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편입니다ㅎㅎ
* 텐구 카라마츠와 천호 오소마츠가 처음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 소설에서 묘사된 '신'이나 '요괴'에 대한 설명들은 전부 제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저는 일본요괴나 신화에 대해 밝지 않아서..ㅎ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대국주가 부르신다며 방문을 열고 들어온 쵸로마츠가 바로 이불을 빼앗았다.
이불 안의 따뜻한 온기가 순식간에 사라져 꼬리를 온 몸에 감싸고 몸을 웅크리니 짜증을 숨기지 않고 팍팍 드러내며 쵸로마츠가 잔소리를 시작했다.
대충 잔소리에 대답하며 겨우 몸을 일으키자 퍽! 소리가 나도록 등을 맞았다.
“아파아~~~~!!”
“얼른 일어나서 대국주님께 가!!!!”
분명 벌겋게 손바닥 자국이 남았을 등을 문지르며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쵸로마츠가 설렁설렁 걸어가는 나를 향해 “얼른 가!!”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저 녀석은 아무리 알고 지낸 세월이 오래 되었다지만 엄연히 요괴인 자신보다 위의 존재인 나를 너무 막 대한다.
내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대국주의 집에 도착하자 내신이 대국주의 방으로 안내했다.
쓸데없이 거대한 방문을 밀어젖히고 들어가자 할아범이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무슨 일로 불렀어? 할아범-“
할아범의 앞에 준비된 방석에 가 앉자마자 할아범이 씩- 웃었다.
묘하게 능글거리는 것이 분명 속셈이 있는 웃음이었다.
저 너구리 같은 할아범은 항상 이상한 수를 써서 나를 골탕먹이는 것을 좋아했다.
정말로 저러는데도 대국주라니, 나를 비롯한 ‘신’들이 너무나 불쌍하다.
“실은 이번에 토지신이 필요한 곳이 있어서 말이다~”
“안 가.”
할아범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과 함께 망설이지 않고 즉답했다.
할아범은 살짝 눈썹을 찡그리더니 입을 삐죽 내밀고 말했다.
“거, 너무 즉답하지 말고 고민 정도는 해 보는 게 어떠냐? 다른 녀석들이 탐낼 정도로 큰 마을과 정기로 가득한 곳이라고?”
“나는 이제 지상에는 내려가지 않겠다고 했잖아, 할아범~ 그렇게 탐내는 녀석들이 많다면 나 말고 가겠다고 할 녀석 많겠네. 그 녀석들 시켜~”
이전 토지신을 맡았던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리고 대답했다. 다시는 그런 경험은 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내가 사랑해도 인간들은 내 사랑을 쉬이 알아주지 않는데다 너무나 쉽게 나를 잊었다.
그런 가슴 아픔 경험은 두 번 다시는 사양이다.
물론 아직 인간들은 사랑스럽고 토지신으로서 그들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은 남아있지만, 다른 마을을 맡게 된다면 분명 나는 카라마츠의 마을과 비교하게 될 것이다.
사랑스러운 카라마츠의 마을만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는 토지신을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한 터였다.
그리고 그 다짐을 할아범도 분명 알고 있었다.
“네 놈이 천상에서 일도 안하고 뒹굴 거리는 꼴이 보기 싫어서 너를 보내려는 거 아니냐!”
짐짓 화난 척을 하며 콩! 하고 앉은뱅이책상에 주먹을 가볍게 내리친 할아범이 말했다.
푹- 하고 절로 나오는 한숨을 내쉬며 격식을 갖추어 정좌하고 있던 다리를 풀었다.
무릎을 꿇고 있느라 수고한 다리를 주무르며 할아범에게 불평하자 할아범이 능청스레 어깨를 올리며 고개를 돌리고 중얼거렸다.
“안 가면 네가 후회할 텐데~? 그게 아니면 이제 토지를 맡을 자신이 없는 게냐?”
할아범의 도발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입을 가리고 비웃는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할아범의 태도에 살며~시 짜증이 머리를 들었다.
불쾌한 기분에 꼬리가 제멋대로 이리저리 좌우로 흔들렸다.
“할아범~? 무~슨 말을 하는 걸까나아~?”
“그래, 매일 제 집에서 노니 그 신통력이 다른 녀석들보다 떨어지는 것은 할 수 없지. 그럼 너보다 더 강한 녀석으로 골라야겠구나.”
아, 왔다.
짜증이 왔어.
진짜 저 할아범은 대체 갑자기 불러놓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 최강인 오소마츠님보다 더 강한 녀석이 있을 리 없잖아.
“알았어. 가면 되잖아!”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뿌연 안개가 낀 것마냥 멍한 머리와 제 할 일을 잊고 나태하게 놀고 있는 이성덕분에 할아범의 빤히 보이는 도발에 넘어간 나는 크게 외치며 몸을 일으키고 할아범의 방을 나왔다.
그리고 나중에 집에 도착해 죽을 정도로 후회했다.
2.
모월 모일.
망할 할아범의 빠른 일처리 덕분에 나는 토지신을 맡겠다고 실수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식으로 토지신으로 임명 받았다.
오늘은 내가 부임 받은 토지에 내려가는 날.
몸을 정결히 씻고 정화한 후, 불편하고 몸에 달라붙는 예복을 갖추어 입은 내 모습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절대로 다른 마을을 다스리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놓고,
그렇게 값싼 도발에 넘어가다니.
정말로 그 때는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 틀림없다.
화차(火車)가 도착했다며 방에 들어온 쵸로마츠가 위 아래로 내 모습을 훑어보더니 한숨을 푹 쉬며 다가와 내 옷깃을 정돈해 주었다.
“토지신으로 내려가는 녀석이 얼굴이 뭐 그래?”
내 얼굴을 보며 처진 눈썹을 찌푸리고 쵸로마츠가 물었다.
절로 나오는 한숨과 함께 귀와 꼬리가 축 늘어졌다. 내려가고 싶지 않다.
