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입니다!


* 주의) 전투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잔인한 표현이 다소 있습니다.


* 공미포 12,423자.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빗발치는 화살을 진열을 맞춰 방패를 들어 막아내고, 견제 사격을 한다.

동의 제국과 붉은 왕국, 두 나라에서 사용하는 석궁의 사정거리는 거의 비슷

위력 또한 대동소이했다

동쪽 소국들을 차례로 정복한 제국은 붉은 왕국과 깊은 교류를 하던 철의 나라를 집어삼켰다

철의 왕국에는 일류로 손꼽히는 장인들이 많았고, 철의 왕국을 정벌함과 동시에 제국의 무기는 붉은 왕국과 비교해도 지지 않을 정도로 큰 발전을 이루었다

보병이 들고 있는 창과 검, 그리고 갑주까지

모든 장비, 무기가 비슷한 탓에 전쟁은 한쪽으로 크게 기울지 않고 지지부진한 소모전을 이어갔다

대체 전쟁이 언제 끝나는지, 누구의 승리로 끝날지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불투명한 미래의 일

피와 쇠와 비명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오소마츠와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는 또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2.

 

한껏 따뜻해진 날씨

겨우내 불이 피워져 있던 거실 벽난로는 텅 비어 있다

햇살을 받아 붉은색의 꽃을 피운 화단을 멍청히 응시했다

오소마츠가 전장으로 떠나고 벌써 3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전장에선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스스로 마음을 달래며 두 손을 모았다


제발, 오소마츠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하루 중에도 수십 번, 오소마츠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불안해져 호흡이 거칠어지고, 곧 괜찮을 것이라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신에게 기도하기를 반복했다


처음엔 이렇지 않았는데

처음 만나고 오소마츠가 다시 전장에 갔을 때는, 이렇게 걱정하지 않았다

불안하지 않았다

오소마츠를 이토록 그리워하지 않았다


가슴 깊숙이에 커다란 가시가 박힌 것처럼 시시때때로 심장이 아프다

오소마츠에 대한 것을 잠시라고 잊어보려고 해도 가슴에 박힌 가시가 그것을 방해한다

심장이 뛸 때마다, 가시가 마음을 찌른다

이 아픔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지만,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가시는 오소마츠가 아니면 뺄 수 없을 것 같다.


카라마츠 형아!!”

두웅-!! 하고 커다란 착지음을 내며 쥬시마츠가 훌쩍 거실 안으로 점프해 들어왔다

활짝 웃으며 손에 든 물 한 컵을 입에 털어 넣더니 귀와 머리에서 물줄기를 뿜어냈다

-, 굉장해, 쥬시마츠

솔직히 놀라며 손뼉을 쳤지만, 쥬시마츠의 얼굴이 애처롭게 일그러졌다

—, 그래. 알고 있어, 쥬시마츠

상냥한 너는 나를 웃게 만들어 주고 싶었던 거지

하지만, 미안해

오소마츠가 전장으로 나간 뒤로, 제대로 미소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를 걱정하는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를 안심시켜주려고 억지로 입술을 끌어올리면 오소마츠의 미소가 떠오른다

계속 가까이에 있었던 그 미소가 더는 옆에 없다고 생각하면 얼굴 근육이 딱딱해져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카라마츠 형아….” 하고 풀죽은 쥬시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미안하다, 쥬시마츠.” 하고 사과하자, 쥬시마츠가 붕붕 고개를 힘껏 저으며 다시 밝은 미소를 돌려주었다

씩씩한 쥬시마츠, 나의 자랑스러운 동생

힘차게허슬허슬~ 머슬머슬~!!” 하고 기합을 주며 다른 묘기를 보여주려는 쥬시마츠 뒤로 거실로 뛰어든 토도마츠가 보였다.


카라ㅁ, 공주님!! 큰일 났어!!”

토도마츠? 무슨 일이야?”

사색이 돼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토도마츠를 보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뛰어왔는지 헉헉, 거친 숨을 내뱉으며 울상을 지은 토도마츠가 다가왔다.


푸른 왕국에서 지원해주던 보급이 끊겼대!!”

?”

전장에 보내질 보급이, 없대!!”

“….”

놀라 입이 굳어버렸다. 큰 눈동자를 일그러뜨리고 외친 토도마츠의 말이 머릿속을 배회했다


보급이 끊겼다? 전장에 보내질 보급이…? 

그럼, 오소마츠는?

그럼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을 오소마츠는?


군사 운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보급이라는 것은 오소마츠에게 들어 알고 있다

적과 싸우려면 힘이 있어야 하고, 그 힘은 당연히 보급이 충분해야 발휘될 수 있다

전장에는 수만의 병사들과 오소마츠가 있다. 그런데 어째서 보급이.


편지는?”

오지 않았어.”

