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오랜만에 글 올리네요... 한달 넘게 글을 못 올렸....ㅠㅠ


* 원래는 장편 '장남의 심중' 외전을 올리려고 했는데, 충동적으로 쓰기 시작한 글이 빠르게 완성되어서 먼저 올려요!


* 육둥이의 학창시절 날조가 나옵니다.


* 글 내에서 미성년자의 음주 내용이 나옵니다만, 저는 아직 (한국나이) 20세가 되지 않은 학생들의 음주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미성년자의 음주에 비판적인 입장이며 글 내에서도 그러한 부분이 나옵니다.


* 구토 표현이 나옵니다.


* 등장인물 간의 대화부분은 굳이 맞춤법을 지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 공미포 9,618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가게 위 천장으로 올라가는 하얀 연기, 식욕을 돋구는 독특한 탄 내와 치익- 하고 불판에 울리는 소리에 오소마츠는 눈을 돌릴 수 없었다. 

붉은 빛을 내는 숯불 위에 올려진 철판은 기름기 가득한 고기를 안달나게 괴롭히고 있었다. 

나중에 집에 들어가면 옷에 가득 묻은 고기 냄새로 동생들을 골려줄까, 그다운 바보같은 생각을 하며 군침을 꿀꺽 삼킨 오소마츠가 젓가락을 들었다. 

노릇노릇 구워진 고기를 들어올려 입 밖으로 길게 뺀 혀 위에 올리고 누가 뺏어갈 듯이 빠르게 입 안에 숨겼다. 

우물우물 천천히 치아를 움직이면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은 육즙과 함께 부드럽고 쫄깃한 고기가 혀 위에서 춤췄다. 

눈물까지 흘릴 기세로 맛을 음미하며 고기를 씹어 삼키고 시원한 맥주잔을 들어 벌컥벌컥 호쾌하게 마신 오소마츠가 “크햐~~~!!” 하고 커다란 감탄사와 함께 맥주잔을 쿵 식탁에 내려놓았다. 

조금 전까지 시원한 맥주가 담겨 있었던 잔에는 고깃집에 가득한 연기가 물방울이 되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여~, 장남. 오늘 달리는 거?”

단번에 맥주를 입에 털어 넣은 오소마츠를 보며 웃은 남자가 오소마츠의 빈 잔에 맥주를 따랐다. 

오소마츠의 앞도, 뒤도, 옆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옹기종기 모여 앉은 동창들. 

서로 웃고 떠들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그들은 실로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들이었다. 

다시 가득 찬 맥주잔에 흡족한 웃음을 피운 오소마츠가 동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술은 공짜잖아! 이럴 때 달려야지!”

“회비 다 걷었거든!?”

“나는 안 냈지롱~.”

“야야, 저 장남시키 잔 뺏어.”

“앙돼애~~.”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짓궂은 말에 오소마츠가 장난감을 뺏기지 않으려 애쓰는 어린아이처럼 맞장구치며 어깨를 움츠렸다. 

함께 웃고 있는 친구가 정말로 잔을 뺏어갈까봐 찰랑이는 맥주잔을 품에 안은 오소마츠가 입술을 삐죽였다.


“카라마츠가 내 몫까지 냈다구~! 그러니까 나도 마실 권리가 있단 말씀!”

“너는 진짜 변한 게 없구나?”

흥흥, 과장된 콧방귀를 끼면서 멀리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있는 카라마츠를 가리킨 오소마츠가 씩- 웃으며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홀로 2인분의 회비를 내야했을 카라마츠를 동정하며 쓴웃음을 흘린 친구는 오소마츠를 향해 작게 혀를 찼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오소마츠와 같은 반이었던 지독한 악연의 친구는 유독 오소마츠에게 자주 엮이는 카라마츠를 측은히 바라보았다. 

원래 동생 좋아하기로 유명했던 오소마츠였다. 

다만 그 애정 표현 방식이 보통의 형제들과는 많이 달랐던 탓에 오소마츠의 동생들은 학창 시절 많은 사건사고에 휘말려야 했다. 

