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빠서 오랫동안 글을 못 쓴 탓인지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 단편이 되었...ㅠㅠ

* 팔불출 카라마츠와 초딩멘탈 오소마츠의 이야기입니다.

* 공미포 7,749자.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소른 50제


21. 바보 (카라오소)   까멩 님 신청 키워드.



1.


 

마츠노 오소마츠의 언어 체계는 특이하다. 어휘력은 빈약하고 말투는 어린아이 같다. ‘이케이케’나 ‘파바밧’ 같이 그만의 수식어를 즐겨 쓰고, 곧잘 말끝을 늘려 투정 부리듯 말했다. 자신을 쉬이 ‘횽아’라고 일컫는 것도 오소마츠의 말버릇이었다. 형제 중 가장 개성이 없다는 평을 듣는 오소마츠였지만, 그의 말투는 확실하게 그만의 색을 띠고 있었다.

제 유일한 형의 말버릇을 떠올린 마츠노 카라마츠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살갑게 웃으며 말끝을 늘어뜨리는 오소마츠 특유의 말투를 카라마츠는 제법 사랑스럽다 여겼다. “카라마츠우~.” 하고 애교 섞인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는 것이 기뻤다. 항상 같았던 모습들이 연인이 된 후로는 너무나 다르게 느껴졌다. 오소마츠 그 특유의 말투도 물잔에 떨어진 잉크처럼 잔잔한 행복을 퍼뜨렸다.

 

 

파하~,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터덜터덜 집을 향해 걸었다. 모처럼 새 옷을 입고 한껏 치장한 채로 집을 나왔는데 오늘은 운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산책하던 이웃 강아지에게 다리를 물리고, 새 옷에는 새똥이 묻었고, 신기계가 들어온 파칭코에서는 탈탈 털렸다. 운이 없는 것에 익숙한 카라마츠였지만, 오늘은 유난히 일이 많았다. 이런 날은 괜히 밖을 돌아다니는 것보다 일찍 집에 돌아가는 것이 현명하리라.

뻑뻑한 현관문을 요령 좋게 열어젖힌 카라마츠가 선글라스를 벗어 목에 걸었다. 현관에는 빨간 운동화 한 켤레만이 놓여있었다. 가죽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구두를 벗고 마루에 오른 카라마츠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소마츠뿐인가.’

단둘이라는 것을 확인한 카라마츠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일찍 귀가한 것이 호재였던 걸까. 형제들이 돌아올 때까지 꽤 시간이 남았다. ‘끼익-’하고 울리는 계단을 오르는 카라마츠의 기분이 한껏 들떠 올랐다.

“다녀왔다, 오소마츠.”

갑작스러운 카라마츠의 등장에 오소마츠의 어깨가 흠칫 튀어 올랐다. 방바닥에 누워 만화책을 보고 있던 오소마츠가 얼떨떨한 얼굴로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어, 응…. 어서 와~, 카라마츠.”

금방 놀란 얼굴을 지운 오소마츠가 배시시 웃으며 카라마츠를 맞이했다. 저에게 다가오는 카라마츠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몸을 일으켜 앉은 오소마츠가 차오르는 기대감에 활짝 웃었다.

“뭐야 뭐야~, 횽아랑 놀아주려고?”

카라마츠의 이른 귀가에 오소마츠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카라마츠는 대답하지 않고 오소마츠 옆에 앉아 오소마츠를 향해 손을 뻗었다.

성대하게 위로 뻗은 오소마츠의 머리를 카라마츠가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손길이 말없이 잠버릇이 남은 제 머리를 어루만지자 오소마츠의 얼굴에서 장난스러운 미소가 서서히 사그라졌다.

“뭐, 뭐야~.”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슬쩍 몸을 뒤로 빼는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붙잡았다.

“내일 같이 낚시하러 가지 않겠나?”

“내일?”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물러나던 오소마츠가 행동을 멈추고 되물었다.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벌려 오소마츠의 머리를 가볍게 빗겨주었다. 함께 놀러 가자는 제의를 오소마츠가 거절할 리 없었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밀어내려던 것도 잊은 채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단순함까지도 사랑스러워 보이게 된 건 언제부터였는지. 오소마츠의 미소에 당장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 카라마츠가 살포시 오소마츠의 뺨을 쓸어내렸다.

