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코로나때문에 난리네요...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 오랜만에 오소른 50제입니다. 그동안 심신이 너덜너덜해져서 글을 쓸 기력이 없었네요...ㅠ 오랜만에 업로드가 되어버렸어요...


* 약한 장남, 비중있는 모브가 나옵니다. 카라마츠가 맹렬히 질투를 불사르고 있습니다.


* 카라→(←?)오소


* 공미포 22,291자.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소른 50제


33. 시한부 (카라오소)   풍운성월 님 신청 키워드.



1.

 

평소와 다름없는 저녁이었다. 낡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간장병을 주고받는 저녁 식사를 끝내고 브라더들과 할 일 없이 거실에 남아 있는 여느 때의 저녁. 거울에 비친 앞머리를 정리하는 척하며 옆에 드러누워 너덜너덜해진 만화책을 읽는 오소마츠를 훔쳐보던 중에 기계음 섞인 초인종 소리가 불청객처럼 찾아왔다.

찾아올 이 없는 시각에 울린 초인종에 모두 고개를 들어 현관을 응시했다. 저녁 식사까지 마친 이 늦은 시각에 대체 누구인지, 소량의 호기심이 담긴 눈이 현관에 고정되었다. 현관문에 비친 그림자가 몇 초의 간격을 두고 움직이더니 낡은 문이 덜컹거리며 스륵- 옆으로 밀려났다.

안녕하세요.”

“““““, 에에엑!?!?!?!?”””””

빙그레 웃는 얼굴로 현관에 나타난 인물을 보자마자 나와 브라더들은 동시에 괴성을 질렀다.

 

가로로 나란히 앉은 우리 앞에 정좌한 남자는 우리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육둥이가 아니라 칠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닮은 얼굴을 한 남자는 살갑게 웃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데카판 박사님이 만든 인공지능입니다. 박사님께서 인간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로봇 몸을 주셔서 오게 되었어요.”

, 인공지능…?”

. 당분간 마츠노 가에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남자는 정갈한 몸짓으로 살짝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인공지능에 로봇이라는 것은 닥터가 관련된 일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것은 브라더들도 마찬가지인지 굳은 얼굴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쵸로마츠가 살며시 손을 들었다.

그런데 왜 하필 우리 집으로?”

, 여기 계신 오소마츠 씨가 제 인공지능 개발에 도움을 많이 주셨거든요. 익숙한 오소마츠 씨의 집에 머무르는 게 인간의 감정을 알아가는데 더 좋을 것 같아 마츠노 가로 오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몸도 오소마츠 씨를 본 따 만든 것입니다.”

남자는 미리 준비한 대본을 읽는 것처럼 술술 대답했다. 남자의 설명에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경계를 풀고 옅게 미소지었다.

뭐야~, 그런 거였어? 근데 오소마츠 형이 인공지능 개발에 도움을 줬다고??”

믿기 힘든데~. 보나 마나 쓰레기 같은 것만 가르쳐줬겠지.”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남자와 오소마츠를 번갈아 응시하며 웃었다. 두 사람의 웃음 덕분인지 줄곧 털을 세우고 있던 이치마츠도 경계를 누그러뜨리는 것 같았다.

그럼 잘 부탁함닷! 로보마츠!”

이치마츠 옆에서 소매로 입가를 가리고 남자를 보던 쥬시마츠가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손을 덮은 소매가 남자 앞에서 흔들렸다.

쥬시마츠 형, 로보마츠라니…?”

! 로봇에 우리랑 똑같은 얼굴이니까 로보마츠’!”

너무 대충인 거 아니야?”

뭐 어때~. 나도 잘 부탁해! 로보마츠♡

쥬시마츠에 의해 로보마츠라는 이름을 받은 남자가 싱긋 웃으며 쥬시마츠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쵸로마츠의 태클을 휙 날려버린 토도마츠도 남자를 향해 빙긋 웃었다. 순식간에 결정된 성의 없는 이름인데도 남자는 꼭 소중한 것을 받은 것처럼 기쁘게 웃었다.

. 저도 잘 부탁드려요! 오소마츠 씨도요.”

“……, ….”

고개를 틀어 오소마츠와 눈을 맞춘 남자의 말에 오소마츠가 간격을 두고 작게 대답했다. 남자가 우리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오소마츠는 얼이 빠져있었다. 남자가 인공지능 개발에 오소마츠가 도움을 줬다고 말했을 때는 한순간이지만 어깨를 움찔거렸다.

무언가…,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저 남자와 오소마츠 사이에.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제 시선을 외면하는 오소마츠를 잠시 바라보다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카라마츠, 씨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 잘 부탁한다.”

남자는 변함없는 미소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남자와 가볍게 악수하면서 옆에 전해지는 오소마츠의 기척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오소마츠는 나와 남자의 악수가 끝날 때까지 잠자코 있다가 벌떡 일어나 우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목욕탕 문 닫겠다~. 얼른 가자!”

태연한 오소마츠의 얼굴과 달리 그 목소리에는 묘한 답답함이 묻어나왔다.

 

목욕탕으로 향하는 밤길은 추웠다. 한마디로 쏘 콜~~!! 한텐을 뚫고 들어오는 찬 공기에 부르르 몸을 떨며 걸어가는 우리를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뒤따랐다.

로봇인데 씻어도 되는 거야?”

. 이 몸은 방수처리가 되어 있습니다.”

헤에~.”

뭐든 되네, 데카판은.”

토도마츠의 질문에 남자가 소매를 걷어 보이며 대답했다. 남자의 피부는 눈으로 보기엔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였다. 하지만 로봇이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악수하며 짧게 맞잡은 손이 굉장히 차가웠으니까.

어이! 빨리 가자. 정말로 목욕탕 문 닫겠어.”

남자의 피부를 보겠다고 멈췄던 우리들을 저만치 앞서 걷던 쵸로마츠가 재촉했다.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서둘러 쵸로마츠에게 뛰어가고 이치마츠도 느린 발걸음에 속도를 붙였다.

카라마츠 형~, 얼른-!”

어어! 간다.”

토도마츠의 부름에 걸음 속도를 높이며 뒤돌아 제일 뒤에서 걸어오던 오소마츠를 확인했다. 오소마츠는 미묘하게 굳은 얼굴로 남자와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 남자는 우리와 거리가 멀어지자 자연스럽게 오소마츠의 팔을 당겨 우리에게 다가왔다.

 

남자가 신경 쓰인다. ‘후 아 유!?’하고 묻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남자를 지켜보았다. 오소마츠와 나란히 걸어온 남자는 목욕탕에서도 오소마츠 옆을 차지했다. 나란히 앉아 서로 등을 밀어줄 때도 남자는 오소마츠 옆에 앉았다. 다른 빈자리도 많은데 굳이 나와 오소마츠 사이에 앉는 남자를 오소마츠는 가만히 놔두었다. 애초에 로봇인데 등을 밀어줄 필요가 있는 건가!? 몸을 깨끗하게 닦는 행위는 로봇이라도 하는 것이 좋지만, 때를 미는 것은 불필요하지 않은가?! 으응!??

속이 부글거려 등을 미는 손길에 평소보다 힘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쵸로마츠의 등이 어제보다 빨개진 것은 확실히 내 탓이겠지. 당연히 붉어진 등의 주인인 쵸로마츠는 화를 냈지만, 피가 나지는 않았으니 세이프라는 쥬시마츠의 말에 뭔가 포기한 것 같은 얼굴을 했다.

함께 온탕에 들어가고 나란히 등을 밀어준 탓인지 브라더들은 보다 편하게 남자를 대했다. 목욕탕에서 돌아오는 길, 브라더들은 남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남자는 성실히 대답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떠들썩해진 귀갓길 속에서 오소마츠는 줄곧 입을 다물고 있었다.

 

목욕탕에서 돌아와 이불을 펴자 노곤해진 몸 위로 짙은 피로가 올라왔다. 목욕 시간이 불편했던 탓인지 평소보다 긴장했던 몸은 쉽게 피로에 함락되었다. 당장 자리에 누워 잠들고 싶은 마음에 이불을 들고 발을 집어넣었을 때, 쵸로마츠가 파자마로 갈아입은 남자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로보마츠는 어디서 재우지? 손님방?”

…, 로봇이면 안 자는 거 아냐?”

고개를 갸웃거리는 쵸로마츠에게 이치마츠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쵸로마츠는 그러네?’하는 얼굴로 남자를 응시했다.

수면 모드가 있어서 여러분과 함께 잘 수 있습니다.”

남자는 문제 없다는 듯이 대답하고는 슬며시 오소마츠에게 눈을 맞췄다.

여기서 같이 자면 되잖아. 여기 내 옆에 누워.”

