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편입니다! 다행히 늦지 않았네요ㅎ
* 이번편은 쉬어가는 느낌의 편입니다. 느긋하게 즐겨주세요ㅎ
* 작중에 등장하는 요괴나 신의 설정은 전부 제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이치마츠가 가족이 되고 벌써 수십 년이 지났다.
작은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던 이치마츠는 훌륭히 자라 성체가 되었고, 자유자재로 고양이와 인간의 모습으로 바꿀 수 있도록 되었다.
어릴 적엔 그렇게나 오소마츠 뒤를 졸졸 따라다녔던 이치마츠는 이제 스스로 마을의 고양이들과 놀러다니며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오소마츠와 함께 토리이 위에 앉아, 고양이 특유의 날카로운 감각으로 마을을 살피는 이치마츠의 뒷모습을 흐뭇한 얼굴로 쵸로마츠가 바라보았다.
느긋하게 해가 청산 저편으로 저물어가는 하늘에 검은 그림자가 생겨났다.
서서히 그 그림자가 신사로 다가옴에 따라 쵸로마츠가 신사 입구로 걸어나가 마중을 나왔다.
“카라마츠~!”
신사 입구의 토리이 위에 앉은 오소마츠가 쵸로마츠보다 먼저 손을 흔들며 카라마츠를 맞이했다.
카라마츠도 신사에 발을 딛고 오소마츠에게 가볍게 인사한 뒤, 쵸로마츠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아니, 딱히 무슨 일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니다.”
쵸로마츠의 물음에 대답하며 흘끔 오소마츠가 앉아있는 토리이를 바라보는 카라마츠를 쵸로마츠가 가늘게 뜬 눈으로 응시했다.
이 바보 카라스텐구는 이렇게나 빤히 드러나는데도 아직도 오소마츠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자기 자신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다니, 한심하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카라마츠우~”
반갑게 웃으며 토리이에서 내려온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다가왔다.
카라마츠도 얼굴을 활짝 피고 미소를 지으며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카라마츠가 수줍게 웃는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팔을 뻗은 순간, 커다란 뭔가가 카라마츠를 덮쳤다.
순식간에 오소마츠에게서 내쳐진 카라마츠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저리 꺼져! 개똥마츠!”
이치마츠가 오소마츠를 지키고 서서 카라마츠를 죽일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이치마츠의 소행이라는 것을 깨달은 카라마츠가 한숨을 푹 내쉬고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났다.
성체가 되고 많이 철이 든 이치마츠였지만, 단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카라마츠를 향한 태도였다.
여전히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싫어했다.
억울하단 얼굴로 이치마츠에게 다가간 카라마츠를 이치마츠가 귀를 곤두 세우고 위협했다.
“너도 매번 당하면서 학습이란 걸 좀 해…”
오소마츠에게 다다가고 싶어하면서도 이치마츠의 경계에 울상을 짓는 카라마츠를 말리며 쵸로마츠가 중얼거렸다.
오늘도 거하게 남은 손등의 발톱자국을 쓰다듬으며 카라마츠가 청산을 향해 날아갔다.
앞으로는 이치마츠가 없는 때를 골라 찾아가자고 다짐하며 카라마츠가 시선을 내린 순간, 함께 쓰러져 있는 두 개의 인영이 눈에 비쳤다.
본래 호기심이 많은 까마귀에 근본을 둔 카라마츠는 본능에 따라 날개를 접고 땅으로 내려왔다.
과거 이치마츠와 같은 정도의 어린 요괴 둘이 손을 잡고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살펴보니 어쩐지 카라마츠 자신과 닮은 얼굴에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카라마츠가 조심스럽게 두 아이를 안아 들었다.
늘어난 무게에 더 힘차게 날개를 퍼덕이며 카라마츠가 영지를 향해 날아올랐다.
2.
“얘들아~!! 놀자~!!”
친구의 집 앞에서 목청껏 외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나오려고 준비하고 있는 건가?
곧 나올 것이라 믿고 한참을 문 앞에서 기다렸지만, 친구는 해가 질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어디가 아픈걸까?
고개를 기울이고 문 앞을 떠나 집으로 걸어갔다.
오늘도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았다.
