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딧불이의 숲으로』라는 애니메이션의 설정을 따왔습니다. 제법 가슴 아련한 사랑이야기로 한번 찾아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 이번에 여우 오소마츠 일러스트가 나온 모양이던데, 「여우 오소마츠 + 반딧불이의 숲으로」 라는 망상에서 시작된 글입니다.


* 오소마츠를 제외한 다섯명이 오쌍둥이입니다.


* 원작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엔딩입니다. 저는 무조건 해피엔딩을 선호하므로...


* 부족한 글입니다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

 

「절대 인간에게 닿아서는 안 된다.

근엄한 목소리가 숲에 울렸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청년이 콧노래를 부르며 가볍게 발걸음을 옮겨 깊은 숲 속으로 사라졌다.

 

 

1.

시끄럽게 울어대던 벌레 소리도 사라진 고요한 숲 속. 땀에 젖은 티셔츠를 두 주먹 가득 쥐고 불안에 떤 눈빛으로 이치마츠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여름방학을 맞이해 오쌍둥이가 함께 놀러 온 시골 할머니댁. 형제들과 함께 놀러 온 숲에서 고양이를 발견해 무심코 고양이를 따라 깊은 숲 속으로 들어온 이치마츠가 눈물을 글썽였다

태어난 순간부터 함께였던 오쌍둥이와 떨어져 혼자 남겨진 감각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작게 쥬시마츠으…”하고 자신의 파트너를 불러보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이치마츠는 거칠게 팔로 눈물을 닦아내고 코를 훌쩍였다.


여긴 어디야? 집에 돌아가고 싶어…’

울먹이며 방향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발이 움직이는 대로 걸었다

어린 이치마츠는 자신이 서서히 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정처 없이 걷던 발이 멈췄다

빛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하늘 가득 빽빽이 자란 나무가 가리고 있는 숲 속 한 가운데

홀로 남은 이치마츠가 결국 참고 참아오던 울음을 터뜨렸다.


, 우와아아아아아!!! 쥬시마츠으!!!! 토도마츠으!!! 카라마츠!! 쵸로마츠으!!! 어디있어!!!!!”

고요한 숲 속에 이치마츠의 울음 소리가 메아리쳤다. 아무리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이치마츠의 울음 소리가 더욱 커졌다.


어이, 꼬맹아.”

한창 울부짖던 와중, 옆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에 이치마츠가 퍼뜩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붉은 반팔티에 청바지를 입고 여우가면을 쓴 청년이 (가면을 쓰고 있어 잘 알 수는 없지만) 이치마츠쪽을 보고 있었다.


, 우흑.. , 저기 나, 길을 잃어서..”

울음을 멈추고 청년의 존재에 안도감을 느끼며 이치마츠가 다가가 손을 뻗었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미아가 된 이치마츠는 자신을 불러준 이 청년의 존재가 너무나 고마웠다

형제 외의 타인을 어려워하는 이치마츠가 스스로 다가갔지만, (이치마츠의 접근에 놀랐는지) 청년은 크게 몸을 움찔거리며 자신의 손을 뒤로 내빼었다.


“…..”

, 아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던 청년의 거부에 이치마츠가 다시 눈물을 글썽거리며 뻗었던 손을 가슴께로 가져가 고개를 숙였다

청년은 눈에 띄게 당황해 하며 손을 저었다. 여전히 이치마츠에게 말을 걸면서도 다가오지는 않는 청년의 모습에 이치마츠의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이 크기를 더했다.


~ 정말~ 미안하다고, 꼬맹아~”

바삭바삭 풀이 밟히는 소리가 울리고 청년이 이치마츠의 코 앞까지 다가왔다

청년이 쓰고 있는 여우 가면이 고개를 든 이치마츠의 뿌연 시야를 가득 채웠다

자신을 거부하지 않고 다가와준 청년에게 이치마츠가 팔을 벌리고 안기려 하자, 청년이 우왓!”하고 비명을 지르며 재빨리 몸을 피했다

청년이 몸을 피한 덕분에 그대로 풀 밭에 정면으로 넘어진 이치마츠가 , 우아아아~!!”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청년은 이치마츠의 옆에서 손을 흔들며 안절부절 못한 채, 당황하고 있었다.


!”

넘어진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치마츠의 앞에 아기 여우가 나타났다

!” 하고 한번 더 울더니 이치마츠의 눈물을 핥아주었다. 아기 고양이만한 아기 여우의 등장에 이치마츠의 눈물이 그쳤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아기 여우를 안아 든 이치마츠가 살며시 웃으며 아기 여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겨우 그쳤네.”

이치마츠의 옆에서 자리를 지키던 청년이 (가면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슬쩍 고개를 돌린 이치마츠의 얼굴을 본 청년이 우하하하하!!”하며 무례하게 웃었다

자신을 보며 갑자기 웃음을 쏟아내는 청년에게 눈살을 찌푸리고 노려보고 있으니 으힉-“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청년이 말했다.


