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은 단편 2번째!


* 공미포  3,159자.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 날이 있다.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기분이 가라앉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 

오소마츠에겐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형제들 모두 외출하고 홀로 남은 방에서, 숨소리조차 죽인 오소마츠가 멍청히 창밖을 응시했다. 

안개처럼 가는 빗방울이 창밖을 온통 뿌옇게 흐려놓았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 골목에는 간헐적으로 젖은 땅을 짓이기고 달리며 물웅덩이를 첨벙 밟고 지나가는 차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가슴이 크게 부풀 때까지 숨을 잔뜩 들어마시고 다시 푸후— 내쉰 오소마츠가 눈을 깜빡였다. 

고요하기 그지 없는 방안에서 오소마츠가 눈을 지그시 내리깔았다. 

제습기 없는 방안은 비에 푹 젖은 종이같았다. 

눅눅한 공기가 찰거머리처럼 피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문득 눈썹을 찌푸린 오소마츠가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스륵-,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오소마츠 바로 아래 동생. 

비구름이 껴서 흐린 날에 검은 선글라스와 가죽 자켓을 입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슬쩍 보고 옷장으로 걸어가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선글라스는 전용 케이스에 소중하게 넣고, 비를 맞은 자켓은 옷걸이에 걸어 널어놓는다. 

비 때문에 회색으로 변한 양말까지 휙 벗어 던지고 새하얀 양말로 갈아신은 카라마츠가 그제야 저를 빤히 바라보는 오소마츠를 향해 몸을 돌렸다.


“오소마츠.”

불쾌하기만했던 공기를 울리는 낮은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헷-, 입꼬리를 올렸다.


“응.”

말없이 카라마츠를 향해 두 팔을 활짝 열자, 짙은 눈썹을 늘어뜨리고 쓴웃음을 지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 앞에 무릎을 내리고 그 작은 몸을 힘껏 껴안았다.


“오늘은 어째 기분이 별로같군. 무슨 일 있었나?”

“아니—. 없었어~.”

저를 걱정하는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묘한 만족감을 느끼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 어깨에 볼을 비볐다. 

오소마츠가 입고 있는 것과 똑같은 모양의 푸른 후드에서는 비 냄새와 섞인 카라마츠의 향기가 잔뜩 붙어있었다. 

체온이 옮아 따끈한 후드에 코를 폭 파묻고 숨을 들이마셨다. 

폐에 퍼지는 연인의 체취에 오소마츠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무료함이었는지, 외로움이었는지 모를 감정은 내뱉는 숨과 함께 사라지고, 은은한 행복이 포근하게 마음을 감싸안았다. 

카라마츠 등에 두른 팔에 힘을 주자 카라마츠도 더욱 강한 힘으로 오소마츠를 얼싸안았다. 

귓가에서 울리는 심장박동에 눈을 뜬 오소마츠가 문득 덮쳐오는 불안에 입술을 깨물었다. 

혹시, 혹시나—. 만약, 이 따뜻하고 안락한 카라마츠의 품을 잃게 된다면…. 

툭툭, 처음 내린 빗방울이 지면을 적시듯 가슴에 퍼진 불안은 곳 무너진 둑을 넘어 몰려오는 물살처럼 오소마츠를 가득 채웠다. 


‘장남’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그것에 맞게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아주 가끔, 정말 가끔만 ‘오소마츠’가 되어 약해져 있을 때. 

곁을 지켜준 소중한 동생이자 연인. 

지금도 이유없는 우울함을 단번에 털어낼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한 이 품에, 두번 다시 안길 수 없게 된다면…. 

분명 피부로 전해지는 온기와 귓가에 퍼지는 숨소리, 닿아오는 심장소리는 카라마츠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데도, 두려움에 잠겨버린 오소마츠는 왈칵 치솟는 눈물을 억누를 수 없었다. 

뜨거워지는 눈시울에 황급히 카라마츠 어깨에 눈을 눌렀다. 

눈가에 닿은 후드가 축축히 젖어가는 것을 느끼며 훌쩍, 코를 들어마신 오소마츠의 기색에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혹시 우는 건가?”

화난 것처럼 들리는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쉽게 상상이 갔다. 

헤실-, 힘없는 미소를 피운 오소마츠가 그대로 고개를 들지 않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잠깐 콧물이 나와서 카라마츠 옷으로 닦은 것 뿐~.”

“어이.”

“하핫.”

험상궂게 변한 카라마츠의 부름에 오소마츠가 너털웃음을 흘리고 큰숨을 내쉬었다. 

만약의 경우를 상상했을 뿐인데도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천이 손바닥을 스치는 감각을 기억하며 카라마츠의 등을 쓸어올렸다. 

든든한 어깨에 다시금 볼을 비빈 오소마츠가 눈을 깜빡여 눈가에 남은 눈물을 말렸다.


‘그렇게 되면 아마 살 수 없을 거야….’

이 온기가 없다면, 자신을 보듬어주는 이 품이 없다면. ‘오소마츠’는 살 수 없을 것이다. 

