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코로나때문에 난리네요...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 오랜만에 오소른 50제입니다. 그동안 심신이 너덜너덜해져서 글을 쓸 기력이 없었네요...ㅠ 오랜만에 업로드가 되어버렸어요...


* 약한 장남, 비중있는 모브가 나옵니다. 카라마츠가 맹렬히 질투를 불사르고 있습니다.


* 카라→(←?)오소


* 공미포 22,291자.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소른 50제


33. 시한부 (카라오소)   풍운성월 님 신청 키워드.



1.

 

평소와 다름없는 저녁이었다. 낡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간장병을 주고받는 저녁 식사를 끝내고 브라더들과 할 일 없이 거실에 남아 있는 여느 때의 저녁. 거울에 비친 앞머리를 정리하는 척하며 옆에 드러누워 너덜너덜해진 만화책을 읽는 오소마츠를 훔쳐보던 중에 기계음 섞인 초인종 소리가 불청객처럼 찾아왔다.

찾아올 이 없는 시각에 울린 초인종에 모두 고개를 들어 현관을 응시했다. 저녁 식사까지 마친 이 늦은 시각에 대체 누구인지, 소량의 호기심이 담긴 눈이 현관에 고정되었다. 현관문에 비친 그림자가 몇 초의 간격을 두고 움직이더니 낡은 문이 덜컹거리며 스륵- 옆으로 밀려났다.

안녕하세요.”

“““““, 에에엑!?!?!?!?”””””

빙그레 웃는 얼굴로 현관에 나타난 인물을 보자마자 나와 브라더들은 동시에 괴성을 질렀다.

 

가로로 나란히 앉은 우리 앞에 정좌한 남자는 우리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육둥이가 아니라 칠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닮은 얼굴을 한 남자는 살갑게 웃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데카판 박사님이 만든 인공지능입니다. 박사님께서 인간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로봇 몸을 주셔서 오게 되었어요.”

, 인공지능…?”

. 당분간 마츠노 가에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남자는 정갈한 몸짓으로 살짝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인공지능에 로봇이라는 것은 닥터가 관련된 일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것은 브라더들도 마찬가지인지 굳은 얼굴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쵸로마츠가 살며시 손을 들었다.

그런데 왜 하필 우리 집으로?”

, 여기 계신 오소마츠 씨가 제 인공지능 개발에 도움을 많이 주셨거든요. 익숙한 오소마츠 씨의 집에 머무르는 게 인간의 감정을 알아가는데 더 좋을 것 같아 마츠노 가로 오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몸도 오소마츠 씨를 본 따 만든 것입니다.”

남자는 미리 준비한 대본을 읽는 것처럼 술술 대답했다. 남자의 설명에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경계를 풀고 옅게 미소지었다.

뭐야~, 그런 거였어? 근데 오소마츠 형이 인공지능 개발에 도움을 줬다고??”

믿기 힘든데~. 보나 마나 쓰레기 같은 것만 가르쳐줬겠지.”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남자와 오소마츠를 번갈아 응시하며 웃었다. 두 사람의 웃음 덕분인지 줄곧 털을 세우고 있던 이치마츠도 경계를 누그러뜨리는 것 같았다.

그럼 잘 부탁함닷! 로보마츠!”

이치마츠 옆에서 소매로 입가를 가리고 남자를 보던 쥬시마츠가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손을 덮은 소매가 남자 앞에서 흔들렸다.

쥬시마츠 형, 로보마츠라니…?”

! 로봇에 우리랑 똑같은 얼굴이니까 로보마츠’!”

너무 대충인 거 아니야?”

뭐 어때~. 나도 잘 부탁해! 로보마츠♡

쥬시마츠에 의해 로보마츠라는 이름을 받은 남자가 싱긋 웃으며 쥬시마츠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쵸로마츠의 태클을 휙 날려버린 토도마츠도 남자를 향해 빙긋 웃었다. 순식간에 결정된 성의 없는 이름인데도 남자는 꼭 소중한 것을 받은 것처럼 기쁘게 웃었다.

. 저도 잘 부탁드려요! 오소마츠 씨도요.”

“……, ….”

고개를 틀어 오소마츠와 눈을 맞춘 남자의 말에 오소마츠가 간격을 두고 작게 대답했다. 남자가 우리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오소마츠는 얼이 빠져있었다. 남자가 인공지능 개발에 오소마츠가 도움을 줬다고 말했을 때는 한순간이지만 어깨를 움찔거렸다.

무언가…,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저 남자와 오소마츠 사이에.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제 시선을 외면하는 오소마츠를 잠시 바라보다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카라마츠, 씨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 잘 부탁한다.”

남자는 변함없는 미소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남자와 가볍게 악수하면서 옆에 전해지는 오소마츠의 기척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오소마츠는 나와 남자의 악수가 끝날 때까지 잠자코 있다가 벌떡 일어나 우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목욕탕 문 닫겠다~. 얼른 가자!”

태연한 오소마츠의 얼굴과 달리 그 목소리에는 묘한 답답함이 묻어나왔다.

 

목욕탕으로 향하는 밤길은 추웠다. 한마디로 쏘 콜~~!! 한텐을 뚫고 들어오는 찬 공기에 부르르 몸을 떨며 걸어가는 우리를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뒤따랐다.

로봇인데 씻어도 되는 거야?”

. 이 몸은 방수처리가 되어 있습니다.”

헤에~.”

뭐든 되네, 데카판은.”

토도마츠의 질문에 남자가 소매를 걷어 보이며 대답했다. 남자의 피부는 눈으로 보기엔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였다. 하지만 로봇이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악수하며 짧게 맞잡은 손이 굉장히 차가웠으니까.

어이! 빨리 가자. 정말로 목욕탕 문 닫겠어.”

남자의 피부를 보겠다고 멈췄던 우리들을 저만치 앞서 걷던 쵸로마츠가 재촉했다.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서둘러 쵸로마츠에게 뛰어가고 이치마츠도 느린 발걸음에 속도를 붙였다.

카라마츠 형~, 얼른-!”

어어! 간다.”

토도마츠의 부름에 걸음 속도를 높이며 뒤돌아 제일 뒤에서 걸어오던 오소마츠를 확인했다. 오소마츠는 미묘하게 굳은 얼굴로 남자와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 남자는 우리와 거리가 멀어지자 자연스럽게 오소마츠의 팔을 당겨 우리에게 다가왔다.

 

남자가 신경 쓰인다. ‘후 아 유!?’하고 묻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남자를 지켜보았다. 오소마츠와 나란히 걸어온 남자는 목욕탕에서도 오소마츠 옆을 차지했다. 나란히 앉아 서로 등을 밀어줄 때도 남자는 오소마츠 옆에 앉았다. 다른 빈자리도 많은데 굳이 나와 오소마츠 사이에 앉는 남자를 오소마츠는 가만히 놔두었다. 애초에 로봇인데 등을 밀어줄 필요가 있는 건가!? 몸을 깨끗하게 닦는 행위는 로봇이라도 하는 것이 좋지만, 때를 미는 것은 불필요하지 않은가?! 으응!??

속이 부글거려 등을 미는 손길에 평소보다 힘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쵸로마츠의 등이 어제보다 빨개진 것은 확실히 내 탓이겠지. 당연히 붉어진 등의 주인인 쵸로마츠는 화를 냈지만, 피가 나지는 않았으니 세이프라는 쥬시마츠의 말에 뭔가 포기한 것 같은 얼굴을 했다.

함께 온탕에 들어가고 나란히 등을 밀어준 탓인지 브라더들은 보다 편하게 남자를 대했다. 목욕탕에서 돌아오는 길, 브라더들은 남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남자는 성실히 대답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떠들썩해진 귀갓길 속에서 오소마츠는 줄곧 입을 다물고 있었다.

 

목욕탕에서 돌아와 이불을 펴자 노곤해진 몸 위로 짙은 피로가 올라왔다. 목욕 시간이 불편했던 탓인지 평소보다 긴장했던 몸은 쉽게 피로에 함락되었다. 당장 자리에 누워 잠들고 싶은 마음에 이불을 들고 발을 집어넣었을 때, 쵸로마츠가 파자마로 갈아입은 남자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로보마츠는 어디서 재우지? 손님방?”

…, 로봇이면 안 자는 거 아냐?”

고개를 갸웃거리는 쵸로마츠에게 이치마츠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쵸로마츠는 그러네?’하는 얼굴로 남자를 응시했다.

수면 모드가 있어서 여러분과 함께 잘 수 있습니다.”

남자는 문제 없다는 듯이 대답하고는 슬며시 오소마츠에게 눈을 맞췄다.

여기서 같이 자면 되잖아. 여기 내 옆에 누워.”

이어진 오소마츠의 말에 내려오던 눈꺼풀이 휙 위로 올라갔다. 이불 위에 앉아있던 오소마츠가 아무렇지도 않게 제 옆자리를 팡팡 두드렸다. 아니, 아니아니아니. 그건 아니지 않나? 오소뫄~??

경악한 나와 다르게 이치마츠와 쥬시마츠, 토도마츠는 그래도 상관없다는 얼굴로 서 있었다. 웨이트, 브라더어-?! 거기선 반대하는 게 좋지 않겠나? 으응?!?

아니, 한 이불에 7명이 눕자고? 6명도 좁아터지는데?”

나이스 태클, 쵸로마~!!! 팔짱을 끼고 못마땅한 얼굴로 말하는 쵸로마츠를 눈빛으로 힘껏 응원했다. 희망의 별은 토도마츠가 아니라 쵸로마츠였다!! 마이 리를 쵸로마~~츠우!!

괜찮아~. 카미마츠 때도 7명이 잤고, 이야미도 자고 갔잖아?”

그건 그렇지만….”

NOOOOOOOOOO!! 쵸로마츠!? 왜 그렇게 빨리 시드는 건가, 체리마츠!!!

일주일만 머무는 거니까 괜찮아~.”

오소마츠가 세상 제일의 낙관론자처럼 손을 휘저으며 남자를 제 옆에 앉혔다. 그 모습에 쵸로마츠도 더 말하지 않고 한숨과 함께 자리에 누웠다.

불 끌게-.”

토도마츠의 말이 끝나자마자 방안이 어둠에 휩싸였다. 여섯 명이 함께 나눴던 이불은 쵸로마츠--남자-오소마츠-이치마츠-쥬시마츠-토도마츠 순으로 자리를 내주었다.

WHY…. 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인가…. 오랜만에 오소마츠 옆에서 잘 수 있는 이 날을 얼마나 기대했는데…. 갑자기 왜….

고요하게 퍼진 칠흑 속에서 오소마츠와 나 사이를 가로막은 둔덕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2.

 

서서히 자신의 존재가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는 세상 속에 갇혀 살아가던 내가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것뿐이니까.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오소마츠가 성장함과 동시에 사라질 존재였다. 오소마츠는 조금씩 조금씩,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여러 일을 겪으면서 영원히 이대로 있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에,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기 위해 힘겹게 변화를 인내하고 있었다.

이 변화는 좋은 것일까? 문득 투명해지는 손을 내려다보며 자문했다. 오소마츠가 어른이 되는 것이 정말로 오소마츠가 바랐던 것일까? 세상이 강요했기 때문은 아닐까?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것은 아닐까?

점점이 퍼지는 물음에 대답은 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오소마츠가 진심으로 바랐던 것들을 포기하고 단념하는 것이라면 나는 오소마츠의 변화를 반길 수 없다고. 하지만 오소마츠는 결국 변하겠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른이 되어가겠지. 그리고 결국 주변에 흔히 보이는 사람들을 닮아가겠지….

오소마츠의 변화도 내가 사라지는 것도 막을 수 없지만, 이대로 지켜볼 수는 없었다. 내가 완전히 없어진다면 오소마츠는….

허공을 바라보다 입술을 깨물고 일생일대의 결심을 다졌다. 나의 모든 것을 건 도박이다. 마른침과 함께 두려움을 삼키고 아무것도 없는 허무의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달렸다.

 

나와 닮은 로봇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데카판.”

, 호에호에-. 왜 그게 필요한 것이다요? 오소마츠 군.”

새벽에 불쑥 찾아온 나를 안으로 들인 데카판이 적잖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콩알만 한 눈을 깜빡이는 모습이 괜히 우스워 픽- 헛웃음을 흘리고 대답했다.

 

오소마츠가 아냐, 데카판. 나는……”

 

 

 

3.

 

눈을 뜨자마자 따사로운 햇살에 눈이 부셨다. 본능적으로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일어난 것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브라더들은 아직 꿈나라를 여행 중이었다. 꿈속에서 뭔가를 먹고 있는지 입을 오물거리는 오소마츠를 잠시 바라보다 옆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알아챘다.

그 남자…, 로보마츠는 어디 갔지?

소름처럼 피부를 타고 올라오는 불길함에 서둘러 방을 나와 1층으로 내려갔다.

어머, 백수 2. 웬일로 일찍 일어났니?”

좋은 아침입니다, 카라마츠 군.”

로보마츠는 마미를 도와주던 손을 멈추고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풀며 내게 인사했다. 원래 우리 집의 일원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행동에 어이가 없었다. 꼭 좋은 아들인 마냥 마미에게 빙긋 웃은 로보마츠는 나를 지나쳐 계단을 올랐다.

정말로 정체가 뭘까.

밀려드는 의문과 당황에 2층에서 형제들을 깨우는 로보마츠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아침 식사라고 하기엔 조금 늦은 식사를 끝내고 브라더들은 저마다 할 일을 찾아 움직였다. 가방을 싸며 나갈 준비를 하는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를 확인하고 어제부터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오소마츠에게 다가갔다. 아침 식사 때도 오소마츠는 멍청히 로보마츠를 응시하며 느리게 밥을 입으로 옮겼다. 평소보다 0.8배 느린 젓가락 속도와 간장을 찾지 않는 모습에 가슴 한쪽에 자리 잡은 불길함이 커졌다.

오소마츠, 오랜만에 비너스의 축복을 확인하러 가지 않겠나?”

…? , 아니. 오늘은 어째 기분이 아니네~. 다음에, 카라마츠.”

, , ….”

오소마츠는 억지로 씨익- 웃으며 손을 세워 사과했다. 거절할 줄 몰랐던 터라 한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오소마츠는 망연히 옆에 앉아있는 나를 보며 머리를 긁적이더니 밥상을 치우고 있는 로보마츠에게 걸어갔다.

, 으음…, , …마츠. 오늘 같이 나가지 않을래?”

. 기꺼이!”

답지 않게 쭈뼛거리며 말을 거는 오소마츠를 올려다본 로보마츠는 햇빛을 받은 해바라기처럼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보마츠에게 이끌리듯 오소마츠의 얼굴에도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로보마츠는 손에 쥔 행주를 정리하고 오소마츠와 나란히 현관에 섰다.

그럼 다녀올게~.”

다녀오겠습니다.”

남의 속도 모르고 해맑게 웃으며 손을 번쩍 들어 올린 오소마츠가 로보마츠와 함께 나가자 짙은 정적이 거실을 맴돌았다.

“…로보마츠와 형님은 이상하게 친한 것 같지 않나?”

대답을 원해 내뱉은 것은 아니었지만, 배낭을 메고 나갈 채비를 끝낸 쵸로마츠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말했다.

, 오소마츠 형이 개발에 도움을 줬다니까 그런 거 아냐? 개발 과정에서 친해졌겠지? 오소마츠 형이 온갖 못된 짓은 다 알려줬을 테니….”

그럼 오소마츠 형이 부모 같은 건가? 히힛, 불쌍하네.”

쵸로마츠의 말을 이어받은 이치마츠가 낮게 웃었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작게 웃는 이치마츠 옆에 쥬시마츠가 자리하자 쵸로마츠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딱히 신경 쓸 일 아니잖아? 오히려 로보마츠가 오소마츠 형을 상대해준다면 우리 귀찮게 할 일은 줄어들 테니까 환영할 일이고.”

쵸로마츠는 어깨를 으쓱하고 거실을 나갔다. 토도마츠도 거실을 떠나고 한층 더 조용해진 거실에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집에 남아있으면 기분만 가라앉을 것 같아 집을 나왔지만, 쉬이 술렁이는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다. 햇살 좋은 다리 한가운데에 난간을 기대로 서서 흘러가는 물길을 내려다보았다.

마음에 걸릴 수밖에 없다. 로보마츠도, 로보마츠가 온 뒤에 보인 오소마츠의 태도도. 브라더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로보마츠와 오소마츠는 은근히 서로를 의식했다. 알게 모르게 오소마츠를 챙기며 자연스럽게 자신이 우리의 형제인 것 마냥 행동하는 로보마츠가 눈에 거슬려 참을 수 없다. 세상의 만인을 사랑하는 이 카라마츠가 이래서는 안 되는 걸 알지만, 로보마츠만은 예외다.

하아….”

꼭 로보마츠가 오소마츠를 내게서 뺏어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어이없는 생각이지만 마음에 남은 불길함이 그 생각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뒤숭숭한 기분에 잠식되는 느낌이 들어 억지로 발을 떼어냈다.

오늘은 날이 아닌 듯하다, 카라마츠 걸즈. 아쉬움에 몸부림칠 걸즈에게 미안함을 전하며 집을 향해 걸었다.

 

어머, 백수 2. 마침 잘 왔어~. 쌀 좀 사 올래?”

!?”

수고했다~. 쌀 여기 내려놓고 뒤뜰에 널어놓은 이불 좀 걷어올래?”

,”

이불 개서 여기 놔두고 창고 정리 좀 해줘~.”

“2층 청소기 돌려줄래?”

여기 설거지 좀 부탁해~.”

“….”

너무 부려먹는 거 아닌가!? 마미이!?

 

집에 일찍 돌아온 것을 후회하며 마미가 넘겨준 퀘스트를 모두 컴플리트하자 저녁 먹을 시간이 코앞이었다. 하나둘씩 귀가한 브라더들을 반기고 마미의 저녁 식사 준비를 도와줄 때까지 오소마츠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미, 형님은…,”

로보마츠랑 먹고 들어온다고 연락 왔어~.”

, 그렇군….”

불길함이 배가 되었다. 땅콩 껍질이라도 삼킨 것처럼 입맛이 까끌까끌했다.

 

브라더들과 식사를 끝내고 목욕탕에 갈 준비를 하고 있을 즈음에 오소마츠가 돌아왔다. 오소마츠는 헤실 웃으며 우리와 함께 목욕탕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어제보다 더 가까워진 오소마츠와 로보마츠의 사이에 초조함이 손끝을 간질였다. 빨리 뭐라도 해보라는 것처럼 등을 떠미는 불안에 숨을 삼켰다.

오소마츠. ,”

? . 로보마츠―.”

짐 들어 줄게.”

~, 땡큐베리감솨―.”

