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편입니다... 늦어졌네요. 저는 대체 언제쯤 야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 저번편에 이어 이번엔 이치마츠와 만나는 이야기입니다ㅎㅎ


* 소설에 나오는 요괴나 신에 대한 내용은 전부 제 오리지날 설정입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두 갈래로 갈라진 꼬리를 땅에 질질 끌고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고양이를 따라 붉은 선혈 방울이 땅을 적셨다. 살아있는 것이 기적으로 보일 정도로 고양이는 심하게 부상당해 가는 숨을 내쉬고 있었다. 

떨리는 발을 마지막으로 옮긴 고양이가 결국 바닥에 쓰러졌다.

온 몸을 떨며 얕은 숨을 내쉬는 고양이는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눈을 감고 서서히 몸을 잠식해가는 죽음의 기운을 받아들인 고양이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온몸에 힘을 뺐다. 

고요히 정적 속에 서서히 먹혀 들어가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고양이의 귀를 간질였다.


“어라라~, 이런 곳에 쓰러져 있으면 안 된다고~?”


맑은 목소리가 서서히 가까워지더니 고양이의 몸은 공중에 들려 따뜻한 온기에 감싸였다. 

조금 전까지 호시탐탐 고양이가 마지막 숨을 내쉬는 것을 기다리고 있던 ‘죽음’의 그림자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지친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따뜻한 체온과 상냥한 향기에 한결 숨이 편안해진 고양이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2.


코를 타고 올라와 미각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에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키자 심한 부상을 입었던 것이 거짓인 것처럼 가벼운 움직임에 놀라 팔을 들어 흔들어 보았다. 


“…어?”

눈 앞에 보이는 인간의 손에 놀라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내 몸을 살폈다. 

인간의 손과 인간의 다리가 달려있는 몸에 말을 잃었다. 

더듬더듬 머리를 만져보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머리카락 사이에 쫑긋하니 짐승의 귀가 솟아나 있었다. 

인간의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낯선 감각 가운데 익숙한 감각을 쫓아 귀를 움직여 보았다. 

머리 위에 솟은 짐승의 귀는 무리 없이 앞뒤로 움직였다. 

귀와 함께 꼬리를 흔들어보니, 엉덩이 부분에 나와있는 두 갈래의 꼬리가 부드럽게 살랑거렸다. 

너무나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멍청히 확인하고 있자, 스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놀라 꼬리와 귀가 곤두섰다.


“아, 미안. 놀랐어?”

황금빛 귀와 꼬리를 흔들며 붉은 기모노를 입은 남자가 들어오며 물었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일단 고개를 저었다. 

싱긋- 미소를 짓고 다가온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쟁반을 바닥에 내려 놓고 내가 누워있는 이부자리 곁에 앉았다.


“어디 아프거나 불편한 곳은 없어?”

남자의 질문에 한 번 더 고개를 저었다. 

가볍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몸은 내가 가장 좋은 상태일 때보다 더 편하게 거동할 수 있었다. 

잠시 나를 바라보며 내 상태를 확인한 남자가 쟁반에 놓여 있던 그릇을 내게 내밀었다.


“자, 먹어. 배 고프지?”

얼떨결에 남자가 건넨 그릇을 받아 들자, 남자가 내게 숟가락을 건넸다. 

혼란에 휩싸인 머리로는 도저히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태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어수선한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리는 가운데 숟가락을 들어 그릇에 담긴 죽을 떠 입으로 가져갔다. 

다른 때 같았으면 낯선 이가 주는 음식 따위 먹을 리 없는데, 꿈 속에서 닿았던 온기가 몸에 남아 내 경계심을 무너뜨렸다. 

적당히 간이 되고 잘게 다진 고기가 들어간 죽은 내 입에 꼭 맞았다. 

한 숟가락 입에 집어넣자마자 머리 속을 파고드는 허기에 그릇 안에 담긴 죽을 싹싹 비워 먹었다. 

빈 그릇을 건네 받은 남자가 빙그레 웃으며 내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다 먹었구나, 착하네-“

자애로운 미소로 나를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 남자가 쟁반을 한 켠에 치우고 내게 물었다.


“몸은 괜찮지?”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가 안심했는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고개를 기울이고 물었다.


“말은 못해? 네코마타니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 아니. 할, 수 있어요…”

남자의 물음에 성급히 대답했다. 

고양이의 몸이었을 때와는 다른 감각으로 목이 울렸다. 

너무나 강한 위화감에 인상을 찌푸리자 남자가 눈썹을 살짝 내리고 말했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서 이상하지? 신통력을 나눠줬더니 인간형으로 변해서.. 그 몸에 익숙해지면 원할 때는 언제든 다시 고양이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물론 연습을 좀 해야겠지만.”

남자의 말에 놀라 고개를 들어 남자를 응시했다. 

드럽게 나를 향한 눈빛은 뭐든 물어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저기, 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음, 그러니까- 내가 산책이나 할까 하고 신사를 나왔는데, 네가 신사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쓰러져있더라고. 그래서 일단 신사로 데리고 들어와서 상처도 치료해줄 겸 신통력을 나눠준 거야.”

‘신통력’이라는 단어에 놀라 멍청히 “그럼 토지, 신..?” 하고 중얼거리자 남자가 이를 드러내고 검지로 코 밑을 문지르며 쑥쓰러워했다.


“토지신으로는 안 보이지?”

‘신’치고는 친근한 태도에 놀라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에 놀라 남자에게 재빨리 변명했다. 


“아니, 그, 그렇게 안 보인다는 게 아니라..”

