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죽음 소재입니다.
* 글에 등장하는 장례의식이나 제사는 우리나라(한국)의 것과 일본의 것을 모두 참고하였습니다.
위화감을 없애기위해 한국에 맞추어 로컬라이징한 부분도 있습니다.
* 부족한 글입니다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마츠노 오소마츠님께
잘 지내시고 계신가요? 저는 건강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당신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이제 겨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루하루가 이렇게 길다는 것을 저는 당신을 잃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아무 것도 몰랐던 제가 처음으로 장례식이나 상주를 겪어 얼마나 얼떨떨했는지 당신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몰려드는 조문객들로 3일 내내 정신 없이 손님을 맞이하고 밤을 샜습니다. 당신은 대체 어디까지 발이 넓은 건가요. 경마장이나 파칭코에서 당신과 어울렸던 아저씨들부터 시작해 시장 골목 상가의 아주머니들까지 모두 당신의 소식을 듣고 찾아와 주셨습니다. 모두 진심으로 당신을 위해 눈물을 흘려 주셨습니다. 항상 심심하다며 저희에게 매달리던 당신이었는데, 이렇게나 많은 친구들을 두고 있었다는 것을 저는 그때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장례식 마지막 날, ‘그 아이’도 찾아왔습니다. 부모님의 손을 꼭 잡고 찾아온 ‘그 아이’는 과연 자라면 엄청난 미인이 될 것 같은 영특한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의 부모님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두 손을 꼬옥 붙잡고 몇 번이고 허리 숙여 인사했습니다. ‘그 아이’도 검은 액자 속의 당신의 사진을 보며 고맙다고 눈물 흘리며 인사했습니다.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어엿한 여성을 울리다니 역시 당신은 최악입니다.
어찌어찌 장례식도 마무리 되어 이제야 일상으로 돌아왔건만, 당신이 없는 일상은 색을 잃은 칙칙한 흑백 사진과도 같아 보입니다. 동생들은 매일 아침 이불 가운데 당신의 빈자리를 보며 울음을 터뜨립니다. 저의 하루는 그렇게 울고 있는 동생들을 달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아침 내내 울어 퉁퉁 부은 동생들의 눈을 당신이 본다면 분명 배를 잡고 크게 웃겠지요. 당신과 마찬가지로 저도 ‘형’으로서 한 평생을 살아왔는데도 역시 동생들을 달래던 당신의 솜씨를 따라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항상 ‘여섯명이서 하나’를 외쳤던 당신의 빈자리가 유독 눈에 띄는 이유는 그만큼 당신이 우리들 사이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기 때문이겠지요. 왜 우리들은 그것을 더 빨리 깨닫지 못 했을까요. 하루 빨리 당신처럼 능숙하게 동생들을 달래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없는 일상은 아직 낯설지만 곧 익숙해질 것입니다. 혹여 우리들을 걱정해 떠나지 못하고 있다면 걱정하지 말고 편히 떠나주세요. 우리는 그 무엇보다 당신의 평안을 바라고 있습니다.
마츠노 카라마츠
2.
마츠노 오소마츠님께
당신이 우리 곁을 떠난 날, 멈춘 것 같았던 시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흘러 어느새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당신은 그곳에서도 잘 지내고 계신가요? 장난꾸러기에 기적의 바보인 당신의 친화력이라면 어딜 가도 잘 지낼 것이라 생각하지만, 설마 그곳에서도 짓궂은 장난을 하고 다니진 않을까 조금 걱정입니다.
저를 비롯하여 부모님은 모두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십니다. 다만 어머니는 계속 다니시던 파트 타임(아르바이트)를 그만 두셨습니다. 아버지는 요즘 부쩍 기운을 잃으셨습니다. 동생들은 다행히도 아침에 우는 횟수가 줄었습니다. 아직 가끔 훌쩍이긴 해도 당신의 빈자리를 잘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 당신이 없는 일상은 익숙해지기에는 너무나 잔인합니다.
매일 외출하던 동생들은 당신이 없어진 이후, 외출을 삼가고 있습니다. 가볍게 산책을 다녀오겠다던 당신이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된 것에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것인지, 마치 집 밖에 나가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부드럽게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겠지요. 동생들 모두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기에 요즘엔 마냥 부드럽게 기다리기 보다는 조금 엄하게 대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당신이라면 분명 손쉽게 동생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겠죠. 문득 학창 시절, 어머니께 억지를 부리는 동생들을 엄하게 혼냈던 당신이 기억납니다. 당신은 그렇게 때로는 상냥하게 때로는 엄하게 우리를 보듬어주고 돌봐주었습니다. 이제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던 당신의 행동들이, 모두 우리를 위하여 했던 행동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좀 더 당신을 닮는다면 동생들을 더 잘 이끌 수 있을까요? 오늘도 식탁의 남겨진 당신의 빈자리에 울상을 짓는 동생들을 더 잘 보듬으려면, 아직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 이만 또 편지할 때까지 편안하시길 빌겠습니다.
