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 들고 왔습니다. 새 시리즈.
* 시리즈의 1편에 해당하는 편입니다. 시리즈이기에 매 화마다 소제목이 붙습니다.
* 일단 이번 편은 천호 오소마츠 x 인간 카라마츠 편입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
「신(神)님, 부디 이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작은 신사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여성의 배는 크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 안은 에너지 넘치는 작은 생명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배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여성을 토리이 위에 앉은 여우가 말없이 바라보았다.
1.
에도(지금의 도쿄)에서 수십 개의 산을 넘어서야 도착할 수 있는 작은 마을, 아카츠카 마을.
여러 개의 산으로 둘러 싸인 마을은 세상의 풍파를 맞지 않고 외부와 동떨어져 평화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마을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 마을의 존경 받는 촌장의 맏아들, 마츠노 카라마츠 또한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을 사랑했다.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카라마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중으로 이 밭을 모두 갈지 않으면 올해 농사는 기대할 수 없었다.
오랜 가뭄으로 수분을 잃고 쩍쩍 갈라진 땅을 바라보며 쟁기를 땅에 세우고 기댄 카라마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마른 땅 속에 그나마 촉촉하게 젖어있는 흙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작물은 키울 수 없다.
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홀로 농사를 짓는 것이 카라마츠에겐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매년 아버지의 곁에서 농사를 도왔건만, 농사라는 것은 젊은이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감당할 정도로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올해는 극심한 가뭄이 들어 카라마츠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 전부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마 오늘 열리는 마을 회의에서도 이 가뭄을 타계할 방법을 논의할 것이리라.
소매로 땀을 훔쳐낸 카라마츠가 다시 쟁기를 들고 밭을 갈기 시작했다.
“…에?”
마을 사람들의 차가운 눈초리가 전부 카라마츠에게 꽂혔다.
카라마츠는 그 누구 하나 자신을 옹호해 주지 않는 것에 당황하며 말없이 앉아있었다.
땅거미가 지고 어두운 저녁, 저녁식사기 끝나는 시간에 열린 마을 회의에서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장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런 가뭄은 정기적으로 찾아오며 자신의 아버지가 살아계실 시절에도 있었다고.
그 후에 장로가 꺼낸 말은 카라마츠의 경악을 불러 오기에 충분했다.
이 가뭄은 ‘신의 노여움’이 원인이기에 순수하고 참한 ‘처녀’를 신에게 바쳐 노여움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장로의 말에 카라마츠는 말도 안 된다고 중얼거렸다.
무의식적으로 나온 카라마츠의 목소리는 옆에 앉아있던 마을 사람들의 귀에 들어갈 정도로 크게 나왔던 모양이었다.
장로를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며 화를 내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곧 이어 카라마츠가 신에게 바쳐질 희생양으로 선정되었다.
자신은 처녀가 아닐뿐더러 마츠노가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농사를 지을 사람이 카라마츠만 남아있다며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변호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결심은 단단했다.
흥분한 마을 사람들을 진정시킨 장로가 근엄한 표정으로 카라마츠에게 말했다.
“미안하구나. 하지만, 모두의 의견이 이러하니 마을을 위하여…”
그 다음 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네가 희생하려무나.”
냉정하게 잔인한 말을 내뱉는 장로와 차가운 눈빛으로 카라마츠를 쏘아보는 마을 사람들의 눈에서 안 그래도 눈엣가시였던 카라마츠를 내보낼 좋은 기회를 잡았다는 음흉한 마음이 그대로 비쳤다.
절망한 표정으로 헛웃음을 흘린 카라마츠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 간단하게 카라마츠는 자신의 의견은 무시당한 채, 신의 노여움을 풀어주기 위한 ‘산 제물’이 되었다.
2.
맑은 계곡물에 몸을 씻고, 정갈하게 예복을 갖춘 카라마츠가 마지막으로 분을 얼굴에 발랐다.
본디 ‘처녀’를 바쳐야 하는 ‘산 제물’은 카라마츠가 여장을 하는 것으로 쉽게 결정 났다.
