙끙대면서 옮기고 있을 때 도와줬거든.”
“나는 오소마츠랑 같이 고깃집에서 알바하는데, 그 녀석 대타 잘 뛰어줘. 매번 부탁하는 내가 미안할 정도로….”
“저번에 교양 수업 같이 들었을 때, 내가 상태 안 좋으니까 오소마츠가 의무실까지 옮겨줬어. 그 후에 문병도 와서 약도 챙겨주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쏟아지는 미담에 카라마츠가 눈썹을 찡그렸다.
도저히 자신에게 항상 시비를 거는 오소마츠라고 믿어지지 않는 일화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 바보 녀석이 그런 일을 한다고?”
“오소마츠 군, 인기 많아~. 쾌활하고, 발랄하고, 또 귀엽고. 친구 많지?”
“오소마츠 친구 많지. 그 녀석, 사범대 동기 거의 다 알고 있을걸?”
타카시의 말에 카라마츠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눈을 껌뻑였다.
순간 깨달은 한 가지 사실에 눈을 크게 떴다.
지금 카라마츠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는 친구들 대부분이, 아니 전부가, 오소마츠와 알고 있는 사이였다.
카라마츠는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카라마츠와 오소마츠는 같은 사범대라고 해도 과가 달랐다.
그런데 어째서 카라마츠의 친구들은 모두 오소마츠와 알고 있는 사이인가.
그제야 친구들의 말이 이해된 카라마츠가 이번엔 또 다른 의문에 주름을 잡았다.
백 보 양보해 친구들의 말처럼 오소마츠가 상냥하고, 배려를 잘 하는 녀석이라고 한다면, 왜 카라마츠에게는 그런 태도를 보이는가.
카라마츠가 기억하는 오소마츠는 눈이 마주치면 항상 먼저 으르렁거리는 녀석이었다.
카라마츠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머릿속을 스치는 수많은 기억은 오소마츠가 자신을 보자마자 싸움을 걸어오는 것뿐이었다.
필름을 되감듯 많은 기억을 보내고 겨우 도착한 곳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아 처음 만났던 사범대 새내기 환영회였다.
과별로 앉아 선배들에게 자기소개를 하고 술을 마셨다.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었을 때, 선후배 가릴 것 없이 자리를 바꾸기 시작했고, 카라마츠는 우연히 오소마츠 옆에 앉게 되었다.
먼저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며 자신을 소개하자, 오소마츠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멍청히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내민 손에 오소마츠 손이 닿는 일은 없었고, 어정쩡하게 허공에 떠 있던 손을 거둔 카라마츠가 고개를 기울였을 때, 오소마츠의 그것이 시작되었다.
“있지—. 뭐야? 그 가죽 재킷은?”
“응? 아-. 멋있지 않나? 내가 제일 아끼는 녀석이다!”
“아니, 신입생 환영회에 그런 차림으로 보통 와?”
“음—?”
슬쩍 묻어나오는 시비조에 카라마츠가 짙은 눈썹을 찌푸렸다.
오소마츠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팔을 잡고 말려도 오소마츠는 입을 멈추지 않았다.
“중 2병? 그거인가? 완-전 그건데, 시골에서 꿈을 찾아 상경한 애송이.”
“어이. 적당히 해라. 들어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헤에—. 못 들어주겠으면 어쩔 거?”
평소라면 참을 수 있었겠지만, 몸에 들어간 알코올은 너무나 간단하게 카라마츠의 이성을 약하게 만들었다.
저도 모르게 올라간 주먹을 시작으로 오소마츠와 그 자리에서 치고받고 싸움을 하고 말았다.
고개를 흔들어 오소마츠를 처음 만났던 환영회의 안 좋은 기억을 털어버린 카라마츠가 앞서 걸어가는 친구들을 뒤따랐다.
친구들은 아직도 오소마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카라마츠 자신에게 그렇게나 적대적인 오소마츠를 입에 담으며 하하 호호 웃는 친구들을 보니 괜히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을 추월해 성큼성큼 덮밥집을 향해 걸어가는 카라마츠를 보며 친구들은 고개를 기울였다.
4.
캠퍼스 안이 온통 사람으로 가득 찬 축젯날.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호랑이 인형 탈을 쓰고 아이들에게 풍선을 나눠주었다.
