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편이에요~ 예이~


* 지금와서 저의 폭주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5.

“「신」님은 정말 「신」인 건가?”

카라마츠의 질문에 상 맞은편에 앉은 오소마츠가 젓가락을 멈추고 무슨 황당무계한 소리냐며 물었다. 

화난 것 같은 오소마츠의 얼굴에 당황한 카라마츠가 식은땀을 흘리며 손을 흔들었다.


“아, 아니. 「신」으로서 무슨 일을 하는 건지 구, 궁금해져서…”

카라마츠의 말을 이어갈수록 오소마츠는 서서히 눈썹을 추켜세웠다. 

카라마츠는 결국 말을 흐리더니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고 밥그릇의 밥을 입으로 옮겼다. 

오소마츠는 눈 앞의 건방진 인간의 무례를 용서하기로 하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풍요의 신이라고.”

“풍요?”

“그래.”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카라마츠가 되물었다. 

오소마츠는 젓가락을 상에 내려놓고, 에헴- 하고 헛기침을 한 후 자랑스러워하는 얼굴로 눈을 빛냈다.


“이 몸이 있기에, 너희 마을이 다른 마을보다 더 많은 작물을 수확할 수 있는 거고! 게다가 아이도 많이 낳고! 쌍둥이도 많이 나오잖아! 너도 쌍둥이잖아?”

“..오, 오오. 우리는 오쌍둥이지…”

오소마츠의 물음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을 나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오겠다던 동생들은 모두 카라마츠와 동갑이었다. 

카라마츠는 제 얼굴과 똑같은 얼굴을 한 네 명의 동생들을 떠올렸다. 


“쌍둥이..인가.”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단숨에 힘을 잃었다. 쓸쓸하게 내뱉는 카라마츠의 말에 이번엔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쌍둥이가 왜?”

“아니, 별로. 그, 쌍둥이는 그닥 환영 받지 못하니까.”

“하아?! 왜?”

눈썹을 찌푸리며 묻는 오소마츠의 질문에 카라마츠가 놀라 움찔했다. 

성난 얼굴로 “왜!” 하고 몰아 붙여오는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식은땀을 흘리며 달랬다.


“그, 그러니까아- 쌍둥이는 불길하다고 해서…”

“뭐어?! 이 풍요의 신인 내가 내려주는 건데?!!”

“우리는 그런 걸 모르니까…”

“아, 혹시 네가 ‘제물’로 뽑힌 것도 그게 이유야?”

“…”

오소마츠의 핵심을 찌르는 질문에 카라마츠가 대답하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려 오소마츠의 시선을 외면했다.

 탕!! 하고 오소마츠가 밥그릇을 세게 상에 내려놓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긴장한 얼굴로 슬쩍 오소마츠를 살펴본 카라마츠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오소마츠의 귀와 꼬리에 있는 털이 모두 곤두선 채, 곰실거리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항상 표정이 풍부했던 오소마츠의 얼굴엔 지극히 싸늘한 무표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 내 축복으로 태어난 쌍둥이를 그렇게 미워해?”

“.. 「신」님…”

“그래, 그렇구나… 달라서 그렇지? 본디 인간은 한 배에 하나의 새끼를 낳으니까.. 둘을 낳으면 이상하다 이거지?”

차갑게 내뱉는 오소마츠의 말들은 날카로운 칼이 되어 카라마츠에게 푹푹 박혔다. 

같은 인간으로서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의 분노를 받아내야만 한다고 느꼈다.

 찌릿찌릿 날카로운 공기가 카라마츠의 피부를 찔렀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카라마츠는 맘놓고 호흡도 할 수 없었다. 


“…하아~”

오소마츠의 한숨 소리와 함께 긴장상태를 유지하던 공기가 무너졌다. 

카라마츠가 갑자기 누그러진 분위기를 눈치채고 고개를 돌리자 오소마츠는 묵묵히 밥을 먹고 있었다.


“.. 「신」님?”

“너에게 화를 내도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야…”

카라마츠의 부름에 오소마츠가 작게 중얼거렸다. 

카라마츠도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젓가락을 들어 식사를 재개했다. 

항상 마을 사람들에게서 핍박과 따가운 눈초리만 받았던 카라마츠는 진심으로 자신을 위해 화를 내준 오소마츠가 고마웠다.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 카라마츠가 만족한 웃음을 짓자, 

오소마츠가 황당하단 얼굴로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6.

마당에 쌓인 나뭇잎과 먼지를 쓸며 카라마츠는 토리이에 홀로 앉아있는 오소마츠를 올려다 보았다.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와 함께 생활한지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처음 식사를 함께 하게 된 이후로 오소마츠는 종종 산짐승을 잡아왔다. 

카라마츠는 오랜 시간 아버지와 함께 살림을 도맡아 했던 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매일 맛있는 반찬을 상 다리가 휘어지게 올렸다. 

카라마츠의 요리 솜씨에 반한 오소마츠는 항상 맛있다는 말을 끊이지 않고 내뱉으며 카라마츠의 요리를 깔끔히 비웠다. 

카라마츠는 매일 방 청소를 하고 식사를 만들고, 오소마츠에게 부탁해 받은 종자를 저택 뒷마당에 심어 채소와 과일을 가꾸었다.

평생을 농부로 살아온 카라마츠는 흙을 만져야 안정이 되었다. 

작은 텃밭을 가꾸고 텃밭에서 나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로 맛있는 요리를 하는 것이 이곳에서의 일상이었다. 



하루를 바쁘게 보내는 카라마츠와 달리 오소마츠의 일상은 지극히 한가로웠다.

매일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카라마츠가 차린 점심을 먹은 뒤엔 바로 낮잠을 잤다. 