“오소마츠, 로션이라도 발라라.”

손가락에 스치는 오소마츠의 피부가 거칠었다. 건조해 하얗게 일어난 피부를 안타까이 여기며 어루만진 카라마츠가 한숨 쉬듯 말했다.

“싫어, 귀찮다궁~.”

몸을 비틀어 제 뺨을 감싼 카라마츠의 손에서 벗어난 오소마츠가 입을 삐죽이더니 이 상황을 피하려는 것처럼 만화책에 눈을 돌렸다. 자신을 등지고 앉아 만화책을 무릎에 얹은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잠시 바라보다가 눈썹을 실쭉 올렸다.

“무슨 만화를 보는 건가.”

질문 아닌 질문을 던진 카라마츠가 오소마츠 옆으로 손을 짚었다. 자연스럽게 오소마츠를 양팔 안에 가둔 모양새가 되어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어깨에 턱을 올렸다.

“빌려온 건가?”

“우힛!?”

오소마츠를 뒤에서 껴안은 듯한 자세 때문에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오소마츠의 귓가에서 울렸다. 가슴에 닿은 몸이 단숨에 뻣뻣하게 굳어버린 것을 눈치챈 카라마츠가 옅은 미소를 흘렸다.

“잇…!”

카라마츠의 은근한 숨이 닿은 귀를 감싼 채 홱 고개 돌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노려보았다. 사나운 눈빛이 제법 따가웠지만 벌겋게 익은 얼굴 때문에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오소소 소름이 돋은 목덜미를 어루만진 오소마츠가 씩씩 분에 찬 숨을 내뿜으며 카라마츠를 밀치고 벌떡 일어났다.

“바보!”

짧고 강렬한 외침을 남긴 오소마츠가 방을 뛰쳐나가며 ‘쾅!’하고 힘껏 문을 닫았다. 곧 복도에 어수선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푸흐흐….”

카라마츠가 낮은 웃음을 흘리며 눈을 가늘게 접었다. 설마 그 오소마츠가 저렇게 부끄러움이 많다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카라마츠는 뜻밖의 복병 덕분에 오소마츠와 플라토닉 연애를 이어가고 있었다. 허구한 날 야동이니 섹스니 하는 단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에 끼워 넣는 오소마츠가 부끄러움이라니.

다른 형제들은 상상조차 못 할 것이다. 어쩌면 그런 건 오소마츠가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카라마츠는 기꺼이 오소마츠를 기다릴 수 있었다. 다른 형제들은 모르는, 알 수조차 없는 오소마츠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자신이 독점할 수 있기에 인내할 수 있었다.

더 닿고 싶고, 더 안고 싶고, 더 사랑을 속삭이며 몸을 겹치고 싶은 욕망을 아슬아슬하지만 안전한 선에서 참아낼 수 있었다.

“그래도 좀 더 빨리 익숙해지면 좋겠는데.”

바닥에 덩그러니 남겨진 만화책을 보며 카라마츠가 곤란한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조금씩 자신의 한계가 다가오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낀 카라마츠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라도 빨리 오소마츠가 ‘연인의 거리’에 익숙해지길 원했다. 그렇기에 부끄러워하는 것을 알면서도 되레 오소마츠를 도발하듯 스킨십을 이어가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조금 전 방안에 가득 울려 퍼졌던 오소마츠의 귀여운 원망을 되새기며 빙그레 입꼬리를 올렸다. 쿠당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계단을 내려간 오소마츠를 찾기 위해 방문을 여는 카라마츠의 주변에 흥겨운 콧노래가 머물렀다.

 

 

 

2.

 

퐁! 물방울이 잔잔한 물가 위로 올라와 터지는 소리에 선글라스를 추켜 올렸다. 몇 분째 소식이 없는 낚싯대에서 손을 떼고 선글라스에 가려진 눈동자를 굴려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말없이 수면을 보는 옆모습에 은근히 눈이 풀어졌다.

아아, 오늘도 마이 러버는 쏘 큐드다!