, 너 얼굴 엉망진창.. 큭큭. 미안해, 잡아주지 않아서. 나는 내 생활이 걸렸었다고.”

청년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아 이치마츠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청년이 다시 말했다.


나는 인간에게 닿으면 사라져버려.”

청년의 말에 이치마츠가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닿으면 사라져? 인간에게

순간 이치마츠는 눈 앞의 청년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하고 작게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쳤다.

이치마츠가 거리를 벌리자 청년이 (가면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쓰게 웃으며 말했다.


어라아~ 피하는 거야? 나는 길을 알려주려는 무~지 친절한 사람인데.”

아니, 사람 아니잖아, ..”

청년의 말투는 장난스러웠고, 한층 경계를 늦춘 이치마츠가 태클을 걸자 청년이 또다시 큭큭대며 웃었다

가면을 쓴 채, 큭큭대며 배를 붙잡고 웃는 청년을 한참동안 이치마츠가 바라보고 있었다

다 웃었는지 고개를 든 청년이 근처를 두리번거리더니 곧 적당한 길이의 나뭇가지를 주워왔다.


, 이쪽 잡아.”

“…?”

길 알려줄게. 잡아.”

청년의 말에 이치마츠가 의심스럽다는 얼굴을 지으면서도 청년이 내민 나뭇가지의 끝을 잡았다

나뭇가지의 반대쪽 끝을 잡은 청년이 앞서 걷기 시작했다. 말없이 이치마츠는 아기 여우를 꼭 안고 청년의 뒤를 따랐다.

 

...


.”
청년과 한참을 걷자 이치마츠가 아는 곳이 나왔다. 여전히 숲 속이었지만 지금 보이는 곳은 항상 형제들과 놀던 곳으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여기서부턴 집 찾아갈 수 있지?”

청년이 뒤돌아 말하자 이치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가 잡고 있던 나뭇가지를 놓자마자 저 멀리서 이치마츠를 찾는 형제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치마츠~ 어디있어~?””””

형제들의 목소리에 이치마츠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치마츠가 형제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품에 안고 있던 아기 여우가 몸부림쳐 이치마츠에게서 벗어나 청년의 어깨로 훌쩍 올라갔다.


“...”

이 녀석은 내 친구라서 데려가면 곤란해~.”

청년이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하곤 숲 입구에 놓인 커다란 바위에 걸터앉았다.


잘 가, 꼬맹아~. 또 깊은 숲으로 들어가지 말고~”

청년은 휙휙 손을 흔들며 말했다. 이치마츠는 슬쩍 고개를 끄덕이곤 형제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서서히 형제들의 목소리가 가까워지자 이치마츠가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청년이 있는 쪽을 확인했다.

“…”

계속 여우 가면을 쓰고 있던 청년이 가면을 반쯤 벗고 이치마츠가 있는 쪽을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제법 멀리 떨어져 청년의 얼굴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제대로 눈, , 입이 붙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치마츠가 다시 고개를 돌려 발걸음을 재촉했다.


달걀귀신은 아닌가 보네.’

묘하게 떨려오는 가슴을 붙잡고, 형제들을 향해 나아가는 이치마츠가 생각했다.

 


 

2.

이치마츠가 숲 속에서 길을 잃은 다음날, 숲 속에서 노는 것은 위험하다는 할머니의 말에 오늘은 모두 근처의 강가에 놀러가기로 했다

시끌벅적 떠들며 강가에 갈 준비를 하는 형제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치마츠가 말했다.


나는 안 갈래.”

“”””~? ?””””

입을 모아 의아한 얼굴로 묻는 똑 같은 얼굴의 형제들에게 이치마츠가 몸을 움츠리고 말했다.


오늘은 기분이 안 좋아.”

“”””그럼 할 수 없지~ 우리끼리 놀다 오자!””””

이치마츠의 말에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는 순진한 형제들은 그대로 이치마츠 집에 놔두고 강가로 향했다

형제들이 모두 나간 텅 빈 집 안, 이치마츠는 뭔가를 각오한 듯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 신발을 신었다

어제의 장소를 향해 숲 속으로 들어갔다. 숲이 가까워지자 저절로 발도 빨라져 어제의 그 장소에 도착했을 때, 이치마츠는 거칠게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아아~ 또 오지 말라고 했는데~”

어제의 그 장소에 도착하자 청년이 어제와 같이 큰 바위에 걸터앉아 이치마츠를 향해 말했다

청년의 어깨엔 어제의 아기 여우가 올라타 있었다. 두 쌍의 눈이 이치마츠를 향해 있었지만 그 눈빛은 결코 사납지 않았다.