푸른 왕국의 아버지에게서 온 편지가 있냐 묻자, 토도마츠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

푸른 왕국과 붉은 왕국은 동맹국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동맹을 더 돈독히 만들기 위해 내가 지금 이곳에 있는 것 아니었나?

대체 왜 푸른 왕국은 멋대로 보급을 끊어버린 건가…. 

모자란 머리를 굴려도 답이 나올 리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오소마츠가 위험해….”

입 밖으로 튀어나온 본심에 토도마츠가 손을 휘두르며 황당하다는 얼굴로 외쳤다.


지금 그걸 걱정할 때야!?”

토도마츠의 말은 지극히 올바른 것이었지만, 이미 내 머릿속은 오소마츠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3.

 

급히 소집된 관리들과 귀족들이 심각한 얼굴로 서로를 살폈다

푸른 왕국의 보급 중단으로 열린 긴급 어전 회의

왕은 약속된 날짜가 지났는데도 푸른 왕국에서 보급이 올라오지 않았다는 보고에 쾅! 왕좌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응당 보급이 올라와야 하거늘!!”

불과 같은 왕의 분노에 보고서를 읽던 관리가 어깨를 움츠렸다.

함께 보고를 듣던 귀족들과 관리들도 매섭게 분노한 것은 당연했다.


전시에 대체 무슨 생각인 것인지!”

푸른 왕국은 우리를 우습게 보는 것인가!!”

폐하, 지금 당장 푸른 왕국을 치소서!”

감정적으로 외치는 귀족들의 발언에 이치에 밝은 관리들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동의 제국과 전쟁이 한창인 이 시점에 푸른 왕국까지 치는 것은 최악의 수였다

치를 떨며 당장이라도 푸른 왕국에 진격할 것처럼 고함치는 귀족들을 뒤로하고 지혜로운 관리 하나가 왕에게 간언했다.


폐하, 무슨 사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먼저 사신을 보내 일의 정황을 알아본 후, 판단하소서.”

늙은 관리의 말에 왕이 분노를 가라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발이 빠른 자를 푸른 왕국에 보내라 명한 왕이 귀족들을 내려다보며 명했다.


부족한 보급은 국고와 그대들의 재산에서 충당하겠다. 그대들에겐 당연히 필요 이상으로 창고에 쌓아둔 곡식이 있을 터. 나라의 위급 상황에 이 명을 반대할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귀족들과 국고에 남아있는 곡식의 양을 파악하고 전장에 보내라! 절대로 전장의 병사가 굶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또한, 서쪽의 소국에 서신을 보내 도움을 요청한다.”

자신들의 재산을 내놓으라는 왕의 명령에 당연히 귀족들은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왕명을 반대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귀족들이 고개를 숙이고, 왕의 명령은 일초도 지체되지 않고 우수한 관리들에 의해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푸른 왕국에 보낸 사신은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말을 바삐 달린다면 푸른 왕국에 3일이면 도달할 수 있었다

푸른 왕국에 들렀다가 돌아와도 충분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푸른 왕국에선 그 어떤 소식도 돌아오지 않았다

당연히 귀족들은 더욱 분노해 푸른 왕국을 처단하자며 목소리를 높였고, 관리들도 고개를 저으며 귀족들을 반대하지 않았다

푸른 왕국을 향한 분노는 푸른 왕국 출신인 제 2 왕비와 카라 공주에게 퍼졌다

특히 카라 공주가 푸른 왕국이 보낸 첩자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귀족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이 솟아 있었다

귀족들의 성화와 관리들의 침묵 속에서 왕의 한마디에 동맹이었던 붉은 왕국과 푸른 왕국이 적이 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순간, 어전 회의가 열리고 있는 방 안으로 뛰어들어온 병사가 전장의 소식을 알렸다.

 

 

 

서둘러 별궁으로 발을 옮긴 마츠요가 카라마츠를 보자마자 두 손을 맞잡았다.


일이 이상하게 되었구나….”

푸른 왕국의 보급 중단으로 마츠요와 카라마츠를 감시하는 눈이 생겼다

오소마츠의 명령으로 적은 수의 하녀와 시종들만이 드나들던 별궁에 낯선 하녀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카라마츠가 어디에 있건 카라마츠를 주시하는 하녀들의 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그것은 마츠요도 마찬가지였다

카라마츠는 여전히 푸른 왕국의 아버지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것에 초조해하고 있었다

왜 보급이 끊긴 것인지, 카라마츠도 알지 못했다.

카라마츠의 마음에 가득한 초조와 불안과 걱정은 자신과 동생들과 오소마츠를 향해 있었다

마츠요의 얼굴에 맺힌 깊은 주름에 카라마츠는 죄송스러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짙은 눈썹을 늘어뜨리고 괴로운 얼굴로 마츠요에게 사죄하는 카라마츠를 마츠요가 조용히 보듬었다

대체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 것인가, 절망하는 카라마츠와 마츠요 앞에 마츠요가 부리는 시녀 하나가 뛰어왔다.


