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편입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늦어서 죄송해요!ㅠㅠ
* 커피도 마시지 않았는데, 왜 잠이 안올까요...
* 이번편은 플롯 짜는데도 고생하고 글 쓰는데고 고생했네요...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맑은 하늘 아래, 단아하게 신사 안으로 들어선 요스즈메*의 모습에 오소마츠를 비롯한 모두가 숨을 삼켰다.
* 요스즈메 : 일본 고치 현과 에미헤 현에 전해내려오는 새 요괴. '밤참새'라고도 한다. [출처:나무위키]
시로무쿠(白無垢)*를 입은 그녀와 하카마와 검은 하오리를 입은 의젓한 모습의 쥬시마츠가 오소마츠의 앞에 섰다.
*일본 전통 혼례식 때 신부가 입는 기모노 [출처:http://young.hyundai.com/magazine/campus]
이 일대 토지를 다스리는 토지신으로서 오소마츠가 두 사람에게 축복을 내리며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을 선언했다.
활짝 웃으며 곁에 선 그녀와 손을 맞잡은 쥬시마츠가 정말로 행복한 얼굴로 웃었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카라마츠 일동도 쥬시마츠에게 다가와 축하의 말을 건넸다.
언제까지고 어린아이로만 보았던 쥬시마츠가 어느새 훌륭하게 성장해 자신의 배필을 맞이한 것을 오소마츠가 진심으로 축하하며 자애롭게 웃었다.
“그럼, 쥬시마츠 형에게 깜짝 선물~!!!”
토도마츠가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토도마츠의 발언에 모두 놀란 얼굴로 토도마츠를 바라보았다.
토도마츠는 자신에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것에 만족하며 오소마츠에게 시선을 던졌다.
빙긋이 미소를 지은 오소마츠가 손을 들어 하늘에서 대기하고 있던 화차(火車)를 불렀다.
“쥬시마츠 형에게 ‘신혼여행’을 선물합니다~!!!”
짜잔- 하고 스스로 외치며 토도마츠가 웃었다.
토도마츠와 함께 인간 마을에 자주 놀러갔던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는 기쁘게 웃으며 토도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카라마츠와 쵸로마츠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인간들의 풍습이래. 결혼을 하고 나서 부부가 여행을 다녀오는거야.”
멍청히 자신을 바라보는 둘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 오소마츠가 친절히 토도마츠를 대신해 설명했다.
““헤에-“” 하고 감탄사를 내뱉으며 카라마츠와 쵸로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다가가 귓가에 뭐라 속삭이자 카라마츠가 기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을 부릴 수 있는 부채를 꺼내 든 카라마츠가 바람을 일으켜 쥬시마츠와 그녀를 부드럽게 화차에 태웠다.
부부가 타자마자 화차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오키나와에 있는 토지신에게 미리 말해놨으니까, 실컷 놀다 와~”
오소마츠가 떠오르는 화차를 향해 외치자, 쥬시마츠가 화차에 달린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손을 흔들었다.
토도마츠와 이치마츠도 힘차게 손을 흔들며 오늘 막 맺어진 부부를 배웅했다.
“오소마츠 형, 오키나와에도 아는 신이 있구나…”
쥬시마츠 부부를 태운 화차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토도마츠가 고개를 돌려 오소마츠에게 말했다.
오소마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뭐, 그렇지-“ 하고 대답했다.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있는 남쪽 섬이었다.
그런 먼 곳에 지인이 있다는 것에 토도마츠는 놀라고 있었다.
“대체 오소마츠 형의 인맥은 얼마나 넓은 걸까?”
“…그러게…”
상상도 되지 않는 오소마츠의 인맥에 혀를 내두루는 토도마츠와 쵸로마츠가 기이하단 눈빛으로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2.
통통 어깨를 두드리며 토도마츠가 피곤한 얼굴로 하품을 했다.
오늘은 쥬시마츠의 결혼식이 있었던만큼 아침 일찍 일어나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많았다.
평소보다 배로 느껴지는 피로감에 뻑뻑한 눈을 꿈뻑이며 토도마츠가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토, 토도마츠!!”
“응?”
다급하게 토도마츠를 부르는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토도마츠가 고개를 돌렸다.
뭔가 할 말이 있는지 카라마츠가 입을 벙긋거리며 토도마츠를 붙잡았다.
“뭐야?”
“그… 잠깐, 괜찮은가?”
“뭐, 괜찮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눈썹을 찌푸리며 토도마츠가 앞서 걷는 카라마츠의 뒤를 따랐다.
카라마츠의 방에 도착해 서로 마주보고 앉은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저기, 카라마츠 형?”
“…아아…”
“뭔데? 하고 싶은 말이…”
“그러니까아…”
제대로 말을 하지 않고 목소리를 흐리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한계를 느낀 토도마츠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 뭔데!!”
“오늘, 쥬시마츠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다짐한건데…”
“응.”
“그.. 오소마츠에게, 청..혼을 하려고…”
“어???”
생각지도 못했던 카라마츠의 말에 토도마츠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방금 전까지 피곤에 절어 있던 토도마츠의 눈에 생기가 돌아오며 반짝반짝 빛났다.
“언제? 언제 청혼하려고? 아니, 그것보다 대체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한 거야? 둘이 사귄지는 얼마 안 됐잖아?!”
“토, 토도마츠.. 잠깐, 진정해!”
점점 카라마츠에게 가까이 다가와 결국엔 카라마츠의 얼굴 앞까지 근접한 토도마츠를 살며시 밀어내며 카라마츠가 식은땀을 흘렸다.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카라마츠에게 가까이 앉아있는지 눈치챈 토도마츠가 헛기침을 하며 다시 뒷걸음질해 방석에 엉덩이를 내렸다.
질문 공세를 멈췄지만 여전히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토도마츠를 응시하며 카라마츠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 확실히 오소마츠와 교제하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오소마츠의 곁에 있었던 시간은 기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오소마츠의 곁에 있고 싶다. 오늘 쥬시마츠가 너무나 행복해 보였고. 그래서…”
“오소마츠 형한테 청혼하고 싶어진 거야?!”
“..아아.”
망설이다 대답한 카라마츠가 고개를 돌려 살며시 붉어진 얼굴을 감췄다.
‘푸흥-!!’ 하고 거센 콧바람을 내쉰 토도마츠가 두 손을 모으고 감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카라마츠 형이!! 자기 마음도 깨닫지 못했던 둔탱이 카라마츠 형이!! 스스로 청혼을 하겠다고 하다니~!!!”
“…토도마츠..”
나직이 토도마츠를 부르는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토도마츠가 카라마츠를 흘끔 쳐다보았다.