그 중에서도 오소마츠의 애정 아닌 애정을 가장 많이 받은 차남은 그 빈도가 잦았다.

자신이 그 당사자였다면 진작에 얄밉고 짜증나는 형을 무시했겠지만, 상냥한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모를 카라마츠는 질리지도 않고 오소마츠를 상대했다.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같은 반이었던 고교 2학년 때의 1년은 카라마츠에게는 지옥같은 1년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였다. 

오소마츠가 벌린 싸움에 강제 동참하고, 오소마츠가 친 사고에 함께 선생님에게 쫓기고, 오소마츠의 지독한 장난에 일방적인 희생자가 되어야했으니 주변의 동정을 사는 것은 당연했다. 

자기때문에 동생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리 없는 오소마츠는 너무나 순진한 얼굴로, 전혀 변하지 않은 해맑은 미소를 띄고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진짜- 답이 없는 바보라니까. 기적의 바보.’

홀로 그렇게 수긍하며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흘린 친구가 문득 입가로 가져가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갑자기 생각났는데 말이야…. 카라마츠, 언제 한 번 엄청 크게 화낸 적 있지 않았나? 오소마츠 한테.”

서두 없이 던져진 질문에 오소마츠가 젓가락을 멈추고, 그 주변에 앉은 친구들이 고개를 기울였다. 

오소마츠의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안쓰러웠지만, 여학생들 사이에서도 무해무독한 순딩이로 유명했던 카라마츠였다. 

그가 화를 낸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기에 친구들은 모두 눈썹을 찌푸리고 ‘그런 일이 있었나?’ 하는 얼굴로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친구들의 시선에 오소마츠는 어딘가 굳은 얼굴로 “몰라.” 하고 짧게 대답하고 다시 바쁘게 고기를 입에 쑤셔넣었다. 

얼버무리는 것처럼 대답을 흘리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친구들의 궁금증은 더욱 깊어졌다.

묘한 오소마츠의 태도에 친구들은 모두 머리를 싸매고 그런 일이 있었나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가게 안, 오소마츠가 앉은 테이블만이 조용한 침묵에 빠졌다.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고기나,”

“아, 아아~~. 있었다!!”

맛난 고기를 눈 앞에 두고 끙끙대는 소리를 내는 친구들을 보고 볼을 부풀린 오소마츠가 뭐라 타박하려는 순간, 친구 하나가 트릭을 전부 푼 탐정처럼 얼굴을 밝히고 외쳤다. 

아직도 추억을 헤집고 있던 친구들은 기억을 떠올린 친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있었다고??”

“있었나? 카라마츠는 맨날 오소마츠한테 당하기만 하지 않았어? 순딩이였잖아, 그 녀석.”

“좋게 말해서 순딩이지, 사실상 호구였지.”

“왜, 그, 그그…. 언제였지? 수학 여행 때!”

“수학 여행?”

“그 때 카라마츠가 화냈다고?”

“아! 그렇네. 있었다!”

“그지?? 있었지?”

“응! 확실히 그 때 엄청 화냈어!!”

의심 가득한 목소리에 친구가 흥분하며 이야기를 꺼내자, 하나 둘씩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무심코 세탁기에 넣고 돌린 바지에서 비상금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환호하며 눈을 빛낸 친구들 가운데 떨떠름한 표정을 한 것은 오소마츠뿐이었다.


“저기…. 그 이야기는 그만 하고 맥주나,”

“근데 그 녀석 왜 화냈더라?”

“우리가 오소마츠랑 술 마셨다고 화냈잖아.”

젓가락을 움직이며 고기와 맥주로 화제를 돌리려는 오소마츠가 무색하게 기억의 꼬투리를 잡은 친구들은 점점 선명해지는 추억에 몸을 들썩이며 신나 있었다. 

카라마츠가 확실히 그 때 화 냈었다, 왜 화냈지?, 술 먹었잖아 등등. 

한 마디씩 나오는 증언에 오소마츠는 서서히 친구들 무리에서 멀어졌다. 

