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늦었네요... 원래 주말 안에 올리려 했는데..ㅠㅠ
* 동물마츠입니다!
* 공미포 19,664자
* 그렇게 길지도 않은데 주말 출근으로 시간이 걸리고 말았네요..ㅠ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딩동- 하고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거실에 모여 있던 육둥이의 시선이 현관으로 향했다.
다시 한번 울린 딩동-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쥬시마츠가 쏜살같이 달려가 현관을 벌컥 열었다.
현관에 서 있던 의외의 인물에 놀란 쥬시마츠가 활짝 웃으며 외쳤다.
“데카판 박사님!!”
쥬시마츠의 외침에 호기심이 솟아난 육둥이가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너도나도 현관에 몰려갔다.
나란히 서 있는 여섯 명의 똑같은 얼굴을 쭉- 둘러본 데카판이 미소를 지으며 들고 있던 커다란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게 뭠까아~? 선물!? 선물임까아~?!”
크게 외치며 상자를 툭툭 건드려보는 쥬시마츠를 본 데카판이 입을 열었다.
“호에호에-, 실은 사정이 있어서 잠시 이 녀석들을 맡아줬으면 한다요.”
“이 녀석들?”
데카판의 말에 고개를 기울인 오소마츠가 몸을 굽히고 상자를 열었다. 어두운 상자 안에 환한 빛이 비치고, 작은 몸집의 짐승들이 고개를 들었다.
약 3초간의 정적 후, 상자 안에 있던 짐승들이 눈을 깜빡이며 놀란 얼굴을 한 오소마츠에게 달려들었다.
“우왁-!!!”
“큐~!”
“가오-!”
“메-!”
“냐-!”
“왕!”
“뀨-!”
적갈색의 줄무늬를 가진 래서 판다는 오소마츠의 얼굴에, 호랑이는 어깨에, 양과 고양이는 양팔에, 개와 토끼는 양다리에 달라 붙어 복도 가득 울음소리를 채웠다.
온몸을 작은 짐승들에게 장악당한 오소마츠는 물론이고, 눈앞의 광경에 동생들도 멍청한 얼굴을 지울 수 없었다.
“푸하!!!” 하고 숨을 몰아쉬며 얼굴에 붙어 있던 판다를 떼어낸 오소마츠가 자기를 똑바로 보며 “큐-, 큐이-!” 하고 울어대는 판다의 얼굴에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오소마츠 자신의 얼굴과 너무나 닮은 짐승들은 마치 어린아이가 짐승의 탈을 덮어쓰고 있는 것 같았다.
“에!? 데, 데카판! 이 녀석들은 대체…!!”
놀라 얼어버린 오소마츠를 대신해 쵸로마츠가 데카판을 향해 외쳤다.
데카판은 육둥이의 반응이 이해가 간다는 얼굴로 끄덕이더니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호에호에-, 실은 얼마 전 오소마츠 군에게 받은 세포와 DNA로 키메라를 만드는 실험을 했다요. 인간의 세포와 동물의 세포를 융합하는 실험이었는데,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이 아이들이다요.”
““““““하아?!?!?!”””””
데카판의 말에 육둥이가 일제히 입을 크게 벌리고 외쳤다.
어느새 오소마츠의 품에 안긴 동물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꼬리를 흔들어댔다.
“에? 자, 잠깐. 오소마츠 형의 세포를 받았다는 건 무슨 말이야?”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토도마츠가 손을 들어 묻자, 데카판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세포를 받는 대신에 사례는 했다요.”
“…어이!! 이 망할 장남!!! 무슨 짓을 한 거야!?”
“아…, 얼마 전에 먹을 거 왕창 사 왔던 그땐가….”
데카판의 말에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노려보며 외치자, 그 옆에 있던 이치마츠가 기억을 떠올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쵸로마츠의 외침에 눈도 깜짝하지 않은 오소마츠가 작게 혀를 내빼며 “에헷-!” 하고 웃었다.
오소마츠의 대답에 쵸로마츠의 이마에 새로운 핏줄이 솟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오소마츠의 멱살을 붙잡아 짤짤 흔들어대는 쵸로마츠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 토도마츠가 다시 데카판에게 물었다.
“그래서? 왜 이 녀석들을 우리 집에 데려온 거야?”
“…그게, 원래는 하나의 키메라가 될 예정이었던 세포가 분화해서 여섯 마리가 되고 말았다요. 게다가 사람을 잘 따르지도 않고, 오늘 아침엔 실험실을 완전 엉망으로 만들어놓았다요. 간신히 붙잡았지만, 울음을 멈추지 않아 오소마츠 군의 사진을 보여주자 바로 울음을 그치고 얌전해졌다요. 아무래도 오소마츠 군을 ‘엄마’로 인식하는 것 같다요.”
““““““…하?””””””
데카판의 말에 다시 육둥이 전원이 얼빠진 얼굴로 변했다.
뭐라 말을 잇지 못하는 육둥이를 보며 빙긋- 미소를 지은 데카판이 뒤에 서 있던 메이드다용에게 손짓했다.
다용이 들고 있던 큰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손을 탁탁- 털어낸 데카판이 미소를 지우지 않고 말했다.
“그러니까 실험실을 수리하는 동안 부탁한다요. 물론 돌봐주는 데 필요한 양육비는 지원한다요. 이 아이들은 말은 못해도 10살 정도의 지능은 있다요. 그리고 키메라이니 밖에 데리고 가면 안 된다요! 그럼 잘 부탁한다요!!”
“부탁한다용~!”
제 할 말을 마친 데카판은 새하얗게 백화된 육둥이를 남겨두고 현관을 나섰다.
멀어지는 발소리에 재빨리 현실로 돌아온 토도마츠와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의 팔에 안긴 동물들을 바라보았다.
““거짓말이지…?””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담긴 두 사람의 중얼거림에 오소마츠가 동의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2.
“오소마츠 형이 알아서 해. 우리는 손 안 댈 거야.”
냉정하게 내뱉는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얼굴을 구겼다.
“뭐~?!” 하고 반발하는 오소마츠를 싸늘하게 바라본 쵸로마츠가 고개를 팩 돌렸다.
이 모든 사태가 오소마츠가 제공한 세포에서 일어난 것임은 당연했다.
“그나저나, 이 녀석들 이름 지어 줘야 하는 거 아냐? 뭐라고 부를 거야?”
투덕거리는 푸른 줄무늬의 호랑이와 보라색 고양이를 스마트폰으로 찍던 토도마츠가 물었다.
오소마츠는 자신의 무릎에 앉아있는 동물들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이 너구리는 오소, 호랑이는 카라, 양은 쵸로, 고양이는 이치, 개는 쥬시, 토끼는 토도.”
“너무 적당히 짓는 거 아냐?! 좀 더 생각하고 지어! 이 외도!! 그리고 그거 너구리가 아니고 레서 판다!!”
토도마츠의 태클에 맞춰 ‘오소’라 불린 레서 판다도 손을 들어 항의하듯 “큐!” 하고 외쳤다.
둘을 보며 “헤-.” 하고 성의 없는 대답을 한 오소마츠가 다시금 푹-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로 이 녀석들 다 내가 봐??”
“당연하잖아. 오소마츠 형이 원인이니까. 그리고 ‘엄마~’ 잖아? 제대로 책임지라고.”
오소마츠의 불평에 토도마츠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부- 하고 볼을 부풀린 오소마츠가 가만히 품 안의 동물들을 보다, 동물들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일단, 지금은 화장실.”
“읏챠-” 하는 시대착오적인 신음과 함께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가 거실을 나왔다.
저벅저벅 복도에 울리는 오소마츠의 발소리를 따라 두다다다닥-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 에?! 뭐, 뭐야?!”
화장실 앞까지 오소마츠를 따라 나온 동물들을 보며 오소마츠가 당황해 외쳤다.
거실에서 빼꼼 얼굴만 내민 동생들이 화장실 앞에 펼쳐진 진풍경을 보며 말했다.
“엄마로 인식한다잖아.”
