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올캐러네요ㅎㅎ


* 칵테일에 대한 건 인터넷으로 조금 조사했습니다. 자세히는 몰라요ㅎㅎ;


* 모브녀 시점입니다.


* 공미포 15,671자.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그래서 요즘 어떤데?

고등학교 때부터 인연을 이어온 오랜 친구 리나의 질문에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움츠렸다

갈 곳 잃은 손으로 괜히 치맛자락을 잡고 비비며 대답을 망설이자, 전화 저편에 있는 리나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아직도 고민 중이야?

….”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답답하다는 듯이 내뱉은 숨소리가 퍼졌다.


내일부터 출장이라고? 그 선배.

….”

선배가 돌아오면 그냥 콱 고백해버려!

우으…. 그건 좀…. 선배가 날 좋아하는지 어떤지 모르고…. 게다가 만약에 잘 돼도 사내연애잖아…. , 정말로 선배를 좋아해도 되는 걸까…?”

줄곧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던 고민을 머뭇거리며 털어놓자, 리나의 허탈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항상 무엇이든 똑 부러지게 해결하는 리나에게도 내 고민은 만만치 않은 상대 같았다

째깍째깍, 초침이 흘러가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시계를 응시했다

정확히 초침이 60번 움직여 분침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을 때, 리나의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있지. 칸나, 내가 정~~말 괜찮은 Bar를 하나 알고 있는데 말이야.

“Bar?”

거기 가 보는 건 어때? 고민하면서 매달려도 답도 안 나오고, 기분전환으로.

뜬금없는 조언에 고개를 기울이고 눈을 굴렸다

술을 못하는지라 Bar는 고사하고 술집에도 간 적 없었다

망설이다 겨우 , 술 못해.” 하고 말하자, 짧게 웃은 리나가 그래도 한 번 가봐. 하고 등을 떠밀었다.



의외로 고민이 해결될지도 모르고?

리나의 의미심장한 말에 마른 입술을 핥았다.

 

 

 

 

 

2.

 

월요일. 리나가 알려준 주소를 찍어 스마트폰에 비친 지도를 따라 걸었다

술집이 몰려있는 유흥가에 있겠지 했는데, 의외로 리나가 알려준 Bar는 평범한 식당 골목 사이에 콕 하고 박혀 있었다.


늦은 밤, 문을 닫은 식당 사이에서 혼자 어두운 거리에 빛을 비추고 있는 가게 앞에 서서 숨을 들이마셨다

가게 앞에 서 있는 작은 입간판에는 소나무 BAR라고 쓰여 있었다

가게 이름 아래에 「7:00 ~ 1:30 p.m.」라고 영업시간이 쓰여 있어 무심코 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선배가 출장 가고 남은 일을 끝내느라 야근한 덕분에 벌써 저녁 8시를 넘겼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잡고 천천히 가게 문에 손을 얹었다.

 

딸랑- 하고 귀여운 벨 소리를 울리며 열린 가게 문을 등에 붙이고 가게를 쭉- 둘러보았다

전체적으로 은은한 붉은 조명 아래, TV 광고에서 많이 들었던 익숙한 음악이 잔잔히 흘렀다

가게 문을 기준으로 오른편은 카운터 Bar, 왼편은 좌석이 준비되어 있었다

밖에서 보던 것보다 더 작았지만 어쩐지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몇 개 안 되는 좌석에 앉아있는 손님들은 거의 다 남자 손님이었다

Bar에 처음 와 보는 데다 꽉 찬 좌석에 당황해 멍청히 입구에 서 있자, Bar에 서 있던 바텐더 씨가 이쪽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어이~, 거기 손님~? 이리 와 앉아~.”

바텐더 씨의 친근한 말투에 어깨의 힘이 빠졌다

쭈뼛대며 바텐더 씨가 가리킨 카운터에 가 앉았다

의자가 5개 놓인 카운터에 앉아있는 손님은 나 하나뿐이었다.


처음?”

, 아아! !”

뭘 그렇게 긴장해~?”

어린아이처럼 키들거리는 바텐더 씨를 올려다보았다

장난기 많은 천덕꾸러기 같은 미소를 따라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바텐더 씨는 붉은 셔츠에 검은 바지와 검은 조끼를 입고 있었다

뭐랄까, 딱 바텐더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복장이었다

바텐더 씨는 좌석에서 자신을 부르는 손님에게 짓궂은 농담을 툭 던지고 다시 내게 시선을 돌렸다.


뭐 마시고 싶은 칵테일 있어?”

, 저기….”

바텐더 씨의 질문에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런 bar는 처음인 내가 칵테일 종류를 알고 있을 리 없었다.


…, 저기…. , 메뉴 보여주시면 고를게요!”

-, 우리 가게는 기본적으로 메뉴가 없어서~.”

“…?”

바텐더 씨의 충격적인 발언에 나도 모르게 멍청한 신음을 흘렸다

당황한 내 표정에 푸핫!” 하고 짧은 웃음을 터뜨린 바텐더 씨가 코 밑을 쓱 문지르며 물었다.


그럼, 내가 추천해줘도 될까?”

, ! 부탁드립니다.”

! 이 횽아한테 맡겨둬!!”


횽아…?

애 같은 말투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바텐더 씨가 분주하게 움직여 찬장에서 이것저것 꺼내기 시작했다

세모꼴 유리잔을 꺼내 얼음을 채운 바텐더 씨가 모래시계처럼 생긴 작은 컵과 은색 컵을 꺼냈다

계량컵으로 보이는 모래시계 모양 컵에 술을 재서 은색 컵에 부었다

2~3종류의 술을 차례로 계량컵에 재서 은색 컵에 모두 붓고 얇은 수저로 휙휙 저었다

얼음을 채워두었던 유리잔에서 얼음을 꺼내 버리고, 은색 컵에서 섞은 술을 유리잔에 부었다

그리고 작은 술병을 하나 꺼내 5-6방울을 유리잔에 떨어뜨리고 마지막으로 붉은 체리를 칵테일 안에 넣었다

- 하고 갈색을 띤 붉은 칵테일 속에 체리가 잠겼다.


, ‘맨해튼’ 1잔 대령이요~.”

검붉은 칵테일이 붉은 조명에 투명하게 빛났다. 눈앞에 내밀어진 완성된 칵테일에 조금 당황했다

칵테일이라고 하면 보통 셰이커(shaker)’라고 불리는 병에 넣고 흔들어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바텐더 씨가 건네준 술은 스푼으로 휙휙 휘저은 것이 전부였다.