금방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물고기를 잔~뜩 잡아서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엄마와 아빠는 벌써 일주일이 세번이나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아무도 없는 빈 집은 조금 외롭다. ‘구우우-‘ 하고 울리는 뱃고동에 오늘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을 깨닫고 산으로 향했다.
산에는 먹을게 많다.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열매도 있고, 땅을 잘 보면 구워 먹으면 맛있는 도마뱀도 많다.
요즘은 갑자기 많이 없어졌지만…
온 산을 헤집고 다니며 잡은 도마뱀 두 마리와 나무 열매 3개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산에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주친 마을 어른들에게 엄마에게 배운대로 인사했지만, 아무도 내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엄마가 돌아오면 내가 뭘 잘못한 건지 다시 물어봐야겠다.
방 중앙에 있는 화로에 불을 붙이고 도마뱀을 꼬치에 꿰어 화롯가에 올려놓았다.
노릇노릇 구워진 도마뱀을 맛있게 먹으며 내일은 누구집에 놀러갈지 생각했다.
오늘 찾아간 쇼타도, 어제 찾아간 소라도, 엊그제 찾아간 토마도 아픈건지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았다.
다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그럼 내일은 산에 있는 작은 신사에 가자!!
모두의 감기가 빨리 나을 수 있도록 신님에게 기도하자!
내일 열심히 기도하면 내일 내일은 다 같이 놀 수 있을거야!!
그러면 같이 산에 올라가서 도마뱀을 잡자!
화롯가의 불을 끄고 이불을 깔아 누워 다 함께 놀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바삭바삭 소리가 나는 낙엽이 재미있어 언제까지고 밟고 있다보니 어느새 주변이 어두워진 것을 눈치챘다.
신님에게 모두가 건강해지도록 소원도 빌었고, 돌아갈까!!
넘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산을 내려와 마을을 향해 뛰었다.
마을 입구가 보일 즘, 입구에 서 있는 한 아이를 발견했다.
못 보던 얼굴!!
“안녕!!”
“우왓!! 아, 안녕하세요…”
아이가 입고 있는 하얀 옷은 군데군데 먼지가 묻어 더러워져 있었다.
나처럼 산에서 놀고 온 걸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이에게 “나는 쥬시마츠야!” 하고 인사하자, 아이도 “아, 토도마츠라고 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새 친구!! 내일은 토도마츠랑 놀자!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구우우-“ 하고 배가 울리는 소리가 났다.
응? 근데 내가 아니야??
토도마츠가 배를 잡고 얼굴을 빨갛게 하고 있었다.
어? 얼굴이 빨갛다는 건… 감긴가?!
그럼 빨리 따뜻하게 해 줘야 돼!!
“우리 집으로 빨리 가자!!”
“에, 에?!”
토도마츠 손을 잡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뒤에서 “그만 멈춰 줘어어어어어어!!!” 하고 신음소리가 들렸지만,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빨리 뛰어서 마을 끝에 있는 우리 집에 도착하자마자 화롯불을 피웠다.
감기에 걸렸을 때는 몸을 따뜻하게 해 줘야 한다고 엄마가 그랬어!!
불을 피우자 토도마츠가 불에서 저 멀찍이로 떨어져 앉았다.
몸을 따뜻하게 하려면 불가에 있어야 해?
손을 잡아 끌자 고개를 휘저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우응-, 그러면 감기가 빨리 안 낳는다고?
그런데 또 “구우우-“ 하고 소리가 났다.
아!! 토도마츠 배에서 나는 소리구나!! 이제야 알겠다.
토도마츠에게 줄 도마뱀을 꼬치에 꿰어 불에 구워서 내밀었더니 토도마츠가 머뭇거리며 받았다.
“맛있어!!”
“아, 응… 고마워.”
뜨거운지 천천히 도마뱀을 뜯어먹는 토도마츠를 따라 나도 도마뱀을 먹었다.
응! 역시 맛있어!!
갈 곳이 없다는 토도마츠의 말에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고 했다.
어쩌면 같이 지낼 수 있을지도!! 그러면 좋겠다-!!
오랜만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만족해하며 눈을 감았다.
“똑, 똑”
어? 이 시간에 누구-?