“떨어지고 싶지 않은가 보지.”
“아하하! 오소마츠 형 엄마!!”
“훗, 리틀 비스트들의 마미라...”
“닥쳐, 개똥마츠.”
저마다 한마디씩 툭 던지는 동생들을 살며시 노려본 오소마츠가 곤란한 얼굴로 외쳤다.
“그런 말 할 시간에 이 녀석들 좀 붙잡아 봐! 나 급하다고!!”
발을 통통- 구르는 오소마츠의 다급한 외침에 “쯧-” 하고 혀를 찬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오소마츠를 올려다보는 동물들을 팔에 안았다.
동물들을 안아 거실로 들어가는 동생들을 보며 오소마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거실에 들어와 앉은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얌전히 팔에 안겨있는 동물들을 바라보았다.
사람을 따르지 않는다는 데카판의 말과 달리 동물들은 얌전했다.
이치마츠와 쥬시마츠, 카라마츠도 처음 보는 키메라의 모습에 호기심을 지울 수 없었다.
동물들 가까이 다가간 세 사람은 유심히 동물들의 모습을 살폈다.
자신들의 무릎 정도 밖에 오지 않는 작은 동물들은 정말로 자신들과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동물의 탈을 뒤집어쓴 것 같은 외견과 달리 머리 위에 달린 귀와 꼬리는 진짜 동물의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유심히 동물들을 살피는 동생들 뒤로 오소마츠의 발소리가 울렸다.
“아, 오소마츠 형. 다 끝났…”
“미안, 토도마츠. 횽아, 오늘 파칭코 가지 않으면 죽을병에 걸렸어.”
“하아!?”
“미안!!”
쾅! 소리와 함께 닫힌 현관을 본 동생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저 망할 장남!!”
“역시 나 이상의 쓰레기….”
“오소마츠 형, 아웃!!”
황당한 얼굴로 외치는 토도마츠를 따라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어이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쵸, 쵸로마츠….”
멍청히 현관을 보던 쵸로마츠의 팔에 안긴 동물들의 이변을 눈치챈 카라마츠가 조용히 쵸로마츠를 불렀다.
“응?” 하고 카라마츠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팔에 있는 동물들을 본 쵸로마츠의 호흡이 멈췄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오소마츠가 사라진 현관을 응시하던 동물들의 꼬리가 바쁘게 흔들렸다.
“야호~! 카리스마 레전드 장남님이 돌아오셨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밝은 목소리로 외친 오소마츠의 인사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집 안 가득한 침묵에 오소마츠가 웃는 얼굴을 지우고 눈을 크게 떴다.
“에…?”
눈 앞에 펼쳐진 집의 모습에 오소마츠가 한심한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거실의 장지문은 엉망이 되어 하나는 복도에 쓰러져 있고, 다른 한쪽엔 동생 하나가 박혀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동생의 몸무게를 지탱하는 장지문 너머 피바다가 된 거실엔 동생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구겨 신은 신발을 벗고 복도에 발을 올린 오소마츠가 장지문에 박혀있는 동생을 불렀다.
“어이, 카라마츠. 괜찮아…읍?!!!”
말을 끝내기도 전에 오소마츠의 눈앞이 새까매졌다.
코가 막혀 호흡할 수 없게 된 오소마츠가 팔을 휘두르며 얼굴에 달라붙은 방해물을 떼어냈다.
“큐-! 큐-! 큐이!!”
“에? 오소?”
큐-, 큐- 하고 울며 눈물을 흘리는 래서 판다의 얼굴에 당황한 오소마츠가 상황을 다 파악하기도 전에, 남은 동물들이 일제히 거실에서 뛰쳐나와 오소마츠의 팔다리에 달라붙었다.
아침에 데카판이 왔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 된 오소마츠가 자신의 팔다리에 붙어 울부짖는 동물들을 보며 엉거주춤하게 섰다.
“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발톱 자국과 핏자국이 남은 거실을 보며 중얼거린 오소마츠가 좀비처럼 천천히 일어나는 동생들을 보며 숨을 삼켰다.
“토, 토도마츠?”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오소마츠의 어깨를 꽉 붙잡은 토도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식은땀을 흘렸다.
강하게 붙잡힌 어깨에서 올라오는 아픔에 얼굴을 찡그린 오소마츠의 옆에 토도마츠와 마찬가지로 피칠갑을 한 쵸로마츠가 섰다.
“오소마츠 형.”
“네, 넵!!”
쵸로마츠의 낮은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사색이 된 재빨리 대답했다.
핏빛이 된 얼굴로 살벌한 미소를 띄운 토도마츠와 쵸로마츠가 간곡히 말했다.
““두 번 다시 이 녀석들 놔두고 외출하지 마.””
“헤?”
““대답!!!””
“아! 넵!!”
거세게 얼굴을 끄덕이는 오소마츠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오소마츠와 함께 거실을 치우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오소마츠가 자신들을 놔두고 나갔다는 것을 깨달은 동물들은 한참 동안 오소마츠가 사라진 현관을 바라보았다.
옆에서 쵸로마츠나 토도마츠가 말을 걸어도 미동도 하지 않고 현관을 보던 동물들은 곧 이성을 잃었다.
그제야 비로소 왜 데카판의 실험실이 엉망이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레서 판다 오소는 끊임없이 “큐-, 큐우~!” 하며 울기 시작해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호랑이 카라는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손을 마구잡이로 물더니 곧 카라마츠를 쫓아다니며 물어뜯기 시작했다.
양 쵸로는 거실의 벽을 제 뿔로 들이박기 시작하고, 고양이 이치는 발작이라도 일으킨 것처럼 빠른 속도로 온 거실 안을 돌아다녔다.
이치에게 전염되었는지 개 쥬시도 온 거실을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토끼 토도는 끊임없이 바닥에 발을 구르며 여기저기로 높이 점프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거실은 엉망이 되고 TV며, 상이며, 벽이며 할 것 없이 모두 엉망이 되고 말았다.
“헤에~ 이 녀석들이 그랬다고?”
어느 정도 정돈된 거실 한편에 앉은 오소마츠가 자신의 무릎 위에서 잠든 동물들을 쓰다듬으며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찌릿- 오소마츠를 노려본 쵸로마츠가 “그 광경을 못 봐서 그래!” 하고 외쳤다.
“마치 스톰 같은 리틀 비스트였다.”
카라에게 물려 팔 곳곳에 반창고를 붙인 카라마츠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동물들의 발광에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이치마츠는 거실 구석에 주저앉아 평소보다 한층 더 짙은 검은 오라를 마구 내뿜고 있었다.
그나마 쥬시마츠가 이치마츠의 옆에서 달래주고 있어 다행이었다.
한숨을 내쉬며 “그, 그만해…. 위험해….” 하고 중얼거리는 이치마츠를 본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절! 대! 외출하지 마. 당분간 외출 금지!!”
“에-?!”
“금지!!”
쵸로마츠의 단호한 외침에 오소마츠가 푹- 고개를 떨궜다.
툴툴거리는 오소마츠를 무시하고, 오소마츠의 무릎에서 세상모르고 잠든 동물들을 보며 동생들이 꿀꺽- 침을 삼켰다.
앞으로 마츠노가에 몰아닥칠 파란을 동생들은 모두 예감하고 있었다.
3.
달그락거리는 자기 소리와 함께 바쁘게 움직이는 젓가락을 따라 동물들의 시선이 움직였다.
잠버릇으로 뻗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우물우물 밥을 씹는 오소마츠 옆에 딱 달라붙은 동물들은 가만히 오소마츠의 젓가락을 응시했다.
“오소마츠 형, 그 녀석들 밥은?”
“아-, 사료 주면 된다고 하던데.”
“흐응~”
“근데 그냥 밥 줘도 상관은 없다고.”
토도마츠의 물음에 오소마츠가 멍한 얼굴로 대답했다.
