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우골이야기 2번째 이야기입니다.
* 시리즈이기에 한 편, 한 편을 하나의 단편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편이 분량이 많아요...허허
* 일본의 '신'에 관한 내용은 인터넷에서 가볍게 조사한 정도입니다.
* 부족한 글입니다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푸르고 드높은 하늘.
맑은 청색의 하늘과 대조적인 붉은 신사의 사당에 누운 오소마츠가 기세 좋게 하품 했다.
윤기 나는 황금빛의 꼬리가 일정한 박자로 좌우로 흔들렸다.
고양이가 배를 깔고 누워 일광욕을 하듯, 오소마츠는 사당에 들어오는 따뜻한 해의 선물을 온 몸으로 만끽하고 있는 중이었다.
뜨끈뜨끈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오소마츠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온기가 오소마츠를 서서히 잠의 세계로 이끌고 있었다.
흔들리는 꼬리가 서서히 속도를 늦추고 편하게 내려 앉았다.
사당 마루에 엎드린 채, 오소마츠가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잠들려던 오소마츠는 등에 느껴지는 무게에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검은 머리에 뾰족한 고양이 귀를 쫑긋거리며 느긋하게 두 갈래로 갈라진 꼬리를 흔드는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의 등에 달라붙어 있었다.
오소마츠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자, 이치마츠의 목에서 골골골- 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이치마츄~, 횽아랑 같이 낮잠 잘까아~?”
“응…”
웬일로 솔직히 대답한 이치마츠의 머리를 한껏 쓰다듬어 준 후, 오소마츠가 몸을 돌려 정면으로 누웠다.
이치마츠도 잠시 몸을 들어 오소마츠가 돌아 눕자 오소마츠의 배에 상체를 기대고 엎드렸다.
따스한 햇살이 두 사람을 감쌌다. 오소마츠는 이치마츠의 등에 손을 올리고 느리게 토닥 토닥 두드렸다.
오소마츠가 토닥여주는 박자에 맞추어 이치마츠의 꼬리가 좌우로 휘어졌다.
항상 반쯤 감고 있던 눈을 편안히 감은 이치마츠의 목에서 절로 골골거리는 소리가 났다.
피식 웃은 오소마츠도 눈을 감았다.
‘여우골’이라고 불리는 마을의 토지신, 오소마츠는 지극히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완전히 꿈의 세계로 빠져버린 두 사람을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내려다 보았다.
이치마츠와는 오늘 함께 인간 마을로 놀러 가자는 약속을 한 터였다.
약속시간이 지나도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이치마츠가 걱정되어 신사까지 찾아와 봤더니 이 모양이다.
토도마츠가 푹 한숨을 내쉬더니 옆에 서 있던 쥬시마츠를 불렀다.
“쥬시마츠 형, 코브라 트위스트!”
“아이아이!!!!”
너무도 해맑은 얼굴로 쥬시마츠가 잠들어 있는 이치마츠를 일으켜 그대로 몸을 꼬았다.
전신에 가해지는 고통에 이치마츠가 눈을 뜨고 “으아아아아아!!!!” 하고 신음했다.
이치마츠의 커다란 신음소리가 온 신사에 울렸다. 오소마츠도 이치마츠의 비명에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우응~ 뭐야아~? 밥?”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오소마츠 형..”
여전히 잠에 취해있는 오소마츠를 보며 토도마츠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멍한 눈을 들어 토도마츠를 바라본 오소마츠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뭐야, 톳티- 오늘도 인간 마을로 놀러 가는 거~?”
“톳티라고 하지 말랬지?!”
분홍 후드와 베이지색의 비니를 쓰고 7부 청바지를 입은 토도마츠가 발끈해 외쳤다.
설녀(雪女)인 토도마츠는 평소 분홍빛의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오늘처럼 인간 마을에 놀러 내려가는 때는 미리 구입해 둔 인간의 옷을 입었다.
설녀라는 종족의 특성 상 얼음을 다루는 것을 제외하면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외견을 가진 토도마츠이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앳된 얼굴을 찡그리고 자신을 불만스럽게 노려보는 토도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큭큭 웃음을 흘리고 토도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상냥한 손길에 토도마츠의 토라진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풀렸다.
자애로운 눈빛으로 토도마츠를 바라본 오소마츠가 눈을 돌려 아직도 이치마츠를 감고 있는 쥬시마츠를 불렀다.
“쥬시마츠~ 그쯤 해 둬~”
“예써!!”
오소마츠의 말에 쥬시마츠가 몸을 풀었다.
바닥에 주저앉은 이치마츠는 팔과 어깨를 두드리며 헥헥 대고 있었다.