인간 세상에 내려가면 분명 아직 내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는 카라마츠를 떠올리고 말 것이다.
아직 카라마츠를 향한 내 감정은 퇴색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어 몰려올 그리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예복 때문에 불편한 걸음걸이로 뒤뚱뒤뚱 걸어 화차에 올랐다.
천상에서의 남은 일처리를 마치고 따라 내려가겠다는 쵸로마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바로 화차는 천상을 떠나 지상으로 향했다.
흔들리지 않고 부드럽게 하늘을 날고 있는 화차의 안에서 다시금 자신의 실수를 곱씹고 후회했다.
지상에 도착해 큰 소음을 내지 않고 화차가 신사에 그 바퀴를 내렸다.
떨리는 가슴에 크게 심호흡을 한 뒤, 태연한 얼굴을 만들고 화차에서 내려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에..”
작게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왔다.
깔끔하게 정리된 붉은 신사의 입구에 카라스텐구가 길의 양 쪽에 일렬로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의 영역인 신사에 이렇게 많은 수의 요괴가 있다는 것에 놀라 턱이 떨어졌다.
유사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신’과 ‘요괴’는 그다지 사이가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는 불가침의 암묵적인 규칙 아래, 요괴는 자신이 머무는 토지신에게 간섭하지 않고 신도 요괴가 사악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토지에 머무는 것을 허락했다.
그런데 내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런 내 상식을 추월했다.
처음 토지신을 맞이하는 마을이라지만, ‘요괴’인 카라스텐구가 ‘신’을 환영하기 위해 신사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지렁이가 들으면 웃으며 기어갈 정도의 어이없는 일이었다.
얼떨떨한 심정을 숨기고 마른침을 삼키며 텐구들이 늘어선 길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신사 안쪽으로 들어가는 나를 따라 텐구들의 눈이 움직였다.
감시자의 눈처럼 매서운 눈초리 수십 개가 나를 향해있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신사의 사당 앞에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텐구들을 쭉 훑어보았다.
모두 하나같이 늠름한 사내의 모습을 한 텐구들은 어딘가 지쳐 보였다.
깔끔하지만 자세히 보면 낡은 옷을 입고 그 어깨에 달린 단단한 날개들은 윤기를 잃고 퍼석퍼석해 보였다.
내 눈빛을 하나하나 받아 치는 텐구들은 그 특유의 거만한 넘치는 눈빛으로 나를 속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건방진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뻔뻔히 ‘신’을 노려보는 겁 없는 태도에 너털웃음이 나왔다.
“이야~ 이렇게 환영식까지 마련해 주다니 고마운 걸~”
태연하게 웃는 얼굴로 도발하듯 말하자 텐구들이 일제히 눈을 부라리며 험악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한 몸처럼 일제히 움직이는 모습에 우스워 웃음이 나오려는 입을 소매로 가렸다.
기분 좋게 녀석들의 눈길을 받아주며 무슨 이유로 이렇게 이곳에 모여 있는 것인지 물으려 입을 연 순간, 푸른 창공 가득히 푸드덕거리는 거센 소리와 함께 다른 텐구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큰 날개를 가진 텐구가 신사에 내려앉았다.
나를 향해있던 텐구들의 눈빛이 모두 새로이 신사에 도착한 텐구에게로 쏠렸다.
몇몇 텐구는 새로 등장한 텐구에게 달려가 존경에 가득 찬 눈빛으로 텐구를 올려다보며 말을 걸고 있었다.
흐음~ 저 녀석이 수장인가?
후에 등장한 텐구는 역광으로 검게 보이는 실루엣으로 보아 다른 텐구들보다 한 층 큰 덩치와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따각따각 나막신이 신사의 돌 바닥에 부딪쳐 청량한 울음을 자아냈다. 길을 터주는 텐구들 사이를 걸어 내 앞에 선 텐구가 고개를 들었다.
“…!!”
맑은 유리처럼 빛나는 푸른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숨을 쉬는 것을 잊었다.
기억 속에 남아있던 사랑스러운 아이, 카라마츠의 얼굴이 바로 내 눈앞에 서 있었다.
“환영한다. 「신」이여. 나는 이 마을에 터전을 잡은 카라스텐구의 수장(首長), 카라마츠다.”
“「신」님!!”
신사를 가득 채우고 울리는 낮은 목소리에 과거로 쓸려간 것처럼 그리웠던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빙긋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그 부드러운 눈빛과 손길이 기억에서 빠져 나와 내 몸을 더듬었다.
그 그리운 아이가,
카라마츠가,
지금 내 눈 앞에 있다…
쿵쿵대며 크게 박동하는 심장이 고막을 울렸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져 고개를 숙였다.
새삼스레 다시 몇백 년도 지난 기억이 나를 옭아맸다.
아, 그립다.
카라마츠가, 그립다.
입술을 깨물고 필사적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하는 사이, 다시 텐구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괘, 괜찮은가?”
기특하게도 나를 걱정하는 음색에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소매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 고개를 들었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얼굴이 티끌 하나 변하지 않고 온전히 내 앞에 존재했다.
“그래, 수장씨. 어째서 이렇게 많은 텐구들이 신사에 몰려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을까?”
목소리가 떨리지 않기를 기도하며 물었다. 다행히 떨리지 않고 맑은 목소리가 나와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텐구의 수장’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이 마을을 수호해 왔으며 천상에 토지신을 내려달라고 요청한 것도 자신들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천상에서 내려온 토지신을 환영하기 위하여 이곳에 모여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요괴가 ‘신’을 환영이라…
요괴와 신 사이에 통용되던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깨부수는 행위에, ‘신’인 나를 경솔하게 대하던 카라마츠가 떠올라 빙긋- 미소가 피어 올랐다.
“그럼 앞으로 너희들은 계속 하던 대로 이 마을을 수호하면 돼.”
“…!”