문을 열었더니,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할아버지 뿐만 아니라 마을의 어른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어라? 오늘은 무슨 날이야?? 축제인가? 나도 불러주려고 온 거야?
“쥬시마츠, 오늘 낯선 이가 마을에 들어온 것 같은데…”
“응! 토도마츠!! 감기 걸린 것 같아서, 내가 데려왔어!!”
“타인을 마을에 들이면 어쩌자는게냐?!!!”
“에…”
어? 그치만, 토도마츠는 내 친구야? 데려오면 안 되는 거야?
잘 모르겠어…
할아버지는 짚고 있는 지팡이를 흔들며 막 화를 냈다. 어른들도 모두 화를 냈다.
“빨리 내쫓아 버려!!”
할아버지가 말했다.
어른들이 우리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싫어! 토도마츠를 보내다니!!
집 문을 꽉 닫고 들어오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어른들의 힘은 나보다 훨씬 셌다.
우르르 몰려 들어온 어른들은 아직 자고 있는 토도마츠를 억지로 깨워 끌고 나갔다.
“안 돼!!! 데려가지 말아주세요!!”
어른들을 따라가면서 외쳤지만, 어른들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왜 데려가는 거야? 왜 있으면 안 돼? 겨우 생긴 친구인데!!
마을 입구에 토도마츠를 던진 어른들이 토도마츠에게 다시는 얼씬도 하지 말라며 땅에 침을 뱉었다.
토도마츠도 아직 어린데, 왜 그렇게 심하게 하는 거야?
어른은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거라고 엄마가 그랬는데!!
토도마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 마을을 떠나 걸어가기 시작했다.
점점 멀어지는 토도마츠의 등에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어른들에게 둘러 싸여 있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왜 토도마츠를 내쫓아야 하는 거냐고 물었지만, 대답해주지 않았다.
아, 토도마츠가… 점점 더 멀어진다.
이제 만날 수 없어?
그런 거… 싫은데!!!
마을을 나와 토도마츠를 향해 뛰었다.
내가 뛰면 아무도 쫓아오지 못 해. 전속력으로 토도마츠에게 뛰어가 토도마츠를 붙잡았다.
“잠깐!! 토도마츳!!”
“어? 쥬시마츠? 왜 왔어?”
“가지 마!! 나랑 같이 살자!”
“…안 돼. 나는 이방인이니까, 그 마을에서 살 수 없어…”
그치만, 토도마츠 엄청 지쳐보이는 걸…
“그럼 나도 갈래!!”
“에..?”
“나도 토도마츠랑 같이 갈래!!”
“어? 그치만 쥬시마츠는 마을에서…”
“괜찮아!! 어른들 모두 나 싫어하는 걸…”
“…그럼 같이 가자.”
“응!!”
토도마츠가 내민 손을 잡고 웃으니까 토도마츠가 웃어줬다.
둘이 손을 잡고 걸어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토도마츠도 마을에서 미움을 받다가 쫓겨났다고 했다.
그리고 토도마츠가 나보다 어렸다!
나는 벌써 30년은 살았는데, 토도마츠는 20년 밖에 안 살았다고 했다.
그럼 내가 형아네!!! 그렇게 말했더니 토도마츠가 웃으며 나를 “쥬시마츠 형아-!” 하고 불러 주었다.
엄~~청 기뻤다. 우리는 둘이서 같이 살 수 있는 곳을 빨리 찾기를 바라며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3.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되고 나서야, 인간들 사이에서 유키온나(설녀(雪女))라는 요괴가 제법 인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 유키온나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 대체 무슨 반응을 할까?
항상 눈이 내리는 북쪽의 높은 산에 우리 마을이 있었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그래도 제법 살아갈 만한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태어난 유일한 유키오토코(설남(雪男))이었다.
보통 유키오토코라하면 온 몸에 흰털이 나 있는 짐승과도 같은 모습을 한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유키온나 누나들처럼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언뜻보면 인간으로 착각할 정도로 나는 인간과 닮아 있었다.
인간에 비해 굉장히 차가운 체온만이 내가 유키오토코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마을 내에서 내 존재는 굉장히 간단했다.
‘변종’.
그것이 마을 사람들이 나를 가리키는 명칭이었다.