화난 것도, 짜증난 것도 아닌 묘한 표정으로 퍼즐 맞추듯 완성되가는 추억 이야기에 오소마츠가 초조하게 마른침을 삼켰다.






2.


고교 2학년의 꽃이라 하면 그것은 바로 수학 여행일 것이다. 

나라나 교토처럼 판에 박힌 여행지라도 교복을 입은 채 학교를 벗어나 여행을 한다는 것은 학생들에게는 설레는 일이었다. 

수학 여행 가기 한 달 전부터 함께 움직일 그룹을 정하고, 자유 시간에 갈 관광지를 의논하며 잔뜩 들뜬 철없는 고등학생들. 

그 속에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도 당연히 들어가있었다. 

똑같은 얼굴이 같은 반에 있으면 헷갈린다는 이유로 육둥이는 으레 서로 다른 반으로 뿔뿔히 흩어졌으나, 서로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개성이 생긴 이후엔 종종 같은 반에 두 명이 들어가기도 했다. 

고교 2학년의 A반에는 1년 내내 붉은 후드를 입고 다니는 오소마츠와 짙은 눈썹을 가지고 과장된 연극톤을 달고 사는 카라마츠가 있었다. 

수학 여행을 앞두고 굳이 권유하지 않아도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는 친구들과 같은 조에 들어갔고, 그들은 숙소에서도 같은 방을 쓸 예정이었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나라와 교토의 유적지를 돌아보는 검은 제복의 학생 무리들. 

그 속에서는 친구들과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 받으며 웃는 오소마츠도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카라마츠가 자리잡았다. 

하루 종일 안내원이 이끄는 대로 관광 코스를 돌아본 학생들은 저녁 식사 후 숙소에 돌아와서야 마음편히 다리 뻗고 쉴 수 있었다.


“기왕 수학 여행 갈거면 오키나와가 좋은데.”

짐을 풀고 수건을 어깨에 두른 친구의 말에 미리 깔린 이불에서 뒹굴던 오소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오키나와는 뭐 있어?”

“적어도 여기보단 재미있을 걸?”

작년, 가족 여행으로 오키나와를 갔던 친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수학 여행의 메카, 큰일이 없는 한 당연하게 정해지는 나라와 교토에는 오소마츠와 친구들처럼 수학 여행을 온 학생들과 관광객들이 발에 치일 정도로 많았다. 

교과서에 나왔던 유적지를 하나씩 돌아본 들, 한창 때의 고등학생들에겐 별 흥미도 없는 곳이었다.


“그래도 내일은 자유시간 많으니까 딴 데 가보자구~.”

늘어지게 하품하며 말하는 오소마츠에게 고개를 끄덕인 친구가 문득 비어있는 오소마츠 옆자리에 눈치챘다.


“카라마츠는?”

“토도마츠네 방에 갔어~.”

“헤—.”

시큰둥한 오소마츠의 대답에 친구도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숙소에 있는 커다란 대욕탕은 여학생, 남학생 나누어 사용할 시간을 정해놓았지만, 방에 있는 친구들 누구도 욕탕에 가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얼굴과 팔다리만 씻는 간단한 방법을 원한다면 숙소 방에 있는 화장실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오소마츠와 다른 친구들은 욕탕에 가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그대로 토도마츠랑 씻고 오지 않을까?”

화장실에서 막 씻고 나온 친구가 카라마츠의 행적을 묻자 오소마츠가 다시금 대답하며 몸을 굴렸다. 

엎드렸던 오소마츠가 이불에 대자로 누워 배를 내놓고 있는 모습에 친구들이 키들댔다.


“그럼 뭐라 태클 걸 녀석도 없는 것 같으니, 이걸로 조촐하게 놀아볼까?”

오소마츠에 버금가는 장난꾸러기라 알려진 친구가 지루해하는 친구들을 둘러보며 자신의 가방을 들어올렸다. 

뭔데 그러냐는 얼굴로 저를 보는 친구들을 보며 씨익- 간사한 웃음을 피운 그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푸른색의 술병이었다.


