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떡밥 회수편입니다.


* 공미포 12,493자.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중단되었던 보급품, 그리고 앞으로도 차질 없이 보급을 지원하겠다는 푸른 왕국 왕의 약속까지 받아 돌아온 오소마츠를 왕은 크게 칭찬했다

이런 시기에 적국이 될 수도 있는 푸른 왕국에 왕자를 보낸 것을 비난하던 귀족들도, 은근히 오소마츠가 실패하기를 바랐던 귀족들도 놀라기는 매한가지

관료들과 귀족들을 줄 세운 어전 회의에서도 오소마츠를 칭찬하는 왕의 목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과찬이라며 예의를 갖추어 왕에게 인사하는 오소마츠의 시야에 빈자리가 들어왔다

직위에 맞춰 정렬한 귀족들의 수뇌, 쥬드 공작의 자리가 비어있었다

오소마츠는 남몰래 헛웃음을 흘리며 쥬드 공작을 동정했다

쥬드 공작의 시녀를 잡은 오소마츠가 돌아옴과 동시에 쥬드 공작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감히 왕자를 음해한 죄. 그리고 붉은 왕국의 존망이 걸린 전쟁을 어지럽힌 죄

무시할 수 없는 중죄가 겹쳐 쥬드 공작은공작가임에도 비참하게 병사들의 손에 끌려 감옥에 던져졌다

붉은 왕국이 건국되었을 때부터공작이라는 칭호를 유지했던 명망 높은쥬드() 역시 귀족의 신분을 박탈당하고 평민이 되었다

직위를 잃은 쥬드 공작에게 남은 것은 없었다

쥬드 공작의 뒤꽁무니만 따르던 귀족들은 생판 남을 보는 눈으로 쥬드 공작을 외면했다

외척이 힘을 잃자 자연히 제1 왕비 또한 세력이 약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아비인 쥬드 공작은 감옥행, 평민이 된쥬드가에서 더는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제1 왕비는 두 번 다시 그 세도를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왕의 칭찬으로 점철된 허울뿐인 어전회의가 끝나고, 왕과 마츠요에게 간단한 귀환 인사를 마친 오소마츠가 어두운 얼굴로 별궁으로 발을 옮겼다

앞서 붉은 왕국에 돌아가 상황을 보던 측근에게 이미 모든 것을 들은 후. 쥬시마츠도, 토도마츠도 없이 홀로 별궁에 남아있을 카라마츠를 그리며 오소마츠가 쓴웃음과 함께 눈썹을 찌푸렸다.

 

 

 

 

 

2.

 

등불 하나 없는 침실 안은 어둠이 가득했다

달이 얼굴을 가린 하늘은 야속하게도 은근한 빛줄기 하나 보내주지 않았다

새까만 방안에 발을 들인 오소마츠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카라마츠에게 다가갔다.

 

활짝 열린 발코니에 기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카라마츠가 발소리에 몸을 돌렸다

발코니 난간에서 한 발짝 떨어져 오소마츠에게 가까이 걸어간 카라마츠가 드레스 양쪽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


왕자님, 무사히 귀환하신 것, 그리고 교섭을 훌륭히 성사시킨 것을 축하드립니다.”

드레스를 들어 올리고 허리를 숙여 예의를 갖춰 인사하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이어질 카라마츠의 말을 예상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부르기도 전에 선수를 친 카라마츠가 목소리를 냈다.


“…약혼을, 취소해주세요.

고개를 숙여 오소마츠와 눈도 마주하지 않고 내뱉은 카라마츠의 말에 공중에 뻗은 손을 힘없이 내린 오소마츠가 눈을 내리깔았다

당장이라도 큰 소리로 화를 내고 싶었다

치미는 울화를 단단히 쥔 주먹으로 억누르고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

왕자님은 이제 왕위 계승자로서 더-, 앞으로 나아갈 분입니다. 붉은 왕국의 다음 이 되실 분입니다. 저에겐, 왕자님의 옆에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너무나도 예측했던 말과 똑같아 오소마츠가 헛웃음을 흘렸다.


무슨 자격?”

그딴 게 뭐가 필요하냐는 말을 감추고 묻자, 카라마츠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남자니까요.”

그것뿐? 또 없어? ‘공주님’.”

나직이 내뱉은 오소마츠의 말에 흐릿한 조롱이 섞였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눈꺼풀 뒤로 감춘 카라마츠가 입술을 씹었다

정적 속에서 귀에 닿는 것은 오소마츠와 자신의 숨소리뿐이었다

덜덜 떨리는 손을 감싼 카라마츠가 결국 무너졌다

털썩, 무릎을 꿇고 뜨거운 눈물을 글썽이는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가 천천히 다가갔다.


 

말해.”

