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편입니다~~
* 부족한 글입니다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무거운 배를 이끌고 여우신 사당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린 마츠요는 본디 이 마을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약 80년 전, 백 년마다 드는 가뭄에 ‘산 제물’로 바쳐진 마츠요의 할머니는 오소마츠의 도움으로 마을을 빠져 나와 자유로이 세상을 떠돌며 살았다.
폐쇄적인 마을 밖의 삶은 마츠요의 할머니에겐 꿈만 같은 자유와 많은 행복은 안겨 주었다.
여행 중 만난 약장수와 결혼한 마츠요의 할머니는 곧 에도 근처 작은 마을에 정착하여 손녀 마츠요를 보았다.
항상 태어난 고향인 아카츠카 마을을 그리워하던 그녀는 자신의 고향 이야기를 자주 마츠요에게 해주었고, 마츠요는 할머니의 고향에 가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마츠요가 성인이 되고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마츠요는 여행길을 떠났다.
할머니가 항상 그리워하던 그 마을을 찾아가보고 싶었다.
여장부 기질을 가진 마츠요는 할머니의 기억에 의존하여 전국을 떠돌아 결국엔 아카츠카 마을에 도달했다.
오랜 여행으로 기진맥진해 있는 마츠요를 집으로 초대하여 극진히 보살펴 준 것이 아카츠카 마을의 젊은 촌장 마츠조였다.
서로 한 눈에 반한 한 쌍의 남녀는 바로 온 마을의 축복을 받으며 혼인했다.
금술 좋은 부부인 마츠조와 마츠요는 금새 사랑의 결실을 가지게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점점 커져가는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마츠요는 자신의 안에서 자라고 있는 생명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신의 축복이라고 생각한 마츠요는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오소마츠가 머무는 사당에 올라 기도를 드렸다.
한 배에 한 명의 아이를 낳기도 힘든 시대였다. 아이를 낳다가 아이와 함께 이승을 떠나는 산부도 많았다.
하물며 마츠요는 하나의 아이가 아니었다. 아이를 무사히 낳을 수 있을까, 초산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아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마츠요를 무겁게 옥죄었고, 마츠요를 신사로 이끌었다.
「신(神)님, 부디 이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간절히 기도를 드리는 마츠요에게 오소마츠가 기색을 감추고 가까이 다가갔다.
과연 마츠요의 뱃속에는 무려 5개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풍요의 신’인 오소마츠는 그 작은 생명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신통력을 손에 감싸고 살며시 마츠요의 배를 쓰다듬었다.
배가 따뜻해지며 한결 거동이 편안해진 것을 느낀 마츠요가 배를 감싸고 빙그레 웃었다.
꿇고 있던 무릎을 풀고 편안히 앉은 마츠요가 사당을 바라보며 소녀처럼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 보따리는 풀었다.
자신의 할머니가 얼마나 이 마을을 그리워했는지, 이 마을에는 잘생기고 멋진 여우신(神) 님이 계신다고 즐겁게 말해줬던 일, 그리고 그 말을 듣고 자신이 얼마나 이 마을에 오고 싶었는지, 하나하나 세세히 털어놓는 마츠요를 바라보며 오소마츠는 ‘여자란 이렇게나 수다를 좋아하니…’ 하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한바탕 시끄럽게 수다를 떤 마츠요는 땅거미가 질 무렵 몸을 일으켰다.
뒤뚱뒤뚱 힘겹게 걷는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힘들어 보여 오소마츠는 손짓으로 강풍을 불었다.
마츠요의 몸이 두둥실 떠올라 산길을 내려가 마을 입구에 무사히 안착했다.
얼떨떨한 얼굴로 신사를 올려다본 마츠요가 기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고마워요~ 여우신님~~” 하고 외쳤다.
모습이 보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오소마츠는 생기발랄한 마츠요에게 손을 흔들어 답해 주었다.
2.
‘그러고 보니, 저 녀석들 그녀의 아이들이었나…’
짐 보따리를 메고 지고 앞장 서서 마을을 빠져나가는 다섯 명의 형제들을 바라보며 오소마츠가 얼마 전, 신사에 찾아왔던 생기발랄한 임부를 떠올렸다.
임부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영원을 살아가는 오소마츠에게는 그 시절이 바로 저번 주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그 때 오소마츠가 ‘가호’를 내려준 아이들이라면 분명 어디를 가든 잘 살아남을 수 있을 터였다.
“읏차아-“
토리이에 앉아있던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난 오소마츠가 소매를 걷었다.