말 안 듣는 꼬맹이네~”

나무라는 말투가 아닌, 장난스러운 청년의 말투에 이치마츠가 빙긋 미소 지었다.


나는 꼬맹이가 아니야! ‘이치마츠라는 제대로 된 이름이 있어!”

“…이치마츠.”

!”

이치마츠의 발언에 청년이 잠시 침묵하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치마츠를 불렀다

청년의 어깨에 앉아있던 아기 여우도 이치마츠를 부르는 듯 작게 울었다

아버지 이외의 성인 남성에게 이름을 불린 적이 없었던 이치마츠가 얼굴을 붉히며 .”하고 대답했다.


나는 오소마츠.”

“…오소마츠.”

.”

그리고 이 녀석은 ’.”

아기 여우를 가리키며 말하는 오소마츠의 표정은 가면에 가려져 알 수 없었지만, 분명 부드럽게 웃고 있을 것이라고 이치마츠는 생각했다

잠에 들 것만 같은, 어머니가 불러주는 자장가 같은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오소마츠가 말했다.


이치마츠, 따라 와.”

오소마츠가 바위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팡팡 털고는 앞서 걸었다. 휘적휘적 걸어가는 오소마츠를 이치마츠가 급히 뒤따랐다

어제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지 주위의 풍경이 어제와 조금 달랐다

제법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자 어느새 넓은 평원과 커다란 호수가 이치마츠의 눈 앞에 나타났다.

완만한 언덕에는 붉은 꽃들이 활짝 피어 바람에 살랑살랑 흩날리고, 호수는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몇 번이고 놀러 왔던 숲이었지만 이런 곳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이치마츠가 우와…”하고 솔직하게 감탄했다.


여기, 나만 알고 있던 비밀 장소야.”

초롱초롱한 눈으로 풍경을 담아내던 이치마츠를 내려다보며 오소마츠가 말했다

이치마츠가 고개를 들어 오소마츠를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한테 알려 줘도 괜찮아?”

괜찮아~ 이치마츠군은 착한 아이같고~”

장난스럽게 말한 오소마츠가 호수가의 작은 언덕에 털썩 앉았다

이치마츠가 살며시 오소마츠의 곁에 다가가 앉자 오소마츠의 어깨에 있던 아기 여우가 이치마츠에게 다가왔다.


우왓…!”

이치마츠에게 다가온 아기 여우가 망설임 없이 이치마츠의 무릎 위로 올라가 몸을 둥글게 말았다

무릎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이치마츠가 당황해하자 오소마츠가 아기 여우의 등을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도 네가 마음에 들었나 보네.”

“…흐음..”

살포시 이치마츠의 뺨이 붉게 물든 것을 눈치챈 오소마츠가 부드럽게 이치마츠를 내려다보았다.

 

 


3.

그 다음날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이치마츠는 오소마츠를 찾아왔다

오소마츠는 항상 숲의 입구에 있는 커다란 바위 위에 올라타 이치마츠를 맞이해 주었다

셀 수 없는 많은 여름의 날들을, 둘이 함께 보냈다. 오소마츠의 비밀 장소의 호수에서 물장구 치며 놀고, 깊은 숲 속을 함께 탐험했다

이치마츠가 가져온 공으로 여우 과 함께 던지고 받기를 하기도 했다. 너무나 즐겁고 즐거운 날들이었다

오소마츠와 함께 있으면 이치마츠는 오쌍둥이의 셋째가 아닌, 이치마츠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었다.


왜 오소마츠는 사람과 닿으면 안돼?”

깊은 숲 속을 탐험하고, 숲 입구로 돌아가는 길. 나뭇가지의 끝과 끝을 잡은 채, 이치마츠가 물었다

이치마츠의 질문에 오소마츠가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숲 속에 버려진 갓난아기였대. 그대로 숲 속에서 굶어 죽을 운명이었는데 산신이 나를 불쌍히 여겨서 이승에 붙잡아 둔거야

나는 본래 인간으로 저승에 갈 영혼이 억지로 이승에 붙잡혀 요괴도, 인간도 아닌 존재가 된 거지

그래서 인간과 닿으면 나를 붙잡고 있는 산신의 힘이 사라져서 그대로 사라져버린다고 하더라고~.”

마치 남 일 이야기를 하듯 술술 말하는 오소마츠를 올려다보며 이치마츠가 나뭇가지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나는 절대 오소마츠를 만지지 않을 거니까.”

?”

어린 이치마츠의 다짐에 오소마츠가 뒤돌아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이치마츠가 눈물로 촉촉해진 눈으로 오소마츠를 올려다보았다.


오소마츠가 사라지는 건 싫으니까, 그러니까 오소마츠도 절대 나를 만지면 안돼.”