 


한 마디가 심장에 박혔다

그동안 오소마츠가 들려주었던 다정한 목소리, 가슴을 간질이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아니다

아무런 감정도 묻어나오지 않는 차가운 말투에 기어이 카라마츠의 볼을 타고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떻게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카라마츠가 고개를 저었다

가늘게 뜬 눈으로 카라마츠를 지그시 내려다보던 오소마츠가 손을 뻗었다

눈물로 축축이 젖은 볼을 타고 내려가 카라마츠의 턱에 손가락을 걸어 그대로 들어 올린다

어둠 속에서 빛날 리 없는 눈물이 반짝였다

동그란 눈동자 가득 눈물을 머금고 행여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할까 덜덜 떨리는 입술을 깨문 카라마츠와 눈을 맞췄다

그렇게나 나긋나긋하게 자신을 응시하던 짙은 진갈색의 눈동자가 거울과 같은 무기질처럼 카라마츠를 담았다.

 

—, 말해.”

 

도망치는 것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눈빛에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체온도 어디로 날아가 몸이 찼다. 오지 않기를 바랐던 순간이 결국 오고 말았다

겨우-, 받아들인 마음을 제 손으로 깨부수는 일이 될지라도 카라마츠는 고백해야만 했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한이 있어도.

 

나는,”

“….”

입을 연 카라마츠를 오소마츠가 초연히 바라보았다

힘겹게 첫마디를 뗀 카라마츠가 다시 차오르는 숨에 가쁘게 가슴을 부풀리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공주가 아니다!! 귀족조차 아닌, 평민이다…. 나는, 나는…. 푸른 왕국의 유일무이한 왕자, 카즈야 왕자님의…" 


". ‘그림자 무사’, ….”

 

 

 

 

 

3.

 

푸른 왕국의 왕은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다

왕비와의 금실도 좋았고, 수많은 후궁도 있었건만 아이는 쉬이 볼 수 없었다

그러다 노년, 오랫동안 바라고 바랐던아들이 태어났다

그 위로도, 그 아래로도 없었던 아이는 푸른 왕국의유일한 왕자로서 소중하게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왕의 뒤를 이을 왕자가 단 한 명이라는 것은 큰 불안이었고, 왕은 왕실의 먼 친척인마츠노가문의 아들 하나를 카즈야 왕자의그림자 무사로 삼았다

왕자에게 위험한 일이나 혹시 있을 음해를 방지하고자그림자 무사로 키워진 카라마츠는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자랐다

아비인 마츠조의 애정을 마음껏 누리기도 전에그림자 무사가 되어 가족과 떨어져 생활했다

온갖 무술을 연마하고 언제나 왕자의 곁에 있었다

카라마츠에게 자신만의 사생활은 당연히 허락되지 않았고, 그 생명의 이유조차 왕자를 위한 것이었다

왕자를 지키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것, 그것이그림자 무사였다.

 

 

 

붉은 왕국과의 동맹 강화를 이유로 정략결혼이 약속되자, 푸른 왕국의 노왕은 근심에 휩싸였다

유일한 적자이자 왕자인 카즈야를 보낼 수는 없는 노릇

그렇다고 어중간한 왕가 여식을 보냈다가는 붉은 왕국을 능멸하는 꼴이 된다

푸른 왕국보다 강대국인 붉은 왕국이 혹여 푸른 왕국으로 쳐들어온다면 푸른 왕국이 멸망할 것이 확실했다

몇 날 며칠을 고민을 거듭한 노왕은 위험한 도박을 하기로 했다

그림자 무사카라마츠는 카즈야 왕자의쌍둥이 공주카라가 되었다

카라마츠가카라 공주로서 붉은 왕국으로 떠나기 전, 노왕은 카라마츠를 불러 신신당부했다

반드시 이것만은 지키라고 말해준 그것들은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고모두가 알고 있던 것이었다.

 

카라마츠는카라 공주로서 붉은 왕국에 보내졌다

동맹을 위한 정략결혼. 동맹 강화의 명분이 필요한 두 왕국에게카라 공주가 남자인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카라마츠의 첫 번째 약혼자, 엘린도카라 공주가 남자라는 것을 알고 탑에 보낼 뿐,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붉은 왕국에서 카라마츠는 24시간, 1 365일을카라 공주로 살아왔다

철저하게 카라마츠인 자신을 죽이고카라 공주를 연기했다

그것은 카라마츠가 귀족도, 왕족도 아닌 평민에그림자 무사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푸른 왕국의 노왕은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카라마츠가그림자 무사인 것을 들켜선 안 된다고. 


그림자 무사를 보낸 것이 알려진다면 붉은 왕국은 분명 분노할 것이다

카라마츠는 카라마츠대로 붉은 왕국의 왕실을 기만한 죄로 목이 날아갈 것이 분명했다

조국인 푸른 왕국을 위해서도,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도 카라마츠는 자신의 정체를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됐다.