마츠노 카라마츠
3.
마츠노 오소마츠님께
세월이라는 것은 정말로 기묘하다는 것은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하루가 길게 느껴져, 대체 언제 끝날까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새 당신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이 개월이 지났습니다. 얼마 전에 당신의 49재도 끝이 났습니다. 당신은 이제 그곳에 완전히 적응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우리가 모르는 친구들 잔뜩 만들고 있겠죠.
동생들는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일상을, 아니 다시 말하는 게 좋겠습니다.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거실 한 켠에 위치한 적갈색의 불단을 우리는 아직도 모른 척 지나치고 있습니다. 그곳에 놓여진 당신의 사진은 보고 싶지 않은지 마치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무시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치마츠와 쵸로마츠가 당신을 ‘파칭코 쓰레기’ 라고 부른 것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그 말대로 당신은 우리 형제 중의 제일가는 쓰레기입니다. 우리가 백수에 항상 집에 붙어있다고 ‘부모님께 불효’ 운운했던 당신이 제일 큰 ‘불효’를 저지르고 사라졌으니까요. 동생들은 알지 못하지만, 매일 밤 어머니는 당신의 불단 앞에서 소리를 죽이고 흐느끼고 계십니다. 더 이상 당신이 따라주는 맥주를 마실 수 없다고 한탄하시던 아버지의 눈가는 붉고 축축히 젖어있었습니다.
당신이 남긴 흔적 하나하나가 부모님과 동생들의 가슴에 남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대못을 박고 있었기에 저는 당신의 흔적을 모두 지우기로 했습니다. 당신의 옷가지, 소유물, 사진 모두 모아 가족들이 모르는 곳에 놔두었습니다. 멋대로 당신의 물건을 치운 저를 당신은 용서해 줄 건가요? 당신이라면 반드시 멋대로 자기 것을 만졌다고 화 먼저 내겠죠. 그래도 불가피한 처치였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부모님의 양해를 구하고 한 일이니 당신도 크게 저를 나무라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당신의 흔적을 모두 치워도 당신의 빈자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랜 버릇으로 동생들은 항상 당신의 자리를 비워두고 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더 지나야 그 빈자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힘들어하는 동생들을 보면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합니다. 당신은 아마도 동생들의 걱정 따위 하지 않고 그곳에서 유유자적 놀고 있을 테니까요.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마츠노 카라마츠
4.
마츠노 오소마츠님께
오늘은 굉장히 정신 없는 하루였습니다. 저와 동생들에겐 굉장히 중요한 날이었지만, 당신에게도 중요한 날로 여겨질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성격이라면 ‘그런 거 별로 안 중요하지 않아?’ 하며 넘길 가능성이 다분하니까요.
오늘 드디어 당신을 죽인 ‘그 자’가 최종 판결을 받았습니다. 20년이 넘는 무거운 벌이 내려졌음에도 ‘그 자’는 전혀 반성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뻔뻔한 얼굴로 자신은 운전할 당시, 술 따윈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고 당당히 선언하는 ‘그 자’를 바라보는 동생들의 눈빛을 당신이 보았다면 웃었을까요.