쥬시마츠도 토도마츠와 마찬가지로 노란 후드와 반바지를 입어 인간처럼 보이도록 하고 있었다.
로쿠로쿠비인 쥬시마츠도 목이 늘어나는 것만 빼면 인간과 같은 모습이었다.
타박타박 발소리를 울리며 오소마츠에게 다가온 쥬시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오소마츠가 말했다.
“오늘은 어디 놀러 가기로 했어~?”
“그게, 그게!! 동물원!!”
“오~ 그래~?”
“응!!”
“가서 재미있게 놀다 와~”
“아이아이!!”
마치 부모와 자식의 대화 같다고 생각하며 토도마츠가 쓰게 웃었다.
토도마츠와 쥬시마츠, 서로 종족이 다른 둘은 모두 부모와 동족에게 버려진 과거가 있었다.
전국을 떠돌고 떠돌다 우연히 도착한 이 곳, 여우골에서 오소마츠에게 거두어진 두 사람은 오소마츠를 ‘형’이라고 부르고 있어도 완전히 부모와 같이 인식하고 있었다.
오소마츠의 손길에 기쁘게 활짝 웃은 쥬시마츠가 팔을 휘저으며 힘차게 대답했다.
“이치마츠도~”
오소마츠의 부름에 고양이 귀와 꼬리를 숨긴 이치마츠가 다가왔다.
네코마타인 이치마츠는 인간의 마을에 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귀와 꼬리를 감추어야 했다.
항상 입고 있던 자색의 기모노도 보라색의 후드와 추리닝 바지로 바꾼 이치마츠가 얌전히 오소마츠에게 걸어가자 오소마츠가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혹시라도 놀라서 귀 꺼내지 말고~”
“..응.”
얌전히 고개를 끄덕인 이치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빙그레 웃고 이치마츠의 이마에 쪽- 하고 입맞추었다.
훅- 하고 순식간에 이치마츠의 볼이 빨개졌다.
“조심히 다녀와~”
손을 흔들며 오소마츠가 세 사람을 배웅했다.
얼굴에서 김을 내뿜으며 자연발화 직전의 상태인 이치마츠를 질질 끌고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손을 흔들며 계단을 내려 인간의 마을로 내려갔다.
2.
토도마츠와 쥬시마츠, 이치마츠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오소마츠가 다시 크게 하품했다.
봄 기운이 만연해 낮잠자기에 최적의 날씨였다.
따스한 햇빛에 턱을 괴고 앉은 오소마츠의 눈이 서서히 닫혔다.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완전히 눈을 감았을 때, 큰 바람과 함께 날개 소리가 울렸다.
졸린 눈을 게슴츠레 뜬 오소마츠가 빙긋 웃으며 눈 앞의 사내에게 인사했다.
“안녕- 카라마츠으~”
“좋은 아침이다. 오소마츠. 너는 아직도 한밤중인 것 같구나.”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 텐구의 장(長) 카라마츠가 윤기 나는 검은 날개를 접었다.
햇빛에 비친 날개가 푸른빛을 발했다. 오소마츠는 크게 기지개를 폈다.
귀가 뒤로 접히고 꼬리가 살랑 흔들렸다.
“끄으으~” 하고 신음하며 기지개를 핀 오소마츠가 자신의 옆 자리를 통통 두드렸다.
카라마츠가 피식 웃고 오소마츠의 곁에 가 앉았다.
“바쁘신 몸께서 이렇게 자주 들려도 괜찮아?”
“오늘 할 일은 모두 끝냈으니까.”
오소마츠의 장난기 섞인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대답했다.
다시 턱을 괸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빤히 바라보며 잔잔히 미소 지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눈길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갸웃했다.
“얼굴에 뭔가 묻었나?”
“응~? 아니이~ 그냥, 오늘도 건강해 보인다~ 싶어서.”
“그거 고맙군.”
싱거운 대화를 주고 받으며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웃었다.
여우와 텐구. 종족이 다른 둘이 친하게 지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특히 텐구는 자존심이 높고 타 종족을 업신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처음 오소마츠가 이 ‘여우골’의 토지신으로 내려왔을 때도 카라마츠의 수하들은 전부 오소마츠를 경시했다.
오직 한 명, 텐구의 장(長) 카라마츠만이 오소마츠를 반겼다.
묘하게 닮은 점이 많은 둘이 친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자신의 일을 모두 마치면 이렇게 오소마츠의 신사에 찾아왔다.
오랜 벗과 이야기를 하는 것을 카라마츠는 즐겼다.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는 수하들에게는 털어놓을 수 없는 일들이나 개인적인 고민들을 맘 놓고 털어놓을 수 있는 소중한 친우(親友)였다.
