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최종화입니다!!!


* 점심시간을 틈타 올려요..ㅎㅎ


* 하편은 지금 작성 중입니다. 오늘 밤 안으로 올릴 예정입니다.


* 마지막편답게 '그 분'이 나오십니다ㅎㅎ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여섯 명의 가족이 모두 모인 한 방. 

얌전히 방석 위에 앉아있는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를 제외한 동생들은 저마다 바쁘게 움직이며 곧 있을 혼례의 준비를 했다. 

지인들의 명단을 쭉 훝어보며 초대장을 보낼 자들을 골라내는 쵸로마츠와 혼례에 사용된 옷감을 고르는 토도마츠,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는 머리를 맞대고 앉아 신사를 장식할 작은 장식을 만들고 있었다. 

오소마츠가 동생들을 향해 “어이~” 하고 불렀지만, 오소마츠의 부름도 듣지 못할 정도로 동생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냥 대충해도 괜찮잖아~?”

“““““절대 안 돼!!!!”””””

오소마츠의 말에 하나같이 발끈하며 외치는 동생들을 보며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가슴에 등을 기댔다.


“너무 열심인거 아니야? 횽아 심심한데~”

“하하하, 쵸로마츠들에게 맡겨둬라.”

볼을 부풀리며 불평하는 오소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카라마츠가 기쁘게 웃었다. 

대국주님에, 토토코, 텐구들까지,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 모든일을 이겨내고 겨우 부부로서 모두에게 인정받은 둘이었다. 

찰싹 달라붙어 알콩달콩 대화를 나누는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를 보는 동생들의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지금까지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에게 많은 은혜를 받아온 동생들로서는 이 혼례야말로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치뤄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치마츠와 쥬시마츠, 토도마츠는 어린 시절 전국을 헤매다가 여우골에 흘러들어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의 비호 아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컸다.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없었다면 지금의 성체가 된 자신들의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쵸로마츠도 오랜 세월 반려로서 함께 해온 오소마츠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며, 부부로서 살아가는 그 첫걸음이 될 혼례만큼은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쥬시마츠의 혼례를 준비했던 경험을 백 배 살려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혼례를 준비하고 있는 이유였다. 


“야호~, 토토코 왔어~!”

“어서 와, 토토코.”

별안간 벌컥 문이 열리며 들어온 토토코가 오소마츠의 인사를 받고는 토도마츠의 옆에 가 앉았다. 

이번 혼례는 토토코도 두손두발 벗고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토도마츠의 옆에 앉아 함께 옷감을 살펴보는 토토코에게 미소지은 토도마츠가 흰 옷감을 건네며 “이거 어떨까요?” 하고 묻자, 토토코가 “응~, 기왕이면 비단이 낫지 않을까?” 하고 대답했다. 

오소마츠가 보기엔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흰색의 옷감들을 바닥 가득 펼쳐놓은 토도마츠와 토토코가 이리저리 옷감을 들고 내려놓으며 의견을 주고 받았다. 


“그러고보니, 그 인간하고는 어떻게 됐어?”

오소마츠에겐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토토코가 은근히 물었다. 

피식- 웃음을 흘린 토도마츠가 “잘 됐어요. 다음에 오소마츠 형 보러 온다고 했고.” 하고 대답했다. 

토도마츠를 인간으로 만들어주겠다며 소동을 일으킨 후, 토토코는 토도마츠에게 신경을 썼다. 

오소마츠와 화해한 후, 자주 여우골에 놀러오게 된 토토코는 토도마츠에게 왜 인간이 되고 싶었냐고 물었고, 토도마츠는 솔직히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이 이후로 여우골에 올 때마다 토토코는 토도마츠에게 말을 걸었다. 

토도마츠의 대답에 토토코가 활짝 웃으며 “잘됐다~!!” 하며 손뼉을 쳤다. 

오소마츠의 말을 듣고 토도마츠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접었다. 

아츠시를 생각하면 인간이 되고 싶었지만, 인간이 되어서 오소마츠와 헤어지게 되는 것은 싫었다. 

토도마츠에게 있어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는 부모와 같았기에, 그 둘과 헤어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일이었고,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인간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접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치마츠가 토도마츠를 찾아왔다. 

사색이 되어 덜덜 떨고 있는 이치마츠를 걱정하며 무슨 일이 있었냐 묻자 이치마츠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안, 토도마츠. 그, 네 인간 친구녀석에게 요괴인거.. 들켰어.”


이치마츠의 말에 토도마츠는 이치마츠를 감싸주려던 팔을 멈추고 숨을 삼켰다. 

이치마츠는 꼬리와 귀를 축 늘어뜨리고, 신사 아래에서 고양이의 모습에서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아츠시에게 들켰다며 사과를 반복했다.

“내가 제대로 주위를 살피지 않아서… 미안해.” 하고 울먹이는 이치마츠를 보며 토도마츠는 어쩐지 마음 속 한 구석에 박혀있던 가시가 빠진 것 같은 시원함을 느꼈다. 

두 눈을 꼭 감고, 꼭 혼날 것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덜덜 떨고 있는 이치마츠의 등을 통- 두드려준 토도마츠가 “괜찮아~” 하고 웃었다. 

그 후, 아츠시에게는 자신의 마음과 함께 자신도 요괴라는 것을 밝혔다. 

이제 만날 수 없다는 말을 하려는 토도마츠를 붙잡은 아츠시는 비장한 얼굴로 “괜찮아. 나도 토도마츠 군을 좋아해. 이제 만날 수 없는 건 싫어.” 하고 고백했다. 

그 때 얼마나 심장이 두근거렸는지, 지금도 떠올리기만 하면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아직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고백받은 이후로 토도마츠는 아츠시와 작은 사랑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나중에 아츠시 군이 오소마츠 찾아오면 또 한바탕 난리나는거 아니야?”

사악한 미소를 띠우고 웃는 토토코를 보며 토도마츠가 쓰게 웃었다. 설마 그럴까 싶어 손사래를 치는 토도마츠를 보며 토토코가 빙그레 웃었다.


“..뭔가, 들어왔어.”

카라마츠에게 기대어 앉아있던 오소마츠가 눈썹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는 오소마츠의 결계를 넘어 뭔가가 마을 안으로 침입해 들어왔다. 

오소마츠의 결계를 넘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진 침입자에 오소마츠가 잔뜩 긴장하고 꼬리의 털을 곤두세웠다. 

귀를 움찔거리며 사방의 소리에 귀 기울인 오소마츠가 방을 뛰쳐나가 신사의 마당으로 향했다. 

자연히 카라마츠도, 토토코도, 동생들도 함께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으로 나간 오소마츠를 향해 까악까악- 하고 다급하게 울며 내려온 오소마츠의 사역마 쿠로가 오소마츠의 머리 위를 맴돌며 울었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오소마츠가 신사 아래를 바라보았다. 천리안을 이용해 온 마을 안을 살피는 오소마츠의 옆에 카라마츠가 섰다. 


“거짓말. 이 기운은…”

오소마츠의 뒤편에 서 있던 토토코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오소마츠가 토토코를 보며 대체 무슨 기운이냐고 묻기도 전에 터벅터벅 발소리가 울렸다. 

모두 꿀꺽 침을 삼키며 계단을 오르고 있는 인물에 집중했다. 

서서히 머리 하나가 신사로 오르기 시작해 이윽고 얼굴이 보였다.



“..토, 고상…”

“어라? 오소마츠?”

오소마츠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계단을 모두 올라 토리이 아래에 선 인물은 오소마츠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2.


“이야~ 설마 네가 토지신이 되어 있을 줄이야~”

오소마츠가 준비한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며 토고가 웃었다. 

자신의 옆에 앉은 오소마츠의 어깨를 팡팡 내려치며 한 손엔 구운 고기를 집어들고 입에 넣은 토고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세월이 많이 지났어~ 마지막으로 본 후로 몇 년 만이지?”

“오백년은 족히 넘었네요..”

“벌써 그렇게 됐나~”

토고의 질문에 얌전히 대답하는 오소마츠가 짧게 웃었다. 

갑자기 나타난 인물이 오소마츠의 지인이라는 것에 상 맞은편에 앉은 동생들은 그저 어리둥절했다. 

토고의 정면에 앉은 토토코는 말없이 음식을 입에 옮기며 토고를 죽일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토고 씨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어이어이, 토고 씨라니~ 딱딱한 호칭 그만 둬? 어릴 때처럼 ‘토고 형님’ 이라고 부르라고!”

“하하하, 저도 이젠 어른이니까요.”

“뭐, 맘대로 해라.”

“계속 여행하셨던 건가요?”

“그렇지! 전국을 돌아다녔어.”

젓가락 한 가득 집어올린 고기를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으며 토고가 빙긋이 웃었다. 

기본적인 식사예절조차 갖춰지지 않은 토고의 먹는 모습에 동생들이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 

주의를 줄 법도 한데, 오소마츠는 말없이 토고의 말을 들으며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오소마츠가 따라준 술을 입에 털어넣고 “크햐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은 토고가 말을 이었다.


“전국을 다니는건 정말로 즐거웠다고? 오소마츠 너도 같이 갔으면 좋았을텐데!!”

“오소마츠 군은 수행하느라 바빴어!”

토고의 말에 토토코가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이는 토토코의 말은 무시한 채, 토고가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처음엔 야마토(지금의 나라현)에 갔는데~, 사원도 많고, 사슴도 많고 해서 뭐가 뭔지.. 그곳엔 100년 정도 머물렀는데, 우연히 ‘기린*’을 만났지 뭐야!!”

*기린 : 사슴의 몸에 소의 꼬리와 말과 같은 발굽과 갈기를 가진 환상의 동물. 자비롭고 덕이 많은 짐승이라 알려져 있다. [출처 – 나무위키]

“그러셨나요.”