 

항상 온몸을 불편한 드레스로 감싸고 자신이카라 공주임을 되새겼다

몸가짐 하나도 조심했다. 사소한 말실수도 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긴장했다

카라마츠는 지금까지 철저하게 카라마츠인 자신을 죽여야 했다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을.

 

 

 

 

 

4.

 

—, 대체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때늦은 후회를 해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푸른 왕국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카즈야 왕자님을 위해서 반드시 정체를 숨겨야 했다

스스로 자신이그림자 무사였다는 것을 고백하는 일은 없어야 했는데…. 

어두운 바닥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짓밟고 선 오소마츠가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확인하는 것이 두려워 시야를 흐리고 있는 눈물을 떨어뜨리지 못한다

경멸하겠지. 지금까지 오소마츠를 속였던 나를…. 

오소마츠는 이런 나를친구라며 받아주었는데…. 

끝까지 자신의 정체를 숨겼다면 분명 오소마츠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카라 공주로서 오소마츠의 곁에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단 얼굴로 마츠요님과 차나 홀짝이며, 때때로 오소마츠의 훈련에 어울리며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될 수 있었던, 실현될 수 있는 미래가 독이 되어 숨통을 조였다

푸른 왕국에도, 나에게도, 오소마츠에게도 가장 이상적이었던 미래가 언제부터 고통이 되어버렸을까

모든 것이 잘 흘러갈 수 있었다

왕이 된 오소마츠는 제2 왕비를 얻어 후사를 잇고, 나는 왕실에서 동떨어져 오소마츠와 적당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마음만 없었다면…!!

 

 


어째서 나는, 오소마츠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같은 남자에 자신의 신분도 숨기고 있으면서. 오소마츠가 보여주는 상냥함이 기뻤다

자신에게 닿는 따뜻한 손길이 행복했다

오소마츠의 부드러운 눈빛이 나를 담았을 때 하늘을 나는 것처럼 기분이 두둥실 떠올랐다

그 장난기 가득한 미소와 함께 나를 부르면 둥실 솟아올랐던 기분은 순식간에 땅속 깊이 처박혔다

오소마츠는 나를공주라고 불렀다

이름조차 거짓된 나를, 오소마츠가 불러줄 때마다 슬퍼서…. 가슴이 아파서…. 불안해졌다

이대로 나는, 오소마츠의 곁에 있어도 되는 건가

오소마츠가 왕이 된다면, ‘공주는 거짓된 신분일 뿐, 실제로 평민인 내가 오소마츠의 곁에 있어선 안 된다

두려움과 불안은 물을 빨아들인 스펀지처럼 점점 더 커졌다

푸른 왕국을 생각하면, 카즈야 왕자님을 생각하면, 자신의 목숨을 생각하면 절대 해선 안 되는 고백

오소마츠에게 보여주는 내 모든 것이거짓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었다

카라 공주가 아닌카라마츠’, 나 자신을 봐주길 원했다

자신의 목이 날아갈 것을 알면서도 더는 오소마츠를 속이고 싶지 않았다

울며 가기 싫다 고개를 흔드는 토도마츠를 쥬시마츠에게 맡겨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이유

모든 것을 밝히기 위해, 속죄하기 위해.

 

더는, 사랑하는 오소마츠를 속이고 싶지 않기에.

 

 

 

 

 

5.

 

 

 

죽음을 각오하고 모든 것을 털어놓은 카라마츠를 눈에 담은 오소마츠가 굳게 다물고 있었던 입을 열었다

저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경멸일까, 분노일까, 증오일까…. 

오소마츠의 입술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카라마츠가 눈물을 삼켰다

오소마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엇이든 자신은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다짐하는 카라마츠의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닿았다.

 


고릴라 공주님,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했어?”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눈을 크게 떴다

조금 전 보여주었던 냉정한 눈빛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온기를 되찾은 것 같았다

자신의 착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결 부드러워진 오소마츠의 눈빛이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지금까지 평생을 제1 왕비와 공작가에 빌붙는 귀족들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온 나야. 누구보다 먼저 정보를 손에 넣어서, 온갖 수작으로부터 엄마와 녀석들을 지켰던 나는 너무 얕봤어. 게다가-, 바보 공주님. 너는 당연히 알아야 할 것들을 모르고 있었다구. 사교댄스는 어느 나라든 왕실의 기본. 너는 한 번도 춰본 적 없다고 했지. 체스와 사냥도…. 너는 왕족이 흔히 즐기는 취미를 전부 처음 해본다고 했지. 게다가 일부러 훈련하지 않으면 생길 리 없는 굳은살투성이 손까지. 푸른 왕국은 군사가 그리 발달하지 않았는데, 정략결혼이 약속된 왕족이 굳은살이 생길 때까지 훈련을 할 리 없지.”

“….”