오늘도 텐구 영지에서 일어난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 동생들(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의 일까지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창 이야기 도중에 거센 바람이 불더니 하늘에서 화차가 내려왔다.
오소마츠가 고개를 들고 화차를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화차를 향해 걸어갔다.
“쵸로씨~ 어서 와~~”
오소마츠가 화차에서 얼굴을 내민 쵸로마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소마츠의 얼굴을 본 순간, 쵸로마츠가 인상을 구기며 혀를 찼다.
쿵! 소리를 내며 화차가 신사 마당에 내려왔다.
쵸로마츠가 화차에서 뛰어내리자 화차는 다시 순식간에 하늘로 올라 저 멀리로 사라졌다.
온 몸에 백 개의 눈을 가진 도도메키 쵸로마츠는 온 몸을 감고 있는 붕대를 다시 정돈하면서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에게로 걸어왔다.
붕대를 다 감은 쵸로마츠가 푸른 기모노의 소매를 걷어 올리더니 험악한 얼굴로 오소마츠에게 걸어갔다.
쵸로마츠의 무시무시한 얼굴에 오소마츠가 두 손을 들고 식은땀을 흘리며 뒷걸음쳤다.
“이, 망할 신이!!!!”
“갸아~~!!!!”
쵸로마츠는 그대로 어디서 꺼냈는지 알 수 없는 흰 부채로 오소마츠의 머리를 냅다 강타했다.
비명을 지르며 오소마츠가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금새 오소마츠의 머리에 혹이 솟았다.
살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소마츠가 벌떡 일어나 쵸로마츠에게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무슨 짓이야?! 이 쵸로따르스키?!!!”
“하아?! 누가 쵸로따르스키냐?!!!”
열을 내며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둘을 보며 카라마츠가 한숨을 내쉰 후, 둘 사이에 들어갔다.
손을 뻗어 두 사람의 어깨를 밀어 떨어뜨려 놓은 카라마츠가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둘 다 진정해.”
“..하아~ 정말이지.. 이 망할 신놈아!! 대체 언제까지 내가 ‘이즈모’에 대리로 가야 하는 거야!!”
카라마츠의 만류에 큰 한숨을 내쉬며 화를 가라앉힌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노려보며 말했다.
팔짱을 끼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태도로 말하는 쵸로마츠를 보는 오소마츠의 이마에 힘줄이 새로 솟았다.
“별로 이즈모에서 하는 것도 없잖아! 상관 없잖아!”
“매번 다른 신들의 눈초리를 받는 내 입장이 좀 돼봐라!! 그리고 애초에 네 일이니까 니가 가!!”
“하?! 신에게 ‘니’라니!!”
아예 카라마츠를 사이에 두고 언성을 높이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본 카라마츠가 그 사이에서 머리를 짚었다.
‘이 둘은 대체 언제까지 이런 어린아이 같은 싸움을 반복하는 건지…’
카라마츠가 과장되게 어깨를 올렸다가 떨어뜨렸다. 지금 이 둘에겐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것이 뻔했다.
카라마츠는 조용히 그 사이에서 나와 사당에 앉았다. 이럴 때는 원 없이 싸우도록 놔두는 것이 오히려 빨리 끝났다.
턱을 괴고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는 카라마츠는 안중에도 없는지 쵸로마츠와 오소마츠의 언성은 서서히 높아져갔다.
“대국주가 얼마나 눈치를 주는 지 알아?! 그리고 이번엔 꼭 오라고 하셨어!!”
“또 뭐!!”
“이번 맞선!!!”
“하아?!”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황당하단 얼굴로 외쳤다.
카라마츠는 ‘맞선’이라는 단어에 반응해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내리고 떨리는 눈으로 쵸로마츠를 바라보았다.
떡 하니 턱을 벌리고 서 있는 오소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손을 허리에 올리고 말했다.
“이번에야 말로 거절하면 안 된다고. 신격 박탈할 수도 있다고 말하셨고.”
“..하아?”
“빨리 장가가서 아내와 함께 둘이서 토지를 다스리라는 대국주님의 명이야.”
“…그 망할 할아범.”
“대국주님을 뭐라 부르는 거야?! 이 망할 신!!”
오소마츠가 뿌루퉁하게 볼을 부풀리고 고개를 돌렸다.
오소마츠의 눈썹은 잔뜩 찌푸려진 채, 입은 대자로 나와있었다.
쵸로마츠는 툴툴거리는 오소마츠를 보며 안경을 올렸다.