“응! 신수잖아! 직접 보니까 정말로 압도될 정도로 커다랗고 영롱한 기운을 뿜어내서.. 다가가지도 못하고 멀리서만 쳐다봤어. 그 다음엔 류큐(지금의 오키나와)에 갔는데, 바다가 아름답더라. 바닥까지 비치는데다 그곳에 사는 물고기들이 특히 아름다워서! 아, 그런데 맛은 없었어. 그리고 거긴 1월에 벚꽃이 핀단 말이야? 딱 이 즈음. 아직 추운 겨울에 보는 벚꽃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특히 내가 갔을 때는 눈까지 내려서!! 하얀 눈과 벚꽃이 함께 공중에 흩날리는게 얼마나 아름답던지!!”

신나게 자신의 여행담을 쏟아내던 토고가 말을 멈추고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따끈한 술로 목을 축인 후, 토고는 멈추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그 다음엔, 훗카이도에 갔지. 역시 춥더라~ 눈축제도 보고 왔어. 그리고 거기가 유키온나(설녀)의 거주지잖아? 그래서..”

“거기 음식은 어땠나요?”

‘유키온나’란 단어에 토도마츠의 몸을 움찔거렸다. 훗카이도라면 토도마츠의 고향이기도 했다. 

토도마츠가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눈치챈 오소마츠가 재빨리 질문을 던져 토고의 말을 바꾸었다. 

아무런 의심 없이 오소마츠의 질문에 눈을 굴리며 기억을 더듬은 토고가 대답했다.


“음식은 뭐, 맛있었어. 아! 거기 ‘삿포로 맥주’ 라고 하는 술이 있는데! 맛이 기가 막히더라고. 그리고 그 후엔 교토도 갔어. 아오이마츠리보러. 인간들 사이에선 고귀한 축제라느니 뭐라느니 하는데, 딱히 볼거리는 아니었어. 수확이 하나 있다면 거기서 스즈카고젠*을 만났어!! 미인이더라~ 나니와(지금의 오사카)도 갔는데!! 오사카성이니 뭐니 그런건 볼 가치도 없고, 음식이 제일 좋더라.”

*스즈카고젠 : 일본의 전설 속에 나오는 귀녀. 오니로서 알려져 있지만, 설화에 따라 그 정체와 묘사는 천차만별이다. [출처 : 나무위키]

“어떤 음식이요?”

토고의 말에 처음으로 오소마츠가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술기운이 올랐는지 실실 웃으며 토고가 손을 휘두르며 말을 이었다.


“타코야키랑 오코노미야키가~!!”

손을 움직여 음식을 만드는 손짓을 하며 토고가 호쾌하게 웃었다. 

오소마츠는 처음 듣는 음식 이름에 귀를 기울이고 토고를 바라보았다.


“타코야키는 문어 다리를 넣은 떡 같은 건데, 맛있어! 오코노미야키도! 오코노미야키는 히로시마 것도 먹어봤는데, 역시 나니와게 제일 맛있더라고. 그리고.. 인간들이 맛있어하던 도지마롤도.”

“도지마롤도 먹어보셨어요?!”

토고의 말에 토도마츠가 눈을 빛내며 얼굴을 들었다. 

도지마롤이 뭔지 모르는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토도마츠, 그게 뭐야~?”

“생크림이 들어간 롤케이크야! 쥬시마츠 형. 엄~~~청 맛있대!!”

쥬시마츠의 물음에 토도마츠가 빙긋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토고는 토도마츠의 말에 손가락을 가리키며 “응, 맞아. 그거. 내 입맛엔 안 맞더라.” 하고 말했다. 다시 꿀꺽- 하고 목을 울리며 술을 넘긴 토고가 한층 붉어진 얼굴을 찡그리며 오소마츠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오소마츠를 껴안은 모양새로 술냄새나는 숨을 내쉰 토고가 두 눈을 감고 추억에 잠긴 목소리로 망연히 중얼거렸다.


“그렇게 어렸던 오소마츠가 이렇게 토지신이 될 줄이야~ 기억 나? 몰래 인간들 마을에 가서 인간들 골탕먹이다가 아버지에게 걸려서 혼난 일. 너 그 일로 삐져서 나랑 일주일동안 말도 안 했잖아. 또 같이 강가에 놀러가도 물고기도 잡고, 가재도 잡고 했는데…”

“..물론 다 기억하고 있어요.”

어색하게 웃으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토고가 오소마츠의 허리에 팔을 두른 순간부터 카라마츠의 얼굴은 순식간에 식었다. 

굳은 얼굴로 매섭게 토고를 노려보고 있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저으며 카라마츠를 말렸다. 

꾹- 굳게 쥔 카라마츠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랬던 네가 ‘신’이 되다니… 아버지도 자랑스러워 하실 거야.”

과거를 회상하며 가늘게 눈을 뜬 토고가 은근히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고개를 돌려 토고의 눈빛을 피한 오소마츠가 몸을 일으켜 토고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많이 취하셨어요, 토고 씨.”

“어~? 나 별로 안 취했어~?”

“방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토고의 팔을 잡고 일으킨 오소마츠가 토고의 팔을 어깨에 메고 방을 나섰다. 

손님방을 향해 걸어가는 오소마츠를 확인한 토토코가 털썩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힐끗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카라마츠를 본 토토코가 “에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화를 감추지 못하고 이를 갈고 있는 카라마츠를 보며 동생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오소마츠만 아니었다면 당장에 토고의 멱살을 잡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카라마츠는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채, 다리를 떨며 오소마츠가 나간 방문을 응시하는 카라마츠에게서 동생들이 멀찍이 거리를 두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토고를 손님방에 눕히고 돌아온 오소마츠가 방에 들어서자마자 벌떡 일어나 다가오는 카라마츠를 보고 놀라 어깨를 떨었다.


“우왓!! 뭐, 뭐야…”

“오소마츠, 대체 저 자식은 누군가!!”

“아…”

이를 악물고 눈을 형형하게 빛내고 있는 카라마츠를 보며 쓰게 웃은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손가락 사이에 자신의 손가락을 끼어넣었다. 

꼬옥- 깍지 킨 손을 움켜잡고 카라마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오소마츠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소마츠의 어리광에 카라마츠도 한결 화를 누그러뜨리고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을 감고 카라마츠의 쓰다듬을 만끽하며 오소마츠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토고 씨는, 내 양아버지의 친아들이야. 여우신 켄고님의 친아들. 그러니까.. 친절하게 대해드려..”

“…하아, 알겠다.”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도, 동생들도 놀랐다. 깊은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들은 일제히 쵸로마츠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카라마츠보다도 더 오래 오소마츠와 지냈던 쵸로마츠도 토고는 오늘 처음 알았다. 

쵸로마츠가 자신을 바라보는 동생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토토코를 바라보았다. 

좀 더 설명해 달라는 눈빛으로 간절히 바라보았지만, 식사를 마친 토토코는 우아하게 입가를 닦고는 일어나 “나도 오늘은 자고 갈게.” 하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섰다. 카라마츠를 스쳐지나가며 토토코가 작게 속삭였다.


“토고를 조심해.”

자신에게만 들리도록 작은 목소리로 경고를 준 토토코를 보며 카라마츠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3.


창을 뚫고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토고가 눈을 끔뻑거렸다. 

낯선 천장과 폭신한 이불에 잠시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느지 떠올린 토고가 머리를 긁적이며 몸을 일으켰다. 

오랜 여행 중 대부분은 노숙을 했던 토고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이불에서 푹 잘 수 있었다. 

개운한 몸을 기지개 피며 이리저리 움직이고 머리맡에 준비된 기모노로 갈아입었다. 

방을 나와 맛있는 음식 냄새를 따라 들어가자 한창 식사를 하고 있던 모두의 이목이 토고에게 집중되었다. 

자신에게 향해있는 따가운 시선을 무시한 채, 토고가 넉살좋게 빈 자리에 앉았다. 

좌우를 둘러보았지만 오소마츠는 보이지 않았다. 

어제 오소마츠에게 보좌라고 소개받은 쵸로마츠에게 토고가 “오소마츠는?” 하고 물었다. 


“일이 있어 먼저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가셨습니다.”

쵸로마츠가 무뚝뚝한 어조로 대답한 후, 토고 몫의 밥을 떠주었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찰진 흰쌀밥에 토고가 군침을 삼켰다. 

눈 앞에 놓인 따끈한 밥과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진 반찬들. 

토고가 입맛을 다시며 젓가락을 들어 거침없이 반찬과 밥을 입에 털어넣기 시작했다. 


“참 더럽게도 먹네.”

상과 바닥에 음식물을 흘려가며 먹는 토고를 보며 식사를 마치고 우아하게 차를 마시던 토토코가 눈살을 찌푸렸다. 

입 안 가득 반찬을 구겨넣고 우물우물 대충 씹어 넘긴 토고가 혀를 차며 토토코에게 물었다.


“넌 왜 아직도 있냐?”

“혼례 준비 도우러.”

“혼례? 누구의”

“오소마츠 군.”

“오소마츠?!”

눈을 크게 뜨고 토고가 분주히 움직이던 젓가락을 멈췄다. 

멍청히 토토코를 바라보며 토고가 “오소마츠랑 누가 혼인하는데?” 하고 묻자 토토코가 옆에 앉아 묵묵히 식사를 하던 카라마츠를 힐끗 보며 대답했다. 


“카라마츠. 그러니까 빨리 먹고 꺼져주지 않겠어?”

“카라마츠가 누군데?”

토토코의 노려보는 눈빛에 콧웃음치며 토고가 물었다. 