내 말에 놀란 얼굴을 한 텐구의 수장을 뒤로 하고 신사의 입구에 놓인 붉은 토리이 위에 올랐다.
환하게 비치는 햇빛을 받아 커다란 마을이 반짝였다. 커다란 호수와 익숙한 지형에 가슴이 포근해지면 꽉- 하고 조였다.
아아, ‘그 마을’이다.
카라마츠의 마을이다.
내가 다스렸던 그 마을이다.
그 사랑스러운 아이의 마을이다.
이미 저 커다란 호수의 바닥에 가라앉은 옛 마을을 품고, 새로운 마을이 빛을 받아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가슴 가득 피어 오르는 따스함에 미소 지었다.
망할 대국주 할아범이 내 다짐을 알고 있으면서도 싸구려 도발을 해가며 이곳으로 보내려 한 이유를 깨달았다.
다시는 ‘다른’ 마을을 다스리지 않겠다고 한 나에게 ‘같은’ 마을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해준 할아범의 배려에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얼굴을 간질이는 바람에 따라서 꼬리를 느긋하게 흔들었다.
지형은 다소 변했어도 이곳에서 바라보는 마을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생기 넘치게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나의 사랑스러운 마을이다.
천리안으로 쭉 마을을 훑어보자 군데군데 보이지 않는 구석에 악한 기운이 서려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힘을 모아 마을 전체에 결계를 피고 산의 정기를 정화했다.
하는 김에 뒤쪽에 서 있을 텐구들에게도 맑은 정기를 나누어 주었다.
‘내 마을’을 수호하는 녀석들이 약하면 곤란하니까. 결계와 정화로 힘의 절반이 날아갔다.
무겁게 팔 다리를 짓누르는 피로감에 쓰게 웃었다.
확실히 너무 놀았던 걸지도.
과거엔 이 정도에 지칠 정도는 아니었는데, 전성기가 지나버린 몸은 이 마을을 수호하기에는 조금 힘이 부칠지도 모르겠다.
다시 힘을 기를 방도를 궁리하며 토리이에서 내려왔다.
멍청히 나를 보고 있는 텐구들 사이로 푸른 눈을 가진 수장에게 다가갔다.
웃으며 손을 내밀자 텐구는 고개를 갸웃하며 내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 녀석은 악수도 모르는 건가?
“악수하자고?”
“아, 아아...”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한 텐구가 큰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았다.
카라마츠처럼 크고 딱딱한 손. 결코 부드럽다고 할 수 없는 그 손은 굉장히 따뜻해서 놓고 싶지 않은 그런 상냥한 손이었다.
분명 토지신이 없는 이 마을을 지키느라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이다.
과거 내가 다스렸던 때보다 훨씬 더 커진 마을은 내가 봐도 수호하기 힘들어 보였다.
수고했다는 노고의 위로를 담아 손을 두어 번 위아래로 흔들고 놓았다. 여전히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는 텐구에게 말했다.
“나는 오소마츠. 잘 부탁해.”
“아아.. 아까도 말했듯, 나는 텐구의 수장 카라마츠다.”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해~”
싱긋 웃으며 말하자 텐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처럼 깊은 눈동자의 심연에서 맑게 빛나고 있는 영혼이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자신의 수하들을 이끌고 신사 맞은편의 산으로 돌아가는 텐구를 배웅했다.
맑고 깨끗하고 올곧은 그 영혼은 분명,
카라마츠의 것이었다.
3.
“예?!! 어째서 그럴 필요가 있는 거죠?!”
예상했던 대로 거세게 반발하는 젊은 텐구들의 목소리에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지끈거리기 시작한 머리를 잡고 줄을 맞추어 앉아있는 젊은 텐구들을 바라보았다.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회의. 오늘의 안건은 ‘토지신’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들의 힘 만으로는 도저히 이 큰 마을을 수호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토지신을 부르자는 제안을 했지만, 카라마츠의 오랜 친구 치비타를 제외한 다른 텐구들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요괴들 중에서도 자존심이 높다고 소문난 것이 텐구이다.
우리들의 힘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텐구인 나도 잘 알고 있다. 푹- 다시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아무리 우리가 힘을 쓴다고 해도, 토지신이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은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요괴’인 우리의 수호와 ‘신’의 수호가 그 성질이 다른 것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신’의 수호가 없다면 결국엔 어떻게 되는지 모두 이미 체험한 바.”
과거를 언급하자 바로 텐구들은 고개를 숙였다.
이전, 이 ‘여우골’이라고 불리는 마을에 지냈을 무렵, 여우골보다 더 크고 번창했던 마을은 아무리 우리들이 온 열의를 다하여 수호하여도 조금씩 부정한 기운에 침식되어 갔다.
토지신이 없는 토지의 정기는 서서히 검게 물들여졌고, 결국 우리의 수호가 빈틈을 보이자마자 온갖 악귀와 악령에 점령당한 마을은 인간도, 요괴도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그 후로 얼마나 오랜 세월을 전국을 떠돌며 힘겹게 살아왔는지, 이 회의에 참석한 녀석들은 모두 알고 있을 터였다.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하고 언급하고 싶어하지 않는 젊은 텐구들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치비타에게 천상에 보낼 서신을 부탁하고 회의를 종료했다.
비통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린 젊은 텐구들은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후, 방을 나섰다.
“그렇다곤 해도, 마음에 안 드는 건 어쩔 수 없어, 쨔샤.”
젊은 텐구들이 모두 물러난 방 안. 홀로 남은 치비타가 서신을 작성하며 주먹으로 코를 문댔다.
작성이 끝나 건네 받은 서신을 읽으며 혹 예의에 어긋나는 문장은 없는지 확인하여 다시 치비타에게 건넸다.
회의에서 나를 생각해 굳이 반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치비타도 토지신을 들인다는 것에는 거부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오랜 친구의 한마디에 쓴웃음이 나왔다. ‘텐구’라는 종족은 요괴들 사이에서도 급이 제법 높은 종족이다.