“대체 뭐가 이쁘다고 이런 녀석에게 매번 맞선을 가져다 주시는 건지… 냐-님도 그렇고…”
“아, 레이카?”
“냐-님!!!! 오소마츠 형과는 전혀 다르게 고위급 신이니까!! 존칭을 써!!!”
“별로- 그렇게 이쁘지도 않았고~”
“뭐야?!!”
얼마 전에도 대국주에게서 맞선 자리가 내려왔던 것을 언급한 쵸로마츠가 잔뜩 얼굴을 구겼다.
냐-님은 가무(歌舞)를 담당하는 신으로 오소마츠보다 한 단계 위의 고위 신이었다.
쵸로마츠는 남 몰래 그런 냐-님을 좋아하고 있었고, 냐-님이 오소마츠의 맞선 상대라는 것을 알고 오소마츠가 맞선을 거절하기까지 만 일주일을 끙끙 앓았다.
오소마츠는 태연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쵸로마츠의 노성이 듣기 싫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린 오소마츠가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카라마츠와 눈이 마주쳤다.
“카라마츠?”
오소마츠의 부름에 카라마츠가 완전히 몸을 일으키고 “아아…” 하고 대답했다.
뭔가 석연치 않은 대답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했다.
황금색 귀를 쫑긋거리며 오소마츠가 의아한 얼굴로 카라마츠에게 “무슨 일 있어?” 하고 물었지만, 카라마츠는 고개를 젓고 작은 목소리로 “아니, 별일 아니다…” 하고 대답했다.
기운이 없는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 카라마츠에게 다가가려던 오소마츠를 쵸로마츠가 불러 세웠다.
“어이!!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에~~?!”
오소마츠가 눈썹을 늘어뜨리고 소리 높여 항의했다.
쵸로마츠의 미간에 더 깊은 주름이 자리잡았다.
다시 한바탕 말싸움을 하고 있는 둘을 내버려둔 채 카라마츠가 신사를 떠났다.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른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손을 흔들어 인사했지만, 카라마츠에게 그 인사를 받아줄 여유는 없었다.
3.
청산의 깊은 산속, 산 정상에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텐구의 영지.
카라마츠가 자신의 영지에 도착해 날개를 접자 기다렸다는 듯 수하들이 발을 빠르게 놀려 마중을 나왔다.
바로 카라마츠를 둘러싸고 오늘 처리해야 할 안건이며, 산의 어느 부분에 수상한 기운이 있었다느니, 여러 말을 늘어놓는 동안 카라마츠의 머리 속에는 오직 오소마츠로 가득 차 있었다.
‘맞선이라니.’
조금 전, 쵸로마츠와 오소마츠의 대화를 보아 ‘맞선’ 이야기 자체는 제법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았다.
오소마츠의 신사에 자주 놀러 가고, 오소마츠와 막역한 사이인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에게 ‘맞선’ 이야기가 그렇게 많이 들어왔다는 것을 몰랐다.
‘맞선’ 이라는 단어 자체도 오늘 처음 들은 터였다.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카라마츠를 졸졸 따라오는 수하들의 존재를 그제야 눈치챈 카라마츠가 손짓하자 수하들은 바로 카라마츠를 쫓던 발을 멈추었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말을 전한 후, 자신의 방에 들어선 카라마츠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오소마츠가 결혼…’
맞선이라는 단어가 주는 심상은 바로 ‘결혼’과 직결되었다.
오소마츠의 곁에 자신 이외의 누군가가 서 있고, 그 누군가와 오소마츠가 함께 행복하게 웃는 모습이 머리 속에 그려지자 마자 카라마츠는 이유 모를 고통이 가슴에 느껴졌다. 가슴께를 움켜쥔 카라마츠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직 누군지도 모를 오소마츠의 맞선상대가 너무나 증오스럽게 느껴졌다.
처음 겪는 부정적인 감정들에 카라마츠는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친한 친구의 결혼이라면 응당 축복해 주어야 당연한 것을, 왜 자신은 이리도 고통스러워 하면서 아직 얼굴도 알지 못하는 상대를 이리도 미워하는 건가.‘
당혹스러운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카라마츠가 주저 앉았다.
안타까운 한숨이 절로 카라마츠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맞선을 본다고 그것이 바로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이성이 침착하게 카라마츠를 타일렀다.
이성의 말을 듣고 납득하려 하면서도 금새 오소마츠가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미소를 지어주는 것을 떠올리면 저도 모르게 주먹이 꽉 쥐어졌다.
다다미 바닥에 털썩 누운 카라마츠가 팔을 들어 눈을 가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의 통증은 여전히 카라마츠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대체 나는 어쩌고 싶은 것인가…’
카라마츠는 항상 이성적이었다.