키메라인 동물들은 반은 동물, 반은 인간이라는 특수한 신체로, 데카판이 직접 만든 전용 사료를 먹여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반은 인간인 탓에 사람이 먹는 보통의 음식을 줘도 상관은 없다고, 어젯밤 데카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떠올린 오소마츠가 빈 밥그릇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백수 1호~, 이거 아가들한테 주렴~”
오소마츠가 빈 밥그릇을 들고 일어나려는 찰나, 부엌에서 나온 마츠요가 어린이용 접시에 담긴 오므라이스를 들고 거실에 들어왔다.
작은 그릇에 담겨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므라이스를 본 오소마츠가 눈을 크게 뜨고 “이게 뭐야?” 하고 물었다.
“아가들 밥.”
간단하게 대답한 마츠요가 좁은 식탁에 널린 빈 그릇을 치우고 여섯 개의 작은 접시를 내려놓았다.
동물들에게 작은 숟가락을 쥐여준 마츠요가 빙긋 웃으며 동물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어젯밤, 일에서 돌아온 부모에게 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하자 마츠요와 마츠조는 별 무리 없이 동물들을 받아들였다.
“손자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직접 만들어 올 줄은 몰랐네.”
담담하게 동물들의 어리광을 받아주며 던진 마츠요의 말에 오소마츠가 마시던 보리차를 뿜었다.
“아니, 내가 낳은 거 아니니까!!!” 하고 당황해 외치는 오소마츠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마츠요와 마츠조는 그저 눈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동물들을 예뻐했다.
“제대로 먹여, 엄마~”
“엄마, 제발….”
마츠요에게 ‘엄마’라고 불린 오소마츠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마츠요의 무언의 협박에 푹- 한숨을 쉰 오소마츠가 식탁에 앉아 서툰 손놀림으로 오므라이스를 먹는 동물들을 바라보았다.
주먹 쥔 손에 간신히 잡혀있는 숟가락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숟가락을 힘겹게 입으로 가져가는 동물들을 본 오소마츠가 몸을 굽혀 바닥에 있는 티슈 상자로 손을 뻗었다.
“다 묻었다, 얀마.”
“큐-!”
티슈 한 장을 뽑아 오소의 볼에 묻은 케첩을 닦아낸 오소마츠가 오소의 손에 들린 작은 숟가락을 건네받아 오므라이스를 펐다.
“자, 아앙~” 하고 입을 벌린 오소마츠를 따라 오소의 작은 입이 벌어졌다.
숟가락을 입에 넣어주자 앙- 입을 다물고 턱을 움직이는 오소의 모습을, 동생들 모두 젓가락을 멈추고 넋 놓고 바라보았다.
얼굴 가득 미소를 피우고 맛있게 오므라이스를 먹는 오소에게 다시 숟가락을 돌려준 오소마츠의 옷깃을 토도가 잡아당겼다.
“응? 너도?”
“뀨!”
떡- 하니 자신의 숟가락을 내미는 토도를 본 오소마츠가 “어쩔 수 없네-” 하고 웃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일일이 동물들의 밥을 챙겨주고 입가에 묻은 밥풀을 닦아주는 오소마츠를 본 동생들은 식사도 잊어버리고 망연히 오소마츠를 응시하고 있었다.
‘고, 고귀하다….’
눈물을 흘리며 상 아래에 있는 손으로 주먹을 쥐고 파이팅하는 카라마츠에 이어 쵸로마츠도 얼굴을 붉히고 눈썹을 찌푸렸다.
‘‘겁나 귀엽네에에-!!!’’
1초라도 놓칠 수 없다는 듯 오소마츠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도 숨을 삼키며 속으로 외쳤다.
토도마츠는 어느새 꺼낸 스마트폰을 들어 사진을 연사하고 있었다.
쥬시마츠도 과도하게 반짝거리는 눈으로 오소마츠를 보고 있었다.
얼마나 쳐다봤는지 오소마츠와 동물들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동생들의 밥그릇은 여전히 가득 차 있었다.
흰색의 담요가 펄럭이며 바닥에 깔렸다.
장롱에서 적당한 두께의 이불을 꺼낸 오소마츠가 담요 위에 눕자마자 그 양 옆에 동물들이 누웠다.
“자, 코- 자자~”
“큐!”
“가우!”
“메!!”
“냥!”
“멍멍!”
“뀨이!”
오소마츠의 말에 대답하듯 동물들이 따라 울고는 눈을 감았다.
오전 늦게 일어나, 조금 전 막 점심을 끝낸 참이건만 낮잠을 자겠다고 누운 오소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잠이 와?”
“횽아는 머리만 붙이면 3초 안에 잘 수 있어!”
“노X구냐?!”
오소마츠의 말에 태클을 걸며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잡지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도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구직잡지를 이리저리 뒤지던 쵸로마츠가 문득 잡지 너머로 시선을 옮겨 맞은편에 앉은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항상 점심이 끝나면 제 할 일을 찾아 외출하던 동생이 오늘은 모두 집 안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쵸로마츠의 맞은편에 앉은 이치마츠는 조용히 방 중앙에 이불을 깔고 누운 오소마츠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거실에 비하면 좁은 2층 방에 오소마츠가 이불을 깔고 누워 더 좁아진 방 안에 진득이 들어와 있는 네 명의 형제들을 쭉 둘러본 쵸로마츠가 기가 찬 코웃음을 흘렸다.
“다들 안 나가?”
쵸로마츠의 물음에 동생들의 몸이 일제히 움찔거렸다.
창가에 앉아 부드러운 시선으로 오소마츠를 보고 있었던 카라마츠가 기계마냥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고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오, 오늘은 비가 올 것 같아서 말이지.”
“오늘 날씨 완전 맑음이라는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카라마츠.”
열린 창밖에 펼쳐진 높고 푸른 하늘을 보며 쵸로마츠가 말하자 카라마츠가 입을 다물고 쵸로마츠의 시선을 피했다.
날카롭게 카라마츠를 보던 쵸로마츠가 고개를 돌려 이번엔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이치마츠, 항상 이 시간에 고양이 보러 가지 않았어?”
“…오, 오늘은 안 가도 돼.”
“정말로…?”
“…으, 응…. 아마도….”
“아마도…?”
“….”
쵸로마츠의 집요한 물음에 이치마츠도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이어 쵸로마츠의 시선을 받은 쥬시마츠도 초점이 맞지 않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쥬시마츠에게 뭐라 말하려던 쵸로마츠가 문득 떠오른 기억에 입을 다물고 토도마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토도마츠.”
“뭐야?”
녹색 소파에 앉아 잠든 오소마츠의 얼굴을 찍고 있던 토도마츠가 슬쩍 고개만 돌려 쵸로마츠를 바라보았다.
“넌 오늘 약속 없어?”
“없는데~? 쵸로마츠 형이야말로 오늘은 헬로워크나 라이브 안 가?”
“오늘은 조금 쉬려고.”
“후응~”
오소마츠를 찍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토도마츠가 쵸로마츠를 빤히 바라보았다.
토도마츠의 시선을 피해 잡지에 눈을 돌린 쵸로마츠가 토도마츠를 향해 원망을 담아 (속으로) 외쳤다.
‘망할 드라이 몬스터 자식!!’
데카판에게서 동물들을 맡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처음엔 오소마츠와 동물들의 모습에 매일매일 행복했던 동생들은 날이 지날수록 점차 지쳐갔다.
“오소마츠 형! 또 내…”
“캬앗!!!”
“….”
사라진 마른 멸치의 행방을 추궁하려던 이치마츠를 향해 잔뜩 털을 곤두세운 이치의 경계에 이치마츠가 슬슬 뒷걸음질 쳤다.
목을 울리며 이치마츠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위협하는 고양이 이치의 머리를 오소마츠가 부드럽게 쓰다듬자, 날카로운 울음소리는 금세 골골골- 하는 울음소리로 바뀌었다.
“미안~ 너무 맛있어서…. 이치도 맛있었지~?”
“냐-”
“…그래….”
오소마츠의 가벼운 사과에 이치마츠가 고개를 숙이고 거실 저편으로 걸어가 틀어박혔다.
이치마츠에게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동생들은 ‘또냐!’ 하고 하나같이 외쳤다.