푸른 하늘을 지배하며 선천적으로 높은 요력을 타고 나는 우리들에게는 타 종족을 배척하는 안 좋은 습관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자존심 따위를 내세울 만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의 터전을 잃는 것은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등받이 의자에 등을 기대고 치비타에게 말했다.
“그래도 신의 가호가 있다면 저번과 같이 터전을 잃지는 않을 테니까..”
“너도 참 대단한 녀석이야- 쨔샤.”
웃으며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 말의 의도를 이해한 오랜 친구가 방을 떠났다.
은은하게 빛나는 작은 등불이 어둠에 감싸인 방 안을 밝게 비추었다.
바람에도 꺼지지 않고 흔들리며 그 빛을 계속 발하는 작은 등불을 보며 눈을 감았다.
분주히 움직이며 젊은 텐구들이 신사를 청소했다.
먼지를 쓸고 닦고 비록 신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힘으로 산의 정기도 정화했다.
아무리 이 신사를 마을의 인간들이 잘 관리했다고는 하나 주인이 없던 빈 신사는 처참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수리해야 할 부분들을 하나하나 고치며 시간에 맞출 수 있기를 빌었다.
얼마 전, 우리가 보낸 천상에 보낸 서신에 대한 답장이 내려왔다.
모월 모일 ‘신’이 내려갈 테니 준비하라는 편지의 내용에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신의 가호가 있다면 지금보다 더 곤고히 마을을 수호할 수 있을 것이고, 어렵게 찾은 터전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얼추 청소가 끝나자 직접 돌아다니며 신사의 상태를 확인했다.
어떤 신이 내려올 지는 모르겠으나 괜히 트집을 잡히고 싶지는 않았다.
‘신’이라는 것은 가끔 ‘텐구’ 이상으로 요괴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본래 ‘신’과 ‘요괴’는 기름과 물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이 터전을 위해서는 오늘 내려오는 신과 양호한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신사의 청소는 양호한 관계를 위한 첫 단계였다.
신사 곳곳을 돌아다니며 확인하면서 마주친 젊은 텐구들은 모두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신’을 위해서 청소를 하는 것이 어지간히도 싫은 모양이다.
모든 수리와 청소를 마친 후,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곧 신이 내려올 시간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젊은 텐구들을 두 줄로 세웠다.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묵묵히 내 말에 따라주는 젊은 텐구들에게 쓰게 웃은 뒤, 날개를 펴 하늘로 올랐다.
어떤 신이 내려올지 내 두 눈으로 확실히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날아오른 뒤, 바로 하늘 저편에서 화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보는 신의 도래에 젊은 텐구들 모두 입을 벌리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밝게 빛나는 화차는 조심스럽게 신사에 내려앉았다.
곧 화차에서 붉은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사에 발을 딛고 고개를 든 ‘신’의 모습에 젊은 텐구들은 모두 적의에 가득 찬 시선을 보냈다.
‘신’과 좋은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몇 번을 다그쳐도 텐구들에게 깊게 박혀있는 기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방인을 바라보는 젊은 텐구들의 모습에 지금까지의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면서도 ‘신’이 어떤 행동을 할지 궁금했다.
붉은 기모노를 입은 신은 황금색의 꼬리와 귀를 흔들며 텐구들 사이로 걸어가 사당의 앞에 섰다.
빙글 몸을 돌려 텐구들을 바라본 신이 빙긋 웃었다.
“이야~ 이렇게 환영식까지 마련해 주다니 고마운 걸~”
장난기가 묻어 나오는 맑은 목소리가 울렸다.
뜻 밖의 신의 말에 젊은 텐구들은 모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보통의 ‘신’이라면 자신을 노려보는 텐구들에게 무례하다며 호통을 치고도 남았을 텐데…
걱정과 달리 말이 통하는 ‘신’이라는 생각에 날개를 크게 퍼덕여 모습을 드러내고 신사로 내려갔다.
몇몇 텐구가 다가와 나를 반겼다. 손을 들어 그들은 잠시 물리고 신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아름답다..
신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저항할 수도 없는 ‘신’의 기운에 말을 잃었다.
붉은 기모노가 은근하게 얇은 몸을 감싸고 그 뒤에서 윤기가 흐르는 황금색의 꼬리가 살랑거렸다.
탁한 빛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유리 같은 붉은 눈동자가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무엇에 놀랐는지 신은 그의 꼬리와 귀를 크게 움찔거리며 크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환영한다. 「신」이여. 나는 이 마을에 터전을 잡은 카라스텐구의 수장(首長), 카라마츠다.”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자 신의 붉은 눈동자에 슬픔이 서렸다.
가늘게 뜬 눈이 촉촉히 빛났다.
대체 무엇 때문에 저런 얼굴을 하는 걸까.
신의 아름다운 얼굴에 그늘이 드리우는 모습에 가슴이 욱신거렸다.
“괘, 괜찮은가?”
걱정되어 묻자 신이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소매로 눈가를 훔치고 고개를 든 신이 온화하게 웃었다.
“그래, 수장씨. 어째서 이렇게 많은 텐구들이 신사에 몰려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을까?”
신의 목소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헛기침을 하며 목을 다듬고 바로 입을 열어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했다.
어떻게 이 마을에 살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이 마을을 수호해 왔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천상에 토지신을 요청했다는 것도 모두. 마지막으로 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는 말을 하자 신이 복잡한 얼굴로 내 뒤에 서 있는 젊은 텐구들을 훑어보았다.
쭉- 자신을 향해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눈길을 하고 있는 텐구들에게 은은하게 웃은 신은 곧 입을 열어 그 청아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럼 앞으로 너희들은 계속 하던 대로 이 마을을 수호하면 돼.”
“…!”
‘신’의 말에 놀라 입이 벌어졌다.
신은 자신을 향한 젊은 텐구들의 눈길을 그대로 받으며 유유히 걸어 토리이 앞으로 다가갔다.