방금 전 말에 심기가 불편했는지, 카라마츠의 짙은 눈썹 사이의 주름이 깊어져 있었다.
빙긋- 순수한 미소를 만들어내며 토도마츠가 손을 저었다.
“에이~ 자잘한 건 신경쓰지 마~. 그것보다! 청혼 방법 말이지!!!”
“…아아.”
재빨리 화제를 돌리는 막내의 모습에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대답했다.
카라마츠의 장지문 너머 밝게 빛나는 등불은 밤이 깊어도 꺼지지 않았다.
3.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주먹을 쥔 손바닥에 땀이 차는 것이 느껴져 한숨을 내쉬었다.
몇 백년을 살아왔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긴장한 적은 없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뱉으며 심호흡을 하고 시선을 위로 올렸다.
아름다운 빨강으로 물든 하늘 아래, 토리이에 홀로 오소마츠가 앉아있었다.
옛날부터 오소마츠는 항상 저 자리에서 마을을 보살펴왔다.
절로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와 함께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따뜻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항상 저렇게 혼자서 고독하게 마을을 보던 오소마츠의 곁에 내가 자리하고 싶었다.
앞으로 이어질 나날을 오소마츠의 곁에서 보내고 싶은 마음을 다시금 확인하며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담백하게 가자! 괜히 이벤트니 뭐니 하는 것보단 그게 훨씬 나아!”
“..이, 벤트?”
“아, 그런게 있어. 암튼!! 오소마츠 형한테는 잔재주를 피는 것보다 직설적으로! 마음을 전하는게 제일이라고 생각해!!”
밤새 토도마츠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다시 심호흡을 하고 토리이에 발을 내디뎠다.
“카라마츠”
“뭐, 뭔가!!”
갑작스런 부름에 말을 더듬었다.
겨우 진정시켰던 심장이 다시 폭주를 시작했다.
귓가에서 울리는 심장소리에 신음하며 오소마츠를 바라보자 마치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붉은 눈이 내게 꽂혔다.
가늘게 휜 눈매와 농염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만들어낸 온유한 미소에, 오소마츠의 주변이 빛나는 것 같았다.
“쥬시마츠, 잘 지내고 있으려나~?”
얼마 전, 짝과 함께 여행을 떠난 동생을 걱정하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잘 지내고 있을 거다.”
“그렇겠지~? 뭐, 앞으로 일주일쯤 뒤엔 돌아올 테니까..”
“..외로운가?”
“..조금은?”
“후후-“ 하고 웃는 얼굴이 석양에 비쳐 쓸쓸하게 보였다.
더 이상 오소마츠의 저런 얼굴은 보고 싶지 않다.
앞으로는 항상 행복하게 웃는 얼굴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온 몸을 조여오는 긴장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위해 심호흡을 했다.
바싹 마른 입술을 핥아 적시고 한 걸음 더 오소마츠의 곁으로 다가갔다.
“..카라마츠.”
“읏!! 뭐, 뭔가?!”
뒤집어진 목소리에 좌절하며 오소마츠의 곁에 섰다.
토리이에 앉은 오소마츠가 팡팡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나와 눈을 맞췄다.
붉은 눈에 온전히 내가 비쳐지고 있었다.
“카라마츠, 너 아까부터 이상해. 뭔가 할 말 있어?”
나는 대체 언제쯤 이 여우신을 속일 수 있을까…
제대로 숨기지 못하는 내가 문제인건가…
고찰하며 한숨 쉬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오소마츠를 보며 입을 열었다.
“..오소마츠.”
“응.”
“나에게 평생 네 옆에 있을 수 있는 자격을 줘.”
“…헤?”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기울이는 오소마츠의 손을 잡았다.
차가워진 공기에 식은 손을 두 손으로 소중하게 감싸고 다시 말했다.
“나와 가족이 되어 줘.”
“...”
겨우 내 말의 의미가 전해진 것인지 오소마츠의 눈이 점점 커지더니 곧 온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황금빛의 귀가 뒤로 처지고 꼬리가 분주하게 움직이며 오소마츠가 당황하고 있는 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귀까지 벌겋게 익어 입을 뻐끔거리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오소마츠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 얇은 허리를 껴안았다.
품에 안긴 오소마츠의 심장이 내 심장과 함께 거세게 뛰고 있는 것이 느껴져, 달콤한 행복감이 온 몸을 타고 올라왔다.
오소마츠의 체온과 체취에 뜨거워진 숨을 내쉬며 오소마츠를 부르자, 오소마츠의 귀와 꼬리가 보기좋게 튀어 올랐다.
“오소마츠…”
“…진짜, 너 완전 창피해-“
작게 중얼거리며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 오소마츠가 두 손을 올려 내 등을 감쌌다.
품에 폭 안긴 귀엽고도 아름다운 생명체에 미소지으며, 오소마츠를 안고 있는 팔에 힘을 주어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 순간,
“절대 안 된다!!!!!”
굉음과 함께 노성이 온 신사 안에 울렸다.
나도 오소마츠도 놀라 감싸고 있던 팔을 풀자 눈 앞에 8척은 족히 넘어보이는 커다란 노인이 서 있었다.
날개도 없이 공중에 떠 있는 모습에, 이 노인 역시 오소마츠와 같은 ‘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할아범?!”
오소마츠의 외침에 노인이 화난 얼굴로 “후-“ 하고 숨을 내뿜었다.
“이 몸은 인정할 수 없다!!!”
이 때의 나는 그 말로 인하여 내 고난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
4.
솔직히 말해서 나는 외로웠다.
오랜 세월을 거쳐 겨우 카라마츠와 연인이 되었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엔 언젠가 이 관계가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항상 자리잡고 있었다.
‘신’과 ‘요괴’.
그것이 나와 카라마츠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벽이었다.
언젠가 카라마츠에게 어울리는 ‘요괴’가 나타난다면, 나와의 관계는 끝날 것이라는 생각을 아무리 노력해도 떨쳐낼 수 없었다.
과거, 인간이었던 카라마츠와도, 내가 ‘신’이고 카라마츠가 ‘인간’이었기에 헤어지게 된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할 수 없다고 되뇌이며 포기한 척을 했다. 언젠가 헤어지게 되어도 할 수 없다고. ‘영원’을 바라지 말자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따뜻한 카라마츠의 품에 안겨,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내가 두려워하지 못했던 그 한 마디를, 카라마츠가 먼저 해 주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다.
너무 기뻐서 지금 이게 꿈인지 두려워질 정도로…
찾아보면 분명 카라마츠에게 어울리는 요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를 자신의 짝으로 선택해준 것이 기뻐서, 카라마츠의 단단한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천 너머로 쿵쿵 울리는 카라마츠의 고동 소리에 눈을 감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카라마츠의 품 안은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절대 안 된다!!!!!”
