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고오소 요소가 있습니다만, 사랑은 없습니다.
* 카라마츠 아래 다섯명이 오쌍둥이. 오소마츠는 외동이라는 설정입니다.
* 야쿠자 카라마츠 x 일반인? 오소마츠
* 개인적으로 토고오소는 조금 지뢰라서 쓸 일이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쓰게 되었습니다...ㅎㅎ
* 쓰다보니 길어져 상, 하편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 부족한 글 실력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택가에 위치한 평범한 공원, 풀 숲이 우거진 인적이 드문 공원 구석에서 카라마츠는 무릎을 안고 고개를 묻었다.
흐르는 눈물이 무릎에 떨어져 흘렀다. 터져 나오려는 울음소리를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카라마츠는 다리에 머리를 깊게 묻었다.
아카츠카구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마츠노가는 에도시대부터 이어진 유서깊은 가문이었다.
가문의 시작은 야쿠자로, 현재 가문이 관리하고 있는 모든 사업이 합법임에도 불구하고 마츠노가는 고쿠도(야쿠자)로 알려져 있었다.
카라마츠는 그런 마츠노가의 27대 손으로 오쌍둥이 중 장남이었다. 마츠노가에서 장남이라는 타이틀의 무게는 다른 일반 가정보다 무거웠다.
5살부터 시작된 후계자 교육은 어린아이에게는 너무나 가혹하고 힘겨웠다. 오늘도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불평을 쏟아붓자 아버지 마츠조의 불호령이 떨어져 카라마츠의 기분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버지의 불호령에 울상을 지으며 옆에 있던 쵸로마츠에게 툴툴대자 쵸로마츠는 싸늘한 얼굴로 ‘그러니까 네가 텅텅 비었다는거야, 이 텅빈(카랏뽀)마츠 형.’ 라는 심한 말을 들어, 카라마츠는 참지 못하고 그대로 집을 뛰쳐나왔다.
지금쯤 집에서는 한창 자신을 찾아다니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카라마츠는 눈물을 멈추고 눈가를 닦아냈다.
슬슬 돌아가자고 생각한 순간, 카라마츠가 앉아있는 수풀 맞은편에 자리한 벤치에 누군가가 다가가 앉았다.
호기심에 풀숲에서 머리만 살짝 내밀어보니 카라마츠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앉아있었다.
오쌍둥이인 자신과 동생들과 너무나 닮은 얼굴에 카라마츠는 놀라 더욱 자세히 소년을 관찰했다. 붉은 후드를 입은 소년은 붉게 부어오른 뺨을 문지르고 있었다.
“으~ 젠장. 망할 아저씨. 겨우 그거 갖고 이렇게 귀여운 나를 패냐…”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뺨을 문지르는 소년은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풀숲에서 살며시 일어나 주머니에 들어있던 손수건을 꺼냈다.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라며 어머니 마츠요가 항상 넣어주는 것이었다. 식수대로 발걸음을 옮겨 손수건을 적셨다.
공원의 식수대는 신식 기계를 사용해 항상 얼음장마냥 찬 물이 나왔다. 수건을 적셔 적당히 짠 후, 카라마츠는 소년에게로 다가갔다.
“..아?”
차갑게 젖은 손수건을 내밀자 소년이 얼굴을 찌푸리며 카라마츠를 노려봤다.
그 눈빛은 마치 카라마츠를 혼내기 전의 마츠조의 눈빛과 닮아 카라마츠는 몸을 움츠렸다.
“이, 이거. 볼에 대고 있어.”
잔뜩 움츠린 채, 손수건을 내민 손을 더욱 앞으로 뻗으며 말하자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카라마츠와 손수건을 번갈아 보더니 손을 뻗어 손수건을 손에 쥐었다.
부어오른 뺨에 카라마츠의 손수건을 갖다 대는 것을 본 카라마츠가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쉰 후, 소년의 옆에 앉았다.
“저기, 왜 다친거야?”
살며시 고개를 돌려 물으니, 소년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돌아와 다시 고개를 돌려 땅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르고 이내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더니 공원 가득 종소리가 울렸다. 저녁 6시를 알리는 종소리였다.
옆에 앉은 소년에게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카라마츠에게 손수건이 돌아왔다.
