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편입니다!!!

* 이번편도 어째 길어졌네요...ㅎㅎㅎ

* 앞으로 완결까지 1편 남았습니다!!

* 모브시점이 좀 들어가있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바쁘게 서류를 넘기는 카라마츠 형의 옆에 앉아 차를 마셨다. 

후륵 하고 넘긴 차에서 은은한 꽃향기가 살며시 코를 간질였다. 

옆마을인 아카츠카 마을에서 쵸로마츠 형이 받아온 허브차는 역시 맛있었다. 

쵸로마츠 형이 추천할만 했다. 허브차에 진정 효과가 있는 것을 떠올리고, 빈 잔에 차를 부어 카라마츠 형의 책상 위에 살짝 올려놓았다. 

서류에서 시선을 돌려 찻잔에 눈길을 준 카라마츠 형이 “고맙다.” 하고 작게 속삭였다. 

익숙하게 서류를 넘기는 카라마츠 형의 옆에 높이 쌓인 서류는 서서히 줄어들었다. 

청산과 이 마을 전체를 다스리고 있는 텐구의 수장인만큼 카라마츠 형이 처리해야 할 일은 많았다. 

청산과 그 주변에 거주하는 요괴들의 자잘한 다툼부터 아카츠카 마을에 사는 요괴들과의 교류와 고의치 않게 요괴들이 인간들에게 미친 영향의 뒷처리까지… 

그야말로 산떠미처럼 쌓인 서류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어 어느새 마지막 한 장만을 남겨놓았다. 

마지막 서류를 치비타에게 넘긴 카라마츠 형이 좌식의자에 등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를 쓸어올리며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카라마츠 형에게 기회를 노려 말을 걸었다.


“있지, 카라마츠 형.”

“응? 뭔가, 토도마츠?”

“오소마츠 형이랑 혼례는 언제 올려?”

“에, 엣?!”

“대국주님이 다녀간지 벌써 1년이 지났다고?”

“아…”

오소마츠 형과 혼례라는 단어에 금새 얼굴을 붉히는 카라마츠 형이 대답하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모처럼 대국주님께도 인정받아 부부의 연까지 맺었는데, 1년이 지나도록 혼례의 ‘혼’자도 나오지 않으니… 

이대로 카라마츠 형과 오소마츠 형에게 맡겨둘 수만은 없었다. 

게다가 둘이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건 우리 여섯만 알고 있는 사실로, 최근 카라마츠 형에게 조금씩 맞선의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었다. 

오소마츠 형은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지만, 옆에서 보고 있는 입장으로서는 답답해 미칠 것 같다. 

고개를 돌려 대답을 피하는 카라마츠 형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며 “응~?” 하고 묻자, 카라마츠 형이 곤란한지 눈썹을 늘어뜨리고 어색하게 웃었다.


“카라마츠님이 그런 여우와 혼례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그런 말은 삼가주세요, 토도마츠님!!”

아직 방에서 나가지 않은 젊은 텐구에 외침에 나도 카라마츠 형도 몸을 움찔였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있었지… 

오소마츠 형이 이 토지의 토지신으로 내려온지 벌써 백년이 지났는데, 이 골때리는 텐구들은 여전히 오소마츠 형을 싫어하고 있었다. 

오소마츠 형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저렇게까지 싫어할 수 있는지… 


“그런 여우라니, 오소마츠 형은 이 일대의 토지신이야? 일단은…”

“그런 것, 카라마츠님의 발톱 끝에도 미치지 않는 여우 따위!”

젋은 텐구의 한 마디에 이어 방에 들어온 다른 텐구들도 저마다 한 마디 덧붙였다. 

대체로 오소마츠 형은 인정할 수 없다느니, 그런 여우 필요없다느니, 여우 때문에 카라마츠 형의 활약이 가려진다느니, 뭐 그런 말뿐이었다. 

오소마츠 형과 만난 적 있는 치비타만이 발끈하는 젊은 텐구들을 말리려 노력했지만, 머리에 피가 몰렸는지 제멋대로 발언하는 텐구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대로는 끝이 안나니 적당히 말을 넘기자고 생각해 입을 연 순간, “쾅!!” 하고 커다란 소음이 방 안에 울렸다. 


“에…?”

모두의 입이 멈추고 놀란 얼굴로 내 뒤로 시선을 고정했다. 

고개를 돌리자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친 카라마츠 형이 무시무시한 얼굴로 텐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항상 텐구들의 불평에도 무표정으로 “그 정도만 해라.” 하고 넘겼던 카라마츠 형의 진심으로 화난 얼굴에 숨을 삼켰다.


“오소마츠의 무엇을 보고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가. 가끔씩 그 좁은 시야와 편협한 편견에 토악질이 날 것 같다.”

“…에.”

거친 단어까지 써가며 고요히 분노하는 카라마츠 형의 모습에 텐구들 모두 숨을 멈췄다. 

주어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 방에 있는 텐구들뿐아니라 영지의 모든 텐구들에게 하는 말임을 모두 알 수 있었다. 

굳어버린 텐구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 형이 몸을 일으켜 젊은 텐구들을 지나쳐 그대로 방을 나섰다. 

모두 꽤나 놀랐는지 카라마츠 형이 나가고 한참이 지나도 꼼짝도 못하고 앉아있었다. 

나 역시 카라마츠 형이 저렇게까지 화가 난 모습은 처음 봐 뭘 어쩌야할지 알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있었다.


“토도마츠, 카라마츠 좀 보고 와줘라.”

존경하는 수장에게 혼나 어깨를 푹 숙이고 침울해진 텐구들을 추스리던 치비타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나와 카라마츠 형의 개인실로 향했다. 

아마도 카라마츠 형은 그 동안 참았던 것에 한계가 온 것 같다. 

지금까지 영지 내의 텐구들은 오소마츠 형 이야기만 나왔다하면 눈에 불을 키고 험담하기 바빴다. 

만약 방금 전 그 자리에 오소마츠 형 신자인 쵸로마츠 형이나 이치마츠 형이 있었다면 분명 엄청난 일이 일어 났겠지. 

카라마츠 형의 방 앞에 도착해 콩콩 노크를 하고 “토도마츠야.” 하고 말하자 “들어와.”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카라마츠 형.”

스르륵- 문을 닫고 들어가자 카라마츠 형은 조용히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후- 하고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쓸어올린 카라마츠 형이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갑자기 화를 내서.”

“아니, 카라마츠 형이 아니었다면 내가 먼저 화냈을거야.”

내 대답에 카라마츠 형이 고개를 들고 쓰게 웃었다. 

나를 달래려고 지은 미소였지만, 여전히 마음이 풀린 것 같지는 않았다. 

나로는 카라마츠 형의 기분을 풀어줄 수 없을 것 같아 “그러니까 빨리 혼례 올리라고.” 하고 한 마디 남기고 방을 나와 신사로 향했다. 

쵸로마츠 형과 이치마츠 형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고, 카라마츠 형의 기분을 달래줄 수 있는 건 오소마츠 형뿐이니까.





2.


오소마츠 형이 카라마츠 형을 달래주기 위해 청산으로 향해있는 틈을 타, 모두를 모았다. 

오소마츠 형과 카라마츠 형이 혼례를 올리기 전에 그 앞을 막고 있는 유일한 장애물을 우리가 치워주고 싶었다. 

일전 인간이 되고 싶다며 소동을 일으켰던 내가 오소마츠 형과 카라마츠 형에게 항상 미안했다. 

그러니까 이번 일만큼은 내가 도와주고 싶었다. 

대국주님도 넘고, 토토코님도 뭐 일단은 넘었으니까. 

이제 남은 텐구들이란 산을 넘을 수 있게 우리가 등을 밀어주지 않으면!


“텐구들이 오소마츠 형을 인정하게 해주자 작전!!!”

“뭐야, 그 촌스러운 작전명은.”

“시끄러워, 쵸로마츠 형.”

당연하다는듯 태클을 걸어오는 쵸로마츠 형을 막고 앉아 모두 함게 머리를 맞대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과연 예상했던대로 오소마츠 형 신자인 쵸로마츠 형과 이치마츠 형의 기분이 잔뜩 가라앉았다.