어렵게 말을 걸었지만, 다가온 로보마츠에 의해 금방 막혀버리고 말았다. 로보마츠는 자상한 미소로 가장하고 오소마츠에게서 짐을 가져갔다. 그리 무거운 것도 아니지 않나? 그게 뭐라고 굳이 자기가 들겠다고 하는 건가!? 그리고 오소마츠도 그걸 왜 넘겨주나!! 아니, 오소마츠는 그럴 수 있지만!? 오소마츠는 자기 편해지겠다고 브라더를 팔아버릴 수 있는 녀석이니까!

주먹 쥔 손에 아플 정도로 힘이 들어갔지만, 주먹을 풀 수는 없었다. 앞서 걸어가는 오소마츠와 로보마츠의 그림자가 빈틈없이 맞붙어 있었다.

 

어제처럼 나와 오소마츠 사이에서 몸을 씻은 로보마츠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도 오소마츠 옆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브라더들 중 아무도 둘을 신경 쓰지 않았다. 거리가 가까운 오소마츠와 로보마츠의 어깨가 스칠 때마다 울컥 화가 솟은 건 나뿐이다. 어떻게든 저 둘을 떨어뜨려 놓고 싶다. 무슨 방법이

가로등이 아닌 빛이 길을 밝혔다. 편의점!! 그래, 고기만두를 먹자고 하면서 오소마츠를 이쪽으로 끌어들이면 된다!

오소마츠,”

고기만두 사 먹을까?”

부른 것은 난데 왜 네가 다음 말을 하는 건가. 로보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보마츠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기만두를 3개 사서 브라더들에게 2개를 주고는 오소마츠와 하나의 고기만두를 나눠 먹었다. 오소마츠와 고기만두를 나눠 먹는 것은 항상 나였는데….

까득, 입안에 삐걱거리는 소리가 퍼졌다.

 

 

 

4.

 

한적한 길거리를 지나 세월의 흔적이 덮인 초등학교를 지났다. 학교 뒤편 산을 오르는 산책로에 발을 들이자마자 오소마츠가 어딜 향하고 있는지 알아챘다.

오랜만이네, 여기….”

산책로를 조금 벗어나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사잇길로 빠져나오면 있는 작은 둔덕. 둔덕에 어린아이 하나 간신히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이 우리의 비밀기지였다. 구멍에 남아있는 작은 플라스틱 딱지와 질 낮은 종이에 인쇄된 만화책에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나와 오소마츠만의 비밀기지. 엄마나 주변의 어른들에게 혼날 때마다 찾았던 장소가 주는 그리움에 포근한 미소가 절로 피어났다.

….”

오소마츠의 부름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를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눈빛이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고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묻는 모습에 마음이 몽글몽글 부풀어 올랐다. 저런 녀석을 남기고 사라질 수는 없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그냥 세상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어. 어떤 풍경인지, 어떤 냄새가 나는지, 어떤 느낌인지…. 나 자신의 발로 돌아다니면서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어. 그래서 데카판한테 도움을 좀 받았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내 말이 이어질수록 주먹을 꽉 쥐던 오소마츠가 결국 고개를 떨어뜨렸다. 미안해할 필요 없는데. 내가 이런 존재가 된 게 오소마츠 탓이 아닌데….

오소마츠.”

부드럽게 오소마츠를 부르며 녀석의 숙인 얼굴을 들어 올렸다. 비통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쓰다듬으며 오소마츠를 달랬다.

그런 얼굴을 보고 싶은 게 아니야…. 그냥 한 번 쯤은 나와보고 싶었던 것뿐이야.”

“….”

정면으로 나를 바라보는 오소마츠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내뱉은 모든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오소마츠가 입을 뻐끔거리다 굳게 입을 다물었다. 감이 좋은 오소마츠이니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진실을 알아봤자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겠지.

알겠어.”

작게 흘러나온 대답에 나를 향한 믿음이 묻어나왔다. 불안해 죽을 것 같으면서도 나를 믿고 참아준 녀석이 고맙고 귀여워서 옅은 미소가 퍼졌다.

.”

오소마츠를 꼭 안아주고 고개를 끄덕이자 어깨가 무거워졌다. 적당히 등을 토닥이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오소마츠가 슬그머니 몸을 뗐다. 안겨있던 게 부끄러운지 아주 살~짝 빨개진 얼굴을 홱 돌려 숨긴 오소마츠가 크흠.” 하고 헛기침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같이 신나게 놀자구?”

대답 없는 오소마츠 손을 잡고 산에서 내려왔다. 오늘은 어디를 갈까 물으며 번화가로 들어가는 내내 오소마츠는 내 손을 잡은 채 놓지 않았다.

 

경마장에서 처음으로 목청 높여 말을 응원하고, 파칭코에서 처음으로 파칭코 기계를 돌려보았다. 노래방에서는 둘 다 잘 모르는 노래에 당황하고, 서로 노래 레파토리가 적은 것을 놀렸다. 결국 어디서 많이 들어본 광고송이나 동요를 부르고 나왔지만, 그것도 즐거웠다. 노래방을 나오자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근처에 내가 아는 맛집이 있는데 갈까? .”

좋아~!”

오소마츠가 안내한 집은 번화가 구석에 있는 작은 양식집이었다. 맛집이라는 말이 거짓말이 아닌지 좁은 가게엔 손님이 가득했다. 경마에서 딴 돈으로 메뉴 여러 개를 시키고 맥주까지 한 잔씩 주문하고 나니 절로 기분이 들떴다.

건배~!”

~!!”

먼저 나온 맥주를 부딪치고 벌컥벌컥 마시니 시원한 맥주가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가는 게 천국이 따로 없었다.

크으~! 여기 맥주 맛있다!”

그치? 나만 아는 맛집이라구!”

빈 맥주잔을 거칠게 내려놓자 오소마츠도 즐겁게 웃으며 잔을 흔들었다.

오늘 꽤 재미있었어~! 경마도 파칭코도 처음이지만 엄청 땄고.”

, 그런 건 다 비기너 럭이거든!? 내일엔 내가 터질 거야!”

내일 쓸 군자금은 있고? 오늘 개털 됐잖아.”

빌려줘, ~.”

~.”

장난스럽게 답하며 오소마츠의 머리에 살짝 딱밤을 날렸다. 서로 눈을 맞추고 히히 웃다가 문득 어릴 적에 이렇게 즐겁게 웃으며 장난치던 시절이 떠올랐다.

전에 야구 배트 잘못 휘둘렀다가 이웃집 유리창 깨 먹고 엄청 혼났었지~. 그 아저씨 진짜 무서웠는데.”

~! 그때? 근데 그거 내가 깬 거 아닌데 말이야!! 무슨마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아니었어!!”

유리창은 우리가 한 게 아니었지만 다른 장난은 많이 쳤잖아?”

이야미 옷에 송충이 넣었던 거 기억나?”

기억나~! 이야미 엄청 웃겼지!! ‘~!!!!’하면서 발광하고. 다용 속여서 엄청 매운 고추 먹게 한 적도 있었지!”

맞아!! 다용 입에서 불 나왔었지~!”

큭큭큭, 웃음을 흘리며 새로 주문한 맥주잔을 맞부딪쳤다. 두꺼운 유리잔이 하고 경쾌하게 울렸다.

어릴 때는 재미있었는데. 걱정도 없고, 녀석들하고 매일 장난치면서 놀고….”

흐려지는 말속에 숨은 아쉬움에 함께 눈썹을 처연하게 늘어뜨렸다. 맥주가 얼마 남지 않은 잔을 돌리며 오소마츠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중학교까지도 나쁘진 않았지.”

….”

고등학교도…, 최악은 아니었어.”

“….”

단번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말없이 맥주를 들이켠 오소마츠가 털퍽 테이블에 엎드렸다.

여러 일이 있었지…. 취직 소동이라던가, 선발이라던가….”

“…다 지난 일이야.”

얼굴을 틀어 내 눈을 피한 오소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지난 일이지만, 그래도 힘들었지….”

쓰다듬을 멈추고 통통 가볍게 머리를 두드린 뒤 손을 거두자 오소마츠가 배시시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형이 있어서 괜찮았어.”

술 때문인지 홍조가 떠오른 얼굴에 넘실거리는 미소가 귀여워 나도 모르게 녀석의 빨간 볼을 잡아당겼다.

아흐아(아파아).”

옆으로 길어진 얼굴에 절로 푸핫!” 하고 웃음이 나왔다. 꼬집은 게 제법 아팠는지 볼을 어루만지는 오소마츠를 보다 고개를 기울였다.

기뻤었다. 오소마츠가 나를 의지해주는 게. 녀석이 힘들 때마다 나를 찾는 게 기뻐서, 아직 내가 오소마츠에게 필요하다고 확인받는 것이 기뻐서 내게로 도망친 오소마츠를 반겼다. 하지만 오소마츠는 서서히 변해가면서 더는 나를 찾지 않았다. 오소마츠를 원망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이게 오소마츠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면, 녀석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면 오소마츠를 붙잡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나 없이 걸어가는 오소마츠에게 선물을 주고 싶을 뿐이다. 앞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나를 대신해서 의지할 수 있는 선물을.

 

마지막 한 발을 내딛지 못하는 겁쟁이지만, 발로 차 밀어서라도 오소마츠 옆에 세워서 제대로 선물로 만들어낼 테니까.

 

 

 

5.

 

늦은 오전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가자 오소마츠와 로보마츠는 이미 외출한 뒤였다. 집에 있으면 오소마츠가 언제 돌아올까 한없이 답답해하며 기다릴 것 같아 간단히 배를 채우고 집을 나왔다. 경마장이나 파칭코 가게는 오소마츠가 있을 수 있다. 오소마츠와 로보마츠가 함께 있는 모습을 밖에서까지 보고 싶지는 않았다. 한숨을 내쉬며 걷다가 푸른 줄무늬 트렁크가 눈에 들어왔다.

닥터!!”

호에호에, 카라마츠 군. 오랜만이다요.”

아아, 닥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우리 집에 보낸 로봇에 대한 것인데,”

, 호에호에. 그건 그냥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을 한 번 만들어 본 것일 뿐이다요! 잘 만들어진 인공지능이 아까워 시험 삼아 로봇 몸을 만든 것 뿐이다요. 일주일 뒤엔 제대로 가져갈 테니 잠깐만 맡기겠다요! 그럼 이만!!”

.”

닥터는 눈에 띄게 당황하면서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더니 후다닥 뛰어 도망쳤다. 아니, 뭘 물어보겠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저 반응은 대체 뭔가. 닥터를 붙잡으려 해도 이미 저 멀리 사라진 뒤였다.

로보마츠를 대하는 오소마츠의 태도도 그렇고 방금 데카판의 반응도 그렇고, 로보마츠가 수상하다는 생각을 도저히 지울 수 없다. 뭔가가 있다는 확신이 점점 강해진다.

일주일 뒤엔 확실하게 회수한다니까….”

일단은 놔둘까.

 

외롭다. 물론 내 인생은 론리니스 라이프지만, 로보마츠가 온 뒤로 오소마츠와 어울리는 것이 힘들어졌다. 밖을 돌아다니는 것도 무의미해져 적당히 시간을 때우고 집에 돌아갔다.

마미, 형님은…,”

오소마츠는 오늘도 늦는다고 연락 왔어~.”

그런가….”

벌써 이틀째다. 오소마츠가 로보마츠와 어울리며 늦게 들어오는 게. 참으려 해도 어쩔 수 없이 기분이 가라앉았다.

하아….”

젓가락을 반찬을 집다가 새어 나온 한숨에 눈썹을 찌푸렸다. 신경 끄자. 늦긴 해도 들어오긴 할 테니까. 로보마츠는 어차피 인공지능이고 며칠 뒤엔 돌아갈 거고.

화를 삼키며 숨을 내쉬자 옆에 앉은 이치마츠가 슬쩍 나와 거리를 두는 것이 보였다.

이치마츠? 왜 그러지?”

, 아니. 아무것도 아냐.”

혹시 내가 자리를 많이 차지했나? 오소마츠가 빠져서 자리는 넉넉할 텐데…?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내 자리를 확인하고 이치마츠에게 묻자 얼굴이 창백해진 이치마츠가 몸을 떨며 고개를 저었다. 혹시 어디가 아픈 건가 싶어 물어도 이치마츠는 아니라는 말만 반복했다.

 

브라더들은 모두 이불 속에 있다. 거실에 남아 불 꺼진 복도를 응시했다. 벽에 걸린 시계의 시침에 3에 머물렀다. 오소마츠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거실에 앉아 초조하게 발을 떨었다. 시침이 돌아갈수록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도 커졌다.

어서 와라, 오소마츠.”

오소마츠는 새벽해가 뜨고 나서야 돌아왔다. 밤을 새우고 들어온 것도 모자라 거나하게 취해서 로보마츠에게 업혀 들어온 오소마츠가 헤실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 카랴마츄~. 횽아 기다린 거~?”

하아….”

비틀거리며 로보마츠에게서 내려온 오소마츠가 내게 어깨동무를 하고 헤헤 작은 웃음을 흘렸다. 오소마츠가 내뱉는 숨에서 알코올 냄새가 진했다.

얼마나 마신 건가.”

횽아가 기부니가 죠아서 쬬~~~끔 마셨징~!”

이렇게 늦게 들어오면 마미와 브라더들이 걱정하잖나! 몸도 제대로 못 가눌 정도로 마시는 건 좋지 않다.”

으에~, 너가 체리마츠냐아~?”

오소마츠는 내 충고를 한 귀로 흘리면서 뾰로통한 얼굴로 볼을 부풀렸다. 그러다 금방 기분이 풀렸는지 발갛게 웃은 오소마츠가 후아~.”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잘래….” 하고 중얼거렸다.

오소마츠 혼자 올라갈 수 있겠어?”

~, 괜챠나~.”

계단을 오르는 오소마츠를 향해 로보마츠가 묻자 오소마츠가 손을 휘휘 젓고는 계단을 마저 올랐다. 좌우로 휘청거리는 몸으로 무사히 계단을 오르는 것을 확인한 뒤 로보마츠와 눈을 맞췄다.

얼마나 원했는지 모른다. 그토록 원했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저 남자는 그 자리를 너무나 당연하게 차지했다. 처음부터 자신만이 오소마츠가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라는 듯이.

오소마츠가 네 말을 듣지 않아도 할 수 없잖아? 너는 단순한 동생이니까.”

? 그게 네 본성이냐?”

어깨를 으쓱거린 로보마츠가 나를 비웃듯 키들 웃었다. 평소 우리에게 보여줬던 공손한 말투와 전혀 다른 어조에 머리로 피가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로보마츠는 고요한 눈으로 나를 보며 입을 뗐다.

네가 동생으로 남아있는 한 네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거야.”

“…?”

로보마츠는 충고니까 잘 새겨들어.” 하고 멍멍이 소리를 이은 뒤에 나를 지나쳐 계단을 올랐다. 멀어지는 뒤통수를 뚫을 기세로 노려보다가 밀려오는 허탈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을 맹렬하게 노려보는 나를 로보마츠는 만족스럽게 쳐다보았다. 꼭 내가 자신을 질투하길 바랐던 것처럼.

 

네가 동생으로 남아있는 한 네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거야.”

 

로보마츠가 남기고 간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6.

 

내게는 기회가 있었다. 오소마츠를 지탱해줄 수 있던 기회가. 오소마츠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기회가. 하지만 나는 그 기회를 거하게 날려버렸다. 지탱은커녕 오소마츠를 몰아붙이는데 일조했던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삼켰다. 답답한 마음은 점점 커지는데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답이 보이지 않는다.

거울을 들고 있는 것도 무의미해 손을 내려 바닥에 거울을 내려놓고 벽에 등을 기댔다. 로보마츠가 남긴 말이 아직도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우와…, 평일 낮인데 집에 박혀 있는 거냐.”

헬로 워크에 갔다 왔는지 얼굴을 찌푸린 쵸로마츠가 가볍게 잔소리하며 거실에 들어왔다. 백팩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거실 안을 빙 둘러본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찾았다.

오소마츠 형은?”

로보마츠랑 나갔어….”

질리지도 않고 붙어 다니네….”

이치마츠의 대답에 쵸로마츠가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자리에 앉았다. 구석에 무릎을 안고 웅크린 이치마츠가 그에 동의하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있잖아….”

가방에서 연막용 취업잡지를 꺼낸 쵸로마츠가 은근히 눈을 굴리며 입을 열었다.

오소마츠 형 있잖아…, 요즘 좀 변하지 않았어?”

잡지 페이지를 괜히 만지작거리며 말을 꺼낸 쵸로마츠에게 브라더들이 시선이 집중됐다. 몇 초 동안 적막이 흐르자 쵸로마츠가 멋쩍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 아냐. 방금 한 말은 취소,”

오소마츠 형은 원래 애 같아. 근데 요즘에 좀 이상해졌다는 부분은 나도 동의해.”

쵸로마츠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토도마츠가 무심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러자 슬금슬금 원형 테이블 근처로 다가온 이치마츠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오소마츠 형이 요즘 좀 이상한 것 같긴 해…. 어제 고양이 캔 사려고 돈 빌려달라고 했는데 거절했고…. 다른 때엔 투덜거리긴 해도 천엔 정도는 빌려줬는데….”

이치마츠의 말에 옆에 있던 쥬시마츠가 응응응!!” 하고 격하게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OH…, 마이 리를 쥬시뫄~? , 그렇게 머리를 리드미컬하게 흔들면 머리가 떨어질 거다!!

하아!? 그 자식 이치마츠 너한테는 돈도 빌려줘!? 내 지갑에서 빼 간 돈이나 갚을 것이지!!”

쵸로마츠가 돈 이야기에 발끈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곧 씩씩거리던 숨을 고르고 자리에 앉은 쵸로마츠가 하고 혀를 찼다.

정확히 어디가 변했다고는 못하겠지만, 확실히 변했어. 오소마츠 형. 전에 여자애들이랑 라인하는 걸 들켰는데 치근덕거리지 않고 보통으로 넘어가더라구….”

오소마츠 형이 그걸 그냥 넘겼다고??”

. 다른 때엔 형보다 먼저 여친을 만들다니, 용서 안 할 거니까!!’ 하고 시끄럽게 굴었으면서 말이야….”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한 토도마츠는 자기가 한숨을 내쉬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 항상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도 테이블에 내려놓고 가라앉은 눈으로 쵸로마츠를 응시한 토도마츠가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쵸로마츠 역시 토도마츠의 말에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았다. ‘하고 신음하며 큰 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내게로 눈을 돌렸다.

카라마츠 형은 무슨 일 없었어?”

쵸로마츠의 물음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을 한 쵸로마츠가 다시금 푹- 한숨을 내쉬었다.

-, 딱히 우리한테 피해가 가는 건 아니니까 놔두자.”

….”

