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둥이의 학창시절 날조 있습니다.

* 영화의 오소마츠상에 나오는 소심한 18카라가 나옵니다.

* 1~3 까지는 카라 시점, 4~6 까지는 쵸로 시점, 7 은 전지적 작가 시점입니다.

* 아주 약간의 약한 장남...?

* 공미포 17,359자.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소른 50제

48. 장남의 의무/장남 (수륙오소/오소른)     에덴, 계란찜 님 신청 키워드.



1.


종례가 끝난 후, 크로스백을 메고 복도로 나왔다. 먼저 교실을 빠져나간 클라스메이트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자 익숙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복도 가장 끝에 있는 교실에서 밝은 웃음소리가 퍼져 나왔다. 뭐가 그리 즐거운 건지, 듣는 이가 궁금할 정도로 흥에 겨운 웃음소리에 손을 그러쥐었다. 오소마츠 형의 저런 웃음을 들은 게 언제였는지. 분명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텐데 까마득한 과거의 일처럼 느껴졌다.

후우-, 숨을 내쉬며 술렁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힌 뒤 부실로 가기 위해 복도를 따라 걸었다. 부실이 있는 2층에 가려면 복도 끝에 있는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발을 앞으로 내딛을수록 오소마츠 형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복도 쪽에 난 작은 창문으로 교실 안을 엿보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야속한 눈은 오소마츠 형의 웃음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

오소마츠 형은 책상에 걸터앉아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눈이 다 감길 정도로 즐겁게 웃는 오소마츠 형의 얼굴은 우리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유도 없이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멀어졌다. 예전과 달리 서먹해진 우리를 떠올리고 가슴에 올려진 가방끈을 강하게 쥐었다.

축제를 앞두고 할 일이 많아진 연극부는 하늘이 어두워질 즈음에 끝이 났다. 학교를 나와 지나가는 사람 없는 골목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다 발치에 걸린 그림자에 고개를 들었다. 산 뒤로 넘어가는 해를 따라 길게 늘어난 그림자 끝에 오소마츠 형이 있었다.

“오, 오소마츠 형….”

나도 모르게 나온 목소리에 놀라 서둘러 손으로 입을 막았다. 작은 목소리였는데도 고요한 길목에 선명하게 퍼진 부름에 오소마츠 형이 걸음을 멈췄다. 주머니에 손을 꽂은 오소마츠 형은 고개만 살짝 돌려 나를 보더니, 무심하게 앞으로 걸어갔다. 점점 멀어지는 오소마츠 형을 보며 입술 안쪽을 잘게 씹었다. 오소마츠 형을 감싸고 있는 날카로운 분위기에 더 말을 붙일 수 없었다. 볼에 남은 푸른 멍과 입가에 빨간 피딱지가 신경 쓰여도 물어볼 수 없었다. 휑하니 가슴을 스쳐 가는 찬바람에 오소마츠 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도 발을 뗄 수 없었다. ‘팅, 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낡은 가로등이 켜지고 나서야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도 형제들은 보이지 않았다. 익숙해진 침묵에 눈을 내리깔고 체념하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바로 주방에 들어가 엄마가 남겨놓은 찬밥과 반찬을 들고 거실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엇…,”

자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오소마츠 형이 거실에 있었다. 오소마츠 형은 잠깐 나를 올려다보고 도로 하던 일에 집중했다. 팔에 붕대를 감는 오소마츠 형 앞에 장식장에 있던 약상자가 놓여있었다.

도와달라고 하면 될 텐데. 그러면 도와줄 텐데. 오소마츠 형은 묵묵히 혼자서 붕대를 팔에 감았다. 붕대가 엉성하게 감긴 팔이 바쁘게 움직여 반창고를 집어 들었다. 심하게 쓸린 팔에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인 오소마츠 형이 말없이 약상자를 들고 일어났다.

“밥…, 저녁 안 먹어?”

손에 든 밥공기를 흔들었지만, 오소마츠 형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거실을 떠났다. 끼익 끼익, 낡은 층계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실 중앙의 낮은 테이블에 밥과 반찬을 내려놓고 그 앞에 주저앉았다.

젓가락과 자기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다음 날, 테이블을 둘러앉아 아침 식사를 하는 우리 중 그 누구도 오소마츠 형의 상처에 관해 물어보지 않았다.




2.


동그랗게 모여 인사를 나눈 동료들이 가방을 챙겼다. 오늘도 저녁 식사 시간을 훌쩍 넘어서야 부 활동이 끝났다. 집에 돌아가도 차가운 정적만이 마중 나올 것을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마츠노! 잠깐, 괜찮을까?”

가방을 메고 부실을 나오려던 나를 동료가 붙잡았다. 같은 학년이지만 반도 다르고 그리 친하지 않은 동료의 부름에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일이야?”

묻자 그가 눈을 굴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입맛을 다시며 망설이는 그를 보며 불쑥 일어난 초조함에 발을 굴렀다.

“얼마 전에 우연히 들은 건데 말이야….”

“응.”

다음 말을 재촉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얼굴이 묘하게 구겨졌다.

“그…, ‘카와시마’ 무리 알지? 우리 학교에서 양아치로 유명한….”

“응.”

“우연히 그 녀석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너희 육쌍둥이가 마음에 안 든다면서 너희 장남한테 시비 걸고 있는 걸 봐서.”

“뭐…?”

공기를 울리는 목소리가 사납게 내려앉았다. 가시를 세운 되물음에 그가 어깨를 움츠렸다. 생각도 못 했던 소식에 이를 앙다물고 오소마츠 얼굴에 남아있던 상처를 떠올렸다. 어젯밤, 거실에서 오소마츠가 혼자 치료하던 그 상처들은 그래서 생긴 것인가.

“알려줘서 고마워.”

“어? 으, 응.”

나직이 숨을 뱉으며 그에게 빠르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서둘러 부실을 나와 아슬아슬한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지났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왜 내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오소마츠 형은 우리와 나누는 걸 좋아했다. 슬픔도, 기쁨도, 고민도 모두. 육쌍둥이라는 이유로 시비를 거는 녀석들이 있다면 오소마츠 형뿐 아니라 우리 모두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일을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걸까.

질문의 끝에 오소마츠 형의 차가운 시선이 닿았다. 동시에 복도를 울리던 발소리가 멈췄다. 오소마츠 형은 이 일에 관해 물어봐도 무시하겠지. 내가 혼자 초조해져서 전전긍긍하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무미건조하게 대응하는 오소마츠 형의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관둘까….”

갑자기 피로감이 몰아쳤다. “집에나 가자.” 하고 자신에게 되뇌며 멈췄던 발을 뗐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풀고,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터덕터덕, 조금 전과는 다른 템포의 발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며 아무 생각 없이 창문 밖을 본 순간 나는 다시 뜀박질을 시작했다.


“오소마츠 형!!”

오소마츠 형의 어깨를 거칠게 미는 무리 앞에 서서 그들을 노려봤다. 동료가 말해준 ‘카와시마’와 그의 무리가 비웃음과 함께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때 보자, 장남님~.”