사범대답게 어린아이들에게 맞춰진 연극과 전시회를 하는 강의실로 안내하며 풍선을 나눠주니,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리 덥지 않은 날씨인데도 인형 탈을 뒤집어쓰고 있으니 바람이 전혀 들어오지 않아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자신의 땀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오후가 다 지나고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했을 때, 겨우 빈 강의실에 들어가 쉴 수 있었다.
“이거 의외로 힘드네.”
양 탈을 벗어 던지며 쵸로마츠가 의자에 기댔다.
사회교육학과인 쵸로마츠도 우리 사범대에 있는 여섯 명의 마츠노 중 하나였다.
쵸로마츠의 한숨에 “아.” 하고 대답하며 나도 호랑이 탈을 벗었다.
땀에 흠뻑 젖은 얼굴에 겨우 바람이 닿았다.
선선한 공기가 적당히 젖은 얼굴을 어루만졌다.
동기가 갖다 준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두터운 인형 신발을 벗어 던지자, 탁탁탁 하고 경쾌한 발소리가 강의실 쪽으로 다가왔다.
“어? 쵸로마츠? 여기서 뭐 해?”
강의실로 빼꼼 얼굴을 내민 것은 오소마츠였다.
안 그래도 지친 몸이 더욱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통통, 경박하게 발소리를 울리며 들어온 오소마츠는 또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어올 것이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한숨을 크게 “파하—” 하고 내뱉고 고개를 돌렸다.
“푸핫!! 뭐야, 이거? 양??”
옆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역시나’ 하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양’이란 단어에 고개를 들었다.
오소마츠는 쵸로마츠 앞에 서서 양 탈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었다.
“이거 안 더워?”
“당연히 덥지! 땀 줄줄인 거 안 보이냐?!”
“오—, 진짜다. 고생했네.”
땀 닦은 수건을 보여주며 버럭 화를 내는 쵸로마츠의 대답에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오소마츠의 손을 거부하지 않은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에게 물었다.
“넌 뭐했냐?”
“나는 접수하고 애들 상대.”
“아—. 너는 수준이 똑같으니까, 애들이랑.”
“쵸로 씌, 너무해~!!”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과장되게 눈물을 글썽였다.
내 예상과 정반대로 흘러가는 지금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오소마츠라면 평소와 같이 말도 안 되는 비방을 하고 나나 쵸로마츠가 화를 내야 하는 것 아닌가?
꼭 이 세상에 존재할 리 없는 생물을 보는 것 같은 기괴한 느낌에 눈썹을 찌푸리고, 나도 모르게 오소마츠와 쵸로마츠의 대화에 집중했다.
“근데 진짜 땀 많이 흘렸네. 결벽증이 웬일이래~.”
“별로 결벽증 아니거든?! 깔끔한 게 좋을 뿐이야!”
“그걸 결벽증이라고 하거든요~? …수건 새로 적셔다 줄까?”
“응…. 그래 주면 고맙고. 이거 새 수건이니까 찬물에 좀 적셔서 갖다 줘.”
“오케—.”
쵸로마츠가 건넨 수건을 받아든 오소마츠가 종종걸음으로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5분도 지나지 않아 찬물에 적신 수건을 가져온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에게 수건을 주고, 쵸로마츠 뒤로 돌아갔다.
“지퍼 내린다?”
“응. 땡큐.”
쵸로마츠가 먼저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오소마츠는 인형 옷 등에 달린 지퍼를 내리고 쵸로마츠가 편하게 옷을 벗도록 도와주었다.
친구들에게 들었던 상냥하고, 배려심 깊은 오소마츠가 눈앞에 있었다.
쵸로마츠가 인형 옷을 다 벗자, 생수병까지 건네주고 “더 도와줄 거 있어?” 하고 묻는 오소마츠를 보자마자 원인 모를 울분이 치솟았다.
“…나가라.”
“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내뱉은 목소리는 스스로 놀랄 정도로 낮았다.
놀랐는지 오소마츠가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쵸로마츠도 놀랐는지 가만히 나와 오소마츠를 번갈아 응시하고 있었다.