어제 분명 모두의 소개를 했던 터인데도 토고는 전혀 모르겠단 얼굴을 하고 있었다. 

토고의 무례에 말없이 식사를 하던 카라마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나다.”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어 똑바로 토고를 보며 대답했다. 

카라마츠의 대답에 순식간에 얼굴을 구기는 토고와 달리 카라마츠는 무표정으로 토고를 가만히 응시했다.


“핫… 요괴가 감히 ‘신’이랑 혼인하겠다고?”

한없이 카라마츠를 깔보는 토고의 발언에 쵸로마츠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도 식사를 멈추고 토고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치마츠마저 날카로운 눈빛으로 토고를 흘겨보았다.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이런이런~’

작게 한숨을 쉬며 토토코가 남은 차를 후르륵 마셨다. 

가라앉은 분위기 가운데 토고는 그 무례한 입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천 년을 넘게 살았지만, 신과 요괴가 혼인한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너는 네가 ‘신’과 혼인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

“오소마츠도 많이 물러졌네~ 이런 하찮은 요괴들이나 곁에 두고. 게다가 뭐? 요괴랑 혼인??”

“…”

“멍청한 건 여전하군.. 오소마츠도.”

토고의 말에 이치마츠와 이치마츠가 숨을 삼켰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카라마츠를 모욕하는 걸로 모자라 오소마츠까지 얕보고 있는 토고를 도저히 놔둘 수 없었다.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도 미간을 찡그리고 빤히 토고를 응시했다.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이치마츠가 입을 연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카라마츠가 거칠게 젓가락을 상 위에 내려쳤다. 


“할 말은 다 했나..?”

“아..?”

카라마츠가 천천히 일어나 토고를 노려보며 말했다. 

토고도 험악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카라마츠를 가소롭다는듯 쳐다보았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토토코가 여유롭게 찻잔을 내려놓고 방문을 살폈다. 

터벅터벅 복도를 울리는 발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이내 방문이 스륵 열리며 오소마츠가 하품을 하며 들어왔다.


“…얼레?”

눈 앞에 펼쳐진 상황에 오소마츠가 얼빠진 소리를 흘리며 멈춰섰다.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화를 억누르며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오소마츠도 카라마츠와 눈을 맞추며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파악했다.


“어이, 오소마츠.”

“네. 토고 씨.”

“나도 네 혼례 때까지 여기 머무마.”

“…예?”

“네 혼례잖아? 이 형님이 빠지면 안 되지.”

“아…”

토고가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가벼운 언동과 달리 그 미소에 담긴 의도는 오소마츠조차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짙게 가려져 있었다. 

발쭉이 웃는 토고를 보며 오소마츠가 작게 신음했다. 


“하? 뭐라는 거야? 당신은 필요 없으니 빨리 꺼져달라고 했을텐데?!”

토고를 보며 토토코가 매서운 목소리로 외쳤다. 

토고는 귓구멍을 후비며 “어디서 개가 짖나~?” 하고 중얼거렸다. 

“이익!!!” 하고 얼굴을 구기고 화를 내려는 토토코를 막아서고 카라마츠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떠나주시지요.”

“..네가 뭔데 나한테 명령질이냐?”

“좋은 말로 할 때 가시죠.”

“하? 한 대 칠 기세다?”

한층 더 험악해진 분위기에 오소마츠가 한숨을 쉬며 토고와 카라마츠 사이에 들어가 팔을 뻗었다. 

무언으로 카라마츠를 보며 쓴웃음을 지은 오소마츠가 토고에게 말했다.


“토고 씨가 원하시는만큼 머무세요.”

“그래. 역시 내 동생이구나!”

오소마츠의 말에 노골적으로 얼굴을 구긴 카라마츠가 그대로 방을 나갔다. 

당황한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카라마츠를 따라 방을 나갔다. 

토토코는 토고를 쏘아보는 눈길을 거두지 않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아 참, 그렇지.”

카라마츠가 나간 방문을 슬프게 바라보던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려 토고를 바라보았다. 

질맞게 웃으며 토고가 몸을 일으켰다.


“마을 구경 좀 하마.”

“아.. 그럼 제가 함께..”

“아니, 괜찮아~ 귀하신 토지신께서는 할 일도 많잖아? 내가 인간들 사이에 섞여서 여행을 한 세월이 몇 년이라고 생각하냐? 나 혼자서도 괜찮다.”

“아니, 그래도 모처럼 찾아오신 토고 씨를 혼자 보낼 수는 없습니다.”

오소마츠는 혼자 내려가겠다는 토고를 극구 말리며 자신도 함께 가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토고는 토고대로 고집을 꺾지 않고 혼자서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실례합니다. 오소마츠님.”

방 안에 퍼지는 낯선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놀라 방문을 바라보았다. 

고운 기모노를 입은 어린아이 하나가 오소마츠의 앞으로 다가와 예를 갖추며 인사했다.


“대국주님의 전언을 가지고 왔습니다. ‘시국히 천상에 올라와라’ 라는 말씀이십니다.”

“…알겠다.”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빙긋이 웃고 다시 예를 갖춰 인사한 아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자, 너는 천상에 가야 하잖아? 난 혼자 둘러보겠다.”

토고가 오소마츠의 어깨를 치며 마침 잘 되었다는 투로 말했다. 

살짝 인상을 찡그린 오소마츠가 쵸로마츠를 보며 말했다.


“쵸로마츠, 내가 없는 동안 토고 씨를 부탁해.”

“네.”

짧게 대답한 쵸로마츠를 가만히 바라보며 잔잔히 미소지은 오소마츠가 나갈 채비를 서둘렀다. 




오소마츠가 천상으로 올라가는 것을 배웅한 쵸로마츠가 푹- 한숨을 내쉬며 옆에 함께 서 있는 토고에게 말했다.


“토고 님, 인간 마을에 내려가신다면 동행하겠습니다.”

“나 참, 혼자서도 괜찮다니깐?”

“아니요. 토고 님은 손님이시니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딱딱한 어조로 사무적인 태도를 취하며 쵸로마츠가 대답했다. 

토고는 쯧! 하고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하아~” 하고 한숨을 쉰 쵸로마츠가 지끈거리는 머리에 미간을 구겼다. 

오소마츠가 토고를 특별히 언급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터였다. 

오소마츠가 토고를 혼자서 마을에 보내지 않으려고 했던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뜻을 따랐다. 

고개를 숙이고 다시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고개를 들고 “자, 토고 님. 함께…” 하고 말을 하려다 멈추었다. 

아주 잠깐, 쵸로마츠가 고개를 숙였다 든 그 짧은 순간에 분명히 쵸로마츠의 옆에 서 있던 토고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입을 떡 벌리고 황당하단 얼굴로 서 있는 쵸로마츠의 옆을 지나가며 토토코가 쯧쯧 하고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한 눈을 팔면 안 되지.”







4.


“대체 뭐야?! 그 ‘토고’ 라는 녀석은!!”

분통에 차 외치자 쥬시마츠 형이 곤란한 얼굴로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치마츠 형은 말없이 뒤따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소마츠 형 신자인 이치마츠 형도 토고란 자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은 같았다. 

아침부터 무례한 말을 늘어놓고, 카라마츠 형을 업신여기는 그 때문에 카라마츠 형이 화나서 오소마츠 형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청산으로 날아가 버렸다. 


“오소마츠 형도! 왜 카라마츠 형 편을 안 들어주고!!”

“오소마츠 형아도 사정이 있을거야~ 토도마츠~”

내 불평에 쥬시마츠 형이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오소마츠 형을 키워준 여우신의 친아들이라는 것은 어제 들었지만!! 


그래도 카라마츠 형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구는데도 오소마츠 형의 그 태도는 역시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청산으로 날아가기 전, 정말로 화가 난 카라마츠 형의 얼굴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소마츠 형에겐 상냥했던 카라마츠 형이 오소마츠 형에게 화를 내는 것을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평화로웠던 일상이 불청객 한 명에 의해 완전히 부서질 것만 같아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설마, 이대로 오소마츠 형과 카라마츠 형이 헤어지는 건…”

“안 그럴거야!!”

“그 개똥마츠가? 그 녀석에겐 그럴 배짱 없을걸?”

쥬시마츠 형의 대답에 이어 이치마츠 형이 낮게 중얼거렸다. 

두 형의 말에 조금 마음이 놓여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오소마츠 형과 카라마츠 형이다. 

겨우 이 정도 일로 헤어질 리 없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이며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츠시 군~!”

광장의 분수에 앉아있던 아츠시 군이 몸을 일으켜 손을 흔들었다. 

평소에 보던 정장차림이 아닌, 짙은 곤색의 코트와 하얀 목도리를 두른 아츠시 군이 내게 다가와 섰다.


“선물은 뭘로 할지 정했어?”

“우음~ 아직.”

쥬시마츠 형과 이치마츠 형에게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한 아츠시 군이 물었다. 

어젯밤 아츠시 군이 사준 잡지를 읽어보며 몇 가지 후보를 정하긴 했지만, 확실히 뭘 선물할지 결정은 하지 못했다. 

오늘 함께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고 말하자, 아츠시 군은 빙긋 웃으며 “그럼 빨리 움직여야겠네.” 하고 대답했다. 

겨울은 특히 낮이 짧아 돌아다니다보면 금새 깜깜해지곤 했다. 

오소마츠 형도 카라마츠 형도 과보호 경향이 있어 어두워졌는데도 들어오지 않으면 마을을 둘러보며 우리를 찾을 것이 분명했다. 

아츠시 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모두 함께 시장거리로 발을 옮겼다.



딸랑하고 울리는 벨과 함께 가게 문을 열고 나왔다. 벌써 다섯 군데도 넘게 돌아다녔지만, 선물은 결정하지 못했다. 