내려놓았던 잡지를 든 쵸로마츠의 말에 토도마츠와 이치마츠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쥬시마츠도 잠시 멈췄던 손을 움직여 이치마츠 무릎에 누운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브라더들도 언뜻 눈치채고 있는 것 같다. 오소마츠의 변화는 로보마츠가 온 뒤로 일어난 것이라고.

사소하지만 오소마츠는 확실히 전과 달랐다. 브라더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 역시 오소마츠의 변화 하나를 알아챈 상태였다.

로보마츠가 오고 나서 오소마츠가 자신을 이라고 지칭하는 일이 줄었다.

 

드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활짝 핀 미소로 거실에 들어온 오소마츠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우햐햐햐햣!!” 하고 경박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마시러 갈 사람~!!”

갑자기 뭐야? 설마 오소마츠 형이 쏘는 거야?”

크하하핫! 그래, 오늘은 파칭코에서 대박이 난 이 오소마츠 님이 한턱 쏜다!”

의기양양하게 쵸로마츠를 보며 외친 오소마츠가 얼른 가자~!” 하고 브라더들을 재촉했다.

진짜 오소마츠 형아가 딴 겁니까?”

, 실은 제가 땄습니다.”

로보마츠 돈으로 쏘겠다고 한 거야? 역시 쓰레기 장남.”

쥬시마츠의 질문에 로보마츠가 손을 들고 대답하자 이치마츠가 입꼬리를 비틀고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도 한심하단 눈으로 오소마츠를 쳐다보았다.

뭐 어때! 중요한 건 다 같이 마시러 가는 거잖아! 안 그래?”

입술을 삐죽 내밀고 투덜거린 오소마츠가 로보마츠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기울였다. 로보마츠는 꼭 어린아이의 응석을 받아주는 듯이 빙그레 웃으며 그럼요.” 하고 대답했다. 서로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오소마츠와 로보마츠 사이에 쉬이 끼어들 수 없는 분위기가 퍼졌다. 브라더들도 그것을 눈치챘으나 자신들에게 피해가 없으니 상관없다는 투로 외면하고 몸을 일으켰다.

가자~!”

자연스럽게 로보마츠의 어깨에 걸쳐진 오소마츠의 손을 보다가 힘주어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로보마츠는 빼고 가지 않겠나?”

유치한 질투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로보마츠가 오소마츠 옆에 붙어있는 것을 더 참을 수 없었다. 고요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로보마츠가 우리들의 평화를 부수러 온 침입자처럼 보여 그를 제거하고 싶다는 마음이 한가득 부풀어 올랐다.

? ?”

로보마츠를 노려보고 있던 내게 오소마츠의 서리같이 차가운 목소리가 닿았다. 오소마츠의 거부는 예상했지만, 이렇게 싸늘한 목소리가 돌아올 줄은 몰랐다. 당황해 오소마츠와 마주 본 순간 전신의 피가 멈추는 것 같았다. 완벽한 타인, 아니 적을 보는 듯한 적의 가득한 눈동자가 나를 담았다. 딱딱하게 굳은 오소마츠의 무표정은 그리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것이었다.

, 그러니까, 오랜만에 형제끼리의 시간을,”

온기 한 점 느껴지지 않는 눈빛을 받은 순간 오소마츠에게 미움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숨통을 움켜쥐었다. 절로 호흡이 얕아지고 무의식적으로 후드를 움켜쥐었다. 벌을 받는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고개를 숙이자 오소마츠의 숨소리가 바닥에 퍼졌다.

매정하게 왜 그래~, 카라마츄~. 로보마츠 혼자 놔두고 가면 불쌍하잖아~?”

맞아, 카라마츠 형. 로봇이니까 술값이 더 드는 것도 아니고 놔두고 가면 미안하잖아.”

평소와 같은 오소마츠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이어 토도마츠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를 울리며 다가와 내 손을 잡고 고개를 기울인 토도마츠가 다 같이 가자, ?” 하고 말하며 나를 끌어당겼다. 힘없이 토도마츠를 따르며 오소마츠에게 눈을 뒀지만, 오소마츠는 로보마츠와 앞서 걸으며 뒤돌아보지 않았다.

 

외상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치비타의 노성을 한 귀로 흘린 오소마츠가 술잔을 기울였다. “후햐~!” 하고 더운 숨을 내뱉는 오소마츠의 얼굴엔 벌써 홍조가 활짝 피어 있었다. 브라더들도 테이블에 엎어져 산 건지 죽은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맛이 가 있었다.

하우―.”

느리게 눈을 껌뻑이며 술잔에 다시 술을 채운 오소마츠의 몸이 휘청거렸다. 재빨리 오소마츠의 등 뒤로 손을 뻗었지만, 오소마츠는 로보마츠에게 몸을 기댔다.

괜찮아?”

우응….”

브라더들 앞에서 떨던 내숭을 버리고 본성을 드러낸 로보마츠가 다정히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도발하듯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유치한 자식. 짜증 나는 자식. 허공에 뜬 손을 주먹 쥐었다.

오소마츠의 옆을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았다. 아아―, 당장 저 자식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간절히 바라며 주먹을 자신의 무릎 위로 되돌렸다.

 

 

 

7.

 

무언가의 흔적으로서 남아있는 영혼을, 아니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영혼을 로봇 몸에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사히 로봇 몸에 의식이 넘어간 것을 확인하던 내게 데카판이 우려하며 쳐다보았다.

지금 상태로는 일주일이 한계다요. 그 전에 돌아가야…,”

돌아가도 똑같아. 사라지는 건 각오했어. 괜찮아, 데카판.”

처연하게 웃자 데카판이 울상을 지었다.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있다고 막연히 느끼며 연구소를 나와 집으로 향했다. 내게 남은 시간은 일주일뿐이니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펴며 몸의 상태를 확인했다. 일주일이 한계란 소리는 최대 일주일이란 뜻이었다. 5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몸이 뻣뻣해지기 시작했다. 삐걱거리는 기계 몸을 억지로 움직여 지붕에서 내려왔다. 모처럼 몸을 얻었는데…, 더 오소마츠 옆에 머무르고 싶은데….

하아….”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서 달게 낮잠을 자는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빨리, 내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선물을 남기려면 더 분발해야 한다. 그래도 마냥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눈빛으로 사람 죽일 기세였지.”

피식- 얇은 웃음을 흘리며 나를 죽일 듯이 쳐다보던 푸른 눈을 떠올렸다. 날 그렇게 질투하면서 결정적인 한 방은 날리지 않는 녀석이 우습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절반은 성공한 셈인가…. 오늘 내일로 승부를 보자. 홀로 다짐하며 오소마츠를 흔들어 깨웠다.

 

카라마츠 군. 오늘 특별한 계획이 있나요?”

다른 형제들은 모두 외출했는데도 묵묵히 거실을 지키고 있던 카라마츠에게 다가가 물었다. 카라마츠는 네가 그걸 왜 묻냐는 얼굴로 내 뒤에 서 있는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딱히 없다만…?”

그럼 같이 유원지에 갈래요?”

무해한 미소를 지으며 묻자 카라마츠가 의심 가득한 얼굴로 나와 거리를 뒀다.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는데 말이야―. 새끼 고양이가 털을 세운 것처럼 가소로웠지만, 여기서 웃으면 카라마츠가 안 따라올 게 분명했다.

오소마츠 군과 가기로 했는데 유원지는 여러 사람이 가는 게 즐거울 것 같아서요.”

슬쩍 오소마츠를 돌아보자 카라마츠의 눈이 질투로 빛났다. 그러면서도 뭔가 속셈이 있을 거로 생각하는지 대답을 망설이는 카라마츠를 보며 한숨을 삼켰다.

싫다는 녀석을 억지로 데려갈 필요 없잖아. 우리끼리도 충분하고….”

뚱한 표정으로 오소마츠가 깍지 낀 손을 머리 뒤로 돌리며 툴툴댔다. 나 역시 오소마츠와 단둘이 가는 편이 즐겁지만, 계획을 위해서는 카라마츠가 꼭 필요했다. 일단 저 삐돌이를 어떻게 달랠까 고민하던 중에 카라마츠가 씩씩거리며 벌떡 일어났다.

갈 거다! 같이 간다.”

나는 유원지에 가자고 했지 번지점프라도 하러 가자고 한 게 아닌데 말야…. 카라마츠는 비장미를 흘리며 나를 노려봤다.

그럼 가요~.”

하하, 마른 웃음을 흘리며 카라마츠와 오소마츠의 손을 잡고 집을 나왔다.

 

전철을 타고 도착한 유원지 입구에서 카라마츠가 얼떨떨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진짜 유원지에 온 건가….”

정말 목적지를 의심했던 건지 표를 끊고 유원지 안으로 들어가는 내내 카라마츠는 얼이 빠져 있었다.

뭐부터 탈까요?”

들뜬 마음에 유원지 지도를 펼치고 놀이기구 목록을 확인했다. 유원지를 직접 온 것은 처음이라 기분이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오소마츠도 오랜만에 놀러 온 것이 기쁜지 내 옆에 찰싹 붙어 같이 지도를 살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온 뒤로 처음인가?”

어느새 지도를 뺏어가 진지하게 첫 놀이기구를 정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말했다. 오소마츠는 히히 웃으며 그러게―. 진짜 오랜만이네~.” 하고 대답하고는 다시 지도에 눈을 고정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라마츠의 얼굴에 혼란스러움이 묻어나왔다. 데카판이 만든 인공지능이 어떻게 그걸 알고 있냐는 얼굴이네. 의심과 적의가 섞인 눈빛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 계속 그렇게 의심하고 질투하라고, 카라마츠 군. 계획대로 흘러가는 분위기에 콧노래가 나왔다.

 

유원지는 정말 즐거웠다. 돌아가는 찻잔에선 토가 나올 정도로 찻잔을 돌렸고, 바이킹과 롤러코스터에서는 신나게 비명을 질렀다. 회전목마를 직접 타면 은근히 속도가 빠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줄을 서는 시간까지 즐거울 수 있다니. 더 빨리 오소마츠와 오지 못한 것이 아까울 정도로 유원지에서의 시간은 행복했다.

, 오소마츠.”

~!”

기다란 추로스를 한입 가득 깨무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어린애처럼 뭘 잔뜩 묻힌 입가를 닦아주고 슬쩍 카라마츠를 확인했다. 카라마츠는 놀이기구를 탈 때를 제외하면 내내 오소마츠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소마츠가 계속 나만 신경 쓰는 게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드는지 어쩌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얼굴이 따가웠다. 아주 질투로 활활 타오르는 덕에 날이 추운데도 더울 지경이었다.

다음은 자이로드롭을 타볼까?”

, 그거 타게? 나는 싫어, 무섭다구―.”

혹시 내가 같이 타자고 할까 봐 질색이라는 얼굴을 한 오소마츠가 뒤로 물러났다. 카라마츠도 허예진 얼굴로 찔끔찔끔 뒷걸음질 쳤다. 나 참-, 혼자 탄다, 혼자 타. 겁먹은 녀석들을 근처 벤치에 앉히고 자리를 떴다. 녀석들 시야에서 사라졌을 즈음 발을 돌려 빠르게 걸었다. 들키지 않도록 빙- 돌아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앉은 벤치 뒤 풀숲에 몸을 숨기자 둘의 대화가 넘어왔다.

오소마츠, 로보마츠의 정체가 뭔가.”

저렇게 대놓고 묻다니. 역시 카라마츠는 단순하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질문이 불쾌한지 눈빛을 날카롭게 세우고 답했다.

첫날 들었잖아. 데카판이 만든 인공지능이라고.”

그게 아니잖아!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니라는 거 알고 있다!”

“….”

“…인공지능하고 그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건가, 오소마츠.”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간절해졌다. 대답을 듣고 싶으면서 두려워하는 것이 내게도 전해졌다. 저럴 때 보면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는 은근히 닮은 구석이 많았다. 애처롭게 자신을 바라보는 카라마츠의 눈을 외면한 오소마츠가 크게 숨을 내쉬고 작게 대답했다.

, 소중한 사람이야.”

하고 느껴질 리 없는 통증이 가슴께에 퍼졌다.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의 눈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풀숲에서 빠져나가 다시 길을 빙 돌아 오소마츠와 카라마츠 앞에 섰다.

가서 보니까 무섭더라구. 못 타고 왔어.”

멋쩍게 웃으며 돌아온 나를 오소마츠가 반겼다. 카라마츠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눈으로 하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돌아갈까?”

벌써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는 말없이 벤치에서 일어나 출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나와 오소마츠, 카라마츠가 나란히 앉아 각자 생각에 빠졌다. 덜컹거리는 전철 안에서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유원지를 갈 때는 신나게 웃고 떠들었지만, 집으로 돌아갈 때는 침묵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뭘 생각하는 걸까, 저 두 녀석은.

등받이에 기대 눈을 감았다. 이걸로 추억도 충분히 쌓았고, 마지막 한 단계만 성공한다면 아무 걱정 없이 사라질 수 있다. 오소마츠는 슬퍼하겠지. 자신이 사라지고 난 뒤를 상상하자 울음을 터트린 오소마츠가 먼저 떠올랐다. 울겠지…. 그래도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오소마츠 옆에 있어 줄 녀석이 있으니까 안심이다.

그러니까 제대로 하라고, 카라마츠.

 

 

 

8.

 

녀석들이 잠든 새벽. 형의 부름에 이불에서 빠져나와 지붕에 올랐다. 차가운 기왓장의 냉기가 발바닥을 타고 올라와 몸이 절로 부르르 떨렸다.

춥지?”

먼저 지붕에 올라와 있던 형이 옆에 둔 담요를 펼쳐 내 어깨에 걸쳐줬다. 통통, 옆자리를 두드리는 형 가까이에 엉덩이를 내리자 형이 작게 웃더니 눈을 내리고 기도하듯 손을 모았다.

오소마츠, 나는 곧 사라질 거야.”

외면했던 공포가 불쑥 눈앞에 다가왔다. 입술을 깨물고 목까지 치솟은 울음을 삼켰다. 눈시울이 뜨거워져 서둘러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뗐다.

“…,”

알고 있었잖아, 오소마츠. 내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는 걸.”

그건…! 형을 만나는 횟수가 줄어든 건 맞지만, 형은 내 하나뿐인 형이잖아! 사라질 리가 없잖아!”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형은 울먹이는 나를 잔잔한 미소를 품고 바라보다 천천히 손을 올려 내 머리 위에 얹었다. 따뜻한 손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자상함이 사라진다니 믿고 싶지 않았다. 형이 사라진다니. 다시는 볼 수 없다니.

, 사라지지 마! 내가 계속 형을 만나면 되잖아! 영원히 나랑 있으면 안 돼?”

형의 옷을 붙잡고 눈을 깜빡이자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형은 내 눈가에 매달린 눈물을 닦아주고 나와 이마를 맞댔다. 시야에 가득 들어온 형의 눈동자가 투명하게 빛났다.

내가 만약 오소마츠와 영원히 같이 있어도 결국 너는 혼자가 되는 거야.”

그래도 괜찮아! 형만 있으면,”

애원처럼 형을 마주 보았지만, 형은 미소 지은 얼굴로 이마를 떼고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오소마츠, 나는 진짜 네 일까?”

숨을 들이마셨다. 꼭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형의 눈동자에 동그랗게 눈을 뜬 채 얼어버린 내 얼굴이 비쳤다.

나는 누구야? 오소마츠.”

“….”

형은 한참이 지나도록 내가 대답하지 못하자 쓴웃음을 지으며 떨어졌다. 알고 있었다는 얼굴로 슬프게 웃으며 숨을 내쉰 형이 나지막이 아픈 진실을 건넸다.

오소마츠, 어른이 되려면 나와 헤어져야 해.”

형은 그 한 마디를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갔다. 얼음처럼 차가운 몸을 웅크리자 하얀 달빛을 받은 눈물이 툭 아래로 떨어졌다.

 

 

 

9.

 

흠칫, 거실로 들어가려던 발이 일순 멈췄다. 방안에 퍼진 냉랭한 공기에 눈치를 보며 안으로 들어가자 나와 교대하듯 쵸로마츠가 거실을 나왔다.

, 그럼 난 라이브 다녀올 테니까!”

단순한 외출일 텐데도 변명하듯 외친 쵸로마츠가 서둘러 신발에 발을 끼우고 현관을 나섰다. 다른 브라더들도 이 분위기를 피하고자 일찌감치 집을 나선 것 같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사이가 좋았던 로보마츠와 오소마츠는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일부러 로보마츠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도록 어색하게 방안을 둘러보던 오소마츠가 푹- 한숨을 내쉬며 한쪽 무릎을 세웠다. 무릎에 턱을 괴고 바닥에 놓인 만화책을 파라락 성의 없이 넘긴 오소마츠가 로보마츠가 움직이는 소리에 어깨를 움찔거렸다.

카라마츠. 오늘 나랑 나갈래?”

.”

내게 다가와 묻는 로보마츠의 말에 적잖이 놀라 오소마츠에게 시선을 뒀다. 오소마츠 역시 놀란 얼굴로 로보마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짓으로 오소마츠를 가리키자 로보마츠가 하하 마른 웃음을 흘렸다.

오늘은 카라마츠와 단둘이 놀러 가고 싶어서.”

로보마츠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대체 이 녀석은 무슨 속셈이지? 어제부터 보여준 녀석의 이상한 행동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로보마츠는 얼떨떨한 상태로 힘없이 자신에게 끌려가는 나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피웠다.

 

어딜 가려는 건가?”

집을 나와 한참을 걸었다. 오소마츠가 금방 우리를 따라오지 않을까 싶었지만, 오소마츠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로보마츠는 내 질문에 ~, 어디로 갈까?” 하고 되물으며 길을 따라 걸어갔다.

이 공원에서 어릴 때 엄청 많이 놀았지. 그네에서 멀리 뛰어내리기 시합도 하고. 지금은 다 새 기구로 바뀌었지만.”

어릴 적 브라더들과 놀던 공원 앞에서 멈춘 로보마츠가 그네 타는 아이들을 부드럽게 응시했다. 한 걸음 뒤에 멈춰 서서 그걸 어떻게 아는 건가.’ 하고 목까지 차오른 질문을 삼켰다. 로보마츠는 내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는지 성큼성큼 걸어 공원을 지나쳤다.

이 골목에서 야구 하다가 창 깨 먹었지~. 오소마츠가 한 게 아닌데 오소마츠만 잡혀서 엄청 혼나고.”

추억이 남은 골목에서,

저기 운동장 구석에 정글짐 있던 거 없어졌네-. 오소마츠가 제일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자랑했었는데.”

그리운 초등학교에서,

옥상 아직 열려 있을까? 거기서 다 같이 점심 먹었는데…. 도시락 메뉴는 같았지만.”

색이 바랜 중학교 교문에서,

“…고등학교는 항상 즐겁지만은 않았네….”

씁쓸함이 남은 고등학교에서 멈춘 로보마츠가 과거를 말했다. 인공지능이라면 알 수 없는 과거를.