이것도 칵테일인가…?, 하고 의심하며 잔을 들었다

살짝 한 모금 마시자 술 특유의 알코올 냄새가 전혀 역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살짝 달콤하면서 뒷맛이 깔끔했다

정말 시원하게 목으로 넘어가는 술맛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자 바텐더 씨가 씩- 웃으며 어때?” 하고 물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술을 맛있다고 느낀 자신에게 놀라며 정말 맛있어요!” 하고 대답했더니 바텐더 씨가 쑥스럽게 웃으며 또 코 밑을 문질렀다.


누나는 술 잘 마셔?”

, 아뇨. 잘 못 마셔요….”

그래? 그거 은근히 센 술이니까 천천히 마셔~.”

이게 세, 센 술이에요?”

깔끔하게 단맛을 잡아주는 쓴맛이 조금 느껴지긴 했지만, 강한 술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너무 쉽게 목으로 넘어갔다

다시 한 모금 마셔도 도수가 높은 술이라고 믿을 수 없어 바텐더 씨를 올려보자, 싱긋- 눈웃음을 지은 바텐더 씨가 말했다.


그거 아마 30.”

에에에!?”

놀라 어깨를 튀며 외쳤다

절로 나온 큰소리에 재빨리 손으로 입을 가리고 주변에 있던 손님들께 고개를 숙였다

가게 안인데 혼자 큰 소리를 낸 것이 창피해 얼굴이 화끈거렸다

바텐더 씨는 배를 잡고 소리 죽여 끅끅거리며 웃고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나를 응시했다.


누나, 반응 엄~청 웃겨. , 아직도 웃음 나온다~.”

-, 그만 웃어요!!”

아직도 잘게 웃는 바텐더 씨를 노려보며 불평하자 생글- 귀여운 웃음을 피운 바텐더 씨가 미안미안~.” 하고 성의 없는 사과를 건넸다

가벼운 사과에 눈썹을 찌푸리고 입을 삐죽 내밀어 고개를 홱 돌렸다

유리잔에 담긴 붉은 술을 마시며 나도 모르게 한 행동에 눈을 깜빡였다

3초쯤 지나고 나서야 내가 한 행동이 얼마나 예의 없는지 깨닫고 재빨리 바텐더 씨와 눈을 맞췄다.


….”

? ? 한 잔 더 시키게?”

, 아뇨….”

당연히 기분 나빠해야 할 바텐더 씨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나를 보며 물었다

아직 남아있는 술과 슬슬 얼굴로 오르기 시작한 술기운에 고개를 저었다

나 말고도 다른 손님과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은 바텐더 씨는 시종일관 즐거운 미소를 피웠다

바텐더 씨를 보며 가게 안에 들어왔을 때 느낀 편안함이 이해되었다

분명 오늘 처음 본 사람인데도, 바텐더 씨는 오랜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얼마 남지 않은 술을 홀짝대며 바텐더 씨를 보고 있자, 내게 눈을 돌린 바텐더 씨가 배시시- 웃었다.


근데 누나는 어쩌다 우리 Bar에 왔어? 여긴 단골만 오는 곳인데.”

…. 친구가 소개해줘서요.”

그래? 여긴 아무한테나 소개해주는 데가 아닌데~? 무슨 일로 친구가 여기 가보라고 한 거야?”

…. 제가 좀, 사소한 고민이 있어서.”

무슨 고민인데~?”

그게…. 실은, 직장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제 직속 상사고, 또 신입 사원이었던 제게 일을 가르쳐준 선배이기도 하고…, 좋아하게 돼서…. 근데 선배도 저를 좋아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고, 또 사내연애니까….”

…. 미안, 누나. 나 연애 이야기는 잘 몰라. 대신에!”

바텐더 씨는 나를 보며 활짝 웃으며 양팔을 크게 펼쳤다.


여기서만큼은 고민이고 뭐고 다~ 잊고 실컷 놀다 가!”

바텐더 씨의 말에 눈을 깜빡이고 있자, 가게 안에 흐르던 노래가 바뀌었다

한때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노래가 흐르자, 너나 할 거 없이 가게 안에 있던 손님들이 모두 그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손을 들어 좌우로 흔들며 마치 콘서트에 온 것처럼 즐겁게 노래를 따라 부르는 손님들의 모습에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 정말! 돼지 멱따는 소리 내지 마~!”

몸까지 들썩거리며 노래 부르는 손님들에게 바텐더 씨가 장난스럽게 외쳤다

무례할 수 있는 바텐더 씨의 말에 손님들은 그 누구 하나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에게 말하듯 그럼 바텐더 씨가 불러봐!” 하고 마이크로 쓰던 숟가락을 쑥 내밀었다

잘 들으라고~?” 하고 자신만만하게 웃은 바텐더 씨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게 안에 퍼지는 바텐더 씨의 목소리에 손님들 모두 말을 잃었다

가슴을 간질간질하게 만드는, 꼭 속삭이는 듯한, 낮은 듯하면서 낮지 않은 감미로운 목소리가 순식간에 가게 안의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2절 후렴구를 완벽하게 따라 부르고 노래를 멈춘 바텐더 씨가 손님들을 보며 의기양양한 얼굴로 내려보았다.


, 어때? 죽이지?”

바텐더 씨의 말에 손님들이 과장된 몸짓으로 분하단 듯이 쿵쿵거리며 , 졌다!!” 하고 소년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했다

바텐더 씨와 손님의 대화에 집중해있던 손님들이 모두 와하하- 웃었다.

나도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손으로 막고 어깨를 떨었다

바텐더 씨는 손님들을 보며 근데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기분이 업 됐어?” 하고 물었다

손님들은 일행 중 한 명을 가리키며 이 녀석 오늘 일 때려치웠어.” 하고 웃었다

바텐더 씨의 시선을 받은 손님이 이제 백수야….” 하고 푹 고개를 숙였다.


뭐야 그거, 개 부럽!”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진지한 바텐더 씨의 표정에 놀랐다

손님들은 바텐더 씨의 말에 또 한차례 큰 웃음을 쏟아냈다.


나도 백수하고 싶어! 평생 부모님 등골 빨아먹으며 살고 싶어~!”

쓰레기네~!”

글러 먹었구먼!”

왜 사냐!?”