뒤에서 발소리를 울리며 느긋이 걷던 이치마츠 형이 다리가 아프다며 거리의 벤치에 앉았다. 

나도 발바닥이 욱신거려 이치마츠 형의 옆에 앉자 내 앞에 아츠시 군이 섰다.


“뭐가 좋을까…”

“말린 멸치라던가..”

“오소마츠 형은 고양이가 아니얏!!”

이치마츠 형의 중얼거림에 맹렬하게 태클을 걸었다. 

한숨과 함께 머리를 긁적인 이치마츠 형이 멍하니 거리를 둘러보았다. 


“인간은 혼례 선물로 뭘 줘?”

이치마츠 형이 아츠시 군에게 묻자 아츠시 군이 “으음~” 하고 턱을 괴고 생각하더니 곧 “대체로 가구나 가전제품..일려나요.” 하고 대답했다. 

이치마츠 형은 그게 뭐냐는 얼굴로 아츠시 군을 바라보았다.


“가구나 가전제품은 필요 없잖아. 오소마츠 형한텐..”

자신의 신통력으로 가구는 물론이고 커다란 기와집을 만들어내는 오소마츠 형에게 가구를 선물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리고 신사에 전기가 들어올리 없으니 가전제품도 제외. 

아츠시 군의 손을 빌려 어떻게든 인간의 돈을 마련한 것은 좋았지만, 오소마츠 형과 카라마츠 형에게 줄 선물은 쉽게 정할 수 없었다. 


“일단 좀 더 둘러보자!”

벤치에서 일어나며 외치자, 이치마츠 형이 말없이 일어나며 엉덩이를 털었다. 

보통 이쯤되면 발이 아프다거나 피곤하다며 불평하고 돌아가자고 하는 이치마츠 형이 묵묵히 따라와 주는 것을 보며, 이치마츠 형도 나만큼이나 오소마츠 형과 카라마츠 형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츠시 군이 앞장서서 커다란 선물 가게로 향하는 길목, 시야 한 구석에 잡힌 반짝임에 시선을 돌렸다. 

쇼윈도우에 전시된 한쌍의 반지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붉은 보석과 푸른 보석이 박힌 은색의 반지가 내 눈길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반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느라 나는 내가 걸음을 멈추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반지?”

“우왓!!”

별안간 귓가에 울리는 아츠시 군의 목소리에 어깨를 튀며 놀랐다. 

내 놀란 얼굴을 보며 아츠시 군이 쿡쿡 웃었다. 

“뭘 그리 놀래~ 한 번 들어가볼까?” 하고 말하며 내 손을 잡아 이끈 아츠시 군을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과 함께 중후한 느낌의 중년 남자가 우리를 맞이했다. 

아츠시 군은 익숙하게 점장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저 윈도우에 있는 반지 좀 보여주세요.” 하고 말했고, 남자는 미소 띤 얼굴로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후, 하얀 장갑을 끼고 위도우에서 반지를 가져와 보여주었다. 

오소마츠 형의 눈처럼 맑고 붉은 반지를 이치마츠 형이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 바다처럼 깊은 색을 띤 반지를 보던 쥬시마츠 형이 활짝 웃으며 “결정됐네!!” 하고 외쳤다.


“이건 루비와 사파이어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아츠시 군의 물음에 점장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이어서 가격을 묻자 상상도 못했던 가격이 튀어나와 나는 떡하니 입을 벌릴 수 밖에 없었다.


“이건 은인가요?”

반지를 가리키며 아츠시 군이 묻자 점장이 “백금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아츠시 군은 “흐음~” 하고 턱을 만지더니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포장해주세요.” 하고 말했다.


“아, 아츠시 군?! 이거 우리가 모은 돈으로는 턱도 없는데!!”

“응, 내가 보탤게. 토도마츠는 이게 마음에 드는 거지?”

“그, 그렇지만…”

머뭇거리는 나를 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은 아츠시 군이 내 머리를 살포시 쓰다듬었다. 


“이 정도는 하게 해 줘. 그리고 이럴 때 점수를 좀 따놔야지.”

장난스럽게 웃은 아츠시 군이 점장의 질문에 대답하더니 나를 보며 물었다.


“오소마츠 씨랑 카라마츠 씨 손가락 굵기가 어느정도야?”

“아, 그러니까… 오소마츠 형은 나랑 비슷하고 카라마츠 형은… 쥬시마츠 형 정도.”

“네~!”

쥬시마츠 형이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마자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훗- 하고 인자한 웃음을 지은 점장이 한쌍의 반지를 내밀었다. 

아츠시 군의 말을 따라 붉은 보석이 박힌 반지를 내가 껴보고, 푸른 보석이 박힌 반지는 쥬시마츠 형이 껴보았다. 

조이거나 헐렁하지 않고 딱 맞는 크기에 만족하며 점장에게 반지를 돌려주었다.


“그럼 이대로 포장하겠습니다.”

“아…”

점장의 말에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이치마츠 형이 목소리를 냈다.

 점장을 비롯한 우리의 시선이 모두 이치마츠 형에게 꽂히자 이치마츠 형이 말을 멈추고 굳었다.


“뭐야? 이치마츠 형.”

“그 반지, 바꾸는게 좋지 않을까?”

“다른 반지로?”

“아니, 그게 아니라…”

“아, 아~”

이치마츠 형이 하고 싶은 말을 겨우 파악해 점장님께 고개를 돌렸다. 

점장님께 말해 작은 크기의 반지는 푸른 보석이 박힌 것으로, 큰 크기의 반지는 붉은 보석이 박힌 것으로 서로 크기를 바꾸었다. 

정성스럽게 포장이 된 반지 상자를 들고 가게를 나오자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이걸로 기뻐해 줄려나?”

웃으며 묻자 이치마츠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반지를 받고 기뻐할 오소마츠 형과 카라마츠 형의 얼굴을 떠올리니 벌써부터 기분이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아! 발견!!!”

쥬시마츠 형의 외침에 나와 이치마츠 형이 쥬시마츠 형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쥬시마츠 형의 손 끝엔 인간으로 변한 토고란 녀석이 서 있었다.


“엑! 뭐야, 저 녀석! 왜 마을에 내려와 있는 거야?!”

황당함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토고를 노려보던 이치마츠 형이 “나도 몰라.” 하고 짧게 대답했다. 

가로등에 기대어 지나가는 인간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토고는 뭔가를 결정했는지 어딘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따라가보자!!”

아침의 그 태도를 떠올리며 또 뭔가 사고를 치지 않을까 걱정과 함께 어디로 향하는지 약간의 호기심으로 토고의 뒤를 따랐다. 

이치마츠 형이 잠시 말리려했지만, 이내 포기했는지 묵묵히 내 뒤를 따랐다. 

이치마츠 형과 함께 쥬시마츠 형과 아츠시 군도 나를 따라왔다.




어이가 없다. 정~말로 어이가 없다. 

인간 쓰레기의 온상이라는 것은 바로 저 자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늦은 오후였지만, 아직 낮의 범주에 들어가는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토고라는 자가 향한 곳은 술집이었다. 

이제 막 영업을 개시한 술집에 들어간 토고를 따라 우리도 술집 구석자리에 앉아 토고를 관찰했다. 

어디서 났는지 알 수 없는 돈으로 줄창 술을 퍼먹은 토고는 시뻘개진 얼굴로 비틀거리며 가게를 나섰다. 

토고를 따라 가게를 나오니 이미 하늘은 검게 변해있었다. 

비틀거리면서 거리를 걷는 토고를 뒤따르려는데 술집 안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렸다. 


“아까 그 돈, 나뭇잎이 되버렸다!!”

슬쩍 술집 안을 쳐다본 쥬시마츠 형이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어디서 났는지 모를 인간의 돈은 나뭇잎을 요술로 변화시킨 것으로 토고가 자리를 떠나자 다시 나뭇잎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돈도 없이 술을 마신데다, 나뭇잎을 돈으로 바꾸어 인간을 속이다니. 그 대담한 수법에 얼이 빠졌다. 

서서히 멀어져가는 토고를 뒤따르며 나중에 돈을 마련해 저 가게로 갈 것을 다짐했다. 


잔뜩 취한 토고는 그대로 파칭코에 들어갔다. 

아츠시 군에게 들어 도박을 하는 가게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들어가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커다란 소리와 금속 구슬이 울리는 챙챙 거리는 소리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치마츠 형은 그 예민한 신경에 도저히 버틸 수 없었는지 새하얘진 얼굴로 파칭코를 뛰쳐나갔다. 

나도 시끄러운 소음과 가게 가득 매캐한 담배 연기에 숨을 쉴 수 없어 가게를 나왔다.

가게 입구가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토고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 2시간쯤 지나 토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엔 또 어디를 가려는 건지 노려보며 뒤따르자 골목 골목을 지나 사람이 드문 한 거리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겉에서 보면 뭔가를 파는 상점이라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건물이었다. 


“여긴 뭐하는 곳이지?”

고개를 갸웃하며 건물을 샅샅이 살폈지만, 그 흔한 간판하나 걸려있지 않았다. 

빤히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는 내 옆에 선 아츠시 군이 “아…” 하고 작게 신음소리를 냈다.


“아츠시 군?”

“음… 토도마츠, 그만 돌아가자.”

“어? 안 돼!!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알아야…”

“좀, 설명하기 그런데…”

아츠시 군답지 않게 대답을 망설이며 내 팔을 잡아끄는 아츠시 군을 따라 큰 길가로 나왔다. 


“뭐야, 대체 저기가 뭐하는 곳인데?”

“..뭐, 그런데가 있어.”

“어딘데?!”

대답을 얼버무리는 아츠시 군을 똑바로 쳐다보며 재차 묻자 아츠시 군이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만 들리도록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돈으로 여자를 사는 곳이야.”