신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로 ‘처녀’를 바치든 여장한 ‘사내’를 바치든 마을 사람들 입장에서는 변하는 것은 없었다.
결국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 가뭄을 끝내기 위해 ‘산제물’을 바친다는 행위가 필요했을 뿐이며, 마침 마을의 눈엣가시를 ‘산 제물’이라는 명목으로 제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분을 발라 새하얘진 얼굴로 카라마츠가 신사로 난 산길을 홀로 올랐다.
뒤에서는 등과 깃발을 들고 나팔을 불며 마을 사람들이 뒤따랐다.
산의 중턱에 위치한 허름한 신사. 작은 세전함과 사당만이 있는 작은 신사는 산 사람이 지낼만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카라마츠가 신사에 오르자 마을 사람들은 바로 신사로 향하는 산길을 봉했다.
이제 카라마츠는 홀로 이 신사에 갇혀 추위와 굶주림에 죽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다.
신사의 뒤쪽은 빼곡하게 자란 수목들 사이로 어두컴컴한 숲이 이어져있었다.
저 산 속에서 뭔가 산짐승이라도 잡아와야 하나 하고 카라마츠가 멍하니 생각했다.
카라마츠에겐 아직 가족이 있었다.
어머니는 카라마츠와 형제들을 낳고 곧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2년전 타계하셨지만 카라마츠에겐 아직 동생들이 남아 있었다.
마을을 뛰쳐나가기 전 반드시 돌아오겠다 약속한 사랑스러운 동생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카라마츠는 이곳에서 죽을 수는 없다고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불을 피워 추위를 막아내야 했다.
다행히 관리되지 않은 신사 곳곳엔 자잘한 나뭇가지 들이 떨어져 있었다.
카라마츠는 불편한 예복을 걷어 올리고 작은 나뭇가지를 줍기 시작했다.
나뭇가지를 한 곳에 모은 후, 한숨을 쉬며 땀을 닦아낸 카라마츠가 불을 피울 방법을 궁리하고 있을 때였다.
“…여어-“
낯선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카라마츠의 앞에도 뒤에도 그리고 양 옆에도 사람의 인영은 보이지 않았다.
‘잘못 들은 것인가..?’
카라마츠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두리번 거리고 있을 때, 다시 낯선 목소리가 신사 내에 울렸다.
“이봐, 여기야- 여기.”
목소리의 근원을 찾아 카라마츠가 목을 들었다.
신사의 입구에 세워진 붉은 토리이 위에 사람이 앉아있었다.
신사로 향하는 길은 전부 마을 사람들에 의해 봉쇄된 후였다.
혹시 돌아갈 때를 맞추지 못한 것인지 걱정하며 카라마츠가 토리이 위의 사람을 불렀다.
토리이 위의 사내는 피식 웃는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토리이에서 뛰어내렸다.
“우왓!!”
높은 토리이는 결코 사람이 뛰어내릴만한 높이가 아니었기에 카라마츠가 놀라 팔을 뻗고 달려나갔다.
타이밍만 제대로 맞추면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탁탁 나막신을 울리며 카라마츠는 옷이 흐트러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전력으로 달려나갔다.
“이봐- 난 이 정도로 안 죽어.”
토리이에서 떨어지는 사람의 인영을 쫓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인영은 카라마츠의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곧 카라마츠의 눈 앞에 나타났다.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사내의 모습에 카라마츠가 놀라 급히 발을 멈췄다.
전속력으로 달렸던 몸은 멈춰선 발을 따라가지 못하고 그대로 앞으로 쓰러져 카라마츠는 앞으로 두어 번 구르고 말았다.
“푸핫!! 뭐 하는 거야- 너~”
땅에 구른 카라마츠를 보며 웃음을 터뜨린 사내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딱딱한 바닥에 굴러 삐걱대는 몸을 가누고 고개를 든 카라마츠가 의심 없이 사내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섰다.
옷에 붙은 진흙을 대충 털어낸 카라마츠가 그제야 사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붉은 기모노를 입고 빙그레 웃고 있는 사내의 한 손엔 긴 담뱃대가 들려 있었다.
카라마츠와 같은 검은 머리칼에 그 위엔 황금색의 짐승 귀가 나와 쫑긋대고 있었다.