익숙한 노성이 귀에 들어오기 전 까지는…
“대체-, 왜 온거야?”
후르륵- 차를 마시고 있는 할아범을 보며 물었지만, 할아범은 입을 굳게 다물고 쵸로마츠가 내린 차만 홀짝거렸다.
꿈만 같은 카라마츠의 청혼을 중간에 끼어들어 망쳐놓고, 인정할 수 없다며 쩌렁쩌렁 외쳤던 할아범의 행태에 어이를 잃은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카라마츠도 황당하단 얼굴로 할아범을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타이밍인지 쵸로마츠와 이치마츠, 토도마츠도 돌아왔고, 할아범을 본 쵸로마츠가 급히 예를 갖추어 인사를 했다.
쵸로마츠의 소개에 모두 소스라치게 놀라며 인사를 했고, 카라마츠도 할아범에게 인사를 했으나, 이 망할 할아범은 대체 무슨 속셈인지 카라마츠의 인사만은 받아주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침울해진 카라마츠를 토도마츠에게 맡겨 돌려보내고 할아범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온 이후로, 할아범은 계속 입을 다물고 있다.
“저~기~?”
찻잔을 내려놓은 할아범을 다시 한 번 부르자, 할아범이 쭉 감고 있던 두 눈을 번쩍 떴다.
움찔 놀라 온 몸의 털이 곤두섰다.
“이 몸은 허락할 수 없다!!”
“하아?”
“켄고에게 부탁받은 너를 그런 녀석에게 줄 수 있을까 보냐!!”
“아니, 내가 애기도 아니고! 성인이고! 토지신이고!!”
“안 된다면 안 돼!! 그리고 며칠간 이 곳에 묵을 테니 그리 알아라!!”
““하아?!””
나와 함께 새로운 차를 들고 온 쵸로마츠가 외쳤다.
동네에서 쉽게 볼 법한 평범한 할아범으로 보여도, 이 할아범은 신들의 두령, ‘대국주’라는 자리에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며칠씩이나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국주님, 그럼 대체 일은…?”
쵸로마츠가 당황한 얼굴로 묻자 할아범이 두 눈을 감고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며칠 정도는 신하들이 알아서 해 줄 것이야! 유능한 녀석들이니.”
천상에 남겨진 신하들의 고생이 뻔히 보여 한숨과 함께 진심으로 그들을 동정했다.
쵸로마츠도 머리가 아픈지 인상을 잔뜩 쓰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짚고 있었다.
“그럼, 이 몸은 먼저 잘 터이니.”
“어? 아니, 잠깐! 할아범!!”
내 부름에도 아랑곳 않고 방을 나가는 할아범의 뒷모습에 다시 어이없는 헛웃음이 나왔다.
“어쩔꺼야?”
할아범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며 쵸로마츠가 물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 복이 달아나고 있어-.
어쩌냐고 물어도 나로서는 뭐라 대답해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무대뽀에 고집불통인 할아범의 마음을 내가 돌릴 수 있을 리 없다.
아버지도, 항상 지나치게 술을 마시는 할아범을 설득하려 했지만 끝끝내 할아범의 주량을 줄이지 못했다.
벌러덩 바닥에 누워 별다른 소동없이 할아범이 빨리 돌아가기만을 빌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마당으로 나가자 따각따각 나막신 소리를 내며 토도마츠와 카라마츠가 신사로 올라왔다.
항상 날아다녔던 카라마츠가 어째서 날개를 접고 토도마츠와 함께 걸어온 것인지, 의아한 얼굴로 다가가자 카라마츠가 나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오, 오소마츠으으으~”
“오소마츠 형, 카라마츠 형 좀 어떻게 해 줘…”
내게 다가와 나를 꼭 껴안는 카라마츠의 등을 토닥이자, 지친 얼굴의 토도마츠가 푹 한숨을 쉬었다.
고생이 많구나, 톳티-…
토도마츠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고 카라마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물었다.
“카라마츠, 왜 그래?”
“…대국주님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아…”
항상 자신만만하던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짙은 눈썹을 축 늘어뜨린 표정이 꼭 벌을 받는 강아지 같았다.
웃으면 안된다고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와 할아범의 관계를 내게 들어 잘 알고 있는 카라마츠가 할아범의 말에 풀이 죽는 것은 당연했다.
“그건 아마 할아범이 그냥 해본 소리…”
“이~ 놈~ 들~!!!!”
카라마츠를 달래려는데 뒤쪽에서 들려오는 할아범에 목소리에 이미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서 들고 왔는지 마당을 쓰는 빗자루를 들고 나와 카라마츠에게 달려든 할아범이 강하게 빗자루를 내리쳤다.
나와 카라마츠 둘 다 붙어있던 몸을 떼고 뒷걸음 쳐 할아범의 빗자루를 피하자 할아범이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내 앞을 가로막아 섰다.
“내가 네 놈을 인정할 때까지, 네 놈은 오소마츠에게 접근 금지다!!”
“…”
“잠깐, 할아범?!”
할아범의 선언에 경악한 나와, 세상을 모두 잃은 것 같은 카라마츠를 번갈아 보던 토도마츠가 두 팔을 올리고 항복 표시를 하며 저 쪽으로 걸어갔다.
잠깐 토도마츠!!! 이 냉혈괴물 녀석!!
이 상황을 어떻게 좀 하라고!! 도우라고!!!
쵸로마츠에게로 걸어가는 토도마츠를 실컷 노려봐준 후, 할아범의 뒤에서 나왔다.
“할아범!!! 대체 뭐야?!”
“어허!! 접근 금지!”
할아범의 뒤에서 나와 카라마츠에게 다가가려는 내 팔을 잡고 쭉 당기며 할아범이 빗자루의 끝을 카라마츠에게 겨누었다.
할아범의 저지에 환한 얼굴로 두 팔을 벌려 다가오는 나를 반기려 했던 카라마츠가 다시 울상을 지으며 힘없이 팔을 내렸다.
“할아범!”
내 외침에도 할아범은 내게 눈길도 주지 않고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내게 다가오려는 카라마츠와 그것을 막으려는 할아범 사이에 무언(無言)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결과는 당연히 할아범의 승리였다.
괜히 대국주라는 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몇 분간의 신경전 후, 할아범은 가슴을 펴고 승리의 미소를 피운 반면, 카라마츠는 땅바닥에 손을 집고 엎드려 자신의 패배를 처절하게 되씹어야 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거냐…
쵸로마츠 쪽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쵸로마츠도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토도마츠도 황당하단 얼굴을 하고 있는데, 이치마츠만이 흡족한 얼굴로 카라마츠를 보고 있었다.
