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편입니다.
* 철저하게 보복당하는 토고아저씨...
* 후일담이 남아있지만 분량이 너무 길어서 따로 쓸 것 같네요..
* 기본 카라오소이지만 살짝 오소른삘이... 후일담에서 더욱 강해지는 오소른입니다.
* 부족한 글실력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축하해. 카라마츠 형.”
검은 기모노를 입은 카라마츠에게 고급 천으로 만들어진 파란 하오리를 어깨에 걸쳐주며 쵸로마츠가 말했다.
오랜 후계자 교육 끝에 오늘 드디어 젊은 우두머리에 오른 카라마츠가 쓰게 웃었다.
“고마워. 쵸로마츠. 네 도움이 컸어.”
자신만큼이나 혹독한 수업을 받고 낙하산이 아닌 자신의 실력으로 우두머리 보좌 자리에 오른 쵸로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쵸로마츠는 처진 눈썹을 살짝 찡그렸지만 카라마츠의 손길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뭔가, 카라마츠 형. 머리 쓰다듬는거 자주 하네.”
카라마츠가 손을 내리자 쵸로마츠가 말했다. 쵸로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래? 어릴 때부터 그래왔잖아?”
“아니, 어릴 땐 안 그랬어…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한 건…”
쵸로마츠가 ‘아차’하는 표정으로 말을 흐렸다. 카라마츠가 의아한 얼굴로 쵸로마츠를 바라보며
“시작한 건..?”하고 물었지만 쵸로마츠가 고개를 흔들며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얼버무렸다. 분명 뭔가 있지만 쵸로마츠는 똑똑한 녀석이다. 분
명 말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짐작한 카라마츠가 ‘픽’ 웃었다.
마츠노가는 오늘로 27대 우두머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22세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우두머리는 타고난 수완으로 전대 우두머리를 보좌하며 가문을 더욱 크게 세운 공적을 간부들에게 인정받아 그 어떤 반대도 없이 수월하게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다.
젊은데다 미모까지 출중한 젊은 우두머리에 대한 소문은 이미 널리 퍼져 마츠노가가 관리하는 업소에 다니는 여성들은 모두 젊은 우두머리를 한번이라도 만나보기를 원했다.
‘그렇게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은데 말이야…’
웃는 얼굴로 자신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간부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는 카라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생각했다.
몇 년 전, 전대 우두머리였던 아버지 마츠조가 은퇴를 선언한 후, 카라마츠에게 우두머리 자리에 오를 것을 명하자 카라마츠는 하나 조건을 걸었다.
“저는 절대 결혼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괜찮다면.”
단호한 얼굴로 말하는 카라마츠를 보며 쵸로마츠는 직감했다. 저 말은 진짜라고.
분명 무슨 일이 있더라고 카라마츠는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카라마츠의 말에 아버지는 당황했지만 이내 조건을 승낙했다.
우두머리가 되고 여자들을 품다 보면 분명 정이 든 여자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카라마츠는 여자를 품기는커녕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않았다.
여자가 말을 걸어와도, 욕망이 가득한 눈길로 쳐다봐도 카라마츠는 무시로 일관할 뿐이었다.
카라마츠가 유일하게 무시하지 않은 여자는 어머니인 마츠요와 쥬시마츠의 부인인 그녀뿐이었다.
“너는 인기도 많은데 말이야.”
간부들과의 인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쵸로마츠가 문득 말하자 카라마츠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훗, 그렇군. 나를 원하는 카라마츠 걸-즈는 많지. 하지만 나의 하-트는 한 사람만 주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자랑스럽게 머리를 튕기며 말하는 카라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얼굴을 구겼다.
‘저 새끼는 교육과정에서 어떻게 잘못 됐길래 저런 또라이가 됐다냐.’
말로는 내뱉지 않은 채, 속으로 잘근잘근 씹어대며 쵸로마츠가 카라마츠의 뒤에서 조용히 걸었다.
“그러고 보니.”
긴 복도를 지나 자신의 방에 도착해 하오리를 벗어 걸고 오비를 풀어 품을 헐겁게 한 카라마츠를 향해 쵸로마츠가 말을 걸었다.
한쪽 팔을 벗고 상체를 반쯤 드러낸 상태로 카라마츠가 고개를 갸웃했다. 탄탄하게 근육이 잡힌 상체가 훤히 드러나 쵸로마츠가 얼굴을 찡그렸다.
‘저렇게 입고 다니니 여자들이 환장하지.’
같은 사내의 알몸 따위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쵸로마츠가 말을 이었다.
“쥬시마츠한테서 선물이 왔어. 직접 재배했다는 채소랑 과일.”
오쌍둥이 중 가장 가문과 멀리 떨어져 있는 쥬시마츠는 어릴 때부터 가문의 일을 맡기기에는 너무나 순수했다.
그 성질을 파악한 아버지 마츠조도 쥬시마츠만큼은 가문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도록 교육했고,
쥬시마츠는 고등학교에서 만난 소녀와 열애 끝에 결혼해, 소녀의 고향으로 함께 내려가 농사를 짓고 있었다.
얼마 전엔 경사스럽게도 임신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 마츠조는 카라마츠에게 은근히 결혼을 독촉하던 것을 멈추었다.