“별로 변명 안 해도 괜찮아~. 근데 너야말로 대체 어쩌다 그렇게 다친 거야?”

줄곧 정좌하고 있던 무릎을 풀고 편히 앉아 손을 뒤에 짚고 몸을 기울인 남자가 물었다. 

불과 잠시 전까지 온몸을 관통하고 있던 끔찍한 고통의 기억에 고개를 숙이고 남자의 질문에 대답했다.


“떠돌아 다니다가, 지네요괴를 만나서.. 어떻게든 도망은 쳤지만…”

“흐음~ 그래… 그럼 말이야. 머물 곳이 없다면 여기서 같이 살지 않을래?”

“헷?”

남자의 말에 놀라 고개를 번쩍 들자 다정하게 웃으며 남자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럽고 상냥한 손길에 절로 목이 울렸다. 

내 의지에 따르지 않고 절로 울리는 골골 소리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쿡- 하고 따뜻하게 미소 지은 남자가 자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오소마츠야. 오소마츠 형이라고 불러줘~”

“아, 저는 이치마츠, 라고 합니다.”

“응, 이치마츠. 앞으로 잘 부탁해.”

남자의 따뜻한 미소에 이유도 없이 눈물이 떠져 나왔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매로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을 멈추고 내 눈물을 닦아주며 오소마츠 형이 기쁘게 웃었다.





강한 바람과 함께 신사 주변의 나무들이 시끄럽게 흔들렸다. 

여러 그루의 나무가 한꺼번에 흔들리며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에 놀라 귀를 늘어뜨리고 오소마츠 형의 옷자락을 쥐었다. 

피식- 웃은 오소마츠 형이 나를 안아 올려 품에 안고 “무서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고 등은 두드려주었다. 

기분 좋게 통통하고 울리는 토닥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오소마츠 형에게 매달렸다. 


“오소마츠..? 그 녀석은?”


오소마츠 형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는 와중에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오소마츠 형이나 쵸로마츠 형의 목소리보다 훨씬 낮고 걸걸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검고 커다란 날개를 등에 접고 나를 보고 있는 남자는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 얼마 전에 주웠어. 새로 우리 식구가 된 이치마츠야~”

“오소마츠의 애는 아닌.. 거지?”

멍청한 얼굴로 묻는 남자에게 쵸로마츠 형이 바로 끼어들어 외쳤다.


“그럴 리 있겠냐?!!!”

쵸로마츠 형의 외침에 머쓱해졌는지 남자는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나막신을 울리며 오소마츠 형에게 다가온 남자가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오소마츠랑 닮은 녀석이네.”

“우응~ 나보다는 너랑 더 많이 닮지 않았어?”

“그런가? 잘 모르겠다만…”

오소마츠 형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손을 뻗었다. 

오소마츠 형보다 더 큰 손은 검은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서서히 내 얼굴로 다가왔다. 

본능적으로 몸을 긴장시키고 경계하며 뻗어온 손을 강하게 내리쳤다.


“윽!?”

“아, 이런…”

붉게 발톱 자국이 난 손을 감싼 남자가 눈을 찌푸렸다. 

오소마츠 형은 난처해하는 얼굴로 한숨지으며 몸을 돌려 남자와 거리를 두었다. 

쵸로마츠 형이 남자에게 다가가 손을 보며 혀를 찼다. 

굳은 얼굴의 쵸로마츠 형과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내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몰려오는 불안과 두려움에 꼬리가 힘을 잃고 아래로 떨어졌다. 

절로 귀가 뒤로 접혔다. 

오소마츠 형의 옷자락을 꽉 붙잡고 고개를 들어 오소마츠 형을 올려다보았다. 

말 없이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는 오소마츠 형과 눈을 마주하자마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으- 죄, 죄송해요..”

버려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눈을 감자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후- 하고 오소마츠 형의 한숨 소리가 들려 어깨가 튀었다.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오소마츠 형의 옷자락을 더 강하게 꽉 붙잡고 몸을 밀착하자 오소마츠 형의 손이 천천히 등을 토닥였다.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온유한 눈빛에 오소마츠 형이 화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자 눈물이 멈췄다. 

잔잔한 미소를 띠우고 내 머리에 쪽- 하고 입맞춤을 떨어뜨린 오소마츠 형은 내가 놀라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차분하게 속삭였다.


“저 녀석은 텐구 카라마츠야- 나쁜 녀석이 아니니까, 너를 해치거나 하지 않아.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치마츠우~”

토닥토닥 등을 천천히 두드리며 속삭이는 오소마츠 형의 평온한 목소리에 서서히 긴장이 풀렸다. 

규칙적인 토닥임에 오소마츠 형의 온기에 몸을 맡기고 몰려오는 졸음에 눈을 감았다.








3.


“잠들었나?”

할퀸 자국이 남은 손등을 문지르며 카라마츠가 다가왔다. 

편안한 얼굴로 잠든 이치마츠의 얼굴을 확인한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마츠가 살며시 이치마츠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자, 잠든 이치마츠의 목에서 골골- 하고 소리가 울렸다. 

가만히 평온한 얼굴로 오소마츠의 품에서 잠들어 있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는 카라마츠를 오소마츠가 잔잔히 미소를 띄우고 응시했다. 

오소마츠가 이치마츠를 발견한 것은 쵸로마츠 때와 마찬가지로 우연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얕은 숨을 내쉬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네코마타를 데려와 치료를 해준 것은 오소마츠의 변덕이었다. 