“…?!
헤?!”
사내의 머리 위에서 움직이는 귀를 보고 카라마츠가 바보 같은 목소리를 냈다.
붉은 옷의 사내가 풋! 하고 웃더니 카라마츠에게 다가왔다.
“위대한 ‘신(神)’님은 처음 봐?”
장난스럽게 웃는 사내의 얼굴은 묘하게 카라마츠와 닮아있으면서 카라마츠보다 어려 보였다.
사내의 등 뒤에서 쑥 뻗어 나온 4개의 황금색 꼬리가 카라마츠의 눈 앞에서 살랑거렸다.
“..꼬리?!”
놀란 카라마츠가 뒷걸음 치다가 옷에 걸려 넘어졌다.
엉덩방아를 제대로 찍은 카라마츠가 “아파…” 하고 신음하며 엉덩이를 문질렀다.
자신을 ‘신’이라고 말한 사내가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며 배를 잡고 주저 앉았다.
“푸하하하하핫!!!! 너, 재미있는 놈이구나?”
웃느라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 사내가 카라마츠에게 다가왔다.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사내의 눈은 보기 좋게 호(弧)를 그리며 휘어졌다.
“너는 어디로 가고 싶으냐?”
“…에?”
사내의 물음에 카라마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대체 이 사내는 나타나자마자 ‘신’을 자칭하고 영문 모를 말만 내뱉고 있었다.
머리 위에 솟은 짐승의 귀와 엉덩이 부분에서 살랑살랑 흔들리고 짐승 꼬리는 아무리 보아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카라마츠의 바보 같은 대답에 사내가 한숨을 내쉬더니 답답하다는 얼굴로 담뱃대를 물었다. 후- 하고 뽀얀 연기를 내뱉은 사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여기 말고 어디로 보내 주었으면 하냐는 말이야-“
“어디...? 말하면 보내 주는 건가?”
“나는 산 제물을 잡아먹는 취미는 없으니까 말이야.”
사내의 말에 카라마츠는 눈 앞의 사내가 ‘신’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낡은 신사에 사람이 살고 있을 리 없을뿐더러 카라마츠는 자신이 산 제물이라고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입을 굳게 다물고 눈썹을 찌푸린 채,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는 카라마츠를 사내가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고 있었다.
고민이 끝났는지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고 사내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건가?”
“하?”
이번엔 사내가 바보 같은 소리를 냈다.
심기가 불편한지 한쪽 눈썹을 지긋이 올리고 카라마츠를 황당하단 얼굴로 바라본 사내가 콧방귀를 꼈다.
“당연히 안 되지. 게다가 왜 이곳에 머무르려는 거야? 너를 산 제물로 바친 마을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
담뱃대를 손에서 이리저리 돌리며 사내가 말했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저으며 사내의 말에는 동의했다.
지금 와서 다시 마을에 내려가 봤자, 다시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 것은 당연하고 바쳐진 ‘산 제물’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은 신의 노여움이 더 깊어졌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 뻔했다.
그렇게 되면 카라마츠는 자신이 무사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 동생들이 이 마을로 돌아올지 모르는데 마을을 떠난다는 것은 카라마츠는 할 수 없었다.
부모님의 묘도 마을에 있다. 카라마츠는 비록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친 마을이라도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이 마을을 사랑했다.
“부탁한다.”
카라마츠가 짙은 눈썹을 내리고 간곡히 말했다.
최대한 진심을 담아 사내를 바라보자, 사내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뻑뻑 담배를 피우더니 곧 팔을 휘둘러 바람을 일으켰다.
거센 바람에 카라마츠가 눈을 질끈 감았다.
서서히 바람이 잦아들어 카라마츠가 한 쪽 눈만 떠서 주변을 둘러 보았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던 붉은 토리이는 방금 전 막 세운 것처럼 붉었다.
선명한 붉은색의 토리이에 놀라 뒤를 돌자 그곳엔 커다란 저택이 세워져 있었다.