카라마츠 다음대의 후계자는 카라마츠의 형제들 중에서 뽑으면 된다는 계산에서 이루어진 행동이었다.
물론 그런 아버지의 속을 알아챈 쵸로마츠와 카라마츠는 불쾌하게 생각했지만.
“오, 그거 원더풀이로군!”
‘후’ 하고 부드럽게 웃으며 카라마츠가 말했다. 카라마츠의 상냥한 미소를 보며 쵸로마츠가 씁쓸히 웃었다.
언제부터인가 카라마츠는 저렇게 웃었다. 자애롭고 부드러운 미소를 형제들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형’으로서는 최상의 미소였지만, 카라마츠의 ‘것’이 아니였다.
10년 전, 카라마츠가 폭행당해 쓰러져 기억을 잃은 이후, 저런 미소를 짓게 되었다.
눈을 뜬 카라마츠는 어른스러운 미소로 자신을 걱정하는 동생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처음엔 갑작스런 스킨쉽에 동생들 모두 놀라 기겁해 치를 떨며 카라마츠의 손길을 거부했다.
마츠노가의 오쌍둥이는 일절 그런 스킨쉽을 나눠본 적이 없었다.
토도마츠에게 매도당하고, 이치마츠에게 걷어차이면서도 카라마츠는 미소 띤 얼굴로 손을 내밀어왔다.
결국 동생들 모두 카라마츠의 손길에 익숙해져 오히려 쓰다듬어주는 것을 기대할 정도가 되었다.
울보로 놀림 받았던 과거가 거짓말인듯 쉽게 눈물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쵸로마츠를 제외한 동생들은 모두 카라마츠의 변화를 반겼다.
부모님도 ‘훨씬 어른스러워 졌구나.’하며 카라마츠를 칭찬했다. 하지만 쵸로마츠는 알 수 있었다.
그 모든 ‘변화’가 카라마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카라마츠와 쵸로마츠는 장남과 차남으로 다른 형제들보다 가까웠다.
서로의 스펙이 비슷해 장남이라는 이유로 후계자가 된 카라마츠를 질투한 적도 있었다.
카라마츠가 기억을 잃을 그 무렵엔 질투와 열등감이 거세져 눈만 마주치면 막말을 내뱉을 정도로 험악한 사이였다.
그 시절의 카라마츠는 울보에 텅텅 비어 있는 녀석이었다. 그랬던 녀석이 쓰러졌다 눈을 뜬 후,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카라마츠의 바뀐 모습에 쵸로마츠는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를 「모방」하는 것이었다.’
카라마츠는 동생들은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모방하고 있었다.
자애로운 미소도, 쓰다듬어주는 부드러운 손길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 강인함도, 전부 카라마츠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것’이었다.
“아앙?! 닥치고 책임자나 불러?!!!”
마츠노가가 관리하고 있는 술집에 시찰을 나가 행패를 부리고 있는 남성을 발견한 쵸로마츠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양 팔에 문신을 잔뜩 한 저 멍청한 자식은 이 술집이 마츠노가의 관리 하에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는 듯 했다.
최대한 조용히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에 경찰을 부르려 휴대폰을 들 순간, 쨍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꺄아아!!!”
“레이카를 부르라고!!!!! 안 그러면 이 추녀 얼굴을 더 엉망으로 만들어 주지!!!!”
술병을 깨뜨려 한 손에 쥐고 여자의 목을 감싸 안은 남자가 날카로운 술병을 여자의 얼굴에 가까이 댔다.
남자가 말하는 레이카는 마찬가지로 마츠노가 관리에 있는 유흥업소의 탑 호스티스였다.
가끔 이 술집에도 나와 접대를 하는데 아무래도 저 남자는 레이카에 집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짜증으로 구겨진 눈매를 더욱 찡그리며 쵸로마츠가 최대한 손실 없는 방법을 계산하고 있는 사이 쵸로마츠의 뒤에서 인기척이 다가왔다.
‘툭’하고 쵸로마츠의 어깨를 두드린 카라마츠가 “경찰 불러.”라고 속삭인 후, 망설임 없이 남자에게 다가갔다.
엎치락뒤치락 한바탕의 몸싸움 끝에 남자는 간단히 카라마츠의 손에 제압되었고 여자는 상처 없이 사내의 손아귀에서 풀려났다.
때마침 쵸로마츠가 부른 경찰이 도착해 소동은 온건히 마무리 되었다.
툭툭 검은 양복에 붙은 먼지를 털어낸 카라마츠가 쵸로마츠에게 다가왔다. 밖에 나올 때, 카라마츠는 항상 푸른색 셔츠에 검은 양복을 입었다.
소매를 걷고 금 목거리에 금시계까지 한 그 모습을 본 토도마츠가 ‘안쓰럽네, 정말!!!’하고 외치며 질색을 했었다.
카라마츠의 옷차림에 혀를 찬 쵸로마츠가 미소 띤 얼굴로 다가온 카라마츠에게 얼굴을 구긴 채 말했다.
“아니, 우두머리인 네가 직접 나서서 어쩔 건데. 다른 녀석 부르라고.”
쵸로마츠의 잔소리에 카라마츠가 살짝 곤란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레이디가 다칠 수 있는 시츄에이션이었잖아? 게다가 나는 다치지 않으니까.”