이어진 오소마츠의 말에 내려오던 눈꺼풀이 휙 위로 올라갔다. 이불 위에 앉아있던 오소마츠가 아무렇지도 않게 제 옆자리를 팡팡 두드렸다. 아니, 아니아니아니. 그건 아니지 않나? 오소뫄~??

경악한 나와 다르게 이치마츠와 쥬시마츠, 토도마츠는 그래도 상관없다는 얼굴로 서 있었다. 웨이트, 브라더어-?! 거기선 반대하는 게 좋지 않겠나? 으응?!?

아니, 한 이불에 7명이 눕자고? 6명도 좁아터지는데?”

나이스 태클, 쵸로마~!!! 팔짱을 끼고 못마땅한 얼굴로 말하는 쵸로마츠를 눈빛으로 힘껏 응원했다. 희망의 별은 토도마츠가 아니라 쵸로마츠였다!! 마이 리를 쵸로마~~츠우!!

괜찮아~. 카미마츠 때도 7명이 잤고, 이야미도 자고 갔잖아?”

그건 그렇지만….”

NOOOOOOOOOO!! 쵸로마츠!? 왜 그렇게 빨리 시드는 건가, 체리마츠!!!

일주일만 머무는 거니까 괜찮아~.”

오소마츠가 세상 제일의 낙관론자처럼 손을 휘저으며 남자를 제 옆에 앉혔다. 그 모습에 쵸로마츠도 더 말하지 않고 한숨과 함께 자리에 누웠다.

불 끌게-.”

토도마츠의 말이 끝나자마자 방안이 어둠에 휩싸였다. 여섯 명이 함께 나눴던 이불은 쵸로마츠--남자-오소마츠-이치마츠-쥬시마츠-토도마츠 순으로 자리를 내주었다.

WHY…. 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인가…. 오랜만에 오소마츠 옆에서 잘 수 있는 이 날을 얼마나 기대했는데…. 갑자기 왜….

고요하게 퍼진 칠흑 속에서 오소마츠와 나 사이를 가로막은 둔덕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2.

 

서서히 자신의 존재가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는 세상 속에 갇혀 살아가던 내가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것뿐이니까.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오소마츠가 성장함과 동시에 사라질 존재였다. 오소마츠는 조금씩 조금씩,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여러 일을 겪으면서 영원히 이대로 있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에,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기 위해 힘겹게 변화를 인내하고 있었다.

이 변화는 좋은 것일까? 문득 투명해지는 손을 내려다보며 자문했다. 오소마츠가 어른이 되는 것이 정말로 오소마츠가 바랐던 것일까? 세상이 강요했기 때문은 아닐까?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것은 아닐까?

점점이 퍼지는 물음에 대답은 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오소마츠가 진심으로 바랐던 것들을 포기하고 단념하는 것이라면 나는 오소마츠의 변화를 반길 수 없다고. 하지만 오소마츠는 결국 변하겠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른이 되어가겠지. 그리고 결국 주변에 흔히 보이는 사람들을 닮아가겠지….

오소마츠의 변화도 내가 사라지는 것도 막을 수 없지만, 이대로 지켜볼 수는 없었다. 내가 완전히 없어진다면 오소마츠는….

허공을 바라보다 입술을 깨물고 일생일대의 결심을 다졌다. 나의 모든 것을 건 도박이다. 마른침과 함께 두려움을 삼키고 아무것도 없는 허무의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달렸다.

 

나와 닮은 로봇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데카판.”

, 호에호에-. 왜 그게 필요한 것이다요? 오소마츠 군.”

새벽에 불쑥 찾아온 나를 안으로 들인 데카판이 적잖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콩알만 한 눈을 깜빡이는 모습이 괜히 우스워 픽- 헛웃음을 흘리고 대답했다.

 

오소마츠가 아냐, 데카판. 나는……”

 

 

 

3.

 

눈을 뜨자마자 따사로운 햇살에 눈이 부셨다. 본능적으로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일어난 것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브라더들은 아직 꿈나라를 여행 중이었다. 꿈속에서 뭔가를 먹고 있는지 입을 오물거리는 오소마츠를 잠시 바라보다 옆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알아챘다.

그 남자…, 로보마츠는 어디 갔지?

소름처럼 피부를 타고 올라오는 불길함에 서둘러 방을 나와 1층으로 내려갔다.

어머, 백수 2. 웬일로 일찍 일어났니?”

좋은 아침입니다, 카라마츠 군.”

로보마츠는 마미를 도와주던 손을 멈추고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풀며 내게 인사했다. 원래 우리 집의 일원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행동에 어이가 없었다. 꼭 좋은 아들인 마냥 마미에게 빙긋 웃은 로보마츠는 나를 지나쳐 계단을 올랐다.

정말로 정체가 뭘까.

밀려드는 의문과 당황에 2층에서 형제들을 깨우는 로보마츠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아침 식사라고 하기엔 조금 늦은 식사를 끝내고 브라더들은 저마다 할 일을 찾아 움직였다. 가방을 싸며 나갈 준비를 하는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를 확인하고 어제부터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오소마츠에게 다가갔다. 아침 식사 때도 오소마츠는 멍청히 로보마츠를 응시하며 느리게 밥을 입으로 옮겼다. 평소보다 0.8배 느린 젓가락 속도와 간장을 찾지 않는 모습에 가슴 한쪽에 자리 잡은 불길함이 커졌다.

오소마츠, 오랜만에 비너스의 축복을 확인하러 가지 않겠나?”

…? , 아니. 오늘은 어째 기분이 아니네~. 다음에, 카라마츠.”

, , ….”

오소마츠는 억지로 씨익- 웃으며 손을 세워 사과했다. 거절할 줄 몰랐던 터라 한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오소마츠는 망연히 옆에 앉아있는 나를 보며 머리를 긁적이더니 밥상을 치우고 있는 로보마츠에게 걸어갔다.

, 으음…, , …마츠. 오늘 같이 나가지 않을래?”

. 기꺼이!”

답지 않게 쭈뼛거리며 말을 거는 오소마츠를 올려다본 로보마츠는 햇빛을 받은 해바라기처럼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보마츠에게 이끌리듯 오소마츠의 얼굴에도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로보마츠는 손에 쥔 행주를 정리하고 오소마츠와 나란히 현관에 섰다.

그럼 다녀올게~.”

다녀오겠습니다.”

남의 속도 모르고 해맑게 웃으며 손을 번쩍 들어 올린 오소마츠가 로보마츠와 함께 나가자 짙은 정적이 거실을 맴돌았다.

“…로보마츠와 형님은 이상하게 친한 것 같지 않나?”

대답을 원해 내뱉은 것은 아니었지만, 배낭을 메고 나갈 채비를 끝낸 쵸로마츠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말했다.

, 오소마츠 형이 개발에 도움을 줬다니까 그런 거 아냐? 개발 과정에서 친해졌겠지? 오소마츠 형이 온갖 못된 짓은 다 알려줬을 테니….”

그럼 오소마츠 형이 부모 같은 건가? 히힛, 불쌍하네.”

쵸로마츠의 말을 이어받은 이치마츠가 낮게 웃었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작게 웃는 이치마츠 옆에 쥬시마츠가 자리하자 쵸로마츠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딱히 신경 쓸 일 아니잖아? 오히려 로보마츠가 오소마츠 형을 상대해준다면 우리 귀찮게 할 일은 줄어들 테니까 환영할 일이고.”

쵸로마츠는 어깨를 으쓱하고 거실을 나갔다. 토도마츠도 거실을 떠나고 한층 더 조용해진 거실에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집에 남아있으면 기분만 가라앉을 것 같아 집을 나왔지만, 쉬이 술렁이는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다. 햇살 좋은 다리 한가운데에 난간을 기대로 서서 흘러가는 물길을 내려다보았다.

마음에 걸릴 수밖에 없다. 로보마츠도, 로보마츠가 온 뒤에 보인 오소마츠의 태도도. 브라더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로보마츠와 오소마츠는 은근히 서로를 의식했다. 알게 모르게 오소마츠를 챙기며 자연스럽게 자신이 우리의 형제인 것 마냥 행동하는 로보마츠가 눈에 거슬려 참을 수 없다. 세상의 만인을 사랑하는 이 카라마츠가 이래서는 안 되는 걸 알지만, 로보마츠만은 예외다.

하아….”

꼭 로보마츠가 오소마츠를 내게서 뺏어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어이없는 생각이지만 마음에 남은 불길함이 그 생각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뒤숭숭한 기분에 잠식되는 느낌이 들어 억지로 발을 떼어냈다.

오늘은 날이 아닌 듯하다, 카라마츠 걸즈. 아쉬움에 몸부림칠 걸즈에게 미안함을 전하며 집을 향해 걸었다.