부자들이나 산다는 기와가 올라간 으리으리한 저택이 작은 사당이 있어야 할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놀란 카라마츠가 입을 벌린 채, 말도 못하고 있자, 저택의 입구에 서 있던 사내가 외쳤다.
“어이, 인간 꼬맹이. 뭐하고 있어? 들어와.”
사내가 저택 쪽으로 손짓했다. 얼떨떨한 얼굴로 카라마츠가 사내에게 다가갔다.
사내가 다시 손짓하자 커다란 저택의 현관이 드르륵! 하고 절로 열렸다.
다시 한번 놀란 카라마츠가 걸음을 멈추었다. 사내는 멍청히 서 있는 카라마츠를 향해 말했다.
“내 땅에서 굶어 죽은 시체가 나오는 것도 곤란하니까,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라.”
사내의 말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담뱃대를 물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 더럽고 안 어울리는 여자 옷도 갈아입고. 얼굴의 분도 지워라. 봐주기 힘들다.”
“..아, 아아.”
“욕실은 들어가서 오른편에 있으니 깨끗이 씻어라, 인간 꼬맹아.”
무심한 사내의 말에 카라마츠가 발끈하며 눈썹을 찌푸렸다.
“나는 마츠노 마츠조의 첫째 아들 마츠노 카라마츠다!!”
“시끄럽네, 인간 꼬맹아. 네가 누구건 나보다 한참 어린 놈이 말대꾸하지 마-“
관심 없다는 투로 귀를 후비며 사내가 한숨 쉬었다.
하지만 카라마츠는 사내의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가 굉장히 거슬렸다.
‘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카라마츠의 태도는 일반 사람을 대할 때와 변하지 않았다.
게다가 눈 앞의 ‘신’이 전혀 ‘신’같지 않은 태도를 취하는 것도 한 몫 했다. 카라마츠는 사내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사람의 이름을 들었다면 자신의 이름도 밝히는 것이 예의다!”
자신의 코 앞에서 외치는 카라마츠를 사내가 귀찮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쯧- 하고 혀를 찬 사내의 꼬리가 불쾌한지 휘적휘적 크게 움직였다.
“..오소마츠다. 됐냐? 인간 꼬맹아.”
“그러니까! 내 이름은 카라ㅁ…”
“아, 됐고! 얼렁 씻어!”
자신을 오소마츠라 말한 사내의 ‘인간 꼬맹이’라는 부름에 카라마츠가 다시 반박하려 입을 열었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내가 카라마츠의 입을 막더니 집 안으로 떠밀었다.
현관으로 던져지듯 들어간 카라마츠가 몸을 돌렸지만, 사내의 손짓에 현관문은 이미 굳게 닫혀있었다.
후- 세게 콧바람을 내쉰 카라마츠가 단념하고 욕실을 향해 걸었다.
이렇게 ‘신’과 ‘산 제물’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3.
기다란 복도를 걸으며 카라마츠는 이 현실 같지 않은 현실에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욕실에 들어가자 한번도 보지 못한 커다란 욕조 안에는 적당한 온도로 데워진 온수가 차 있었다.
진흙과 먼지에 더러워진 몸을 씻고 욕실을 나오니 어느새 카라마츠 벗어놓은 더러운 옷은 사라지고 대신에 푸른색의 평복이 준비되어 있었다.
평복으로 갈아입은 후, 저택 곳곳을 돌아다닌 카라마츠는 탄식했다.
커다란 주방이며 손님방이며 제대로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무슨 음식이든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주방은 이끼가 잔뜩 껴 있었고, 손님방엔 먼지가 층을 이루고 쌓여 있었다.
‘욕실은 제대로 관리되어 깨끗했는데 이 차이는 대체…’
한숨을 내쉬며 카라마츠가 저택 안을 한 바퀴 돌고, 저택 중앙의 가장 큰 방으로 향했다.
방을 들어서자 오소마츠가 자신의 꼬리를 베개 삼아 방바닥에 누워 담배를 피고 있었다.
인상을 잔뜩 구기고 오소마츠에게 걸어간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손에 들려 있던 담뱃대를 뺏어 들었다.
황당하단 얼굴로 카라마츠를 올려다 본 오소마츠가 몸을 일으켰다.