픽, 코웃음을 친 카와시마가 오소마츠 형에게 속삭이듯 말하고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교문으로 걸어가는 무리를 응시하다 몸을 돌려 오소마츠 형에게 물었다.

“‘그때’라니, 저게 무슨 소리야. 오소마츠 형.”

카와시마가 괜히 그런 말을 할 리 없었다. 일부러 목소리를 깔고 심각하게 물었지만, 오소마츠 형은 인상을 찌푸릴 뿐 질문에 답해주지 않았다.

“왜 네가 끼어들어서 난리야. 별거 아니니까 신경 꺼.”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 있어!!”

귀찮다는 듯이 나를 밀어내는 말투에 울컥 목소리가 높아졌다. 오소마츠 형은 왜 내가 화내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저 자식들은 나한테만 시비 걸고, 너네는 안 건드니까 됐잖아, 그걸로.”

“그게 무슨…,”

오소마츠 형의 입에서 나온 말에 놀라 말문이 막힌 사이 오소마츠 형이 나를 밀어냈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오소마츠 형이 점점 멀어졌다.

‘우리는 건들지 않으니 됐다’고? 진심으로 말하는 건가?

내가 우리고, 우리가 나. 그걸 끝까지 밀고 나갔던 건 오소마츠 형이었으면서, 갑자기 그런 낯선 말을 내뱉은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왜….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우리에게 불만을 가진 녀석이 있으면 다 같이 쳐부수는 게 당연했는데. 점점 더 멀어져가는 그가, 지금까지 내가 알던 오소마츠 형이 아닌 것 같아서, 오소마츠 형을 알 수가 없어졌다.




3.


카와시마 무리가 오소마츠 형에게 시비 거는 모습을 목격한 뒤로 아무도 모르게 오소마츠 형 주변을 살폈다. 중학교 때까지 오소마츠 형과 꼭 붙어있던 쵸로마츠가 옆에 없는 만큼 오소마츠 형이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방과 후, 부 활동이 끝난 후, 수시로 오소마츠 형이 어디 있는지 확인했다. 되도록 오소마츠 형의 눈에 띄지 않으려 했지만, 가끔 주변에 내가 있는 걸 알아채면 오소마츠 형은 항상 인상을 팩 찌푸리고 내게서 멀리 떨어졌다. 곧바로 날아와 박히는 오소마츠 형의 싸늘한 눈빛에 그만둘까 싶다가도 비어있는 오소마츠 형의 옆자리가 눈에 밟혔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던 카와시마는 오소마츠 형이나 우리 근처에 접근하지 않았고 오소마츠 형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학교생활을 보냈다. 아무 일도 없는 일상에 내 경계도 자연스럽게 누그러졌다.


축제 준비가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자 부 활동이 끝나는 시간이 빨라졌다. 아직 해가 떠 있는 하늘을 보고 숨을 들이마시며 각오를 다졌다. 오늘은 오랜만에 오소마츠 형과 같이 돌아가자. 토도마츠가 오늘 오소마츠 형은 땡땡이친 수업의 보충이 있다고 말했던 것을 되새기며 오소마츠 형 반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닫혀 있는 교실 문 앞에서 한 번 더 숨을 고르며 자신에게 기합을 넣었다. 일주일간 오소마츠 형 주변을 맴돌며 그 매서운 눈빛에도 익숙해졌다. 함께 돌아가자는 말 정도는 할 수 있어! 가볍게 주먹을 쥐고 화이팅 포즈를 취한 뒤, 문고리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정말 도와주러 안 가도 되는 걸까? 그놈들 머릿수가 꽤 됐었다고.”

“알아서 하겠지. 따라오지 말라고 했잖아-. 여차하면 마츠노 동생들이 도와주러 가겠지.”

“근데 그 녀석들 요즘 사이 안 좋아 보이지 않았어?”

“야, 그래도 마츠노가 걔네 형인데 그걸 모른 척하겠냐?”

문 너머에서 작게 들려오는 대화는 오소마츠 형이 닥친 상황을 알아채기에 충분했다. 팔이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그대로 문을 밀자 ‘쾅’하는 소리가 교실에 울렸다.

“그,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아니, 그것보다 오소마츠 형은 어디 있어.”

사색이 된 놈들의 얼굴이 심상치 않은 일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가 책상에 걸터앉아있는 놈의 멱살을 잡고 다시 물었다.

“오소마츠 형은 어디로 갔지?”

잘게 떨리는 입술에서 대답이 나오자마자 교실을 뛰쳐나왔다.



동네에서 아는 사람만 안다는 공터에 가까워지자 투덕대는 소리가 얼핏 들렸다. 어깨에서 덜렁거리는 가방을 집어 던지고 카와시마 무리 한가운데에 있는 오소마츠 형을 향해 뛰었다. 예상치 못한 지원군의 난입에 카와시마 놈들이 멈칫했다.

정말 오랜만에 정신없이 치고받으며 놈들과 싸웠다. 엄마가 말려도 귀를 닫고 서로 싸웠던 옛날처럼 날아오는 주먹을 막고 발로 차고, 멱살을 잡히면 박치기를 했다. 누가 아군이고 적인지 구분 못 할 정도로 눈이 돌아간 상태로 한참을 싸우자 카와시마 놈들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

“지독한 새끼들…!”

낮게 욕설을 내뱉은 것이 누구인지는 몰랐다. 놈들은 어디 하나 성한 곳 없이 공터를 빠져나갔다.

“먼저 다굴한 놈들이 뭐래.”

놈들이 완전히 공터를 빠져나갈 때까지 눈을 떼지 않던 오소마츠 형이 혀를 차며 으르렁거렸다. “하아―.” 하고 지친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 형은 다리가 풀린 것처럼 털썩 그 자리에 내려앉았다.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낮아진 오소마츠 형의 머리통을 내려다보았다. 나와는 다른 위치에 있는 가마를 멍청히 내려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혼자서 어쩌려고 했던 거야.”

“…별로. 혼자서도 충분했고?”

“말이 되는 소리를…!”

둘이서 온 힘을 다해 싸워야 간신히 물리칠 수 있는 놈들이었다. 태연한 오소마츠 형의 말투에 발끈해 멍청한 형의 얼굴에 눈을 고정했다. 내가 아닌 정면을 보고 있는 오소마츠 형의 뺨을 따라 피가 흐른 자국이 있었다. 분노로 뜨거워진 숨을 토하며 흙투성이가 된 주머니에서 빳빳하게 다림질한 손수건을 꺼냈다.

“자. 머리에 피 나.”

“….”

오소마츠 형 눈앞에서 손수건을 흔들자 형이 말없이 손수건을 받아 들었다. 아직 피가 나고 있는지 형이 이마에 손수건을 누르자 하얀 손수건이 금방 빨갛게 물들었다.

“왜 왔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할 말인가? 어이가 없어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일대다의 싸움에, 게다가 머리는 화려하게 찢어 놓고 왜 왔냐고 물어보다니. 머리끝까지 화가 난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깨달으며 감정을 담아 버럭 외쳤다.