충분히 작은 목소리였지만, 비정상적으로 청력이 좋은 쥬시마츠 형과 네코마타인 이치마츠 형도 아츠시 군의 말을 들었다. 

아츠시 군의 말에 우리 셋은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입을 벙긋거리며 황당해하는 나를 보며 아츠시 군이 “그러니까 말 안해주려고 한 건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5.


어두운 방안에 홀로 환하게 빛을 내고 있는 등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침의 내 태도를 다시 떠올리며 천천히 심호흡을 해 마음을 가라앉혔다. 

오소마츠가 특별히 친절히 대해달라는 말까지 했던 자에게 치기를 부려 화를 냈던 자신을 반성하며 눈을 감았다. 

예의라곤 없고 무례한 그 자를 오소마츠가 받아준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자는 오소마츠에게 있어 ‘양아버지의 아들’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존재인 것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 자의 억지를 받아줄 때마다 오소마츠는 괴로운 얼굴로 웃었다. 

오소마츠도 원치 않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오소마츠를 위해 취해야 할 행동은 무엇인가. 


적어도 오늘처럼 화를 내는 것은 옳지 않다. 후우- 한숨을 쉬자 등불이 아른거리며 흔들렸다. 

내일 오소마츠에게 찾아갈 것을 다짐하며 이불을 폈다. 

자리에 누우려는데, 쿵쾅거리며 복도를 울리는 발소리에 누우려던 몸을 다시 일으켰다.


“카라마츠 형!!!”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거세게 열린 문 사이로 토도마츠가 들어왔다. 


“카라마츠 형!! 그 ‘토고’란 녀석 완전히 최-악이야!!”

“무슨 일이 있었나? 토도마츠.”

“인간으로 변해서 마을을 돌아다니는 걸 따라갔는데, 대낮부터 술 마시고, 인간들을 속이고, 게다가!!”

“..게다가?”

“여, 여자를 샀다고!!!”

“후- 그런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말을 써도 될지… 

토고라는 자가 아침에 본 그대로의 남자인 것은 확실했다. 


“그딴 녀석이 왜 마음대로 마을을 돌아다니게 놔두는 거야?! 카라마츠 형이 오소마츠 형한테 말해서 좀 쫓아내줘!!”

붕붕 손을 휘두르며 화를 내는 토도마츠를 진정시켜 내일 오소마츠와 이야기해보겠다 달랜 후, 방으로 돌려보냈다. 

토도마츠의 등장에 잠기운은 완전히 날아갔다. 

이불에서 일어나 검은 하오리를 걸치고 방 밖을 나갔다. 

날숨을 따라 하얀 입김이 공중에 퍼졌다.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라 ‘토고’에 대해 말해줄 녀석에게 향했다.




“늦은 밤에 왜 온거야?”

신사 마당에 내려앉자 이미 나와있던 토토코가 말했다. 

“너야 말로, 무슨 일이지?” 하고 묻자, “일이 있어서 천상에 올라가봐야 해.” 하고 대답했다. 

홍색의 하오리를 어깨 위로 끌어올리며 눈을 깔고 있던 토토코가 똑바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오소마츠 군은 아침에 천상에 갔어.”

“그런가..”

“토고 때문에 온 거지?”

“아아.”

질문에 긍정하자 내 옆에 나란히 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토토코가 입을 열었다.


“오소마츠 군이 말했듯, 오소마츠 군을 거둬준 여우신, 켄고님의 친아들이야. 옛날부터 방탕하고 악랄하기로 유명했었고. 하나뿐인 아들이 아버지 이름에 먹칠한다며 손가락질 당해왔던 녀석이야.”

“그런가.”

“..당신은 그런게 듣고 싶은게 아니지?”

토토코는 싱긋 웃곤 다시 말을 이었다.


“오소마츠 군은 원래 인간이었는데, 사냥꾼에게 쫓기는 여우를 구해주다가 죽었어. 그런데 그 여우가 바로 토고였대. 토고가 자신을 감싸다 죽은 인간에게 켄고님을 데려갔고, 오소마츠 군을 딱하게 여긴 켄고님이 여우로서의 새 삶을 준거야. 오소마츠 군은 항상 자신의 생명의 은인은 켄고님과 토고라고 그랬어. 토고도 처음엔 동생이 생겼다고 오소마츠 군을 예뻐했어. 그 방법은 잘못되었지만… 자신의 나쁜 장난에 오소마츠 군을 끌고 다니면서 오소마츠 군이 제대로 자신을 따라오지 않으면 바로 폭력을 썼지. 토고와 놀 때 오소마츠는 항상 토고에게 맞은 상처를 달고 살았어. 그러다 오소마츠 군이 여우술에 재능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폭력은 더 심해졌지. 켄고님의 총애는 오로지 오소마츠 군에게 향했으니까, 토고에겐 오소마츠 군이 눈엣가시가 된 거야. 오소마츠 군이 미웠는지 토고는 계속 오소마츠 군을 시기, 질투하며 나쁜 계략에 빠뜨렸고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한 오소마츠 군이 수행을 그만두자 토고가 제일 많이 기뻐했어. 그러다 켄고님이 돌아가시고 오소마츠 군은 마음을 바꿔 수행을 계속해서 천호가 된거야. 아마 오소마츠 군은 토고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어. 자신이 있었기에 토고가 켄고님에게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내가 보기엔 토고 그 자식이 전부 자초한 일인데도 말이야. 뭐, 내가 알고 있는 건 여기까지야. 남은 일은 알아서 잘 처리하라고. 그리고 토고를 항상 주시하고 있어. 또 무슨 흉계를 꾸미고 있을지 모르니까.”

“아아, 고맙다.”

“흥! 너를 위해서가 아니고 오소마츠 군을 위해서 말해주는 거야!”

콧방귀를 끼며 말을 마친 토토코는 그대로 천상으로 올라갔다. 

토토코가 날아간 하늘을 올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은 이런 이야기, 토토코가 아닌 오소마츠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왜 무슨 연유로 토고를 내쫓지 않는지, 무엇 때문에 그런 안타까운 얼굴을 하는지 모두 알고 싶었다. 

내게는 숨기지 않고 모두 털어놔주길 바랬는데… 

천상에서 돌아온다면.. 오소마츠가 직접 말해 줄까.. 


그렇게 바라며 하늘을 응시했다. 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오늘따라 아름답게 빛났다.  







6.


오소마츠가 천상에 올라간지 하루가 다 되어가건만, 오소마츠에게선 소식이 없었다. 


‘오소마츠 형, 늦네…’

항상 천상에 올라가도 일을 빨리 끝내고 다시 돌아왔던 오소마츠를 걱정하며 쵸로마츠가 오소마츠 방에 들어섰다. 

방 안 이곳저곳에 어지러이 늘어져 있는 서류들을 보며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한 장 한 장 바닥에 널린 서류를 주워 모았다. 

앉은뱅이 책상에 서류를 쌓아놓고 보니 그 양이 제법 많았다. 


마냥 노는 것만 같아도 오소마츠가 처리하는 일은 카라마츠만큼이나 많았다. 

인간 마을을 지키는 결계를 유지하고, 악령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는데 그치지 않고 신사에 와 참배를 하는 인간들의 소원도 들어주어야 했다. 

토지신이 되면 신사에 참배하는 참배객들의 소원이 싫어도 들린다고 오소마츠가 불평했던 것을 떠올리며 쵸로마츠가 서류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어떤 인간이 무슨 연유로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정리되어 있는 서류. 

오소마츠는 참배객들의 소원을 자신이 들어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후에 천상에 올릴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특히 오소마츠가 잘 하는 것은 연을 맺어주는 일로, 이미 마을에서는 신사에 참배를 하고 나면 좋아하는 사람과 엮어진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정리라도 해 놓을까.”

오소마츠가 돌아오면 분명 피곤하다, 일하기 싫다며 불평할 것을 염려해 쵸로마츠가 서류를 펼쳐 분류했다. 

천상에 보고할 것, 오소마츠가 확인할 것, 폐기할 것. 

높게 쌓인 서류를 분류해 정리하여 다시 오소마츠의 책상 위에 올려놓은 쵸로마츠가 “휴-“ 하고 숨을 내쉬었다. 

만족스럽게 자신이 정리한 서류더미를 바라보는 쵸로마츠의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고개를 돌린 쵸로마츠가 거만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토고와 눈이 마주쳤다.


“보좌 주제에 주인도 없는 서류를 멋대로 처리하는 거냐?”

“아니, 이건…”

“오소마츠가 가만 놔두니 개나 소나 제 주제도 알지 못하고 날뛰는 꼴이란..”

자신은 오소마츠가 돌아와 손쉽게 서류를 처리할 수 있도록 정리를 했을 뿐인데.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을 욕하는 토고를 쵸로마츠가 황당하단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방 안을 둘러보다 쵸로마츠의 눈빛을 눈치챈 토고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어디서 감히 똑바로 눈을 마주하고 있어?!”

혀를 차며 금방이라도 쵸로마츠에게 발길질을 할 것처럼 위협하며 토고가 외쳤다. 

바로 토고를 보고 있던 눈길을 돌린 쵸로마츠가 스스로에게 ‘참자, 참아.’ 하고 속삭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오소마츠는 이 토고란 자를 감쌌다. 

슬프게 웃으면서도 토고의 무례를 꾹- 참았던 오소마츠를 생각하며 쵸로마츠도 치솟는 화를 간신히 억누르고 억지로 입가를 끌어올렸다.


“죄송했습니다. 저는 다만 서류가 어지럽게 널려져 있어서 그것을 정리하려고..”

“아? 이젠 말대답도 하냐? 네 주인이 그렇게 가르치디?”