“엑!? 너 그런 거 가져왔었냐?? 용케 안 걸렸네….”

떡 하니 바닥에 내려놓은 술 5병에 친구들이 모두 입을 벌렸다. 

“케케케-, 다 수가 있지~.” 하고 웃은 친구가 가방에서 병따개를 꺼내며 눈을 반짝였다.


“마셔볼 사람?”

“나.”

“아, 나도.”

“오소마츠는?”

“나두~~!”

아버지의 컬렉션을 슬쩍했다는 친구의 불필요한 설명을 한귀로 흘리며 이불에서 벌떡 일어난 오소마츠가 친구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3.


“그럼 카라마츠 형, 내일 봐~.”

“아-.”

다소곳이 유카타를 입고 얌전히 갠 수건을 손에 든 토도마츠가 카라마츠에게 손을 흔들었다. 

멋을 내겠다고 살짝 묶은 오비 덕분에 앞섬이 훤히 드러난 카라마츠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방을 향해 발을 돌렸다. 

토도마츠의 짐 정리를 도와달라는 요청에 토도마츠의 방에 가서 갔다가 그대로 목욕까지 한 덕분에 카라마츠가 방을 떠난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말았다. 

괜히 솟아나는 원인 모를 불안에 종종걸음으로 뛰다싶이 해 방에 도착한 카라마츠가 문을 열자, 그 앞에 펼쳐진 광경은 카라마츠에게서 말을 빼앗았다.


널부러진 술병은 깔끔하게 비어 있었고, 친구들은 저마나 방 곳곳에 쓰러져 창백해진 얼굴에 간신히 숨만 내뱉고 있었다. 

우엑~, 으~, 하고 신음하며 앓는 친구들의 모습에 멍청히 선 카라마츠가 눈을 굴리며 오소마츠를 찾았다. 

늘어진 친구들을 밟지 않도록 조심조심 발을 옮겨 방 안에 들어가서야 벽에 기대있는 오소마츠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형님!?”

“우에~~.”

카라마츠의 큰 성량에 오소마츠가 몸을 움찔 떨었다.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허옇게 뜬 오소마츠의 안색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눈을 지그시 감고 눈썹을 잔뜩 찌푸린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부름에도 대답할 기력이 없는 것처럼 손을 까딱였다.


“대체 뭘 한건가!”

“으…. 윳치가 술 가져와서…. 다같이,”

“바보인가, 너는!!”

“목소리, 커어…. 머리 울려어~~.”

오소마츠의 발치에 기절하듯 잠든 친구의 애칭을 부르며 가리킨 오소마츠에게 카라마츠의 노성이 닿았다. 

징징-, 북을 두드리듯 머리에 가득 울리는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신음하며 카라마츠를 밀어냈다. 

푹-, 형제의 한심함에 큰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빈 술병을 들어올렸다. 

요리조리 돌려 술병을 살핀 카라마츠의 짙은 눈썹이 거세게 일그러지더니 짜증 섞인 한숨이 바닥에 내려앉았다.


“도수가 25도나 되는 술을 이렇게나 많이 마셨으니….”

빈 술병은 다섯, 오소마츠를 비롯해 쓰러져있는 친구들은 네 명. 한 사람당 적어도 한 병은 마셨다는 소리였다. 

처음 마셔보는 어른의 음료, 술. 

그리고 수학 여행을 와 들뜬 기분과 하루 종일 돌아다녀 지친 몸과 쌓인 피로가 합쳐져 환상적인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다. 

처음 마시는 이들이 자제를 했을 리 없고, 적당한 때에 멈췄을 리도 없다. 그 증거가 방에 늘어져 있으니.


“우읏,”

“오소마츠?”

선생님이 이 모습을 보면 내일 있을 자유 여행은 물 건너 갈 것이 분명하기에 카라마츠는 일단 증거라도 없앨 생각으로 술병을 한 곳에 모으고 있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오소마츠의 괴로운 신음이 들리기 전까지는. 