훌쩍 몸을 띄워 토리이 위로 올라가 마을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토리이 위에 서 있는 한 사람의 인영.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고고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너무나 고독해 보였다.
대체 어떤 얼굴로 마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알고 싶었다.
처음으로 누군가의 곁에 다가가고 싶다는 욕구에 당혹스러웠다.
망연히 서서 ‘신’을 올려다보고 있자, 신은 곧 손을 들어 온 마을을 감싸는 결계를 만들어 냈다.
순식간에 투명한 막이 마을을 감싸고 마을 곳곳에 숨어있던 사악한 기운을 몰아냈다.
한층 더 맑아진 산의 정기가 마을과 우리들을 둘러쌌다. 온 몸을 타고 부드럽게 매만지는 따스한 기운에 눈을 더 크게 떴다.
젊은 텐구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신’은 지금 자신의 정기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온 몸을 감싼 기운은 곧 내 몸에 ‘힘’을 주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힘에 날개를 펼쳐 보았다.
검고 큰 날개에 윤기가 흐르고 힘찬 날개짓에 일순 큰 바람이 일었다. 신은 다시 토리이에서 뛰어내려 내 앞으로 다가왔다.
손을 내 앞에 내민 신의 행동에 당황에 빤히 그 손을 내려보고 있자 신이 입을 열었다.
“악수하자고?”
“아, 아아…”
신의 작은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작고 부드러운 손이 내 손을 강하게 쥐었다가 놓았다. 손에 남아있는 온기에 묘하게 안타까워졌다.
“나는 오소마츠. 잘 부탁해.”
싱긋-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이 귀여웠다. 멀거니 그 미소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아.. 아까도 말했듯, 나는 텐구의 수장 카라마츠다.”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해~”
얼떨결에 대답한 내 말에 신이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곧 활짝 웃었다.
젊은 텐구들을 이끌고 다시 청산으로 돌아가는 우리들을 ‘신’은 신사에 홀로 서서 배웅했다.
우리를 향한 ‘신’의 눈빛을 본 순간, 꾹- 하고 심장이 조이는 감각에 가슴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건강하기 그지 없는 몸이다.
심장이 아플 이유가 없는데도 지속적으로 심장을 조여오는 달콤쌉싸름한 이유 모를 고통에 나도 모르게 눈썹이 찌푸려졌다.
4.
영지에 발을 내딛자마자 젊은 텐구들의 불만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하필이면 그런 하급신을..!!”
“인간형이라고는 하나 짐승의 귀와 꼬리가 붙어 있는 하급신을 내려주다니!”
“천상이 우리를 우습게 보고 있다는 증거야!!”
“우리가 얼마나 힘겹게 이 마을을 수호해 왔는데, 이제 와서 다 된 밥상에 숟가락 얻겠다는 심보지!”
“우리에게 잡일을 맡기겠다니 결국 지는 띵까띵까 놀면서 인간들의 숭배나 받겠다는 소리 아니야?!”
성난 표정으로 제 멋대로 떠들기 시작한 젊은 텐구들의 어리석음에 얼굴이 굳었다.
서서히 내려앉는 내 기분을 눈치챘는지 치비타가 젊은 텐구들을 다그치며 불만을 잠재우려 했으나, 쉬이 젊은 텐구들의 원망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만!”
결국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불평을 토로하던 젊은 텐구들이 모두 몸을 움츠리고 두려움이 서린 눈길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들의 어리석음에 질려 나도 모르게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내려다보며 이마를 짚었다.
푹- 나오는 한숨을 감추지 않고 손을 들자 젊은 텐구들이 재빨리 방을 빠져나갔다.
이전의 거처에서부터 나를 따르고 충성을 바친 텐구들이었다.
나에게 분에 넘치는 존경을 보이는 텐구들이지만 이럴 때마다 드러나는 텐구의 치졸한 자존심과 그 생각의 짧음에 나를 질리게 만들었다.
털썩 자리에 누워 어릴 적 겪었던 ‘신’에 대해 생각했다.
어린 시절 살았던 마을에는 ‘신’이 있었다.
요괴를 극히 혐오하는 그는 마을에 머물고 있는 우리를 핍박하고 무시했다.
‘신’의 만행에 참지 못하고 마을을 뛰쳐나가는 자들도 있었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내게 ‘신’이란 그런 존재였다.
‘신’의 필요성을 느끼고 어떤 신이 와도 받아들일 각오를 하고 있던 나에게 ‘오소마츠’는 정말로 뜻 밖의 인물이었다.
오소마츠의 검은 머리칼 위에서 살랑이던 황금색 귀와 유유히 하늘거리던 4개의 꼬리.
본디 ‘신’이라는 존재는 그 힘이 강대할수록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짐승의 귀와 꼬리는 처음부터 ‘신’으로 태어난 자가 아닌, 짐승에서 오랜 수련을 통해 ‘신’이 된 자들의 상징이었다.
그런 신들은 완벽한 인간의 형태를 지닌 신보다 급이 낮은 하급신이었다.
그런데 오늘 보여준 오소마츠의 힘은 결코 하급신의 힘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결코 작지 않은 온 마을을 감싼 결계는 그 어떤 악귀가 와도 뚫지 못할 정도로 단단하고 견고했다.
결계뿐만 아니라 마을을 둘러싼 산의 정기까지 정화하고 우리들에게 그 정기를 나누어 주었다.
그런 힘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나로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큰 힘이었다.
몸을 감쌌던 맑은 정기와 함께 범접할 수 없는 큰 힘의 차이에 나도 모르게 온 몸이 떨렸다.
그렇게 작고 여린 몸을 하고 있으면서 그런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도 놀랐지만, 우리의 편의를 봐 준 것에도 놀랐다.
“그럼 앞으로 너희들은 계속 하던 대로 이 마을을 수호하면 돼.”
완전한 존재인 ‘신’이 ‘요괴’인 우리들을 배려해 준 것이다.