카라마츠의 말에 쵸로마츠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 네가 자신의 몸이 다치지 않도록 싸우는 것은 알고 있지만.”
쵸로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빙긋 웃었다. 카라마츠의 미소에 맥이 풀린 쵸로마츠가 한숨을 내쉰 후,
오늘의 소동으로 나올 손해를 계산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왜 그런가? 브라더?”
“너, 왜 항상 그렇게 자기 몸을 지키며 싸워?”
“…하?”
황당하단 얼굴로 카라마츠가 되물었다. 가문의 특성 상 카라마츠를 비롯한 형제들은 모두 호신술을
비롯한 각종 무술을 배워왔다.
어디까지나 자기 방어 수단으로서 배운 것이지만 실제 싸움에서도 유용하게 쓰였다. 학창시절 가문의 일을 들먹이며 시비를 걸어오는 양아치들을 물리칠 때도, 지금과 같은 소동이 일어날 때도 카라마츠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몸을 보호해가며 싸워왔다.
결벽증인 쵸로마츠도 싸움에 관련되면 어느 정도 상처를 입는 것을 각오하고 싸웠지만 카라마츠는 자신의 몸에 상처가 남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했다.
지금도 깨진 병을 든 사내와 몸싸움을 했건만 카라마츠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았다.
쵸로마츠의 질문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기울여 생각에 빠졌다.
“다치지 말라고 들었기 때문일까?”
카라마츠의 대답에 이번엔 쵸로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다치지 말라니.
누가 그런 말을 했었나?
어릴 적 어머니인 마츠요가 항상 몸 조심하라고 신신당부 했던 것을 기억해낸 쵸로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다시 물었다.
“어머니한테 들은 말이지? 그거.”
“아니, 틀리군…”
“하? 아니 어머니말곤
우리한테 그런 말 할 사람은 없는데.”
“…그렇군.. 그럼 내게 다치지 말라고 한 사람은 대체 누구지?”
카라마츠의 멍청한 대답에 쵸로마츠는 슬슬 인내의 한계를 느끼며 손을 저었다.
“아~ 됐어. 카라마츠 형하고는 대화가 안 돼.”
쵸로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하하, 그런가?” 하며 웃었다.
사태가 전부 수습된 것을 확인한 쵸로마츠가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한 뒤, 앞서 걸었다. 쵸로마츠의 등을 바라보며 뒤따른 카라마츠가 손으로 턱을 짚었다.
‘내게 다치지 말라고 한 것은 대체 누구?’
“더 이상 다치지 마…”
앳된 소년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리는 것 같아 카라마츠가 얼굴을 찌푸렸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머리를 맹렬히 굴렸지만 카라마츠는 결국 기억해 낼 수 없었다.
“아, 쵸로마츠 형.”
변호사 배지가 달린 양복을 입은 채, 본가의 고양이와 놀고 있던 이치마츠가 일어났다.
양복 가득 고양이 털이 붙어있는 것을 눈치챈 쵸로마츠가 얼굴을 잔뜩 구겼다.
“이치마츠, 나가서 고양이털 떼내고 와.”
“네이네이~ 저 같은 쓰레기는 나가야죠.”
“아니, 네 몸에 붙은 고양이털만 떼내고 들어와.”
결벽증인 쵸로마츠를 일부러 도발하며 이치마츠가 씩 웃고는 밖으로 나갔다.
얼마 전, 술집에서 일어난 소동으로 사법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겨 이치마츠를 불러낸 참이었다.
이치마츠가 고양이털을 모두 떼어내고 다시 들어오자 쵸로마츠가 거실에 놓인 커피테이블에 관련 서류를 펼쳤다.
“이거랑 이거는 카라마츠 형이랑 이야기 해 봐야겠는데.”
서류를 가리키는 이치마츠의 말에 쵸로마츠가 인상을 썼다.
되도록 자신의 선에서 해결하려고 했건만. “쯧!”하고 혀를 차자 이치마츠가 황홀하단 얼굴로 쵸로마츠를 쳐다보며
“나한테도 그런 얼굴 좀 지어줘.”라고 말해와 쵸로마츠가 얼굴을 구겼다.
잔뜩 구겨진 쵸로마츠의 얼굴을 보며 이치마츠가 “히힛!”하며 몸을 떨었다.
‘저 변태새끼는 진짜 답이 없다. 답이 없어.’
흥분에 몸을 떠는 이치마츠를 뒤로 한 채, 카라마츠 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특별한 일정이 없어 카라마츠는 하루 종일 집에 붙어있었다.
지금 이 시간이라면 틀림없이 자신의 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카라마츠의 방에 도착한 쵸로마츠는 노크 없이 방문을 열었다.
“어이~ 카라마츠 형.”
침대에 누워 자고 있는 카라마츠를 흔들자 “으응~”하며 카라마츠가 얼굴을 구겼다.
‘악몽이라도 꾸나?’
대체로 평온하게 자는 카라마츠이기에 얼굴을 구기는 것을 보고 쵸로마츠가 생각했다.
다시 한번 흔들어 깨울 참으로 손을 뻗은 순간 카라마츠가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으, 오…., 소, 마츠…”
“…하?”
