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편입니다!! 이걸로 여우골이야기도 완결이네요..ㅎㅎ


* 완결편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9.


토토코가 급하게 보내온 쪽지에 모든 일을 멈추고 서둘러 신하를 불렀다. 

가장 발이 빠른 자를 시켜 오소마츠를 천상으로 불러들였다. 

반 시진(1시간)도 지나지 않아 오소마츠는 천상으로 올라왔다. 

묵묵히 내 앞에 앉은 오소마츠를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으냐?”

“응, 괜찮아. 할아범. 걱정할 필요 없어.”

“걱정을 안할 수 있겠느냐!! 토고가 돌아왔다는데!!”

“..하하하..”

마른 웃음을 흘리며 꼬리와 귀를 축 늘어뜨린 오소마츠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토고가 나타났다는 토토코의 쪽지에 급히 오소마츠를 불러 토고와 멀리 떨어뜨려 놓은 것은 좋으나 이 이후가 문제였다. 

어릴 적부터 오소마츠를 은근히 미워했던 토고 녀석은 분명 오소마츠를 향한 흉계를 꾸미고 있을 것이다. 

눈썹을 찌푸리고 이 일을 어찌해야하나 궁리하고 있으니, 오소마츠가 처연히 입을 열었다.


“너무, 토고 씨를 미워하지 마. 할아범. 토고 씨도 처음엔 나를 예뻐해줬다고?”

“그 예뻐한다는 놈이 멋대로 인간 마을에 끌고 가 장난을 치고, 들키자 쫓아오는 인간들에게 너를 미끼로 버리고 도망친 것이냐?”

“아~, 그러고보니 그런 일도 있었네…”

피식- 웃으며 고개를 좌로 기울인 오소마츠가 눈을 깔고 다다미 바닥을 응시했다.


“당장 내쳐라. 그딴 놈은.”

“그럴 수는 없어-“

의형이니 뭐니 감쌀 필요 없다. 그딴 녀석. 내 말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싱긋 미소지은 녀석의 얼굴이 너무나 슬퍼보여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왜 못 내치겠느냐? 형이라해도 피도 섞이지 않은 남이다.”

“응… 그래도… 켄고님의 아들이니까.”

부드럽게 묻자 오소마츠가 바닥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켄고님이,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계속 찾았었어. 토고 씨를. 보고 싶다고.. 마지막까지 토고 씨를 찾다가 돌아가셨어. 마지막에 나한테 토고 씨를 부탁한다고, 잘 이끌어달라고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나는 여태 토고 씨를 외면하고 있었어. 내가 제대로 이끌었다면 토고 씨도, 멋진 천호가 될 수 있었을텐데…”

“…”

“토고 씨가 나를 미워하는 것도 어쩔 수 없어. 아버지는 이따금 나와 토고 씨를 비교하시면서 나를 칭찬하고 토고 씨를 혼내셨어. 나는 토고 씨 덕분에 여우로서 새로운 삶을 부여받을 수 있었는데… 나 때문에 토고 씨는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제대로 사랑도 받지 못했어. 그러니까, 나만이라도 토고 씨에게 잘 대해주지 않으면… 그러니까, 내쫓을 수 없어.. 할아범…”

“..네게 무슨 죄가 있다는 것이냐…”

토고는 어릴 적부터 그 심성이 고약해 나도 손을 뗀 녀석이다. 

오소마츠가 없어도 토고는 끝까지 켄고놈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무엇하나 오소마츠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오소마츠는 켄고의 마지막 말에 매달려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애처롭게 몸을 떨며 눈물을 참아내는 오소마츠를 꽉 안아주었다. 

등을 토닥이며 시원하게 울어버리라 말해도 오소마츠는 끝까지 눈물을 참아내고 속 시원히 쏟아내지 않았다. 

아련한 그 모습이 더 마음에 걸려 곧 지상에 내려가겠다는 녀석을 여러 핑계를 대며 천상에 묶어두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이 있으니 오소마츠를 소개해주겠다고 녀석을 연회에 끌고 갔다. 

연회가 끝나고 늦은 시간이니 자고 가라고 돌아가려는 오소마츠를 말렸다. 


다음 날,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돌아가려는 오소마츠를 다시 잡아 세워 일을 돕고 가라고 했다. 

그 동안 미뤄두었던 체계 정비를 오소마츠에게 맡겼다. 

이걸로 또 꼬박 하루는 잡아둘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건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오소마츠는 능숙하게 서류를 정리하고 처리해 반나절만에 모든 일을 끝냈다.


“그럼, 갈게. 할아범.”

그렇게 간단히 인사를 마친 오소마츠 녀석은 다시 지상으로 내려갔다.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아직 쌓여있는 일만 아니면 나도 함께 내려가고 싶었다. 

오소마츠가 내려간 뒤, 조급히 일을 처리하며 지상을 볼 수 있는 거울을 항상 곁에 두고 토고의 모습을 살폈다. 

녀석이 뭔가 일을 벌인다면 바로 날아가 주먹을 날려줄 심산이었다. 

아니나다를까, 토고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인간을 홀리고, 역병신을 이용해 오소마츠를 공격했다. 

이 이상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급한 일로 천상에 올라와 있는 토토코를 불러 지상에 보내고, 내 모은 힘을 사용해 선인계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내가 갈 때까지만 참아라, 오소마츠!! 그리고 서둘러라, 토토코!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그 녀석 밖에 없으니!!!







10.


토토코는 바람을 가르며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갔다. 

오소마츠가 있는 신사에 눈길을 줄 여유도 없이 토토코는 그대로 청산으로 향했다. 

외부인인 토토코를 막아서는 젊은 텐구들을 바람을 일으켜 저 멀리로 날려버린 토토코가 집안을 누비며 카라마츠를 찾았다. 


“토토코님?!”

토토코를 보며 토도마츠가 놀라 외쳤다. 

급히 토도마츠의 멱살을 붙잡은 토토코가 토도마츠를 잘잘 흔들며 카라마츠의 위치를 물었다. 

빙빙 도는 눈을 하고 토도마츠가 카라마츠의 방을 가르켰다. 

토도마츠를 내팽겨치듯 던지고 카라마츠의 방문을 벌컥 연 토토코가 카라마츠의 멱살을 잡았다.


“내가! 토고를! 잘! 보라고!! 말! 했지이이이~!!!!”

있는 힘껏 카라마츠의 멱살을 잡아 흔들며 토토코가 분통을 터뜨렸다. 

토토코에게 잡혀 흔들이며 카라마츠가 인상을 찌푸리고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물었다. 

카라마츠의 멱살을 팟! 놓은 토토코가 큰 소리로 외쳤다.