바텐더 씨의 발언에 손님들이 한마디씩 던졌다

바텐더 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씩- 웃으며 손님들의 수위 높은 농담을 받아쳤다

또 한차례 바보 같은 대화가 오가더니 손님 하나가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바텐더 씨에게 자랑했다.


왜 이래? 나 이래 봬도 귀엽단 소리 들었다고?”

? 누구한테?”

내 여친.”

? 눈이 삐었네. 그리고 나가 죽어라, 리얼충.”

경멸하는 눈으로 -, -.” 하고 개 쫓듯 손을 휘젓는 바텐더 씨를 째려보며 손님의 자랑이 이어졌다.


귀엽거든!? 난 어리니까!!”

?! 웃기시네-, 아무리 어려도 성인 남자거든!!”

이래도 안 귀여워? 꾸꾸 까까.”

이런 미친…. 단골만 아니면 내가 팼다.”

취한 게 분명한 손님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며-, 꾸꾸 까까…?- 귀여운 척을 하자 바텐더 씨가 bar를 닦고 있던 흰 걸레를 집어던졌다

옆에 있던 손님들도 토하는 시늉을 하며 웃었다.

꼭 고등학교로 돌아간 것 같았다

반에서 한 명씩 있는 장난기 많은 남학생과 그 주변에 모인 학생들의 웃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만담 같은 대화가 손님과 바텐더 씨 사이에서 오고 갔다

바텐더 씨의 말투와 툭 던지는 농담에 웃음을 터뜨린 건 나뿐이 아니었다

가게 안에 있는 손님들 모두 같은 반 친구들처럼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실컷 웃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고 문득 폰을 확인했다

어느새 11시를 훌쩍 넘은 시각에 놀라 막차 시간을 확인했다

손님과 함께 웃던 바텐더 씨가 나를 보며 이제 가게?” 하고 물었다

옷을 주섬주섬 챙기며 고개를 끄덕이자, 바텐더 씨가 bar에서 걸어 나왔다.


잠깐만 기다려 봐.”

?”

택시 불러줄게. 여자 혼자 역까지 걸어가는 건 위험하니까. 여기 인적 드물고.”

…, 아니에요! 괜찮아요.”

괜찮아~, 괜찮아~! 다음에 또 오라는 뇌물이니까~.”

뇌물….”

바텐더 씨가 씩 웃으며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빨간색 케이스를 낀 폰을 멍하니 쳐다보며 나와 같은 기종이네…, 하고 멍청히 생각하고 있자 통화를 끝낸 바텐더 씨가 가게 문을 열었다

어두운 길가에 서 있는 택시를 보며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지갑을 꺼내 술값을 냈다.


택시 감사합니다!”

고마우면 내일도 놀러 와~!”

! 꼭 올게요.”

택시에 몸을 싣고 바텐더 씨에게 인사했다

가게 앞까지 나와 손을 흔들며 배웅해주는 바텐더 씨의 친절함에 내일도 꼭 오자고 다짐했다.

 

정말로, 오랜만에 고민도, 걱정도 잊고 실컷 웃을 수 있었다.

 

 

 

 

 

3.

 

바텐더 씨의 미소와 친근함에 위로받은 나는 오늘도 가게 앞에 섰다

오늘은 또 어떤 손님과의 만담이 기다리고 있을까, 두근대며 기대하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문을 열었다

가게 안은 어제와 달리 푸른 등이 은근히 내려앉아 있었다

안에 퍼지는 노래도 어제와 달랐다.

이건 꽤 옛날 노래…. 그래, 오자키라는 가수의 노래다. 간간이 팝송도 섞여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어젠 남자뿐이었던 손님도 남녀가 반반 섞여 소곤소곤 조용히 대화하고 있다

완전히 다른 가게 같은 분위기에 놀라 뻘쭘하게 입구에 서 있자, 바텐더 씨가 말을 걸었다.


리틀 레이디-, 이쪽에-.”

바텐더 씨가 가리킨 카운터 의자에 앉아 바텐더 씨를 보자, 바텐더 씨도 어제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푸른 셔츠를 입고 소매를 걷어 올려, 셔츠 단추도 두세 개 풀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검은 조끼는 어제와 같지만 어쩐지 복장이 다르니 풍기는 분위기도 달라진 것 같았다

그것보다 이렇게 어두운 실내에서 왜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지 의문이지만….


어둠과 정적에 휩싸인 이 블루 캐슬에 온 걸 환영한다. 레이디-”

….”

바텐더 씨의 환영사-아마도-에 말을 흐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 어제와 너무나 다르다

눈을 깜빡이고 바텐더 씨를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뭔가…, 어제랑 다르네요….”

“….”

내 질문에 바텐더 씨가 놀란 듯 입을 벌리더니 곧, “…!” 하고 웃으며 선글라스를 벗어 셔츠에 걸었다.


오늘은 콘셉트를 좀 다르게 해 보았다.”

…. 그렇군, ….”

말투와 목소리도 콘셉트에 따라 바꿨는지, 어제보다 낮은 목소리가 잔잔히 공기를 울렸다

눈을 가늘게 뜨고 부드럽게 웃는 바텐더 씨에게 어제와 같은 칵테일을 주문하자, “….” 하고 턱에 손을 올리고 고민한 바텐더 씨가 빙긋- 웃었다.


맨해튼은 도수가 센 녀석이라…. 게다가 오늘은 논알콜(nonalcohol) 데이.”

, 그런가요?”

오늘도 내가 추천해줘도 괜찮을까? 레이디-.”

, . 오늘도 부탁합니다.”

오케이!”

- 웃는 얼굴만큼은 어제와 똑같았다

변하지 않은 미소에 묘한 안심을 느끼며 bar에 기대 바텐더 씨의 작업을 지켜보았다

바텐더 씨는 은색 셰이커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어제 칵테일에 대해 찾아보다가 바텐더가 셰이커를 흔드는 영상을 봤던 것이 떠올라 왠지 셰이커가 반갑게 느껴졌다

흥미진진한 눈으로 바텐더 씨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피식- 웃음을 흘린 바텐더 씨가 셰이커에 얼음을 채우고 푸른 액체를 부어 넣었다

파인애플 주스와 레몬 주스도 넣고, 파란색 뚜껑을 닫은 바텐더 씨가 흘러내린 소매를 고쳐 걷어 올리고 셰이커를 들어 흔들기 시작했다

차칵차칵- 얼음이 셰이커에 부딪치는 소리가 가게 안에 울렸다

영상에서처럼 셰이커를 높이 던졌다 받거나 이리저리 돌리는 기교는 없어도 정중히 셰이커를 다루는 손길에서 어른의 색기가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뜨거워지는 볼에 손을 올려 감추고, 바텐더 씨를 응시하자, 눈이 마주친 바텐더 씨가 생긋- 웃고, 셰이커를 내려놓았다

긴 원통형 유리잔에 셰이커에 있던 음료를 따르고 긴 빨대와 푸른 꽃장식을 잔에 끼워 내 앞으로 밀었다.