“정! 내게 인정받고 싶다면!!”
할아범의 말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팟! 하고 공기를 울리며 할아범이 손가락을 뻗어 카라마츠를 가리켰다.
“3일의 시간을 주마! 내가 너를 인정하게 만들어 보아라!”
“에…”
정말로 이 망할 할아범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한숨과 함께 신음하는 나와 달리 카라마츠가 벌떡 일어나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할아범과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디를 가는 걸까…”
하늘로 날아간 할아범과 카라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중얼거렸다.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쵸로마츠와 토도마츠와 이치마츠의 시선은 모두 하늘로 향해 있었다.
토도마츠가 한심하단 눈빛으로 카라마츠를 보며 말했다.
“자기 영지에 간거 아냐? 자기가 어떻게 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지 보여주려고 하는 거겠지.”
“아~ 과연.”
토도마츠의 말에 쵸로마츠가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며 납득했다.
카라마츠… 발상은 좋지만, 할아범은 그런 걸로 넘어갈 상대가 아니라고…
카라마츠의 앞날이 손바닥 보듯 훤히 보여 한숨을 쉬고, 토도마츠에게 카라마츠를 따라가 살펴봐달라고 부탁했다.
토도마츠도 잘 풀릴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걱정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신사를 떠나 카라스텐구의 영지로 향했다.
“모처럼 받은 청혼인데, 엉망이 됐네.”
“그러게 말이…”
쵸로마츠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하다가 아차! 하고 고개를 돌려 쵸로마츠를 바라보았다.
능글능글하게 이를 드러내고 웃는 쵸로마츠의 사악한 미소에 자신이 한 실수를 깨닫고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쵸로마츠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후훗-“ 하고 기분 나쁘게 웃으며 “축하해?” 하고 내 어깨를 두드렸다.
쵸로마츠의 웃음에 앞으로 일주일간은 놀림당할 것을 예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5.
하늘을 날아간 카라마츠 형과 달리 도보로 이동할 수 밖에 없는 나는 카라마츠 형보다 훨씬 늦게 카라스텐구의 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급하게 뛰어와 흐트러진 숨을 정돈하며 영지 안으로 들어서자 카라마츠 형의 수하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거야 저렇게 바쁠 수 밖에 없다. 신들의 수령인 대국주가 방문한 것이다.
특특특특급의 손님이다.
뛰어다니는 젊은 텐구들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카라마츠 형이 있을 법한 장소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아무리 돌아다녀도 카라마츠 형의 날개깃하나 보이지 않는다.
벌써 전부 돌아보고 신사로 돌아갔나? 혀를 차고 마지막으로 카라마츠 형의 집무실을 한 번더 둘러보기로 했다.
“흐음- 그럭저럭 체계는 잡혀져 있구나.”
얇은 장지문 너머로 들리는 굵은 목소리에 겨우 카라마츠 형과 대국주를 찾아낸 것에 안도했다.
지금은 들어갈 때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채고 문 옆에 앉아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필사적으로 카라마츠 형은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설명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 마을을 지켰는지, 오소마츠 형이 돌아오고 나서 어떻게 협력해 왔는지, 중간중간 오소마츠 형이 있어준 덕분에 마을이 무사할 수 있었다는 칭찬을 넣어가며 설득하고 있었다.
카라마츠형치고는 제법 그럴듯한 설득이었다.
이건… 가능성이 있는거 아니야?
작은 희망을 품어보았지만, 카라마츠 형의 설득에도 대국주의 대답은 시큰둥했다.
땅거미가 꺼질 때쯤, 문이 열리고 대국주가 걸어나왔다.
대국주를 따라 나온 카라마츠 형의 얼굴을 보아서는 설득은 실패한 것 같았다.
“그럼 이 몸은 돌아가겠다.”
“아,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다!”
“…네,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카라마츠 형의 인사도 듣는둥 마는둥, 대국주는 하늘로 날아올라 금새 모습을 감추었다.
“완~전 밥맛이네.”
침울해진 카라마츠 형을 위로하기 위해 꺼낸 말이지만 딱히 겉치레 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간만에 카라마츠 형이 쓸데없는 미사여구도 붙이지 않고 제대로 된 설득을 했는데, 저런 반응을 할 필요는 없잖아? 기운 빠지게!
오소마츠 형에게 들어, 어린 오소마츠 형을 보살펴준 건 알고 있지만, 어째 마음에 들지 않는 할아버지다.
카라마츠 형은 힘없이 웃으며 “토도마츠, 저녁 먹자.” 하고 먼저 식당을 향해 걸어갔다.
축 처진 날개가 아플정도로 불쌍해보였다.
“카라마츠 형, 내일은 좀 다른 방향으로 나가야 해!!”
밥을 먹으며 맞은편에 앉은 카라마츠 형에게 말했다.
대국주에게는 카라마츠 형의 업적이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카라마츠 형을 도울 방법을 모색했다.
밥을 먹으면서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지은 카라마츠 형이 말했다.
“걱정 마, 토도마츠. 내게 맡겨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카라마츠 형은 조금 전까지 풀이 죽어있었던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만만한 카라마츠 형의 얼굴을 보며 스멀스멀 불안이 발을 타고 올라왔다.
카라마츠 형이 저렇게 단언할 때마다 결국 모든 일의 뒷처리는 내가 하게 되었던 것을 기억해내며 한숨을 쉬었다.
제발, 내일은 무사히 지나가기를…
6.
글러먹었다.
눈 앞에서 떠들고 있는 카라마츠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오소마츠 형 조차 제대로 얼굴을 들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다, 정작 가장 중요한 대국주님은 무표정.
“오소마츠의 눈은 마치 보석처럼 빛나는 것이 정말로 아름답고, 그 부드러운 털 결은 버릇이 되어 버릴 정도로 푹신푹신 합니다. 그리고 항상 귀엽다는 말을 속삭여주면 얼굴이 금새 붉어지는데, 볼 때마다 정말로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소마츠 형에 대한 찬양에 오소마츠 형은 제대로 앉아있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대국주님이 3일이라는 기회를 주셨고, 오늘은 그 둘째 날. 어제 토도마츠에게 들어서 카라마츠가 뭔가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아니,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카라마츠의 계획은 대국주의 앞에서 오소마츠 형의 자랑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오소마츠 형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그리고 자신이 그런 오소마츠 형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정말 끝도 없이 늘어놓는 말들에 절로 손가락이 오그라들었다.
오소마츠 형은 당연히 고개를 푹 숙이고 지금 이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
창피하겠지.
