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오소른입니다^^

* 제가 몇 년 전에 꿨던 꿈을 소재로 써 봤어요.

* 공미포 9,157자.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소른 50제


42. 영혼 (오소른)   



1.


제각각 한심한 신음을 내며 여섯 명의 형제가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 알았는지 득달같이 달려든 파칭코 경찰 덕분에 실컷 먹고 마신 결과였다. 제일 먼저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 토도마츠가 형제들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그렇게 마시더니 꼴 좋~다.’

파칭코 경찰에게 갈취당한 피해자로서 실컷 욕을 짓씹으며 세면실로 걸어갔다. 형제들만큼은 아니더라도 토도마츠 역시 과음을 했다. 머리를 옥죄는 두통에 눈을 찡긋거린 토도마츠가 찬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뽀송뽀송한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다시 방으로 돌아오니 형제들 모두 일어나있었다. 끙끙대며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1층으로 내려가는 형제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토도마츠가 눈을 돌렸다.

“오소마츠 형?”

“……응, 어?”

3초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자신이 불린 것을 눈치챈 오소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숙취의 영향인지 오소마츠의 얼굴은 핏기가 없었다. 오소마츠의 눈은 토도마츠와 시선을 맞추고 있으면서도 어쩐지 허공을 맴도는 것 같았다.

“괜찮아?”

평소와 다른 오소마츠의 태도에 발꿈치가 간지러웠다. 크진 않으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위화감에 토도마츠가 얼굴을 찌푸렸다.

“…괜찮아.”

또다시 몇 초가 지나서야 대답이 돌아왔다. 시선을 늘어뜨린 오소마츠가 비싯 웃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뭐지? 뭔가, 이상한데-.’

조금씩 커지는 위화감에 토도마츠의 시선이 오소마츠에게 머물렀다. 느릿느릿 이불에서 벗어나 계단으로 걸어가는 오소마츠의 뒤를 쫓으며 토도마츠는 이유 모를 위화감의 꼬리를 붙잡았다.



“으으~.”, “머리 아파….”, “으게엑─.” 하고 앓는 소리가 밥상을 둘러쌌다. 숙취로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맛없다는 듯이 아침 식사하는 형제들 사이에 오소마츠가 멍청히 앉아있었다. 토도마츠의 시선은 오소마츠에게서 벗어날 줄 몰랐다. 오소마츠를 지켜볼수록 위화감은 더 커져만 갔다.

“오소마츠 형, 입맛 없어?”

“……?”

뭉그적거리며 밥을 먹는 형제들과 달리 오소마츠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젓가락을 보며 토도마츠가 물었다. 오소마츠는 소리도 내지 않고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천천히 나른하게 눈을 내린 오소마츠가 “…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소마츠는 내키지 않는 것을 억지로 하듯 젓가락을 쥐고 밥을 입으로 가져갔다. 밥알을 셀 수 있을 정도로 조금씩, 깨작깨작 식사하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이치마츠도 위화감을 느꼈는지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오소마츠 형, 어디 아파?”

이치마츠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짜 아픈 거 아니야?”

못 믿겠다는 투로 토도마츠가 재차 물었지만, 오소마츠는 여전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보다 못한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의 이마에 손을 얹었지만, 특별한 이상은 발견하지 못한 채 손을 되돌렸다.



식사가 끝나고 형제들은 어느 정도 숙취가 해소되었는지 각자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고양이 밥을 챙긴 이치마츠가 다소 망설이는 것 같았지만, 고양이를 더 걱정했는지 쵸로마츠와 함께 현관을 떠났다. 그 뒤를 이어 토도마츠도 집을 나설 생각이었다.

발목을 붙잡은 위화감만 아니었다면.


토도마츠는 놀러 가지 않겠냐는 친구 아츠시의 연락에 답장하며 오소마츠를 시야 구석에 담았다. 평소 식사량의 반의반도 먹지 못한 오소마츠는 멍청히 거실 구석에 앉아있었다.

‘아픈 거랑은 좀…, 다른 것 같은데.’

오소마츠를 볼 때마다 가시가 목에 걸린 것처럼 불안이 피어났다. 해답을 찾지 못한 수수께끼처럼 답답한 마음이 오소마츠에게 다가갈수록 커졌다.

“오소마츠 형,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니지?”