 

어머, 백수 2. 마침 잘 왔어~. 쌀 좀 사 올래?”

!?”

수고했다~. 쌀 여기 내려놓고 뒤뜰에 널어놓은 이불 좀 걷어올래?”

,”

이불 개서 여기 놔두고 창고 정리 좀 해줘~.”

“2층 청소기 돌려줄래?”

여기 설거지 좀 부탁해~.”

“….”

너무 부려먹는 거 아닌가!? 마미이!?

 

집에 일찍 돌아온 것을 후회하며 마미가 넘겨준 퀘스트를 모두 컴플리트하자 저녁 먹을 시간이 코앞이었다. 하나둘씩 귀가한 브라더들을 반기고 마미의 저녁 식사 준비를 도와줄 때까지 오소마츠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미, 형님은…,”

로보마츠랑 먹고 들어온다고 연락 왔어~.”

, 그렇군….”

불길함이 배가 되었다. 땅콩 껍질이라도 삼킨 것처럼 입맛이 까끌까끌했다.

 

브라더들과 식사를 끝내고 목욕탕에 갈 준비를 하고 있을 즈음에 오소마츠가 돌아왔다. 오소마츠는 헤실 웃으며 우리와 함께 목욕탕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어제보다 더 가까워진 오소마츠와 로보마츠의 사이에 초조함이 손끝을 간질였다. 빨리 뭐라도 해보라는 것처럼 등을 떠미는 불안에 숨을 삼켰다.

오소마츠. ,”

? . 로보마츠―.”

짐 들어 줄게.”

~, 땡큐베리감솨―.”

어렵게 말을 걸었지만, 다가온 로보마츠에 의해 금방 막혀버리고 말았다. 로보마츠는 자상한 미소로 가장하고 오소마츠에게서 짐을 가져갔다. 그리 무거운 것도 아니지 않나? 그게 뭐라고 굳이 자기가 들겠다고 하는 건가!? 그리고 오소마츠도 그걸 왜 넘겨주나!! 아니, 오소마츠는 그럴 수 있지만!? 오소마츠는 자기 편해지겠다고 브라더를 팔아버릴 수 있는 녀석이니까!

주먹 쥔 손에 아플 정도로 힘이 들어갔지만, 주먹을 풀 수는 없었다. 앞서 걸어가는 오소마츠와 로보마츠의 그림자가 빈틈없이 맞붙어 있었다.

 

어제처럼 나와 오소마츠 사이에서 몸을 씻은 로보마츠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도 오소마츠 옆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브라더들 중 아무도 둘을 신경 쓰지 않았다. 거리가 가까운 오소마츠와 로보마츠의 어깨가 스칠 때마다 울컥 화가 솟은 건 나뿐이다. 어떻게든 저 둘을 떨어뜨려 놓고 싶다. 무슨 방법이

가로등이 아닌 빛이 길을 밝혔다. 편의점!! 그래, 고기만두를 먹자고 하면서 오소마츠를 이쪽으로 끌어들이면 된다!

오소마츠,”

고기만두 사 먹을까?”

부른 것은 난데 왜 네가 다음 말을 하는 건가. 로보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보마츠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기만두를 3개 사서 브라더들에게 2개를 주고는 오소마츠와 하나의 고기만두를 나눠 먹었다. 오소마츠와 고기만두를 나눠 먹는 것은 항상 나였는데….

까득, 입안에 삐걱거리는 소리가 퍼졌다.

 

 

 

4.

 

한적한 길거리를 지나 세월의 흔적이 덮인 초등학교를 지났다. 학교 뒤편 산을 오르는 산책로에 발을 들이자마자 오소마츠가 어딜 향하고 있는지 알아챘다.

오랜만이네, 여기….”

산책로를 조금 벗어나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사잇길로 빠져나오면 있는 작은 둔덕. 둔덕에 어린아이 하나 간신히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이 우리의 비밀기지였다. 구멍에 남아있는 작은 플라스틱 딱지와 질 낮은 종이에 인쇄된 만화책에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나와 오소마츠만의 비밀기지. 엄마나 주변의 어른들에게 혼날 때마다 찾았던 장소가 주는 그리움에 포근한 미소가 절로 피어났다.

….”

오소마츠의 부름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를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눈빛이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고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묻는 모습에 마음이 몽글몽글 부풀어 올랐다. 저런 녀석을 남기고 사라질 수는 없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그냥 세상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어. 어떤 풍경인지, 어떤 냄새가 나는지, 어떤 느낌인지…. 나 자신의 발로 돌아다니면서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어. 그래서 데카판한테 도움을 좀 받았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내 말이 이어질수록 주먹을 꽉 쥐던 오소마츠가 결국 고개를 떨어뜨렸다. 미안해할 필요 없는데. 내가 이런 존재가 된 게 오소마츠 탓이 아닌데….

오소마츠.”

부드럽게 오소마츠를 부르며 녀석의 숙인 얼굴을 들어 올렸다. 비통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쓰다듬으며 오소마츠를 달랬다.

그런 얼굴을 보고 싶은 게 아니야…. 그냥 한 번 쯤은 나와보고 싶었던 것뿐이야.”

“….”

정면으로 나를 바라보는 오소마츠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내뱉은 모든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오소마츠가 입을 뻐끔거리다 굳게 입을 다물었다. 감이 좋은 오소마츠이니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진실을 알아봤자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겠지.

알겠어.”

작게 흘러나온 대답에 나를 향한 믿음이 묻어나왔다. 불안해 죽을 것 같으면서도 나를 믿고 참아준 녀석이 고맙고 귀여워서 옅은 미소가 퍼졌다.

.”

오소마츠를 꼭 안아주고 고개를 끄덕이자 어깨가 무거워졌다. 적당히 등을 토닥이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오소마츠가 슬그머니 몸을 뗐다. 안겨있던 게 부끄러운지 아주 살~짝 빨개진 얼굴을 홱 돌려 숨긴 오소마츠가 크흠.” 하고 헛기침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같이 신나게 놀자구?”

대답 없는 오소마츠 손을 잡고 산에서 내려왔다. 오늘은 어디를 갈까 물으며 번화가로 들어가는 내내 오소마츠는 내 손을 잡은 채 놓지 않았다.

 

경마장에서 처음으로 목청 높여 말을 응원하고, 파칭코에서 처음으로 파칭코 기계를 돌려보았다. 노래방에서는 둘 다 잘 모르는 노래에 당황하고, 서로 노래 레파토리가 적은 것을 놀렸다. 결국 어디서 많이 들어본 광고송이나 동요를 부르고 나왔지만, 그것도 즐거웠다. 노래방을 나오자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근처에 내가 아는 맛집이 있는데 갈까? .”

좋아~!”

오소마츠가 안내한 집은 번화가 구석에 있는 작은 양식집이었다. 맛집이라는 말이 거짓말이 아닌지 좁은 가게엔 손님이 가득했다. 경마에서 딴 돈으로 메뉴 여러 개를 시키고 맥주까지 한 잔씩 주문하고 나니 절로 기분이 들떴다.

건배~!”

~!!”

먼저 나온 맥주를 부딪치고 벌컥벌컥 마시니 시원한 맥주가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가는 게 천국이 따로 없었다.

크으~! 여기 맥주 맛있다!”

그치? 나만 아는 맛집이라구!”

빈 맥주잔을 거칠게 내려놓자 오소마츠도 즐겁게 웃으며 잔을 흔들었다.

오늘 꽤 재미있었어~! 경마도 파칭코도 처음이지만 엄청 땄고.”

, 그런 건 다 비기너 럭이거든!? 내일엔 내가 터질 거야!”

내일 쓸 군자금은 있고? 오늘 개털 됐잖아.”

빌려줘, ~.”

~.”

장난스럽게 답하며 오소마츠의 머리에 살짝 딱밤을 날렸다. 서로 눈을 맞추고 히히 웃다가 문득 어릴 적에 이렇게 즐겁게 웃으며 장난치던 시절이 떠올랐다.

전에 야구 배트 잘못 휘둘렀다가 이웃집 유리창 깨 먹고 엄청 혼났었지~. 그 아저씨 진짜 무서웠는데.”

~! 그때? 근데 그거 내가 깬 거 아닌데 말이야!! 무슨마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아니었어!!”

유리창은 우리가 한 게 아니었지만 다른 장난은 많이 쳤잖아?”

이야미 옷에 송충이 넣었던 거 기억나?”

기억나~! 이야미 엄청 웃겼지!! ‘~!!!!’하면서 발광하고. 다용 속여서 엄청 매운 고추 먹게 한 적도 있었지!”

맞아!! 다용 입에서 불 나왔었지~!”

큭큭큭, 웃음을 흘리며 새로 주문한 맥주잔을 맞부딪쳤다. 두꺼운 유리잔이 하고 경쾌하게 울렸다.