“‘블루 하와이.”

익숙한 이름에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을 더듬으며 감사 인사를 하고 잔을 받았다

차가운 유리잔에서 시원한 냉기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왔다

푸른색의 음료에 얼음이 꼭 튜브를 끼고 노는 아이처럼 둥둥 떠 있었다

병에 얼음이 부딪혀 나는 맑은소리를 들으며 빨대를 입에 물었다

- 빨아들이면 익숙한 달콤함이 입안에 퍼졌다.


! 이거, 빙수의!”

여름에 많이 사 먹었던 빙수. 빙수에 뿌리는 시럽 중에서 블루 하와이라는 맛이 있는 것이 떠올랐다

기억 속 그 맛과 똑같은 맛에 반가워 기쁘게 웃고 바텐더 씨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맛있어요!”

진심을 담아 감탄하자, 수줍게 홍조를 피우고 옅은 미소를 피운 바텐더 씨가 다정히 말했다.


오늘도 재미있게 놀고 가면 좋겠군.”

!”

바텐더 씨의 미소에 함께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잔잔한 팝송이 흘려 퍼져 가게 안은 긴장을 풀고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달콤한 블루 하와이를 들이키며 컵을 닦고 있는 바텐더 씨에게 말을 걸었다.


바텐더 씨는 낮에 뭐 하세요?”

“…산책하는 경우가 많다. 나만의 핫플레이스가 있어서 말이야. 그곳에서 나에 대해, 삶에 대해 고찰하곤 하지.”

뭔가 어려운 취미네요…. 저는 쉬는 날엔 주로 뜨개질해요.”

뜨개질?”

. 한 코 한 코 따다 보면 걱정도 잊을 수 있고. 뭔가에 열중한다는 건 꽤 기분 좋더라구요.”

, 그건 그렇지. 나는 주로 기타를 칠 때 그런 마음이 든다.”

기타도 치시나요?”

아아. 동생과 함께.”

, 동생분이 있으세요?”

우리는 꽤 형제가 많다. 내가 차남이고, 아래로 동생이 4.”

“4!? 그럼 육 형제…. 정말 많네요…. 많이 싸우시겠어요.”

하핫, 그렇지.”

저는 여동생 하나 있는데, 그 녀석이랑 얼마나 많이 싸우는데요. 지금도 본가 내려가면 꼭 한 번씩 싸워요.”

사이가 좋은 거 아닌가?”

그런 걸까요…?”

좋은 거다! 나도 매일 형님과 싸우지만, 형제 중에선 형님과 제일 사이가 좋으니까.”

매일은 너무 많이 싸우는 거 아닌가요?”

웃음을 섞어 묻자 바텐더 씨가 멋쩍게 웃으며 그럴지도….” 하고 작게 수긍했다

그 후로 서로 동생에 대한 일화를 주고받으며 한참을 웃었다

오늘은 어제처럼 너무 늦지 않게 틈틈이 시간을 확인하고, 서서히 대화를 마무리해가고 있을 때였다

딸랑- 하고 벨이 울리고, 흐트러진 양복을 입은 남자가 진한 술 냄새를 풍기며 안으로 들어와 내 옆에 앉았다.


진토닉.”

단골들은 모두 오늘이 논알콜 데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기에, 남자가 오늘 처음 이 가게에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좌석에 앉아있던 손님들이 모두 대화를 멈추고 남자를 빤히 응시했다

바텐더 씨는 곤란한 얼굴로 남자에게 오늘이 논알콜 데이라고 설명하려 했다.


-? 뭐야,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왜 혼자 여기 있어~?”

…?”

천천히 눈을 끔벅이며 고개를 돌린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남자가 씩- 웃었다

남자의 미소에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드륵- 의자를 끌어 가까이 와 앉은 남자가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최대한 몸을 남자에게 멀리 떼고 거부하는 의사를 드러내도 남자는 내 옆을 떠나지 않았다.


같이 나가지 않을래~?”

서서히 노골적으로 되어가는 권유에 고개를 저었지만, 남자는 ~? 빼지 말고.” 하며 내 손을 잡으려고 했다

-.” 하고 숨을 삼키며 재빨리 손을 피하자마자 바텐더 씨가 !” 하고 거칠게 잔을 내려놓았다

남자의 시선이 바텐더 씨에게 향했다

남자의 눈길을 완전히 무시하고 나를 보며 빙그레 웃은 바텐더 씨가 둥근 유리잔에 담긴 연한 보라색 칵테일을 내밀었다

블루 하와이보다 투명한 칵테일이 찰랑, 흔들렸다.


주문하셨던 블루 문입니다. 레이디-.”

남자에게 보이지 않게 살짝 눈을 찡긋한 바텐더 씨를 따라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했다

남자는 내 앞에 놓인 칵테일을 보며 눈썹을 팍 찌푸리고 !” 하고 혀를 찼다.


그리고, 손님. 오늘은 논알콜 데이라 손님의 주문은 받을 수 없습니다.”

정중하지만 단호한 바텐더 씨의 말에 인상을 찡그린 남자가 머리를 벅벅 긁고는 바텐더 씨를 매섭게 노려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터벅터벅 가게를 빠져나가는 남자의 등을 보며 후하-.”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 미안하다, 레이디-.”

바텐더 씨의 사과에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어디를 가나 무례한 손님은 있기 마련이고 바텐더 씨의 잘못이 아니라 말하자, 싱긋- 자상한 미소를 띄운 바텐더 씨가 레이디는 상냥하구나.” 하고 속삭였다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당황해 손을 휘저으며 고개를 젓고 지갑을 꺼냈다.


, 오늘은 이만 가볼게요.”

, 웨이트, 웨이트다, 레이디-. 지금 택시를 부르겠다.”

아뇨, 정말 괜찮아요.”