오소마츠의 신통력을 받은 네코마타가 오소마츠의 기억에 남아있는 얼굴을 했을 때는 과연 오소마츠여도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쵸로마츠와 카라마츠와 닮은 얼굴. 

아직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어 완벽하게 똑같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어린 네코마타의 얼굴은 분명 카라마츠의 형제임이 분명했다. 




‘이건 대체, 무슨 인연인건지…’


홀로 중얼거리며 네코마타를 간호하는 오소마츠를 쵸로마츠가 기이하다는 듯이 관찰했다. 

오소마츠가 아무리 요괴친화적인 ‘신’이라도 ‘신’이 직접 ‘요괴’를 간병하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어린 네코마타가 정신을 찾고 그렇게 심한 부상을 입게 된 경위를 말했을 때, 오소마츠는 차오르는 ‘연민’에 눈 앞의 어린 네코마타를 거두기로 결정했다. 

오소마츠의 제안에 안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작은 아이가 마치 어린 시절의 자신처럼 보여서 더 애틋해지는 오소마츠였다. 

오소마츠의 신통력 덕분에 이치마츠는 빠른 속도로 회복했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완전히 인간의 몸에도 익숙해져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게 된 이후로는 오소마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오소마츠 형” 하고 불러댔다. 

쫄래쫄래 오소마츠의 뒤꽁무니를 쫓아 다니고, 행복하단 얼굴로 오소마츠의 품에 안겨오는 것이 귀여워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 

오소마츠가 이치마츠를 마치 제 아이처럼 예뻐하고 귀여워하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귀엽구나, 네코마타는…”

이치마츠를 쓰다듬는 손길을 멈추지 않고 작게 중얼거리는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첫만남부터 손등에 발톱자국을 얻고도 카라마츠가 이치마츠를 싫어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이치마츠도 갑자기 다가온 카라마츠의 손에 당황한 것일 뿐, 싫어서 카라마츠를 거부한 것이 아니었다. 

한 때는 형제였던 두 사람의 연에 오소마츠는 그저 기뻤다. 

카라마츠와 쵸로마츠 뿐만 아니라 카라마츠의 또 다른 형제인 이치마츠까지 자신의 곁에 있을 수 있게 해 준 하늘에 감사했다. 




‘부부냐?!’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작은 이치마츠를 품에 안은 오소마츠와 그 옆에서 부드럽게 오소마츠와 이치마츠를 바라보고 있는 카라마츠가 자아내는 분위기에서 한 발자국 멀리 떨어진 쵸로마츠가 속으로 태클을 걸었다. 

쵸로마츠도 갑자기라곤 하나 모처럼 생긴 ‘동생’이 귀엽기는 오소마츠와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카라마츠도 마찬가지. 하지만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와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공기가 카라마츠와 오소마츠를 감싸고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눈꼴시운 광경에 쯧- 하고 짜증스런 얼굴로 혀를 찬 쵸로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런데, 꽤 오랜만에 왔네, 카라마츠.”

“아, 조금 급하게 처리해야 할 사항이 있어서 좀처럼 시간을 낼 수 없었다.”

거의 매일 꼬박꼬박 얼굴을 비추던 카라마츠가 이치마츠가 이 신사에 머물게 되고 완전히 오소마츠를 따르게 되기까지 카라마츠는 찾아오지 않았다. 

카라마츠의 말에 이치마츠의 등을 통통 두드려주던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급한 일이라니 뭔데?”

“아카츠카 마을의 오니(鬼)족에서 연락이 왔었다. 아무래도 꽤 강한 지네 요괴가 아카츠카 마을을 해치고 이쪽으로 향했다는 전언이 와서 마을 경비를 강화하고 경계 체계를 다시 세우느라 바빴다.”

“에~ 그런 일이라면 나한테도 좀 알려달라고~”

오소마츠가 불만스런 얼굴로 꼬리를 휘두르자 카라마츠가 면목없다며 고개를 숙이고 “바빠서 그럴 틈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말하려고 찾아온 거다.” 하고 변명을 붙였다. 

볼을 부풀리고 뚱하게 카라마츠를 쳐다보던 오소마츠가 푹- 한숨을 쉬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뭐, 네가 마을을 지키는 거에는 불만 없지만 말이야… 일단은 그런 건 나한테도 우선적으로 알려 줘.”

“아아, 미안하다. 주의하지.”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미안한 듯 눈썹을 내리고 쓰게 웃으며 사과했다. 

순순히 카라마츠의 사과를 받은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에게 아카츠카 마을에 갔다 오라고 하자, 쵸로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츠카 마을에 가서 오니들에게 지네 요괴의 정보를 자세히 알아오라는 오소마츠의 뜻을 파악한 쵸로마츠가 망설이지 않고 바로 떠날 준비를 했다.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는데…’

색색 숨을 내쉬며 품에 안겨있는 따뜻한 온기를 꼭 껴안은 오소마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4.


“캬앗!!!!”

“우왓!!”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에게 할퀸 손을 거두었다. 

이치마츠와 처음 만난 이후, 다시 매일 신사에 들리며 이치마츠와 친해지려 노력하는 카라마츠였지만 이치마츠는 여전히 카라마츠를 강박적으로 거부했다. 

오늘도 조심스레 뻗은 손등엔 붉은 발톱 자국이 남고 말았다. 

요괴의 빠른 치유력으로 발톱 자국은 남지 않았지만, 벌써 몇 번째의 상처인지 이젠 셀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아, 심심해-“

드르륵- 하고 오소마츠가 자신이 머물고 있는 기와집의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다.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귀와 꼬리의 털을 곤두세우고 카라마츠를 위협하고 있던 이치마츠가 재빨리 오소마츠에게 달려갔다.