“에..?”
“이거, 고마웠어.”
소년은 무표정이었지만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워져 있었다. 카라마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소년이 내민 손수건을 받았다.
“저기…”
카라마츠가 손수건을 받자 몸을 돌려 돌아가려는 소년을 불러 세웠다. 소년은 고개만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너는 이름이 뭐야? 나, 나는 마츠노 카라마츠야!”
“…오소마츠.”
소년은 작게 말하곤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소년의 뒷모습에서 풍겨오는 거절의 오라는 ‘따라오지 마.’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 카라마츠는 그 이상 소년을 붙잡지 못했다.
서서히 멀어지는 소년의 작은 뒷모습에 카라마츠가 중얼거렸다.
“또,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카라마츠는 소년의 체온으로 따뜻해진 손수건을 꽉 쥔 후,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 날 이후, 카라마츠는 시간만 되면 그 공원으로 향했다. 또 그 소년을, 아니 오소마츠를 만나고 싶었다.
일주일 동안 매일 공원에 갔지만 오소마츠는 만날 수 없었다.
“또 그 공원?”
카라마츠가 나갈 준비를 하고 현관을 나서려는 순간, 쵸로마츠가 뒤에서 물어왔다.
그 날 쵸로마츠의 폭언을 들은 이후, 조금 어색해진 카라마츠와 쵸로마츠였다.
카라마츠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쵸로마츠가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적당히 해. 그러다 납치될라.”
말은 저렇게 해도 자신을 걱정해 하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카라마츠가 미소 띤 얼굴로 끄덕이곤 현관을 나섰다.
확실히 마츠노가의 특성 상 카라마츠나 다른 동생들은 항상 납치될 위험에 처해있었다.
하지만 아버지 마츠조는 카라마츠나 다른 아들들 모두 되도록 평범한 청소년기를 보내길 원했고, 그만큼 자신의 아들들에게 어떠한 위협이 가해지지 않도록 손을 썼다.
덕분에 카라마츠를 비롯한 오쌍둥이 모두 지금까지 한번도 납치나 위험한 일을 당하지 않았다.
그래도 유비무환이라고 오쌍둥이 모두 집을 나설 때는 각별히 조심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치지 말라는 어머니 마츠요의 부탁이기도 했다.
대문을 나서며 좌우를 둘러봐 따라오는 수상한 자는 없는지 확인한 후, 카라마츠가 공원을 향해 뛰었다.
‘오늘은 만날 수 있을까?’
기대를 안고 공원으로 뛰어 오소마츠와 함께 앉아있었던 벤치로 향했다.
“…!!!!”
벤치가 시야에 들어오자 벤치에 앉아있는 붉은 후드가 보였다. 카라마츠는 기쁨에 휩싸여 뛰는 속도를 높였다.
벤치 앞에 도착에 거친 숨을 고르며 벤치에 앉아 놀란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오소마츠를 향해 카라마츠가 기쁘게 웃었다.
“또 만났네!! 오소마츠!”
“너…”
“아…”
놀라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오소마츠의 얼굴을 본 순간 카라마츠가 탄식했다. 또 볼이 부어있었다.
이번엔 저번보다 더 부어올라 검붉은 빛을 띄고 있었다. 오소마츠의 볼에 당황한 카라마츠가 안절부절 못하더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식수대로 뛰어갔다.
식수대에서 급히 손수건을 적셔 대충 짠 후, 다시 오소마츠에게 돌아가 손수건을 내밀었다.
내밀어진 손수건을 빤히 쳐다본 오소마츠가 ‘픽’하고 웃으며 손수건을 건네 받았다.
얌전히 부어 오른 볼에 손수건을 갖다 대는 것을 확인한 후, 카라마츠가 옆에 앉았다.
“너 말이야…”
“카라마츠!”
“어?”
“나는 카라마츠다! 오소마츠. 카라마츠라고 불러 줘!!”
“…카라마츠.”
“오우!”
눈을 빛내며 대답하는 카라마츠를 본 오소마츠가 큭큭큭 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단순히 자신을 부르는 오소마츠에게 대답을 한 것뿐인데 ‘지금 어디에 웃는 요소가 있었다?’ 라고 생각하며 카라마츠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멍하니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큭큭거리며 웃은 오소마츠가 웃느라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너, 상냥하네.”