어릴 때는 재미있었는데. 걱정도 없고, 녀석들하고 매일 장난치면서 놀고….”

흐려지는 말속에 숨은 아쉬움에 함께 눈썹을 처연하게 늘어뜨렸다. 맥주가 얼마 남지 않은 잔을 돌리며 오소마츠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중학교까지도 나쁘진 않았지.”

….”

고등학교도…, 최악은 아니었어.”

“….”

단번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말없이 맥주를 들이켠 오소마츠가 털퍽 테이블에 엎드렸다.

여러 일이 있었지…. 취직 소동이라던가, 선발이라던가….”

“…다 지난 일이야.”

얼굴을 틀어 내 눈을 피한 오소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지난 일이지만, 그래도 힘들었지….”

쓰다듬을 멈추고 통통 가볍게 머리를 두드린 뒤 손을 거두자 오소마츠가 배시시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형이 있어서 괜찮았어.”

술 때문인지 홍조가 떠오른 얼굴에 넘실거리는 미소가 귀여워 나도 모르게 녀석의 빨간 볼을 잡아당겼다.

아흐아(아파아).”

옆으로 길어진 얼굴에 절로 푸핫!” 하고 웃음이 나왔다. 꼬집은 게 제법 아팠는지 볼을 어루만지는 오소마츠를 보다 고개를 기울였다.

기뻤었다. 오소마츠가 나를 의지해주는 게. 녀석이 힘들 때마다 나를 찾는 게 기뻐서, 아직 내가 오소마츠에게 필요하다고 확인받는 것이 기뻐서 내게로 도망친 오소마츠를 반겼다. 하지만 오소마츠는 서서히 변해가면서 더는 나를 찾지 않았다. 오소마츠를 원망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이게 오소마츠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면, 녀석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면 오소마츠를 붙잡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나 없이 걸어가는 오소마츠에게 선물을 주고 싶을 뿐이다. 앞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나를 대신해서 의지할 수 있는 선물을.

 

마지막 한 발을 내딛지 못하는 겁쟁이지만, 발로 차 밀어서라도 오소마츠 옆에 세워서 제대로 선물로 만들어낼 테니까.

 

 

 

5.

 

늦은 오전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가자 오소마츠와 로보마츠는 이미 외출한 뒤였다. 집에 있으면 오소마츠가 언제 돌아올까 한없이 답답해하며 기다릴 것 같아 간단히 배를 채우고 집을 나왔다. 경마장이나 파칭코 가게는 오소마츠가 있을 수 있다. 오소마츠와 로보마츠가 함께 있는 모습을 밖에서까지 보고 싶지는 않았다. 한숨을 내쉬며 걷다가 푸른 줄무늬 트렁크가 눈에 들어왔다.

닥터!!”

호에호에, 카라마츠 군. 오랜만이다요.”

아아, 닥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우리 집에 보낸 로봇에 대한 것인데,”

, 호에호에. 그건 그냥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을 한 번 만들어 본 것일 뿐이다요! 잘 만들어진 인공지능이 아까워 시험 삼아 로봇 몸을 만든 것 뿐이다요. 일주일 뒤엔 제대로 가져갈 테니 잠깐만 맡기겠다요! 그럼 이만!!”

.”

닥터는 눈에 띄게 당황하면서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더니 후다닥 뛰어 도망쳤다. 아니, 뭘 물어보겠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저 반응은 대체 뭔가. 닥터를 붙잡으려 해도 이미 저 멀리 사라진 뒤였다.

로보마츠를 대하는 오소마츠의 태도도 그렇고 방금 데카판의 반응도 그렇고, 로보마츠가 수상하다는 생각을 도저히 지울 수 없다. 뭔가가 있다는 확신이 점점 강해진다.

일주일 뒤엔 확실하게 회수한다니까….”

일단은 놔둘까.

 

외롭다. 물론 내 인생은 론리니스 라이프지만, 로보마츠가 온 뒤로 오소마츠와 어울리는 것이 힘들어졌다. 밖을 돌아다니는 것도 무의미해져 적당히 시간을 때우고 집에 돌아갔다.

마미, 형님은…,”

오소마츠는 오늘도 늦는다고 연락 왔어~.”

그런가….”

벌써 이틀째다. 오소마츠가 로보마츠와 어울리며 늦게 들어오는 게. 참으려 해도 어쩔 수 없이 기분이 가라앉았다.

하아….”

젓가락을 반찬을 집다가 새어 나온 한숨에 눈썹을 찌푸렸다. 신경 끄자. 늦긴 해도 들어오긴 할 테니까. 로보마츠는 어차피 인공지능이고 며칠 뒤엔 돌아갈 거고.

화를 삼키며 숨을 내쉬자 옆에 앉은 이치마츠가 슬쩍 나와 거리를 두는 것이 보였다.

이치마츠? 왜 그러지?”

, 아니. 아무것도 아냐.”

혹시 내가 자리를 많이 차지했나? 오소마츠가 빠져서 자리는 넉넉할 텐데…?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내 자리를 확인하고 이치마츠에게 묻자 얼굴이 창백해진 이치마츠가 몸을 떨며 고개를 저었다. 혹시 어디가 아픈 건가 싶어 물어도 이치마츠는 아니라는 말만 반복했다.

 

브라더들은 모두 이불 속에 있다. 거실에 남아 불 꺼진 복도를 응시했다. 벽에 걸린 시계의 시침에 3에 머물렀다. 오소마츠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거실에 앉아 초조하게 발을 떨었다. 시침이 돌아갈수록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도 커졌다.

어서 와라, 오소마츠.”

오소마츠는 새벽해가 뜨고 나서야 돌아왔다. 밤을 새우고 들어온 것도 모자라 거나하게 취해서 로보마츠에게 업혀 들어온 오소마츠가 헤실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 카랴마츄~. 횽아 기다린 거~?”

하아….”

비틀거리며 로보마츠에게서 내려온 오소마츠가 내게 어깨동무를 하고 헤헤 작은 웃음을 흘렸다. 오소마츠가 내뱉는 숨에서 알코올 냄새가 진했다.

얼마나 마신 건가.”

횽아가 기부니가 죠아서 쬬~~~끔 마셨징~!”

이렇게 늦게 들어오면 마미와 브라더들이 걱정하잖나! 몸도 제대로 못 가눌 정도로 마시는 건 좋지 않다.”

으에~, 너가 체리마츠냐아~?”

오소마츠는 내 충고를 한 귀로 흘리면서 뾰로통한 얼굴로 볼을 부풀렸다. 그러다 금방 기분이 풀렸는지 발갛게 웃은 오소마츠가 후아~.”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잘래….” 하고 중얼거렸다.

오소마츠 혼자 올라갈 수 있겠어?”

~, 괜챠나~.”

계단을 오르는 오소마츠를 향해 로보마츠가 묻자 오소마츠가 손을 휘휘 젓고는 계단을 마저 올랐다. 좌우로 휘청거리는 몸으로 무사히 계단을 오르는 것을 확인한 뒤 로보마츠와 눈을 맞췄다.

얼마나 원했는지 모른다. 그토록 원했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저 남자는 그 자리를 너무나 당연하게 차지했다. 처음부터 자신만이 오소마츠가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라는 듯이.

오소마츠가 네 말을 듣지 않아도 할 수 없잖아? 너는 단순한 동생이니까.”

? 그게 네 본성이냐?”

어깨를 으쓱거린 로보마츠가 나를 비웃듯 키들 웃었다. 평소 우리에게 보여줬던 공손한 말투와 전혀 다른 어조에 머리로 피가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로보마츠는 고요한 눈으로 나를 보며 입을 뗐다.

네가 동생으로 남아있는 한 네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거야.”

“…?”

로보마츠는 충고니까 잘 새겨들어.” 하고 멍멍이 소리를 이은 뒤에 나를 지나쳐 계단을 올랐다. 멀어지는 뒤통수를 뚫을 기세로 노려보다가 밀려오는 허탈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을 맹렬하게 노려보는 나를 로보마츠는 만족스럽게 쳐다보았다. 꼭 내가 자신을 질투하길 바랐던 것처럼.

 

네가 동생으로 남아있는 한 네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거야.”

 

로보마츠가 남기고 간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6.

 

내게는 기회가 있었다. 오소마츠를 지탱해줄 수 있던 기회가. 오소마츠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기회가. 하지만 나는 그 기회를 거하게 날려버렸다. 지탱은커녕 오소마츠를 몰아붙이는데 일조했던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삼켰다. 답답한 마음은 점점 커지는데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답이 보이지 않는다.

거울을 들고 있는 것도 무의미해 손을 내려 바닥에 거울을 내려놓고 벽에 등을 기댔다. 로보마츠가 남긴 말이 아직도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우와…, 평일 낮인데 집에 박혀 있는 거냐.”