낮잠을 끝내고 일어나 저녁 식사를 하기 전까지 오소마츠는 항상 저렇게 토리이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산 중턱에 위치한 신사에서 마을을 보면 마을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마치 개미처럼 작게 보이고 마을과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푸른 산이 보이는 그 모습은 장관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장관이라도 매일 보면 질리는 법. 

이 신사에 머물게 되고 매일 마을을 내려다보았던 카라마츠도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더 이상 마을을 내려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오소마츠는 매일매일 토리이에 올라 마을을 관망했다. 

‘신’은 매일 같은 풍경이 질리지 않는 걸까. 

문득 토리이 위에서 보는 마을의 모습이 궁금해진 카라마츠가 빗자루를 세워두고 오소마츠를 불렀다.


“이봐, 「신」님!”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렸다. 카라마츠는 손을 흔들며 외쳤다.


“나도 그 위에 올라가봐도 괜찮을까?”

카라마츠의 외침에 오소마츠가 토리이에서 내려와 카라마츠에게 다가오더니 카라마츠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에?”

오소마츠는 그대로 카라마츠를 안은 채, 훌쩍 뛰어올랐다. 

인간이라면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높은 도약에 순식간에 저택의 마당이 멀어졌다. 

훅- 하고 공중에 뜨는 낯선 느낌에 카라마츠가 공포를 느끼고 오소마츠에게 달라 붙었다. 

카라마츠의 걱정과 달리 오소마츠는 무사히 토리이 위에 안착했다. 

카라마츠에게 감고 있던 팔을 풀며 핏기가 사라져 새파래진 카라마츠의 얼굴을 본 오소마츠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찌릿- 오소마츠를 노려보며 카라마츠가 토리이 위에 앉았다. 

높게 솟은 산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그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황금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 마을이 꺼져가는 햇빛을 붙잡고 밝게 빛나고 있었다. 

신사에서 보는 풍경보다 조금 더 위치가 높아졌을 뿐, 특별하지 않은 풍경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갸웃했다. 

매일 오소마츠는 왜 이곳에 오르는 것일 것 궁금해져 고개를 돌려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붉은 석양에 비쳐 오소마츠의 붉은 눈이 도드라졌다. 

황금빛 귀와 꼬리는 살랑거리며 바람에 맞추어 춤을 추듯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을 내려다보는 오소마츠의 얼굴을 본 카라마츠는 숨을 멈추었다. 

마을을 향한 오소마츠의 눈빛은 카라마츠의 아버지 마츠조가 카라마츠를 바라볼 때와 똑같았다.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는 자애로운 눈빛. 하지만 어딘가 공허한 오소마츠의 눈빛을 보며 카라마츠는 말없이 속으로 생각했다.



‘「신」이란 이렇게나 고독한 것 인가...’


오소마츠는 분명 이 마을을 사랑하고 있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 마을을 사랑하고 지켜주고 있었다. 

하지만 전혀 관리가 되지 않은 작은 신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마을 사람들은 오소마츠를 잊고 그 존재조차 기억하지 않았다. 

이렇게 어쩌다 가뭄이 들거나 마을에 큰 병이 돌 때만 오소마츠를 찾았다. 

그것도 ‘산 제물’이라는, 오소마츠가 전혀 바라지 않는 형태로. 

카라마츠가 이곳에 머물기 전부터 오소마츠는 매일 이렇게 마을을 내려다 보았을 것이다. 

홀로, 자신을 잊은 채 살아가는 마을을 부드럽게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돌연히 카라마츠는 눈가가 뜨거워졌다. 오랜 세월 마을 사람들 모르게 마을을 지켜온 오소마츠의 모습이 애잔하게 보였다.

가슴 가득 차오르는 애틋함에 카라마츠는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이 고독하고 상냥한 「신」의 곁에 언제까지고 있어주고 싶다는 소원을 빌며 카라마츠가 어깨를 떨며 흐느꼈다. 

오소마츠는 갑자기 울기 시작한 카라마츠의 모습에 놀라며 꼬리로 카라마츠를 감싸고 등을 토닥이며 달래 주었다. 

자신을 위로하는 오소마츠의 손길에 카라마츠의 눈물은 한참 동안 멈추지 않았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마주 앉은 두 사람(한 명의 인간과 한 명의 「신」)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잔뜩 울어 붉어진 눈매로 카라마츠는 말 없이 반찬을 집어 먹고 있었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얼굴을 살피며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침묵 속에 식사를 마친 카라마츠가 밥그릇을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오소마츠와 눈을 마주했다. 

움찔! 오소마츠의 꼬리가 곧추섰다. 꼿꼿이 선 꼬리와 귀를 떨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눈빛을 말없이 받아들였다. 


“..오소마츠.”

“..헤?”

카라마츠의 낮은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오소마츠는 잠시 멍한 얼굴로 카라마츠를 바라보더니 서서히 눈썹을 찡그리고 꼬리를 바닥에 탕탕 굴렀다.


“..오소마츠으~??”

“뭐야.”

“야, 너 방금 전까지 「신」님 이라고 불렀으면서 갑자기 왜 ‘오소마츠’??”

“별로 어떻게 부르던 상관 없잖아.”

“아니, 상관 없긴 한데… 신에 대한 존경은 완전히 갖다 버림???”

“「신」같지도 않으면서..”

“뭐야?!”

4개의 꼬리를 모두 휘저으며 불쾌함을 표시하는 오소마츠를 뒤로 한 채, 카라마츠는 조용히 식기를 모두 거두어 주방으로 향했다. 

멀어지는 카라마츠의 등을 보며 오소마츠가 한숨을 내쉬고 담뱃대를 물었다.


“갑자기 왜 저래?”

귀를 뒤로 늘어뜨리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와 나란히 서고 싶다는 바람으로 자신을 ‘오소마츠’라고 부르기로 정한 것을 오소마츠는 영원히 알 수 없었다.






7.