“야, 인간 꼬맹이. 무슨 짓이야?”
“인간 꼬맹이가 아니고 카라마츠다! 누워서 담배를 피우다니 제정신인가? 다다미에 구멍 난다!!”
카라마츠의 호통에 오소마츠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대체 이번에 제물로 바쳐진 놈은 뭘 믿고 이리 당찬지 오소마츠는 이해할 수 없었다.
손을 뻗어 다시 담뱃대를 돌려달라는 의미를 담아 손을 까닥였다.
카라마츠는 더더욱 얼굴을 구기고 한 발짝 물러나며 담뱃대를 등 뒤에 숨겼다.
“야, 인간 꼬맹이.”
오소마츠가 손짓하자 카라마츠의 손에 쥐여져 있던 담뱃대가 공중에 뜨더니 오소마츠 손에 안착했다.
다시 담배를 피우며 오소마츠가 말했다.
“애초에 이 집은 내 신통력으로 유지되고 있어서 다다미에 구멍이 나도 바로 복구된다고. 그리고 여긴 내 집!! 내가 어쩌건 내 맘이지?!”
명백히 짜증이 묻어 나오는 오소마츠의 말투에 카라마츠가 응수했다.
“'신'이면 '신'답게 체통을 지키는 게 어때?! 그리고 주방도 그렇고 손님방도 그렇고, 관리가 전혀 안 되어 있던데 무슨!!”
“아?!”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의 얼굴이 험악해지더니 몸을 일으켜 카라마츠에게 손톱을 내밀었다.
인간보다 조금 더 긴 길이의 손톱이 순식간에 날카롭고 기다란 칼처럼 카라마츠의 목을 노렸다.
“네가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내가 널 거둬준 건 네가 불쌍해 보여서지, 이렇게 나대라고 거둬준 게 아니야.”
날카로운 손톱이 경동맥을 노리고, 오소마츠의 붉은 눈이 짐승처럼 빛나고 있는데도 카라마츠는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소마츠의 험악한 얼굴도 그리 무서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만들어낸 표정 같은 부자연스러움에 인상이 찡그려질 뿐이었다.
“거둬준 건 고마워. 그럼 앞으로 주방과 방 청소는 내가 할 테니까..”
카라마츠는 오소마츠가 집 주인으로서 대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먼저 제안을 하는 카라마츠의 태도에 얼이 빠진 오소마츠가 손톱을 거두었다.
살벌했던 표정을 거두고 귀찮다는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인 오소마츠가 말했다.
“그래, 넌 인간이니- 음식을 먹을 필요가 있었군… 그럼 주방하고 방 청소는 맡기마.”
“아아.”
“그리고 네가 지낼 방은 마음에 드는 방 아무거나 골라.”
“알겠다.”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인 후, 방을 나섰다.
저녁을 먹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주방을 청소할 필요가 있었다.
주방 구석 구석 나뭇잎과 나뭇가지로 이끼를 벗겨낸 카라마츠가 주방 바닥에 주저앉아 겨우 한숨을 돌렸다.
배에서는 ‘구우우-‘ 하는 공허한 소리가 울렸다. 밥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배를 붙잡고 카라마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끼를 다 벗겨냈지만, 가장 중요한 밥솥은 구멍이 뻥뻥 뚫린 채 도저히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게다가 쌀도, 반찬으로 삼을 만한 재료도 없었다.
카라마츠는 역시 내일 산 속에서 산짐승이라도 잡아오자고 결심하며, 저택을 돌아다니다가 정해 놓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손님방의 관리 상태는 최악으로 방바닥에 수북이 쌓인 먼지를 닦아낸 후, 곰팡이가 잔뜩 쓴 이불을 내다 말리니 어느새 한밤 중이 되었다.
기진맥진한 채, 다다미 바닥에 누운 카라마츠가 아직도 ‘구우우-‘ 하고 울리는 배를 붙잡았다.
배가 고팠다.
그리고 폭신폭신한 이불에 눕고 싶었다. 애초에 노숙을 각오하고 있었던 만큼 지금 상황은 카라마츠에게 감지덕지하지만,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라고 역시 이불과 먹을 것이 필요했다.