“그딴 텐구들한테 굳이 인정 받지 않아도 괜찮지 않아?”

“그것보다 그딴 텐구들 전부 없애버리면 되지 않아?”

검은 기운을 뿜어내는 쵸로마츠 형과 발톱을 세우는 이치마츠 형을 간신히 진정시킨 후, 먼저 입을 열었다.


“텐구들에게 오소마츠 형의 ‘신’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데 어때? 그럼 인정할 수 밖에 없지 않겠어?”

“글쎄. 백년이 지나도록 오소마츠 형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지금와서 신으로서의 모습을 보여 준다고 뭐가 변하겠어?”

내 말에 쵸로마츠 형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치마츠 형은 여전히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쯧! 하고 혀를 찼다. 

쥬시마츠 형까지 “우응~” 하고 머리를 갸웃거렸지만,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 


“개똥마츠가 없는 틈을 타서 오소마츠 형이 이 마을을 멋지게 지켜내면 되는 거 아니야?”

“그거 괜찮은데?”

이치마츠 형의 말에 쵸로마츠 형이 손가락을 들어 수긍했다. 

카라마츠 형의 부재에 당황하고 있을 텐구들을 오소마츠 형이 훌륭하게 이끌면 인정할 수 밖에 없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쵸로마츠 형을 황당하단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거 내가 방금 말한 거니까?!

 정말이지, 이 오소마츠 형 신자들은 도움이 안 된다.


“아니, 겨우 그걸로 될 리가 없다고 방금 쵸로마츠 형이…”

“응! 찬성!!”

“쥬시마츠 혀엉?!”

내가 반대의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쥬시마츠 형이 활짝 웃으며 양팔을 들고 찬성했다. 

아니, 겨우 그걸로 괜찮아?! 

백년이 넘는 원한이라고?? 

다들 알고 있는거야?! 

필사적으로 이것저것 이유를 들어가면 먹힐리 없다고 외쳤지만, 형들은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멋대로 구체적인 작전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아~~ 진짜!! 이제 난 모르니까!!




“그럼 카라마츠 형을 어떻게 빼내지?”

“패면 되잖아?”

날카로운 발톱을 꺼내 당연하다는 얼굴로 말하는 이치마츠 형에게 딴지를 걸고, 쵸로마츠 형에게 다시 물었다. 

쵸로마츠 형도 머리를 잡고 여러 궁리를 짜냈으나, 딱히 이렇다 할 만한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아!! 대국주님께 부탁해서 카라마츠 형 좀 잠깐 붙잡고 있어 달라고 하는건?”

“대국주님이 그렇게 한가한 분이 아니야!!!”

모처럼 명안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쵸로마츠 형의 태클에 막히고 말았다. 


“그러니까 패자니깐?”

“이치마츠 형은 조금 입 다물고 있어.”

“카라마츠 형아가 아파서 일을 못하는 건 어때~?”

“좋은 방법이긴한데 쥬시마츠 형, 나 백년이 흐르는 동안 카라마츠 형이 그 흔한 감기 한 번 걸리는 거 못봤어?”

“아하하, 쓸데없이 튼튼하구나, 카라마츠 형은!!”

“쥬시마츠 형, 그거 칭찬이야, 욕이야?”

쥬시마츠 형의 제안도 결국 각하. 정말로 이 이상 수가 없을까 절망하고 있는 우리들 사이에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엄~청난 요리를 해서 그 새대가리에게 주면 어때?”

“아니, 아까 토도마츠 군 제안대로 내가 천상으로 부르면 어떠냐?”

들은 기억이 있는 목소리에 우리 모두 끼기긱 하고 굳은 목을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굉장히 평범하게 대국주님과 토토코님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여! 오랜만이구나.”

“안녕, 또 놀러왔어~”

인기척도 없이 대화에 난입해, 한 손을 들어 가볍게 인사하는 대국주님과 토토코님의 등장에 쵸로마츠 형이 사색이 되어 벌떡 일어났다. 

우리도 호흡을 잊고 망연히 둘을 응시했다.


“대, 대국주니임~?!?!?!! 일은 어쩌시구요?!”

“몰래 빠져 나왔다!!”

“어이!!!!”

쵸로마츠 형의 물음에 즉답하는 대국주님께 무의식적으로 태클을 건 쵸로마츠 형이 거칠게 숨을 내쉬며 허리를 숙여 사죄했다. 

“죄송했습니다!!” 하고 비는 쵸로마츠 형에게 호탕하게 웃으며 대국주님이 “아니, 괜찮다~ 너는 여전히 건강하구나~” 하고 말했다. 


“있잖아, 토토코의 제안이 제일 좋지 않아?”

대국주님에겐 신경도 쓰지 않고 토토코님이 말했다. 

..토토코님의 제안? 


“요리를 먹인다구요?”

“그래! 토토코, 먹으면 바로 식중독 일으키는 음식 만들 수 있어!!”

먹으면 바로 식중독이라니.. 그거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너무 황당해 내가 말을 잃고 대답을 하지 못하는 사이, 이치마츠 형이 토토코님께 가까이 가 붙었다.


“나 찬성!”

“이치마츠 형?!”

“나도!”

“쥬시마츠 형?!”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토토코님 쪽에 붙은 이치마츠 형과 쥬시마츠 형이 손을 들었다. 

이치마츠 형은 작전 따위 생각지않고 그저 카라마츠 형을 괴롭힐 수 있다면 좋은 것 같았다. 

눈 앞에 펼쳐진 어이없는 상황에 쵸로마츠 형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쵸로마츠 형도 제멋대로인 대국주님을 상대하느라 바쁜 것 같았다. 


“하아… 그래서 뭘 어쩐다구요?”

아~ 이젠 진짜 나도 모르겠다. 포기의 한숨과 함께 묻자 토토코님이 눈을 빛내며 구체적인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3.


“자.”

토토코가 내민 쿠키를 받아든 토도마츠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주방에서 조리하는 것을 지켜본 토도마츠는 못 볼 것을 본 얼굴로 쿠키를 바라보았다.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쿠키를 보면 조금 전까지 초록색의 끔찍한 오라를 뿜어내는 정체 불명의 물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이거, 식중독 전에 죽지 않을까…’

불안한 눈빛으로 쿠키를 보며 우두커니 서 있는 토도마츠의 등을 툭 친 토토코가 고개를 기울였다.


“안 가 봐?”

“아…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응~, 다녀 와~”

‘될 대로 되라.’

반쯤 포기한 마음으로 토도마츠가 토토코의 쿠키를 들고 신사를 나와 청산으로 향했다. 




“카라마츠 형, 있어?”

카라마츠의 방 문을 슬쩍 열고 안을 엿본 토도마츠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기분이 풀렸는지 편안한 얼굴로 곰방대를 피우고 있던 카라마츠가 토도마츠를 반겼다. 

방 안을 두리번거리던 토도마츠가 오소마츠의 행방을 묻자, 방금 전 돌아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분 좋게 웃는 카라마츠를 보며 토도마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오소마츠 형 밖에 없다니까. 카라마츠 형을 달래주는 건.’

카라마츠에게 다가가 앉은 토도마츠가 품에 품고 있던 상자를 내밀었다. 

토토코가 만든 쿠키를 내밀며 토도마츠가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있지, 이거. 인간 마을에서 사 온 건데,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가게 꺼야.”

“아, 고맙다. 이따 먹지.”

“아니! 지금 먹어보면 어때? 일하고 나면 당분이 부족해지잖아?!”

“..? 그래 알겠다. 그럼, 하나만.”

토도마츠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카라마츠는 아무런 의심 없이 쿠키 하나를 집어들어 입에 넣었다. 

바삭바삭 쿠키를 씹는 소리가 들렸다. 꿀꺽- 쿠키를 삼킨 카라마츠가 빙긋이 웃으며 토도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맛있다. 고마워, 토도마츠.”

“으, 응…”

쿠키를 먹었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카라마츠를 보며 토도마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꺼림칙했던 작전이었던만큼, 쿠키가 카라마츠에게 통하지 않는 것에 안도했다.

작전 실패라고 생각하며 토도마츠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 문에 손을 댔을 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카라마츠가 쓰러졌다.