으레 매년 이맘때가 되면 찾아왔던 태풍은 올해에는 아카츠카 마을을 피해가기로 했는지, 여름 하늘은 구름 한 장 없이 맑았다. 

슬슬 비가 내려주지 않으면 정말로 올해 농사는 망할 수 밖에 없었다. 

빗방울 하나 내리지 않는 지독한 가뭄은 계속되고 있었다.

마을을 내려다보는 카라마츠의 얼굴에 걱정으로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 

멀리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밭이고 논이고 쩍쩍 갈라져 그 위에 심어져 있는 농작물들이 갈색으로 변색되어 죽어가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오늘도 토리이 위에 올라가있는 오소마츠를 올려다 보았다. 오소마츠는 이 마을을 사랑했다. 

그리고 형식적인 의식이긴 해도 카라마츠가 ‘산 제물’로 바쳐졌다. 

「신」이라면 비를 불러와도 괜찮지 않을까, 왜 불러오지 않을까, 오소마츠 향한 수많은 의문이 카라마츠의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마을 사람들의 바람과 달리 가뭄은 계속 이어졌다. 


오소마츠는 그저 토리이 위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오소마츠.”

“뭐야.”

“왜.. 비를 내려주지 않는 건가? 장로님의 말대로 「신의 노여움」이 원인이라면 내가 바쳐졌으니 비를 내려 줘도…”

“…”

오늘 계속되는 가뭄에 기어이 마을 아이 하나가 세상을 떠났다. 

슬피 우는 부모의 울음소리가 신사에 들릴 정도로 크게 울렸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모여 아이의 작은 몸을 장작 더미에 올려 불태우고 장례를 치렀다. 

오소마츠는 그저, 그저 그 모든 광경을 가만히 내려다 볼 뿐이었다. 

결국 참다 못한 카라마츠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슬쩍 말을 꺼냈지만, 오소마츠는 묵묵부답이었다.

작게 한숨을 쉰 카라마츠는 그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답을 돌려주지 않는 오소마츠는 카라마츠가 보기에도 지독한 얼굴로 카라마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의 장례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다음 날, 누가 죽었다는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마을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토리이에 앉아있던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다가왔다.


“인간 꼬맹아.”

“…뭔가?”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놀란 카라마츠의 귓가에 오소마츠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꽉 잡아.”

“…!!!”

토리이에 오를 때보다 더 힘차게 땅을 박찬 오소마츠의 몸은 그대로 허공에 머물렀다. 

순식간에 땅에서 멀어진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옷자락을 강하게 붙잡았다. 

바람을 타고 오소마츠의 몸이 하늘을 날아 마을 위를 지나갔다.


“오, 오소마츳!!”

생전 처음 겪는 높은 고도에 오소마츠에게 매달린 카라마츠가 사색이 된 얼굴로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는 꼬리를 카라마츠의 몸에 휘감아 떨어지지 않도록 한 후, 마을을 지나쳐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 위에 도착해서야 멈췄다. 


“꼬맹아, 저기 봐봐.”

허공에 둥둥 뜬 오소마츠의 몸에 매달린 카라마츠가 울상이 된 얼굴로 조심스럽게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마을의 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호수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평생 마을에 머물면서 이렇게 마을 가까이에 큰 호수가 있다는 것을 몰랐던 카라마츠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고요히 출렁이는 호수를 바라보며 오소마츠가 입을 열었다.


“저 호수는 백 년에 한번씩 저렇게 한계 수량에 도달해. 아마 올해에도 비가 내린다면 저 호수를 막아주고 있던 둑이 무너져 마을을 덮칠 거야.”

무미건조한 오소마츠의 말투에 놀란 카라마츠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바람에 흔들리는 호숫물은 확실히 한계에 가까워 보였다. 

호수에서 시작된 강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둑을 지나 마을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만약 호숫물이 넘치게 된다면 산으로 둘러 싸인 마을은 바로 수몰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카라마츠가 입을 다물고 호수를 바라보고 있자, 오소마츠가 다시 몸을 돌려 신사를 향해 날아갔다. 




신사에 도착해 카라마츠를 놓아준 오소마츠가 빙긋 웃었다.


“그러니까, 가뭄은 어쩔 수 없어… 그래서 가뭄 전에 풍작의 축복을 내려줬는데도… 정말이지, 어리석은 인간들이야…”

미소 지은 오소마츠의 눈은 당장이라고 눈물을 흘릴 것처럼 촉촉히 젖어있었다. 

마른 침을 삼키며 카라마츠는 작년 기대 이상의 풍작을 거둔 것을 기억해냈다. 

만약 마을 사람들이 다음 해 있을 가뭄을 대비하여 작년의 작물을 제대로 보관만 했다면 분명 이 가뭄을 어찌어찌 이겨낼 수 있을 터였다. 

오소마츠는 그것을 바라고 풍작을 선물하고, 마을이 수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가뭄을 내린 것이다. 



‘오소마츠는 무슨 기분이었을까.’


마을 사람들을 위해 ‘가뭄’이라는 수단을 선택하고, 그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전부 지켜보는 「신」으로서. 

카라마츠는 자신으로선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오소마츠의 기분을 상상했다. 

분명 슬플 텐데, 카라마츠의 앞에 서 있는 「신」은 웃고 있었다. 괴로운듯한 얼굴로 억지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애절한 그 미소가 너무 아파서 카라마츠는 팔을 뻗어 오소마츠를 품에 가두었다. 

힘없이 뒤로 처진 오소마츠의 귀와 꼬리가 잠시 움찔거렸다.

품 안에 들어오는 사랑스러운 「신」을 카라마츠는 강하게 껴안았다.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오소마츠의 슬픔이 옅어지기를 바라며 오소마츠의 등에 두른 팔을 풀지 않았다.



“왜 네가 울어?”

귀를 쫑긋거리며 카라마츠의 품에서 풀려난 오소마츠가 웃었다. 