너는, 뭐지?”

홀연히 나온 질문에 로보마츠는 미소로 답하고 말없이 발을 옮겼다.

여기가 마지막.”

로보마츠가 그렇게 말하며 닥터의 연구소 앞에 멈췄다. 여기는 왜 왔냐고 묻기도 전에 안으로 들어간 로보마츠를 닥터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반겼다.

한계가 온 것 같아, 데카판.”

, 호에호에….”

담담한 목소리에 이유 모를 슬픔이 느껴졌다. 닥터는 그 작은 눈을 크게 뜨고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며 로보마츠를 응시했다.

카라마츠. 내 정체가 궁금하지?”

로보마츠는 빙글 몸을 돌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처연히 웃었다. 로보마츠의 정체에 관한 의문은 컸다. 우리들만 알고 있던 것들을 술술 말했으니까. 오소마츠를 대하는 태도 역시 의문투성이였다. 그의 정체를 말해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로보마츠의 깊은 눈빛과 흐린 미소가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 같아서, 그의 말을 듣는 것이 망설여졌다.

나도 내가 무엇인지 모르겠어. 나는 줄곧 오소마츠 안에만 있었던 존재거든. 오소마츠를 통해 너희와 세상을 봤었으니까. 오소마츠가 나를 찾아오면 함께 놀기도 하고 녀석이 힘들어하면 위로해주기도 했어. 나는 오소마츠에게 친구이자 형이었어.”

“….”

이런저런 일이 있고 나서 오소마츠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걸 선택했어. 이대로 영원히 너희와 함께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오소마츠가 어른이 되어갈수록 나는 점점 사라져가더라고. 그래서 데카판에게 부탁해 로봇 몸을 얻어서 밖으로 나온 거야. 내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너한테 내 역할을 넘겨주려고.”

“…내게?”

그래. 마츠노 카라마츠, 너한테.”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로보마츠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일 터인데 그의 말은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고요하게 나를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에 숨을 삼켰다.

왜 나를….”

입안이 바싹 말랐다.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몰려왔다. 로보마츠는 다 안다는 얼굴로 피식- 웃고는 고개를 살며시 기울였다.

오소마츠를 좋아하잖아? 그렇게 열렬하게 쳐다보는데 눈치채는 게 당연하지―.”

키들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로보마츠의 말투가 오소마츠와 닮아있었다. 목소리마저 오소마츠와 비슷한 것처럼 느껴져 얼굴이 뜨거워졌다.

, 그럼 오소마츠도…?”

불안으로 시야가 흔들렸다. 다행히 로보마츠는 고개를 저으며 오소마츠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오소마츠는 몰라. 은근히 눈치 없다니까, 그 녀석-.”

오소마츠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사랑스럽다는 미소를 가득 펼친 로보마츠가 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동생인 카라마츠에겐 맡길 수 없어. 그러니까 동생이 아닌 다른 존재로서 오소마츠 옆에 있어 줘. 할 수 있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이 그가 내민 손과 함께 전해졌다. 이름 모를 감정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머릿속이 대답을 고르는 동안 마음이 멋대로 로보마츠의 손을 잡으며 입을 움직였다.

아아, 내게 맡겨라.”

두세 번 맞잡은 손을 흔들어 악수를 끝내자마자 로보마츠가 한 걸음 내게 가까이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널 선택한 걸 후회하게 만든다면 용서하지 않을 거야.”

…, 아아.”

살벌하게 내려앉은 목소리와 함께 로보마츠가 내 어깨를 강하게 쥐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힘에 신음을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왔나….”

내게서 물러난 로보마츠가 작게 중얼거렸다. 나를 비껴간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연구소 정문에 인영이 하나 떠올랐다.

!!”

벌컥 문을 열고 연구소 안으로 들어온 오소마츠의 울음 섞인 외침이 공기를 울렸다. 로보마츠는 팔을 활짝 벌려 그를 향해 뛰어 들어온 오소마츠를 껴안았다. 둘은 한 치의 틈도 없이 강하게 서로를 얼싸안았다.

데카판, 잠시 둘만 있게 해줄래?”

로보마츠가 제 가슴에 얼굴을 묻은 오소마츠를 어르며 말했다. 울 것 같은 얼굴로 하는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닥터는 빠르게 연구소의 방 하나를 비워주었다. 로보마츠는 나와 눈을 맞추고 빙그레 웃고는 오소마츠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그 눈짓이 나 역시 먼저 돌아가라는 의미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닥터…, 오소마츠가 나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도 되겠나?”

호에호에, 좋다요.”

닥터는 흔쾌히 내 억지를 받아주었다. 데카판은 우리를 배려해 다용과 함께 연구소를 나갔다. 혼자 남은 로비에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방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서로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걸까. 오소마츠는, 괜찮은 걸까.

그 손의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남아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10.

 

, 등을 두드리는 손길에 고개를 들었다. 눈썹을 찡그리고 나를 응시한 형이 눈물로 젖은 눈가를 닦아주었다.

이제 가봐.”

싫어.”

형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다시 형에게 안기려고 하자 형이 내 볼을 잡고 얼굴을 밀어냈다.

사라지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아, 오소마츠.”

형의 말에 잦았던 눈물이 다시 샘솟았다. 형은 난처하단 얼굴로 다시 내 눈물을 닦아주며 몸을 일으켰다.

, 얼른.”

울컥 치솟는 눈물을 가까스로 삼키고 형이 열어준 문을 향해 걸었다. 참으려 해도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

파르르 떨리는 입술 때문에 형을 부르는 목소리가 일그러졌다.

잘 살아, 오소마츠.”

형은 그 말을 끝으로 문밖으로 내 등을 밀었다. ‘하고 닫힌 문 앞에서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

입술을 깨물고 소리 없이 흐느끼며 문에 손을 올렸다. 내가 어릴 때부터 나와 함께했던 나의 형이었다. 형이 있었기에 혼자가 되어도 괜찮았다. 힘든 일이 있어도 괜찮았다. 내 어린 시절을 오롯이 함께했던 나의 형.

그의 마지막을 배웅하며 소매로 거칠게 눈물을 닦아냈다.

 

연구소 로비로 나오자 데카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한테 다 들었어. 형을 도와줘서 고마워, 데카판.”

데카판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는 당연하다며 나를 위로한 데카판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연구소를 나왔다. 새벽이 다 지난 하늘이 서서히 밝아지고 있었다. 터벅터벅 발을 끌며 집으로 향하는 내 뒤로 발소리 하나가 따라왔다.

왜 따라오는 거야, 카라마츠.”

카라마츠는 내가 자기를 부를 거라 생각지 못했는지 얼음처럼 굳었다가 내 옆으로 뛰어왔다.

연구소에 계속 있었던 거?”

너무 울어 다 갈라진 목소리로 묻자 카라마츠의 눈매가 비틀렸다. 눈물이 가득 찬 녀석의 눈이 가슴을 쥐고 있는 내 손에 머물러 있었다.

하아…, 먼저 돌아가.”

힘겹게 한숨을 내쉬고 카라마츠에게 말했다. 카라마츠는 비참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벌컥 화를 냈다.

싫다!! 절대 먼저 돌아가지 않을 거다!!”

뭣 때문에 화를 내는지 모르겠지만, 카라마츠는 그대로 내 손을 잡고 어딘가를 향해 걸었다.

 

~, 카라마츠 군? 이건 무슨 상황??”

별안간 다리 아래로 끌고 가더니 다짜고짜 나를 껴안은 차남의 팔을 툭툭 건드렸다. 내 등과 허리에 감은 녀석의 팔은 딱딱하게 느껴질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지금 오소마츠의 동생이 아니다!”

?”

지금 나는 마츠노 카라마츠라는 남자다!”

얘는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절로 녀석을 보는 눈이 짜게 식었다. 카라마츠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다시 나를 꽈악 껴안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남자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슴 정도는 빌려줄 수 있다.”

“….”

순간, 형이 웃으며 한 말이 떠올랐다.

 

나를 대신할 녀석을 제대로 남겨놓았으니까, 너는 혼자가 아니야.”

 

대신할 녀석이 너였냐. 헛웃음이 나왔다.

…, , …, …!”

텅 비어 버린 마음에 울음이 찼다.

 

온몸의 물을 다 쏟아낼 것처럼 흘러내린 눈물이 어느새 잦아들었다. 코를 막은 콧물까지 카라마츠의 후드에 닦아내고서 얼굴을 뗐다.

이제 됐어. .”

손등으로 녀석의 가슴을 밀어내자 카라마츠가 울컥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싫다!!”

꺄악―!!”

콧물!! 콧물이 얼굴에 묻는다고!!! 갑자기 나를 힘주어 껴안은 카라마츠 덕분에 녀석의 가슴에 닦은 콧물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콧물에 닿지 않도록 목에 쥐가 나도록 힘을 줬다.

왜 자꾸 혼자가 되려고 하는 건가! 나는, 오소마츠 네 옆에 있고 싶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의 의지가 되고 싶다.”

하아―, 이 눈새 자식. 생각해서 없던 일로 넘어가 주려고 했는데.

횽아는 네가 이치마츠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 그건! 그때 그건 사고,”

양다리라니 카라츙 최악~! 할 수 없으니까 횽아가 이번만 이치마츠한테 비밀로 해줄게―.”

그 일은 사고다!! 오소마츠도 알고 있잖아!!! 나는 진심이다. 진심으로 너를 좋아, 아니 사랑하고 있다!”

결국 녀석의 눈가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턱을 타고 내려와 떨어졌다.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자 꼭 시작 신호를 받은 것처럼 녀석의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사랑한다, 오소마츠. 노력해서 제대로 취직할 테니까 같이 살아줘. 계속 옆에 있어 줘. 부탁이다….”

히끅히끅, 중간중간 울음 섞인 숨을 삼키며 카라마츠가 말했다.

내가 평생 옆에 있겠다! 오소마츠가 필요 없다고 할 때까지, 아니 그래도 옆에 붙어 있을 거다!”

, ….”

뭘까, 공허했던 가슴이 다시 차오르기 시작한 이유는. 녀석의 호소에 모른 척하고 넘어가려고 했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렇게 내가 좋은 거냐-. 헛웃음이 나왔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곤란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안심한 건지도 모른다. 형이 없어져도 이 녀석이 내 옆에 남아있을 거라는 사실에.

그렇다고 이 녀석의 볼품없는 고백을 -, 그렇습니까.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형제에 연인이라니…. 지옥의 카스트에도 정도가 있지…. 거기다 이 녀석의 고백을 받아들이면 이 녀석의 인생이 크게 비뚤어진다. 그걸 내가 책임질 수는 없다. 여태껏 장남의 책임에서 도망쳐온 내가 이 녀석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을 리가 없다.

카라마츠,”

오소마츠, 부탁이다.”

코를 훌쩍이며 애원하는 이 녀석이 왜 한심해 보이지 않을까. 콧속 깊은 곳이 시큰거렸다. 형의 말대로 나도 무의식적으로 이 녀석이 내 옆에 남기를 바랐던 걸까? 문득 녀석들이 독립 소동을 벌였을 때, 카라마츠 역시 짐을 싸서 집을 떠나갔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다른 녀석들보다 카라마츠가 떠나간 것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가…. 형은 이런 내 마음을 알고서 이 녀석을 남겨준 건가―.

하아-, 마른 한숨이 나왔다.

 

“…맘대로 해.”

, 오소마츠으~!!!”

작게 흘린 혼잣말에 카라마츠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11.

 

데카판이 연구소의 가장 안쪽에 있는 창고를 열었다. 망가진 기계들과 별 쓸모가 없는 발명품 사이로 조심스럽게 안고 있던 로봇을 내려놓았다. 동력을 잃은 로봇은 고요히 잠든 사람처럼 보였다.

로봇을 남겨둔 채 데카판이 창고 문을 닫았다. 서서히 얇아지는 빛을 따라 로봇의 평온한 미소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로보마츠는 '오소마츠에게 흡수된 형제' or '오소마츠가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낸 인격' 두 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굳이 어느쪽이 정답이라고 정하지 않았어요ㅎ


* 로보마츠는 정해진 이름이 없다고 설정했습니다. 오소마츠는 '형'이라고만 부릅니다.


* 오랜만에 긴 글을 써서 기운이 빠지지만 제 글을 봐주시는 분들이 아직 계셔서 힘내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블로그인데 찾아주셔서 감사하고,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WHITEPINE입니다.


작년부터 티스토리에서 포스타입으로 블로그를 옮기자고 결정했습니다.


글을 하나씩 옮기려고 하는데 예전에 쓴 글들은 오탈자가 많아 퇴고하면서 맞춤법도 확인하고 포스타입에 재업로드하느라 글을 옮기는 속도가 느렸습니다.


그래도 부지런히 옮겨서 올해 상반기 안에는 티스토리에 있는 글을 모두 포스타입에 재업로드 할 예정입니다.


티스토리에 있는 글이 다 옮겨지면 앞으로 새 글은 포스타입에만 올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리미리 제 티스토리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고마우신 분들께 포스타입 블로그도 알려드리려 신년 맞이 장편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시작되는 비정기 연재 장편은 포스타입에만 올릴 예정이며 티스토리에는 포스타입에 올린 글의 링크만 올릴 생각입니다.


이번 장편은 "카라마츠를 짝사랑하는 오소마츠. 오소마츠를 짝사랑하는 카라마츠의 딸. 오소마츠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카라마츠의 이야기" 입니다ㅎ... 


분량이 다른 장편에 비해 적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기쁘겠습니다^^







2화 미래에서 보낸 기도  https://whitepinetree.postype.com/post/5489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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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부지런히 옮겨서 올해 상반기 안에는 티스토리에 있는 글을 모두 포스타입에 재업로드 할 예정입니다.


티스토리에 있는 글이 다 옮겨지면 앞으로 새 글은 포스타입에만 올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리미리 제 티스토리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고마우신 분들께 포스타입 블로그도 알려드리려 신년 맞이 장편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시작되는 비정기 연재 장편은 포스타입에만 올릴 예정이며 티스토리에는 포스타입에 올린 글의 링크만 올릴 생각입니다.


이번 장편은 "카라마츠를 짝사랑하는 오소마츠. 오소마츠를 짝사랑하는 카라마츠의 딸. 오소마츠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카라마츠의 이야기" 입니다ㅎ... 


분량이 다른 장편에 비해 적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기쁘겠습니다^^







1화 슬픈 사랑  https://whitepinetree.postype.com/post/5489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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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빠서 오랫동안 글을 못 쓴 탓인지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 단편이 되었...ㅠㅠ

* 팔불출 카라마츠와 초딩멘탈 오소마츠의 이야기입니다.

* 공미포 7,749자.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소른 50제


21. 바보 (카라오소)   까멩 님 신청 키워드.



1.


 

마츠노 오소마츠의 언어 체계는 특이하다. 어휘력은 빈약하고 말투는 어린아이 같다. ‘이케이케’나 ‘파바밧’ 같이 그만의 수식어를 즐겨 쓰고, 곧잘 말끝을 늘려 투정 부리듯 말했다. 자신을 쉬이 ‘횽아’라고 일컫는 것도 오소마츠의 말버릇이었다. 형제 중 가장 개성이 없다는 평을 듣는 오소마츠였지만, 그의 말투는 확실하게 그만의 색을 띠고 있었다.

제 유일한 형의 말버릇을 떠올린 마츠노 카라마츠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살갑게 웃으며 말끝을 늘어뜨리는 오소마츠 특유의 말투를 카라마츠는 제법 사랑스럽다 여겼다. “카라마츠우~.” 하고 애교 섞인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는 것이 기뻤다. 항상 같았던 모습들이 연인이 된 후로는 너무나 다르게 느껴졌다. 오소마츠 그 특유의 말투도 물잔에 떨어진 잉크처럼 잔잔한 행복을 퍼뜨렸다.

 

 

파하~,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터덜터덜 집을 향해 걸었다. 모처럼 새 옷을 입고 한껏 치장한 채로 집을 나왔는데 오늘은 운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산책하던 이웃 강아지에게 다리를 물리고, 새 옷에는 새똥이 묻었고, 신기계가 들어온 파칭코에서는 탈탈 털렸다. 운이 없는 것에 익숙한 카라마츠였지만, 오늘은 유난히 일이 많았다. 이런 날은 괜히 밖을 돌아다니는 것보다 일찍 집에 돌아가는 것이 현명하리라.

뻑뻑한 현관문을 요령 좋게 열어젖힌 카라마츠가 선글라스를 벗어 목에 걸었다. 현관에는 빨간 운동화 한 켤레만이 놓여있었다. 가죽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구두를 벗고 마루에 오른 카라마츠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소마츠뿐인가.’

단둘이라는 것을 확인한 카라마츠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일찍 귀가한 것이 호재였던 걸까. 형제들이 돌아올 때까지 꽤 시간이 남았다. ‘끼익-’하고 울리는 계단을 오르는 카라마츠의 기분이 한껏 들떠 올랐다.

“다녀왔다, 오소마츠.”

갑작스러운 카라마츠의 등장에 오소마츠의 어깨가 흠칫 튀어 올랐다. 방바닥에 누워 만화책을 보고 있던 오소마츠가 얼떨떨한 얼굴로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어, 응…. 어서 와~, 카라마츠.”

금방 놀란 얼굴을 지운 오소마츠가 배시시 웃으며 카라마츠를 맞이했다. 저에게 다가오는 카라마츠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몸을 일으켜 앉은 오소마츠가 차오르는 기대감에 활짝 웃었다.

“뭐야 뭐야~, 횽아랑 놀아주려고?”

카라마츠의 이른 귀가에 오소마츠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카라마츠는 대답하지 않고 오소마츠 옆에 앉아 오소마츠를 향해 손을 뻗었다.

성대하게 위로 뻗은 오소마츠의 머리를 카라마츠가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손길이 말없이 잠버릇이 남은 제 머리를 어루만지자 오소마츠의 얼굴에서 장난스러운 미소가 서서히 사그라졌다.

“뭐, 뭐야~.”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슬쩍 몸을 뒤로 빼는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붙잡았다.

“내일 같이 낚시하러 가지 않겠나?”

“내일?”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물러나던 오소마츠가 행동을 멈추고 되물었다.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벌려 오소마츠의 머리를 가볍게 빗겨주었다. 함께 놀러 가자는 제의를 오소마츠가 거절할 리 없었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밀어내려던 것도 잊은 채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단순함까지도 사랑스러워 보이게 된 건 언제부터였는지. 오소마츠의 미소에 당장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 카라마츠가 살포시 오소마츠의 뺨을 쓸어내렸다.

“오소마츠, 로션이라도 발라라.”

손가락에 스치는 오소마츠의 피부가 거칠었다. 건조해 하얗게 일어난 피부를 안타까이 여기며 어루만진 카라마츠가 한숨 쉬듯 말했다.