“오소마츠 군이 위험하다고!!!”

토토코의 외침에 눈깜짝할 사이에 카라마츠는 커다란 소리를 내며 방을 뛰쳐 나갔다. 

검은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오르는 카라마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토토코가 작게 “정말, 고생시킨다니깐.” 하고 중얼거렸다. 

이대로 신사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가려던 카라마츠가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에 공중에 멈춰섰다. 

토고가 보낸 케우케겐이 카라마츠의 앞을 막고 먹이를 눈 앞에 둔 맹견마냥 으르렁거렸다.


‘주체할 시간이 없다!!’

앞을 막아선 케우케겐을 노려보며 카라마츠가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놈을 상대하느라 낭비할 시간은 없다. 빨리 오소마츠에게 달려가지 않으면 안된다. 

어떻게든 케우케겐을 지나치려는 카라마츠를 케우케겐이 철저하게 막고 기본좋게 그르렁거렸다. 

온 몸의 피가 들끓는 것 같은 분노에 카라마츠가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오소마츠를 지키려는 자신을 막아서는 것은 그 무엇이 되었더라도 배제한다. 

카라마츠가 케우케겐을 향해 돌진한 순간, 커다란 불덩어리가 케우케겐의 머리를 강타했다. 

폭발음과 함께 케우케겐의 커다란 몸이 휘청거렸다. 

놀라 뒤를 돌아보니 토토코가 여러 개의 여우불을 띄우고 케우케겐을 노리고 있었다.


“빨리 가!!”

한 번 더 여우불을 쏴 케우케겐의 시야를 가진 토토코가 외쳤다. 

고개를 끄덕인 카라마츠가 망설이지 않고 전속력으로 신사를 향해 날아갔다. 

꺼지지 않는 여우불이 서서히 케우케겐의 몸을 둘러싸자 살이 타는 고통에 케우케겐이 몸부림쳤다.


“오소마츠 군을 해치려고 한 녀석은 내가 용서 못해.”

항상 천진난만하게 웃던 얼굴이 아닌 비장하게 굳은 얼굴로 읊조린 토토코가 다량의 여우불을 케우케겐에게 쏘아대며 발광하는 케우케겐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오소마츠!!!!”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오소마츠의 눈물이 멈췄다. 

그렁그렁 눈물 맺힌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본 오소마츠가 신사를 향해 날아오는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신사에 내려앉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와 눈을 마주했다. 

눈물로 젖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오소마츠와 그 뒤에 서서 오소마츠를 보며 비열한 미소를 지은 토고를 본 순간, 카라마츠의 모든 이성은 날아갔다. 

오소마츠가 목소리를 짜내듯 자신을 불렀다. 

그 부름에 카라마츠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불 같은 분노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자신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카라마츠를 보며 토고가 혀를 찼다. 


케우케겐을 이기고 돌아온 것인가. 설마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은 몰랐다. 

자신의 계획이 틀어진 것에 짜증을 느끼며 토고가 눈깜짝할 사이에 여우불을 소환해 카라마츠에게 쏘았다.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여우불을 정면에서 맞은 카라마츠가 비틀거렸다. 

신사 아래로 날려버릴 생각으로 날린 공격에 카라마츠가 버티자 토고가 놀라며 다시 여우불을 소환했다. 

토고가 남은 여우불을 날리기도 전에 카라마츠는 전열을 가듬어 토고에게 돌진했다. 

자신이 공격을 받던 말던 방어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오로지 맹렬하게 토고를 공격하는 카라마츠와 유유히 카라마츠의 공격을 흘리며 여우불을 날리는 토고. 

신사 마당에서 시작된 싸움은 그 자리를 공중으로 옮겨 치열하게 이어졌다.



멍하니 카라마츠와 토고의 공방을 지켜보던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려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를 향했다. 

아직도 토고의 저주는 사라지지 않아 쵸로마츠와 이치마츠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다급히 카라마츠를 불렀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초조하게 발을 구르며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를 울부짖던 오소마츠의 앞에 토토코가 나타났다. 

재도 남지 않게 케우케겐을 불태운 뒤, 신사로 날아온 토토코가 오소마츠의 절규에 내려와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를 가두고 있던 결계를 간단히 깨부수었다. 

결계에서 해방된 쵸로마츠와 이치마츠에게 울며 다가간 오소마츠가 자신의 온 힘을 쏟아 토고의 저주를 없앴다. 

목을 조르고 있던 검은 손에서 해방된 쵸로마츠와 이치마츠가 켁켁 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온 몸을 떨면서도 호흡하는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를 오소마츠가 껴안았다. 

둘을 품에 안고 몇 번이고 “다행이다, 다행이다아…” 하고 속삭이며 눈물 흘리는 오소마츠를 토토코가 가만히 지켜보았다. 

죽지 않았다.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흐느끼는 오소마츠를 마주 안아준 쵸로마츠와 이치마츠가 빙긋 웃었다. 

“오소마츠 형…” 하고 부르는 목소리는 심하게 갈라져 있었지만, 다시 살아서 오소마츠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감사했다. 


서로 부등켜 안고 울고 있는 셋을 뒤로하고 하늘로 시선을 돌린 토토코가 작게 신음했다. 

구미호와 텐구의 싸움에 하늘은 짙은 먹구름이 뒤덮었다. 

그저그런 요괴들의 싸움이라면 괜찮지만, 천년을 넘게 살아온 구미호와 대텐구에 견주어도 손색없을 텐구의 수장이 싸우고 있는 것이다. 

먹구름은 점점 더 검게 변하며 땅이 울릴 정도로 낮은 울음을 반복했다. 


번쩍이는 하늘에서 수십 번, 카라마츠와 토고가 격돌했다. 

토고가 여우불을 쏘면 카라마츠가 바람을 조종해 그 궤도를 바꿨다. 

토고도 카라마츠의 공격을 유연히 넘기며 상처를 입지 않았다. 

아무리 카라마츠가 강하다고 하여도 천 년을 넘는 시간을 살아온 토고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상처를 입는 것은 카라마츠였다. 

이미 제법 축적된 상처에 카라마츠가 거친 숨을 내쉬며 토고와 거리를 두었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토고가 입꼬리를 올리고 카라마츠가 쉴 틈을 주지 않고 연달아 공격했다.

싸우면서 상처입고 기력이 떨어진 카라마츠는 점점 날아오는 여우불을 피하기 힘들어졌다. 

연달아 날아오는 여우불을 하나씩 피하던 카라마츠가 결국 마지막 여우불을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날개에 맞은 여우불은 날개의 반을 태웠다. 검붉은 피와 살이 탄 내가 코를 찔렀다. 