“카라마츠 형?!?!!!”

놀라 토도마츠가 재빨리 다가가 보자, 얼굴이 파래진 카라마츠가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효과인데도 너무나도 빨리 효과나 나온 것에 당황하며 토도마츠가 급히 텐구들을 불렀다.




“있잖아, 겨우 과자 하나로 이렇게 돼?”

끙끙대며 이불에 누운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토도마츠에게 물었다. 

카라마츠가 쓰러져 영지 안의 텐구들은 한바탕 소란을 일으켰다. 

호들갑을 떨며 독에 당한 건 아닌가, 누가 고의로 카라마츠를 독살하려 했다며 눈에 핏발을 세우는 텐구들을 보며 토도마츠가 일이 커진 것에 두통을 느꼈다. 

확실히 단순한 식중독이라 하기엔 카라마츠가 너무 괴로워했다. 

어딘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걱정한 토도마츠가 결국 오소마츠를 불러왔다. 

텐구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영지에 찾아온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이마에 살포시 손을 올리고 신통력을 흘려보냈다. 

방 안의 공기가 정화됨과 동시에 괴롭게 찌푸리고 있던 카라마츠의 얼굴이 한결 풀렸다. 

거칠었던 숨도 조금 안정되어 누워있는 카라마츠는 그대로 잠든 것 같았다. 

고른 숨소리를 내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토도마츠에게 물자, 토도마츠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 글쎄.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잘…”

“그 과자 한 번 보여줘 봐.”

“없어!! 카라마츠 형이 쓰러지고 상한 건가 싶어서 바로 버렸어.”

“…인간이 만든 과자로 아픈 거면, 내 신통력으로 바로 낫는데 말이지…”

후- 하고 숨을 내쉬며 토도마츠의 말을 의심하지 않은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했다. 

신통력을 흘려보내도 카라마츠의 증상을 완화할 뿐이지, 병을 치료할 수는 없었다. 

오소마츠는 단순한 식중독에 자신의 신통력이 통하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며 한숨을 쉬었다. 


“저기, 오소마츠 형.”

“응?”

토도마츠의 부름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렸다. 토도마츠를 자신의 손가락을 매만지며 말을 망설이더니 곧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카라마츠 형이 아픈 동안.. 여기서 머물면서 일 좀 도와주지 않을래? 마을을 지키는데 카라마츠 형이 없으면 곤란하고…”

“아, 그것도 그러네… 우응~ 할 수 없지, 알았어.”

싫다고 할 줄 알았던 오소마츠가 너무나 흔쾌히 수락한 것에 토도마츠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항상 신사에서 빈둥거리며, 일하기 싫다고 칭얼대고, 처리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항상 쵸로마츠에게 잔소리 듣는 오소마츠 답지 않은 대답이었다. 

토도마츠가 다시 “정말로 해줄 거야?” 하고 재차 묻자 오소마츠가 웃으며 “응!” 하고 가볍게 대답했다. 


그 날 이후, 일주일간 오소마츠의 ‘카라마츠 대리역’이 시작되었다.





4.


“응, 그럼 이건 이대로 해 줘.”

여우가 넘기는 서류를 받아 치비타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토도마츠님이 인간 마을에서 사온 음식이 상해 있던 탓에, '식중독'이라는 병에 걸린 카라마츠님을 대신해 여우는 제 분수도 알지 못하고 서류를 하나하나 처리해 나갔다. 

태연한 얼굴로 카라마츠님의 자리에 앉아 글을 읽어 내려가는 모습에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항상 신사에 처박혀 놀기만했던 자가 대체 뭘 알며, 뭘 할 수 있을지. 

제 주제도 모르고 감히 카라마츠님의 대리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 우스울 따름이다. 

당연히 다른 텐구들도 여우가 카라마츠님의 대리를 하는 것에 반대했지만, 치비타님과 토도마츠님의 명령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보좌를 한다며 멋대로 영지에 처들어온 저 도도메키와 네코마타도 눈엣가시다. 

여우가 무슨 할 일이 있다고 보좌가 필요하단 말인가. 상식을 넘는 여우의 행패에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쇼, 여우님은 오늘 저녁으로 뭐가 드시고 싶다고 하셨어?”

회의를 마치고 복도를 걷고있자, 음식 당담인 친우 신바가 말을 걸었다. 


“하? 그런 것 알까보냐!”

“뭐야~, 그럼 직접 물어야겠네.”

머리를 긁적이며 넉살좋게 웃은 신바가 여우가 있는 방으로 발을 돌렸다. 

대체 저 녀석은 얼마나 넋이 빠졌길래 그 여우를 좋게 대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영지의 텐구들 모두가 여우를 적대하고 있는데, 단 한 번 여우가 동생을 구해준 적이 있다고 해서 저렇게 호의로 대해도 되는 건가? 

애초에 그 한 번도 여우가 변덕으로 도와준 것이 분명하다. 


“쯧, 속 없는 녀석.”

너무 순진한 신바는 여우의 교활함을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어리석은 친우를 동정하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앞으로 5일. 

여우는 계속 영지에 머물겠지. 당장 내일이 오지 않거나, 내일 바로 카라마츠님이 낫기를 빌며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 외로 여우는 능숙하게 서류를 처리했다. 

카라마츠님만큼이나 빠른 처리 속도에 텐구들 모두 놀랐다. 

심지어 여우와 함께 영지에 온 도도메키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거짓말이지… 평소에 좀 이렇게 해라…” 하고 중얼거렸다. 

쌓인 서류는 순조롭게 줄어들어 오전 중에 처리해야 할 서류는 모두 확인을 받을 수 있었다.


“우햐~ 힘드네~”

제 손으로 어깨를 두드리며 여우가 기지개를 폈다. 

옆에 앉은 도도메키에게 웃으며 “점심은 뭘까?” 하고 묻는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카라마츠님은 서류를 모두 처리한 후, 미소지은 얼굴로 우리에게 “모두 수고했다.” 하고 우리의 노고를 치하해 주셨는데, 도대체 저 여우는 품위라곤 찾을 수 없다. 

가볍게 손을 흔들며 처리된 서류를 들고 나가는 치비타님에게 “치비타~, 수고~” 하고 외쳤다. 


“오, 너희도 수고했어~”

방을 나서며 웃은 여우가 말했다. 모두 언짢은 얼굴로 눈썹을 찌푸렸다. 

여우답게 가벼운 언동은 하나하나 눈에 거슬렸다. 

방을 나서는 여우의 뒤를 신바가 따랐다. 

미처 닫히지 않은 문틈으로 신바가 여우에게 말을 거는 것이 보였다. 

뭐라 말하는 신바를 향해 여우가 웃었다. 

신바도 여우를 따라 웃는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뭐가 좋다고 여우와 친하게 지내려는 건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온 친구이지만, 신바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좀 더 진실된 모습을 보는게 어때?”

식사를 하며 어린아이도 아는 식사예절을 지키지 않는 여우를 노려보고 있는 나를 향해 신바가 말을 걸었다.


“무슨 말이야?”

“오소마츠님 말이야. 너무 편견에 사로잡혀서 보지 말라고.”

“..저딴 여우에게 ‘님’자 붙일 필요 없잖아.”

“그러니까~, 그런 거 말이야! 그런 시각으로 보니까 카라마츠님도 화내셨던 거고.”

정곡을 찌르는 신바의 말에 말없이 밥을 입에 옮겼다. 

자신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는 나를 보며 푹 한숨을 내쉰 신바도 식사에 집중했다. 

대체 무슨 편견이 있다는 말인지. 

저 여우는 카라마츠님이 수호하고 있는 이 마을에 내려와 다 된 밥에 숟가락 하나 얻은 교활한 놈이다.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카라마츠님의 호의를 받아 제멋대로 활개를 치고 다니는 놈이다. 

이 마을은 순전히 카라마츠님의 노력으로 지켜지고 있는데, 

토지신이라는 명목으로 모든 영광으로 빼앗아가고 있는 여우를 무슨 수로 좋게 보라는 건지. 

혀를 차며 입 안에 넣은 밥을 씹었다. 