“오?”

자신에게 달려온 이치마츠를 보자마자 싱긋 웃으며 이치마츠를 안아 든 오소마츠가 그제야 카라마츠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카라마츠~ 또야?”

떡하니 손등을 문지르고 있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카라마츠가 쓰게 웃으며 “하하..” 하고 마른 웃음을 지었다.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와 친해지려고 노력한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이치마츠는 유독 카라마츠를 경계하며 그 마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놔두면 절로 친해지겠거니 했던 오소마츠도 보다못해 이치마츠에게 왜 카라마츠를 싫어하냐고 물었지만, 이치마츠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형제였는데 말이야…’

오소마츠의 품에 안긴 채, 카라마츠를 보며 으르렁거리고 있는 이치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이치마츠와 같이 전생에 카라마츠와 형제였던 쵸로마츠는 카라마츠와 친하게 지내고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도 큰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는데, 왜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는 잘 지내지 못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치마츠의 틈을 주지 않는 거부에 울상이 된 카라마츠가 이치마츠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에 무심코 픽- 하고 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따라오는 카라마츠의 따가운 눈빛에 고개를 돌렸다. 


“아, 쵸로마츠.”

구세주와 같이 좋은 때를 맞춰 돌아온 쵸로마츠에게 속으로 감사 인사를 보내며 오소마츠가 손을 흔들었다. 

무겁게 한숨을 쉬며 오소마츠에게 다가온 쵸로마츠가 진지한 표정으로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카라마츠, 혹시 오니들에게서 뭐라고 전언이 왔는지 알 수 있을까?”

“전언자체는 꽤 짧았다. 위험한 지네 요괴가 나타났으며 여우골로 향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정도였다.”

“그런가…”

인상을 찡그린 쵸로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왜?” 하고 묻자, 쵸로마츠가 아카츠카 마을의 오니들에게 들은 정보들을 간결하게 정리해 말했다.


“아무래도 아카츠카 마을에서 큰 부상을 입고 이곳으로 오는 와중에 만나는 마을마다 덮치고 있는 모양이더라고. 아카츠카 마을하고 우리 마을은 제법 큰 마을이고 토지신과 그 마을을 지키는 요괴무리가 있으니까 다행이지만, 그 밖에 작은 마을들은 꽤 손해가 큰 모양이야. 요괴고 인간이고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서 몸집도 불린 것 같고. 이 마을에 온다면 꽤 위험할지도.”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의 얼굴이 굳었다. 

오소마츠가 나직이 카라마츠를 부르자 카라마츠가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며 “마을의 경계를 더 강화하겠다.” 하고 말하며 신사를 떠났다. 

오소마츠도 신사와 마을의 결계를 더 강화하기 위해 산의 정기를 모으며, 제 품 안에 꽉 안겨있는 이치마츠의 등을 두드렸다.


“괜찮아, 이치마츠. 무서워할 필요 없어.”

이치마츠의 접힌 귀가 덜덜 떨리고 있는 것을 본 오소마츠가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우골로 향하고 있는 지네 요괴는 십중팔구 이치마츠를 공격한 녀석이 분명했다. 

‘지네 요괴’란 단어에 바로 꼬리를 말고 오소마츠의 품에 얼굴을 묻은 이치마츠를 달래며 오소마츠가 부드럽게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당분간은 답답해도 이 신사에서 나가면 안 된다?”

오소마츠의 말에 이치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의 불안한 얼굴에 오소마츠가 “착하네- 우리 이치마츄는~” 하고 상냥하게 속삭이며 이치마츠의 머리에 입술을 떨어뜨렸다. 








5.


강화된 결계와 삼엄해진 카라스 텐구들의 경계에 쵸로마츠가 어깨의 긴장을 풀었다. 

커다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오소마츠의 결계는 그 강도를 더욱 견고히 하여 개미 한 마리 들어올 수 없도록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카라마츠의 텐구들도 한 시간 간격을 두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을을 순찰하고 있었다. 

천상에서 내려온 사자의 편지를 들고 오소마츠에게 찾아가는 쵸로마츠가 혀를 찼다.


‘하필이면 이럴 때.’

천상에서 내려온 편지는 대국주가 오소마츠를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결계와 텐구들의 경계로 큰 걱정은 없지만, 오소마츠가 이 땅을 떠난다면 결계도 그 영향을 받아 약해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무시하자니 편지를 보낸 상대가 나빴다. 


신들의 장(長), 대국주. 

오소마츠는 그 오랜 인연으로 스스럼 없이 대하고 있다지만, 쵸로마츠와 같은 일개 요괴나 이 땅을 다스리는 토지신들이 보기에 대국주는 감히 말조차 붙일 수 없는 높은 존재와 같았다. 

오소마츠의 방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벌컥 열어젖힌 쵸로마츠가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가 오소마츠에게 편지를 내밀었다. 

쵸로마츠의 표정을 보아 급한 용건임을 짐작한 오소마츠가 잔말 없이 편지를 받아 읽어 내려갔다. 


“갈 거야?”

편지를 다 읽고 도로 접는 오소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물었다. 오소마츠가 가느다란 미소를 입가에 매달고 고개를 들었다.


“가야지. 할아범도 아마 지금 우리 사정을 알고 있을 텐데도 이렇게 편지를 보내 부를 정도로 중요한 일이 있는 것 같고.”