동생들을 지나치며 비열한 표정으로 비웃은 ‘그 자’를 죽이려 달려들려는 동생들을 말리느라 저는 오늘 진땀을 뺐습니다. 눈에 핏발을 세우고 ‘그 자’를 진심으로 저주하는 동생들은 당신을 잃었다는 상실감과 슬픔을 전부 ‘그 자’에게 쏟아 부었습니다. 당신은 몰랐겠지만, ‘그 자’는 아무래도 이전에도 비슷한 사건을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그 때에는 피해자가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그 사고의 크기가 결코 작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재판이 끝난 후, 휠체어를 탄 남성이 동생들을 위로해주고 떠나갔습니다.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나왔다는 것에 유감을 표하며 앞으로 힘내라는 말을 남긴 그 남자는 ‘그 자’를 보며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요. 그리고 당신은 ‘그 자’를 본다면 대체 무슨 말을 했을까요. 우리에게서 당신을 빼앗아간 ‘그 자’를 저는 도저히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증인석에는 ‘그 아이’도 서 있었습니다. 불안한 얼굴이었지만 담담히 증인석에 올라 당신의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최종 판결이 난 후, 붉은 카네이션을 들고 우리에게 다가온 ‘그 아이’가 구해주어서 고맙다고, 다시 당신을 보고 싶다며 카네이션을 건넸습니다. 스승의 날이나 어버이의 날에 카네이션을 건넨 적은 있어도 직접 받아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본래 당신이 받아야 할 그 꽃은 어머니에게 전해 불단에 놓인 당신의 사진 앞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꽃이 시들면 드라이 플라워로 만들어야겠다고 어머니가 웃으셨습니다. 타인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받은 당신이 나의 형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당신이 곁에 있었다면 동생들의 찬사에 코 밑을 문지르며 쑥스러워 했겠지요. 그 찬사가 오래가지는 않았겠지만요. ‘그 자’의 죄는 밝혀지고 벌을 받았는데도 당신은 돌아오지 못합니다. 하다못해 ‘그 자’가 받은 벌로 동생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편히 지내세요.
마츠노 카라마츠
5.
마츠노 오소마츠님께
지금까지 살면서 오늘만큼 절실히 당신의 존재를 원한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은 대체 얼마나 장남으로서 우리들의 ‘형’으로서 우리를 돌봐온 것일까요. 당신의 부재만으로 이렇게나 우리 형제 전체가 엉망으로 변하다니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습니다.
지난주 이치마츠가 당신의 뒤를 따르려 했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된 우리들은 집에서 목욕을 하고 있습니다. 항상 2명이서 들어갔었는데 그날은 이치마츠가 혼자 하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고,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우리는 이치마츠를 혼자 놔두었습니다. 길어지는 목욕 시간에 걱정해 들어가본 쵸로마츠가 비명을 질렀고, 곧 구급차가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욕실 바닥 가득 퍼져 있는 붉은 피를 보며 이치마츠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요. 당신의 색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이제 당신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기뻐했던 걸까요? 쵸로마츠가 발견했을 때의 이치마츠는 기쁘게 웃고 있었다고 합니다. 병실에서 마주한 이치마츠는 절망이 짙게 드리운 어두운 얼굴로 울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보고 싶다고 흐느꼈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저의 무능력을 실감했습니다. 당신이 없으면 저는 동생들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허수아비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기를 쓰고 당신을 따라 해도 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푸른 후드를 입은 형이 아니라 붉은 후드를 입은 ‘당신’이라는 것을 저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오늘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온 이치마츠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쥬시마츠가 말을 걸어도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로만 대답을 할 뿐입니다. 당신이 없어진 후로 더욱 마른 이치마츠의 얇은 손목에 감긴 붕대가 저를 책망하는 것만 같아서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습니다. 덕분에 이치마츠의 시중은 전부 쥬시마츠와 쵸로마츠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형’ 실격이네요…
오늘은 이치마츠의 퇴원 외에도 일이 있었습니다. 당신의 보험금이 나왔습니다. 처음 보험금 이야기가 나왔을 때, 동생들이 얼마나 보험금 수령을 반대했는지 당신은 모르시겠죠. ‘사망 보험금’ 이라니, 받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하겠죠. 동생들은 모두 당신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보험금 수령도 목에 핏대를 세우고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이치마츠의 일이 있고 나서, 부모님과 제가 이야기를 나눈 결과 이치마츠의 병원비와 치료비를 위하여 보험금을 받기로 했습니다. 혹시 당신은 화가 났나요? 그래도 동생을 위해서 받았으니 어쩔 수 없다고 웃을까요? 제법 큰 액수의 돈이 들어온 가족 통장을 바라보며 제가 얼마나 착잡한 마음이었는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이치마츠는 정신안정제와 심리치료를 처방 받았습니다. 아직 집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 이치마츠를 위해 심리치료사가 매주 집에 방문하고 있습니다. 정신안정제는 쵸로마츠가 꼬박꼬박 때에 맞춰 챙겨주고 있습니다. 약의 부작용인지 이치마츠는 하루 종일 잠만 잡니다. 정말로 고양이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자면서도 당신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지만, 당신의 쓰다듬 스킬은 저에겐 없기에 이치마츠의 성질만 돋구고 맙니다. 이치마츠에겐 당신이 필요합니다. 제일 걱정되는 동생이라고 했던 주제에 당신은 왜 이치마츠만 남겨두고 떠나버린 건가요. 당신은 그곳에서 우리를 걱정하고 있긴 한가요? 원망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먼저 떠나버린 당신이 조금은 밉습니다.
