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6편 들고 왔습니다!!
*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편이었어요... 플롯 짜는데 얼마나 헤맸는지...ㄷㄷ
* 시간 상으로는 4편의 바로 전 시간대입니다ㅎ.
* 오래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어수선하게 신사를 오가는 사람들과 쿵쾅거리는 소리에 슬그머니 짜증이 솟았다.
벌써 이 시끄러운 소란이 이어진 것도 3일. 슬슬 인내심의 한계가 보이고 있었다.
“오소마츠 형.”
“응~?”
토리이에 앉아 느긋하게 턱을 괴고 인간들의 행상을 관찰하는 오소마츠 형이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보았다.
“오늘 안으로는 안 끝나겠지? 저거.”
내 물음에 오소마츠 형이 고개를 돌려 인간들을 보며 대답했다.
“내일쯤 끝나지 않을까~?”
“하아~”
“어라~ 쵸로씌, 화났어?”
장난스럽게 웃으며 묻는 오소마츠 형을 한번 쏘아주곤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마을에 활기를 더해주는 축제가 시작되는 것은 좋으나, 그 준비로 이렇게 신사가 시끄러워서야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
끊기지 않고 귀청을 울려대는 쿵쾅거리는 소음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몸을 돌렸다.
“축제 준비가 끝날 때까지 난 카라마츠 영지에 가 있을래. 오소마츠 형은?”
“응~, 난 오늘 잠깐 할아범에게 갔다올 생각이라…”
“갔다와서 카라마츠 영지로 올 거야?”
“응~ 그럴게.”
손을 흔드며 배웅하는 오소마츠 형을 뒤로 하고 토리이를 내려갔다.
하늘을 날아서 간다면 빠르게 카라마츠의 거소에 도착하겠지만, 아쉽게도 내게 그런 재주는 없었다.
인간들이 볼 수 없도록 기색을 감추고 마을을 가로 질러갈 생각에 한숨을 내쉬었다.
“쵸로씌~!”
오소마츠 형이 나를 부르며 토리이에서 뛰어내려 내 앞으로 다가왔다.
“걸어갈 생각?”
“그 수 밖에 없잖아.”
“내가 데려다줄게.”
“…엥?”
말을 마친 오소마츠 형의 몸이 황금빛 털을 가진 여우로 변했다.
보통의 여우의 배는 되어보이는 크기와 살랑이는 4개의 꼬리에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물결치듯 윤기가 흐르는 털은 굉장히 보드라워 보였다.
떡하니 입을 벌리고 보고 있으니 오소마츠 형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뭐해? 안 타?”
“엣?! 타라고?? 등에?”
“응.”
당연한 것을 왜 묻냐는 어투로 오소마츠 형이 몸을 낮췄다.
뭘 어째야 할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오소마츠 형이 꼬리를 흔들며 재촉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자, 오소마츠 형이 웃으며 “네-“ 하고 대답했다.
부드러운 털에 절로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오소마츠 형의 등에 조심스레 앉자 따뜻한 오소마츠 형의 체온과 부드러운 털의 감촉이 그대로 전해져 ‘이것이 바로 애니멀테라피!’ 라고 생각했다.
오소마츠 형은 “꽉 잡아.” 하고 당부한 뒤, 땅을 차고 날아올랐다.
하늘 높이 날아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는 것이 기묘하고 신기했다.
허공을 박차며 빠른 속도로 마을을 가로지른 오소마츠 형은 금새 카라마츠의 영지가 있는 청산에 도착했다.
청산의 입구에 나를 내려주고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오소마츠 형은 그대로 하늘 높이 날아갔다.
아직 손에 남은 오소마츠 형의 감촉을 다시 떠올리며 산길을 올랐다.
카라스텐구의 영지는 청산의 꼭대기 근처에 있었다.
인간들이 다니지 않는 산길은 매우 좁고 거칠어서 산 중턱까지 오르는 것만으로 힘에 부쳤다.
카라스텐구의 영지에 도착했을 때는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쵸로마츠 형!”
치비타의 안내를 받아 손님방으로 향하는 복도에서 마주친 토도마츠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유키오토코(설남(雪男))인 토도마츠가 다가오자 주위 기온이 금새 내려갔다.
차가워진 공기에 팔짱을 끼고 인사했다. 치비타는 토도마츠가 다가오자, 토도마츠에게 손님방으로의 안내를 맡기고 자리를 떴다.
카라스텐구 일족은 모두 축제가 시작되기 전, 마을의 경계를 더 강화하느라 바쁜 것 같았다.
“어라? 오소마츠 형하고 이치마츠 형은?”
“오소마츠 형은 잠시 천상에 들린다고 했고, 이치마츠는 아침부터 없었어.”
“후응~”
내 주위를 살피며 오소마츠 형과 이치마츠를 찾는 토도마츠에게 대답하고 손님방으로 안내를 재촉했다.
아침부터 이어진 소음에 아직도 머리가 울리고 있어 빨리 조용한 방에서 쉬고 싶었다.
내 사정을 들은 토도마츠가 “고생이네-“ 하며 영혼도 없는 위로를 하고는 앞서 걸어나갔다.
2.
왼쪽에 쌓여있던 두루마기를 전부 확인하고 오른편에 쌓아올린 카라마츠가 마지막 두루마기를 읽어내려갔다.
여우골이라는 커다란 마을을 영역으로 삼고 있는 카라스텐구의 수장(首長)인만큼 카라마츠가 처리해야 할 일은 많았다.
오늘도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겨우 마지막 두루마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손에 펼쳐 들은 두루마기를 다 읽어내려간 카라마츠가 앞에 앉은 젊은 텐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고개를 깊게 숙이고 대답한 젊은 텐구들이 방을 떠났다.
“후우-“
한숨을 푹 내쉬며 카라마츠가 등받이에 기대 긴장을 풀고 눈을 감았다.
