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둥이 생일 축전!


 * 육둥이 생일 축하로 지금까지 연재한 장편 (Red Tear 제외) 외전을 하나씩 올리려고 합니다^^

  첫 스타트는 여우골이야기 외전이에요^^


 * 타비마츠에 나왔던 너구리 육둥이가 나옵니다.


 * 공미포  15,033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콰르릉, 쿠드득….


흔들리는 지면에 길거리에 세워진 입간판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쓰러지고, 요동치는 집 밖으로 뛰쳐나온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무리를 지었다. 

여우골을 강타한 지진으로 땅과 집, 빌딩이 넘실대는 강진에 여우 신사에 올려진 기와도 스륵 지붕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낡은 신사가 혹시나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얼굴로 전전긍긍하며 붉은 토리이 앞에 선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쵸로마츠의 불안한 눈빛을 뒤에 지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오소마츠가 토지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모두 짜내 지맥에 흘려 넣었다. 

강진에도 무너지거나 내려앉지 않도록 지반을 강하게 지탱한 오소마츠가 수 초에 걸쳐 여우골을 덮친 지진을 이겨냈다. 

땅이 흔들리는 것은 완전히 막을 수 없었지만, 기록적인 강진에도 여우골의 피해는 다른 마을보다 눈에 띄게 적었다. 

지진이 지나가고 다소 상처는 입었지만 무사한 여우골을 내려다본 오소마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쉼과 동시에 정신을 잃었다. 

저를 향해 달려오는 쵸로마츠와 이치마츠의 외침을 뒤로 하고 구름 하나 없는 푸른 하늘에서 내려오는 검은 날개가 흐려지는 시야에 맺혔다.






2.


“그래서 오소마츠가 이렇게 된 거야?”

고개를 기울이고 묻는 ‘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작아진 몸을 제 품에 쏙 껴안고 툇마루에 앉아 발을 동동 굴리던 신이 머리 위에 쫑긋 솟은 보들보들한 귀를 매만졌다.


“오소마츠가 작아지니까 동생 같아!”

눈을 반짝이는 신의 말에 쓴웃음을 흘리고 꼬리를 살랑였다. 

큰 지진을 막으려고 온 힘을 쏟아부은 결과, 몸이 작아졌다. 

꼬리는 여전히 4개이지만 몸집은 10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와 같다. 

꼬리도 귀도 제대로 숨길 수 없고, 여우 모습이 되는 것도 무리. 신력(神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짜낼 힘도 없다는 게 바로 지금의 상태다. 

어휴~, 한숨을 쉬고 내 꼬리와 귀를 만지작거리는 신의 무릎에서 펄쩍 뛰어 내렸다. 


“아…, 신페이. 오늘도 놀러왔어?”

“쵸로~! 안녕!”

“‘쵸로마츠’라고 제대로 불러! 욘석아!!”

“헤헤~.”

신사에서 나온 쵸로마츠를 향해 손을 흔든 신이 쵸로마츠의 잔소리에 멋쩍게 웃었다. 

살갑게 웃으며 쵸로마츠의 잔소리를 어영부영 넘기는 신에게서 눈을 돌려 마을 곳곳에 부서진 부분을 고치는 인간들을 내려다보았다. 

피해가 크지 않은 것은 정말 천만다행이지만…. 

힘을 쓸 수 없으니 불편한 것도 많고, 답답하다. 

빨리 힘이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얌전히 쉬는 것 밖에는 방도가 없으니….


“오소마츠.”

끙-, 골머리를 앓는 와중에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다가왔다.


“카라마츄~! 오늘 일은 끝?”

“아—. 몸 상태는 어떤가?”

“힘이 좀 없어진 것 빼면 멀쩡하다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구~.”

남자다운 눈썹을 늘어뜨리고 근심가득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카라마츠에게 별 문제 아니라는 얼굴로 웃어보이며 코 밑을 문질렀다.


“이치마츠는?”

“쥬시마츠네 신혼집이 조금 내려앉아서 말이야. 도와준다고 그쪽으로 갔다.”

“헤—.”

일하기 싫어하는 그 이치마츠가 쥬시마츠의 집수리를 도우러 갔다니…. 

기특한 녀석. 

나중에 돌아오면 쓰담쓰담 100번이다! 

홀로 다짐하고 끄덕거리자 어느새 코앞까지 걸어온 카라마츠가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우왓!? 뭐, 뭐야…?”

“아니…, 뭔가…. 작구나 싶어서.”

“하!?”

의미심장하게 말을 흐리는 카라마츠를 인상을 팍 쓰고 노려보자 쵸로마츠와 실랑이를 끝낸 신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카라마츠! 오소마츠 놀리지 마!!”

정말로 내가 자기 동생이라고 생각하는지, 평소엔 카라마츠 앞에서 큰 소리도 내지 못하던 신이 당당하게 외치는 모습에 묘한 감동이 스며들어왔다. 

찡- 하고 울리는 심장에 귀를 까닥이자 카라마츠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나를 내려놓았다.

아아—, 삐졌구만.

토라진 얼굴로 홱 고개를 돌리고 쵸로마츠에게 걸어가는 카라마츠의 등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소마츠?” 하고 부르는 신에게 활짝 웃어주었다.


“신~,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야~.”

해가 산너머로 잠자러 들어가는 하늘을 보며 신에게 말했다.


“아…. 더 있고 싶은데-.”

“안 돼~. 그럼 토-루가 걱정한다구~?”

“아빠는 오소마츠랑 같이 있으면 늦게 들어가도 뭐라 안 하는 걸!”

“그래도~. 어제 지진이 있었으니까 걱정할거야.”

“웅….”

볼을 부풀리고 아쉬운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면서 기죽은 강아지처럼 쳐다보는 신의 머리를 발꿈치 들어 쓰다듬어 주고 통통 등을 두드려주었다.


“또 놀러 와!”

“응….”

지진으로 깨진 돌계단을 조심히 내려가라고 충고하고, 풀죽은 신이 터벅터벅 신사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배웅하고 몸을 돌렸다. 



묘하게 어두운 다다미 방에 들어가 털썩 방석에 엉덩이를 내리자마자 쵸로마츠가 불쑥 얼굴을 내밀고 또 득달같이 잔소리를 시작했다.


“쉬고 와.”

“에~~~?”