“그게 도와주러 온 사람한테 할 소리야!? 이런 일이 있으면 말해줬어야지! 혼자 싸우러 오는 게 아니라!! 왜 형은…,”

까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입안에 울렸다. 아무리 싸움에 자신이 있어도 이런 바보 같은 싸움을 피하는 게 옳았다. 나에게 말해줬다면 같이 대책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아니면 같이 싸우러 가자고만 말했어도 카와시마의 일을 봤으니 기꺼이 오소마츠 형을 따라왔을 것이다.

“왜 말을 안 해주지 않은 거야! 왜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는데!”

분에 차서 목이 따가워지도록 오소마츠 형을 향해 외쳤다. 지독했던 싸움보다 오소마츠 형을 향한 분노에 더 숨이 찼다. 격해진 감정을 거르지 않고 담아 외친 후 씩씩 숨을 몰아 내쉬었다. 거친 숨에 어깨까지 들썩였다.

“…이런 건 ‘형’이 해야 하는 일이잖아.”

“허…?”

이번에도 시큰둥하게 나를 무시할 거로 생각했던 오소마츠 형이 얼굴을 찌푸렸다. 슬픈 것 같으면서 짜증이 섞인 이상한 표정에 숨통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분노가 사라졌다.

“…왜 우리가 달라져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형’이라고 불리고 싶지도 않아. 근데, 그래도 내가 ‘형’이잖아. 형이면 동생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

이어지는 오소마츠 형의 말에 커다란 망치가 머리를 내려찍는 것 같았다.

“모르겠다고, ‘동생’인 너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건지. ‘형’이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머리를 벅벅 긁다가 찢어진 상처를 건드렸는지 “아얏!” 하고 신음하는 오소마츠 형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나는 모든 것을 너무 안일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소마츠 형의 변화도, 우리의 변화도.

형은 동생에게 도움받으면 안 된다는 괴상한 오소마츠 형의 지론은 둘째 쳐도, 오소마츠 형이 그런 식으로 ‘형’에 자신을 맞추려고 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우리가 동등한 존재에서 ‘형과 동생’으로 나뉜 것은 나이를 먹으면서 가지는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던 거지. 우리의 변화는 우리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는데.

똑같은 사람이 여섯. 내가 우리고, 우리가 나.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이 시선이, 우리를 향한 말이 우리가 ‘우리’로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음을 버리고 다름을 택했다. 그 결정을 가장 나중에 받아들인 것이 오소마츠였다.

“바보야?”

“뭐!?”

입술 사이로 미끄러져 나온 혼잣말에 오소마츠가 눈을 뾰족하게 세웠다. 우리가 달라지는 것을 거부했으면서 ‘형’으로서 행동하려고 하려는 바보를 가만히 응시했다. 오소마츠는 내가 모르는 어떤 압박을 받고 있었던 걸까. 그래서 그런 영문 모를 의무감을 가지게 된 걸까. 숨을 크게 내뱉어도 응어리가 가슴에 남아 답답했다.

우리가 형제가 된 탓에 오소마츠는 외톨이가 되었다. 항상 쵸로마츠가 있었던 오소마츠의 빈 옆자리를 내가 채워도 될까. ‘형’이라면서 혼자 꿋꿋이 서 있으려는 바보와 나란히 서고 싶다. 마음을 뒤흔드는 욕망에 주먹 쥐고 있던 손을 펴 오소마츠에게 내밀었다.

“나도…, 오소마츠와 같은 ‘형’이다. 네 ‘동생’이 아니야.”

“뭐어?”

내 손을 잡고 일어서면서 오소마츠는 황당하단 얼굴로 말꼬리를 올렸다. ‘그게 뭔 개소리냐’하는 얼굴에 피식 웃으며 허리에 손을 얹었다.

“오소마츠가 ‘형’이라면 나 역시 ‘형’이다.”

오소마츠와 같이 ‘형’이 될 거다. 그렇게 다짐하는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오소마츠는 수상하단 눈으로 나를 훑어보았다.



싫다는 오소마츠를 끌고 공터를 나와 병원으로 향했다. 청춘의 대난투에 오소마츠와 나는 온몸이 엉망이었다. 오소마츠는 기어이 찢어진 이마를 몇 바늘 꿰매야 했다. 흙과 주름으로 엉망이 된 교복과 찰과상이 가득한 팔과 얼굴, 게다가 오소마츠는 머리에 붕대까지 감은 채 귀가하니 가족 모두 놀라 까무러쳤다.

나와 오소마츠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 추궁하는 가족에게 적당히 설명한 뒤 오소마츠와 함께 남은 저녁을 먹고 나란히 이부자리에 누웠다.

“오소마츠.”

“…왜.”

공터에서 싸움이 끝난 뒤로 ‘형’을 떼어버리고 오소마츠를 불렀지만, 오소마츠는 나를 말리지 않았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러나’하는 얼굴을 하긴 했지만. 어둠에 잠긴 익숙한 집 천장을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형’으로서 ‘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나만큼은 의지해줘. 네가 의지할 수 있는 남자가 될 테니까.”

“….”

오소마츠는 대답도 없이 홱 몸을 돌려 나를 등지고 누웠다. 바로 옆에 보이는 뒤통수에 입꼬리가 슬쩍 위로 올라갔다.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노력하자. 오소마츠와 함께 ‘형’이 될 수 있도록.

몇 번이고 다짐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4.


냐-짱의 인터뷰가 실린 잡지를 손에 들고 있으면서도 자꾸 눈이 옆으로 샜다.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만화책을 보고 있는 오소마츠 형의 얼굴에 자꾸만 미간에 주름이 졌다.

“쵸로마츠 형, 잡지에 뭐 심각한 거라도 실려 있어?”

“응? 어….”

“뭐야, 그 대답은. 그렇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뭉그러진 다른 마츠의 목소리에 적당히 대답하며 잡지를 손에서 내려놓았다. 원형 테이블에서 떨어져 오소마츠 형에게 다가가자 때마침 오소마츠 형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저럴 줄 알았지. 요 며칠 이상하더라니.

치솟는 짜증에 남몰래 혀를 차고 오소마츠 형을 불렀다.

“오소마츠 형.”

“응? 왜‐? 쵸로 씌? 나랑 놀아주려고~?”

실실 웃는 낯에 콱 침을 뱉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평소보다 처진 오소마츠 형의 눈가에 시선을 고정했다.

“요즘 무슨 일 있어? 묘하게 조용해서 오히려 신경 쓰이는데.”

“에에~? 별로 무슨 일 없는데‐. 아, 요즘에 계속 파칭코랑 경마에서 지기만 해서 우울해~. 위로해줘, 쵸로 씌!”

배려심을 있는 대로 끌어올려 에둘러 물었더니 오소마츠 형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중지와 엄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돈 빌려줭~! 쵸로 씌!”

“내가 미쳤냐!? 너한테 돈을 빌려주게!!”

“왜앵~. 내가 두 배로 불려줄게!”

“그렇게 말하면서 내 지갑에서 빼간 돈이나 갚아!”

“아잉~~.”