헬로 워크에 갔다 왔는지 얼굴을 찌푸린 쵸로마츠가 가볍게 잔소리하며 거실에 들어왔다. 백팩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거실 안을 빙 둘러본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찾았다.

오소마츠 형은?”

로보마츠랑 나갔어….”

질리지도 않고 붙어 다니네….”

이치마츠의 대답에 쵸로마츠가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자리에 앉았다. 구석에 무릎을 안고 웅크린 이치마츠가 그에 동의하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있잖아….”

가방에서 연막용 취업잡지를 꺼낸 쵸로마츠가 은근히 눈을 굴리며 입을 열었다.

오소마츠 형 있잖아…, 요즘 좀 변하지 않았어?”

잡지 페이지를 괜히 만지작거리며 말을 꺼낸 쵸로마츠에게 브라더들이 시선이 집중됐다. 몇 초 동안 적막이 흐르자 쵸로마츠가 멋쩍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 아냐. 방금 한 말은 취소,”

오소마츠 형은 원래 애 같아. 근데 요즘에 좀 이상해졌다는 부분은 나도 동의해.”

쵸로마츠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토도마츠가 무심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러자 슬금슬금 원형 테이블 근처로 다가온 이치마츠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오소마츠 형이 요즘 좀 이상한 것 같긴 해…. 어제 고양이 캔 사려고 돈 빌려달라고 했는데 거절했고…. 다른 때엔 투덜거리긴 해도 천엔 정도는 빌려줬는데….”

이치마츠의 말에 옆에 있던 쥬시마츠가 응응응!!” 하고 격하게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OH…, 마이 리를 쥬시뫄~? , 그렇게 머리를 리드미컬하게 흔들면 머리가 떨어질 거다!!

하아!? 그 자식 이치마츠 너한테는 돈도 빌려줘!? 내 지갑에서 빼 간 돈이나 갚을 것이지!!”

쵸로마츠가 돈 이야기에 발끈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곧 씩씩거리던 숨을 고르고 자리에 앉은 쵸로마츠가 하고 혀를 찼다.

정확히 어디가 변했다고는 못하겠지만, 확실히 변했어. 오소마츠 형. 전에 여자애들이랑 라인하는 걸 들켰는데 치근덕거리지 않고 보통으로 넘어가더라구….”

오소마츠 형이 그걸 그냥 넘겼다고??”

. 다른 때엔 형보다 먼저 여친을 만들다니, 용서 안 할 거니까!!’ 하고 시끄럽게 굴었으면서 말이야….”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한 토도마츠는 자기가 한숨을 내쉬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 항상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도 테이블에 내려놓고 가라앉은 눈으로 쵸로마츠를 응시한 토도마츠가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쵸로마츠 역시 토도마츠의 말에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았다. ‘하고 신음하며 큰 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내게로 눈을 돌렸다.

카라마츠 형은 무슨 일 없었어?”

쵸로마츠의 물음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을 한 쵸로마츠가 다시금 푹- 한숨을 내쉬었다.

-, 딱히 우리한테 피해가 가는 건 아니니까 놔두자.”

….”

내려놓았던 잡지를 든 쵸로마츠의 말에 토도마츠와 이치마츠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쥬시마츠도 잠시 멈췄던 손을 움직여 이치마츠 무릎에 누운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브라더들도 언뜻 눈치채고 있는 것 같다. 오소마츠의 변화는 로보마츠가 온 뒤로 일어난 것이라고.

사소하지만 오소마츠는 확실히 전과 달랐다. 브라더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 역시 오소마츠의 변화 하나를 알아챈 상태였다.

로보마츠가 오고 나서 오소마츠가 자신을 이라고 지칭하는 일이 줄었다.

 

드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활짝 핀 미소로 거실에 들어온 오소마츠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우햐햐햐햣!!” 하고 경박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마시러 갈 사람~!!”

갑자기 뭐야? 설마 오소마츠 형이 쏘는 거야?”

크하하핫! 그래, 오늘은 파칭코에서 대박이 난 이 오소마츠 님이 한턱 쏜다!”

의기양양하게 쵸로마츠를 보며 외친 오소마츠가 얼른 가자~!” 하고 브라더들을 재촉했다.

진짜 오소마츠 형아가 딴 겁니까?”

, 실은 제가 땄습니다.”

로보마츠 돈으로 쏘겠다고 한 거야? 역시 쓰레기 장남.”

쥬시마츠의 질문에 로보마츠가 손을 들고 대답하자 이치마츠가 입꼬리를 비틀고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도 한심하단 눈으로 오소마츠를 쳐다보았다.

뭐 어때! 중요한 건 다 같이 마시러 가는 거잖아! 안 그래?”

입술을 삐죽 내밀고 투덜거린 오소마츠가 로보마츠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기울였다. 로보마츠는 꼭 어린아이의 응석을 받아주는 듯이 빙그레 웃으며 그럼요.” 하고 대답했다. 서로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오소마츠와 로보마츠 사이에 쉬이 끼어들 수 없는 분위기가 퍼졌다. 브라더들도 그것을 눈치챘으나 자신들에게 피해가 없으니 상관없다는 투로 외면하고 몸을 일으켰다.

가자~!”

자연스럽게 로보마츠의 어깨에 걸쳐진 오소마츠의 손을 보다가 힘주어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로보마츠는 빼고 가지 않겠나?”

유치한 질투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로보마츠가 오소마츠 옆에 붙어있는 것을 더 참을 수 없었다. 고요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로보마츠가 우리들의 평화를 부수러 온 침입자처럼 보여 그를 제거하고 싶다는 마음이 한가득 부풀어 올랐다.

? ?”

로보마츠를 노려보고 있던 내게 오소마츠의 서리같이 차가운 목소리가 닿았다. 오소마츠의 거부는 예상했지만, 이렇게 싸늘한 목소리가 돌아올 줄은 몰랐다. 당황해 오소마츠와 마주 본 순간 전신의 피가 멈추는 것 같았다. 완벽한 타인, 아니 적을 보는 듯한 적의 가득한 눈동자가 나를 담았다. 딱딱하게 굳은 오소마츠의 무표정은 그리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것이었다.

, 그러니까, 오랜만에 형제끼리의 시간을,”

온기 한 점 느껴지지 않는 눈빛을 받은 순간 오소마츠에게 미움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숨통을 움켜쥐었다. 절로 호흡이 얕아지고 무의식적으로 후드를 움켜쥐었다. 벌을 받는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고개를 숙이자 오소마츠의 숨소리가 바닥에 퍼졌다.

매정하게 왜 그래~, 카라마츄~. 로보마츠 혼자 놔두고 가면 불쌍하잖아~?”

맞아, 카라마츠 형. 로봇이니까 술값이 더 드는 것도 아니고 놔두고 가면 미안하잖아.”

평소와 같은 오소마츠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이어 토도마츠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를 울리며 다가와 내 손을 잡고 고개를 기울인 토도마츠가 다 같이 가자, ?” 하고 말하며 나를 끌어당겼다. 힘없이 토도마츠를 따르며 오소마츠에게 눈을 뒀지만, 오소마츠는 로보마츠와 앞서 걸으며 뒤돌아보지 않았다.

 

외상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치비타의 노성을 한 귀로 흘린 오소마츠가 술잔을 기울였다. “후햐~!” 하고 더운 숨을 내뱉는 오소마츠의 얼굴엔 벌써 홍조가 활짝 피어 있었다. 브라더들도 테이블에 엎어져 산 건지 죽은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맛이 가 있었다.

하우―.”

느리게 눈을 껌뻑이며 술잔에 다시 술을 채운 오소마츠의 몸이 휘청거렸다. 재빨리 오소마츠의 등 뒤로 손을 뻗었지만, 오소마츠는 로보마츠에게 몸을 기댔다.

괜찮아?”

우응….”

브라더들 앞에서 떨던 내숭을 버리고 본성을 드러낸 로보마츠가 다정히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도발하듯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유치한 자식. 짜증 나는 자식. 허공에 뜬 손을 주먹 쥐었다.

오소마츠의 옆을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았다. 아아―, 당장 저 자식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간절히 바라며 주먹을 자신의 무릎 위로 되돌렸다.

 

 

 

7.

 

무언가의 흔적으로서 남아있는 영혼을, 아니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영혼을 로봇 몸에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사히 로봇 몸에 의식이 넘어간 것을 확인하던 내게 데카판이 우려하며 쳐다보았다.

지금 상태로는 일주일이 한계다요. 그 전에 돌아가야…,”

돌아가도 똑같아. 사라지는 건 각오했어. 괜찮아, 데카판.”