어쩐지 그게 더 화가 나 오소마츠 목덜미를 잡아 그대로 엉덩이를 걷어차 강의실 밖으로 내쫓고 문을 잠가버렸다.
“…. 카라마츠, 너 뭐하냐?”
“…옷 벗는데 저 녀석이 방해되서 내쫓은 것뿐이다.”
“하?”
당연히 황당하단 얼굴을 하는 쵸로마츠를 뒤로 하고 강의실 구석에서 묵묵히 옷을 갈아입었다.
축제의 열기도 모두 사라진 평범한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과제와 시험에 빠져 바쁘게 살다 보니,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지금도 전공시험을 끝내고, 리포트 하나를 제출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한숨을 내쉬며 뻑뻑한 눈을 비비고 건물을 나왔다.
환하게 대지를 비추는 햇볕이 따가워 눈을 찌푸렸다.
충분하지 않은 수면 덕분에 머리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뒤숭숭한 기분에 시험까지 망친 것 같아 맑은 날씨와 정반대로 내 안은 새파랗게 물들어있었다.
일초라도 빨리 자취방으로 돌아가 푹신한 이불에 둘러싸이고 싶었다.
손목에 찬 시계를 보고 셔틀버스 시간표를 머릿속에 떠올렸을 때, 밝은 햇살을 뚫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그림자가 둘 있었다.
그중 한 녀석이 나를 보자마자 잠시 멈칫하는 것이 이상하리만큼 크게 눈에 보였다.
“여, 여어~. 폭력 선생. 앞으로 선생님이 될 사람이 그렇게 폭력을 써도 돼?”
“어이, 오소마츠.”
오늘도 빈정대는 오소마츠를 옆에 서 있던 쵸로마츠가 말렸다.
무시해도 될 도발이었다.
졸리고 피곤해 저런 싼 도발따위 상관없이 무시하고 지나가 자취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오소마츠 어깨에 올라가 있는 쵸로마츠의 손이 꼭 망원경으로 보는 것처럼 커다랗게 보였다.
“하아~.” 하고, 낮게, 한숨이 꺼졌다.
퓨즈가 끊기듯 뭔가가 뚝, 하고 끊기는 기분과 함께 절로 “못 참겠다.” 하는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정신을 차리니 이미 내 주먹은 오소마츠에게 날아가고 있었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오소마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썹을 잔뜩 치켜세우고 나를 노려보는 그 얼굴의 한쪽 뺨이 붉게 부어올랐다.
잠이 부족한 탓인지 여전히 머리는 멍했지만, 자신도 알 수 없는 분노가 천천히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를 갈며 땅을 박차고 나를 향해 뛰어온 오소마츠의 주먹을 피하지 않고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그렇게 네다섯 번 주먹을 주고받았을 때, 쵸로마츠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미쳤냐, 이것들아!? 주변을 좀 봐!!”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주변을 훑어보았다.
놀라 입을 막고 있는 여학생들, 끼어들어 말릴 타이밍을 재고 있는 남학생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먹구름이 낀 것 같던 머릿속이 맑아졌다.
“미안하다, 쵸로마츠.”
“사과는 나한테 할 게 아닌 것 같다.”
“….”
쵸로마츠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싸늘하게 나를 바라본 쵸로마츠가 오소마츠 팔을 잡아끌었다.
“가자, 오소마츠.”
“하? 잠,”
“여기서 더 하려고? 됐고 따라오기나 해.”
“…칫.”
쵸로마츠의 압박에 오소마츠가 작게 혀를 차고 순순히 쵸로마츠를 따라나섰다.
왔던 길을 돌아가는 둘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 나도 발을 돌려 자취방으로 향했다.
진흙에 발이 파묻혀 서서히 가라앉는 것 같은 끔찍한 기분이다.
5.
볼 한쪽에 커다란 멍을 달고 안 가겠다 버티는 오소마츠를 끌고 쵸로마츠가 향한 곳은 안주가 맛있기로 소문난 가게였다.
집에 가겠다는 오소마츠를 강제로 앉히고, 간단한 안주 몇 개와 맥주 두 잔을 빠르게 주문한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왜 그렇게 카라마츠한테 시비를 거냐? 들어보니까 미팅도 훼방 놓고 그런다며?”