 한 마디 한 마디, 말이 끝날 때마다 카라마츠의 얼굴은 핏기를 잃었다

잘 숨겼다고 생각했었다

푸른 왕국의카라 공주로서, 행동하고 있었다고

오소마츠가 진작에 자신의 정체를 눈치채고 있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망연히 입을 벌리고 힘을 잃은 카라마츠를 보며 피식- 옅은 미소를 흘린 오소마츠가 몸을 숙여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 공주.”

“….”

푸른 왕국의공주로 나를 속이려 했던 네 앙큼한 계략이 모두 드러난 지금. 딱 하나, 네 계략을 성공시킬 수 있는 변수를 알려주지.”

미소로 가늘어진 눈빛이 다정하게 카라마츠를 감쌌다

자신을 향한 오소마츠의 미소는 착각이 아니었다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몸을 한층 더 낮춰 카라마츠와 시선을 맞춘 오소마츠가 작게 속삭였다.

 

 

왕자도, 너를 사랑하게 되었어.”

 

 

 

자신의 귓가에 속삭인 오소마츠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멈춰버린 머리로 이해하기도 전에 오소마츠의 입술이 카라마츠의 입을 덮었다

한계까지 커진 눈동자엔 밤의 어둠만이 담겼다. 뜨겁고 마른 입술에 묻은 눈물을 핥으며 오소마츠가 씩- 웃었다

멍청히 오소마츠를 응시하는 카라마츠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는 오소마츠의 눈가가 붉었다

오소마츠 또한 울고 있는 것이라 이해한 순간 카라마츠의 손가락이 오소마츠의 눈가에 닿았다

시리도록 벌겋게 물든 눈가를 감쌌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마른 눈가가 뜨거웠다

오소마츠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우는구나.’ 하고 독백하는 카라마츠의 손을 오소마츠가 맞잡았다.


네 진짜 이름을 알려줘.”

금방 눈물을 쏟을 것처럼 일렁이는 눈동자를 가늘게 휘고 묻는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건 기쁨일까, 슬픔일까. 자신의 감정인데도 알 수 없다.


“…카라마츠.”

카라마츠.”

오소마츠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온 순간, 카라마츠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전류에 몸을 떨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는 기쁨

지금 이 순간 느낄 수 있는 행복이 너무 커서 그대로 집어 삼켜질 것 같은 어리석은 두려움에 눈물을 쏟으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오소마츠, 오소마츳!!”

후힛—, 우리 공주님은 울보네—.”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를 늘이며 자신에게 안겨오는 카라마츠의 눈가에 입술을 내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품에 가득 안았다.


카라마츠, 너에 대해서 알려줘. 전부-.”

귓가에 울리는 눈물에 젖은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거세게 고개를 흔들었다

어깨에 닿는 카라마츠의 얼굴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을 느낀 오소마츠가 기쁘게 웃었다

벅차오르는 마음은 삼킬 수 없이 크게 부풀어 올라 터져 크게 퍼졌다.


사랑한다, 오소마츠!!”

우렁차게 울리는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오소마츠가후핫!” 하고 함박웃음을 피웠다.


나도, 사랑해-. 카라마츠.”

행복에 떨리는 목소리로 사랑을 고백한 입술은 곧 카라마츠 입술 위에 내려앉았다

혼란으로 가득 차 키스를 했단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처음과 달리 입술을 통해 전해지는 오소마츠의 온기에 눈을 감았다

두 개의 심장이 꼭 쌍둥이처럼 함께 박동했다

귓가에 울리는 고동소리와 함께 입술을 뗐다


연인이 된 후의 첫 키스는 눈물 맛이 났다.

 

 

 

 

 

6.

 

눈물을 너무 많이 흘린 탓일까,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휘청거린 것을 끝으로 기억이 끊겼다

눈을 뜨자 온통 검었던 방안 가득히 노란 햇빛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두세 번 눈을 깜빡이고 몸을 일으켰다

입고 있는 것은 하늘색 파자마

늘 입고 자는 잠옷을 입고 있다

어젯밤의 그것은 꿈이었던 건가…. 


허탈함과 함께 간지럽게 입술에 남아있는 감촉을 되짚었다

, 이었지만 너무나 생생해서 꼭 실제로 일어난 일 같다

내 마음은 내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이런 꿈까지 꿀 정도로 커져 버린 건가…. 

보답받지 못할 마음이 안쓰러워 쓴웃음을 보내고 침대에서 내려오려 발을 꺼낸 순간, 노크와 함께 오소마츠가 침실로 들어왔다.


, 카라마츠. 일어났어?”

.”

?”

아무렇지도 않게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오소마츠를 빤히 바라보았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왜 그래?” 하고 묻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이젠 꿈에 이어 환청까지 듣는 것인가, 눈썹을 찌푸렸다.