“…엩??”
가족에게는 항상 ‘한심하다’는 소리를 듣는 카라마츠는 처음 들어보는 ‘상냥하다’라는 말에 놀라 되물었다.
“나, 나는 상냥하지 않다고? 나는 텅텅 비어있는 한심한 녀석이야?”
“..하? 아니, 내가 보기엔 텅텅 비어있진 않은데?”
카라마츠의 말에 이번엔 오소마츠가 멍한 얼굴로 되물었다. 자신을 향해 있는 오소마츠의 얼굴에선 한 치의 거짓도 보이지 않았다.
진지한 얼굴로 자신을 향한 오소마츠에게 당황한 것은 카라마츠였다.
“너는 상냥한 거야. 그게 지나쳐서 한심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오소마츠가 부드럽게 미소지은 얼굴로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상처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힘을 빼고 살살 자신을 쓰다듬어오는 오소마츠의 손길에 카라마츠의 가슴이 따뜻해지며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어? 왜 울어?!”
“우, 우우… 나, 나는 항상 텅 비어있다고 생각해서. 항상 나 같은 거 한심하다고 들어서…”
“…너는 한심하지 않아. 나처럼 완벽한 타인한테도 상냥한데 네가 한심한 녀석일 리 없잖아? 이 카리스마 레전드 오소마츠님께서 보증해 줄게.”
“우, 우우우우… 오, 오소마츠으으으…”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봇물 터지듯 눈물을 쏟아냈다.
펑펑 울기 시작한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아아~’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카라마츠를 품에 안았다.
자신보다도 가녀린 오소마츠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려 카라마츠는 그 동안의 울분을 전부 쏟아내었다.
“…훌쩍.”
붉게 부은 눈을 비비며 코를 들이마셨다. 카라마츠의 붉은 눈가를 보며 오소마츠가 킥킥 웃곤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다 울었어?”
“아아…”
“그래…”
‘장하다~’ 라고 말하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소마츠의 부드러운 손길을 음미하던 카라마츠가 문득 고개를 들어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응?”
오소마츠가 부드럽게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오, 오소마츠는 울지 않는 건가?”
“…나?”
“그렇다. 오소마츠는 아프지 않은 건가?”
아직도 부어있는 오소마츠의 볼을 가리키며 카라마츠가 물었다.
오소마츠는 자신의 볼을 쓱쓱 문지르더니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에 힘을 주어 카라마츠의 머리를 엉망으로 흩트렸다.
“우, 우왓! 아, 아프다! 오소마츠!”
“킥킥킥. 이 귀~여운 녀석. 다 울어서 여유가 생겼어? 이젠 내 걱정도 해주네?”
“아, 아프다!”
“그래그래”
바둥대는 카라마츠를 즐겁단 얼굴로 바라본 오소마츠가 손을 거두었다. 이치마츠 마냥 엉망이 된 머리를 정돈하며 카라마츠가 물었다.
“나처럼 울보라고 놀림 받을 것 같아서 울지 않는 건가?”
카라마츠의 물음에 오소마츠가 ‘음-‘하고 고개를 올려 잠시 생각하더니 얼굴을 저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보다 네가 울보인건 상냥해서잖아? 그런 울보, 나는 싫어하지 않아.”
“…고, 고마워. 오소마츠.”
“그리고 너처럼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게 좋아. 나처럼
못 우는 것보단..”
쓸쓸한 미소로 웃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의 가슴 안쪽이 징-하고 울렸다.
‘이 아픔은 무엇이다?’
어린 카라마츠는 그 아픔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오소마츠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럼 내 앞에서라면 사양 말고 울어도 좋다 오소마츠!! 나는 절대 너를 울보라고 놀리지 않아!!!”
“푸핫!!!”
‘자, 어서 내 품에 와라!!’하는 포즈로 자신을 향해 당당히 눈빛을 빛내고 있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배를 붙잡고 폭소했다.
해질녘 하늘이 붉게 물든 아래, 공원에 오소마츠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너 진짜!!! 아, 갈비뼈 부러진다?!!”
“어째서?!! 괘, 괜찮아? 오소마츠으!!!”