왕비님! 전장에서 방금 막 병사가…!”

무슨 일이니.”

벌벌 떨며 불안하게 눈동자를 흔드는 시녀에게 마츠요가 침착하게 물었다

초연히 서 있는 마츠요가 시녀가 전하는 소식에 허무하게 무너져내렸다.

 

에드윈 왕자님이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입니다!!!”

 

쓰러지는 마츠요를 카라마츠가 급히 지탱했다

시녀들도 달려와 마츠요를 부축해 거실 소파에 마츠요를 눕혔다

시녀들의 간호를 받으며 오소마츠의 이름을 연호하는 마츠요를 보며, 카라마츠가 망연히 허공을 응시했다.

 

 

 

 

 

4.

 

어떻게든 전선을 밀고 들어오려는 적군을 막아내고 막사로 돌아오자, 이치마츠가 울며 내게 뛰어왔다.


쵸로마, 츠 형…, 흐윽….”

이치마츠?! 왜 그래? 어디 다쳤어??”

아냐, 내가 아니, …. 오소마츠 형이…!”

….”

뚝뚝 커다란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는 이치마츠는 군의관에게 맡기고, 오소마츠 형의 막사로 뛰어들어갔다.


쵸로마츠….”

적기사단과 군의관에게 둘러싸인 오소마츠 형이 나를 보자마자 쓴웃음을 지었다

군의관의 손에 들려있는 오소마츠 형의 왼팔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깊게 파인 상처 사이로 끊임없이 붉은 선혈이 흘러내리고 오소마츠 형의 갑옷은 온통 피로 젖어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심각한 상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를 갈며 오소마츠 형에게 다가가이 멍청아!!” 하고 외쳤다. 치솟는 분노로 눈앞이 빨갛다.


이 멍청한 장남 새끼갓!!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크게 다친 거야!! 절대 죽지 말자고 다짐한 거 아니었어!?”

피가 역류해 이성이 부서졌다. 격분해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거르지 않고 오소마츠 형에게 쏟아부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소마츠 형을 잃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도저히 화를 참을 수 없었다

한참을 오소마츠 형에게 폭언 아닌 폭언을 퍼붓고, 그래도 분이 가시지 않아 씩씩대고 있는 내게 적기사단 중 하나가 사정을 설명했다

적군의 화살에 이치마츠가 타고 있던 말이 당했다

낙마해 그대로 적군의 일격에 죽을 위기였던 이치마츠를 구하려다 오소마츠 형이 다치게 된 거라고

기사의 설명에 분노로 뜨거워진 머리가 지끈거렸다. 시야가 어지럽다

오소마츠 형다운 이유에 허탈한 웃음을 흘리면서도 분노를 사그라지지 않았다.


다치지 말고 구하라고.”
차갑게 내뱉은 말에 오소마츠 형이 멋쩍게 웃으며그러게.” 하고 가볍게 맞장구쳤다.

헤실- 웃는 얼굴에 더 열이 받아뭐가 좋다고 웃어!?” 하고 화를 냈다.


쵸로마츠….”

나직이 오소마츠 형이 나를 달래려는 순간, 막사 안으로 들어온 이치마츠가 눈물로 너덜너덜해진 얼굴을 하고 오소마츠 형에게 매달렸다.


미안해, 오소마츠 형. 나 때문에……. 내가, 내가 쓰레기라서, 오소마츠 형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수도 없이미안해라는 말을 반복하며 흐느끼는 이치마츠를 오소마츠 형이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그런 말 하지 마, 이치마츄~. 횽아는 이치마츠가 무사해서 기뻐.”

흐으윽~~!!”

오소마츠 형의 다정한 말에 이치마츠가 더 크게 울부짖었다

옆에서 보고 있기 힘들 정도로 엉망으로 우는 이치마츠를 오소마츠 형이 한 팔로 안고 토닥였다

이치마츠의 흐느낌이 서서히 잦아들 무렵, 오소마츠 형이 보급의 상태를 물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며칠 전부터 들어오는 보급의 양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그동안 비축해둔 것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한계가 멀지 않았다.

큰 한숨을 내쉬고 여전히 보급이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렸다

붕대를 힘껏 감는 군의관의 손에 맞춰 오소마츠 형이 인상을 찡그렸다

하얀 붕대가 단단히 감긴 팔을 간신히 내린 오소마츠 형이 제 허리에 매달려있는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치마츠, 레드 버로우에 다녀와.”

“…?”

가서 왜 보급이 줄어든 건지 알아보고, 확보할 수 있는 대로 식량을 끌어모아서 전장으로 가지고 와줘.”