“그럼 마무리를 해 볼까아~”
오소마츠는 아슬아슬하게 호수를 막아 마을이 수몰되지 않도록 막고 있었던 둑을 의도적으로 터뜨렸다.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호숫물이 거대한 강을 만들며 마을로 흘러 들어왔다.
빠른 유속에 마을의 작은 초가집들은 순식간에 물에 휩쓸려 사라지고, 마을의 집들도, 신목도, 우물도, 밭도, 논도 전부 물에 잠겨 서서히 사라져갔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완전히 수몰된 마을 터에는 커다란 호수가 자리잡게 되었다.
산 중턱에 위치했던 오소마츠의 신사도 완전히 물에 잠기어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공중에 떠 이제는 호수가 된 마을을 마지막으로 내려다 본 오소마츠가 만족스럽게 꼬리를 휘두르면서 슬프게 웃었다.
잊혀진 신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불문율과 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올라가면 또 잔소리 하려나-“
오소마츠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내 손을 들었다.
손 끝에 투명한 천이 오소마츠의 온 몸을 감쌌다.
마치 새벽 안개가 떠오른 해에 녹아 사라지듯 오소마츠는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추었다.
본래 오소마츠는 ‘인간’이었다.
부모 없이 어린 나이에 버려진 고아.
온갖 도둑질과 폭행으로 점철된 일생을 살아온 오소마츠는 아주 허무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사냥꾼에게 쫓기는 여우를 우연히 발견하고 단순한 변덕으로 그 여우를 도와 주었다가 여우를 뒤따라온 사냥꾼에게 맞아 죽은 것이다.
성인 남성의 발에 무자비하게 밟힌 오소마츠의 여린 몸은 차가운 공기에 서서히 그 온기를 빼앗겨 식어갔다.
그래도 하늘이 도운 것일까, 오소마츠가 도운 그 여우는 ‘여우신’의 아들이었고, ‘여우신’의 축복으로 오소마츠는 아기 여우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오소마츠의 머리 위에 귀가 솟아나고 엉덩이에는 꼬리가 돋아났다.
아기 여우가 된 오소마츠는 그대로 ‘여우신’에게 거두어져 인간일 때와 정반대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여우 요괴에는 2가지가 있다.
구미호와 같이 인간을 유혹하고 그 생기를 취하는 ‘요호’와 여우 선인이나 여우신과 같이 신과 같은 지위에 올라 풍요의 신으로 추앙 받는 ‘선호’가 있다.
오소마츠를 거둔 ‘여우신’은 선호로 이미 풍요의 신으로서 인정받고 추앙 받고 있었다.
오소마츠는 그런 여우신의 아래에서 수련을 하여 선호로서 꼬리를 늘려가고 있었다.
여우의 신통력은 꼬리의 수에 비례한다.
오소마츠는 여우의 신통력을 제어하고 증폭시키는 기술이 특히 뛰어났다.
오랜 수련을 반복해야만 얻을 수 있는 2번째 꼬리를 오소마츠는 고작 70년만에 얻을 수 있었다.
‘여우신’도 오소마츠를 자랑스러워하며 다른 신을 만나러 갈 일이 생기면 항상 오소마츠를 데리고 갔다.
‘여우신’의 기대와 함께 주변에서 ‘시기’의 눈빛도 그 정도를 더해갔다.
오소마츠를 시기하는 자들은 오소마츠가 정통 여우가 아닌, 인간에 그 근본을 두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필사적으로 오소마츠를 깎아 내리려 했다.
탐욕과 질투에 눈이 멀어 ‘선호’를 목표로 수련을 하는 여우들의 손가락질에 오소마츠는 서서히 마음을 잃어갔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 9개의 꼬리를 가지게 되었지만, 오소마츠는 더 이상 ‘선호’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
수많은 시기와 치졸한 계략에 휘말린 오소마츠는 제 멋대로 신통력을 휘두르며 날뛰었다.
오소마츠가 ‘요호’라고 불리기 일보직전의 상황, 삐뚤어져 나가는 오소마츠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여우신’이 그 수명을 다해 세상을 떴다.
이승도, 저승도 아닌 신선의 세계로 들어간 ‘여우신’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오소마츠를 강하게 짓누르며 오소마츠의 마음을 다시 정결하게 바로 잡았다.
오소마츠는 ‘여우신’이 자신에게 바라던 대로 ‘선호’가 되기를 결심하고 중단했던 수련을 재개했다.
타고난 오소마츠의 신통력으로 오소마츠는 백 년도 채우지 않고 바로 9개 중 5개의 꼬리를 떼고 ‘천호(天狐)’의 자리에 올랐다.