무표정으로 눈도 반쯤 뜨고 차갑게 내뱉는 쵸로마츠의 말에 눈썹을 찌푸리자 옆에 앉아있던 카라마츠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토도마츠는 (언제 만든 것인지 모를) 스마트폰을 툭툭 두드리며 “어디어디가 요양하는 데 좋데~.” 하고 옆에서 은근슬쩍 쵸로마츠를 지원했다. 

1대 3. 

비장의 수단을 쓸 때다! 

몸집과 함께 짧고 뭉툭해진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귀까지 뒤로 돌려 눈을 반짝이며 쵸로마츠를 응시했다.


“그치만~ 내가 없으면 마을은? 내가 일 못하면 체리마츠나 카라마츠한테 부담되잖아~.”

“누가 체리마츠냣!! 그리고 어차피 오소마츠 형은 별로 일 안 했잖아. 오소마츠 형이 없어도 충~~분히 괜찮으니까 내빼지 마!”

토토코에게 전수 받은 필살 애교 얼굴을 했지만 쵸로마츠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발끈해서 뭐라뭐라 잔소리를 늘어놓는 쵸로마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귀를 덮고 몸을 돌렸다.


“우—. 카, 카라마츠는?!”

작전을 바꿔 이번엔 카라마츠를 올려다보았다. 

이 각도에서 카라마츠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아래에서 보는 신선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꼬리를 너울댔다.


“카라마츄~~. 내가 없으면 카라마츠도 바빠지잖아~? 그, 그리고 내가 멀리 가면 카라마츠랑도 떨어지고!!”

일부러 눈을 덜 깜빡여 눈물이 나와 눈이 반짝이도록 하고, 카라마츠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나와 시선을 맞추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던 카라마츠가 하는 수 없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움찔, 어깨를 떤 카라마츠가 흐흠,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시선을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조금은 쉬다 오는 게 좋지 않겠나? 토도마츠가 추천한 곳에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오소마츠 혼자 가는 것이 싫다면 나도 함께 가겠다.”

“싫어.”

“엩.”

나도 모르게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카라마츠가 눈에 띄게 당황하며 눈을 깜빡였다.


이 바보카라마츠!! 

눈치를 좀 키우라고—! 

여기선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해야 하잖아~! 

이야기의 흐름—!!


“왜 싫은데.”

카라마츠에게서 등돌린 나를 보며 어이없다는 얼굴을 한 쵸로마츠가 물었다. 

왠지 뚱한 기분이 들어서 무릎을 세워 껴안고 고개를 돌렸다.


“…여기는 내 마을이잖아.”

작게 씹은 말에 카라마츠가 싱긋- 웃으며 눈썹을 내렸다.


“잠깐 떠나는 정도는 괜찮을 거다. 불안하면 토토코에게 잠시만 마을을 봐달라고 부탁하는 게 어떻겠나?”

“…토토코한테…?”

“오소마츠가 빨리 힘을 회복해야 이 마을도 다시 오소마츠의 힘을 받아 활기차질 테니까. 나는 오소마츠를 닮은 이 마을이 좋다.”

“….”

카라마츠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내려온 손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몸집이 작아진 탓에 더 크게 느껴지는 카라마츠의 손이 상냥하게 귀를 어루만지고, 느긋하게 아래로 내려와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함께 쉬다 오지 않겠나?”

“….”

어깨를 안은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손을 더 내려 내 허리를 감싸고 들어올린 카라마츠가 조심스럽게 자기 무릎 위에 나를 앉혔다. 

빙긋- 나긋나긋한 미소로 묻는 카라마츠에게 더는 싫다고 할 수 없었다. 

푹-,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카라마츠는 물론이고 쵸로마츠와 토도마츠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토도마츠는 환해진 얼굴로 쉬고 오기 좋다는 곳을 추천하고 쵸로마츠는 내가 없는 동안 여기 일은 걱정하지 말라는 둥 푹 쉬고 오라는 둥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카라마츠는 무릎에 얌전히 앉아있는 나를 팔 안에 가두고 은은한 미소와 함께 (뭐가 즐거운지) 작게 콧노래를 불렀다.






3.


휴양을 가기로 결정되고 속전속결로 준비를 한 쵸로마츠와 토도마츠 덕분에 3일 후 우리는 신사를 떠나게 되었다.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신사에 온 치비타와 쇼도 2, 3일 카라마츠가 없어도 괜찮다며 오히려 푹 쉬고 오라고 우리 등을 떠밀었다. 

쵸로마츠와 이치마츠, 쥬시마츠 부부와 토도마츠, 그리고 신의 배웅까지 받았지만, 나와 카라마츠가 함께 떠나는만큼 마을을 그냥 놔두는 것은 불안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카라마츠가 미리 토토코에게 연락을 넣어두었고, 우리를 배웅하러 신사에 들린 토토코에게 잠시 마을을 부탁했다. 

올 때 반드시 기념품을 사오라는 토토코에게 마을을 맡기고 향한 곳은 신과 요괴들이 많이 찾는다는 유명한 여관(료칸). 

사시사철 붉은 단풍으로 물들어있는 영산(靈山)에 자리한 여관은 오래 머물면 이무기가 용(龍)이 될 정도로 정기가 가득한 곳으로 유명했다. 

인간은 닿을 수 없는 깊고 깊은 숲 속에 숨겨진 작은 여관에 도착해 정문에 서자, 짙은 홍색의 기모노에 단풍 무늬가 새겨진 회색 하오리를 입은 지배인이 잰걸음으로 나왔다. 


“너구리 여관에 어서오세요! 예약하신 ‘카라마츠’님 이신가요?”

머리 위에 솟은 둥근 갈색 귀와 통통한 줄무늬 꼬리를 흔들며 생글 웃는 지배인의 머리 위에 올려진 녹색 나뭇잎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흔들렸다. 

위태롭게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는 나뭇잎에 시선을 고정하고 멍청히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 카라마츠가 지배인의 질문에 대답했다.


“네! 들어오세요. 짐 들어드리겠습니다.”

빵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지배인이 앞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프런트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경쾌하게 달려와 카라마츠가 들고 있던 짐을 건네 받았다. 

노란 셔츠에 검은 넥타이, 그 위에 단풍 무늬가 새겨진 핫피를 입고 아래는 정장 반바지라는 특이한 옷차림을 한 점원이 햇살처럼 빵긋 웃으며 나와 눈을 맞췄다.