“별로….”
“별로는 무슨! 이유도 없이 카라마츠한데 나대서 싸운 게 한두 번이 아니라던데!”
“왜 나한테만 뭐라 하냐!?”
“니가 100퍼 잘못한 건데, 너한테 뭐라 하지!”
“나도, 나도…! 싸우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라고!! 그냥…, 보면 막 짜증 나고, 열 받고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시비를 걸게 되고…. 그리고 그 녀석이 이상하게 눈에 잘 띄어서 그렇다고!!”
점원이 건네주는 맥주를 받으며 오소마츠의 말을 들은 쵸로마츠가 맥주를 한 모금 넘기며 “초딩이냐….” 하고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젓가락을 들어 안주로 나온 닭강정을 우물거린 쵸로마츠가 아직도 씩씩거리는 오소마츠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분에 차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오소마츠를 보고 있으면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눈을 지그시 감은 쵸로마츠가 머리를 굴리며 차오르는 기시감의 정체를 찾기 시작했다.
“쵸로마츠으~?”
눈을 감고 있는 쵸로마츠가 잠든 것으로 생각했는지 묘하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저를 부르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쵸로마츠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오소마츠, 너…. 카라마츠를 좋아해…?”
“하? 내가 걔를? 왜??”
“왜, 냐니…. 너 맨날 친구들하고 있으면 카라마츠 이야기한다며.”
“….”
“계속 생각나고 그러지?”
“….”
“그거, 좋아하는 거 아냐?”
“……헤?”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오소마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멍청히 눈을 껌뻑이는 오소마츠를 보며 쵸로마츠는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오소마츠의 얼굴이 서서히 빨갛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쵸로마츠가 “어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멘탈이 초딩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진짜 초딩일줄은….”
“뭇, 뭣, 뭐가!!”
테이블을 내려치며 위협하듯 외쳐도 딸기처럼 벌겋게 익은 얼굴로는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다시금 한숨을 내쉬는 쵸로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입을 연 순간, 가게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단체 손님이라도 들어왔는지 떠들썩한 공기가 서서히 쵸로마츠와 오소마츠가 앉은 테이블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
낮게 내뱉은 것은 카라마츠였다.
무슨 우연인지, 오소마츠와 똑같이 뺨에 멍 자국을 단 카라마츠가 친구들과 함께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있는 가게로 들어왔다.
오소마츠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작게 혀를 찬 카라마츠가 몸을 돌려 친구들에게 “다른 곳으로 가자.” 하고 말했다.
주변의 소음에 묻혀 잘 들리지도 않는 그 말이 이상하게도 오소마츠의 귀엔 너무나 또렷하게 들렸다.
쾅!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향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내가 있는 게 그렇게 불만이냐!?”
화를 내는 오소마츠를 향해 싸늘한 눈빛으로 대응한 카라마츠가 무뚝뚝하게 내뱉었다.
“아-, 불만이다. 너랑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아. 될 수 있으면 내 시야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영원히.”
매정하게 내뱉은 카라마츠의 말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상냥한 카라마츠답지 않은 말에 친구들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
한참을 말이 없던 오소마츠는 가방을 챙겨 쵸로마츠와 카라마츠를 스쳐 가게를 뛰어나갔다.
뒤이어 “하아~~.” 하고 큰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카라마츠와 친구들에게 간단한 인사를 던지고 오소마츠를 따라 가게를 나섰다.
가게를 나가는 쵸로마츠의 등을 시선을 쫓는 카라마츠의 굳은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6.
하루, 3일, 일주일….
그리고 2주일이 흘렀다.
우연히 들어간 가게에서 오소마츠와 쵸로마츠와 마주치고 심한 말을 내뱉은 지 2주일.
그날의 기분은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장, 이라고 할 정도로 최악이었고, 오소마츠 얼굴을 보자마자 꾹꾹 눌러왔던 뭔가가 터지고 말았다.
그 후로도 화는 쉽게 풀리지 않았고, 오소마츠가 보이지 않아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시비 거는 이 없이 평화롭게 보낸 시간이 일주일을 넘어 2주일이 되었을 때, 마음에 남아있는 티끌만한 찝찝함이 목을 조였다.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도, 전적으로 잘못이 오소마츠에게 있었다고 해도, 그날의 그 말은 너무 심했다.