유키오토코면서 유키온나와 비슷한 외견, 사납지 않은 성격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저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나는 이미 부모도 없이 마을 구석에 자리한 비루한 초가집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나를 따돌리기는 해도, 신체적인 괴롭힘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일이 터지고 말았다.
인간 마을로 몰래 내려갔던 한 마을 사람이 무시무시한 소식을 가지고 온 것이다.
우리 마을에 인접한 인간 마을에서 매년 발생하는 냉해*로 유키온나 사냥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냉해 : 여름철의 이상 저온이나 일조량 부족으로 농작물이 자라는 도중에 입는 피해.
우리 유키온나는 주변의 온도를 낮추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냉해가 우리의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인간들은 절대적으로 우리의 탓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즉시 마을의 어른들이 모여 회의를 열었다.
먹을 것을 찾아 늦은 밤까지 마을을 어슬렁거리던 나는 우연히 마을 사람들의 회의를 엿듣게 되었다.
“그럼.. 역시 그 아이를 미끼로 써서…”
“인간들을 유인하게 한 뒤에 우리는 옆 산에 있는 마을로 피신을 하는게…”
“음.. 역시 그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작은 목소리로 소근대는 마을 사람들의 대화에 충격을 받은 나는 옷자락을 꽉 쥐었다.
어른들이 말하는 ‘그 아이’는 분명 나를 말하는 것이다.
나를 미끼로 써서 인간들을 유인하도록 한 뒤에 자신들은 안전한 옆 마을로 피신하겠다는 대화를 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잔인함에 치가 떨렸다.
계속 이 마을에 있으면 영락없이 미끼가 되어 죽을 것이다.
각오를 다지고 집에 들어가 간단한 짐을 꾸려 마을을 나왔다.
평생 마을에서 살아온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여행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지만, 가만히 앉아서 미끼가 되어 개죽음을 당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처음 떠난 여행길은 내 생각보다 더 고되었다.
인간들을 피해 험한 산길만을 돌아다니다보니 싸온 음식은 금새 바닥나고 나는 거의 매일을 굶주린 채, 걸어다녀야 했다.
어쩌다 운 좋게 인간마을을 발견하면 몰래 그 마을에 숨어들어 음식을 훔쳤다.
하지만 그 시대의 인간 마을은 서로 몰려있지 않았기에 나는 대부분의 날을 굶주려야 했다.
쥬시마츠 형의 마을에 도착했을 때도 나는 배가 고픈 상태였다.
그 마을이 인간들의 마을이 아닌 요괴들의 마을이라는 것을 깨닫고, 조금이라도 음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웃거리고 있을 때, 쥬시마츠 형이 나타났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나를 집에 들이고 음식(도마뱀이었지만…)까지 내어준 상냥한 쥬시마츠 형.
이대로 이 마을에서 쥬시마츠 형과 함께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이방인을 허용하지 않는 요괴들은 나를 내쫓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쥬시마츠 형 덕분에 주린 배도 채웠고, 오랜만에 푹신푹신한 이불에서 잤으니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터벅터벅 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커다란 발소리와 함께 쥬시마츠 형이 나를 붙잡았다.
함께 살자는 쥬시마츠 형의 제안을 거절하고 떠나려는데, 놀랍게도 쥬시마츠 형이 따라가겠다고 말했다.
언뜻 봤을 때, 쥬시마츠 형도 나와 마찬가지로 마을에서 안 좋은 대우를 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힘든 여행길에 동료가 생긴 것이 기뻐서 어딜가나 쥬시마츠 형의 손을 꼭 잡고 다녔다.
쥬시마츠 형은 뭔가를 찾아내는 일을 잘해서 쥬시마츠 형과 함께 여행하면서 굶는 일은 크게 줄었다.
그래도 머물 곳이 없는 것은 어린 우리들에게 너무나 힘겨웠다.
몇 년이고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이방인인 우리를 받아주는 마을은 없었다.
서서히 몸과 마음이 한계에 다다랐다. 쥬시마츠 형도 지쳤는지, 그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도착한 마을이 인간들의 마을이라는 것에 절망한 우리는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꼭 잡은 손에서 서서히 쥬시마츠 형의 체온이 낮아지는 것을 느끼며 의식이 서서히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정신을 잃기 바로 직전, 새의 날개가 퍼덕이는 소리가 들렸다.