몇 번째인지 모를 질문에 오소마츠가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너희가 언제부터 내 걱정을 그렇게 했냐고 묻는 듯한 시선에 토도마츠는 입안이 바싹 메말랐다. 절레절레 도리질하는 오소마츠를 붙잡고 그럼 왜 이러는 거냐고 외치고 싶은 충동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오소마츠 형아.”

오소마츠의 어깨를 붙잡으려던 토도마츠의 손이 멈췄다. 당연히 형제들처럼 외출한 줄 알았던 쥬시마츠가 자못 심각해 보이는 얼굴로 걸어왔다.

“쥬시마츠 형은 알아?”

‘오소마츠 형이 왜 이러는지.’

확실치 않은, 형체를 알 수 없는 기분을 담아 물어도 쥬시마츠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없이 손을 뻗어 오소마츠의 양 볼을 감싼 쥬시마츠가 이리저리 오소마츠의 얼굴을 살폈다.

“꿈이, 아니었구나….”

낮게 가라앉은 작은 혼잣말이 바닥을 기어 토도마츠에게 닿았다. 나지막이 중얼거린 쥬시마츠의 얼굴은 꼭 오소마츠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꿈, 이 아니었어….”

“쥬시마츠 형?”

고장 난 기계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쥬시마츠의 모습에 불안이 한껏 짙어졌다. 귓가에서 쿵쿵 울리기 시작한 심장 소리에 토도마츠가 입술을 깨물었다. 심장 박동에 맞춰 불안이 굽이쳤다. 어둠 속에서 바로 앞에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손을 더듬는 것처럼 숨통을 옥죄는 답답함이 토도마츠를 덮쳤다.

“쥬시마츠 형.”

흘러나온 목소리가 가냘프게 떨렸다. 망연히 오소마츠에게서 손을 뗀 쥬시마츠가 몸을 일으켰다.

“형아들, 찾아야 해…. 빨리.”

울음을 참고 결연하게 뱉은 말에 토도마츠가 숨을 들이마셨다. 긴 소매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친 쥬시마츠가 “토도마츠, 빨리!” 하고 재촉했다. 왜 쥬시마츠가 이리도 초조해하는지 토도마츠는 알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기세로 토도마츠를 일으켜 세운 쥬시마츠가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고 현관문을 벌컥 열어 달려 나갔다.


쥬시마츠가 떠난 현관에 멀거니 선 토도마츠가 거세지는 박동 소리에 떨리는 손을 그러쥐었다.

‘어, 라…?’

혼란으로 가득 찬 머릿속에 작은 파편 하나가 박혔다. 어둠 속을 더듬던 손에 뭔가가 잡혔다. 토도마츠가 파칭코로 딴 돈을 들고 찾은 치비타의 오뎅 마차. 그곳에서 한껏 마셨던 기억이 뚝 끊겨있다. 억지로 잘라낸 끈처럼 우둘투둘한 끝을 잡아낸 토도마츠가 홱 고개를 돌려 웅크려 앉아있는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울렸다.

“좋아, 가져가.”




2.


항상 시간을 보내는 다리 위, 카라마츠가 문득 한숨을 흘렸다. 숙취로 지끈거리던 머리는 한층 나아졌지만, 어쩐지 알 수 없는 불쾌함이 남아있었다. 흘러가는 강물을 멍청히 바라보던 카라마츠가 시선을 내렸다. 길가에 눌어붙은 껌처럼 검은 뭔가가 머릿속에 끈끈하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눈앞에 흐르는 물줄기처럼 오소마츠가 아른거렸다.

밥을 깨작거리던 오소마츠를 떠올린 카라마츠가 미간을 찌푸렸다. 답지 않게 꼭 혼이 나간 얼굴로 밥을 먹던 오소마츠를 토도마츠와 이치마츠가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처럼 숙취가 심해 저런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상하게 오소마츠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아파도 티를 잘 안 내니.’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오소마츠는 가족 앞에서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후에 상태가 심해져 혼자 방에 널브러져 앓고 있던 걸 발견한 게 몇 번인지. 불쑥 고개를 든 초조함에 저도 모르게 다리를 떨었다. 구둣발이 땅에 부딪히며 탁탁탁 소음을 냈다.