카라마츠~? -.”

? ?! , , 지금 나를카라마츠라고 부른 건가?”

~? 그럼카라마츠카라마츠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

깍지 낀 손을 뒤로 돌리고 태연하게 대답하는 오소마츠가 어젯밤의 일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단숨에 얼굴이 뜨거워져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오소마츠의 얼굴을 보면 좋을지 모르겠다

입술에 남은 감촉도 꿈이 아니란 것을 깨닫자마자 피부에 딱 달라붙어 사라지지 않는다

머리 위에서 김이라도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달아오른 얼굴을 차마 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만 굴리고 있을 때, 시야에 오소마츠의 구두코가 들어왔다.


라마츠~!”

우홋!?”

푸핫!! 뭐야, ‘우홋이라니~!! 진짜 고릴라 공주야?”

볼을 감싸고 홱 위로 들어 올리는 오소마츠의 손에 놀라 새어 나온 비명에 오소마츠가 한참을 웃었다

얼마나 웃었는지 눈가에 맺힌 눈물을 쓱- 닦아내더니 싱글거리는 얼굴로 가만히 나를 응시한다.


, 뭔가.”

~? 아니~. 내 연인은 참 귀엽네~, 하고 생각해서 말이야.”

, !?”

—, 정말. 귀여워.”

오소마츠의 입에서 나온연인이란 단어에 말을 잇지 못하고 뻐끔거리는 입을 오소마츠가 즐겁게 바라보았다

쿡쿡, 웃음을 흘리며 한 걸음 더 내게 가까이 다가온 오소마츠가 살며시 내 손을 잡아 입가로 들어 올렸다

, 하고 손등에 입 맞춘 오소마츠가 능글맞게 웃으며 내 옆에 털썩 엉덩이를 내렸다.


좀 괜찮아? 어제 갑자기 기절해서 엄청 놀랐다고.”

, 아아—. . 괜찮다.”

그래.”

, 오소마~!? 전보다 더 눈빛이 위험해지지 않았나!? 

전에도 분명 살가운 눈길이긴 했지만!! 

둘의 관계가친구였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정한 눈빛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는 오소마츠에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


카라마츠.”

! !”

왜 갑자기 존댓말이야, .”

오소마츠의 부름에 몸에 바짝 힘을 주고 대답하는 나를 보며 오소마츠가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러지 않으면 곤란하다

지금도, 오소마츠의 체온이 옆에 느껴지는 것만으로…. 

그리고 오소마츠가 나를카라마츠라고 부르는 것만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카라마츠, 있잖아—.”

어떻게든 심장을 진정시키려 미묘하게 오소마츠의 시선을 피해 대답했다

빤히 나를 보는 오소마츠의 눈길을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구멍! 구멍 나겠다, 오소마츠으

아무리 내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을 가진길티- 보이라지만, 그렇게 열렬하게 바라보면 좀 곤란하다

내가 제대로 눈을 마주할 때까지 고집스럽게 눈을 돌리지 않는 오소마츠에게 결국 항복을 선언하고 천천히 눈을 돌렸다

아름다운 붉은 빛이 묻어나오는 진갈색 눈동자를 마주하자마자 어젯밤의 일이 생각나 절로 신음이 나왔다.


어젯밤, 말했지? 전부 알려달라고.”

?”

벌써 잊어버렸어~? 바보네.”

!?”

내가 말했잖아. 너에 대한 것 전부-, 알려달라고.”

….”

오소마츠의 말에 이끌려 어젯밤의 약속을 떠올렸다

분명 오소마츠에게 사랑을 외치기 직전에 나눈 약속

그 어느 것에도 눈을 두지 않고 오로지 나만을 담고 있는 오소마츠에게 있는 힘껏 웃어 보이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물론! 궁금한 건 뭐든지 물어봐라! 이 길티- 가이 카라마츠가 전부 알려주지!”

, 공주연기할 때랑 성격이 좀 다르네.”

…. , 공주일 때가 좋은가?”

~? 아니—. 지금이 더 좋아. 재미있고.”

재미….”

그럼 나 물어보고 싶은 거 지금 다 물어본다?”

, 물론! 뭐든지!”

 

 

오소마츠는 정말로 많은 것을 물었고,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의 취미, 좋아하는 음식, 혈액형 등등 아주 사소한 것부터 아버지와는 서먹한 관계인 것, 어릴 적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 ‘그림자 무사가 되어 많은 훈련을 한 것, 왕의 명령으로 붉은 왕국에 오게 된 것, 동생들도 나를 혼자 보낼 수 없다며 따라온 것 등등 20년이 넘는 내 일생을 빠짐없이 털어놓았다

오소마츠는 내가 하는 말 하나에 집중해 시선을 맞춘 채, 전부 들어주었다

그리고 오소마츠도 어릴 적 있었던 일들을 말해 주었다.