, 싫어!! 오소마츠 형, 다쳤잖아!”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이치마츠를 오소마츠 형이 쓴웃음으로 응시했다. “

이치마츄~.” 하고 오소마츠 형의 다정한 목소리가 이치마츠를 어루만졌다.


내가 믿고 맡길 수 있는 건, 이치마츠뿐이야. 부탁할게, 이치마츠. 그리고 엄마도 걱정하고 있을테고.”

…!”

오소마츠 형의 말에 이치마츠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바로 옆에 있는 우리에게만 들릴 정도로 아주 작게오소마츠 형은, 치사해….” 하고 말을 흐린 이치마츠가 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준비를 하겠다며 이치마츠가 막사 밖으로 나가자마자, 우리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있던 군의관이 오소마츠 형 앞으로 걸어왔다.


응급처치는 했지만, 상처가 깊습니다. 에드윈 왕자님도 레드 버로우에 가셔서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단호한 군의관에 말의 오소마츠 형이 눈썹을 찌푸리며.” 하고 대답했다

꾸벅 허리를 숙이고 막사를 나가는 군의관을 배웅하고 오소마츠 형을 가만히 응시했다

군의관이 저렇게 말할 정도의 부상. 당장 본성으로 돌아가 유능한 주치의에게 치료를 받아도 모자랄 판에 전장에 남으려고 하는 오소마츠 형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어쩌려고.”

차가운 목소리에 오소마츠 형이 멋쩍게 웃으며그렇게 화내지 마.”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한쪽 팔을 다쳤다

방패를 들 수 없는 상태로 전장에 나갔다간 순식간에 적의 칼에 뚫리고 말 것이다

고개를 내리고 침묵을 유지하는 모습이 뭔가 생각이 있는 것 같아, 치솟는 짜증을 억누르고 오소마츠 형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첩보가 들어왔어. 가까운 시일 내에 대규모 공격이 들어올 거라고. 그때, 전 병력을 지휘하는 내가 없어 봐. 어떻게 될 지는 불 보듯 뻔하지. 적어도, 그걸 막아내고 나서 레드 버로우로 갈 거야.”

고개를 들어 올린 오소마츠 형의 단호한 눈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 망할 형은 이미 결단을 내렸다

고집불통인 이 바보 장남의 결정을 내가 말릴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래, 대규모 공격이 온다면 오소마츠 형이 필요하다

내가 오소마츠 형을 대신할 수는 없다

왜 하필 이럴 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부글부글 짜증이 몰려온다

결국, 화풀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이럴 때 다치냐며, 솟구치는 짜증을 오소마츠 형에게 쏟아부었다

진지에 있는 모든 약을 소진하는 한이 있더라도 오소마츠 형의 상처를 더 심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오소마츠 형에게 제발 조심하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막사를 나왔다.

 

 

 

 

 

5.

 

나를 앞질러간 병사가 레드 버로우에 오소마츠 형의 부상 소식을 알리고 3일 후, 레드 버로우에 발을 들였다

이미 성안은 오소마츠 형의 부상 소식으로 떠들썩했고, 먼저 왕에게 달려가 전장의 근황과 보급 문제를 보고했다

이미 국고와 귀족의 재산으로 모아둔 보급을 준비해두었으니 가져가라는 왕의 말에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집무실을 나왔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엄마의 시녀가 왕비님은 별궁에 있다는 말을 전했다

오소마츠 형이 다쳤단 소식으로 분명 엄마도 많이 놀랐겠지.

나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전장에서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을 오소마츠 형을 떠올리고, 기운을 내 별궁으로 향했다

지금 내게 슬퍼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빨리 엄마에게 오소마츠 형이 괜찮다는 말을 전하고 보급을 전장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 된다

오소마츠 형이 나를 믿는다고 했으니까!

 

 

별궁에 도착하자마자 급히 뛰어나와 나를 맞이한 엄마가 불안한 얼굴로 내 손을 움켜쥐었다.


이치마츠, 오소마츠는…, 괜찮지?”

. 괜찮아요. 큰 부상 아니야.”

그래, 그렇구나. …. 우리 이치마츠는 엄마한테 거짓말 안 하니까.”

당장 죽을 상처는 아니니까, 거짓말한 게 아니라고 스스로 타이르며, 큰 한숨과 함께 쓰러질 듯이 주저앉는 엄마를 지탱했다

서둘러 다가온 시종들과 함께 안심해 잠든 엄마를 침실로 옮겨 눕히고 거실로 나와 바로 출발할 준비를 했다.

이곳에서 1 1초도 낭비할 수는 없다

보급이 준비되었다는 시종의 말에 엄마의 시녀에게 말을 전하고 별궁을 나오려다 내 팔을 붙드는 힘에 고개를 돌렸다

내 팔을 강하게 잡고 눈썹을 한껏 찌푸린 카라 공주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실은, 심각한 거 아닌가?”