카라마츠에게 들키지 않도록 작은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몸을 힘껏 끌어안았다. 

미래에 올 지도 모를 불안보다, 지금 누릴 수 있는 이 작고 소중한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서.




우중충한 하늘에서 내리는 부슬비에 카라마츠가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아침 일기예보는 확인하지 않은 탓에 카라마츠의 손에는 우산이 없었다. 

형제 모두 외출한 집에 도착해 열쇠구멍에 키를 꽂아 돌렸지만 공허한 회전이 손끝에서 전해졌다. 

분명 아침에 모두 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의아하단 얼굴로 현관문을 연 카라마츠가 현관에 남아있는 붉은 운동화에 옅은 미소를 피웠다. 

터벅터벅 계단을 올라 방문을 열자, 지루함을 가득 머금은 눈동자가 저에게 향했다. 

육둥이의 장남, 안하무인 쓰레기 맏형은 오늘 기분이 좋지 않은 듯했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옷장으로 걸어가 편한 후드로 갈아입은 카라마츠가 몸을 돌려 오소마츠를 부르자, 뿌루퉁한 얼굴로 팔을 활짝 펼쳤다. 

아무래도 오늘은 어리광 모드인 것 같다, 며 쓴웃음을 흘린 카라마츠가 순순히 오소마츠 앞에 무릎을 내리고 가녀린 몸을 품에 넣었다. 

난방도 틀지 않은 방 창가에 줄곧 있었던 탓인지 밖에서 들어온 자신보다 더 차가운 오소마츠의 몸에 눈썹을 찌푸렸다. 


“오늘은 어째 기분이 별로같군. 무슨 일 있었나?”

“아니—. 없었어~.”

가볍게 대답하며 어깨에 볼을 비비는 오소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또, 혼자 끌어안고, 숨기고, 보여주지 않는다. 

힘든 일이건, 슬픈 일이건, 고민하는 일이건,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혼자서 껴안고, 고민하고, 망설이는 그 버릇을 어떻게든 고쳐주고 싶은 참이건만 오소마츠는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보통은 형제들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오소마츠의 약한 면. 

그것을 오직 자신만 볼 수 있다는 것에 우월감을 느끼면서 잘게 떠는 오소마츠의 몸을 쓰다듬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볼을 치대던 오소마츠가 카라마츠 어깨에 얼굴을 깊이 묻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서서히 젖어가는 천의 감각, 그리고 아주 작지만 훌쩍, 하고 코를 들이마시는 소리에 카라마츠가 팩 눈썹을 찌푸렸다.


“오소마츠…? 혹시 우는 건가?”

저도 모르게 걱정에 섞인 울화가 목소리를 거칠게 만들었다. 

또 무엇인데 자신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는 건지. 답답한 마음에 크게 숨을 내쉬자 오소마츠가 고개를 흔들며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깐 콧물이 나와서 카라마츠 옷으로 닦은 것 뿐~.”

“어이.”

“하핫.”

아무렇지도 않은,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해도 그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을 카라마츠는 알 수 있었다. 

제 등을 쓸어올리는 손길에 카라마츠가 괴롭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오소마츠를 강하게 껴안았다. 

이유따위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자신의 존재가 미약하게 나마 오소마츠를 위로해주기를, 그리고 지탱해주기를 바라며 오소마츠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다시 얼굴을 비비기 시작한 오소마츠의 고른 숨소리에 맞춰서 통통, 천천히 등을 두드렸다. 

누구도 없는, 혼자만 남은 방에서 홀로 슬픔을 삭히는 오소마츠의 곁에 반드시 자신이 있기를 원했다. 

이렇게 가녀리고 애처롭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혼자 남겨두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홀로 다짐한 순간, 예상치 못한 불안이 카라마츠를 덮쳤다. 


만약, 자신이 사라진다면…. 오소마츠보다 먼저, 오소마츠를 남겨두게 된다면…. 

저도 모르게 오소마츠의 후드를 꽉 움켜쥔 카라마츠가 흔들리는 눈동자를 눈꺼풀 속에 감췄다. 

까매진 시야 속에 홀로 남아 울지도 못하고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오소마츠가 그려졌다. 

안아주는 이 없이, 위로해주는 이 없이. 고독과 외로움에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갈 오소마츠가.

 

‘그런 일은 일어나선 안된다. 절대 용납할 수 없어.’


번쩍 눈을 뜬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끌어안았다. 

오소마츠의 희노애락은 모두 카라마츠의 옆에 있을 때 성립되어야 했다. 

자신이 아니면 이렇게 약해진 오소마츠를 껴안아 줄 수 없다.

 평범한 형제에게 그런 것은 기대할 수 없다. 

오직 카라마츠 자신만이, 연인인 자신만이 오소마츠를 품에 안을 수 있다. 절대로 오소마츠를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카라마츠가 제게 기대는 오소마츠를 쓰다듬었다. 

지금의 이 행복이 영원까지 이어질 것이라 확신하면서.





*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문득 몰려오는 두려움에 대해 써 보았습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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