동물들은 동생들이 오소마츠에게 다가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항상 오소마츠에게 붙어있으면서 누가 오소마츠에게 다가가려고 하면 눈에 불을 켜고 위협하며 화를 냈다.
눈앞에 귀여운 천사들이 있는데도 다가갈 수 없는 ‘눈앞의 떡’ 상황이 일주일이나 이어지자, 동생들의 인내심은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아, 토도마츠. 잠깐 스마트폰 좀 빌려줘!”
“스마트폰? 왜?”
오소마츠의 말에 토도마츠가 미심쩍다는 얼굴로 오소마츠를 찍던 것을 멈추고 물었다.
“이히히-” 하고 천진난만하게 웃은 오소마츠가 “경마 방송 좀 보게.” 하고 대답했다.
오소마츠의 말에 푹- 한숨을 내쉰 토도마츠가 오소마츠에게 스마트폰을 건네주러 가까이 다가가자, 오소마츠의 옆에 있던 토끼 토도가 인상을 쓰고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토끼는 위험이 닥치거나 기분이 좋지 않으면 땅에 발을 굴러 신호를 보내는 버릇이 있었다.
쾅쾅쾅쾅쾅! 하고 빠르고 크게 바닥이 울렸다.
거세게 발을 구르는 토도를 보며 쯧- 하고 혀를 찬 토도마츠가 스마트폰을 재빨리 건네주고 오소마츠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멀어지는 토도마츠를 노려본 토도가 발을 멈추자 토도마츠의 입에서 절로 큰 한숨이 나왔다.
이런 식으로 동물들의 지속적인 방해에 토도마츠는 물론이고 동생들 전원은 오소마츠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예외가 있다면 어머니 마츠요와 아버지 마츠조뿐이었다.
부모님인 두 사람은 오소마츠에게 가까이 다가가도 동물들이 방해하거나 위협하지 않았다.
한숨과 함께 바닥에 무릎을 모으고 앉은 토도마츠에게 다시금 형제들의 동정 어린 시선이 꽂혔다.
“오소마츠 형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쥬시마츠의 씩씩한 외침이 온 집안에 울렸다.
외출에서 돌아온 쥬시마츠가 흙투성이가 된 옷을 대충 털고 오소마츠에게 두 팔을 벌리고 달려갔지만, 곧 왕왕 짖는 쥬시에 의해 제지되고 말았다.
“엣….”
“크르르릉-, 왕! 왕!”
쥬시마츠를 보며 으르렁거리는 쥬시의 모습에 쥬시마츠가 입을 꾹- 다물고 이치마츠 옆에 다가가 쭈그려 앉았다.
“…어서 와, 쥬시마츠.”
“응, 다녀왔어. 이치마츠 형아.”
음침한 기운을 내뿜는 두 동생을 보며 난처한 웃음을 지은 오소마츠가 아직도 씩씩거리는 쥬시를 품에 안았다.
“자, 자-. 착하지~”
쥬시를 달래는 오소마츠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쥬시는 바로 헥헥거리며 꼬리를 흔들곤 오소마츠의 얼굴을 핥았다.
마치 자기 아이를 어르듯 자애로운 오소마츠의 표정과 그 품에 안겨 즐겁게 웃으며 오소마츠의 얼굴을 핥는 쥬시의 모습을 빤히 바라본 동생들은 그저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고귀하다…’’’’’
천국이 있다면 바로 지금 이 눈앞에 있는 이곳이 아닐까, 생각하며 오소마츠와 동물들의 귀여움에 몸부림칠수록 오소마츠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이미 잔뜩 풀이 죽은 채, 거실 구석에 정착한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를 뒤로 하고,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카라마츠에게 은근한 눈길을 보냈다.
거울을 보던 카라마츠도 둘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고 슬며시 몸을 일으켜 동물들과 카드놀이를 하는 오소마츠에게 다가갔다.
“…형님.”
“응?”
오소마츠와 1m 정도 거리를 두고,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불렀다.
카라마츠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오소마츠와 동시에 동물들의 싸늘한 눈초리가 카라마츠에게 박혔다.
애써 동물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헛기침을 한 카라마츠가 말을 이었다.
“그…, 리틀 비스트에게 훈련이라도 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응? 훈련? 왜?”
“아니, 형님에게 항상 붙어있는 것은 리틀 비스트에게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형님도 이대로는 계속 외출하지 못하니 답답하지 않은가?”
손가락을 들고 “빙고오-?” 하고 총을 쏘는 시늉을 하는 카라마츠를 본 오소마츠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배를 잡고 “아~ 아파! 갈비뼈 부러진다~!” 하고 장난스럽게 신음하자, 호랑이 카라가 득달같이 카라마츠에게 달려가 그 손가락을 물었다.
“아우치!!!”
“크앙-!!!”
카라마츠의 비명에 오소마츠가 재빨리 카라를 붙잡았다.
날카로운 맹수의 이빨에 물려 피가 철철 흐르는 손가락을 쥔 카라마츠가 울상이 된 얼굴로 외쳤다.
“역시 훈련이 필요하다!!”
“아, 응…. 무는 건 좀 말려야겠네….”
카라마츠의 울먹임에 오소마츠가 코 밑을 문지르며 멋쩍게 웃었다.
카라를 들어 올려 시선을 맞춘 오소마츠가 마츠조의 얼굴을 따라 엄한 표정을 짓고 “카라! 안 돼!! 물면, 떽!” 하고 외쳤다.
제대로 오소마츠의 말을 알아들은 건지 카라의 귀와 꼬리가 축 늘어졌다.
“갸우….” 하고 힘없는 울음을 내는 카라의 모습에 오소마츠는 금세 엄한 표정을 풀고 카라를 품에 안아 토닥여 주었다.
“반성하는 거지? 앞으로 그럼 안 돼~?”
“갸우-”
눈물을 흘리며 눈앞의 천국을 보는 카라마츠를 제치고 참지 못한 쵸로마츠가 다가왔다.
“아니 그거 절대 혼내는 거 아니니까!! 저 녀석 아직도 카라마츠 노려보고 있고!!!”
쵸로마츠의 태클이 끝나자마자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이거론 안 돼?” 하고 묻는 오소마츠에게 쵸로마츠가 “당연히 안 되지!!” 하고 외침과 동시에 다닥다닥- 하고 발이 울렸다.
“쿠헉!?”
“엑!?”
오소마츠에게 호통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오소마츠 곁에 앉아있던 양 쵸로가 달려들어 쵸로마츠의 배에 뿔을 받았다.
아직 어린 양이어도 단단한 뿔에 받힌 고통은 엄청났다.
배를 잡고 쓰러진 쵸로마츠를 보며 당황한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에게 달려가자 레서 판다 오소와 다른 동물들이 일제히 울부짖기 시작했다.
“큐우~!! 큐!!”
“가우-!”
“냐!!”
“멍멍!”
“뀨!”
동물들의 울음소리에 쵸로마츠에게 달려가던 발을 멈춘 오소마츠가 미안한 얼굴로 쵸로마츠를 보며 동물들의 곁으로 돌아갔다.
“괜찮아? 쵸로마츠으~”
“괘, 괜찮아….”
울음을 멈춘 동물들을 품에 안고 걱정스럽게 묻는 오소마츠에게 간신히 일어난 쵸로마츠가 대답했다.
후들거리는 팔로 몸을 지탱하고 일어난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보며 단호히 말했다.
“훈련! 꼭 시켜…!”
“넵….”
귀신 같은 얼굴로 낮게 읊는 쵸로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4.
오소마츠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텅 빈방 안. 동물들이 모두 옹기종기 모여 머리를 맞댔다.
“좋아! 오늘의 회의를 시작한다!”
“““““오~!!”””””
오소의 외침을 따라 동물들이 일제히 손을 들고 울었다.
동물들 딴에는 대화를 하고 있겠지만, 다른 이가 보면 영락없는 브레멘 음악대와 같은 광경이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제 크기에 꼭 맞는 안경을 손가락으로 올린 오소가 다시 외쳤다.