손을 들어 카라마츠의 볼에 남은 눈물 자국을 닦아주며 오소마츠는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아무 말 없는 카라마츠의 손을 잡은 오소마츠가 눈을 감았다.


“벌써 몇 번이고 해 온 일이야. 매번 어리석은 인간들이 가뭄으로 죽어나가는 것도, 「신의 노여움」이라며 ‘제물’을 바치는 것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봐온 일인데… 요즘엔 조금 지친 것 같아. 나는 마을 녀석들이 이 마을을 떠나기를 바랬어. 언제 수몰될지 모를 이런 위험한 곳은 좋지 않으니까. 그런데 저렇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없어서…”

“오소마츠, 혹시 지금까지 나처럼 바쳐졌던 ‘처녀’들은…”

“전부 마을 밖으로 내보내줬어. 말했잖아. ‘산 제물’을 잡아먹는 취미는 없다고.”

“…”

“왜 가뭄이 필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가뭄을 준비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해.. 정말로, 어리석은 인간들이야…”

말을 흐리며 슬프게 웃는 오소마츠는 결코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슬퍼도 힘겨워도 「신」이었다.

카라마츠는 이 고독하고, 상냥하고, 너무나 아름답게 웃는 ‘오소마츠’를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신」 치고는 가냘픈 오소마츠의 손을 카라마츠는 저녁 내내 꼬옥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8.

쓸어도 쓸어도 마당에 내려앉은 낙엽을 카라마츠가 찡그린 얼굴로 노려보았다. 

어느새 계절은 여름을 지나 가을에 들어서고 있었다. 

푸르렀던 산과 신사의 나무들은 전부 노랗고, 빨간 옷을 입고 땅으로 떨어졌다. 

바스락거리며 낙엽을 쓸어 한 곳에 모은 카라마츠가 문득 고구마를 떠올렸다. 

이 계절에 먹을 수 있는 별미 중의 별미, 군고구마. 쌓인 낙엽에 불을 피워 구워먹으면 딱이라는 생각을 하며 카라마츠가 낙엽을 전부 한 곳에 모았다. 

신사 앞마당 한 구석에 카라마츠의 키에 필적하는 커다란 낙엽 덩어리가 쌓였다. 

이 낙엽의 처리를 궁리하고 있는 카라마츠 옆으로 오소마츠가 날아왔다.


“인간 꼬맹아.”

“카라마츠다. 뭔가? 오소마츠.”

함께 지내는 동안 달이 6번이나 차오르고 기울었는데도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부르는 호칭은 변하지 않았다. 

고집스럽게 자신을 ‘인간 꼬맹이’라 부르는 오소마츠가 조금은 얄미운 카라마츠였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앞에 놓인 낙엽 더미를 보며 물었다.


“이 낙엽으로 할 수 있는 요리가 있지 않았어?”

오소마츠의 질문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군고구마 말인가?”

“아, 아아. 그거. 그거 맛있어 보이던데…”

눈을 빛내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쳐다보았다. 이건 필시 해달라는 눈빛이다.

카라마츠는 하아- 한숨을 내쉬고 “고구마는 키우지 않아서 무리다.” 하고 대답했다. 

“에엑?!!” 하고 실망하는 오소마츠의 귀가 축 처졌다. 

잔뜩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모습이 아이와 같아서 카라마츠는 쓴웃음을 지었다. 

오소마츠는 그대로 처진 꼬리를 질질 끌며 토리이 위로 올랐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의 등을 보며 어떻게 고구마를 구할 방도가 없을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저녁식사 준비가 끝나 오소마츠를 부르기 위해 카라마츠가 주방에서 나왔다. 

신사 입구의 토리이 위를 보자, 항상 그곳에 앉아있던 오소마츠가 보이지 않았다. 

의아해하며 카라마츠가 몸을 돌려 저택 곳곳을 찾아보았지만, 오소마츠는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딜 간 건지…’

현관에 턱을 괴고 주저앉은 카라마츠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빨라진 일몰 시간에 하늘은 벌써 검은 융단을 깐 것처럼 깜깜했다. 

검은 하늘 가득 반짝이는 별들과 환한 달이 자리잡고 제 빛을 뽐내고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 마츠조에게 배웠던 별자리들을 하나하나 세어보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카라마츠 앞에 갑자기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오소마츠가 내려왔다. 


“요!”

“우왓!!!”

갑자기 얼굴을 들이민 오소마츠에게 놀란 카라마츠가 놀라 뛰며 뒤로 굴렀다. 

오소마츠는 유쾌하게 웃으며 한바탕 배를 잡고 굴렀다.

옷에 붙은 낙엽을 털어내고 몸을 일으킨 카라마츠가 화를 꾹꾹 눌러 참고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아~츠?!”

“인간 꼬맹이, 너 정말 재미있다니까~ 햐아~”

한숨을 내쉬며 웃음을 멈춘 오소마츠가 “응!” 하고 카라마츠 앞에 보따리를 건넸다.


“이건..?”

“열어 봐.”

카라마츠가 보따리를 풀자 그 안에는 고구마가 잔뜩 들어있었다. 

카라마츠가 놀라 오소마츠를 올려다보자 오소마츠가 꼬리를 흔들며 웃었다.


“옆 마을에서 받아왔어~”

“뺏어온 건가?”

“받아 왔다니깐… 거기 「신」이 나랑 아는 사이라 공양된 거 받아온 거야.”

“..헤에~”

“이거 해 먹자~”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얼굴로 오소마츠가 웃었다. 

기쁘게 웃는 오소마츠의 미소에 카라마츠가 따라 웃으며 보따리를 꽉 묶었다.


“안 돼!”

“왜?!”

“저녁 식사 시간이니까! 이건 내일!”

“에에에~~~?!?!”