줄곧 우리가 이 마을을 수호해왔던 것을 인정하고 우리의 행위에 특별히 제제를 가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오소마츠는 그 말을 한 것이다.
우리들에게 행동의 자유를 보장해 준 것이다.
그리고 악수까지.
그 작은 손을 잡았던 자신의 손을 들어 쳐다보았다.
따스했던 그 손은 어쩐지 안심이 되는 손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신’은 결코 ‘요괴’에게 닿으려 하지 않았다.
우리를 불결하다며 경멸하고 멀리하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신’의 모습이었다.
오소마츠처럼 웃는 얼굴로 먼저 악수를 청하는 일은 없었다.
내가 봐 왔던 ‘신’의 모습과 너무나 다른 오소마츠가 더 알고 싶었다.
신사에 홀로 서서 우리들을 배웅하던 오소마츠의 모습을 본 이후로 사라지지 않는 이 가슴의 고통의 이유도 알고 싶었다.
내일 한번 더 오소마츠를 만나러 갈 것을 홀로 다짐하며 눈을 감았다.
6.
신사의 돌바닥에 나막신이 따각 하고 울리며 소음을 냈다.
신사에 도착해 날개를 접고 한결 정결해진 신사의 기운에 미소 지으며 그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사당은 오소마츠의 신통력에 의해 사람이 살 수 있는 커다란 저택으로 그 모습을 바꾸어 서 있었다.
저택을 올려다보며 오소마츠를 어떻게 불러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사이, 문이 쾅! 하고 열리며 오소마츠가 밖으로 뛰쳐나왔다.
거대하게 혹이 솟은 머리를 감싸고 울상이 된 얼굴로 저택에서 뛰쳐나온 오소마츠가 몸을 돌려 크게 외쳤다.
“아프잖아!! 쵸로따르스키이!!!!”
“누가 쵸로따르스키냐?!”
오소마츠의 노성에 맞서며 저택에서 나온 요괴의 큰 목소리에 놀라 입을 벌렸다.
온 몸에 붕대를 감고 녹색의 기모노를 입은 요괴는 어째선지 나와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요괴면서 ‘신’인 오소마츠에게 성난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요괴를 빤히 쳐다보자 내 시선을 눈치챈 요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서 있는 우리 둘의 사이에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소마츠가 웃으며 껴들었다.
“어이어이, 그렇게 서로 찐-하게 쳐다보다니~ 첫눈에 반했어~?”
오소마츠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녹색의 기모노를 입은 요괴가 얼굴을 구기며 오소마츠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오소마츠의 볼을 꼬집었다.
“아파아파아파~!!!”
솔직하게 아파하는 오소마츠를 험악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녹색의 요괴가 말했다.
“됐고, 얼른 밀린 일이나 해.”
“우우~ 아파라~~”
요괴가 잡고 있던 볼을 놓아주자 슬슬 볼을 쓰다듬으며 오소마츠가 입을 비죽 내밀었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불평하고 있는 오소마츠를 노려본 녹색의 요괴가 놀라 굳은 채, 서 있는 나에게에게 다가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 망할 신의 보좌로 온 쵸로마츠라고 합니다.”
“…테, 텐구의 수장, 카라마츠라고 합니다.”
정중하게 인사하며 존댓말을 하는 녹색의 요괴에게 이끌려 존댓말로 대답했다.
인사를 마치자 마자 쵸로마츠가 슬금슬금 도망치려는 오소마츠의 꼬리를 꽉 붙잡았다.
오소마츠의 황금색 귀가 곤두서고 털이 바짝 일어났다.
울상이 된 얼굴로 뒤돌아 쵸로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외쳤다.
“아파!!!”
“도망치지 마!!! 손님 오셨잖아!”
쵸로마츠의 짜증 섞인 음성에 오소마츠가 푹 한숨을 내쉬더니 “네이네이~” 하고 건성으로 대답하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어제와 같이 장난기 묻어 나오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오소마츠가 내게 인사했다.
“어서 와, 텐구님~ 그런데 무슨 일?”
“아, 아니… 그…”
고개를 기울이며 묻는 오소마츠의 질문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말을 더듬었다.
솔직하게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해야 할까..
온 몸을 감싼 긴장에 침을 삼키고 어색하게 웃어 보이자 오소마츠가 피식- 웃음을 흘리곤 꼬리를 흔들었다.
“밥 먹고 갈래?”
“..밥?”
“응.”
오소마츠의 제안에 놀라 되물었다.
‘밥’이라니.
신은 정기와 인간들의 신앙으로 살아간다.
특별히 음식을 섭취할 필요가 없는 신의 입에서 나온 낯선 단어에 놀란 나를 당연하다는 얼굴로 바라본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와 동조했다.
“그래, 모처럼 왔으니 먹고 가.”
“아, 아아..”
얼떨결에 대답하자 바로 저택 안으로 안내 받았다.
넓은 저택의 안은 반짝거리며 잘 정돈되어 있었다.
바로 큰 방으로 안내 받아 자리에 앉자 커다란 상이 둥실 둥실 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상 가득 펼쳐진 먹음직스러운 음식의 향연에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처음 보는 음식까지 차려진 상에 앉은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젓가락을 들고 웃었다.
“잘 먹겠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따라 인사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고슬고슬 김을 내며 맛있는 밥과 함께 반찬 하나하나가 모두 진미였다.
미각으로 충족되는 행복감에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자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빙긋 웃었다.
식사를 마치고 느긋이 앉아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오소마츠가 내게 물었다.
“그래서? 진짜로 왜 찾아왔어?”
“아, 아니.. 그 감사를 말하고 싶어서.”
“감사?”
“오소마츠가 와 준 덕분에 산의 정기가 더 맑아진 것을 물론이고 우리들만으로는 막을 수 없었던 사악한 기운까지 모두 몰아낼 수 있었다. 게다가 우리들의 일도 자유로이 할 수 있도록 해 준 것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정기를 맑게 하고 마을을 수호하는 것은 응당 내가 할 일이고, 너희가 마을을 수호하면 그만큼 내 일이 줄어드니까 그렇게 한 것뿐이야. 그렇게 감사를 들을 정도의 일이 아닌걸.”