“큭큭큭큭큭…”
호흡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웃고 난 뒤, 오소마츠가 눈물을 닦아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로 안 놀려?”
“무, 물론이다!!!”
“후응~”
“믿어줘!!”
“그럼, 좋아.”
이를 드러내고 천진난만하게 웃은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지금은 이걸로 충분해.”
작게 속삭이며 눈을 감고 카라마츠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오소마츠의 등에 카라마츠가 팔을 둘러 꽉 안았다.
또 다시 가슴이 찡- 하고 아파왔다. 붉게 물든 하늘을 보며 카라마츠는 조여오는 가슴의 아픔과 이유 모를 슬픔에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딩동~ 딩동~ 딩동~’
저녁 6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공원에 울려 퍼지자 오소마츠가 팟! 하고 카라마츠의 어깨에 묻었던 얼굴을 들었다.
카라마츠를 보며 카라마츠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본 오소마츠가 ‘풋’ 하고 웃으며 “왜 너가 우는 거야.” 라며 카라마츠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 이제 가볼게.”
벤치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어낸 오소마츠가 말했다. 헤어진다는 아쉬움에 카라마츠가 어두운 얼굴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거.”
오소마츠가 내민 손수건을 가만히 바라본 카라마츠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건 오소마츠가 가져가도 좋다. 또 필요할 때, 써줘.”
“응? 괜찮아?”
“응.”
“그래.. 그럼 받아둘게.”
오소마츠가 빙긋 웃으며 아직 젖어있는 손수건을 소중히 주머니에 넣었다.
“그럼.”이라고 가볍게 말한 오소마츠가 등을 돌린 순간,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팔을 붙잡았다.
“또! 만날 수 있는 거지?”
불안한 얼굴로 물어오는 카라마츠를 향해 오소마츠가 씩 웃으며 말했다.
“물론! 내일도 나올게!”
“오우! 기다리고 있겠다!!”
확 밝아진 얼굴로 카라마츠가 기쁘게 대답했다. 활짝 웃는 얼굴로 서서히 멀어지는 오소마츠를
향해 카라마츠는 손을 크게 흔들었다.
“카라마츠형, 오늘도 나가?”
점심을 먹은 직후, 나갈 준비를 하는 카라마츠를 향해 이치마츠가 물어왔다.
카라마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아직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이치마츠를 뒤로하고 현관을 나섰다.
“빨리 오소마츠를 만나고 싶다!”
뛰기 시작하면서 중얼거린 카라마츠가 전속력으로 뛰어 나갔다.
“…오소마츠.”
“요, 카라마츠으~”
자신보다 먼저 나와 벤치에 앉아있던 오소마츠를 발견하고 하늘 끝까지 올라갔던 기분이 오소마츠의 얼굴을 본 순간 땅바닥으로 곤두박칠치는 것을 느끼며 카라마츠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그 얼굴은.”
“음~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니라니…!”
어제보다 더 부어 오른 볼은 아예 검은빛을 띄고 있었다. 게다가 하얘야 할 안구가 핏빛으로 붉어져 있어 보는 카라마츠가 더 아팠다.
“눈, 은 대체 왜…”
“아, 이거? 이거… 피가 눈에 들어가면 잘 안 빠져서 이렇게 빨개지더라~”
“그, 그런!!!!”
아무렇지 않은 듯 가볍게 말하는 오소마츠의 태도에 카라마츠가 목소리를 높였다.
화난 얼굴로 자신을 응시하는 카라마츠를 보며 쓴웃음을 지은 오소마츠가 자신의 옆자리를 통통 두드리며 말했다.
“괜찮으니까~ 자, 얼른 앉아?”
“…”
빙긋 웃는 오소마츠의 얼굴에서 어른들이 으레 하는 ‘어린이는 몰라도 돼’라는 말이 떠올랐다.
‘더 이상 묻지 말라는 것인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옆에 앉았다.
“너는 꼭 내 형제 같네.”
오소마츠의 한마디에 카라마츠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카라마츠를 향해 웃고 있는 오소마츠는 분명 웃고 있는데도 너무나 슬퍼 보였다.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카라마츠가 일부러 밝은 얼굴로 말했다.
“내가 형이지?”
“아니이~ 당연히 카리스마
레전드인 내가 형이지.”