4.
치비타에게 일을 모두 끝냈다는 확인을 받고 겨우 집무실을 빠져 나왔다.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이미 하늘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신사에 도착할 즈음엔 저녁 식사 시간이 될 것이다.
그렇게되면 오랜만에 오소마츠의 요리를 맛 볼 수 있게 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일이 늦게 끝난 것도 왠지 고마웠다.
복도를 따라 걸어 마당에서 뛰어놀고 있는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를 불렀다.
우리 영지에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하면 몰라볼 정도로 건강해진 둘은 우렁차게 발소리를 울리며 내 앞으로 뛰어왔다.
“카라마츠 형아! 밥! 밥임까아~?!”
“카라마츠 형! 벌써 밥 먹을 시간?”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나를 ‘형’이라 불러주는 두 아이의 모습에 절로 신음이 나왔다.
이 얼마나 귀여운 아이들인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도 이 아이들 앞에서는 그 빛을 잃을게 분명했다.
쥬시마츠와 토도마츠의 순수함과 귀여움을 찬양하고 있으니 옷자락이 아래로 쭉 당겨졌다.
“카라마츠 형, 또 뭔가 이상한거 생각하고 있지!”
토도마츠가 얼굴을 찌푸리고 말했다.
이상한 거라니 대체 뭘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웃어보인 후, 몸을 숙여 두 아이와 눈을 맞추었다.
“오늘은 함께 갈 곳이 있다.”
“어? 어디?”
“어디임까아~?”
“이 마을을 수호해주는 토지신의 신사다.”
““토지신?””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동시에 눈을 댕그랗게 뜨고 되묻는 아이들을 안고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 전에도 몇 번, 내게 안기어 하늘에 날아본 적이 있는 아이들은 밝게 웃으며 발 아래의 경치를 쳐다보았다.
너무 빠르지 않게 천천히 날개를 퍼덕여 부드럽게 활공해, 청산의 맞은편 여우 신사로 향했다.
날개를 퍼덕이며 신사에 발을 딛고 품에 안겨 있던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를 내려놓았다.
두리번 거리며 커다란 신사를 둘러보는 두 사람에게 오소마츠가 다가갔다.
“요! 꼬맹이들!”
““..누구세요?””
“나는 오소마츠 형아야!!”
““오소마츠 형아?””
“그래~!”
살갑게 웃으며 오소마츠가 토도마츠와 쥬시마츠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낯선 이의 등장에 몸을 움추리고 있던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는 오소마츠의 손길에 금새 경계를 풀고 방긋 웃었다.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하는 오소마츠는 초면인데도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를 예뻐했다.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도 자신들을 향한 오소마츠의 호의에 스스럼 없이 다가가 오소마츠를 ‘오소마츠 형’이라 부르며 따랐다.
자신의 뒤를 졸졸 따르는 두 아이의 모습에 과거 이치마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는지 오소마츠의 얼굴이 부드럽게 이완했다.
오소마츠를 향해 손을 뻗은 토도마츠와 쥬시마츠의 손을 마주 잡은 오소마츠가 두 아이의 머리에 입맞추며 축복을 내렸다.
정말로 가족과 같은 셋의 모습에 흐뭇하게 웃고 있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다.
쵸로마츠도 팔짱을 끼고 내 곁에 서서 가만히 오소마츠와 두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이, 개똥마츠, 비켜!”
“우왓!! 이치마츠.. 돌아온 건가.”
“아?”
“힉-“
뒤쪽에서 들려오는 험악한 목소리에 바로 몸을 돌렸다.
신사 계단을 올라온 이치마츠에게 쵸로마츠가 “어서 와.” 하고 인사했다.
“응.” 이라고 짧게 대답한 이치마츠가 신사 마당에 있는 오소마츠를 보며 물었다.
“저 녀석들은?”
“저번에 말했던, 카라마츠가 주워온 녀석들.”
“아…”
쵸로마츠가 나를 대신해 대답하자 이치마츠가 고개를 끄덕이며 오소마츠에게로 걸어갔다.