내일 산짐승을 잡아 오고 이불을 빨아 햇볕에 말리면 내일은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만 견디자.’
중얼거리며 카라마츠가 지친 눈을 감았을 때였다.
문이 열리고 사락사락 옷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뜬 카라마츠가 윗몸을 일으키자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툭! 하고 오소마츠가 던진 보따리를 카라마츠가 풀었다.
따끈따끈한 주먹밥 3개가 김을 내며 카라마츠의 식욕을 돋우었다.
망설이지 않고 주먹밥을 들어 입으로 가져간 카라마츠가 만 하루만의 식사에 감격하며 주먹밥을 맛있게 먹었다.
입 안 가득 주먹밥을 씹는 카라마츠는 보며 오소마츠가 이불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오암다(고맙다)”
입 안 가득한 주먹밥 덕분에 밥풀을 튀기며 인사를 하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눈썹을 찡그리고는 “다 먹고 말해라.” 하고 핀잔을 주었다.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이고 주먹밥을 급히 씹어 삼킨 후, 다시 인사하자 오소마츠가 피식 웃으며 “잘 자라-“ 하고 인사한 후, 사라졌다.
오소마츠에게 잘 자란 인사를 하려던 카라마츠는 사라져 버린 오소마츠의 인영에 묘한 쓸쓸함을 느꼈다.
오소마츠가 가져다 준 이불은 방금 햇빛에 말린 것처럼 뽀송뽀송 했다.
이불을 다다미에 깔고 그 안에 누워 카라마츠가 만족스러운 숨을 내쉬고 눈을 감았다.
4.
해가 떠오르기도 전인 이른 아침, 농사로 규칙적인 생활을 했던 카라마츠는 항상 일어나던 시간에 눈을 떴다.
잠에 취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카라마츠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보통 이 시간이면 농기구를 정리하고 집 청소를 한 뒤, 아침 식사를 할 시간이지만 마을에서 쫓겨난 카라마츠는 더 이상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스멀스멀 발목을 잡고 올라오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카라마츠를 잠식하려 했다.
재빨리 고개를 좌우로 힘껏 흔들어 악질적인 생각들을 털어낸 카라마츠가 힘차게 이불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불을 가지런히 개어 벽장에 넣고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행동을 서둘렀다.
어제 본 주방에는 요리 재료가 하나도 없었다.
빨리 산에 올라 산짐승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한 카라마츠가 어제 주방 구석에 세워져 있던 낫을 기억해 냈다.
무기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에 주방에 들려 낫을 가져갈 심산으로 주방으로 향한 카라마츠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어제 카라마츠가 힘겹게 이끼를 벗겨낸 주방은 마치 새 것마냥 반짝거렸다.
구멍투성이의 밥솥은 검고 맨들 거리는 새 솥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주방 한 켠에는 쌀과 각종 채소와 과일이 줄지어 놓여져 있었다.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알 리 없는 카라마츠가 문득 어제 오소마츠가 한 말을 떠올렸다.
“.. 이 집은 내 신통력으로 유지되고 있어서..”
오소마츠의 말을 떠올린 카라마츠가 멋쩍게 뒷머리를 긁었다.
‘그럼 이것도 다 신통력으로 한 건가?’
주방을 한번 쭉 훑어본 카라마츠가 주방을 나서 오소마츠를 찾았다.
어제 오소마츠가 머물고 있던 큰 방에 들어가 보았지만 오소마츠는 없었다.
온 저택을 돌아다녀도 오소마츠의 꼬리털 하나 보이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포기하지 않고 현관을 나서 신사의 입구에 세워진 토리이를 바라보았다.
아니나다를까 어제와 같이 오소마츠는 토리이 위에 앉아있었다.
황금색의 귀가 쫑긋거리며 카라마츠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어 오소마츠가 슬쩍 고개만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마침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 햇빛은 받은 오소마츠를 올려 보며 카라마츠가 긴장으로 옷자락을 쥐었다.
‘아름답다…’
망연히 오소마츠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오소마츠는 가만히 카라마츠를 보며 말없이 앉아있었다.