이치마츠의 앳된 목소리에는 아이답지 않은 무게가 실려 있었다. 오소마츠가 쓴 가면 안에서 하고 숨을 내뱉는 소리가 났다.


꼬맹이가…”

말을 잇지 못한 채,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려 걸음을 재촉했다.

 


 

4.

매년 질리지도 않고 오네. 꼬맹이 이치마츠~”

이젠 암묵적인 만남 장소가 되어버린 숲 속의 입구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오소마츠와 아기 여우 콘이 바위에 앉아 이치마츠를 향해 말했다

중학교의 교복을 입은 이치마츠가 하고 코웃음치곤 말했다.


, 이제 꼬맹이 아닌데. 벌써 중학생이고.”

중학생? 그럼 몇 살인 거야?”

오소마츠가 멍청히 묻자 이치마츠가 그것도 모르는 거야?”하고 황당하단 얼굴로 대답했다.


“13!”

뭐야아~ 아직도 꼬맹이구만~”

자랑스럽게 나이를 외치는 이치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웃으며 말했다

항상 얼굴을 가린 채 쓰고 있던 여우가면은 머리 옆에 걸쳐있어 오소마츠의 장난기 섞인 얼굴이 시원하게 보이고 있었다.

 


10, 처음 오소마츠를 만난 이후로 이치마츠는 매년 여름 이 곳에 왔다

한달이라는 여름방학을 이치마츠는 온전히 시골 할머니 댁에서 보냈다

다른 형제들이 시골 할머니댁은 질렸다고 다른 곳으로 놀러 가자고 할 때도, 이치마츠는 홀로 할머니댁에 왔다

전부 오소마츠를 만나기 위해서 였다. 그리고 작년,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기념으로 오소마츠에게 가면 속 얼굴을 보여달라고 했다

이치마츠와 함께 있는 오소마츠는 절대 그 여우가면을 벗은 적이 없었다. 오소마츠의 얼굴을 보고싶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던 것이, 여러 시도가 실패하자 오기로 바뀌어 있었다. 무슨일이 있어도 얼굴을 보고 말 테다! 이치마츠가 각오를 다졌다.


~.”

“….”

초등학교 졸업 선물로 가면을 벗어달라고 했지만 당연히 오소마츠는 거절했다

얼굴을 찡그리며 이유를 묻자 오소마츠는 그냥?”이라고 한심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그런 것 보다, 놀러 가자!”

오소마츠가 두 손을 번쩍 들어 만세를 부르며 말했다

그 날은 유난히 더운 날이어서 오소마츠와 이치마츠는 함께 오소마츠의 비밀장소인 호수가로 향했다

호수의 물은 적당히 시원해서 오소마츠와 함께 시간도 잊고 정신없이 물장난을 친 이치마츠가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호수가 옆의 언덕에 앉았다

오소마츠도 따라 나와 이치마츠의 옆에 누웠다. 이내 오소마츠가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들었고, 이치마츠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소마츠의 얼굴에 쓰인 가면을 들어올렸다.


“…!!”

가면 아래, 어떤 얼굴이 있을까? 두근대며 들어올린 가면을 이치마츠가 재빨리 오소마츠에게 쓰였다.


우왓!! 아팟!!!”

무심코 힘이 들어가 가면을 그대로 오소마츠의 얼굴에 들이박아 버렸지만, 이치마츠의 머리속에는 그러한 정보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오소마츠의 아프다는 비명도 저 멀리에서 들리는 듯 작게 들렸다.


어째서 나랑 똑 같은 얼굴?’

두근두근 심장이 떨렸다. 결국 그 날은 할 일이 생각났다며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서도 가슴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마침 자신을 부르는 할머니의 곁에 앉았다.


할머니, 혹시 우리 친척 중에 오소마츠라는 사람이 있나요?”

이치마츠의 물음에 할머니가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차를 마시던 손을 멈추었다

김이 나는 찻잔이 할머니의 손에 들린 채 멈춰있는 것을 이치마츠가 멍하니 쳐다보았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르고 조심스럽게 찻잔을 마루에 내려놓은 할머니가 말했다.


, 어째서 그 이름은 알고있니?”

할머니의 물음에 이치마츠가 당황하며 , , 족보에 이름이 써 있어서!”라고 맹렬히 머리를 굴려 대답했다

이치마츠의 질문에 할머니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열었다.


옛날엔 이 마을도 기근이 심하게 들어서, 다들 가난했단다. 그런 힘든 시기에 태어난 아기는 공공연하게 숲 속에 버려지곤 했어… 

사람으로서 부모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지만, 그때는 그 정도로 절박했단다

오소마츠는 네 할아버지의 형님의 이름이야. 태어나고 이름까지 받았지만 결국엔 숲에 버릴 수 밖에 없었다고… 

네 증조 할머니께서 평생 후회하셨단다.”

 

...