그 증거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오소마츠 형의 귀가 빨갛다.
황금빛의 귀는 처질대로 처져있고, 항상 살랑거리며 움직이던 꼬리도 힘을 잃고 바닥에 늘어져 있다.
하아~, 정말로 오늘 미리 이치마츠를 내보내서 정말 다행이다.
그 녀석이 있었다면 십중팔구 카라마츠 녀석에게 날라차기를 시전했을 것이다.
“오소마츠의 귀여운 부분은 그뿐이 아닙니다! ….”
그나저나 잘도 저런 낯뜨거운 말을 하는구나.
오소마츠 형한테는 항상 저런 말투를 쓰는건가?
힐끔 오소마츠 형을 바라보자 오소마츠 형이 절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도와달라는 눈치였지만, 닭살이 돋은 팔을 문지르며 자연스럽게 오소마츠 형의 눈길을 외면했다.
무리야. 도와줄 수 있을 리 없잖아, 이 상황에서…
솔직히 이 상황은 어색하기 이전에 무섭다.
술술 말을 늘어놓는 카라마츠를 앞에 두고 있는 대국주님은 지극히 무표정으로 턱을 괴고 카라마츠의 말을 그저 듣고만 있었다.
왜 무표정?! 겁나 무서운데요!!!
내가 봐왔던 대국주님은 항상 호탕하게 웃으며 오소마츠 형을 굉장히 아끼고, 인자한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표정!!
두려워하지 않을 리 없다.
빨리 지금 이 자리를 튀고 싶은 마음은 산처럼 높지만, 나갈 때를 놓쳐버린 나는 계속 오소마츠 형의 옆에 앉아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묻겠다.”
“네.”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내리고, 카라마츠의 말을 듣고 있던 대국주님이 입을 열었다.
카라마츠도 일순 모든 행동을 멈추고 뻣뻣하게 정좌한채 대답했다.
“너는, 만약 오소마츠와 네 식솔이 위험에 처해 있다면 누구를 선택할 거지?”
“..네?”
“오소마츠? 아님 네 동족?”
“아…”
“아니면, 이 마을이 커다란 위험을 맞이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소마츠를 희생해야 한다면, 너는 누구를 선택하겠느냐?”
“…”
“혹은 너와 오소마츠를 따르는 이 녀석들.”
대국주님의 손이 나를 가리켰다.
굳은 얼굴로 대국주님을 보는 카라마츠가 미간을 찡그렸다.
“이 녀석들과 오소마츠가 위험에 처했고, 둘 중 하나만 구할 수 있다면, 너는 누구를 구하겠느냐?”
“…대국주님.”
“말 돌리려 하지 말고, 대답해라.”
담담한 어조였지만, 그 속에 담긴 압력은 컸다.
굵고 낮은 대국주님의 목소리는 무겁게 공기를 짓눌렀다.
이 자리에선 무조건 ‘오소마츠 형’이라고 대답해야지!! 카라마츠!!!
애원하는 눈으로 카라마츠를 쳐다보았지만 카라마츠는 얼굴을 굳힌채,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어지는 침묵에 대국주님의 눈썹 한쪽이 위로 올라갔다.
“대답해보래도-“
“…”
대국주님의 재촉에도 카라마츠는 입을 열지 않았다.
무슨 생각인 거야, 저녀석!!
무조건 ‘오소마츠 형’이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카라마츠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할아범-, 유치한 질문 하지 마.”
줄곧 고개를 숙이고 있던 오소마츠 형이 나서서 말했다.
대국주님이 못마땅하단 얼굴로 오소마츠 형을 바라보았다.
명백히 왜 끼어드냐는 눈빛이었다.
“나도 그런 질문을 받으면 쉽게 대답 못한다고. 그리고 나는 충분히 강하니까 구할 필요 없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오소마츠 형이 카라마츠를 대변해 주었다.
놀란 눈으로 오소마츠 형을 보던 카라마츠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렸다.
“그럼, 오늘도 실패로구나.”
대국주님이 툭 던지듯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소마츠 형이 “어디 가려고?” 하고 묻자 “산보다!” 하고 대답하며 방을 나섰다.
“하아- 삐졌네, 저거.” 하고 오소마츠 형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기울였다.
카라마츠는 또 침울해져서 축 늘어뜨린 날개를 질질 끌며 신사를 나섰다.
어지간히도 기가 죽은 모습이 측은해 바래다 주려 했지만, 카라마츠가 거절했다.
카라마츠도 떠난 신사 안, 토리이에 올라가 있는 오소마츠 형을 불렀다.
“왜?”
“기분 안 나빴어?”
“..응?”
오소마츠 형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아까 카라마츠가 대답하지 못한 거.”
보통은 화가 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
당연히 마을보다도, 우리들보다도 오소마츠 형이 소중한게 당연하다.
그런데 오소마츠 형이라고 대답하지 않은 것이 오소마츠 형은 기분 나쁘지 않은건가 궁금했다.
오랜 세월 오소마츠 형의 곁에 있었지만, 오소마츠 형이 누군가를 소중하게 여기고 교제를 하는 것을 지켜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소마츠 형이 카라마츠에게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아~, 큭큭큭 그게 왜 기분이 나빠?”
웃음을 흘리며 눈을 가늘게 뜬 오소마츠 형의 표정에 말을 잃었다.
불그스름하게 물든 뺨과 호를 그리며 휘어진 눈매가 오소마츠 형의 감정을 여실히 비췄다.
기쁜거구나… 오소마츠 형은.
“나는 무조건 나만 좋아라~하는 건 바라지 않아. 아까도, 카라마츠가 나만큼이나 너희들이나 이 마을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서 기뻤는걸? 연인이란 이유로 나를 제일 우선하는 건, 이 횽아 기쁘지 않다고?”
오랜만에 보여주는 자애로운 미소에 나도 후- 하고 부드럽게 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 오소마츠 형의 표정은 정말로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빛났다.
그 얼굴을 잊지 말자고, 가슴 깊이 새기며 오소마츠 형의 곁에 섰다.
7.
터벅터벅 인적이 드문 길을 골라 청산을 향해 걸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단 하루. 하루 밖에 남지 않았는데,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는다.
오소마츠는 굳이 대국주님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위로했지만, 역시 그럴 수는 없다.
어느 순간, 부모 없이 존재하는 요괴.
요괴 사이의 교합으로 태어나는 요괴는 의외로 드물다.
나 역시 부모 없이 눈을 떴다.
카라스텐구의 마을에서 ‘존재’하게 된 나는, 깨어나자마자 내가 누구고, 자신이 요괴라는 것을 ‘인식’했다.
그렇기에 요괴에게 있어서 ‘부모’라는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 굉장히 귀중하고 소중한 것이다.