누구를 묻는 거냐는 질문은 할 필요 없었다

내 팔을 붙잡은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거짓말이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물을 정도로 카라 공주가 내뱉은 말은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팔을 흔들어 공주의 손을 털어내고 눈을 돌렸다.


괜찮아, 정말로.”

내 눈을 보면서 대답해줘.”

“….”

이치마츠.”

“…하아~.”

내게 박힌 공주의 눈길이 따갑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 공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대답하려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이 고릴라 공주는 거짓말임을 알아챌 것이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양손을 들어 올려 항복했다

포기다, 포기.

아직도 나를 빤히 바라보는 카라 공주에게서 슬쩍 얼굴을 돌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는지 카라 공주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래지더니 더 강하게 내 팔을 붙잡았다.


나도 데려가!!”

?!”

공주가 내뱉은 말에 있는 대로 인상을 찌푸리며 외쳤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내뱉냐는 눈으로 쳐다보자, 공주가 다시 크게 외쳤다.


나도, 전장에 가겠다!!”

공주의 외침에 나를 배웅하러 나왔던 쥬시마츠와 토도마츠가 달려왔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카라 형아, 안됨닷!!”

황당해하며 카라 공주의 등을 때리는 토도마츠와 눈을 크게 뜨고 붕붕 공기가 울리도록 고개를 젓는 쥬시마츠의 만류에도 공주의 결심은 굳건했다.


부탁한다, 이치마츠.”

힘있게 빛나며 가만히 나를 응시하는 카라 공주를 바라보았다

짙은 눈썹 아래 반짝이는 눈을 마주하자 문득, 전장에 있는 오소마츠 형이 떠올랐다

공주와 함께 가면…, 조금은 힘이 날까….


“…알겠어.”

바라던 대답에 공주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6.

 

토도마츠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카라마츠는 새로 징집된 병사 중 한 명이 되었다

이치마츠의 부관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는 그 방법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아직 얼굴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카라마츠는 엄연한 푸른 왕국의 공주.

섣불리 얼굴을 드러냈다가 후일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평민 출신으로 신분을 숨기고, ‘(Carl)’이라는 가명을 써, 일반 병사로서 이치마츠와 함께 전장으로 향했다

카라마츠를 감시하던 눈을 속이기 위해 쥬시마츠가 카라마츠의 대역을 자진했다

똑같은 얼굴이라 다행이라고, 이때만큼 감사히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쥬시마츠까지 나서서 카라마츠의 출진을 지원하자, 토도마츠도 할 수 없이 협력을 약속했다.

카라마츠를 은근히 지켜보던 눈을 최대한 돌리고, 푸른 왕국의 공주님이봄 감기에 걸려 침실에서 나올 수 없다는 소문을 흘렸다.

적어도 카라마츠가 전장에 가 있는 동안은 카라마츠의 부재를 숨길 수 있을 터였다.

이치마츠와 함께 전장으로 가려는 카라마츠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고 눈을 속일 수 있는 것은 최대 한 달, 그 안에 돌아오라는 말을 전한 토도마츠가 동생의 얼굴로 돌아가 눈가를 촉촉하게 적셨다.


! 살아서 돌아와!! 다치지 말고! 망할 왕자 데리고 돌아와!!”

말려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토도마츠의 당부에 카라마츠가 싱긋- 부드러운 미소를 흘렸다

카라마츠 자신도 전장에서 죽을 생각은 없다

반드시 오소마츠를 데리고 돌아오겠다 약속하고, 자신을 대신해 푸른 드레스를 입은 쥬시마츠와 토도마츠와 깊은 포옹을 나누었다

이치마츠를 따라 새로운 병사들이 수도 레드 버로우를 떠났다

점점 멀어지는 레드 버로우를 보며 카라마츠가 숨을 들이마시고 눈앞에 어른거리는 오소마츠의 모습을 쫓았다.

 

 

 

해일이 밀려오듯이 들판을 가득 채운 검은 무리가 국경을 향해 밀려왔다

검은 갑옷과 투구를 쓴 동의 제국의 병사들이 땅을 울리며 커다란 함성과 함께 쏟아져 왔다.

진열을 갖춘 붉은 왕국의 병사들과 정면으로 충돌한 적군의 날카로운 퍼런 칼날과 창이 갑옷 사이를 꿰뚫는다.

비명과 피비린내, 칼날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이명처럼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는 지옥 속에서 필사적으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칼날을 쳐낸 카라마츠가 어깨에 멘 동료를 끌어당겼다

동료의 허리에서 붉은 피가 끊임없이 흘러 이미 선혈로 짓무른 땅을 적셨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반드시 자기 옆에 붙어있으라던 이치마츠도 보이지 않는다

사방이 오로지 적. 카라마츠의 외침에 적군에게 둘러싸여 있던 아군이 카라마츠에게 모였다

모인 것은 열댓 명 남짓.