작년, 할머니와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하며 이치마츠가 앞서 걸어가는 오소마츠를 뒤따랐다

오소마츠가 잠든 사이 몰래 가면 뒤의 얼굴을 본 후로, 오소마츠는 가면을 쓰는 것을 고집하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 맨 얼굴을 감춘 건 그냥 재미였고, 이미 들켰으니 상관 없잖아?”라는 가벼운 대답이 돌아왔다

두 손을 깍지 끼고 머리 뒤에 올려 콧노래를 부르며 사박사박 풀을 밟아가며 나아가는 오소마츠의 모습을 이치마츠가 두 눈 가득 담았다.


, 맞다!”

앞서 걸어가던 오소마츠가 갑자기 우뚝 멈춰서더니 이치마츠를 향해 뒤돌았다

씩 장난스럽게 웃고는 오소마츠가 나무가 우거진 사이로 들어가며 외쳤다.


거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제대로 길이 나지도 않은 숲 속을 망설임 없이 걸어 들어가는 오소마츠의 뒷모습을 보며 이치마츠는 얌전히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몇 년간 오소마츠와 함께 숲 속에서 놀며 배운 것이 있다면 오소마츠 없이 혼자서 함부로 숲 속을 걸어 다니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인간이 아닌 오소마츠는 괜찮아도 깊은 숲 속엔 인간이 알지 못하는 심연이 숨겨져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심연에 홀려 들어가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고, 오소마츠는 단단히 당부했다

주저 앉은 채, 눈을 감고 숲 속 가득 들려오는 매미의 울음소리를 듣고있던 이치마츠가 눈을 떴다

매미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가녀린 꺼질 듯한 울음소리가 들려와 이치마츠가 일어나 소리가 들려오는 풀 숲을 헤집었다.


…”

작은 아기 새가 둥지에서 떨어졌는지 몸을 떨며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날개는 야속하게도 아기 새의 몸을 공중에 띄우지 못했다

서럽게 우는 아기 새를 이치마츠가 조심히 들어올렸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작은 온기에 이치마츠가 살며시 미소지었다

고개를 들어 아기 새가 떨어진 둥지를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나무 위 둥지에서 아래를 보고 울고있는 아기 새의 형제들을 발견했다.


저 녀석들도 네가 걱정인가보다.”

이치마츠의 손에 들려 있는 아기 새를 향해 울고 있는 형제 새들을 보고 하고 웃으며 이치마츠가 말했다

조심히 조심히 아기 새를 한 손에 올린 이치마츠가 둥지가 있는 나무에 올랐다

한 손만 사용해 민첩하게 나무에 오른 이치마츠가 둥지 안에 아기 새를 넣어주었다

형제 새들이 아기 새에게 다가와 짹짹기쁘게 웃는 것 같아 이치마츠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제 천천히 내려가기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긴장을 늦춘 탓일까 위태롭게 나뭇가지에 걸쳐져 있던 발이 미끄러졌다.


, 우와!!!”

미끄러진 발은 그대로 공중에 뜬 채, 필사적으로 붙잡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이치마츠가 식은 땀을 흘렸다

많이 높지도 않지만, 절대 낮다고도 할 수 없는 높이에 이치마츠의 눈이 핑글 돌았다

나무에 매달린 채, 손도 발도 쓸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하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더욱 절망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뿌지직!”

이치마츠가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부러지고 있었다

이대로 떨어지면 제법 다칠 것이라는 생각에 두 눈을 꼭 감았다.


, 이치마츠으?!!!!”

오소마츠의 놀란 목소리에 이치마츠가 꾹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아기 고양이를 두 팔 가득 안고 서 있는 오소마츠가 눈을 크게 뜨고 이치마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 오소마ㅊ…!!”

오소마츠를 부르려는 순간 커다란 소리를 내며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그대로 땅을 향해 낙하하는 이치마츠를 본 순간, 오소마츠가 품에 안고 있던 아기 고양이들을 땅에 내려놓고 이치마츠를 향해 돌진했다

두 팔을 쭉 벌리고 이치마츠를 받으려고 달려오는 오소마츠의 모습이 이치마츠의 시야에 들어왔다.


“..안돼!!!!!”

순간, 이치마츠가 크게 외쳤다. 이치마츠의 외침에 오소마츠가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이치마츠는 보기 좋게 땅에 굴렀다.


, 이 바보가!!!!!!”

땅에 굴러 온 몸이 아팠지만 그런 것은 지금 이치마츠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성난 목소리는 잔뜩 갈라져 카랑카랑하게 들렸다

아픔 때문인지, 슬픔 때문인지 영문 모를 눈물이 이치마츠의 뺨을 타고 흘렀다.


나를 만지면 사라지는 주제에!!!! 오지 마!!!! 다가오지 마!!!! 나 같은 쓰레기 구하려고 하지마!!! 이 바보야!!!!!!”