항상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거울로 지상을 내려다보는 대국주가 오소마츠와 이 마을이 처한 사정을 모를 리는 없었다. 

여우불로 편지를 불태운 오소마츠가 자신의 무릎을 베고 자고 있는 이치마츠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멍한 얼굴로 반쯤 눈을 뜬 이치마츠를 보며 빙긋 웃은 오소마츠가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치마츄~, 형아들이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와야 하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신사에서 나가면 안 된다?”

“..우응…”

졸린 눈을 비비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 이치마츠가 다시 몸을 둥글게 말고 눈을 감았다. 

도로 잠의 세계로 빠져든 이치마츠에게 어깨에 얼치고 있던 겉옷을 덮어준 오소마츠가 몸을 일으켰다. 

별다른 채비도 없이, 쵸로마츠와 함께 오소마츠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주인 없는 신사에는 순식간에 정적이 휩싸였다.





“냐-“

작게 들려오는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이치마츠의 귀가 쫑긋거렸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이치마츠가 귀를 움직이며 주위를 살폈다.


“냐아-“

다시 가는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이치마츠가 몸을 일으켰다. 

꺼질 듯 작게 들리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급히 발을 굴려 기와집을 나와 신사 마당에 도착한 이치마츠가 다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냐-“

신사의 입구, 붉은 토리이 기둥에 몸을 숨기고 있는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이치마츠를 불렀다. 

본래 하얀 빛을 띠고 있어야 할 고양이의 털빛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심한 부상을 입은 것 같은 고양이는 다시 한번 가냘프게 이치마츠를 부르곤 신사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잠결에 들은 오소마츠의 말을 떠올리며 망설이는 이치마츠를 다시 한 번 고양이가 애타게 불렀다. 

동족의 도와달라는 간절한 요청을 무시할 수 없는 상냥한 이치마츠가 두 눈을 꼭 감고 결심을 다지며 토리이를 지나 고양이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빨리 붙잡아 신사로 데려가면 반드시 오소마츠가 치료를 해 줄 것이었다. 

필사적으로 고양이를 따라간 이치마츠는 어느새 오소마츠의 결계 밖으로 나갔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 




“크히히히힛, 겨우 잡았다.”

고양이를 따라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모습을 드러낸 검은 그림자에 이치마츠가 걸음을 멈췄다. 

귀에 익은 차가운 목소리와 의식하지 않아도 풀풀 풍기는 짙은 비린내에 숨을 삼키고 이치마츠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안녕~? 고양아~? 잘도 숨어 있었구나? 이런 골치 아픈 결계 속에.”

이치마츠를 이끌었던 하얀 고양이의 몸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곧바로 온 몸의 구멍에서 검은 피를 흘리는 고양이의 몸에서 검은 그림자가 빠져 나와 지네의 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신을 유인하기 위하여 고양이의 시체를 사용했다는 것을 깨달은 이치마츠가 덜덜 떨며 뒷걸음질쳤다.


“어이쿠~ 어딜 가려고?”

긴 꼬리로 이치마츠의 퇴로를 막은 지네가 징그러울 정도로 얼굴을 구기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수 많은 다리가 다다닥 거리며 땅을 찼다. 서서히 다가오는 거대한 지네의 발을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이치마츠가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았다. 

두려움에 땅에 달라붙은 발은 움직이지 않았고, 공포로 물든 머리 속은 도망치라는 명령조차 내릴 수 없을 정도로 마비되어 있었다. 

독을 머금은 날카로운 지네의 발이 날아오자 이치마츠가 두 눈을 꼭 감았다.


“이치마츠!!!!!”

카라마츠의 목소리와 함께 이치마츠가 예감하고 있던 고통이 빗나갔다. 

눈물 젖은 두 눈을 뜨자 커다란 카라마츠의 날개가 이치마츠를 감싸고 있었다. 

시야 가득 채운 검은 날개에 이치마츠가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카라마츠와 이치마츠의 시선이 마주쳤다. 얼굴을 풀고 온화하게 웃으며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다친 곳은 없나?”

얼떨결에 이치마츠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라마츠가 작게 “다행이다.” 하고 속삭이며 거친 숨을 내쉬며 쓰러졌다. 

항상 윤기가 흐르며 강하게 하늘을 가르며 퍼덕였던 카라마츠의 날개가 서서히 부식되어 바스라졌다. 

신음하며 쓰러진 카라마츠의 몸이 서서히 식어가는 것에 이치마츠가 눈물을 흘리며 카라마츠의 몸을 흔들었다. 


눈 좀 떠보라고, 정신 차리라고 애타게 외쳐도 카라마츠는 제대로 된 대답도 돌려주지 못한 채, 의식을 잃어갔다. 



“강한 텐구라고 들었는데, 별거 아니였네.”

핫- 하고 콧웃음치며 꼬리를 치켜든 지네가 이치마츠에게 다가갔다. 

피에 물든 지네의 다리에서 자주빛의 독 한 방울이 떨어져 바닥을 부식시켰다. 

자신을 감싸고 지네의 독에 당한 것을 겨우 알아챈 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감싸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두려움은 이미 저 멀리로 사라졌다. 온 몸의 털을 세우고 위협하는 이치마츠를 지네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내려다보았다. 


날카롭게 웃으며 지네가 다시 독을 머금은 다리를 휘두르려는 순간, 강한 영압을 담은 낮은 목소리가 공기를 꿰뚫고 지네를 억압했다. 

이치마츠가 고개를 들자 표표한 얼굴로 지네를 바라보고 있는 오소마츠가 여우불을 손에 피우고 떠 있었다.