“싫어, 귀찮다궁~.”

몸을 비틀어 제 뺨을 감싼 카라마츠의 손에서 벗어난 오소마츠가 입을 삐죽이더니 이 상황을 피하려는 것처럼 만화책에 눈을 돌렸다. 자신을 등지고 앉아 만화책을 무릎에 얹은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잠시 바라보다가 눈썹을 실쭉 올렸다.

“무슨 만화를 보는 건가.”

질문 아닌 질문을 던진 카라마츠가 오소마츠 옆으로 손을 짚었다. 자연스럽게 오소마츠를 양팔 안에 가둔 모양새가 되어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어깨에 턱을 올렸다.

“빌려온 건가?”

“우힛!?”

오소마츠를 뒤에서 껴안은 듯한 자세 때문에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오소마츠의 귓가에서 울렸다. 가슴에 닿은 몸이 단숨에 뻣뻣하게 굳어버린 것을 눈치챈 카라마츠가 옅은 미소를 흘렸다.

“잇…!”

카라마츠의 은근한 숨이 닿은 귀를 감싼 채 홱 고개 돌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노려보았다. 사나운 눈빛이 제법 따가웠지만 벌겋게 익은 얼굴 때문에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오소소 소름이 돋은 목덜미를 어루만진 오소마츠가 씩씩 분에 찬 숨을 내뿜으며 카라마츠를 밀치고 벌떡 일어났다.

“바보!”

짧고 강렬한 외침을 남긴 오소마츠가 방을 뛰쳐나가며 ‘쾅!’하고 힘껏 문을 닫았다. 곧 복도에 어수선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푸흐흐….”

카라마츠가 낮은 웃음을 흘리며 눈을 가늘게 접었다. 설마 그 오소마츠가 저렇게 부끄러움이 많다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카라마츠는 뜻밖의 복병 덕분에 오소마츠와 플라토닉 연애를 이어가고 있었다. 허구한 날 야동이니 섹스니 하는 단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에 끼워 넣는 오소마츠가 부끄러움이라니.

다른 형제들은 상상조차 못 할 것이다. 어쩌면 그런 건 오소마츠가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카라마츠는 기꺼이 오소마츠를 기다릴 수 있었다. 다른 형제들은 모르는, 알 수조차 없는 오소마츠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자신이 독점할 수 있기에 인내할 수 있었다.

더 닿고 싶고, 더 안고 싶고, 더 사랑을 속삭이며 몸을 겹치고 싶은 욕망을 아슬아슬하지만 안전한 선에서 참아낼 수 있었다.

“그래도 좀 더 빨리 익숙해지면 좋겠는데.”

바닥에 덩그러니 남겨진 만화책을 보며 카라마츠가 곤란한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조금씩 자신의 한계가 다가오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낀 카라마츠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라도 빨리 오소마츠가 ‘연인의 거리’에 익숙해지길 원했다. 그렇기에 부끄러워하는 것을 알면서도 되레 오소마츠를 도발하듯 스킨십을 이어가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조금 전 방안에 가득 울려 퍼졌던 오소마츠의 귀여운 원망을 되새기며 빙그레 입꼬리를 올렸다. 쿠당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계단을 내려간 오소마츠를 찾기 위해 방문을 여는 카라마츠의 주변에 흥겨운 콧노래가 머물렀다.

 

 

 

2.

 

퐁! 물방울이 잔잔한 물가 위로 올라와 터지는 소리에 선글라스를 추켜 올렸다. 몇 분째 소식이 없는 낚싯대에서 손을 떼고 선글라스에 가려진 눈동자를 굴려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말없이 수면을 보는 옆모습에 은근히 눈이 풀어졌다.

아아, 오늘도 마이 러버는 쏘 큐드다!

평소보다 이른 기상 때문에 여전히 졸음을 달고 크게 하품하는 모습도 귀엽다. 역시 길티한 나의 오소마츠다. 좀체 피쉬가 잡히지 않는 것이 불만인지 입을 삐죽 내민 오소마츠가 돌연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맞췄다.

“카라마츄~.”

“뭔가, 형님.”

콧소리가 섞인 저 부름은 내게 뭔가를 바랄 때 나오는 것이다. 일부러 차갑게 대답해도 오소마츠는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고 배시시 사랑스러운 미소를 퍼뜨렸다. 큿, 저런 미소를 다른 보이가 보면 어쩌려고 그러는 건가, 오소뫄~츠!?

“횽아 목이 마르는데~!”

눈을 한껏 감고 활짝 웃는 얼굴에 신음이 나오지 않도록 이를 꽉 악물었다.

크흣, 귀여워.

대체 뭘 먹으면 성인 남자가 저렇게 귀여워질 수 있는 건가!! 오소마츠의 귀여움에 눈이 멀 것 같다.

“카라마츄우~, 내 말 들었어~? 어-이!”

내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자 오소마츠가 내 팔을 잡아 흔들기 시작했다. 귀여운 응석에 호흡곤란이 일어날 것 같아 몰래 숨을 고르며 일어났다.

“마실 거 사 오겠다.”

“응!! 나는 맥주!”

“NO!”

“왜 갑자기 영어!?”

귀엽게 항의하는 오소마츠를 뒤로 하고 낚시터 입구에 있는 작은 편의점으로 발을 옮겼다. 음료수가 있는 코너 앞에서 슬쩍 지갑을 열어보았다. OH…, 물 하나 살 돈밖에 남지 않았다. 낚시터 입장료를 오소마츠 몫까지 낸 탓에 지갑이 지나치게 가벼워졌다.

“할 수 없나.”

별수 없이 물 하나만 사서 낚시터로 돌아왔다.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반기는 오소마츠를 본 순간 기발한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씨익- 입꼬리를 올리고 털썩 자리에 앉자 오소마츠가 당연하게 손을 내밀었다. 생긋 웃어 그 손을 무시하고 뚜껑을 열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어!! 내 꺼는!?”

성난 목소리를 귓등으로 흘리고 입에서 병을 떼 오소마츠에게 건넸다.

“자. 돈이 없어서 하나밖에 못 샀다.”

“엑…. 그럼 그냥 바로 나 주지, 왜 네가 먼저 마시는 건데….”

불퉁거리며 병을 받은 오소마츠가 바로 물을 마시지 않고 멈칫거렸다.

“안 마시나?”

“아니…, 이거….”

태연하게 묻자 오소마츠가 눈썹을 찌푸리고 머뭇거리며 내 입이 닿았던 병 입구를 응시했다. “이거…, 간접키스….” 하고 작게 중얼거리는 오소마츠의 사랑스러운 목소리는 마음속에 녹음했다. 죽을 때까지 재생할 수 있다. 절로 위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간신히 참아내며 머뭇거리는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간접키스라니. 감기 옮기겠다고 브라더에게 딥키스를 하는 우리들인데, 간접키스를 망설이는 오소마츠의 모습은 너무나 새롭고 사랑스러웠다.

“안 마실 건가?”

“아니, 마실 거야!”

욱해서 외친 오소마츠가 끄응 신음하더니 “에잇!” 하고 기합을 넣고 병을 기울여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물을 넘길 때마다 울렁이는 목울대에서 시선을 올려 질끈 감은 눈가 아래에 피어난 홍조를 마음에 담았다.

“아쉽군. 마우스 투 마우스로 먹여 주려고 했었, 아우치!!”

“푸헛! 잇…, 바보!!!”

나도 모르게 나온 본심을 중얼거리다 날아온 빈 병에 머리를 맞았다. 물을 잘못 넘겼는지 괴롭게 캑캑대는 오소마츠의 얼굴은 농익은 사과처럼 빨갰다.

 

 

 

3.

 

무거운 쌀 포대를 어깨에 올리고 간신히 현관문을 열었다. 토도마츠에게 떠넘기듯 맡게 된 심부름 퀘스트를 멋지게 완료하고 주방에 들어가자 앞치마를 풀고 있던 마미가 손짓했다.

“수고했다, 백수 2호. 쌀은 여기에 내려놓으렴.”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에 당장 쌀을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을 효심으로 억누르고 조심조심 쌀 포대를 내려놓았다. “휴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돌리자 마미가 다정한 미소로 등을 토닥였다.

“마미, 다른 브라더-들은?”

“글쎄. 다들 나가서 아직 안 온 것 같은데-. 엄마도 지금부터 모임 있으니까 집 잘 지키고 있으렴.”

“알겠다, 마미!”

후후, 웃으며 주방을 떠나는 마미를 배웅하고 오랜만에 기타나 칠 생각으로 계단을 올랐다.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방문을 열자 조용한 숨소리가 살포시 귓가에 앉았다.

“…오소마츠?”

마미는 브라더들이 모두 외출했다고 했는데…. 소파에 누워 잠든 오소마츠에게 발소리를 죽여 다가갔다. 마미에게 잊힌 오소마츠는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잠들었을 때 더 앳되어 보이는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벽장에서 담요를 꺼내 오소마츠에게 덮어주었다. 평온하게 잠든 얼굴을 손가락으로 따라 그리며 가만히 지난날을 떠올렸다.

 

 

가져선 안 되는 마음이라고, 용서받지 못할 마음이라고 자신을 채찍질했었다. 그래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어서 곪아가는 마음을 껴안았다. 그러다 오소마츠가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고 끝이 보이지 않는 애달픔이 시작되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너무나 분명한데도 오소마츠는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내가 마음을 전할지라도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 무언으로 전하는 의지가 너무나 확고해서 무시할 수 없었다.

속절없이 시간이 지나며 애달픔은 원망이 되고 점점 추잡하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변해갔다. 그러다 쵸로마츠의 독립을 계기로 오소마츠와의 관계는 최악이 되었다.

“….”

숨을 삼키며 눈을 내려 주먹 쥔 손을 바라보았다. 과거의 내가 저지른 끔찍한 실수는 시간이 지나도 짙은 후회를 불러왔다. 집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던 우리가 선발 때문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내 실수는 오소마츠의 침묵 아래 유야무야로 끝나고 말았다.

오소마츠는 지옥까지 다녀오고 나서야 겨우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었다. 무언가를 벗어 던진 것처럼 후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오소마츠를 힘껏 껴안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바라고 바라던 오소마츠와 연인이 되자 내 마음엔 조바심이 가득 찼다. 다시 단순한 ‘형제’로 돌아가지 않을까,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때때로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오소마츠와 ‘연인’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더러운 욕망을 그대로 내보인다면 오소마츠는 나를 피하지 않을까?

두 상반된 마음 사이에서 방황하는 동안 나는 오소마츠에게 먼저 다가갈 수 없었다. 그토록 바랐으면서 오소마츠에게 형제 이상의 무언가를 하는 것이 두려웠다.

“너는 나랑 억지로 사귀는 거야!?”

바보처럼 한 달이라는 시간을 허비한 뒤, 울음 섞인 오소마츠의 외침에 눈이 뜨였다.

“억지로, 사귀다니…. 절대 아니다!”

내가 이 마음을 얼마나 오랫동안 끈덕지게 안고 있었는지 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물음에 얼이 빠졌다. 그리고 서둘러 거세게 부정하자 오소마츠의 눈매가 더욱더 매서워졌다.

“거짓말!!”

내뱉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물기가 짙어졌다. 입술을 물어뜯으며 눈물은 보일지 언정 절대 울음을 터뜨리지 않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다.

“미안, 미안하다. 오소마츠.”

스스로 자각하기도 전에 오소마츠를 품에 안고 조심스럽게 머리를 어루만졌다. 나 때문에 오소마츠가 슬퍼하는 것이 괴로우면서도 기쁨을 느끼는 자신에게 분노하며 오소마츠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내가 오소마츠에게 이 정도로 동요를 일으킬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 기뻤다. 이런 순간까지 저열한 기쁨을 느끼는 자신이 한심해 작게 한숨을 내쉬자 오소마츠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 순간 오소마츠와 밀착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늘어난 후드 사이로 드러난 하얀 목이 욕망의 불씨에 기름을 끼얹었다. 지척에 있는 피부에서 은은하게 넘어오는 체온과 체취에 그 불을 더욱 키웠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놀랐는지 뻣뻣하게 굳은 몸과 어찌할 줄을 몰라 공중에 멈춰버린 손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키며 눈을 감았다.

“…절대 억지로 사귀는 것이 아니다.”

한 단계 낮아진 내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숨을 삼켰다. 오소마츠는 더 추궁하지 않고 머뭇거리며 자신의 팔을 내 등에 올렸다.

“그럼 뭔데….”

“그…, 사소하지만 커다란 문제가 하나 있어서 말이야….”

“?”

내 안에 도사리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도 못 한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브라더-들 사이에서 가장 밝히는 녀석이라고 단언하는 녀석이 왜 이런 곳에서는 둔한 건지…. 피식-, 한숨과 닮은 웃음을 흘리고 몸을 살짝 떼어 오소마츠와 눈을 맞췄다.

“그, 게 말이다….”

“응.”

“오소마츠와 닿으면 만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다. ‘연인’다운 걸 하고 싶달까….”

“응…?”

오소마츠는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오자 멍청히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우뚝 솟은 내 바벨탑을 눈치챘는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홱 내 어깨를 밀어내며 외쳤다.

“바보!!!”

강렬하게 한 마디 던지고는 냅다 도망가는 게 귀엽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역시 마이 러버-. 무엇을 해도 사랑스럽다.

 

새빨간 얼굴로 뛰쳐나갔던 오소마츠는 완전히 붉음이 가라앉지 않은 얼굴로 어느 정도의 스킨십은 괜찮다고 힘겹게 말해왔다. 그 모습에 다시 있는 힘껏 안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 여전히 욕망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초조함이 사라진 덕분일까, 그것을 참는 것이 전처럼 아주 힘들지 않다. 게다가 오소마츠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으니 볼 수 있을 때 실컷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물론 오소마츠가 하루빨리 이런 스킨십에 적응해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손가락을 스쳐 지나가는 간지러움에 회상에서 벗어나 잠든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뭘 먹는 꿈이라도 꾸는지 행복하게 풀어진 얼굴로 입을 오물거린다. 내 얼굴도 오소마츠처럼 한껏 풀어져 있겠지. 소리 없이 웃음을 흘리고 있자 느닷없이 오소마츠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자…, 잘 잤나?”

놀라 몇 초 늦게 묻자 오소마츠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가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금방이라도 얼굴에서 김이 나올 것처럼 빨개진 얼굴을 담요 아래로 숨긴 오소마츠에게서 “바보!” 하고 귀여운 투정이 날아왔다.

이번엔 정말 일부러 노린 게 아니지만…. 뜻하지 않은 ‘바보’에 너털웃음이 나왔다.

 

 

 

4.

 

입안에 넣자마자 퍼지는 오뎅 국물을 넘기며 고개를 돌려 나른하게 눈을 깜빡이는 오소마츠를 훔쳐봤다. 치비타의 커다란 웃음소리에 올라탄 브라더-들의 목소리가 서서히 귓가에서 멀어졌다.

좁은 의자에 따닥따닥 붙어 앉은 탓에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오소마츠의 온기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만끽하고 싶어 술을 따르는 브라더-들을 말리지 않았다. 이미 인사불성이 된 브라더-들은 언제 쓰러져 잠들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올라가는 입꼬리를 맥주잔으로 가리고 다른 손을 뒤로 돌려 오소마츠의 손을 향해 슬금슬금 움직였다. 툭, 손가락 끝이 맞닿자 “타하핫~!” 하고 웃던 오소마츠의 웃음이 뚝 끊겼다.

“횽아는 다 이해한다니까? 쵸로따르스키~.”

“닥쳐!! 그리고 내가 러시아인이냐!? 쵸로따르스키가 누구야!!”

일순 멈췄던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은 오소마츠가 내게 날카로운 눈빛을 쏘았다. 허나 나, 카라마츠는 포기하지 않는다! 얻어맞은 손등이 얼얼해도!! 숨죽여 기회를 노리는 찰나 오소마츠가 의자에서 일어나 브라더-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까닥였다.

“어이~, 백수들 이제 가자. 치비타 잠들었으니까 조용히 일어나~.”

오소마츠의 말에 브라더-들이 몸을 꿈틀대며 일어났다. 저 멀리 날아가는 찬스를 배웅하며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걸어가는 브라더-들을 보고 있자 오소마츠가 툭 어깨를 두드렸다.

‘바보.’ 하고 소리 내지 않고 입을 움직인 오소마츠가 게슴츠레 뜬 눈으로 나를 흘겨보더니 브라더-들을 향해 뛰어갔다.

이번엔 실패인가…. 애초에 성공할 거란 기대는 없었다. 오소마츠는 브라더-들과 함께 있을 때는 철저하게 나와 닿는 것을 피했다. 그래도 조금씩 시도하면 손 정도는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치비타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시러 갈래?”

오소마츠가 머리를 긁적이며 건넨 말에 광이 나도록 닦던 선글라스를 놓치고 말았다. 투둑, 손에서 미끄러진 선글라스가 떨어지는 소리가 울리고 추가로 몇 초가 지나서야 목소리를 입 밖으로 낼 수 있었다.

“……브라더-들과 말인가?”

“아니, 너랑 나…, 만….”

지져스‐. 웅얼거리며 말끝을 흐리는 오소마츠의 얼굴은 탐스러운 빨강으로 물들어 있었다.

 

브라더-들과는 온 적 없는 술집으로 익숙하게 들어간 오소마츠가 메뉴판을 펼치며 씨익- 장난스럽게 미소 지었다.

“오늘은 이 횽아가 쏜다! 먹고 싶은 거 맘대로 시켜도 된다구~!”

“경마에서 이겼나?”

“아니, 파~칭코.”

“그렇군.”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기 시작한 오소마츠는 시원한 맥주가 나오자마자 “건배~!” 하고 유쾌하게 잔을 부딪쳤다.

 

안주로 나온 닭꼬치가 바닥나기도 전에 테이블에 엎어진 오소마츠가 “흐냐~.” 하고 더운 숨을 내쉬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보던 오소마츠가 테이블에 턱을 괴고 나와 마주 보며 해죽 웃었다.

“졸린가?”

“우응~, 아니이~.”

발갛게 익어 터질 것 같은 뺨을 살며시 쓰다듬자 오소마츠가 볼을 비비며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나른하게 늘어진 목소리가 은근하게 가라앉았다

다른 브라더-들은 오소마츠의 이런 모습을 모른다. 오소마츠는 브라더-들과 마실 때는 절대 어리광을 부리지 않는다. 오직 나만, 내 앞에서만 보여주는 이 모습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만족감이 가슴에 차올랐다.

“다음에 또 오쟈~, 카라마츄‐.”

“아-, 꼭 오자.”

볼에 닿은 내 손이 시원한지 여기저기 볼을 비비는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사랑스럽게 주변을 감쌌다. 이럴 때마다 간신히 작은 상자에 넣은 욕망이 피에로 상자처럼 팍 튀어나온다. 마음을 간질이는 욕망을 차곡차곡 접어 다시 상자에 집어넣고 잠든 오소마츠를 업고 술집을 나왔다.