“201호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돌려 흠 잡을 데 하나 없는 영업 미소를 띄운 지배인을 따라 계단을 올랐다. 

여관은 오래된 목조 건물로 밖에서 볼 때는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내부는 정말 넓었다. 

먼지 하나 없는 바닥과 얼룩 없는 옅은 황색의 벽은 큰 장식 하나 없어도 내가 세련되었다고 느낄 정도로 정연했다. 

게다가 향긋한 나무 냄새가 여관 안을 은근히 흘러다니는 바람에 실려 피부를 간질였다. 

속으로 감탄하며 스쳐 지나가는 여관의 직원이나 저 멀리 보이는 정원에 멍청히 시선을 두었다가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카라마츠가 저 멀리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몸이 작아진 덕분에 카라마츠가 한 발 앞으로 걸어갈 때, 두 발 아니 세 발을 바쁘게 내딛지 않으면 나란히 걷지 못하고 뒤쳐졌다. 

뱁새처럼 종종 빠르게 걷는 것이 익숙치 않아 뚱한 기분에 볼을 부풀리자, 내가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려 고개를 뒤로 돌린 카라마츠가 훗, 하고 웃더니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카라마츠…. 나는 어린애가 아니라구!”

영락없는 애 취급에 화를 내며 따져도 카라마츠는 미소 가득한 얼굴로 “그렇군.” 하고 적당히 대꾸할 뿐이었다. 

게다가 그런 우리를 지배인은 자애로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창피해서 내려달라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카라마츠는 나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나를 꼭 안아든 채로 지배인의 뒤를 따라 방으로 향하는 카라마츠를 향해 다 들리라고 크게 한숨을 내쉬고 몸의 힘을 뺐다.



빨간 단풍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이 훤히 보이는 큰 창을 가진 방에 우리를 안내한 지배인이 식사 시간과 간략한 여관 수칙을 전했다. 

토도마츠가 예약했다는 방은 한눈에 보아도 고급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카라마츠가 나를 내려놓자마자 방석에 앉아 늘어진 나를 보며 지배인이 작은 미소를 피우고 고개를 숙였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시길. 어린 신부님도요.”

“헤?”

“풋,”

“저녁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으니 온천을 한 번 즐기고 오세요. 그럼 편히 쉬세요.”

지배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바보같은 소리를 내자, 카라마츠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얼굴까지 돌려 터진 웃음을 숨겼다. 

벙쪄서 반박도 하지 못하는 나와 어깨까지 떨며 웃고 있는 카라마츠에게 환한 미소를 보낸 지배인이 예의 가득한 조신한 몸짓으로 방문을 열고 나갔다.


“…….”

“…오, 소마츠.”

한참을 웃고 나서야 헛기침으로 목을 다듬은 카라마츠가 나를 부르며 다가왔다.


“내가 더 연상인데!! 훨——씬, 훨씬 더 연상인데!!!”

분노로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며 벌떡 일어나 외쳤지만 카라마츠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천천히 나를 달랬다.


“지금 모습이니까 그렇게 착각한 걸거다. 화내지 말고 모처럼 여관에 왔으니 온천에 들어가자.”

“그건 알지만 말이야~~!”

분한 건 분한 거다. 

겨우 몇 백년 산 카라마츠와 달리 나는 천년을 넘게 산 천호! 

절대적으로 내가 더 오래 살았고, 더 지혜롭고, 더 멋지잖아?! 

아무리 이 모습이 되었다지만 말이야!! 

힘을 잃은 덕분에 내가 카라마츠보다 어리게 보인다는 사실이 도저히 받아들여 지지 않아서 씩씩대고 있자, 눈썹을 늘어뜨리고 곤란하단 미소를 피운 카라마츠가 나를 또다시 들어올렸다.


“자—. 온천에 가자.”

“카라마츠, 네가 이렇게 자꾸 들어올리니까 그런 오해를 받잖아~~!!”

“그럴지도 모르겠군.”

“어이!”

묘하게 즐거운 얼굴을 하고 웃어넘기는 카라마츠에게 더 화를 내도 소용 없었다. 

방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저항을 포기한 나를 안은 채 탈의실에 도착한 카라마츠가 내가 무슨 유리병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나를 내려놓았다.

있는 힘껏 눈에 힘을 주고 노려보았지만 카라마츠는 신경쓰지 않고 훌렁훌렁 옷을 벗어 앞에 놓인 바구니에 벗은 옷을 개어 넣었다. 

푹- 한숨을 내쉬고, 온천이나 만끽하자는 생각에 입고 있는 붉은 기모노의 오비를 풀었다. 

대충 오비를 접어 바구니에 넣으려고 손을 뻗은 순간 깨달았다. 


키가 작아서 손이 안 닿아아아아아아아!!!


왜 쓸데없이 바구니를 저렇게 높이 둔 거야?! 어떻게 잡으라고! 발꿈치를 들어도 안 닿아!!


끙끙대며 팔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바구니에 도저히 손이 닿지 않았다. 

간신히 손가락이 닿았지만 툭, 하고 바구니를 안쪽으로 밀어내서 상황은 더 악화…. 

슬슬 치밀어오르는 짜증에 꼬리로 바닥을 팡팡 두드리고 있자, 내 모습을 눈치챈 카라마츠가 조용히 바구니를 내려주었다.


“…….”

“오소마츠?”

“아니…. 응….”

고개를 기울이는 카라마츠에게 고개를 젓고 기모노를 벗어 바구니에 넣었다.


…도움은 필요 없었어! 아니, 솔직히 말하면 필요하긴 했지만? 쫌-, 쫌 뭐랄까…, 천호의 자존심의 문제라고 할까…!

복잡하게 이리저리 뒤섞인 감정에 인상을 구긴 나를 카라마츠가 온천으로 이끌었다. 

적당히 몸을 씻고, 카라마츠와 교대로 등을 밀어주고 돌멩이로 둘러진 온천으로 들어갔다. 

먼저 “후아~~.” 하고 녹는 소리를 내며 온천에 들어간 카라마츠를 뒤따라 온천물에 발을 담그자마자 재빨리 발을 뽑았다.


“뜨거어….”

“엩. 적당하다고 생각한다만….”