“엩?!”
“너 어제, 내 앞에서 그렇게 거하게 울어놓고 형이라는 말을 잘도 하네.”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얼굴을 붉히며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어제
오소마츠 앞에서 대성통곡했다는 것은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으구구구… 그, 그것은.”
“아~ 됐고. 내가 형! 이거 결정!!”
변명을 하려는 카라마츠의 말을 막고 오소마츠가 손가락을 들어 말했다.
씩
웃는 오소마츠에게 카라마츠는 더 이상 일언반구의 항변도 할 수 없었다.
“으…”
“큭큭큭, 자 이 형님에게 ‘형~’하고 불러 봐.”
“…오소마츠…형님.”
거만하게 웃는 오소마츠를 향해 약간의 복수심을 담아 ‘형님’이라고 불렀다.
장남으로 항상 ‘형’이라고만 불렸지 한번도 자신이 ‘형’이라고 불러본 적 없는 카라마츠는 이로 말할 수 없는 어색함에 몸을 떨었다.
“…형님? …뭐, 됐나? 응~ 카라마츠으~”
오소마츠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웃는 얼굴로 돌아가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헤에~ 카라마츠. 오쌍둥이구나. 대단하네.”
“그, 그런가? 오소마츠는 외동인건가?”
“응~ 뭐, 그렇지. 동생들은 어때? 귀여워?”
“쌍둥이니까 동갑이고 그렇게 귀엽지는 않지만.. 가끔은 귀엽다.”
“후.. 그래?”
동생들을 떠올리며 상냥하게 웃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카라마츠는 동생들을 엄~청 사랑하나 보네?”
“훗, 당연하다! 내 사랑스런 동생들이라고?”
“…나도 카라마츠네에 태어났다면 좋았을걸.”
“…에…”
한 순간 굉장히 슬픈 얼굴로 말하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가 옥죄어오는 가슴을 쥐고 눈썹을 내렸다.
오소마츠의 저런 슬픈 표정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어 카라마츠가 다시 화제를 돌려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 오소마츠도 이제 외동이 아니라고?”
“응?”
“내 형님이니까, 내 동생들도 모두 오소마츠의 동생들이다.”
“푸핫!! 뭐야, 그게! 나 순식간에 동생이 5명이나
생긴 거?”
큭큭큭 웃는 오소마츠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즐거운 얼굴로 그동안 있었던 마츠노가 브라더스의 황당한 일화를 줄줄 털어놓아,
오소마츠는 쉴 새 없이 웃어댔다.
저녁 6시 종이 울리고 어김없이 오소마츠가 벤치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멀어지는 오소마츠의 뒷모습을 배웅하며 카라마츠가 미소를 지었다. 오늘의 인사는 “내일 또 봐.” 였기에 내일 또 오소마츠를 볼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카라마츠는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은 토도마츠가 자신을 붙잡았지만, 카라마츠의 머릿속은 온통 오소마츠로 가득했다.
공원에서 대체 뭘 하냐는 토도마츠의 질문에 대충 대답을 흘리고는 공원을 향해 뛰었다.
공원의 벤치에 앉아있는 오소마츠에게 크게 손을 흔들자 오소마츠 역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오소마츠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응? 나?”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장래의 꿈에 대한 화제가 나와 카라마츠가 묻자 오소마츠가 복잡한 얼굴로 카라마츠를 마주 보았다.
“카라마츠는?”
“..나? 나는 아마 집안일을 이어서 할 거라고 생각된다.”
“…잇기 싫어?”
“싫다기보단… 나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나는 한심하니까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말을 흐리는 카라마츠를 본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상냥하니까 뭘 해도 괜찮아.”
“하, 하지만. 우리집 일은 상냥하기만 해선
안 된다고 아버지가!”
“상냥함은 네 장점인걸. 괜찮아. 네 상냥함으로
충분히 이끌 수 있어.”
오소마츠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카라마츠는 그 동안 ‘후계자’라는 이름이 짓누르고 있던 중압감에서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한결 숨쉬기 편해진 것 같은 느낌에 오소마츠를 향해 빙긋 웃고는 다시 물었다.
“그래서 오소마츠는? 뭐가
되고 싶어?”