볼에 바람을 넣어 퉁퉁 부풀리고 오소마츠가 불평했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의 불평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주방에 보따리를 갖다 놓았다. 

단호한 카라마츠의 행동에 오소마츠도 조르는 것을 포기하고 얌전히 식탁에 앉았다. 

오늘도 여전히 맛있는 카라마츠의 요리에 오소마츠의 기분은 금새 풀리고 맛있다는 얼굴로 꼬리를 살랑댔다.




“오호~”

“자, 됐다.”

다 탄 낙엽 사이에서 군고구마를 꺼낸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에게 건넸다. 

오소마츠가 군침을 흘리며 군고구마를 건네 받아 바로 입에 넣었다. 


“으아!! 뜨거!!!!”

“조심해라… 오소마츠.”

“우우, 입 천장 데였어~”

“바보인가…”

“뭐야?!”

혀를 내밀고 울상을 짓는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카라마츠를 노려본 오소마츠가 이번엔 호호 군고구마를 불어 잘 식혀가며 입에 넣었다. 

입 안 가득 베어 물고 얼굴에 홍조까지 피운 채, 기쁘게 먹는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신」이면서 오소마츠는 너무나 어린아이 같았다. 

그야말로 「신」으로서의 위엄은 옛날 옛적에 갖다 버린 것 같았다. 


‘아니면 아예 「신」의 위엄 따위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순수하게 웃으며 군고구마를 물고 있는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생각했다. 



“까악-“

남은 낙엽을 치우고 있자, 오소마츠의 머리 위로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왔다. 

오소마츠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팔을 들자, 까마귀가 오소마츠의 팔에 앉았다. 

처음 보는 까마귀에 카라마츠가 물었다.


“그 녀석은?”

“내 사역마.”

“헤에-“

오소마츠가 자신이 먹던 고구마를 까마귀에게 내밀자 까마귀는 망설이지 않고 고구마를 쪼아먹기 시작했다. 

까마귀를 한번 쓰다듬은 오소마츠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완전히 가을이구나~”

“오소마츠는 가을이 좋은가?”

“응~ 좋아. 내 색(色)으로 산이 물들잖아.”

“오소마츠의 색?”

카라마츠의 물음에 오소마츠가 씩- 장난기가 묻어 나오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옷을 가리켰다. 

오늘도 붉은 기모노 차림인 오소마츠가 말했다.


“붉은색이 내 색이야~”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는 납득했다. 

오소마츠가 항상 입는 붉은 기모노는 오소마츠에게 굉장히 잘 어울리고 있었다. 

붉은 색의 옷과 황금색의 귀와 꼬리가 조화를 이루며 뽀얀 피부의 앳된 오소마츠의 얼굴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고 있었다. 

얼굴을 들어 주변 산을 둘러본 카라마츠가 빙그레 웃었다.


‘확실히 오소마츠의 색이다.’

붉게 물든 단풍이 수놓은 산은 오소마츠의 색을 닮아가고 있었다. 

본래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1년 가까인 노력을 쏟아 부은 결과가 나오는 계절. 농부인 카라마츠는 가을을 좋아했지만, 오소마츠의 말을 듣고 가을이 더 좋아질 것 같았다. 


“가을 하늘을 창연히 펼쳐져 있다고 하지…”

오소마츠가 고구마를 입에 물고 중얼거렸다.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쳐다보자 오소마츠가 시선을 내려 카라마츠와 눈을 맞추었다.


“너에겐 푸른 하늘이 잘 어울려.”

“…엩”

오소마츠의 붉은 눈이 부드럽게 호를 그리며 휘어졌다. 

온유한 미소를 카라마츠에게 향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머리 속 가득, 방금 전 보았던 오소마츠의 미소가 차지한 카라마츠는 말없이 오소마츠의 손길을 받아들이며 붉어진 얼굴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그러고보니…”

“응?”

“이제 슬슬 할 때가 되었군.”

“뭐가?”

“신목(神木) 축제가…”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던 카라마츠가 말했다. 

오소마츠가 혀를 차며 노골적으로 얼굴을 구겼다.

“까악-“ 하고 까마귀가 오소마츠의 팔에서 날아올라 마을 쪽으로 날아갔다. 

카라마츠는 명백한 혐오를 드러내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당황해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그거, 아직도 하는 거냐.”

“..엩? 그치만 그 신목은 우리 마을을 300년 동안이나 지켜줬다고 장로님이…”

“켁! 겨우 300년?! 나는 벌써 천년이 넘었다고!! 300년 전 웬 사이비 무당 하나가 들어와서 심은 평범한 나무따위!”

“천년?!”

놀라 높아진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가늠도 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을 당연하다는 듯 입에 올리는 오소마츠와 자신의 격차가 새삼 뼈저리게 느껴진 카라마츠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 오소마츠는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몇 번 말하는 거야, 너…”

킥킥 즐겁게 웃으며 오소마츠가 말했다. 


‘항상 마을을 내려다보며 마을을 지켜본 오소마츠는 천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이렇게 혼자였는가.’

해맑게 웃고 있는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는 신목을 소중하게 받드는 마을 사람들을 떠올렸다. 

분명 오소마츠가 신목보다 훨씬 더 오래 이 마을을 수호해 왔건만, 마을 사람들은 오소마츠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직 그 신목만을 애지중지했다. 

마을 사람들의 눈 밖에 난 오소마츠의 신사는 카라마츠가 관리하기 전까지 버려진 채, 쓸쓸하게 산을 지키고 있었다. 

자신만은 외로이 마을을 지키는 이 작은 신사와, 이 사랑스러운 고독한 「신」을 계속 지켜가자고 카라마츠가 홀로 다짐했다.






9.

웬일로 토리이에 오르지 않고 사당에 입구에 앉은 오소마츠가 열심히 눈을 쓸어 길을 만들고 있는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긴 가뭄도 끝이 나고 겨울이 되었다. 

