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이에요.. 거의 2주만...허허허...
* 변명을 좀 하자면 저번주와 이번주 모두 야근과 주말 출근으로 바빴습니다... 야근은 무려 11시, 12시까지 하느라 집에 돌아오면 씻고 폭풍잠의 반복...ㅠㅠ
* 내일도 열심히 써서 한 편더 올릴 예정입니다.. 힘낼게요..
* 소설에 나오는 신과 요괴에 관한 부분은 전부 제 오리지날 설정입니다. 일본 신화는 검색을 통해 조금 알아본 정도입니다.
*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교제를 시작한 시점의 이야기 입니다. 시리즈라 각 편의 시간대가 서로 다릅니다ㅎ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꺼져, 개똥마츠.”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험악하게 목소리를 깔고 협박하는 이치마츠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졌다.
쯧! 하고 소리가 울릴 정도로 혀를 찬 이치마츠가 위협적으로 꼬리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자기 영역에 침범을 허락하지 않는 날카로운 태도에 식은땀이 삐질 흘러나왔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그렇다고 물러날 수 없는 처지에 난감했다.
그대로 신사 입구에서 어정쩡하니 머무른 지 벌써 20분은 지났다.
“아, 정말- 이치마츠 형, 빨리 와보라니까아~!!”
“이치마츠 형아~!!”
신사 마당에 서 있던 동생들의 부름에 이치마츠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흘겨보곤 몸을 돌려 동생들에게로 다가갔다.
겨우 이치마츠의 무시무시한 눈빛에서 풀려나 한숨을 내쉬며 몸에 두르고 있던 긴장을 풀었다.
신사 마당 한 가운데에 모인 동생들은 3척(약 91cm) 정도의 높이로 쌓인 낙옆산을 둘러싸고 뭔가를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동생들의 눈길을 한 몸에 받으며 낙엽 속에서 뭔가를 꺼낸 오소마츠가 나를 발견하고 손을 들어 크게 흔들었다.
황금빛 귀와 꼬리가 기분 좋게 흔들렸다.
“카라마츠~!!”
오소마츠와 마찬가지로 손을 들어 답해주자 오소마츠가 활짝 웃었다.
마치 태양처럼 밝게 빛나는 천진난만한 웃음에 얼굴 가득 미소가 피어났다.
신사 한 켠에 자리를 잡고 대체 오소마츠와 동생들이 뭘 하고 있는지 가만히 관찰했다.
낙엽을 파내고 있던 오소마츠가 뭔가를 생각해 냈는지, 황금색 귀가 쫑긋 하고 움직였다.
고개를 든 오소마츠가 옆에 서 있던 쵸로마츠를 보며 입을 열었다.
“쵸로~, ‘이거’”
“아, 응.”
오소마츠가 내민 검고 작은 뭉치를 받아 든 쵸로마츠가 망설임 없이 내게로 걸어왔다.
“자, 카라마츠.”
“오오.. 이게 뭔가?”
“군고구마.”
“군고구마?”
새까맣게 탄 검은 물체에 고개를 갸웃하며 받아 들었다.
뜨끈뜨끈하니 열기를 내뿜고 있는 검은 물체에게서 확 퍼지는 탄내 가운데 묘하게 달콤한 냄새가 묻어 나왔다.
한 손으로 쥐어질 정도로 작고 검은 물체는 딱딱하지도 않고 약간 물렁거렸다.
이 검은 물체를 어떻게 하라는 건지 쵸로마츠에게 물으려고 고개를 들자, 저 멀리서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엄~~청 맛있어, 카라마츠!!”
내 손에 들린 것과 같은 검은 물체를 든 오소마츠가 씩- 웃었다.
곁에 쪼그려 앉은 동생들도 모두 하나같이 검은 물체를 손에 들고 있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오소마츠가 검은 물체의 껍질을 벗겨냈다.
검게 탄 껍질이 벗겨지자 노란 속이 드러났다.
혀로 입술을 핥고 입맛을 다신 오소마츠가 크게 노란 속을 베어 물었다.
“으이구, 저 바보가.”
나처럼 오소마츠를 바라보고 있던 쵸로마츠가 작게 신음하더니 신사 구석에 놓인 작은 우물로 다가가 물을 떴다.
쵸로마츠가 물을 뜨자마자 오소마츠가 얼굴을 찡그리고 입을 열어 하후하후- 하고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으아~~ 뜨거~~~!”
“자, 여기 찬물. 그렇게 크게 베어 먹으니까 데이지!”
잔소리를 덧붙이며 오소마츠에게 다가간 쵸로마츠가 방금 전 막 뜬 우물물을 건넸다.
벌컥벌컥 물을 들이킨 오소마츠가 신음하며 작은 혀를 내밀었다.
“혀 데어어~~~”
“하여간에. 조심해서 먹어, 오소마츠 형.”
“웅~~”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에게 장난스럽게 웃어 보이곤 다시 먹기에 열중했다.
동생들과 얼굴을 맞대고 모여 뜨거워 입을 열었다 닫으면서도 맛있게 먹는 오소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피식 웃고는 다시 내 곁으로 다가왔다.
‘신’과 그 보좌라는 상하관계와 대조적으로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자아내는 분위기는 지극히 친근했다.