“나…? 나는…”
기대에 찬 얼굴로 오소마츠를 바라보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픽’ 웃고는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음… 세계 제일의 백수!”
“배, 백수?!”
황당하단 얼굴로 카라마츠가 되묻자 오소마츠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응! 백수! 좋잖아? 놀고 먹고~ 일 안하고~”
“오소마츠. 나는 진지하게
묻고 있는 거다.”
조금 토라진 얼굴로 카라마츠가 쏘아붙이자 오소마츠가 ‘하하하’하고 마른 웃음을 내뱉곤 입을 열었다.
“그럼 세계 제일의 사기꾼?”
“어이.”
“아님, 도박사? 아니면 도둑? 그것도 아니면…”
“오소마츠.”
단호한 목소리로 다그치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웠다.
“알겠어, 알겠어~”라며 손을 들어 항복 표시를 보인 오소마츠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나, 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 될 수 있다면.”
“물론!! 오소마츠는 훌륭한 선생님이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밝은 얼굴로 천진난만하게 웃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쓰게 웃었다.
“…고마워.”
꿈을 이야기하는데 당연히 빛나야 하는 오소마츠의 얼굴이 슬픔으로 가득해 카라마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다음날, 오늘은 쥬시마츠가 다가와 “형아~ 같이 야구해요!!”라며 다가왔지만 카라마츠는 웃는 얼굴로 “다음에.”라고 대답한 후, 공원을 향해 뛰었다.
“오소마츠의 부모님은 대체 어떤 자식들이야?”
분노가 섞인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놀란 얼굴을 하더니 “푸핫!” 하고 웃었다.
그리고 이내 “아야야…” 하며 부어 오른 뺨을 감쌌다. 오늘은 팔에도 붕대가 감겨 있었다.
오른팔엔 붕대, 왼팔엔 검붉은 피멍이 군데군데 들어 하얀 오소마츠의 피부를 가리고 있었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화를 내고 있는 카라마츠를 향해 오소마츠가 초연히 웃었다.
“나는 부모님 없는데~”
“…엩?!”
당황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카라마츠의 속마음을 오소마츠를 알 수 있었다.
분명 지금 말실수 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지금 아저씨랑 살고 있어.”
“…아저씨?”
“응.”
“가족인가?”
“음… 피는 안 이어졌어.. 내 ‘법적 보호자’야.”
“버, 법적 보호..? 그게 무엇이다?”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물어오는 카라마츠를 향해 웃으며 오소마츠가 “나도 몰라~”라고 대답했다.
얼굴을 찡그리고 “법적 보호자…”라고 중얼거리는 카라마츠를 향해 오소마츠가 슬픈 표정을 했다.
“카라마츠.”
“..아?”
부드럽게 부르는 오소마츠의 음성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슬프게 웃은 오소마츠가 말했다.
“나, 이제 여기 못 와.”
청천벽력과 같은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순식간에 눈물을 글썽이며 오소마츠의 손을 붙잡았다.
“어, 어째서?!”
울상이 된 카라마츠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 오소마츠가 입을 열었다.
“내일 다른 마을로 가게 되서…”
“그, 그런 것 싫다!!”
“나도 싫어. 싫은데…”
“오, 오소마츠!!”
아예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매달려오는 카라마츠를 오소마츠가 힘겹게 밀어냈다.
“그러니까 오늘은 이걸로 바이바이.”
“오소마츠!!!”
벤치에서 일어나 떠나려는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붙잡은 순간, 낮고 음흉한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뭐야, 오소마츠. 그런 꼬맹이를 만나고 있었나?”
사내의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눈에 띄게 당황하며 몸을 떨었다.
“토, 토고 아저씨. 그, 그게 아니라…”
덜덜 떨며 말을 더듬는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본능적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항상 당당했던 오소마츠가 이렇게 두려워하는 사내는 대체 어떤 자인지 확인하려 고개를 들었지만, 역광을 받은 사내의 얼굴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자, 가자. 오소마츠.”
거칠게 피멍이 든 오소마츠의 팔을 꽉 붙잡고 끌어당기는 사내의 행동에 오소마츠가 “아팟!”하고 신음했다.