뭐야 이거!? 감각까지 어린애가 된 거?! 의아한 얼굴을 한 카라마츠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모처럼 온천에 왔는데 안 들어갈 수는 없겠지…. 

카라마츠의 눈빛을 느끼며 천천히 발을 온천 속으로 넣었다. 

천~천히 넣으니까 조금 참을만 했다. 

들어가 있으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어깨가지 온천물 속으로 가라앉힌 순간, 또 깨달았다.


깊어어어어어어어어!!!


아무리 엉덩이를 내려도 물이 위로 위로 올라온다. 

물이 턱까지 올라온 시점에서 몸을 내리는 것을 멈췄다. 

온천 바닥에 엉덩이가 닿으면 물은 분명 내 머리 위에 있을 테니까.

 다시 슬금슬금 올라오는 짜증을 억지로 누르고 옆에 앉은 카라마츠에게 눈을 돌렸다. 

제대로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온천을 즐기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물을 촥-! 끼얹었다.


“푸핫!! 무, 무슨 짓인가! 오소마츠!”

“아—, 미안~. 손이 미끄러졌네에~?”

“이…!, ……오소마츠, 왜 그렇게 어정쩡하게 있는 건가?”

우연히 딸딸마츠를 들킨 쵸로마츠가 내게 전골 국물을 끼얹으면 했던 변명을 따라하자, 화를 내려던 카라마츠가 멍청히 내게 물었다. 

그걸 이제야 눈치챘냐는 생각에 눈썹을 세우고 말했다.


“별로~? 그냥 좀 물이 깊을 뿐이야.”

“엩.”

내 말에 카라마츠가 눈을 깜빡이더니 “아….” 하고 신음했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얼굴을 밝히고 물어왔다.


“저기 어린아이들 전용 탕이,”

“절대 안 가!!”

카라마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끊고 외쳤다. ‘왜?’ 라는 얼굴을 한 카라마츠를 째려보며 흥-, 고개를 돌렸다. 

이 나이에 어린애 탕이 말이 되냐구! 

아무리 몸이 작아졌다지만 속알은 여전히 천호! 

천 살이 넘은 내가 어린애 탕에 들어가야겠어!? 

씩씩, 뜨거운 콧바람을 내뿜으며 화를 식히는데 몸이 번쩍 공중으로 들렸다.


“으헤!?”

“이러면 되겠나?”

나를 들어올려 제 무릎 위에 앉힌 카라마츠가 나를 보며 부드럽게 물었다. 

다정한 목소리에 조금 전까지 혼자 씩씩대로 있던 것이 어쩐히 허무해져 귀를 늘어뜨리고 “웅….” 하고 작게 대답했다. 

겨우 익숙해진 뜨끈한 온천물에 어깨까지 담그고 등에 닿은 카라마츠의 체온을 즐기며 눈을 감았지만 위에서 내려오는 따가운 눈빛에 곧 눈꺼풀을 열었다.


“카라마츄~. 너무 쳐다보는 거 아니야?”

“아……,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그만.”

“몸집이 작아진 것 뿐이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또 불필요한 과보호를 하는 카라마츠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 내뱉은 말에 카라마츠가 쓴웃음을 띄웠다. 

걱정하는 게 아니면 뭔데?

눈을 깜빡이며 쳐다보니 카라마츠가 조금 붉어진 얼굴로 내 손에 깍지를 끼웠다.


“나는…, 한 번도 오소마츠의 어린 모습을 본 적 없으니까…. 이렇게나마 오소마츠의 어릴 때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그것이 조금…, 기쁘, 다고나 할까….”

점점 빨개지는 카라마츠의 얼굴은 온천 때문이 아니었다. 

말을 할수록 떨리는 목소리에 중간중간 숨을 끊어가며 전하는 카라마츠의 말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 바, 바보카라마츠!”

“어, 어쩔 수 없잖나! 내가 오소마츠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오소마츠는 어른의 모습이었으니까….”

부끄러워 외친 비난에 카라마츠가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카라마츠를 지그~시 노려보며 몸을 돌려 카라마츠와 마주보고 앉아 카라마츠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렇게 말하면 나도 카라마츠의 어린 시절은 본 적 없다구! 내가 카라마츠와 처음 만났을 때, 카라마츠도 어리지 않았으니까!”

“하핫, 확실히 그렇군.”

내 말에 카라마츠가 쿡쿡, 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카라마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카라마츠의 어린 모습이 보고 싶고….


“아, 그래!”

“응?”

“카라마츠랑 꼭 닮은 자식을 낳으면 돼!”

“……응!?”

“그러면 아기 카라마츠, 어린아이 카라마츠, 소년 카라마츠를 모두 볼 수 있어!”

역시 나는 천재~!! 

기분좋게 온천물 속에서 꼬리를 남실대며 웃자, 아까보다 더 빨개진 얼굴로 카라마츠가 말을 더듬었다.


“오, 오, 오, 오소마~츠?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말하는 건가?”

“응?”

카라마츠의 말에 입을 다물고 눈을 깜빡였다. 


뜻? 

무슨 뜻? 

카라마츠랑 똑같은 아기?


응…? 응……? 응………??

으응!?!?!?


철썩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난 내 몸을 따라 온천물이 요동쳤다. 

얼굴뿐 아니라 전신이 뜨겁다. 

당황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입만 뻐끔거리는 나를 보며 카라마츠가 “겨우 깨달았나….” 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니었다구우우~~!! 

팔을 파닥이며 외치는 나를 향해 카라마츠는 헤실-, 바보같은 웃음을 흘렸다.






4.


온천에서의 작은 오해(?)를 겪고, 상쾌한 기분으로 방에 돌아오자 지배인과 함께 진수성찬이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보글보글 먹음직스럽게 끓고 있는 전골을 중심으로 처음 보는 음식들이 상 가득 채워졌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을 마지막으로 상에 올린 지배인이 싱긋 웃으며 음식을 하나하나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저희 여관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너구리 전골’ 입니다.”

“헤?! 너, 너구리?! 여기 너구리 들어간 거~?!”

지배의 말에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치자 후훗, 하고 작게 웃은 지배인 대답했다.


“이름이 ‘너구리 전골’일 뿐, 다행히 너구리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졸지에 동족을 먹는 요괴로 만들어버린 내게 미소로 대답해준 지배인은 음식을 함께 나른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방을 떠났다. 