오소마츠가 사고를 치기도 전에 알아차리고 오소마츠를 챙겨주는 쵸로마츠의 모습은 마치 어린 자식을 보는 부모와도 같았다.
오소마츠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쵸로마츠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한두 해 함께 한 정도로는 형성될 수 없는 그런 편안한 분위기가 둘 사이에서는 흐르고 있었다.
오소마츠가 처음 이 마을에 토지신으로 내려왔을 때도,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곁에 있었다.
분명 내가 오소마츠를 알아온 세월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 동안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곁에 있었을 터였다.
“뭘 그리 생각해?”
“아! 아니… 아무것도.”
진득하게 나를 내려다보며 묻는 쵸로마츠의 목소리에 고개를 휘저으며 대답했다.
질투 같은 치졸한 것은 대장부가 할 것이 아니었다.
살며시 고개를 들었던 불쾌한 생각을 뽑아내 날려버리고 쵸로마츠에게 미소 지었다.
“이치마츠 말이야..”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와 동생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망설이듯 입을 열었다.
항상 제 할말은 반드시 하고 마는 쵸로마츠 답지 않게 말 끝을 흐렸다.
고개를 돌려 쵸로마츠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얼굴로 먹는 일에 집중해있는 오소마츠와 동생들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시야 가득 담겼다.
“혼란스러운 것 같아서..”
“…? 뭐가 말인가?”
“너랑 오소마츠 형이 이제 와서 교제한다는 게.”
“..엣?!”
쵸로마츠가 천천히 내게로 눈을 돌렸다. 푹- 한숨을 내쉬더니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쵸로마츠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당분간 이치마츠가 괴롭혀도 참아.”
“에, 엩?!”
내 황당한 외침에 쵸로마츠가 내 눈을 외면하고 고개를 돌렸다.
오늘따라 묘하게 시비가 길어진다 싶었던 이유가 그건가.
이치마츠는 쥬시마츠나 토도마츠와 다르게 오소마츠에게 처음 발견되었고, 오소마츠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했으니, 나는 눈엣가시로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젠 그보다 더 심해진다니.
대체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몰려오는 불안에 등이 오싹했다.
음침하게 가라앉는 기분을 억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쵸로마츠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쵸로마츠는 언제 오소마츠와 처음 만났나?”
“처음…?”
“아아.”
“어, 그러니까…”
쵸로마츠는 고개를 기울이고 눈썹을 살짝 찌푸린 채, 기억을 더듬었다.
잠깐의 침묵 끝에 쵸로마츠가 입을 열었다.
2.
나랑 오소마츠 형이 처음 만난 건, 오소마츠 형이 이 마을에 토지신으로 내려오기 한 150년 전 정도야.
보통 요괴들 중에 자기가 어떻게 생을 시작했는지 모르는 녀석들이 있잖아.
나도 그런 부류였어. 인간이었다가 어느 순간 요괴가 되어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은 전부 사라지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깊은 숲 속에 혼자 서 있더라고.
그 때 내가 알 수 있던 건 ‘쵸로마츠’라는 내 이름과 내가 ‘도도메키’라는 요괴라는 것 뿐이었어.
아무튼 그렇게 홀로 태어나서 숲 속에서 지내다가 내가 머무르고 있는 산 속을 지나는 인간들을 놀래 주기 시작했어.
처음엔 철 없는 장난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인간들이 도망가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짐을 던지고 도망가더라고.
그래서 그 후로는 자주 산길을 지나는 인간들에게 겁을 주고, 재물을 빼앗았어.
가끔 인간 마을에 내려가서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그렇게 100년 정도를 살고 나니, 나는 완전히 자만에 빠져서 그만 내가 속해있는 토지신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어.
내가 머무르고 있는 산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제법 큰 영지를 가진 영주가 있었는데, 그 집의 가보를 내가 훔쳤거든.
근데 알고 보니 그 영주의 가문이 대대로 토지신을 모시는 가문이더라고.
가보도 토지신에게 하사 받은 거였고. 안 그래도 인간들에게 해를 끼치는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던 토지신은 노발대발해서 바로 나를 뒤쫓아왔고, 나를 죽이려고 했어.
나도 필사적으로 맞서 싸웠지만, 요괴와 신이 상대가 될 리 없잖아?
이 오른쪽 눈도 그때 다친 거야.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어서 이제 정말로 죽겠구나 싶었는데, 그 때 오소마츠 형이 나타났어.
나와 토지신 사이에 껴들어서 나를 보호하며 토지신을 가로막고는 열심히 나를 변호하더라고.
머리 끝까지 화가 난 토지신도 오소마츠 형에 말에 납득한 건지 내게 다시는 그의 토지에 발을 들이지 말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갔어.
그 때는 나도 대체 무슨 상황인건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몰랐지.
완전히 멍청한 얼굴로 땅에 주저 앉아 있는 나를 오소마츠 형이 일으키고 신통력으로 상처들을 모두 치료해 줬어.
아, 이 눈?
이 눈은 토지신에게 완전히 도려져서 아무리 오소마츠 형이라도 완전히 치료하는 건 무리였다나.
그 토지신이 오소마츠 형보다 격이 높았거든.
그렇게 토지신에게 받은 상처도 순식간에 나은 나한테 오소마츠 형이 말하더라고.
“나랑 같이 가자.”