탐욕과 번민을 버리고 세상의 모든 진리를 깨달아 부처의 자비를 베풀 수 있게 된 ‘신’이 된 것이다.
‘천호’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소마츠는 새로 생긴 ‘아카츠카 마을’의 토지신의 자리에 임명되었다.
토지신에게 있어 그 휘하의 마을과 마을의 인간들은 자식과도 같았다.
오소마츠는 부처의 자비로 마을을 다스렸다.
오소마츠의 통치하에 발전을 이룩한 마을 사람들은 모두 오소마츠를 경배하였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 짧은 인생에 걸맞게 쉽게 마음을 바꾸는 족속들이었다.
오소마츠를 경애하던 마음은 금새 잊혀지고 폐쇄된 마을은 어리석은 인간들의 시기와 질투, 부정한 기운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오소마츠의 신사도 더 이상 찾는 이 없이 버려지게 되었다.
오소마츠는 자신을 시기, 질투하던 여우들과 닮은 인간들에게 서서히 질려가고 있었다.
같은 인간임에도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배척하고 때로는 잔인하게 서로를 죽이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내려다보며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언제라도 이 마을을 버리고 천상으로 올라가버리면 되었지만, 오소마츠는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의 근본이 인간에 있기에 오소마츠는 다른 신보다 인간을 사랑했다.
비록 청초했던 마음을 더럽히고 죄를 반복하는 인간일지라도 오소마츠에겐 사랑스러운 자식과도 같았다.
그랬기에 오소마츠는 웃을 수 있었다.
카라마츠의 동생들이 마을 사람들을 모두 이끌고 새로운 땅으로 떠나는 모습을 배웅하며, 이 위험한 마을 터를 버리고 새 출발을 하는 사랑스러운 인간들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었다.
비록 소중한 ‘카라마츠’와 이별을 하게 될 지라도 오소마츠는 행복하게 다시 천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3.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오쌍둥이가 도착한 곳은 쵸로마츠가 여행하며 봐 두었던 윤택한 토지가 있는 곳이었다.
‘아카츠카 마을’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 산과 강이 있는 그곳은 흙이 반들반들 빛나고 많은 마을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곳이었다.
마을의 중앙이 될 곳에 집을 세운 오쌍둥이는 세상에 나가서 배워온 지식을 마음껏 뽐내며 마을을 이끌었다.
쵸로마츠는 신식 농업 기술을 배워와 그 기술을 발전하고 응용하며 매년 풍작이 이루어지게 했고, 이치마츠는 의료 기술을 몸에 익혀 마을의 의사가 되었다. 쥬시마츠는 무술을 마을 청년들에게 가르쳐 마을 자경단을 만들어 도적과 산짐승으로부터 마을을 지켰다.
토도마츠는 수공예를 마을 아녀자들에게 가르쳐주어 수공예로 만든 마을 특산물을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수 많은 마을로 뻗어간 길목에 위치한 새로운 마을은 금새 번성을 이루며 빠른 발전을 이루었다.
예전 마을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아카츠카 마을’이라고 명명된 마을은 오쌍둥이의 주도 아래 빠르고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해갔다.
카라마츠는 쵸로마츠를 도와 그 동안 농부로써 알게 된 정보를 쵸로마츠와 나누었고, 마을의 제일 큰 논을 앞서 가꾸어 풍작이 되도록 이끌었다.
한창 발전하기 시작한 마을이었기에 바쁘게 일해야 하는 것도 있었지만,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잊기 위해 더 바삐 움직였다.
한시라도 쉴 틈이 생기면 떠오르는 오소마츠의 얼굴에 가슴이 아프고 너무나 괴로웠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위해,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위해 악역을 자처한 오소마츠가 너무나 애잔하고 그리고 사랑스러웠다.
카라마츠는 평생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오소마츠의 곁에 있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마을을 떠나는 것이 오소마츠의 소원이라면 카라마츠는 그것을 거부할 수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가는 마을을 보며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에게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카라마츠 형아-!!”
자신을 부르는 밝은 쥬시마츠의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논에서 뛰어 나와 대답했다.
검게 탄 피부가 땀으로 반짝였다. 흘러내리는 땀을 쥬시마츠가 건넨 수건으로 닦아낸 카라마츠가 쥬시마츠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쥬시마츠.”
“우응- 그게~! 나, 내일 토도마츠의 물건 배달 가는데 카라마츠 형아랑 같이 가고 싶슴다~!!!”
“나랑?”
“아이아이!!”
두 팔을 올리고 웃는 쥬시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배달은 쥬시마츠와 쵸로마츠가 함께 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카라마츠는 셈에 약할뿐더러 거래나 흥정에도 능숙하지 못했다.