항상 카라마츠님의 정결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식사시간이 이렇게나 불편했던 적은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저녁에 처리해야 할 일을 들고 방으로 향하는 복도. 넓게 펼쳐진 마당 한 가운데 여우의 꼬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 텐구들의 영지에 처들어와 제 집처럼 드나드는 걸로 모자라, 마당까지 나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 

조심히 발소리를 죽이고 마당으로 나가자 마당에 세워진 바위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어린 텐구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우님! 여우님! 이것도요!!”

아이가 고사리 같은 어린 손으로 딴 기다란 풀을 건네자 여우가 웃으며 재주좋게 풀을 엮어 동물 모양을 만들었다. 

강아지로 보이는 풀더미를 받아든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작은 날개를 파닥였다. 

아직 완전히 날개가 자라지 않아 하늘로 날아오르는 일은 없었지만, 아이는 그저 기쁜 것 같았다. 


“여우님! 나도!!”

또 다른 아이가 풀을 내밀었다. 여우는 풀을 받아들어 다시 뭔가를 엮기 시작했다. 

반짝거리는 눈으로 여우의 손에 들린 풀을 보고 있는 아이의 옆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신바의 동생 토마도 아이들에 섞여 여우를 보고 있었다.


“자.”

“우와!! 고양이다!!”

“여우님…”

고양이 모양의 풀을 건네받아든 아이가 손을 높이 들고 환호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하는 아이의 곁에서 떠난 토마가 여우의 옷자락을 쥐고 당겼다.


“응~? 왜 그래~?”

여우가 몸을 숙여 토마와 눈을 맞추자, 토마가 수줍게 웃으며 두 팔을 활짝 벌렸다.


“나, 어부바!!”

“후후후, 토마는 어리광쟁이네~”

여우는 토마의 작은 몸을 들어올려 품에 안은 채, 일어났다. 

아이보다 훨씬 높아신 시야에 토마가 “우와~” 하고 감탄했다. 

등에 솟은 작은 날개가 손상되지 않도록 토마의 엉덩이를 받친 여우가 꼬리를 살랑거렸다. 

아주 약간, 여우를 의심했던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다시 복도에 올랐다. 

여우가 있는 쪽은 여전히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분주했다. 

신바가 말했던 것이 이런 것이었나? 

어쩐지 가슴 한켠에 작은 가시가 박힌 것처럼 신경이 쓰여 인상을 찌푸렸다.





5.


여우가 카라마츠님의 대리를 하고 3일이 되었다. 

오전의 회의와 서류 처리는 막힘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원로들의 호통에도 기죽지 않고 제 할말을 하며 회의를 이끄는 여우의 모습에 다시 봤다는 텐구들의 평이 늘었다. 

게다가 집을 관리하고 음식을 담당하는 식솔들 사이에서도 어쩐지 여우의 평가가 높았다. 

요리를 관리하는 신바의 영향인걸까. 점점 여우에게 호의를 가지는 텐구들이 늘어났다. 

여우에 홀리기라도 한 것인지… 

나만큼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여우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다짐하며 식탁을 치웠다. 

오전의 업무는 모두 끝났다. 

이제 각자 맡은 일을 하다가 저녁에 있을 회의를 마지막으로 오늘의 일정은 끝이 난다. 

잠시 쉴까… 

방으로 향하는 복도를 걷고 있으니 저편에서 토도마츠님이 걸어왔다.


“토도마츠님, 어디 가시나요?”

“아, 응! 잠깐 마을에.”

“또 인간 마을에 내려가시는 겁니까? 위험합니다. 제가 동행할까요?”

“아니, 그렇게 위험하지 않으니까.”

손을 흔들며 거절하곤 다시 현관을 향해 걸어가는 토도마츠님이 걸음을 멈추었다. 

직각으로 꺾인 복도 모퉁이에 가만히 서 있는 토도마츠님의 모습에 나도 발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오소마츠 형!”

“토도마츠, 어디 나가?”

“응! 마을에!”

“그래, 그럼 조심히 다녀와.”

토도마츠님의 앞으로 다가간 여우가 웃으며 토도마츠님의 이마에 입맞추었다. 

대체 뭘 하는 거야?! 

황당한 시선으로 바라보니 여우의 신력이 토도마츠님에게 옮겨져 얇은 결계를 만드는 것이 보였다. 

토도마츠님의 온 몸을 감싼 얇은 결계는 연약해보였지만, 제법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계에 감싸인 몸을 이리저리 둘러본 토도마츠님이 방긋 웃으며 “고마워, 오소마츠형~ 그럼 다녀올게.” 하고 복도를 걸어나갔다. 

여우가 카라마츠님과 카라마츠님의 동생인 토도마츠님, 쥬시마츠님과 친분이 있다는 것은 여우가 카라마츠님의 대리를 한 첫날 알게 되었다. 

너무나 친근하게 여우를 ‘형’이라 부르는 토도마츠님과 쥬시마츠님에 모두 놀랐었다. 

종족이 다른 요괴인데도 거리낌 없이 대하는 여우의 모습에 놀랐다. 

그리고 지금도, 겨우 인간 마을에 놀러가는 것뿐인데, 자신의 신력을 사용해가며 토도마츠님에게 결계를 만들어 주었다. 

겉으로만 친근하게 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응? 무슨 일 있어? 쇼-군.”

“엣?! 아니, 없…습니다.”

갑자기 이름을 불려 놀라 어깨를 떨었다.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여우가 앞으로 다가왔다. 

빤히 내 얼굴을 보며 눈썹을 찌푸린 여우가 내 이마에 손을 대었다.


“어? 열 있나?”

“읏?!”

따뜻한 손의 온기에 놀라 뒷걸음치며 인상을 찌푸렸다. 

뭘 의심없이 다가오는 건가?! 이 여우는!! 

여우를 노려보자 여우가 호쾌하게 “응! 건강하네~” 하고 말하며 실없이 웃었다. 

여우는 그대로 나를 지나쳐 복도를 걸어나갔다. 

여우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한숨을 쉬며 몸의 긴장을 풀었다. 

대체 왜 온 몸에 힘을 주고 긴장을 하고 있었던 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다. 

한숨과 함께 이마를 짚으니 여우의 말대로 조금 뜨거웠다. 




저녁 회의를 마치고, 깊은 숨을 내쉬는 내 옆에 신바가 섰다. 

“뭐야.” 하고 물으니, 신바는 아무말 없이 웃으며 내 등을 툭툭 쳤다.


“뭐야?”

“이제야 이 형님 말을 듣는구나!”

“하?”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물으니 신바가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오소마츠님에 대해서 내가 한 말! 아까 오소마츠님 보는 눈이 조금 부드러워졌던데?”

“…웃기는 소리 하지마.”

“얼레? 아냐?”

“내가 그 여우를 왜.”

콧웃음치며 짜증을 내가 신바가 머리를 긁적이며 “이상하다? 나한텐 그렇게 보였는데…” 하고 중얼거렸다. 

여우가 오소나서 실없는 소리를 하게 된 신바를 보며 한숨을 쉬고 자신의 방으로 발을 옮기려는 순간, 뒤에서 치비타님이 나를 불렀다.


“어이, 쇼!”

“네!”

치비타님의 부름에 뒤돌아 뛰어가자, 치비타님이 한 장의 서류를 맡겼다.


“이거, 급한 건데 지금에야 들어와서. 오소마츠에게 건네줘. 아마 지금쯤 카라마츠 녀석의 방에 있을 거야.”

“..네.”

이제 겨우 회의가 끝나 오늘은 더 이상 여우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명에 힘없이 대답하며 서류를 받아들었다. 

아직도 떠나지 않고 옆에 서 있던 신바가 “내가 대신 가줄까?” 하고 물었지만 거절했다. 

여우를 다시 보는 것은 싫지만, 카라마츠님의 방에 있다면 카라마츠님을 뵐 수 있을 터였다. 

카라마츠님의 상태가 얼마나 호전되었는지 알고 싶어 신바의 제안을 거절하고 카라마츠님의 방으로 향했다. 




“..괜찮아?”

얇은 장지문 너머 여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급한 서류이니 바로 문을 열고 건네주면 되는데도, 문 앞에 무릎을 꿇고 귀를 기울였다. 