이치마츠의 노성이 숲 가득 울렸다. 뚝뚝 커다란 눈물방울이 이치마츠의 눈에서 흘러나와 반짝였다

땅을 치며 격렬하게 화를 내는 이치마츠를 가만히 바라본 오소마츠가 멈췄던 발을 옮겨 이치마츠의 앞으로 다가가 쭈그려 앉아 이치마츠와 시선을 맞추었다

오소마츠의 눈이 촉촉히 반짝이며 정면의 이치마츠를 비추고 있었다.


이치마츠으자신을 쓰레기라고 하지마.. 나는 알고 있다고? 너는 작은 아기 새를 다시 둥지에 올려주려고 한 상냥한 녀석이라는 걸… 

쓰레기 따위가 아닌 걸, 나는 알고 있다고?”


눈물에 젖어 반짝이는 오소마츠의 눈을 보며 이치마츠가 , 보석 같아.’하고 감탄했다. 그리고 오소마츠의 말에 한번 더 감탄했다

이 녀석은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야? 나 같은 건, 쓰레기인데

처음 보는 오소마츠의 눈물에, 계속 듣고 싶었던 자신을 인정해주는 한 마디에, 오소마츠를 잃을 뻔했던 두려움에, 그리고 잃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이치마츠의 눈물이 흘러 내렸다.


영문을 모르겠어.”

이제 자신조차도 왜 울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치마츠의 중얼거림에 오소마츠가 눈물 맺힌 눈을 가늘게 하고 미소 지었다.

 


 

5.

어때?”

막 입학한 고등학교 교복(하복)을 보여주며 이치마츠가 물었다. 바위에 앉은 오소마츠와 여우 이 함께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변한 거야?”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멍청히 물어오는 오소마츠를 보며 이치마츠가 크게 한숨 쉬었다.


교복이 바뀌었잖아! 나 이제 고등학생! 16!”

후응~. 별로 변한 게 없는데 우리 꼬맹이 이치마츠군은~”

오소마츠가 장난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이치마츠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채 노려보았다.


아니, 키도 컸고! 목소리도 훨씬 낮아졌고!”

, 그러고 보니 목소리 변했구나.”

중학교 3학년, 또래보다 조금 늦은 변성기가 찾아온 이치마츠는 이제 어린 시절의 얇은 목소리가 아닌 제법 낮은 목소리로 변했다

아직 어린 티가 사라지지 않은 이치마츠의 얼굴을 보며 오소마츠는 우힛하고 웃고는 이치마츠에게 다가왔다.


그럼~ 고등학생이 된 이치마츠군에게 선물을 주지요~”

선물?”

오늘, 요괴들의 여름 축제가 열려. 흥미 있어?”

있어!!!”

오소마츠의 말에 이치마츠가 눈을 반짝이며 달려들었다. 요괴 축제라니. 재미있을 것 같다

형제들과 있을 때는 절대 드러내지 않는, 흥미진진하다는 얼굴로 이치마츠가 말했다.


그럼~ 오늘 밤 8시에 여기로 나와주세용~”

! 알겠어!!”

 

...


오소마츠, 유카타 입었네.”

저녁 8, 약속 장소에 가자 붉은 유카타를 입은 오소마츠가 손을 흔들었다

항상 쓰고 있거나 머리에 걸치고 있던 여우가면을 손에 들고 굴리고 있던 오소마츠가 웃으며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이치마츠군도~ 유카타네?”

, 이건. 할머니가 입고 가라고 하셔서…”

보랏빛의 유카타를 입을 이치마츠가 얼굴을 붉히며 중얼거렸다. 오소마츠는 큭큭하고 웃더니 이치마츠의 눈 앞에 흰 천을 내밀었다.


뭐야? 그거?”

~ 이건 말이지~”

오소마츠가 웃으며 흰 천을 길게 만들어 자신의 오른손목에 묶었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치마츠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뭐야? 오소마츠, 그런 취미?”

아니거든~? 뭐야, 그런 취미라는게.. , 이쪽은 네 손목에 묶어.”

오소마츠가 반대편 끝을 내밀자 이치마츠가 이내 흰 천의 용도를 눈치챘다

어릴 적 나뭇가지의 끝과 끝을 쥐고 숲 속을 걸었었다. 오늘은 이 흰 천이 나뭇가지 대신이라는 것이다

얌전히 오소마츠가 내민 흰 천을 왼손목에 묶자 오소마츠가 드물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잘 들어, 이치마츠. 오늘은 요괴들의 축제야. 그만큼 위험한 녀석들도 몰려든단 말이야

그러니까 너는 오늘 축제에서 마주치는 녀석들에게 절... 말을 걸어서는 안 돼. 알겠지?”

어째서?”