한낱 요괴인 내가 어떻게 ‘신’의 말을 거절할 수 있겠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지. 오소마츠 형은 그대로 내 손을 잡고 천상으로 올라갔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땅에서 발이 떨어지고, 공중에 몸이 붕- 뜨는데 기분 참 이상하더라. 무섭기도 했고.
오소마츠 형 집은 천상에서는 그렇게 큰 집은 아니었어.
뭐, 오소마츠 형의 ‘신격’이 그렇게 높은 게 아니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그래도 ‘대국주’의 총애를 받는 신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는 만큼, 신격이 낮다고 업신여겨지는 일은 없었어.
오소마츠 형 집에서 머물면서 조금 놀랐어. 저 망할 신을 딱 봐도 무지막지하게 게을러 보이잖아?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제 집은 항상 깨끗하게 청소하고 지내는데다, 매일 3끼 식사를 제 손으로 만들어 먹더라.
보통 ‘신’은 식사를 하지 않잖아?
밥을 먹는다는 거에 한 번 놀라고, 그 많은 반찬을 전부 자기가 직접 만드는 거에 두 번 놀랐어.
내가 천상에서 오소마츠 형 집에 머물며 한 일은 지금하고 비슷해.
대국주가 가끔 일거리를 던져주면 오소마츠 형이 그 일을 할 때 옆에서 보조해주는 역할이었어.
근데 지 집은 깨끗하게 청소하면서 정작 자기가 일을 하는 방은 서류와 음식물 찌꺼기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니까!!
드러워서, 정말. 게다가 일처리도 엄~청 설렁설렁 대충대충 하는데, 그 재수없는 귀를 확- 잡아다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싶었다고, 제대로 좀 일하라고.
그래도 그때는 아직 오소마츠 형이랑 같이 지낸지 얼마 되지 않았고, 토지신에게 죽임 당할 뻔한 기억 때문에 ‘신’이란 존재가 무서웠어.
그냥 내 속만 타 들어 가는 거지.
그렇게 불평 불만을 참고만 있다가 기어이 터진 사건이 있었어.
그 날도 잔뜩 어질러진 오소마츠 형의 방을 청소하는데 서류 사이에서 춘화(春畵) 한 장이 나온 거야.
당연히 엄~~청 당황했지.
대체 이게 왜 서류 사이에 끼어져 있는지도 몰랐고, ‘신’이 머무르고 사용하는 방 안에서 나왔다는게 믿겨지지 않아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거 백이면 백, 저 망할 신 거였어.
만물의 이치에 통달한 녀석이 대체 왜 그런 걸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응?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그게 하필이면 그 때, 정말 절묘하게 오소마츠 형이 돌아온 거야.
오소마츠 형이 잠깐 집을 비웠을 때, 방을 치우고 있었거든.
오소마츠 형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내가 춘화를 들고 있는 걸 보더니 정말 밉상으로 웃으면서 말했어.
“자리 비켜줄까? 딸딸마츠.”
완~전히 놀려먹을 태도였어, 그건.
거기에 제대로 빡쳐서 무지 대들었지.
그때 내가 대체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 안 나.
정말 엄청 열 받아서 있는 말 없는 말 다 해댔다는 것만 기억나지.
그렇게 퍼붓고 나서 정신이 드니까 진짜 체온이 싹 내려가더라.
내가 대체 지금 ‘신’에게 뭐라고 한 건지, 이대로 죽임 당해도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
식은땀이 줄줄 나더라. 고위급은 아니어도 ‘요괴’인 내가 손도 못 댈 정도로 높은 게 ‘신’이잖아?
게다가 대국주의 총애를 받는 ‘신’.
이대로 나는 죽는구나 하고 얼어버린 나를 보면서 오소마츠 형은 배까지 잡고 바닥을 구르며 쳐 웃더라?
아주 그냥 바닥에 쌓인 서류 위를 데굴데굴 굴러 댕기면서 한참을 웃더니, 일어나서 그러더라고.
“앞으로도 그렇게만 해. ‘신’이라고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그리고 호칭도 ‘오소마츠 형’으로 좋으니까. 편하게 불러~ 쵸로씌~~”
내가 ‘신’에게 망언을 했는데도 그런 태도니까 당연히 나는 완전히 벙쪄서 멍청히 서 있었지.
근데 또 그 앞에서 손을 흔들면서 개소리를 지껄이더라고.
순간 치솟는 짜증에 머리에 한 방 갈겨주고 나서야 좀 진정되더라.
그래서 그 때 이후로는 ‘오소마츠 형’이라고 부르면서 지냈어.
오소마츠 형이 다른 ‘신’들과는 다르다는 걸 계속 봐 와서 알고 있었고, 딱히 오소마츠 형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형’이라는 호칭은 나도 제법 마음에 들었어.
그렇게 같이 지낸 세월이 벌써 300년 정도 된 것 같네.
3.
이야기를 마친 쵸로마츠가 부드러운 눈빛으로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분명 나와 그 색은 달라고 그 눈빛 속에는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짧지 않은 세월을 오소마츠와 쵸로마츠, 두 사람과 함께 보내며 알게 된 것이 있다.
두 사람은 나와 만나기 전부터 함께 지내왔으며 서로를 ‘가족’으로 여기며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깊이 깨닫게 되었다.