여우의 목소리에 이어 카라마츠님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아아, 미안. 오소마츠.”

“별로, 괜찮아. 신경쓰지 말고 얼른 회복하기나 해.”

“그래도.. 내 일까지 맡게 만들어서 미안.”

“신경쓰지 말라니까. 내가 맡지 않으면 또 이것저것 걱정해서 제대로 쉴 수 없잖아.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어.”

“..고맙다. 빨리 털고 일어날게.”

“응, 부탁해~”


..문고리에 얹은 손을 뗄수가 없었다.

항상 들어왔던 카라마츠님의 목소리였기만, 어딘가 달랐다. 

낮고 무게있는 평소의 목소리가 아닌, 어딘가 따뜻한, 부드러운 목소리. 처음 듣는 카라마츠님의 목소리와 그와 조화를 이룬 장난기 섞인 상냥한 여우의 목소리가 귀에 울리며 맴돌았다. 

지금 자신이 제대로 숨을 쉬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걸까? 

고개를 숙이자 손에 들고 있던 서류가 보였다. 

있는 힘껏 머리를 흔들어 아직도 멍한 정신을 억지로 깨웠다. 

문고리에 얹고 있던 손을 내리고 심호흡을 한 뒤, 가볍게 장지문을 두드렸다.


“카라마츠님, 쇼입니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서류가 남아 찾아뵈었습니다.”

“..아, 들어와라.”

카라마츠님의 목소리에 소리가 나지 않도록 살며시 문을 열었다. 

이불에 앉은 카라마츠님의 옆엔 여우가 앉아있었다. 

카라마츠님께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린 후, 여우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서류를 받아든 여우가 조용히 서류를 읽더니, 카라마츠님의 앞에 가져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서류의 일을 물어보고 있는 것 같았다. 

카라마츠님이 서류를 보며 여우의 이야기를 듣곤 은은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우도 카라마츠님을 향해 살포시 미소짓곤, 내게 다시 서류를 내밀었다.


“응, 이대로 처리하면 된다고 치비타에게 알려줘.”

“네!”

“참, 그리고.”

“네?”

서류를 받자마자 나가려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우는 나를 보며 빙긋- 웃곤, “쇼, 몸은 좀 괜찮아? 아까 열 있었잖아.” 하고 물었다. 

이유도 없이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져 “괜찮습니다!” 하고 급히 대답을 하고 도망치듯 방을 나왔다. 

불을 쬔 것처럼 한없이 뜨거워지는 얼굴에 당혹감을 느끼며 차가운 복도를 언제까지고 뛰었다.





6.


상태가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어제는 대체 왜, 무엇이 그리도 부끄러웠던걸까. 

잠을 자려 이불에 누워도 떠오르는 것은 여우의 얼굴로, 밤새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카라마츠님의 방을 나오기 전, 여우가 보여주었던 그 ‘미소’가 무슨 짓을 해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여우의 미소가 흰 종이에 떨어진 한 방울 먹물처럼, 그 존재를 과시하며 천천히 그리고 착실하게 머릿속을 좀먹어가고 있다. 

잠을 자지 못해 뻑뻑해진 눈을 비비며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드물게 아침 회의가 없다. 

자신의 자리에 앉아 식탁을 내려보았다. 먹음직스럽게 상 가득 펼쳐진 음식들을 보아도 딱히 식욕이 들지 않았다. 

정말로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걸까. 혼란과 당혹감을 넘어, 스스로의 사고에 지쳐버렸다. 


“하아…”

“어이, 쇼. 땅 꺼지겠다.”

“신바. 난 아마 내일 죽을지도 모르겠다.”

“하?”

“아니, 오늘 안으로 죽을지도.”

“무슨 소리야?”

어이없다는 얼굴로 한쪽 눈썹을 찌푸린 신바가 젓가락을 들었다. 

이 이상 말을 늘어놓아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오랜 세월의 사귐으로 알고 있기에, 신바를 따라 젓가락을 들었다. 

밥을 떠 입에 넣고 반찬을 하나 집어들어 입에 넣었다. 


‘맛있어?!’

놀라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이 방에 있는 모든 텐구들의 마음 속 외침이 들린 것 같았다. 

모두 하나같이 놀란 얼굴로 젓가락을 입에 문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옆사람의 반응을 살피는 모습에 절로 푸핫! 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목으로 넘기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맛을 음미하고 씹어 넘긴 후, 미소시루를 마셨을 때 또다시 모든 텐구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바…”

“응?”

“너, 하루만에 이렇게까지 요리실력이 늘다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 아니, 이거 내가 한 거 아니야.”

마침 옆에 요리담당인 신바가 있었기에 묻자, 신바가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신바가 하지 않았다면 대체 누가? 

궁금증에 휩싸여 빤히 바라보자 씨익- 장난기가 묻어나오는 미소를 지은 신바가 일부러 큰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요리는 오소마츠님이 직접 하신거야!!

“!!!”

온 방안에 울려 퍼지는 신바의 충격적인 말에 말을 잃은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놀라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자가 있는가 한편, 저도 모르게 날개를 활짝 펼쳐 양옆의 텐구들을 쓰러뜨린 자도 있고, 모든 행동을 멈추고 젓가락을 떨어뜨린 자도 있었다. 

백년 가까이 살았지만, 지금까지 먹었던 미소시루 중에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깊은 맛. 

말을 잃은 채, 신바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능글능글한 얼굴로 웃고 있는 신바와 눈이 마주쳤다.


“어때? 오소마츠님의 손요리의 맛은?”

마치 자기가 직접한 요리마냥 자랑스럽게 웃으며 묻는 신바를 향해 인상을 찌푸렸다.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신바의 얼굴을 보아 또 실없는 소리를 할 것 같았다.


“오소마츠님, 대단하지?”

역시 실없는 소리다. 콧웃음치며 “별로.” 하고 대답한 후, 다시 젓가락을 분주히 움직였다. 

평소엔 밥 한공기로 배가 부른데도, 오늘 아침은 3공기나 먹고 말았다. 

그것은 다른 텐구도 마찬가지여서 식사시간이 끝나자, 방을 나서는 텐구들은 모두 괴로운 얼굴로 지나치게 부른 배를 붙잡고 문을 나서야했다.




카라마츠님이 안 계신데도, 여우에 의해 오늘자 일도 막힘없이 해결되었다. 

저녁 최종 회의도 무사히 끝이 나, 방으로 향하는 복도를 걷다가 시야 한구석에 걸린 황금색에 걸음을 멈췄다. 

황금빛을 쫓아 고개를 돌리니 여우가 마당 한켠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겨울에 들어서 짧아진 낮은 아직 그렇게 늦은 시간이 아닌데도 하늘에 검은 먹물을 부었다. 

깜깜한 밤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는 여우를 따라 시선을 위로 올렸다. 

 보고 있는걸까? 

한참을 바라보아도 반짝이는 별과 고고히 땅을 비추고 있는 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눈썹을 올리며 다시 방으로 향하려는 순간, 파닥거리는 날갯짓 소리와 함께 한 마리의 까마귀가 마당을 향해 날아왔다. 

여우가 까마귀를 향해 팔을 뻗자, 까마귀가 날갯짓을 빠르게 반복하며 속도를 줄여 여우의 팔에 앉았다. 

부드럽게 까마귀를 쓰다듬으며 팔을 접어 까마귀와 눈을 맞춘 여우가 완온이 웃으며 까마귀에게 뭐라 속삭였다. 

까마귀가 여우의 말에 날개를 퍼덕이며 화답했다. 이윽고 까마귀는 다시 까만 밤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까마귀가 날아간 곳을 응시하던 여우가 몸을 돌렸고, 여우를 바라보고 있던 나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아…”

“응? 쇼? 무슨 일 있어?”

“아, 니요. 없습니다. 오소마츠님, 방금 그 녀석은?”

카라스(까마귀)텐구의 영지답게 영지 안에는 까마귀들이 많았다. 

그들 역시 우리의 식솔이었고, 부하였다. 

매일 얼굴을 맞대는 이 산의 까마귀들의 얼굴을 전부 알고 있는 나는 방금 전 까마귀가 우리 영지에 살고 있는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물음에 여우는 귀를 까닥이며 해족이 웃으며 대답했다.