자신의 동족이 위험에 빠졌을 때도, 무리가 함께 어울려 살던 옛 터전이 쑥대밭이 되었을 때도 카라마츠는 항상 이성적으로 상황을 보고 가장 최선의 방법을 취해왔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카라마츠가 감정적이 되는 일은 극히 적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카라마츠는 항상 내면의 ‘이성(理性)’의 말을 들었다.
감정을 억누르고 합리적으로 행동했다. 모든 언동은 철저하게 심사숙고한 끝에 나온 결과였다.
그런 카라마츠가 지금은 ‘이성’의 말조차 무시한 채, 제대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없었다.
항상 손아귀에 잡히던 자신의 감정이 지금은 흐물흐물하게 녹아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제 맘대로 온 몸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미지근하고 끈적거리는 늪에 빠진 것처럼 전신이 무겁게 가라앉아 움직일 수 없었다.
지끈거리는 가슴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호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싫다…”
오소마츠가 결혼하는 것은, 싫다고 솔직하게 중얼거린 카라마츠가 날개로 제 몸을 가두고 눈을 감았다.
4.
이부자리에서 눈을 뜬 카라마츠가 이미 해가 뜬 것을 확인하고 서둘러 옷을 입었다.
곧 있으면 수하들이 오늘 처리할 서류를 한아름 안고 찾아오겠지만 지금의 카라마츠에겐 처리할 서류는 안중에도 없었다.
방을 나서자마자 검은 날개를 활짝 펼치고 푸른 하늘로 날아오른 카라마츠가 마을을 가로질러 여우산에 위치한 여우 신사로 향했다.
환한 햇살이 닿은 신사가 빛났다.
붉게 윤기를 내며 서 있는 붉은 토리이에 항상 앉아있던 오소마츠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카라마츠가 날개를 한번 더 크게 퍼덕여 신사에 내려앉았다.
“오? 카라마츠~ 오늘은 웬일로 이렇게 일찍 왔어?”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않고 묻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자, 어쩐 일로 예복을 갖춰 입은 오소마츠가 싱긋 웃고 있었다.
항상 입고 있던 민무늬의 붉은 기모노가 아닌 화려하게 여우의 수가 놓인 비단으로 만들어진 기모노를 입고 짙은 감색의 하오리까지 걸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다가왔다.
따각따각 오소마츠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나막신이 바닥에 깔려있는 넓적돌에 울렸다.
평소 어린아이 같은 모습만 보여주던 오소마츠의 예복 차림에 당황한 카라마츠가 침을 삼켰다.
천진난만한 소년과 같은 미소를 띠고 있는 오소마츠는 옷차림 때문인지 어딘가 요염해 보였다.
카라마츠보다 가는 몸의 선이 그대로 드러나 맵시를 뽐내는 그 자태에 카라마츠가 아랫배가 무거워졌다.
슬쩍 얼굴을 돌려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오소마츠의 시선을 피하며 카라마츠가 물었다.
“오소마츠, 무슨 일인가? 그렇게 예복까지 입고…”
“아~ 이거? 오늘 이즈모에 가야해서..”
오소마츠의 한 마디에 카라마츠가 홱 고개를 돌려 오소마츠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오소마츠는 귀를 쫑긋 거리며 카라마츠의 눈빛을 받아들이고 빙그레 웃었다.
여유가 넘치는 오소마츠의 태도에 카라마츠의 조바심은 더욱 깊이를 더했다.
손을 들어 오소마츠의 어깨를 감싼 카라마츠가 고해라도 하듯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왜? 항상 그랬던 것처럼 거절하면 되는 일 아닌가?”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쓴웃음을 지으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그치만- 신격 박탈한다고 하니까아~ 그럼 마을에 있을 수 없잖아..”
정론에 반박도 하지 못한 카라마츠가 미간을 더 찌푸리고 오소마츠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고개를 숙이고 입을 굳게 다문 카라마츠를 오소마츠가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게..”
“응?”
작게 중얼거리는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고개를 든 카라마츠가 신음하듯 내뱉은 말에 오소마츠는 잠시 대답을 망설이고 눈을 낮게 깔았다.
“..그렇게, 이 마을이 소중한가?”
“…”
“오소마츠.”
오소마츠의 무언에 카라마츠가 대답을 재촉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잔잔히 미소 지은 오소마츠가 겨우 그 입을 열었다.
“소중해. 한 번 잃었다가 다시 되찾은 거니까…”
“..에?”
“그러니까 이 마을은 내겐 무척 소중해.”
“…”
오소마츠가 하는 말을 카라마츠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번 잃었던 것?