매일 싸우고,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에게 잔소리를 퍼부어도 두 사람 사이에서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성과 같은 유대가 있었다.
오랜 세월, 시간과 정성으로 세워진 그 성은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거대한 벽이 되어 나를 가로막았다.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쌓아온 ‘시간’의 벽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넘을 수 없었다.
오소마츠를 바라보며 자기 자신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잔잔한 미소를 피우고 있는 쵸로마츠의 모습에 쓰게 웃으며 눈을 돌렸다.
속 좁고 어리석은 못난 나는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가족’으로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쵸로마츠에게 질투해 버리고 만다.
쵸로마츠도 소중한 나의 친우이건만.
자신의 치졸함에 옅게 한숨을 내쉬자, 요란한 발소리를 울리며 오소마츠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해~?”
사랑스럽게 웃으며 다가온 오소마츠의 꼬리가 기분 좋게 좌우로 살랑거리고 있었다.
우리 앞에 멈춰 선 오소마츠에게 쵸로마츠가 대답했다.
“나랑 오소마츠 형이 처음 만났던 이야기.”
“그 이야기는 새삼 왜?”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슥 나를 바라보았다.
쵸로마츠가 보내는 무언의 지시에 오소마츠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사이가 좋아서 문득 궁금해졌다.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후~응. 뭐, 나랑 쵸로가 사이 좋은 거야, 천상에서도 소문날 정도로 유명하니까!! 쵸로는 내 ‘반려(伴侶)’이기도 하고!”
“정말이지. 그런 말을 잘도 맨정신으로 한다니까. 오소마츠 형은.”
“왜에~! 뭐가~~”
씩- 장난스럽게 웃는 오소마츠의 곁에서 쵸로마츠가 부끄러운지 겸연쩍게 미소 지었다.
두 사람 사이의 자연스러운 분위기에 가슴을 찌르던 고통은 더 커져 내 마음을 옭아맸다.
그 어떤 노력을 한다고 해도 내가 태어난 시기까지 고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내가 아무리 바래도 쵸로마츠 보다 먼저 오소마츠를 만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함께해온 ‘세월’은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무겁게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카라마츠? 왜 그래?”
오소마츠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걱정이 역력히 묻어 나오는 낯빛에 찡그리고 있던 눈썹이 누그러졌다.
피식 새어 나오는 숨을 내쉬며 오소마츠의 머리를 살며시 어루만졌다.
머리를 쓰다듬는 내 손길을 따라서 떨리는 귀와 꼬리가 사랑스러웠다.
“카라마츠?”
부드러운 눈빛으로 오소마츠가 나를 불렀다.
여전히 걱정되는 얼굴로 나를 응시하는 오소마츠에게 웃어 보인 후, 접어두었던 날개를 펼쳤다.
“이제 돌아가 봐야 될 것 같다.”
“어? 벌써?”
“…”
귀와 꼬리를 늘어뜨리고 서운함을 감추지 않으며 묻는 오소마츠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한 후, 쵸로마츠에게 시선을 옮겼다.
고요히 내 시선을 마주한 쵸로마츠가 짧게 “잘 가.” 하고 인사를 건넸다.
쓴웃음을 감추고 고개를 끄덕인 후, 아쉬워하는 오소마츠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고 크게 날개를 퍼덕였다.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몸이 공중에 떴다.
하늘에 올라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배웅하는 오소마츠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여우산의 맞은편, 청산으로 향하는 날갯짓이 오늘 따라 무거웠다.
4.
정말로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다.
대국주 할아범의 집에 놀러 갔다가 좋은 술을 가져오겠다고 자리를 비운 할아범의 거울을 본 것은. 할아범의 보물 중 하나인 그 작은 손거울은 지상의 인간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염라대왕이 가지고 있는 거울과 한 쌍인 그 작은 거울에는 어둑할 정도로 깊은 산 속이 비치고 있었다.
카라마츠와 헤어진 이후, 지상은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고 신경도 쓰지 않았던 나는 그 날도 아무 생각 없이 거울에서 시선을 돌렸다.
카라마츠가 없는 인간 세상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빛을 잃은 등과 같았다.
이리저리 시선을 돌려 커다란 방 안 곳곳을 훑어보다가 거울을 시쳐 지나가는 시야 속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순간 내가 잘못 본 것인가 놀라 거울로 시선을 돌렸다.
깊은 산 속, 기억에 남아있는 카라마츠의 얼굴이 거울에 비치고 있었다.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사고가 제대로 이루어지기도 전에 나는 거울 속으로 몸을 던졌다.
거울을 통해 지상으로 내려가자마자 울창한 나무들 위로 떠올랐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거울에 비친 숲 속이 어디인지 필사적으로 찾았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카라마츠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희미하게 타 들어가던 희망은 사라져가고 안타까움과 슬픔이 내 몸을 지배했다.
주먹을 꽉 쥐고 내가 잘못 본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천상으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내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나무들 사이에서 잔뜩 성난 호통이 들려왔다.
“네 놈이 그런 짓을 하고도 내게서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더냐!!!”
쩌렁쩌렁한 ‘신’의 외침이 온 산을 울렸다.
산짐승도 산의 주인도 두려움에 떨면서 몸을 움츠리는 것이 보였다.