마츠요님과 성 밖으로 자주 놀러 나갔다는 것, 마츠요님이 자신을 지키다 크게 다쳤던 것, 귀족들의 음모로 많이 다쳤던 것, 기대가 부담되어 최대한 조용히 지내왔던 것, 전쟁만 아니었으면 한적한 시골에서 살고 싶었다는 것 등등

식사도 잊고, 땅거미가 떨어져도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겨우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았을 때, 방안은 또다시 어둠에 잠긴 후였다

오소마츠도 방안을 둘러보며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이렇게 시간이 지난줄 몰랐다며 코밑을 문지르고 멋쩍게 웃는 오소마츠에게 대답하고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다급히 오소마츠의 팔을 잡았다.


! 팔은 다 나은 건가?”

? 아아. , 다 나았어.”

팔에 감겨 있던 하얀 붕대가 사라진 것을 이제야 눈치챘다

내 시선이 박힌 팔을 가볍게 들어 올린 오소마츠가 하얀 새살이 돋은 상처를 보여주었다

여린 살이 꽉 채운 상처는 확실히 나아가고 있었다.


다행이다….”

푸른 왕국 갔다 오는 사이에 다 나았지~.”

환한 미소를 띤 오소마츠를 보며 작게 안도했다

아무런 문제 없이 팔을 움직이는 것을 보면 통증도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았다

하지만 상처가 제일 심했던 상태를 보았기에 좀처럼 그 모습을 떨쳐낼 수 없었다

오소마츠는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으니까

의심스러운 눈을 거두지 않고 오소마츠의 팔을 가만히 응시하자 오소마츠가 눈을 굴리더니 곧!” 하고 소리를 냈다.


뭔가?”

슬슬 도착했을 것 같아서 말이야.”

뭐가 도착한다는 건가, 라고 물을 틈도 없이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카라마츠가 만나고 싶어 할 사람.”

묻지 않은 질문에 대답한 오소마츠가 침실을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거실에 멈춰 서서 창밖을 확인한 오소마츠가 입꼬리를 높였다.


때맞춰 왔네-!”

?”

유쾌하게 외치면 거실을 뛰어나가 현관 앞으로 다가가는 오소마츠를 눈으로 좇았다

문을 열기 전, 나를 보며 씨익- 장난스러운 미소를 흘린 오소마츠가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카라마츠 형!”

카라마츠 형아-!!”

열린 문을 열어젖히고 달음박질로 들어온 쥬시마츠가 펄쩍 뛰어 안겼다

허리에 다리를 감고 상체에 매달린 쥬시마츠의 무게에 휘청이다 간신히 중심을 잡고 섰다.


카라마츠 형아-!! 역시 괜찮았다! !”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쥬시마츠는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다

이어 다가온 토도마츠가 멋쩍게 웃으며 볼을 긁었다.


별로 안 믿은 건 아니라구, 쥬시마츠 형. 그리고 카라마츠 형.”

?”

저기에….”

스륵- 몸을 타고 내려온 쥬시마츠가 토도마츠와 함께 고갯짓했다

둘에 가려 보이지 않는 현관에 오소마츠가 누군가와 인사하고 있었다

별궁에 올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데, 오소마츠가 저렇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넬 정도의 사람이 온 적은 없었다

부드럽게 웃는 토도마츠가 몸을 비켰다

서서히 드러난 현관에, 오소마츠의 옆에 서 있는 사람을 확인한 순간 놀라 턱이 떨어졌다.


“…아버지?”

오랜만이구나, 카라마츠.”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이라도 보내라며 자리를 비켜주려던 오소마츠가 마침 도착한 왕의 시종을 따라 본궁으로 향하고, 정말 오랜만에 일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돌아온 것은 그렇다 쳐도 어떻게 아버지까지 이곳에 있는지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종횡했다

4명이 있는데 거실은 조용했다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몰라 눈을 돌리자 토도마츠가 싱긋-, 눈웃음을 보내고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카라마츠 형 말대로 붉은 왕국을 빠져나갔을 때, 아빠랑 만났어.”

!? 푸른 왕국이 아니라…?”

토도마츠의 말에 놀라 되묻자 고개를 끄덕인 토도마츠가 아버지를 재촉하듯 응시했다

눈썹을 늘어뜨리고 머리를 긁적이던 아버지가 입맛을 다시고 내게 시선을 맞췄다.


에드윈, 아니 오소마츠 왕자님이 푸른 왕국에 있을 때, 나를 찾아오셨다.”

“…오소마츠, …?”

전혀 상관없을 것 같던 오소마츠가 나온 것에 놀라 눈을 깜빡였다

쓴웃음을 삼키고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든 아버지가 나를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이 아비가, 너를 고생하게 했구나. 미안하다. 그래도 이렇게 건강해 보이니 안심이야.”