“오늘도 제대로 엄마를 지켰나?!”
오소의 물음에 동물들이 모두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물론이다!! 오늘도 엄마를 항상 아프게 하는 파란 녀석에게서 제대로 엄마를 지켰다고!!”
“나도! 항상 엄마한테 소리치는 나쁜 풀 같은 녀석을 때려줬어!!”
“보라색의 음침한 녀석이 엄마한테 못 가게 막았어….”
“나도! 나도! 시끄러운 노란 거 멀리 쫓아냈어!!”
“귀여운척하는 분홍 녀석도!”
저마다 동생들을 막아낸 이야기를 늘어놓는 동물들을 보는 오소의 입가에 기쁜 미소가 걸렸다.
“응! 모두 잘했어! 엄마의 동생이라지만 엄마를 나쁜 눈으로 보는 녀석들에게서 반드시 엄마를 지키자!”
“““““오~!!”””””
오소의 말에 동물들 모두 빠짐없이 동의하며 손을 높이 들고 다짐했다.
5.
“어휴-….”
절로 나오는 한숨을 삼키지 못하고 내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오소마츠 형에게 가까이 가지 못한지 벌써 일주일이 넘게 흘렀다.
오소마츠 형과 동물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며칠 동안 외출하지 않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밥을 챙겨주지 못한 고양이들의 상태가 걱정되어 결국 오늘 집을 나섰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인지 동물들이 온 이후로 오랜만에 오소마츠 형을 남겨두고 모두 외출했다.
사료가 담겨 있었던 봉지를 주머니에 구겨 넣고 터벅터벅 슬리퍼를 끌었다.
오소마츠 형을 ‘엄마’로 인식하고 있다는 동물들은 절대 우리 곁에 다가오지 않았다.
다가오기는커녕 오소마츠 형에게 조금만 접근해도 바로 우리를 위협했다.
자신의 얼굴을 한 고양이에게 거부당하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괴로웠다.
오소마츠 형과 함께 고양이 이치의 털을 쓰다듬고 싶다.
오소마츠 형에게 이렇게 오랫동안 가까이 가지 못한 적은 없었다.
슬슬 오소마츠 형 금단증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맛있게 사료를 먹던 적갈색의 고양이를 ‘오소마츠 형’이라고 불렀으니 말 다했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한숨은 깊어져만 갔다.
오늘도 오소마츠 형에게 가까이 갈 수 없구나….
괜히 길가의 돌멩이를 차며 걷는데, 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내 옆을 지나쳤다.
“우왓! 위험….”
여긴 아이들도 자주 다니는 골목길인데 저렇게 속도를 내서 지나가다니….
몰상식한 운전사의 모습에 눈썹을 찌푸리고 번호판을 노려보며 번호를 외웠다.
저렇게 빠르게 다니면 아이뿐만 아니라 고양이들도 치일 수 있다.
나중에 쵸로마츠 형에게 부탁해서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하자.
차 번호를 되뇌며 머릿속에 집어넣고 다시 발을 옮겼다.
집으로 향하는 일직선의 길.
저 멀리에서 보이는 낯익은 지붕을 보자마자 착잡한 심정이 다시 퍼졌다.
오늘도 나는 오소마츠 형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인 내 시야에 몸을 작게 웅크리고 있는 보랏빛의 덩어리가 들어왔다.
“에? 너 여기서 뭐 해?”
“…냐, 냐아?”
길 한구석에 작게 웅크려 떨고 있는 이치를 보며 묻자, 고개를 든 이치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어? 이 녀석, 집 밖으로 나오면 안 되지 않나?
데카판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기울이고, 천천히 몸을 숙여 이치와 눈을 마주했다.
“이치?”
“냐아….”
뭔가를 호소하는 것처럼 우는 이치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발톱까지 세우고 덜덜 떠는 이치는 얌전히 내 품 안에 안겼다.
이치가 놀라지 않게 조심스레 이치를 옷으로 감싸고 현관문을 열었다.
“아! 이치마츠!! 혹시 이치 못 봤어?”
현관문을 열자마자 다급하게 외치는 오소마츠 형에게 품에 안고 있는 이치를 보여주었다.
“이치!!!”
“냐아~!!”
오소마츠 형이 두 팔을 벌리고 이치를 부르자마자, 이치는 내 품에서 뛰어내려 오소마츠 형에게 달려갔다.
“어디 갔었어~! 걱정했네!”
“냐아-!”
“낮잠 자다 일어나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냐아-”
“제대로 반성하는 거지?”
이치를 품에 안고 얼굴을 비비는 오소마츠 형의 말에 왜 이치가 덜덜 떨고 있었는지 이해했다.
아무래도 오소마츠 형과 동물들이 잠든 사이, 몰래 밖에 나온 이치는 조금 전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에 놀란 것 같았다.
자기보다 몇십 배는 커다란 쇳덩이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면 나라도 두려울 것이다.
오소마츠 형의 품에 안겨 안심한 얼굴로 “냐-, 냐-“ 하고 응석 부리는 이치에게 살며시 다가가,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제 밖에 나가지 마.”
“…냐.”
내 말에 대답하듯 우는 이치의 모습에 절로 얼굴이 풀어졌다.
오소마츠 형도 빙긋 웃으며 “고마워, 이치마츄~” 하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오소마츠 형의 손길에 절로 등이 굽었다.
6.
간식을 먹는 동물들을 챙겨주는 오소마츠 형에게 거리를 두고 앉아 스마트폰을 들었다.
동물들이 오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내 스마트폰의 갤러리에는 오소마츠 형과 동물들의 깜찍한 사진들로 가득했다.
동물들을 보는 오소마츠 형의 자상한 얼굴과 눈빛을 언제까지고 간직하고 싶어 벌써 몇백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오소마츠 형의 고귀함은 사진에는 다 담기지 않았다.
언제쯤 만족할만한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한탄하며 한 번 더 화면을 눌러 사진을 찍었다.
“엄마~, 잠깐 이리로 와 볼래?”
거실에 들려오는 엄마의 부름에 오소마츠 형이 눈썹을 찌푸리고 일어났다.
“아, 엄마!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니깐!!” 하고 투정을 부리며 오소마츠 형이 거실을 나가자, 거실엔 나와 동물들만이 남았다.
오소마츠 형에게 붙어 절대 떨어지지 않았던 동물들은 간식에 정신이 팔렸는지 오소마츠 형이 거실을 나간 것도 눈치 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문득 사진을 찍으려고 했던 손가락을 멈추고 화면에 비친 동물들을 응시했다.
이 녀석들이 온 뒤로 오소마츠 형의 보배로운 사진은 많이 찍을 수 있었지만, 오소마츠 형에게 가까이 갈 수가 없으니 소용이 없다.
절벽 위의 꽃 마냥 오소마츠 형을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지금의 생활에 한숨을 내쉬며 스마트폰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누가 너희들 사진 따위 찍어줄까 보냣!
작은 복수의 의미로 카메라를 종료하고, 몸을 부르르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물들을 피해 거실을 나와 화장실로 향하면서 주방을 보니, 오소마츠 형과 엄마가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오늘은 오소마츠 형의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건가?
은근히 들뜨는 마음으로 용무를 끝내고 거실문을 열자 토끼 토도가 나를 보고 움찔 떨며 스마트폰을 떨어뜨렸다.
덜컹- 하고 스마트폰과 함께 내 마음도 떨어졌다.
저거 아직 할부 남았는데!!
재빨리 스마트폰을 주워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다행히 별다른 상처는 없었다.
“하아~”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토도를 노려보자 토도는 고개를 홱 돌리고 휘파람을 불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영악한 토끼 자식!
토도를 쏘아보며 스마트폰의 화면을 켰다.
“…혹시 너, 이거 보고 있었어?”
스마트폰의 잠금 화면을 보고 나직이 토도에게 물었다.
내 질문에 놀랐는지 눈을 똥그랗게 뜬 녀석은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스마트폰의 잠금 화면은 토끼 토도를 안고 자상한 미소를 띄우고 있는 오소마츠 형의 사진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폰을 들고 바닥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토도에게 “더 볼래?” 하고 묻자, 토도가 눈을 빛내며 내게 다가왔다.