대국주님은 비록 오소마츠의 친부모는 아닐지라도, 지금까지 오소마츠를 돌봐준 ‘부모’와도 같은 분이다.
앞으로 남은 생을 오소마츠의 곁에 있고 싶기에, 오소마츠의 부모인 대국주님의 인정도 반드시 받아내고 싶다.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내게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 아무리 고추해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대국주님의 눈에는 내 모든 것이 보잘것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대국주님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런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뭔가 결정적인 것을 놓치고 있다는 심증은 드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갈피도 잡히지 않는다.
마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바람처럼, 확실한 형태를 가지지 못한 그것은 무정하게 내 곁을 스쳐 지나가버린다.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해야 옳은지. 어떻게 해야 대국주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
무지(無知)는 나를 깊은 바닥으로 끌어당겨 의심의 늪으로 가라앉힌다.
나는.. 오소마츠의 곁에 있어도 되는 것일까?
대국주님의 말대로 나는 오소마츠에겐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겐 오소마츠의 배필이 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신을 의심하는 어두운 생각들은 나를 더 깊은 늪으로 잡아당겼다.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어느새 청산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깜깜해진 주변을 둘러보며 숨을 내쉬고, 날개를 펼쳤다.
“어이, 개똥마츠.”
카라스텐구의 둥지를 향해 날아오르려는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걸걸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치마츠..”
“…”
이 늦은 시간까지 마을의 길고양이들과 어울리고 있었는지 이치마츠의 발치에는 여러마리의 고양이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꼬리를 살랑이며 모여있는 고양이들에게 인사를 한 이치마츠가 내게로 다가왔다.
항상 나른하게 반쯤 닫고 있는 눈이 똑바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이치마츠?”
“…별로, 기 죽을 필요 없잖아?”
“…”
“오소마츠 형의 옆엔, 네가 있는 편이 좋아. 너랑 있을 때의 오소마츠 형이 가장 행복해 보이니까.”
“…”
말을 마치고 뒤돌아 멀어지는 이치마츠의 등을 바라보며 말을 잃었다.
“핫!” 하고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작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 이치마츠가 지금 나를 위로한 것인가?
항상 나와 오소마츠 사이를 방해하던 이치마츠가?
뜨거워지는 눈기울에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눈을 가렸다.
방금 전까지 힘을 잃었던 온 몸에 활기가 맴돌았다.
그런가, 나는 오소마츠의 곁에 있어도 되는 건가.
누구보다도 오소마츠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이치마츠의 말이니까.
“하아-“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대국주님을 설득할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대국주님에게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나는 이미 가장 소중한 녀석들에게 인정을 받았지 않은가!
뿌옇게 흐려지는 시야와 대조적으로 피어오른 기쁨의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8.
술잔을 기울이며 술 향을 음미하는 대국주를 오소마츠가 무표정으로 응시했다.
목넘김이 좋은 달달한 술을 삼키고 입 안에 남은 잔향을 느끼며 눈을 뜬 대국주가 오소마츠를 마주보았다.
쵸로마츠도 물린, 두 사람만 남은 방 안.
무섭도록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가 둘 사이를 메웠다.
바짝 선 오소마츠의 귀가 머리 위에서 불쾌하게 까딱였다.
위로 치솟은 꼬리의 끝이 천천히 흔들리며 오소마츠의 언짢은 기분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무어냐.”
먼저 입을 연 것은 대국주였다.
스스로 빈 술잔에 다시 술을 채우며 대국주가 태연하게 묻는 것에 기어이 오소마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조금 심한 거 아니야?”
서두도 없이 다짜고짜 오소마츠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항상 나긋나긋했던 오소마츠의 목소리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화를 억누른 침중한 목소리에 대국주가 술잔을 내려놓았다.
“지금까지 반대 같은 거 하지 않았잖아.”
오소마츠의 말에 대국주가 턱을 굈다. “푸후~” 하고 술 냄새 섞인 숨을 내쉰 대국주가 입을 열었다.
“그래, 네가 그 녀석과 교제를 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았지. 하지만, ‘부부’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왜?”
대국주의 말에 오소마츠가 처량히 귀를 내렸다.
부모와도 같은 대국주에게 카라마츠와의 사이를 인정받고 싶은 것은 오소마츠도 마찬가지였다.
오랜 세월 함께 한 대국주의 마음을 지금만큼은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오소마츠는 그저 답답하고 슬펐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카라마츠를, 대국주가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이 그저 슬펐다.
눈썹을 내리고 괴로운 얼굴로 꼬리도, 귀도 힘을 잃고 처져 있는 모습이 애처로워보여 대국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소마츠의 앞에 앉았다.
자신의 앞에 다가온 대국주를 오소마츠가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촉촉하게 오소마츠의 눈을 적신 눈물에 대국주의 얼굴이 비쳤다.
거친 손을 올려 오소마츠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 대국주가 눈을 내리깔았다.
“나라고 마음이 편할성 싶으냐. 너와 그 아이의 ‘연(緣)’은 이 할아비도 잘 알고 있다.”
“그럼 왜..!”
“…”
대답을 돌려주지 않고,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는 대국주의 손을 거부하지 않은 채, 오소마츠가 고개를 숙였다.
대국주라는 자리는 자유시간도 허락치 않을 정도로 바쁜 직책이었다.
매일 올라오는 서류들, 신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다툼의 중재, 신들이 사는 천상의 지배. 바쁘지 않은 날이 없는 그런 나날. 오랜 세월, 그런 나날에 익숙해진 대국주는 해도 뜨기 전에 눈을 떴다.
어젯밤, 결국 오소마츠가 울음을 터뜨린 것이 걸려, 마음에 남은 가시에 텁텁함을 느끼며 몸을 일으킨 대국주가 방을 나섰다.
대화가 끝나고 대국주의 납득했는지, 오소마츠는 더 이상 대국주가 카라마츠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할 일이 생겼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던 오소마츠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 앞에서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어찌 달래면 좋단 말이냐-‘
영겁에 가까운 세월을 산 대국주이건만, 작은 여우 하나 달랠 재주가 없는 것에 스스로 한탄하며 마당에 나선 대국주가 숨을 삼켰다.
이제야 겨우 산 너머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한 해가 신사의 앞마당을 밝게 비췄다.
따스한 햇빛에 비쳐 등색(橙色)으로 물든 토리이 위에 망연히 앉아있는 하나의 인영.
뭐라 말을 걸어야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대국주가 토리이를 향해 걷던 걸음을 멈췄다.
적막한 신사 안을 울리는 힘찬 날갯짓 소리에 대국주가 재빨리 신사 안의 사당으로 몸을 숨겼다.