누군가의 이름을 반복해서 중얼거리는 카라마츠의 잠꼬대에 쵸로마츠가 놀라 손을 뗐다.
‘누구? 오소마츠?’
자신의 형제들과 이름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뒤로 한 채, 쵸로마츠의 머릿속엔 맹렬하게 물음표가 떠올랐다.
쵸로마츠는 모르는 이름. 카라마츠는 잔뜩 얼굴을 구기고 계속 그 이름을 불렀다.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묘한 기분에 쵸로마츠가 급히 카라마츠를 흔들어 깨웠다.
“…으, 무슨 일이야? 쵸로마츠.”
“어이, ‘오소마츠’라니 누구?”
“…하?”
쵸로마츠의 물음에 카라마츠가 멍청히 되물었다.
잠이 덜 깬 멍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카라마츠에게 답답함을 느낀 쵸로마츠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오소마츠가 누구냐고!”
“…그게 누구야?”
“하아…”
정말로 모르겠다는 얼굴로 되물어오는 카라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얼굴은 어릴 적 보았던 ‘텅 빈’ 카라마츠의 얼굴이었다.
이 이상 추궁해도 얻을게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쵸로마츠는 “이치마츠가 기다려. 거실로 와.”라는 말을 남기고 카라마츠의 방을 나섰다.
‘조사해볼까. 누군지.’
쵸로마츠는 거실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항상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 ‘오소마츠’라는 이름을 적었다.
“아아, 그럼 그렇게 해줘.”
이치마츠가 내민 서류들을 바라보며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도 알았다고 대답한 뒤, 테이블 가득 펼쳐져 있는 서류들을 모아 정리하기 시작했다.
빤히 이치마츠를 바라보고 있던 카라마츠가 망연히 물었다.
“그런데 이치마츠. 너 어릴 적엔 나를 ‘카라마츠’라 부르지 않았던가?”
“…하?”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어이없는 질문을 던지는 카라마츠를 보며 이치마츠가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치마츠의 표정에 카라마츠가 당황하며 “아닌가?”하고 되물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개똥마츠 형.”
이치마츠가 대답한 후, 옆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쵸로마츠가 덧붙였다.
“우리 후계자 문제니 뭐니 해서 아버지한테 항상 들어왔잖아. 반드시 ‘형’을 붙이라고. 이치마츠가 반항기일 때도 꼬박꼬박 개똥마츠 ‘형’이라고 형을 붙여서 불렀잖아.”
“그, 그랬었나…”
묘한 얼굴로 대답하는 카라마츠를 보며 이치마츠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 물었다.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봐?”
“아니, 어릴 적 ‘카라마츠’라고 불렸던 게 기억나서.”
카라마츠의 대답에 쵸로마츠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불린 거겠지.”
“아니, 성인은 아니야. 오히려 내 또래의…”
“반 친구들한테 그렇게 불렸었던가.”
이치마츠가 말하자 카라마츠가 고개를 저었다.
“카라마츠…”
기억의 한구석에서 반복해 울려 퍼지는 소년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카라마츠가 말했다.
“확실히 반 친구들에겐 ‘카라마츠’라고 불렸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반 친구들이 아니야.”
인상을 쓴 채, 중얼거리는 카라마츠를 보며 이치마츠와 쵸로마츠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카라마츠는 자신의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소년의 목소리를 되새기고 되새겼다.
‘털썩’하는 소음을 내며 쵸로마츠가 던진 서류가 카라마츠의 책상에 안착했다.
결벽증인 쵸로마츠 답지 않게 어지럽게 널린 서류를 정리하며 카라마츠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뭔가 문제라도 있나? 브라더.”
통통 서류를 정리해 책상 한 켠에 놓은 후, 소파에 몸을 묻은 쵸로마츠를 향해 물었다.
쵸로마츠는 큰 한숨을 내쉰 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우리 구역에서 설치고 있는 사기꾼 일당이 있어서.
제법 솜씨가 좋은지 꼬리가 안 잡혀.”
“그거 걱정이군. 잡을 방법은 없나?”
카라마츠의 질문에 쵸로마츠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예전 같으면 힘 꽤나 쓰는 녀석들을 모아 손쉽게 붙잡았겠지만, 현재 마츠노가의 모든 사업은 합법이다.
야쿠자라는 이름도 명색뿐으로 불법적인 일이나 폭력행위는 일체하고 있지 않았다.
합법적인 방법으로 사기꾼 일당을 잡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게다가 그 동안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할 것이 분명했다.
최대한 빨리 그 사기군 일당을 붙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쵸로마츠는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한탄하듯 내뱉었다.
“할 수 없이 전문가한테 부탁할까.”
“…전문가?”
쵸로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물었다. 쵸로마츠는 카라마츠의 집무실 한편에 위치한 장식장에서 오래된 주소록을 꺼냈다.
“이쪽 방면에서 사기꾼으로 유명한 녀석이야. 인간 쓰레기이지만 돈만 주면 뭐든 하는 녀석. 이이제이라고 사기꾼은
사기꾼으로 잡을 수 밖에.”
휙휙 주소록의 페이지를 넘기던 쵸로마츠가 이름을 발견했는지 번호를 외우고 핸드폰을 들어 주소록에 쓰인 번호를 입력했다.