마츠노 카라마츠.
6.
마츠노 오소마츠님께
그 동안 잘 지내셨나요? 이제는 어느 정도 당신이 없는 이부자리에서 눈을 뜨는 것이 익숙해졌습니다. 동생들도 더 이상 당신의 빈자리를 보며 울지 않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부재에 익숙해진 것인지 아니면 울고 싶은 것을 억누르고 있는 것인지는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 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억누르고 있는 거겠죠. 그렇게 눌러두고 외면하던 감정이 결국 오늘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회사에 내기 위해 떼어온 ‘가족 증명서’가 그 화단이었습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죽으면 그것이 전부 기록된다는 것을요. 사망증명서니 하는 서류들은 전부 부모님이 처리하셨기에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우연히 식탁에 놓인 증명서를 본 쵸로마츠가 아무 말 없이 그것을 찢으려고 하는 것을 지나가던 제가 말렸습니다. 그때서야 참았던 것들을 모두 터뜨린 쵸로마츠가 오열하며 이딴 것 찢어버리는게 낫다고 울부짖었습니다. 쵸로마츠의 손에 쥐여 잔뜩 꾸겨진 증명서를 나중에야 본 저는 왜 쵸로마츠가 그렇게 울분을 토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이름 옆에 (사망) 이라고 적힌 그 두 글귀를 쵸로마츠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증명서를 찢으려는 쵸로마츠에게서 그것을 빼앗자 바닥에 주저앉은 쵸로마츠는 몸을 둥글게 말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나중에 돌아온 부모님께 증명서를 건네자, 부모님도 슬픈 얼굴로 그것을 받으셨습니다. 동생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울고 있는 쵸로마츠를 달랬습니다.
무능력한 저는 그저 쵸로마츠의 앞에 우두커니 서서 몸을 떨며 울고 있는 쵸로마츠를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후에 토도마츠가 말했습니다. 반신(半身)을 잃은 쵸로마츠의 슬픔은 아마 다른 사람들보다 더 깊을 것이라고. 당신은 그렇게나 함께 붙어 다녔던 파트너를 놔두고 멋대로 떠나버렸습니다. 아무리 쵸로마츠를 놀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도 이번 것은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매일매일 동생들 몰래 우는 쵸로마츠를 지켜봐야만 하는 제 입장이 되어 보세요.
이치마츠는 아직도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쥬시마츠도 잘 버티고는 있지만, 전과 같았던 활기찬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주지 않습니다. 토도마츠는 시간만 되면 쵸로마츠나 이치마츠, 쥬시마츠의 곁에 붙어있습니다. 당신의 부재가 만든 변화는 언제까지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언제쯤 우리는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조금씩 익숙해지는 이 ‘비일상’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동생들은 아직 당신의 부재를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전보다는 나아져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분명 순진무구하게 웃으며 그곳에서 웃고 떠들고 있겠죠. 이렇게 동생들을 마음고생 시킨 당신에겐 언젠가 반드시 그 얼굴에 주먹을 날려주겠습니다.
서서히 날씨가 추워지고 있습니다. 당신 없는 겨울을, 우리는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츠노 카라마츠
7.
마츠노 오소마츠님께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그곳에서 잘 지내고 계시겠죠.
어느덧 당신이 떠난 지 반년이 지났습니다. 동생들은 서서히 당신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는 이제 더 이상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고, 외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산책을 나가는 쥬시마츠는 강둑에서 이름 모를 야생 꽃들을 꺾어와 당신의 불전에 놓고 있습니다. 덕분에 매일 거실 안은 꽃향기로 가득합니다.
토도마츠는 다시 친구들과 연락하고 있습니다. 조금씩 친구들과 약속을 하고 나가 놀고 들어옵니다. 그 모습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아 기쁘면서도, 어찌보면 필사적으로 당신의 부재를 잊으려고 하는 것 같아 안쓰럽습니다.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도 집을 나가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매번 집으로 방문해 주셨던 심리치료사가 있는 병원으로 통원하는 이치마츠를 항상 쵸로마츠가 함께 가고 있습니다. 조금씩 이치마츠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어 요즘엔 제대로 목소리도 들려주고 있습니다. 고양이들도 이치마츠가 걱정되었는지 매일 집을 찾아주고 있습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한걸음씩 나아가는 동생들을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옛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역시 옛 현인들의 지혜는 무시하지 못하겠습니다.