날개가 날아가고도 카라마츠는 끈질기게 공중에 남았다. 

한쪽 날개를 완전히 못쓰게 된 카라마츠를 보며 토고가 솔직히 감탄했다. 

“이야~ 제법인데? 너.” 하고 웃으며 토고가 마지막 공격을 준비했다. 

작은 여우불 여댓개가 하나로 합쳐져 커다란 여우불을 이루었다. 

지름이 1척(30cm)이 훌쩍 넘는 크기에 카라마츠가 등줄기를 따라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마른침을 삼켰다. 

저것을 막거나 피하지 못한다면 자신은 그대로 땅에 추락할 것이 물보듯 뻔했다. 



“오소마츠, 카라마츠가!!”

토토코의 외침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하늘 위에 떠 있던 카라마츠의 날개 한 쪽이 비정상적으로 접혀있었다. 

뚝뚝 땅으로 떨어지는 검은 피는 분명 카라마츠에게서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

사색이 된 얼굴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입술을 깨물고 주먹 쥔 손을 덜덜 떨고 있는 오소마츠에게 토토코가 답답하단 얼굴로 외쳤다.


“빨리 도와주러 가!!”

“…읏!”

토토코의 외침에 오소마츠가 괴로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오소마츠도 카라마츠를 돕고 싶었다. 

저렇게 심한 부상을 입은 카라마츠를 지금 당장 감싸고 적을 없애고 싶었다. 

하지만, 그 적이 ‘토고’ 라면 오소마츠는 공격할 수 없었다.


인간으로서 한 번 죽은 자신을 여우로 다시 소생시켜주고, 키워주어 지금의 오소마츠가 있게 한 켄고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그리워했던 아들이다. 

자신에겐 토고를 공격할 자격 따위 없었다. 

토고가 만들어낸 커다란 여우불을 본 토토코가 다급히 오소마츠를 외쳤다. 

오소마츠도 하늘을 보며 숨을 삼켰다. 

카라마츠가 저걸 정면에서 맞는다면 살아날 수 없다. 

떨리는 숨을 내쉬며 오소마츠가 흔들리는 눈으로 토토코를 바라보았다. 


“오소마츠!!! 네 아비의 전언이다!!”

온 신사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대국주의 목소리가 퍼졌다. 

공중에서 싸움을 이어가던 토고와 카라마츠도 대국주의 목소리에 행동을 멈췄다. 

오소마츠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을 보이진 않았지만, 대국주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오소마츠도 알 수 있었다.


“‘토고만큼이나 너도 내 귀한 아들이다. 저 못난 아들을 때려서라도 네가 정신 차리게 해주렴. 그리고 혼인 축하한다. 사랑하는 아들아.’ 란다!!! 잘 들었냐!! 그러니 어서 네 짝을 도와주거라!!”

대국주의 말에 오소마츠의 안에 오소마츠를 묶어두던 사슬이 풀린 것을 느꼈다. 

탁- 하고 완전히 끊어져 사라진 사슬에 오소마츠가 진심으로 기쁘게 웃었다. 

눈물을 흘리며 헤실거리는 오소마츠를 토토코가 사정없이 내리쳤다.


“기뻐하는 건 나중에!!! 얼른 가서 도와!!”

“응!!”

토토코의 말에 오소마츠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신사 마당을 발로 차고 공중에 날아오른 오소마츠가 토고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오, 소마츠.. 너 이 자식!! 정말로 나한테 대들 생각이냐?!”

“미안, 토고 씨.”

순식간에 오소마츠 주변으로 수십 개의 여우불이 나타났다. 

소환된 여우불은 망설이지 않고 토고를 향해 쏘아졌다. 

토고도 커다란 여우불을 다시 작은 여우불로 나누어 날아오는 여우불을 피하고 맞받아쳤다. 

정신없이 빠른 속도로 오소마츠와 토고 사이에 여우불이 오갔다. 

오소마츠가 토고의 사각을 향해 쏘아올린 여우불을 토고가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오소마츠와의 공방으로 많은 힘을 소진한 토고의 숨이 드디어 거칠어졌다. 

오소마츠의 여우불을 피하느라 토고의 자세가 흐트러진 것을 오소마츠는 놓치지 않고 카라마츠를 불렀다.


“카라마츠!!”

“아, 알고 있다.”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토고가 카라마츠를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카라마츠의 행방을 찾던 토고가 제대로 방어 태세를 갖추기도 전에 카라마츠가 일으킨 회오리 바람이 토고를 감쌌다. 

오소마츠의 여우불에 집중이 흐트러진데다가 기력까지 바닥난 토고는 무참하게 회오리 바람에 휩쓸려 바닥에 곤두박질 쳤다. 


토고와의 치열한 싸움은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의 승리로 끝이 났다.







11.


신사 아래에 추락한 토고를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오소마츠에게 카라마츠가 다가갔다. 

자신의 곁에 다가온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카라마, 츠…”

“오소마츠?!”

카라마츠를 부르며 오소마츠의 몸이 기우뚱 기울었다. 

그대로 바닥에 떨어질 것 같은 몸을 카라마츠가 질겁하며 붙잡았다. 

품에 안긴 오소마츠의 몸이 불덩이 같았다. 

당황해 오소마츠를 꼭 껴안고 신사로 내려온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안색을 살폈다. 

이치마츠와 쵸로마츠도 오소마츠에게 달려왔다.


“오소마츠 형! 상처가 벌어진 거야?!”

“상처?!”

어제 케우케겐에게 입은 상처가 다시 벌어진 것을 눈치 챈 쵸로마츠가 외쳤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가 상처를 입었다는 말에 경악하며 오소마츠이 몸을 샅샅이 살폈다. 

쵸로마츠가 “어깨야!!” 하고 말해와 카라마츠가 즉시 오소마츠의 기모노의 오비*를 풀어 어깨를 드러냈다. 

두꺼운 천으로 동여맸던 어깨가 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오비 : 기모노의 허리 부분을 감싸는 띠 [출처 – 네이버 두산백과]

“언제 이런 상처를 입은 거야?!”

자신도 날개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는 카라마츠가 외쳤다. 

쵸로마츠가 비통하게 얼굴을 구기고 “어젯밤에.. 카라마츠 형을 만나러 가는 길에…” 하고 대답했다. 

쵸로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비탄하며 오소마츠를 꽉 안았다.


“미안, 미안하다.. 오소마츠…”

“카라마츠…”

멍한 얼굴로 간신히 눈을 뜬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 하며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는 오소마츠를 바라보는 카라마츠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벌어진 상처에서는 피가 멈추지 않았고, 그로 인해 치솟은 체온은 내려가지 않았다. 