평소보다 이른 기상 때문에 여전히 졸음을 달고 크게 하품하는 모습도 귀엽다. 역시 길티한 나의 오소마츠다. 좀체 피쉬가 잡히지 않는 것이 불만인지 입을 삐죽 내민 오소마츠가 돌연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맞췄다.

“카라마츄~.”

“뭔가, 형님.”

콧소리가 섞인 저 부름은 내게 뭔가를 바랄 때 나오는 것이다. 일부러 차갑게 대답해도 오소마츠는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고 배시시 사랑스러운 미소를 퍼뜨렸다. 큿, 저런 미소를 다른 보이가 보면 어쩌려고 그러는 건가, 오소뫄~츠!?

“횽아 목이 마르는데~!”

눈을 한껏 감고 활짝 웃는 얼굴에 신음이 나오지 않도록 이를 꽉 악물었다.

크흣, 귀여워.

대체 뭘 먹으면 성인 남자가 저렇게 귀여워질 수 있는 건가!! 오소마츠의 귀여움에 눈이 멀 것 같다.

“카라마츄우~, 내 말 들었어~? 어-이!”

내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자 오소마츠가 내 팔을 잡아 흔들기 시작했다. 귀여운 응석에 호흡곤란이 일어날 것 같아 몰래 숨을 고르며 일어났다.

“마실 거 사 오겠다.”

“응!! 나는 맥주!”

“NO!”

“왜 갑자기 영어!?”

귀엽게 항의하는 오소마츠를 뒤로 하고 낚시터 입구에 있는 작은 편의점으로 발을 옮겼다. 음료수가 있는 코너 앞에서 슬쩍 지갑을 열어보았다. OH…, 물 하나 살 돈밖에 남지 않았다. 낚시터 입장료를 오소마츠 몫까지 낸 탓에 지갑이 지나치게 가벼워졌다.

“할 수 없나.”

별수 없이 물 하나만 사서 낚시터로 돌아왔다.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반기는 오소마츠를 본 순간 기발한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씨익- 입꼬리를 올리고 털썩 자리에 앉자 오소마츠가 당연하게 손을 내밀었다. 생긋 웃어 그 손을 무시하고 뚜껑을 열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어!! 내 꺼는!?”

성난 목소리를 귓등으로 흘리고 입에서 병을 떼 오소마츠에게 건넸다.

“자. 돈이 없어서 하나밖에 못 샀다.”

“엑…. 그럼 그냥 바로 나 주지, 왜 네가 먼저 마시는 건데….”

불퉁거리며 병을 받은 오소마츠가 바로 물을 마시지 않고 멈칫거렸다.

“안 마시나?”

“아니…, 이거….”

태연하게 묻자 오소마츠가 눈썹을 찌푸리고 머뭇거리며 내 입이 닿았던 병 입구를 응시했다. “이거…, 간접키스….” 하고 작게 중얼거리는 오소마츠의 사랑스러운 목소리는 마음속에 녹음했다. 죽을 때까지 재생할 수 있다. 절로 위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간신히 참아내며 머뭇거리는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간접키스라니. 감기 옮기겠다고 브라더에게 딥키스를 하는 우리들인데, 간접키스를 망설이는 오소마츠의 모습은 너무나 새롭고 사랑스러웠다.

“안 마실 건가?”

“아니, 마실 거야!”

욱해서 외친 오소마츠가 끄응 신음하더니 “에잇!” 하고 기합을 넣고 병을 기울여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물을 넘길 때마다 울렁이는 목울대에서 시선을 올려 질끈 감은 눈가 아래에 피어난 홍조를 마음에 담았다.

“아쉽군. 마우스 투 마우스로 먹여 주려고 했었, 아우치!!”

“푸헛! 잇…, 바보!!!”

나도 모르게 나온 본심을 중얼거리다 날아온 빈 병에 머리를 맞았다. 물을 잘못 넘겼는지 괴롭게 캑캑대는 오소마츠의 얼굴은 농익은 사과처럼 빨갰다.

 

 

 

3.

 

무거운 쌀 포대를 어깨에 올리고 간신히 현관문을 열었다. 토도마츠에게 떠넘기듯 맡게 된 심부름 퀘스트를 멋지게 완료하고 주방에 들어가자 앞치마를 풀고 있던 마미가 손짓했다.