지난주에는 외출했던 토도마츠가 앨범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자신의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던 당신의 사진을 인화하여 당신의 사진집을 만들어 온 것입니다. 동생들이 슬퍼하지 않도록 기껏 당신의 물건과 사진을 모두 치웠었는데, 토도마츠가 직접 사진집을 만들어 와 조금 씁쓸했습니다. 이제 동생들은 당신의 사진을 보아도 괜찮은 정도까지 나아진 것이겠지요. 모두 머리를 맞대고 모여 당신의 사진집을 하나하나 눈에 담는 동생들의 모습을 당신이 본다면 웃었겠지요. 사진 하나하나에 담긴 일화를 풀어내며 함께 웃는 동생들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보는 미소가 피어 있었습니다. 토도마츠가 앨범을 만들어온 이후, 그 사진집은 동생들의 보물이 되었습니다. 저들끼리 순서라도 정했는지 매일 번갈아 가며 당신의 사진을 보는 동생들의 얼굴은 부드럽게 풀려있었습니다.
동생들은 이제 더 이상 슬픔만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서서히 당신의 부재를 잘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당신은 조금 섭섭해 할까요? 아니면 동생들을 칭찬해 줄까요? 당신이 없어진 이후로 함께 사라진 그 상냥한 쓰다듬을 동생들 모두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마츠노 카라마츠
8.
마츠노 오소마츠님께
2개월만에 편지를 씁니다. 당신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이제 완전히 제 페이스를 찾은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는 매일 외출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 곁에서 돌봐준 쵸로마츠와 쥬시마츠 덕분에 이치마츠도 거의 회복되어 더 이상 어두운 얼굴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는 통원 치료도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치료는 끝이 납니다.
어제는 하타보와 토토코가 찾아왔습니다. 당신의 불단에 향을 올리고 싶다며 찾아온 그 둘을 어머니는 기쁘게 맞이하셨습니다. 당신의 부재는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치비타는 가끔 자신의 오뎅을 들고 찾아옵니다. 토토코는 아무래도 아이돌을 그만둔 것 같습니다. 하타보는 당신의 장례비용을 모두 지원해주었습니다. 당신은 대체 언제부터 동생들뿐 아니라 하타보도 돌봐주고 있었던 건가요? 그 동안 받은 은혜가 있다며 사양하는 부모님을 적극적으로 설득한 미스터 플래그는 아낌없이 장례식의 비용을 모두 지불해 주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전화를 걸어 불편한 것은 없는지 물어옵니다. 이야미는 어쩌다 길에서 마주치면 반드시 우리를 구분해 불러줍니다. 실수로라도 우리를 오소마츠라고 부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의 특징을 모두 기억하고 우리는 부릅니다. 정말이지 당신이 우리와 주변에 가져온 변화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납니다.
어제 당신의 불단 앞에서 향을 올린 토토코가 당신과 결혼 해줄 마음도 아예 없는 것도 아니였다던 고백을 당신을 들었나요? 아마 당신이라면 입이 귀까지 찢어지도록 웃으며 기뻐했겠죠. 그런 꼴불견을 직접 보지 않아 다행입니다. 당신의 말대로 토토코는 모두의 아이돌이니 멋대로 독차지하는 것은 곤란하니까요.
치비타는 제가 부탁했던 당신의 유품을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매일 당신의 사진을 보는 동생들을 위해 다시 집 안에 놓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동생들은 당신의 물건들을 보며 웃었습니다. 당신의 물건들을 확인하는 동생들의 눈가가 붉어진 것은 모른척했습니다.
오늘 2층에 올랐을 때, 당신의 붉은 후드를 입고 잠든 쥬시마츠를 보고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똑같은 얼굴이기에 당신으로 순간 착각해버린 저는 당신이 돌아왔다고 생각해버렸습니다. 그 생각만으로 심장이 멈출 것만 같았습니다. 우리 앞에서 밝게 행동했던 쥬시마츠는 당신의 후드를 입고 몸을 웅크린 채, 항상 골던 코도 골지 않고 조용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붉게 부어 오른 눈가가 안타까워서 찬 물에 적신 수건을 눈 위에 올려주었습니다. 쥬시마츠도 아직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서는 일부러 밝게 행동했던 것 같습니다. 상냥한 쥬시마츠다운 행동이지만, 형으로서는 동생의 그런 배려도 조금 가슴 아픕니다. 다만 쥬시마츠가 입은 것만으로 당신의 붉은 후드의 소매가 늘어나 있는 것은 미스터리입니다.