작은 목소리로 주술을 외워 바람의 방향을 바꾼 대국주가 토리이 위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오소마츠, 계속 이 자리에 있었나.”
“응. 조금…”
“어젯밤의 그건, 그저 스쳐 지나가는 기운이었다.”
“응~, 그대도 여긴 ‘내 마을’이니까…”
“…그런가. 그래도 너무 무리 하지 말아줘.”
“하핫, 생각해 보고~”
“..나 참.”
둘의 대화를 엿들으며 대국주가 어제 스쳐지나가듯 느껴진 부정한 기운을 떠올렸다.
제법 강한 기운이었지만, 이 마을에 들어오려는 기색은 없었다.
오소마츠가 세운 강대한 결계는 그런 기운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을에 해도 가하지 않고 지나가기만 했던, 별 것 아니었던 작은 일.
하지만 오소마츠는 아무래도 불안했던 것이다. 대국주와의 대화도 마무리짓고 바로 토리이에 올라 밤새 결계를 지킬 정도로, 오소마츠는 이 마을을 지키고 싶었다.
아무리 스쳐지나가는 것이라해도 오소마츠는 방심하고 싶지 않았다.
서서히 햇빛을 받아 어둠이 사라져가는 마을을 보는 오소마츠가 뻑뻑한 눈을 문질렀다.
따각- 하고 울린 나막신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바로 곁에 카라마츠의 체온이 느껴졌다.
오소마츠의 옆에 앉은 카라마츠가 검은 날개를 활짝 펼쳐 오소마츠를 감쌌다.
피식- 부드럽게 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말없이 카라마츠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자연스럽게 오소마츠의 허리에 팔을 감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머리 위에 솟은 보들보들한 귀에 입맞추며 작게 속삭였다.
“조금만 눈 붙여둬.”
“..응.”
카라마츠의 낮은 목소리에 긴장을 풀고 편안히 숨을 내뱉은 오소마츠가 눈을 감았다.
수마에 이끌리듯 금새 잠들은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날개로 감싸 안았다.
조류의 높은 체온에 감사하며 카라마츠가 서서히 따뜻해지는 오소마츠의 체온에 안심하고, 오소마츠의 손을 잡았다.
밤새 토리이 위에 앉아있었던 오소마츠의 손은 얼음장처럼 찼다.
한 손에 들어오는 자신보다 조금 작은 오소마츠의 손을 주무르며 카라마츠가 숨을 내뱉었다.
이런 작은 일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괜찮은데, 오소마츠는 지나치게 마을의 안전에 집착했다.
평소에는 카라마츠가 이끄는 카라스텐구에게 맡기고 있으면서, 조금이라도 마을에 위험이 닥칠라치면 오소마츠는 홀로 마을을 지키려했다.
어느정도 체온이 돌아온 오소마츠의 손을 깍지 끼고, 카라마츠가 두 눈을 감았다.
이런 위태로운 ‘신’을 부디, 자신이 지킬 수 있기를 빌며.
토리이 위에 햇빛을 받으며 앉아있는 두 사람의 인영을 본 대국주가 몸을 돌려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9.
“오늘 돌아가야겠다.”
대국주의 말에 일순 모두의 젓가락이 멈췄다.
당사자인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를 비롯해, 아침부터 사라진 카라마츠를 찾아 신사로 찾아온 토도마츠도 말을 잃고 대국주를 바라보았다.
쵸로마츠는 노골적으로 눈썹을 찌푸리고 “허,” 하고 헛웃음을 내뱉곤, 바로 뒤에서 살기를 내뿜고 있는 이치마츠를 달랬다.
“멋대로 와서 인정 못하느니 뭐니 하시더니, 이젠 또 멋대로 돌아가겠다구요?! 3일 준다면서요!! 오늘이 3일째입니다만!?”
“쾅!” 소리가 나도록 상을 치며 일어난 토도마츠를 따라 모두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토도마츠의 항의에 동의하는지 이치마츠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쵸로마츠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는 서둘러 토도마츠에게 뛰어가 대국주에게 삿대질까지하고 있는 토도마츠의 손을 내리며 반강제로 토도마츠를 다시 자리에 앉혔다.
“별로 개똥마츠가 마음에 안 드는 건 이해하지만, 가장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데…”
토도마츠에 이어 대국주에게 항의하듯 내뱉는 이치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넌 또 왜?!’ 하는 얼굴로 이치마츠의 입을 막았다.
감히 요괴따위가 대국주에게 진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급에 따라서는 대국주와 같은 ‘신’이어도 대국주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아무리 오소마츠가 편하게 대한다고 해도, 눈 앞에 앉아있는 인물은 신들의 두령, ‘대국주’였다.
그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는 쵸로마츠였기에 필사적으로 동생들의 발언을 막았던 것이다.
아직도 할 말이 남았는지 입을 열려는 토도마츠와 이치마츠의 입을 아예 부여잡은 쵸로마츠가 치솟는 위액을 간신히 삼키며 식은땀을 흘렸다.
“오소마츠.”
대국주의 목소리에 괜히 심장이 떨리는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멈췄던 손을 움직여 상에 젓가락을 내려놓은 오소마츠가 처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응.”
“잠시, 둘만 있게 해 주겠느냐?”
카라마츠를 응시하는 대국주를 보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가 “쵸로마츠, 이치마츠, 토도마츠.” 하고 셋을 불렀다.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면서도 토도마츠와 이치마츠가 순순히 몸을 일으켰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쵸로마츠도 자리에서 일어나 오소마츠를 따라 방을 나섰다.
대국주와 카라마츠, 넓은 방 안에 오직 둘만 남았다.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까?”
“…글쎄.”
“토도마츠, 그만 둬. 그리고 이치마츠, 태연한 척해도 귀! 완전히 서 있거든?! 엿들으려고 하지 마!! 둘 다!!”
방 문에 귀를 대고 온 신경을 청각에 집중하고 있는 토도마츠와 흥미없다는 얼굴로 머리 위에 솟은 고양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이치마츠를 쵸로마츠가 말렸다.
토도마츠와 이치마츠의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집을 나가는 쵸로마츠를 따라 오소마츠도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에 선 넷은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대화를 하는거야아?!!”
“..몰라.”
토도마츠의 부르짖음에 쵸로마츠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벌써 카라마츠와 대국주만 남겨둔지 한 시간이 지났다.
식사 도중에 나와 고픈 배를 붙잡고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에게 다가갔다.
신사의 입구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오소마츠의 옆에 선 이치마츠가 오소마츠를 따라 시선을 내렸다.
커다란 호수를 끼고, 청산과 여우산에 둘러쌓인 아름다운 마을.