오소마츠도 이치마츠가 다가오는 것을 깨닫고 손을 흔들어 맞이했다.
“이 녀석은 이치마츠 형아야~”
오소마츠가 이치마츠를 가리키며 빙긋 웃었다.
쥬시마츠와 토도마츠가 동시에 이치마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어린 아이의 눈길에 놀란 이치마츠가 귀를 곤두세우고 뻘쭘히 섰다.
““이치마츠 형아~!!””
활짝 웃으며 이치마츠에게 다가가는 두 아이를 이치마츠가 당황하며 받았다.
갑자기 생긴 동생의 존재에 적잖이 당황했는지, 두 아이를 대하는 이치마츠의 태도가 어쩐지 뻣뻣했다.
두 아이를 이치마츠에게 맞기고 오소마츠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야~ 귀엽네-. 이치마츠 어렸을 때 같아.”
“그러네.”
오소마츠의 말에 쵸로마츠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확실히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를 돌보며 왜 오소마츠가 그렇게나 이치마츠를 싸고 도는지 알 수 있었다.
저 귀엽고 작은 여린 생명이 자신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이 세상에 대신할 것 없는 엄청난 축복이었다.
매일 성장하며 뛰노는 어린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절로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제멋대로 웃고, 신사 내를 뛰어다니는 두 아이를 돌보느라 이치마츠가 진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쵸로마츠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형’이라고 노력하네, 저 녀석..”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한 쥬시마츠를 재빨리 붙잡아 다시 일으켜주는 이치마츠를 보며 오소마츠도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저 녀석들은 계속 카라마츠 영지에서 머무는 거야?”
고개를 돌려 내게 묻는 오소마츠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아, 우리 영지에서 지내는 거에 익숙해졌고, 또 주거 환경을 바꾸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으니까. 대신에 자주 데려오겠다.”
“그래-, 자주 데려와. 이치마츠도 기뻐할 거야.”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오소마츠가 어쩐지 아이를 둔 부모와 같이 보여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오소마츠를 향해 나도 웃은 순간, 아니나다를까 이치마츠의 신발이 날아와 머리에 꽂혔다.
“아욱!!”
“오소마츠 형한테 접근하지 마, 개똥마츠!!”
5.
“드디어…”
“드디어…”
“카라마츠 형아!! 축하함다!!!!”
“…죽인다, 개똥마츠…”
수줍게 웃으며 카라마츠와의 관계를 밝힌 오소마츠를 향해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소마츠와 손을 맞잡고 있는 카라마츠를 향해 쥬시마츠가 활짝 웃으며 진심을 담은 축하를 건넸고, 이치마츠는 잔뜩 구겨진 얼굴로 카라마츠를 노려보았다.
사람 하나 죽일 것 같은 어두운 기운을 뿜어내며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에게 다가갔다.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하고 있는 카라마츠를 지나쳐 오소마츠에게 다가간 이치마츠가 오소마츠를 꼭- 안고 죽일듯이 카라마츠를 노려보았다.
오소마츠와 맞잡고 있는 카라마츠의 손을 내치지 않은 것은 이치마츠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오소마츠와 손을 맞잡고 있으면서도 이치마츠를 피해 최대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카라마츠는 그저 진땀을 흘리며 억울하단 얼굴로 오소마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상했던 그림에 토도마츠와 쵸로마츠가 헛웃음을 흘렸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이어지기를 누구보다 강하게 바랬던 둘이었다.
“이제야 좀 걱정없이 발 뻗고 자겠네-“
“헤에, 토도마츠 그렇게 걱정했었어? 웬일이래~? 냉혈괴물이…”
“나도 나름대로 걱정했다고!? 게다가 ‘냉혈괴물’이라니 뭐야!!”
토도마츠를 곁눈질하며 오소마츠와 닮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쵸로마츠가 문득 뭔가를 떠올리고 주먹을 쳤다.
“그러고보니, 그 바케네코는 어떻게 됐어?”
“아-, 카라마츠 형이 반응이 없으니까… 얼마 전에 싹 포기하고 돌아갔어.”