과하게 눈을 반짝이며 아양을 떠는 오소마츠 형을 밀어내고 한숨을 삼켰다. 뭘 좀 물어보려고 하면 이 모양이다. 이쪽은 이미 눈치채고 있는데 굳이 저렇게 숨길 필요가 있을까. 한 번도 솔직하게 얘기해주지 않는 오소마츠 형을 길게 뜬 눈으로 흘겨보았다.

“무슨 일 있나?”

거실에 퍼진 목소리에 오소마츠 형의 고개가 위로 향했다. 방금 막 집에 돌아온 우리 집의 차남, 카라마츠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으응~, 별거 아냐.”

우리를 쭉 훑어보고 오소마츠 형과 눈을 맞춘 카라마츠가 형의 말에 “그런가.” 하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참, 오소마츠. 나와 함께 파티 투나잇을 즐기러 가지 않겠나?”

“응~? 파티 투나잇은 뭐야~. 기습 그만둬‐!”

“엩.”

“히히히, 좋아. 갈까~.”

카라마츠의 싼 제안에 오소마츠 형은 쉽게 올라탔다. “우이샤~.” 하고 아저씨 같은 신음을 내며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 형이 자연스럽게 카라마츠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카라츙이 쏘는 거지?”

“응~? 논논, 오소뫄~츠? 더치페이인 게 당연하지 않나.”

“에엑~! 횽아, 요즘 지기만 해서 돈 없다궁~!”

손가락을 튕기며 개똥 같은 멋을 부리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오소마츠 형이 배를 잡고 웃는 시늉을 했다. 오소마츠 형은 웃음이 헤픈 편이긴 하지만 카라마츠와 있을 때는 그 정도가 더했다. 오소마츠 형과 카라마츠는 웃기지도 않은 만담을 끝냈는지 어깨동무를 하고 거실을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어디 갈 거야?”

“응?”

우리가 나가서 뭘 하든 일체 관심 없던 드라이 몬스터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카라마츠는 갑자기 건너온 질문에 눈을 깜빡이며 “음….” 하고 대답을 망설였다.

“왜. 보나 마나 아저씨들이나 가는 술집에서 맥주나 마실 텐데 따라가려고?”

동생에게 약한 카라마츠에게 얻어 마실 생각일 게 분명한 토도마츠에게 핀잔하듯 말했다.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오소마츠 형이 내 말에 볼을 부풀리며 불평했지만, 귀 기울여 듣는 녀석은 없었다. 토도마츠는 어지간히 공짜 술이 마시고 싶었는지 내 말에도 굽히지 않고 카라마츠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나도 오랜만에 마시고 싶은 기분이라서 그래~, 카라마츠 형~.”

얼씨구? 징그러운 비음까지 내며 애교를 부리는 토도마츠의 행태에 소름이 돋았다. 카라마츠는 웬일로 토도마츠의 부탁에도 쉽게 YES라 말해주지 않았다.

“저 망할 장남하고 차남은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새벽까지 달리고 올 텐데.”

“아, 그럼 됐어. 나 내일 오전에 약속 있고.”

흘리듯 말하자 토도마츠가 정색하며 손을 흔들어 카라마츠를 배웅했다. 저 드라이 몬스터 자식. 사람이 어떻게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홱 바꾸냐. 거실에 있던 이치마츠와 함께 영악한 막내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럼 다녀올게~.”

“쎼러데이 나잇과 뜨거운 베제를 나누고 오겠다!”

어깨동무를 한 채로 오소마츠 형과 카라마츠가 현관을 나섰다. ‘탁’하는 소리와 함께 무정하게 닫히는 현관문을 가만히 응시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 두 놈이 같이 나가는 꼴을 보면 괜히 짜증이 솟는다. 기분 전환을 위해 고개를 돌려 테이블 위에 놓인 잡지를 손에 들었다. 하지만 냐-짱의 인터뷰를 읽어도 잔뜩 찌푸린 얼굴은 좀체 펴질 기색이 없었다.




5.


이불에서 빠져나와 신속하게 세면실로 걸어갔다. 사람은 여섯인데 화장실과 세면대는 하나니 시간대를 잘 선택해 일어나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났다. 아무도 없는 세면실에 들어가 여유롭게 세수를 하고 양치질까지 끝내고 방에 돌아오니 불룩 튀어나온 이불이 시야에 걸렸다.

대체 몇 시까지 마시다 들어온 건지 오소마츠 형은 미동도 없이 깊이 잠들어 있었다. 아침이 가까운 새벽에 옆자리 이불이 살짝 들리는 느낌이 있었는데, 바로 몇 시간 전에 들어왔단 소리인가. 부모님 돈으로 먹고 자는 백수 주제에 방탕한 생활을 하는 망할 장남을 힘껏 노려보며 옷을 갈아입었다.

“쵸로마츠 형, 지금 나가?”

“응. 오늘 라이브 맨 앞줄에서 보려면 지금 나가야 해.”

“부지런하네~, 아이돌 오타쿠는.”

“아앙!?”

토스트 2장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현관에 선 내 옆에 토도마츠가 내려왔다. 어제 약속이 있다던 토도마츠도 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옆에서 분홍색 운동화에 발을 끼우는 토도마츠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토도마츠 옆자리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을 오소마츠 형을 떠올렸다. 둥글게 부풀어 올라있던 이불이 자꾸만 눈동자 위에서 아른거렸다.

“형?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냐.”

토도마츠의 질문에 대답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토도마츠와 함께 집을 나와 번화가까지 걸어가는 내내 묘한 찜찜함이 발목을 잡았다.



완벽하다는 말조차 아까울 정도로 멋진 라이브를 끝내고 냐-짱 팬클럽 지인들과 덕톡회까지 끝내고 나니 어느새 저녁 식사 시간을 훌쩍 지난 후였다.

“아, 너무 들떴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냐-짱에 대해 떠들던 덕톡회의 훈훈함을 되새기며 행복함으로 가득 찬 가슴을 안고 집을 향해 걸었다. 사람이 행복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더니 매일 걸어가는 길이 너무나 평화로워 보인다. 발걸음도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볍다. 룰루랄라, 어릴 때처럼 깡충깡충 뛰며 걸어가다 벽에 붙은 전단에 걸음을 멈췄다.

『백수 교정 시설 NEETZAP!! 어떤 노답 인간도 순식간에 개조해 드립니다! 』

우와…, 저거 까딱하면 우리가 갈 뻔했던 곳 아냐? 마츠요 여사의 지리멸렬한 고민에 상담해주었던 과거를 떠올리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취직인가….”

어느 순간부터 처절함을 잃어버린 행위에 가만히 전단를 응시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술자리에서 취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오소마츠 형이 오랜만에 파칭코에서 대승리했다며 우리를 끌고 간 술집에서. 다들 거나하게 취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마지막에 나온 것이 취직에 대한 것이었다. 여섯 나란히 백수지만, 고충이 없는 것은 없었다. 하나씩 말뿐인 고민이 나오고 결국엔 신세 한탄이 길게 이어졌다.

“그래도 취직해야겠지, 언젠가는.”