“우리 얘들을 괴롭히면 안 되잖아~?”

평소와 같은 장난스러운 말투에 담긴 목소리는 지극히 낮고 침착했다. 오소마츠가 와 주었다는 안도감에 피로감이 이치마츠의 몸을 덮쳤다. 풀썩 힘을 잃고 쓰러진 이치마츠의 귓가에 지네 요괴의 비명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6.


“우와…”


재도 남지 않은 발화 현장을 보며 쵸로마츠가 멍청히 목소리를 내뱉었다. 

산채로 여우불에 구워진 지네는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흔적하나 남기지 않고 완전히 소멸했다. 

까맣게 그을름을 남긴 땅과 나무 줄기만이 그 곳에 뭔가가 타올랐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서둘러 천상에서의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이치마츠가 신사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오소마츠는 바로 신사를 뛰쳐나가 마을을 둘러보았다. 

천리안을 가지고 있는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와 이치마츠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쵸로마츠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카라마츠와 이치마츠에게로 날아간 오소마츠는 눈 앞에 펼쳐진 참상에 이성을 잃을 정도로 분노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눈 앞에 둔 쵸로마츠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신’은 ‘신’이구나…”

작은 마을들을 습격해 힘을 기른 지네는 쵸로마츠나 카라마츠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는 상태였다. 

카라마츠의 텐구 무리가 한꺼번에 덤벼도 처리할 수 있을까 말까한 상대를 오소마츠는 간단하게 불태워 버렸다. 

‘신’의 힘에 감탄사를 뱉으며 주변 상황을 확인한 쵸로마츠가 다시 신사로 향했다.





“좀 어때?”

카라마츠와 이치마츠가 누워있는 이불 머리맡에 앉아있는 오소마츠에게 쵸로마츠가 다가갔다. 

어두운 얼굴로 슬쩍 쵸로마츠를 쳐다본 오소마츠가 입을 열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감싸준 덕분에 별다른 상처는 없어. 카라마츠는 지네 독에 당해서 날개가 좀 상했지만, 신통력으로 치료했고. 아직 몸에 독이 남아있긴 하지만 스스로 이겨낼 수 있을거야.”

부드럽게 카라마츠와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는 오소마츠의 얼굴을 본 쵸로마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딱히 오소마츠의 잘못이 아닌데도 모든 것이 제 죄인양 괴로워하는 오소마츠의 모습이 쵸로마츠는 그저 안타까웠다. 


결계도 강화했고, 카라마츠의 경계도 있었다. 

지네가 고양이로 이치마츠를 꿸 거라는 것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천상의 부름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오히려 반나절만에 모든 일을 처리하고 내려온 오소마츠가 대단할 뿐이었다. 

그런데도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부상도, 이치마츠의 일도 모두 제 탓이라고 생각하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항상 천상에서 유유자적한 오소마츠의 모습만을 보아왔던 쵸로마츠는 이럴 때 어떻게 오소마츠를 위로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툭 하고 오소마츠의 어깨를 두드리며 “너무 무리하지 마, 오소마츠 형.” 이라고 위로하는 것이 쵸로마츠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텐구들에게 현 상황을 전하기 위해 방을 나선 쵸로마츠를 배웅한 오소마츠가 고개를 숙였다.








7.


또, 카라마츠를 잃을 뻔했다.


“하아~~”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조금만 방심하면 무심코 울 것만 같았다. 



겨우 만났는데. 

쵸로마츠도, 이치마츠도 만나게 되었는데. 

귀여운 이치마츠가 나를 따라주었는데.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질 뻔했다는 사실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할아범의 부름 따위 무시하는게 좋았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왜 나는 이 땅을 떠나버린 거지? 

왜 이치마츠를 홀로 남겨둔 거지? 


후회가 온 몸을 감싸안고 강하게 조여왔다. 

하마터면 이 행복을 잃을 뻔했다. 


모두 내 탓이다. 

전부 내가 잘못한 것이다.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참았다. 

내겐 눈물을 흘릴 자격도 남아있지 않았다. 


뭐가, 토지신인가. 내 땅에 발을 들인 요괴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카라마츠와 이치마츠를 상처입혔으면서. 


숨을 내쉬는 것도 고통스러워 몸을 낮게 숙이자 제 멋대로 몸이 떨렸다. 

우우- 하고 말이 되지 못한 신음이 절로 터져나왔다. 참고 있는데도 새어나오는 울분이 카라마츠와 이치마츠에게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손으로 입을 막았다.


“..오소마츠?”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귀를 움찔였기만 고개를 들 용기는 나지 않았다. 

나는 뭐라 비난을 들을까. 닥쳐올 카라마츠의 비난이 두려워 풍성한 꼬리로 몸을 감싸안고 떨림을 숨겼다.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다.


“오소마츠.”

평소와 달리 힘을 잃은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결국 참고 있었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 앞의 다다미 바닥이 순식간에 뿌옇게 흐려졌다. 

뜨거운 눈물과 함께 터져나오려는 신음을 입을 악다물고 삼켰다. 


“오소마츠, 얼굴을 들어줘. 부탁이다…”

떨고 있는 머리에 부드럽게 손을 올려놓고 속삭이는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카라마츠와 얼굴을 마주한 순간, 강한 팔에 안겨 포근한 온기에 감싸였다.


“오소마츠, 울지 말아줘.”

상냥한 카라마츠의 음성이 귀를 울렸다. 

내 걱정과 달리 화내지 않는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참고 있던 신음까지 터져버리고 말았다.