게다가 절반이 부상병이다

떼처럼 몰려오는 적군과 대등하게 싸운 카라마츠의 부대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뛰어난 실력 때문에 적군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

양옆에 있던 아군들이 속속히 적군의 칼날에 쓰러지는 와중에도 카라마츠의 부대만은 적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결과 카라마츠의 부대만이 적진 한가운데에 남아 고립되었다

아직 오소마츠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이치마츠와 함께 전장에 오자마자 시작된 전투에 부대 편성조차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흩날리는 먼지를 헤치고 부상병을 떠안은 채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오로지 그 생각으로 적군을 베어내고, 또 베어냈다

곡식 창고에 달려드는 굶주린 메뚜기떼처럼 카라마츠를 향해 뛰어오는 적군은 끝이 없었다

서로 등을 맞대고 적군을 막아내는 동료들도 이미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순식간에 바로 옆에 살아 숨 쉬고 있던 동료가 적군 사이에서 튀어나온 창끝에 꿰뚫려 마지막 한숨을 내뱉었다

거칠어진 숨소리, 옆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신음, 땅을 박차고 뛰어오는 적군의 발소리

그 모든 것이 한데 모여 검은 망토를 두른 사신의 모습으로 변했다

커다란 낫을 들어 카라마츠의 목에 겨눈 사신이 필사의 저항도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낫을 높이 쳐들었다

사신의 낫이 날아오는 적군의 칼날과 겹쳐졌다

자신의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적군의 칼을 막아내며 카라마츠가 가장 만나고 싶은 이의 이름을 부르짖은 순간, 커다란 함성이 카라마츠와 동료들을 감쌌다.

 

 

말발굽이 힘차게 땅을 박차고 뛰어오며 땅을 울렸다

차락차락, 철 갑옷이 부딪치는 소리와 동시에 한 무리의 기마병이 카라마츠와 동료들을 향해 뛰어왔다

할버드(도끼 모양의 창)를 휘둘러 적군의 머리를 쪼갠 붉은 갑옷의 기사들이 아군을 둘러쌌다

붉은 왕국 제일의 실력가. 에드윈 왕자의 직속 기사단인 적기사단

그들의 붉은 갑옷을 본 동료들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이제 살았다!, 하고 외치는 동료들의 환호 속에서 카라마츠의 눈이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한 기사에게 꽂혔다

투구를 깊이 눌러쓰고 있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지만, 자신을 응시하는 깊은 눈동자만큼은 모를 수 없었다.

 

, 오소마츠다.’

 

커다란 방패를 들고 뒤따르는 기사와 함께 카라마츠에게 뛰어온 오소마츠가 손을 내렸다

말을 모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뻗은 오소마츠의 손을 카라마츠가 강하게 붙잡았다

그대로 카라마츠를 말 위로 끌어 올린 오소마츠가 주변을 확인했다

오소마츠의 기사들도 부상병들과 아군을 말에 태운 뒤였다

모든 아군이 말 위에 올라탄 것을 확인한 오소마츠가 후퇴 신호를 보냈다

앞길을 막는 적군과 뒤쫓으려는 적군을 차례로 쳐내며 적기사단이 아군의 진영으로 뛰었다

적기사단의 칼날에 쓰러진 적군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는 적기사단을 붙잡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오소마츠와 적기사단이 적군 가운데 고립된 아군을 구한 것을 끝으로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막을 내렸다

동의 제국이 계획한 대규모 공격은 오소마츠의 지휘 아래 철저하게 무너졌다

수를 셀 수 없는 병사들이 전장에 혼백을 남겼다


피로 질척거리는 땅, 쌓여있는 병사의 시체들이 남은 전장에 침묵이 찾아왔다.

 

 

 

 

 

7.

 

말에서 내리자마자 카라마츠를 끌고 자신의 막사로 들어온 오소마츠가 거칠게 투구를 벗어 던졌다

, 하고 땅에 부딪힌 투구가 울리는 소리에 카라마츠가 숨을 집어삼켰다

카라마츠에게서 등을 돌리고 선 오소마츠의 어깨가 거친 숨소리에 맞춰 흔들렸다.


오소ㅁ,”

무슨 생각이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길 왔어?”