사과하고 싶었지만, 오소마츠는 며칠이 지나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거의 매일 마주쳤던 단대 앞에서도 오소마츠를 볼 수 없었다.
간간이 그와 함께 다녔던 낯익은 얼굴은 몇 번 마주쳤지만, 그 속에 오소마츠는 없었다.
“오소마츠는 없는 건가?”
우연히 강의실 앞에서 마주친 녀석의 친구들에게 물었다.
나를 보고 고개를 기울인 이들이 머리를 긁적이며 “아—.” 하고 말을 흐렸다.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났다고 먼저 가던데?”
“…그, 런가.”
돌아오는 대답에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오소마츠는, 나를 피하고 있다.
그런 말을 들었다고 그렇게 딱 잘라 도망갈 필요가 있는 건가.
사과할 기회도 주지 않다니, 역시 제멋대로인 녀석이다.
“….”
교수님의 목소리가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그날 본 오소마츠의 얼굴.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입술을 꾹 다문 그 모습은, 상처 받은 것처럼 보였다.
눈도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꼭 비를 쫄딱 맞은 강아지처럼, 처량하고, 안타까웠다.
후회가 둑이 터진 것처럼 밀려들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오소마츠를 찾아 헤맸지만, 머리털 하나 보이지 않았다.
결국, 오소마츠를 찾지도 못하고, 아무런 소득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오소마츠? 글쎄. 요 며칠은 나도 못 봤어.”
“가끔 사회교육학과 마츠노랑 같이 있는 건 봤는데….”
“근데 이제 같은 단대여도 타과면 거의 못 볼걸?”
“엩.”
혹시 오소마츠를 봤냐는 질문에 친구들이 던진 대답에 놀라 되물었다.
친구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제 거의 전공 수업이잖아. 교양도 없고, 공통 수업도 거의 없고….”
“거의 못 보지. 어쩌면 졸업 때나 볼 수 있을지도?”
“야~, 그건 너무 심했다.”
“아냐, 그럴 수 있대. 누나가 타과생이랑 사귀다가 그래서 헤어지는 거 봤고.”
“헤—.”
이어지는 말에 피가 아래로 역류하는 느낌이 들었다.
크게 술렁이고 흔들리는 마음에 혼란스러웠다.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감정 속에서 강하게 든 생각은 ‘싫다.’는 것.
이대로 졸업까지 오소마츠를 볼 수 없는 것은, 싫다.
만나면 항상 시비를 걸고, 으르렁대고, 싸움만 해도…, 오소마츠가 아예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은 싫었다.
주먹을 꽉 쥐고 각오를 다졌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마츠노’를 선택해 통화 버튼을 눌렀다.
7.
가게에 들어가자 구석에 자리를 잡은 쵸로마츠가 손을 흔들었다.
의자에 가방을 걸고 앉자, 먼저 주문해놓았는지 맥주가 나왔다.
“왜 세 잔이야?”
“오늘 또 올 녀석이 있거든.”
쵸로마츠의 말에 고개를 기울이고 맥주잔을 기울였다.
시원한 맥주가 맛있다.
뛰어와서 타던 목을 맥주로 축이고 안주를 집어 먹으며 “누구?” 하고 물었다.
“아, 왔다.”
내 물음에 가게 입구를 쳐다보던 쵸로마츠가 작게 중얼거렸다.
누가 오는 건가, 쵸로마츠 쪽으로 목을 쭉 빼고 쳐다보자 카라마츠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빠져 도저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가방을 어깨에 메고 벌떡 일어나 도망치려고 했지만, 카라마츠에게 도주로를 막힌 뒤였다.
“어딜 도망가려고.”
“읏,”
“앉아라.”
차분한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발끈해 외치고 말았다.
“뭐, 야!! 네 말대로 안 보이게 해 줬잖아!!”
카라마츠는 멀뚱히 눈을 깜빡이며 나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가 말이 심했다. 미안하다.”
“…에.”
솔직하게 사과를 받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나 순순히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는 카라마츠에게 놀라 도망치는 것도 있고 가만히 서 있자, 쵸로마츠가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자, 앉아. 내가 카라마츠한테 부탁받아서 마련한 자리니까.”