“…흐음…”
마츠노가의 모든 일을 합법적으로 처리하려는 카라마츠도 이번 일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가만히 쵸로마츠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자신들의 구역에서 사기꾼이 날뛴다면 거래처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질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손해를 보는 것은 당연히 마츠노가였다.
상대가 전화를 받았는지 쵸로마츠가 “아, 네.”라고 대답하며 카라마츠의 집무실을 나섰다.
“쵸로마츠, 이 서류 말인데…”
쵸로마츠를 찾아 집안을 헤매다가 응접실에 있는 쵸로마츠를 발견하고 들어가자 쵸로마츠와 함께 사내가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이미 60은 되어 보였고 갈색 체크무늬 정장을 입고 있었다.
비열하게 웃는 얼굴을 한 늙은 사내를 빤히 바라본 카라마츠가 쵸로마츠의 부름에 시선을 옮겼다.
“뭐야?”
“아, 이 서류가 말이야…”
“아, 그건 좀 있다가.”
“아아, 알겠다. 그런데 저 사람은?”
카라마츠의 질문에 쵸로마츠가 작게 속삭였다.
“지난번에 말한 전문가. 이미 일을 처리했다고 보고하러 와서.”
“아아…”
쵸로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쵸로마츠와 카라마츠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늙은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이야~ 이거. 마츠노가의 젊은 우두머리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아, 반갑군.”
늙은 사내가 내민 손을 마주 잡으며 카라마츠가 떨떠름하게 웃었다. 악수를 끝낸 사내가 웃었다.
“저는 ‘토고’라고 합니다. 앞으로 마츠노가와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습니다만…”
‘…토고?’
늙은 사내의 이름에 카라마츠가 짙은 눈썹을 찌푸렸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라고 생각되어 기억을 하나하나 되짚어보았지만 어디서 들은 이름인지 도저히 기억나지 않았다.
늙은 사내는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맡겨주신 일은 훌륭히 처리했습니다.
놈들도 더 이상 이 구역에서 날뛰지 않겠죠. 자, 여기
그 증거입니다.”
늙은 사내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손에 펴 들었다.
꽁꽁 싸여있던 손수건을 풀자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잘린 사람의 귀였다.
“…!”
“어떻습니까?”
“죄송하지만, 저희는 분명 합법적인 선에서 처리를 부탁 드렸을 텐데요?”
늙은 사내가 웃으며 내민 사람의 귀를 본 쵸로마츠가 노골적으로 얼굴을 구기고 살기를 내뿜었다.
쵸로마츠의 차가운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늙은 사내가 말을 이었다.
“그런 멍청한 새끼들은 말만해서는 안 듣죠. 어느 정도 쳐 맞아봐야…”
“죄송하지만 이 이후로 당신께 부탁드릴 일은 없을 것 같군요.”
쵸로마츠가 말을 끝내고 늙은 사내를 돌려보내려는 순간, 카라마츠의 얼굴을 본 쵸로마츠가 숨을 멈췄다.
옆에 서 있는 쵸로마츠마저 죽일 것 같은 살기가 카라마츠에게서 풍겨 나오고 있었다.
“카, 카라마츠 형?”
떨리는 목소리로 쵸로마츠가 카라마츠를 부른 순간 카라마츠가 늙은 사내에게 뛰어들었다.
“크헉!!”
늙은 사내의 멱살을 잡고 대여섯번의 주먹을 내지른 카라마츠가 들어본 적 없는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오소마츠를 어떻게 했지?!!!!!!!”
“카, 카라마츠?!”
“…크, 크핫. 그 꼬맹이를 어떻게 알지?”
자신을 말리려 다가오는 쵸로마츠도 밀어낸 채, 카라마츠가 살기를 가득 담아 늙은 사내를 노려보았다.
늙은 사내는 눈에 띄게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 손수건은 내가 오소마츠에게 준 것이다!!! 자, 다시 묻지 오소마츠를 어떻게 했지?!!!!”
카라마츠의 말에 쵸로마츠가 바닥에 떨어진 손수건을 확인했다. 그것은 분명 어릴 적 오쌍둥이 형제들의 색깔에 맞춰 어머니인 마츠요가 손수 제작한 손수건이었다.
카라마츠의 색인 푸른빛에 손수건 한 구석에 소나무 표시가 들어가있는 손수건.
쵸로마츠가 손수건을 주워들어 카라마츠를 불렀지만 이미 이성이 날아간 카라마츠는 늙은 사내를 흔들며 “오소마츠는 어디있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크, 크흐흐흐흐흐. 네가 그때 그 꼬맹인가? 안됐군.
오소마츠는 이미 죽었어.”
“…이 자식!!!!!!!!!!”
늙은 사내의 말에 카라마츠가 주먹을 내질렀다. ‘퍽’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얼굴을 맞은 늙은 사내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카라마츠가 잡고 있던 늙은 사내의 멱살을 놓자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늙은 사내의 신체가 바닥에 나가 떨어졌다.
늙은 사내의 피가 묻은 주먹을 쥐고 씩씩대며 여전히 살기를 누그러뜨리지 않는 카라마츠에게 쵸로마츠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카, 라마츠 형…”
“쵸로마츠, 이 녀석이다.”
카라마츠의 낮은 목소리가 응접실에 울렸다.