“수고했다, 백수 2호. 쌀은 여기에 내려놓으렴.”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에 당장 쌀을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을 효심으로 억누르고 조심조심 쌀 포대를 내려놓았다. “휴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돌리자 마미가 다정한 미소로 등을 토닥였다.

“마미, 다른 브라더-들은?”

“글쎄. 다들 나가서 아직 안 온 것 같은데-. 엄마도 지금부터 모임 있으니까 집 잘 지키고 있으렴.”

“알겠다, 마미!”

후후, 웃으며 주방을 떠나는 마미를 배웅하고 오랜만에 기타나 칠 생각으로 계단을 올랐다.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방문을 열자 조용한 숨소리가 살포시 귓가에 앉았다.

“…오소마츠?”

마미는 브라더들이 모두 외출했다고 했는데…. 소파에 누워 잠든 오소마츠에게 발소리를 죽여 다가갔다. 마미에게 잊힌 오소마츠는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잠들었을 때 더 앳되어 보이는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벽장에서 담요를 꺼내 오소마츠에게 덮어주었다. 평온하게 잠든 얼굴을 손가락으로 따라 그리며 가만히 지난날을 떠올렸다.

 

 

가져선 안 되는 마음이라고, 용서받지 못할 마음이라고 자신을 채찍질했었다. 그래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어서 곪아가는 마음을 껴안았다. 그러다 오소마츠가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고 끝이 보이지 않는 애달픔이 시작되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너무나 분명한데도 오소마츠는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내가 마음을 전할지라도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 무언으로 전하는 의지가 너무나 확고해서 무시할 수 없었다.

속절없이 시간이 지나며 애달픔은 원망이 되고 점점 추잡하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변해갔다. 그러다 쵸로마츠의 독립을 계기로 오소마츠와의 관계는 최악이 되었다.

“….”

숨을 삼키며 눈을 내려 주먹 쥔 손을 바라보았다. 과거의 내가 저지른 끔찍한 실수는 시간이 지나도 짙은 후회를 불러왔다. 집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던 우리가 선발 때문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내 실수는 오소마츠의 침묵 아래 유야무야로 끝나고 말았다.

오소마츠는 지옥까지 다녀오고 나서야 겨우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었다. 무언가를 벗어 던진 것처럼 후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오소마츠를 힘껏 껴안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바라고 바라던 오소마츠와 연인이 되자 내 마음엔 조바심이 가득 찼다. 다시 단순한 ‘형제’로 돌아가지 않을까,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때때로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오소마츠와 ‘연인’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더러운 욕망을 그대로 내보인다면 오소마츠는 나를 피하지 않을까?

두 상반된 마음 사이에서 방황하는 동안 나는 오소마츠에게 먼저 다가갈 수 없었다. 그토록 바랐으면서 오소마츠에게 형제 이상의 무언가를 하는 것이 두려웠다.

“너는 나랑 억지로 사귀는 거야!?”

바보처럼 한 달이라는 시간을 허비한 뒤, 울음 섞인 오소마츠의 외침에 눈이 뜨였다.

“억지로, 사귀다니…. 절대 아니다!”

내가 이 마음을 얼마나 오랫동안 끈덕지게 안고 있었는지 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물음에 얼이 빠졌다. 그리고 서둘러 거세게 부정하자 오소마츠의 눈매가 더욱더 매서워졌다.

“거짓말!!”

내뱉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물기가 짙어졌다. 입술을 물어뜯으며 눈물은 보일지 언정 절대 울음을 터뜨리지 않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다.

“미안, 미안하다. 오소마츠.”

스스로 자각하기도 전에 오소마츠를 품에 안고 조심스럽게 머리를 어루만졌다. 나 때문에 오소마츠가 슬퍼하는 것이 괴로우면서도 기쁨을 느끼는 자신에게 분노하며 오소마츠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내가 오소마츠에게 이 정도로 동요를 일으킬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 기뻤다. 이런 순간까지 저열한 기쁨을 느끼는 자신이 한심해 작게 한숨을 내쉬자 오소마츠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 순간 오소마츠와 밀착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늘어난 후드 사이로 드러난 하얀 목이 욕망의 불씨에 기름을 끼얹었다. 지척에 있는 피부에서 은은하게 넘어오는 체온과 체취에 그 불을 더욱 키웠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놀랐는지 뻣뻣하게 굳은 몸과 어찌할 줄을 몰라 공중에 멈춰버린 손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키며 눈을 감았다.