“쿠로야~ 내 사역마인. 카라마츠도 없으니까 마을 안을 한번 쭉 돌아보고 오라고 시켰어.”

“혹시 매일 그렇게 까마귀를 시켜서 마을을 확인하셨나요?”

“응? 응.”

내 질문에 여우는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우에게 있어서 내 질문은 지극히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항상 신사에 틀어박혀 놀고 먹으며, 모든 일은 우리에게 맞기고 그렇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진실이었다면, 이렇게 카라마츠님을 대신해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없겠지. 

결국 내가 그동안 여우에게 가지고 있던 모든 생각이 단순한 선입견에, 치졸한 오만이었다는 것을 겨우 깨달았다. 

스스로가 너무나 부끄러워져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고개 숙여 숨기고 오소마츠님에게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지금까지 내가 자신을 어떤 눈으로 봤는지 신경쓰지 않는다는 얼굴로 여우는 해사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빠른 걸음으로 마당을 빠져나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뜨거워진 얼굴에 한숨을 내쉬었다. 

부끄럽다. 카라마츠님의 말도, 신바의 말도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자신의 속좁음에 치가 떨린다. 

자신의 생각에 한치의 의심도 품지 않고, 진실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항상 색안경을 끼고 오소마츠님을 대했던 과거의 자신을 때려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역시 오늘밤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7.


커다란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영지 내의 누각 하나가 불에 휩싸였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모두 말을 잃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하늘이 까맣게 덮일 정도로 많은 수의 텐구들이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늘부로 이곳은 이 몸, 쿠라마텐구의 승정방의 땅이다! 당장 내 땅에서 모두 떠나라!!”

쩌렁쩌렁하게 산을 울리는 외침에 방금 전의 불 공격이 선전포고라는 것을 이해했다. 

나와 같은 젊은 텐구는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텐구들 사이의 ‘세력 싸움’이 지금 시작된 것이다. 

쿠라마텐구라면 텐구들 사이에서도 그 힘과 세력이 가장 강한 텐구 일족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우리에게 승기는 없었다. 

하지만, 건방지게 우리의 터전을 빼앗으려는 적의 등장에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일제히 날아올랐다. 

공중에 날아오른 텐구들 사이에 치비타님이 선두에 섰다. 


“모두 공격!!!”

치비타님의 외침에 모두 힘차게 날개를 움직여 쿠라마텐구들에게 돌진했다. 

순식간에 하늘은 까맣게 뒤덮여 혼란의 장이 되었다. 

우리보다 몸집이 큰 쿠라마텐구를 무찌르기 위해 쿠라마텐구에게 여러명의 젊은 텐구들이 달라붙었다. 

제대로 무기도 챙기지 못한 우리와 달리 단단히 무장을 한 쿠라마텐구들의 손에 하나 둘씩 우리들은 땅으로 추락했다. 

다른 일족에 비해 이제 겨우 백년, 이백년 정도의 젊은 텐구들로 이루어진 우리 일족은 무참하게 쿠라마텐구의 공격을 받아 떨어져갔다. 


“크악!”

신바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정신을 잃은 신바가 빠른 속도로 낙하하고 있었다. 

재빨리 싸우고 있던 쿠라마텐구를 밀치고 신바에게로 날아갔다. 

신바의 몸이 땅에 떨어져 부서지기 직전에 겨우 손을 잡아 낚아채, 천천히 땅에 눕혔다.

다시 교전 중인 하늘로 내려가려했지만, 급하게 낙하한 탓에 날개가 떨리며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제야 온 몸의 상처들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하늘은 이제 쿠라마텐구들 밖에 남지 않았다. 

영지 곳곳에 쓰러져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동료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럴 때, 카라마츠님이 계셨다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용케 결계를 깼네.”

땅을 주먹으로 치며 오열하고 있는 내 귀에 한 줄기 구원과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자 오소마츠님이 서서 기세등등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쿠라마텐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딴 결계, 이 대텐구 카즈나리님이 깨지 못할리 없지!! 약해 빠진 결계더군~? 흐물흐물하던데?”

“…호오?”

공중에 가득 여우불을 만들며 오소마츠님이 얼굴을 찌푸리고 웃었다. 

여우불에 긴장을 세우고 전투 태세를 갖춘 쿠라마텐구들이 습격하기도 전에, 자비없이 여우불은 쿠라마텐구들을 감쌌다. 

커다란 불길에 휩싸인 쿠라마텐구들의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온 산에 울렸다. 


“이 놈!! 잘도 내 부하들을!!!”

“먼저 공격한게 누군데?!”

8척은 족히 넘어보이는 이지창*을 휘두르며 자신을 대텐구라 지칭한 쿠라마텐구가 오소마츠님께 날아들었다. 

*이지창 : 갈퀴가 2개 있는 창. 갈퀴가 3개 있으면 삼지창.

여유있게 뻗어오는 창을 피한 오소마츠님이 다시 대량의 여우불을 만들어 일제히 텐구에게 꽂았다.

커다란 굉음과 파랬던 하늘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 정도로 커다란 불길이 일었다.


“하하하!! 간지럽구나!!”

“…쯧!”

불길이 사그라들었지만, 쿠라마텐구는 여전히 하늘 위에 서 있었다. 

 있는 옷이 군데군데 그을었지만, 쿠라마텐구는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을 것 같았다. 

낮게 혀를 찬 오소마츠님이 다시 여우불을 만들었다.


“그딴 불꽃! 몇 백개를 만들어내도 소용 없다!!”

쿠라마텐구가 이지창을 휘두르자 거센 바람이 불어 오소마츠님의 여우불을 흔들었다. 

여전히 타오르고는 있지만, 바람에 여우불의 기세가 한결 작아졌다. 

작아진 자신의 여우불을 보며 부들부들 몸을 떤 오소마츠님의 얼굴이 돌변했다.


“열 받아…”

“우하하하하, 이걸로 마지막이다!!”

오소마츠님을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든 쿠라마텐구가 불쑥 멈추어 멍청히 오소마츠님을 바라보았다. 

환한 빛이 오소마츠님의 신체를 감싸더니 이내 황금빛의 4개의 꼬리를 가진 여우가 나타났다. 

찬란한 그 모습에 오소마츠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소마츠님이 여우의 모습이 됨과 동시에 오소마츠님 주변에 떠 있던 여우불의 크기가 커졌다. 

본래 크기의 2배, 아니 3배로 커진 여우불이 활활 붉게 타오르며 오소마츠님의 주변을 떠다녔다. 

여우불의 크기에 놀란 쿠라마텐구가 숨을 들이마셨다.


“..자, 잠깐!!”

“…”

입가를 씰룩거리며 손을 든 쿠라마텐구를 향해 커다란 여우불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온 산과 땅을 울리는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커다란 불기둥이 산을 통째로 집어 삼킬 것처럼 타올랐다. 

한참을 타오른 불기둥이 서서히 사그라질 즈음, 완전히 검게 그을린 쿠라마텐구가 땅으로 추락했다. 


“휴…”

한숨을 내쉬며 하늘에서 내려온 오소마츠님은 즉시 영지 아래 땅의 지맥에 자신의 신기를 흘려넣었다. 

땅에 쓰러진 텐구들의 아래에 지맥을 타고 흐른 오소마츠님의 신력이 발해 순식간에 텐구들의 상처를 치료해갔다. 

중상을 입고 정신을 잃은 신바도 곧 눈을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우리가, 이긴, 건가..?”

묻는 신바에게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얼굴을 보고 피식 웃은 신바가 “다행이다..” 하고 말을 마치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든 것처럼 쓰러진 신바의 상태를 다시 확인하고, 모든 상처가 사라진 것에 안도하며 신바를 안아 들었다. 

나와 같이 그나마 상처가 가벼웠던 텐구들도 벌떡 일어나 아직 정신을 잃은 텐구들을 집 안으로 옮겼다.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습격은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엉망이 된 영지의 마당을 보수하고 불에 탄 누각의 뒷처리도 빠르게 이루어져 두 시진(약 2시간)이 지났을 무렵엔 습격이 있었다는 흔적은 말끔히 사라졌다. 



“모두 괜찮아?”