축제가 가까워지며 마을을 들어오려는 요괴의 수가 늘었다.
축제는 인간들의 활력이 가장 넘치는 시기이면서, 넘쳐나는 인간의 생기를 노리고 흘러들어오는 요괴가 늘어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마을의 경계를 강화해야 했고, 필연적으로 카라마츠가 처리해야 할 일도 늘어나 축제 준비가 시작된 이후로는 오소마츠가 있는 신사에 들리지도 못했다.
다행히 오늘은 다른 때보다 조금 일찍 일이 끝났다.
등에 접고 있던 날개를 살며시 팔락이며 지금이라도 오소마츠의 신사에 찾아갈까, 고민을 하고 있는 카라마츠의 귀에 장지문 너머 치비타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라고 대답하자 치비타가 들어와 손님이 찾아왔다는 말을 전했다.
이 시기에 카라스텐구의 영지에 찾아올 손님은 드물었기에 누구냐고 묻자, 치비타가 시큰둥하게 쵸로마츠라고 대답했다.
치비타의 말에 카라마츠가 반색하며 몸을 일으켰다.
방을 나선 카라마츠는 곧바로 쵸로마츠가 머물고 있을 손님방으로 향했다.
“쵸로마츠!”
“아, 카라마츠. 잠시 신세 좀 질게.”
손님방으로 향하던 길목에서 보인 마당에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있는 것을 보고 다가간 카라마츠가 기쁘게 웃었다.
“훗, 내 형제라면 언제든 환영이라고?”
“아, 그래.”
그럼 그렇지하는 얼굴로 대충 카라마츠의 말을 넘긴 쵸로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쵸로마츠의 주변을 살피는 카라마츠의 행동에 쵸로마츠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오소마츠 형은 여기 없어.”
“엩? 아, 그럼 어디에?”
“천상에 일이 있어서 잠시 갔다온대.”
“아, 그런가…”
“일 마치면 이쪽으로 온다고 했으니까.”
“그런가!”
오소마츠가 없다는 말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아쉬워하던 얼굴을 금새 지우고 싱글벙글 웃는 카라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카라마츠가 쵸로마츠의 한숨에 당황하며 어디가 불편한지를 묻자 쵸로마츠가 눈썹을 찌푸리며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곁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토도마츠가 동정하는 눈빛으로 쵸로마츠의 어깨를 토닥였다.
가을이 한창인 높고 푸른 하늘이 서서히 붉게 물들어갔다.
여름보다 짧아진 낮시간을 따라 온 마을을 비추고 있던 노란 해는 서서히 청산의 뒤로 얼굴을 숨기며, 작별의 인사를 건네듯 하늘에 붉은 물감을 풀었다.
타오르듯 벌겋게 피어오른 빨강을 한쪽에서 천천히 잡아먹어가는 검은 하늘을 카라마츠가 걱정어린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문득문득 접은 날개를 펼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카라마츠를 치비타가 한숨을 내쉬며 불렀다.
바쁘게 음식을 나르는 젊은 텐구들과 식솔들의 움직임을 뒤로하고 카라마츠가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기다리고 있는 커다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 들어왔는지 흙투성이의 쥬시마츠와 나른한 표정의 이치마츠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눈 앞에 놓인 일인용 밥상에 올려진 진수성찬에 감탄하는 쵸로마츠를 뒤로하고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부재에 눈썹을 구겼다.
묵묵히 예의바른 젓가락질로 김이 모락모락나는 흰 쌀밥을 입으로 옮기는 쵸로마츠를 카라마츠가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왜?”
“오소마츠가 돌아오는 것이 늦지 않나?”
카라마츠의 말에 쵸로마츠가 깜빡였다.
눈 앞에 앉아있는 카라마츠의 얼굴을 보며 쵸로마츠는 ‘이 녀석 진심인가…’ 하고 한탄했다.
요괴들 사이에서 상대할 자가 없다 칭송받으며 대(大)텐구라 불리는 카라마츠가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신’의 영역에 속해 있는 오소마츠는 강했다.
섣불리 공격을 당해도 쉽게 이길 수 있는 힘이 오소마츠에겐 있었다.
애초에 쉽게 습격을 받을 오소마츠도 아니었지만…
게다가 오늘은 오소마츠가 오랜 시절 알아온 대국주를 만나러 천상에 올라간 터였다.
추억을 털어놓으며 회포를 풀다보면 예정보다 늦어지는 것은 응당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오소마츠는 본래 성격이 느긋하고 풀어져 있다.
아직 초저녁인 지금 돌아오지 않는 것은 쵸로마츠 입장에선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신’인 오소마츠의 안위를 걱정하는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은 카라마츠 뿐이라고 생각하며 쵸로마츠가 한숨지었다.
“천상에 간 거잖아? 조금 늦어질 수도 있겠지. 옆집에 놀러간 것도 아니고..”
식탁에 놓인 구운 생선의 가시를 능숙한 젓가락질로 발라내며 쵸로마츠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쵸로마츠의 대답이 마음에 안 드는지 밥그릇을 들고 카라마츠가 “아무리 그래도…” 하고 중얼거렸다.
카라마츠에게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고개를 숙이고 쵸로마츠가 작게 “쯧!” 하고 혀를 찼다.
오소마츠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너무 과보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자신보다 훨씬 강한 상대인 오소마츠를 걱정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카라마츠를 이해할 수 없는 쵸로마츠는 매번 카라마츠의 이런 면을 볼 때마다 묘하게 화가 치밀었다.
“카라마츠님~, 그 생선은 소녀가 구운 것입니다. 마음에 드시는지요~?”
“아아…”
귀에 거스릴 정도로 간드러진 여자의 목소리에 쵸로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멍청한 얼굴로 기계적으로 밥과 반찬을 입으로 나르고 있는 카라마츠의 옆에 찰싹 달라붙은 한 여성형 요괴하나가 필사적으로 자신의 성적 매력을 어필하며 웃고 있었다.