가뭄이 들어 가을 내내 굶었던 마을 사람들 중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겼다. 

오소마츠 자신이 바라던 일이었는데도 오랜 집터를 떠나 세상으로 나가는 마을 사람들이 안타깝고, 애처로워 오소마츠는 멀어져 가는 인영을 향해 축복을 내려 함께 떠나 보냈다.

하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은 마을에 그대로 남아 이 추운 겨울을 굶주린 채 보내고 있었다. 



오소마츠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싸리자루로 눈을 쓸어내는 카라마츠를 보았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바짝 말라 피부와 근육만 있었던 몸이 어느새 제법 통통해져 있었다. 

얼굴도 윤기가 흘러 처음 보았을 때와 동일인물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인간 꼬맹이 주제에-‘

꼬박꼬박 자신에게 말대꾸하고, 멋대로 「신」의 이름을 부르는 당돌한 인간 꼬맹이. 

오소마츠에게 있어서 카라마츠의 인식은 겨우 그 정도였다. 

그 정도였는데, 어느새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항상 맛있는 음식을 해주며, 맛있다고 칭찬하면 볼을 붉히며 수줍게 웃는 그 얼굴하며, 자신이 조금이라도 힘든 기색을 보이면 따뜻하게 안아오는 그 강인한 팔하며, 기분 좋게 울리며 오소마츠의 이름을 부르는 낮은 목소리가 전부 너무나 소중해졌다. 

이대로 평생 곁에 두고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헛된 꿈을 꿀 정도로…



“오소마츠?”

어느새 눈을 다 쓸고 다가온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불렀다. 

호오- 하고 추위에 얼은 제 손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카라마츠가 고개를 갸웃했다. 

오소마츠는 한숨과 함께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차디 찬 카라마츠의 손을 쥐었다. 

호오- 하고 꽁꽁 언 카라마츠의 손에 오소마츠가 제 숨을 불어넣었다. 

약간의 신통력을 담은 숨은 바로 카라마츠의 손을 녹이고 온기를 선사했다. 


“..고맙다.”

부드럽게 녹은 손을 쥐었다 피며 카라마츠가 웃었다. 

자신을 향한 저 푸근한 미소를 잃고 싶지 않으면서도 다가오는 이별을 직감한 오소마츠가 쓰게 웃었다.


“이봐, 인간 꼬맹이.”

“카라마츠다!”

“너는, 다시 인간 마을로 돌아갈 생각은 없는 거야?”

오소마츠의 질문에 카라마츠의 눈빛이 불안으로 흔들렸다. 

잠시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카라마츠가 눈썹을 찌푸리고 오소마츠를 쳐다보았다. 

카라마츠는 고요히 오소마츠의 눈을 바라보며 오소마츠와 동생들, 마을 사람들을 저울질했다. 

몇 십 번을 재어도 결국 저울은 오소마츠 쪽으로 기울었다. 


지금 카라마츠에겐 마을 사람들보다, 아카츠카 마을보다, 그리고 동생들보다 더 오소마츠가 소중했다.


“오소마츠는, 내가 여기 있는게 싫은가?”

“..아니, 싫진 않지만…”

“그럼 계속 이곳에 있어도 상관 없..”

“아니.”

카라마츠의 말을 막고 오소마츠가 말했다. 

불안해하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카라마츠에게 고요히 미소 지은 오소마츠가 말했다.


“인간은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야 해.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어. 인간은 인외(人外)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 안 된다. 그건 절대 변하지 않는 불문율이야.”

“…”

“그러니, 꼬맹아...”

“싫다.”

오소마츠의 다음 말을 예상한 카라마츠가 이번엔 오소마츠의 말을 끊고 외쳤다. 

잔뜩 찡그린 눈은 눈물이 일렁이며 언제든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소마츠가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카라마츠의 눈물을 닦아냈다. 


“오소마츠, 나는 오소마츠 곁에 있고 싶어.”

자신의 뺨에 올려진 오소마츠의 손을 잡고 카라마츠가 결국 눈물을 흘렸다. 

뚝뚝 오소마츠의 손에 떨어지는 카라마츠의 따뜻한 눈물에 오소마츠가 한숨을 내쉬고, 카라마츠의 머리에 입맞추었다. 


“정말- 할 수 없네~. 네 맘대로 해라, 꼬맹아.”

“…응.”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토리이 위에서 오소마츠가 하는 일은 간단했다. 

천리안을 사용해 마을 곳곳을 살피며 사악한 기운은 들어오지 않았는지, 마을 안에 악귀가 들진 않았는지, 질병이 퍼지진 않았는지를 살폈다. 

오늘도 토리이 위에서 마을을 둘러보던 오소마츠가 “아!” 하고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어 몸을 일으키고 인간에게 보이지 않도록 기색을 감추고 마을로 뛰어 들어간 오소마츠가 한 초라한 집 앞에 멈췄다.


“카라마츠 형-?”

“카라마츠 형아-?”

“카라마츠 형~ 없어~?”

“개똥마츠-“

카라마츠와 닮은 얼굴을 한 네 명의 청년이 집을 돌아다니며 카라마츠를 부르고 있었다. 

이 네 명이 카라마츠가 이야기 했던 쌍둥이 동생들임을 오소마츠는 알고 있었다. 

녹색의 기모노를 입고 연한 홍색의 목도리를 두른 청년이 손을 허리에 얻고 세모꼴로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대체 어딜 간 거야??”

입김을 내뿜으며 청년의 말이 끝나자 연한 홍색의 기모노에 녹색의 목도리를 두른 청년이 대답했다.


“집 안에는 없는 것 같아.”

애교 있는 얼굴을 찡그리고 한숨을 쉬며 연한 홍색의 청년이 말했다. 