“10년 전, 나를 폭행해 병원에 실려가게 만든 녀석은 이 녀석이야.”
“…!!!!”
카라마츠의 말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 쵸로마츠가 멍하니 바닥에 쓰러져있는 늙은 사내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서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쵸로마츠를 향해 카라마츠가 말했다.
“이 자식을 지하에 가둬. 그리고 ‘오소마츠’가 어디 있는지 심문해.”
쵸로마츠를 향해있는 카라마츠의 눈빛은 강렬하고 차가웠다.
“다시 묻지. 오소마츠는 어디에 있지?”
이미 잔뜩 얻어맞아 만신창이가 된 몸을 힘겹게 일으킨 토고가 비릿하게 웃었다.
카라마츠는 감정 없는 눈빛으로 토고를 가만히 훑어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말 했잖아. 이미 죽었다ㄱ…”
토고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카라마츠가 토고의 턱을 발로 찼다.
인간의 급소인 턱을 차인 토고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여전히 감정 없는 눈빛으로 토고를 내려다본 카라마츠가 발길을 돌려 쵸로마츠에게 향했다.
「무슨 일이야? 쵸로마츠 형.」
수화기 너머로 오랜만에 듣는 막내의 목소리에 쵸로마츠는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품에서 수첩을 꺼내 ‘오소마츠’라고 적힌 페이지를 바라보며 쵸로마츠가 얼굴을 구겼다.
‘좀 더 일찍 알아볼 걸 그랬어.’
후회를 뒤로 한 채, 쵸로마츠가 입을 열었다.
“토도마츠, 경찰 쪽에서 ‘오소마츠’와 ‘토고’에 대한 자료 좀 보내줄 수 있어?”
마츠노 오쌍둥이의 막내 토도마츠는 경찰이 되어 현재 경부보라는 지위까지 올라가 있었다.
마츠노가의 사업이 전부 합법이었기에 토도마츠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경찰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가끔 경찰 쪽의 협조가 필요할 때마다 힘을 빌려주는 든든한 동생이었다.
잔뜩 가라앉은 쵸로마츠의 목소리에 토도마츠가 재빨리 대답했다.
「알겠어. 내가 알아볼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알아볼게.」
“아아, 부탁해.”
스마트폰의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쵸로마츠가 크게 한숨을 쉬며 집무실 문을 열었다.
“우왓!!!!”
집무실 문을 열자마자 차가운 눈빛을 한 카라마츠와 맞닥뜨려 놀란 쵸로마츠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쵸로마츠. 좀 알아낸
게 있나?”
무미건조한 어조로 묻는 카라마츠에게 쵸로마츠가 고개를 저었다.
“그 놈은?”
“기절했다. 아무래도 불 생각은 없는 것 같아.”
차갑게 내뱉은 카라마츠가 집무실에 들어가 자신의 의자에 앉았다.
20여년을 함께한 형제인데도 카라마츠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지독하게 차가운 눈빛에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얼굴에 쵸로마츠는 일말의 두려움을 느꼈다.
‘혹 저게 「진짜 카라마츠」인가?’
지금까지 ‘누군가’를 모방해 온 카라마츠가 아닌 ‘텅 빈’ 카라마츠의 진짜 모습이 저게 아닐까하는 불안에 쵸로마츠가 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저 모습이 진짜 카라마츠라면, 터무니 없는 괴물을 우두머리에 앉힌 것이 아닐까하는 불안이 발끝에서 서서히 쵸로마츠를 침식해 들어왔다.
냉혹한 괴물. 지금의 카라마츠는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았다.
토고를 붙잡은 이후, 카라마츠는 계속 토고를 심문했다. 반복해서 묻는 카라마츠의 질문과 토고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오소마츠는 어디에 있나?”
“죽었다.”
그 대화의 반복. 카라마츠는 토고를 죽기 직전까지 팼고, 기절한 토고를 내버려두었다. 토고가 깨어나면 다시 같은 질문을 하고 주먹질을 반복했다.
지금 카라마츠의 머리 속엔 ‘오소마츠’라는 자의 행방을 알아내는 것 이외에는 들어있지 않은 것 같았다.
토고를 붙잡은 지 3일이 지나고, 쵸로마츠 쪽의 정보원에게 ‘오소마츠’의 위치를 알아냈다는 연락이 왔다.
정확한 위치를 들은 쵸로마츠가 카라마츠가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여전히 토고에게 같은 질문을 하고 있는 카라마츠를 향해 쵸로마츠가 다급히 외쳤다.
“카라마츠 형!! ‘오소마츠’의 위치 알아냈어!!!”
쵸로마츠의 외침에 카라마츠가 주먹을 멈추고 쵸로마츠에게 뛰어갔다.
“정말인가?”
“아아, 이미 차를 준비해 두었다.”
“그럼 서두르지.”
서둘러 계단을 올라가는 카라마츠를 뒤따르던 쵸로마츠가 시선을 돌려 토고를 향했다.
토고는 중요한 뭔가를 잃은 사람마냥 망연자실해 초점을 잃은 눈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기 직전의 눈이다.’
토고의 눈을 바라보며 쵸로마츠가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위층에 도달한 카라마츠의 부름에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폐허가 된 공장단지. 주인 없이 버려진 그 단지에 있는 창고 앞에 고급 세단 3대가 멈춰 섰다.