오직 우직하게 농사만 할 줄 아는 카라마츠가 쥬시마츠의 배달에 따라갈 일은 거의 없었다.
카라마츠가 “쵸로마츠는?” 하고 묻자 쥬시마츠가 흐트러진 자신의 머리를 정돈하더니 입을 세모꼴로 만들고 쵸로마츠의 목소리를 따라했다.
“이번 건은 물건 배달만 하는 거니까 카라마츠 형이 따라가도 괜찮겠지. 오히려 가는 길목에 도적이 자주 출연하는 곳이 있으니까 호위할 겸 카라마츠 형이랑 같이 갔다 와.”
완벽하게 쵸로마츠를 따라 하는 쥬시마츠에게 박수를 보내며 카라마츠가 감탄했다.
쥬시마츠가 금새 자신의 얼굴로 돌아가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어떻슴까? 어떻슴까아~?”
“아아, 좋다. 쥬시마츠!”
“아이아이!! 그리고 이번에 배달 가는 곳에 지나치게 됨다!”
“어? 어디를?”
“옛날 아카츠카 마을!!”
쥬시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숨을 삼켰다.
오소마츠와 함께 지내면서 있었던 일들을 카라마츠는 동생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오소마츠 이야기만 나오면 “그 악신!” 이라며 욕하기 바쁜 동생들에게 오소마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산책이었다.
그리고 오소마츠와의 추억을 카라마츠는 누구에게도 공유하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고 싶었다.
그렇게 꽁꽁 숨겨왔던 것인데 쥬시마츠는 어떻게 눈치챈 것인지 몰라도 카라마츠의 심정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을을 떠난 지 3년이 지났다. 몇 번이고 다시 옛 마을로 돌아가 오소마츠와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지냈다.
‘이제는 돌아가도 괜찮을까? 잠깐 얼굴만 보는 정도라면…’
순수하게 웃는 오소마츠의 얼굴을 떠올리며 카라마츠의 눈빛이 부드럽게 빛났다.
카라마츠는 쥬시마츠에게 싱긋- 웃어주며 “그래, 가자.” 하고 대답했다.
쥬시마츠가 카라마츠를 따라 입꼬리를 올리고 팔을 휘두르며 힘차게 “아이아이!!!” 하고 외쳤다.
4.
“거, 짓말...이지?”
커다란 호수가 된 옛 아카츠카 마을 앞에 망연히 선 카라마츠가 중얼거렸다.
쥬시마츠와 함께 3년만에 다시 찾은 아카츠카 마을은 더 이상 지도에도 존재하지 않는 마을이 되었다.
온 마을도 오소마츠의 신사도 물 속에 잠겨 사라져 있었다.
다시 오소마츠를 만날 생각에 두근거리고 있던 카라마츠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으며 고동을 멈추었다.
털썩 하고 풀숲에 주저앉은 카라마츠가 커다란 호수를 바라보았다.
쥬시마츠는 긴 소매로 입을 가린 채, 카라마츠의 뒤에서 그저 카라마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소마츠는 대체…’
본래 신사가 있어야 할 산 중턱을 바라보며 카라마츠가 절망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오소마츠가 보고 싶다.
그 생각이 온 마음을 뒤집어 놓았다.
차오르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 하늘을 울리는 까마귀 소리가 카라마츠에게 다가왔다.
고개를 들자 한 까마귀 한 마리가 입에 종이를 물고 카라마츠에게 날아오고 있었다.
지난 가을날 오소마츠가 했던 동작을 기억해낸 카라마츠가 팔을 들었다.
까마귀는 자연스럽게 카라마츠의 팔에 앉아 입에 물고 있던 종이를 내려놓았다.
종이를 펼쳐 들자 언젠가 힐끗 보았던 오소마츠의 삐뚤삐뚤한 글씨로 글이 쓰여 있었다.
「인간은 인간 세상에, 신은 신의 세상에… 그것은 절대 변해선 안 된다. 그러니 부디 행복해지렴, 카라마츠..」
펼쳐진 종이에 카라마츠의 눈물이 떨어져 먹물이 번졌다.
소중하게 종이를 품에 안은 카라마츠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몸을 웅크리고 흐느끼는 카라마츠를 남긴 채, 까마귀는 제 할 일을 마치고 다시 넓고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그 자리에서 평생 울 분을 전부 울어버린 카라마츠는 울다 지쳐 쓰러졌다.
함께 있던 쥬시마츠가 실신한 카라마츠를 안고 ‘아카츠카 마을’로 돌아왔다.
카라마츠의 슬픔과 상실감은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감당하기엔 그 크기가 너무나 컸다.