산의 정기는 찌릿찌릿하게 날이 선 공기처럼 주변 만물들을 긴장시켰다.
혹시 하는 마음에 호통이 들려오는 곳으로 가까이 가자 거울에서 보았던 카라마츠의 얼굴이 들어왔다.
닮았지만 똑같지는 않은 비슷한 얼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저것은 카라마츠가 아니라고.
카라마츠와 헤어진 이후로, 이미 인간 세상에서는 100년도 넘는 오랜 시간이 지나 있었다.
나약하고 평범한 인간인 카라마츠가 지금까지 살아있을 리 없다.
게다가 살아 있다 해도 할아범처럼 쭈글쭈글하게 주름이 가득한 얼굴이겠지.
씁쓸하게 퍼지는 허무함에 거울에 비쳤던 얼굴을 다시 보았다.
카라마츠는 아니지만 본 기억이 있는 얼굴이었다.
오래 걸리지 않아 저 얼굴이 누구인지 완전히 기억해낸 내가 재빨리 그 녀석의 앞으로 뛰어들어갔다.
이 땅의 토지신으로 보이는 ‘신’은 잔뜩 얼굴을 구기고 갑자기 사이에 달려든 나를 응시했다.
높게 들어 천벌을 내리려 했던 손을 천천히 내려 나를 가리키며 위압적으로 말했다.
“너는 누구냐. 감히 ‘신’의 엄벌을 받고 싶은 게냐? 당장 비켜라.”
“에이~, 같은 ‘신’끼리 친하게 지내자고~ 형씨~”
“’신’? 네 놈이 ‘신’이라고?”
“아직 짐승의 모습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래 보여도 토지신도 지낸 적 있다고?”
“그래서? 내 앞을 가로막은 이유를 말해보실까? 짐승신.”
‘짐승신’이라니. 어떻게 보나 깔보는 태도로 거만하게 나를 내려다보는 토지신에게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이 무슨 잘못은 한 지는 모르겠는데, 조금 진정해~? 산이며, 이 토지며, 정기가 말이 아니라고?”
“네 놈과는 상관 없는 일.”
콧방귀를 끼며 대답한 토지신은 다시 손을 들며 내게 “비켜라.” 하고 명령조로 말했다.
이야~ 저렇게 명령조로 들은 거 오랜만이네~.
온전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토지신은 분명 나보다 고위급의 신이었다.
아무리 내가 ‘신’의 위치에 있다고 해도, 저 토지신의 힘에는 당할 수 없다.
‘급’의 차이를 절실하게 느끼며 입꼬리를 올렸다.
보통 ‘신’이라면 여기서 꼬리를 말고 도망치겠지만, 내게는 믿을 만한 빵빵한 뒤가 있단 말이지-.
“천벌대신에, 이 녀석을 내가 데려가면 안 될까?”
“뭐라?”
“내 곁에서 내 일을 보조할 조수가 필요했던 참이거든. 그러니까 이 녀석 내가 데려갈게.”
토지신의 눈썹이 거나하게 위로 솟았다.
마음에 안 들겠지.
제 손으로 직접 벌을 주려고 했으니.
‘신’이라는 존재는 왜 이리도 자존심이 높은지 절로 나오려는 한숨을 참아내고 눈을 가늘게 떴다.
“대국주님께 그렇게 말해 놓을 테니까.”
“!!”
“안 그래도 요즘 보좌를 좀 구해라~ 하고 잔소리가 심하시거든.”
웃으며 일부러 내 꼬리와 귀를 크게 흔들었다.
천상에서도 유명한 내 소문은 분명 지상까지 퍼져 있을 터였다.
신들이 모두 모이는 ‘신들의 연회’에서 특별히 나를 소개한 할아범 덕분에 내 얼굴을 몰라도 대국주가 아끼는 여우신이 있다는 것은 ‘신’들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토지신은 내가 ‘그’ 여우신이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쯧!” 하고 혀를 차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웃는 면상으로 받아 쳐주자 토지신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알겠다. 데려가도 좋다. 단, 두 번 다시 그 망할 것이 내 땅을 밟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제 할말만 남기도 토지신은 바람을 일으켜 사라졌다.
할아범 덕분에 위기를 모면해 속으로 감사 인사를 보내며 줄곧 내 뒤쪽에서 주저앉아 있는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필사적으로 토지신을 피해 숲 속을 달리느라 엉망이 된 녹색 기모노와 팔과 다리에 감싸고 있는 붕대는 붉은 피가 묻어나 있었다.
무엇보다 오른눈이 완전히 도려내어져 검붉은 핏물이 안구를 잃은 눈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꼴이 말이 아니구나-.
한탄하며 손을 뻗었다.
녀석은 몸을 움찔거리며 내 손을 피하며 뒷걸음쳤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녀석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아. 상처, 치료해줄게.”
슬쩍 고개를 끄덕인 녀석의 눈에는 여전히 공포가 서려있었다.
아무리 죄를 지었다곤 해도 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을 필요는 없잖아.
한탄하며 산의 정기를 모아 온 몸의 상처를 치료했다.
하지만 오른쪽 눈만은 나보다 고위신이 직접 도려낸 상처로 출혈은 막아낼 수 있어도 이미 잃은 눈을 되찾는 것은 할 수 없었다.