오소마츠의 신음소리를 들은 순간 카라마츠는 몸이 먼저 움직여 오소마츠와 사내 사이에 서서 오소마츠를 막아섰다.
“카, 카라마츠?”
오소마츠가 놀라 카라마츠를 불렀지만 카라마츠의 시선은 사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오, 오소마츠를 괴롭히지마! 오소마츠는 내 소중한 친구다!!”
“…호오?”
카라마츠의 외침에 남자의 입꼬리가 올라가 비열한 웃음이 피어났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내의 발이 카라마츠의 배에 꽂혔다.
“ㅇ…욱!!”
“카라마츠!!!!!”
처음 겪는 격통에 카라마츠가 신음하며 배를 안고 고꾸라졌다. 오소마츠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카라마츠를 불렀지만, 카라마츠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며 고개를 들자 사내에게 팔을 붙잡혀 끌려가는 오소마츠의 모습이 시야에 가득했다.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자신을 부르짖는 오소마츠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내는 거칠게 오소마츠를 끌어당겨 이내 오소마츠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오소마츠의 몸뚱아리가 공중에 떴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덜덜 떨리는 몸을 오소마츠가 간신히 일으켰다.
오소마츠는 더 이상 울고 있지 않았다. 떨리는 몸으로 사내 앞으로 자진해서 다가간 오소마츠가 앞서 걷기 시작한 사내를 따랐다.
‘안 돼. 오소마츠!’
“오소마츠, 를 놔 줘!!!!!”
고통을 참으며 외치자 사내의 발걸음이 멈췄다. 오소마츠가 불안한 얼굴로 카라마츠와 사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사내는 발걸음을 돌려 카라마츠를 향했다. 오소마츠가 필사적으로 사내를 붙잡았지만 사내의 주먹을 맞고 주저 앉았다.
“…이 쪼그만 게 건방지게, 어디서 명령질이야?!”
살벌한 목소리로 잘게 씹으며 사내의 매서운 발길질이 카라마츠에게로 향했다.
“으, 우앗!!”
팔, 다리, 등, 얼굴에 용서 없이 가해지는 구둣발에 카라마츠가 고통스럽게 외쳤지만 사내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저 멀리에 주저앉아있던 오소마츠가 재빨리 뛰어와 카라마츠를 감싸 안았다.
“아, 아저씨. 제발, 제발요. 제가
다 잘못했으니까.”
오소마츠의 목소리는 울음에 젖어있었다. 서서히 흐려지는 시야로 자신을 안고 있는 오소마츠의
팔이 보였다.
사내는 오소마츠의 말에 더욱 발길질에 박차를 가했다. 사내의 발은 온 몸으로 카라마츠를 감싸 안은 오소마츠를 향했다.
“아, 진짜. 이게 키워줬더니 아주 은혜를 똥으로 갚아?!”
괘씸하다는 어투로 한참을 걷어찬 사내가 씩씩 거리며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야! 일어나! 시간 없으니까!”
거친 사내의 음성에 오소마츠가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일으켰다.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팔을 붙잡았다.
“안, 돼… 오소마, 츠…”
“카라마츠… 카라마츠… 나에 대한 건 다 잊어버려… 잊어버리고… 따라 오지마… 더 이상 다치지 마…”
처음 듣는 울먹이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휩싸여오는 깊은 슬픔에 몸을 떨었다. 살며시 마지막으로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은 오소마츠가 힘겹게 일어서 사내의 뒤를 따랐다.
“나를 잊어.”
마지막,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속삭이는 오소마츠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카라마츠가 눈을 감았다.
공원에 소년이 쓰러져있다는 익명의 제보에 출동한 구조대에 의해 카라마츠는 늦지 않게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신 타박상에 폭행에 의한 내상을 입은 카라마츠는 꼬박 3개월을 입원해 있어야 했다.
자신의 아들이 폭행당해 쓰러졌다는 사실에 대노한 마츠조가 공원 일대를 이 잡듯 수색했지만, 목격자도 범인도 찾을 수 없었다.
카라마츠에 대한 것을 제보한 익명의 제보자가 어린 소년의 목소리를 했다는 것만 간신히 알아낼 수 있었다.
꼬박 3일은 쓰러졌다가 눈을 뜬 카라마츠는 2~3주 동안의 기억을 잃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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