계속해서 집 주위를 돌던 황색 기모노를 입은 청년과 자색의 기모노를 입은 청년이 다가왔다.


“카라마츠 형아- 없다!!”

“집도 텅 비어 있는데.. 사용 안 한지 제법 된 것 같아. 밭도 전혀 관리 안 되어 있고.”

황색의 청년이 팔을 축 늘어뜨리고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하자, 자색의 청년이 낮은 목소리로 냉철히 상황을 분석했다. 

둘의 말에 녹색의 청년이 인상을 찌푸리고 남은 청년들을 이끌었다.


“일단 장로님 집에 가보자. 장로님은 아시겠지.”

녹색의 청년을 쫄래쫄래 따라가는 세 명의 청년 뒤를 쫓아 오소마츠도 발을 옮겼다. 

마을 중앙에 위치한 장로의 집에 도착한 네 명의 쌍둥이는 바로 장로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방 밖으로 다 들릴 정도로 노한 청년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안에서는 분명 카라마츠를 ‘제물’로 바친 사실을 들은 동생들이 분노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반 시진이 다 되도록 성난 청년들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이윽고 쾅! 소리를 내며 장로 방의 문이 열리고 청년들이 화난 얼굴로 방을 나왔다. 


“하- 카라마츠가 그대로 죽었을 리 없어. 빨리 가서 찾아보자.”

녹색 청년의 말에 남은 동생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산 중턱에 위치한 신사로 발을 옮기는 네 명의 청년들을 가만히 지켜본 오소마츠가 발을 재촉해 신사 입구의 토리이로 날아가 그 위에 앉았다. 

카라마츠를 ‘제물’로 바치며 마을 사람들이 막아놓은 산길을 억지로 뚫고 들어와 신사로 향하고 있는 네 명의 형제들. 

오랜 세월 사람이 다니지 않은 산길은 나뭇가지와 잡초로 가득해 사람이 지나갈만한 길은 아니었다. 

옷이 뜯기고 찢어지는 것도 마다한 채, 성큼성큼 신사로 발을 옮기는 청년들을 빙그레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본 오소마츠가 마지막 이별을 준비하기 위해 몸을 숨겼다. 






“카라마츠 형!!!”

쵸로마츠가 작은 신사가 다 울리도록 카라마츠를 불렀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메아리뿐이었다. 

낡은 신사는 눈이 수북이 쌓여있고, 작은 사당과 세전함만이 놓여 있었다. 

도저히 사람이 살 곳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서서히 불어 닥치는 불안에 쵸로마츠와 동생들의 숨이 가빠졌다. 

쵸로마츠도, 이치마츠도, 쥬시마츠도, 토도마츠도 온 신사를 돌아다니며 카라마츠를 불렀다. 

애타게 불렀지만, 카라마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신사 한 가운데 모여 절망한 표정으로 카라마츠를 부르는 동생들. 

오소마츠는 두 눈을 꼭 감고, 손짓으로 신사를 보호하고 있던 결계를 없앴다. 

거센 바람과 함께 거대한 저택이 드러났다. 놀란 얼굴의 형제들은 저택의 앞마당에 쌓인 눈을 쓸고 있던 카라마츠를 발견했다. 



““““카라마츠 형!!!!!””””

몇 년 만에 듣는 동생들의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정면을 응시했다. 

계속 보고 싶었던, 그리운 얼굴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이게 꿈인가 싶어 카라마츠는 자신의 볼을 잡아당겨 보았다. 

욱신거리는 볼의 고통에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카라마츠가 들고 있던 빗자루를 내던지고 동생들에게로 달려갔다.


“쵸로마츠,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으!!!!!”

““““카라마츠 형!!!!!””””

신사 중앙에서 다섯 명의 형제가 서로 얼싸안고 감동의 재회를 만끽했다. 

뚝뚝 눈물을 흘리는 동생들의 눈가를 닦아주는 카라마츠 역시 눈물로 흥건히 얼굴이 젖어 있었다. 




울고 웃으며 감격하고 포옹하는 오쌍둥이. 그들을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눈빛은 지극히 인자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토리이 위에서 형제들을 바라본 오소마츠가 각오를 다졌는지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손짓했다. 

거센 바람과 함께 거대한 저택이 사라지고 다시 낡은 사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당 앞 붉은 옷을 입고 꼬리를 흔들며 오소마츠가 청년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 ―!”

자신을 부르려는 카라마츠의 입을 봉한 오소마츠가 요염하게 웃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에 당황한 카라마츠가 눈썹을 구겼다. 

당황한 카라마츠를 제외하고 「신」을 처음 보는 카라마츠의 동생들은 모두 잔뜩 경계한 채, 오소마츠를 쳐다보았다. 

오소마츠는 다시 한번 크게 심호흡한 후, 온 산이 울리도록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무엄하다!! 감히 내 신사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것도 모자라 「신」을 정면으로 쳐다보다니?! 신의 엄벌을 받고 싶은 거냐?!!!”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놀라 모든 행동을 멈추고 망연히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항상 카라마츠의 시선에 눈부신 미소로 받아주었던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시선을 외면하고 동생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신」이 내뿜는 압력에 몸을 잔뜩 움츠린 동생들이 “아, 우…” 하고 입을 뻐끔거리며 괴로워했다. 

오소마츠는 마치 「신」이 하찮은 인간을 내려다보듯 동생들을 깔보는 눈빛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감히 내 신사에 함부로 흙 묻은 발로 들어 왔으면 용무가 있겠지?”

오소마츠의 말에 쵸로마츠가 용기를 내어 겨우 목소리를 냈다.


“카라마츠 형을 돌려 받으러 왔다!!!”

“..하? 내 종놈을?”

오소마츠의 말에 발끈한 이치마츠가 이어 입을 열었다.


“카라마츠 형을 종놈이라고 하지 마!! 너 같은 ‘악신’ 곁에 카라마츠 형을 놔둘 리가 없잖아!!!”