“읏, 후으…. 카, 카라마츠으… 무, 사해서 다행이다아…”

울음을 터뜨리며 카라마츠의 등에 팔을 둘렀다. 

독에 당해 차가워져가던 신체가 다시 온기를 되찿은 것에 진심으로 안도했다. 

나를 감싸안은 팔에 더 힘을 주고 강하게 껴안은 카라마츠가 한숨과 함께 속삭였다.


“아아, 오소마츠 덕분이다.”

“…”


아냐, 카라마츠. 나 때문에 네가 다치고 말았어.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속내를 삼키고 눈을 뜨자, 항상 활력이 넘치던 카라마츠의 날개가 너덜너덜해져 축 늘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정말로 나는 카라마츠를 잃을 뻔 했다는 사실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나는 대체 뭐라고 너에게 사과하면 좋을까. 

제대로 된 말도 찾지 못하고 나는 그저 “미안해, 미안해. 카라마츠…” 하고 몇 번이고 사과의 말을 반복했다.


“아니야, 오소마츠. 네 잘못이 아니다. 그 무엇 하나도 네 탓이 아니야.”

나를 안고 있던 팔을 풀고 내 얼굴을 마주한 카라마츠가 뺨을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웃었다. 


“그, 그치만…”

“오소마츠, 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사과했던 만큼 반복해서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며 나를 껴안은 카라마츠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히려 오소마츠가 없었다면 나와 이치마츠는 이렇게 무사할 수 없었다. 고마워, 오소마츠. 정말로 감사하고 있다.”

카라마츠의 진심어린 말에 눈을 감고 카라마츠의 등에 팔을 둘렀다.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죄책감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 


다행이라고, 몇 번이고 되새기며 카라마츠의 온기를 잃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한참이 지나 겨우 울음이 그치고 나서야, 카라마츠의 얼굴을 제대로 보고 웃어줄 수 있었다.








8.


카라마츠가 다쳤다고 하면 또 시끄럽게 호들갑을 떨며 오소마츠 형을 욕할 텐구들임을 알기에, 카라마츠의 측근인 치비타에게만 카라마츠의 상태를 알렸다. 

굳은 얼굴로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치비타에게 곧 나을 것이라고 전한 뒤, 신사로 발을 돌렸다. 

아직도 죄책감에 눌려 무너지고 있지는 않을까, 오소마츠 형이 걱정되어 서둘러 신사로 돌아오자마자 카라마츠와 이치마츠가 있을 방으로 향했다.



“아니야, 오소마츠. 네 잘못이 아니다. 그 무엇 하나도 네 탓이 아니야.”

“그, 그치만…”

“오소마츠, 네 잘못이 아니야.”



얇은 장지문 너머로 들려오는 카라마츠와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에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나는 할 수 없었던 위로를 카라마츠가 내 몫까지 오소마츠 형에게 전하고 있었다. 

한결 누그러진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에 겨우 안심해 방에서 몸을 돌렸다. 

카라마츠가 깨어났으니 뭔가 먹을 것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오소마츠 형이 알려주었던 요리법을 떠올리며 주방으로 향했다.





“쵸로마츠…”

죽을 들고 방에 들어가자 오소마츠 형이 지친 얼굴로 웃었다. 

지쳐 보이긴 했지만, 더 이상 괴로워보이지 않는 표정에 다시 안도하며 죽이 든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먹을 수 있겠냐 물으며 그릇을 내밀자 카라마츠가 씩씩하게 웃으며 그릇을 받아 들었다. 

부상을 입었던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그릇을 비운 카라마츠가 천천히 날개를 퍼덕였다. 

아까보다는 나아보이는 상태에 오소마츠 형이 작게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약 반나절이라는 시간 동안 신사에 머물며 오소마츠 형의 신통력과 산의 정기를 받은 카라마츠는 체내에 남아있던 지네의 독을 완벽하게 이겨내고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텐구들을 달래기위해 서둘러 청산으로 향했다. 

아직도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있는 오소마츠 형에게 다정히 웃으며 내일 또 오겠다는 말을 하고 날아오른 카라마츠를 오소마츠 형이 배웅하고 돌아오자 이치마츠가 눈을 뜨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쌍할 정도로 축 늘어진 귀와 꼬리를 안고 이치마츠가 오소마츠 형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죄, 죄송해요… 죄송해요…”

항상 오소마츠 형에게 달려들었으면서, 이불에 앉아 오소마츠 형과 거리를 두고 뚝뚝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리는 이치마츠와 오소마츠 형이 겹쳐 보였다. 


아아, 왜 모두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저 때가 나빴을 뿐인데. 


작게 혀를 차며 이치마츠에게 다가갔지만, 이치마츠는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고개를 들어 방문에 서 있는 오소마츠 형을 쳐다보았다. 

내 눈총에 오소마츠 형이 쓰게 웃으며 다가와 “미안.” 하고 입을 뻥끗뻥끗 움직였다. 

후- 하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이자 오소마츠 형이 이치마츠를 품에 안았다.


“이치마츠으~ 그렇게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아~ 형아는 우리 이치마츄가 무사해서 무~지 기뻐.”

이치마츠의 머리와 이마에 입술을 떨어뜨리며 맑은 눈망울에 맺힌 눈물을 닦아준 오소마츠 형이 속삭였다. 

겨우 말을 멈추고 고개를 든 이치마츠를 오소마츠 형이 정겨이 바라보았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지키려고 했지? 우리 대견한 이치마츄~~ 대단하다~”

이치마츠의 머리에 얼굴을 부비며 오소마츠 형이 이치마츠를 어루만졌다. 