얕은 숨을 쉬며 정신을 잃으려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숨을 삼켰다.


“내게 보이거라.”

다가온 걸걸한 목소리에 모두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지상에 내려온 대국주가 카라마츠의 품에 안겨 있던 오소마츠를 건네 받았다. 

대국주의 손길에 어깨의 상처는 빠르게 재생되어 곧 새살이 돋았다. 

멈추지 않던 피도 말끔히 멈추고 오소마츠도 한결 편안히 호흡하기 시작했다. 

자상한 눈빛으로 오소마츠를 내려다보는 대국주를 올려다보며 오소마츠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를 낼 기운도 없는지 오소마츠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작았다. 


“할아범.. 그 인간들은?”

“아, 내가 세뇌를 풀어 마을로 돌려보냈다. 신사도 무사하다.”

“응- 고마워…”

오소마츠가 안심한 얼굴로 숨을 내쉬었다. 

오소마츠의 말을 들은 카라마츠가 굳은 표정으로 토토코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토토코가 카라마츠에게 토고가 케우케겐을 시켜 오소마츠를 공격하고 인간들을 홀려 신사를 없애려고 했던 것,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를 인질로 잡고 오소마츠를 협박했던 것을 모두 털어놓았다. 

시종일관 굳은 얼굴로 토토코의 말을 듣고 있던 카라마츠가 신사 마당에 쓰러져있는 토고에게 다가갔다. 

일어설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은 토고의 멱살을 잡고 억지로 일으킨 카라마츠가 그대로 토코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주먹을 맞고 쓰러진 토고가 카라마츠를 노려보며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무슨 짓이야!! 이 개자식!!!”

“어떻게 감히, 오소마츠에게서 이 마을을 뺏으려 한거냐.. 오소마츠가 얼마나,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는지 알고 한 짓인가? 인간을 이용해 신사를 무너뜨리고 오소마츠를 쫓아내? 또 다시, 오소마츠가 그토록 사랑하는 인간들에게 배신 당하게 하다니.. 네가 감히!! 감히!! 인간들을 조종해 오소마츠를 우롱했겠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바친 산제물도 살려주고, 오소마츠가 아닌 나무 따위를 신목이라 숭배하던 인간들을 위해 오소마츠가 어떤 일을 했는지 모르는 주제에!!! 오소마츠가 마지막까지 악역을 자처할 정도로 인간들을 사랑했다는 것을 모르는 새끼가!!!! 이 마을은 너 같은 새끼에게 뺏기기 위해 다시 이룬게 아니다. 그러기 위해 지켜온 마을이 아니란 말이다!!!


카라마츠의 울분이 섞인 호통에 토고가 입을 다물었다. 

부들부들 떨며 토고를 죽일듯이 직시하고 있는 카라마츠의 뒤에 대국주가 섰다. 

카라마츠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두드리며 “오소마츠에게 가 보거라.” 하고 말한 대국주가 토고의 앞에 걸어가 토고를 냉정하게 내려다 보았다.


“네 놈에겐 벌이 필요하다.”

그 한 마디를 내뱉은 대국주가 토고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고통에 신음하는 토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국주는 토고를 질질 끌고 걸었다. 


“아 참, 잊을 뻔 했구나.”

토고를 끌고 그대로 천상으로 올라가려던 대국주가 걸음을 멈추고 오소마츠의 곁에 앉은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옜다. 현명하게 쓰거라.”

마치 우는 아이에게 떡을 던져주는 것처럼 대국주가 커다란 힘을 카라마츠에게 부었다. 

강대한 힘을 받은 카라마츠의 몸이 변화해, 검은 날개가 커지며 성장했다. 상처도 말끔히 낫고, 배로 커진 날개에 카라마츠가 얼떨떨한 얼굴로 날개를 움직였다. 

펄럭! 하고 날개가 움직일 때마다 주변의 공기가 날카롭게 갈라졌다. 

온 몸에 솟아나는 힘을 느끼며 카라마츠가 놀란 얼굴로 주먹을 쥐었다.


“대텐구 카라마츠. 오소마츠를 맡기마. 전심전력으로 오소마츠를 지키거라.”

대국주가 카라마츠를 보며 근엄하게 말했다. 

자신이 일반적인 텐구가 아닌 신에 필적할 정도의 힘을 가진 대텐구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카라마츠가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한 미소를 띠운 대국주가 토고를 끌고 천상으로 향했다. 

토토코도 오소마츠에게 가볍게 인사한 뒤, 대국주의 뒤를 따라 천상으로 날아갔다.

어느새 서서히 걷히기 시작한 먹구름 사이로 비친 햇빛이 신사를 밝게 비추었다. 







12.


조용한 신사 안은 거대한 싸움이 일어났다는 것도 거짓말인 것 같이 평화로웠다. 

쵸로마츠와 이치마츠의 목엔 검은 손에 잡혔던 자국이 다소 남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질 흔적이었다. 

카라마츠가 먼저 신사로 뛰쳐 나가고, 인간 마을을 가로질러 뛰어온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신사에 도착할 즈음엔 모든 상황이 끝난 뒤였다. 


방 안에서 지친 심신을 쉬고 있는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를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돌보었다. 

몸은 성해도 충격을 받은 정신은 그리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하마터면 얄짤없이 저승으로 끌려갈 뻔한 것에 놀란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킨 쵸로마츠가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한시도 쉬지 않도 방 안을 왔다갔다 오가는 카라마츠를 보며 작은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말했다.


“그렇게 걱정되면 그냥 가보지 그래?”

쵸로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걸음을 멈추고 쓰게 웃었다. 

대국주와 토토코가 돌아간 뒤, 오소마츠는 기력을 회복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제 방에 틀어박혔다. 

어쩐지 카라마츠에게 냉랭했던 오소마츠의 태도에 쵸로마츠가 의아함을 느꼈지만, 방금 전까지 목을 졸려 죽을 뻔했던 상황에서 오소마츠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쵸로마츠와 이치마츠가 방 안으로 자리를 옮기고 오소마츠가 방 안에 틀어박힌지 벌써 한 시진(2시간)이 지났다. 

다른 때 같으면 당장에 오소마츠에게 갔을 카라마츠는 쵸로마츠와 함께 방에 남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할 정도로 초조해하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쵸로마츠는 알 수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오소마츠의 방으로 가지 못하는 카라마츠에게 쵸로마츠가 다시 말했다.


“가 봐. 얼른.”

“..아.”

덤덤한 어조였지만, 쵸로마츠가 자신을 재촉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카라마츠가 크게 심호흡했다. 