이치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기가 차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다시 동생들을 향한 눈빛은 겨울 폭설이 내리는 북 지방 한복판에 놓인 것처럼 차가웠다. 


“별 쓸모도 없는 종놈을 멋대로 바치더니, 이제는 다시 돌려 받겠다? 내가 그렇게도 우습게 보이나?”

오소마츠의 말에 이번엔 막내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입을 열었다.


“카라마츠 형은 당신의 종이 아니야!! 우리의 형이라고!!!”

“허슬허슬!!!!”

팔을 높이 들고 항의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오소마츠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려 고개를 숙였다. 

지금 웃음을 터뜨린다면 지금까지의 연기가 말짱 도루묵이 되어 버린다. 다시 냉혹한 「신」을 연기한 오소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쯧, 별 쓸모도 없는 것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구나. 이제 질렸다! 그런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놈은 지금 당장 데리고 떠나라!!! 그리고 이 마을 놈들에게도 전해라! 더 이상 내 가호는 바라지 않는 것이 좋을 거라고!!!”


오소마츠의 성난 목소리에 땅이 울리고, 「신」의 노여움을 처음 체험한 다섯 명의 청년들의 몸 속까지 파고 들었다. 

힘이 풀리려는 다리에 힘을 준 네 명의 동생들이 카라마츠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빨리 이 거지 같은 마을을 빠져나가자, 형!!”

쵸로마츠의 부름에 카라마츠가 떨리는 눈으로 오소마츠를 뒤돌아 보았다. 

오소마츠는 그저 사당 앞에 망연히 서서 멀어져 가는 카라마츠를 배웅할 뿐이었다. 

거센 바람이 불며 낡은 사당마저 그 형체를 감추었다. 

오소마츠가 사라진다는 확신과 함께 오소마츠에 의해 막혀 있던 목이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눈물 맺힌 얼굴로 오소마츠를 외치려는 카라마츠의 눈 앞에 오소마츠가 다가왔다. 

평범한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도록 모습을 감추고 있는 상태였지만,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눈물이 맺힌 카라마츠의 눈가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닿았다. 오소마츠의 손이라는 것을 직감한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안녕, 카라마츠.”


일순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비록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오소마츠는 그곳에 있었다. 

이것이 이별이라는 것을 깨달은 카라마츠가 산을 내려가 마을로 들어가는 동생들의 손에 이끌리면서 서서히 멀어지는 여우신의 신사를 허탈하게 바라보았다. 






10.

산을 내려온 쵸로마츠와 동생들은 바로 온 마을을 돌며 이 마을을 떠나자고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 마을을 다스리는 「신」은 악신(惡神)이며, 이 마을 터는 분지에다가 항상 수몰될 위험이 있다며 지극히 이성적으로 설득을 하는 쵸로마츠의 말을 마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갑자기 마을로 돌아온 이방인과 다름없는 그들의 말을 믿을 수 없음과 동시에 태어나 평생 머물렀던 정든 마을 터를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몇몇 생각이 있는 마을 사람들이 쵸로마츠의 말에 동조해 짐을 싸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망설이고만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의 무지에 쵸로마츠가 답답함을 느끼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 때, 맑던 가을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오쌍둥이와 마을 사람들, 장로까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금새 검은 구름으로 가득 찬 하늘은 이내 커다란 천둥소리와 함께 번쩍이며 마을 곳곳으로 번개가 내리쳤다. 

급작스러운 날씨 변화에 마을 사람들 모두 동요하기 시작했다. 

사리 판단이 빠른 쵸로마츠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신의 노여움」이라고. 

평소 쵸로마츠라면 절대 사용하지 않을 말까지 써가며 쵸로마츠는 필사적으로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애썼다. 

서서히 마을 사람들이 쵸로마츠의 말을 듣고 마을을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목님이 우리를 지켜 주실거다.”

신목 앞에 선 장로가 굳은 믿음을 가지고 당당히 외쳤다. 

쵸로마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로의 어리석은 한 마디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행동을 멈췄다.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쵸로마츠가 머리를 쓸어 올렸다. 


‘이 상황에 ‘신목’ 따위를 믿다니 제정신인가? ‘

쵸로마츠는 마을 사람들의 무지에 골치가 아팠다. 

다시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쵸로마츠가 입을 연 순간, 번쩍하고 내리친 번개에 마을 사람들 모두 눈을 감았다. 

섬광과 같은 밝은 빛이 온 마을을 뒤덮더니 이내 사라졌다. 눈을 뜬 마을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며 입을 벌렸다. 

마을 사람들의 오랜 신앙의 대상이었던 ‘신목’은 번개를 맞아 보기 좋게 반으로 떡 갈라져 있었고, 그 앞에 서 있던 장로는 잘 익은 돼지마냥 새까맣게 타 죽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턱을 내리고 놀란 쵸로마츠가 재빨리 이성을 되찾고 이번이야말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큰 소리로 마을을 떠나야 한다고 외쳤다. 

목의 최후를 눈 앞에서 목격한 마을 사람들은 바로 「신의 노여움」을 두려워하며 서둘러 짐을 싸고 앞장서 마을을 빠져 나가는 오쌍둥이의 뒤를 따랐다. 

마지막 마을 사람이 마을을 완전히 빠져 나가기 전까지, 비가 내리지 않는 천둥과 번개는 계속 아카츠카 마을을 뒤덮고 멈추지 않았다.






* 본래 여기까지가 1편 분량이었습니다만... 2편까지 이야기를 붙이는게 더 낫겠다 싶어 2편을 1편 -하-편으로 넣었습니다.


* 배경은 중세 일본인데.. 저는 일본사를 배운 적이 없기때문에..ㅎㅎ 인터넷을 통한 기본적인 조사만 해서 시대적 배경은 망상으로 커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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