옆에서 봐주기 힘들 정도로 아양을 떨고 있는 요괴의 모습에 헛웃음을 뱉으며 쵸로마츠가 옆에 앉은 토도마츠에게 물었다.
“뭐야? 저거?”
카라마츠에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식사에 집중하고 있는 토도마츠가 조용히 말했다.
“얼마 전에 들어온 바케네코*야. 카라마츠 형의 부인자리를 노리고 들어왔는지 작정하고 달라붙더라고.”
*바케네코 : 둔갑 고양이.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출처-위키백과]
“..헤에…”
기모노의 옷깃도 느슨하게 해, 풍만한 가슴을 드러내며 교태를 부리는 바케네코가 불쌍해 보일 정도로 카라마츠는 옆에 앉은 요괴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허공을 바라보며 밥을 먹고 있었다.
‘분명 저 한심한 녀석은 오소마츠의 걱정이나 하고 있겠지. ‘
한숨을 쉬며 쵸로마츠가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카라마츠 형은 그렇다쳐도, 딸딸마츠 형은 저렇게 여자가 붙으면 코피 뿜는거 아냐?”
젓가락을 든 손을 입가에 가져가 후훗- 하고 비웃으며 토도마츠가 말했다.
쵸로마츠가 싫어하는 별명을 들먹이는 토도마츠를 노려보며 쵸로마츠가 날카롭게 받아쳤다.
“호오~? 그러는 ‘톳티-’야말로, 저렇게 여자가 먼저 다가오는 일은 없잖아? 동정이니까!”
“자기도 동정이면서?! 자폭 그만둬줄래?!”
밥을 먹으면서도 서로를 노려보는 토도마츠와 쵸로마츠를 뒤로한채, 즐겁게 웃고 떠들며 서로 반찬을 챙겨주는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한숨을 푹- 내쉰 카라마츠가 망연히 “오소마츠…” 하고 중얼거렸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평소라면 이미 잠자리에 들고도 남았을 시간인데도 카라마츠는 홀로 마당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인간 마을의 불도 전부 꺼진 새벽,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오소마츠를 기다리며 카라마츠가 어깨에 걸친 쪽색의 하오리*를 끌어올렸다.
*하오리(羽織) : 기모노 위에 입는 것으로서 양복에서 말하는 가디건이나 재킷 같은 것
얼마나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가을에 들어서고 부쩍 기온이 내려간 공기는 금새 카라마츠의 체온을 빼앗아갔다.
차가워진 손끝에 씁쓸하게 웃으며 카라마츠가 방 안으로 돌아가려 몸을 돌린 순간, 저 멀리서 오소마츠의 기운이 느껴졌다.
찌푸리고 있던 눈썹은 금새 풀리고 밝은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본 카라마츠의 앞에 여우불에 감싸인 황금색의 여우가 우아하게 마당에 발을 내렸다.
“얼레? 카라마츠, 아직도 안자고 뭐하고 있었어?”
여우에서 평소의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빙긋 웃으며 어깨에 걸치고 있던 하오리를 오소마츠의 어깨에 걸쳐주며 “오소마츠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고 카라마츠가 대답했다.
카라마츠의 체온이 남은 하오리와 대조적으로 차갑게 식은 카라마츠의 손가락을 오소마츠가 붙잡아 두 손으로 감쌌다.
“추운데, 안 기다려도 괜찮았는데…”
“..늦게 돌아온 오소마츠가 나쁘다.”
“하하, 미안.”
생글생글 웃으며 솔직하게 사과하는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오소마츠가 붙잡은 카라마츠의 손에 다시 온기가 돌아오자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손을 놓았다.
떠나가는 오소마츠의 온기에 아쉬움을 느끼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쵸로마츠가 묵고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3.
카라스텐구의 영지에서 맞이하는 아침 식사 시간, 언제 돌아왔는지 알 수 없는 오소마츠가 잠버릇이 남은 머리로 반쯤 졸아가며 아침을 먹고 있는 모습을 쵸로마츠가 한심하단 눈길로 바라보았다.
후드득 오소마츠의 젓가락에서 떨어진 밥풀을 쵸로마츠가 잔뜩 찡그린 얼굴로 치우며 오소마츠에게 외쳤다.
“오소마츠 형! 좀 제대로 먹어!!”
“응~”
허공을 향한 오소마츠의 시선에 쵸로마츠가 푹 한숨을 쉬었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오소마츠는 뭔가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어찌어찌 반찬을 흘리지 않고 먹고 있는 오소마츠에게서 시선을 돌려, 서로 반찬을 나눠먹고 있는 토도마츠와 쥬시마츠에게 카라마츠의 행방을 물었다.
아무리 막역한 사이라곤 하나, 쵸로마츠와 오소마츠, 이치마츠는 이곳의 손님이었다.
집의 주인인 카라마츠가 자리에 없는 것이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다.
오늘도 맛있게 구워진 생선을 발라먹으며 토도마츠가 말했다.
“요즘 카라마츠 형 바쁘니까, 좀 늦게 먹지 않을까?”
“읏!! 기다렸나, 형제들이여!!!!”
토도마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문이 활짝 열리며 숨을 헐떡이는 카라마츠가 나타났다.
숨이 찬 모습에 쵸로마츠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자 카라마츠가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일도 없었다고 대답했다.
숨을 고르며 오소마츠의 맞은편에 카라마츠가 앉자 바로 밥상을 들고 어제의 바케네코가 들어왔다.
어제 저녁과 마찬가지로 카라마츠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볼수록 왠지 밥맛이 떨어져 쵸로마츠가 밥그릇을 반도 비우지 못하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카라마츠는 옆에 있는 바케네코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어딘가 멍한 얼굴의 오소마츠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평소의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평온한 분위기가 아닌 어딘가 경직된 느낌에 이치마츠와 토도마츠가 흘끔흘끔 눈치를 살피며 식사를 마쳤다.