카라마츠의 목소리를 덮어씌운 오소마츠의 차가운 어조에 카라마츠가 허공에 뻗은 손을 집어넣었다

카라마츠를 응시하는 오소마츠의 눈동자에 분노가 일렁였다

머릿속이 뜨거워져 제대로 사고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처음 본 오소마츠의 진정한 분노에 카라마츠는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하아-, 하고 뜨거운 숨을 내뱉은 오소마츠가 눈가에 차오르는 열기에 입술을 깨물었다


잃어버릴 뻔했다

카라마츠를, 영영

이 잔인한 전장에서, 사람의 목숨 하나 너무나 가볍게 집어삼키는 이 차가운 전장에서, 카라마츠를 잃을 뻔했다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에게 카라마츠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면, 오소마츠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카라마츠를

하루가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병사들을 떠올린 오소마츠가 이를 갈았다

자신의 최측근인 적기사단조차 전장에 서린 사신에게 목숨을 갉아 먹혔다

쌓여있는 시체들의 산에서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병사들이 대체 몇이던가

하마터면, 카라마츠도 그 속에, 수습조차 하지 못한 시체들의 산 속에 묻힐 뻔했다는 사실이 오소마츠를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분노로 눈앞이 새빨갰다

사람이 이 정도로 화낼 수 있구나, 하고 머리 한쪽의 냉정한 자신이 차가운 미소를 흘렸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머릿속이 하얗게 될 때까지 분노한 적이 있었나

손톱이 박히도록 강하게 쥔 주먹을 간이 테이블에 내리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분노에 휩쓸린 뇌는 단단한 나무와 부딪쳐 욱신거리는 감각조차 느끼지 못했다

오소마츠의 떨리는 목소리가 바닥에 가라앉았다.


죽을 뻔했어. 알고 있어?”

“….”

왜 여기 온 거야? 무슨 생각? 나나 쵸로마츠나 이치마츠가 멀쩡히 돌아다니니까, 전쟁이 쉬워 보였어? 그래서 온 거?”

“….”

무슨 생각으로 온 거냐고!!”

네가!! 오소마츠가, 다쳤다고 하니까!!!”

대답을 재촉하는 오소마츠의 외침에 닫고 있던 입을 연 카라마츠가 분통을 터뜨렸다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향해 외쳤다

목소리는 말을 이어갈수록 격앙된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기다렸다!! 기다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빌면서! 몇 번이고 기도하면서!! 그런데, 네가 다쳤다는 소식이 전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로, 네가, 네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었다!! 오소마츠가 다쳤는데, 그 옆에 있을 수 없는 게 싫었다!!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으면서!!”

“….”

눈물을 뚝뚝 흘리며 외치는 카라마츠를 보며 이번엔 오소마츠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볼을 적시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먹먹하게 폐를 조이는 숨을 몰아 내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바라보며 눈썹을 늘어뜨렸다.


, 괜찮은 건가…? 심한 건가? 아프지 않아? 오소마츠.”

조금 전 그렇게 흥분해 목소리를 높였으면서, 애달픈 목소리로 자신을 걱정하는 카라마츠를 본 오소마츠가 깊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올렸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분노는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울고 싶은 기분을 어떻게든 억누르고 눈을 감은 오소마츠가 고개를 푹 숙인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릎을 굽혀 쪼그린 오소마츠를 보며 당황해오소마츠!? 어디 아픈 건가!?” 하고 걱정해 다가오는 카라마츠의 손을 잡은 오소마츠가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이봐, 공주님. 지금, 푸른 왕국 때문에 보급이 끊긴 건 알고 있어?”

“…알고 있다.”

대뜸 묻는 오소마츠의 질문에 카라마츠가 마른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똑바로 카라마츠의 눈을 응시한 오소마츠가 다시 물었다.


그럼 그것 때문에 왕국이 분노하고 있는 건?”

“…알고 있다.”

여차하면 푸른 왕국과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건?”

“….”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만약의 가능성을 내뱉은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대답을 멈췄다

정적 속에서 제 손을 굳게 잡은 오소마츠의 손을 내려다본 카라마츠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알고, 있다.”

카라마츠의 대답에 오소마츠가 눈을 가늘게 뜨고, 카라마츠의 손가락에 제 손가락을 얽었다

깍지 낀 손을 강하게 움켜쥔 오소마츠가 천천히 입을 뗐다.


그런데 왜, 여기 온 거야?”

“….”

잔잔히 낮게 울리는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어쩐지 간지러웠다.

귓가에 울리는 오소마츠의 짙은 목소리를 흔들어 털어낸 카라마츠가 대답을 망설이며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사방이 막힌 닫힌 천막 안에서 카라마츠의 시선이 머물 곳은 없었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숨기고 방황하는 카라마츠의 시선을 조용히 오소마츠가 이끌었다

손을 이은 채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대답을 기다리는 오소마츠가 제 손을 놓아줄 리 없었다

대답을 미루며 한참을 침묵한 카라마츠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 니까.”

카라마츠의 대답에 오소마츠가 빙그레-, 잔잔한 미소를 띄웠다

기대했던 대답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이걸로 충분하다.