혹 상태가 안 좋은 것인가,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건가. 수많은 추측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흘러가는 강물에 띄워진 질문들이 시야가 닿지 않는 곳으로 떠내려갔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난간에 기댔던 몸을 뗐다. 찡그린 얼굴로 어젯밤의 기억을 헤집은 카라마츠가 입을 꾹 다물었다. 토도마츠가 딴 돈으로 먹고 마셨던 어젯밤. 공짜 술에 다들 주량을 넘겼었다. 술이 약한 카라마츠도 분위기에 들떠 맥주를 몇 잔이고 들이켰다.

‘그러다 곯아떨어졌고, 그리고….’

이어진 수순은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모두 쓰러져 잠들었을 거고, 치비타가 잠든 틈을 타서 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게 다였을 것이다. 그런데 찐득하게 달라붙은 불안은 그게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다.

‘무엇이, 있었지?’

눈을 굴리며 필사적으로 기억을 되짚었다. 부풀어 오른 불안이 기억을 가져왔다. 술에 취해 잠들기 직전, 검은 남자를 본 것 같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그 남자는 오소마츠를 보며 웃고 있었다. 잊고 있었던 기억에 카라마츠가 인상을 쓰고 남자의 생김새를 머릿속으로 그렸다.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하지만 그 남자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흐릿하게 기억나는 것과는 달랐다. 꼭 남자의 얼굴에 검은 칠을 한 것처럼 자신이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 같았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오소마츠를 향한 그 남자의 비릿한 미소뿐.

남자는 오소마츠를 보며 줄곧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기분 나쁜 미소로 뭔가를 말했다. 무엇을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것에 깊은 불쾌감을 느꼈다. 지금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 남자는 누구였지? 그리고 무슨 말을 했었지?’

남자는 한결같이 오소마츠만을 눈에 담았다. 꼭 자신들이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검은 남자의 존재를 떠올린 카라마츠가 까득 이를 갈았다. 불안과 섞인 불쾌감이 전신을 감쌌다. 뭔가에 화풀이라도 하지 않으면 풀릴 것 같지 않은 기분 나쁨에 카라마츠가 한숨을 내쉬며 다리를 떠났다.


터덜터덜, 카라마츠가 목적지 없이 길을 따라 걸었다. 집에 갈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어 그 생각을 털어버렸다. 이 기분으로 집에 간다면 귀여운 동생들에게 짜증을 낼 것 같았다.

‘파칭코? 아니면 경마장.’

뒷주머니에 꽂아둔 지갑을 의식하며 번화가를 향해 걷던 카라마츠가 저에게 달려오는 익숙한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카라마츠 형아!!!”

크게 팔을 흔들며 달려온 쥬시마츠가 덥석 카라마츠 손을 붙잡았다.

“빨리, 집에!!”

다급하게 외치며 집을 향해 저를 끌어당기는 쥬시마츠 모습에 카라마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쥬시마츠가 이렇게 당황하는 것을 보면 집에 큰일이 난 것 같았다.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신발을 잃은 쥬시마츠의 발 한쪽을 응시한 카라마츠가 숨을 들이 삼켰다.

쥬시마츠를 따라 집에 가야 하는데, 존재감이 커진 불쾌함이 카라마츠를 막아 세웠다.


순수하게 집에 가는 것이 두려웠다.


가슴이 아프도록 심장이 강하게 뛰고 있었다. 쥬시마츠와 함께 무거운 발을 움직여 집으로 향하는 동안 스멀스멀 올라온 불안이 심장을 쥐어짜는 것 같았다.



거칠게 현관문을 열어젖힌 카라마츠가 숨을 멈췄다. 카라마츠를 스쳐 안으로 뛰어 들어간 쥬시마츠가 거실에 모인 형제들에게 다가갔다. 쥬시마츠와 토도마츠와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둘러싸고 있었다.


여름 끝자락에 걸친 날씨에 오소마츠는 두꺼운 옷과 목도리로 몸을 칭칭 싸매고 있었다.




3.


가슴 속에서 요동치는 술렁거림은 라이브를 앞둔 탓이라 생각했다. 꼭 멀미한 것처럼 뱃속을 뒤집는 울렁거림을 애써 무시한 쵸로마츠가 진동하는 스마트폰을 손에 들었다.

“드라이몬스터가 무슨 일이래.”