“….”
“앉아라, 오소마츠.”
“…알겠어. 앉으면 되잖아.”
쵸로마츠와 카라마츠의 따가운 눈길에 할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안주와 맛있는 맥주가 있는데 테이블 위는 침묵으로 가득했다.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는 이 분위기가 너무 싫어서 맥주만 위장으로 부어 넣었다.
“야, 안주도 집어 먹어.”
“응.”
겨우 나온 쵸로마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안주를 집어 먹었다.
빈속에 맥주가 들어가서 그런지 금방 술기운이 얼굴로 올라왔다.
“내일 리포트 제출일인데, 다 했냐?”
발그스름해진 내 얼굴을 보며 쵸로마츠가 걱정스럽게 눈썹을 찌푸렸다.
이번 공통 수업에서 쵸로마츠와 같은 분반이 된 덕분에 리포트는 낼모레까지 하면 된다는 거짓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직 못했어.”
“어쩌려고 그러냐….”
황당하단 얼굴로 푹- 한숨을 내쉬는 쵸로마츠를 노려봐주었다.
그렇게 잔소리하지 않아도 다 알아서 한다구!
“내가 알아서 해!”
“퍽도 그러겠다.”
“우씨—.”
친한 만큼 나를 잘 아는 쵸로마츠의 말에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볼을 부풀렸다.
한심하단 눈으로 나를 보던 쵸롸츠가 또 뭔가 말하려던 입을 다물었다.
한 곳을 빤히 응시하는 쵸로마츠 눈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내 옆에 앉은 카라마츠가 말없이 안주를 질겅질겅 씹으며 ‘나 기분 안 좋소’ 오라를 마구마구 뿜어내고 있었다.
뭐냐고-. 내 옆에 앉은 게 그렇게 싫으면 쵸로마츠 옆에 앉으면 되잖아….
가라앉는 기분에 작게 한숨을 내쉬고 맥주잔을 들었다.
이래서 피해왔던 건데….
다행히 공통 수업도 카라마츠랑 분반이 다르니까 2주 넘게 카라마츠와 얼굴도 마주치지 않고 잘 지내올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쵸로마츠한테 부탁까지 해서 이런 자리를 만든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아-, 아까 한 사과 때문에?
그럼 이제 사과했으니까 가봐도 될 텐데….
왜 아직도 남아있는 건지.
게다가, 일부러 내 옆에 앉아서 저런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소마츠.”
귓가에 울리는 낮은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흠칫 어깨를 떨었다.
“왜.” 하고 대답하자 눈썹을 잔뜩 찌푸린 카라마츠가 물었다.
“요즘, …잘 지냈나?”
하? 얘가 갑자기 왜 이래??
“어. 뭐—. 대충….”
“…그런가.”
“….”
또, 또 침묵!!
무섭다고!!
뭔데?!
말없이 다시 안주를 집어 먹기 시작한 카라마츠에게서 눈을 돌려 쵸로마츠를 바라보았다.
맥주를 가볍게 들이켠 쵸로마츠가 ‘뭐.’ 하는 눈으로 응수했다.
“쵸, 쵸로 씌. 내일 알바 몇 시에 끝나?”
“9시. 왜.”
“같이 게임 해줘~.”
“내일 리포트 제출일이라니까? 들었냐?”
“알아! 오늘 밤새워서 하면 내일 놀아도 되잖아!”
“오늘 밤샐 놈이 잘도 내일,”
쾅!
테이블을 내리치는 소리에 놀란 손님들의 눈이 모두 우리에게 쏠렸다.
쵸로마츠도 놀랐는지 작은 동공이 더 작아진 것 같았다.
세모꼴의 입을 쩍 벌리고 카라마츠를 보고 있는 쵸로마츠를 따라 나도 슬쩍 카라마츠를 쳐다보았다.
무셔——!!!
얼굴 장난 아니야!!
사람 백 명은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오소마츠.”
“히익!!”
다짜고짜 잡힌 멱살에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카라마츠가 살벌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는 거지? 오히려 잘못은 네가 하지 않았나.”
“…흐, 에…?”