조금 전 사건에 대한 내 사과다. 사양하지 말아줘.”

…. 괜찮은데….”

내 대답에 바텐더 씨의 짙은 눈썹이 내려앉았다

바텐더 씨의 곤란하단 미소에 죄책감이 들었다.


그럼, 사과받을게요.”

. 잠깐 기다려라.”

바텐더 씨는 기쁘게 웃으며 폰을 꺼냈다

어제와 달리 스마트폰의 케이스는 빨강이 아니라 파랑이었다

기분전환으로 핸드폰 케이스를 바꾸는 사람도 있다는데, 바텐더 씨도 그런 걸까, 생각하는 사이 택시가 도착했다

오늘도 가게 앞까지 나와 손을 흔들려 배웅해주는 바텐더 씨에게 인사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울리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전화를 받으니 리나의 발랄한 목소리가 울렸다

리나와 잡담하며 조금 전 bar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자, 리나가 후후- 웃기 시작했다.


왜 웃어?”

칸나, ‘블루 문이라는 칵테일이 가지는 의미 알아?

의미?”

블루 문의 의미는 불가능한 것. 보통 혼자 bar에 온 여성이 블루 문을 주문하면 작업 걸지 말라는 의미야. 남자도 물러서는 게 예의고.

….”

내일도 그 Bar에 갈 거지?

!”

 

 

 

 

 

4.

 

녹색 등이 비추고 있는 가게 안은 또 어제와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녹색 등이 주는 정갈한 느낌과 달리 가게 안에 흐르는 음악은 발랄한 아이돌 음악. 그것도 어떤 가수의 노래인지 알 수 없었다

가게 안엔 유독 안경 쓴 손님이 많았다

설마 어제에 이어 오늘도 분위기가 달라질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당황하며 입구에 서 있는 내게 바텐더 씨가 또 먼저 말을 걸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바텐더 씨의 인사에 살짝 고개 숙여 답하고 카운터 테이블에 앉았다

바텐더 씨는 녹색 셔츠를 입고 목까지 단추를 다 잠그고 있었다

손목까지 가린 셔츠 끝은 다림질했는지 빳빳이 서 있었다

녹색 셔츠에 검은 조끼, 그리고 검은 나비넥타이에 검고 긴 앞치마까지

바텐더 씨가 풍기는 분위기도 어제와 사뭇 달랐다.


오늘도 와 버렸어요.”

. 어서 오세요. 주문은 뭐로 하시겠어요?”

…, 오늘도 추천해주세요.”

.”

바텐더 씨가 옅은 미소로 대답하고 테이블에 셰이커를 올려놓았다

셰이커의 녹색 뚜껑을 열고 술을 붓는 것을 가만히 쳐다보던 내게 바텐더 씨가 물었다.


오늘은 어땠나요? 좋은 하루 보내셨어요?”

…. 그게.”

바텐더 씨의 질문에 쓴웃음을 지었다

하필 오늘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러 깐깐한 다른 부서 상사에게 혼난 참이었다

실컷 혼난 기억에 푹- 한숨을 내쉬며 바텐더 씨에게 오늘 일을 이야기했다.


그게, 하필 오늘 안 하던 실수를 해서요. 잘못 제출한 보고서 때문에 다른 부서 상사한테 엄청 혼났어요.”

“…고생하셨네요. 저도 직장 다닐 때 실수도 많이 하고, 혼도 많이 났어요.”

셰이커에 생크림을 넣으며 바텐더 씨가 맞장구쳤다

술에 생크림이 들어가는 게 신기해 빤히 바라보자 바텐더 씨가 짧게 웃었다

셰이커를 단단히 잠근 바텐더 씨가 셰이커를 힘껏 흔들었다.

촥촥, 액체가 흔들리는 소리가 울렸다

흘러나오는 아이돌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며 셰이커를 흔든 바텐더 씨가 세모꼴 유리잔에 칵테일을 따랐다

탁한 녹색 칵테일이 그대로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래스호퍼입니다. 술이 약하셔서 도수는 좀 낮췄어요.”

, 감사합니다.”

녹색 액체.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액체 괴물이 문득 떠올랐다

작게 한 모금 마시자, 색과 달리 행복한 달콤함이 혀끝에 맴돌았다

술 같지 않은 달콤함에 ~!” 하고 신음하며 행복한 미소로 달큼한 숨을 내뱉었다

오늘 혼나면서 바닥을 쳤던 기분이 단숨에 쭉- 끌어올려 졌다

하늘을 나는 것처럼 몽롱해진 기분에 행복감을 느끼며 생긋 웃었다.


맛있어요. 뭔가 위로받은 느낌~.”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상냥히 웃는 바텐더 씨의 미소에 문득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나 입을 열었다.


실은 오늘 상사에게 혼나고 나서요….”

바텐더 씨는 테이블을 닦으며 다음 말을 기다려주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좋아하는 선배가 지금 출장 가 있는데, 일 때문에 통화를 했단 말이에요? 근데 선배가 왜 기운이 없냐고 물어서, 혼난 일을 이야기했더니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내가 있었으면 지켜줬을 텐데.”

선배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대체 무슨 의미로 한 말 같으세요?” 하고 묻자, 딸기마냥 빨개진 얼굴로 바텐더 씨가 고개를 저었다

, 저는 그런 거, , , 잘 모르겠는데요!?” 하고 빨간 얼굴을 하고, 목소리까지 뒤집어진 바텐더 씨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이 노래 좋죠? 하시모토 냐-짱 노래에요!” 하고 갑자기 아이돌 선전을 하는 바텐더 씨가 어쩐지 귀엽고 웃겼다

쿡쿡, 웃음을 흘리고 바텐더 씨가 열심히 설파하는 -이라는 아이돌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조심히 가세요.”

내내 아이돌 이야기에 열중한 것이 부끄러웠는지 작은 목소리로 배웅하는 바텐더 씨에게 내일 또 오겠다 인사하고 택시에 올랐다

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도 꼭 택시를 잡아주는 상냥함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5.

 

멀리 출장을 갔던 선배가 돌아왔다

큰 거래를 따서 돌아온 선배를 상사와 동료들이 반기며 축하 회식을 하자는 말이 나왔다

고깃집에서 1차 회식을 하고 2차까지 갈 사람들을 모으는 상사에게 슬쩍 인사하고 무리를 빠져나왔다.