화면에 뜬 ‘톳티’라는 글자에 쵸로마츠가 한쪽 눈썹을 찡끗거렸다. 형들을 팬티에 묻은 뭐 취급하는 막내가 먼저 전화를 거는 일은 거의 없었다. 치솟는 의심을 꾹 누르며 통화 버튼을 누른 쵸로마츠가 폰을 귓가로 가져갔다.



집을 향해 뛰어가며 쵸로마츠는 자신에게 물었다. 정말 이런 거로 라이브도 포기하고 집으로 가야 하냐고. 평소라면 단번에 ‘NO’라고 대답했겠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뱃속에 움텄던 울렁임이 간절함으로 일변했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간절함이 목을 조여왔다.


집에 도착한 쵸로마츠가 거실에 웅크리고 있는 오소마츠에게 다가갔다. 그렁그렁 눈물이 차오른 눈으로 쵸로마츠를 반긴 토도마츠가 울먹였다.

“오소마츠 형이, 이상해….”

몸을 달달 떨며 중얼거린 토도마츠가 구원을 구하듯 쵸로마츠의 옷자락을 쥐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토도마츠에게서 넘어와 쵸로마츠를 둘러쌌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쵸로마츠가 조심스럽게 오소마츠의 어깨를 흔들며 그를 불렀지만, 오소마츠는 가만히 웅크리고만 있었다.

“오소마츠 형. 오소마츠 형! …오, 소마츠 형!!”

오늘따라 가녀리게 느껴지는 어깨를 강하게 흔들며 크게 외쳐도 오소마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불현듯 해일처럼 몰려온 불안에 쵸로마츠가 힘겹게 숨을 내뱉었다.

“오소마츠!”

“……응.”

반복된 부름에 간신히 대답이 돌아왔다. 금방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힘없이 늘어진 목소리에 쵸로마츠의 얼굴이 구겨졌다. 무릎을 껴안고 고개를 든 오소마츠의 눈동자에 토도마츠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생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탁한 눈동자가 눈앞에 있는 쵸로마츠조차 담지 못했다. 죽은 이의 그것처럼 초점 없이 허공에 걸린 눈을 마주한 쵸로마츠가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죽음’이 지척에 있는 것 같았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토도마츠의 훌쩍임을 밀어내고 오소마츠의 손을 잡은 쵸로마츠가 털썩 주저앉았다.

오소마츠의 손이 지나치게 찼다. 조금 전까지 터질 것처럼 두방망이질하던 심장이 고요해지고 자신의 숨소리가 귓속에 울려 퍼졌다. 갈 곳 잃은 시선을 아래로 내렸을 때, 오소마츠의 희미한 목소리가 발치에 내려왔다.

“쵸로…, 츠. 나, 추…, 워.”

사그라지는 속삭임에 쵸로마츠가 황급히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갔다. 미친 사람처럼 2층 방 벽장을 열고 그 안을 헤집어 겨울옷을 꺼낸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에게 두꺼운 옷을 둘러 주었다. 니트와 목도리, 장갑까지 오소마츠에게 입힌 쵸로마츠가 뒤통수를 뻐근하게 잡아당기는 기억에 이를 갈았다.



“네 영혼을 내게 줘.”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린 남자가 말했다. 이미 대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오소마츠를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4.


‘응냥냥냥’하고 소리를 내며 맛있게 습식 사료를 먹는 고양이들을 이치마츠가 가만히 응시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이치마츠가 준비한 밥그릇이 텅 비었다. 배를 채운 고양이들은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고 입맛을 다시며 이치마츠에게 다가왔다. “야옹~.” 하고 간드러지게 울며 다리에 몸을 비비는 고양이들을 쓰다듬은 이치마츠가 어젯밤 꿈에 본 붉은빛을 떠올렸다.

오소마츠의 심장 부근에서 작고 붉은빛이 빠져나갔다. 그 빛을 손에 쥔 남자는 만족스럽게 눈가를 휘며 웃고는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도저히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 그 장면이 이상하게 선명했다.

‘꿈이겠지. 그게 현실일 리가….’

이치마츠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모든 것을 ‘꿈’이라 정했다. 섬뜩하게 웃던 그 남자도, 오소마츠에게서 빠져나갔던 그 빛도 모두 꿈속의 일이라고 치부했다. 그렇지 않으면 뭔가가 잘못될 것만 같았다.