일이 바쁜건지 카라마츠는 식사를 마치고 오소마츠에게 말을 건 시간도 없이 치비타에게 끌려갔다.
남은 잔반을 정리하는 카라스텐구의 가솔들을 바라보던 오소마츠가 몸을 일으켰다.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따라 시선을 위로 올리고 어디를 가냐고 묻자 오소마츠가 싱긋 웃으며 “잠깐 산책~” 하고 대답했다.
밝은 미소였지만, 어딘가 쓸쓸해보이는 표정에 오소마츠가 혼자 있고 싶어한다는 것을 헤아린 쵸로마츠가 “조심히 다녀와.” 하고 마중했다.
잔잔히 미소지으며 쵸로마츠의 머리를 크게 쓰다듬고 방을 나선 오소마츠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본 쵸로마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쵸로마츠 형, 언제까지 여기서 머물거야?”
“축제가 시작되면 신사로 돌아가야지.”
식사를 마치고 묵고 있는 손님방을 향하는 복도에서 토도마츠의 물음에 쵸로마츠가 대답했다.
축제가 시작하는 날은 내일. 신사의 준비도 오늘 내로 끝날 예정이었다.
쵸로마츠의 대답에 토도마츠가 뾰루퉁하게 입을 내밀고 “뭐야~ 그렇게 빨리 돌아가?” 하고 투덜댔다.
“이치마츠랑 쥬시마츠는?”
“식사 끝나자 마자 두 사람 다 나갔어.”
쵸로마츠의 물음에 토도마츠가 중얼거렸다.
쵸로마츠에게 동생과 다름없는 세 사람은 서로 사이가 좋았지만, 묘하게도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는 굉장히 가깝게 지냈다.
종족이 다른 요괴가 친하게 지내는 일이 거의 없는 세상이다.
토도마츠도 종족이 다른 쵸로마츠를 잘 따랐던 것을 떠올리며 쵸로마츠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것보다! 아까 카라마츠 형하고 오소마츠 형의 분위기는 대체 뭐야? 부부싸움이라도 한건가??”
묵묵히 복도를 걷고 있는 쵸로마츠를 향해 토도마츠가 드디어 신경쓰였던 질문을 던졌다.
항상 옆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달콤한 분위기를 풍기는 두 사람이 방근 전엔 굉장히 서먹한 공기를 자아내고 있던 것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토도마츠였다.
“교제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부부싸움을 할 리가 없잖아.”
한심하단 얼굴로 토도마츠를 향해 대답한 쵸로마츠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평소와 다른 분위기였다는 것은 쵸로마츠도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원인은 카라마츠가 아닌 오소마츠에게 있다는 것을 쵸로마츠는 눈치채고 있었다.
“아니, 그 바케네코가 그렇게 달라붙는데 왜 카라마츠 형은 놔두는지 이해가 안 돼! 오소마츠 형을 좋아하면서!”
영문을 모르는 어린 토도마츠는 쵸로마츠에게 붙어 화를 내며 말했다.
토도마츠가 생각하기에 모든 잘못은, 노골적으로 카라마츠에게 치대는 바케네코를 방치한데다가, 그 모습을 오소마츠에게 보란듯이 보여준 카라마츠에게 있었다.
쵸로마츠는 토도마츠의 불평에 가만히 곁눈질하더니 몸을 돌려 걸어왔던 복도로 다시 되돌아갔다.
“잠깐 카라마츠 방으로 안내해줘.”
쵸로마츠의 말에 토도마츠가 놀라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마츠 형!!!!!”
문도 두드리지 않고 벌컥 집무실로 사용되는 방문을 열어젖힌 토도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당황했다.
아무리 가족 같은 사이라지만, 카라마츠는 엄연한 이 집의 주인이자 카라스텐구의 수장이다.
격식도 차리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깜찍한 막내의 행동에 쵸로마츠는 말을 잃고 말았다.
문을 활짝 열어젖힌 토도마츠에게 카라마츠를 비롯해 방 안에 앉아있던 젊은 텐구들의 이목이 집중했다.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는지 토도마츠가 슬슬 뒷걸음질쳐 쵸로마츠의 뒤에 몸을 숨기고 얼굴만 빼꼼 내밀어 카라마츠에게 말했다.
“쵸, 쵸로마츠 형이 할 말이 있대.”
잘못은 제가 저질러 놓고 몸을 숨기며 쵸로마츠를 내미는 토도마츠의 영악함에 쵸로마츠는 어이가 없었다.
황당하단 얼굴로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말을 나눌 수 있을까요?”
젊은 텐구들의 적의에 가득찬 눈길이 쵸로마츠에게 꽂혔다.
마음만 같아서는 뭘 노려보냐며 밟고 싶은 심정을 꾹꾹 누르고 쵸로마츠가 미소를 지었다.
카라마츠는 동생의 모습에 피식 웃고는 젊은 텐구들에게 잠시 자리를 비켜달라 명했다.
명을 받은 젊은 텐구들이 고개를 숙이고 방을 떠났다.
카라마츠, 쵸로마츠, 토도마츠, 세 사람만이 방에 남았다.
“카라마츠 형!! 대체 뭐야?! 그건!!”
세 사람만 남자마자 기세좋게 쵸로마츠의 뒤에서 튀어나온 토도마츠가 카라마츠의 앞에 앉아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정신없이 흔들리며 카라마츠가 간신히 “뭐, 뭐가 말인가?” 하고 물었다.
씩씩대는 토도마츠의 어깨를 두드려 진정시킨 쵸로마츠가 방석에 앉으며 물었다.
“그 바케네코, 왜 놔두는 거야? 어디로보나 너를 노리고 있고, 그 모습을 오소마츠 형한테 보이는 것도 좋지 않다고 보는데…”
“바케네코…?”