의심 하나 가지지 않고 보기좋게 속아(?) 넘어간 것이 부끄러워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자 맞은편에 앉은 카라마츠가 전골을 앞접시에 적당히 덜어 내밀었다.


“아, 고마워~. 카라마츄~!”

콧속으로 들어오는 맛있는 향기에 군침을 삼키고 접시를 받았다. 

먼저 국물을 후후- 불어서 한모금 먹자, 깊고 감칠맛이 나면서도 산뜻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햐아! 이거 진짜 맛있어!!”

카라마츠가 정성스럽게 말려주어 뽀송뽀송해진 꼬리에 맛있는 전골까지! 

행복한 마음에 전골을 쉴 새 없이 입 속으로 나르고 상 가득 차려진 음식에도 손을 대다 보니 어느새 그 많던 접시가 모두 깨끗이 비워졌다. 

불뚝 솟아난 배를 통통 두드리며 몸을 뒤로 털퍽 눕히고 꺼흑, 큰숨을 내쉬었다.


“으햐아~, 배불러~. 이제 못 움직여어~~.”

만복감과 적당하게 몸을 누르는 피로에 점점 눈을 깜빡이는 속도가 느려졌다. 

마른 다다미 바닥에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기온. 나른하게 덮쳐오는 졸음에 서서히 잠으로 빠져들었다.


“오소마츠. 잘 거면 제대로 이불에 누워라.”

“우~~.”

산통을 깨는 카라마츠의 말에 몸을 옆으로 구르고 신음했다. 

지금은 움직이기 싫다구우~. 

꼬리로 탕탕 바닥을 두드리고 얼굴을 찡그린 채로 다시 잠에 빠져들려는 내게 다가오는 카라마츠의 발소리가 귀에 닿았다.


“완전히 어린애군.”

후-, 하고 내쉬는 숨소리 후에 부유감이 몸을 감쌌다. 

타박타박, 다다미 바닥을 밟고 이불로 가는 카라마츠의 발소리와 그에 맞춰 흔들리는 몸이 꼭 아기들이 자는 요람같다. 

몸이 작아지기 전과 같은, 변하지 않은 강인한 카라마츠의 팔 안에서 그대로 의식을 놓고 잠의 세계로 넘어갔다.






5.


후암~, 하고 크게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켰다. 

온천에 들어갔다가 배부르게 먹고 푹신한 이불에서 잔 덕분에 기분은 최고! 

대충 꼬리털을 다듬고 고개를 돌리자,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는 카라마츠가 있었다. 

여우골에서는 일도 많고, 마을을 지키는 텐구의 수장 답게 부지런히 일어나 마을을 순찰하던 카라마츠가 나보다 더 깊이 잠에 빠져든 모습을 보는 것은 오랜만이다. 

씨익- 웃으며 장난스럽게 카라마츠 코끝에 꼬리를 살랑여보아도 코를 찡그릴 뿐 일어나지 않았다. 

바보 같은 얼굴에 훗, 하고 웃고 몸을 일으켰다.

끄으으~~, 하고 소리를 내며 다시 기지개를 켜고 준비된 유카타로 갈아입었다. 

어린아이 사이즈인 것이 슬쩍 신경을 긁었지만, 지금 몸집으로는 어쩔 수 없으니까. 

서툰 손놀림으로 오비를 묶고 실내화에 발을 끼우고 방을 나왔다. 

처음 이 여관에 왔을 때 시야 구석에 스쳤던 정원을 보고 싶었다. 

복도 저편에 보이는 정원을 향해 이리저리 꺾이고 얽힌 복도를 걷고 걸어도 정원은 나오지 않았다. 

지배인이 방을 안내할 때 걸어왔던 길이지만 카라마츠에게 안겨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느라 길을 외워두지 않았더니…. 

한쪽 눈썹을 기울이고 툇마루에 앉아 푹- 한숨을 쉬며 턱을 괴었다. 


이제 어쩐다…? 


아무 생각 없이 걸어다니다보니 방으로 돌아가는 길도 모르겠다. 

지나가는 직원이 있다면 물어보겠지만, 내가 멈춘 곳은 직원도 잘 지나다니지 않는 복도 같았다. 

발치에서 흔들리는 녹색 풀을 괜히 발가락을 툭툭 건드리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혼자야?”

“우왓!?”

바로 코앞에 있는 얼굴에 놀라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앉은 채로 펄쩍 뛰었다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은 나를 보며 꺄르르- 웃은 아이 하나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으, 응….”

얼떨결에 대답하며 손을 잡자 힘을 주어 나를 일으킨 아이가 배시시- 웃었다.


“나는 토도마츠! 너는?”

등 뒤로 갈색 줄무늬 꼬리를 붕붕 흔들고, 머리 위에 솟은 둥근 귀를 쫑긋거리고, 그 사이에 나뭇잎을 올려놓은 아이는 자기 이름을 밝히며 내게 물었다. 

우리 토도마츠와 똑같은 이름에 조금 놀라며 “오, 오소마츠….” 하고 대답했다.


“헤에~. 우리 엄마랑 이름이 똑같아!”

“엣. 그, 그래?”

“응!”

제 또래의 아이를 만난 것이 반가운지 활짝 웃은 아이가 맞잡은 내 손을 놓지 않고 잘게 흔들었다.


“있지-, 오늘 나랑 같이 놀래?”

“어….”

“요즘 친구들 가족기리 놀러가고, 엄마랑 아빠도 바빠서 나랑 안 놀아줘….”

추욱-, 소리가 날 정도로 귀와 꼬리를 늘어뜨린 아이에게 단호하게 고개를 저을 수는 없는 노릇. 

카라마츠는 아직 자고 있을 거고…. 

조금은 같이 놀아줘도 괜찮겠지.


“좋아! 같이 놀자!”

알맹이는 늙은이지만, 오늘 하루정도는 동심을 되찾아서 아이와 놀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내 대답에 아이, 아니 토도마츠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손을 잡아 끌었다.



토도마츠가 나를 데리고 향한 곳은 직원 휴게실. 

바쁘게 휴게실을 뛰쳐 나가는 직원을 지나서 휴게실에 들어간 토도마츠가 능숙하게 사물함 하나를 열었다.


“여기에 재미있는 책이 있어!”

“재미있는 책?”