여우골은 카라마츠가 그 터전을 잡고 오소마츠가 천상에서 내려올 때까지 한 번도 토지신을 가지지 못한 마을이었다.
이 마을이 처음 가지는 토지신인 오소마츠가 이 마을을 잃었던 기억이 있을 리 없다고 카라마츠는 확신했다.
다만 마을이 소중하다며 살며시 웃는 오소마츠의 미소가 너무나 아름답고 자애에 넘치고 있어서 카라마츠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쓸쓸한 얼굴을 하는 카라마츠의 머리에 손을 얹은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냥 한 번 얼굴 보고 오는 것 뿐이야~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후딱 다녀올게~~”
손을 흔들며 쵸로마츠와 함께 준비된 화차에 오른 오소마츠가 하늘 높이 날아 올랐다.
푸른 창공 높이 날아올라 빠른 속도로 카라마츠에게서 멀어져 가는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미소를 떠올리며 몸을 돌렸다.
그 아름답고 슬픈 미소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뇌 속에서 재생하며 카라마츠가 날개를 펼쳤다.
5.
이즈모에 도착한 오소마츠는 곧바로 쵸로마츠 몰래 천궁을 빠져 나왔다.
자신에게 맞선을 주선한 늙은 할아범의 속셈은 물 보듯 뻔한 것이었다.
설렁설렁 발걸음을 옮기며 오소마츠는 신들의 두령, 대국주의 집으로 향했다.
“정말이지. 네 놈은 어찌 얼굴 한 번 보기가 그리 힘들더냐?!”
호통을 치는 대국주의 앞에서 술잔을 든 오소마츠가 웃었다.
달콤한 향의 과실주를 마시며 오소마츠가 즐겁게 꼬리를 휘둘렀다.
커다란 방 안, 좌식 의자에 기대어 술을 들이키며 호탕하게 웃는 대국주와 마주 앉아 잔을 나누며 오소마츠가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할아범~. 맞선을 핑계로 대다니 너무하잖아~~”
오소마츠의 말에 단숨에 술잔에 담긴 술을 목으로 넘긴 대국주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무릎을 탁 쳤다.
쩌렁쩌렁한 대국주의 목소리가 온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울렸다.
“이 놈! 그렇게라도 안 하면 찾아오지도 않는 놈이 말은 잘 하는구나!!”
다른 신이었다면 이미 벌벌 떨며 무릎을 꿇고 빌고 있었을 터인 대국주의 호통 소리에도 오소마츠는 귀를 까딱할 뿐, 여전히 웃는 얼굴로 술잔에 술을 따르고 있었다.
어릴 적, 오소마츠를 거두어준 여우신은 그 뛰어난 신통력으로 ‘신’의 지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대국주와 영겁에 가까운 시간을 보낸 오랜 벗이었다.
아기 여우인 오소마츠가 수련을 하며 2번째 꼬리를 가지게 되었을 때, 여우신은 분에 넘치게도 대국주와 만남을 가질 때마다 오소마츠를 데리고 갔다.
앳된 얼굴과 천진난만한 성격, 그리고 여우신을 닮아 타고난 신통력에 대국주도 여우신 만큼이나 오소마츠를 사랑하고 아껴주었다.
여우신이 신선의 세계로 떠났을 때는 먼저 오소마츠의 신변을 책임질 것을 선언하며 오소마츠가 천호로서 홀로 생활할 수 있을 때까지 돌봐주었다.
그렇기에 신들의 두령, 신 중의 신, 대국주는 오소마츠에게 있어서는 그저 ‘아버지의 오랜 친구, 사람 좋은 할아범’ 정도로만 느껴졌다.
이번 맞선건도 결국 오소마츠의 얼굴이 보고 싶었던 대국주의 계략이라는 것을 오소마츠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수호하는 마을을 인질로 삼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이를 드러내고 무방비하게 웃는 오소마츠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린 대국주가 조용히 부드럽게 물었다.
“그리도 그 마을이 소중하더냐?”
이즈모에는 발도 들이지 않을 정도로… 쓸쓸히 오소마츠를 응시하며 대국주가 입 밖으로 내지 않은 말을 술과 함께 삼켰다.
힘겨운 인간으로서의 생을 끝내고, 여우신을 따라 뼈를 깎는 수련을 이겨내고 천호의 지위에 오른 오소마츠가 대국주는 그저 안쓰럽고 사랑스러웠다.
오랜 벗의 아들인 오소마츠는 대국주에게도 아들과도 다름없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귀여운 아이였다.
대국주의 모든 의도를 깨달은 오소마츠가 은은하게 미소를 흘리고 술잔을 기울였다.