오늘은 또 어떤 컨셉트일까, 하고 기대하며 bar로 향하려는 발이 선배의 부름에 멈췄다.

 

?”

칸나, 2차 안 가?”

…, . 오늘은 좀 피곤해서.”

“…그래? 그럼 할 수 없네. 칸나도 2차 가면 좋을 텐데….”

죄송해요…, 그럼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 조심히 들어가.”

.”

선배에게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정말 죄송해요, 선배

마음속으로 사과하며 bar로 향했다.

 

 


가게는 내 예상대로 어제와 분위기가 달랐다

오늘은 보라색 등에 잔잔한 재즈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고양이 카페처럼 고양이가 여기저기에 가득했다

바닥에 누워있는 고양이의 꼬리를 밟지 않게 조심조심 들어가 카운터에 앉았다.


안녕.”

안녕하세요.”

짧은 인사를 건넨 바텐더 씨는 보라색 티셔츠에 츄리닝 바지 차림이었다

바빠 오픈 준비를 못 했는지 슬리퍼를 신고 검은 앞치마만 두루고 있었다

바텐더 씨가 카운터에 올라온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오늘은 늦게 왔네.”

바텐더 씨의 질문에 시각을 확인했다

저녁 10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늘은 회식이었어요.”

회식이었는데도 왔어? 술 먹었을 거 아냐.”

그래도 오고 싶었어요.”

“…그래. 그건 고맙네.”

바텐더 씨는 작게 인사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근데, 오늘은 그만 가봐.”

? 왜요?”

오늘은 마티니 데이. 술 마시러 오는 손님들이 많으니까.”

바텐더 씨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양이로 가득한 좌석엔 정장이나 드레스를 입은 커리어 우먼들이 앉아있었다

모처럼 왔는데 이대로 돌아가긴 싫었다.


, 천천히 마실게요.”

얼굴 빨간데?”

.”

“….”

바텐더 씨의 말에 손을 볼에 갖다 댔다

확실히 뜨겁다. 돌아가야 하나…. 


축 어깨를 늘어뜨린 나를 본 바텐더 씨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 몸을 돌려 각종 술이 있는 진열대 아래 작은 냉장고에서 물통 하나를 꺼냈다

물처럼 보이는 투명한 음료가 물통 안에서 조명을 받아 빛났다

긴 원통형 유리잔에 물통에 들어있던 음료를 부어 빨대를 꽂아 내 앞에 내밀었다.


내가 마시려고 만든 거지만…, 한 잔 줄게. 이것만 마시고 가.”

이게 뭐예요?”

무알콜 모히토. 싫으면 할 수 없고.”

마실게요! 감사합니다!”

서둘러 인사하고 모히토를 빨아들였다

시큼한 맛 끝에 은은한 민트 향이 퍼졌다

너무 강하지도 않고 딱 적당한 민트 향에 기분도 시원해졌다

무엇보다 맛있다

빨대에서 입술을 떼지 않고 쭉- 모히또를 마시고 있자, 손님 한 분이 내 옆에 앉았다.


바텐더 씨-, ‘블랙 마티니’.”

손님의 주문에 바텐더 씨가 세모꼴 유리잔을 꺼냈다

진열대에서 술을 하나 꺼내 잔에 반 붓고, 또 다른 술을 반 부었다

마무리로 꼬치에 꿴 올리브를 넣어 손님 앞에 냈다

블랙 마티니라고 한 칵테일은 정말 까맸다

까만 술이 있는 것이 신기해 빤히 바라보고 있자 손님이 키득 웃더니 내 앞에 술잔을 내밀었다.


한 모금 줄까?”

….”

독해 보였지만,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가볍게 인사한 후, 아주 조금 술을 입에 머금었다.


우윽!”

그동안 마셨던 칵테일과 달리 단맛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The 술맛. 아니 알코올 맛

눈썹을 있는 대로 찡그리고 신음하자, 검은 드레스를 입은 손님이 쿡쿡 웃으며 아가씨는 아직 술 마실 줄 모르네-.” 하고 말을 흘리고 잔을 들고 좌석으로 돌아갔다.


그러게 왜 마셔…. 이거나 마셔.”

….”

모히토를 가리키는 바텐더 씨의 핀잔에 푹 한숨을 내쉬었다

남은 모히토로 입가심을 하고 시선을 돌리자, 카운터에 앉아있던 고양이가 다가왔다

야옹- 하고 울며 내 무릎에 내려온 고양이가 제 안방마냥 벌렁 누웠다

눈을 지그시 감은 게 꼭 웃는 것 같아서 피식- 미소가 새어 나왔다

부드러운 고양이 배를 쓰다듬자, 고양이가 골골- 목을 울렸다

은은한 재즈 음악 아래서, 바텐더 씨는 특별히 말을 걸지 않았다

편안한 침묵 속에서 고양이를 매만지는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6.

 

칸나, 오늘 같이 마시러 안 갈래?”

일을 모두 마치고 사무실을 나오려는 나를 붙잡은 선배의 말에 샐쭉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선배는 내가 거절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는지 놀란 얼굴로 내 어깨에 팔을 턱- 하니 올리고 푸욱- 땅이 꺼지라 큰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칸나랑 놀기 힘드네~. 오늘도 퇴짜 맞을 줄은…. 무슨 약속 있어?”

…. 선약이, 있어요.”

이젠 완전히 익숙해진 가게의 분위기와 항상 가게 앞에서 나를 배웅해주는 바텐더 씨를 떠올렸다

오늘도 빨리 바텐더 씨가 추천해주는 맛있는 칵테일을 먹고 싶단 생각에 초조하게 선배를 올려다보았다

선배는 나를 보며 어휴~.” 하고 또 한숨을 내쉬고 한 발짝 물러났다.


그럼 일요일은? 약속 있어?”

, 없는데요….”

그럼 일요일에 같이 영화 보자. 마침 할인권이 생겨서 말이야. 어때?”

 

 

생각지도 못한 선배의 제안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대답을 얼버무리고 나왔다

가게로 향하는 길목에서 휴~, 하고 한숨을 내던졌다.


선배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날 초대한 걸까? 이건 기회인가

아니면 역시 거절하는 게 좋을까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다 할만한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선배가 무슨 생각인지도 알 수 없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무의식적으로 가게 문을 열었다.


어서 옵쇼~!!”