토도마츠의 말에 가까이 다가가보니 우리 톳티-가 가끔 보던 인간 세상의 책이 있었다. 

화려한 색깔과 얇고 짧은 옷을 입은 인간들이 잔뜩 들어가있는…. 

아! 잡지! 

응, 잡지라고 하는 책이었다. 

보물처럼 살살 잡지를 들어서 옆에 있는 책상에 올려놓은 토도마츠가 턱을 괴고 진지한 얼굴로 잡지를 보기 시작했다. 

뻘쭘히 옆에 서 있자, 토도마츠가 다급하게 손을 휘저으며 나를 옆에 앉혔다.


“이거 봐! 엄청 멋있지!!”

“어…? 으, 응….”

인간들의 감각을 나는 잘 모르겠다. 

속옷 마냥 짧은 바지의 어디가 멋있다는 건지…. 

처음 듣는 단어들에 절로 갸우뚱 기우는 고개를 의식해 똑바로 세우고 이건 어떻다, 저건 어떻다,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토도마츠의 말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톳티-도 가끔 마을에 내려가 인간들의 옷을 사오던데, 이 녀석도 그쪽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아무리 한 장 한 장 시간을 들여 보아도 잡지라는 것은 굉장히 얇았다.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마지막 쪽을 보고 잡지를 덮은 토도마츠가 “나도 옷 가지고 싶다~. 이런 기모노 말구-.” 하고 작게 불평하며 다시 나를 이끌었다.



다음으로 토도마츠가 나를 끌고 들어간 곳은 직원들이 바쁘게 들어갔다 나가는 주방. 

주방 입구에 슬쩍 몸을 숨기고 얼굴만 빼서 안을 살핀 토도마츠가 헤헤 웃으며 주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한창 요리 중인 주방장의 발치를 슬금슬금 기어 지나가 음식이 잔뜩 올려져 있는 식탁에 도착했다. 

객실에 들어갈 음식들이 점원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향긋한 냄새에 꼬르륵- 배가 울렸다. 

그러고보니 아침도 아직 먹지 않았다….


“이거 맛있겠지!”

후식으로 보이는 화과자를 들어 자랑스럽게 내보인 토도마츠가 망설임없이 “아—암~!” 하고 화과자를 입에 쏙 넣었다. 


“…그거, 손님한테 나가는 거 아니야? 그렇게 몰래 먹으면 혼날,”

“앗! 이녀석, 토도마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에서 들려오는 엄한 목소리에 어깨를 움츠렸다. 

토도마츠도 놀라 목으로 넘어가던 화과자가 걸렸는지 켈룩켈룩 기침하며 가슴께를 두드렸다.


“에헤헤~.”

꿀꺽, 목에 걸린 것을 억지로 삼킨 토도마츠가 저를 내려다보는 주방장을 향해 앙큼하게 웃었다. 

허리에 손을 얹고 “나 참—.” 하고 한숨을 내쉰 주방장이 곧 두 명 분의 식사를 가져왔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찰진 흰 밥, 그리고 적당히 타서 노릇노릇 구워진 고등어, 윤기가 흐르는 나물무침. 

꼬르륵 꼬르륵-, 빨리 밥을 달라고 아우성인 배를 억누르려 붙잡자 주방장이 빙긋- 웃으며 “어서 먹으렴.” 하고 식기를 내주었다.


“또 노느라 밥 안 먹었지? 손님 것 훔쳐 먹지 말고.”

“응! 고마워~. 아빠!”

통통한 볼 가득 밥을 넣고 먹는 토도마츠에게 가벼운 핀잔을 준 주방장에게 토도마츠가 빵긋 웃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아빠’라는 단어에는 조금 놀랐지만, 이내 이해했다. 

토도마츠와 주방장의 얼굴이 묘하게 닮았다. 

주방장은 카라마츠처럼 눈썹이 진했지만 기본 바탕은 토도마츠와 똑같아 보였다. 

맛나보이는 밥에 잘 먹겠다고 인사를 하고 젓가락을 들어 짭짤한 고등어를 입에 넣었다.



맛있는 밥으로 배를 채우고 주방을 나와 토도마츠와 함께 잡담을 떨며 여관 안을 돌아다녔다. 

휴게실에서 무슨 대회 결승전이라도 되는양 필사적으로 탁구를 하고 있는 손님들을 구경하거나, 아이의 몸에는 맞지 않는 안마 의자에 앉아보기도 하고, 기-다란 복도를 힘껏 달려 달리기 승부를 했다. 

오랜만에 이렇게 어린 아이와 동심으로 돌아가 놀아 정말로 즐거웠다. 

여우골엔 신이 있지만, 신은 얌전한 아이라서 활동적인 놀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콧노래를 부르는 토도마츠에 맞춰 대충 지어낸 가사로 노래를 부르는 사이 여관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비어있는 객실에 들어가 딩굴거리고 나오자 토도마츠가 뭔가 생각났는지, 내 손을 잡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향한 곳은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복도 끝. 

밖이 훤히 보이는 복도 옆에는 난간이 있고, 햇빛에 말리려 난간에 걸어놓은 이불이 잔뜩 있었다. 

저렇게 햇빛에 말리면 뽀송뽀송하고 햇살 냄새가 나서 기분 좋~게 잘 수 있단 말이지—. 

어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들어 버렸지만, 굉장히 포근한 이불 속에서 달게 잘 수 있었다. 

바람에 살랑이는 이불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혼자 납득하고 있는데 토도마츠가 과감히 이불을 난간에서 빼내 바닥에 홱 던졌다.


“토, 토도마츠? 뭐해…?”

이불 세 개 정도를 바닥에 쌓아 올리는 토도마츠에게 묻자, 토도마츠가 해맑게 웃으면서 “이렇게 해놓고 낮잠자면 엄청 기분 좋아!” 하고 대답했다. 

그야 물론 기분 좋겠지만 말이야…. 

힘들게 난간에 널어놓은 걸 그렇게 바닥에 팽개치면 말이지…. 

아무렇지도 않게 이불 위로 올락나 토도마츠가 벙쪄있는 나를 끌어당겼다.


“여기! 오소마츠도 같이 자자!”

팡팡, 이불을 두드리며 방긋 웃는 토도마츠의 천진난만한 얼굴에 나도 모르게 하핫, 하고 잘게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아아——, 이건 할 수 없네. 