적어도, 카라마츠가 조국인 푸른 왕국보다, 친구인 자신을 우선해주었다는 것에 만족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손을 붙잡은 채 몸을 일으켰다

오소마츠를 따라 무릎을 핀 카라마츠를 보며 살짝 눈썹을 찡긋거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품속으로 끌어당겼다

우왓!” 하고 한심한 비명을 흘리며 팔 안에 들어온 카라마츠를 있는 힘껏 껴안은 오소마츠가하아~.”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갑옷이 막고 있는데도, 철갑 너머 카라마츠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품에 안은 카라마츠의 체온에 이로 말할 수 없는 평온을 느끼며 오소마츠가 두 눈을 감았다.


네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카라마츠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속삭이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카라마츠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두근대는 심장 소리가 오소마츠에게 들리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크다

꼭 금방 터질 것처럼 뛰는 심장에 안달하며 카라마츠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소마츠의 팔이, 강하게 자신을 안고 있는 것에 안심하며 눈을 감았다

오소마츠가 살아있어 다행이다, 고 카라마츠 역시 오소마츠와 같은 것을 생각하며 오소마츠의 등에 팔을 감았다.

 

 

 

카라마츠와 오소마츠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이치마츠가 펄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일어나지도 못하는 이치마츠를 끌어올려 억지로 세운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퍼부었다

정작 카라마츠를 전장으로 데려온 것은 자신인데도 일절 한마디 하지 않는 쵸로마츠를 이치마츠가 매달려 말렸다

겨우 쵸로마츠의 잔소리가 멎어 들었을 때, 이치마츠가 쭈뼛거리며 오소마츠에게 다가갔다.


오소마츠 형, , 미안해….”

자기 옆에 카라마츠를 붙여 놓는다면 큰일은 없겠다고 안이하게 생각한 자신을 비난하며 사과하는 이치마츠의 머리를 오소마츠가 크게 쓰다듬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결국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며 허탈하게 웃은 오소마츠가됐어, 이제.” 하고 이치마츠의 머리를 가볍게 통- 쳤다.

 

 

제국의 대대적인 공격이 실패한 후, 제국의 공격은 소극적으로 변했다

간헐적인 도발이 들어올 뿐, 본격적인 병사들의 진격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첩자도 앞으로 큰 공격은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 보고했다

상처가 완화될 때까지 카라마츠와 함께 막사에 반강제로 가둬놓은 쵸로마츠가 첩자의 보고를 정리해 오소마츠에게 건넸다.


당분간은 우리끼리 버틸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갔다 와.”

보고서를 훑는 오소마츠에게 쵸로마츠가 단호히 말했다

- 시선을 올린 오소마츠가 장난스럽게 웃으며에이~, 그런 말 하지 말구~, 쵸로씌.” 하고 대답하자마자 쵸로마츠의 매서운 주먹이 오소마츠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아파!! 환자한테 손 올렸어요, 이 사람!?”

닥치고, 가서 제대로 치료 받고 와. 이 바보 고릴라 공주도 놓고 오고!!”

.”

여전히 붕대로 돌돌 말린 팔을 가리키며 화를 낸 쵸로마츠가 카라마츠에게 시선을 옮기며 외쳤다

갑자기 지명된 것에 놀란 카라마츠가 눈을 깜빡이며 쵸로마츠의 손가락을 따라 오소마츠의 왼팔로 눈을 돌렸다

줄곧 옷에 가려져 있어 눈치채지 못했지만, 오소마츠의 팔에 감긴 붕대가 노랬다

분명 하얀색이어야 할 그것은 상처에서 흘러내진 진물을 듬뿍 머금은 채로 굳어, 뻣뻣하고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소매를 내려 붕대를 감춘 오소마츠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쵸로마츠를 응시했다

오소마츠와 쵸로마츠 사이에서 무언의 기 싸움이 시작되었다

몇 분간의 침묵을 끝내고 먼저 시선을 돌린 것은 오소마츠였다.


-겠어! 알겠다구~.”

두 손을 들어 항복 표시를 한 오소마츠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씩-, 장난스럽게 웃었다.


, 부탁해. 쵸로마츠.”

맡겨둬, 오소마츠.”

 

3일 후, 준비를 마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가 나란히 레드 버로우를 향해 말을 달렸다.






* 공주라고 가만히 앉아서 왕자님이 무사히 오길 기다리는 건 싫어서, 행동파 카라마츠가 나왔습니다ㅎㅎ


* 이번 화를 쓰면서 깨달았는데, 저번 화에서 끊기 신공을 발휘해 오소마츠가 다쳤단 부분에서 끊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 소설을 기다려주시는 분들께 그런 잔인한 일(?)을 할 수는 없죠ㅎㅎ


* 저번 화에서 말하는 걸 잊었는데, 6화랑 7화에 제가 떡밥을 좀 뿌려두었습니다. 

  무슨 떡밥인지는 비밀입니다ㅎㅎ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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