 

 

먼저 잠든 브라더-들 사이로 발을 집어넣자 오소마츠가 “후아암~.” 크게 하품을 흘리더니 이불 속에서 손을 더듬었다.

손끝에 닿은 온기에 숨을 집어삼켰다. 내 손 위로 올라온 것은 분명 오소마츠의 손이었다. 요동치는 마음을 따라 떨리는 눈으로 멍청히 천장을 응시하다가 새근거리는 숨소리에 오소마츠를 슬쩍 쳐다보았다. 내 손을 잡아서 만족했는지 너무나 평온한 얼굴로 잠든 오소마츠가 코앞에 있었다.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마이 러버다.”


내 손을 덮은 오소마츠의 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눈을 감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또 오소마츠의 ‘바보’가 날아오겠지. 내일도 내 마음을 엉망으로 무너뜨릴 사랑스러운 외침을 기대하며 오소마츠와 꿈속에서 만나기 위해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육둥이의 학창시절 날조 있습니다.

* 영화의 오소마츠상에 나오는 소심한 18카라가 나옵니다.

* 1~3 까지는 카라 시점, 4~6 까지는 쵸로 시점, 7 은 전지적 작가 시점입니다.

* 아주 약간의 약한 장남...?

* 공미포 17,359자.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소른 50제

48. 장남의 의무/장남 (수륙오소/오소른)     에덴, 계란찜 님 신청 키워드.



1.


종례가 끝난 후, 크로스백을 메고 복도로 나왔다. 먼저 교실을 빠져나간 클라스메이트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자 익숙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복도 가장 끝에 있는 교실에서 밝은 웃음소리가 퍼져 나왔다. 뭐가 그리 즐거운 건지, 듣는 이가 궁금할 정도로 흥에 겨운 웃음소리에 손을 그러쥐었다. 오소마츠 형의 저런 웃음을 들은 게 언제였는지. 분명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텐데 까마득한 과거의 일처럼 느껴졌다.

후우-, 숨을 내쉬며 술렁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힌 뒤 부실로 가기 위해 복도를 따라 걸었다. 부실이 있는 2층에 가려면 복도 끝에 있는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발을 앞으로 내딛을수록 오소마츠 형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복도 쪽에 난 작은 창문으로 교실 안을 엿보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야속한 눈은 오소마츠 형의 웃음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

오소마츠 형은 책상에 걸터앉아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눈이 다 감길 정도로 즐겁게 웃는 오소마츠 형의 얼굴은 우리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유도 없이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멀어졌다. 예전과 달리 서먹해진 우리를 떠올리고 가슴에 올려진 가방끈을 강하게 쥐었다.

축제를 앞두고 할 일이 많아진 연극부는 하늘이 어두워질 즈음에 끝이 났다. 학교를 나와 지나가는 사람 없는 골목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다 발치에 걸린 그림자에 고개를 들었다. 산 뒤로 넘어가는 해를 따라 길게 늘어난 그림자 끝에 오소마츠 형이 있었다.

“오, 오소마츠 형….”

나도 모르게 나온 목소리에 놀라 서둘러 손으로 입을 막았다. 작은 목소리였는데도 고요한 길목에 선명하게 퍼진 부름에 오소마츠 형이 걸음을 멈췄다. 주머니에 손을 꽂은 오소마츠 형은 고개만 살짝 돌려 나를 보더니, 무심하게 앞으로 걸어갔다. 점점 멀어지는 오소마츠 형을 보며 입술 안쪽을 잘게 씹었다. 오소마츠 형을 감싸고 있는 날카로운 분위기에 더 말을 붙일 수 없었다. 볼에 남은 푸른 멍과 입가에 빨간 피딱지가 신경 쓰여도 물어볼 수 없었다. 휑하니 가슴을 스쳐 가는 찬바람에 오소마츠 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도 발을 뗄 수 없었다. ‘팅, 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낡은 가로등이 켜지고 나서야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도 형제들은 보이지 않았다. 익숙해진 침묵에 눈을 내리깔고 체념하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바로 주방에 들어가 엄마가 남겨놓은 찬밥과 반찬을 들고 거실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엇…,”

자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오소마츠 형이 거실에 있었다. 오소마츠 형은 잠깐 나를 올려다보고 도로 하던 일에 집중했다. 팔에 붕대를 감는 오소마츠 형 앞에 장식장에 있던 약상자가 놓여있었다.

도와달라고 하면 될 텐데. 그러면 도와줄 텐데. 오소마츠 형은 묵묵히 혼자서 붕대를 팔에 감았다. 붕대가 엉성하게 감긴 팔이 바쁘게 움직여 반창고를 집어 들었다. 심하게 쓸린 팔에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인 오소마츠 형이 말없이 약상자를 들고 일어났다.

“밥…, 저녁 안 먹어?”

손에 든 밥공기를 흔들었지만, 오소마츠 형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거실을 떠났다. 끼익 끼익, 낡은 층계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실 중앙의 낮은 테이블에 밥과 반찬을 내려놓고 그 앞에 주저앉았다.

젓가락과 자기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다음 날, 테이블을 둘러앉아 아침 식사를 하는 우리 중 그 누구도 오소마츠 형의 상처에 관해 물어보지 않았다.




2.


동그랗게 모여 인사를 나눈 동료들이 가방을 챙겼다. 오늘도 저녁 식사 시간을 훌쩍 넘어서야 부 활동이 끝났다. 집에 돌아가도 차가운 정적만이 마중 나올 것을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마츠노! 잠깐, 괜찮을까?”

가방을 메고 부실을 나오려던 나를 동료가 붙잡았다. 같은 학년이지만 반도 다르고 그리 친하지 않은 동료의 부름에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일이야?”

묻자 그가 눈을 굴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입맛을 다시며 망설이는 그를 보며 불쑥 일어난 초조함에 발을 굴렀다.

“얼마 전에 우연히 들은 건데 말이야….”

“응.”

다음 말을 재촉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얼굴이 묘하게 구겨졌다.

“그…, ‘카와시마’ 무리 알지? 우리 학교에서 양아치로 유명한….”

“응.”

“우연히 그 녀석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너희 육쌍둥이가 마음에 안 든다면서 너희 장남한테 시비 걸고 있는 걸 봐서.”

“뭐…?”

공기를 울리는 목소리가 사납게 내려앉았다. 가시를 세운 되물음에 그가 어깨를 움츠렸다. 생각도 못 했던 소식에 이를 앙다물고 오소마츠 얼굴에 남아있던 상처를 떠올렸다. 어젯밤, 거실에서 오소마츠가 혼자 치료하던 그 상처들은 그래서 생긴 것인가.

“알려줘서 고마워.”

“어? 으, 응.”

나직이 숨을 뱉으며 그에게 빠르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서둘러 부실을 나와 아슬아슬한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지났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왜 내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오소마츠 형은 우리와 나누는 걸 좋아했다. 슬픔도, 기쁨도, 고민도 모두. 육쌍둥이라는 이유로 시비를 거는 녀석들이 있다면 오소마츠 형뿐 아니라 우리 모두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일을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걸까.

질문의 끝에 오소마츠 형의 차가운 시선이 닿았다. 동시에 복도를 울리던 발소리가 멈췄다. 오소마츠 형은 이 일에 관해 물어봐도 무시하겠지. 내가 혼자 초조해져서 전전긍긍하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무미건조하게 대응하는 오소마츠 형의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관둘까….”

갑자기 피로감이 몰아쳤다. “집에나 가자.” 하고 자신에게 되뇌며 멈췄던 발을 뗐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풀고,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터덕터덕, 조금 전과는 다른 템포의 발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며 아무 생각 없이 창문 밖을 본 순간 나는 다시 뜀박질을 시작했다.


“오소마츠 형!!”

오소마츠 형의 어깨를 거칠게 미는 무리 앞에 서서 그들을 노려봤다. 동료가 말해준 ‘카와시마’와 그의 무리가 비웃음과 함께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때 보자, 장남님~.”

픽, 코웃음을 친 카와시마가 오소마츠 형에게 속삭이듯 말하고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교문으로 걸어가는 무리를 응시하다 몸을 돌려 오소마츠 형에게 물었다.

“‘그때’라니, 저게 무슨 소리야. 오소마츠 형.”

카와시마가 괜히 그런 말을 할 리 없었다. 일부러 목소리를 깔고 심각하게 물었지만, 오소마츠 형은 인상을 찌푸릴 뿐 질문에 답해주지 않았다.

“왜 네가 끼어들어서 난리야. 별거 아니니까 신경 꺼.”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 있어!!”

귀찮다는 듯이 나를 밀어내는 말투에 울컥 목소리가 높아졌다. 오소마츠 형은 왜 내가 화내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저 자식들은 나한테만 시비 걸고, 너네는 안 건드니까 됐잖아, 그걸로.”

“그게 무슨…,”

오소마츠 형의 입에서 나온 말에 놀라 말문이 막힌 사이 오소마츠 형이 나를 밀어냈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오소마츠 형이 점점 멀어졌다.

‘우리는 건들지 않으니 됐다’고? 진심으로 말하는 건가?

내가 우리고, 우리가 나. 그걸 끝까지 밀고 나갔던 건 오소마츠 형이었으면서, 갑자기 그런 낯선 말을 내뱉은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왜….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우리에게 불만을 가진 녀석이 있으면 다 같이 쳐부수는 게 당연했는데. 점점 더 멀어져가는 그가, 지금까지 내가 알던 오소마츠 형이 아닌 것 같아서, 오소마츠 형을 알 수가 없어졌다.




3.


카와시마 무리가 오소마츠 형에게 시비 거는 모습을 목격한 뒤로 아무도 모르게 오소마츠 형 주변을 살폈다. 중학교 때까지 오소마츠 형과 꼭 붙어있던 쵸로마츠가 옆에 없는 만큼 오소마츠 형이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방과 후, 부 활동이 끝난 후, 수시로 오소마츠 형이 어디 있는지 확인했다. 되도록 오소마츠 형의 눈에 띄지 않으려 했지만, 가끔 주변에 내가 있는 걸 알아채면 오소마츠 형은 항상 인상을 팩 찌푸리고 내게서 멀리 떨어졌다. 곧바로 날아와 박히는 오소마츠 형의 싸늘한 눈빛에 그만둘까 싶다가도 비어있는 오소마츠 형의 옆자리가 눈에 밟혔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던 카와시마는 오소마츠 형이나 우리 근처에 접근하지 않았고 오소마츠 형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학교생활을 보냈다. 아무 일도 없는 일상에 내 경계도 자연스럽게 누그러졌다.


축제 준비가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자 부 활동이 끝나는 시간이 빨라졌다. 아직 해가 떠 있는 하늘을 보고 숨을 들이마시며 각오를 다졌다. 오늘은 오랜만에 오소마츠 형과 같이 돌아가자. 토도마츠가 오늘 오소마츠 형은 땡땡이친 수업의 보충이 있다고 말했던 것을 되새기며 오소마츠 형 반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닫혀 있는 교실 문 앞에서 한 번 더 숨을 고르며 자신에게 기합을 넣었다. 일주일간 오소마츠 형 주변을 맴돌며 그 매서운 눈빛에도 익숙해졌다. 함께 돌아가자는 말 정도는 할 수 있어! 가볍게 주먹을 쥐고 화이팅 포즈를 취한 뒤, 문고리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정말 도와주러 안 가도 되는 걸까? 그놈들 머릿수가 꽤 됐었다고.”

“알아서 하겠지. 따라오지 말라고 했잖아-. 여차하면 마츠노 동생들이 도와주러 가겠지.”

“근데 그 녀석들 요즘 사이 안 좋아 보이지 않았어?”

“야, 그래도 마츠노가 걔네 형인데 그걸 모른 척하겠냐?”

문 너머에서 작게 들려오는 대화는 오소마츠 형이 닥친 상황을 알아채기에 충분했다. 팔이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그대로 문을 밀자 ‘쾅’하는 소리가 교실에 울렸다.

“그,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아니, 그것보다 오소마츠 형은 어디 있어.”

사색이 된 놈들의 얼굴이 심상치 않은 일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가 책상에 걸터앉아있는 놈의 멱살을 잡고 다시 물었다.

“오소마츠 형은 어디로 갔지?”

잘게 떨리는 입술에서 대답이 나오자마자 교실을 뛰쳐나왔다.



동네에서 아는 사람만 안다는 공터에 가까워지자 투덕대는 소리가 얼핏 들렸다. 어깨에서 덜렁거리는 가방을 집어 던지고 카와시마 무리 한가운데에 있는 오소마츠 형을 향해 뛰었다. 예상치 못한 지원군의 난입에 카와시마 놈들이 멈칫했다.

정말 오랜만에 정신없이 치고받으며 놈들과 싸웠다. 엄마가 말려도 귀를 닫고 서로 싸웠던 옛날처럼 날아오는 주먹을 막고 발로 차고, 멱살을 잡히면 박치기를 했다. 누가 아군이고 적인지 구분 못 할 정도로 눈이 돌아간 상태로 한참을 싸우자 카와시마 놈들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

“지독한 새끼들…!”

낮게 욕설을 내뱉은 것이 누구인지는 몰랐다. 놈들은 어디 하나 성한 곳 없이 공터를 빠져나갔다.

“먼저 다굴한 놈들이 뭐래.”

놈들이 완전히 공터를 빠져나갈 때까지 눈을 떼지 않던 오소마츠 형이 혀를 차며 으르렁거렸다. “하아―.” 하고 지친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 형은 다리가 풀린 것처럼 털썩 그 자리에 내려앉았다.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낮아진 오소마츠 형의 머리통을 내려다보았다. 나와는 다른 위치에 있는 가마를 멍청히 내려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혼자서 어쩌려고 했던 거야.”

“…별로. 혼자서도 충분했고?”

“말이 되는 소리를…!”

둘이서 온 힘을 다해 싸워야 간신히 물리칠 수 있는 놈들이었다. 태연한 오소마츠 형의 말투에 발끈해 멍청한 형의 얼굴에 눈을 고정했다. 내가 아닌 정면을 보고 있는 오소마츠 형의 뺨을 따라 피가 흐른 자국이 있었다. 분노로 뜨거워진 숨을 토하며 흙투성이가 된 주머니에서 빳빳하게 다림질한 손수건을 꺼냈다.

“자. 머리에 피 나.”

“….”

오소마츠 형 눈앞에서 손수건을 흔들자 형이 말없이 손수건을 받아 들었다. 아직 피가 나고 있는지 형이 이마에 손수건을 누르자 하얀 손수건이 금방 빨갛게 물들었다.

“왜 왔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할 말인가? 어이가 없어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일대다의 싸움에, 게다가 머리는 화려하게 찢어 놓고 왜 왔냐고 물어보다니. 머리끝까지 화가 난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깨달으며 감정을 담아 버럭 외쳤다.

“그게 도와주러 온 사람한테 할 소리야!? 이런 일이 있으면 말해줬어야지! 혼자 싸우러 오는 게 아니라!! 왜 형은…,”

까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입안에 울렸다. 아무리 싸움에 자신이 있어도 이런 바보 같은 싸움을 피하는 게 옳았다. 나에게 말해줬다면 같이 대책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아니면 같이 싸우러 가자고만 말했어도 카와시마의 일을 봤으니 기꺼이 오소마츠 형을 따라왔을 것이다.

“왜 말을 안 해주지 않은 거야! 왜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는데!”

분에 차서 목이 따가워지도록 오소마츠 형을 향해 외쳤다. 지독했던 싸움보다 오소마츠 형을 향한 분노에 더 숨이 찼다. 격해진 감정을 거르지 않고 담아 외친 후 씩씩 숨을 몰아 내쉬었다. 거친 숨에 어깨까지 들썩였다.

“…이런 건 ‘형’이 해야 하는 일이잖아.”

“허…?”

이번에도 시큰둥하게 나를 무시할 거로 생각했던 오소마츠 형이 얼굴을 찌푸렸다. 슬픈 것 같으면서 짜증이 섞인 이상한 표정에 숨통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분노가 사라졌다.

“…왜 우리가 달라져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형’이라고 불리고 싶지도 않아. 근데, 그래도 내가 ‘형’이잖아. 형이면 동생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

이어지는 오소마츠 형의 말에 커다란 망치가 머리를 내려찍는 것 같았다.

“모르겠다고, ‘동생’인 너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건지. ‘형’이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머리를 벅벅 긁다가 찢어진 상처를 건드렸는지 “아얏!” 하고 신음하는 오소마츠 형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나는 모든 것을 너무 안일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소마츠 형의 변화도, 우리의 변화도.

형은 동생에게 도움받으면 안 된다는 괴상한 오소마츠 형의 지론은 둘째 쳐도, 오소마츠 형이 그런 식으로 ‘형’에 자신을 맞추려고 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우리가 동등한 존재에서 ‘형과 동생’으로 나뉜 것은 나이를 먹으면서 가지는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던 거지. 우리의 변화는 우리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는데.

똑같은 사람이 여섯. 내가 우리고, 우리가 나.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이 시선이, 우리를 향한 말이 우리가 ‘우리’로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음을 버리고 다름을 택했다. 그 결정을 가장 나중에 받아들인 것이 오소마츠였다.

“바보야?”

“뭐!?”

입술 사이로 미끄러져 나온 혼잣말에 오소마츠가 눈을 뾰족하게 세웠다. 우리가 달라지는 것을 거부했으면서 ‘형’으로서 행동하려고 하려는 바보를 가만히 응시했다. 오소마츠는 내가 모르는 어떤 압박을 받고 있었던 걸까. 그래서 그런 영문 모를 의무감을 가지게 된 걸까. 숨을 크게 내뱉어도 응어리가 가슴에 남아 답답했다.

우리가 형제가 된 탓에 오소마츠는 외톨이가 되었다. 항상 쵸로마츠가 있었던 오소마츠의 빈 옆자리를 내가 채워도 될까. ‘형’이라면서 혼자 꿋꿋이 서 있으려는 바보와 나란히 서고 싶다. 마음을 뒤흔드는 욕망에 주먹 쥐고 있던 손을 펴 오소마츠에게 내밀었다.

“나도…, 오소마츠와 같은 ‘형’이다. 네 ‘동생’이 아니야.”

“뭐어?”

내 손을 잡고 일어서면서 오소마츠는 황당하단 얼굴로 말꼬리를 올렸다. ‘그게 뭔 개소리냐’하는 얼굴에 피식 웃으며 허리에 손을 얹었다.

“오소마츠가 ‘형’이라면 나 역시 ‘형’이다.”

오소마츠와 같이 ‘형’이 될 거다. 그렇게 다짐하는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오소마츠는 수상하단 눈으로 나를 훑어보았다.