최근 쵸로마츠는 다시 취업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항상 쫓아다녔던 아이돌도 뒷전이고 매일 슈트를 입고 헬로워크로 갑니다. 마치 눈 앞에 취업이라는 당근만을 쫓는 경주마가 된 것 같아 조금 걱정입니다. 그래도 마냥 백수로 지내는 것보다는 낫겠죠.
동생들은 이렇게 당신의 부재로 인한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나아지고 있습니다. 혹시나 동생들을 걱정하고 있다면 걱정하지 말아주세요.
그럼 또 편지하겠습니다.
마츠노 카라마츠
9.
마츠노 오소마츠님께
그간 평안하셨나요? 어느새 당신의 1주기가 돌아왔습니다.
꿈만 같았던 그 날 이후로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1년만에 다시 입은 검은 상복이 아직 어색합니다. 마냥 울음바다였던 장례식과 달리 1주기는 조용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장례식에선 울기 바빴던 동생들도 이제는 의젓하게 제사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치마츠도 이제는 완전히 회복되어 당신의 사진을 마주하고도 울지 않습니다. 아직 가끔 당신의 앨범을 보며 울긴 해도 많이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쥬시마츠는 요즘 야구대신에 무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형제 중 누군가가 위험에 처하면 반드시 구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몸을 단련하고 있습니다.
토도마츠는 놀랍게도 형제 중 제일 먼저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아츠시군’이라고 하는 친구의 연줄로 한 소기업에 채용되었습니다. 매일 반듯하게 옷을 차려 입고 출근하는 막내의 모습은 아직 낯설기만 합니다.
쵸로마츠는 토도마츠가 취업에 성공한 것에 더욱 자극을 받았는지, 끼니도 걸러가며 일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몸을 망칠까 걱정되어 말려보기도 했지만 자중은커녕 더욱 취업 준비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말릴 수 있는지 고민입니다.
어찌되었건 우리는 모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완전히 받아들여진 당신이 없는 ‘일상’을 우리는 잘 영위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우리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 당신은 그저 그곳에서 편안히 지내주세요.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오직 그것뿐입니다.
당신이 없어도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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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마츠, 오소마츠… 나는, 괴로워.
너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한걸음씩 앞서 나아가는 동생들을 나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
네가 없다니, 그런 것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
매일 그대로 숨이 멈추기를 기도하며 잠드는 내가, 어떻게 네가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까.
눈을 뜨면 네가 내 눈앞에 있기를 바라고 마는 내가.
오소마츠,너는 왜 먼저 우리를 떠났어?
왜 나를 두고 가버렸어?
괴로워. 네가 보고 싶어.
그리워.
나를 장난스럽게 부르던 그 목소리도, 상냥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그 손길도, 너의 체온도, 체취도 전부 너무나 그리워서 가슴이 아파.
오소마츠, 아무리 불러도 너는 대답해 주지 않는 게 슬퍼서, 아파서, 죽을 것 같아.
너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아무리 편지를 써도, 그 편지를 불태워도, 바다에 흘려 보내도 너에게 내 편지가 전해졌는지조차 알지 못해.
언제까지고 답장이 돌아오지 않는 편지를 쓰는 것도 이제는 지쳤어.
네가 보고 싶어.
오소마츠, 나의 유일한 형.
네가 없으면 나는 대체 누구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누구에게 동생들에게 무시당한 하소연을 털어놓아야 해?
따뜻하게 미소 지으며 나를 달래주던 네가 내 곁에 없다니 싫어, 믿고 싶지 않아.
오소마츠.
항상 내 곁엔 네가 있었는데.
왜 너는 나를 놔두고 죽어버렸어.
실은 싫었어.
증오스러웠어.
네가 살린 ‘그 아이’도, 너를 죽인 ‘그 자식’도.
모두 죽여버리고 싶었어.
쓰레기인 네가 왜 ‘그 아이’를 살리겠다고 뛰어 들었어?
쓰레기답게 그냥 놔두면 될 텐데.
너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라고 무시하고 지나갔으면 좋았을 텐데.
왜 너는 쓸데없는 오지랖을 떨어 내 곁을 떠나버린 거야.
오소마츠, 보고 싶어.
우리 육쌍둥이의 장남은 너인데, 왜 내가 ‘장남’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해?