마을과 햇빛에 반짝이는 호수가 이뤄내는 장관에서 시선을 돌린 오소마츠가 이치마츠를 보며 웃었다.
“왜? 이치마츄~?”
“…오소마츠 형, 괜찮아?”
동생의 걱정에 오소마츠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말없이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은 오소마츠의 귀가 움찔거렸다.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린 문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했다.
머리를 긁적이며 나온 대국주가 “식사 중간에 미안혔다.” 하고 웃으며 나왔다.
그 뒤를 따라 나온 카라마츠에게 토도마츠가 달려갔다.
“카라마츠 형, 대체 무슨 말을 했어??”
“…아, 그게…”
매가 사냥감에게 달려들듯, 카라마츠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겠다는 태세로 토도마츠가 눈을 빛냈다.
똑바로 박히는 토도마츠의 눈빛에 이리저리 눈을 굴려가며 시선을 피하는 카라마츠를 대신해 대국주의 호통이 신사에 울렸다.
“이 놈!! 그런 건 네가 알 것 없다!!!”
바로 옆에서 들리는 커다란 목소리에 귀를 막고 얼굴을 찌푸린 토도마츠가 “피-“ 하고 물러났다.
이치마츠와 함께 대국주에게 다가간 오소마츠를 보며 빙긋이 웃은 대국주가 말했다.
“이리 오거라.”
한 손엔 오소마츠의 손을, 다른 한 손엔 카라마츠의 손을 잡은 대국주가 주술을 외우며 둘의 손을 이었다.
희미하게 빛나는 붉은 실이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의 손가락에서 나와 공중에서 매듭으로 이어졌다.
대국주의 축복과 함께 다시 공중으로 사라진 붉은 실을 빤히 바라본 토도마츠가 저도 모르게 “와…” 하고 감탄했다.
“하, 할아범.”
“..이걸로 너희 둘은 내 공인을 받은 엄연한 배필이 되었다. 영겁의 시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연’을 가진.”
대국주의 상냥한 음성에 오소마츠의 귀가 떨렸다.
자상한 얼굴로 오소마츠의 머리를 두어번 두드린 대국주가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럼 가보마. 천상엔 좀 자주 오너라.”
“..응.”
대국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오소마츠가 손을 흔들었다.
순식간에 대국주의 몸이 하늘로 떠올라 사라졌다.
“태풍이 지나간 것 같아…”
중얼거리며 토도마츠가 카라마츠와 오소마츠에게로 다가갔다.
이제는 사라져 보이지 않을 붉은 실에 엮인 둘의 손을 보며 토도마츠가 축하의 말을 건넸다.
“이걸로 정식으로 부부가 된거야?”
“그건 아직이군.”
“어? 그래??”
카라마츠의 대답에 쵸로마츠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쵸로마츠의 뒤에 서서 가만히 카라마츠를 바라보고 있는 이치마츠를 발견한 카라마츠가 크게 몸을 떨었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둘을 번갈아 바라보는 토도마츠를 보고 웃으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손을 잡았다.
카라마츠도 잔잔한 미소로 화답하며 오소마츠의 손을 꽉 잡았다.
“지금은 약혼한 상태려나~?”
오소마츠가 수줍게 웃으며 코 밑을 문질렀다.
마주 잡은 손 너머로 전해지는 서로의 온기에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서로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10.
이건, 마치 딸을 시집보내는 기분이다.
내 평생 이런 기분을 느낄 줄은 몰랐는데…
오랜 벗이 남기고 간 작은 여우.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작고 빼빼마른 평범한 여우였건만.
어느새 이리도 사랑스러운 아이가 되었는지.
그 순수함과 상냥함에 어느새 빠져버리고만 것이겠지.
외로움을 잘 타면서도 남을 의식해 잘 티를 내지 않는 애처로운 아이.
그렇기에 더 사랑스러운 아이.
이 늙은 것보다 더 인간을 사랑하고, 제 마을을 사랑하는 귀여운 아이.
그런 아이를 언 놈이 데려간다고 하면 반대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허어, 참. 계획이 전부 틀어져 버렸어.
지금 수호하는 그 마을이 사라진다면 도로 천상에 불러 곁에 둘 계획이었건만.
그 아이가 반려라 인정한 도도메키도 함께 데려오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렇게나 가족을 늘려놓았다니.
오소마츠가 외로워하지 않아도 되어 좋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은 것이 아버지의 마음인 것인가.
그래도 오소마츠가 선택한 아이이니, 부모로서 축복하여 주자고 생각하고 내려간 것인데..
막상 눈 앞에 두고 보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은 어찌할 수가 없구먼.
그야, 귀하디 귀한 우리 오소마츠를 데려가는 놈이라고? 마음에 들 리가 없지. 암.
켄고도 살아있었다면 분명, 저런 덜 떨어진 녀석, 반대했을 것이 분명해.
백보양보해서, 그래, 그 비실비실해 보이는 텐구 녀석의 혼이 오소마츠와 깊은 연으로 이어져 있다고 해도, 오소마츠가 줄곧 그리워했던 그 인간아이의 환생이라고 해도 말이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단 말이지.
오히려 ‘그 인간 아이’였기에 내려갔던 것인데…
오소마츠는 분명 그 인간 아이를 평생 그리워할 것이고, ‘신’과 ‘요괴’라는 벽은 넘기 힘드니.
요괴보다 더 긴 시간을 살아가는 ‘신’이기에 걱정했던 것이야.
혹시라도 그 텐구의, 오소마츠를 향한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
연인이라면 마음이 식어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부부는 그것이 불가하니.
불안했던거여, 오소마츠의 마음을 배신하지는 않을까.
오소마츠가 텐구에게 버려지지 않을까, 오소마츠의 마음을 텐구 자식이 져버리진 않을까.
‘그 아이’를 향한 오소마츠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알기에 그리 했거늘, 이 늙은이의 기우였던 것이 다행인건지 불행인건지 모르겠구먼.
“제 마음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변한 적 없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건방진 텐구 녀석.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그 얼굴을 봐서 이번은 눈 감아 줄까.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알지만, 역시 싫구만.
뭐, 또 조만간 내려가 골려줄까.
* 여우골 8편은 아마 다음주 주중에 나올 것 같습니다. 주말엔 크리스마스 단편 쓰느라 바쁠 것 같아요...ㅎㅎ
* 크리스마스에는 카라오소 단편을 올릴 예정입니다. 기대해주세요. 제가 제 때 올릴 수 있게..ㅎㅎ;;;
* 이제 여우골 이야기도 얼마 안남았네요. 10편이나 11편에서 완결할 예정입니다ㅎㅎ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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