“…절대 억지로 사귀는 것이 아니다.”

한 단계 낮아진 내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숨을 삼켰다. 오소마츠는 더 추궁하지 않고 머뭇거리며 자신의 팔을 내 등에 올렸다.

“그럼 뭔데….”

“그…, 사소하지만 커다란 문제가 하나 있어서 말이야….”

“?”

내 안에 도사리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도 못 한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브라더-들 사이에서 가장 밝히는 녀석이라고 단언하는 녀석이 왜 이런 곳에서는 둔한 건지…. 피식-, 한숨과 닮은 웃음을 흘리고 몸을 살짝 떼어 오소마츠와 눈을 맞췄다.

“그, 게 말이다….”

“응.”

“오소마츠와 닿으면 만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다. ‘연인’다운 걸 하고 싶달까….”

“응…?”

오소마츠는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오자 멍청히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우뚝 솟은 내 바벨탑을 눈치챘는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홱 내 어깨를 밀어내며 외쳤다.

“바보!!!”

강렬하게 한 마디 던지고는 냅다 도망가는 게 귀엽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역시 마이 러버-. 무엇을 해도 사랑스럽다.

 

새빨간 얼굴로 뛰쳐나갔던 오소마츠는 완전히 붉음이 가라앉지 않은 얼굴로 어느 정도의 스킨십은 괜찮다고 힘겹게 말해왔다. 그 모습에 다시 있는 힘껏 안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 여전히 욕망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초조함이 사라진 덕분일까, 그것을 참는 것이 전처럼 아주 힘들지 않다. 게다가 오소마츠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으니 볼 수 있을 때 실컷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물론 오소마츠가 하루빨리 이런 스킨십에 적응해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손가락을 스쳐 지나가는 간지러움에 회상에서 벗어나 잠든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뭘 먹는 꿈이라도 꾸는지 행복하게 풀어진 얼굴로 입을 오물거린다. 내 얼굴도 오소마츠처럼 한껏 풀어져 있겠지. 소리 없이 웃음을 흘리고 있자 느닷없이 오소마츠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자…, 잘 잤나?”

놀라 몇 초 늦게 묻자 오소마츠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가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금방이라도 얼굴에서 김이 나올 것처럼 빨개진 얼굴을 담요 아래로 숨긴 오소마츠에게서 “바보!” 하고 귀여운 투정이 날아왔다.

이번엔 정말 일부러 노린 게 아니지만…. 뜻하지 않은 ‘바보’에 너털웃음이 나왔다.

 

 

 

4.

 

입안에 넣자마자 퍼지는 오뎅 국물을 넘기며 고개를 돌려 나른하게 눈을 깜빡이는 오소마츠를 훔쳐봤다. 치비타의 커다란 웃음소리에 올라탄 브라더-들의 목소리가 서서히 귓가에서 멀어졌다.

좁은 의자에 따닥따닥 붙어 앉은 탓에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오소마츠의 온기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만끽하고 싶어 술을 따르는 브라더-들을 말리지 않았다. 이미 인사불성이 된 브라더-들은 언제 쓰러져 잠들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올라가는 입꼬리를 맥주잔으로 가리고 다른 손을 뒤로 돌려 오소마츠의 손을 향해 슬금슬금 움직였다. 툭, 손가락 끝이 맞닿자 “타하핫~!” 하고 웃던 오소마츠의 웃음이 뚝 끊겼다.

“횽아는 다 이해한다니까? 쵸로따르스키~.”

“닥쳐!! 그리고 내가 러시아인이냐!? 쵸로따르스키가 누구야!!”

일순 멈췄던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은 오소마츠가 내게 날카로운 눈빛을 쏘았다. 허나 나, 카라마츠는 포기하지 않는다! 얻어맞은 손등이 얼얼해도!! 숨죽여 기회를 노리는 찰나 오소마츠가 의자에서 일어나 브라더-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까닥였다.