우리의 장남은 영원히 너인데…
오소마츠, 네가 죽은 그 날부터 내 시간은 멈춰버렸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던 낙관은 무참하게 무너졌어.
동생들은 시간이 갈수록 괜찮아 지는데, 나는 매일이 지옥과도 같아.
너를 향한 그리움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아, 내 가슴을 짓이기고 난도질하고 있어.
차라리 시간을 되돌려 너 대신에 내가 죽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런 괴로움을 느낄 바엔 차라리 내가 죽는게 나았을 텐데!
아, 오소마츠.
네가 미치도록 그리워.
이 편지를 쓰면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
항상 내가 울 때는 네가 곁에 있어주었으면서...
지금은 왜 내 곁에 없는 거야? 왜 내 부름에 답해주지 않아?
왜 나를 달래주지 않아? 보고 싶어. 네가 보고 싶어.
네가 없는 세상은 나에겐 아무런 가치가 없는데, 세상은 네 목숨이 사라져도 태연하게 돌아가.
이딴 세상에 더 이상 1초도 머무르고 싶지 않아.
제발 부탁이야, 오소마츠.
나를 데려가.
너와 함께 있고 싶어.
네 목소리를 듣고, 너에게 닿고 싶어.
오소마츠...
오소마츠...
보고 싶어.
이제 동생들은 네가 없어도, 그리고 내가 없어도 괜찮으니까.
나, 이제 네 곁에 가도 괜찮지?
이 편지를 들고 직접 너에게 가서 전해도 괜찮지?
네가 없어져도 잘만 돌아갔던 세상은 분명 내가 없어진다 해도 아무런 문제 없이 돌아갈 거야.
그러니까, 오소마츠. 나, 네 곁에 갈래.
네가 보고 싶어 죽을 것 같으니까, 너무 아프니까, 숨도 못 쉴 정도로 힘드니까, 네 곁에 갈래.
너에게 갈래.
네가 없는 세상에 미련 따위 없으니까.
동생들이 네 죽음을 받아들였듯, 내 죽음도 잘 받아들일 테니까, 나는 없어져도 괜찮잖아?
오소마츠, 내가 가면 부디 그 상냥한 미소로 나를 맞이해줘.
마츠노 카라마츠
10.
마츠노 카라마츠님께
바보 동생님, 지금까지 당신이 보내준 편지는 모두 무사히 저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처음 바보 동생님의 편지를 받아보고 저의 손발이 구운 오징어마냥 오그라들고, 소중한 갈비뼈 몇 대가 나갔는지.. 당장 사과하십시오.
당신의 추측대로 저는 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동생들의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내가 없어진다면 슬퍼하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만, 설마 이렇게까지 힘들어할 줄은 몰랐기에 조금 당황했습니다. 그래도 바보 동생님이 보내주는 편지 덕분에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보 동생님, 본래 이승을 떠난 자가 이승에 관여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바보 동생님이 걱정되고 걱정되어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제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는 것은 염라대왕님께는 비밀입니다.
이곳에 오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저는 원래 이렇게 일찍 죽을 운명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본래 생을 마감해야 했던 것은 ‘그 아이’로 제가 그 아이를 구하고 죽은 바람에 운명이 엉켜버렸다고 잔소리를 들었습니다만, 카리스마 레전드 횽아의 끝내주는 친화력으로 특별 혜택을 받아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함께였던 우리였기에, 형제를 남겨두고 먼저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번 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염라대왕님께 요청해 남은 다섯 명은 모두 한날한시에 죽을 수 있도록 조정해 두었습니다.
그러니 다들 몸조심하세요. 누가 훅 가면 모두 함께 저승행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특별히 저는 이승에 머무는 것을 허락 받았습니다. 저의 죄가 가벼운 것은 아니었으나, 어린 아이를 구한 것으로 특별 참착을 받아 모두 면죄되어 바로 천국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만, 바보 동생님과 남은 동생들이 걱정되어 염라대왕님께 부탁했습니다. 예상대로 반대가 엄청났지만, 이 카리레전(카리스마레전드) 장남님이 딜(deal)을 해 허락을 받았습니다.
나는 이제 항상 너희들의 곁에 있습니다. 먼 훗날 모두 숨을 거둔다면 이 횽아가 마중 나가줄 테니 함께 저승으로 갑시다.