항상 오소마츠 형에게 붙어서 내게는 한 번도 스스로 오지 않았던 토도가 내 무릎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모습에 적잖이 감격하며, 갤러리를 열어 오소마츠 형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토도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오소마츠 형의 사진을 감상하더니 작게 콩- 하고 발을 굴렀다.
신호에 맞추어 사진을 넘기자 토도가 다시 스마트폰 가까이로 얼굴을 들이대고 사진을 유심히 살폈다.
잠시 후, 다시 콩- 하고 울리는 신호에 맞추어 다음 사진을 보여주었다.
오소마츠 형과 자신의 사진에 “뀨이~!” 하고 울며 뚫어지라 쳐다보는 토도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얼레? 언제 그렇게 친해졌어?”
거실로 들어온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에 토도가 “뀨!!” 하고 놀라며 재빨리 내 무릎에서 뛰쳐나갔다.
“뭐 보고 있었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다가와 묻는 오소마츠 형에게 싱긋- 웃으며 “비밀이야!” 하고 대답했다.
토도도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뀨!” 하고 울었다.
퉁퉁 볼을 부풀리는 오소마츠 형의 주변에서 토도가 기쁜 얼굴로 팔짝팔짝 뛰며 오소마츠 형의 주변을 맴돌았다.
토도를 안아 올리는 오소마츠 형을 보며 작은 한숨과 함께 무릎에 남아있는 토도의 온기에 입꼬리를 올렸다.
7.
현관문을 눈앞에 두고 휙휙- 입고 있는 옷을 훑어보았다.
엄마는 집에 들어오기 전에 반드시 먼지를 털고 들어오라고 했었다.
군데군데 묻은 흙을 팡팡 털어내고 현관문을 열었다.
“CR다녀왔슴다~!!!”
“아, 쥬시마츠~”
신발을 벗고 복도에 오르자 주방에서 나온 오소마츠 형아가 미소로 반겨주었다.
동물들의 맘마를 준비하고 있었는지 빨간색 앞치마를 두른 오소마츠 형에게 다시 크게 “다녀왔슴다!” 하고 외치자, “응, 어서 와~. 옷 갈아입고 와~!” 하고 오소마츠 형이 대답해주었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2층에 올라가 방문을 열자 동물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다녀왔슴다!!”
크게 외치자 동물들이 털을 바짝 세우고 막 울었다.
왜 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응! 시끄럽네!”
일제히 울어대는 동물들에게 외치자 동물들이 울음을 멈추고 황당하단 얼굴을 한 것 같았다.
응~, 왜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
일단 동물들은 놔두고 입고 있던 야구 유니폼을 벗었다.
윗도리를 벗고 노란 후드를 입은 후, 긴 야구 양말을 벗고 바지를 내렸다.
통통통- 도르르-
아! 야구공!!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잊고 있었던 야구공이 바지를 벗는 중에 주머니에서 튀어 나갔다.
통통 가볍게 바닥에 튀어 올랐다가 굴러가는 야구공을 다시 집어 들고 고개를 들자, 야구공을 보고 있던 쥬시랑 눈이 마주쳤다.
응? 응응??
이거?? 이게 하고 싶은 거지??
나를 보며 “왕!!” 하고 대답한 쥬시를 보자 하하하! 하고 웃음이 나왔다.
반바지를 쭉 잡아당겨 똑바로 입고 서자, 쥬시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빤히 응시했다.
“응~! 그럼~, 물어 와!!”
“왕! 왕!!”
방 안에 던진 공은 이리저리 튀어 소파에 떨어졌다.
멍멍 기쁘게 울며 공을 쫓던 쥬시가 팔짝팔짝 튀어 소파에 간신히 올라 공을 물고 다시 내 앞에 왔다.
“응! 잘했다~! 그럼 한 번 더!!”
내가 공을 다시 던지자, 쥬시도 다시 멍멍! 울며 공을 쫓았다.
공을 따라가는 쥬시는 굉~장히 기뻐 보였다.
“어이, 너네 너무 시끄러…, 우왓!!!”
오소마츠 형아가 문을 열자 책장에 부딪힌 공이 오소마츠 형아의 얼굴 옆을 스쳐 날아갔다.
빠르게 스쳐 지나간 공에 놀란 오소마츠 형아가 복도에 주저앉아 나를 올려다보았다.
쥬시는 계속 멍멍! 외치며 계단을 굴러 내려가는 공을 쫓았다.
“쥬~시~마~츠~?!”
“넵!”
“집 안에서 공놀이는 위험하지~?”
“넵!”
오소마츠 형아가 조금 화를 냈지만, 별로 무섭지는 않았다.
오소마츠 형아는 진심으로 화내지 않으면 별로 안 무섭다!
지금도 화난 말투이지만, 오소마츠 형아의 얼굴엔 미소가 피어나 있었다.
해바라기같이 빛나는 미소와 함께 오소마츠 형아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같이 놀아주고, 착하네~” 하고 칭찬해주었다.
오랜만에 오소마츠 형아에게 칭찬받았다!
기쁘게 웃자, 어느새 공을 물고 돌아온 쥬시도 공을 내려놓고 나를 보며 왕! 하고 웃었다.
8.
기분 좋게 냐-짱 라이브에서 돌아오는 길.
귓가에서 맴돌며 사라지지 않는 냐-짱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에 도착했다.
요즘 데카판이 맡긴 골칫덩어리들 덕분에 오소마츠 형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쌓인 스트레스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던 와중에, 오늘의 냐-짱 라이브는 내게 어둠 속 한 줄기 빛과 같았다.
냐-짱 덕분에 스트레스도 어느 정도 해소되어, 그 동안 답답했던 마음이 한결 개운해졌다.
현관문을 앞에 두고 크게 심호흡을 하며 스스로 되뇌었다.
괜찮아. 오늘도 버틸 수 있다.
오소마츠 형에게 가까이 갈 수 없는 것은 괴롭지만….
괜찮다며 스스로 다독이고 현관문을 열고 “다녀왔습니다.” 하고 외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상 일을 나가신 엄마와 아빠의 대답이 없는 것은 그렇다 쳐도, 동물들 때문에 집에 남아있을 오소마츠 형의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 것은 이상했다.
고개를 갸웃하며 거실로 들어서자 엉거주춤하게 서 있던 쵸로가 나를 보며 “메-!” 하고 울었다.
“너 혼자야? …근데, 응?”
쵸로가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이유를 본 순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설마 제 털에 발이 엉켜있을 줄은….
나와 똑같은 얼굴에 같은 이름을 가진 녀석이 이런 한심한 꼴이 되어 있는 것이 묘하게 자존심 상했다.
한숨을 푹- 내뱉고, 메고 있던 가방에서 빗을 꺼내 쵸로를 붙잡았다.
“메-!!”
“안 때려. 도망치지 마.”
내 손에서 도망치려 발버둥 치는 쵸로를 안고 앉아 빗으로 천천히 털을 빗겨주었다.
오소마츠 형은 이런 관리를 전혀 해주지 않으니 이런 사태가 일어난다.
쯧! 하고 혀를 차며 아프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털을 빗자, 쵸로의 발에 엉켜있던 털도 서서히 풀어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숙이고 있는 머리를 지탱하는 목이 빠듯하게 아파왔다.
“자, 됐다!”
만족스러운 외침과 함께 쵸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내 발치에 있는 쵸로의 털 뭉치를 쓰레기통에 넣고 멍청히 나를 올려다보는 쵸로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털을 빗겨줄 때도 느꼈지만, 이 녀석 털 엄청 부드럽다!
괜히 양털로 옷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드럽고 몽글몽글한 털을 쓰다듬어주자, 쵸로도 기분 좋은지 눈을 감고 “메-” 하고 수줍게 울었다.
“어? 쵸로마츄~, 언제 왔어?”
“한 20분 전에? 뭐 하고 있었는데 내가 온 것도 몰라?”