처연하게 웃자 데카판이 울상을 지었다.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있다고 막연히 느끼며 연구소를 나와 집으로 향했다. 내게 남은 시간은 일주일뿐이니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펴며 몸의 상태를 확인했다. 일주일이 한계란 소리는 최대 일주일이란 뜻이었다. 5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몸이 뻣뻣해지기 시작했다. 삐걱거리는 기계 몸을 억지로 움직여 지붕에서 내려왔다. 모처럼 몸을 얻었는데…, 더 오소마츠 옆에 머무르고 싶은데….

하아….”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서 달게 낮잠을 자는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빨리, 내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선물을 남기려면 더 분발해야 한다. 그래도 마냥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눈빛으로 사람 죽일 기세였지.”

피식- 얇은 웃음을 흘리며 나를 죽일 듯이 쳐다보던 푸른 눈을 떠올렸다. 날 그렇게 질투하면서 결정적인 한 방은 날리지 않는 녀석이 우습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절반은 성공한 셈인가…. 오늘 내일로 승부를 보자. 홀로 다짐하며 오소마츠를 흔들어 깨웠다.

 

카라마츠 군. 오늘 특별한 계획이 있나요?”

다른 형제들은 모두 외출했는데도 묵묵히 거실을 지키고 있던 카라마츠에게 다가가 물었다. 카라마츠는 네가 그걸 왜 묻냐는 얼굴로 내 뒤에 서 있는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딱히 없다만…?”

그럼 같이 유원지에 갈래요?”

무해한 미소를 지으며 묻자 카라마츠가 의심 가득한 얼굴로 나와 거리를 뒀다.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는데 말이야―. 새끼 고양이가 털을 세운 것처럼 가소로웠지만, 여기서 웃으면 카라마츠가 안 따라올 게 분명했다.

오소마츠 군과 가기로 했는데 유원지는 여러 사람이 가는 게 즐거울 것 같아서요.”

슬쩍 오소마츠를 돌아보자 카라마츠의 눈이 질투로 빛났다. 그러면서도 뭔가 속셈이 있을 거로 생각하는지 대답을 망설이는 카라마츠를 보며 한숨을 삼켰다.

싫다는 녀석을 억지로 데려갈 필요 없잖아. 우리끼리도 충분하고….”

뚱한 표정으로 오소마츠가 깍지 낀 손을 머리 뒤로 돌리며 툴툴댔다. 나 역시 오소마츠와 단둘이 가는 편이 즐겁지만, 계획을 위해서는 카라마츠가 꼭 필요했다. 일단 저 삐돌이를 어떻게 달랠까 고민하던 중에 카라마츠가 씩씩거리며 벌떡 일어났다.

갈 거다! 같이 간다.”

나는 유원지에 가자고 했지 번지점프라도 하러 가자고 한 게 아닌데 말야…. 카라마츠는 비장미를 흘리며 나를 노려봤다.

그럼 가요~.”

하하, 마른 웃음을 흘리며 카라마츠와 오소마츠의 손을 잡고 집을 나왔다.

 

전철을 타고 도착한 유원지 입구에서 카라마츠가 얼떨떨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진짜 유원지에 온 건가….”

정말 목적지를 의심했던 건지 표를 끊고 유원지 안으로 들어가는 내내 카라마츠는 얼이 빠져 있었다.

뭐부터 탈까요?”

들뜬 마음에 유원지 지도를 펼치고 놀이기구 목록을 확인했다. 유원지를 직접 온 것은 처음이라 기분이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오소마츠도 오랜만에 놀러 온 것이 기쁜지 내 옆에 찰싹 붙어 같이 지도를 살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온 뒤로 처음인가?”

어느새 지도를 뺏어가 진지하게 첫 놀이기구를 정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말했다. 오소마츠는 히히 웃으며 그러게―. 진짜 오랜만이네~.” 하고 대답하고는 다시 지도에 눈을 고정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라마츠의 얼굴에 혼란스러움이 묻어나왔다. 데카판이 만든 인공지능이 어떻게 그걸 알고 있냐는 얼굴이네. 의심과 적의가 섞인 눈빛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 계속 그렇게 의심하고 질투하라고, 카라마츠 군. 계획대로 흘러가는 분위기에 콧노래가 나왔다.

 

유원지는 정말 즐거웠다. 돌아가는 찻잔에선 토가 나올 정도로 찻잔을 돌렸고, 바이킹과 롤러코스터에서는 신나게 비명을 질렀다. 회전목마를 직접 타면 은근히 속도가 빠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줄을 서는 시간까지 즐거울 수 있다니. 더 빨리 오소마츠와 오지 못한 것이 아까울 정도로 유원지에서의 시간은 행복했다.

, 오소마츠.”

~!”

기다란 추로스를 한입 가득 깨무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어린애처럼 뭘 잔뜩 묻힌 입가를 닦아주고 슬쩍 카라마츠를 확인했다. 카라마츠는 놀이기구를 탈 때를 제외하면 내내 오소마츠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소마츠가 계속 나만 신경 쓰는 게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드는지 어쩌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얼굴이 따가웠다. 아주 질투로 활활 타오르는 덕에 날이 추운데도 더울 지경이었다.

다음은 자이로드롭을 타볼까?”

, 그거 타게? 나는 싫어, 무섭다구―.”

혹시 내가 같이 타자고 할까 봐 질색이라는 얼굴을 한 오소마츠가 뒤로 물러났다. 카라마츠도 허예진 얼굴로 찔끔찔끔 뒷걸음질 쳤다. 나 참-, 혼자 탄다, 혼자 타. 겁먹은 녀석들을 근처 벤치에 앉히고 자리를 떴다. 녀석들 시야에서 사라졌을 즈음 발을 돌려 빠르게 걸었다. 들키지 않도록 빙- 돌아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앉은 벤치 뒤 풀숲에 몸을 숨기자 둘의 대화가 넘어왔다.

오소마츠, 로보마츠의 정체가 뭔가.”

저렇게 대놓고 묻다니. 역시 카라마츠는 단순하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질문이 불쾌한지 눈빛을 날카롭게 세우고 답했다.

첫날 들었잖아. 데카판이 만든 인공지능이라고.”

그게 아니잖아!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니라는 거 알고 있다!”

“….”

“…인공지능하고 그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건가, 오소마츠.”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간절해졌다. 대답을 듣고 싶으면서 두려워하는 것이 내게도 전해졌다. 저럴 때 보면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는 은근히 닮은 구석이 많았다. 애처롭게 자신을 바라보는 카라마츠의 눈을 외면한 오소마츠가 크게 숨을 내쉬고 작게 대답했다.

, 소중한 사람이야.”

하고 느껴질 리 없는 통증이 가슴께에 퍼졌다.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의 눈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풀숲에서 빠져나가 다시 길을 빙 돌아 오소마츠와 카라마츠 앞에 섰다.

가서 보니까 무섭더라구. 못 타고 왔어.”

멋쩍게 웃으며 돌아온 나를 오소마츠가 반겼다. 카라마츠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눈으로 하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돌아갈까?”

벌써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는 말없이 벤치에서 일어나 출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나와 오소마츠, 카라마츠가 나란히 앉아 각자 생각에 빠졌다. 덜컹거리는 전철 안에서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유원지를 갈 때는 신나게 웃고 떠들었지만, 집으로 돌아갈 때는 침묵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뭘 생각하는 걸까, 저 두 녀석은.

등받이에 기대 눈을 감았다. 이걸로 추억도 충분히 쌓았고, 마지막 한 단계만 성공한다면 아무 걱정 없이 사라질 수 있다. 오소마츠는 슬퍼하겠지. 자신이 사라지고 난 뒤를 상상하자 울음을 터트린 오소마츠가 먼저 떠올랐다. 울겠지…. 그래도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오소마츠 옆에 있어 줄 녀석이 있으니까 안심이다.

그러니까 제대로 하라고, 카라마츠.

 

 

 

8.

 

녀석들이 잠든 새벽. 형의 부름에 이불에서 빠져나와 지붕에 올랐다. 차가운 기왓장의 냉기가 발바닥을 타고 올라와 몸이 절로 부르르 떨렸다.

춥지?”

먼저 지붕에 올라와 있던 형이 옆에 둔 담요를 펼쳐 내 어깨에 걸쳐줬다. 통통, 옆자리를 두드리는 형 가까이에 엉덩이를 내리자 형이 작게 웃더니 눈을 내리고 기도하듯 손을 모았다.

오소마츠, 나는 곧 사라질 거야.”

외면했던 공포가 불쑥 눈앞에 다가왔다. 입술을 깨물고 목까지 치솟은 울음을 삼켰다. 눈시울이 뜨거워져 서둘러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뗐다.

“…,”

알고 있었잖아, 오소마츠. 내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는 걸.”