나중에 같이 혼나주지, 뭐-. 

혼자 끄덕이며 토도마츠를 따라 푹신~한 이불에 누웠다. 

아, 이건 확실히 기분 좋게 낮잠을 잘 수 있겠다. 

이불을 세겹이나 겹쳐서 엄청 뽀송뽀송하고, 따뜻한 햇살이 위에서 내려오고, 게다가 햇살 냄새도 난다. 

딱 좋게 부른 배에 따끈-한 햇볕. 토도마츠의 옆에서 그대로 푹- 잠들어 버렸다.



“오소마츠, 빨리빨리!”

급히 나를 흔들어 깨우는 토도마츠의 목소리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자 토도마츠가 내 손을 잡고 냅다 뛰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우리 뒤로 직원의 불쌍한 비명이 들려왔다. 

들키기 전에 도망치는 건가…. 

제법 하는 걸? 

2단씩 계단을 뛰어 내려가서 아무도 뒤따라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발을 멈춘 토도마츠와 눈이 마주치자 너나 할 것 없이 같이 키득키득 웃었다.

큭큭, 웃음을 참지 못하고 어깨를 떨며 복도를 걷다보니 내 처음 목적지였던 정원이 보였다.


“아, 정원.”

“어? 오소마츠, 정원 보고 싶어?”

“응.”

“노인네 같아—.”

“아하하….”

노인네 같다기보단 노인네지만 말이야…. 

어색하게 웃으며 토도마츠가 가져온 게다(일본식 나막신)에 발을 끼웠다. 

따각따각 소리를 내며 다가간 정원은 예상대로 굉장히 멋있었다. 

빨갛게 물든 큰 단풍 나무가 바람에 나부끼고, 그 주변에 가냘프게 피어난 색색의 꽃이 조화로웠다. 

이런 정원이라면 하루종일 바라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신사에도 이런 멋진 정원을 만들어볼까? 

근데 그러면 관리가 귀찮단 말이지~. 

예-전에 카라마츠가 작은 텃밭은 만든 적은 있었지만 말이야. 

500년은 묵은 것처럼 보이는 단풍 나무를 빙- 돌아 보고 정원을 한 바퀴 돌고나자, 어느새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아…. 이제 돌아가야지.”

“어? 벌써? 그, 그럼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어!!”

“보여주고 싶은 곳?”

“응!! 빨리 갔다 오자!”

슬슬 방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혼잣말한 것을 들은 토도마츠가 초조한 얼굴로 여관 뒤에 있는 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방에 돌아가는 것은 조금 늦어져도 괜찮겠지. 

더 놀고 싶어하는 토도마츠를 따라 여관 뒤에 있는 산길을 올랐다. 

해가 저무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헤매지 않고 올라간 토도마츠가 내게 손짓했다.


“여기야! 내 비밀기지!”

해죽이 웃는 토도마츠 뒤에 펼쳐진 것은 빨강. 

붉은 단풍으로 가득찬 산이 한눈에 보이고, 노을 진 하늘까지 절경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때맞춰 흘러온 바람에 쏴아아- 하고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빨간 단풍잎이 흩날렸다. 

나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고 단풍이 우아하게 노을을 배경으로 춤추듯 내려앉는 것을 가만히 응시했다.


“…….”

“멋지지?”

가슴을 내밀고 뽐내며 말하는 토도마츠에게 멍청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광경…. 

천계에서도 본 적 없다. 

인간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었다니…. 

가만히 풍경을 만끽하는 내 옆에 조용히 엉덩이를 내린 토도마츠와 노을이 끝날 때까지 그 장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토도마츠와 손을 잡고 산길을 내려와 여관에 도착하자, 지배인이 우리를 발견하고 종종 걸음으로 달려왔다.


“토도마츠! 여태 어디 가 있었어! 찾았잖아!! 손님분까지 끌고 가서는….”

지배인의 꾸중에 토도마츠가 볼을 잔뜩 부풀리고 “그치만…, 엄마 요즘 바빠서 안 놀아주니까….” 하고 손가락을 쪼물거렸다. 

푹- 한숨을 내쉰 지배인이 내게로 시선을 옮겨 짐짓 엄한 얼굴로 말했다.


“어린 신부님도, 말도 하지 않고 나가니까 찾으시잖아요.”

“아! 카라마츠!!”

지배인의 말에 카라마츠가 퍼뜩 생각나 토도마츠에게 손을 흔들고 서둘러 방으로 향했다. 

호기롭게 복도를 달려간 것은 좋았지만, 여전히 어떻게 방에 가야하는지 몰라서 중간에 직원에게 물어봐야 했지만….



“오, 오소마츠으으으으!! 대체 어디 갔던 건가아아아!!”

방에 들어가자 울상이 된 카라마츠가 내게 달려와 나를 있는 힘껏 껴안았다. 

안그래도 힘이 센 녀석이 작은 몸을 힘껏 껴안으니 더 괴로워 발버둥치며 카라마츠 등을 주먹으로 때렸다. 

있는 힘껏 때리는 데도 살집이 붙은 어린아이 손으로는 큰 타격이 들어가지 않았다.


“카라마츠으~!! 좀 놔아!”

“어딜 갔는지 전부 털어놓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을 거다.”

“그냥 여관 안 돌아다니다가 토도마츠 만나서 논 거 뿐이라구~!”

“…토도마츠?”

‘토도마츠’라는 익숙한 이름이 나오자 카라마츠의 팔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몸을 뺐다. 

휴—, 하고 잔뜩 구겨졌던 몸을 피고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카라마츠에게 설명했다. 

지배인과 주방장의 아이 이름이 토도마츠이며 그 아이와 하루종일 함께 다녔다고. 

몇 번이고 설명해서 겨우 이해해준 카라마츠가 푹- 한숨을 내쉬더니 풀이 죽어 날개를 추욱 늘어뜨렸다.


“깨워줬으면 좋았을 텐데….”

입을 은근하게 내민 카라마츠의 모습에 머리를 긁적였다. 

삐졌네, 이거—.


“카-라마츄~. 내가 미안해~. 잘 자고 있으니까 깨우기 미안해서…. 내일은 하루종일 같이 붙어있자!”

작은 몸을 이용해 옆구리와 팔 사이에 생긴 틈으로 쏙 얼굴을 집어 넣어 배시시 웃어주었다. 