거실문을 열고 나타난 오소마츠 형에게 묻자, 오소마츠 형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창고에 있었거든~”
“창고? 왜?”
“빗 찾으러…. 근데 생각해보니까 안방에 있는 엄마 화장대에 있겠다 싶어서…. 어? 쵸로, 털….”
“아, 내가 빗겨줬어.”
“뭐야아~, 쵸로마츠한테 빗 있었어?”
오소마츠 형이 기쁜 얼굴로 쵸로에게 다가갔다.
쵸로도 “메~!” 하고 기분 좋게 울며 오소마츠 형에게 다가가 순순히 품에 안겼다.
쵸로를 들어 올린 오소마츠 형에게 “빗 찾으러 창고에 있었어?” 하고 묻자, 오소마츠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빗 안 쓰고…. 토도마츠도 없다고 하길래. 카라마츠한테는 있을 텐데 집에 없고, 세면대에도 빗이 없더라고. 그래서 창고에 있나 싶었지.”
“하아….”
오소마츠 형의 말에 뭐라 반응해야 할지 알지 못해 멍하니 바라보자, 오소마츠 형이 쵸로의 볼에 뽀뽀하며 빙긋이 미소 지었다.
“쵸로마츠가 쵸로 도와줬네~ 고맙습니다~하고 인사했어?”
“메~, 메!”
쵸로의 작은 손을 잡고 좌우로 파닥파닥 흔드는 오소마츠 형의 모습에 작게 웃고, 쵸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쵸로마츠~, 땡큐~!”
“어, 뭐…. 별로….”
기쁘게 웃는 오소마츠 형의 미소에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9.
아! 오늘도 완벽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세면대를 떠났다.
오늘따라 유난히 완벽하게 느껴지는 나의 퍼펙트 패션을 다시 내려다보며, 계단을 올라 2층 방문을 열었다.
“오소마~츠! 벌써 아름다운 썬-이 이 월드에 축복을 내리고 있다! 마미의 딜리셔스-한 밥이 기다리고 있다고~?”
내 외침에도 오소마츠는 이불에서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곤란한 형님이다.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으며 동생들이 모두 떠난 이불을 붙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추웟!!! 카라마츠!”
“굿 모닝- 마이 하니-!! 어서 일어나 큐트한 얼굴을 보여주지 않겠나?”
“아팟! 아침부터 갈비뼈가 아팟!!!”
배를 잡고 일어난 오소마츠가 큭큭 하고 어깨를 떨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오소마츠 주변에 누워있던 리틀 비스트들도 눈을 비비며 일어나 스스로 계단을 내려갔다.
“읏챠아~”
아저씨 같은 신음과 함께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에게 오소와 카라가 달라 붙어있었다.
오소마츠의 어깨에 올라탄 오소는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고, 카라도 오소마츠의 등에 매달려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오-, 아직도 그렇게 경계를 풀어주지 않는 건가…. 리틀 비스트-.
“그 녀석들은 아직도 오소마츠한테서 떨어지질 않는구나.”
“응~, 이 녀석들이 제일 안 떨어져….”
하품을 하며 제 등과 목에 매달려있는 리틀 비스트의 머리를 쓰다듬은 오소마츠가 잠옷 차림으로 방을 나섰다.
마지막에 일어났으면서 제대로 이불도 정리하지 않는 오소마츠의 뒤를 따르며 쵸로마츠가 잔소리할 것이라 충고했지만, 오소마츠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괜찮대도~ 쵸로마츠 잔소리는 매일 듣는 거…, 우왁!?”
적당히 웃으며 넘기는 오소마츠의 몸이 순간 크게 기울었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계단에서 발을 헛디딘 오소마츠를 재빨리 붙잡았다.
“괘, 괜찮나? 오소마츠….”
“어, 어…. 우와~ 놀라라….”
오소마츠의 허리를 잡고 끌어당겨 품에 안은 채 묻자 오소마츠가 놀란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조심 좀 해라.” 하고 가볍게 화를 내는 나를 보며 씩- 웃은 오소마츠가 “미안, 미안~” 하고 사과하곤 내게 슬쩍 기댔다.
“그럼, 힘센 우리 차남이 좀 옮겨줘~”
“훗, 할 수 없군.”
팔을 벌리고 어리광을 부리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심장이 크게 두근거렸다.
귀까지 올라갈 것 같은 입꼬리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오소마츠의 무릎 뒤에 팔을 넣고 들어 올렸다.
소위 말하는 ‘공주님 안기’로 오소마츠를 들어 올리고 계단을 내려왔다.
1층 복도에 오소마츠를 내려놓자 오소마츠의 등에 매달려있던 리틀 타이거가 나를 보며 울었다.
“갸우-!”
“응? 무슨 일인가?”
고개를 기울이며 묻자, 리틀 타이거가 다시 “갸우!” 하고 울었다.
무슨 일일까 싶어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자, 오소마츠가 즐겁게 웃으며 타이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그러네! 고마워! 카라마츠~! 카라도 고맙대~”
“아, 아아! 이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해 주겠다!”
“그럼 고마워요 악수~!”
오소마츠는 타이거의 손을 잡아 내게 내밀었다.
잠시 망설이자 타이거가 “갸우!” 하고 외쳤다.
항상 내 손을 물어뜯기 바쁘던 타이거의 손을 머뭇거리며 붙잡자, 오소마츠가 은은한 미소와 함께 타이거의 손을 가볍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푹신푹신한 털의 감촉과 손가락에 느껴지는 말랑말랑한 육구의 따뜻함에 해일처럼 감동이 몰려왔다.
“그럼 밥 먹을까!”
두세 번 더 손을 흔든 오소마츠가 타이거와 함께 거실로 향했다.
손에 남은 육구의 감촉과 오소마츠의 체온에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10.
내 무릎에서 서로 뒤엉켜 장난을 치고 있는 오소와 카라에게서 시선을 올려 거실을 쭉 둘러보았다.
어느새 친해진 녀석들은 저마다 짝을 지어 함께 놀고 있었다.
토도마츠와 토도는 같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고, 이치와 쥬시는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와 함께 공놀이하고, 쵸로는 쵸로마츠의 무릎에 누워 자고 있다.
이제 내게 24시간 붙어있지 않게 된 녀석들에게 조금의 아쉬움을 느끼며 오소와 카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잠깐??
이거 기회 아냐?
번뜩인 생각에 역시 나는 카리스마 레전드라는 것을 실감하며 거울을 보고 있는 카라마츠에게 오소와 카라를 억지로 안겼다.
“오, 오소마츠?”
당황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카라마츠에게 “좀 부탁해.” 하고 말한 뒤, 거실을 나왔다.
드디어!! 밖에 나갈 수 있다!!
키메라인 녀석들을 데리고 밖에 나갈 수 없어 반강제로 지내온 감금 생활도 이제 끝!!
파칭코다!! 아니 경마 먼저 갈까!
룰루루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2층에서 지갑을 들고 내려와 현관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내 귀에 듣고 싶지 않았던 오소와 카라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역시 안 되었나.
아직도 떨어뜨리면 안 되는 건가….
푹- 한숨을 내쉬고 거실로 들어가자, 내 예상과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져 있었다.
“타, 타이거- 진정해라. 래서-!! 동생을 공격하면 안 된다!!”
조금 전까지 내 무릎에서 함께 놀던 오소와 카라가 카라마츠의 무릎에서 서로 싸우고 있었다.
장난으로 물어뜯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심각하게 싸우는 두 녀석을 카라마츠가 잔뜩 당황하며 말리고 있었다.
“에? 에?? 무슨 일??”
카라마츠에게 뛰어가 “갸-! 갸우~!!” 하고 울고 있는 카라를 안아 올렸다.
오소에게 물렸는지 카라의 앞발에서는 피가 나오고 있었다.
“큐!! 큐이!!”
잔뜩 성을 내고 씩씩거리던 오소가 나를 보며 크게 울었다.
오소가 많이 울긴 해도 이렇게 큰 소리를 낸 것은 처음이었다.