그건…! 형을 만나는 횟수가 줄어든 건 맞지만, 형은 내 하나뿐인 형이잖아! 사라질 리가 없잖아!”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형은 울먹이는 나를 잔잔한 미소를 품고 바라보다 천천히 손을 올려 내 머리 위에 얹었다. 따뜻한 손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자상함이 사라진다니 믿고 싶지 않았다. 형이 사라진다니. 다시는 볼 수 없다니.

, 사라지지 마! 내가 계속 형을 만나면 되잖아! 영원히 나랑 있으면 안 돼?”

형의 옷을 붙잡고 눈을 깜빡이자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형은 내 눈가에 매달린 눈물을 닦아주고 나와 이마를 맞댔다. 시야에 가득 들어온 형의 눈동자가 투명하게 빛났다.

내가 만약 오소마츠와 영원히 같이 있어도 결국 너는 혼자가 되는 거야.”

그래도 괜찮아! 형만 있으면,”

애원처럼 형을 마주 보았지만, 형은 미소 지은 얼굴로 이마를 떼고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오소마츠, 나는 진짜 네 일까?”

숨을 들이마셨다. 꼭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형의 눈동자에 동그랗게 눈을 뜬 채 얼어버린 내 얼굴이 비쳤다.

나는 누구야? 오소마츠.”

“….”

형은 한참이 지나도록 내가 대답하지 못하자 쓴웃음을 지으며 떨어졌다. 알고 있었다는 얼굴로 슬프게 웃으며 숨을 내쉰 형이 나지막이 아픈 진실을 건넸다.

오소마츠, 어른이 되려면 나와 헤어져야 해.”

형은 그 한 마디를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갔다. 얼음처럼 차가운 몸을 웅크리자 하얀 달빛을 받은 눈물이 툭 아래로 떨어졌다.

 

 

 

9.

 

흠칫, 거실로 들어가려던 발이 일순 멈췄다. 방안에 퍼진 냉랭한 공기에 눈치를 보며 안으로 들어가자 나와 교대하듯 쵸로마츠가 거실을 나왔다.

, 그럼 난 라이브 다녀올 테니까!”

단순한 외출일 텐데도 변명하듯 외친 쵸로마츠가 서둘러 신발에 발을 끼우고 현관을 나섰다. 다른 브라더들도 이 분위기를 피하고자 일찌감치 집을 나선 것 같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사이가 좋았던 로보마츠와 오소마츠는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일부러 로보마츠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도록 어색하게 방안을 둘러보던 오소마츠가 푹- 한숨을 내쉬며 한쪽 무릎을 세웠다. 무릎에 턱을 괴고 바닥에 놓인 만화책을 파라락 성의 없이 넘긴 오소마츠가 로보마츠가 움직이는 소리에 어깨를 움찔거렸다.

카라마츠. 오늘 나랑 나갈래?”

.”

내게 다가와 묻는 로보마츠의 말에 적잖이 놀라 오소마츠에게 시선을 뒀다. 오소마츠 역시 놀란 얼굴로 로보마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짓으로 오소마츠를 가리키자 로보마츠가 하하 마른 웃음을 흘렸다.

오늘은 카라마츠와 단둘이 놀러 가고 싶어서.”

로보마츠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대체 이 녀석은 무슨 속셈이지? 어제부터 보여준 녀석의 이상한 행동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로보마츠는 얼떨떨한 상태로 힘없이 자신에게 끌려가는 나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피웠다.

 

어딜 가려는 건가?”

집을 나와 한참을 걸었다. 오소마츠가 금방 우리를 따라오지 않을까 싶었지만, 오소마츠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로보마츠는 내 질문에 ~, 어디로 갈까?” 하고 되물으며 길을 따라 걸어갔다.

이 공원에서 어릴 때 엄청 많이 놀았지. 그네에서 멀리 뛰어내리기 시합도 하고. 지금은 다 새 기구로 바뀌었지만.”

어릴 적 브라더들과 놀던 공원 앞에서 멈춘 로보마츠가 그네 타는 아이들을 부드럽게 응시했다. 한 걸음 뒤에 멈춰 서서 그걸 어떻게 아는 건가.’ 하고 목까지 차오른 질문을 삼켰다. 로보마츠는 내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는지 성큼성큼 걸어 공원을 지나쳤다.

이 골목에서 야구 하다가 창 깨 먹었지~. 오소마츠가 한 게 아닌데 오소마츠만 잡혀서 엄청 혼나고.”

추억이 남은 골목에서,

저기 운동장 구석에 정글짐 있던 거 없어졌네-. 오소마츠가 제일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자랑했었는데.”

그리운 초등학교에서,

옥상 아직 열려 있을까? 거기서 다 같이 점심 먹었는데…. 도시락 메뉴는 같았지만.”

색이 바랜 중학교 교문에서,

“…고등학교는 항상 즐겁지만은 않았네….”

씁쓸함이 남은 고등학교에서 멈춘 로보마츠가 과거를 말했다. 인공지능이라면 알 수 없는 과거를.

너는, 뭐지?”

홀연히 나온 질문에 로보마츠는 미소로 답하고 말없이 발을 옮겼다.

여기가 마지막.”

로보마츠가 그렇게 말하며 닥터의 연구소 앞에 멈췄다. 여기는 왜 왔냐고 묻기도 전에 안으로 들어간 로보마츠를 닥터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반겼다.

한계가 온 것 같아, 데카판.”

, 호에호에….”

담담한 목소리에 이유 모를 슬픔이 느껴졌다. 닥터는 그 작은 눈을 크게 뜨고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며 로보마츠를 응시했다.

카라마츠. 내 정체가 궁금하지?”

로보마츠는 빙글 몸을 돌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처연히 웃었다. 로보마츠의 정체에 관한 의문은 컸다. 우리들만 알고 있던 것들을 술술 말했으니까. 오소마츠를 대하는 태도 역시 의문투성이였다. 그의 정체를 말해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로보마츠의 깊은 눈빛과 흐린 미소가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 같아서, 그의 말을 듣는 것이 망설여졌다.

나도 내가 무엇인지 모르겠어. 나는 줄곧 오소마츠 안에만 있었던 존재거든. 오소마츠를 통해 너희와 세상을 봤었으니까. 오소마츠가 나를 찾아오면 함께 놀기도 하고 녀석이 힘들어하면 위로해주기도 했어. 나는 오소마츠에게 친구이자 형이었어.”

“….”

이런저런 일이 있고 나서 오소마츠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걸 선택했어. 이대로 영원히 너희와 함께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오소마츠가 어른이 되어갈수록 나는 점점 사라져가더라고. 그래서 데카판에게 부탁해 로봇 몸을 얻어서 밖으로 나온 거야. 내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너한테 내 역할을 넘겨주려고.”

“…내게?”

그래. 마츠노 카라마츠, 너한테.”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로보마츠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일 터인데 그의 말은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고요하게 나를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에 숨을 삼켰다.

왜 나를….”

입안이 바싹 말랐다.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몰려왔다. 로보마츠는 다 안다는 얼굴로 피식- 웃고는 고개를 살며시 기울였다.

오소마츠를 좋아하잖아? 그렇게 열렬하게 쳐다보는데 눈치채는 게 당연하지―.”

키들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로보마츠의 말투가 오소마츠와 닮아있었다. 목소리마저 오소마츠와 비슷한 것처럼 느껴져 얼굴이 뜨거워졌다.

, 그럼 오소마츠도…?”

불안으로 시야가 흔들렸다. 다행히 로보마츠는 고개를 저으며 오소마츠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오소마츠는 몰라. 은근히 눈치 없다니까, 그 녀석-.”

오소마츠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사랑스럽다는 미소를 가득 펼친 로보마츠가 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동생인 카라마츠에겐 맡길 수 없어. 그러니까 동생이 아닌 다른 존재로서 오소마츠 옆에 있어 줘. 할 수 있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이 그가 내민 손과 함께 전해졌다. 이름 모를 감정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머릿속이 대답을 고르는 동안 마음이 멋대로 로보마츠의 손을 잡으며 입을 움직였다.

아아, 내게 맡겨라.”

두세 번 맞잡은 손을 흔들어 악수를 끝내자마자 로보마츠가 한 걸음 내게 가까이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널 선택한 걸 후회하게 만든다면 용서하지 않을 거야.”

…, 아아.”

살벌하게 내려앉은 목소리와 함께 로보마츠가 내 어깨를 강하게 쥐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힘에 신음을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왔나….”

내게서 물러난 로보마츠가 작게 중얼거렸다. 나를 비껴간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연구소 정문에 인영이 하나 떠올랐다.

!!”