“소중해… ‘그 아이’가 다시 내게 찾아준 마을이고…”
이미 몇 백년도 지난 옛 시절을 떠올리고 오소마츠가 부드럽게 웃었다.
‘제물’로 받쳐졌으면서 기도 죽지 않고 ‘신’인 오소마츠를 전혀 ‘신’으로서 대하지 않았던 당돌한 인간 꼬맹이.
20여년 정도 밖에 살지 않았던 새파랗게 젊은 애송이가 얼추 오소마츠의 고독을 이해하고 감싸주려고 했었던, 감히 오소마츠를 지켜주려고 했던 어리석은 아이.
카라마츠.
그 순진한 얼굴을 떠올린 오소마츠가 행복한 미소를 띠고 대국주를 바라보았다.
말 없이 오소마츠와 마주 보던 대국주가 술상에 턱을 괴고 물었다.
“아직도 그리 인간이 좋으냐? ‘그 아이’가 소중하더냐.”
대국주는 자애롭고 현명하게 마을을 다스렸는데도 불구하고, 비참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잊혀져 가고 있던 때를 떠올리며 물었다.
‘신’이라는 존재는 인간을 옳은 길로 이끌기도 하지만, 인간이 올바른 길을 벗어나면 벌을 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자신을 버리고 홀대했던 마을 사람들을 끝까지 지켜보며 결국엔 완전히 잊혀진 신이 되어 다시 천상에 돌아왔던 오소마츠.
사랑스러운 자신의 아이가 한낱 인간들에게 잊혀져 돌아왔는데 참을 수 있는 부모가 있을까.
그 파렴치한 마을 인간들 전부에게 천벌을 내리려고 했던 대국주를 말린 것은 오소마츠였다.
“…나는 인간일 때, 너무나 지독한 삶을 살았어. 그런 바닥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먼지만도 못한 나를, 아버지는 새 생명을 주고 분에 넘치는 애정을 쏟아주셨어. 아버지에게서, 그리고 할아범에게서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까 그 정도는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고…”
말을 흐린 오소마츠가 마른 입술을 핥았다.
아직 남아있는 인간이었던 시절의 기억.
매일이 춥고 배고팠고 괴로웠던 그 시절.
가축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았던 그 시절을 기억해낸 오소마츠가 고개를 올려 대국주를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내 수호를 받는 인간들은 그런 삶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 놈이 부처의 자비에 있어서는 나보다 낫구나..”
자애로운 오소마츠의 얼굴에 대국주가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였다.
이 세상에 존재한 순간부터 신이었던 대국주는 오소마츠의 그런 마음을 알 수는 없었다.
대국주에게는 오소마츠와 같은 인간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이 눈 앞의 작은 여우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힘든 기억을 안고도, 자신을 핍박했던 인간을 사랑하는 가련한 이 여우가 대국주는 너무나 귀여웠다.
빙긋- 대국주를 보며 웃은 오소마츠가 꼬리를 흔들었다.
“’그 아이’도.. 아직 잊혀지지 않았고.”
“벌써 몇 백년이 지났다고 생각하느냐.”
“원래 오래 사는 놈들이 잊는 것도 오래 걸리잖아?”
인간의 시간으로는 이미 너무나 오래 전에 일어난 일이건만, 오소마츠는 아직도 어제와 같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카라마츠의 목소리, 얼굴, 표정, 버릇, 행동.
오소마츠 자신에게 향해있던 어린 아이의 ‘연모’도.
아직도 생생한 기억 속의 카라마츠와 방금 전까지 대화를 나누었던 텐구 카라마츠의 얼굴이 나란히 오소마츠의 눈 앞에 어른거렸다.
‘카라마츠’의 영혼을 이어받은 텐구 카라마츠.
영혼이 같아서일까 텐구 카라마츠의 얼굴도, 행동도, 목소리도 전부 카라마츠와 너무나 닮아있었다.
오소마츠를 향한 무의식적인 ‘연정’까지도.
아직 카라마츠의 기억이 남아있는 오소마츠로서는 솔직히 텐구 카라마츠를 대하는 것이 어려웠다.
기억 속의 얼굴이 바로 눈 앞에 형태를 바꾸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어색했다.
그래도 형태가 어찌되었던 카라마츠가 자신의 곁에 있는 것이 기쁜 오소마츠였다.
이즈모에 떠나려는 자신을 붙잡고 싶어하던 고뇌에 빠진 카라마츠의 얼굴을 떠올리자 오소마츠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귀여운 녀석.
아직 자신의 마음도 잘 알지 못하면서, 오소마츠를 붙잡으려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그저 귀여웠다.