“꿈이야, 그건.”

자신에게 되뇌면 그것이 사실이 될 것처럼 이치마츠가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빈 고양이 캔을 수거해 비닐봉지에 넣은 이치마츠가 슬리퍼를 끌며 공터를 빠져나왔다.

“집에 갈까….”

말로 꺼내 자신을 재촉한 이치마츠가 숨을 들이마시며 집으로 향했다.



‘챙’하고 빈 캔이 서로 부딪쳐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펼쳐진 모습에 이치마츠의 손에서 미끄러진 비닐봉지가 가라앉았다.

“현실이 아니어야 하는데….”

이치마츠의 혼잣말이 허공에 퍼졌다. 쵸로마츠는 수화기를 붙잡고 언성을 높여 상대방에게 윽박지르고 있었다. 쵸로마츠 목에 선 핏발을 멍청히 응시한 이치마츠가 활짝 열린 거실문 너머로 눈을 옮겼다.

왜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는 울고 있는 걸까, 왜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껴안고 있는 걸까, 왜 오소마츠는 이 날씨에 저렇게 옷을 껴입고 있는 걸까. 답을 찾아서는 안 될 것 같은 질문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발이 멋대로 움직였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거실의 기묘한 풍경에 이치마츠가 마른침을 삼켰다.

“오소마츠의 체온이 점점 내려가고 있다. 쵸로마츠가 데카판 박사에게 전화하고 있지만,”

갈라진 카라마츠의 낮은 목소리에 갈 곳 잃은 시선이 오소마츠에게 닿았다. 어느새 오소마츠 앞에 무릎 꿇고 앉은 이치마츠가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오소마츠의 얼굴을 매만졌다. 차가운 체온과 핏기없는 얼굴. 눈을 감고 있는 오소마츠가 시체처럼 보였다. 부정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그 자리에 얼어버린 이치마츠에게 울음 섞인 토도마츠의 말이 넘어왔다.

“깨워도 깨워도 자꾸 자려고 해, 오소마츠 형. 이대로 안 일어날 것처럼…!”

울컥 치솟은 눈물에 말을 끝맺지 못하고 엎드린 토도마츠의 등이 떨리기 시작했다.

“오소, 마츠 형…. 혀, 혀엉.”

불러보아도 오소마츠는 눈을 뜨지 않았다. 방황하던 손을 내린 이치마츠가 조심스럽게 오소마츠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크게 울리는 자신의 심장 소리보다 훨씬 느리게 뛰는 오소마츠의 심장에 이치마츠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점점 더 느려지는 심장 박동이 두려워 손을 뗀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의 손을 붙잡았다. 딱딱한 나뭇가지처럼 뻣뻣한 오소마츠의 손을 혹시나 부러지지 않을까 신중하게 붙잡은 이치마츠가 그 손에 기도하듯 이마를 대고 흐느꼈다.




5.


“준비 끝났대! 카라마츠!”

쾅, 거칠게 수화기를 내려놓은 쵸로마츠가 카라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의 체온이 더 떨어지지 않도록 그를 안고 있던 카라마츠가 쵸로마츠가 내민 이불로 오소마츠를 꽁꽁 감쌌다. 이제 호흡까지 얇아지기 시작한 오소마츠를 둘러업은 카라마츠와 쵸로마츠가 데카판 박사 연구소로 향했다.


연구소에 도착하자 데카판이 준비된 방으로 오소마츠를 데려갔다. 호흡기와 여러 기계를 오소마츠에게 붙인 데카판이 화면에 표시되는 수치들을 심각한 얼굴로 지켜보았다.

연구소에 오는 동안 완전히 잠들어버린 오소마츠는 완전한 혼수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원인도 알 수 없이 발생한 괴이한 증상에 데카판이 신음하는 동안 형제들은 오소마츠가 누워있는 침대 옆을 지켰다.

넋이 나가 초점조차 잡히지 않는 흐린 시야에 오소마츠를 담은 형제들을 본 데카판이 끙-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발명했던 여러 가지 기계들을 사용한 덕분에 증상의 원인을 찾아낸 것은 좋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난감했다. 푸후~, 큰 한숨을 내쉰 데카판이 손뼉을 쳐 형제들의 주의를 끌었다.