쵸로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어진 카라마츠의 물음에 쵸로마츠와 토도마츠 두 사람이 머리를 붙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녀석이 있었나..?”
“안중에도 없었어!!!!”
“진짜냐..”
토도마츠의 경악과 함께 쵸로마츠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게 옆에 달라붙는데 전혀 깨닫지 못한 카라마츠의 둔함에 탄식함과 함께, 바케네코를 향한 일말의 동정심이 일었다.
“그럼 대체 아침 때 그 분위기는 뭐야? 나는 당연히 두 사람이 싸워서 그런 줄 알았는데..”
토도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다시 멀뚱히 눈을 깜빡이며 “싸운 적은 없다고?” 하고 대답했다.
“그럼 대체 뭐야~~~” 하고 중얼거리는 토도마츠를 뒤로 하고 카라마츠가 쵸로마츠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오소마츠는?”
“식사 마치자마자 나갔어.”
“나갔다? 어디로?”
“글쎄?”
“엩?!”
쵸로마츠의 대답에 카라마츠가 눈을 크게 뜨고 벌떡 일어났다.
황당하단 눈빛으로 쵸로마츠를 바라보며 카라마츠가 외쳤다.
“위험하지 않은가!!”
“아? 아니, 오소마츠 형 일단 ‘토지신’이고, 여우골은 오소마츠 형의 토지니까 괜찮잖아? 어차피 이 마을 안에 있을거고.”
“…만에 하나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그러나!!”
망설이지 않고 방을 나가 젊은 텐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늘로 높이 날아오른 카라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얼마나 과보호인거야…” 하고 중얼거렸다.
4.
온 마을을 한바퀴 돌았음에도 꼬리 하나 보이지 않음에 초조함이 더해졌다.
축제가 가까워짐에 따라 마을 주변의 악귀나 요괴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혹시나라도 오소마츠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쯧! 하고 혀를 차고 다시 한 번 마을을 돌았지만 여전히 오소마츠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영지로 돌아간 것일까, 청산으로 방향을 돌렸다.
산을 돌아 살피는 중에 노란 옷을 입은 동생이 보여 날개를 접고 산으로 내려갔다.
“쥬시마츠!”
“아! 카라마츠 형아!!”
흙투성이 손을 흔들며 반기는 귀여운 동생에게 웃어준 후, 오소마츠의 행방을 물었다.
“응~, 오소마츠 형아~? 잘 모르겠는데~”
고개를 기울이며 눈을 굴리는 쥬시마츠의 대답에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아직 청산에는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았다.
알겠다고 대답한 후, 다시 하늘을 날아오르려 날개를 펼친 순간, 쥬시마츠의 손에 들린 노란 꽃이 눈에 들어왔다.
“쥬시마츠, 그건?”
“아! 이거!! ‘그 아이’에게 줄거야~!!”
행복하단 미소를 지으며 밝게 말하는 쥬시마츠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얼마 전, 영지에 일손으로 들어온 요스즈메*와 부쩍 친해진 쥬시마츠는 매일 그녀를 위한 꽃을 꺾으려 온 산을 돌아다녔다.
*요스즈메 : 일본 고치 현과 에히메 현에 전해내려오는 새 요괴. ‘밤참새’라고도 한다 [출처:나무위키]
“카라마츠 형아!”
“응? 뭔가? 쥬시마츠.”
“있잖아~”
싱긋 웃으며 자신의 손에 들린 꽃을 바라보는 쥬시마츠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형제인 우리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상냥한 얼굴에 분명 그녀를 떠올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게 뭘까?”
“응?”
“그 아이 앞에 서면 뭔~가 가슴이 막 두근두근대고, 얼굴을 보고 있는데도 더~ 보고 싶고, 또 멀리서 있어도 한눈에 그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 그 아이를 보면 볼수록 뭔가 가슴이 꾹- 하고 아파오는데 이게 뭘까?”
나를 향한 쥬시마츠의 눈빛이 아름답게 빛났다.
이제 막 새싹같이 여리고 순수한 사랑을 시작한 쥬시마츠의 모습에, 오래 전 이 마을에 막 도달했을 때의 쥬시마츠를 떠올렸다.
아직 어리고 세상을 잘 몰랐던 순수한 아이가 어느새 성장해 사랑을 할 정도로 늠름해졌다.
마냥 어린 아이인 줄만 알았던 동생의 성장에 흐뭇하게 웃으며 쥬시마츠의 물음에 정성껏 대답했다.
“쥬시마츠, 그건 ‘사랑’이구나!”
“사랑~?”
“그래. 곁에 있고 싶고, 지켜주고 싶고, 그 누구보다 ‘특별’한 상대가 되고 싶은 마음은 모두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그렇구나!!!”
태양이 질투할 정도로 밝게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쥬시마츠가 나를 향해 굉장히 자상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카라마츠 형아도 오소마츠 형아를 보면 그렇게 되는거야?”
“…응?”
마치 오소마츠가 이치마츠를 바라보는 곰살궃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쥬시마츠의 말에 절로 목이 울렸다.
쥬시마츠가 하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아 다시 물으려는데 쥬시마츠는 빙긋 웃더니 내게 인사를 하고 다시 꽃을 꺾으러 산 속으로 들어갔다.
홀로 남겨진 나는 쥬시마츠의 말을 다시 되씹으며 날개를 펼쳤다.
하늘에서 바라본 마을은 축제 준비로 활기가 넘쳤다.
아직도 축제 준비로 공사가 한창인 여우 신사는 여전히 사람이 득실거렸다.
신사를 한번 살펴보았으나 오소마츠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 어디를 간 것인가…
오소마츠가 보이지 않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초조함은 한계에 다다랐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깊은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지는 않을까, 최악의 상황이 자꾸 머리속에 떠오르며 가슴이 답답했다.
신사 근처의 인가를 지나며 아래를 살피고 있는데, 시야 한구석에 고양이 모습을 한 이치마츠가 들어왔다.