네가 인간이란 걸 눈치채면 먹으려 들 테니까.”

, 알겠어.”

오소마츠가 무서운 얼굴을 지으며 두 손을 구부려 짐승의 발톱 모양을 하고 말했다

이치마츠가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오소마츠가 히히하고 웃더니 손에 들고 있던 여우가면을 이치마츠에게 씌웠다.


일단 이거 쓰고 있으면 인간이라는 거 안 들키니까.”

.”

살짝 홍조가 핀 이치마츠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소마츠가 성큼 다가가 이치마츠의 머리에 쓰여진 여우 가면에 하고 입맞춤했다.


“.., , , , 뭐를!”

~ 가자. 이치마츠군!”

순식간에 벌개진 얼굴로 당황해 말을 더듬는 이치마츠를 씩 웃으며 바라보곤 손을 들어 장난스럽게 말한 오소마츠가 앞서 걸었다

너무 뜨거워 열이 나는 얼굴을 이치마츠가 여우 가면으로 가리고 오소마츠의 뒤를 따랐다. 조금 거리를 둔 두 사람 사이를 흰 천이 이어주고 있었다.


...

 

어떠냐!!”

~”

손에 든 사과사탕을 베어먹으며 이치마츠가 감탄했다

백발백중. 축제의 사격 놀이에 참가한 오소마츠가 능숙하게 앞에 놓인 타겟을 맞춰나갔다

하나하나 타겟을 전부 맞춰가는 오소마츠를 보며 주인이 조금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요괴들의 축제라고는 하나 축제 모습은 인간들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웃으며 이치마츠를 스쳐 지나가는 어린아이의 머리 위에 짐승의 귀와 엉덩이에 꼬리가 달려 있다는 정도.


모두 인간으로 변해서 즐기는 거야~”

좀 더 다양한 요괴의 모습을 기대했던 이치마츠가 두리번거리자 오소마츠가 웃으며 말했다

본디 요괴들만의 축제라는 것은 인간들의 것과 다르지만, 이 숲에서 열리는 축제는 인간들의 축제를 본 따 즐기는 것이라고 오소마츠가 설명했다

파는 음식도, 놀이판도 모두 마을에서 열리는 축제와 다르지 않았다

오소마츠와 함께 사격을 하고, 금붕어 건지기, 고리 던지기를 했다. 맛있는 빙수와 레모네, 야키소바도 사 먹었다.


형제와 있을 때보다 즐거워.’

우햐햐햐햐!” 하고 크게 웃는 오소마츠를 바라보며 이치마츠가 생각했다.

 

 


6.

축제를 실컷 즐긴 후, 이치마츠가 너무 시간이 늦기 전에 돌아가자고는 오소마츠를 따라 축제에서 조금 떨어진 숲 속으로 나왔다

축제를 빠져 나오자마자 오소마츠는 자신의 손목에 묶어두었던 흰 천을 풀었다

쭉 두 사람을 이어주고 있던 흰 천이 풀리는 것에 이유 모를 아쉬움을 느끼며 이치마츠도 자신의 손목을 감싸고 있는 천을 풀었다.


우히히! 재미있었다~.”

오소마츠가 앞서 걸으며 축제의 여운에 젖은 채 웃으며 말했다. 이치마츠도 고개를 끄덕이며 뒤따라 걸었다

이치마츠를 인간의 마을로 바래다주는 길, 오소마츠가 웬일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치마츠도 낯선 오소마츠의 침묵에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선선한 공기와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만이 들려왔다. 서서히 숲 입구가 가까워지자 이치마츠는 초조해졌다. 이대로 헤어지는 것은 싫다고 생각되었다.


저기, 오늘 콘은?”

?”

이치마츠의 물음에 오소마츠가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긁으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 그러고 보니, 오늘 콘을 못 봤네.”

“….”

여태 콘이 없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에 이치마츠가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오소마츠가 멋쩍게 웃으며 이 근처에 숨어 있을지도~?” 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치마츠도 따라 주변을 슬슬 둘러보는데 저 쪽에서 한 어린아이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슬쩍 오소마츠를 보았지만 오소마츠는 어린아이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여전히 콘을 찾고 있었다.


저 눈치 없는 놈

고개를 가로 저으며 혀를 찬 이치마츠가 어린 아이에게 다가갔다.


꼬마야, 길을 잃었니?”

“….”

?”

어린아이가 작게 말했다. 제대로 들리지 않아 이치마츠가 어린아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너의 영혼을 줘.”

“…!!!!”

순식간에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흉측한 지네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요괴가 이치마츠를 향해 길고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이치마츠가 재빨리 몸을 뒤로 피했지만, 어린아이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갔기에 요괴의 사정권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이대로 죽는구나 하고 두려움에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날카로운 손톱에 시선을 돌린 순간,


위험해!!!!”