천천히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서는 카라마츠의 뒷모습을 배웅하며 쵸로마츠가 이불에 털썩 누웠다.


“개똥마츠, 왜 저래?”

“글쎄-다~”

이치마츠의 중얼거림에 쵸로마츠가 한숨과 함께 한탄하며 눈을 감았다.




“오소마츠.”

오소마츠의 방문 앞에 섰지만, 카라마츠에게 문을 열 용기는 나지 않았다. 

방 안까지 닿았을 카라마츠의 목소리에도 오소마츠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한숨과 함께 후회를 내뱉으며 카라마츠가 다시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

여전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콩- 하고 얇은 장지문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은 카라마츠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기울였다. 

사락사락 하고 옷과 이불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고요한 방 안에서 문득문득 들려오는 오소마츠의 숨소리가 가슴 아프도록 사랑스러웠다.


“오소마츠, 들어가겠다.”

“안 돼. 들어오지 마.”

“오소마츠.”

“들어오지 마, 지금 네 얼굴 보고 싶지 않아.”

간절히 오소마츠를 불렀지만, 오소마츠의 차가운 목소리가 돌아올 뿐이었다. 

주먹을 굳게 쥐고 숨을 내뱉은 카라마츠가 문고리에 손을 걸었다. 

카라마츠의 그림자가 문가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에 오소마츠가 울컥 언성을 높였다. 


“들어오지 말라, 고!!!”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카라마츠가 문을 활짝 열고 방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탁! 하고 장지문이 다시 닫혔다. 방 안에는 오소마츠와 카라마츠, 둘뿐이었다. 

바람 앞에 놓여진 촛불처럼 흔들리는 눈으로 카라마츠를 본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렸다.


“오소마츠..”

“나는,“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가 다시 얼굴을 들어 카라마츠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카라마츠를 응시하는 오소마츠의 얼굴엔 항상 카라마츠를 향했던 미소는 피어나지 않았다. 

감정을 들여다 볼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오소마츠가 말을 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카라마츠 너에게 과거 이야기 한 적 없어.”

“…”

“한 번도 ‘신목’이니, ‘인간들의 배신’이니, 그런 말 한 적 없어.”

“…아.”

“..카라마츠, 너.. 전생의 기억, 돌아온 거야?

“..아아. 돌아왔다.”

카라마츠의 대답에 오소마츠가 숨을 삼켰다.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오소마츠가 다음 질문을 했다.


“왜, 나한테 말해 주지 않았어..?”

“과거의, 인간이었던 카라마츠가 아닌 지금의 나를, 텐구인 카라마츠를 사랑해주길 바랬다.”

“너는, 내 마음을 의심했던 거야..?”

떨리던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애절하게 무너져 내렸다. 

커다란 눈물이 뚝뚝 볼을 타고 흘러 떨어졌다. 

애처롭게 우는 오소마츠를 보는 카라마츠의 마음도 무너졌다. 

팔을 뻗어 떨고 있는 오소마츠의 몸을 품에 안은 카라마츠가 괴롭게 속삭였다.


“아니다!! 단 한 순간도 오소마츠의 마음을 의심한 적 없다!! 결코 그런 일은 없어! 미안, 미안하다. 오소마츠.. 부탁이다. 제발, 눈물을 그쳐줘..!!”

귓가에 울리는 카라마츠의 목소리를 들으며, 오소마츠가 기억에 남은 카라마츠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이제는 희미하게 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카라마츠의 목소리도 지금처럼 낮고 달콤했다. 


“카라마츠, 카라마츠우~ 카라마츠…”

카라마츠의 등에 팔을 두르고 얼굴을 묻은 오소마츠가 열중해서 카라마츠를 불렀다. 

과거의 카라마츠를 부르는 것인지, 지금의 카라마츠를 부르는 것인지 오소마츠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저 오소마츠를 강하게 껴안고 있는 팔을 느끼며 흐느꼈다. 

자신의 눈 앞에 카라마츠가 있다는 것에 가슴이 꾹- 하고 조여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쉴새없이 카라마츠를 부르며 우는 오소마츠의 귓가에 카라마츠가 애절하게 속삭였다.


“오소마츠, 오소마츠.. 오직 너뿐이다. 처음 만났을 때도, 인간의 생을 마칠 때도, 다시 태어나 다시 기억을 되찾고 나서도, 내겐 오직 너뿐이다. 오직 너만을 사랑한다.

오소마츠의 귓가에 나직이 고백하고,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핥았다. 

촉촉히 젖은 오소마츠의 붉은 눈이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아름답다.’

반짝이며 자신을 비추고 있는 오소마츠의 붉은 눈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보물. 자신만의 보물. 그 어떤 것보다도 가치 있고 아름다운 보물이 품 안에 들어온 것에 카라마츠는 가슴이 가득 차올랐다. 

완온히 웃으며 오소마츠를 바라본 카라마츠가 그 아름다운 눈에 입맞추었다. 

눈물로 젖은 속눈썹이 입술에 닿았다 떨어졌다. 

천천히 눈에, 코에, 뺨에 입술을 떨어뜨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입술에 제 입술을 내렸다. 

뜨거운 숨을 내쉬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입술을 받아들이고 눈을 감았다. 

아름다운 붉은 눈을 볼 수 없는 것을 아쉬워하며 가늘게 뜬 눈으로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뜨거운 입술과 간헐적으로 내뱉는 숨에 열기가 담겼다. 맞닿은 입술을 꾹- 눌렀다가 다시 떨어졌다. 


“오소마츠..”

“응.”

가까이에서 오소마츠의 눈을 보며 이름을 불렀다. 

카라마츠에게 자신의 이름이 불린 것이 기뻐 수줍은 미소를 띠우고 오소마츠가 대답했다. 

약속한듯이 입술을 여는 오소마츠에게 다가간 카라마츠가 다시 입술을 겹쳤다. 

둘의 숨이 하나가 되어 합쳐지고 뜨거운 살덩어리는 오소마츠의 입 안을 희롱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오소마츠의 송곳니를 부드럽게 쓰다듬곤, 치열을 따라 입 속으로 뻗어 들어간 혀가 오소마츠의 혀와 얽혔다. 

욕망을 쫓아 오소마츠의 혀를 빨아들인 카라마츠가 뜨거운 숨과 함께 혀를 거두었다.


“하, 아..”

떨어진 입술에 아쉬움을 감추지 않고 살며시 눈을 뜬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목에 팔을 감았다. 

제 쪽으로 카라마츠를 당기는 오소마츠의 행동에 카라마츠가 피식- 웃음을 흘리고 순순히 끌려가 오소마츠와 밀착했다. 