술집 같은 커다란 외침에 놀라 숨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게 안은 전체적으로 노란색 등이 깔려있고, 흥겨운 리듬을 자랑하는 삼바가 흐르고 있었다

어제는 그렇게나 조용하고 침착했던 분위기가 하루 만에 180도 바뀌었다

매일 보면서도 홱홱 변하는 분위기에 감탄을 감추지 못하며 카운터에 앉았다.


! 오늘도 와줘서 감사해유~!”

구수한 사투리로 나를 맞이해준 바텐더 씨는 손을 가릴 정도로 소매가 긴 노란 셔츠와 검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빛이라도 나는 것처럼 활짝 웃는 바텐더 씨에게 미소로 대답했다

바텐더 씨는 눈을 깜빡이며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아~? 오늘은 기운이 없네~?”

바텐더 씨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고민하는 일이 있다고 말하자 바텐더 씨가 그렇구나~! 그럼 맛있는 칵테일을 줄게! 뭐가 좋아~?” 하고 물어왔다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추천해주세요.”

아이! 맡겨주세유!”

바텐더 씨는 쾌활하게 대답하고 노란 뚜껑의 셰이커를 꺼냈다

셰이커에 노란 주스를 넣고 얼음을 함께 넣었다

뚜껑을 닫은 바텐더 씨가 카운터 아래에서 빨간 뚜껑의 셰이커와 파란 뚜껑의 쉐이커를 꺼내 품에 안았다.


얍얍!!”

기합과 함께 3개의 셰이커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놀라 턱을 떨어뜨린 나와 달리 바텐더 씨는 너무나 능숙하게 셰이커를 받아 빠른 속도로 저글링을 하기 시작했다

공중에 떠오른 셰이커가 노란빛을 반사하며 바텐더 씨의 손에 안착했다

3개의 셰이커를 빙빙 돌려가며 다리 아래로 손을 넣어 받고, 손을 바꿔 던지고, 등 뒤로 받고…. 

서커스에서나 볼 수 있는 아슬아슬한 묘기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한 번에 공중으로 던진 셰이커를 전부 받아 긴 유리잔에 칵테일을 붓고 빨대를 꽂은 바텐더 씨가 밝게 웃으며 외쳤다.


신데렐라 나왔슴닷!”

시선을 뗄 수 없었던 신기한 묘기에 감탄과 함께 손뼉을 치고 칵테일을 받아 들었다

-란 칵테일이 어쩐지 귀여웠다

빵글 웃으며 무알코올이라고 말하는 바텐더 씨에게 다시 감사 인사를 하고 빨대를 입에 물었다

한 모금 빨아들이면 상큼한 파인애플과 오렌지 향이 입안에 퍼졌다

달콤하게 혀 위에서 톡톡 튀는 상큼한 과일 향에 미소를 활짝 피우고, 머리를 아프게 만드는 고민을 저 멀리 날려버렸다

답답했던 속이 한결 시원해져 방긋 웃자, 바텐더 씨도 나를 보며 함박웃음을 보냈다.


다시 빨대를 입에 문 순간, 좌석에 앉아있던 손님 한 분이 바텐더 씨를 향해 손을 흔들며 외쳤다.


오늘 ○○팀이 이겼다지?”

아이!! 이겼슴닷!!”

○○팀이라면 국내 야구 리그에서 만년 꼴찌를 하는 약소 팀이었다

선수 층이 얇은 것도 아니고, 선수들의 실력이 모자란 것도 아닌데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는 불운의 팀

정말 무슨 저주라도 받은 것인지 매년 꼴찌에, 리그가 시작되면 실력 있는 선수들이 꼭 부상을 입었다

○○팀을 응원하는 팬들은 보살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내가 그 보살 중 하나였다.


오늘 경기 결과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손님의 말에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내 경기 결과를 검색했다

5연패를 끊고 드디어 오늘! 1승을 차지했다.

게다가 부상 선수도 없다

정말로 ○○팀이 이겼다

보고도 믿어지지 않아서 몇 번이고 화면에 비친 스코어를 확인했다.


! 혹시 ○○팀 응원하고 있슴까!?”

바텐더 씨가 반갑게 외쳤다

정말 오랜만에 딴 1승에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 아빠가 이 팀을 좋아하셨어요.”

나도! 나도 ○○팀 좋아함닷!”

바텐더 씨의 외침에 나도 모르게 활짝 웃었다

꼴찌 팀인 ○○팀을 좋아하는 팬은 찾기 힘들어,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어떤 선수를 제일 좋아하냐는 내 질문에 바텐더 씨가 진열장에 있던 사인볼을 보여주었다

마침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수여서 바텐더 씨와 나는 그 사인볼을 가지고 거진 1시간을 떠들었다

야구를 좋아하는 바텐더 씨는 손님들과 함께 주말마다 동네 야구를 하는 듯했다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전혀!” 하고 밝은 미소가 되돌아왔다

주변을 밝히는 미소에 나도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후후 웃고 있으면 바텐더 씨가 나를 보더니 씨익- 웃었다.


기운은 좀 났슴까아~?”

어리게 웃으며 묻는 바텐더 씨의 질문에 괜히 얼굴이 뜨거워졌다

조금 전까지 신나게 떠들어대던 입을 닫고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있지-, 오늘의 나는 고민을 들어주지 못했지만, 분명 내일은 고민도 듣고 좋은 조언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내일도 꼭 와주세머슬~, 허슬~!”

묘한 어미를 힘차게 외치며 바텐더 씨가 두 팔을 위로 올려 거세게 흔들었다.

넘쳐나는 바텐더 씨의 기운을 받아 나도 힘차게 !” 하고 대답했다.

 

 

 

 

 

7.

 

어제 바텐더 씨에게 받은 기운을 용기로 치환해 선배와 함께 영화를 보기로 했다

문자를 보내자마자 약속 장소와 시간을 알리는 답장이 날아와 조금 당황했다

스마트폰을 꼭 쥐고 벽에 등을 기댔다.


이래도 되는 걸까…? 

문득, 오늘도 와달라는 바텐더 씨의 말이 떠올라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 7

가게는 회사 근처에 있으니까 지금 준비하고 출발하면 9시 전엔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깊은숨을 내쉬고 몸을 일으켰다.