싫다는 오소마츠를 끌고 공터를 나와 병원으로 향했다. 청춘의 대난투에 오소마츠와 나는 온몸이 엉망이었다. 오소마츠는 기어이 찢어진 이마를 몇 바늘 꿰매야 했다. 흙과 주름으로 엉망이 된 교복과 찰과상이 가득한 팔과 얼굴, 게다가 오소마츠는 머리에 붕대까지 감은 채 귀가하니 가족 모두 놀라 까무러쳤다.

나와 오소마츠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 추궁하는 가족에게 적당히 설명한 뒤 오소마츠와 함께 남은 저녁을 먹고 나란히 이부자리에 누웠다.

“오소마츠.”

“…왜.”

공터에서 싸움이 끝난 뒤로 ‘형’을 떼어버리고 오소마츠를 불렀지만, 오소마츠는 나를 말리지 않았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러나’하는 얼굴을 하긴 했지만. 어둠에 잠긴 익숙한 집 천장을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형’으로서 ‘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나만큼은 의지해줘. 네가 의지할 수 있는 남자가 될 테니까.”

“….”

오소마츠는 대답도 없이 홱 몸을 돌려 나를 등지고 누웠다. 바로 옆에 보이는 뒤통수에 입꼬리가 슬쩍 위로 올라갔다.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노력하자. 오소마츠와 함께 ‘형’이 될 수 있도록.

몇 번이고 다짐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4.


냐-짱의 인터뷰가 실린 잡지를 손에 들고 있으면서도 자꾸 눈이 옆으로 샜다.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만화책을 보고 있는 오소마츠 형의 얼굴에 자꾸만 미간에 주름이 졌다.

“쵸로마츠 형, 잡지에 뭐 심각한 거라도 실려 있어?”

“응? 어….”

“뭐야, 그 대답은. 그렇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뭉그러진 다른 마츠의 목소리에 적당히 대답하며 잡지를 손에서 내려놓았다. 원형 테이블에서 떨어져 오소마츠 형에게 다가가자 때마침 오소마츠 형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저럴 줄 알았지. 요 며칠 이상하더라니.

치솟는 짜증에 남몰래 혀를 차고 오소마츠 형을 불렀다.

“오소마츠 형.”

“응? 왜‐? 쵸로 씌? 나랑 놀아주려고~?”

실실 웃는 낯에 콱 침을 뱉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평소보다 처진 오소마츠 형의 눈가에 시선을 고정했다.

“요즘 무슨 일 있어? 묘하게 조용해서 오히려 신경 쓰이는데.”

“에에~? 별로 무슨 일 없는데‐. 아, 요즘에 계속 파칭코랑 경마에서 지기만 해서 우울해~. 위로해줘, 쵸로 씌!”

배려심을 있는 대로 끌어올려 에둘러 물었더니 오소마츠 형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중지와 엄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돈 빌려줭~! 쵸로 씌!”

“내가 미쳤냐!? 너한테 돈을 빌려주게!!”

“왜앵~. 내가 두 배로 불려줄게!”

“그렇게 말하면서 내 지갑에서 빼간 돈이나 갚아!”

“아잉~~.”

과하게 눈을 반짝이며 아양을 떠는 오소마츠 형을 밀어내고 한숨을 삼켰다. 뭘 좀 물어보려고 하면 이 모양이다. 이쪽은 이미 눈치채고 있는데 굳이 저렇게 숨길 필요가 있을까. 한 번도 솔직하게 얘기해주지 않는 오소마츠 형을 길게 뜬 눈으로 흘겨보았다.

“무슨 일 있나?”

거실에 퍼진 목소리에 오소마츠 형의 고개가 위로 향했다. 방금 막 집에 돌아온 우리 집의 차남, 카라마츠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으응~, 별거 아냐.”

우리를 쭉 훑어보고 오소마츠 형과 눈을 맞춘 카라마츠가 형의 말에 “그런가.” 하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참, 오소마츠. 나와 함께 파티 투나잇을 즐기러 가지 않겠나?”

“응~? 파티 투나잇은 뭐야~. 기습 그만둬‐!”

“엩.”

“히히히, 좋아. 갈까~.”

카라마츠의 싼 제안에 오소마츠 형은 쉽게 올라탔다. “우이샤~.” 하고 아저씨 같은 신음을 내며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 형이 자연스럽게 카라마츠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카라츙이 쏘는 거지?”

“응~? 논논, 오소뫄~츠? 더치페이인 게 당연하지 않나.”

“에엑~! 횽아, 요즘 지기만 해서 돈 없다궁~!”

손가락을 튕기며 개똥 같은 멋을 부리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오소마츠 형이 배를 잡고 웃는 시늉을 했다. 오소마츠 형은 웃음이 헤픈 편이긴 하지만 카라마츠와 있을 때는 그 정도가 더했다. 오소마츠 형과 카라마츠는 웃기지도 않은 만담을 끝냈는지 어깨동무를 하고 거실을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어디 갈 거야?”

“응?”

우리가 나가서 뭘 하든 일체 관심 없던 드라이 몬스터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카라마츠는 갑자기 건너온 질문에 눈을 깜빡이며 “음….” 하고 대답을 망설였다.

“왜. 보나 마나 아저씨들이나 가는 술집에서 맥주나 마실 텐데 따라가려고?”

동생에게 약한 카라마츠에게 얻어 마실 생각일 게 분명한 토도마츠에게 핀잔하듯 말했다.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오소마츠 형이 내 말에 볼을 부풀리며 불평했지만, 귀 기울여 듣는 녀석은 없었다. 토도마츠는 어지간히 공짜 술이 마시고 싶었는지 내 말에도 굽히지 않고 카라마츠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나도 오랜만에 마시고 싶은 기분이라서 그래~, 카라마츠 형~.”

얼씨구? 징그러운 비음까지 내며 애교를 부리는 토도마츠의 행태에 소름이 돋았다. 카라마츠는 웬일로 토도마츠의 부탁에도 쉽게 YES라 말해주지 않았다.

“저 망할 장남하고 차남은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새벽까지 달리고 올 텐데.”

“아, 그럼 됐어. 나 내일 오전에 약속 있고.”

흘리듯 말하자 토도마츠가 정색하며 손을 흔들어 카라마츠를 배웅했다. 저 드라이 몬스터 자식. 사람이 어떻게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홱 바꾸냐. 거실에 있던 이치마츠와 함께 영악한 막내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럼 다녀올게~.”

“쎼러데이 나잇과 뜨거운 베제를 나누고 오겠다!”

어깨동무를 한 채로 오소마츠 형과 카라마츠가 현관을 나섰다. ‘탁’하는 소리와 함께 무정하게 닫히는 현관문을 가만히 응시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 두 놈이 같이 나가는 꼴을 보면 괜히 짜증이 솟는다. 기분 전환을 위해 고개를 돌려 테이블 위에 놓인 잡지를 손에 들었다. 하지만 냐-짱의 인터뷰를 읽어도 잔뜩 찌푸린 얼굴은 좀체 펴질 기색이 없었다.




5.


이불에서 빠져나와 신속하게 세면실로 걸어갔다. 사람은 여섯인데 화장실과 세면대는 하나니 시간대를 잘 선택해 일어나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났다. 아무도 없는 세면실에 들어가 여유롭게 세수를 하고 양치질까지 끝내고 방에 돌아오니 불룩 튀어나온 이불이 시야에 걸렸다.

대체 몇 시까지 마시다 들어온 건지 오소마츠 형은 미동도 없이 깊이 잠들어 있었다. 아침이 가까운 새벽에 옆자리 이불이 살짝 들리는 느낌이 있었는데, 바로 몇 시간 전에 들어왔단 소리인가. 부모님 돈으로 먹고 자는 백수 주제에 방탕한 생활을 하는 망할 장남을 힘껏 노려보며 옷을 갈아입었다.

“쵸로마츠 형, 지금 나가?”

“응. 오늘 라이브 맨 앞줄에서 보려면 지금 나가야 해.”

“부지런하네~, 아이돌 오타쿠는.”

“아앙!?”

토스트 2장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현관에 선 내 옆에 토도마츠가 내려왔다. 어제 약속이 있다던 토도마츠도 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옆에서 분홍색 운동화에 발을 끼우는 토도마츠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토도마츠 옆자리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을 오소마츠 형을 떠올렸다. 둥글게 부풀어 올라있던 이불이 자꾸만 눈동자 위에서 아른거렸다.

“형?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냐.”

토도마츠의 질문에 대답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토도마츠와 함께 집을 나와 번화가까지 걸어가는 내내 묘한 찜찜함이 발목을 잡았다.



완벽하다는 말조차 아까울 정도로 멋진 라이브를 끝내고 냐-짱 팬클럽 지인들과 덕톡회까지 끝내고 나니 어느새 저녁 식사 시간을 훌쩍 지난 후였다.

“아, 너무 들떴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냐-짱에 대해 떠들던 덕톡회의 훈훈함을 되새기며 행복함으로 가득 찬 가슴을 안고 집을 향해 걸었다. 사람이 행복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더니 매일 걸어가는 길이 너무나 평화로워 보인다. 발걸음도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볍다. 룰루랄라, 어릴 때처럼 깡충깡충 뛰며 걸어가다 벽에 붙은 전단에 걸음을 멈췄다.

『백수 교정 시설 NEETZAP!! 어떤 노답 인간도 순식간에 개조해 드립니다! 』

우와…, 저거 까딱하면 우리가 갈 뻔했던 곳 아냐? 마츠요 여사의 지리멸렬한 고민에 상담해주었던 과거를 떠올리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취직인가….”

어느 순간부터 처절함을 잃어버린 행위에 가만히 전단를 응시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술자리에서 취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오소마츠 형이 오랜만에 파칭코에서 대승리했다며 우리를 끌고 간 술집에서. 다들 거나하게 취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마지막에 나온 것이 취직에 대한 것이었다. 여섯 나란히 백수지만, 고충이 없는 것은 없었다. 하나씩 말뿐인 고민이 나오고 결국엔 신세 한탄이 길게 이어졌다.

“그래도 취직해야겠지, 언젠가는.”

그렇게 말한 것인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여섯 중이라면 내가 말했을 확률이 제일 높았다. 신세 한탄처럼 술상에 퍼진 말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우리 속에 남아있는 티끌만큼의 양심이 그 말에 동의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얼마나 침묵이 이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분위기를 바꾼 것은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였다.

“그래, 너네 다 얼른 취직하라구. 나는 평생 일 안 하고 엄마랑 아빠 등골 빨아먹으면서 살 거지만!”

일순 피어난 어색한 미소가 슬로우 모션처럼 시야 가득 퍼졌다. 빼도 박도 못 할 쓰레기 발언에 다른 녀석들이 입을 삐죽이자 오소마츠 형은 킬킬대며 말을 덧붙였다.

“너네는 취직한다며~?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술에 취해 반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한 말처럼 오소마츠 형은 어눌하게 말했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우리를 비웃는 오소마츠 형에게 모두 발끈해 대들었다.

몇 마디 되지 않는 말. 그사이에 많은 것이 오소마츠 형의 얼굴에서 스쳐 지나갔다. 어색한 웃음은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문득, 아빠의 추천으로 작은 회사에 들어갔던 나날을 발걸음 소리에 맞춰 하나씩 떠올렸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어렴풋한 위기를 안고 집을 나왔다.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오소마츠 형이었다.

구직 활동을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하게 된다면 오소마츠 형이 제일 먼저 취직할 것이라 무의식중에 생각했다. 옛날부터 자주 엄마가 주변에 변명하며 내두른 ‘할 때는 하는 아이’라는 표어는 오소마츠 형을 가리키는 것으로 의심치 않았으니까.

‘우리’는 오소마츠 형에게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존재였던 모양이다. 아마 오소마츠 형도 스스로 몰랐던 것 같다. 그 뒤로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오소마츠 형은 여전히 헤어짐을 못 견뎠다. 술자리에 던져진 ‘취직’이란 단어를 세세히 뜯어보면 그 안에 ‘헤어짐’이 있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미묘하게 오소마츠 형의 얼굴에 걸쳐진 두려움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내 어색한 미소를 피워 두려움을 숨겼다.

이걸 오소마츠 형이 철이 든 거라 봐야 하는 건가.

비웃음과 닮은 한숨이 입 밖으로 빠져나갔다. 숨을 뱉으며 살짝 벌어진 입가는 곧 굳게 다물렸다. 서로 작은 호흡과 시선을 공유했던 시절은 먼 과거였다. 하지만 그 시절이 남긴 것들은 조금 녹이 슬었을지라도 사라지진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오소마츠 형이 숨겼을 감정과 생각. 무엇을 감내하고, 무엇을 다짐하고, 무엇을 슬퍼했는지, 대충 예상은 할 수 있는데. 그걸, 그 솔직한 것들은 오소마츠 형의 입으로 직접 듣는 것은 이리도 어렵다.

‘오소마츠’였기에 오소마츠 형의 변화를 함께 나누고 싶었다.

“‘파트너’였는데….”

시선이 스친 것만으로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던 우리였는데. 가을의 찬바람이 세월의 무정함을 일깨우며 젖은 눈가를 스쳐 지나갔다.




6.


오랜 세월로 틀이 비틀려 잘 열리지 않는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을 벗고 복도에 오르자 거실에서 무미건조한 인사말이 나를 반겼다.

“오소마츠 형은?”

“위에서 자고 있슴닷!!”

커다란 공 위에서 몸을 흔들고 있던 쥬시마츠가 손을 번쩍 들고 천장을 가리켰다. 쥬시마츠의 손끝을 따라 위를 보고 시선을 내려 벽시계를 확인했다. 저녁 식사 시간이 가까운데 자고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부터 발목에 매달려 있던 찜찜함이 커졌다.

거실을 나와 계단을 올라 2층 방문을 열었다. 바닥에 펼쳐진 커다란 6인용 이불 중앙에 동그란 언덕이 솟아 있었다.

찜찜함은 불길함이 되고, 불길함은 곧 확신이 되었다. 입술 안쪽을 깨물고 조심스럽게 무릎 굽혀 오소마츠 형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하아….”

식은땀에 젖은 이마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푹- 한숨을 내쉬었다. 조심스럽게 오소마츠 형을 흔들어 깨우자 가녀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 흐…?”

“오소마츠 형, 일어나. 병원 가자.”

“아, 쵸로마츠~, 어서 와.”

발갛게 달아오른 채 배시시 웃는 저 얼굴을 당장 한 방 때려주고 싶다. 콱콱, 입술 안쪽과 함께 소리 내지 못한 욕설을 씹으며 오소마츠 형을 일으켰다. 아침부터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았는지 이불 안쪽은 오소마츠 형의 열로 뜨끈했다. 잠옷 차림인 오소마츠 형에게 갈아입을 내주고 계단을 내려왔다.

거실 찬장의 약상자에서 꺼낸 해열제와 물을 가지고 2층방으로 돌아갔다. 초등학생처럼 약은 싫다며 칭얼대는 오소마츠 형에게 억지로 해열제를 먹이고 함께 내려오자 거실에 있던 녀석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몰려들었다.

“무슨 일이야?”

“오소마츠 형이 감기 걸린 것 같아서. 병원 갔다 올게.”

토도마츠의 질문에 대답하자 쥬시마츠와 이치마츠가 당황한 얼굴로 이어 물었다.

“오, 오소마츠 형아, 아픔니깟!?”

“열…, 많이 높아?”

오소마츠 형을 보며 묻는 녀석들에게 간단히 대답하고 오소마츠 형과 함께 집을 나섰다.



오소마츠 형을 본 의사의 진단은 예상했던 대로 단순한 감기였다. 다만 열이 높아 조금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지경이 되도록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오소마츠 형을 향한 짜증을 간신히 억눌렀다. 환자한테 뭐라고 말해 봤자 소용없으니까.

오소마츠 형은 열 때문인지 혼자 걷는 게 힘들어 보였다. 금방 쓰러질 것처럼 휘청대는 오소마츠 형을 붙잡자 오소마츠 형이 천천히 눈을 끔뻑였다.

“쵸로마츠, 잠깐만.”

메말라 갈라진 목소리에 얼굴을 찌푸리고 길가 벤치에 오소마츠 형을 앉혔다.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공원 입구라 긴 벤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벤치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힘겹게 숨을 내쉬는 오소마츠 형의 모습에 가슴에 뻐근한 통증이 퍼졌다.

“물 사 올게. 물 마시고 좀 쉬다 가자. 아니면 업어줄까?”

울컥 치솟는 짜증을 감추고 부드럽게 묻자 오소마츠 형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감기 때문에 기력이 빠져 입꼬리만 간신히 올리는 미소에 가슴을 감싼 통증이 강해졌다.

“조금 쉬면 돼~. 먼저 들어가 있어, 쵸로 씌~.”

오소마츠 형은 비웃음이 나올 정도로 가소로운 힘으로 다가간 나를 밀어냈다. 이 정도 힘에 밀릴 리 없는데 오소마츠 형은 당연히 내가 물러날 것처럼 굴었다.

한계치에 다다른 유리가 깨지듯 억누르고 있던 뜨거운 것이 왈칵 목을 타고 올라왔다.

“왜 그러는데! 아프면서! 아픈 놈이 도와주겠다는 손을 왜 거부하는데! 아파도 혼자 참을 거면 차라리 티라도 내지 말던가! 사람을 걱정하게 만들고 왜 그러는 거냐고!”

억울했다. 무엇이, 왜 억울한지 자신도 몰랐지만, 너무 억울했다. 눈앞의 망할 장남은 항상 그랬다. 아파도 말해주지 않고, 슬퍼도 위로해달라 청하지 않았다. 예고 없이 벌컥 쏟아진 감정에 오소마츠 형이 눈살을 찌푸리고 나른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갑자기 왜 그래, 쵸로마츠? 횽아 걱정해주는 건 기쁘지만 말이야~. 막 죽을 병도 아니고 단순한 감기야~? 놔두면 알아서 낫고, 그리고 아픈 걸 알아도 쵸로 씌가 딱히 해줄 것도 없잖아.”

뭐가 문제야? 마지막으로 나온 질문에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아니,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라고! 아플 때 정도는 의지하라고!”

“오늘도 쵸로마츠가 병원 데려가 줬잖아? 의지 됐다고??”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분해서 발을 구를 정도로 나를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좀 더 근본적인 것이었다. 정리하지 못한 말을 그대로 내뱉으려다 오소마츠 형의 한 마디에 턱을 떨어뜨렸다.

“쵸로마츠는 동생이잖아~? 그러니까 괜찮다구-.”

뭐가 괜찮다는 거냐, 망할 자식아.

욕설을 입 밖으로 내지 않은 자신의 인내심을 칭찬하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지금 내가 쥬시마츠라면 좋았을걸. 그럼 뭔가를 눈치채도 자연스럽게 모른 척하며 핵심을 찌를 수 있을 텐데. 오소마츠가 처내린 저 말의 뜻을 알아채지 못했을 텐데.