한 방에 모여있는 부상자들을 둘러보며 오소마츠님이 물었다. 

쿠라마텐구를 몰아내느라 많은 힘을 소진한 탓인지 인간의 모습이 아닌 여우 본연의 모습을 한 오소마츠님의 질문에 모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맥에 흘려준 오소마츠님의 신력 덕분에 중상은 모두 나았다. 

우리의 몸에 남은 것은 자잘한 생채기 정도로 하루 이틀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진 상처들이었다. 

다시 쭉 우리를 둘러보며 푹-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님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

달달하게 퍼지는 오소마츠님의 음성에 몸이 떨렸다. 우리를 향한 오소마츠님의 부드러운 시선이 온 몸을 감싸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카라마츠님과 함께 있었을 때, 오소마츠님이 보여준 그 미소가 다시 떠오르며 눈 앞에 서있는 황금빛의 고고하고 아름다운 여우를 언제까지고 바라보았다.





8.


쾅!! 하고 온 땅을 울리는 폭발음과 하늘까지 솟은 불기둥에, 머릿속의 이성이란 녀석이 “때려쳐라! 때려쳐!!” 하고 외치며 뛰쳐 나갔다. 

멍청히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다 옆에서 들려오는 “오, 오소마츠 녀석. 단단히 화가 났구만!!” 하고 태평한 목소리에 신음했다.


“아니!!! 해도 너무하잖아요!!!! 대국주님~~!!!!!!”

내 외침에도 대국주님은 그저 허허 웃을 뿐이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쥐고 왜 이렇게 된건지 정리했다. 

토토코의 음식-음식이라는 이름의 독극물- 덕분에 오소마츠 형이 카라마츠를 대신하게 되었다. 

건 작전대로. 그리고 오소마츠 형은 웬일로 성실하게 일해서 텐구들 사이에서의 평가도 서서히 오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토도마츠가 “좀 더 확실한 자극이 필요해!” 하고 말을 꺼냈고, 그 이야기를 들은 대국주님이 오랜 지인인 대텐구님께 연락해서…


“전부 토도마츠 네 탓이냐아아아!!!!”

“왜 내 탓?! 나도 설마 이렇게 일이 커질 줄은 몰랐다고!!!!”

토도마츠의 멱살을 잡고 흔들자, 토도마츠도 울상이 된 얼굴로 외쳤다. 

미리 대텐구가 올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토도마츠는 청산의 맞은편, 우리 신사에서 느긋하게 우리와 함께 청산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내 부르짖음에 토도마츠도 얼굴을 흔들며 울먹였다. 

완전히 수라장이 된 우리 둘을 말없이 바라보던 이치마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쥬시마츠는 쥬시마츠대로 활짝 웃으며 “아하하!! 다 불탔네!!” 하고 밝게 외쳤다. 

대국주님이 미리 결계를 쳐놓아 인간 마을에 피해는 가지 않았지만!!! 


“진짜로.. 이 이상 일을 벌리지 말아 주세요…”

토도마츠에게 아무리 역정을 내도 이미 벌어진 일. 

깊은 한숨을 내쉬며 대국주님게 부탁드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오냐, 오냐.” 하는 가벼운 대답뿐이었다. 

이 망할 할아범. 대국주만 아니면 이 자리에서 당장..!! 

뿌득뿌득 이를 갈고 있는 내 어깨에 통- 손을 올려놓은 이치마츠가 “진정해. 쵸로마츠 형.” 하고 말했다. 

이치마츠의 머리 위에 솟은 한 쌍의 귀가 축 처진 것을 보고 천천히 심호흡을 해 마음을 진정시켰다. 

완전히 혼란 상태가 되어 머리를 싸매고 주저앉아 떨고 있는 토도마츠를 달랜 뒤, 대국주님께 뭐라 불평을 하려 입을 연 순간, 대국주님 만큼이나 대책없이 유쾌한 목소리가 신사에 울렸다.


“이햐하하하하하!!! 저 놈 제법이고만!!!”

종이 식신으로 만들어낸 쿠라마텐구들과 함께 청산으로 위풍당당하게 날아갔던 대텐구님이 완전히 숯검댕이가 되어 돌아왔다. 

아아아, 오소마츠 형. 적당히 좀 하지!!!!! 

완전히 까매진 옷에 울상을 지으며 “죄송합니다. 저희 바보 토지신이…” 하고 사죄드리자, 방긋 웃은 대텐구님은 호쾌하게 “괜찮네!!” 하며 웃었다. 

어느새 대국주님까지 대텐구님에게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고는 뭐가 그리 신난지 아주 턱이 빠져라 웃었다.


“이야~, 저 놈 여우로 썩히긴 아까운 놈이고만!!”

“그렇지!!! 우리 아들내미가 좀 대단하긴 해!!”

“게다가 생긴것도 얄상하니 이뿌더만!!!”

“그렇지~?!”

뭐야, 저 바보 아버지와 그의 유쾌한 친구 같은 대화는… 

바보 같은 이야기꽃을 피운 대국주님과 대텐구님은 순식간에 신사 마당에 술판을 펼쳤다. 

부어라 마셔라 하고 술을 들이붓는 둘을 보며 몸을 떨었다.


“그래!! 저 놈을 우리 아들내미랑 혼인시키면 어떨까?! 내 뒤를 이을 녀석인데 말이야!!”

“어허~, 안 돼지!! 우리 아들내미한텐 이미 짝이 있으이!!”

“에이~ 그런 것, 끊어버리면 그만 아닌가!!”

“안 된대도~”

“우햐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카라마츠가 들으면 등골이 오싹할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저 둘은 무시하고, 청산을 바라보고 있는 토토코에게 시선을 돌렸다. 

토도마츠의 옆에 가만히 서 있는 토토코도 딱히 뭔가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는 않았다. 

“이치마츠, 오소마츠 형에게 가보자.”

“응.”

“나도!! 나도 가겠슴다!!”

이치마츠를 부르자 쥬시마츠도 팔을 들어 힘차게 흔들며 외쳤다. 

가라앉을줄 모르는 쥬시마츠의 활발함에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토도마츠에게도 시선을 주었지만, 토토코와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건지 이쪽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뭐, 놔두면 알아서 돌아올 녀석이니 지금은 놔두자. 붉게 물든 하늘은 다시 푸른 쪽빛을 띠고 있었다. 

푸르고 넓은 하늘 아래 우뚝 서 있는 청산을 향해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9.


대텐구가 습격한 이후, 텐구들 사이에서의 오소마츠의 평가는 일변했다.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대리를 하는 동안 서서히 늘어난 오소마츠를 향한 호의가 순식간에 치솟아, 영지내의 모든 텐구들은 오소마츠를 진정으로 존경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대텐구의 칩임에 아직 다 낫지 않은 몸을 일으켜 싸우려는 카라마츠는 말리느라 늦은 오소마츠는 멋지게 대텐구를 몰아냈고, 부상당한 텐구들의 상처를 모두 치료해 주었다. 

오히려 평판이 좋아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 

텐구의 침입의 흔적들이 모두 사라질 즈음엔 카라마츠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시 카라마츠가 수장의 자리에 복귀하는 것을 축하하고, 대텐구를 완전히 몰아낸 것을 자축하는 파티 한 가운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가 몰려드는 텐구들의 감사 인사를 받느라 한창이었다. 

저마다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의 앞으로 다가와 카라마츠에겐 완쾌의 축하를, 오소마츠에겐 감사의 인사를 하는 통에 오소마츠는 정신이 없었다. 

한꺼번에 몰려와서 한번에 인사하면 좋으련만, 텐구들은 하나같이 딱딱한 격식을 차리며 오소마츠에게서 한 발자국 거리를 두고 허리 숙여 인사했다. 

줄을 이은 텐구들의 인사가 반복될수록 오소마츠의 얼굴에선 지루함이 서서히 꽃폈다. 

카라마츠도 오소마츠의 표정을 살피고 쓰게 웃으며 오소마츠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오소마츠, 조금만 더 참으면 끝난다.”

“응~, 빨리 끝내고 놀고 싶은데~”

오소마츠를 자신 쪽으로 끌어 당겨 귓가에 다정하게 속삭인 카라마츠를 보며 미소지은 오소마츠가 작게 투덜거렸다. 