그리고 바보 동생님, 부디 이 편지를 동생들 모두에게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 말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바보같이 취업 준비를 하는 쵸로따르스키에게는 쓸데없이 짐을 짊어지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마츠노가의 장남님은 바로 이 몸입니다. 부질없는 책임감에 가계를 책임져야 한다니 어쩌니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은 그만두고 하던 대로 레이카나 쫓아다니라고 전해주세요.
쥬시마츠에겐 너무 혼자서 떠안으려고 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이 카리스마 레전드 인간국보가 항상 너희들의 곁에 붙어있습니다. 수호신까진 아니어도 동생들을 지킬 힘은 남아돌고 있으니, 동생답게 마음대로 살면 된다고 전해주세요.
토도마츠에겐 잘 하고 있다고 칭찬해주세요. 이 횽아는 설마 드라이 몬스터가 이렇게까지 형제를 생각하고 열심히 할 줄은 몰랐습니다. 너는 잘 하고 있다고 말하며 이 횽아 몫까지 쓰다듬어 주세요.
이치마츠에겐 항상 곁에 있으니 울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이 횽아는 이치마츠가 가장 걱정입니다.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횽아는 항상 너희의 곁에 있습니다.
그리고 카라마츠, 우리 바보 동생님.
섣불리 스스로 네 삶을 끝내려고 하지 말아주세요.
아까 말했듯, 다섯이서 한날한시에 죽게 되어있습니다.
네가 죽으면 자동으로 동생들까지 지옥행이니 조금만 참아주세요.
원래는 이곳, 저승에서 너희를 기다릴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보 동생님의 어리광이 너무 심해서 이 횽아도 염라대왕님께 억지를 부려 너희의 곁에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횽아의 위대함을 마음껏 찬양해 주세요.
∙
∙
∙
카라마츠, 나도 네가 보고 싶었어.
저승에서 재판을 받는 1년 내내, 동생들의 걱정도 했지만 네가 가장 생각났어.
내가 없으면 네가 어리광 부릴 사람이 없는데, 너는 잘 지내고 있을까. 또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참고 있지는 않을까.
기분 좋게 나를 부르는 너의 낮은 목소리가 그립고, 툭하면 우는 너의 우는 얼굴이 그립고, 심지어 네 아픈 발언도 그리웠어.
카라마츠, 비록 나는 더 이상 너를 부르거나 만질 수는 없지만, 나는 항상 네 곁에 있어.
언제나 그랬듯 나는 네 곁에 있어.
네가 밥을 먹을 때도, 카라마츠 걸-즈를 기다릴 때도, 잠을 잘 때도 항상 네 곁에 있어줄 테니까…
울지 마.
네 우는 얼굴을 보면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고 싶은데도 닿을 수 없는 내 처지에 나도 우울해지니까 울지 마.
그래도 가끔은 울어도 괜찮으니까, 만져지지 않아도 안아줄 테니까 마음 놓고 실컷 울어.
참지 않아도 괜찮아.
너는 마츠노가의 차남이니까, 이 장남님께 언제든 기대도 괜찮아.
우는 모습을 보여도 괜찮아.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어.
나는 너를 볼 수 있어도 너는 나를 볼 수 없으니 치사하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네 곁에 있는 것을 의심하지 마.
카라마츠, 나도 너에게 닿고 싶어.
너를 꼬옥 안아주고 싶어. 그래도 할 수 없으니까, 조금만 더 참자?
조금만 더 참으면 여섯이 함께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다시 만나면 네가 만족할 때까지 실컷 꽉 안아주고 어리광 받아줄 테니까.
죽고 싶다는 생각하지 말고, 동생들과 함께 내가 못했던 것들, 내가 못 봤던 것들을 보고, 느끼고 나서 다 늙어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때까지 오래오래 살고 나서, 그 후에 나를 만나러 와줘.
나는 네가 살아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테니까. 너와 함께 있으니까.
귀여운 내 동생, 나의 카라마츠. 다시 만날 때까지 나는 항상 네 곁에 있어.
마츠노 오소마츠
* 원래 플롯 짤 때는 카라마츠의 편지에서 끝날 이야기였습니다만, 결말을 조금 수정하였습니다.
* 1년간 억눌러 왔던 감정이 마지막에 폭발한 카라마츠의 심정이 잘 전달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ㅎ.
카라마츠가 마지막으로 보내는 편지 외에는 모두 동생들이 오소마츠를 그리워한다고만 했지, 카라마츠 본인의 감정은 쓰여져 있지 않습니다.
카라마츠가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해 보았는데 어떠신가요?ㅎ
* 제가 우울할 때 쓴 글이라 음침합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팍팍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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