벌컥 문을 열고 연구소 안으로 들어온 오소마츠의 울음 섞인 외침이 공기를 울렸다. 로보마츠는 팔을 활짝 벌려 그를 향해 뛰어 들어온 오소마츠를 껴안았다. 둘은 한 치의 틈도 없이 강하게 서로를 얼싸안았다.

데카판, 잠시 둘만 있게 해줄래?”

로보마츠가 제 가슴에 얼굴을 묻은 오소마츠를 어르며 말했다. 울 것 같은 얼굴로 하는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닥터는 빠르게 연구소의 방 하나를 비워주었다. 로보마츠는 나와 눈을 맞추고 빙그레 웃고는 오소마츠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그 눈짓이 나 역시 먼저 돌아가라는 의미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닥터…, 오소마츠가 나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도 되겠나?”

호에호에, 좋다요.”

닥터는 흔쾌히 내 억지를 받아주었다. 데카판은 우리를 배려해 다용과 함께 연구소를 나갔다. 혼자 남은 로비에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방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서로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걸까. 오소마츠는, 괜찮은 걸까.

그 손의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남아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10.

 

, 등을 두드리는 손길에 고개를 들었다. 눈썹을 찡그리고 나를 응시한 형이 눈물로 젖은 눈가를 닦아주었다.

이제 가봐.”

싫어.”

형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다시 형에게 안기려고 하자 형이 내 볼을 잡고 얼굴을 밀어냈다.

사라지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아, 오소마츠.”

형의 말에 잦았던 눈물이 다시 샘솟았다. 형은 난처하단 얼굴로 다시 내 눈물을 닦아주며 몸을 일으켰다.

, 얼른.”

울컥 치솟는 눈물을 가까스로 삼키고 형이 열어준 문을 향해 걸었다. 참으려 해도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

파르르 떨리는 입술 때문에 형을 부르는 목소리가 일그러졌다.

잘 살아, 오소마츠.”

형은 그 말을 끝으로 문밖으로 내 등을 밀었다. ‘하고 닫힌 문 앞에서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

입술을 깨물고 소리 없이 흐느끼며 문에 손을 올렸다. 내가 어릴 때부터 나와 함께했던 나의 형이었다. 형이 있었기에 혼자가 되어도 괜찮았다. 힘든 일이 있어도 괜찮았다. 내 어린 시절을 오롯이 함께했던 나의 형.

그의 마지막을 배웅하며 소매로 거칠게 눈물을 닦아냈다.

 

연구소 로비로 나오자 데카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한테 다 들었어. 형을 도와줘서 고마워, 데카판.”

데카판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는 당연하다며 나를 위로한 데카판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연구소를 나왔다. 새벽이 다 지난 하늘이 서서히 밝아지고 있었다. 터벅터벅 발을 끌며 집으로 향하는 내 뒤로 발소리 하나가 따라왔다.

왜 따라오는 거야, 카라마츠.”

카라마츠는 내가 자기를 부를 거라 생각지 못했는지 얼음처럼 굳었다가 내 옆으로 뛰어왔다.

연구소에 계속 있었던 거?”

너무 울어 다 갈라진 목소리로 묻자 카라마츠의 눈매가 비틀렸다. 눈물이 가득 찬 녀석의 눈이 가슴을 쥐고 있는 내 손에 머물러 있었다.

하아…, 먼저 돌아가.”

힘겹게 한숨을 내쉬고 카라마츠에게 말했다. 카라마츠는 비참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벌컥 화를 냈다.

싫다!! 절대 먼저 돌아가지 않을 거다!!”

뭣 때문에 화를 내는지 모르겠지만, 카라마츠는 그대로 내 손을 잡고 어딘가를 향해 걸었다.

 

~, 카라마츠 군? 이건 무슨 상황??”

별안간 다리 아래로 끌고 가더니 다짜고짜 나를 껴안은 차남의 팔을 툭툭 건드렸다. 내 등과 허리에 감은 녀석의 팔은 딱딱하게 느껴질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지금 오소마츠의 동생이 아니다!”

?”

지금 나는 마츠노 카라마츠라는 남자다!”

얘는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절로 녀석을 보는 눈이 짜게 식었다. 카라마츠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다시 나를 꽈악 껴안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남자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슴 정도는 빌려줄 수 있다.”

“….”

순간, 형이 웃으며 한 말이 떠올랐다.

 

나를 대신할 녀석을 제대로 남겨놓았으니까, 너는 혼자가 아니야.”

 

대신할 녀석이 너였냐. 헛웃음이 나왔다.

…, , …, …!”

텅 비어 버린 마음에 울음이 찼다.

 

온몸의 물을 다 쏟아낼 것처럼 흘러내린 눈물이 어느새 잦아들었다. 코를 막은 콧물까지 카라마츠의 후드에 닦아내고서 얼굴을 뗐다.

이제 됐어. .”

손등으로 녀석의 가슴을 밀어내자 카라마츠가 울컥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싫다!!”

꺄악―!!”

콧물!! 콧물이 얼굴에 묻는다고!!! 갑자기 나를 힘주어 껴안은 카라마츠 덕분에 녀석의 가슴에 닦은 콧물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콧물에 닿지 않도록 목에 쥐가 나도록 힘을 줬다.

왜 자꾸 혼자가 되려고 하는 건가! 나는, 오소마츠 네 옆에 있고 싶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의 의지가 되고 싶다.”

하아―, 이 눈새 자식. 생각해서 없던 일로 넘어가 주려고 했는데.

횽아는 네가 이치마츠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 그건! 그때 그건 사고,”

양다리라니 카라츙 최악~! 할 수 없으니까 횽아가 이번만 이치마츠한테 비밀로 해줄게―.”

그 일은 사고다!! 오소마츠도 알고 있잖아!!! 나는 진심이다. 진심으로 너를 좋아, 아니 사랑하고 있다!”

결국 녀석의 눈가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턱을 타고 내려와 떨어졌다.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자 꼭 시작 신호를 받은 것처럼 녀석의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사랑한다, 오소마츠. 노력해서 제대로 취직할 테니까 같이 살아줘. 계속 옆에 있어 줘. 부탁이다….”

히끅히끅, 중간중간 울음 섞인 숨을 삼키며 카라마츠가 말했다.

내가 평생 옆에 있겠다! 오소마츠가 필요 없다고 할 때까지, 아니 그래도 옆에 붙어 있을 거다!”

, ….”

뭘까, 공허했던 가슴이 다시 차오르기 시작한 이유는. 녀석의 호소에 모른 척하고 넘어가려고 했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렇게 내가 좋은 거냐-. 헛웃음이 나왔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곤란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안심한 건지도 모른다. 형이 없어져도 이 녀석이 내 옆에 남아있을 거라는 사실에.

그렇다고 이 녀석의 볼품없는 고백을 -, 그렇습니까.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형제에 연인이라니…. 지옥의 카스트에도 정도가 있지…. 거기다 이 녀석의 고백을 받아들이면 이 녀석의 인생이 크게 비뚤어진다. 그걸 내가 책임질 수는 없다. 여태껏 장남의 책임에서 도망쳐온 내가 이 녀석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을 리가 없다.

카라마츠,”

오소마츠, 부탁이다.”

코를 훌쩍이며 애원하는 이 녀석이 왜 한심해 보이지 않을까. 콧속 깊은 곳이 시큰거렸다. 형의 말대로 나도 무의식적으로 이 녀석이 내 옆에 남기를 바랐던 걸까? 문득 녀석들이 독립 소동을 벌였을 때, 카라마츠 역시 짐을 싸서 집을 떠나갔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다른 녀석들보다 카라마츠가 떠나간 것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가…. 형은 이런 내 마음을 알고서 이 녀석을 남겨준 건가―.

하아-, 마른 한숨이 나왔다.

 

“…맘대로 해.”

, 오소마츠으~!!!”

작게 흘린 혼잣말에 카라마츠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11.

 

데카판이 연구소의 가장 안쪽에 있는 창고를 열었다. 망가진 기계들과 별 쓸모가 없는 발명품 사이로 조심스럽게 안고 있던 로봇을 내려놓았다. 동력을 잃은 로봇은 고요히 잠든 사람처럼 보였다.

로봇을 남겨둔 채 데카판이 창고 문을 닫았다. 서서히 얇아지는 빛을 따라 로봇의 평온한 미소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로보마츠는 '오소마츠에게 흡수된 형제' or '오소마츠가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낸 인격' 두 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굳이 어느쪽이 정답이라고 정하지 않았어요ㅎ


* 로보마츠는 정해진 이름이 없다고 설정했습니다. 오소마츠는 '형'이라고만 부릅니다.


* 오랜만에 긴 글을 써서 기운이 빠지지만 제 글을 봐주시는 분들이 아직 계셔서 힘내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블로그인데 찾아주셔서 감사하고,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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