“원인을 알아냈다요.”

“그게 정말인가!? 데카판!”

“뭔데, 왜 오소마츠 형이 이렇게 된 건데!”

데카판의 말에 득달같이 달려드는 카라마츠와 쵸로마츠를 간신히 밀어낸 데카판이 큼큼 헛기침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영혼이 몸을 떠났기 때문이다요. 영혼이 없는 몸은 서서히 죽어간다요. 그러기 전에 빨리 오소마츠 군의 영혼을 되찾는다면 괜찮지만,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그 끝을 더는 말할 수 없었다. 원인을 찾았다는 말에 반색하던 형제들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지자 데카판이 눈썹을 늘어뜨렸다.

“영혼만 되찾으면 된다는 거지?”

“그, 그렇다요.”

토도마츠의 날 선 목소리에 데카판이 한걸음 물러섰다. 형형하게 눈을 빛내고 있는 형제들 모두 가장 의심스러운 인물을 떠올렸다.


검은 남자.

치비타네에 찾아왔던 검은 남자. 그 남자를 찾아야 한다.


서로 눈빛을 교환한 형제들이 데카판에게 오소마츠를 부탁한다며 의자에서 일어선 순간, 오소마츠 위에 떠오른 검은 공간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6.


수많은 시대와 수많은 세계를 스쳐 지나간 악마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어느 세계로도 넘어갈 수 있는 검은 우주에서 나른하게 기지개를 켠 악마의 눈동자에 붉은빛이 들어왔다.

“응? 꽤 재미있어 보이는데?”

드래곤이나 마법, 영웅이나 용사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 악마의 흥미를 끌 것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그 세계 속에서 작은 빛이 반짝였다. 긴 시간 동안 다양한 욕망과 가지각색의 영혼을 접했지만, 이토록 구미가 당기는 영혼은 처음이었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작은 영혼에 시선을 고정한 악마가 입꼬리를 올렸다.

“뺏을까-.”

무척 마음에 든 영혼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었다. 악마는 차디찬 미소를 품고 날개를 펼쳤다.



“네 영혼을 내게 줘. 그렇지 않으면 네 옆에 있는 녀석들을 죽일 거야.”

악마가 말했다. 피처럼 붉은 악마의 눈동자가 따뜻한 빛을 발하는 영혼을 응시했다.


“그래, 좋아. 가져가.”

인간이 대답했다. 너무나 간단하게.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돌아온 대답에 악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좋아. 이제 네 영혼은 내 것이야.”

순순한 인간의 태도가 마음에 걸렸으나 영혼을 가질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생각보다 쉽게 성사된 거래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가득 피운 악마가 인간의 영혼을 손에 쥐었다. 따뜻하고 어쩐지 가슴을 가득 채워주는, 너무나 마음에 드는 작고 붉은 영혼을.




7.


“그랬는데 점점 빛을 잃어가더니 이젠 별 볼 일 없는 영혼이 되어버렸어~.”

악마가 손에 굴리던 작은 구슬을 앞에 내밀었다. 갑자기 나타난 검은 공간에서 나온 검은 남자. 오소마츠의 영혼을 빼앗은 악마가 저를 노려보는 눈빛에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제게 손 하나 댈 수 없는 무력한 인간 주제에 살기 가득한 눈을 한 녀석들이 퍽 우스웠다. 잘게 어깨를 떨며 웃은 악마가 고개를 기울였다.

“말해두겠는데 거래는 꽤 정당했다고? 나는 이 녀석에게 영혼을 빼내면 죽을 거라고 말해줬단 말이야─. 그래도 괜찮다고 한 건 이 녀석이니까?”

얇고 긴 꼬리를 살랑이며 말한 악마가 제 아래에 누워있는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거래는 확실했다. 영혼을 받는 대신 형제들에게는 손을 대지 않는다. 그렇게 성립된 거래였다.


하나 이상했던 것은 영혼을 빼앗기면서도 이 인간은 웃고 있었다는 점. 인간의 영혼을 빼앗은 적은 많았지만, 그런 미소를 본 적은 처음이었다. ‘왜?’ 하는 의구심과 호기심이 들었다. 그래서 악마는 영혼을 빼앗고도 이 세계를 떠나지 않고 이들을 지켜보았다.