‘주인은 개뿔-. 알지도 못하면서 멋대로 떠들어대지 말라고.’

쯧- 하고 작게 혀를 찬 쵸로마츠가 속으로 토고를 저주하며 다시 빙긋 웃었다. 

“아뇨.” 하고 단답으로 대답하자, 또 뭐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토고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토고가 뭐라 운을 떼려는 순간, 방 문이 열리고 나른한 얼굴의 이치마츠가 고개를 내밀었다.


“뭐하고 있어? 쵸로마츠 형.”

“아, 이치마츠.”

쵸로마츠에게 다가간 이치마츠가 빤히 토고를 바라보았다. 

이치마츠의 눈빛에 토고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으며 덥석 이치마츠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윽?!”

“너는 또 뭘 잘했다고 노려 봐? 불쌍해서 주워진 놈이..”

머리카락 뿌리까지 잡혀 당겨지는 고통에 이치마츠가 인상을 구기자 토고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확실하게 말 속에 담긴 악의에 이치마츠가 온 몸의 털을 곤두세우고 토고를 흘겨보자, 토고가 “어쭈?” 하고 주먹을 들었다.


“그만 하시죠? 오소마츠 형이 곧 돌아올 시간입니다.”

토고와 이치마츠 사이에 껴들은 쵸로마츠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투는 지극히 공손했지만, 토고를 노려보는 눈빛은 살벌하기만 했다. 

주먹을 내리고 혀를 찬 토고가 말없이 방을 나섰다. 


“고마워, 쵸로마츠 형.”

이치마츠가 말하며 쵸로마츠의 어깨를 두드렸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몸이 풀려 한숨과 함께 근육이 이완되었다. 

이치마츠치고는 드물게 솔직히 고맙다고 말하는 이치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은 쵸로마츠가 미소지었다. 



활기차게 신사로 들어선 쥬시마츠가 발을 멈추고 미소를 지웠다. 마당에 서서 얇은 담배를 피던 토고가 시선을 돌려 쥬시마츠를 응시했다. 

쥬시마츠의 뒤를 따라 신사로 들어선 토도마츠와 카라마츠도 토고를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아, 안녕하세요!!!”

굳은 얼굴을 풀고 밝게 웃으며 쥬시마츠가 허리를 깊이 굽혀 토고에게 인사했다. 

뻑뻑 담배만 피워대던 토고가 말없이 쥬시마츠를 응시했다. 

모처럼 인사까지 해 줬는데, 받아주지도 않는 토고를 욕하며 토도마츠가 쥬시마츠를 잡아 일으켰다.


“쥬시마츠 형, 인사할 필요 없으니까.”

힐끔 토고를 흘겨보며 토도마츠가 쥬시마츠의 손을 잡았다. 


“그건 머리가 아픈 거냐?”

“..하?”

“그거 말이야, 그거.”

담뱃대로 쥬시마츠를 가리키며 무심하게 말한 토고가 피식- 비소를 흘렸다. 

자신을 노려보는 토도마츠의 눈길을 가로롭다는 얼굴로 응시하며 쥬시마츠에게 다가간 토고가 담뱃대로 쥬시마츠의 머리를 두드렸다.


“위, 위험하잖아!!”

담뱃대에서 나온 뜨거운 재가 쥬시마츠의 머리에 떨어진 것을 본 토도마츠가 외쳤다. 

재빨리 쥬시마츠의 머리에 떨어진 재를 털어낸 토도마츠를 보며 토고가 말했다.


“머리라도 다쳤어? 제정신이 아닌 것 같더만. 잘도 이런 정신이 이상한 놈과 어울리는구나, 너도”

토고의 말에 토도마츠가 확 인상을 쓰고 차갑게 쏘아봤다. 

스멀스멀 새어나온 힘에 의해 토도마츠 발치에 있던 신사 마당이 하얗게 얼어붙었다.


“어쭈? 뭐야, 너 유키온나(설녀)냐? 근데 왜 수컷? 제대로 달려 있는거야?”

토도마츠의 발 아래 얼어붙은 땅을 보며 “호오~” 하고 감탄한 토고가 토도마츠에게 다가가 망설임없이 고간에 손을 뻗었다. 


“뭣?!!”

“그만 하시죠?”

“또 네놈이냐?”

당황한 토도마츠가 비명을 마저 지르기도 전에, 카라마츠가 굳은 얼굴로 토고의 손을 막았다. 

자신의 손을 힘주어 잡은 카라마츠를 보며 토고가 귀찮다는 태도로 한숨을 내쉬었다. 

공기가 울리도록 세게 카라마츠에게 잡힌 팔을 내쳐 속박을 풀어낸 토고가 시큰거리는 손목을 쓸었다. 


“뭔 놈의 힘이…”

혀를 차며 손목을 슬슬 쓰다듬은 토고가 카라마츠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스쳐 지나갔다. 

신사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가는 토고를 카라마츠가 불러 세웠다.


“멋대로 마을에 내려가면 곤란합니다.”

토고의 팔을 잡아 계단 위로 끌어올린 카라마츠가 기계적인 어조로 말했다. 

얼굴을 구긴 토고가 카라마츠에게 잡힌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토고가 입가를 씰룩거리며 뭐라 말을 하려는 순간, 거세게 열린 문 밖으로 쵸로마츠가 나타났다.


“토고님, 모처럼이니 혼례 준비를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토고님의 하나뿐인 ‘동생’인 오소마츠님의 혼례이니 물론 도와주시겠지요?”

쵸로마츠의 말에 토고가 얼굴을 찌푸리며 카라마츠의 팔을 뿌리쳤다. 

험악한 얼굴로 쵸로마츠를 노려보며 토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쾅! 하고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고 들어간 토고를 향해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쥬시마츠와 토도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랬다.


“자, 너희도 일단 오늘은 돌아가. 이치마츠도 같이.”

“에…”

“저 녀석이 있으니까, 카라마츠 영지에 피신 가 있어.”

쵸로마츠의 말에 이치마츠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쥬시마츠와 토도마츠 쪽으로 걸어가는 이치마츠를 배웅하며 쵸로마츠가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말로 하지 않아도 쵸로마츠의 의도를 파악한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이고 동생들과 함께 신사를 내려갔다. 

멀어지는 넷의 뒷모습을 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쵸로마츠는 서서히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빨리 이 모든 일이 끝나기를 빌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오소마츠가 천상에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쵸로마츠에게 간단히 돌아왔다는 보고를 한 후, 오소마츠는 바로 식사 준비에 들어갔다.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짓는 오소마츠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쉰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의 사역마인 까마귀를 불렀다. 

청산에 있을 카라마츠와 동생들을 불러 오라는 말을 전해 까마귀를 날려보냈다. 

오소마츠가 식사 준비를 마칠 즈음에, 카라마츠와 동생들이 신사에 도착했다. 

오늘도 화려하게 차려진 상에 감탄하며 쥬시마츠와 토도마츠가 맛있어 보이는 반찬을 집어 입으로 옮겼다. 

“으음~” 하고 감탄하며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를 피운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바쁘게 젓가락을 움직여 반찬을 집어먹었다. 

반찬이 도망갈세라 허겁지겁 집어먹는 둘을 보며 빙긋이 웃은 오소마츠의 옆에 토고가 다가가 앉았다. 


“오소마츠.”

“..네?”

토고의 부름에 오소마츠가 ‘또 뭔가 일이 났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대답했다. 

동생들도 식사를 멈추고 이어질 토고의 말에 집중했다. 항상 떠들썩했던 식사 시간이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도데체가 네 주변에 있는 녀석들은 얼마나 너를 우습게 알고 있는거냐? 네 보좌를 자칭하는 녀석은 네가 없는 사이에 멋대로 서류를 처리하질 않나, 주워준 은혜도 모르고 신사 안을 활보하며 인간들을 괴롭히지를 않나… 게다가 저 놈들은 대체 왜 데리고 있는 거야? 하나는 머리가 모자라고, 하나는 종족에 맞지 않는 수컷이잖아? 네가 없는 틈을 타서 제멋대로 설쳐대고 있었다고?”

토고는 진지한 얼굴로 자신은 한치의 거짓도 고하고 있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말하는 군데군데 섞인 비아냥과 조롱을 도저히 들어줄 수 없었던 카라마츠가 식사를 멈추고 일어섰다. 

오소마츠를 위해서 참으려고 해도, 무엇이든 정도가 있다. 

봐줄 수 있는 한계를 넘은 토고의 발언에 카라마츠가 토고의 멱살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

카라마츠의 팔을 잡아챈 것은 오소마츠였다. 

“카라마츠.” 하고 낮은 목소리로 카라마츠를 부른 오소마츠가 다시 입을 열어 “자리에 앉아.” 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빠득- 하고 이가 갈리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오소마츠가 놓아준 팔을 힘없이 늘어뜨린 카라마츠가 천천히 자리에 주저앉았다. 


“토고 씨.”

“어. 뭐냐?”

오소마츠의 행동에 유쾌하게 웃으며 카라마츠를 바라보던 토고가 기분좋게 대답했다. 

자리에 선 채로 오소마츠가 토고를 내려다보았다.


제 동생들이 그런 행동을 할 리 없습니다. 함부로 그런 말씀을 하는 것은 두 번 다시 하지 말아주세요.

“…알, 겠다.”

예상치 못한 오소마츠의 말에 토고가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토고의 대답에 만족했는지 오소마츠는 다시 자리에 앉아 식사를 재개했다. 

방금 전까지 훈훈했던 방 안의 공기가 차갑게 식어 마치 고향에 온 것 같다고 토도마츠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불편했던 식사가 끝나고 손님인 토고가 제일 먼저 목욕을 하기 위해 방을 떠났다. 