오소마츠의 외침과 함께 이치마츠의 몸이 뒤로 당겨졌다. 그리고 뒤로 당겨진 이치마츠와 교대하듯 콘이 앞으로 뛰어 올랐다

요괴에게로 달려든 콘과 요괴는 한 덩어리로 엉켜 숲 속으로 사라졌다

풀 위에 풀썩 주저앉은 이치마츠가 멍하니 요괴가 사라진 숲 속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강한 힘으로 당겨진 팔을 보았다.


“…!!!”

몰려오는 불안에 고개를 홱 들어 뒤돌자 오소마츠가 슬프게 웃고 있었다

이치마츠를 붙잡았던 오소마츠의 손이 빛을 내며 흩어지고 있었다

서서히 반딧불이의 불처럼 은은하고 아름답게 빛나며 오소마츠의 손이 사라지고 있었다.


“…, 오소마츠…”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오소마츠를 올려다보자 오소마츠가 씩 웃더니 두 팔을 벌렸다.


이리 와, 이치마츠.’


소리가 되지 못한 오소마츠의 말이 이치마츠에게 전해졌다. 땅을 박차고 오소마츠에게 뛰어들어 오소마츠의 등에 팔을 둘렀다

일순 오소마츠의 피부와 온기가 느껴지고, 이치마츠는 수많은 작은 불빛에 휩싸였다

이치마츠의 품엔 오소마츠의 붉은 유카타만이 남고, 하늘 높이로 수많은 불빛이 올라갔다.


“…, 우아아아아아앙!!!! , 흐욱!!! , 아아아아!!!”

온기가 남아있는 붉은 유카타를 품에 안고, 이치마츠가 울부짖었다

너무나 허무하게 맞이한 오소마츠와의 이별에 울부짖었다.

 

 ...


이치마츠여.”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는 이치마츠를 부르는 낯선 목소리에 이치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여우 콘이 이치마츠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귀여운 외양과 정반대의 근엄한 목소리가 울렸다.


울지 말거라. 오소마츠는, 내 아이는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웃었으니.”

“…”

오소마츠를 행복하게 해주어 고맙구나.”

근엄하지만 부드러운 음성이 이치마츠를 달랬다

말을 마친 콘이 훌쩍 뒤돌아 이치마츠를 떠났다. 콘이 사라지고 이치마츠가 붉은 유카타를 안아 든 채, 일어섰다

여전히 눈물은 멈추지 않고 얼굴을 적셨다. 한걸음 한걸음 떨어지지 않는 발을 옮겨 이치마츠는 집으로 향했다.


 

그 후로 매년 이치마츠는 시골로 내려와 오소마츠와 함께 거닐었던 숲 속을 홀로 돌아다녔다.



 

7.

올해도 휴가 받아야 하는데.’

멍하니 단상에 놓인 의자에 앉아 이치마츠가 생각했다

성인이 되어 직장에 다녀 여름이 되면 그 숲이 있는 시골에 가기 위해서는 휴가를 받아야 했다

적당히 말 꺼낼 타이밍을 생각하며 눈 앞에 검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내려다보았다

매년 보는 입학식. 매년 앳된 얼굴의 소년들이 이곳에 들어온다. 오소마츠와 축제에 갔었을 때를 기억하며 이치마츠가 쓰게 웃었다.

 


후루룩하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를 입에 대고 마셨다

입학식인 오늘, 설마 양호실에 찾아오는 바보는 없겠지만 이치마츠는 오후 3시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다

이치마츠 특유의 나른한 얼굴로 턱을 괴고 창 밖을 쳐다보았다. 입학식은 오전에 끝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운동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손에 든 컵을 다시 입에 가져간 순간, ‘콩콩하고 양호실 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울렸다.


대체 입학식도 끝났는데 누구야…’

얼굴을 찡그리고 평화로운 오후를 방해하는 얼뜨기를 욕하며 이치마츠가 ~.” 하고 대답했다

드르륵하고 문이 열리고 양호실 안으로 학생 한 명이 들어왔다

반듯하게 각이 잡힌 교복과 가슴에 달린 붉은 리본으로 보아 오늘 입학한 신입생이 분명했다

재학생도 아니고 신입생의 등장에 이치마츠가 더욱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일?”

이치마츠의 물음에 소년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엔 내가 널 만나러 왔어. 다시 함께 놀자, 이치마츠.”





* 여우 '콘'은 오소마츠의 영혼을 이승에 붙잡아 놓은 '산신'입니다. 여우의 모습으로 둔갑해 오소마츠를 지켜왔습니다.

* 원작의 결말과는 달라졌지만, 저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엔딩이 좋습니다ㅎ.

* 고등학교에 입학한 오소마츠는 16세, 이치마츠는 33세의 양호선생님입니다. 나이차 커플이네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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