그렇게 말한 것인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여섯 중이라면 내가 말했을 확률이 제일 높았다. 신세 한탄처럼 술상에 퍼진 말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우리 속에 남아있는 티끌만큼의 양심이 그 말에 동의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얼마나 침묵이 이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분위기를 바꾼 것은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였다.

“그래, 너네 다 얼른 취직하라구. 나는 평생 일 안 하고 엄마랑 아빠 등골 빨아먹으면서 살 거지만!”

일순 피어난 어색한 미소가 슬로우 모션처럼 시야 가득 퍼졌다. 빼도 박도 못 할 쓰레기 발언에 다른 녀석들이 입을 삐죽이자 오소마츠 형은 킬킬대며 말을 덧붙였다.

“너네는 취직한다며~?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술에 취해 반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한 말처럼 오소마츠 형은 어눌하게 말했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우리를 비웃는 오소마츠 형에게 모두 발끈해 대들었다.

몇 마디 되지 않는 말. 그사이에 많은 것이 오소마츠 형의 얼굴에서 스쳐 지나갔다. 어색한 웃음은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문득, 아빠의 추천으로 작은 회사에 들어갔던 나날을 발걸음 소리에 맞춰 하나씩 떠올렸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어렴풋한 위기를 안고 집을 나왔다.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오소마츠 형이었다.

구직 활동을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하게 된다면 오소마츠 형이 제일 먼저 취직할 것이라 무의식중에 생각했다. 옛날부터 자주 엄마가 주변에 변명하며 내두른 ‘할 때는 하는 아이’라는 표어는 오소마츠 형을 가리키는 것으로 의심치 않았으니까.

‘우리’는 오소마츠 형에게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존재였던 모양이다. 아마 오소마츠 형도 스스로 몰랐던 것 같다. 그 뒤로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오소마츠 형은 여전히 헤어짐을 못 견뎠다. 술자리에 던져진 ‘취직’이란 단어를 세세히 뜯어보면 그 안에 ‘헤어짐’이 있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미묘하게 오소마츠 형의 얼굴에 걸쳐진 두려움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내 어색한 미소를 피워 두려움을 숨겼다.

이걸 오소마츠 형이 철이 든 거라 봐야 하는 건가.

비웃음과 닮은 한숨이 입 밖으로 빠져나갔다. 숨을 뱉으며 살짝 벌어진 입가는 곧 굳게 다물렸다. 서로 작은 호흡과 시선을 공유했던 시절은 먼 과거였다. 하지만 그 시절이 남긴 것들은 조금 녹이 슬었을지라도 사라지진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오소마츠 형이 숨겼을 감정과 생각. 무엇을 감내하고, 무엇을 다짐하고, 무엇을 슬퍼했는지, 대충 예상은 할 수 있는데. 그걸, 그 솔직한 것들은 오소마츠 형의 입으로 직접 듣는 것은 이리도 어렵다.

‘오소마츠’였기에 오소마츠 형의 변화를 함께 나누고 싶었다.

“‘파트너’였는데….”

시선이 스친 것만으로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던 우리였는데. 가을의 찬바람이 세월의 무정함을 일깨우며 젖은 눈가를 스쳐 지나갔다.




6.


오랜 세월로 틀이 비틀려 잘 열리지 않는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을 벗고 복도에 오르자 거실에서 무미건조한 인사말이 나를 반겼다.

“오소마츠 형은?”

“위에서 자고 있슴닷!!”

커다란 공 위에서 몸을 흔들고 있던 쥬시마츠가 손을 번쩍 들고 천장을 가리켰다. 쥬시마츠의 손끝을 따라 위를 보고 시선을 내려 벽시계를 확인했다. 저녁 식사 시간이 가까운데 자고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부터 발목에 매달려 있던 찜찜함이 커졌다.

거실을 나와 계단을 올라 2층 방문을 열었다. 바닥에 펼쳐진 커다란 6인용 이불 중앙에 동그란 언덕이 솟아 있었다.

찜찜함은 불길함이 되고, 불길함은 곧 확신이 되었다. 입술 안쪽을 깨물고 조심스럽게 무릎 굽혀 오소마츠 형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하아….”

식은땀에 젖은 이마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푹- 한숨을 내쉬었다. 조심스럽게 오소마츠 형을 흔들어 깨우자 가녀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 흐…?”

“오소마츠 형, 일어나. 병원 가자.”

“아, 쵸로마츠~, 어서 와.”

발갛게 달아오른 채 배시시 웃는 저 얼굴을 당장 한 방 때려주고 싶다. 콱콱, 입술 안쪽과 함께 소리 내지 못한 욕설을 씹으며 오소마츠 형을 일으켰다. 아침부터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았는지 이불 안쪽은 오소마츠 형의 열로 뜨끈했다. 잠옷 차림인 오소마츠 형에게 갈아입을 내주고 계단을 내려왔다.

거실 찬장의 약상자에서 꺼낸 해열제와 물을 가지고 2층방으로 돌아갔다. 초등학생처럼 약은 싫다며 칭얼대는 오소마츠 형에게 억지로 해열제를 먹이고 함께 내려오자 거실에 있던 녀석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몰려들었다.

“무슨 일이야?”

“오소마츠 형이 감기 걸린 것 같아서. 병원 갔다 올게.”

토도마츠의 질문에 대답하자 쥬시마츠와 이치마츠가 당황한 얼굴로 이어 물었다.

“오, 오소마츠 형아, 아픔니깟!?”

“열…, 많이 높아?”

오소마츠 형을 보며 묻는 녀석들에게 간단히 대답하고 오소마츠 형과 함께 집을 나섰다.



오소마츠 형을 본 의사의 진단은 예상했던 대로 단순한 감기였다. 다만 열이 높아 조금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지경이 되도록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오소마츠 형을 향한 짜증을 간신히 억눌렀다. 환자한테 뭐라고 말해 봤자 소용없으니까.

오소마츠 형은 열 때문인지 혼자 걷는 게 힘들어 보였다. 금방 쓰러질 것처럼 휘청대는 오소마츠 형을 붙잡자 오소마츠 형이 천천히 눈을 끔뻑였다.

“쵸로마츠, 잠깐만.”

메말라 갈라진 목소리에 얼굴을 찌푸리고 길가 벤치에 오소마츠 형을 앉혔다.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공원 입구라 긴 벤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벤치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힘겹게 숨을 내쉬는 오소마츠 형의 모습에 가슴에 뻐근한 통증이 퍼졌다.

“물 사 올게. 물 마시고 좀 쉬다 가자. 아니면 업어줄까?”

울컥 치솟는 짜증을 감추고 부드럽게 묻자 오소마츠 형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감기 때문에 기력이 빠져 입꼬리만 간신히 올리는 미소에 가슴을 감싼 통증이 강해졌다.

“조금 쉬면 돼~. 먼저 들어가 있어, 쵸로 씌~.”

오소마츠 형은 비웃음이 나올 정도로 가소로운 힘으로 다가간 나를 밀어냈다. 이 정도 힘에 밀릴 리 없는데 오소마츠 형은 당연히 내가 물러날 것처럼 굴었다.