오소마츠가 멋쩍게 웃으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담뱃대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 묘하게 요염해보여 고개를 흔들고 번뇌를 떨쳐냈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오소마츠에게 미소 짓자 오소마츠의 귀가 움찔 떨렸다.
“어찌되었던 감사하고 싶었다. 그리고 앞으로 많은 교류를 하고 싶어서..”
내 말의 어디가 웃겼던 걸까 갑자기 오소마츠가 몸을 숙이고 큭큭 거리며 어깨를 떨었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든 오소마츠가 기쁘게 웃으며 말했다.
“언제든 네가 원하면 찾아와.”
원했던 것 이상의 대답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자 오소마츠가 다시 배를 잡고 웃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나는 그저 가만히 오소마츠를 바라보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7.
“갔어?”
이미 저 편의 산으로 날아간 카라마츠를 배웅하는 내 뒤로 다가온 쵸로마츠가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웃자 쵸로마츠가 눈썹을 올리고 의아하단 얼굴로 물었다.
“원래 텐구는 타 종족에게 저렇게 호의적이지 않은데 말이야..”
쵸로마츠의 말에 어제 나를 환영한다며 모인 텐구 무리의 적의 가득한 눈길을 떠올리고 웃었다.
보통은 그런 눈빛을 하는 것이 정상이건만, 저 바보 같은 녀석은 정면으로 호의를 숨기지 않고 오늘도 신사에 찾아와준 것이다.
웃음을 흘리는 나를 보며 쵸로마츠가 인상을 구겼다.
씩- 웃으며 쵸로마츠에게 텐구의 인상을 묻자 제법 호평을 하며 쵸로마츠가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은 녀석 같은데?”
한때는 형제였던 두 녀석이 처음 뵙겠다며 인사를 하는 것을 지켜보니 어쩐지 가슴이 애달프면서도 웃겨서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던 것을 떠올렸다.
형제였던 기억은 없지만 서로가 마음에 든 눈치였다.
이렇게 짓궂은 인연이 또 있을까.
이런 형태로 다시 카라마츠를 만나게 해 준 것에 감사하면서도 조금은 원망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녀석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나를 향한 눈빛에는 맹목적인 호감이 담겨 있었다.
부드럽고 열정적으로 나를 향한 그 눈길이 싫지 않으면서도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조금 슬퍼졌다.
카라마츠를 배웅하고 집으로 들어서자 마자 식신을 시켜 집 안을 청소했다.
예전 같으면 사용하지 않는 방에 먼지가 쌓이건 어쩌건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쓰게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가 남은 재료를 다듬어 정리했다.
이제 완전히 나에게 주방일을 맡긴 쵸로마츠는 방으로 들어가 오늘 안으로 처리해야 할 서류를 정리했다.
항상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는 주방을 한번 바라보며 아직도 남아있는 카라마츠의 흔적에 새삼 슬픔이 몰려왔다.
식사를 하는 것도, 집을 깔끔하게 하는 것도 예전의 나라면 신경 쓰지 않았다.
천 년이 넘는 삶 중에서 카라마츠와 함께 한 세월은 고작 1년.
그 1년이 예전의 나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나를 변화시켰다.
산의 정기(精氣)로 대신했던 식사는 이제 꼬박꼬박 챙겨먹는 것으로 모자라 내가 직접 요리를 하게 되었고, 어지럽게 물건이 널린 방을 보면 반드시 청소를 했다.
그 짧은 시간, 카라마츠는 확실하게 내 안에 자신의 존재를 새기고 떠났다.
자주 찾아오겠다고 말한 텐구 카라마츠는 그 날 이후, 매일 신사를 찾았다.
찾아오는 시간은 매일 달랐지만, 꼬박꼬박 하루에 한번은 잠깐이라도 얼굴을 내밀었다.
대체 언제 의기투합했는지 카라마츠는 금새 쵸로마츠와 친해져 신사를 찾아올 때마다 쵸로마츠와 대화꽃을 피우고 웃었다.
시원스레 웃는 얼굴에 다시 과거가 기억나 안타깝게 가슴을 조이는 고통에 텐구 카라마츠와 쵸로마츠가 대화를 하고 있으면 바로 자리를 피했다.
카라마츠의 영혼을 이어받은 그 텐구가 곁에 있는 것이 기쁘면서도 괴로워서 나는 아직도 텐구 카라마츠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오소마츠.”
쵸로마츠가 남긴 서류를 펄럭이며 넘기고 있으니 방문을 열고 텐구가 들어왔다.
부드럽게 나를 부르는 낮은 음성에 몸이 절로 뛰었다.
내게 다가와 맞은편에 앉으면 “미안하군,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다.” 하며 사과하는 텐구에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시선을 마주하는 것이 어색해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바라보고 있으니 내 앞에서 엄청나게 나를 응시하는 눈길에 정수리가 따가웠다.
고개를 들고 미소 띤 얼굴로 왜 찾아왔냐고 물으니 텐구가 쓴웃음을 건네며 물었다.
“우리 영지의 텐구들에게 너와 교류할 필요가 없다고 들어서.. 오소마츠, 네 생각에도 ‘요괴’인 나와 ‘신’인 네가 가깝게 지내는 것이 이상한가?”
당연하다면 당연한 질문을 건네며 짙은 눈썹을 찌푸리는 텐구의 모습에 고개를 기울였다.
왜 지금 와서 그런 것을 묻는 걸까? 가만히 눈을 마주하고 있자 텐구가 살짝 눈을 피하며 다시 물었다.
“그.. 내가 찾아오는 것이 민폐..인가?”
“어? 아니?”
망설이며 묻는 질문에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 와서 그런 것을 묻는 건가?