몸을 떨며 놀라 우는 카라의 등을 토닥이며 몸을 숙였다.
“오소? 왜 그래?”
“큐우~!!!”
내게 팔을 뻗고 외치는 오소를 잡아 카라와 함께 안아 올리자, 오소도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큐-, 큐우-” 하고 울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
“나, 나도 잘 모르겠다….”
“하?”
카라마츠는 멍청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 네 무릎에 있었거든? 이 녀석들….
“갑자기 싸우기 시작했어.”
카라마츠의 뒤에서 쥬시마츠가 말했다.
“갑자기?” 하고 되묻자 “응!” 하고 씩씩한 대답이 돌아왔다.
“오소가 먼저 공격하던데?”
쥬시마츠에 이어 토도마츠가 스마트폰을 내리고 말했다.
“오소가?” 하고 되묻자 마찬가지로 “응.” 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다른 녀석들과 한 번도 싸운 적 없던 오소가 먼저 싸움을 건 것도 이상했고, 제가 먼저 싸움을 걸어놓고 내 품에서 큐- 큐- 우는 것도 이상했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요상한 꺼림칙함을 남겨놓고 이 싸움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오소의 기행은 멈추지 않았다.
“쵸로씌~ 나도 데려가아~~”
“아, 좀 꺼져 봐!”
레이카의 라이븐지 뭔지에 가려는 쵸로마츠의 다리에 매달려 조르자, 평소와 다름없이 짜증을 부리던 쵸로마츠가 웬일로 발을 멈추고 거실에 엉덩이를 내렸다.
“어? 안 가?”
“…오늘은 안 내키기도 했고. 뭐 할 건데?”
정말로 정~말로 드물게 쵸로마츠가 놀아주기로 한 것이 기뻐서, 서둘러 2층에 올라가 고이 간직해 두었던 오셀로를 꺼내 거실 바닥에 내려놓았다.
“오셀로? 오랜만이네.”
“그지~! 저번에 빗 찾으러 창고 뒤지다가 발견했어!!”
“아~ 그때….”
쵸로의 털이 엉켰던 것을 떠올렸는지 작게 중얼거린 쵸로마츠가 말없이 오셀로 판을 펼쳤다.
어린 시절엔 둘이서 자주 했던 추억의 게임을 같이 한다는 생각에 기분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큐!! 큐우!! 큐큐!!”
“메!! 메에~!!”
오셀로를 시작하려는 찰나, 거실 안에 울리는 처절한 울음소리에 나와 쵸로마츠가 고개를 돌렸다.
얌전히 거실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오소와 쵸로가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에?? 오소?!”
당황해 외치며 급히 오소와 쵸로를 떼어놓자 아직도 분이 안 풀렸는지 오소가 발버둥 치며 쵸로에게 꼬리를 휘둘렀다.
“왜, 왜 그래??”
마찬가지로 오소에게 달려들려는 쵸로를 붙잡은 쵸로마츠가 물었지만, 나도 싸운 이유를 알지 못했다.
뭐가 그리 분한지 “큐- 큐-” 하고 울음을 멈추지 않는 오소를 품에 안고 거실을 빠져나왔다.
2층 방에 올라 오소의 등을 토닥이자, 서서히 오소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품에 안겨 울다 지쳐 잠든 오소를 보며 갑자기 왜 싸우기 시작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일 이후로, 오소는 자주 다른 녀석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내가 이치마츠와 함께 고양이 방송을 보고 있을 때, 오소의 울음소리에 뒤돌자 어느새 우리 뒤편에서 오소와 이치가 싸우고 있었다.
쥬시마츠와 함께 야식을 먹기 위해 몰래 이불에서 빠져나왔을 때도, 소란스러워진 2층을 눈치채고 올라가 보자 이불 위에서 쥬시와 오소가 싸우고 있었다.
토도마츠와 함께 토도를 안고 셀카를 찍고 있을 때는 내 품에 안긴 토도에게 오소가 달려들었다.
오소는 다른 녀석들을 죽일 듯이 맹렬하게 달려들었고, 그에 대항하는 녀석들은 싸움은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새근새근 규칙적으로 숨을 내쉬며 잠든 오소를 품에 안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소 외의 다른 녀석들은 고양이나 호랑이, 개, 양이었다.
몸집은 같아도 ‘힘’의 차이가 있었고, 맹수인 카라나 이치는 오소와 싸울 때도 적당히 봐주면서 싸우고 있었다.
힘의 차이가 있다 해도 오소는 망설이지 않고 공격해대니, 결국 상처를 제일 많이 입는 것은 오소였다.
작은 팔 군데군데 남은 상처를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오소의 이름을 나직이 불렀다.
“오소-, 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싸우는 거야….”
안타까움을 담아 물었지만 잠든 오소는 대답하지 않았다.
데카판에게 가서 오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기계를 받아오자, 홀로 다짐하며 오소의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11.
“너네 진짜 뭐야!!”
오소마츠가 낮잠이 들고, 조용한 집 안에 오소의 “큐!!” 하는 울음소리가 울렸다.
거실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동물들의 회의가 열려 있었다.
“엄마를 지키기로 해 놓고!!”
오소의 다그침에도 동물들은 눈을 돌릴 뿐, 뭐라 입을 열지 않았다.
“너희들, 엄마를 지킬 생각 없는 거야!?”
“그, 그럴 리 없다!! 다만….”
오소의 말에 카라가 발끈해 외쳤다.
뒷말을 흐리는 카라를 보며 오소가 날카롭게 “다만, 뭔데?” 하고 물었다.
“다만, 카라마츠라면 좋은 아빠가 되어주지 않을까…, 하고….”
“그 파란 녀석은 항상 엄마를 아프게 하잖아!”
“아, 아니다!! 그건 정말로 아프게 하는 게 아니라고! 그리고 카라마츠는 멋있고 강하다! 엄마를 지켜줄 수 있어!!”
억울하단 얼굴로 외치는 카라에 이어 이치도 손을 들고 말했다.
“…개똥마츠보다는 이치마츠가 더 좋을 것 같은데. 차분하고 상냥해. 이치마츠가 아빠가 되어주면 기쁠 것 같아….”
“아니, 보라는 너무 음침하잖아? 토도마츠가 최고지! 나처럼 귀엽고! 엄마와도 제일 마음이 맞고! 제일 어울리고!! 자, 봐 봐!”
이치의 말이 끝나자마자 토도가 오소마츠와 토도마츠가 함께 찍혀있는 사진을 꺼내 자랑하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빠는 쵸로마츠가 제일 어울려. 엄마랑 어릴 때부터 친구였고! 엄마 마음을 제일 잘 알고 있는걸!”
토도가 꺼낸 사진을 보며 콧방귀를 낀 쵸로가 말했다.
쵸로의 말이 끝나자 이번엔 쥬시가 “아냐, 아냐!” 하고 외치며 말을 시작했다.
“쥬시마츠가 최고야! 파랑보다 힘세서 엄마를 잘 지켜줄 수 있어! 그리고 제일 잘 놀아줘!!”
쥬시마츠와 함께 공놀이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쥬시가 활기차게 외쳤다.
가만히 서서 동물들의 말을 듣고 있던 오소가 부들부들 몸을 떨더니 방이 떠나가라 외쳤다.
“안 돼!! 우리한테 아빠는 필요 없어!!! 엄마한테는 우리만 있어도 돼! 우리가, 내가 엄마를 지켜줄 거야!!! 그 누구도 아빠로 인정 못 해!!!”
쾅쾅 발을 구르며 외친 오소가 꼬리를 땅땅 바닥에 내치며 동물들을 노려보았다.
“절~대로 그 누구도 엄마한테 가까이 못 가게 할 테니까!”
비장하게 외치는 오소를 보며 동물들은 어이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마마보이 자식….’’’’’
작은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마츠노가에 평화가 찾아오기엔 아직도 멀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번 단편은 이후에 후편이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습니다.
* 후편이 나온다면 아빠가 누군지 정해야 하는데... 누구로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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