몸을 홱 돌려 자신에게 달려온 카라마츠를 오소마츠가 거칠게 밀어내고 화장실로 달려 들어갔다.


“우엑, 웩, 흐긋,”

변기에 얼굴을 처박고 오늘 먹었던 것을 모두 게워내는 오소마츠는 너무나 괴로워보였다. 

원체 건강했던 육둥이였기에 구토를 하는 것도 드물었다. 

어지간히 아프지 않는 한, 뱃속이 뒤집히는 일은 없었기에 오소마츠는 처음 느끼는 낯선 감각과 함께 화산이 분출되듯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위액을 쏟아냈다. 

죽을 것처럼 멈추지 않고 구역질하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는 크게 당황했다. 

손에 들고 있던 병을 던지고 오소마츠 옆에 쭈그린 카라마츠는 눈물 콧물 쏟아내는 오소마츠에게 뭘 해야 할지 몰라 손을 휘적이다 이내 오소마츠의 등을 천천히 두드렸다. 

마츠요가 그러했듯 천천히 일정한 간격을 두고 오소마츠의 등을 두드리고 오소마츠가 심하게 괴로워하면 등을 위아래로 쓰다듬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서서히 오소마츠의 구역질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코를 훌쩍이며 고개 든 오소마츠의 얼굴은 심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처참했다. 

짙은 눈썹을 있는 대로 찌푸리고 입술을 깨문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나무라는 것은 일단 미루고 오소마츠를 천천히 일으켰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말도 꺼내지 못하는 오소마츠를 세면대 앞에 세우고 물을 틀어 정성스럽게 오소마츠의 얼굴을 씻겼다. 

거부할 힘조차 없는 오소마츠는 숨을 헐떡이며 가만히 카라마츠의 손을 받아들였다. 

눈물과 콧물과 입에 흘러나온 잔해들을 닦아내고 가방에서 섬유유연제 냄새가 나는 새 수건을 꺼내 오소마츠의 얼굴을 닦아내고 나서야 카라마츠와 오소마츠는 화장실을 나올 수 있었다. 

위를 비우고도 오소마츠는 술이 깨지 않았는지 머리가 아프다며 신음하고 몸을 웅크렸다. 

벽에 등을 기대로 작은 어린아이처럼 둥글게 몸을 움츠린 오소마츠에게 얇은 이불을 덮어준 카라마츠가 한숨 쉬며 몸을 일으켰다. 

선생님이 보기 전에 숙소 밖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쓰러진 친구들을 이불에 눕혔다. 

그 모든 것을 끝내고 나니 목욕 후 보송보송했던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다시 씻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기에 씻기를 포기하고 오소마츠 옆에 다가간 카라마츠가 조심스럽게 무릎 위에 올려진 오소마츠의 팔을 풀어 얼굴을 끄집어냈다.


“형님, 좀 괜찮나?”

“우으~~~. 아까보단 괜, 찮아아….”

죽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하는 오소마츠를 보고 허탈한 한숨을 쉰 카라마츠가 작게 오소마츠를 꾸짖었다.


“그러게 왜 술 같은 걸 마신건가. 졸업하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데. 이렇게 될 때까지 마시고.”

“으그~~~~. 한 번 정도는 마셔보고 싶잖아아—.”

“전에 집에서 대디에게 한 잔씩 얻어 마셔봤잖아.”

“그, 그렇지만…. 또 마셔보고 싶었다구….”

“그 때는 쓰다고 다신 안 마신다며?”

“마시고 싶은 이유가 따로 있었어!!”

담담하게 저를 질책하는 카라마츠에 울컥해 대답한 오소마츠가 자신의 큰 목소리에 울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하아~, 하고 커다란 한숨을 쉬는 카라마츠에게 다시 발끈했지만 여기서 또 언성을 높여봤자 오소마츠만이 손해였다. 

건조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카라마츠를 한껏 흘겨본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가슴을 밀어 옆에 펴진 이불로 넘어뜨렸다.


“나 잘거니까 저리 가.”

일방적으로 말한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대답도 듣지 않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자신의 이불에 누웠다. 