제일 앞에 선 차에서 내린 카라마츠가 쵸로마츠의 부름도 무시한 채, 창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끼이익’하고 쇠 긁는 소리를 내며 문을 열고 들어간 카라마츠는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둠에 눈썹을 찌푸렸다.
카라마츠의 뒤를 이어 들어온 쵸로마츠가 창고 가득한 어둠에 “우왓”하고 외치곤 차로 되돌아가 트렁크에 들어있던 손전등을 들고 돌아왔다.
2개의 손전등 중 하나를 카라마츠에게 건네자, 손전등을 건네 받자마자 카라마츠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 카라마츠 형!!!”
창고 안에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가는 카라마츠의 뒤를 따라 쵸로마츠가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창고의 안의 빛은 일체 들어오지 않으면서 넓었다. 카라마츠가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쵸로마츠가 왼쪽으로 꺾어 손전등을 여기저기에 비추며 인기척을 찾았다.
여기저기 사방을 비추던 쵸로마츠가 걸음을 멈추었다. 창고 안, 작은 컨테이너 박스가 놓여있고 그 안에서 희미하게나마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카라마츠 형!!!”
쵸로마츠는 뒤돌아 카라마츠를 불렀고, 타박타박 발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카라마츠가 뛰어왔다.
컨테이너 박스는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개조된 것으로 정면에 보이는 문틈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쵸로마츠가 손전등으로 컨테이너를 비추고 있는 가운데 카라마츠가 천천히 다가가 컨테이너 박스의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고 시야 가득 들어오는 형광등의 빛에 카라마츠가 팔을 들어 빛을 가리고 눈을 찡그렸다.
어두컴컴한 창고 안에 익숙해져 있던 눈이 갑작스러운 빛에 시렸다. 잠시 눈을 깜빡인 후, 겨우 빛에 익숙해져 들고 있던 팔을 내렸다.
“…아, 아저씨가 데려온 손님?”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와 카라마츠가 눈을 크게 떴다.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가전제품과 가구가 갖춰진 컨테이너 박스 안, 침대 위에 올라가 있던 붉은 후드를 입은 청년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가녀린 그 몸과 얼굴은 군데군데 피멍으로 검붉게 물들어 있었고, 가는 목과 다리에는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저기… 소, 손님?”
청년이 다시 조심스럽게 물으며 침대에서 내려와 카라마츠에게로 다가왔다.
절뚝거리며 청년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찰랑찰랑하고 쇠사슬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카라마츠가 시선을 내려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청년의 오른발목에 감겨져 있는 긴 쇠사슬이 침대와 연결되어 있었다.
주먹을 꽉 쥐고, 이를 악문 카라마츠가 작게 심호흡한 뒤 고개를 들었다. 청년은 카라마츠와 2m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저기…”
‘헤헤…’ 하고 웃어 보이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는 눈가가 뜨거워지고 가슴이 옥죄어왔다.
‘너는 여전히 웃고 있구나. 이런 모습을 하고도…’
멋쩍게 자신을 향해 웃어 보이는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차오르는 이름 모를 감정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천천히 오소마츠에게 다가갔다.
“…”
30cm 정도의 거리를 남겨둔 채 멈춘 카라마츠를 가만히 올려다보는 오소마츠의 눈빛을 카라마츠가 부드럽게 마주했다.
가녀린 몸매의 오소마츠의 머리는 카라마츠의 어깨쯤에 위치해 있었다. 어릴 땐 비슷했던 신장이 이제는 머리 하나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오소마츠에게 팔을 뻗은 카라마츠가 그대로 오소마츠를 품에 안았다.
“…!. 에, 저, 저기…”
놀라 몸을 굳히고 말을 더듬는 오소마츠를 더욱 강하게 안고 카라마츠가 비통한 목소리로 오소마츠의 귓가에 속삭였다.
“오소마츠. 겨우 찾았다.”
“…카, 카라마츠? 혹시 카라마츠야?”
카라마츠의 속삭임에 오소마츠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카라마츠는 대답대신 오소마츠의 몸을 더욱 강하게 껴안았다. 카라마츠의 품에 안긴 오소마츠가 몸을 떨며 울부짖었다.
“흐으, 후읏!!! 카, 카라마츠우~~!!!! 나, 나, 네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해서!!! 흐, 흐윽!!! 사, 살아있었구나!!! 다행이다!! 다행이다아…”
울부짖는 오소마츠는 전신을 떨며 필사적으로 카라마츠에게 매달려왔다.
오소마츠의 눈물로 뜨겁게 젖어오는 어깨에 안타까움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품에서 놓지 않았다.
카라마츠가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고 한바탕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잠잠해졌다.
쵸로마츠가 조심스럽게 컨테이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카라마츠가 고개만 돌려 쵸로마츠를 바라보았다.
“쵸로마츠. 차에서 니퍼 가져와.”
카라마츠의 분노가 섞인 낮은 목소리에 쵸로마츠가 몸을 움찔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창고를 나와 차 트렁크에서 니퍼를 꺼내 다시 컨테이너 안으로 돌아가자 카라마츠가 눈짓으로 침대에 연결되어 있는 쇠사슬을 가리켰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쵸로마츠가 니퍼로 쇠사슬을 끊어냈다.