이미 붉게 달아오른 오소마츠의 몸을 더듬으며 오비를 풀고, 오소마츠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카라마츠가 오기 전 목욕을 했는지 오소마츠의 보드라운 살갗에서 꽃내음이 났다. 

오소마츠의 체온과 향기에 둘러쌓여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목에 입술을 내려 가볍게 빨아들였다.


“응..!”

붉은 자국을 남기고 떨어진 입술은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 목과 쇄골 곳곳에 열꽃을 남겼다. 

사락- 하고 소리를 내며 오비가 이불에 떨어졌다. 

오소마츠의 몸을 가리고 있던 기모노가 느슨해지며 어깨 아래로 떨어졌다. 

외부 공기에 노출된 상체를 움츠리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달라붙었다. 

카라마츠도 오소마츠의 허리에 팔을 감아 힘껏 끌어당겨 오소마츠를 품었다. 


고개를 들어 젖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입술에 다시 쪽- 하고 입맞춘 카라마츠가 고개를 내려 오소마츠의 어깨에 남은 상처의 흔적에 눈썹을 찌푸렸다. 

대국주가 치유해준 상처는 완전히 막혔지만, 새로 돋아난 살은 눈에 띄게 하얬다. 

다행히 흉터가 남을 흔적이 아니었기에 안도하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소마츠, 왜 토고를 내쫓지 않았나.. 왜 내게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아…”

짙은 눈썹을 찌푸리고 괴로워하며 읊조리는 카라마츠를 오소마츠가 응시했다. 

자신이 제대로 오소마츠의 곁을 지키지 않아 오소마츠가 부상을 입고 말았다. 

후회하며 입술을 깨물고 괴롭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하다못해 오소마츠가 토고를 내쫓지 않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 주었다면 자신이 그렇게 화를 내며 신사를 떠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카라마츠의 후회어린 말에 오소마츠가 쓰게 웃으며 카라마츠의 양 볼에 손을 대고 들어올렸다. 

정면으로 카라마츠의 짙은 푸른빛의 눈을 보며 오소마츠가 귀를 늘어뜨렸다.


“미안해, 카라마츠… 미안해…”

카라마츠의 이마에 입술을 내리며 오소마츠가 몇 번이고 사과했다. 

자신의 볼에 올려진 오소마츠의 손을 마주 잡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입술을 강하게 빨아들였다.


“응…! 하, 아읏!”

잡아먹을 듯이 오소마츠의 입술을 탐하는 카라마츠를 받아들이며 오소마츠가 신음했다. 

호흡마저 삼켜진 채, 오소마츠의 입 안을 누비는 카라마츠를 오소마츠가 필사적으로 쫓았다.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옷자락을 쥐고 열망하는 듯한 눈으로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오소마츠의 혀를 얶었던 카라마츠의 혀가 오소마츠의 입천장을 살며시 핥고 빠져나갔다. 

은색의 얇은 실이 입술과 입술 사이에 길게 이어지더니 곧 끊어졌다. 

멀어지는 입술에 오소마츠가 매달리듯 카라마츠를 껴안았다.


“오소마츠.”

“…”

“이유를 말해줘. 내게 숨기지 말고, 전부.”

“..싫어…”

카라마츠의 애원에도 오소마츠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간청에도 말해주지 않는 오소마츠를 애타게 바라보며 카라마츠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소마츠…”

“..으~, 싫어… 그런 거, 창피해…”

“왜, 뭐가 창피하단 건가.”

뜻밖의 말에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물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오소마츠의 눈가를 손가락으로 닦아주며 카라마츠가 재차 오소마츠를 불렀다. 

감미롭게 오소마츠를 부르는 목소리에는 애끓는 색욕이 담겨, 오소마츠의 고막을 타고 들어가 이성을 갉아먹었다. 


“으후읏!!”

오소마츠의 귓가에 속삭이며 카라마츠가 매끈한 혀로 오소마츠의 귓바퀴를 핥았다. 

눅눅하고 뜨거운 살덩어리가 귀를 훑으며 물소리를 울렸다. 

숨을 들이마시며 몸을 떤 오소마츠가 뜨거운 숨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또르륵- 볼을 타고 흐른 눈물 한 방울이 카라마츠의 손에 닿았다.


“내가, 제대로 토고 씨를 이끌지 못했으니까… 켄고님이, 아버지가 내게 토고 씨를 부탁한다고 했는데… 내가, 나 때문에 토고 씨가…”

“..오소마츠,”

“싫어, 이런 거 꼴불견이야… 창피해. 카라마츠한테는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데에...”

눈물을 훔치며 얼굴을 붉게 물들이는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의 머릿속은 온통 한 가지 생각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귀여워…’

커다란 눈물을 흘리며 몸을 떨고, 카라마츠 자신에게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다고 투정하는 오소마츠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두근- 하고 심장이 크게 울렸다. 


눈 앞에 있는 존재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싶었다. 

소유하고 싶었다. 

사랑스러운 이 보물을 오직 자신만이 간직하고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독점욕이 카라마츠의 마음을 채웠다. 

고개를 돌리고 얼굴을 감추려는 오소마츠의 머리를 감싸고 억지로 눈을 마주했다.


“으!, 시, 시ㄹ..”

얼굴에 피어난 홍조를 보이는 것도 부끄러운지 고개를 돌리려는 오소마츠의 입술을 카라마츠가 제 입술로 막았다. 

오소마츠의 입 안, 가장 약한 부위인 입천장을 끈질기게 핥으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얼굴을 응시했다. 

구강을 헤집는 쾌락에 오소마츠의 허리가 벌벌 떨렸다. 

잘게 경련하는 오소마츠의 몸을 품에 안고 카라마츠가 입술을 떼고 오소마츠를 꽉- 안았다.


오소마츠, 전부 보여줘. 네 수치도, 행복도, 슬픔도 모두 숨김 없이. 네게 내 전부를 줄 테니, 내게 네 전부를 줘…

카라마츠의 음성에 눈을 천천히 깜빡인 오소마츠가 해사하게 웃었다. 

온 몸을 감싸고 있는 카라마츠의 체온을 느끼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울음에 잠긴 목소리가 환희로 떨렸다.


응, 다 줄게. 카라마츠. 너한테 전부…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속삭인 오소마츠가 눈을 감았다. 







13.


환한 해가 신사를 비췄다. 

시로무쿠*를 입은 오소마츠가 천천히 카라마츠의 앞에 다가왔다. 

*시로무쿠 : 일본 전통 혼례식 때 신부가 입는 기모노

검은 기모노를 입은 카라마츠와 그와 대비되는 청결한 흰 기모노의 오소마츠가 나란히 섰다. 