내가 입고 있는 기모노의 소매를 찢어 공허하게 비어버린 오른쪽 눈을 감쌌다.
안구가 없는 감각이 이상하고 어색한지 녀석은 눈썹을 찌푸리고 말 없이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나랑 같이 가자.”
머뭇거리며 내가 내민 손을 붙잡은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 녀석을 데리고 천상으로 돌아오니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할아범의 잔소리였다.
군고구마를 손에 들고 기쁘게 웃으며 맛있게 먹는 녀석들을 보며 절로 미소가 나왔다.
이치마츠는 말 없이 군고구마를 두 손으로 꼭 잡고 한 입, 한 입 베어먹고 있었다.
무표정이었지만, 묘하게 풀어진 얼굴과 기쁘게 흔들리는 꼬리를 보아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서로 웃으며 이야기하고 호들갑 떨며 고구마를 먹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였던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시끄러워진 주변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녀석들은 한편으로 밀어두고 고개를 돌려 함께 대화하고 있는 쵸로마츠와 카라마츠쪽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쵸로마츠가 보기 드문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든 행동으로 옮기는 나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않고 바로 쵸로마츠 쪽으로 다가갔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해~?”
다가가 묻자 쵸로마츠가 우리가 처음 만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는 내 물음에, 궁금해져서 물어봤다고 대답하는 카라마츠의 얼굴이 어두웠다.
쓴웃음을 지은 채, 나와 쵸로마츠를 바라보는 카라마츠를 보니 또 뭔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내가 풀이 죽어있는 이유를 물어보기도 전에 카라마츠는 날개를 피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저 멀리 멀어져 가는 카라마츠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소마츠 형은 말이야..”
“응?”
카라마츠가 사라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나에게 다가온 쵸로마츠가 입을 열었다.
“왜 우리들을 곁에 두는 거야?”
“응? 응?”
대체 뭘 물어보는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반응에 눈썹을 찌푸린 쵸로마츠가 고개를 돌려 아직도 신사 마당에서 군고구마에 열중해 있는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요괴잖아. ‘신’인 오소마츠 형이 왜 우리랑 같이 지내는 건가, 싶어서.”
별걸 다 묻는다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내 웃음에 쵸로마츠의 미간에 패인 주름이 더 짙어졌다.
그 얼굴이 웃겨 큭큭 웃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인연(因緣)’이라는 건 말이야-“
“아? 인연?”
쵸로마츠는 뜬금없는 내 말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나를 쳐다보았다.
멍청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는 쵸로마츠에게 미소 지은 후, 신사 마당을 바라보며 말했다.
“’인연’이라는 건, ‘신’이라도 손 댈 수 없는 영역에 있는 거야. 누가 누굴 만나고, 누구와 이어지고, 누구와 헤어질 지, ‘신’인 우리조차 모든 걸 파악할 수 없어.”
어릴 적, 인간이었던 내가 인간으로서의 삶을 마치고 여우요괴가 되었을 때, 나를 거두어준 요괴신 아버지가 한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부드러운 음성으로 갓 요괴가 되어 혼란스러운 나를 어루만져주며 “이것도 다 인연이란다. 아가-“ 하고 속삭여 주셨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옆에 서 있는 쵸로마츠를 보았다.
“우리는 인연을 막거나 거스를 수 없어. ‘신’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인연이 향하는 그 앞길을 평탄하게 만들어주거나, 인연의 시기를 앞당기거나 늦추는 정도야.”
“…”
조용히 입을 다물고 내 말을 듣고 있는 쵸로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인간 시절, 그 누구에게도 받을 수 없었던 애정을 넘치도록 부어준 여우신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그 날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너무나 억울하고 슬퍼서 밤낮을 쉬지 않고 울던 나를 달래주었던 것은 대국주 할아범이었다.
왜 이렇게 빨리 돌아가셔야 하냐고, 원망하고 슬퍼하고 운명이란 것을 저주하던 나를 달래며, 할아범은 슬프게 웃었다.
그것이 ‘인연’이라고. 또 새로운 ‘인연’이 분명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나를 달래주었다.
대국주 할아범의 말대로 나는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
당돌하고 무례하고 사랑스러운 카라마츠를 만나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끊어졌다고 생각한 인연은 다시 나를 이 녀석들과 만나게 해 주었다.
“그러니까, 나는 너희가 내 곁에 있어서 행복하다고?”
“무, 무, 무무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 말에 쵸로마츠의 얼굴이 순식간에 벌겋게 익었다.
가을 하늘에 흩날리는 빨간 단풍처럼 탐스럽게 익은 얼굴을 소매로 숨기고 말까지 더듬으며 화를 내는 쵸로마츠의 모습에 결국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카라마츠의 파편으로만 생각했던 녀석이었는데.
함께 지내는 동안, 어느새 나는 쵸로마츠에게 ‘가족애’를 가지게 되었다.
카라마츠와는 다르지만, 나를 ‘형’이라 불러주며 정말로 친형제처럼 대해주는 쵸로마츠는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굳이 말하지 않는 부분까지도 눈치채고 이해해주는 기특한 녀석, 내 반신(半身), 나의 반려(伴侶).
그리고 쵸로마츠에서 시작된 인연의 끈은 카라마츠와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까지 엮어서 내 앞으로 가져다 주었다.