“오소마츠 형.”

“아, 쵸로마츠!! 어디 갔다가 이제 와?”

“잠깐, 신사에 놓고 온 게 있어서…”

“그래? 토도마츠는?”

“곧 올거야.”

오소마츠의 곁으로 다가간 쵸로마츠가 그 옆에 섰다. 

오소마츠의 보좌인 자신의 지정자리인 오소마츠의 옆에 선 쵸로마츠가 아직도 길게 줄지어 선 텐구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욕할 때는 언제고…’

백년이 넘어가도록 오소마츠를 험담하기 바빳던 텐구들이 대텐구의 침입 한번에 얼굴을 싹 바꾸고 오소마츠에게 감사를 퍼붓는 것이 쵸로마츠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상을 찌푸린 쵸로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쓴웃음을 짓는 동안, 고양이로 몸을 바꾼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치마츄~, 어서 와.”

“응, 다녀왔어. 오소마츠 형.”

제 품에 안긴 이치마츠를 쓰다듬는 오소마츠의 손길에 이치마츠가 눈을 가늘게 뜨고 골골 울었다. 

이치마츠의 접근에 딱딱하게 굳었던 카라마츠가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는 이치마츠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치마츠도 흘깃 카라마츠에게 눈길을 주었으니,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은 채 오소마츠의 품 안에 가만히 안겨있었다.

 

‘카라마츠가 아팠다고 봐주는 건가?’

항상 카라마츠만 보면 으르렁거렸던 이치마츠가 조용한 것에 놀라며 쵸로마츠가 중얼거렸다. 

토토코의 괴상무시한 음식으로 꼬박 일주일 가까이 앓아누웠던 카라마츠를, 티는 내지 않았지만 이치마츠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피식- 하고 솔직하지 못한 동생을 보며 웃음을 흘린 쵸로마츠의 옆에 토도마츠가 섰다.


“우왓! 깜짝이야.”

“헤헤헤.”

“언제 왔어?”

“아까~”

쵸로마츠의 옆에 서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에게 인사하고 있는 텐구들을 응시한 토도마츠가 쵸로마츠에게 쥬시마츠의 행방을 물었다. 

쵸로마츠는 음식이 가득 쌓인 상 앞에서 흡사 아귀(餓鬼)처럼 음식을 흡입하는 쥬시마츠를 가리켰다. 

쥬시마츠의 옆에 서서 빙긋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토도마츠도 밝게 웃었다. 


“아, 쇼!”

“감사합니다, 오소마츠님. 오소마츠님 덕분에..”

“응, 그런건 됐으니까! 상처는 다 나았어?”

“네! 오소마츠님 덕분에!”

“그래~ 다행이네~”

“..네.”

꼬리를 살랑이며 눈 앞에 선 텐구의 안부를 묻는 오소마츠가 다정하게 웃었다. 

바로 눈 앞에서 오소마츠의 미소를 본 쇼는 잔뜩 붉어진 얼굴을 숨기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가 그리 반가운지 오소마츠가 쇼에게 다가가 이것저것 묻는 동안, 쇼는 오소마츠와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천천히 대답했다. 

귀까지 빨개진 텐구를 보며 토도마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이거 또 오소마츠 형 신자 하나 생기겠네.’ 

오소마츠가 묻는 질문에 모두 대답한 쇼가 재빨리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를 피했다. 

멀어져가는 쇼의 등을 보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했다. 

좌우로 힘차게 흔들거리던 오소마츠의 꼬리가 천천히 그 속도를 줄이더니 이내 바닥에 축- 늘어졌다.


“쇼, 내가 싫은가?”

“아니, 그 반댈걸?”

“반대?”

순진한 얼굴로 묻는 오소마츠를 보며 토도마츠가 쓴웃음을 짓고는 화제를 바꿔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이제 오소마츠 형도 텐구들에게 인정받았겠다. 혼례는 언제 올릴꺼야?”

“톳, 토도마츠!?”

“아, 그러고보니 아직 혼례 안 올렸네…”

토도마츠의 말에 당황한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망연히 중얼거렸다. 

오소마츠의 말에 토도마츠와 쵸로마츠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벙긋거렸다. 

황당하단 두 동생을 보며 오소마츠가 빵긋 웃었다.


“까먹고 있었어~ 에헷~”

“‘에헷~’이 아니야 이 망할 신!!!!”

혀를 내밀고 웃는 오소마츠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려친 쵸로마츠가 머리를 잡았다. 

쵸로마츠에게 맞아 생긴 혹을 문지르며 오소마츠가 “아프잖아!! 이 딸딸마츠!!!” 하고 외쳤지만, 쵸로마츠의 싸늘한 눈빛만이 돌아왔다.


“우와, 쵸로마츠 저 녀석. 신을 노려보다니 있을 수 없다고~”

“오소마츠도 잘한 건 없다.”

입을 삐죽 내밀고 툴툴대는 오소마츠에게 다가간 카라마츠가 혹이 난 머리를 문질러주며 말했다. 

“에~” 하고 볼을 부풀리는 오소마츠를 보며 빙긋 웃은 카라마츠가 다시 오소마츠의 허리에 팔을 감고 끌어당겼다. 

저항없이 카라마츠의 품에 안긴 오소마츠의 꼬리가 다시 너울댔다.


“혼례를 올리고나면 오소마츠 형은 어디서 지내? 신사? 여기?”

문득 생각났다는 얼굴로 토도마츠가 물었다. 오소마츠는 “음-“ 하고 잠시 고민하더니 생글 웃으며 “당연히 여기지!” 하고 대답했다. 


“아니, 안 ㄷ…”

“안 된다!”

“엥?”

손을 들어 반대하려던 쵸로마츠를 막고 카라마츠가 외쳤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카라마츠의 반대에 모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 왜?? 오소마츠 형하고 같이 살 수 있다고? 카라마츠 형.”

토도마츠가 크게 뜬 눈을 깜빡이며 묻자 카라마츠가 시선을 돌려 누군가를 흘겨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된다. 차라리 내가 신사에게 같이 지내는 건 어때?”

“아? 죽인다 개똥마츠.”

카라마츠의 제안에 즉각 이치마츠가 대답했다. 

오소마츠와 쵸로마츠, 이치마츠가 오붓하게 지내고 있는 신사에 카라마츠가 들어온다니. 죽어도 싫다는 얼굴로 카라마츠를 노려보며 이치마츠가 입을 열었다.


“그냥 이대로 지내면 되잖아.”

“뭐, 그렇네~”

이치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고는 당황해 뭐라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토도마츠를 이끌고 음식이 잔뜩 차려진 상으로 달려갔다. 

대텐구를 몰아내는데 너무 많은 힘을 소비한 탓에 배가 고팠다. 

산의 정기로도 충분히 힘을 채워지지만, 식사에 맛을 들인 오소마츠는 밥을 먹지 않으면 제대로 힘이 돌아온 것 같지 않았다. 

음식을 향해 눈을 빛내며 달려나가는 오소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다가갔다.


“왜 반대하는데?”

“…오소마츠를…”

“응?”

카라마츠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쵸로마츠는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의 시선이 꽂힌 자에게 눈길을 주었다. 

카라마츠의 시선 끝엔 방금 전, 새빨개진 얼굴로 오소마츠의 질문에 대답했던 젊은 텐구가 있었다. 

행복하단 얼굴로 음식을 입에 넣는 오소마츠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젊은 텐구를 보며 쯧! 하고 혀를 찬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에게 다가가며 한 마디를 흘렸다.


“오소마츠를 좋아하는 녀석이 있는 이 곳에, 오소마츠를 이 이상 머물게 할 생각은 없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자신의 동료, 식솔들에게도 독점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카라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헛웃음을 흘렸다. 

텐구들 사이에서는 인망 높고 존경받는 수장이지만, 속내는 오소마츠를 향한 어린애와 같은 독점욕으로 점철된 사내라는 것을 모르는 텐구들에게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며 쵸로마츠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붉게 노을로 물든 하늘은 어제와 같이 너무나 평화롭게 여우골 위에 떠 있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제 완결편 하나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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