다정히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를 보며 대국주가 축복을 부었다. 

토토코와 동생들의 축하 속에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서로를 보며 웃었다.


“오소마츠 형!! 이거 우리가 주는 선물이야!”

“축하함다!! 오소마츠 형아! 카라마츠 형아!”

“개똥마츠, 혹여나 오소마츠 형을 울이면 지옥까지 쫓아가 죽인다.”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며 토도마츠가 작은 상자를 건넸다. 

붉은 포장지에 푸른 리본이 감긴 작은 상자를 건네받은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하며 리본을 풀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한 쌍의 반지가 상자에서 고고히 모습을 드러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며 오소마츠가 조심스럽게 반지를 꺼냈다. 

불꽃과 같은 색의 붉은 보석과 바다와 같은 푸른 보석이 박힌 은색의 반지를 소중하게 손에 쥔 오소마츠가 활짝 웃었다.


“고마워!!!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

“얼른 오소마츠 형한테 껴 줘, 카라마츠 형!”

오소마츠가 기쁘게 웃는 것을 본 동생들이 빙긋이 미소지었다. 

토도마츠는 카라마츠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카라마츠도 “고맙다.” 하고 인사하며 오소마츠에게서 반지를 받아들었다. 

깊은 바다의 색을 머금은 반지를 오소마츠의 약지에 끼었다. 

푸른빛을 발하는 반지를 보며 잔잔히 미소지은 오소마츠가 남은 반지를 카라마츠의 약지에 껴 주었다. 

오소마츠의 눈동자를 닮은 붉은 빛의 보석을 보며 카라마츠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신에 준하는 힘과 지위를 가진 대텐구가 된 카라마츠와 오소마츠는 이제 ‘요괴’와 ‘신’이라는 장벽까지 넘어 부부가 되었다. 

오소마츠의 곁에 나란히 서서 오소마츠와 동등한 힘을 가지고 오소마츠를 지켜줄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하게 웃으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에게 살며시 입맞추었다.







14.


그렇게 그 녀석이 보고 싶으면, 차라리 그 마을에 가서 죽지 그래!!!!

마음의 병을 얻어 기력을 잃어가던 나를 끝까지 간호하던 토도마츠가 외쳤다. 

토도마츠의 외침에 꺼졌던 촛불에 다시 불을 붙인 것처럼 가슴이 뜨거워졌다. 

몸을 회복하는데 꼬박 1년이 소요되었다. 

내가 떠나는 것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서도 나를 말리지 않은 형제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걱정마라, 형제들이여. 반드시 또 만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말하며 안심시킨 후, 걸음을 옮겼다. 



이미 커다란 호수가 되어버린 고향을 보며 슬픔을 느끼는 것은 짧게 끝냈다. 

다시 마을을 세우기 위해서 할 일이 많았다. 물에 휩쓸린 마을의 흔적이 호수 주변에 널려져 있었다. 

나무 조각이나, 쓰레기들을 치우는데만 3년이 걸렸다. 

호수 근처를 정리하면서 동시에 근처 산에서 베어온 나무와 짚으로 작은 오두막을 지어 생활했다. 

내가 충분히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논과 밭도 일구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농부로 살아온 내게 있어서 밭과 논을 일구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터전을 옮겨 새로운 아카츠카 마을을 만든 동생들에게서 마을을 만들기 위한 비법들을 모두 배웠다. 

그 비법들을 살려 조금씩 토지를 개간했다. 커다란 호수 근처의 땅은 기름지고 비옥했다. 

매년 풍작을 이루어 남은 곡식과 과일, 채소들은 동생들이 있는 아카츠카 마을에 보내어 팔았다. 

그렇게 돈을 마련해 내가 필요한 것들을 사와 생활을 이어갔다. 


호수는 커다란 두 개의 산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중 하나의 산 중턱에 신사를 짓기 위해 땅을 다졌다. 

농부인 내게 신사를 짓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오두막은 간단히 만들 수 있었지만, 커다란 신사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신사를 짓는 중간중간 막히거나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 생기면 동생들을 찾아가 물었다. 

세상을 둘러보며 많은 지식을 손에 넣은 동생들은 친절히 내 물음에 대답해 주었다. 


10년 정도가 지나가 어느정도 생활은 안정되었다. 

풍작의 축복은 매년 이어져 남은 수확을 팔아 제법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 돈으로 사람들을 수배해 새로운 마을에 터전을 잡고 살 사람들을 모집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과 함께 살 집을 짓고, 논과 밭을 확장해 함께 일구었다. 그렇게 또 10년이 흘렀다.



“삼촌, 도우러 왔어요.”

어느 날,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어느새 장성한 조카들이 서 있었다. 

내가 아카츠카 마을을 떠날 때는 아직 갓난아기였거나 어린아이였던 조카들이 성장한 모습을 볼 수 있어 기뻤다. 

제 짝을 만나 가족을 이룬 조카들은 나를 도와 마을의 뼈대를 다듬었다. 

동생들에게 많은 지식을 전수받은 조카들은 나보다 훨씬 똑똑해서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을 보수하고 마을의 규율이나 체계를 만들었다. 

쵸로마츠의 아들인 히로시는 마을의 지도를 만들겠다고 했다. 

마을의 이름을 정해달라는 히로시의 말에 곰곰히 생각했지만, 하나의 이름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여우골’. 

그렇게 대답했더니 히로시가 “좋은 이름이네요!” 하고 웃었다. 

이어서 옛 아카츠카 마을이 잠긴 호수는 ‘아카츠카 호수’,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두 개의 큰 산은 각각 ‘여우산’과 ‘청산’이라 이름 붙였다. 

여우산의 중턱의 신사도 조카들과 함께 완성할 수 있었다. 

어느정도 마을의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을 때, 나라에 큰 전란이 발생했다. 

많은 산에 둘러싸인 여우골은 다행히 전란에도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전란이 끝이 나고 터전을 잃은 난민들이 여우골로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여우골에 터전을 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10년이 지나자 에도에 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커다란 마을이 형성되었다.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졌다. 매일 일을 마치고 여우산의 신사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산 아래 마을을 보고 있으면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오소마츠가 돌아오기를 바라며 지은 신사엔 아직 신을 깃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도 간간히 신사를 찾기는 했지만, 모두 제 삶에 열중해 신을 찾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오소마츠가 다시 돌아와도 또 우리 인간들에게 잊혀지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올라왔다. 


‘인간’들이 ‘신’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조카들을 모아 ‘마을 축제’를 만드기로 했다. 

보통 여름에 하는 축제와 달리, 우리 마을의 축제는 한 해에 풍작을 선물해준 ‘신’의 축복에 감사하는 의미를 담아 가을에 열기로 했다. 