형광등이 비친 주황빛의 이불 속에서 둥글게 몸을 만 오소마츠는 옆에서 들려오는 한숨과 부스럭거리는 이불 소리에 조용히 입술을 깨물고 눈을 감았다.






4.


“그래서 다음 날 카라마츠 엄청 화냈잖아.”

“그랬지~. 왜 몸도 못 가눌 정도로 술을 먹냐고.”

“처먹냐고 했었어. 나, 카라마츠가 그렇게 험한 말 하는 거 처음 봤다.”

“선생님들한테 안 들킨 건 정말 기적이었지.”

“그래도 카라마츠가 의리있게 뒷정리 해 줬으니까.”

“나 그날 이후로 다시는 술 안 마시겠다고 맹세했잖아.”

“지금 니 손에 들린 건 뭐냐.”

“맥주.”

“맹세 어따 갖다 버렸냐.”

키들키들 웃으며 알딸딸한 술기운으로 무르익은 분위기에 추억 이야기를 섞는 친구들의 웃음에도 오소마츠는 묵묵히 고기를 먹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수학 여행에서 젊은 날의 치기로 마신 술. 

다음 날, 오소마츠와 친구들은 모두 무시무시한 숙취에 시달렸다. 안주도 없이 한없이 술을 들이켰으니 예정된 결과였다. 

자유 시간이 되어도 오소마츠와 친구들은 반친구들에게 ‘좀비’라고 불릴 정도로 흐물거렸고, 카라마츠는 여행 내내 오소마츠를 무시했다. 

구토까지 할 정도로 술에 빠져 속을 버려놓았으니 카라마츠가 화내는 것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었지만, 친구들은 카라마츠가 그렇게 진심으로 화내는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오소마츠가 아무리 말을 걸어도 묵묵부답. 오소마츠가 힘들어하면 부축은 했지만 대화는 일절 나누지 않았다. 

오소마츠가 옆에 가면 자리를 피하고, 말도 걸지 않고, 노골적으로 오소마츠를 비난하는 눈으로 노려보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친구들은 그를 말리려는 시도도 하지 못했다. 

조용하던 이가 화나면 더 무섭다고 누가 그랬던가. 

친구들은 카라마츠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고, 오소마츠 역시 평소와 달리 카라마츠에게 쉬이 말을 걸지 않았다. 

그 상태로 자유 여행이 끼어있는 둘째 날, 집에 돌아가는 셋째 날을 보내자니 같은 조에 속한 친구들은 카라마츠와 오소마츠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공항까지 이어졌던 답답한 분위기를 떠올린 친구들이 하나같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진짜 그 때 숨 막혔다.”

“오소마츠 너가 제대로 사과를 안 하니까 그렇지.”

“술 좀 마셨다고 화 내는 카라마츠가 너무하지!?”

“아니, 너 그때 엄청 퍼마셨으니까.”

“나, 그 날 이후로 카라마츠한테 엄청 째려봐졌다….”

“술 가져온 거 윳치잖아. 만악의 근원이었지, 너가.”

“그렇다고 그렇게 째려봐? 눈빛으로 살해당하는 줄 알았다, 야.”

“그렇게 화 내는 거 봤을 때, 솔직히 카라마츠가 ‘형’ 같았어.”

“하, 하아!?”

친구의 입에서 흘려나온 말에 오소마츠가 발끈해 외치자 옆에 앉은 유우지(윳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소마츠, 너 왜 그렇게 얼굴이 빨개? 벌써 취했어?”

“설마~. 오소마츠 은근 술 세잖아.”

“근데 정말 빨간데?”

엄연히 자신이 카라마츠의 ‘형’이라는 것을 어필하려던 오소마츠가 친구들의 지적에 뜨거운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주저앉았다.


“아님 상태 안 좋아?”

오소마츠를 향해 고개를 기울인 친구의 질문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젓기도 전에 낮은 목소리가 떠들썩한 공기를 뚫고 오소마츠 옆에 가라앉았다.


“오소마츠.”