한계치에 다다른 유리가 깨지듯 억누르고 있던 뜨거운 것이 왈칵 목을 타고 올라왔다.

“왜 그러는데! 아프면서! 아픈 놈이 도와주겠다는 손을 왜 거부하는데! 아파도 혼자 참을 거면 차라리 티라도 내지 말던가! 사람을 걱정하게 만들고 왜 그러는 거냐고!”

억울했다. 무엇이, 왜 억울한지 자신도 몰랐지만, 너무 억울했다. 눈앞의 망할 장남은 항상 그랬다. 아파도 말해주지 않고, 슬퍼도 위로해달라 청하지 않았다. 예고 없이 벌컥 쏟아진 감정에 오소마츠 형이 눈살을 찌푸리고 나른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갑자기 왜 그래, 쵸로마츠? 횽아 걱정해주는 건 기쁘지만 말이야~. 막 죽을 병도 아니고 단순한 감기야~? 놔두면 알아서 낫고, 그리고 아픈 걸 알아도 쵸로 씌가 딱히 해줄 것도 없잖아.”

뭐가 문제야? 마지막으로 나온 질문에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아니,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라고! 아플 때 정도는 의지하라고!”

“오늘도 쵸로마츠가 병원 데려가 줬잖아? 의지 됐다고??”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분해서 발을 구를 정도로 나를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좀 더 근본적인 것이었다. 정리하지 못한 말을 그대로 내뱉으려다 오소마츠 형의 한 마디에 턱을 떨어뜨렸다.

“쵸로마츠는 동생이잖아~? 그러니까 괜찮다구-.”

뭐가 괜찮다는 거냐, 망할 자식아.

욕설을 입 밖으로 내지 않은 자신의 인내심을 칭찬하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지금 내가 쥬시마츠라면 좋았을걸. 그럼 뭔가를 눈치채도 자연스럽게 모른 척하며 핵심을 찌를 수 있을 텐데. 오소마츠가 처내린 저 말의 뜻을 알아채지 못했을 텐데.


나는 ‘동생’이기에 내 도움이 필요 없다.

오소마츠는 그렇게 말했다. 떫은 감을 먹은 것처럼 입안이 꺼칠꺼칠했다. 언제부터 오소마츠는 ‘우리’를 그렇게 받아들인 거지? 언제부터 오소마츠 안에서 형제의 상하 관계가 이렇게 단단하고 뿌리 깊게 박혀버린 거지?

지금까지 나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오소마츠는 티를 낸 게 아냐. 내가 알아차린 것뿐. 나는 처음부터 오소마츠의 고려 대상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만에 하나 오소마츠에게 자신의 목숨이 관련되었을 정도로 심각한 일이 생겨도 오소마츠는 내게 말하지 않을 거다.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나는 오소마츠의 의지가 되기는커녕, 진실조차 모른 채 오소마츠를 잃을 것이다. 그래, 우리는 그럴 것이다. 카라마츠를 제외한 ‘우리’는.


카라마츠는 언제부터 오소마츠를 ‘오소마츠’라 불렀지? 뻔뻔하게 저 혼자 ‘우리’에서 빠져나가 오소마츠를 옆자리를 꿰찼지?

“하하, 진짜 어이가 없네.”

새어 나온 탄식에 이를 갈며 눈을 들어 오소마츠와 마주 보았다.

“다 쉬었으면 들어가자.”

“어? 으, 응.”

내 목소리 톤이 달라진 것을 모를 리 없는 오소마츠는 멍청히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소마츠의 뜨거운 손을 잡아 벤치에서 일으키자마자 등을 내주었다.

“업혀.”

“허? 저기, 쵸로 씌? 나 괜찮은데? 이건 좀 오바,”

“닥치고 빨리 업혀.”

“에에~, 환자한테 말이 심한 거 아냐? 너무해~.”

오소마츠는 반항해도 소용없다는 걸 직감했는지 투덜대며 내게 업혔다. 공원을 지나 집을 향해 걸으며 등에 퍼지는 온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장남, 형의 의무나 일은 안간힘을 써서 피하려 드는 주제에. 왜 그런 부분만 ‘형’으로서의 자아가 확실하게 잡혀있는 건지. 자기가 얼마나 쓰레기를 표방해 부모님의 기대를 피했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던 오소마츠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착실히 자신을 ‘장남’이라 칭하는 이 멍청이를 어쩌면 좋을까. 그리고 파트너면서 오소마츠의 그런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 나는 또 어쩌면 좋을까.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거의 자신을 향한 후회가 사그라지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 어땠냐 묻는 녀석들을 미루고 2층방에 오소마츠를 눕혔다. 녀석의 목까지 이불을 덮어주고 그 옆에 엉덩이를 내렸다.

“나 동생 그만둘 거야.”

“응?”

“파트너로 돌아갈 테니까 잘 부탁해, 오소마츠.”

“응? 응?? 어, 뭐야? 뭐 땜에 스위치 들어가서 라이징하는 거야?”

“라이징 아냐, 망할 놈아. 잠이나 자. 열 때문에 힘들잖아.”

조롱이 섞인 걱정에 혀를 차고 오소마츠의 눈 위에 손을 올렸다. 병원에서 맞은 주사와 약이 효과를 냈는지 오소마츠는 금방 잠들었다. 색색, 규칙적으로 뜨거운 숨을 내쉬는 오소마츠를 잠시 바라보다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에 눈을 들었다.

“아, 쵸로마츠.”

“어서 와.”

“다녀왔다. 오소마츠는 좀 어떤가?”

“….”

눈썹을 내리고 묻는 카라마츠를 가만히 응시했다. 당연한 듯이 ‘오소마츠’라 부르는 카라마츠가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지경이 된 게 카라마츠 탓이 아니란 것도 이해하고 있다. 다만,


교활한 자식.

일렁이는 분노는 달랠 수 없었다.


“단순한 감기인데 열이 높아서 주사 맞고 왔어.”

“그런가.”

노골적으로 안도하는 낯빛에 입꼬리를 높이 올렸다.

“응. 오소마츠는 괜찮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금방 나아서 시끄럽게 굴걸.”

“하하, 그렇겠…,”

중간에 말을 흐린 입이 살짝 벌어졌다. 부드럽게 늘어졌던 짙은 눈썹이 매섭게 섰다. 푸른 빛을 머금은 눈이 나를 관찰하듯 응시했다. 그게 우스워 절로 미소가 짙어졌다.

왜 너만 특별한 줄 알았어? ‘오소마츠’라고 부를 수 있는 게 너뿐인 줄 알았어?

조용히 카라마츠를 마주 보았다. 그래, 이건 선전포고다.




7.


“하아~, 다 털렸다.”

드르륵-,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오소마츠가 복도에 나란히 선 두 쌍의 날카로운 눈빛에 어깨를 튕겼다.

“어서 와라, 오소마츠.”

“어서 와, 오소마츠.”

“오, 오오…. 다녀왔습니다아…?”