매년 가을 축제는 마을 사람들의 호평 속에 흔들리지 않고 이어졌다. 

축제로 당장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는 없었지만, 축제가 이어진다면 분명 사람들도 ‘신’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하루 빨리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랬다. 아직도, 오소마츠는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 내가 새로 마을을 만든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이젠 인간들이 지겨워진 것일까. 

자신을 잊고 ‘신목’ 따위를 믿은 인간들을 미워하게 된 것일까. 


흐려진 오소마츠의 얼굴을 떠올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소마츠를 기다리고 있다는 이 마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나는 그저 비루한 한 명의 ‘인간’일 뿐인데… 

신사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문득 커다란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밤이 되면 밤하늘의 별을 비추는 커다란 호수. 

혹시 저 호수라면 천상에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축제의 마지막 날 호수에 등불을 띄우기로 했다.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소망을 적어 호수에 띄우면, 커다란 호수가 잔잔하게 빛나는 등불로 가득했다.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까만 호수에 떠다니는 등불을 보며 이거라면 오소마츠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가을 축제의 마지막 날의 등불은 어느새 우리 마을 축제의 명물이 되었다. 


매년, 「오소마츠를 다시 만나게 해 주세요.」하고 적힌 내 등불이 호수 위의 별이 되었다. 

여러해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내 소원이 궁금했는지 조카들이 물었다. 

대체 ‘오소마츠’가 누구냐고. 오소마츠와 함께 했던 꿈만 같은 1년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굉장히, 굉-장히 소중한 사람.”




나이가 들고 허리가 굽어 제대로 걷는 것도 힘들어졌다. 

올해도 검은 밤호수를 밝히는 등불을 신사에 앉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 오소마츠… 네가 정말로 보고 싶다. 


이제 내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은 본능으로 알 수 있었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두려운 것은 죽으면 오소마츠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아직 오소마츠는 오지 않았다. 

죽어서도, 차가운 땅에 묻혀서도 오소마츠를 기다릴 것을 다짐했다. 

이미 조카들에겐 내 묘도 여우산의 신사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청산에 만들어달라 부탁했다. 

언제까지고 오소마츠를 기다릴 것이다. 

나는 곧 인간으로서의 생을 끝내지만, 반드시 오소마츠가 다시 돌아올 것을 믿고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혹, 신의 은혜로 다시 태어난다면.. 

더 오소마츠의 곁에 오래 머물 수 있기를, 오소마츠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지닐 수 있기를 빌었다. 

수 백번, 수 천번도 더 떠올린 오소마츠의 얼굴과 목소리를 그리워하며 눈을 감았다. 

차가운 토리이에 기대어 마지막으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오소마츠, 네 마을이다. 

이곳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네 마을이야. 

그러니 빨리, 와줘. 네가, 네가 미치도록 보고 싶다. 

몇 번을 다시 태어난다고해도 내겐 오직 너뿐이야.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얕아진 호흡이 서서히 느려졌다. 


아, 이제 마지막이구나. 

다음에 눈을 뜬다면, 오소마츠.. 네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아카츠카 호수에 작은 등불이 별의 수만큼 떠올랐다. 

어두운 신사 입구의 붉은 토리이 위에 홀로 앉아 호수의 등불을 바라보는 오소마츠를 본 순간, 참을 수 없는 환희가 온 몸을 감쌌다. 

뜨거워지는 눈시울에 한숨지으며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아, 정말로…

정말로 눈을 뜨니 네가 있다.

오소마츠, 네가 내 눈 앞에 있다.


바보같이 몇 번이고 신에게 감사하며 숨을 삼켰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오소마츠를 과거와 같이 홀로 토리이 위에 처연히 앉아있었다. 

이제 그 옆에 나란히 설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이 조여왔다. 

아른거리는 오소마츠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푸드덕하고 날개가 만들어낸 소리에 오소마츠의 머리에 솟은 귀가 움찔거렸다. 

고개를 돌려 그 아름다운 붉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이름을 불렀다.


“오소마츠.”

“응~?”

베시시 웃으며 내 부름에 오소마츠가 대답했다. 

아아, 내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그 미소다. 

그리움과 환희와 사랑스러움이 한데 뒤섞여 심장을 조였다. 

달콤한 고통에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꿈이 아니다. 정말로, 내 앞에 오소마츠가 서 있다. 

감격이 멈추지 않았다. 손을 뻗어 오소마츠의 볼을 어루만졌다. 


아아, 정말로 오소마츠다. 

내 앞에 실재하는 오소마츠를 응시하며 줄곧, 전하고 싶었던 마음을 고백했다. 




“오소마츠.. 사랑한다.”







15.


도쿄에서 조금 떨어진 커다란 도시, 여우골. 

다른 마을과 달리 특이하게 가을에 하는 축제를 보러 오세요. 

축제의 마지막 날의 등불 띄우기가 이루는 장관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세요. 

여우골에 오신다면 여우골의 여우산에 있는 여우 신사를 꼭 한 번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여우골의 여우 신사에 참배를 한다면 당신의 소중한 ‘인연’을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역시 에로는 쓰기 힘들어요.. 카라마츠와 오소마츠가 는실난실하는 부분이 제일 오래 걸렸습니다...

 에로를 잘 쓰시는 존잘님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 여우골이야기 제본은 1월말에 완료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2주간 퇴고+특전 작성 후, 제본이 가능할 것 같아서요..

 정확한 가격 공지와 주문은 1월 말(설연휴 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번편에 나온 토고의 뒷설정을 풀자면.. 토고가 오소마츠가 사냥꾼에서 구해준 여우입니다. 자신을 구해주다 죽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새로 생긴 동생을 향한 애정이 토고의 비틀린 성격과 아버지의 편애로 증오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토고가 오소마츠에게 가지고 있는 것은 '애증'입니다. 그래서 오소마츠의 자리를 뺏으려고 하면서도 케우케겐에게 입은 상처를 치료해주고, 협박하면서도 눈물을 닦아주고 하는 모순적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소설 속에서 잘 드러내지 못한 제 실력...OTL...


* 추가로 오소마츠가 토고를 공격하지 못한 이유는 켄고의 부탁을 이루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있지만, 어릴 적부터 반복된 토고의 폭력 때문에 '토고에게 거스르면 안된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알고 있어서 토토코와 대국주도 직접 토고를 처단하지 않고 카라마츠를 지원해준 것입니다. 또 카라마츠를 신뢰하고 있었기에 카라마츠에게만 토고를 조심하라는 경고를 준 것이구요ㅎ.. 소설에서 드러내려고 했는데.. 못했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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