오소마츠의 꼬리가 살랑 움직이더니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불렀다.
“인간 꼬맹이- 뭔가 용무가 있는 거 아냐?”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카라마츠가 떨리는 목소리로 오소마츠를 불렀다. 아니, 부르려 했다.
입을 연 순간, 카라마츠는 굉장히 기초적인 의문에 빠졌다.
오소마츠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카라마츠의 머리 속이 백지가 되었다.
오소마츠는 엄연한 ‘신’이다.
한낱 인간에 불과한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이름을 멋대로 호칭해도 되는 것인가.
어제부터 오소마츠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얼마나 무례했는지 깨닫지 못한 카라마츠가 입만 뻐끔거렸다.
오소마츠는 귀를 움직이며 카라마츠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고민한 카라마츠가 겨우 목소리를 냈다.
“「신」님!!”
“..푸, 푸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배를 잡고 웃었다.
위태롭게 앉아있는 토리이 위에서 허리를 휘며 박장대소하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는 제가 무슨 잘못을 한 것인지 사색이 된 얼굴로 불안하게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훌쩍 토리이 위에서 뛰어 내려 카라마츠의 앞에 선 오소마츠가 눈물이 글썽글썽 맺힌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너 말이야.. 어제 그렇게 막 대하더니 이제 와서 ‘「신」님’ 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뭐야.”
웃음기가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오소마츠가 말하자 카라마츠가 “아!” 하고 소리를 높였다.
이제야 깨달았다는 카라마츠의 얼굴에 오소마츠가 다시 큭큭 거리더니 즐거운 얼굴로 말했다.
“「신」이라고 굳이 격식 차려서 부르지 않아도 돼. 네가 편한 대로 불러.”
“아니, 그렇게라도 부르지 않으면 당신이 ‘신’이라는 거 잊어버릴 것 같으니 됐다.”
“너, 어제부터 나를 어떻게 대하고 싶은
거야..”
웃음기를 지우고 황당하단 얼굴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갑자기 다가온 손길에 놀란 카라마츠의 몸이 굳었다.
빳빳하게 굳어버린 얼굴로 오소마츠를 보는 카라마츠의 얼굴에 오소마츠가 다시 웃음을 흘렸다.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을 멈추고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그래서? 무슨 용건?”
“아! 주방,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서.”
“뭐, 앞으로 네가 잘 관리하라고. 나는 식사를 하지 않으니까…”
“에? 어째서??”
카라마츠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오소마츠는 별일 아니라는 듯 소매에 손을 넣고 덤덤히 말했다.
자신은 ‘신’이기에 산에서 내려오는 정기와 인간들의 신앙심으로 살아가는 존재라고.
그러니 식사는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오소마츠의 말을 들은 카라마츠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하지만, 혼자 먹는 식사는 외롭다. 그러니 앞으로 같이 먹어주지 않겠나?”
오소마츠를 향해 망연히 내뱉은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넋을 잃었다.
눈 앞의 인간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황당하지만 어쩐지 당돌한 이 인간의 태도가 오소마츠는 마음에 들었다.
피식 웃은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라마츠가 기쁨을 감추지 않고 빙긋 웃더니 주방으로 달려갔다.
카라마츠가 함께 지내게 된 이후로 오소마츠의 일상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산의 정기로 대신했던 식사를 카라마츠와
함께 하게 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
* 1편의 -상-편 이었습니다...
* 계속 팍팍 올릴거에요.. 저 폭주해서 상, 중, 하편 다 써버렸거든요...
'오소마츠상 > (카라오소│오소른) 여우골이야기 (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라오소/오소른] 여우골이야기:첫만남 (17) | 2016.11.06 |
---|---|
[카라오소/오소른] 여우골이야기:맞선 (12) | 2016.10.29 |
[카라오소/오소른] 여우골이야기:여우골이야기 -하- (7) | 2016.10.24 |
[카라오소/오소른] 여우골이야기:여우골이야기 -중- (7) | 2016.10.24 |
블로그 방문 누적 1만명 기념, 새 시리즈 연재! (8) | 2016.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