어느새 울음을 그친 이치마츠가 조용히 오소마츠 형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힘없이 늘어져 있던 이치마츠의 꼬리가 천천히 살랑이는 것을 보고 조용히 몸을 일으켜 방을 나왔다. 

오소마츠 형이 곁에 있다면 이치마츠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번엔 이치마츠가 먹을 죽을 준비하러 다시 주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9.


“나의 작은 이치마~츠~?”

카라마츠가 두 팔을 벌리고 다가가자 이치마츠가 “캬앗!!” 하고 털을 세우고 위협했다. 

카라마츠가 주춤하고 발을 멈추자 이치마츠의 털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서로를 응시하며 카라마츠와 이치마츠 사이에 묘한 침묵이 맴돌았다. 

슬금슬금 발을 옮겨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에게 다가갔다. 

인상을 쓰고 카라마츠의 행동을 주시하는 이치마츠는 딱히 공격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조심스레 이치마츠에게 뻗은 카라마츠의 손이 무사히 이치마츠의 머리 위에 얹어졌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잔뜩 인상을 쓰고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공격하거나 거부하지 않았다. 

자신을 지켜준 것에 대한 보답인걸까 턱을 괴고 보고 생각하며 미묘한 공기를 풍기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어라? 이제 친해진 거야?”

토리이에서 내려와 즐겁게 묻는 오소마츠 형에게 이치마츠가 달려왔다. 

땅을 박차고 바로 오소마츠 형의 품에 뛰어든 이치마츠를 오소마츠 형이 가볍게 받았다. 

지네에게 습격을 당하고 나서 이치마츠의 어리광은 확연히 늘어났다. 

오소마츠 형도 이치마츠가 자신을 따르는 것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 

아니, 오히려 엄청 기뻐보였다. 


헤실헤실 웃으며 품에 안긴 이치마츠를 쓰다듬는 오소마츠 형의 모습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소마츠 형과 이치마츠가 풍기는 분위기에 누그러지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카라마츠도 완전히 풀어진 얼굴로 오소마츠 형에게 다가갔다.


“캬앗!!!”

“엩?!”

카라마츠가 오소마츠 형에게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이치마츠가 온 몸을 부풀리고 카라마츠를 위협했다. 

방금 전까지 순순히 카라마츠의 손을 받아들였으면서 바로 태도를 바꾼 이치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울상을 지었다. 

오소마츠 형도 이치마츠의 태도에 쓰게 웃으며 “아직 친해진 건 아니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이치마츠를 안아든 채 오소마츠 형이 토리이 위로 뛰어 올랐다. 

위로 올라간 오소마츠 형을 바라보며 내게 가까이 다가온 카라마츠가 내 옆에 주저 앉았다.


“대체 뭐가 문제인가…”

눈썹을 늘어뜨리고 한탄하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 건가 싶어 절로 한숨이 나왔다. 

카라마츠가 뭔가 알고 있는 건가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해 할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오소마츠 형은 2번이나 이치마츠를 구해줬잖아?”

“응? 아, 그렇군. 처음 만났을 때와, 지네 때 말인가?”

“응. 그러니까, 오소마츠 형을 완전히 ‘엄마’처럼 따르는 것 같아.”

“아, 그건 보면 안다.”

“그러니까, 저 녀석은 오소마츠 형이 너무 좋은거야. 나랑 있다가도 오소마츠 형이 보이면 바로 쪼르르 달려가거든.”

“아아…”

“그러니까, 오소마츠 형한테 다가오는 사람은 전부 녀석에겐 적인거지.”

“…헤?”

“카라마츠, 너가 오소마츠 형에게 다가가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이야기야.”

“에엣!?”

황당하단 얼굴로 외친 카라마츠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럴수가…” 하고 한탄하는 카라마츠는 오소마츠 형과 거리를 둔다는 선택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일부러 이치마츠와 친해질 방법을 알려줬는데도 카라마츠는 그 이후로도 오소마츠 형과 가까이 지냈다. 

덕분에 매일 이치마츠에게 위협받고 공격받는 나날이 이어졌다.





“죽인다, 개똥마츠.”

“엩?!”

완전히 성인의 몸이 되어서도 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위협하는 일은 사라지지 않았다. 

성체가 되어 그렇게 따랐던 오소마츠 형과도 조금 거리를 두게 되어도, 이치마츠는 여전히 오소마츠 형의 곁에 있는 것을 좋아했다.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라는 동생이 생긴 뒤로는 제법 ‘형’으로서 행동하고 철이 든 것 같았지만, 카라마츠에 한해서는 어릴 적과 같은 태도를 취했다. 

덕분에 카라마츠는 이치마츠가 있을 때는 오소마츠 형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오소마츠 형을 뒤에 세우고 카라마츠를 위협하고 있는 이치마츠와 억울하단 얼굴로 이치마츠를 바라보고 있는 카라마츠, 그리고 그 셋과는 아무 상관 없다는 듯 둘이서 놀고 있는 쥬시마츠와 토도마츠의 모습을 보며 문득 떠오른 생각에 피식- 웃으며 이치마츠를 말리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엉망진창에 결코 어울리지 않아 보여도 우리는 누가 뭐라해도 끊을 수 없는 ‘가족’이었다.






* 요즘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네요.. 모두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 원래는 이번주에 2편 이상 올릴 생각이었지만, 야근에게 발목이 잡혔습니다... 당분간은 주 1편 이상은 올리기 힘들 것 같아요...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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