오소마츠를 걱정해 뻗은 유우지의 손을 막아내듯, 오소마츠와 유우지 사이에 남아있던 좁은 틈에 엉덩이를 끼워넣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빤히 바라보았다.


“술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닌가?”

걱정스럽게 오소마츠와 눈을 맞추고 물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붉은 뺨에 손바닥올 갖다 대었다. 

부드러운 볼에서 미약하게 전해져오는 열기에 카라마츠가 눈썹을 찌푸리고 흘끗 제 옆에 앉은 유우지를 흘겨보았다. 

드물게 술을 마셔 체온이 높아진 카라마츠의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와 볼에 맞닿은 카라마츠의 거칠고 마른 손바닥의 감촉에 오소마츠는 더욱 더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휘저어 카라마츠의 손을 털어냈다. 

따끈한 볼에서 떨어져 허공에 떠 있는 자신의 손에 험악하게 눈썹을 찡그린 카라마츠가 눈을 돌려 유우지를 본격적으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많이 마신 건가?”

“아니, 많이 안 마셨어! 오소마츠 볼이 빨간 건 술 때문이 아니라구! 나 그만 노려봐~~!!”

카라마츠의 추궁에 유우지가 손사래를 치며 억울하단 얼굴로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친구들은 테이블 옆에 세워진 빈 병을 눈짓하며 유우지의 말에 동의했다. 

빈 맥주병은 겨우 3병. 오소마츠의 주량에 한참 못 미치는 양이었다. 

카라마츠는 미심쩍은 눈으로 빈 병을 보고 한숨과 함께 오소마츠 어깨에 팔을 감았다.


“먼저 돌아가야 할 것 같군. 다음에 또 보자, 프렌즈-!”

“그래그래~, 조심히 가.”

“잘 가~.”

붉은 얼굴을 숨기려 고개 숙인 오소마츠와 함께 일어난 카라마츠가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모아 눈가에서 튕기며 인사했다. 

변하지 않은 안쓰러운 언동에 친구들 모두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를 배웅했다.






5.


오소마츠의 팔은 자신의 어깨에 올리고 자신의 팔은 오소마츠 허리에 감은 카라마츠가 어두운 길목에 비친 빛을 등지고 섰다. 

가게에서 새어 나오는 빛은 그 속에 담긴 떠들썩한 인파의 말소리처럼 따뜻했다. 

격자 모양으로 나눠진 빛에 길게 드리운 두 사람의 그림자를 밟고 서서 오소마츠를 가만히 바라본 카라마츠가 말없이 허리를 구부렸다.


“업혀라.”

“어? 나 그 정도로 취하지 않았어.”

“그래도 일단 업혀라.”

“괜찮은데…….”

막무가내로 업히라 재촉하는 카라마츠의 고집에 오소마츠가 머리를 긁적이고 그 등에 올라탔다. 

자신과 같은 온도의 체온이 전해지는 등에 몸을 의지한 오소마츠는 집을 향해 걷기 시작한 카라마츠의 어깨에 볼을 비볐다.


“카라마츄우~.”

“응? 뭔가.”

후헤헤—, 하고 잘은 웃음을 흘리는 오소마츠를 따라 카라마츠도 입꼬리를 올렸다. 

조금 전까지 차가운 눈초리로 동창 친구들을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부드러운 눈빛과 음성으로 오소마츠를 감싼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좋아해.”

수줍은 듯, 작게 귓가에 들릴락 말락한 가녀린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빙긋- 웃었다. 

자신의 등에 숨은 오소마츠의 얼굴은 분명 딸기처럼 새빨갛게 물들어 있을 것이다. 

훗, 하고 새어나오는 행복한 웃음을 참지 못한 채로 카라마츠도 오소마츠에게 얼굴을 돌려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도 좋아한다, 오소마츠.”

꿀처럼 달콤하게 닿은 대답에 오소마츠는 만족한 듯이 “히힛.” 하고 웃으며 카라마츠의 목에 팔을 감았다.





동창들은 알지 못하는 둘 만의 비밀이 있다. 