이유는 모르지만, 어딘가 사나운 분위기를 풍기는 카라마츠와 쵸로마츠는 서로 할 말이 있다며 2층으로 올라갔다. 끼이익, 낡은 층계를 오르는 두 동생의 등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본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거실에 들어갔다.

‘저 자식들 왜 저래?’

카라마츠와 쵸로마츠에게 욕먹을 짓을 많이 했지만, 둘이 함께 오소마츠를 ‘오소마츠’라고 부를 이유는 없었다. 심기가 뒤틀린 걸 저렇게 티 내는 건가? 좌로 우로 고개를 기울이는 오소마츠에게 질문 하나가 날아왔다.

“오소마츠 형, 쵸로마츠 형이랑 카라마츠 형한테 뭐 잘못했어?”

“에엑~? 아니, 나는 결백하다고! 진짜로!”

오소마츠에게 원인이 있을 거라 단언하는 토도마츠 앞에 무릎을 내린 오소마츠가 테이블을 살짝 내리쳤다.

“카라마츠 형은 그렇다 쳐도 쵸로마츠 형까지 ‘형’을 빼고 부르는데도?”

“우그으…, 그, 건 그렇지만….”

결백을 주장하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빠져나갔다.

지갑에서 돈 빼간 거? 아냐, 그건 매번 하는 거고. 저번에 피규어 망가뜨려서? 아냐, 쥬시마츠가 한 거라고 말했으니까 세이프. 기타랑 쵸로마츠 책을 말 안 하고 빌려 가서?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중얼대며 자신의 만행을 하나씩 짚어가던 오소마츠가 끄응 신음했다. 머리 위에 커다란 물음표를 띄우고 기억을 더듬는 오소마츠를 토도마츠가 눈에 담았다. 벌써 몇 분째 답장을 보내지 않은 메시지 화면에 눈을 주는 것처럼 속이고 오소마츠를 살핀 토도마츠가 한숨 쉬듯 말했다.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사과해. 쵸로마츠 형까지 저러니까 분위기 이상하다구.”

“아니, 나는 잘못한 거 없다니깐!?”

“없어도 사과해. 보고 있는 내가 짜증 나니까.”

“에엑~~, 이 드라이 몬스터 자식.”

얇게 뜬 눈으로 저를 보는 오소마츠에게 빙긋- 미소지은 토도마츠가 답을 재촉하는 저쪽의 메시지에 자판을 두드렸다.

“내일 있는 미팅, 가기로 한 친구가 안 된다고 해서 남자 하나 비는데, 오소마츠 형 갈래?”

“진짜!? 갈래!! 갈게요! 역시 막내만 있으면 된다니까~! 우리 집 희망의 별 토도마츠!!”

미팅이란 단어에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껴안고 방방 뛰는 오소마츠를 한심하단 눈으로 쳐다본 토도마츠가 슬그머니 떠오른 미소를 머금었다. 동생에게 스킨십 장벽이 낮은 오소마츠는 토도마츠를 찬양하며 제 볼을 토도마츠에게 비벼댔다. 토도마츠는 귀찮다고 불평하면서도 오소마츠를 밀어내지 않았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지만.’

토도마츠는 카라마츠와 쵸로마츠의 일탈을 그렇게 평했다. 토도마츠의 두 형이 나름대로 고심해 낸 결론이겠지만, 토도마츠에게는 비웃음밖에 자아내지 못했다. ‘막내’이기에 토도마츠는 여러 가지를 알고 있었다. 다른 형제들은 모르는 ‘장남’에 대한 것들을. ‘형’이라는 지위는 오소마츠를 지지하고 있는 중요한 축이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하게 부서질 리 없었기에 토도마츠는 두 형의 노력을 헛수고라 단정했다.

토도마츠로서는 ‘형제’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장남’의 정반대 포지션인 ‘막내’는 의외로 ‘장남’이라는 자리와 비슷한 것이 많았다. ‘막내’였기에 ‘장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지위가 가진 장점을 깨달은 토도마츠는 적극적으로 그것을 이용했다. 막내로서 장남인 오소마츠에게 마음껏 어리광부렸고, 나름의 의지가 되려 노력했다. 지금까지 나온 성과를 보면 ‘막내’는 정말 괜찮은 자리였다.

“빨리 그만뒀으면 좋겠네-.”

“응? 뭘?”

“아, 아는 친구 얘기야. 오소마츠 형.”

경계하는 눈이 2층에 있을 두 형에게 향했다. 형제 관계를 깨려는 카라마츠와 쵸로마츠는 토도마츠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였다. 그들의 행동이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는 없겠지만, 눈에 거슬리는 행위임은 분명했기에. 하루빨리 좌절해 그만두길 바라며 토도마츠가 오소마츠를 향해 웃었다. 사랑하는 형에게 동생이 지어줄 법한 애정 어린 미소를.



‘챙그랑’하고 복도를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에 쥬시마츠가 주방으로 달려갔다. 주방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 옆에 깨진 유리컵이 어지러이 늘어져 있었다.

“오소마츠 형아, 괜찮슴니까?”

“응, 괜찮아. 쥬시마츠, 내가 할게.”

“아이!”

오소마츠의 말에 쥬시마츠가 유리 조각을 주우려 뻗은 손을 긴 소매 속으로 감췄다. “아이고.” 하고 신음하며 쭈그려 앉은 오소마츠는 제가 놓친 유리컵의 잔해를 하나씩 집어 손에 올렸다. 오소마츠의 부드러운 거절에 쥬시마츠는 말없이 오소마츠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얼추 유리 조각이 치워지자 쥬시마츠가 폐지를 모아 놓은 가방에서 신문지를 꺼내 오소마츠에게 내밀었다.

“땡큐~.”

오소마츠가 날짜 지난 신문지에 유리 조각을 싸는 동안 쥬시마츠는 복도 벽장에서 청소기를 꺼내 왔다. 식탁 위에 있는 신문지 뭉치를 재활용 쓰레기통에 버린 쥬시마츠는 작은 유리 조각이 차칵차칵 소리를 내며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오소마츠의 능숙한 뒤처리에 주방에 퍼진 유리컵의 잔해가 깔끔하게 사라졌다. “휘유~.” 하고 한숨을 돌리며 땀도 나지 않은 이마를 닦아낸 오소마츠가 쥬시마츠를 향해 빙긋 웃었다.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알지?”

“아이!”

검지를 세워 입술 앞에 댄 오소마츠의 말에 쥬시마츠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오소마츠가 눈치채지 못한 상처에 입을 꼭 다물고 오소마츠를 거실로 이끌었다.

“오소마츠 형아, 거기 상처 있슴닷!”

“으겍~, 언제 생겼대.”

쥬시마츠가 유리에 베인 상처를 가리키자 오소마츠가 콧등을 찡그렸다. 쥬시마츠는 묵묵히 거실 찬장에서 약상자를 꺼내 오소마츠 앞에 내밀었다.

“고마워~.”