 

 

 

딸랑- 하고 가게 문을 열자, 또 어제와 다른 분위기가 나를 반겼다

분홍빛 조명에 bar에 어울리는 최신 pop이 흘렀다

손님은 남녀 반반, 어제처럼 발랄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착 가라앉은 분위기도 아니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을 때의 즐거움이 느껴지는 그런 분위기였다

매일 왔지만 올 때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오늘도 일변한 분위기에 바쁘게 고개를 돌리며 가게 안을 둘러보고 카운터 테이블에 앉았다.


어서 와! 오늘도 와줘서 고마워~!”

한쪽 눈을 찡긋하며 환영하는 바텐더 씨는 분홍 셔츠를 입고 멜빵과 짧은 흰색 앞치마를 매고 있었다

요즘 젊은이 특유의 분위기가 바텐더 씨에게서 풍기고 있었다

바텐더 씨는 컵을 정돈하던 손을 멈추고 나를 마주 보며 곤란한 듯이 웃었다.


매일 와 줬는데, 제대로 고민도 들어주지 못해 미안해.”

, 아니에요! 어제도 엄청 좋았어요.”

손사래 치며 서둘러 대답하다 바텐더 씨가 그거 다행이네-.” 하며 쿡쿡 웃었다

그리곤 눈을 반짝 빛내며 내 앞에 서서 흥미진진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고민이 있어서 왔어~?”

…. 그게,”

나는 바텐더 씨에게 고민하고 있던 것을 전부 털어놓았다.

리나에게도 이렇게 자세히 이야기한 적 없었는데, 왠지 이곳에선 마음이 편해져 꼭꼭 감추고 있었던 마음을 전부 풀어낼 수 있었다.


내가 선배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호감이 있었던 것, 선배가 승진해 직속 상사가 되었을 때 선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던 것, 선배는 항상 내게 친절하게 대해주는데 내가 착각하고 있는지 아닌가 고민하는 것, 선배가 나를 좋아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것, 사내연애는 좋게 끝날 리 없으니 마음을 접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 그리고 내일 당장 선배와 약속이 있는 것 등등….


바텐더 씨는 중간중간 , .” 하고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헤에-.” 하고 짧은 탄성을 흘리며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이야기를 마치자 목이 칼칼했다. 잘게 기침을 하자 바텐더 씨가 빙그레 웃으며 허리를 폈다.


그렇네-, 정말 고민되겠다. 일단 칵테일 주문받을게. 내가 추천해도 될까?”

바텐더 씨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바텐더 씨는 애교 섞인 미소와 함께 분홍색 뚜껑의 셰이커를 꺼내 술을 넣고 시럽 한 숟갈을 넣었다

경쾌하게 셰이커를 흔들고 둥근 유리잔에 따랐다.


-! ‘핑크 레이디나왔습니다. 도수가 조금 높으니까 조심해서 천천히 마셔.”

. 감사합니다.”

핑크색의 귀여운 칵테일을 보며 빙긋 웃었다. 살짝 한 모금 들이키자 약간 달콤하면서도 술맛이 뒷맛을 깔끔하게 붙잡았다

오늘도 ~!” 하고 음미하며 맛있는 칵테일에 감사 인사를 건네자 바텐더 씨가 별말씀을요.” 하고 대답하고 머뭇거리며 입을 뗐다.


저기, 내 말이 도움이 될지 어쩔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 그 선배는 네게 관심이 있는 게 아닐까? 관심이 없다면 먼저 나서서 도와주거나 귀중한 휴일에 둘이서만 만나자는 말도 안 꺼낼 거고….”

“…만약 그렇다면 기쁘지만, 그래도 역시 사귈 수는 없겠죠? 사내연애고…. 상사나 주변 눈치도 있고…. 사내연애를 피하라는 말이 괜히 나온 건 아닐 테니까요.”

-….”

바텐더 씨는 눈을 지그시 감고 고민하는 듯하더니 눈을 번쩍 뜨고 내 앞에 놓인 칵테일을 보며 말했다.


그 칵테일, ‘핑크 레이디말이야. 핑크 레이디라는 연극의 주연 여배우에게 바쳐졌던 칵테일이야. 나는, 네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너라고 생각해. 제가 주연인데 왜 주변 조연의 눈치를 봐야 해? 주연 여배우처럼 당당하게! 주변 시선은 신경 쓰지 말고, 들리는 말도 무시하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보는 건? 선배가 다가오길 기다리지 말고, 달콤하지만 강한 이 칵테일처럼 네가 먼저 당당하고 당돌하게 접근해보는 건 어때?”

바텐더 씨의 진심 어린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바텐더 씨의 말에 틀린 부분은 없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바텐더 씨는 내 얼굴을 보더니 생긋- 웃고는 내일 준비하려면 일찍 들어가야겠네. 그것만 마시고 가 봐.”

!”

힘차게 대답하자, 바텐더 씨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내일은 가게 휴일이야. 월요일에 데이트 어떻게 됐는지 결과 알려줘~!”

.”

데이트란 단어에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핑크 레이디를 다 마시고 망설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도 바텐더 씨는 가게 앞으로 나와 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었다.

 

 

 

 

 

8.

 

오소마츠 형은 좀! 처음 오는 손님이 있으면 바로바로 이야기 해 달라고!”

~? 별로 괜찮잖아? 어차피 얼굴 똑같고~.”

적어도 언급 정도는 해 줘라, 형님.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하하, 그건 먄~.”

이번에 왔던 손님은 꽤 귀엽던데….”

? 뭐야~? 쵸로 씌 반했어?”

안 반했어!!”

고양이도 잘 만지던데….”

야구도 좋아한다고 했어!!”

그리고 다음 주에 또 온다고 했으니까, 데이트 어땠는지 꼭 물어봐! 오소마츠 형!”

? 들어도 몰라, 그런 거~.”

그냥 고개만 끄덕여!!”

예이~.”

오소마츠 형 때문에 나중에 당황하는 거 아닌지 몰라.”

그 레이디-는 아직도 우리가 육둥인 걸 모르니까 말이야.”

좋잖아~? 나중의 즐거움으로! 우리 단골들은 다 알고 있고. , 그치만 우리가 육둥인 거 알게 된 날이 월요일이었으면. 반응 보고 싶고.”

정말이지, 형님은….”

오소마츠 형은 진짜 제멋대로야….”





* 단편에 나온 칵테일의 더 자세한 정보가 알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링크 첨부해두겠습니다^^

맨해튼, 블루 하와이, 블루 문, 그래스호퍼, 모히토, 블랙 마티니, 신데렐라, 핑크 레이디


* 50제는 내일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ㅎ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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