솔직하게 별로 민폐도 아니고 부담도 아니라고 대답하자 텐구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한숨에 웃음을 섞어 내뱉고 입을 열었다.
“네가 오면 쵸로마츠도 반가워 하고. 상관 없어, 얼마든지 찾아와도.”
“오소마츠는?”
“..나?”
내 말에 다시 눈썹을 찌푸린 텐구가 물었다.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내 눈 앞에 앉아있는 텐구를 응시했다.
카라마츠와 같은 맑은 영혼이 그대로 비치는 푸른 눈동자.
아무리 저항해도 저 눈동자를 무시하는 것은 할 수 없었다.
“나도 별로 민폐라고 생각 안 해.”
“하지만..”
“응?”
“..오소마츠는 내가 찾아오면 나를 피하지 않나?”
“어…”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정확히 짚고 물어오는 텐구의 목소리에 얼이 빠져 대답을 망설였다.
내가 바로 대답하지 못하자 텐구의 얼굴에 짙게 그늘이 드리웠다. 재빨리 손사래를 치며 다급히 말했다.
“아니!! 그게! 그건, 그러니까아…”
“오소마츠, 혹시 내가 그.. 탐탁지 않은가?”
“그게 아냐!! 그게 아니라… 우응~ 별로 피하려는 생각은 없었어? 정말로.”
“정, 말인가?”
“그래. 왜 그렇게 생각한 거야?”
“오소마츠는, 한 번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으니까.”
텐구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맑은 눈동자가 똑바로 나를 바라보고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굳게 입을 다물어버린 나는 고개를 숙이고 손에 쥐고 있던 붓을 놓았다.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방 안에 울렸다.
어색하고 무거운 침묵이 나를 누르고 목을 조여왔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에 가슴이 아파 가슴께의 옷자락을 쥐고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슬쩍 고개를 들어 텐구를 바라보자 조금은 슬픈 얼굴로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대답을 재촉하는 방법도 똑같은 거냐고..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인간 카라마츠.
나의 소중한, 사랑스러운 카라마츠.
그리고 내 눈앞에 앉아있는 그와 같은 영혼을 지니고, 같은 얼굴을 한 텐구 카라마츠.
머리 속을 휘감는 혼란스러움에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한 채, 그저 한숨 섞인 숨만은 내뱉었다.
같은 영혼을 지니고 아무리 얼굴과 행동이 닮았다고 해도, 눈 앞의 카라마츠는 나의 카라마츠는 아니다.
눈 앞의 카라마츠가 그 카라마츠이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과 동일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외치고 있는 이성과 과거를 기억해내는 그리움이 뒤섞여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오소마츠.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건가?”
고요히 나를 바라보며 슬픈 눈빛으로 묻는 텐구에게 고개를 저었다.
이 텐구에겐 죄가 없었다.
단지 내 머리와 마음이 눈 앞의 텐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실은, 예전에 사랑하는 아이가 있었어.”
“..엩?”
“그런데 너는 그 아이와 너무나 닮아서, 조금 대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야.”
“…”
“너와 그 아이가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어. 단지, 너무 닮아서 당황스러울 뿐이야. 그러니까…”
“…”
“조금만, 내게 시간을 주지 않을래? 제대로 너를 ‘카라마츠’라고 부를 수 있을 때까지.”
진실을 섞어 마음을 전하자 텐구는 잔잔한 미소를 피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싫어서 피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한 것처럼 보였다.
어린 얼굴에 피어 오른 부드러운 미소에 절로 손이 올라가 텐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엩?!”
“착하다~”
놀라 눈을 크게 뜨는 텐구의 모습이 귀여워 웃으며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었다.
텐구는 이내 놀란 얼굴을 거두고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고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8.
“그러고 보니, 카라마츠~”
“뭔가?”
사당에 나란히 앉아 청산 너머 넓은 하늘에 펼쳐진 석양을 함께 바라보며 카라마츠가 물었다.
턱을 괴고 있는 얼굴을 살짝 돌려 옆에 앉은 카라마츠와 눈을 마주했다.
“너는 내가 내려온 거에 불만 없었어?”
“오소마츠에게? 불만?”
“우응~ 나 하급신이니까.. 좀 더 강한 신을 내려주길 바랬다던가.. 뭐 그런 거~”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 카라마츠가 고개를 저었다.
푸른 눈동자가 상냥하게 나를 비추며 내 머리에 얹은 큰 손이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우 신사니까 여우신이 내려온 것일까-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만?”
“..정말로 그것뿐?!”
“아아..”
“진짜냐..”
보통은 불평한다고?
모처럼 내려온 토지신이 짐승의 귀와 꼬리를 가진 하급신이면…
투명하게 빛나며 거짓을 보이지 않는 카라마츠의 태도에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녀석은 이런 녀석이었다.
전생에 인간이었을 때도, 신인 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막 대하더니, 지금도 이 모양이라니..
피식- 웃으며 짓궂은 생각이 들어 꼬리를 즐겁게 너울거리며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너, 처음엔 나를 싫어하지 않았어?”
“에? 내가?”
“우응~ 뭔가, 처음 만났을 때, 굉장히 무뚝뚝했던 것 같은데 말이야~~”
“아, 그것은..”
“응?”
눈썹을 찌푸리고 내 눈길을 피해 고개를 돌린 카라마츠가 흠, 흠 하고 헛기침을 한 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소마츠가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하아?!?! 바, 바보 아냣?!”
빈틈을 찌르고 들어오는 부끄러운 발언에 순식간에 얼굴이 타오르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뻐끔뻐끔 입을 벌리고 말을 잇지 못하는 나를 보며 카라마츠가 부드럽게 웃었다.
* 실은 평일에 꾸준히 써서 약 80% 까지 완료했었습니다만, 오늘 읽어보니 너무 재미가 없어서 싹 갈아엎느라 늦게 올리게 되었습니다..
* 내일 중으로 단편 하나 이상!! 올리겠습니다. 모처럼 일이 적은 휴일이기에!!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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