“…아버지.”

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붉은 왕국에 너를 보내는 것을 반대할 수 없었다. 우리마츠노가문은 대대로 왕가에 충성을 맹세했었으니까. 네가 가야만 한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못난 아비를 오소마츠 왕자님이 일부러 찾아오셨더구나. 아들을 버린 나라에 충성할 이유가 남았냐고, 화를 내셨다. 그제야 겨우 깨달았단다. 내가 너를 사지로 몰았다는 것을…. 카라마츠, 이 아비는 입이 백 개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미 늦었지만, 네게 미안하다는 말은 하고 싶구나. 정말로 미안하다, 아들아.”

말을 마친 아버지가 머리를 숙였다. 그렇지 않다고,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은데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옆에 앉아있던 토도마츠가 건네는 손수건을 받아든 후에야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둘러 눈물을 손수건으로 훔치고 아직도 머리를 숙이고 있는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내게 뜬구름과 같았다

왕가의 오랜 충신이자 심복인마츠노가문을 이끄는 수장인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동생들이 태어나고 어머니가 세상을 뜬 직후,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은 나는 본가를 떠났다

훌륭한그림자 무사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반복했고 아버지와의 시간은 더욱 줄어들었다.

한 번도 아버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의아버지이기 이전에마츠노 가의 가장이었다

항상 냉철하고 확실하게 왕가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완전무결할 것으로 생각했던 아버지의 약한 모습에 가슴 깊은 곳에 박혀있던 돌 하나 툭-, 떨어져 나갔다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모든 것을 용서하기로 했다

나도, 아버지도 단지 어리석었던 것뿐이었기에


오소마츠를 따라 푸른 왕국을 버린 아버지에게 오소마츠가 머물 곳을 마련해 준 모양이었다

오소마츠와 미행을 갔던 성 아래 마을 한쪽에 작은 집 하나를 얻어준 오소마츠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달라는 말을 끝으로 아버지가 몸을 일으켰다.

종종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아버지가 떠나자 교대하듯이 오소마츠가 별궁으로 돌아왔다.


이야기는 많이 했어?”

아아.”

오소마츠의 배려에 진득이 퍼지는 감동에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어느새 다가온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를 본 오소마츠가 음흉한 미소를 띠고 둘에게 손짓했다.


너네~, 내가 카라마츠를 어떻게 할 거로 생각했지?”

, 아니요….”

생각 안 했슴닷!!”

오소마츠의 짓궂은 질문에 토도마츠가 대답을 흘렸다

손을 번쩍 들어 씩씩하게 대답하는 쥬시마츠의 머리를 크게 쓰다듬은 오소마츠가 허리에 손을 얹고좋아-!” 하고 씩- 웃었다.


앞으로 나를오소마츠 형이라고 부르도록!”

오소마츠 형아-!”

알겠습니다. 오소마츠 형.”

.”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오소마츠를이라 부르는 쥬시마츠와 토도마츠가 밝게 웃었다

오소마츠도 이를 드러내고 기쁘게 웃으며 코밑을 문질렀다

오소마츠의 귓불이 슬며시 붉어진 것은 나만이 알 수 있었다.

 

 

 

 

 

7.

 

편한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실에 들어선 카라마츠가 발을 멈췄다

잔잔한 어둠 속에 푸른 달빛이 시야를 밝혀주고 있었다

침실에 놓인 커다란 침대로 천천히 다가간 카라마츠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망설이는 발은 침대를 한 바퀴 돌더니 처음 이 방에서 잤을 때 누웠던 소파로 향했다

사람 하나 겨우 누울 수 있는 크기의 소파를 말없이 내려다보던 카라마츠가 한껏 눈썹을 늘어뜨리고 고민에 빠졌다.


, 침대는 역시 위험하지 않은가. 여기선 소파에서 자는 게…. 아냐, 오소마츠는 신경 쓰지 말라고 할 거다. 지금처럼 같이 침대에서 자도…. , 그치만 지금까지는 친구였으니까 괜찮았지만….’

눈앞이 빙글빙글 소용돌이치는 것 같은 착각에 흔들리는 몸을 소파에 내린 카라마츠가 이번엔 눈썹을 한껏 찌푸렸다.

 

오소마츠와 연인이 된 지금, 나는 대체 어디서 자야 하는가!!!’

 

다가오는 발소리에 타임 리미트가 가까워진 것을 깨닫고 초조하게 발을 굴렀다.

카라마츠가 미처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벌컥 열리는 문소리에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


, 오소마츠….”

? 카라마츠, 거기서 뭐 해? 안 자?”

태연하게 침대로 걸어가이리로, 이리로하고 손짓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괜스레 김이 빠진 카라마츠가 터벅터벅 오소마츠에게 가까이 걸어갔다

먼저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오소마츠의 맞은편, 항상 자신이 눕는 자리에 엉덩이를 내린 카라마츠를 바라보던 오소마츠가 조용히 카라마츠를 불렀다.