“진짜로 불쌍할 정도로, 카라마츠 반응 없었지…”
“카라마츠 형 눈엔 오소마츠 형만 보이니까…”
아직도 대치상태 중인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를 바라보며, 반눈으로 대화하는 쵸로마츠와 토도마츠였다.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대화하는 동안, 기어이 이치마츠의 인내심이 한계를 보였는지 카라마츠의 복부에 멋지게 이치마츠의 주먹이 꽂혔다.
말릴법도 하건만 오소마츠는 그저 하하 웃으며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저 멀찍이 카라마츠를 쫓아낸 이치마츠가 고양이로 모습을 바꾸어 오소마츠에게 뛰어들자, 오소마츠가 부드럽게 웃으며 이치마츠를 품에 안고 천천히 머리와 등을 쓰다듬었다.
골골거리는 소리를 감추지 않고 이치마츠가 눈을 감고 편안하게 오소마츠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이치마츠에게 맞은 복부를 쓰다듬으며 깊은 한숨을 쉬는 카라마츠의 어깨를 쥬시마츠가 두드렸다.
“응? 뭔가? 쥬시마츠.”
“카라마츠 형아, 진~짜로!! 축하함다!!”
“아아, 고맙다.”
명랑하게 웃는 얼굴로 다시 한번 축하를 전하는 쥬시마츠의 머리를 카라마츠가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카라마츠 자신도 깨닫지 못했던, 오소마츠를 향한 연정을 먼저 눈치챈 자상한 동생은 카라마츠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릴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 주었다.
겨우 카라마츠가 자신의 마음을 인지하고 오소마츠에게 전해, 그 결실을 맺은 것에 쥬시마츠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런 쥬시마츠의 마음을 알고 있는 카라마츠도 온 마음을 다해 쥬시마츠에게 미소지어 주었다.
“아, 맞다!! 오늘 인간 마을에 놀러 가기로 했잖아!! 쥬시마츠 형! 이치마츠 형!!”
쵸로마츠와 대화를 하던 토도마츠가 시간을 확인하고 손을 흔들며 외쳤다.
카라마츠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자 쥬시마츠도 빙긋 웃으며 카라마츠의 곁을 떠나 토도마츠에게 달려갔다.
이치마츠도 오소마츠가 “이치마츠, 조심해서 놀다 와-“ 하고 배웅하자, 고양이의 모습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토도마츠에게 걸어갔다.
함께 웃으며 신사의 계단을 내려가 인간 마을로 내려가는 동생들의 모습을 오소마츠가 조용히 바라보았다.
“축하해. 카라마츠.”
카라마츠의 등을 툭 두드리며 쵸로마츠가 덤덤하게 말했다.
카라마츠가 멋쩍게 웃으며 고맙다고 대답하자마자 쵸로마츠의 입가가 섬뜩하게 휘었다.
“만에 하나라도 오소마츠 형을 울리지 말라고-?”
“쵸, 쵸로마츠… 눈이 웃고 있지 않다…”
이치마츠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압력을 내뿜는 쵸로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가 설설 뒷걸음쳤다.
그 누구보다 오소마츠와 함께 한 시간이 긴 쵸로마츠였다.
가장 오소마츠를 이해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쵸로마츠이기에 카라마츠와의 교제에 기쁘면서도, 어쩐지 오소마츠 형을 뺏기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쵸로마츠에게 있어 그 누구보다 소중한 오소마츠 형이다.
그것을 다시금 카라마츠에게 전하며 쵸로마츠가 다시 축하의 말을 건넸다.
오소마츠가 동생들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에 새삼 놀라며 카라마츠가 고맙다고 화답했다.
붉은 토리이에 올라 천리안을 이용해 인간들 사이에 녹아들어 놀고 있는 동생들을 보며 오소마츠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면, 소중한 반려 쵸로마츠와, 배필 카라마츠가 화기애애하게 대화하고 있었다.
타오르듯 무르익은 낙엽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오소마츠가 눈을 감고 기쁘게 중얼거렸다.
“이야- 평화롭네~”
* 이번편으로 육둥이가 모두 만나게 되었습니다! 카라마츠와 오소마츠도 동생들에게 인정받게 되었네요ㅎ
* 다음편은 다음주(새벽이 되었으니 이번주네요...) 주말에 올릴 예정입니다ㅎ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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