“어이~, 백수들 이제 가자. 치비타 잠들었으니까 조용히 일어나~.”

오소마츠의 말에 브라더-들이 몸을 꿈틀대며 일어났다. 저 멀리 날아가는 찬스를 배웅하며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걸어가는 브라더-들을 보고 있자 오소마츠가 툭 어깨를 두드렸다.

‘바보.’ 하고 소리 내지 않고 입을 움직인 오소마츠가 게슴츠레 뜬 눈으로 나를 흘겨보더니 브라더-들을 향해 뛰어갔다.

이번엔 실패인가…. 애초에 성공할 거란 기대는 없었다. 오소마츠는 브라더-들과 함께 있을 때는 철저하게 나와 닿는 것을 피했다. 그래도 조금씩 시도하면 손 정도는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치비타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시러 갈래?”

오소마츠가 머리를 긁적이며 건넨 말에 광이 나도록 닦던 선글라스를 놓치고 말았다. 투둑, 손에서 미끄러진 선글라스가 떨어지는 소리가 울리고 추가로 몇 초가 지나서야 목소리를 입 밖으로 낼 수 있었다.

“……브라더-들과 말인가?”

“아니, 너랑 나…, 만….”

지져스‐. 웅얼거리며 말끝을 흐리는 오소마츠의 얼굴은 탐스러운 빨강으로 물들어 있었다.

 

브라더-들과는 온 적 없는 술집으로 익숙하게 들어간 오소마츠가 메뉴판을 펼치며 씨익- 장난스럽게 미소 지었다.

“오늘은 이 횽아가 쏜다! 먹고 싶은 거 맘대로 시켜도 된다구~!”

“경마에서 이겼나?”

“아니, 파~칭코.”

“그렇군.”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기 시작한 오소마츠는 시원한 맥주가 나오자마자 “건배~!” 하고 유쾌하게 잔을 부딪쳤다.

 

안주로 나온 닭꼬치가 바닥나기도 전에 테이블에 엎어진 오소마츠가 “흐냐~.” 하고 더운 숨을 내쉬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보던 오소마츠가 테이블에 턱을 괴고 나와 마주 보며 해죽 웃었다.

“졸린가?”

“우응~, 아니이~.”

발갛게 익어 터질 것 같은 뺨을 살며시 쓰다듬자 오소마츠가 볼을 비비며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나른하게 늘어진 목소리가 은근하게 가라앉았다

다른 브라더-들은 오소마츠의 이런 모습을 모른다. 오소마츠는 브라더-들과 마실 때는 절대 어리광을 부리지 않는다. 오직 나만, 내 앞에서만 보여주는 이 모습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만족감이 가슴에 차올랐다.

“다음에 또 오쟈~, 카라마츄‐.”

“아-, 꼭 오자.”

볼에 닿은 내 손이 시원한지 여기저기 볼을 비비는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사랑스럽게 주변을 감쌌다. 이럴 때마다 간신히 작은 상자에 넣은 욕망이 피에로 상자처럼 팍 튀어나온다. 마음을 간질이는 욕망을 차곡차곡 접어 다시 상자에 집어넣고 잠든 오소마츠를 업고 술집을 나왔다.

 

 

먼저 잠든 브라더-들 사이로 발을 집어넣자 오소마츠가 “후아암~.” 크게 하품을 흘리더니 이불 속에서 손을 더듬었다.

손끝에 닿은 온기에 숨을 집어삼켰다. 내 손 위로 올라온 것은 분명 오소마츠의 손이었다. 요동치는 마음을 따라 떨리는 눈으로 멍청히 천장을 응시하다가 새근거리는 숨소리에 오소마츠를 슬쩍 쳐다보았다. 내 손을 잡아서 만족했는지 너무나 평온한 얼굴로 잠든 오소마츠가 코앞에 있었다.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마이 러버다.”


내 손을 덮은 오소마츠의 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눈을 감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또 오소마츠의 ‘바보’가 날아오겠지. 내일도 내 마음을 엉망으로 무너뜨릴 사랑스러운 외침을 기대하며 오소마츠와 꿈속에서 만나기 위해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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