짧은 꼬리도 정성스럽게 흔들며 바라보자, 슬쩍 눈빛을 스친 카라마츠가 큰숨을 내쉬고 나를 제 무릎 위에 앉혔다.


“약속이다.”

“응!”

카라마츠의 말에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카라마츠가 내민 커다란 손가락에 새끼 손가락을 걸었다. 

이후에 들어온 저녁을 함께 맛있게 먹고, 온천에 들어갔다가 카라마츠 이불에서 같이 꼬옥- 껴안고 잤다.






6.


짹짹, 창가에서 우는 새소리에 눈을 뜨자, 하얀 햇살이 이불에 누워있었다. 

음냐-, 하고 입을 다시며 눈을 깜빡이면서 빛에 익숙해지자 나를 감싸안고 있는 카라마츠의 팔이 보였다. 

어디 도망이라도 갈까 단단히 껴안고 자고 있는 바보같은 얼굴에 훗, 하고 웃고 카라마츠의 코를 꼬집었다.


“…응, 으으~~.”

짙은 눈썹을 팍 찌푸리고 신음한 카라마츠가 고개를 비틀었다. 

내 손에서 벗어난 카라마츠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바다보다 푸르고 깊은 눈동자에 빛이 서렸다.


“좋은 아침—, 카라마츄~.”

“아-. 좋은 아침이다. 오소마츠….”

“후헷, 잠깐! 간지러어~.”

아직 잠에 취해 갈라진 목소리로 짐승 귓가에 코를 비비는 카라마츠의 팔 안에서 몸을 꼬았다. 

도망치려고 해도 도망칠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카라마츠의 머리를 안고 쓰다듬었다. 

그렇게 둘이 한참을 이불에서 머뭇거리다가 아침 식사를 가져왔다는 직원의 목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든든하게 아침식사를 끝내고 카라마츠와 함께 방에 딸린 노천탕에 들어갔다. 

첫날 들어간 건 커다란 공용 온천이었지만, 오늘은 느긋-하게 단둘만 들어갈 수 있는 노천탕. 

공용탕만큼 깊지도 않아서 카라마츠 다리 위에 앉을 필요가 없었다.


“후아아~.”

뜨끈한 온천에 몸을 담구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기분 좋게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데 옆에서 향기로운 술 냄새가 풍겼다.


“술!?”

“우왓!”

노천탕 가에 술병과 술잔을 내려놓은 카라마츠가 ‘귀신같이도 안다’는 얼굴로 술잔을 기울였다. 

달콤한 냄새가 나는게 이 지방의 유명한 과일주 같았다. 

눈을 빛내며 벌떡 일어나자 카라마츠가 술병을 내게서 멀리 떨어뜨려놓았다. 


“왜!?”

“그 몸으로 술은 금지다.”

“에엑~~?! 몸만 어려진 거잖아!”

“어쨌든 안된다.”

“우——. 치사해! 짠돌이! 혼자만 마시고-!”

“…나중에 하나 사놓겠다. 돌아가서 마셔라.”

“나는 지금 마시고 싶다구!”

화를 내며 손을 뻗었지만 카라마츠 손에 들린 술잔에는 닿지 않았다. 

아——, 정말 이 작은 몸 불편하네!! 

카라마츠에게 등을 홱 돌려 온천물에 턱까지 담그고 부부부부부- 방울을 불었다. 

치사해-.

나도 마시고 싶다구~. 

이 몸이 되고 나서 불편한 게 생각보다 더 많아! 머리 위로 올라오는 짜증에 꼬리로 수면을 팡팡 때렸다. 

카라마츠한테 물 다 튀게. 눈썹을 찌푸리고 온천수 반 술 반이 된 술잔을 입에 털어넣은 카라마츠가 내 옆으로 엉덩이를 옮겼다.


“심통 부리지 말고…. 오늘 하루종일 같이 있어주겠다고 약속했잖나.”

“그건 지킬 거지만….”

퉁한 얼굴로 보니 뭐가 좋은지 은근한 미소를 피운 카라마츠가 나를 들어올려 자기 무릎에 앉혔다. 

이 자세, 단골이 되고 있는데…. 

마주보고 앉아 내 머리나 귀를 어루만지는 카라마츠의 손길은 지극히 다정해서 삐진게 사르르 녹아내렸다. 

내가 봐줘야지-, 할 수 없잖아? 

머리에서 얼굴로 내려온 손에 볼을 비비고 카라마츠를 나긋하게 쳐다보았다. 

훗, 하고 눈까지 가늘게 만들고 기쁘게 웃은 카라마츠가 내 요청에 응해 천천히 입술을 내렸다. 

몸집 차이가 커져서 전보다 더 고개를 위로 들어야했지만, 온천에 맞춰 따뜻해진 입술은 여전했다.



온천을 만끽하고 점심 식사를 하고 카라마츠와 함께 방을 나와 정원을 구경하고 여관 아래에 있는 산책로를 걸었다. 

손을 맞잡고 좁을 길을 나란히 걸었다. 느긋하게-. 일도 없고, 돌봐야 할 인간이나 마을도 없이. 

단 둘이서. 

처음엔 마을을 놔두고 둘이 휴양 오는게 불안했지만, 이렇게 둘이서 무엇도 신경쓰지 않고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7.


둘이 함께 했던 2박 3일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어느새 지배인과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여관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지배인과 주방장 사이에 서 있는 토도마츠에게 손을 흔들고 여관을 나와 우리 톳티-가 보내준 화차에 올랐다. 

하늘로 붕- 떠올라 여우골을 향해 날아가는 화차 안에서 멍청히 멀어지는 여관을 응시했다.


“즐거웠나? 오소마츠.”

“응-. 생각보다 더 좋았어.”

“그거 다행이군.”

상냥한 미소를 보여주는 카라마츠를 보다 문득 여관장과 주방장 사이의 아이, 토도마츠가 떠올랐다.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씨익- 입꼬리를 올리고 카라마츠에게 다가가 그 무릎에 앉았다.


“카라마츠.”

“응?”

무릎에 앉은 내 머리를 쓰다듬는 카라마츠에게 장난스러운 미소를 활짝 피우고 물었다.


“우리도 애기 가질까?”


내 물음에 카라마츠의 반응은 대충 상상이 가지?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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