씩- 웃으며 약상자를 받아 든 오소마츠가 반창고를 꺼내 상처에 붙였다. 그 모든 과정을 쥬시마츠는 응시하기만 했다. 깨진 유리컵도, 손의 생채기도 오소마츠는 혼자 처리했다. 오른손에 생긴 상처 때문에 왼손으로 반창고를 붙이는 게 불편할 텐데도 오소마츠는 쥬시마츠에게 도와달라 하지 않았다.

“오소마츠 형아! 뭐 부탁할 거 있슴까?”

“응?? 부탁?”

“아이아이!”

“음…, 그럼 안마 좀 해줄래?”

오소마츠의 부탁에 쥬시마츠는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매까지 걷어붙이고 오소마츠의 어깨와 등을 마사지하기 시작한 쥬시마츠가 얼굴에서 미소를 지웠다. 쥬시마츠를 알고 있는 이라면 흠칫 놀랄 정도로 건조한 무표정을, 엎드려 있는 오소마츠는 볼 수 없었다.

오소마츠는 쥬시마츠를 보호하려 한다. 쥬시마츠가 ‘동생’이기에. 그리고 카라마츠와 쵸로마츠는 그 ‘동생’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으햐앙~.” 하고 묘한 색을 띈 오소마츠의 신음에 쓴웃음을 삼킨 쥬시마츠가 형제들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토도마츠도, 깨부수려 하는 카라마츠와 쵸로마츠도 쥬시마츠와는 아무 관계 없었다. 쥬시마츠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예전에 자신의 마음을 정한 쥬시마츠였다. 어느 쪽이든 쥬시마츠는 오소마츠가 원하는 쪽을 따르기로 정했다. 동생을 원한다면 동생으로 남을 것이고, 동등함을 원한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어떤 관계가 될 것이냐,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이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쥬시마츠는 그저 어떤 이름을 달건 오소마츠 옆에 있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5명의 동생 중 하나로서 옆에 있는 것도, ‘특별한 사람’으로서 옆에 있는 것도 좋았다. 쥬시마츠가 손을 뻗었을 때 오소마츠가 손에 잡힐 수 있는 거리에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래서 카라마츠와 쵸로마츠를 막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즈음 두 형의 움직임이 쥬시마츠의 행복을 방해하고 있었다. ‘동생’을 벗어나 오소마츠의 ‘단 하나’가 되려고 했다. 옆에 누구도 올 수 없게, 오소마츠를 독차지하려고 했다. 그건 좀, …곤란했다.

“토도마츠 쪽에 붙어야 하려나-.”

작게 흘린 혼잣말에 쥬시마츠가 해사하게 웃었다. 방관이 자신의 주특기였지만, 이번에 어리석은 두 형이 시작한 일만큼은 실패하기를 바랐다. 쥬시마츠는 자신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에, 그가 웃고 있는 방관자로 남아있을 때 두 형이 포기하길 바랐다. 지저분한 형제 싸움은 오소마츠가 원하지 않을 테니까.



메마른 입술에서 나온 흰 연기가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창가에 기대 담배를 피우는 오소마츠의 옆은 오랜만에 비어 있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오소마츠 옆에 다가간 이치마츠가 털썩 엉덩이를 내렸다.

“응? 왜 그래, 이치맛쨩~.”

옆자리를 차지한 보라색 후드를 본 오소마츠가 히히 웃으며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꼭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에 이치마츠는 침묵을 택했다. 오소마츠 역시 이치마츠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시선을 돌려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이치마츠는 무릎을 올려 감싸 안고 눈을 감았다.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오소마츠의 숨소리와 체온이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문득 이치마츠는 오소마츠가 뭔가를 알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를 둘러싼 집안의 분위기가 바뀐 것을, 오소마츠가 알아차렸을까. 오소마츠는 의외로 눈치가 빠르니까 모를 일이다.

“오소마츠, ……형.”

“응?”

빌어먹을 체리마츠와 개똥마츠를 흉내 내려 해도 마지막엔 꼭 ‘형’을 붙이고 만다. 이치마츠는 자신의 비겁함에 추욱 어깨를 늘어뜨렸다. 카라마츠와 쵸로마츠는 ‘동생’이길 거부했다.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는 그것을 경계했다. 그럼 이치마츠 자신은?

눈이 뻑뻑했다. 천천히 눈꺼풀을 닫았다 뜨며 이치마츠가 내려오는 손길에 떨리는 숨을 삼켰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와 쵸로마츠처럼 되고 싶었다. ‘동생’이 아니라 오소마츠와 동등한 위치에 서고 싶었다. 하지만 비겁한 자신은 그럴 수 없었다. 어느 날 오소마츠가 홀연히 흘린 진심에 겁이 났다.

“기대란 이름의 폭력이라구~?”

‘장남’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가, 그로 인해 따라오는 의무와 부담감을 오소마츠가 입에 담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오소마츠와 동등해지려면 자신도 그것을 떠안아야 했다. 그게 이치에 맞았다. 이치마츠는 그래서 도망쳤다. 비열하고 비겁하고 쓰레기인 자신은 도저히 그것들을 오소마츠와 나누어 짊어질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두려워서 도망쳤다.

‘그런 주제에 다시 원하고.’

도망쳤으면서 다시 또 동등하길 원한다. 어떤 형태든 오소마츠에게 의지가 되길 바랐다.

“…요즘, 뭐 고민 있어?”

마른침을 삼키고 용기를 그러모아 물었다. 오소마츠는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배시시 기쁘게 웃었다.

“횽아 걱정해주는 거야? 이치맛쨩! 감동이야!!”

우헤헤, 진심으로 기쁘게 웃는 오소마츠를 따라 이치마츠도 웃었다. 자신을 향한 지독한 비소를 가득 피웠다. 이치마츠가 원했던 답은 그게 아니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고통에 이치마츠가 뜨거운 눈시울을 떨어뜨렸다. 이를 악물고 눈가를 적시는 눈물을 참아냈다. 무릎에 파묻은 제 머리 위로 오소마츠의 부드러운 시선이 내려앉은 것도 모르고.

“역시 횽아는 이치맛쨩이 제일 걱정이야‐.”

이리저리 솟은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은 오소마츠가 가볍게 제 머리를 내렸다. 툭, 머리와 머리가 부딪쳤다. 붉게 물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못 본 척해주며 머리를 쓰다듬는 오소마츠의 손길에 이치마츠의 심장이 일그러졌다.

닿아오는 손길이, 걱정이 기쁘고 슬프다.

‘그게 아냐, 오소마츠….’

소리 내어 뱉을 수 없는 한탄을 구겨 쥔 이치마츠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 이번 단편에서는 남동생 하나 둔 장녀인 제 경험을 섞어 보았습니다^^  몸 상태가 안 좋거나 고민이 생겨도 동생한테는 딱히 뭔가는 바라지 않게 되더라구요. 동생은 단순히 '도와줘야할 상대'로만 인식되어서 그걸 오소마츠에게도 반영해 보았습니다.

* 한 마디라도 댓글 달아주시는 게 제게 많은 힘이 됩니다. 잘 봤다는 한 마디라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전에 부지런히 답글 달아드렸는데 초심을 되살려 답글 달아드리고 싶어요!ㅎ


* 여기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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