“언젠가, …”
두 눈을 지긋이 감고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듯 말을 꺼낸 대국주의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평온하게, 약간은 쓸쓸하게 미소를 지은 대국주가 말했다.
“네 마을이 사라지게 된다면, 그 때는 어찌할 생각이냐?”
“글쎄- 생각해 본 적 없어~”
꼬리가 살랑거리며 춤을 추었다. 영원에 가까운 삶이다.
오소마츠가 먼저 사라질지, 마을이 먼저 사라질지, 아니면 옛날처럼 잊혀질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오소마츠는 그저 지금만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었다. 오소마츠의 말에 빙긋 웃은 대국주가 말했다.
“그렇게 된다면, 그 때는 천상에 머물거라. 언제까지고 이 몸의 곁에 있으면 되느니라.”
아버지와 같은 부드러운 음성에 오소마츠가 기쁘게 웃으며 귀를 뒤로 젖혔다.
대국주의 말이 기쁘면서도 오소마츠는 아직 신사에 남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동생들을 떠올렸다.
그런 때가 온다면 동생들은 이미 사라져 버린 후 일지도 모른다. 외톨이는 싫었다.
“그 때가 된다면 나는… 받아들일래 할아범.”
오소마츠의 말에 대국주가 눈썹을 찌푸리며 이유를 물었다.
오소마츠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 때가 되면 난 살만큼 살았을 테니까~” 하고 말했다.
오소마츠의 눈에 비친 것이 누구인지 눈치챈 대국주가 물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윤회의 바퀴에 넣어주마. 네 곁에 있는 그 아이들도 함께.”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그 삶의 빛을 잃으면 향하는 곳은 천상이나 혹은 윤회의 바퀴에 들어갔다.
다시 이승에 내려가 새로운 생명으로서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오소마츠는 인간으로 삶을 마치고 윤회의 바퀴에 들어가 여우 요괴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천호가 된 후로는 ‘신’으로서 보통의 생명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 본디 ‘신’은 사라질 뿐, 그 생명이 다해 다시 윤회의 바퀴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대국주는 인간을 사랑하는 오소마츠가 다시 이승에 내려가 새 삶을 시작하기를 바랬다.
대국주의 말에 오소마츠가 기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괜찮지만, 그 녀석들은 놔둬~ 모처럼 얻은 장생의 삶인데.. 아깝잖아?”
카라마츠를 비롯한 오소마츠의 동생들은 인간으로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겨우 장생의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오소마츠는 동생들이 오래 살며 많은 것을 보고 느끼기를 원했다.
이미 오랜 시간을 존재해온 오소마츠는 더 이상 세상의 모든 것에 새로움을 느낄 수 없었지만, 동생들은 달랐다.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어린 눈에 비친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오소마츠는 알고 싶었다.
비록 자신이 곁에 없다고 해도 언제까지나 동생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랬다.
술잔에서 일렁이는 마지막 술을 입에 털어 넣은 오소마츠가 입맛을 다시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할아범~ 난 가볼게-“
“오냐, 어여 가버려라. 이 매정한 녀석.”
“에~ 그렇게 말하지 말고~ 또 올 테니까.”
“그 말 지키는 게 좋을 것이야. 또 맞선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으면-“
“네이네이~”
너울거리는 꼬리로 인사를 대신한 오소마츠가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며 오소마츠의 모습이 사라지자 대국주가 술잔을 기울이며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과연 그 녀석들이 네가 없는데도 장생을 선택할런지-“
6.
갑자기 사라진 것에 잔소리를 퍼부은 쵸로마츠와 함께 오소마츠가 저녁시간에 맞추어 신사에 돌아왔다.
인간 마을에 놀러 갔던 동생들이 쪼르르 달려와 오소마츠에게 안겼다.
한명 한명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오소마츠가 다녀왔다며 웃었다.
자신을 맞이해주는 동생들 뒤편에 쭈뼛쭈뼛 눈썹을 찌푸리고 서 있는 카라마츠를 오소마츠가 불렀다.
맞선은 어땠냐고 물으며 다가온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가 웃으며 코 밑을 문질렀다.
“거절하고 왔어!”
“..그런가.”
“응! 다녀왔어, 카라마츠!”
“아아, 어서 와.”
환히 웃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의 눈이 호를 그리며 웃었다.
*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사랑을 나누어줄 수 있다고 하죠. 인간일 때는 받지 못했던 사랑과 보살핌을 여우신과 대국주에게 잔뜩 받은 오소마츠이기에 '신'으로서 인간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ㅎ.
* 텐구 카라마츠는 갈 길이 멀었네요ㅎㅎ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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