마을로 돌아온 카라마츠는 마음의 병을 얻어 하루 하루 수척해졌다.
이치마츠의 극진한 간호에도 카라마츠의 몸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형제들은 모두 카라마츠와 함께 갔던 쥬시마츠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고, 쥬시마츠는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제야 모든 사정을 알게 된 쵸로마츠, 이치마츠는 입을 다물었다.
카라마츠의 병의 원인이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손을 쓸 수 없다고 판단했다.
토도마츠만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카라마츠를 간호했다.
1년이 지나도 카라마츠는 여전히 병상에 누워 있었다. 간호를 지속한 토도마츠도 결국 한계에 다다랐다.
“그렇게 그 녀석이 보고 싶으면, 차라리 ―!!!!”
토도마츠의 한 마디에 잃어가던 생기를 되찾은 카라마츠의 눈이 번쩍였다.
그 날 이후, 카라마츠는 다시 하루하루 건강을 되찾아갔다.
토도마츠가 홧김에 내뱉은 말이 뜻밖에 카라마츠에게 살아갈 의지를 부여해 준 것이다.
다시 1년이 지나 완전히 건강을 되찾은 카라마츠는 동생들에게 작별인사를 한 뒤, ‘아카츠카 마을’을 떠나 이제는 호수가 되어버린 ‘옛 아카츠카 마을’에 홀로 집을 짓고 그곳에 정착했다.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좁은 평지에 논을 개간하고 밭을 만들어 지냈다.
세월이 흘러 오쌍둥이 동생들의 자식들이 카라마츠를 찾아왔다.
기특한 조카들은 카라마츠를 도와 호수 주변에 집을 짓고 작은 집성촌을 이루었다.
그렇게 작은 집성촌으로 초라한 시작을 한 마을은 세월이 갈수록 발전했다.
‘아카츠카 마을’에서의 모든 비법들이 적용된 새로운 마을은 ‘아카츠카 마을’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제법 커다란 마을이 된 후, 카라마츠는 마을 이름을 ‘여우골’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마을을 둘러싸고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커다란 산에 각각 ‘여우산’, ‘청산(靑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우산의 중턱엔 커다란 여우신을 모시는 신사가 지어졌다.
신사 위에 올라 번성한 마을을 바라보며 카라마츠가 기쁘게 웃으며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후에 카라마츠는 여우산을 마주보고 있는 ‘청산’의 중턱에 묻혔다. 정면으로 여우 신사가 보이는 자리였다.
‘여우골’은 그 이후로도 많은 발전을 이루어 ‘아카츠카 마을’과 더불어 대도시로 성장했다.
빽빽히 빌딩이 들어선 대도시를 붉은 토리이에 앉은 사내가 내려다 보았다.
붉은 기모노를 입은 사내의 머리에 난 황금빛의 귀와 엉덩이에 돋아난 4개의 꼬리가 자유분방하게 움직였다.
“대단하잖아- 카라마츠~”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도시를 내려다본 사내가 중얼거렸다.
토리이에 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는 사내의 옆에 깃털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새의 날개가 일으키는 바람이 일었다.
따각- 소리를 내며 붉은 기모노를 입은 사내의 곁에 푸른 기모노를 입고 어깨에 검은 날개가 달린 사내가 나란히 섰다.
* 여러분 그거 아시나요? 이게 1편이에요... 심지어 이 시리즈의 프롤로그격인 편이었어요...
* 저의 손목은 이번 편을 위해 희생되었습니다ㅎㅎㅎㅎㅎ
* 정말로 장난아니고 손목이 아파요..ㅠㅠ 이번편 분량이 저번 장편 '장남의 심중'의 1/3을 차지해요...OTL
* 워드 40페이지, 공백 제외 문자 수 30,866자 였습니다ㅎㅎㅎㅎㅎ
* 이 다음화부턴 대략적으로 플롯을 짜논 상태가 매주 꼬박꼬박 맞춰서 올리겠습니다!! 올릴게요.. 올릴 수 있을 거에요...분명...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소마츠상 > (카라오소│오소른) 여우골이야기 (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라오소/오소른] 여우골이야기:첫만남 (17) | 2016.11.06 |
---|---|
[카라오소/오소른] 여우골이야기:맞선 (12) | 2016.10.29 |
[카라오소/오소른] 여우골이야기:여우골이야기 -중- (7) | 2016.10.24 |
[카라오소/오소른] 여우골이야기:여우골이야기 -상- (9) | 2016.10.24 |
블로그 방문 누적 1만명 기념, 새 시리즈 연재! (8) | 2016.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