“이치마츠!!”
“아?! 뭐야, 개똥마츠!”
마을의 떠돌이 고양이들과 함께 모여있는 이치마츠에게 다가가 오소마츠의 행방을 물자 이치마츠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곧 입을 열었다.
“아마, 청산 아래로 갔을거야. 아침에 그쪽으로 가는 걸 봤거든.”
“정말인가?! 고맙다!! 이치마츠!!”
겨우 잡은 지푸라기 같은 흔적에 감사하며 재빨리 청산을 향해 날았다.
아무리 청산을 보아도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청산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었나!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을 떠올리며 인간 마을에 인접한 청산의 아래를 샅샅이 살폈다.
“오소마츠!!”
청산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인간 마을과 연결된 인간들의 묘지에서 오소마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빠른 속도로 바람을 가르고 강하하여 오소마츠의 곁으로 날아갔다.
날개가 퍼덕이는 소리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렸다.
“어? 카라마츠?”
“오소마츠!! 걱정했다. 대체…”
“아, 잠깐만. 카라마츠 일단 모습 좀 바꿔.”
“에..?”
“인간으로 둔갑해. 빨리-“
오소마츠의 말에 겨우 오소마츠의 모습이 평소와 다름을 알 수 있었다.
항상 입고 있었던 붉은 기모노 대신에 오소마츠는 토도마츠가 자주 입는 인간의 옷을 입고 있었다.
오소마츠의 기모노와 같은 색의 인간의 옷을 입은 오소마츠는 귀도, 꼬리도 감추고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왜 갑자기 그런 모습을 한 것인지 묻는 나를 재촉하는 오소마츠의 말에 하는 수 없이 나도 모습을 바꾸었다.
인간의 옷은 잘 알지 못해 일단 오소마츠가 입고 있는 옷과 똑같은 모습으로 바꾸고 오소마츠에게 다가갔다.
"여기는 인간이 자주 드나드니까, 인간 모습을 하고 있는게 좋아-"
“그, 그런가... 그런데 오소마츠, 여기는 왜…”
“응?”
인간의 묘지에는 줄을 맞춰 세워져있는 비석이 가득 서 있었다.
그 중, 묘지의 중심에 서 있는, ‘마츠노’ 라고 쓰여진 검고 커다란 비석 앞에 오소마츠가 섰다.
눈을 가늘게 뜨고 천천히 비석을 쓸어내리는 오소마츠의 손길은 너무나 부드러웠다.
한번도 보지 못한 오소마츠의 표정에 호흡도 잊고 망연히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왜 그런 표정을 하는 건지 나는 알지 못한다.
저런, 오소마츠의 안타까운 얼굴을 나는 한번도 본 적 없었다.
“오소마츠…”
“..응?”
“그 비석의 주인을 아는 건가?”
“응~, 뭐… 그렇지…”
말을 흐리며 다시 비석을 쓰다듬는 오소마츠의 손길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오소마츠가 그 비석을 만지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왜 내게도 주지 않았던 부드러운 손길과 그런 애끓는 표정을 죽은 자의 비석에 보이는 것인가, 가슴이 답답했다.
“혹시, 그 비석의 주인이.. 오소마츠가 과거 사랑했던 아이인가..?”
“…어?”
놀란 얼굴의 오소마츠가 나를 바라보았다.
굳이 듣지 않아도 오소마츠의 표정으로 보아 대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따끔따끔하니 아파오는 가슴에 고개를 숙이고 애달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가… 그 비석의 주인이…”
“에,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아?”
“오소마츠가 말해줬다.”
“내가? 언제?”
“이 마을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아… 그런가… 나 그런 것도 말했었나…”
슬프게 웃으며 다시 비석으로 시선을 돌린 오소마츠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무거운 침묵이 맴돌았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얼굴을 찌푸리고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내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오소마츠는 여전히 비석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 비석을 보는 눈을 내게만 주기 바라는 마음에 비석을 쓰다듬는 오소마츠의 손을 붙잡았다.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말없이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눈빛에 작은 만족감을 느끼며 오소마츠의 손을 더 꽉 붙잡았다.
“왜, 그런 얼굴 하고 있어-“
베시시 웃으며 내 얼굴을 쓰다듬는 오소마츠의 손길에 가슴이 아렸다.
오소마츠의 맑은 눈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겨우 쥬시마츠의 말을 이해했다.
오소마츠의 곁에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오소마츠의 눈길이 오직 내게만 향하기를 바라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오소마츠의 기운을 느낄 수 있고,
이렇게 애타게 가슴이 아프고,
오소마츠를 지키고 싶고,
그 누구보다 더 가까이에 있고 싶은...
이 마음은 전부, ‘사랑’이라는 것을.
나는 오소마츠의 ‘특별’한 상대가 되고 싶다는 것을 이제야 겨우 깨달았다.
뜨거워지는 눈가에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물었다.
오소마츠의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모든 인내심을 동원해 눈물을 참고 있으니, 귓가에 오소마츠의 다정한 목소리가 울렸다.
“카라마츠, 이제 돌아가자.”
“아아.”
고개를 들어 평소와 같이 웃었지만, 제대로 미소가 지어지지 않았다.
가만히 나를 바라본 오소마츠가 은은한 미소를 띠고 먼저 하늘로 날아올랐다.
공중에 떠서 나를 기다리는 오소마츠에게 다가가며 부디, 눈물이 나오지 않기를 빌었다.
5.
축제가 무르익으며 어두운 밤을 축제의 불이 밝히고 장식했다.
카라스텐구의 영지에 선 쵸로마츠가 발을 동동 구르는 토도마츠를 바라보았다.
“아, 정말~!! 빨리 가자니까~? 축제 다 끝나겠다!”
“좀, 진정해. 토도마츠.”
이미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이치마츠를 재촉하는 토도마츠를 쵸로마츠가 달랬다.