“휴.” 하고 한숨을 내쉰 후, 고개를 들어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울다 지쳐 잠든 청년이 카라마츠에게 안겨있었다. 쵸로마츠는 작은 목소리로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그 녀석이 ‘오소마츠’야?”
“…아아. 데리고 돌아간다.”
“…오우.”
반대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어투로 말하는 카라마츠에게 쵸로마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오소마츠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카라마츠가 으르렁거리며 낮게 내뱉었다.
“쵸로마츠, 집에 돌아가면
토고 그 새끼 죽여버려.”
“..뭣?!”
앞좌석에 앉은 쵸로마츠가 고개를 돌려 뒷좌석에 앉은 카라마츠를 놀란 얼굴로 쳐다보았다.
합법 조직인 마츠노가는 당연히 여태 한번도 직접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적이 없었다.
현 우두머리인 카라마츠가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카라마츠를 노려보자, 부드러운 시선으로 잠든 오소마츠를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던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어 쵸로마츠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오소마츠를 향한 부드러운 시선은 온데간데 없는 감정 없는 차가운 눈빛에 쵸로마츠는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죽여.”
카라마츠의 낮은 목소리가 주는 중압감은 엄청났다. 운전석에 앉아 운전을 하고 있는 기사까지
온 몸을 떨었다.
쵸로마츠는 일단 알겠다고 말한 뒤, 고개를 돌려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 쉽게 깨지는 유리 세공품 마냥 소중히 오소마츠를 안아 들고 옮기는 카라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카라마츠가 집 안으로 사라진 후, 지하로 내려간 쵸로마츠는 수하들에게 카라마츠가 지하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으라는 명령을 내린 후, 카라마츠의 방으로 향했다.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는 오소마츠를 바라보며 피멍이 든 오소마츠의 팔, 다리를 살며시 쓰다듬는 카라마츠의 손길은 지극히 부드러웠다.
‘아아, 저게 진짜 카라마츠다.’
카라마츠를 바라보며 쵸로마츠가 멍청히 생각했다. 직감으로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쓰다듬는 카라마츠의 손길이 멈추길 기다렸다가 카라마츠를 불렀다.
“토고는 죽였나?”
쵸로마츠를 보자마자 물어오는 카라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푹 한숨을 쉬었다.
“아니, 우리 합법적으로
해결하자고?”
“쵸로마츠, 두말하지 않아. 죽여.”
냉정한 카라마츠의 얼굴을 들어다보던 쵸로마츠가 시선을 잠든 오소마츠에게로 옮겼다.
그리고 카라마츠가 눈치채지 못하게 살며시 미소 지은 후 입을 열었다.
“네가 그 녀석을 죽이면 그 녀석, ‘오소마츠’가 기뻐할까?”
쵸로마츠의 말에 냉정하던 카라마츠의 눈빛에 동요가 휩싸였다. ‘이거다!’라고 생각하며 쵸로마츠가 말을 이었다.
“합법적으로 경찰에 넘기는 게 카라마츠 형을 위해서도, ‘오소마츠’를 위해서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
카라마츠가 가만히 쵸로마츠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돌려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상냥한 손길로 오소마츠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며 카라마츠가 말했다.
“…토고는, 토도마츠 쪽에 넘겨.”
“아아.”
쵸로마츠가 승리의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방을 막 나서려는 쵸로마츠가 카라마츠가 불러세웠다.
“쵸로마츠.”
“뭐야?”
쵸로마츠가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다시 냉혹한 눈빛으로 되돌아간 카라마츠가 차가운 목소리로 읊조렸다.
“반쯤 죽여서 보내.”
“하아… 알겠어.”
쵸로마츠가 한숨 쉰 후, 대답했다. “내가 이러다
늙지.”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카라마츠 방을 나선 쵸로마츠가 지하로 내려가 수하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다음날, 현상수배 중이던 강도가 잡혔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오소마츠.”
“웅? 왜애~”
부드러운 카라마츠의 부름에 오소마츠가 빙긋 웃었다.
이를 드러내고 무방비하게 웃는 그 모습에 쵸로마츠를 비롯한 마츠노 일가는 숨을 삼키고 오소마츠의 귀여움에 몸부림 쳤다.
“오늘부터 마츠노 오소마츠가 된 걸 축하해.”
커다란 케이크를 오소마츠 눈 앞에 드러내고 카라마츠가 웃으며 말했다.
카라마츠 뒤편에 앉은 쵸로마츠와 이치마츠, 토도마츠, 쥬시마츠 부부와 마츠요와 마츠조까지 모두 웃는 얼굴로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투명한 눈으로 카라마츠를 올려다 본 오소마츠가 행복하게 웃으며 외쳤다.
“응, 고마워.. 카라마츠!!!”
* 이후 후일담이 있습니다.
* 저는 항상 워드로 글을 쓰는데 왜 단편 하나 쓰는데 꼬박 하루가 소요되는 걸까요... 게다가 이번 단편은 상, 하 합쳐서 32쪽이었습니다...쿨럭..
* 후일담은 오소른에 본편에서 다루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다룰 생각입니다. 카라마츠와 오소마츠의 염장질을 기대해 주세요.
*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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