묵묵히 쵸로마츠와 함께 식탁을 정리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입을 열었다. 


“토고란 저 자를, 그냥 이대로 두고 지켜볼 셈인가?”

항상 오소마츠에게 향했던 부드러운 목소리가 아닌, 딱딱하고 차가운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숨을 집어 삼켰다.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얼핏 묻어나오는 노기에 토도마츠가 불안한 눈빛으로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내 의형이야. 게다가 손님이잖아.”

“손님? 저게 손님이 취할 태도인가? 예의따윈 눈꼽만큼도 없는 자다! 나라면 몰라도 동생들까지 모욕하는 녀석을 왜 놔두려는 거지? 당장 내쫓는게 능사다!!”

“카라마츠..”

카라마츠의 큰 목소리에 이치마츠뿐만 아니라 쥬시마츠까지도 목을 움츠렸다. 

처음 보는 둘의 심각한 분위기에 토도마츠가 설설 무릎으로 기어 쵸로마츠의 등 뒤에 숨었다.

“혀, 형아들 싸우는 거야..?” 하고 작은 목소리로 묻는 쥬시마츠를 꼭 안은 이치마츠가 “쉿-“ 하고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쥬시마츠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끄덕이곤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를 올려다보았다. 

오소마츠가 나직이 카라마츠를 불렀지만 카라마츠의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왜 내치지 않는거야, 오소마츠.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건가?! 너에겐 우리보다 저 자식이 더 소중한건가!!!

비통하게마저 들리는 외침을 마치고 카라마츠가 방을 떠났다. 

열린 채 내버려진 방 문으로 통해 차가운 공기가 슬그머니 방 안으로 들어왔다.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인 오소마츠가 움츠려 떨고 있는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를 보며 쓰게 웃었다. 

몸을 숙여 토도마츠와 쥬시마츠의 머리를 상냥하게 어루만지며 오소마츠가 말했다.


“미안해…”

가슴이 꽉- 하고 조여올 정도로 안타까운 목소리에 쥬시마츠와 토도마츠가 고개를 저었다. 

이치마츠의 품에서 벗어나 벌떡 일어선 쥬시마츠가 “카라마츠 형아를 다시 데리고 오겠슴다!!” 하고 힘차게 말했다. 

토도마츠도 쵸로마츠의 등 뒤에서 나와 쥬시마츠의 손을 잡고 “나도 같이 다녀올게!” 하고는 방을 나갔다. 

방에 남은 이치마츠와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의 곁에 가 앉았다.


“오소마츠 형, 우리들은 괜찮으니까.”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의 손에 머리를 대고 속삭였다. 

살며시 이치마츠의 뻗친 머리를 쓰다듬은 오소마츠가 부드럽게 웃었다. 

오소마츠의 미소에 안도하며 이치마츠가 골골거리며 오소마츠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쵸로마츠는 남은 식기를 정리하며 오소마츠의 머리에 가벼운 꿀밤을 먹였다.


“뭔진 모르겠지만, 너무 혼자 생각하지 마.”

스쳐지나가듯 가볍게 말한 쵸로마츠가 식기를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쵸로마츠와 이치마츠의 배려에 오소마츠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이치마츠를 꼬옥 껴안았다.


“고마워, 이치마츠.”

오소마츠의 감사에 이치마츠는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두 팔을 활짝 벌려 오소마츠의 등에 둘러 마주 안아줄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며 이치마츠가 눈을 감았다. 

오소마츠의 품은 어렸을 때와 변함없이 포근하고 따뜻했다.




이치마츠가 잠든 깊은 밤. 오소마츠가 붉은 하오리를 어깨에 걸치고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 밤이 완전히 지나기 전에 카라마츠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하늘로 날아오른 오소마츠가 청산으로 향했다. 느닷없이 고요한 밤공기를 커다란 괴음이 흔들었다. 


공중에 멈춰 주변을 둘러보던 오소마츠가 빠른 속도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고 거대한 물체에 호흡을 멈췄다.







7.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오랜 세월. 

자신보다 강한 요괴에게 쫓기고, 인간에게 잡힐 뻔하고, 이용 당하면서 살아왔다. 

지옥 같은 시간은 착실히 쌓여갔고, 내 꼬리는 무사히 그 수를 늘렸다. 

마침내 여우 요괴의 정점에 들어가는 구미호가 된 뒤에도 내 떠돌이 생활은 멈추지 않았다. 

어릴 때에 비하면 확실히 한결 수월해진 삶이었지만, 전국을 돌아다니는 것도 슬슬 지쳐갔다. 

좋은 곳에 터전을 잡고 살고 싶다고 생각하며 들른 마을이 오소마츠의 마을이라는 것은 내게 절로 굴러 들어온 박과 같았다. 

기름진 땅과 풍족하고 맑은 정기, 그리고 신사를 꾸준히 찾아오는 인간들. 그야말로 누구나가 탐낼 만한 최고의 마을이 오소마츠의 것이었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그냥 버릴 수는 없었다. 오소마츠를 몰아내기만하면 내가 이 땅을 다스릴 수 있다. 


아니, 몰아낼 필요도 없다. 

내가 오소마츠를 취하기만 하면! 


몇 백년 만에 만났는데도 나를 어려워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일이 수월해질 것이라 자만했다. 

그런데 웬걸, 오소마츠에겐 이미 연을 맺은 짝이 있었다. 

게다가 시덥지 않은 어중이떠중이들까지 오소마츠에게 붙어 있었다. 

방해물은 시급히 제거하는 게 좋다. 




간을 볼 생각으로 어중이들의 험담을 했지만, 오소마츠는 그럴 리 없다고 단언했다. 

역시 험담 정도로는 녀석들의 사이를 벌어지게 할 수 없는 것 같다. 

겨우 이 정도로 저 녀석들이 떨어져 나가길 바랬건만.. 

까마귀도 내가 이곳에 계속 머무는 것으로 오소마츠와 싸우고 신사를 뛰쳐나간 것까지는 좋으나, 오소마츠는 늦은 밤 홀로 그 까마귀를 만나서 떠났다. 

이대로 둘이 만나면 또 화해를 할 것이 분명했다. 

오소마츠에겐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림자 속에서 백 년을 키워온 케우케겐*을 불렀다. 

*케우케겐 : 검은 털의 말티즈처럼 생긴 요괴. 역병신의 일종. [출처 – 나무위키]

백 년 동안 내 요기를 먹고 성장한 케우케겐은 웬만한 요괴들은 당해낼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2마리 중 한 마리를 불러내 오소마츠를 습격하도록 시켰다. 

이 정도의 녀석이라면 오소마츠도 쉽게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케우케겐은 역병신, 즉 악(惡)에 속해있는 녀석이다. 

요괴는 모두 기본적으로 그 근본을 악에 두고 있다. 

요괴가 신이 되기 위해서 천 년이 넘는 수행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근본이 ‘악’에 있기에, ‘선(善)’에 근본을 둔 신이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수행이 필요하다. 

신이 되면 그 힘은 요괴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지만 여러 약점이 존재한다. 

인간에게 잊혀지면 신은 그 힘을 잃는다. 게다가 ‘악’에 굉장히 약해진다. 

선에 근본을 두고 있으니 상성이 나쁜 악에 쉽게 물들고, 또 패한다. 

‘정화’를 이용한다면 악을 쉽게 물릴 수 있겠지만, 정화는 고위급 신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다. 

요괴에서 신이 된 오소마츠가 가지고 있을 리 없다. 



“으앗!!”

과연 내 예상대로 갑작스러운 습격에다 악의 힘을 지닌 케우케겐의 공격을 오소마츠는 막아내지 못했다. 

순식간에 승부는 끝이 났다. 


오소마츠의 결계로 그 위력을 줄이긴 했어도 케우케겐의 공격은 오소마츠의 어깨를 갈라놓았다. 

핏빛으로 물든 어깨를 움켜잡은 오소마츠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자, 이제 슬슬 내 차례가 되었다.


“꺼져라.”

그 한마디와 함께 케우케겐을 갈기갈기 찢었다. 

바닥에 떨어진 시체는 그림자 안에 있는 남은 한 마리의 케우케겐에게 먹였다. 

싸그리 사라진 케우케겐의 흔적에 흐뭇하게 웃고 오소마츠에게 몸을 돌렸다.


“토, 고 씨..”

“상처가 심하다. 다시 신사로 돌아가자.”

“안 됩, 니다. 저는 청, 산에…”

“제대로 호흡도 못하는 놈이 어딜 간다는 거냐? 자, 내게 업혀라.”

꼬리를 축 늘어뜨린 오소마츠를 강제로 업고 신사로 날아올랐다. 

신사 마당에 천천히 오소마츠를 내려놓으니 붕대를 감은 초록색 놈이 호들갑을 떨며 다가왔다. 

오소마츠를 집 안으로 옮겨 환한 등불 아래서 살펴보니, 오소마츠의 상처는 내 생각보다 심했다. 

완전히 벌어진 상처 틈으로 피가 멈추지 않고 흘렀다. 

찢어진 붉은 살점 사이로 하얀 뼈가 보였다.


“아, 이거 꽤 심하군.”

초록색 놈과 함께 응급처치를 하며 중얼거렸다. 

상처에 붕대를 감아도 멈추지 않는 피에 금새 빨갛게 물들어 다시 풀어내야 했다.

거친 숨을 내쉬는 오소마츠는 억지로 재우고 상처의 피를 빨아들였다.


“뭐, 뭐하시는 겁니까!?”

오소마츠의 피를 빨아들여 방바닥에 뱉자 초록색 놈이 경악한 얼굴로 외쳤다.