“왜 점점 빛을 잃어버린 건지 모르겠다니까─.”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악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영혼을 잃은 몸이 죽어갈수록 악마가 손에 넣은 영혼도 빛을 잃어갔다. 그리고 완전히 빛을 잃어 회색이 되어버린 영혼은 아무런 매력도 없는 쓰레기가 되었다.

“오소마츠 형의 영혼을 돌려줘!”

제가 뭘 상대하는지도 모르고 대차게 외친 인간을 향해 악마가 빙긋 웃었다.

“싫은데? 그리고 지금 내가 이 영혼을 돌려준다고 해도 이 인간은 죽을 거야.”

“뭐, 라고?”

“완전히 빛을 잃었잖아, 이거. 이렇게 되면 돌려주나 마나야.”

쓰레기가 되어버린 영혼은 그 주인의 몸을 되살리는 것조차 할 수 없다. 그대로 영혼을 버릴까 고민하던 악마는 작은 즐거움이라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이들 앞에 나타났다. 악마는 제 말에 흔들리는 인간의 눈동자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가 인간의 영혼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이 바로 ‘절망’이었다. 점점 짙어지는 절망에 악마가 즐겁게 날개를 파닥였다.

“어떻게 해야, 오소마츠 형을 살릴 수 있지?”

녹색 영혼의 인간이 포기하지 않고 흰 가운을 입은 인간에게 물었다. 공중에 떠서 턱을 괴고 인간들을 내려다보던 악마가 미세하게 빛이 돌아온 영혼에 눈을 깜빡였다.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아주아주 작은 빛이 돌아왔다. 악마가 손 위에 올려놓은 영혼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야릿한 미소를 피웠다.

“너희들의 영혼을 조금씩 나눠주는 건 어때? 이 인간은 살릴 수 있을지도. 대신 너희 수명이 깎이거나 몸이 이상해질지도 모르지만~.”

변덕스럽게 내뱉은 말이었다. 악마는 당연히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면 오소마츠 형이 살아날 수 있다는 거야?”

“꽤 높은 확률로.”

“그럼 좋아.”

“허?”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 인간들을 보며 악마가 꼬리를 빙글빙글 돌렸다.

“왜 너희도 그렇게 웃는 거야.”

홀연히 새어 나온 말을 인간들은 듣지 못했다. 자신의 형제를 살릴 수 있다는 말에 눈을 반짝이며 미소를 피운 얼굴로 악마를 올려다보는 그들이, 악마는 너무나도 이상했다.

“수명이 줄어들어도, 몸에 이상이 생겨도 좋아?”

“괜찮다! 오소마츠를 살릴 수 있다면.”

푸른 영혼을 가진 인간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미소가 넘실대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놈들.”

단번에 즐거움이 날아가 버렸다. 악마는 차가운 얼굴로 다섯 인간의 영혼 조각을 떼어냈다. 빛을 잃은 회색 영혼에 다섯 개의 영혼 파편이 스며들자 악마가 탐냈던 붉은빛이 조금이나마 돌아왔다. 악마의 손을 떠난 영혼은 자석에 끌리듯 주인의 몸으로 돌아갔다.


파르르 떨리던 눈꺼풀이 위로 올라갔다. 죽음이 사라진 눈동자가 빛을 발하자 오소마츠 주변에 모여있던 형제들이 환호했다.

“오소마츠!!”

“오소마츠 형!”

저를 부르는 동생들을 한 명씩 껴안은 오소마츠가 젖은 눈가를 닦으며 환하게 웃었다.




7.


다 함께 얼싸안고 웃는 인간들을 내려다본 악마가 혀를 찼다. 붉은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뺏으려면 여섯 개를 모두 뺏어야 했던 건가-.”

다섯 색의 영혼에 둘러싸여 가장 탐스럽게 빛나는 붉은빛을 보며 한탄한 악마가 검은 공간 속으로 몸을 날렸다.



‘저 녀석들에게는 손대지 않는다고 거래해버렸으니…. 실수다, 실수.’

몇백 년 만에 저지른 실수에 한숨을 내쉰 악마가 검은 우주로 사라졌다.





* 여기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짧은 한 문장이라도 댓글 남겨주시면 글 쓰는데 많은 힘이 됩니다. 여유가 있으시다면 남겨주세요ㅎ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