쥬시마츠는 이미 마음에 드는 아이와 함께 축제가 한창인 인간 마을로 내려간듯 했다.
오늘 아침, 인간으로 변해 축제를 즐기자는 토도마츠의 제안을 오소마츠가 흔쾌히 승낙했다.
이제 절정에 다다른 축제를 빨리 즐기고 싶은지 토도마츠는 아직도 미적대며 준비를 하고 있는 이치마츠를 계속 독촉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어슬렁 어슬렁 나타난 이치마츠의 손을 잡고 토도마츠가 재빨리 산을 내려갔다.
한숨을 쉬며 산을 내려가는 두 동생의 뒷모습을 보는 쵸로마츠의 곁에 오소마츠가 다가왔다.
“쵸로씌는 안 가~?”
“오소마츠 형은?”
“나는 신사를 지켜야지~”
오소마츠의 대답에 쵸로마츠가 미심쩍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갔다 돌아온 오소마츠는 부쩍 기운을 잃고, 어딘가 정신을 딴 곳에 놓고 온 것 같았다.
그것은 카라마츠도 마찬가지였다.
어딘가 얼이 빠진 모습의 카라마츠는 돌아온 후, 뭔가에 홀린듯 일에 매달렸다.
오늘도 축제 당일이니 더 경계를 세워야한다며 젊은 텐구들과 아침 일찍 영지를 떠나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고 싶었지만, 고요히 마을을 내려다보는 오소마츠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은은하게 ‘거절’을 내비치고 있는 오소마츠를 보며 다시금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인간의 모습으로 차림을 바꾸었다.
“그럼 나도 가 볼게. 이따 신사에서 봐.”
“응~, 재미있게 즐기고 와~~”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오소마츠를 뒤로 하고 쵸로마츠가 천천히 산을 내려갔다.
홀로 남은 오소마츠가 쓸쓸히 웃고는 하늘로 날아올라 자신의 신사로 향했다.
여름에 시작하는 다른 마을의 축제와 달리 가을에 들어서야 시작하는 여우골의 축제는 다른 마을의 사람들도 많이 참여하는 행사였다.
평소보다 늘어난 인간들의 수에 빙긋 웃으며 붉은 토리이에 올라 앉은 오소마츠가 턱을 괴고 인간 마을을 바라보았다.
축제의 막바지, 불꽃놀이를 하는 다른 축제와 달리, 여우골의 축제는 옛 아카츠카 마을이 잠들어있는 ‘아카츠카 호수’에 등불을 띄우는 것으로 축제를 마무리했다.
인간들의 온갖 소망을 담은 작은 불빛이 커다란 호수를 가득 채웠다.
검은 밤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호수에 떠오른 수많은 불빛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작은 등불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며 미소 지은 오소마츠의 곁에 바람을 스치는 소리와 함께 카라마츠가 다가왔다.
카라마츠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작게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따각따각 나막신을 울리며 오소마츠의 바로 옆에 다가온 카라마츠가 낮은 목소리로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응~?”
찬찬히 고개를 든 오소마츠의 앞에 선 카라마츠가 괴로운 듯 인상을 찌푸리고 오소마츠에게 손을 뻗었다.
보드라운 오소마츠의 뺨을 카라마츠의 거친 손이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카라마츠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오소마츠.. 사랑한다.”
고백과 함께 찬란하게 카라마츠의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6.
토리이에 올라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인간들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지난 날, 신사 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청소니, 요리니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카라마츠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커다란 목재기둥을 들고 나르는 인간을 보며 카라마츠도 제법 힘이 셌던 것을 기억하고, 카라마츠의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린 순간 숨이 멎었다.
‘어라? 카라마츠의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를 향했던 카라마츠의 미소도, 수줍게 얼굴을 붉히던 앳된 얼굴도,
나를 향해 짓던 눈웃음도 막연하게 떠오를 뿐,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는 것에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설마… 잊어가고 있는 건가?’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기억의 상실을 깨닫고 허탈하게 숨을 내쉬었다.
금방이라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아직은, 카라마츠를 잊고 싶지 않았다.
쵸로마츠를 청산에 데려다 준 후, 하늘로 날아올랐다.
카라마츠의 마지막을 알고 있을 인물에게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할아범이 외출했다는 신하의 말에 먼저 방에 들어가 기다리겠다 말한 뒤, 익숙하게 방으로 향했다.
준비된 방석에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두려워 알려고 하지 않았던 사실을 듣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금 각오를 다졌다.
두려웠다. 카라마츠의 마지막을 듣는 것이.
내가 카라마츠와 함께 한 시간은 겨우 1년 남짓.
그 이후의 카라마츠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나는 보지 않았다.
내가 곁에 없는 카라마츠를 보는 것이 너무나 괴롭고 힘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카라마츠를 잊고 싶지는 않았다.
카라마츠를 완전히 잊지 않기 위해, 나는 각오를 다지고 이 자리에 온 것이다.
“기다렸느냐?”
반갑게 웃으며 자리에 앉는 할아범에게 인사도 생략하고 카라마츠에 대해 물었다.
내게 카라마츠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잘 알고 있는 할아범은 나 몰래 인간계를 보는 거울로 카라마츠의 모든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본 유일한 인물이었다.
“왜 갑자기 그런 것을 묻느냐.”
“할아범, 나는 그 녀석을 잊고 싶지 않아…”
부드러운 할아범의 목소리에 결국 참았던 눈물이 한 방울 흘러 내렸다.
소매로 눈물을 닦는 나를 가만히 바라본 할아범이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느냐?”
“응. 이제 돌아가야지. 녀석들도 걱정하고 있을거야.”
꼬리를 흔들며 할아범에게 작별인사를 하자, 할아범의 커다란 손이 내 머리에 내려왔다.
온화한 얼굴로 내 머리를 쓰다듬는 할아범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피식, 안심한 얼굴로 나를 배웅하는 할아범에게 인사한 후, 발길을 돌려 청산을 향했다.