수학 여행 일정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에 왔을 때, 아직도 오소마츠와 말을 나누지 않는 카라마츠를 친구들은 피했다. 

친구들 무리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묵묵히 짐을 지키는 카라마츠에게 먼저 다가간 것은 오소마츠였다.


“카라마츠, 미안하다니까…. 그렇게 많이 마실 생각은 아니었다구…. 조금만 마실려고 했어, 정말로.”

항상 자랑하던 장난스럽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싹 지운 진지한 얼굴로 건넨 사과가 통했는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와 눈을 맞췄다. 

드디어 자신을 봐 준 카라마츠에 기쁜 기분을 드러내며 멋쩍은 웃음을 지은 오소마츠가 다시 한 번 카라마츠에게 사과했다.


“미안….”

“…하아—.”

비수처럼 날아오는 한숨에 오소마츠가 깊이 고개 숙였다. 

무슨 말이 날아올지 몰라 두려워 잘게 몸을 떠는 오소마츠에게 다가온 것은 뜻밖에도 다정한 카라마츠의 손이었다. 

오소마츠의 머리 위에 조심스럽게 얹어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는 카라마츠의 손길에 오소마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 들었다.


“카라마츠…?”

“나야말로 화내서 미안했다. 형님이 그렇게까지 힘들어하는 건 처음 봤으니까, 당황해서…. 그리고 그렇게 될 때까지 술을 마신 것에는 솔직히 화났었다. 하필 내가 없을 때 그렇게 마신 것도….”

“우, 우응….”

예상하지 못했던 말들에 오소마츠는 얼떨떨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것은 현실인가? 꿈을 꾸는 것은 아닌가? 

머리 한쪽에서 혼란스러운 질문들이 떠올랐지만 오소마츠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카라마츠의 얼굴은 ‘동생’인 그에게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었다.

 괴롭게 찌푸린 눈썹과 눈가에 희미하게 맺힌 붉은 기운과 무언가를 망설이는 입술은, 오소마츠가 처음 보는 표정을 만들었다.


“카라, 마츠?”

“너무…, 몸을 함부로 하는 일은 하지 말아줬으면 해. 좋아하니까, 걱정된다…. 그러니까,”

“…………헤?”

조심히 카라마츠의 이름을 부르자, 카라마츠가 입에 머금고 있던 말을 꺼냈다. 

그 안에 담긴 마음에 오소마츠는 멍청한 되물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줄곧 오소마츠가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것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것이었다.


“형님을, 오소마츠를 좋아하니까…. 너무 무모한 일은 하지 말아줘.”

다시금 되새기듯 전한 말에 오소마츠는 숨 쉬는 것도 잊을 뻔 했다. 

달아오르는 얼굴의 열기는 오소마츠의 머리까지 침식해 들어와 이성을 꽁꽁 얽어맸다. 

그것은, 그 말은, 오소마츠가 줄곧 카라마츠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로,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몰라 술기운을 빌리려 했던 말이었으니까. 

오소마츠는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억지로 삼키고 뜨거워진 눈시울을 숨기려 눈을 깜빡이며 고개 숙였다.


“미안, 미안하다…, 형님. 기분 나쁜 말을 해서.”

카라마츠는 알고 있었다는 듯이 오소마츠에게 사과하며 자리를 떠나려 했다. 

하지만 떨리는 오소마츠의 손이 카라마츠의 옷깃을 붙잡은 탓에 떠날 수 없었다.

“오소마츠…?”

‘형’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엔 불안감과 아주아주 작은 기대가 담겨 있었다.

고개를 들어올린 오소마츠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 나올 것 같은 눈동자에 카라마츠를 담고 씨익- 웃었다. 

울음을 참느라 빨개진 코끝을 버릇처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기쁘게 웃은 오소마츠가 금고에 소중히 숨겨둔 말을 전했다.


“나도, 좋아해.”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어서 술의 힘을 빌리려다 실패하고 만 그 말을.





* 정말 오랜만에 올린 글이네요ㅎ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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