귓가에서 시끄럽게 빽빽거리는게 거슬려 손을 휘저으며 밀어내고 다시 오소마츠의 피를 빨았다. 


“뭐하는 거냐고!!”

“퉤, 빨리 상처를 감을 두꺼운 천이나 가져와.”

놈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말했지만 놈은 앉은 자리에서 한 발작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 빨리!!”

짜증섞인 목소리로 외치니 그제야 허리를 들어 방을 나가는 놈을 노려본 뒤, 오소마츠의 상처에서 남은 피를 빨아냈다. 

초록색 놈이 들고 온 천을 상처에 두껍게 감아 압박했다. 

꽤 아픈지 오소마츠가 신음하며 눈썹을 구겼다. 


“참아라.”

“네..”

단단히 천을 감아 고정하고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바닥에 내가 뱉은 피를 닦아낸 초록색 놈이 나를 날카롭게 바라보며 물었다.


“대체 아까 그건 뭐였습니까?”

“독기를 빼낸거다.”

“독, 기?”

“케우케겐의 독기가 상처에 남아서 피가 안 멈췄던 거야. 그걸 빨아냈으니 이제 피도 멈출거다.”

친절히 설명해주니 멍하니 입을 벌린 초록색 놈이 고개를 숙였다. 

피를 많이 흘리긴 했는지 완전히 하얘진 얼굴의 오소마츠가 나를 보며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했다. 


“됐고, 얼른 누워라. 회복하려면 꽤 걸릴거다.”

내 말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 하고 초록색 놈을 부르자 정신을 차렸는지 재빨리 움직여 방 안에 이불을 깔았다. 

조심조심 오소마츠를 이불에 눕힌 초록색 놈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감사합니다. 제가 잠시 오해를 했었습니다. 큰 소리를 내 죄송합니다.”

“어, 그래.”

적당히 손짓해 사과를 받아들였다. 

이걸로 오소마츠의 발을 신사에 묶어두었으니, 초록색 놈의 사과따윈 안중에도 없다. 

밤새 오소마츠의 곁을 지키며 간호하는 척을 했다. 

내 옆에서 함께 오소마츠를 지킨 초록색 놈이 필요한 일은 전부 했으니 내가 한 일은 가만히 앉아있는 것뿐이었다. 

혹시나 밤새 초록색 놈이 까마귀에게 오소마츠의 부상 소식을 알리진 않았을까 조마조마했지만, 오소마츠를 간호하는데 정신이 팔렸는지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 까마귀가 온다면 내 모든 계획이 꼬이니, 까마귀도 내일 중으로 처리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림자 안에 남은 케우케겐에게 다량의 요기를 흘러보내 그 힘을 키웠다.

거대해진 케우케겐에게 까마귀를 죽이라는 명령을 해 청산으로 보냈다. 

내일이면 이 신사도, 이 땅도 모두 내 것이 된다고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들떴다. 




다음 날 아침, 오소마츠에게 죽을 만들어 주겠다고 주방으로 향한 초록색 놈과 오소마츠에게 아침 인사를 하러 방으로 찾아온 고양이 놈을 결계에 가두었다. 

당황한 얼굴로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고양이 놈과 이럴 줄 알았다며 시끄럽게 떠드는 초록색 놈을 놔두고 인간 마을로 내려갔다. 

이 마을에 들어와 처음 인간 마을에 내려왔을 때, 물밑 작업을 모두 끝내두었다. 


오랜 떠돌이 생활 중 꽤 오랜 기간을 인간들 사이에 섞여 살았던 나는 인간들이 어떤 체계를 가지고 살아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내 특기로 인간들을 홀리는 것은 간단했다. 

인간들 중 나름 높은 위치에 있으며 이 마을을 관리하고 있는 녀석을 꾀어 신사를 부수도록 만들었다. 

여우에게 홀려 초점을 잃은 눈으로 신사를 향해 걸어가는 인간들을 보며 서서히 계획이 완성되가는 것에 환희를 느꼈다. 


이걸로 오소마츠의 모든 것은 내 것이 된다.







8.


“쵸로마츠..?”

힘겹게 이불에서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가 쵸로마츠를 불렀다. 

바로 어제 입은 상처는 아직 다 붙지도 않아 큰 소리를 내면 다시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욱씬거리는 상처에서 느껴지는 열에 신음하며 숨을 들이마신 오소마츠가 이불에서 일어났다. 


“하아~”

이불에서 일어나 멈추고 있던 숨을 내쉬자, 참고 있던 고통이 온 몸에 퍼져, 오소마츠는 저도 모르게 다시 숨을 멈추고 두 눈을 꼭 감았다.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방을 나온 오소마츠가 집 안 곳곳을 누비며 쵸로마츠를 찾았지만,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밖, 에 있어?”

상처에서 올라오는 열로 멍한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마당으로 나간 오소마츠가 신사 마당에 나갔다. 

마당 중앙에 서 있는 세 명의 인간을 보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했다. 

짙은 색의 정장을 입은 인간들은 신사 이곳 저곳을 훑어보며 뭐라 대화를 하고 있었다. 

호기심이 많은 오소마츠는 몽롱한 정신을 하고도 발을 옮겨 인간들 가까이로 다가갔다.



“여기를 허물면…”

“테마 파크가 역시 돈이 되겠죠.”

“그럼 당장 내일부터 공사에 들어가죠!!”

인간들의 대화에 오소마츠는 순식간에 정신이 들었다. 

“거짓말..” 하고 중얼거리는 오소마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인간들은 제멋대로 떠들며 신사를 무너뜨릴 계획을 나누고 있었다. 

어제까지만해도 많은 참배객들이 오갔던 신사이다. 

백 년이 넘도록 오소마츠를 잊지 않았던 마을의 인간들이 갑자기 신사를 허물겠다는 말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에 오소마츠는 벼락에 맞은 것처럼 비틀거렸다. 


“쵸, 쵸로마츠.. 이치마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필사적으로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를 찾았지만, 둘은 보이지 않았다. 

인간들의 잔인한 대화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오소마츠를 자극했다. 


이대로 인간들이 신사를 없앤다면.. 

또 다시 인간들에게 잊혀진다면.. 과거의 기억이 해일처럼 오소마츠를 덮쳐 삼켰다. 

깊은 심해에 속절없이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에 제대로 호흡도 할 수 없었다. 

인간에게 잊혀진다면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 없다. 

쥬시마츠, 토도마츠는 물론이고 카라마츠와도 또 다시 헤어지게 된다. 

위태롭게 오소마츠의 눈가에 매달려 있던 눈물이 떨어져 땅을 적셨다. 


“싫어…”

이 마을을 떠나는 것도, 카라마츠와 헤어지는 것도 이제는 견딜 수 없다. 

그토록 행복했던 시간을 모두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땅을 쥐고 어깨를 떨며 흐느끼는 오소마츠는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울고만 있었다.


“자, 오소마츠.”

“..토, 고..”

“울지 마. 내가 해결해 주마. 내 특기가 인간들을 조종하는 것이라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지? 저 인간들의 마음을 돌려주마. 단 하나만 약조해 주면 돼. 내게 이 마을을 넘겨라.”

“설마, 토고 씨가…”

토고의 말에 오소마츠의 눈이 붉게 빛났다. 

슬픔에 잠겨있던 눈에 작은 분노의 불길이 일렁였다. 

오소마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키득거린 토고가 두 손을 들었다.


“아, 역시 널 속이는 건 무리였나~ 그럼 말을 바꾸지.”

토고가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자 정사각형의 결계에 갖힌 쵸로마츠와 이치마츠가 나타났다. 

단단히 결계에 갖혀 오소마츠를 보며 울부짖는 쵸로마츠를 응시한 오소마츠가 말을 잃었다. 

토고를 노려보고 있던 오소마츠의 눈빛이 초조하게 흔들렸다. 

얕은 숨을 내쉬며 전신을 떨고 있는 오소마츠를 보며 비죽이 웃은 토고가 오소마츠의 귓가에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 내게 토지신을 넘겨주면 저 녀석들을 풀어주마.”

“…”

“아직도 망설이는 건가? 그럼 빨리 결정할 수 있게 도와주지.”

말을 마친 토고를 오소마츠가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토고가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토고의 그림자에서 뻗어나온 검은 손이 쵸로마츠와 이치마츠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괴로워하는 쵸로마츠와 이치마츠의 모습에 오소마츠가 상처의 아픔도 잊고 벌떡 일어나 쵸로마츠에게로 뛰어갔다. 

오소마츠보다 더 여우술에 뛰어난 토고가 만든 결계는 오소마츠가 아무리 두드려도 깨지지 않았다. 

서서히 조여오는 검은 손에 쵸로마츠와 이치마츠가 힘겹게 숨을 내쉬며 발작했다.


“시간이 얼마 없다고?”

토고의 말에 오소마츠가 눈물로 젖은 얼굴로 뒤돌아봤다. 

오소마츠가 대답을 망설일수록 쵸로마츠와 이치마츠의 목을 쥐고 있는 손은 점점 더 강하게 둘의 목을 졸랐다. 

토고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오소마츠에게 다가가 오소마츠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자, 귀여운 동생님. 어서 대답해.”

도망칠 수 없다. 토고를 올려다보며 오소마츠는 사방이 막힌 것을 깨달았다. 

애초에 토고를 이 마을에 받아들인 것부터가 잘못되었던 걸까.. 

자문하며 허탈한 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토고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제발, 구해줘.. 카라마츠.’

간절히, 간절히 바라며 오소마츠는 모든 것을 포기한 얼굴로 토고가 기다리고 있는 대답을 했다.





* 하편은 오늘 밤에 올라올 것 같습니다.


* 내용상 하편은 비밀글이 될 것 같아요. 비밀글 암호는 공지를 확인해주세요^^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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