“오소마츠 형! 좀 제대로 먹어!!”
쵸로마츠의 잔소리를 대충 흘러 넘기며, 눈 앞에 앉아 밥을 먹는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옆에 앉은 여성이 정성스레 카라마츠의 식탁에 올라와있는 구운 생선의 뼈를 발라주고 있었다.
만약 카라마츠가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저런 아름다운 신부를 얻어 토끼 같은 자식을 슬하에 두고 잘 살았겠지…
할아범에게 카라마츠의 마지막을 들은 이후로, 카라마츠가 머리속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내가 사라져도 형제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갔을 것이라고 낙관했던 나의 안일함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나를 위해, 이 땅을 일구고 다시 마을을 세워준, 사랑스러운 카라마츠…
아직도 흐릿하게 떠오르는 카라마츠의 얼굴에, 너무나도 카라마츠가 보고 싶어졌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쵸로마츠에게 산책을 갔다 온다 말한 후, 할아범에게 들은 카라마츠의 묘지로 향했다.
‘마츠노’라고 쓰여진 커다란 비석에 손을 올리자 땅의 차가운 기운이 그대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아, 카라마츠 너는…’
결코 길지 않은 네 평생을, 오직 나를 위해 이 마을에 바치고 이 차가운 땅에 잠들었다.
비석을 쓰다듬는 손이 뿌옇게 흐려지며 눈물이 떨어졌다.
카라마츠를 보고 싶다는 그리움과, 서서히 그를 잊어가고 있다는 죄책감이 뒤섞여 뭐라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왜 지금 이 자리에, 내 곁에, 카라마츠가 없는 것인지 하늘을 원망했다.
‘신’이면서도 하늘을 원망한다니, 자신의 어리석음에 자조하며, 차가운 비석을 카라마츠에게 했던 것처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오소마츠!!”
익숙한 낮은 목소리에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고 고개를 돌렸다.
제발 내 눈가에 남은 눈물자국을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온 카라마츠에게 미소지었다.
“혹시, 그 비석의 주인이.. 오소마츠가 과거 사랑했던 아이인가..?”
카라마츠의 물음에 저도 모르게 놀라 숨을 삼켰다.
묵묵히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카라마츠가 한숨을 내쉬며 쓰게 웃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카라마츠는 이미 내 대답을 알고 있었다.
처연히 서서 나를 바라보는 카라마츠의 눈빛에 가슴이 찔려,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의 눈길을 피했다.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 같은 영혼을 지녔어도, 텐구 카라마츠는 나의 카라마츠는 결코 아니었다.
스스로 그것을 몇 번이고 되새기며 확인하고, 인지해 온 사실이었다.
그런데 스스로 그어 놓은 카라마츠와 텐구 카라마츠 사이의 경계선이 세월의 풍파에 깎여 희미해지고 말았다.
희미해진 경계를 넘어 들어온, 텐구 카라마츠와 카라마츠를 향한 마음이 뒤섞였다.
경계가 사라지고 한데 어우러진 감정에 제대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물에 떨어진 한 방울의 먹물 마냥, 서서히 물에 섞여 희미해지는 카라마츠를 향한 마음은 나를 옭매고 혼란으로 이끌었다.
미안해, 카라마츠.
너를 잊어가고 있는 나를, 부디 용서해 줘.
네가 너무나 보고싶어…
그리움을 담아 카라마츠의 비석을 쓸어올리는 손이 별안간 강한 힘으로 붙잡혔다.
커다란 손으로 내 손을 꼭 쥐고 나를 바라보는 카라마츠의 눈빛에 담긴 열기에 눈도 피할 수 없었다.
강한 눈빛에 담긴 애정과 질투가 여실히 드러났다.
슬픔을 참아내는 애틋한 얼굴에 눈가가 풀어졌다. 손을 뻗어 온기를 간직한 따뜻한 카라마츠의 뺨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왜, 그런 얼굴 하고 있어-“
달래주려 한 말에 카라마츠의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에 돌아가자고 말을 꺼냈다.
억지로 미소를 만들며 대답한 카라마츠와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청산을 향해 날아가는 길에 보이는 인간 마을의 불빛에 묘하게 슬퍼졌다.
“오소마츠.. 사랑한다.”
담담히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카라마츠의 말에 가슴이 울렁였다.
지금까지 카라마츠와 함께 지내온 세월이 눈 앞을 스쳐 지나갔다.
벌써 백년이 넘는 긴 시간을 함께 해 왔다.
백년이 넘는 긴 시간은, 일 년 남짓했던 카라마츠와의 시간을 덮는데 충분했다.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어느새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은 카라마츠가 서서히 카라마츠의 기억을 지우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이 어린 카라스텐구를 사랑해버리고 말았다.
심호흡을 하고 잔잔히 나를 바라보는 카라마츠와 눈을 맞추었다.
눈물 맺힌 눈이 반짝이며 나를 비추고 있었다.
우는 얼굴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져, 새삼 자신에게 당황하면서 손을 뻗어 카라마츠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빙긋 웃으며 카라마츠의 손을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나도 사랑해..”
* 7편은 월요일 전에 올릴 수 있도록 힘내겠습니다ㅎ
* 이제야 드디어! 연인이 된 카라마츠와 오소마츠 이야기였습니다ㅎㅎ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소마츠상 > (카라오소│오소른) 여우골이야기 (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라오소/오소른] 여우골이야기:청혼 (1) | 2016.12.23 |
---|---|
[카라오소/오소른] 여우골이야기:평화 (4) | 2016.12.12 |
[카라오소/오소른] 여우골이야기:가족 (6) | 2016.11.27 |
[카라오소/오소른] 여우골이야기:도도메키와 인연(因緣) (8) | 2016.11.19 |
[카라오소/오소른] 여우골이야기:첫만남 (17) | 2016.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