“나를 무시하지 말라는 거다. 사과했는데도 자꾸 내 눈을 피하는 이유가 있나?”
솔직히 대답 안 하면 한대 먹일 기세로 묻는 카라마츠의 눈빛이 뜨겁다.
아니, 그것보다….
가깝지 않아?!
얼굴, 가깝다고!!
진짜로~!!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져 당황해 버둥거려도 내 멱살을 잡은 카라마츠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야, 이 고릴라 같은 힘은!!
“오소마츠, 대답해라.”
무리!! 살려줘~~!!
금방이라도 얼굴이 터질 것 같아 눈을 홱 돌려 쵸로마츠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쵸로마츠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쵸로마츠!!”
“이 상황에 또 쵸로마츠를 찾는 건가?”
“기왕 이렇게 된 거, 솔직하게 고백해.”
“하아!?”
“솔직한 거 좋지. 그래, 오소마츠. 자-. 이유를 말해봐라.”
“읏!!!”
다시 나를 지그시 응시하는 카라마츠의 눈빛에 결국 얼굴이 터지고 말았다.
목까지 새빨개졌을 거야….
얼굴이 화끈거리고 김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입을 우물거렸다.
말이 쉽지!!
나를 싫어하는 게 뻔히 보이는 녀석한테 고백하라니! 쵸로 씌!!
어차피 가망 없는 거 확 고백해버리고 차이란 거?!
으~~~,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르지만….
아—, 안 되겠어.
속 울렁거려….
토할 거 같다고~~!!
그리고 심장 터지겠어!!
“오소마츠.”
“…. 알겠, 다고…. 그, 내가…. 자꾸 너를 피하는 이유는….”
8.
강의가 끝나기 무섭게 전공 책을 가방에 집어넣은 카라마츠가 푸른 백팩을 어깨에 메고 급히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 친구들의 권유도 미안하단 얼굴로 거절한 카라마츠가 복도를 뛰어 다른 강의실에 도착해 헐떡이는 숨을 골랐다.
“오소마츠.”
“읏!!”
강의실 밖으로 나오는 오소마츠를 발견하고 카라마츠가 반갑게 손을 흔들자, 순식간에 얼굴을 붉힌 오소마츠가 도망치려 몸을 돌렸다.
“얀마, 어딜 도망쳐.”
오소마츠 옆에 서 있던 쵸로마츠가 재빠르게 오소마츠 가방을 붙잡았다.
도망가려는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다가온 카라마츠가 쵸로마츠에게서 오소마츠를 넘겨받았다.
“오소마츠, 점심은 뭐가 좋은가?”
“어? 아…, 음…. 아무, 거나?”
“그럼…. 후문에 괜찮은 파스타 집이 있다. 거긴 어떤가?”
“아, 응…. 괜찮은데….”
“그럼 가자, 오소마츠!”
“에, 우왓!!”
오소마츠의 대답에 활짝 웃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 손을 잡고 이끌었다.
맞잡은 손에 얼굴을 붉힌 오소마츠가 당황해 손을 빼내려 해도 카라마츠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또 보자, 쵸로마츠.”
“그래~, 잘 가. 카라마츠.”
“잠, 쵸로 씌!!”
“잘 가, 오소마츠.”
“쵸로 씨이~?!?!”
쵸로마츠를 향해 손을 뻗으며 절규하는 오소마츠를 질질 끌고 후문을 향해 걷던 카라마츠가 뒤돌아 조용해진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뭔가?”
“손, 잡고 갈 필요 있어? 내가 알아서 간 건데….”
뿌루퉁한 얼굴로 말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피식- 잔잔한 미소를 흘린 카라마츠가 즐겁게 대답했다.
“놓으면 도망갈 것 같아서.”
“읏!”
싱긋- 웃은 카라마츠가 얼굴이 잔뜩 빨개진 오소마츠를 데리고 후문을 나섰다.
후문까지 오면서 지나친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의 친구들은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둘을 응시했다.
앙숙으로 유명한 두 마츠노가 손을 잡고 가는 모습에 모두 턱을 떨어뜨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범대에 유명했던 ‘앙숙’은 ‘바보 커플’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게 되었다.
* 신년특집 3번째 글이었습니다ㅎㅎ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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