카라마츠.”

? 뭔가.”

오소마츠를 향해 고개를 든 카라마츠와 마주 보며 오소마츠가 입을 벙긋거렸다

쉽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이 뒤에 숨어있다 것을 눈치챈 카라마츠가 진득하게 앉아 오소마츠의 말을 기다렸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목소리를 내는 것에 성공한 오소마츠가 큰 한숨을 먼저 흘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3일 후에, 가야 해….”

간다는 말에 카라마츠는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 하고 귓가에 울리는 소리는 분명 심장이 떨어지며 낸 비명일 것이다

조금 전 오소마츠처럼 입을 뻐끔뻐끔, 소리로 옮겨지지 않은 경악을 흘린 카라마츠가 고개를 푹 숙였다

막고 싶었지만, 막을 이유가 없었다

여전히 붉은 왕국은 동의 제국과 전쟁 중이었고, 오소마츠는 모든 병사를 통솔하는 자리에 있었다

부상으로 잠시 돌아왔지만, 그 부상이 다 나은 지금 오소마츠를 막을 구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행복했는데, 설렜는데, 아득히 멀리에 있던사랑이라는 감정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는데…. 

소리 없이 절망하는 카라마츠의 손을 잡아 끌어당긴 오소마츠가 완온히 웃었다

불안하게 떨리는 카라마츠와 눈을 맞추고 손을 거듭 맞잡은 오소마츠가 맞잡은 손을 제 가슴께에 올렸다.


안 다치고 돌아올게. .”

“….”

다쳤다가 네가 또 전장에 오면 안 되니까.”

“…약속이다.”

.”

불편한 기운을 삐죽이고 새끼손가락을 내민 카라마츠의 불안이 조금이라도 사라지길 빌며 오소마츠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생채기 하나 없이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몇 번이고 받아내고서야 카라마츠가 잠자리에 들었다.

 

 

 

3일 후, 출전 준비를 마친 오소마츠가 별궁 앞에서 자신을 배웅하는 카라마츠에게 미소지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잡고수호의 키스를 마친 카라마츠가 갑주를 입고 말에 오르는 오소마츠는 망연히 쳐다보았다.

 

말을 달린 오소마츠가 본성의 입구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왕 앞에 멈췄다

오소마츠와 마찬가지로 붉은빛이 나는 갑주를 온몸에 두른 왕이 성 앞에 열을 맞춰 선 병사들을 확인했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병사들 사이에 흘렀다

왕자의 출진이 아닌 왕의 출진. 그것이 병사들을 한층 더 긴장하게 했다


언제 떠날 것인지 날짜를 보고하러 들어온 오소마츠에게 왕은 자신 역시 전장에 나갈 것을 전했다

왕의 청천벽력과 같은 말에 놀란 것은 오소마츠뿐이 아니었다.

긴급히 열린 어전 회의에서 왕의 말에 경악한 관료들과 귀족들의 얼굴은 그야말로 실소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모든 이가 목청을 높여 반대했지만, 왕의 결심은 이미 확고했다

왕이 반강제로 이끌어낸 귀족들과 관료들의 수락에 씩- 미소를 지은 것을 오소마츠는 놓치지 않았다

카라마츠가 보았다면 오소마츠의 장난기 가득한 특유의 미소가 아버지인 왕에게 이어받은 것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왕과 함께 출진하는 기사 단장에게 병사들의 인솔을 맡긴 왕이 입구에서 자신을 마중 나온 마츠요에게 걸어갔다

쥬드 공작의 중죄로 제1 왕비가 근신 중이었기에 제2 왕비가 나온 것이라 모두가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마츠요가 마중 나온 것은 왕이 그렇게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모르는 오소마츠는 병사들과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

왕이 마츠요를 품에 안고 간결하면서도 뜨거운수호의 키스를 나누었을 때, 오소마츠가 숨을 멈췄다

전장으로 떠나는 먼 길을 준비하던 병사들도, 기사들도 멍청히 왕과 마츠요가 만들어내는 둘만의 세상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행동을 멈추고 숨죽여 왕을 기다리는 가운데, 조심해서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왕이 말에 올랐다

말고삐를 잡고 있던 손에서 고삐가 떨어진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놀란 오소마츠에게 왕이 유쾌한 웃음을 던지고출발한다.” 하고 명령했다

고삐가 풀어졌지만, 여전히 오소마츠의 옆을 지키고 있던 애마에 오른 오소마츠가 멍청한 얼굴을 지우지 못하고 왕의 뒤를 따랐다.





* 나름 이번 장편에서 가장 중요한 반전이 나왔습니다만, 재미있게 보셨는지 모르겠네요ㅎㅎ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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