나는 ‘동생’이기에 내 도움이 필요 없다.

오소마츠는 그렇게 말했다. 떫은 감을 먹은 것처럼 입안이 꺼칠꺼칠했다. 언제부터 오소마츠는 ‘우리’를 그렇게 받아들인 거지? 언제부터 오소마츠 안에서 형제의 상하 관계가 이렇게 단단하고 뿌리 깊게 박혀버린 거지?

지금까지 나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오소마츠는 티를 낸 게 아냐. 내가 알아차린 것뿐. 나는 처음부터 오소마츠의 고려 대상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만에 하나 오소마츠에게 자신의 목숨이 관련되었을 정도로 심각한 일이 생겨도 오소마츠는 내게 말하지 않을 거다.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나는 오소마츠의 의지가 되기는커녕, 진실조차 모른 채 오소마츠를 잃을 것이다. 그래, 우리는 그럴 것이다. 카라마츠를 제외한 ‘우리’는.


카라마츠는 언제부터 오소마츠를 ‘오소마츠’라 불렀지? 뻔뻔하게 저 혼자 ‘우리’에서 빠져나가 오소마츠를 옆자리를 꿰찼지?

“하하, 진짜 어이가 없네.”

새어 나온 탄식에 이를 갈며 눈을 들어 오소마츠와 마주 보았다.

“다 쉬었으면 들어가자.”

“어? 으, 응.”

내 목소리 톤이 달라진 것을 모를 리 없는 오소마츠는 멍청히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소마츠의 뜨거운 손을 잡아 벤치에서 일으키자마자 등을 내주었다.

“업혀.”

“허? 저기, 쵸로 씌? 나 괜찮은데? 이건 좀 오바,”

“닥치고 빨리 업혀.”

“에에~, 환자한테 말이 심한 거 아냐? 너무해~.”

오소마츠는 반항해도 소용없다는 걸 직감했는지 투덜대며 내게 업혔다. 공원을 지나 집을 향해 걸으며 등에 퍼지는 온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장남, 형의 의무나 일은 안간힘을 써서 피하려 드는 주제에. 왜 그런 부분만 ‘형’으로서의 자아가 확실하게 잡혀있는 건지. 자기가 얼마나 쓰레기를 표방해 부모님의 기대를 피했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던 오소마츠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착실히 자신을 ‘장남’이라 칭하는 이 멍청이를 어쩌면 좋을까. 그리고 파트너면서 오소마츠의 그런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 나는 또 어쩌면 좋을까.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거의 자신을 향한 후회가 사그라지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 어땠냐 묻는 녀석들을 미루고 2층방에 오소마츠를 눕혔다. 녀석의 목까지 이불을 덮어주고 그 옆에 엉덩이를 내렸다.

“나 동생 그만둘 거야.”

“응?”

“파트너로 돌아갈 테니까 잘 부탁해, 오소마츠.”

“응? 응?? 어, 뭐야? 뭐 땜에 스위치 들어가서 라이징하는 거야?”

“라이징 아냐, 망할 놈아. 잠이나 자. 열 때문에 힘들잖아.”

조롱이 섞인 걱정에 혀를 차고 오소마츠의 눈 위에 손을 올렸다. 병원에서 맞은 주사와 약이 효과를 냈는지 오소마츠는 금방 잠들었다. 색색, 규칙적으로 뜨거운 숨을 내쉬는 오소마츠를 잠시 바라보다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에 눈을 들었다.

“아, 쵸로마츠.”

“어서 와.”

“다녀왔다. 오소마츠는 좀 어떤가?”

“….”

눈썹을 내리고 묻는 카라마츠를 가만히 응시했다. 당연한 듯이 ‘오소마츠’라 부르는 카라마츠가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지경이 된 게 카라마츠 탓이 아니란 것도 이해하고 있다. 다만,


교활한 자식.

일렁이는 분노는 달랠 수 없었다.


“단순한 감기인데 열이 높아서 주사 맞고 왔어.”

“그런가.”

노골적으로 안도하는 낯빛에 입꼬리를 높이 올렸다.

“응. 오소마츠는 괜찮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금방 나아서 시끄럽게 굴걸.”

“하하, 그렇겠…,”

중간에 말을 흐린 입이 살짝 벌어졌다. 부드럽게 늘어졌던 짙은 눈썹이 매섭게 섰다. 푸른 빛을 머금은 눈이 나를 관찰하듯 응시했다. 그게 우스워 절로 미소가 짙어졌다.

왜 너만 특별한 줄 알았어? ‘오소마츠’라고 부를 수 있는 게 너뿐인 줄 알았어?

조용히 카라마츠를 마주 보았다. 그래, 이건 선전포고다.




7.


“하아~, 다 털렸다.”

드르륵-,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오소마츠가 복도에 나란히 선 두 쌍의 날카로운 눈빛에 어깨를 튕겼다.

“어서 와라, 오소마츠.”

“어서 와, 오소마츠.”

“오, 오오…. 다녀왔습니다아…?”

이유는 모르지만, 어딘가 사나운 분위기를 풍기는 카라마츠와 쵸로마츠는 서로 할 말이 있다며 2층으로 올라갔다. 끼이익, 낡은 층계를 오르는 두 동생의 등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본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거실에 들어갔다.

‘저 자식들 왜 저래?’

카라마츠와 쵸로마츠에게 욕먹을 짓을 많이 했지만, 둘이 함께 오소마츠를 ‘오소마츠’라고 부를 이유는 없었다. 심기가 뒤틀린 걸 저렇게 티 내는 건가? 좌로 우로 고개를 기울이는 오소마츠에게 질문 하나가 날아왔다.

“오소마츠 형, 쵸로마츠 형이랑 카라마츠 형한테 뭐 잘못했어?”

“에엑~? 아니, 나는 결백하다고! 진짜로!”

오소마츠에게 원인이 있을 거라 단언하는 토도마츠 앞에 무릎을 내린 오소마츠가 테이블을 살짝 내리쳤다.

“카라마츠 형은 그렇다 쳐도 쵸로마츠 형까지 ‘형’을 빼고 부르는데도?”

“우그으…, 그, 건 그렇지만….”

결백을 주장하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빠져나갔다.

지갑에서 돈 빼간 거? 아냐, 그건 매번 하는 거고. 저번에 피규어 망가뜨려서? 아냐, 쥬시마츠가 한 거라고 말했으니까 세이프. 기타랑 쵸로마츠 책을 말 안 하고 빌려 가서?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중얼대며 자신의 만행을 하나씩 짚어가던 오소마츠가 끄응 신음했다. 머리 위에 커다란 물음표를 띄우고 기억을 더듬는 오소마츠를 토도마츠가 눈에 담았다. 벌써 몇 분째 답장을 보내지 않은 메시지 화면에 눈을 주는 것처럼 속이고 오소마츠를 살핀 토도마츠가 한숨 쉬듯 말했다.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사과해. 쵸로마츠 형까지 저러니까 분위기 이상하다구.”

“아니, 나는 잘못한 거 없다니깐!?”

“없어도 사과해. 보고 있는 내가 짜증 나니까.”

“에엑~~, 이 드라이 몬스터 자식.”

얇게 뜬 눈으로 저를 보는 오소마츠에게 빙긋- 미소지은 토도마츠가 답을 재촉하는 저쪽의 메시지에 자판을 두드렸다.

“내일 있는 미팅, 가기로 한 친구가 안 된다고 해서 남자 하나 비는데, 오소마츠 형 갈래?”

“진짜!? 갈래!! 갈게요! 역시 막내만 있으면 된다니까~! 우리 집 희망의 별 토도마츠!!”

미팅이란 단어에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껴안고 방방 뛰는 오소마츠를 한심하단 눈으로 쳐다본 토도마츠가 슬그머니 떠오른 미소를 머금었다. 동생에게 스킨십 장벽이 낮은 오소마츠는 토도마츠를 찬양하며 제 볼을 토도마츠에게 비벼댔다. 토도마츠는 귀찮다고 불평하면서도 오소마츠를 밀어내지 않았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지만.’

토도마츠는 카라마츠와 쵸로마츠의 일탈을 그렇게 평했다. 토도마츠의 두 형이 나름대로 고심해 낸 결론이겠지만, 토도마츠에게는 비웃음밖에 자아내지 못했다. ‘막내’이기에 토도마츠는 여러 가지를 알고 있었다. 다른 형제들은 모르는 ‘장남’에 대한 것들을. ‘형’이라는 지위는 오소마츠를 지지하고 있는 중요한 축이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하게 부서질 리 없었기에 토도마츠는 두 형의 노력을 헛수고라 단정했다.

토도마츠로서는 ‘형제’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장남’의 정반대 포지션인 ‘막내’는 의외로 ‘장남’이라는 자리와 비슷한 것이 많았다. ‘막내’였기에 ‘장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지위가 가진 장점을 깨달은 토도마츠는 적극적으로 그것을 이용했다. 막내로서 장남인 오소마츠에게 마음껏 어리광부렸고, 나름의 의지가 되려 노력했다. 지금까지 나온 성과를 보면 ‘막내’는 정말 괜찮은 자리였다.

“빨리 그만뒀으면 좋겠네-.”

“응? 뭘?”

“아, 아는 친구 얘기야. 오소마츠 형.”

경계하는 눈이 2층에 있을 두 형에게 향했다. 형제 관계를 깨려는 카라마츠와 쵸로마츠는 토도마츠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였다. 그들의 행동이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는 없겠지만, 눈에 거슬리는 행위임은 분명했기에. 하루빨리 좌절해 그만두길 바라며 토도마츠가 오소마츠를 향해 웃었다. 사랑하는 형에게 동생이 지어줄 법한 애정 어린 미소를.



‘챙그랑’하고 복도를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에 쥬시마츠가 주방으로 달려갔다. 주방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 옆에 깨진 유리컵이 어지러이 늘어져 있었다.

“오소마츠 형아, 괜찮슴니까?”

“응, 괜찮아. 쥬시마츠, 내가 할게.”

“아이!”

오소마츠의 말에 쥬시마츠가 유리 조각을 주우려 뻗은 손을 긴 소매 속으로 감췄다. “아이고.” 하고 신음하며 쭈그려 앉은 오소마츠는 제가 놓친 유리컵의 잔해를 하나씩 집어 손에 올렸다. 오소마츠의 부드러운 거절에 쥬시마츠는 말없이 오소마츠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얼추 유리 조각이 치워지자 쥬시마츠가 폐지를 모아 놓은 가방에서 신문지를 꺼내 오소마츠에게 내밀었다.

“땡큐~.”

오소마츠가 날짜 지난 신문지에 유리 조각을 싸는 동안 쥬시마츠는 복도 벽장에서 청소기를 꺼내 왔다. 식탁 위에 있는 신문지 뭉치를 재활용 쓰레기통에 버린 쥬시마츠는 작은 유리 조각이 차칵차칵 소리를 내며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오소마츠의 능숙한 뒤처리에 주방에 퍼진 유리컵의 잔해가 깔끔하게 사라졌다. “휘유~.” 하고 한숨을 돌리며 땀도 나지 않은 이마를 닦아낸 오소마츠가 쥬시마츠를 향해 빙긋 웃었다.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알지?”

“아이!”

검지를 세워 입술 앞에 댄 오소마츠의 말에 쥬시마츠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오소마츠가 눈치채지 못한 상처에 입을 꼭 다물고 오소마츠를 거실로 이끌었다.

“오소마츠 형아, 거기 상처 있슴닷!”

“으겍~, 언제 생겼대.”

쥬시마츠가 유리에 베인 상처를 가리키자 오소마츠가 콧등을 찡그렸다. 쥬시마츠는 묵묵히 거실 찬장에서 약상자를 꺼내 오소마츠 앞에 내밀었다.

“고마워~.”

씩- 웃으며 약상자를 받아 든 오소마츠가 반창고를 꺼내 상처에 붙였다. 그 모든 과정을 쥬시마츠는 응시하기만 했다. 깨진 유리컵도, 손의 생채기도 오소마츠는 혼자 처리했다. 오른손에 생긴 상처 때문에 왼손으로 반창고를 붙이는 게 불편할 텐데도 오소마츠는 쥬시마츠에게 도와달라 하지 않았다.

“오소마츠 형아! 뭐 부탁할 거 있슴까?”

“응?? 부탁?”

“아이아이!”

“음…, 그럼 안마 좀 해줄래?”

오소마츠의 부탁에 쥬시마츠는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매까지 걷어붙이고 오소마츠의 어깨와 등을 마사지하기 시작한 쥬시마츠가 얼굴에서 미소를 지웠다. 쥬시마츠를 알고 있는 이라면 흠칫 놀랄 정도로 건조한 무표정을, 엎드려 있는 오소마츠는 볼 수 없었다.

오소마츠는 쥬시마츠를 보호하려 한다. 쥬시마츠가 ‘동생’이기에. 그리고 카라마츠와 쵸로마츠는 그 ‘동생’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으햐앙~.” 하고 묘한 색을 띈 오소마츠의 신음에 쓴웃음을 삼킨 쥬시마츠가 형제들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토도마츠도, 깨부수려 하는 카라마츠와 쵸로마츠도 쥬시마츠와는 아무 관계 없었다. 쥬시마츠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예전에 자신의 마음을 정한 쥬시마츠였다. 어느 쪽이든 쥬시마츠는 오소마츠가 원하는 쪽을 따르기로 정했다. 동생을 원한다면 동생으로 남을 것이고, 동등함을 원한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어떤 관계가 될 것이냐,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이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쥬시마츠는 그저 어떤 이름을 달건 오소마츠 옆에 있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5명의 동생 중 하나로서 옆에 있는 것도, ‘특별한 사람’으로서 옆에 있는 것도 좋았다. 쥬시마츠가 손을 뻗었을 때 오소마츠가 손에 잡힐 수 있는 거리에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래서 카라마츠와 쵸로마츠를 막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즈음 두 형의 움직임이 쥬시마츠의 행복을 방해하고 있었다. ‘동생’을 벗어나 오소마츠의 ‘단 하나’가 되려고 했다. 옆에 누구도 올 수 없게, 오소마츠를 독차지하려고 했다. 그건 좀, …곤란했다.

“토도마츠 쪽에 붙어야 하려나-.”

작게 흘린 혼잣말에 쥬시마츠가 해사하게 웃었다. 방관이 자신의 주특기였지만, 이번에 어리석은 두 형이 시작한 일만큼은 실패하기를 바랐다. 쥬시마츠는 자신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에, 그가 웃고 있는 방관자로 남아있을 때 두 형이 포기하길 바랐다. 지저분한 형제 싸움은 오소마츠가 원하지 않을 테니까.



메마른 입술에서 나온 흰 연기가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창가에 기대 담배를 피우는 오소마츠의 옆은 오랜만에 비어 있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오소마츠 옆에 다가간 이치마츠가 털썩 엉덩이를 내렸다.

“응? 왜 그래, 이치맛쨩~.”

옆자리를 차지한 보라색 후드를 본 오소마츠가 히히 웃으며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꼭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에 이치마츠는 침묵을 택했다. 오소마츠 역시 이치마츠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시선을 돌려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이치마츠는 무릎을 올려 감싸 안고 눈을 감았다.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오소마츠의 숨소리와 체온이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문득 이치마츠는 오소마츠가 뭔가를 알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를 둘러싼 집안의 분위기가 바뀐 것을, 오소마츠가 알아차렸을까. 오소마츠는 의외로 눈치가 빠르니까 모를 일이다.

“오소마츠, ……형.”

“응?”

빌어먹을 체리마츠와 개똥마츠를 흉내 내려 해도 마지막엔 꼭 ‘형’을 붙이고 만다. 이치마츠는 자신의 비겁함에 추욱 어깨를 늘어뜨렸다. 카라마츠와 쵸로마츠는 ‘동생’이길 거부했다.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는 그것을 경계했다. 그럼 이치마츠 자신은?

눈이 뻑뻑했다. 천천히 눈꺼풀을 닫았다 뜨며 이치마츠가 내려오는 손길에 떨리는 숨을 삼켰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와 쵸로마츠처럼 되고 싶었다. ‘동생’이 아니라 오소마츠와 동등한 위치에 서고 싶었다. 하지만 비겁한 자신은 그럴 수 없었다. 어느 날 오소마츠가 홀연히 흘린 진심에 겁이 났다.

“기대란 이름의 폭력이라구~?”

‘장남’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가, 그로 인해 따라오는 의무와 부담감을 오소마츠가 입에 담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오소마츠와 동등해지려면 자신도 그것을 떠안아야 했다. 그게 이치에 맞았다. 이치마츠는 그래서 도망쳤다. 비열하고 비겁하고 쓰레기인 자신은 도저히 그것들을 오소마츠와 나누어 짊어질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두려워서 도망쳤다.

‘그런 주제에 다시 원하고.’

도망쳤으면서 다시 또 동등하길 원한다. 어떤 형태든 오소마츠에게 의지가 되길 바랐다.

“…요즘, 뭐 고민 있어?”

마른침을 삼키고 용기를 그러모아 물었다. 오소마츠는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배시시 기쁘게 웃었다.

“횽아 걱정해주는 거야? 이치맛쨩! 감동이야!!”

우헤헤, 진심으로 기쁘게 웃는 오소마츠를 따라 이치마츠도 웃었다. 자신을 향한 지독한 비소를 가득 피웠다. 이치마츠가 원했던 답은 그게 아니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고통에 이치마츠가 뜨거운 눈시울을 떨어뜨렸다. 이를 악물고 눈가를 적시는 눈물을 참아냈다. 무릎에 파묻은 제 머리 위로 오소마츠의 부드러운 시선이 내려앉은 것도 모르고.

“역시 횽아는 이치맛쨩이 제일 걱정이야‐.”

이리저리 솟은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은 오소마츠가 가볍게 제 머리를 내렸다. 툭, 머리와 머리가 부딪쳤다. 붉게 물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못 본 척해주며 머리를 쓰다듬는 오소마츠의 손길에 이치마츠의 심장이 일그러졌다.

닿아오는 손길이, 걱정이 기쁘고 슬프다.

‘그게 아냐, 오소마츠….’

소리 내어 뱉을 수 없는 한탄을 구겨 쥔 이치마츠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 이번 단편에서는 남동생 하나 둔 장녀인 제 경험을 섞어 보았습니다^^  몸 상태가 안 좋거나 고민이 생겨도 동생한테는 딱히 뭔가는 바라지 않게 되더라구요. 동생은 단순히 '도와줘야할 상대'로만 인식되어서 그걸 오소마츠에게도 반영해 보았습니다.

* 한 마디라도 댓글 달아주시는 게 제게 많은 힘이 됩니다. 잘 봤다는 한 마디라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전에 부지런히 답글 달아드렸는데 초심을 되살려 답글 달아드리고 싶어요!ㅎ


* 여기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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