카라마츠를 다시 만나게 해 주었다. 오랜 시간, 혼자였던 내게 ‘가족’을 만들어 주었다.
인연(因緣)이라는 녀석에게, 마음 깊이 차오르는 감사를 읊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5.
침실에 들어가 미리 깔려 있는 이불에 털썩 주저앉았다.
도망치듯 신사를 나와 돌아온 것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 이상 그곳에 있다가는 이 어두운 마음을 그대로 드러낼 것 같아 두려웠다.
오소마츠를 향한 내 마음을 자각하고 난 이후로 계속 신경 쓰였던 오소마츠와 쵸로마츠의 관계.
내 의심이 창피할 정도로 둘의 관계는 ‘가족’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순수하게 ‘형제’로서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순백한 관계.
그런데도 나는 이렇게나 쵸로마츠를…
딱히 의심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쵸로마츠도 오소마츠 못지 않게 소중한 친우다.
하지만 뭔가 가슴 깊은 곳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쵸로마츠는 나보다 더 먼저 오소마츠의 심중을 눈치채는 일이 많다.
텐구 무리를 이끌기 위해 청산에 머물고 있는 나보다 더 오소마츠와 함께 있는 시간도 길다.
오소마츠를 알고 지냈던 세월도 길다.
분명 내가 모르는 오소마츠를, 쵸로마츠는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쵸로마츠를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신뢰의 눈빛.
알고 싶다.
오소마츠의 모든 것을.
할 수만 있다면 오소마츠가 태어난 시기로 돌아가 오소마츠의 성장을 모두 이 두 눈에 담고 싶다.
오소마츠의 생각과 다양한 표정을 전부 보고 싶다. 오직 나만이 오소마츠의 전부를 알고 있기를 원했다.
이런 치졸한 욕망이 그 크기를 더해갈수록 쵸로마츠를 향한 질투와 죄책감도 커져갔다.
완전히 가라앉은 기분을 다시 끌어올릴 기운은 없었다.
따끔따끔하니 아픈 가슴을 안고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 생각으로 방 안을 밝히고 있는 등불로 다가갔다.
똑, 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몸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굳게 닫힌 문 너머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분명 방에 오기 전, 젊은 텐구들과 치비타에게 언질을 주어 이 시간에 내 방에 오는 이는 없을 터였다.
급한 용무로 젊은 텐구가 부득이하게 찾아왔을 가능성도 있어 한숨을 내쉬고 들어오라고 목소리를 냈다.
“…!! 오, 오소마츠?!”
스륵- 하고 살짝 열린 문틈으로 오소마츠가 머리를 쑥 내밀었다.
평소 신사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 오소마츠가 텐구의 영지에 있다는 것에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안 그래도 오소마츠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는 젊은 텐구들이 있는데, 대체 어떻게 이곳까지 온 것인지 믿겨지지 않았다.
눈을 크게 뜨고 놀라 입도 다물지 못하는 나를 보며 오소마츠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무,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내게 다가오는 오소마츠에게 묻자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하며 “아니?” 하고 태평하게 대답했다.
그럼 대체 왜 찾아온 건지 물으려는 내 어깨를 붙잡은 오소마츠가 내 어깨를 지긋이 눌렀다.
오소마츠의 손에 맞추어 몸을 낮추어 이부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내 어깨에 얹은 손을 치우지 않고 나를 마주보고 앉은 오소마츠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등불에 비친 얼굴이 묘하게 요염했다.
“오, 오소마~츠?”
“응~?”
“정말로 무슨 일이야…”
눈썹을 찌푸리고 묻자 오소마츠의 꼬리가 너울거렸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을 때의 행동이었다.
꼬리를 보고 오소마츠의 얼굴을 보자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피어나 있었다.
한 번 더 물으려던 입을 다물고 가만히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오소마츠의 붉은 눈이 등불에 반짝였다.
문득 휴- 하고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입을 열었다.
“있잖아~, 카라마츠으~”
“뭔가.”
“네가 말했지? 나한테. 혼자 떠안지 말라고. 정말로 사소한 일이라도 좋으니까 숨기지 말고 얘기해 달라고.”
“…”
뭐든 혼자 짊어지려는 오소마츠가 너무나 애처롭고, 애틋해 조금이라도 나를 의지해주길 원해서 내가 했던 말이었다.
교제를 시작하며 내가 했던 말을 오소마츠가 되돌려주며 내 목에 제 팔을 둘렀다.
가까워진 얼굴에 오소마츠의 붉은 눈동자 가득 내가 비춰지고 있었다.
“카라마츠, 무슨 생각했어?”
“…”
부드럽고 상냥하게 묻는 목소리에 절로 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몇 백 년이 지난다 한들 나는 오소마츠를 이길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무리 내가 숨기려고 해도 내 모든 것은 오소마츠의 손 안에 있었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 오소마츠에게 싱긋 웃으며 오소마츠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강하게 껴안았다.
품 안에 쏙 들어오는 오소마츠의 온기에 푹 숨을 내쉬며 오소마츠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코 끝을 간질이는 오소마츠의 향긋한 체취를 빨아들이며 눈을 감고 있자 오소마츠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온 몸을 감싸는 오소마츠의 체온과 향기에, 그리고 품 안에 들어온 오소마츠의 신체에 더 없이 안심했다.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며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나는 쵸로마츠가 부러웠다.”
“어? 쵸로가? 왜?”
오소마츠의 꼬리가 크게 살랑거리며 흔들렸다.
내 등에 제 손을 두르고 토닥이던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소마츠의 어깨에서 얼굴을 떼고 나를 보고 있는 오소마츠의 눈을 마주했다.
부드러워 보이는 복슬복슬한 귀가 온전히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온 감각을 내게 모으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피식 웃음을 흘리며 사랑스러운 뺨을 어루만지자 오소마츠가 기분 좋게 눈을 가늘게 뜨고 내 손에 제 볼을 갖다 댔다.
“쵸로마츠는 나보다 더 오랜 시간을 오소마츠와 함께 해 왔다. 분명 내가 모르는 오소마츠의 모습을 많이 알고 있겠지. 오소마츠도 쵸로마츠를 신뢰하고 있고. 나는,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함께 쌓아온 세월이 너무나 부러웠어. 쵸로마츠가 너무나 부러웠다.”
맑은 눈을 크게 뜨고 내 말을 들은 오소마츠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리더니 내 등에 팔을 두르고 나를 꼭 안아왔다.
오소마츠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바보네- 카라마츄는~. 그런 거 신경 쓸 필요 없는데.”
몸을 떼고 나를 똑바로 바라본 오소마츠가 내 머리를 쓸어 올렸다.
앞머리에 가려져 있던 이마에 쪽 하고 입을 맞춘 오소마츠가 기쁘게 웃으며 귀를 쫑긋거렸다.
남실거리는 꼬리가 오소마츠의 허리를 안고 있는 내 팔을 간질였다.
“카라마츠는 내가 쵸로에게 보여주지 않는 ‘나’를 알고 있잖아?”
말을 마친 오소마츠가 눈을 반쯤 감고 내게 다가왔다. 따뜻한 체온과 말랑말랑한 감촉이 입술에 전해졌다.
잠시 맞닿은 입술은 아쉬움을 남기고 곧 떨어졌다.
나를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한숨이 한층 뜨거워져 있어, 덩달아 내 체온도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뺨을 붉게 물들이고 나를 보는 오소마츠의 눈이 호를 그리며 가늘어졌다.
“이렇게 야-한 얼굴을 보여주는 것도, 아무 생각 없이 기댈 수 있는 것도 카라마츠 뿐이야?”
“..오소마츠..”
오소마츠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내 손을 마주잡고 웃는 오소마츠는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아름답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오소마츠의 말 한 마디에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던 검고 어두운 죄책감과 질투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갔다.
콩! 하고 내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대고 얼굴을 붙인 오소마츠가 조용히 속삭였다.
“확실히 쵸로는 내 ‘반려’지만…”
“…”
“카라마츠는 내 ‘배필(配匹)’이니까.”
그렇게 간절히 원하고 있던 확신을 주며 오소마츠가 수줍게 웃었다.
존재했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내 안의 어둠은 완전히 사라지고, 가슴 가득 행복이 차 올랐다.
방심하면 바로 터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을 참고 오소마츠에게 마주 웃어주었다.
눈을 감고 내 손길을 받아들이는 오소마츠를 끌어당겨 그 보드라운 입술에 입맞췄다.
맞닿은 입술은 기다렸다는 듯, 그 틈을 허락해 주었고 나는 망설이지 않고 뜨거운 오소마츠의 입 속을 마음껏 탐했다.
입 안의 성감대를 자극할 때마다 달콤한 한숨을 내쉬며 눈썹을 찌푸리는 모습이 아름답고 고혹적이었다.
쪽- 하고 물기 어린 소음을 내며 입술이 떨어졌다. 뜨거운 한숨을 내쉬는 오소마츠의 얼굴이 요염했다.
“오소마츠.”
“응-?”
“오늘은 여기서 머물지 않겠나?”
“…우응, 하, 아…”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입술을 가까이 대자 오소마츠가 기쁘게 웃으며 입을 열어 주었다.
조급하게 얽혀오는 뜨거운 혀가 사랑스러워 몇 번이고 입맞춤을 반복하며 뜨거운 숨을 교환했다.
“…하아-“
멍한 얼굴로 입술을 뗀 오소마츠의 입가에 흘러내린 타액을 닦아주자 오소마츠가 그 특유의 장난기 묻어 나오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나 여기서 자고 가면 분명 텐구들한테 뭐라 들을 것 같은데-“
“그렇, 지는 않을거다..”
앞날을 보듯 뻔한 젊은 텐구들의 반발을 떠올리며 쓰게 웃자 오소마츠가 내 목에 팔을 두르고 더 몸을 밀착했다.
“내일은 텐구들 일어나기 전에 일찍 일어나야겠네-“
싱긋 웃으며 이불에 몸을 누이는 오소마츠를 따라 몸을 숙였다.
완전히 이불에 누운 오소마츠가 손가락을 들어 작은 바람을 일으켜 작은 등불을 끄자, 방 안은 그대로 어둠에 감싸였다.
* 수능이다 시위다 요즘 사건이 많네요.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모두 중심을 잡고 매일을 멋지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 수능 보신 수험생분들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 내일 안으로 열심히 써서 다음편도 올릴게요.. 올릴수 있을 거에요.. 아마도...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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